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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 西施入吳(서시입오) 說客子貢(세객자공)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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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81회 美人西施 說客子貢(미인서시 세객자공)

오왕 부차는 미인계로 보낸 월나라의 서시에 빠지고

자공은 열국을 유세하여 노나라를 전쟁의 위험에서 구했다.

1. 沈魚西施(침어서시)

- 서시의 아름다운 미모에 놀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다. -

나라 안에서 미녀를 구해 오왕에게 바치려는 월왕 구천의 계획을 들은 문종이 계책을 말했다.

「원컨대 왕의 측근 중에 내시 백여 명을 선발하여 미인을 식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서로 친한 자들끼리 무리를 짓게 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게 하면서, 미녀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 미녀의 이름과 땅 이름을 기록해 놨다가 데려와 그 중에서 선발하십시오. 어찌 나라에 미인이 없다고 걱정하십니까?」

구천이 문종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자 월나라의 안의 미녀에 대한 정황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필요한 2십 명을 훨씬 넘었다. 구천이 다시 사람을 시켜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미인을 선발하라고 하자 그 중 유난히 뛰어난 용모를 갖춘 미녀가 두 명이 있었다. 화공이 두 미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구천에게 바쳤다. 그 두 미녀는 이름이 각기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이라 했다. 서시는 곧 저라산(苧羅山)① 자락 밑에 살면서 숯을 구워 팔아 산다고 해서 이름을 채신(采薪)이라고 부르는 시(施)씨 성을 가진 사람의 딸이었다. 저라산 밑자락에 동서의 두 촌락에 시(施)씨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채신이라는 사람은 서쪽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그의 딸 이름을 서시(西施)라 불렀다. 정단 역시 같은 서쪽 마을에 살았는데 서시의 집 근처의 강가에 살고 있으면서 두 사람이 동무하여 매일 강가에 나와 강물에 옷을 빨았다. 두 사람의 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서로 번갈아 가며 강물 위에 비치는데 마치 무르익은 한 쌍의 부용과 같았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나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강물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수중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에 가라앉은 일도 있었다.

구천이 범려에게 황금 백일을 주고 저라산의 서시를 사서 궁궐로 데려오라고 명했다. 채신에게 황금을 주고 서시를 산 범려는 아름답게 무늬를 수놓은 비단 옷을 입힌 후에 화려한 색깔의 휘장을 둘러친 수레에 태워 요란한 행렬로 호송대를 만들어 데려왔다. 오성의 백성들이 두 사람의 미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서로 다투어 한 번 구경하고자 모두 성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에 길이 막혀 범려의 일행은 앞으로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범려가 가던 길을 멈추고 성 밖의 역관으로 들어가 서시와 정단을 머물게 하고 밖에 모인 백성들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금전 일 문씩을 바친 사람에게는 미인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

범려는 시자에게 명하여 돈을 거둘 수 있는 궤를 만들어 역관 앞에 놓도록 했다. 삽시간에 궤 안에는 금전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두 미인들이 모습을 나타내어 붉은 색을 칠한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밑을 굽어보자 표표한 자태는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처럼 보였다. 미인들이 3일을 오성의 교외에 머무르면서 거두어들인 금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범려가 모두 거두어 들여 수레에 싣고 가져가 국고에 충당시켰다. 친히 나와 미인을 맞이한 구천은 따로 짓도록 한 대궐에 살게 했다. 이어서 나이를 먹은 악사들로 하여금 두 미녀에게 가무와 걸음걸이를 가르치게 했다. 두 미인이 가무와 예절을 다 배우게 되면 오왕 부차에게 바치기 위해서 였다.

주경왕(周敬王) 31년 기원전 489년으로 구천이 월왕의 위에 오른 지 7년 째 되는 해였다.

2. 田乞立齊侯 開田氏專齊政(절걸립제후 개전씨전제정)

- 전걸이 제도공을 옹립하여 제나라의 정권을 차지할 기반을 만들다. -

그보다 1년 전인 주경왕 30년 기원전 490년 제경공 저구(杵臼)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 도(荼)가 뒤를 이어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 해에 초소왕 진(軫)도 죽고 세자 장(章)이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세자 장이 초혜왕(楚惠王)이다. 그 당시 초나라는 나라 안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 경황이 없었고 또한 당진은 세족들의 권력 다툼에 정사가 어지러운 상태였다. 제나라에서는 안영이 죽었고 노나라에서는 공자가 다른 나라로 떠나가 버려 모든 중원 나라들은 국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오로지 오나라만이 국세가 흥하여 천하에 군림했다. 부차가 오나라 군사들의 강함을 믿고 산동의 땅에 눈독을 들이며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열국의 제후들은 모두 부차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제경공이 살아 있을 때 그의 부인 연희(燕姬) 사이에 요(夭)라는 적자를 두었으나 어린 나이로 죽고 다른 공자들은 모두가 서출이었다. 모두 여섯 명의 서출 공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공자는 양생(陽生)이고, 가장 나이가 어린 공자는 도(荼)였다. 도의 모친 죽사(鬻姒)는 신분이 비천한 노비 출신이었지만 경공의 총애를 받았다. 죽사를 사랑한 경공은 자식인 도도 극진히 사랑하여 안유자(晏孺子)라고 불렀다. 경공이 무려 57년을 재위에 있으면서도 세자를 선뜻 세우지 않은 이유도 안유자가 장성하기를 기다려 그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든 경공은 자신이 일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그 즉시 제나라의 세신 국하(國夏)와 고장(高張)을 불러 나이 어린 공자도를 보좌하여 자기의 뒤를 잇게 하도록 유명했다. 당시 대부 진걸(陳乞)은 평소에 공자 양생과 친교을 맺고 있었다. 안유자가 제후의 자리에 오르면 양생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 진걸은 그에게 나라 밖으로 나가 잠시 몸을 피해 있으라고 권했다. 양생은 진걸의 말을 듣고 즉시 그의 아들 임(壬)과 가신 감지(闞止)를 대동하고 노나라로 도망쳤다. 경공이 죽을 때가 되자 과연 국씨와 고씨 두 집안을 시켜 여러 공자들을 래읍(萊邑)으로 쫓아내 감시하도록 했다. 이윽고 경공이 죽자 안유자를 제나라 군주로 세우고 국하와 고장 두 사람이 좌우에서 나라의 정사를 전단했다. 진걸은 겉으로는 그들에게 순종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그래서 진걸은 여러 대부들 면전에서 거짓말로 선동했다.

「국하와 고장 두 사람이 음모를 꾸며 옛날 선군 때의 구신들을 모두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안유자를 따르던 무리들을 앉히려고 합니다.」

여러 대부들이 진걸의 말을 믿고 모두 그에게 달려가 무슨 좋은 수가 없냐고 물었다. 진걸과 포목(鮑牧)이 모의하여 여러 대부들과 함께 가병들을 이끌고 고씨와 국씨의 집을 공격했다. 고장은 살해되고 국하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거나라로 도망쳤다. 그래서 포목은 우상이 되고 진걸은 좌상이 되었다. 다시 국서(國書)와 고무평(高无平)을 국씨와 고씨의 후사를 잇게 하여 두 종족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했다. 그때 나이가 아직 어린 안유자는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의 말을 쫓을 뿐이었고 스스로 자립하여 행할 수 없었다.

진걸의 마음속에 공자 양생을 도와 제후의 자리에 앉히고 싶은 생각이 있어 아무도 몰래 사람을 노나라에 보내 양생을 데려오도록 시켰다. 아들 임과 가신 감지를 대동하고 밤 시간을 이용하여 제나라의 교외에 당도한 양생은 두 사람은 교외에 머무르게 하고 자신은 단신으로 성안으로 들어가 진걸의 집에 숨었다. 진걸이 거짓으로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핑계를 대고 여러 대부들을 자기 집에 모이게 하여 제사를 지낸 음식으로 잔치를 벌였다. 초청한 대부들이 모두 약속한 시간 전에 당도하였지만 포목만은 그날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신 탓으로 제일 늦게 당도했다. 대부들이 모두 자리에 좌정하자 진걸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이번에 매우 견고한 갑옷을 한 벌 새로이 얻었는데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 대부들이 모두 말했다.

