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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27:335297 
제74회. 誅戮無極(주륙무극) 貪名刺客(탐명자객)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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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4회 誅戮無極 貪名刺客(주륙무기 탐명자객)

희대의 간신 비무극을 주살하는 초나라의 영윤 낭와와

명예를 탐하여 가족을 버리고 경기를 죽인 자객 요리.

1. 宴送鎧甲 誘刀殺人(연송개갑 유도살인)

- 영윤을 모시는 연회석상에 병장기를 진열시켜 정적을 죽음으로 몬 비무극 -

한편 비무극은 좌윤 백극완을 마음속으로 시기하여 우윤 언장사를 불러 상의한 끝에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먼저 영윤 낭와를 찾아가 일부러 말을 꾸며 전했다.

「자오(子惡 : 백극완의 자)가 연회를 준비하여 한번 모시고자 하나 상국께서 기꺼이 무거운 발걸음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실지 여부를 알지 못해 저에게 부탁하여 상국의 뜻을 여쭈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나를 초대하고자 하는데 내가 특별히 가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소?」

비무극 자신은 극완을 직접 찾아가 말했다.

「영윤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좌윤 대감의 집을 방문하여 술을 한 잔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좌윤께서 기꺼이 술상을 준비하여 자기를 맞이할지 잘 몰라 나에게 부탁하여 그 뜻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극완이 비무극의 간교한 계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답했다.

「제가 영윤을 모시고 있는 하급자 신분인데 영윤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술을 즐기신다면 저로써는 영광된 일입니다. 내일 간략한 주연을 마련하여 영윤을 모시겠으니 대부께서 번거로우시겠지만 저의 뜻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윤께서 영윤을 접대할 때 무엇으로 그를 즐겁게 하려고 하십니까?」

「영윤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영윤께서는 견고하고 예리한 병장기를 진열해 놓고 감상하기를 제일 좋아하십니다. 좌윤 대감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으신 이유도 실은 오나라에서 노획한 병장기들 중에 그 반이 하사되어 대감의 집에 있어 그것들을 잠시 보고 싶어서 입니다. 대감은 가지고 있는 병장기들을 모두 내어 저에게 보여주시면 제가 대감을 위해 영윤에게 보일만한 것들을 골라 드리겠습니다.」

백극완은 비무극의 말을 쫓아 초소왕으로부터 하사 받아 자기 집에 두고 있던 오나라의 병장기들과 그리고 자기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무기들까지도 모두 꺼내와 무극에게 보여주었다. 무극이 그것들 중에서 견고하고 예리하게 보이는 것들을 50여 개 골라 주며 말했다. .

「이것이면 충분하겠습니다. 좌윤 대감은 이것들을 여러 문 앞에다 전시한 후에 장막으로 가려 놓고 있다가 영윤께서 오셔서 물으시거든 즉시 장막을 거두고 보여 드리십시오. 영윤께서는 구경하시고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니 후에 이것들을 선물로 바치십시오. 영윤께서는 다른 물건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비무극의 말을 믿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극완은 즉시 가노들에게 명하여 대문의 왼쪽에 무기를 전시해 놓고 장막을 두르게 한 후에 무장한 가병들을 장막 안에 세워 두었다. 드디어 음식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생각한 극완은 무극에게 낭와를 모셔 오라고 청했다. 비무극을 통해 초청을 받은 낭와가 수레를 타고 백극완의 집으로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무극이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 제가 영윤을 위해 먼저 가서 극완이 연회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다음 가셔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극이 극완의 집으로 간다고 떠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몸을 비틀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달려와 낭와에게 말했다.

「내가 하마터면 영윤을 그르치게 할 뻔했습니다. 오늘 자오가 영윤 대감을 자기 집으로 청한 목적은 좋은 뜻에서 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감께서 가신다면 이롭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제가 극완의 집에 가서 그 집안 분위기를 살펴봤는데, 우연히 문 옆에 장막으로 가려 숨겨 놓고 있는 병장기와 갑병을 보았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가신다면 필시 상국께서는 그의 독수에 해를 입을 것입니다.」

「자오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그가 나를 해치려 하겠는가?」

「왕의 총애를 믿고 있는 자오가 영윤의 자리를 노려 대감을 대신하려고 그런 짓을 꾸민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잠읍(潛邑)에서의 싸움에서, 여러 장수들이 승세를 몰아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오나라와 몰래 내통한 자오가 비밀리에 그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상대국의 내란을 틈타 공격하는 행위는 의로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좌사마 심윤수를 강압하여 회군하여 돌아왔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오나라가 우리의 국상을 틈타 쳐들어 왔으니, 우리도 오나라의 내란을 틈타 정벌해서 바로 그들에게 자신의 무례를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군사를 되돌려 회군한단 말입니까? 만약에 자오가 오나라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그렇게 쉽게 그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퇴각했겠습니까? 그가 만약 뜻을 얻어 영윤의 자리에라도 앉게 된다면 초나라의 장래는 참으로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낭와가 그래도 믿지 못하고 주저하면서 좌우의 측근들에게 가서 다시 극완의 집을 살펴보라고 했다. 측근들이 돌아와서 고했다.

「대문 옆에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데 과연 그 안에 갑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

낭와가 대노하여 즉시 사람을 시켜 언장사를 불러오게 하여 극완이 음모를 꾸며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고 호소했다. 언장사가 말했다.

