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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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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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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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28:084462 
제75회. 演陣斬姬(연진참희) 納質乞師(납질걸사)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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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5회 演陣斬姬 納質乞師(연진참희 납질걸사)

진법 훈련 중에 오왕의 총희를 참한 손자와

인질을 바쳐 오나라에 군사를 청하는 채소후

1. 단지취의(斷肢取義)

- 자신의 다리를 자르고 스스로 목숨을 버려 의를 밝힌 요리 -

경기가 죽을 때 그의 호위 무사들에게 요리를 죽이지 말고 풀어 주어 그의 이름을 빛내게 하라는 유언에 따라 무사들은 요리를 석방하려고 하였으나 요리가 오히려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세상이 용납하지 못할 세 가지 죄를 지었다. 비록 공자가 나의 목숨을 살려 주라고 명을 하셨다지만 내가 어찌 감히 구차스럽게 생을 탐하겠는가?」

무사들이 물었다.

「무엇이 세상에 용납하지 못할 세 가지 죄란 말인가?」

「내가 아내와 자식을 죽여 군주의 뜻을 받들고자 했으니, 어질지 못한 짓이다. 이것이 첫 번째 죄이고, 또한 새로운 임금을 위하여 옛날 임금의 아들을 죽였으니 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것이 그 두 번째이며, 이름을 세상에 남기기 위하여 스스로의 몸을 망치고 가정을 멸족시켰으니,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이것이 그 세 번째이다. 내가 이렇듯 세 가지 죄악을 저질렀으니 무슨 염치로 세상에 얼굴을 들고 살아 갈 수 있겠는가?」

요리가 말을 마치자 몸을 강물에 던졌다. 뱃사람들이 들어가 요리를 물속에서 건져내자 요리가 다시 말했다.

「그대들이 힘들여 나를 물속에서 건져내어 살린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뱃사람들이 말했다.

「그대가 오나라에 돌아가면 반드시 높은 관직과 많은 녹봉을 받게 되어 부귀하게 될 터인데 어찌하여 구태여 죽으려고 하는가?」

요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집안 식구들의 목숨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인데 하물며 그까짓 녹봉에 연연해하겠는가? 그대들이 나의 주검을 들고 오나라에 들어가서 왕에게 바쳐 대신 상을 받으시오.」

요리가 옆에 있던 무사의 허리에 찬 칼을 뽑아 스스로 그의 다리를 자른 후에 다시 그의 목을 찔러 죽었다. 후세의 사관이 글을 지어 요리의 의기를 찬양했다.

옛 사람들은 한번 죽는 것을

마치 새털처럼 가볍게 생각했도다.

단지 자기의 목숨뿐만 아니라

처자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생각했도다.

古人一死(고인일사)

其輕如羽(기경여우)

不惟自輕(불유자경)

幷輕妻子(병경처자)

합려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한 사람을 위해 일가족이 순사하여

경기 한 사람을 죽이니

요리는 그 뜻을 이미 펼쳤도다.

闔門畢命(합문필명)

以殉一人(이순일인)

一人旣死(일인기사)

吾志已伸(오지이신)

전제의 한 몸은 비록 죽었으나

그 후손은 전해지는데

슬프게도 요리에게는

죽어 남은 것이 없구나!

專諸雖死(전제수사)

尙存其胤(상존기윤)

傷哉要離(상재요리)

死无形影(사무형영)

어찌 요리인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리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고

그 공에 따라 자기의 이름도 세웠으니

비록 죽었다 하나 영화를 누렸음리라!

豈不自愛(개불자애)

遂人之功(수인지공)

功遂名立(공수명립)

雖死猶榮(수사유영)

칼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협객들이

많이 배출되어 오나라의 풍속이 되니

오늘도 오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목을 길게 늘려 갈망하고 있다.

擊劍死俠(격검사협)

釀成風俗(양성풍속)

至今吳人(지금오인)

趨義如鵠(추의여곡)

또한 후세의 사가가 시를 지어 경기는 힘이 만인을 대적 할만한 용력을 갖고 있었지만 한쪽 팔을 잃어버린 한낱 외팔이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일을 이야기하여 자기 힘을 과신하고 있는 세상의 장사에게 교훈을 주고자 했다.

경기는 천하의 보기 드문 용맹한 영웅이었는데

외팔이 필부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죽임을 당했다.

세상 사람들아, 힘세다고 자랑하지 말지어다!

힘센 황소들도 지치면 새앙쥐의 밥이 되는 법이다.

慶忌驍雄天下少(경기효웅천하소)

匹夫一臂須臾了(필부일벽수수료)

世人休得逞强梁(세인휴득영강량)

牛角傷殘鼷鼠飽(우각상잔혜서포)

2. 孫子出世(손자출세)

- 손자가 세상에 나와 병법을 합려에게 바치다. -

경기를 따르던 무리들이 요리의 끊어진 다리와 몸을 거두어 경기의 시체와 함께 수레에 싣고 오왕 합려에게 투항했다. 합려가 크게 기뻐하여 경기를 따르던 병졸들에게 중한 상을 내리고 오나라의 군사들 속에 편입시켰다. 오왕 합려가 요리를 상경의 예를 행하여 상을 치르고 오도의 창문(閶門) 앞에 묻으며 말했다.

「그대를 여기에 묻으니 부디 그대의 용기로 외적으로부터 이 성문을 굳게 지켜 주기 바라오!」

요리의 아내와 자식들도 벼슬을 추증하여 주었다. 또한 사당을 세워 요리와 전제의 신위를 같이 모시고 매년 제사를 지내 주게 했다. 또한 공자의 예를 행하여 경기의 상을 치르고 왕료의 묘지 옆에 장사지내게 했다. 이어서 군신들을 불러 크게 잔치를 베풀어 그 기쁨을 나누었다. 오원이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와 말했다.

「대왕의 근심거리는 이제 모두 없어졌다 하겠으나 소신의 원수는 어느 날에 갚을 수 있겠습니까?」

백비도 역시 곁에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군사를 동원하여 초나라의 정벌을 청했다. 합려가 대답했다.

「내일 아침 대책을 의논하기로 합시다.」

다음 날 아침 오원이 백비와 같이 궁중으로 들어와 합려의 접견을 청했다. 합려가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두 경을 위해 출병하고자 하는데 누구를 장수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오원과 백비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오로지 대왕께서 쓰신다 하시는데 누가 감히 목숨인들 바치지 않겠습니까?」

합려의 마음속에는 오원과 백비가 모두 초나라 사람이라 오로지 자기들의 원수만을 갚을 생각으로 오나라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합려는 두 사람의 대답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쪽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하여 서 있다가 이어 길게 탄식만을 할뿐이었다. 오원이 합려의 뜻을 짐작하고 다시 말했다.

「대왕께서는 초나라 병사들과 장수의 수효가 많아 그것을 걱정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신이 천거할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능히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합려가 얼굴색을 환하게 밝게 하며 물었다.