「한번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힘 센 장사 한 명이 커다란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집안에서 걸어 나왔다. 장사가 자루를 대청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진걸이 친히 앞으로 나가 큰 자루의 끈을 풀어 자루를 열자 그 안에서 사람 한 명이 머리를 내밀며 나왔다. 사람들이 보니 바로 공자 양생이었다. 여러 대부들이 놀라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했다. 자루에서 나온 양생을 남쪽을 향해 서게 한 진걸은 여러 대부들을 향해 말했다.

「나라의 후계는 장자로 세워야 함은 고금을 통한 법입니다. 안유자는 아직 어린 나이이니 능히 군주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 포상국의 명을 받들어 제일 나이가 많은 공자를 군주로 받들기를 청합니다.」 포목이 듣고 눈을 부릅뜨더니 진걸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이 음모와는 전혀 무관한데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무고하는가? 내가 취했다고 이렇듯 속이려고 하는가?」

양생이 포목을 향해 읍을 하며 말했다.

「폐군의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법인데 다만 그것이 의로운 일이냐 아니냐일 뿐이오. 대부는 단지 지금 행하고자 하는 일이 의롭냐, 아니면 의롭지 않느냐만 말하시오. 어찌 음모에 무관하다는 말만을 하시오?」

진걸은 양생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포목을 강제로 꿇어 앉혀 절을 올리게 했다. 다른 대부들도 할 수 없이 모두 북면하여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진걸은 양생을 제나라 군주로 받들기로 여러 대부들과 같이 삽혈을 한 후에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진걸과 제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수레를 준비하여 양생을 태우고 일제히 조정으로 들어가 제나라의 군주 자리에 앉혔다. 이가 제도공(齊悼公)이다. 안유자는 그날로 궁 밖으로 내보낸 자객을 시켜 죽였다. 처음에 자기가 군위에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포목을 의심하게 된 도공은 진걸을 찾아가 상의했다. 진걸도 역시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포목을 시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걸은 포목이 래읍으로 쫓겨난 여러 공자들과 친교가 있어 만일 포목을 죽이지 않으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다고 참소했다. 그래서 도공은 포목과 그 일가족을 모조리 죽이고 포식(鮑息)만을 살려 두어 포숙아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국인들은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도공의 처사를 보고 마음속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3. 除狼得虎(제랑득호)

- 이리를 잡기 위해 호랑이를 끌어들여 목숨을 잃은 제도공 -

한편 제도공에게는 일찍이 시집을 가서 주(邾)나라 군주 익(益)의 부인이 된 누이동생이 한 명 있었다. 주자(邾子) 익은 원래 사람됨이 오만무례한 자라 노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노나라의 상경 계손사가 노애공(魯哀公)에게 고한 후에 군사를 이끌고 주나라를 정벌했다. 주나라의 도읍을 파한 계손사는 주자 익을 사로잡아 부하(負瑕)②의 땅에 가두어 두었다. 제도공이 대노하여 말했다.

「나의 매제 주자를 잡아간 행위는 노나라가 우리 제나라를 기만한 일이다.」

도공은 즉시 사자를 오나라에 보내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노나라를 정벌하자고 청했다. 부차가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산동에 군사를 보내 우리의 세력을 한번 과시하려고 했는데 이 일로 내가 명분을 얻게 되었구나!」

부차는 즉시 제나라의 요청을 허락하고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로 출병시켰다. 노애공이 크게 놀라 즉시 주자를 석방하여 자기나라로 돌려보내고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 사죄했다. 제도공이 대부 공맹작(公孟綽)을 오나라에 보내 부차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도록 했다.

「노나라가 이미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를 하니 감히 대왕의 군사들로 하여금 수고를 끼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부차가 듣고 노하여 말했다.

「오나라의 군사들이 행군하고 멈추고 하는 일을 제나라가 마음대로 한다면 우리 오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과인이 친히 제나라에 가서 어찌하여 두 가지 명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연고를 물어 봐야 되겠다.」

부차는 공맹작을 꾸짖어 쫓아 버렸다. 노나라는 오왕 부차가 제나라에 대해 노여움을 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오나라와 친선을 맺고 오히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부차가 흔연히 허락하여 그 날로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와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여 제나라의 남쪽 지방을 포위했다. 제나라 백성들은 놀라 혼비백산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도공이 공연히 외적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백성들은 자기들의 군주를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갔다. 그때 진걸은 이미 나이가 들어 죽고 그의 아들 진항(陳恒)이 뒤를 이어 제나라의 정사를 맡고 있었다. 진항은 국인들이 도공의 명에 따르지 않는 틈을 타서 포식(鮑息)과 상의했다.

「어찌하여 이번에 대사를 도모하여 밖으로는 오나라의 원망을 해결하고 안으로는 가문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포식이 자기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사양했다. 진항이 다시 말했다.

「내가 대감을 위해 대사를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항은 보좌에 앉아 군사를 사열하던 도공에게 짐독이 든 술을 권하여 독살했다. 질병에 걸려 병사했다고 백성들에게 알린 전항은 오나라 진영에 제후의 부고를 보내면서 말했다.

「천명을 받은 상국이 우리 군주의 죄를 물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주님은 갑자기 폭질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대왕을 대신하여 우리 군주를 죽였다고 하겠습니다. 부디 우리 제나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사직이나마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다면 대대손손이 상국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부차가 즉시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자 노나라 군사들도 역시 물러갔다. 제나라의 국인들은 모두가 도공이 비명횡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진씨들을 두려워하기도 했고 또한 평소에 바라던 대로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그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진항이 도공의 아들 임(任)을 세워 그 뒤를 잇게 하였다. 이가 제간공(齊簡公)이다. 간공은 진씨들의 세력을 줄이기 위해 진항을 우상으로 삼고 감지를 좌상으로 삼아 권력을 나누게 했다. 옛 사람이 논하기를 제나라의 환란은 모두 경공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면서 시를 지어 말했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더욱 어리석어 지는 법인데

어찌하여 형제의 순서를 바꿔 군위를 전했던가?

권신의 전횡과 외적을 원망하지 말지어다!

흉문은 자기가 스스로 파는 것이니.

從來溺愛智逾昏(종래익애지유혼)

繼統如何亂弟昆(계통여하란제곤)

莫怨强臣與强寇(막원강신여강구)

分明自己鑿凶門(분명자기착흉문)

4. 紅顔禍水(홍안화수)

- 천하절색 서시를 얻은 부차가 망국의 길을 걷다. -

그 때 월왕 구천은 두 미녀를 데려다가 가무를 가르치기를 3년이 되자 그들의 기예와 자태가 모두 갖추어 졌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주렴으로 아름답게 휘장을 치고 온갖 진기한 장식품으로 치장한 수레에 수레에 두 미녀를 태워 월성의 저자거리를 지나가게 했다. 두 미녀에게서 나는 아름다운 향기가 월성의 온 천지에 가득했다. 다시 선파(旋波), 이광(移光) 등 아름다운 시녀 여섯 사람을 뽑아 두 미녀의 시중을 들게 했다. 구천이 상국 범려를 시켜 두 미녀를 오나라에 데리고 가서 부차에게 바치도록 했다. 그때 부차는 제나라를 정벌하고 막 회군하던 참이었다. 부차가 범려를 불러 접견했다. 범려가 재배를 올리고 구천의 말을 전했다.