「극완은 양영종(陽令終), 양완(陽完), 양타(陽佗) 등의 양가와 진진(晉陳)의 진가와 합당하여 초나라의 정권을 노리고 있었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타국에서 도망쳐 온 필부의 주제에 어찌 감히 란을 일으키려고 한단 말인가? 내 당장 요절을 내고 말리라!」

낭와가 그 일행들을 데리고 즉시 궁궐로 들어가 초왕에게 상주한 후에 언장사에게 명하여 갑병들을 이끌고 가서 백(白)씨들을 공격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백극완은 무극에 의해서 함정에 빠졌음을 알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그의 아들 백비(伯嚭)는 화가 자기에게도 미치지나 않을가 두려워하여 교외로 달아났다. 낭와가 백씨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불사르라고 명했으나 성중의 백성들은 아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낭와가 더욱 화를 내며 령을 내렸다.

「백씨들이 사는 동네를 불사르지 않는다면 그 놈들의 죄도 백씨들과 똑같이 취급하겠다.」

대부분의 성안 백성들은 백극완이 어진 신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백씨들의 동네를 불태우려고 하지 않았으나 낭와의 위협을 받고 마지못하여 각각 볏짚을 한 단씩 손에 들고 백씨들이 사는 동네의 대문 밖에 가서 던져 놓고 도망가 버렸다. 낭와가 친히 그의 가정들을 이끌고 백씨들의 동네에 가서 앞뒤의 문을 포위하고는 불을 질렀다. 가련하게도 백씨들이 거주했던 영성의 좌윤부(左尹府) 제일구역은 일시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 안에 있던 백극완의 시체도 불에 타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백씨들을 남김없이 불태워 죽인 낭와는 다시 양영종, 양완, 양타 및 진진을 다시 잡아들여 그들이 오나라와 내통하여 모반을 꾀했다고 무고한 후에 모조리 도륙했다. 성중의 백성들 중 낭와를 원망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 族滅無極(족멸무극)

- 비무극을 멸족시켜 백성들의 원성을 무마한 낭와(囊瓦) -

그러던 어느 날 낭와가 달밤에 누각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시중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노래 소리가 청아하여 그 소리를 듣고 뜻을 알 수 있었다. 그 노래 소리는 다음과 같았다.

극대부를 본 받지 말지어다!

충성을 바쳤으나 죽음을 얻었다.

몸은 이미 죽었는데

뼈도 남지 않았네!

초나라는 임금도 없고

오로지 비무극과 언장사만 있을 뿐이라

허수아비와 같은 영윤은

남의 말만 듣는 위인이라

하늘의 뜻을 만약 알고 있다면

보답을 받아 그의 이름이 빛날 수 있건만!

莫學郤大夫(막할극대부)

忠而見誅(충이견주)

身旣死(신기사)

骨无餘(골무여)

楚國无君(초국무군)

惟費與鄢(유비여언)

令尹木偶(영윤목우)

爲人作茧(위인작충)

天若有知(천약유지)

報應立懸(보응입현)

낭와가 급히 좌우을 시켜 노래를 부른 사람을 데려 오라 했으나 그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시중의 집집마다 신위 하나씩을 모셔 놓고 피우던 향불이 서로 맞닿는 듯했다. 그가 물었다.

「지금 모시고 있는 신위는 누구의 것인가?」

백성이 대답했다.

「얼마 전에 죽은 충신 백극완을 모시는 신위입니다.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으니 하늘에 고하여 그의 신령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측근이 돌아와 그 사실을 낭와에게 고했다. 낭와가 조당으로 나가자 공자신을 위시한 여러 대신들이 낭와를 향해 모두 말했다.

「백극완이 오나라와 내통을 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오!」

시중 백성들의 행동과 조당에 있던 여러 대신들의 말을 듣고 낭와는 마음속으로 후회해 마지않았다. 심윤수도 백성들이 교외에 신위를 모셔 놓고 영윤을 저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낭와를 찾아와 말했다.

「성중의 백성들이 하나 같이 영윤 대감만을 원망하고 있는데 오로지 당사자인 대감만이 그 일을 모르고 계십니까? 비무극이라는 자는 아첨만하는 못된 신하로 언장사와 공모하여 우리 초나라를 기만해 왔습니다. 조오(朝吳)를 돌려보냈고 채후 주(朱)를 나라 밖으로 내 쫓았으며, 선왕 평왕을 교사하여 패륜의 일을 행하게 하고 태자건을 나라밖에서 죽게 했습니다. 또한 오사 부자를 아무 죄도 없이 죽게 만들고, 다시 오늘은 좌윤을 죽게 만들어 그 여파가 양(陽)과 진(晉) 두 집안에 미쳐 백성들은 이 두 사람에게 그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말하기를 상국이 비무극의 악행을 방조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원한에 사무쳐 성중의 온 백성들은 영윤 대감에게 저주만을 퍼붓고 있습니다. 무릇 남을 헐뜯는 말을 막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할지라도 인자라면 그리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비방하는 말을 듣고 사람을 죽였으니 그것을 장려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대감께서 영윤의 자리에 있으면서 간특한 아첨배의 말을 따라 민심을 잃었으니 앞으로 초나라 국내에서 무슨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나라밖에서 외적이 쳐들어오거나 했을 때 성중의 백성들이 들고일어난다면 영윤의 처지는 매우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첨배의 말을 믿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말고 간특한 그 자들을 제거하여 스스로의 안위를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낭와가 심윤수의 말을 듣고 두려운 생각으로 주위를 살펴보며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일은 이 낭와의 크나큰 잘못입니다. 원컨대 사마께서 저를 도와 오른팔이 되어 주신다면 그 두 도적들을 죽이겠습니다.」

「영윤께서 그리 생각하시니 사직의 복입니다. 어찌 감히 명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심윤수가 사람을 시켜 성안의 저자거리로 나가서 큰 소리로 외치게 하였다.