「경이 추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그의 능력은 어떠하오?」

「성은 손(孫)이며 이름은 무(武)라 하는 오나라 사람입니다.」

합려는 오원이 천거하는 사람이 오나라 사람이라는 말에 다시 얼굴에 희색을 띄웠다. 오원이 계속해서 합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육도삼략(六韜三略)①에 정통하고 귀신도 짐작하지 못할 기지를 갖고 있으며 하늘과 땅의 절묘한 이치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재주를 갖고서 스스로 병법 13편을 지었으나 세상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아 지금은 나부산(羅浮山)② 동쪽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을 얻어 군사로 삼는다면 천하에 당하지 못할 나라는 없을 것이며, 한낱 초나라 같은 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경이 과인을 위해 한번 불러 시험해 보기 바라오.」

「그 사람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 출사할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과는 비할 수 없는 재사이오니 반드시 사자를 보내 예로써 초빙해야만 비로소 따라 나설 것입니다.」

합려가 오자서의 말을 따라 즉시 황금 십일(十鎰)과 백벽(白璧) 한 쌍을 내주며 오원으로 하여금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몰고 나부산에 가서 손무를 초빙해 오도록 시켰다. 오원이 손무를 찾아가 오왕의 앙모하는 뜻을 전하자 손무는 오원을 따라 나부산을 나와서 합려를 접견했다. 합려가 왕좌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와 손무를 맞이하고 자리에 앉기를 청하고 병법에 대해 물었다. 손무가 자기가 지은 병법 13편을 차례로 합려에게 바쳤다. 합려가 오원에게 명하여 모두 한편씩 차례로 읽게 하였다. 병법 13편을 다 듣고 난 합려는 찬탄해 마지않았다. 손무의 병법 13편은 다음과 같았다.

제일편 시계편(始計篇) :제이편 작전편(作戰篇) :제삼편 모공편(謀攻篇) :제사편 군형편(軍形篇) :제오편 병세편(兵勢篇) :제육편 허실편(虛實篇) :제칠편 군쟁편(軍爭篇) :제팔편 구변편(九變篇) :제구편 행군편(行軍篇) :제십편 지형편(地形篇) :제십일편 취지편(就地篇) :제십이편 화공편(火攻篇) :제십삼편 용간편(用間篇)

3. 演陣斬姬(연지참희)

- 진법 훈련을 하다 미희의 목을 베어 아녀자들을 강군으로 만든 손자 -

합려가 오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병법을 보니 손무 선생은 진실로 하늘과 땅의 이치에 통달한 재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단지 과인의 나라는 병사들의 수효는 적고 장수는 구하기 힘듭니다. 어찌하면 초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병법은 대오를 갖춘 병졸에만 적용될 뿐 아니라 비록 아녀자일지라도 제가 군령으로 다스린다면 역시 군사로 쓸 수 있습니다.」

합려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의 말씀은 너무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천하에 어떻게 아녀자들에게 과(戈)를 들려 훈련을 시켜 싸움에 익숙한 군사로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대왕께서 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시니 청컨대 대왕의 후궁과 시녀들을 저에게 내어 주신다면 제가 한번 시험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군령을 내려도 시행이 되지 않게 되면 신이 군주를 기만한 죄로 그 형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합려가 즉시 그의 궁녀 300인을 불러 손무에게 주어 훈련을 시키라고 했다. 손무가 합려에게 청했다.

「대왕께서 사랑하는 총희 두 사람을 내어 주시면 그들을 대장으로 삼아 군령을 내리게 하여 통솔 하고자 합니다.」

합려가 곁에 두고 우희(右姬)와 좌희(左姬)라고 부르던 총희 두 사람을 오라고 하여 앞에 세우고는 손무를 향해 말했다.

「이들은 과인이 사랑하는 여인들인데 대장으로 삼을만 합니까?」

「가능합니다. 군사의 일이란 먼저 령이 엄하게 서야 하며 그 다음에는 상벌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적은 군사들의 훈련이지만 이 두 가지를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청컨대 한 사람의 집법관(執法官)과 두 사람의 군리(軍吏)를 세워 그들로 하여금 장수의 명령을 군사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게 합니다. 그와는 따로 북을 치는 사람을 두어야 하며, 장사 몇 사람을 아장(牙將)으로 삼아 장수의 권위를 나타내는 부월(斧鉞)과 극(戟)과 장검을 들고 단상에 도열하게 하여 군진의 위용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합려는 손무가 필요로 하는 장수들과 군리들을 오나라의 중군에서 마음대로 골라서 쓰도록 허락했다. 손무는 궁녀들에게 분부하여 좌우 이대로 나누고 우대는 우희가 좌대는 좌희가 지휘하도록 하고 각기 군장을 갖추게 한 다음에 군법을 밝혔다.

일, 행과 오가 흩어지면 안 된다

이, 행과 오를 갖추고 행군 중에는 큰 소리로 떠들면 안 된다

삼, 고의로 서로 약속한 바를 어기면 안 된다.

다음날 아침 오고에 손무는 궁녀들을 모두 교련장에 모이도록 하여 훈련을 하기로 하고, 합려는 대에 올라 손무가 여인들을 훈련시키는 광경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다음날 오고가 되자 궁녀들이 이대로 나뉘어 교장에 모두 모였다. 궁녀들은 모두가 갑옷과 군장을 갖추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오른 손에는 칼을, 왼 손에는 방패를 들고 나왔다. 머리에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두른 좌우의 이희가 대장이 되어 대오의 양쪽 편에 서서 손무가 장막 위로 오르기를 기다렸다. 손무가 장막 위로 나타나더니 다시 하단하여 친히 먹줄로 진형을 표시한 후에 전유관(傳諭官)을 시켜 노란색 깃발 두 개를 이희에게 각각 한 개씩 나누어주고는 그 깃발을 손에 들고 각대의 전면에 서도록 했다. 여러 궁녀들이 좌우 이희의 뒤에 따라 섰다. 다섯 사람을 오(伍)라하고 열 사람을 총(總)으로 하여 각기 그 뒤를 따라 행군하다가 북소리에 따라 진퇴와 선회를 하고 행군 중의 대오는 한 발자국도 흩으러 지면 안 된다고 전유관을 통해 령을 전했다. 전유의 일을 끝내자 다시 좌우 이대에 명하여 모두 땅에 엎드려 군령을 받들도록 했다. 잠시 후에 손무가 군령을 내렸다.

「북소리가 한 번 울리면 양대는 일제히 일어난다. 다시 북소리가 두 번 울리면 좌대는 오른 쪽으로 돌고 우대는 왼쪽으로 돈다. 북소리가 세 번 울리면 각 병사들은 칼을 들고 전투태세를 갖춘다. 징소리가 들리면 칼을 내리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

궁녀들은 모두가 손으로 입을 막고 시시덕거렸다. 북을 치는 병사가 손무에게 아뢰고 북을 한번 울렸다. 궁녀들이 혹자는 일어서고 혹자는 앉아 있으면서 서로 기대거나 비스듬히 서서 그 웃음소리가 여전하였다. 손무가 즉시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친히 북채를 잡고 북을 치면서 다시 앞서의 명령을 알렸다. 그러나 이희와 궁녀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손무가 대노하여 두 눈을 갑자기 크게 치켜뜨더니 머리에 쓰고 있던 관을 벗어 던지며 급히 소리쳤다.

「집법관은 어디에 있는가?」

집법관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자 손무가 말했다.

「약속을 불분명하게 하여 군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것은 장수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약속을 세 번이나 했음에도 군사들이 명을 따르지 않음은 이것은 사졸들의 죄라 할 수 있다. 이럴 때 그 죄에 대한 군법은 어떠한가?」

집법관이 대답했다.