「동해의 천신 구천이 대왕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으나 제가 친히 처첩을 이끌고 대왕의 좌우에 머물러 모시지 못함을 한탄하여 저희 월나라 경내를 샅샅이 뒤져서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 두 명을 구했습니다. 신의 배신 범려를 시켜 왕궁에 보내오니 저의 정성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시어 왕궁의 소제하는 일이나 맡기시기 바라나이다.」

범려가 데리고 온 두 미녀의 얼굴과 자태를 본 부차는 그 두 여인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자서가 곁에 있다가 간했다.

「신이 듣기에 하나라는 말희(妺姬)로 인하여, 은나라는 달기(妲己)로, 서주는 포사(襃姒)로 인하여 망했다고 했습니다. 무릇 아름다운 여인이란 망국으로 이끄는 요물이라 대왕께서는 저 두 요물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함은 무릇 남자 된 사람의 인지상정이라! 구천이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고도 스스로 취하지 않고 나에게 바치니 참으로 우리 오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상국은 더 이상 나를 의심하지 마시오!」

부차가 즉시 두 미녀를 받아들였다. 두 여인은 모두 천하절색이라 부차가 둘을 같이 사랑했지만 요염하고 아양을 잘 떠는 면에서는 정단이 서시를 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연히 서시가 부차 앞에서 노래와 춤을 제일 잘 추는 여인으로 인정받아 고소대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이윽고 서시는 부차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녀가 출입을 할 때는 의례를 갖추어 마치 왕비가 드나드는 것처럼 했다. 한편 정단은 오성의 궁궐에 살다가 부차의 총애를 독차지한 서시를 투기하여 그 울분을 참지 못했으나 뜻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몇 년 만에 울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부차가 애통해 하여 황모산(黃茅山)에 묻어 주고 그녀를 위해 사당을 지어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 주었다. 이것은 후일의 일이다.

한편 부차가 서시를 사랑하여 왕손웅에게 명하여 영암산(靈岩山)에 관왜궁(館娃宮)이란 궁전을 특별히 축조하도록 시켰다. 관왜궁은 동을 주조하여 도랑을 만들고 옥을 깎아 난간을 달았으며 그 장식은 모두 주옥으로 치장하여 미인이 놀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관애궁 안에 향섭랑(響屧廊)이란 복도를 만들었다. 향섭이란 말은 나무로 만든 나막신을 뜻한다. 향섭랑은 복도 밑의 땅을 파고 물을 채운 큰항아리를 묻고 그 위를 평평하게 만들고 두꺼운 판자로 덮은 복도이다. 향섭이란 서시와 그녀의 시녀들이 나막신을 끌며 그 위를 걸어 다닐 때 쟁쟁한 소리가 울려 퍼지게 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지금도 영암사(靈岩寺) 원내의 등탑(燈塔) 앞에 약간 경사가 진 낭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향섭랑의 유적지이다. 원조의 문인 고계(高啓)③가 《관왜궁》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가 있다.

관왜궁 안에 치솟은 관왜각이 있었으니

화려한 기둥은 구름 속의 봉오리에 닿았다.

그러나 여전히 한스러운 것은 높이가 부족하여

쳐들어오는 월나라 병사들을 볼 수 없었음이라!

館娃宮中館娃閣(관왜궁중관왜각)

畵棟侵雲峰頂開(화동침운봉정개)

猶恨當時高未極(유한당시고미극)

不能望見越兵來(불능망견월병래)

또 송조의 시인 왕우칭(王禹稱)④라는 시인도 역시 <향섭랑>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향섭랑은 부서져 폐허가 되었고 헛된 이름만 남아있는데

서시의 나막신을 끄는 소리를 듣고자 행한 짓을

가련한 오자서는 직간하다가 시신으로 변했건만

그 누가 당시의 나막신 끄는 소리를 기억하고 있겠는가?

廊壞空留響屧名(랑괴공유향섭랑)

爲因西子繞廊行(위인서자요랑행)

可怜伍相終尸諫(가령오상종시간)

誰記當時曳屧聲(수기당시예섭성)

영암산의 산정에는 연꽃을 감상할 수 있는 ‘완화지(玩花池)’, 달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완월지(玩月池)’라는 연못을 각각 조성하고 다시 우물을 팠는데 오왕의 우물이라고 하여 ‘오왕정(吳王井)’이라 했다. 오왕정의 우물에는 맑고 푸른 물이 솟아 나와 서시가 간혹 가다가 샘물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가며 몸단장을 했는데 부차가 곁에 서서 서시의 머리를 다듬어 주곤 했다. 다시 땅 밑에 동굴을 파서 이름을 ‘서시동(西施洞)’이라 하고 부차와 서시가 이곳으로 가서 같이 기거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동굴 밖에 조그맣게 파인 자국이 있는 바위가 하나 있다. 그 당시 서시가 앉아 쉬었다고 해서 ‘서시적(西施迹)’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서시가 산꼭대기에서 부차와 같이 앉아서 거문고를 타던 자리는 ‘금대(琴臺)’라고 했다. 부차는 다시 사람들을 시켜 향산(香山)에 향초(香草)를 심어 서시와 그 시녀들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향(香)을 채집하도록 했다. 오늘도 영암산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화살처럼 곧게 뻗은 강줄기라는 뜻으로 명명한 ‘전경(箭涇)’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서시가 향초를 채집하던 곳이다. 다시 연꽃을 따던 냇물이라는 뜻의 이름의 ‘채련경(采蓮涇)’ 이라는 곳이 성의 동남쪽에 있다. 부차와 서시가 배를 타고 연꽃을 따던 곳이다. 그리고 성안에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운하를 파고 비단으로 만든 배를 특별히 건조하여 부차와 서시가 타고 다니며 노닐었다. 그 운하의 이름은 비단배가 다니던 물길이라고 해서 ‘금범경(錦帆涇)’이라 했다. 고계가 다시 이를 두고 시를 지어 탄식했다.

其一

오왕이 살아 있을 때는 온갖 백화가 만발하고

악공이 탄 아름다운 유람선은 섬 주변을 맴돌았으나

오왕이 죽고 나니 모든 꽃들은 시들어

노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섬은 적막하게 되었네

吳王在日百花開(오왕재일백화개)

畵船載樂洲邊來(화선재락주변래)

吳王去后百花落(오왕기후백화락)

可吹无聞洲寂寞(가취무문주적막)

其二

해년마다 봄이 되면 꽃은 피고 다시 지지만

그것을 보고 감회를 느낀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단지 물길에 비친 꽃가지만을 보지 말고

먼지가 되어 날아간 꽃송이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花開花落年年春(화개화락연년춘)

前後看花應機人(전후간화응기인)

但見枝枝映流水(단견지지영유수)

不知片片墮行塵(부지편편타행진)

其三

해마다 몰아치는 풍우는 고소대를 황량하게 만들었고

해가 지면 꾀꼬리는 단장이 끊어지듯이 울어댔다.

어찌 꽃구경을 하는 사람이 세속의 소인들뿐이겠는가?

원래는 이곳에는 구경할 수 있는 꽃은 없었음이라!

年年風雨荒臺畔(연년풍우황대반)

日暮黃鵬腸欲斷(일모황붕장욕단)

豈惟世小看花人(개유세소간화인)

從來此地无花看(종래차지무화간)

또한 성 남쪽에는 부차가 서시를 데리고 가서 사냥을 하던 ‘장주원(長洲苑)’이라고 있다. 그밖에 물고기를 기르던 ‘어성(魚城)’, 오리를 기르던 ‘압성(鴨城)’, 닭을 기르던 ‘계성(鷄城)’, 술을 빚던 ‘주성(酒城)’을 두어 각기 전문적으로 기르고 빚게 하였다. 다시 서시와 함께 여름철의 무더위를 피해 동정호(洞庭湖)⑤의 남쪽에 있던 호반으로 피서를 갔다. 그곳은 넓이가 십여 리에 달하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유독 남쪽만은 궁궐의 대문처럼 트여 있는 넓은 호수 가의 땅이었다. 오왕이 보고 말했다.