「좌윤 자오의 죽음은 사실은 비무극과 언장사가 무고했기 때문이다. 영윤께서 이미 그들의 간계를 알아채시고 오늘 그들을 잡아 벌주려 하니 백성들 중 원하는 자는 따라 나서기 바란다.」

심윤수가 보낸 사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성들이 각기 손에는 병장기들을 손에 들고 구름처럼 몰려들어 앞장섰다. 낭와가 곧이어 비무극과 언장사를 잡아 죄를 열거하고 참수하여 그들의 목을 시정에 효수하였다. 백성들이 영윤의 명도 떨어지기 전에 비씨와 언씨들이 사는 집들을 불을 질러 그 일당들을 모두 태워 죽였다. 그러고 나자 시중의 저주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말했다.

백씨들의 집은 태우지 않고 비언씨들의 집은 태웠음은

공론과 공심이 모두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윤이 좀 더 일찍이 사마와 계책을 의논하였더라면

간신의 말이 어떻게 충신을 해칠 수 있었겠는가?

不焚伯氏焚鄢費(불분백씨분언비)

公論公心在國人(공론공심재국인)

令尹早同司馬計(영윤조동사마계)

讒言何至害忠臣(참언하지해충신)

또 다른 시가 있다. 언장사와 비무극 두 사람의 일생 동안 사람을 해치다가 결국은 스스로를 해치게 되었고, 남을 무고하여 악행만을 일삼았으니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었겠는가? 라고 읊었다.

순풍에 방화하여 사람을 태워 죽이더니

갑자기 그 바람이 거꾸로 불어 자신을 태웠다.

독수와 간계의 결과는 모두가 이와 같이 되나니

악인이 피해 다녀 봐야 얼마나 가겠는가?

順風放火去燒人(순풍방화거소인)

忽地風回燒自身(홀지풍회소자신)

毒計奸謀渾似此(독계간모혼사차)

惡人幾個不遭屯(악인기개불조돈)

3. 疎不間親 遠不間近(소불간친 원불간근)

- 관계가 먼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을 갈라놓게 할 수 없으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떨어지게 할 수 없는 법이다.-

한편 오왕 합려(闔閭) 원년은 주경왕 6년으로서, 즉 기원전 514년이다. 그 해에 합려는 오원을 방문하여 국정에 관하여 가르침을 청했다.

「과인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데 어찌하면 그리 되겠소?」

오원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신은 초나라에서 도망쳐 온 외신입니다. 부친과 형님께서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그 해골도 거두어 장사지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 혼백은 제사상도 받지 못하고 아직도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고 있습니다. 소신은 그 치욕을 지금까지 참고 견디면서 이 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대왕께 몸을 의탁하러 왔습니다. 저는 다행히 대왕께서 죽이지 않은 은혜를 입고 있는데 어찌 감히 저와 같은 사람이 오나라의 정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장군이 아니었다면 과인은 지금도 여전히 남의 밑에 서서 몸을 굽혀야 하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오. 다행히 장군의 한마디 가르침을 따라 오늘과 같이 오나라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소. 내가 오나라의 국정을 그대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중도에서 그대의 뜻을 버리려고 하시오? 과인으로써는 그대의 뜻을 펼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신이 뜻을 펴기에 대왕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관계가 먼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을 갈라놓게 할 수 없으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떨어지게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신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유랑하는 몸으로써 오나라의 신하들 위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소신의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직 갚지 못하여 마음의 안정을 못 찾고 있어 자기의 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어찌 능히 나라의 일을 맡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나라의 신하 중에는 장군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으니 사양하지 마시오! 나라의 사정이 안정되면 과인이 장군이 원수를 갚도록 도와주겠소. 장군은 오로지 나의 명을 받들기만 하시오!」

「대왕께서 평소에 무엇을 도모하시려는 뜻을 품고계셨습니까?」

「우리 오나라는 중원에서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땅이 험하고 습지가 많소. 또한 해마다 바다의 거센 조수 때문에 피해가 많고, 양곡을 저장할 창고는 부족하며, 노는 땅을 미처 전답으로 개간하지 않아 양곡의 소출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없소. 더욱이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확고하지 않아 이웃나라에 아무런 위엄도 보일 수 없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겠소?」

「신이 듣기에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우선은 백성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살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릇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는 자들은 따르게 하고 멀리 있는 자들은 제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오도에 성곽을 세우고 그곳을 지킬 수 있는 수비시설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창고에 양식을 가득 채운 후에 군사를 훈련시켜 안으로는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하며 밖으로는 나가서 적군에 대항해서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생각이오. 과인이 모든 것을 위임하니 장군은 과인을 위해 온힘을 다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해 주시오.」

오원은 즉시 오나라 땅의 지세의 높고 낮은 곳을 살피고 물맛이 짜고 담백한지를 맛본 후에 고소산(姑蘇山)① 동북 30리 되는 곳에 좋은 땅을 얻어 대성을 축조했다. 성곽의 둘레는 47리에 달하고 육지로 여덟 개의 문을 냈는데 그것은 하늘의 팔풍(八風)②을 본받았고, 수문도 여덟이었는데 이는 땅의 팔총(八聰)③을 의미했다. 그 팔문의 이름은 각각 다음과 같았다.