「참수형에 해당합니다.」

「사졸들을 모조리 죽일 수는 없는 일이라 그 죄는 그 부대를 이끌고 있는 대장에게 있음이다.」

손무가 좌우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좌우의 이대를 지휘하는 대장을 참수하여 그 수급을 사졸들에게 보이라!」

좌우에 있던 력사들이 크게 노한 손무의 모습을 보고 감히 령을 거역할 수 없어 앞으로 나아가 이희를 붙잡아 포승줄에 묶었다. 합려가 궁궐의 높은 대에서 손무가 훈련하는 광경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이희가 무사들에게 포박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급히 백비를 시켜 왕의 절부를 들고 가게 하여 왕명을 전하게 했다.

「과인이 이미 장군의 용병하는 능력을 알았도다! 단지 이 이희는 과인의 침식과 의관을 오랫동안 수발하여 과인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있어 만일 이 이희가 없다면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느낄 수가 없게 되니 청컨대 장군은 부디 나를 봐서 용서를 해 주기 바라오!」

손무가 백비를 통해 합려의 령을 받고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궁중에게는 희언이 없습니다. 신은 대왕의 명을 받들어 장군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장군이 군중에 있을 때에는 비록 군주의 명이라 할지라도 받들면 안 되는 법입니다. 만약에 군주의 명을 따라 죄 있는 자를 풀어 준다면 어떻게 여러 군사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손무가 좌우의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저 이희를 참수하지 않고 무엇을 그리 꾸물대고 있느냐?」

무사들이 손무의 호령에 따라 이희를 참수하고 그 수급을 교련장 앞에 효수했다. 그러자 이대로 나뉘어 교장에 서 있던 궁녀들은 모두 부들부들 떨며 대경실색하여 감히 이희의 수급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손무가 다시 대오 중에서 두 궁녀를 취하여 좌우대의 대장으로 삼고 령을 밝히고 북소리를 울리게 하였다. 북소리 한 번에 모두 일어서고 두 번에 돌아서고 세 번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다시 징소리를 울리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나며 좌우로 돌며 행군을 하는데 모두가 손무가 그어 놓은 먹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추호도 어긋남이 없게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내는 궁녀는 한 명도 없었다. 이윽고 손무가 집법관을 합려에게 보내 보고했다.

「병사들이 이미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되었으니 원컨대 왕께서 한번 보시기를 청합니다. 왕께서 원하시어 명령만 내리신다면 비록 펄펄 끓는 물이나 활활 타고 있는 불 속이라도 감히 후퇴하거나 피하지 않고 뛰어들 것입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손무가 궁녀들을 조련하여 씩씩한 군사로 만든 일에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강병을 키우는 목적은 패업을 다투기 위해서인데

군사의 일을 시험하여 군용을 세웠다.

나온 군사들은 모두 교태를 뽐내던 궁녀들이었으나

씩씩한 군사들과 다름이 없었다.

强兵爭霸業(강병쟁패업)

試武耀軍容(시무요군용)

盡出嬌娥輩(진출교아배)

猶如戰鬪雄(유여전투웅)

휘날리는 비단 소매, 과를 휘두르니

분 바른 어여쁜 얼굴 갑옷에 비추이더라!

웃음을 참으며 군기 아래 나뉘어 모이고

수줍음을 참으면서 대열을 이루며

북소리가 들리자 엄숙한 모습으로 날쌔게 움직였으나

령을 위반하면 군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戈揮羅袖券(과휘나수권)

甲映粉顔紅(갑영분안홍)

掩笑分旗下(엄소분기하)

含羞立隊中(함수립대중)

聞聲趨必肅(문성추필숙)

違令法難通(위령법난통)

이미 요염한 두 총희의 목을 베니

비로소 장수의 위세를 알게 되었다.

끓은 물이거나 화염 속이거나 뛰어들 수 있으니

백전을 한다 한들 이기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已借妖姬首(이차요희수)

方知上將風(방지상장풍)

驅馳赴湯火(구치부탕화)

百戰保成功(백전보성공)

4. 孫武拜將(손무배장)

- 오나라의 대장이 된 병법가 손무

합려는 즉은 이희를 애통히 여겨 즉시 횡산(橫山)③에 장사를 지내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사당의 이름을 애희사(愛姬祠)라고 불렀다. 합려는 자기가 사랑하는 총희들의 죽음에 대해 원통하게 생각하여 손무를 장군으로 쓰지 않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원이 보고 합려에게 말했다.

「신이 듣기에 군사를 부리는 일은 흉기를 다루는 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장수가 빈말을 하거나, 명을 어기는 자를 죽이지 않으면 군령이 행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대왕께서 초나라를 정벌하여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훌륭한 장수를 얻으시려고 하시는데 무릇 장수란 과단성으로써만 그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초나라를 정벌하는데 손무가 아니고서는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몇 천리의 먼 길을 원정하여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미색은 얻기 쉬워도 훌륭한 장수는 구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만약 이미 죽은 이희의 생각으로 훌륭한 장수를 버리신다면 이것은 잡초를 취하고 벼를 뽑아 버리는 이치와 같습니다.」

합려가 듣고 깨달아 즉시 손무를 상장군에 임명하고 군사로 부르게 하고 초나라를 정벌하는 임무를 맡겼다. 오원이 손무에게 물었다.

「군사들을 어느 방면으로 진군시킬 계획이십니까?」

「대저 군사를 움직이는 법은 먼저 나라 안의 화근부터 없앤 후에 비로소 나라 밖으로 원정을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왕료의 동생들인 엄여는 서(徐)나라에, 촉용은 종오(鍾吾)에 있어 두 사람이 모두 그들 형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합니다. 금일 군사를 진격시켜 먼저 두 공자를 제거하고 난 연후에 초나라를 정벌해야 합니다.」

오원은 손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합려에게 손무가 먼저 종오와 서나라로 공격할 계획이라고 고했다. 합려가 듣고 말했다.

「서와 종오는 모두 작은 나라라 만일 사자를 보내 두 사람을 잡아서 보내라고 한다면 그들이 감히 우리의 령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오.」

합려가 즉시 두 사람을 사신으로 뽑아 서나라와 종오로 보내 엄여와 촉용을 붙잡아 오게 하였다. 서자(徐子) 장우(章羽)가 차마 엄여를 잡아 오나라 사신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몰래 사람을 보내 알려 도망치게 했다. 엄여가 도망치던 도중에 역시 종오에서 도망쳐 나온 촉용을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하여 초나라로 도망치기로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초나라 도성으로 들어가 초소왕의 알현을 청하자 소왕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오나라에 깊은 원한을 갖고 있는 두 공자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마땅히 후대하면 후일에 소용이 닿을 때가 있을 것이다.」

소왕은 즉시 두 사람을 서성(舒城)에 보내 그곳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조련하여 오나라의 침입을 막게 하였다. 헌편 서와 종오 두 나라 군주가 자기의 령을 거역하고 엄여와 촉용을 도망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합려는 노하여 손무에게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서나라를 정벌하여 멸하도록 명했다. 오나라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서자 장우도 역시 초나라로 도망쳤다. 손무는 서나라를 멸한 후 군사들을 종오로 진격시켜 그 군주를 사로잡은 후에 오나라로 돌아왔다. 군사들을 재정비한 손무는 곧바로 다시 출전하여 서성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엄여와 촉용을 잡아서 죽였다.

5. 自逸以勞(자일이로)

- 아군은 편안하게 쉬게 하고 적군은 피로에 지치게 만들어라! -

손무와 함께 서와 종오에 출전했던 합려가 승세를 타고 초나라 영성으로 진격하려고 하자 손무가 말했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전쟁을 수행하느라고 피로하게 되어 더 이상 싸우게 할 수 없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여 힘을 기른 후에 출병해야 합니다.」

합려가 할 수 없이 철군하여 오나라로 돌아왔다. 오원이 다시 합려에게 계책을 올렸다.