「이 곳이야 말로 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지내기가 좋은 곳이로구나!」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소하만(消夏灣)’이라고 했다. 후세의 장우(張羽)⑥라는 문인도 ‘소대지가(蘇臺之歌)’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부차의 호사스러운 생활에 대해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

其一

관왜궁의 뜰 안에 백화가 만발할 때

서시는 새벽에 깨어나 고소대에 올랐다.

서시의 오색 치마와 비단 소맷자락이 허공에 펄럭이면

가벼운 몸은 마치 바람에 따라 춤추는 빗줄기 같았다.

館娃宮中百花開(관왜궁중백화개)

西施曉上姑蘇臺(서시효상고소대)

霞裙翠袂當空擧(하군취몌당공거)

身輕似展凌風雨(신경사전능풍우)

其二

삼강수를 바라보며 술 한 잔을 드는데

동정호의 나무들은 망망대호의 희미한 두 점이라

서시가 얼굴을 돌려 되돌아보지 않으려 함은

사슴 사냥하던 부차가 있는 곳을 보려고 했음이라!

遙望三江水一杯(요망삼강수일배)

兩点微茫洞庭樹(양점미망동정수)

轉面凝眸未肯回(전면응모미긍회)

要見君王射麋處(요견군왕사미처)

其三

성루에 해가 지니 갈가마귀 둥지를 찾아 드는데

서시는 성루에서 내려와 당리화(棠梨花)를 꺾는구나

강 건너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곳을 쳐다보지 말지어다

간장과 막야의 이름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도다!

城頭落日欲棲鴉(성부락일욕서아)

下階戱折棠梨花(하계희절당이화)

隔岸行人莫倚盼(격안행인막의분)

干將莫耶光粲粲(간장막야광찬찬)

부차가 서시를 얻고 나서부터 고소대에서 파묻혀 지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놀이를 나갔다. 악기를 든 악공들을 대동하여 그가 이르는 곳이면 풍악소리가 끝이지 않았다. 부차는 놀이에 빠져 궁궐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부차의 곁에는 태재 백비와 왕손웅 두 사람만이 붙어 있어 오자서가 부차에게 접견을 청해도 번번이 허락하지 않았다.

5. 烝穀還吳(숙곡환오)

- 곡식을 쪄서 오나라에 상환하다. -

한편 월왕 구천은 오왕이 서시를 총애하여 매일 놀이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문종에게 다음 계책을 물었다. 문종이 말했다.

「신이 듣기에 ‘나라는 백성이 그 근본이고 백성의 근본은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금년에는 오나라에 흉년이 들어 양식 값이 오를 것입니다. 대왕께서 오나라에 양식을 빌려 달라고 청하시어 그것으로 오나라의 백성들을 기아에 빠뜨리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만약 우리 월나라를 돕는다면 오나라는 필시 우리의 청을 들어줄 것입니다.」

구천이 즉시 문종에게 명하여 많은 재화를 가지고가서 백비에게 뇌물로 바쳐 오왕의 접견을 부탁했다. 백비가 문종을 이끌고 고소대 안의 궁궐에 있던 오왕에게 데려갔다. 문종이 재배를 올리고 말했다.

「월나라에 지진이 일어나 지반이 내려앉는 바람에 홍수와 한발이 덮쳐 흉년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사오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우리 월나라의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상국의 양식 창고 태창(太倉)을 열어 곡식 만 섬만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푸시어 당장의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시면 내년에 곡식을 수확하여 갚도록 하겠습니다.」

「월왕이 나에게 진정으로 복종하고 있으니 월나라 백성들이 굶주림은 곧 우리 백성들의 굶주림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어찌 양식을 아껴 쌓아 두고 월나라 백성들의 굶주림을 외면한단 말이냐?」

그때 오자서도 역시 월나라 사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고소대에 뒤따라 들어와 있었다. 월나라 사자가 오왕을 접견하고 곡식의 대여를 청하자 흔쾌히 허락하는 오왕을 향해 오자서가 다시 간했다.

「월나라에 곡식을 보내는 일은 절대로 불가합니다. 오늘의 형세는 우리 오나라가 월나라를 병합하지 않으면 반대로 월나라가 오나라를 병합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오늘 월왕이 보낸 사자의 기색을 살펴 보건데 월나라가 곡식의 대여를 청하는 이유는 기근이 들어서가 아니라 장차 우리 오나라의 곡식창고를 비우게 하려는 흉계입니다. 곡식을 빌려준다 해서 두 나라 사이가 더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안 준다고 해서 더 이상 원수질 일도 없사오니 대왕께서는 허락하지 마시옵소서!」

「구천이 우리나라에 죄수로 있으면서 내 말을 끌면서까지 공손한 태도를 취한 일은 세상의 모든 제후들이 알고 있는 바요. 또한 옛날 내가 그를 자기나라로 돌려보내 그의 사직을 다시 잇게 하자 그 은혜를 잊지 않은 구천이 공물을 끊이지 않고 바치고 있소. 어찌 그가 다시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근심하시오?」

「제가 소문을 들으니 월왕 구천은 새벽에 조회를 열고 저녁 늦게 서야 파하고 백성들을 보살피고 병사들을 훈련시키기에 여념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국력을 길러 우리 오나라에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서인데 대왕께서 그에게 곡식을 보내 주어 그를 돕는다면 종래에는 우리 오나라는 구천에게 망하여 이곳 고소대는 사슴들만 뛰어 노는 폐허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구천이 이미 나를 신하의 예로써 받들고 있는데 신하된 자가 어찌 그 군주를 범하겠소?」

「상탕(商湯)은 하걸(夏桀)을, 주무왕(周武王)은 은주(殷紂)를 정벌했는데 그것은 신하된 자가 자신의 임금을 범한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백비가 부차의 곁에 있다가 오자서를 큰 소리로 질책했다.

「상국의 말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어찌 우리 왕을 걸주(桀紂)에 비한단 말입니까?」

백비가 이어 부차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신이 알기로 규구(葵邱)의 회맹⑦ 때 이웃나라가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할 때는 이것을 금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웃나라 백성들의 굶주림을 보살피기 위해서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월나라에서 자발적으로 보내 온 공물을 매년 받고 있습니다. 내년에 곡식이 익어 추수를 한 후에도 갚지 않는 다면 그때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습니다. 또한 곡식을 빌려주고 다시 받는다면 우리 오나라가 손해 보는 일이 없이 월나라에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되니 주저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부차가 즉시 곡식 만 섬을 월나라에 보내 주라고 명하면서 문종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과인이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월나라에 곡식을 빌려주니 내년에 풍년이 들면 필히 갚아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기 바라오.」

문종이 머리를 조아리며 재배하며 말했다.

「대왕께서 기아에 허덕이는 우리 월나라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해 주셨는데 어찌 감히 곡식을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종이 곡식 만 섬을 얻어 가지고 월나라에 귀국했다. 월왕 구천이 크게 기뻐하자 월나라의 대소 신료들은 큰 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구천이 즉시 오나라에서 빌려 온 곡식을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월나라의 백성들은 월왕 구천의 덕을 칭송했다.

그 다음 해에 월나라에 대풍이 들었다. 월왕이 문종을 불러 말했다.