남쪽에는 반문(盤門)과 사문(蛇門)

북쪽에는 제문(齊門)과 평문(平門)

동쪽에는 누문(樓門)과 장문(匠門)

서쪽에는 창문(閶門)과 서문(胥門)

반문(盤門)이란 물이 굽이친다는 뜻을 말하고 사문(蛇門)이란 그 있는 곳의 방위가 사방(巳方) 쪽에 있기 때문이며 십이간지로 말하면 뱀띠에 속한다는 말이다. 제문(齊門)이란 제나라가 북쪽에 있기 때문에 제나라를 쳐다본다는 뜻으로 붙였으며 평문은 수문(水門)과 육문(陸門)을 겸한다는 뜻이다. 또한 누문(樓門)이란 누강(樓江)의 물이 모인다고 해서 딴 이름이며 장문(匠門)이란 성을 축조할 때 장인들을 이곳에서 모아 일을 시켰기 때문이 붙인 이름이다. 창문(閶門)이란 창합(閶闔)의 기운(즉 서방의 가을기운)이 들어오는 문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고 서문(胥門)이란 고서산(姑胥山) 쪽으로 나 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월(越)나라는 오나라의 동남쪽에 있는데 정확히 방위가 사방(巳方)쪽에 있었기 때문에 사문(蛇門) 위에 나무로 뱀의 모양을 조각하여 그 머리를 성안으로 향하게 하여 월나라가 신하로써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냈다. 대성의 남쪽에 다시 작은 성을 쌓아 그 둘레가 10리이고 서남북 세 곳에만 문을 만들고 동쪽 한 곳만은 문을 내지 않았다. 그것은 월나라에게 밝은 빛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에서였다. 오나라의 땅은 동쪽에 있어 방위로 보면 진방(辰方)이라 십이간지의 용띠에 해당하여 남쪽으로 나있는 소성의 문 위에 두 마리의 도룡농을 조각하여 올려놓아 마치 용뿔처럼 보이게 했다.

이윽고 성곽이 완성되자 매리(梅里)의 도성에 거주하던 합려를 이곳으로 맞이하고 오나라의 도성으로 삼게 했다. 성안에는 전면에는 조당, 후면에는 시장, 좌측에는 종묘가 들어서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세웠으며 창고와 부고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 다음 백성들을 크게 모아 군졸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전투진형을 짜는 방법과 활쏘기를 가르쳤다. 다시 봉황산(鳳凰山) 남쪽에 성을 하나 더 쌓았는데 그것은 바로 월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성이라고 해서 남무성(南武城)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4. 干將鑄劍(간장주검)

- 명장 간장이 명검을 만들다.

한편 왕료를 죽일 때 사용한 어장검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생각한 합려는 그것을 상자에 넣어 봉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이어서 우수산(牛首山) 밑에다 쇠를 전문으로 다루기 위한 성을 쌓고 수천 개의 칼을 주조하도록 명하고는 그것들을 편제(扁諸)라 명명했다. 또한 월나라의 유명한 장인 구야자(歐冶子)와 한 스승 밑에서 같이 배운 오나라 출신 간장(干將)이란 장인을 얻어 오나라의 새로운 도성의 장문 근처에 살게 하고 별도로 명검을 주조하도록 했다. 간장은 즉시 천하의 명산에서 나오는 좋은 쇠만을 캐다가 하늘과 땅의 형세를 살펴 길일을 신중하게 택한 후에 쇳물을 만들려고 하자 이 장관을 천지의 온갖 신령들이 내려와 구경했다. 불을 때기 위해서 준비한 숯은 산을 이루었고 동남동녀들을 300명이나 모아 숯에 불을 피워 풀무를 돌리도록 했다. 불을 계속해서 석 달이나 때도록 했으나 금철(金鐵)은 녹지 않았다. 간장은 금철이 녹지 않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의 처 막야(莫邪)가 간장에게 말했다.

「무릇 신령스러운 물건이란 반드시 사람의 기를 받아야만 만들어 질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 당신이 칼을 만들기 위해 석 달을 계속해서 풀무를 돌렸지만 아직까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사람의 기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옛날에 나의 스승이 쇠에 불을 땠으나 녹지 않자 부부가 화로에 같이 들어가 몸을 바친 결과 신물(神物)을 얻을 수 있었소. 지금까지 산에서 쇠를 녹일 때 반드시 삼으로 꼰 띠를 머리에 두르고 풀로 엮어 만든 옷을 입고서 화로에 제사를 올리고 난 후에 불을 때야만 한다고 했소. 오늘 쇠가 녹지 않은 이유는 내가 그 제를 올리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소!」

「당신의 스승은 능히 몸을 태워 신기(神器)를 이루셨는데 우리라고 그 스승을 따라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어서 막야가 목욕을 깨끗이 한 다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손톱과 발톱을 자른 후에 동남동녀들로 하여금 화로에 풀무를 돌리게 하였다. 이윽고 화로 안은 불꽃이 작열하여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하자 막야는 화로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막야의 몸은 삽시간에 타서 없어지고 잠시 후에 화로 속의 쇠들이 녹기 시작하여 이윽고 모두 쇳물로 변했다. 간장이 즉시 쇳물을 부어 두 자루의 칼을 만들었다. 만든 순서에 따라 먼저 만든 것을 양이라 하여 이름을 간장이라 하고 나중에 만든 것은 음이라 하여 이름을 막야라고 지었다. 간장검에는 거북이 문양을 새기고 막야검에는 물결무늬를 넣었다. 이윽고 간장이 오왕 합려에게 간장검은 숨기고 막야검만을 가져다 바쳤다. 합려가 막야검을 시험하기 위해 돌을 내리치자 돌덩이가 둘로 갈라졌다. 오늘도 소주부(蘇州府) 내의 호구(虎邱)④라는 곳에 시검석(試劍石)이라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오왕 합려가 막야검을 시험하기 위해 자른 바위이다. 오왕이 기뻐하여 간장에게 상으로 백금을 주었다. 나중에 오왕이 간장검 한 자루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을 보내 뺏어 오라고 시켰다. 만일 간장이 나머지 한 자루의 칼을 내 놓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고 했다. 간장이 사자에게 바치기 위해 간장검을 숨겨 둔 곳에서 꺼내는 순간 검 스스로가 칼집에서 튀어나오더니 청룡으로 변했다. 이윽고 간장은 청룡을 타고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간장이 검의 신선으로 변했다고 짐작했다. 사자가 돌아와 그 일을 합려에게 고했다. 합려가 탄식해 마지않으며 이후로는 보검 막야를 더욱 귀하게 여겼다. 막야검은 오나라에 계속 있다가 나중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600여 년이 지난 서진(西晉) 왕조 때 승상 장화(張華)⑤가 밤중에 천문을 보고 있다가 북두칠성간에 붉은 색 기운이 있어 천문과 도참을 잘 아는 뇌환(雷煥)이란 사람을 불러 물었다. 뇌환이 대답했다.