「무릇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이길 수 있거나 약한 병사로 강한 병사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필히 상대방을 펀저 피로하게 해야만 합니다. 옛날 당진의 도공(悼公)이 4군을 삼분하여 교대로 출병하여 초나라의 군사들을 피로하게 하여 소어(蕭魚)의 땅에서 승리를 취할 수 있었던 일은 오로지 상대방 군사들을 피로에 지치게 한 작전 때문이었습니다. 초나라의 집정을 담당하고 자들은 모두 탐욕스럽고 용렬한 자들뿐이라 기꺼이 나라의 난국을 타개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청컨대 우리의 군사를 3대로 나누어 초나라의 국경을 소란스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군을 출병시키면 초나라는 필시 모든 군사들이 출동할 것입니다. 그들이 출동하면 우리는 다시 군사를 걷어 들이고 그들이 철수하면 우리는 다시 다른 일군을 출병시킨다면 그들 군사들의 힘이 쇠진하여 타성에 젖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의 허점을 노려 일거에 쳐들어간다면 승리를 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④

합려가 오원의 말을 옳게 여겨 즉시 군사를 3대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출동시켜 초나라 변경을 어지럽혔다. 초나라가 변경을 구하기 위해 매번 군사를 보냈으나 그때마다 오나라 병사들은 즉시 퇴군하여 초나라 군사들의 고생이 막심하였다.

6. 유인순장(誘人殉葬)

- 백학무(白鶴舞)로 유인하여 만명의 백성들을 순장시킨 합려 -

오왕 합려에게는 승옥(勝玉)이라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궐 안에서 잔치상에 요리사가 생선을 쪄서 합려에게 바쳤다. 합려가 그 생선을 절반을 먹다가 맛이 있어 절반을 남겨 승옥에게 보내어 먹도록 했다. 승옥이 그의 부왕이 먹다 남은 음식을 자기에게 먹으라고 보내자 화가 나서 말했다.

「왕이 먹다 남은 생선을 나에게 보내어 나를 욕보이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승옥이 자리에서 물러나 침실로 들어가서 목을 매어 죽었다. 합려가 매우 슬퍼하여 그의 시신을 거두어 그 상을 성대하게 치르고 오도의 서쪽 창문(閶門) 밖에 토목 공사를 벌려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었다. 그 흙을 판 자리는 큰 호수가 되었는데 오늘날 여분호(女墳湖)란 호수가 되었다. 합려는 자기의 사랑하던 딸을 위해 화려한 무늬가 있는 돌을 깎아 관을 만들고, 금으로 만든 발이 셋 달린 솥(金鼎), 옥으로 깎아 만든 술잔, 은으로 만든 술단지, 주옥이 달린 저고리 등 오나라 부고에 있던 재화의 거의 절반과 또한 명검 반영(磐郢)을 같이 묻어 주었다. 다시 백학(白鶴)을 시켜 오나라 시정에서 춤을 추게 한 후에 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에게 령을 내려 구경을 하게 하였다. 구경을 마친 백성들에게 다시 명을 내려 굴속으로 들어가 승옥의 장례를 전송하게 하였다. 그러나 굴속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백성들이 모두 그 속으로 들어가자 기관이 즉시 발동하기 시작하여 문이 닫히며 사람들은 모두 흙더미에 묻혔다. 결국 굴속으로 들어간 만 명의 백성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목숨을 잃었다. 죄 없는 백성들을 생매장한 합려가 말했다.

「내 딸을 위해 만 명의 백성들을 같이 묻어 주었으니 저승에 가서라도 쓸쓸하지는 않으리라!」

지금도 오나라 지방에서 장사 지낼 때 초상집의 정자나 집 위에 백학을 만들어 메달아 놓는 습속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일로 인해서 생긴 풍습이다. 무고한 백성들을 무수히 죽여 자기 딸의 죽음을 전송했으니 합려 같은 사람이야 말로 극악무도한 폭군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삼량을 순장했음에도 세상의 공론은 진목공을 비난했는데

백학무로 만 명의 백성을 유인하여 죽였으니 웬 말인가?

부차가 나와서 오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날 합려가 이미 나라의 백성들을 잃어버렸음이라.

三良旬葬共非秦(삼량순장공비진)

鶴市何當殺萬人(학시하당살만인)

不待夫差方暴骨(부대부차방폭골)

闔閭今日已无民(합려금일이무민)

한편 초소왕이 궁중의 침소에서 잠을 자다가 한 밤중에 깨었다. 침상 곁에서 싸늘한 빛이 비추어 살펴보니 한 자루의 보검이었다. 아침이 되어 검에 조예가 깊은 풍호자(風胡子)를 입궁 하게 하여 그 보검을 보여 주었다. 풍호자가 그 검을 살펴보더니 크게 놀라 말했다.

「대왕께서는 이 칼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

「과인이 잠을 자다가 깨어 보니 침상 곁에 놓여 있었다. 이 검의 이름을 알 수 있겠는가?」

「이 칼의 이름은 담로(湛盧)라 합니다. 즉 오왕 수몽이 월나라에 보검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구하자, 월왕 윤상이 세 자루의 보검을 바쳤는데 이름이 각각 ‘어장(魚腸)’ ‘반영(磐郢)’ ‘담로(湛盧)’라 했습니다. 세 자루의 칼은 수몽이 죽을 때 그의 장자인 제번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제번이 그의 아들인 합려에게 전했습니다. 그 중 어장검은 전제에게 주어 왕료를 시해할 때 사용하였고 반영검은 합려의 딸 승옥이 죽었을 때 무덤에 부장하였음으로 오로지 이 담로검만이 세상에 남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신이 듣기에 이 검은 곧 다섯 가지 금속의 영기와 태양의 정령이 깃들여 있는 신검이라 이 칼을 차고 다니면 위엄이 저절로 깃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칼의 주인이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면 검은 저절로 주인의 곁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검이 머무는 나라는 그 사직이 복을 받아 면면히 오랫동안 번창했다고 했습니다. 근자에 오왕이 왕료를 죽여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고 또한 무고한 백성을 만 명이나 생매장하여 그의 딸을 위해 부장하자 오나라 백성들은 비탄에 젖어 오왕의 무도한 짓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담로가 무도한 주인을 떠나 유도한 주인을 찾아 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왕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담로검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귀중한 보물로 여겼다. 그는 나라 안의 백성들에게 자랑하여 담로검이 저절로 자기를 찾아온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한편 합려가 어느 날 담로검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사람을 시켜 사방에 수소문하게 찾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와서 고했다.

「담로검은 이미 초나라 왕이 차고 다니고 있습니다.」

합려가 듣고 노하여 말했다.

「이것은 필시 초왕이 나의 측근에서 시중드는 자들을 매수하여 칼을 훔쳐 갔음이 틀림없다.」

합려가 자기의 측근에서 시중들던 자 수십 명을 잡아서 모두 죽였다.

7. 竊馬免君(절마면군)

- 말을 훔쳐 그 군주를 구하다. -

이윽고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합려는 손무, 오원, 백비(伯嚭) 등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초나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자를 월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했다. 월왕 윤상은 아직 초나라와의 수호관계를 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를 동원하려고 하지 않았다. 손무 등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육(六)과 잠(潛) 두 고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나 뒤이어 증원군이 뒤따르지 않자 곧바로 군사를 물리쳤다. 합려는 초나라를 공격하는데 월나라가 군사를 보내어 돕지 않자 노하여 다시 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손무가 합려에게 간했다.