「과인이 오나라에서 빌린 곡식을 갚지 않으면 이것은 신의를 어기는 일이 되고 다시 갚자니 그것은 월나라의 손해에 또한 오나라의 이익이 되는 일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마땅히 가장 좋은 상등품의 곡식만을 골라 뜨거운 물에 삶아서 보낸다면 그들은 우리가 보낸 곡식을 부러워하여 다음 해에 종자로 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계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

월왕이 문종의 계책에 따라 가장 좋은 곡식을 골라 모두 뜨거운 물에 삶은 후에 오나라로부터 받은 수량도 똑 같이 해서 상환했다. 오왕이 월나라가 약속대로 곡식을 갚자 탄복하며 말했다.

「월왕은 진실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로구나!」

부차는 월나라에서 상환해 온 곡식의 낱알이 비상하게 큰 것을 보고 백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월나라의 땅이 비옥하니 그 낱알도 우리 오나라의 것에 비해 대단히 크구려! 내년에 우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 종자로 쓰도록 하시오!」

그래서 다음 해에 파종기 때 오나라의 모든 땅에는 월나라에서 보내 온 곡식을 종자로 사용했다. 그러나 오나라의 땅에 뿌려진 종자는 싹이 돋지 않아 수확을 하나도 걷지 못했다. 그 결과 오나라에는 큰 기근이 발생했다. 부차는 그것이 토양과 기후가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만 알았지 월나라가 뜨거운 물에 찐 곡식을 보내 온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문종의 계교(計巧)는 참으로 악랄했다.

이 때가 주경왕(周敬王) 36년 즉 기원전 484년의 일이었다.

7. 神女擊劍 陳音連弩(신녀격겸 진음연로)

- 신녀에게 격검술을 배우고 진음에게 쇠뇌의 사격술을 배우는 월나라 군사들 -

월왕은 오나라가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자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문종이 말리며 간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오나라에는 아직도 충신들이 살아 있습니다. 」

월왕이 오나라를 정벌할 계획에 대해 범려에게 다시 물었다. 범려가 말했다.

「이제 그때가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더욱 군사들의 훈련에 힘을 쏟으시고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싸움을 하기 위한 준비가 아직도 덜 되었다는 말이오?」

「싸움을 잘하는 자는 반드시 정예병(精銳兵)이라야 합니다. 정예병이라 함은 필시 한 가지씩의 무예를 겸해야 합니다. 등치가 큰 병사는 검과 극을 쓰는 법을 가르치고 체구가 작은 병사들에게 궁노를 들게 하여 활 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훌륭한 선생들을 초빙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검(劍)과 극(戟)의 무예에 정통한 처녀 한 사람이 성의 남쪽 숲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다시 초나라 사람인 진음(陳音)이라는 사람이 활쏘기에 도통하였다고 하니 왕께서는 사람을 보내 그 두 사람을 초빙해 오시기 바랍니다.」

월왕이 즉시 사자에게 많은 재물을 들려서 두 사람에게 각기 보내어 남림(南林)의 처녀와 진음(陳音)을 모셔 오게 했다.

한편 이름을 알 수 없는 남림(南林)의 처녀는 깊은 숲 속에 태어난 후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황야에서 자라 어떤 선생에게서도 배운 바가 없이 스스로 칼과 극을 쓰는 법을 터득했다. 월왕의 사자가 남림에 당도하여 그 명을 전했다. 처녀가 즉시 사자를 따라나서 북쪽에 있던 도성으로 향했다. 사자의 일행이 산중의 응달진 곳을 지나던 중 갑자기 백발노인이 나타나 처녀의 일행이 탄 수레를 가로막으면서 물었다.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남림에 산다는 처녀가 아닌가? 검술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감히 월왕의 초빙을 받는단 말인가? 내가 한번 그대의 무예를 시험해 보리라!」

남림의 처녀가 대답했다.

「이 첩이 감히 스스로 재주를 감추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노옹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노인이 즉시 숲 속의 대나무 밭에서 대나무 한 개를 마치 썩은 풀을 뽑듯이 뽑아내더니 비호처럼 남림의 처녀를 찔러 왔다. 그러나 노인이 쥐고 있던 대나무는 어느 사이에 처녀가 휘두른 대나무에 부딪쳐서 그 끝이 부러져 땅에 떨어졌다. 이어서 처녀가 그 대나무를 다시 주워 노인을 역으로 공격했다. 그러자 노인은 갑자기 공중으로 날라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하얀 원숭이로 변했다. 이어서 길게 휘파람 소리를 한번 내고 나무위로 날아가 사라져 버렸다. 사자가 그 광경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처녀가 월성에 당도하자 월왕이 자리에 앉게 하고 검술에 대한 도를 물었다. 처녀가 격검술에 대해 말했다.

「기를 모아 자세를 취한 다음 정신을 집중하여 마치 토끼가 질주하듯이 민첩한 동작으로 상대방의 뒤를 쫓다가 다시 그림자로 변하며 종횡으로 움직이기를 사람들이 미처 볼 수 없는 번개같은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만약에 저의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해 낼 수 있으며 백 사람은 만 사람을 당해 낼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에 첩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마땅히 시험하여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월왕 구천이 즉시 명하여 용감한 군사 백 명에게 극을 들고 일제히 그 처녀를 공격하게 했다. 처녀가 들고 있던 칼로 군사들의 극을 쳐서 모조리 땅에 떨어뜨렸다. 월왕이 놀라 탄복하였다. 월왕은 처녀로 하여금 군사들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치게 했다. 그녀에게서 검술 훈련을 받은 군사들은 모두 3천 명에 달했다. 처녀가 월나라 군사들에게 검술을 일년 넘게 가르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살던 남림(南林)으로 돌아가 버렸다. 월왕이 다시 사자를 보내 청해 오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져 버려 아무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하늘이 월나라를 흥하게 하고 오나라를 망하게 하기 위해 신녀(神女)를 내려 보내 군사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월나라를 돕도록 한 것이다.」

한편 초나라 출신 진음이라는 사람은 자기나라에서 살인을 하고 그 죄를 피하여 월나라로 도망쳐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가 활을 쏘는 모습을 구경하게 된 범려는 그가 쏜 화살은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과녁에 명중하는 것을 보았다. 범려가 진음을 월왕에게 데려와 천거하며 월나라 군사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치게 하라고 했다. 월왕이 진음을 불러 물었다.

「활과 쇠뇌는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쇠뇌는 활에서 생기고 활은 탄궁(彈弓)에서 생겼습니다. 탄궁은 옛날 어떤 효자가 만들었습니다. 옛날에 사람들이 자연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갈 때 배가 고프면 산에 가서 과일을 따먹거나 짐승을 잡아먹고 목이 마르면 이슬이나 냇물을 마시다가 죽게 되면 백모(白茅)에 싸서 황야의 들판에 가져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효자가 자기 부모의 시신이 짐승들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고 탄궁을 만들어 곁에서 지키며 짐승들을 쫓았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자르고 대나무를 엮어서 움막을 짓고 흙덩이를 뭉쳐서 던져 짐승들을 물리쳤다.⑧라는 노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신농황제(神農皇帝)가 기업을 일으켜 나무를 휘어 시위를 걸어 활을 만드신 후에 다시 단단한 나무를 날카롭게 깎아 화살을 만들어 그 위엄을 천하에 드높이셨습니다. 후에 호부(弧父)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나라의 형산(荊山)⑨에서 태어날 때 그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혼자서 성장하며 스스로 활과 화살의 사용법을 배우고 터득하여 그가 쏜 화살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호부가 활쏘는 법을 예(羿)⑩에게 전하고 예는 다시 봉몽(逢蒙)⑪에게 봉몽은 금씨(琴氏)⑫에게 전했습니다. 금씨가 천하의 제후들과 서로 싸우는데 본래의 활과 화살만으로는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없었습니다. 금씨가 활을 옆으로 눕혀 어깨에 대고 쏠 수 있게 그 모습을 변형시키고 다시 그 활에 발사장치를 고안하여 설치한 결과 그 발사되는 힘이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쇠뇌라고 지었습니다. 금씨가 자기가 개발한 쇠뇌를 초(楚) 땅의 세 제후에게 전수하여 초는 그 후로 대대로 복숭아나무로 활을 만들고 대추나무로 화살대를 만들어 그 이웃나라들의 침략에 대비하면서 그들을 제압하여 복종시켰습니다. 신의 조상 중에 한 분이 쇠뇌의 용법을 초로부터 전수 받아 자자손손이 물려받아 5대인 저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쇠뇌가 향하는 곳에는 새도 날지 못하며 짐승도 달아날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한 번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월왕 구천이 진음에게 3천의 군사를 맡겨 쇠뇌의 사용법을 성의 북쪽 교외 밖에서 훈련시키게 하였다. 진음은 월나라의 군사들에게 쇠뇌를 연속해서 쏘는 법을 전수해 주었다. 쇠뇌를 이용하여 세 발의 화살을 연발로 쏘게 되면 아무도 피할 수 없었다. 진음이 3개월을 가르쳐 그 사용법을 모두 전수해 주더니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월왕 구천이 진음을 성대하게 장사지내주었다. 구천은 진음이 군사들을 훈련시킨 곳의 산 이름을 진음산(陳音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했다. 이것은 모두 후일의 일이다. 염선(髥仙)이 남림(南林)의 처녀(處女)와 진음(陳音)의 일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격검과 만궁은 모두가 오나라를 위한 하늘의 선물인데