「그것은 천하의 명검 정령으로써 예장군(豫章郡)⑥ 관하의 풍성(豊城)⑦을 비치고 있습니다.」

장화가 즉시 뇌환을 풍성의 현령으로 임명하여 그곳에 가서 보검을 찾도록 했다. 뇌환이 풍성의 현령으로 부임하여 옛날의 감옥자리였던 곳을 파게 하여 한 개의 돌로 된 궤를 얻었다. 그 궤의 크기는 길이가 여섯 척이 조금 넘고 넓이는 세 척이었다. 그 궤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두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이 칼들을 남창 서산의 흙으로 닦으니 칼날의 눈부신 광채가 살아났다. 두 자루의 칼 중 한 자루만 장화에게 보내고 남은 한 자루는 자기가 허리에 차고 다녔다. 장화가 그 칼을 살펴보고 말했다.

「칼에 새겨진 문양을 상세히 살펴보니 이 칼은 곧 간장검이라! 그렇다면 막야검도 같이 있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같이 보내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다 하나 신물은 결국은 합쳐져 같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에 장화와 뇌환이 연평(延平)⑧의 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강(建江)⑨을 건너던 중에 두 사람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이 칼집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더니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급히 사람을 시켜 칼을 찾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가게 했으나 그들은 단지 두 마리의 용이 갈퀴를 세우고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고 서로 쳐다보며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었다. 물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더 이상 칼을 찾지 못하고 땅위로 나왔다. 이후로 두 자루의 칼은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풍성현에 가면 검지(劍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 앞에는 흙 속에 반쯤 묻혀 있는 돌로 된 함이 있다. 사람들이 석문(石門)이라 부르고 있는 그 함은 뇌환이 간장검과 막야검을 얻은 곳이다. 이상은 두 보검에 대한 자초지종의 이야기이다. 후세 사람이 쓴 <보검명(寶劍銘)>에 다음과 같이 구절이 있다.

오산(五山)⑩의 정화와

육기(六氣)⑪의 영령을

단련하여 신검를 만들었는데

번개와 같은 빛에 서리 같이 차가웠다.

五山之精(오산지정)

六氣之英(육기지영)

煉爲神器(연위신기)

電燁霜凝(전엽상응)

파도 무늬는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새겨진 거북은 용이 승천하는 듯 했다.

쇠를 자르고 옥을 가르니

삼군을 진동시켜 위엄을 세울 수 있었다.

虹蔚波映(홍울파영)

龍藻龜文(용조귀문)

斷金切玉(단금절옥)

威動三軍(위동삼군)

5. 吴鸿扈稽(오홍호계)

- 아들을 죽여 만든 갈고리를 바쳐 상금을 받다. -

한편 오왕 합려는 보검 막야를 얻고 나서 다시 장인들을 모아 쇠갈고리를 잘 만드는 자에게는 상으로 백금을 주겠다고 했다. 많은 백성들이 갈고리를 만들어 바쳤다. 그 때 갈고리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왕이 준다는 상금에 탐을 낸 그 사람은 그의 두 아들을 죽여 피를 받아 쇠와 섞은 후에 두개의 갈고리를 만들어 오왕에게 바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 사람이 궁문으로 찾아와 상금을 달라고 했다. 오왕이 물었다.

「갈고리를 만들어 가져다 바친 사람이 너 말고 무수히 많은데 어찌 너만 유독 상을 달라고 하는가? 네가 만든 갈고리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보다 어떤 점에서 특이하게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갈고리를 만든 장인이 말했다.

「대왕의 상을 받기 위해 신은 저의 두 자식을 죽여 갈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어찌 다른 사람이 만든 갈고리와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오왕이 수많은 갈고리 중에 한 개를 잡아들고 말했다.

「네가 만들어 바친 갈고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것과 섞여 버려 그 모양이 비슷비슷하여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구나!」

갈고리의 장인이 다시 말했다.

「신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오왕의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수많은 갈고리를 가져다가 그 장인 앞에 늘어놨으나 그도 역시 구분해 낼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장인이 갈고리가 쌓여 있는 곳을 향하여 두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오홍(吳鴻)아, 호계(扈稽)야! 네 아버지가 여기 있는데 어찌하여 나타나서 대왕님께 인사를 올리지 않느냐?」

그 장인의 외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두 개의 갈고리가 갑자기 날아서 그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오왕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넌 과인 거짓을 말하지 않았구나!」

합려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백금의 상을 내리도록 하고 막야검과 함께 모두 허리에 차고 다녔다.

5. 鷹視虎步 不可親近(응시호보 불가친근)

- 매의 눈과 호랑이 걸음의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

그때 난을 피해 나라 밖으로 탈출하여 외국에 머물고 있던 백극완의 아들 백비(白嚭)는, 오나라에서 이미 중용되고 있다는 오원의 소식을 듣고 그도 즉시 오나라에 들어와 먼저 오원을 찾았다. 오원은 백비가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오나라에 온 사연을 말하자 그를 즉시 궁궐로 데리고 가서 합려를 만나게 해주었다. 합려가 백비를 보고 물었다.