「천기를 보니 금년에는 세성(歲星 ; 木星)이 월나라 위에 있어 공격하면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

합려가 듣지 않고 손무를 시켜 월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손무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취리(檇里)⑤에서 월군을 파하고 그 주변을 대대적으로 약탈한 후에 돌아왔다. 전장에서 돌아온 손무가 오원에게 말했다.

「40년 후에는 월나라가 강대해져서 오나라를 멸망시킬 것이오!」

오원이 마음속에 손무의 말을 기억해 두었다. 이 일은 합려가 오나라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그 다음 해에 초나라 영윤 낭와가 수군을 이용하여 오나라를 공격했다. 낭와는 지난해에 육(六)과 잠(潛) 두 고을을 빼앗아간 오나라에 대해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합려가 손무와 오원을 시켜 초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손무와 오원은 초나라 군사를 소(巢) 땅에서 파하고 초나라 장수 미번(羋繁)을 사로잡아 개선했다. 합려가 말했다.

「영도를 점령하지 못하고서야 비록 초나라 군사를 물리쳤다고는 하지만 어찌 공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겠소!」

「신이 어찌 한시인들 영도를 점령하여 저의 원한을 갚을 생각을 잊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초나라는 천하에 상대가 없는 막강한 나라라 가볍게 대적할 수 없어서 입니다. 초나라의 영윤 낭와가 비록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후들과 틈이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탐문해 본 결과 낭와는 현재 한없이 탐욕을 부려 재물을 모으기에 분주하다고 합니다. 조만간에 제후들과의 사이에 틈이 벌어질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초나라를 공격하면 필시 영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오원은 손무에게 강구(江口)에서 수군을 조련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원은 매일 사람을 시켜 초나라 내정을 정탐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뛰어와서 보고하였다.

「당(唐)⑥과 채(蔡) 두 나라의 사신이 성문 밖에 당도하여 우리 오나라와 통호를 원하고 있습니다. 」

오원이 기뻐하며 말했다.

「당과 채 두 나라는 모두 초나라의 속국인데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먼길을 찾아와 통호를 원하고 있으니 이는 필시 초나라에 원한이 있어서 일 것이다. 하늘이 나로 하여금 초나라 영도에 입성하게 하심이라!」

옛날 초소왕이 담로검을 얻었을 때 이 사실을 여러 제후들에게 과시하자 제후들이 사자를 보내거나 군주 자신이 직접 내조하여 축하했다. 당성공(唐成公)과 채소후(蔡昭侯)도 역시 초소왕에게 축하를 하기 위해 초나라에 왔다. 채후는 양지백옥패(羊脂白玉佩)⑦ 한 쌍과 은초서구(銀貂鼠裘)⑧ 두 벌이 있었는데 그 중 양지백옥패 한 개와 은초서구 한 벌을 초소왕에게 바치고 남은 한 개의 패옥과 서구 한 벌은 자기가 차고 입었다. 낭와가 보고 욕심이 나서 사람을 채후에게 보내어 남은 패옥과 초서구를 자기에게 달라고 청했다. 채후도 역시 패옥과 초서구를 매우 애지중지 하였기 때문에 낭와에게 주지 않았다. 한편 당성공도 역시 명마 두 필을 갖고 있었는데 이름을 숙상(肅霜)이라 했다. 숙상이란 원래 기러기를 칭하던 말인데 그 말의 털이 마치 비단처럼 희고 부드러웠고 키가 크고 목이 길어 기러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후에 사람들이 다시 숙상이라는 글자 곁에다 말 마(馬) 변을 더하여 숙상(驌驦)이라 하였는데 참으로 천하의 희귀한 명마였다. 당성공이 초나라에 올 때 네 마리의 숙상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랐음에도 수레는 흔들리지 않아 매우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당성공은 네 마라의 숙상 중 2마리를 초소왕에게 바치고 남은 2마리는 자기가 갖었다. 낭와가 숙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탐하여 사람을 당성공에게 보내 남은 말 두 마리를 자기에게 달라고 청했다. 당성공은 낭와의 청을 거절하고 주지 않았다. 두 나라 군주가 조당에 나와 초소왕을 배알하는 의식을 끝내자 낭와가 즉시 초소왕에게 참소했다.

「당과 채 두 나라 군주가 비밀리에 오나라와 내통하고 있는데 만약 그들을 놓아주어 되돌아가게 해준다면 필시 오나라의 향도가 되어 우리 초나라의 정벌에 앞장 설 것입니다. 이곳에 잡아 두어야 후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초소왕이 낭와의 말을 듣고 즉시 두 나라 군주를 잡아 역관에 가두고는 각각 천명의 군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핑계는 호위한다고 하였으나 사실은 감금한 것이었다. 그때는 초소왕이 나이가 어렸던 관계로 초나라의 국정은 모두 낭와가 마음대로 처리하고 있었다. 두 나라 군주가 초나라에 감금된 지 3년이 되어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어쩌는 수가 없었다. 당나라 세자가 자기의 부군이 오랫동안 귀국하지 않음을 보고 대부 공손철(公孫哲)을 초나라에 보내 사정을 수소문해본 결과 자기의 부친이 초나라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손철이 구금되어 있는 당후를 찾아와 말했다.

「말 두 마리와 나라,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중합니까?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말을 바쳐 귀국을 청하지 않으십니까?」

「그 말은 세상의 보기 드문 명마라 내가 차마 내어 줄 수 없다. 초왕이 구한다 해도 남은 말을 바칠 수 없는데 하물며 영윤 따위에게 어찌 바칠 수 있겠는가? 또한 영윤이란 자가 한없이 탐욕하여 과인을 위협하여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내가 설사 이곳에서 숨을 거두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코 영윤 따위에게는 그 말을 바치지 않으리라!」

공손철이 아무도 몰래 종자에게 말했다.

「우리의 주군이 말 한 필에 연연하여 초나라에 오랫동안 구금 당하신 것은 가축을 중히 여기고 나라를 가볍게 보고 계시기 때문이라! 우리들이 몰래 숙상을 훔쳐서 영윤에게 바쳐 우리의 주군이 당나라에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우리가 비록 말을 훔친 도적의 죄를 무릅쓴다 한들 어찌 억울하게 생각하겠는가?」

공손철의 종자들이 그 말을 듣고 즉시 말을 돌보는 어인(圉人)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에 숙상(驌驦) 두 마리를 훔쳐 낭와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영윤의 높은 덕을 앙모하신 저희 주군께서 우리들에게 숙상을 바치도록 명하여 영윤께서 나들이 하실 때에 타고 다니시도록 하셨습니다.」

낭와가 크게 기뻐하여 두 마리의 명마를 받았다. 다음 날 낭와가 조당에 나가 초소왕에게 고했다.

「당나라는 나라가 협소하고 군사의 수효는 적어 큰일을 이루어 내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만 석방하여 자기 나라에 돌려보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소왕이 즉시 당성공을 석방하여 성 밖으로 내보냈다. 당후가 귀국하자 공손철 등 많은 사람이 모두가 스스로 자기 몸을 결박을 짓고 대전 앞에서 죄 받기를 기다렸다. 당후가 보고 말했다.