와신상담하며 눈물을 흘리기를 몇 해이던가?

오나라의 고소대에는 가무가 한창이었는데

오왕은 묻기를 이웃나라에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

擊劍彎弓總爲吳(격겸만궁총위오)

臥薪嘗膽泪機枯(와신상담루기고)

蘇臺歌舞方如沸(고소대무방여비)

遑問鄰邦事有無(황문인방사유무)

9. 說客子貢(세객자공)

- 제후들을 유세하여 노나라를 구한 자공

오자서는 월왕이 군사들을 모아 훈련을 맹렬히 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부차를 찾아와 접견을 청했다. 오자서가 부차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대왕께서는 월왕이 우리에게 복종하여 심복하고 있다고 믿고 계시지만 지금 월왕은 범려를 시켜 밤낮으로 사졸들을 훈련시켜 검극(劍戟)과 궁시(弓矢)를 사용하는데 정통하지 않은 월나라 병사들은 한 명도 없다 합니다. 일단 우리의 허점을 틈타 쳐들어오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화를 면하지 못해 의지할 곳은 아무대도 없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어찌하여 사람을 시켜 직접 살펴보시지 않으십니까?」

부차가 자서의 말을 듣고 과연 사람을 보내 월나라의 동정을 살펴보고 오라고 했다. 사자가 돌아와 남림의 처녀와 진음을 데려다가 월나라 군사들에게 격검술과 쇠뇌의 사용법을 훈련하게 된 사실을 부차에게 보고하였다. 부차가 듣고 백비를 불러 물었다.

「월나라가 이미 나에게 복종하면서 다시 군사를 기르고 있소. 이는 무엇을 위해서인지 경은 알고 있소?」

「월나라도 대왕께서 하사하신 봉지를 군사가 없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무릇 군사를 기르는 일이란 나라를 지키는데 필요한 일인데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의심하십니까?」

부차가 그래도 마음속에 일었던 의심이 풀리지 않아 조만간에 군사를 내어 월나라를 정벌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한편 제나라에서는 진(陳)나라에서 망명한 진완(陳完)의 후손들인 진씨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서 오랫동안 제나라의 국정을 전단해 오다가 진항(陳恒)의 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진씨 부족의 종주 자리에 오르자 강씨 성의 제나라를 빼앗기 위해 역모를 일으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고씨들과 국씨들의 무리들의 세력을 아직은 무시할 수가 없어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잠시 가슴속에 묻혀 두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어서 진항이 제간공(齊簡公)에게 상주했다.

「노나라는 우리의 이웃나라이나 예전에 오나라를 끌어들여 우리나라를 침략했습니다. 그 일을 결코 잊으시면 안 됩니다.」

간공은 진항의 말을 쫓아 노나라에 대한 정벌을 허락했다. 진항은 간공에게 국서(國書)를 대장으로 고무평(高无平)과 종루(宗褸)를 부장으로 천거하고 대부 공손하(公孫夏), 공손휘(公孫揮), 려구명(閭丘明) 등은 종군하여 국서를 돕도록 했다. 진항은 천 승에 이르는 나라 안의 모든 병거를 국서에게 주어 노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제간공이 몸소 나와 노나라를 향해 출동하는 군사들을 전송했다. 제나라의 군사들은 문수의 강안에 주둔하면서 장차 노나라를 멸하고 귀환하려고 했다.

그때 공자는 노나라에 살면서 서경(書經)과 시경(詩經)을 편찬하고 있었다. 하루는 제나라에 살던 자장(子張)⑬이 그 스승이며 장인인 공자를 찾아와 뵈었다. 공자가 자장에게 제나라의 사정을 물었다. 곧이어 공자는 제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노나라의 경계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자가 크게 놀라 말했다.

「노나라는 곧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의 나라라! 오늘 외국의 침략을 받고 있으니 내가 구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이어서 제자들을 모이게 하여 물었다.

「누가 능히 제나라에 사자로 가서 제나라의 정벌군이 물러가게 할 수 있겠느냐?」

자장(子張)과 자석(子石)⑭이 자원하였으나 공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子貢)이 자리에 일어나 공자에게 청했다.

「제가 가면 안 되겠습니까?」

「너라면 가능하겠다.」

자공이 당일로 공자에게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나 문수(汶水) 강안에 주둔하고 있던 진항을 찾아가 접견을 청했다. 자공이 공자의 문인들 가운데서 학식이 뛰어난 제자임을 알고 있었던 진항은 지금 자공이 찾아온 이유는 필시 자기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했다. 진항은 일부러 얼굴에 냉랭한 기색을 띠고 자공을 대했다. 아무 것도 거리낄 것 없이 진항이 거처하고 있는 막사로 들어간 자공은 그 앞에서 방약무인한 태도를 취했다. 진항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나눈

후에 좌정하고 자공을 향해 물었다.

「선생께서 오신 목적은 노나라를 위해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입니까?」

「제가 장군을 찾은 이유는 노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나라를 위해서 입니다. 무룻 노나라는 정벌하기가 심히 어려운 나라인데 상국께서는 어찌하여 그 어려운 일을 택하셨습니까?」

「노나라가 어찌하여 정벌하기가 어려운 나라란 말입니까?」

「노나라의 성은 허름하고 높이가 낮으며 그 해자(垓字)는 좁고 얕습니다. 노나라의 군주는 유약하고 대신들은 무능하며 군졸들은 싸움에 익숙하지 못한 관계로 제가 이를 정벌하기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상국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차라리 오나라를 정벌하십시오. 오나라 도성의 성벽은 높으며, 또한 그 해자는 넓고 깊습니다. 병사들은 정예하고 병장기는 예리하며 훌륭한 장수들이 지키고 있어 공격하기가 쉽다고 하겠습니다.」

진항이 듣고 얼굴에 노기를 띄우며 말했다.