「우리 오나라는 중원과는 멀리 떨어진 동해의 벽진 곳에 있소. 그대가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않고 수고스럽게 이곳 시골의 나라를 찾은 목적은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요?」

「신의 조부 백주리(伯州犁)와 백극완(伯郤宛)은두 대에 걸쳐 온힘을 다하여 초나라에 충성을 바쳤습니다. 특히 신의 부친 백극완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간신의 모함을 받아 타오르는 불길에 횡사하였습니다. 신은 목숨을 구하여 천하 사방으로 떠돌아 다녔으나 아직까지 아무 데도 몸을 맡길 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대왕의 높은 뜻과 궁벽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있던 오자서를 거두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불원천리하고 찾아와 대왕께 이 한 몸의 목숨을 의탁하고자 하오니 제가 죽고 사는 것은 오로지 대왕의 뜻에 따를 뿐이옵니다.」

합려가 듣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백비에게 대부의 벼슬을 내려 오원과 함께 오나라의 정사를 같이 맡아 보게 하였다. 오나라 대부 피리가 오원을 조용히 찾아와 물었다.

「오공께서는 어찌하여 백비라는 사람을 신뢰하여 대왕께 천거하셨습니까? 」

「초나라로부터 받은 나의 원한은 바로 백비가 갖고 있는 원한과 같습니다. 속담에‘동병상련(同病相憐)이고 동우상구(同懮相救)’라 했습니다. 놀래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은 서로 뒤를 이어 한곳에 다시 모이는 법이며 깊은 계곡의 여울물은 흘러 다시 한곳에서 합치게 되는 법입니다. 선생은 어찌하여 괴이타고 하십니까?」

「오공께서는 단지 사람의 겉만 보셨지, 그 사람의 내면은 보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백비의 관상을 보니 매의 눈에다 호랑이와 같은 걸음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격은 원래 탐욕스럽고 망녕되니 공은 혼자서 가로채고 사람을 가볍게 죽일 상입니다. 결코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를 중용 했다가는 후에 공은 필시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원은 피리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후세의 사람이 피리가 오원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다시 백비의 망령됨을 갈파한 일은, 그가 진실로 귀신 같이 관상을 보았다고 논했다. 현능했던 오원마저도 피리의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는 분명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겠다. 그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

충신과 간신을 능히 분별할 수 있었으니

피리는 진실로 관상은 귀신같이 보았던 이인이었다.

자서로 하여금 백비에 대해 방비하도록 했다면

어찌 미록이 소대에 뛰어놀게 내버려두었겠는가?

知能忠勇辨奸回(지능충용판간회)

神相如離亦異哉(신상여리역이재)

若使子胥能預策(약사자오능예책)

豈容麋鹿到蘇臺(개용미록도소대)

6. 一身是膽(일신시담)

- 온 몸이 간덩어리로 이루어진 장사 요리 -

한편 애성(艾城)⑫으로 도망친 공자 경기는 자객들을 모으고 이웃 나라들과도 연락을 취하면서 오왕을 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때가 오면 오나라로 쳐들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오왕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합려가 경기의 소식을 듣고 오원을 불러 말했다.

「옛날 전제를 얻어 대사를 이룰 수 있었음은 전적으로 경의 힘이었소. 지금 도망간 왕료의 아들 경기가 오나라의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내가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르고 그저 좌불안석이오! 경은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써 주기 바라오!」

「신이 왕을 성심성의로 받들지 못하여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다가 대왕과 함께 왕료를 사가에 유인하여 죽였습니다. 오늘 다시 그의 아들마저 죽인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는 일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입니다.」

「옛날에 주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죽이고 다시 주공이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살해했으나 주나라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 일은 하늘의 뜻을 저버린 행위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따른 결과였소. 경기가 살아 있음은 그의 아비 왕료가 아직 죽지 않은 것과 같소. 과인은 경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하고 있거늘 어찌 조그만 인정 때문에 화근이 커다랗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 있단 말이오? 과인이 다시 한 번 전제와 같은 사람을 얻어 경기를 죽일 수만 있다면 후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오. 경이 오래 전부터 지혜와 용기를 갖춘 재사들을 찾아다니고 있음은 과인도 익히 알고 있소. 아마도 경은 이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이미 찾아 놓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오!」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신이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체구가 매우 작고 연약하게 생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면 일을 한 번 맡겨 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기는 만부부당의 용사인데 어찌 체구가 작고 연약한 사람이 그를 도모할 수 있겠소?」

「그가 비록 체구가 작아 연약하게 생긴 사람이긴 하지만 실은 만인을 대적할 만한 용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란 말이오? 경은 어떻게 하여 그가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내가 불러 시험해 볼 수 있도록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 바라오!」

오원은 그 사람의 성명과 알게 된 내력을 합려에게 상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오원의 이야기는 마치 다음 시에서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니 화악산이 요동치고

말을 마치니 강수의 물이 거꾸로 흐르는 도다!

단지 오자서의 천거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요리라는 이름이 춘추에 전하게 되었다.

說時華嶽山搖動(설시화악산요동)

話到長江水逆流(화도장강수역류)

只爲子胥能擧荐(지위자서능거천)

要離姓字播春秋(요리성자파춘추)

오자서가 합려에게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성은 요(要)이고 이름은 리(離)라 하며 오나라 출생입니다. 옛날에 그가 초구흔(椒邱訢)이라는 장사를 욕보이는 장면을 제가 우연히 보고, 그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구흔은 어떤 사람이고 요리가 그를 어떻게 욕 보였소?」

「초구흔이라는 사람은 동해의 토인인데 오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던 친구 한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초구흔이 친구의 문상을 위해 오나라에 오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원이 이어서 요리가 초구흔을 욕을 보인 일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초구흔이 탄 수레가 회수를 건너는 나루에 이르자 수레를 끌던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하였다. 나루를 지키던 관리가 초구흔을 보며 말했다.

「강물 속에 물귀신이 있는데 말을 보기만 하면 나와서 잡아갑니다. 이 강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지 마시오!」

「천하장사인 내가 여기 있는데 어떤 놈의 귀신이 감히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한단 말인가?」

초구흔은 즉시 종자를 시켜 수레에서 말을 풀게 하여 나루에 끌고 가서 물을 먹이게 했다. 말이 울음소리를 한번 내더니 물속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나루를 지키는 관리가 소리쳤다.