「제경들이 탐욕스러운 낭와에게 말을 훔쳐다 바치지 않았다면 과인이 어찌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과인의 죄라! 그대들이 과인을 원망만 하지 않아도 나는 만족하겠노라!」

당후가 공손철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에게 상을 후하게 내렸다. 오늘날도 덕안부(德安府)⑨내의 수주성(隨州城) 북쪽에 숙상피(驌驦陂)라고 있는데 이것은 숙상이 지나가다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당조의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이일을 논했다.

서쪽으로 내달려 숙상피의 황량한 비탈길에 서서

당시의 당성공의 어리석음을 비웃노라!

숙상마를 아까워하지 않고 일찍 낭와에게 바쳤다면

한동의 당나라 궁궐에 빨리 돌아 갈 수 있었을것을!

行行西至一荒陂(행행서지일황파)

因笑唐公不見機(인소당공불견기)

莫惜驌驦輸令尹(막석숙상수영윤)

漢東宮闕早時歸(한동궁궐조시귀)

염선(髥仙)도 시를 지어 이일을 노래했다.

3년 동안 잡혀 있었으니 그 수모가 오죽 했겠는가?

그것은 단지 명마를 탐인에게 주지 않아서였다.

임기응변하여 몰래 말을 훔쳐서 바치지 않았다면

당성공이 어찌 초나라 땅을 벗어 날수 있었겠는가?

三年拘系辱難堪(삼년구계욕난감)

只爲名驅未售貪(지위명구미수탐)

不是便宜私竊馬(부시편의사절마)

君侯安得離荊南(군후안득이형남)

당성공이 명마를 바치고 풀려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채소후도 역시 패옥과 초서구를 낭와에게 바쳤다. 채후에게서 두 가지 물건을 받은 낭와는 다시 소왕에게 고했다.

「당과 채 두 나라의 처지는 같습니다. 당후를 이미 돌려보냈으니 채나라 군주만 홀로 붙들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소왕이 낭와의 말을 따랐다.

채후가 초나라 도성인 영도에서 풀려 나와 귀국하던 중 한수를 건너다 가슴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백벽을 강물에다 던지며 하늘을 향해 맹세하며 말했다.

「내가 만약 초나라를 정벌하지 못하고 다시 이 강물을 건너 초나라에 조공을 드리러 간다면 이 강물이 나를 용서치 않으리라!」

8. 納質乞師(납질걸사)

- 인질을 바치며 군사를 청하는 당과 채 두 나라의 군주들 -

우여곡절 끝에 자기에 나라에 귀국한 채소공이 곧바로 세자 원(元)을 당진에 보내 인질로 잡히고 군사를 빌려 초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당진의 정공(定公)이 다시 초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주나라에 상소하였다. 주경왕(周敬王)이 경사 유권(劉券)을 시켜 천자의 명으로 제후들의 군사들을 모이게 했다. 송(宋), 제(齊), 노(魯), 위(衛), 진(陳), 정(鄭), 허(許), 조(曹), 거(莒), 주(邾), 돈(頓), 호(胡), 등(滕), 설(薛), 기(杞), 소주(小邾)와 채(蔡)나라 까지 합쳐 모두 17국의 제후들이 주왕이 지정한 땅에 모이게 되었는데 각 나라들은 모두가 낭와의 탐욕에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천자의 명을 따랐다. 당진의 정공은 범앙(范鞅)을 대장으로, 순인(荀寅)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키고 동시에 모든 제후들에게 명을 전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소릉(召陵)의 땅에 모이도록 했다. 이윽고 중원 제후국 군사들이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소릉의 땅에 모였다. 그러나 당진의 부장 순인은 채나라를 위해 당진의 군사와 중원 제후국의 군사들이 출전했음으로 채나라가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채후에게 사람을 보내어 재물을 청하도록 했다.

「내가 들으니 채후께서는 초나라의 임금과 신하에게 패옥과 초서구를 바치고서는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목적은 전적으로 군주님을 위해서인데 어찌하여 군사들을 호군하여 사기를 돋우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채후가 듣고 대답했다.

「내가 초나라 영윤 낭와가 탐욕하여 의롭지 못해 초나라를 받들기를 거부하고 당진에 투신했소. 중원의 대부들이 오로지 맹주국으로서의 의를 잊지 않고 강폭한 초나라를 멸하여 작고 힘이 약한 중원 제후국들을 돕는다면 그 결과 형양(荊襄) 5천 리의 땅은 모두 제후의 군사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재물이 될 것이오. 어느 것이 더 큰 이익이 될지는 스스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순인이 그 말을 전해 듣고 심히 부끄러워하였다. 그때가 주경왕 14년 즉 기원전 506년 봄 삼월의 일이었는데 우연히 큰비가 몇 주 째 계속 내려 유권이 학질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순인이 즉시 범앙을 찾아가 말했다.

「옛날 오패 중에 제일 세가 성한 사람은 제환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마저도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끌고 출동했다가 소릉에서 군사를 멈추어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선군이신 문공께서 간신히 성복의 싸움에서 한번 이기셨음에도 초나라 군사들의 출동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습니다. 후에 당진과 초 두 나라가 한 번 우호 조약을 맺어 서로 사이가 좋게 되었는데 우리가 스스로 먼저 싸움을 일으킬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지금 큰비가 내려 군사들 사이에 학질이 창궐하고 있는데 만약 진격했다가 승리를 취하지 못하여 퇴각하는 사이에 초나라가 우리의 뒤를 쫓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경우를 생각해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범앙 역시 일개 탐욕스러운 위인이라 채후로부터 후한 뇌물을 바라고 있다가 그 기대가 무참히 깨지자 큰비를 핑계로 군사들이 진격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채후가 보낸 인질을 돌려주고 군사를 이끌고 회군하여 버렸다. 당진군이 초나라를 정벌하는 일에 앞장을 서지 않고 철군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리자 각국의 제후들도 흩어져 각기 자기 나라로 모두 회군하였다. 염선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위풍도 당당히 병거를 따라 숱한 군사들이 모여

초나라를 곧바로 정벌할 힘이 넘쳐흘렀다.

중원에 의로운 선비가 없다고 누가 말했는가?

그들 역시 낭와와 같이 뇌물을 밝히는 탐관이었다.

冠裳濟濟擁兵車(관상제제옹병거)

直擣荊襄力有餘(직도형양력유여)

誰道中原無義士(수도중원무의사)

也同囊瓦索苞苴(야동낭와색포저)

채후가 제후들의 군사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자기 본국으로 회군하던 중 심국(沈國)을 지나가게 되었다. 채후는 초나라 정벌군에 참가하지 않은 심자(沈子)를 괘씸하게 생각하여 대부 공손성(公孫姓)을 시켜 습격하여 멸망시키고 심자를 사로잡아 죽여 초나라에 대한 분노를 달랬다. 초나라의 낭와가 대노하여 채나라 정벌군을 일으켜 채성을 포위했다. 공손성이 진언했다.

「당진은 이제 믿을 만한 나라가 못 됩니다. 차라리 동쪽의 오나라에 구원을 청하십시오. 오자서와 백비 등 오나라의 여러 신하들은 초나라에 철천지 원한을 품고 있어 구원을 청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원군을 보내줄 것입니다.」

채후가 공손성의 말을 따라 즉시 그에게 령을 내려 당후와 약속을 정하게 한 후에 같이 오나라에 몸을 맡겨 군사를 빌리기로 하고 그의 둘째 아들 공자건(公子乾)을 인질로 보냈다. 오원이 와서 합려의 접견을 청한 후에 말했다.