「선생은 쉽고 어려운 일을 서로 바꾸어 말해 이치에 맞지 않으니 이 항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주위 사람들을 물리쳐 주시면 제가 상국을 위하여 해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물리친 진항이 자공 앞으로 다가앉으며 가르침을 청했다. 자공이 진항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제가 듣기에 우환 거리를 밖에 갖고 있는 자는 약한 자를 공격하고, 우환 거리를 내부에 갖고 있는 자는 강한 자를 공격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제나라의 형세를 살펴보건대, 상국과 함께 능히 일을 도모할 대신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오늘 허약한 노나라를 공격하여 파하는 일은 단지 군사들을 이끌고 있는 여러 대신들의 공을 높이기만 할뿐, 오히려 상국에게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싸움의 결과 여러 대신들이 공을 세우게 되면 그들의 세력은 하루가 다르게 융성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상국의 처지가 위험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군사를 옮겨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대신들은 적국의 강한 적들로 인하여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상국께서는 대신들의 세력을 누르고 제나라를 상국의 생각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제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항이 얼굴에는 비로소 이해하겠다는 기색을 나타내고는 흔연히 자공을 향해 물었다.

「선생의 말씀은 꽉 막힌 이 항의 폐부를 뚫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제나라의 병사들이 이미 문수의 강안에 주둔하고 있는데 만약 군사를 다시 이동시켜 오나라를 향하게 한다면 사람들이 이를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상국께서 오로지 군사들을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고 계시면 제가 남쪽의 오나라로 가서 오왕의 접견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노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제나라를 정벌하게끔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국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연히 오나라와 전쟁을 치를 수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진항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국서를 불러 말했다.

「나는 오나라가 장차 우리 제나라를 공격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소. 우리는 잠시 이곳에 주둔하며 오나라의 동정을 탐문하며 장래의 정세를 관망하도록 하고 군사를 가벼이 움직이면 안 될 듯 싶소. 우선 오나라의 침략군을 물리친 후에 노나라를 정벌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국서가 진항의 명을 받들겠다고 허락했다. 진항은 즉시 제나라로 돌아갔다.

한편 자공은 밤낮으로 수레를 달려 오나라의 고소성에 당도하여 오왕 부차의 접견을 청했다. 부차가 허락하자 자공이 입궐하여 오왕을 향해 말했다.

「옛날 오나라와 노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했기 때문에 제나라의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습니다. 지금 제나라의 군사들이 그때의 원수를 노나라에 갚기 위해서 문수의 강안에 주둔하고 있어 노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또한 노나라를 정벌한 제나라 군사들은 틀림없이 오나라를 향하여 진격할 터인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제나라를 정벌하여 노나라를 구하려고 하시지 않으십니까? 만일 오나라가 만승지국(萬乘之國)의 제나라를 파하고 천승지국(千乘之國)인 노나라를 구해 주어 밑에 두신다면 그 위엄은 북쪽의 당진을 능가하여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패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제나라가 자자손손이 우리 오나라를 상국으로 모신다고 허락하여 과인이 군사를 거두었었소. 그런데 지금은 조빙 사절도 보내지 않고 있으니 과인이 마침 그 죄를 물으려 하고 있던 참이었소. 단지 월왕 구천이 정사에 매진하고 군사들을 밤낮으로 훈련시킨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라도 그에게 반역의 마음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우선 먼저 월나라를 정벌하고 난 후에 제나라의 죄를 물으려는 생각에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월나라는 약하고 제나라는 강합니다. 월나라를 먼저 정벌한다면 그 이익은 적고 오히려 제나라를 풀어 주게 되어 큰 화근이 될 소지가 있습니다. 무릇 약한 월나라를 걱정하고 강한 제나라를 피한다면 그것은 용기 있는 군왕이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작은 이익을 구하여 커다란 근심거리를 잊는다면 그것은 또한 지혜롭다고 할 수 없으며 지용(智勇)을 모두 잃고서 어찌 천하의 패자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대왕께서 월나라의 일이 걱정되신다면 제가 대왕을 위해 동쪽으로 가서 월왕을 찾아뵙고 그로 하여금 친히 전대(箭袋)를 차고 활을 메게 하여 대왕의 원정길을 종군토록 하여 수하 장수로써 돕도록 하겠습니다. 」

부차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진실로 선생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감사할 따름이오.」

10. 有報人之志, 而使人知之者, 危也(유보인지지, 이사인지지자, 위야).

- 원수를 갚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대상으로 하여금 알게 만드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

자공이 오왕 부차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남쪽의 월나라로 길을 떠났다. 월왕 구천이 자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의 국빈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하는 후인(候人)을 시켜 미리 길을 쓸게 하고 성 밖 교외 30리까지 나가 자공을 맞이해 오도록 했다. 이어서 자공을 가장 훌륭한 관사로 모시도록 하고 자기가 친히 찾아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물었다.

「우리나라는 동해의 구석진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나라인데 무슨 일로 고명하신 선생께서 이 머나먼 길을 왕림하셨습니까?」

자공이 오만한 자세로 대답했다.

「대왕의 죽음을 조문하러 이렇게 특별히 왔습니다.」

구천이 다시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며 물었다.

「제가 들으니 화와 복은 이웃한다고 하니 선생께서 저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해 왕림하셨다고 하니 이것은 곧 제가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청컨대 선생께서 어인 일로 저를 조문하시려고 하는지 그 연유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오나라에 들려 오왕을 접견하여 노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정벌하기를 청했었습니다. 그러나 오왕은 월나라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먼저 월나라를 정벌하여 대왕을 죽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릇 원수를 갚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졸렬한 짓이며 또한 원수를 갚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대상으로 하여금 알게 만드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⑮』라고 했습니다.」

구천이 악연히 놀라 절을 길게 올리며 말했다.

「선생께서는 가르침을 주어 부디 저를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왕은 교만하고 망녕되게 아부만 일삼는 신하들만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태재 백비는 아첨을 잘하여 세도를 부리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귀중한 보물로 태재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어 공손한 말로 예를 갖춘 후에 친히 일군을 거느리고 오왕을 따라 제나라 원정에 종군하시기 바랍니다. 오나라가 싸움에 이기지 못한다면 그들의 세력은 스스로 약화되는 것이며 설사 오나라가 이긴다 하더라도 필시 오왕의 마음은 교만하게 되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패자가 되고 싶어 장차 그의 병사들을 당진국으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나라 국내는 비게 되어 그 틈을 타서 대왕께서 뜻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구천이 절을 다시 올리며 말했다.

「실은 하늘이 저를 돕기 위해 선생을 보내어 마치 죽은 사람을 살려 백골에 살을 붙여 준 것이나 다름없는 은혜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선생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천은 즉시 자공에게 황금 백 일과 보검 한 자루, 양마 두 필을 선물로 주려고 했다. 자공은 한사코 고사하여 받지 않았다. 월왕 구천과 헤어져 오나라에 다시 돌아온 자공이 부차를 만나 말했다.

「월왕이 대왕께서 살려준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나 대왕께서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 나머지 조만 간에 사자를 보내어 사죄한다 했습니다.」

부차가 자공으로 하여금 역관에 가서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리고 5일이 지나자 자공이 말한 대로 과연 월나라의 대부 문종이 오나라에 당도하여 부차를 배알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월왕의 말을 전했다.

「동해의 미천한 신하 구천이 대왕께서 죽이지 않고 살려주신 은혜를 입어 종사를 받들고 있음은 비록 간뇌도지(肝腦塗地)라 한들 어찌 대왕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대왕께서 세상에 대의를 밝히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시어 강포한 자를 주살하고 약한 자를 구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신하인 문종으로 하여금 월나라의 견고한 갑옷 20벌과 굴로(屈盧)라는 창과 보광(步光)이라는 검을 바쳐 대왕의 원정을 축하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소신 구천이 군사를 일으킬 시기를 묻사오니 그때에 맞추어 저희 월나라 방방곡곡에서 정예한 장정 3천 명을 선발하여 대왕의 원정에 종군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신 구천 또한 견고한 갑옷을 걸쳐 입고 예리한 무기를 들어 친히 시석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불사하며 앞장서 대왕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부차가 문종이 전하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자공을 불러 말했다.