「물귀신이 말을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초구흔이 대노하여 옷을 벗어 던지며 칼을 입에 물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 말을 물고 가던 물귀신을 따라가서 싸움을 걸었다. 물귀신이 파도를 일으켜 공격했지만 초구흔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초구흔은 3일 밤낮을 계속해서 물속에서 물귀신과 싸우다가 드디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초고흔은 물귀신과의 싸움에서 한쪽 눈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는 그로 인하여 애꾸눈이 되었다. 친구의 빈소에 당도한 초구흔은 문상객들의 자리에 앉아 그가 물귀신과 싸움을 벌였다는 용기를 과시하며 사대부들의 위에 서서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그 말투가 불손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초구흔의 맞은편에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던 요리가 초구흔의 안하무인격인 행태를 보고 분개하더니 곧이어 말했다.

「사대부들에게 예의를 갖출지도 모르고 오만하게 구는 너 같은 자가 어찌 용사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나는 용사란 싸움을 할 때는 하루 종일 싸우고도 얼굴에 아무런 기색을 띄우지 않아야 하며, 귀신과 싸울 때는 그 행동이 번개와 같아야 하고, 사람과 싸울 때는 흰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다. 또한 설사 죽을지언정 욕을 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용사의 도리라고 들었다. 오늘 네가 귀신과 물속에서 싸우다가 말을 잃어버리고도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고 또한 한쪽 눈을 잃은 치욕을 입어 몸은 상하고 이름에 욕됨을 받았으니 이제 이미 죽은 목숨과 다름이 없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여태껏 목숨에 연연하고 있으니 이것은 천지간에 무용지물이라! 사람을 대할 때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거늘 오히려 선비들을 오만하게 대하는가?」

초구흔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요리에게서 욕을 먹었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요리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내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내가 오늘 상가집에 들렸다가 초구흔이라는 용사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욕을 보였소. 그가 나에게 원한을 품고 나갔으니 오늘밤에 그 치욕을 갚으러 필시 나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 올 것이오. 나는 침실의 침상에 누워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절대 문을 잠그지 말고 활짝 열어 놓으시오.」

요리의 용기를 잘 알고 있는 그의 처는 요리가 시키는 대로 행했다. 초구흔이 과연 그날 밤 예리한 비수를 들고 요리의 집으로 달려 와서 보니 대문과 집안의 방문도 다 활짝 열려 있었다. 초구흔이 거침없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한 사람이 침상 위에서 손을 늘어뜨리고 머리를 풀고서 창문을 향하여 누워 있었다. 초구흔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요리였다. 초구흔이 다가가는 소리를 듣고도 요리는 침대 위에 누워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전혀 두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초구흔이 칼을 손에 쥐고 요리의 목을 겨누고 말했다.

「너는 내 손에 죽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모른다.」

「너는 사대부가의 초상집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를 욕보였다. 이것이 네가 죽어야 할 첫 번째 이유다. 너는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면서도 집의 대문을 잠그지 않았으니 두 번째 이유다. 다시 나를 보고도 일어나서 도망가지 않았으니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네가 스스로 명을 재촉했으니 죽더라도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나는 내가 죽어야 할 세 가지 죄를 모르겠다만 너는 마땅히 부끄러워야 할 세 가지 불초를 알고 있는가?」

「모른다.」

「내가 너를 수많은 사람 앞에서 욕을 보였건만 너는 단 한마디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것이 네가 못난 첫 번째이다. 사람이 남의 집에 들어 올 때 기척을 해야 함에도 너는 한 마리 쥐새끼처럼 몰래 침입하고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사람을 몰래 죽이려고 했으니 그것이 네가 못난 두 번째다. 칼을 들어 나의 목을 겨누면서 입으로는 여전히 큰 소리만 치고 있으니 이것이 네가 못난 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세 번째다. 너는 그렇게 못난 놈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고 있으니 어찌 너 같은 비열한 자가 있단 말인가?」

요리의 말이 끝나자 초구흔이 즉시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거두며 한탄의 말을 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세상에 견줄 자가 없는 용사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요리의 용기가 나의 위에 있어 진실로 천하의 진정한 용사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만약 요리를 죽인다면 나는 천하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되고 또한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역시 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할 것이다.」

초구흔이 말을 마치더니 칼을 방바닥에 던져 버리고 스스로 머리를 창문에 부딪쳐 죽어 버렸다.』

7. 妻子戮焚 貪名要離 (처자육분 탐명요리)

- 명예를 탐하여 처자를 죽이고 불에 태운 자객 요리

초구흔과 요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오왕에게 상세하게 말한 오자서는 말을 이었다.

「신도 초상집에서 요리가 초구흔을 욕보일 때 그 곁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제가 두 사람의 일을 상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요리의 용기가 만인의 위에 있다고 할 수 없겠습니까?」

「경은 나를 위해 그를 불러 주기 바라오.」

오원이 즉시 요리를 찾아가 오왕의 명을 전했다.

「오왕께서 그대의 높은 의기를 전해 듣고 한번 접견하기를 원하고 있소!」

요리가 듣고 놀라 물었다.

「나는 오나라의 한갓 미천한 일개 소백성에 불과할 뿐인데 내가 무슨 덕이 있다고 감히 오왕의 부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원이 다시 한 번 요리에게 오왕이 보고 싶다는 뜻을 간절히 전하자 요리가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오원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요리가 오도에 당도하자 곧바로 입궁하여 오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합려는 처음에 요리의 용기를 칭찬한 오원의 말을 듣고 요리는 필시 비상하게 장대한 체구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요리를 보니 그의 신체가 겨우 오 척 남짓 밖에 되지 않고 허리의 둘레는 나무 한 단 묶어 놓은 것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생김새는 매우 추하고 신분이 비천한 자여서 크게 실망하여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했다. 합려가 요리를 향해 말했다.