「당과 채나라가 초나라에 한을 품고 초나라를 정벌하는데 앞장서기를 자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채나라를 구원한다는 명분과 동시에 초나라를 무찌를 수 있는 실익도 있는 일입니다. 대왕께서 초나라의 영도에 들어가고 싶으시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합려가 즉시 채후의 인질을 받아들이고 군사를 내어 채나라를 구원하기로 하고 공손성을 먼저 채나라에 달려가게 하여 그 사실을 채후에게 알리도록 했다. 합려가 정벌군의 진용을 짜려고 하는 순간 근신이 달려와 보고했다.

「지금 강구(江口)에서 수군을 조련하고 계시던 손무 군사께서 오셔서 접견을 청하고 있습니다.」

9. 오사벌초(吴師伐楚)

- 마침내 오나라가 초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다. -

합려가 손무를 들어오게 하여 접견을 청한 이유를 물었다.

「초나라를 공략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데리고 있던 속국이 매우 많아 영도에 곧바로 진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당진의 군주가 한번 호령하니 중원의 18개 나라의 군주들이 모였고 그 중에는 진(陳), 허(許), 돈(頓), 호(胡) 네 나라는 모두 오랫동안 초나라를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었으나 그들도 역시 초나라를 버리고 당진의 호령에 따라 초나라 정벌군에 참여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천하의 군주들의 마음은 이미 초나라를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초나라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는 나라가 단지 당과 채나라 두 나라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어 초나라의 세력이 고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합려가 크게 기뻐하였다. 피리와 전의(專毅)로 하여금 태자 파(波)를 보좌하여 오성을 지키게 하고 손무는 대장으로 오원과 백비는 부장으로, 그의 동모제 부개(夫槪)는 선봉으로 삼아 오나라의 전 군사를 일으키고, 공자산(公子山)에게는 군량을 보급하는 일을 전담하도록 했다. 오나라가 일으킨 군사들은 모두 6만에 달했으나 부르기는 십만 대군이라 하고 수로를 이용하여 북진하여 회수를 건너 곧바로 채나라에 당도했다. 초군 대장이 되어 채나라를 공격하고 있던 낭와는 오나라 구원군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 포위망을 풀고 본국으로 후퇴했다. 오나라의 군사들의 추격을 두려워한 낭와는 한수를 도하한 후에 진채를 세우고 계속해서 급보를 영도에 띄워 사태의 위급함을 알렸다.

한편 오왕을 영접한 채후는 초왕의 흉포한 짓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다. 그러는 사이에 당후도 역시 채나라에 당도하여 합려를 배알했다. 두 나라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 본대의 좌우익을 맡아 초나라로 진군하는 일을 돕겠다고 자청했다. 이윽고 군사를 정비하여 진격할 때가 되자 손무가 갑자기 3군에게 배에서 내리라는 령을 내렸다. 배에서 내린 군사들을 뭍으로 올라 육로의 길을 취하게 하고 모든 배들은 회수의 구비 진 곳에다 남겨 놓도록 했다. 오원이 조용히 손무를 찾아와 군사들에게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오르게 하여 행군시킨 이유를 물었다. 손무가 대답했다.

「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행군 속도가 늦게 되고 그렇게 되면 초나라가 아군에 대해 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어 초나라를 쉽게 이길 수 없기 때문이오.」

오원이 손무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탄복하였다. 대군이 장강의 북쪽에서 육로를 취하여 장산(章山)⑩을 넘어 곧바로 한양에 주둔하고 있던 초군의 뒤를 쫓아왔다. 초군이 한수 남안에 진채를 세우고 방어선을 펼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손무는 한수의 북쪽에다 진을 쳤다. 낭와는 매일 밤마다 오나라 군사들이 한수를 건너 공격해 오지 않을까 걱정하다가 오군이 그들의 배를 모두 회수에다 두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을 조금 놓게 되었다.

한편 오나라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쳐들어 왔다는 보고를 접한 초소왕은 군신들을 소집하여 그 대책을 물었다. 공자신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자상(子常) 낭와는 대장의 재목이 아닙니다. 속히 좌사마 심윤수를 대장으로 삼아 출병시켜 오나라 군사들을 한수에서 막게 해야 합니다. 오군은 먼 길을 행군하여 왔을뿐 아니라 후속 부대가 뒤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틀림없이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초소왕은 공자신의 말을 따라 심윤수에게 군사 1만 5천을 거느리고 영윤 낭와를 도와 오나라 군사의 도하를 막게 했다. 심윤수가 한양(漢陽)에 당도하여 낭와의 대채를 찾아가서 물었다.

「오나라가 어떤 길을 취하여 이곳으로 진격하였기에 이렇듯 신속하게 진격 해 올 수 있었습니까?」

「회예(淮汭)⑪에서 배를 버리고 뭍에 올라 예장(豫章)⑫을 통과하여 행군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신속하게 올 수 있었을 것이오.」

심윤수가 소리를 높여 웃으며 낭와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손무는 군사를 부리기를 귀신과 같이 한다고 하는데 지금 그의 용병을 보니 진실로 어린아이도 웃을 일입니다.」

낭와가 물었다.

「어떤 연유로 그리 말하는 것이오?」

「오나라 병사들은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일에 익숙하여 수전을 잘 합니다. 그런데 지금 손무는 단지 우리의 뒤를 빨리 쫓기 위해 배를 버리고 뭍에 올랐습니다. 만일 그들이 싸움에 피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되돌아 갈 길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리면서 웃었습니다.」

「오나라의 군사들이 한수 북쪽에 진을 치고 있는데 그들을 파할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있소?」

「제가 끌고 온 군사들 중 5천을 떼어 영윤께 드리겠습니다. 영윤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한수 남쪽 강안에 군영을 세우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한수 강변의 모든 배들을 끌어다 한수 남안의 한 곳에 모아 놓게 하시고 다시 속도가 빠른 배들을 아침저녁으로 한수의 위아래 쪽을 순시하게 하여 배들을 빼앗아 한수를 도하하려는 오나라 군사들을 막으십시오. 영윤께서 그들의 도하를 저지만 해 주신다면 저는 남은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신식(新息)⑬을 경유하여 회예(淮汭)로 진격하여 오군이 숨겨 논 배들을 모두 불태운 후에 다시 한수 동쪽의 험로를 통나무와 돌로 막아 그들의 퇴로를 끊겠습니다. 그때 영윤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한수를 건너 오군의 대채(大寨)를 공격하십시오. 저는 그들의 배후에서 들이치겠습니다. 수륙 양로에서 그들의 퇴로가 끊어지고 앞뒤에서 우리의 공격을 받는 다면 오나라 군신들의 목숨은 모두가 우리들의 수중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낭와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사마의 높은 식견은 내가 감히 따르지 못하겠소!」

이어서 심윤수는 대장 무성흑(武城黑)에게 그곳에 남아 5천의 군사를 지휘하여 낭와를 돕게 하고 자기는 스스로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신식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했다.

《제76회로 계속》

주석

①육도삼략(六韜三略)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을 말한다. 육도는 주나라의 태공망(太公望)이 짓고 삼략은 황석공(黃石公)이 전한(前漢)의 창업공신인 장량(張良)에게 전한 책이라고 전해지는데 모두 중국 고대의 병법서다. 따라서 기원전 6세기 사람인 손자가 육도삼략 중 기원전 3세기 말에 황석공에 의해 쓰여졌다는 삼략(三略)에 통달했다는 말은 원작자인 풍몽룡(馮夢龍)의 착오이다.