「구천은 과연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신의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월나라의 군사 3천 명을 뽑아 제나라 정벌군에 종군시키겠다 합니다. 선생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안 될 말입니다. 무릇 다른 나라의 많은 군사를 부리고 또한 싸움에 다른 나라의 군주까지 동원한다면 그것 역시 정도가 지나친 일입니다. 월왕에게 보내 주는 군사는 받아들일 수 있되 월왕의 종군은 사양하시기 바랍니다.」

부차가 자공의 말을 따랐다. 자공이 오나라에 작별을 고하고 다시 북쪽의 당진으로 길을 떠났다. 이윽고 당진에 당도한 자공은 정공(定公)을 배알하고 말했다.

「신이 듣건대 『앞날을 길게 내다보지 못하는 자는 뒤에 반드시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오나라는 제나라와 싸우고 있습니다. 만약에 오나라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면 그 다음에는 필시 당진과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툴 터인데 군주께서는 마땅히 군사들을 휴식케 하고 오나라의 군사들의 침입에 준비하도록 하십시오.」

「선생의 가르침을 삼가 받들겠습니다.」

자공이 일을 마치고 노나라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제나라가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였다.

<제 82회로 계속>

주석

①저라산(苧羅山)/ 지금의 절강성 諸曁市 소재의 산 이름. 소흥으로 천도하기 전의 월나라 수도였다.

②부하(負瑕)/현 산동성 곡부시 동쪽 연주시(兗州市)를 말한다.

③고계(高啓)(1336-1374)/ 자(字)는 계적(季迪)호는 청구자(靑邱子)이며 원나라 말 혼란기에 활동한 소주(蘇州) 출신의 시인이다. 원나라 말기에 장사성(張士誠)이 그 세력의 기반을 두었던 소주는 후에 명태조 주원장에게 함락 당하고 폐허가 되었다. 후에 고계는 명왕조의 부름을 받아 호부시랑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너무 빠른 승진에 불안을 품고 스스로 사퇴하여 소주로 은퇴했다. 그러나 명태조 주원장이 개국공신들을 숙청하는 과정에 모함을 받아 나이 39세에 요참(腰斬) 형에 처해져 죽었다.

④왕우칭(王禹稱)/ 북송의 근체시를 주창했던 백거이의 시풍을 추종했던 백체시인(白体诗人)이다. 954년에 태어나서 태평흥국 8년 송태조 말년인 984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1001에 죽었다.

⑤동정호(洞庭湖)/ 호남성 장사시 북쪽의 동정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소주시(蘇州市) 서쪽의 태호(太湖) 내의 동동정산(東洞庭山)과 서동정산(西洞庭山) 사이에 있는 호수를 말한다.

⑥장우(張羽)/ 서기 1333년에 태어나서 1385년에 죽은 명나라 초기 때의 시인이다. 자는 래의(來儀)다. 원래 지금의 강서성 구강시(九江市)인 심양(潯陽) 출신이나 부친을 따라 강소(江蘇)와 절강(浙江) 지방에 왔다가 원말의 병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의 절강성 호주시(湖州市)인 오흥(吳興)에 살게 되었다. 원말에 지방관의 추천으로 발탁되어 안정서원산장(安定書院山長)에 임명되어 관리의 길로 들어서 후에 오현(吳縣)으로 이주하면서 영달의 길을 걸었다. 명태조 밑에서 태상시승(太常侍丞)을 역임하다가 좌천되어 임지로 가던 중 복직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그는 지금의 광서성(廣西省) 의산현(宜山縣) 부근을 흐르던 용강(龍江)에 투신하여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문장은 정결하고 법도가 있었으며 미우인(米友仁)에게 사사 받아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고계(高啓), 양기(楊基), 서분(徐賁)과 함께 오중사걸(吳中四杰)로 불리웠다. 저서로는 정거집(靜居集) 4권이 있다.

⑦규구지맹(葵邱之盟)/ 기원전 651년 제환공(齊桓公)이 현 하남성(河南省) 조현(曹縣) 부근의 규구(葵邱)라는 곳에 제후들을 불러 주제한 회맹으로써 각 제후국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금기사항 중에 흉년이 든 이웃나라에서 곡식을 사들이는 것을 막지 말라는 조항이 들어있다. 상세한 사항은 24회 내용 참조

⑧단목속죽(斷木續竹), 비토축육(飛兎逐肉)

⑨형산(荊山)/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남장현(南漳縣) 서남 무당산(武當山) 동남. 저수(沮水)와 장수(漳水)의 발원지

⑩예(羿)/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사람 이름으로 후예(后羿)라고도 하며 유궁씨(有窮氏) 부락의 수령이었다. 영성(嬴姓)에 전욱(顓頊)의 후예라고 전해지며 활을 잘 쏘았다. 하나라의 계(啓)가 죽자 그 다섯 아들들이 서로 왕위를 놓고 다투자 백성들의 뜻이라고 하면서 하나라를 대신 다스리다가 이윽고 왕의 자리에 스스로 올랐다. 계의 아들 태강(太康)과 중강(仲康)은 나라 밖으로 쫓겨나 유랑 중 죽었다. 그는 자기의 활 솜씨를 믿고 정사를 신하인 한착(寒浞)에게 맡겼다가 결국은 그에게 살해 되었다.

⑪봉몽(逢蒙)/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유명한 활의 명수로 예(羿)의 제자라고 전해진다.

⑫금씨(琴氏)/

⑬자장(子張)/ 공자의 제자 중 자장이라는 자(字)를 갖고 있는 사람이 둘이 있다. 한 사람은 진(陳)나라 사람으로 전손사(顓孫師)를, 다른 한 사람은 제나라 사람으로 공야장(公冶長)을 말한다. 여기서는 공야장을 말한다. 공야장은 공자의 사위로 새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기이한 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⑭자석(子石)/ 공손룡(公孫龍)의 자이고 초나라 사람이다. 공자보다 53년 연하다.

⑮夫无報人之志, 而使人疑之者, 拙也. 夫有報人之志, 而使人知之者, 危也.

[평설]

천신만고 끝에 자기나라로 돌아온 월왕 구천은 선정을 베풀어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온힘을 기우려 노력함으로 해서 월나라의 군주, 관리 및 백성들 모두가 동고동락한다는 풍조를 조성했다. 오나라에 대해서는 몸을 숙여 깍듯이 상국으로 모시며 오왕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 실력을 깎아 내리는 책략을 사용함으로 해서 10년도 되지 않은 기간 안에 그의 원수를 갚은 역사적으로 그 전례가 없는 일을 이룩해 냈다. 월왕 구천이 사용한 책략은 다음과 같다.

1. 오왕이 궁실을 대대적으로 지으려고 하자 월왕은 월나라 온 땅을 뒤져 찾아낸 거대한 신목을 갖다 바쳤다.

2. 오왕이 가무를 즐겨하자 월왕은 월나라의 미녀들 중에서 선발한 서시 등의 절세미인들을 바쳤다.

3. 월나라에 한발이 들자, 오나라에 양식을 빌렸다가 다음 해에 월나라에 산출된 곡식 중에가 가장 알이 굵은 곡식을 모아 삶아서 상환했다. 다음 해에 오나라의 농민들이 그것을 종자로 파종했으나 싹이 나지 않아 오나라는 기근이 들었다.

4. 월나라가 그 와중에 장정들을 모아 엄격한 훈련을 행하는 것을 알게 된 오왕이 의심하자 월왕은 다시 3천의 군대를 원군으로 파견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는 오군을 돕게 했다.

상대방의 좋아하는 것을 이용한 월왕 구천의 책략은 오왕을 속여 오나라의 국력을 깎아 내리고 월나라의 실력을 향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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