②나부산(羅浮山) : 광동성 惠州(혜주) 서쪽에 있는 도교 10대 본산 중의 하나이나 손무가 이 산에 은거했는지는 알 수 없음.

③횡산(橫山) : 위치 미상

④본서 60회에 나오는 당진(唐晉)의 장수 순앵(荀罃)이 초군에게 대응하기 위해 구사한 이일대로(以逸待勞) 전법을 말한다.

⑤취리(檇里) : 현 절강성 가흥시(嘉興市) 남 30키로 항주만(杭州灣) 북쪽에 있던 고을

⑥당(唐) : 한수(漢水)의 지류인 청발수(淸發水) 상류에 있던 군소 제후국. 수(隨)나라는 당나라 남쪽 30키로 하류에 있음.

⑦양지백옥패(羊脂白玉佩) :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옥패를 칭하는 것으로써 옥패(玉佩)란 제후들의 허리띠를 장식하는 구슬을 말한다.

⑧은초서구(銀貂鼠裘) : 은담비의 가죽으로 안을 댄 겨울 옷

⑨덕안부(德安府) : 명나라 때 행정구역의 하나로 현 호북성(湖北省) 운수(鄖水 : 춘추시 淸發水) 주변에 있었던 행정단위를 가르킴.

⑩장산(章山) : 지금의 호북성 사양현(沙洋縣) 한수 서안(西岸)의 마량진(馬良鎭) 있었던 산 이름으로 지금은 마량산이라고 한다. 장산은 초나라 수도인 영성(郢城)에서 동북으로 70키로의 지근거리에 있었다. 일명 내방산(內方山)이라고도 한다. 삼국지 백미(白眉)라는 전고의 주인공 마량(馬良)의 출생지다.

⑪회예(淮汭) : 현 안휘성 봉태현(鳳台縣)으로 회수(淮水)와 영수(潁水)의 합류점에 있었던 고을

⑫예장(豫章) : 회수(淮水) 남쪽과 한수 동쪽 혹은 회수 남쪽과 강남(江南), 혹은 회수 남쪽, 한수 동쪽 및 강남을 아울러 포괄적으로 부르던 지명.

⑬신식(新息) : 지금의 하남성 식현(息縣)으로 초나라가 병합하여 군현으로 만든 후에 신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평설]

오랫동안 벌어진 중원에서 벌어진 패권전쟁의 무대는 춘추말기가 되자 중국의 동남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원래 중원에서 패권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때 방관자였던 오(吳)와 월(越) 두 나라는 이때부터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두 나라가 추구했던 패권은 섬진이 서북지역에, 제나라가 주위의 군소제후국에 대한 패권을 확립한 것처럼 동남 일부 지역에 한한 것이 아니라 전 중국을 무대로한 천하를 목표로 했다.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오나라가 초강대국이었던 초나라와 상대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복수심에 불탔던 오자서의 활약에 힘입은 바도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요인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가 손무의 등용에 있었다, 그와 같은 정세 하에서 오나라는 획기적으로 발전한 경제력과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에 해당했던 제련술을 이용한 성능이 우수한 무기의 제조능력을 기반으로 초나라와 패권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의 이치에 통달했던 손무는 깊은 산속에 숨어 군사이론을 연구하여 용병의 일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는 오왕에게 귀신도 예측하지 못하는 임기응변과 하늘과 땅의 도리가 들어있는 병법 13편을 바쳤다.

‘진법 훈련 중에 오왕의 총희를 참하는 손무’ 편은 그의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논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빠른 시간 안에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군사로 양성하여 강력한 군대를 창건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장군이 군중에 있을 때는 비록 군주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받들지 않는다.’라고 하여 군대의 독립성을 강조했으며, 동시에 군사가의 입장에서 비군사가에게 군법의 엄중함을 주지시켰다.

손무의 ‘먼저 내부의 화근부터 근절하고 나서야, 비로소 외부의 적을 정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패권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견실한 기반을 마련하는 편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 당시 형제간의 왕위 쟁탈전은 내란의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오왕 합려의 동생 엄여(掩余)와 촉용(燭庸)의 존재는 오왕에게 큰 위협이었다. 손무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그들이 망명하고 있던 서국(徐國)과 종오(鐘吾)를 멸하고 오나라 땅에 편입시켰다. 다시 달아난 두 사람을 초나라의 서성(舒城)까지 추격하여 성을 파하고 잡아서 살해함으로 해서 오나라의 잠재적인 화근을 없앴다.

또한 손무는 오자서가 제안한 옛날 진도공(晉悼公)이 초나라와의 쟁패전쟁에서 사용했던 분군사적(分軍肆敵) 즉 이일대로(以逸待勞) 전법을 받아들여 6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초나라 변경을 교란시키자 강대한 초군은 견디지 못하고 피로에 지쳐 그 전력이 현저히 감소되었다. 동시에 초군으로 하여금 오군이 대거 공격한다는 분위기를 조성시켜 대비시키게 하고 결국은 한 번도 용병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오군에 대한 경계심을 풀도록 했다.

손무는 ‘백성들의 생활이 편안하지 않으면, 결코 군사 행동을 일으킬 수 없으니 반드시 좋은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는 방침에 따라 오나라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화근이 제거되었음에도 즉시 영도를 공격하라는 합려의 지시를 듣지 않았다. 손무가 오왕의 명령을 받들지 않은 행위는 오히려 오나라에게는 실제로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백성들의 고된 삶을 살피지 않는다면 인심을 잃게 되고 결국은 많은 병력을 잃게 되어 전쟁에서 승리를 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손무는 단순한 군사가 아니라 민심을 살필 줄 알았던 장군이었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 좋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세는 항상 변하는 법이다. 이윽고 초나라의 속국이었던 제후국들이 초나라 군신들의 후안무치한 탐욕으로 인해 조만간에 그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초나라가 스스로 그 국세를 무너뜨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손무가 강구(江口)에서 수군을 훈련시켰다는 기록은 그가 전차전이나 보병전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수전에서 정통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오나라에 앞서 당진국이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18개의 제후국들이 참가한 원정군을 조직했으나 그 중에는 초나라에 속한 제후국들도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군 중에 장마를 만나 중도에 철군했으나, 이 사건으로 이때는 이미 초나라는 속국을 모두 잃어버리고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서야 손무는 오왕에게 초나라를 정벌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손무는 형세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분석했다.

손무는 확실히 일의 대체를 꿰뚫어 정세를 정확히 읽어 낼 수 있는 혜안을 갖춘 재능이 출중한 군사가였다. 《사기(史記)ㆍ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오나라가 발흥하여 서쪽의 나아가 초군을 격파한 다음 그 도성인 영성(郢城)에 입성하여 북쪽의 제(齊)와 당진(唐晉)에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손무의 활동이 아니었으면 이룰 수 없었던 일이었다.

손무가 저술한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송나라 때 편찬한 《무경칠서(武經七書)》에 수록된 중국의 역대 병법서 중 수위를 차지한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병법서로 인정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자기들 문자로 번역 발간하여 국제적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인질을 맡기며 오나라에 군사를 청한 채후(蔡侯)’의 이야기는 당시의 패권국이었던 당진(唐晉)과 초(楚) 두 나라의 내부는 모두 부패되어 장수들이 이를 탐하여 국제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채후는 ‘당진국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오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손무는 당진국의 군주가 소집한 초나라 정벌군에 참가한 18개 제후국 중에는 전통적인 초나라의 속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정보를 접하고, 이윽고 초나라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초나라에 대한 공격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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