「오자서 장군이 용사라고 찬탄한 요리라는 사람이 바로 그대인가?」

「신은 몸이 왜소하여 힘이 약하여 바람이 앞에서 불면 뒤로 넘어지고 뒤에서 불면 앞으로 엎어지는데 어찌 용사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왕께서 신을 보내신다면 제가 어찌 감히 미력한 힘이나마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합려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합려의 마음을 헤아린 오자서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무릇 좋은 말이란 그 체격이 우람하다고 해서 양마라고 하지 않습니다. 말이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거운 짐을 싣고 능히 멀리 까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리의 생김새는 비록 추하고 그 지위는 낮다 할지라도 그의 지혜는 매우 뛰어나서 이 사람이 아니면 일을 이룰 수가 없으니 대왕께서는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합려는 그때서야 요리를 데리고 후궁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게 하였다. 요리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대왕의 마음속에 있는 근심거리는 죽은 전왕의 아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까? 신이 그를 죽여 대왕의 근심을 없애 드릴까 합니다.」

합려가 웃으면서 말했다.

「공자 경기는 기골이 장대하고 몸은 날렵하여 하늘을 날을 수 있으며, 그가 뛰면 말도 따라 잡지 못하여 민첩하기가 마치 귀신과 같은 자다. 또한 그의 힘은 만 사람도 당할 수 없는 용사인데 그대가 어찌 경기를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잘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지혜에 있지 강한 힘에 있는 법이 아닙니다. 신이 능히 경기 공자의 곁에 접근하여 칼로 그를 찔러 죽이는 일은 마치 닭 한 마리 잡는 것과 같이 쉬운 일입니다.」

「경기는 현명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며 사방의 망명객들을 모아 그의 곁에 두고 있는데 어찌 그가 오나라에서 온 사람을 쉽게 믿어 그대를 곁에 두겠는가?」

「경기가 천하의 망명객들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장차 오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이 거짓으로 오나라에서 죄를 지었다고 대왕께서는 저의 처자를 죽이고 신의 오른 팔을 자르신다면 경기는 필시 신을 믿고 그의 곁에 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기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합려가 얼굴색을 바꾸어 불쾌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지은 죄가 없는데 내가 어찌 그와 같은 처참한 짓을 그대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

「처자와 같이 지내는 즐거움을 추구하여, 군주를 모시는 의로운 일에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충이라 합니다. 또한 집안의 일을 소중히 여겨 군주의 마음 속 근심을 없앨 수 없다면 이는 불의라 합니다. 신이 충성스럽고 의로운 사람이란 이름을 얻을 수 있으니 비록 온 집안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원이 곁에 있다가 나와서 말했다.

「요리가 나라를 위해 자기 집안을 버리고 그 주군을 위해 그 몸을 버리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진실로 만고의 호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요리가 일을 이룬 후에 그의 처와 가속들을 위해 정문을 세우고 그의 공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여 그의 이름을 후세에 드높일 수 있게 해 준다면 그로써 족할 것입니다.」

합려가 이윽고 허락했다. 다음날 오원이 요리와 같이 입조하여 군사를 청하여 초나라 정벌을 요청한 후에 요리를 정벌군의 장군으로 천거했다. 합려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과인이 요리라는 위인을 보니 한낱 일 개 어린아이의 신체에 불과한데 어찌 초나라를 정벌할 임무를 맡길 수 있겠는가? 하물며 과인이 이제야 가까스로 나라를 안정시켰는데 어찌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요리가 앞으로 나와 합려를 향해 말했다.

「대왕은 어질지 못하십니다! 자서는 왕을 위하여 오나라를 안정시켰건만 대왕은 자서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줄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합려가 듣고 대노하여 말했다.

「이것은 국가의 대사인데 어찌 일개 야인 주제에 무엇을 안다고 왈가왈부 하며 더욱이 조당에 나와 질책하여 과인을 여러 중신들 앞에서 욕을 보이느냐?」

합려가 좌우의 력사들에게 소리쳐 요리를 잡아 그의 오른 팔을 자르게 한 후에 옥에다 가두게 하고는 다시 사람을 보내 그의 처자를 잡아오게 하였다. 오원이 탄식하며 조당에서 물러 나왔다. 군신들은 아무도 그 연유를 몰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오원이 비밀리에 옥리에게 요리를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요리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도망쳤다. 합려가 즉시 감옥에 갇혀 있던 그의 자식과 아내를 죽여서 그 시체를 시정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에 태웠다.

송조 때 유생이 이 일에 대해 논하기를 ‘무고한 왕료 한 사람을 죽여 왕위를 차지 한 것만도 어진 사람이라면 차마 하지 못할 짓인데 오늘 다시 아무 죄도 없는 요리의 처자까지 죽여 그의 간교한 계책을 성사시키고자 했으니 합려야말로 잔인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했다. 또한 요리는 평생에 합려에게서 아무런 은혜를 입은 적이 없는데 용협(勇俠)의 이름을 탐하여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자기의 집안을 망하게 했으니 그 역시 어찌 훌륭한 용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하며 지은 시가 있다.

오로지 일을 성사시켜 임금에 충성하고자 하여

무고한 처자를 죽게 만들고 자신도 죽었다.

이런 일을 용맹하고 충성스럽다고 자랑하지 말라!

한 없이 잔인한 오나라 사람인가 하노라!

只求成事報吾君(지구성사보오군)

妻子無辜枉殺身(처자무고왕살신)

莫向他邦夸勇烈(막향타방과용열)

殘忍害理是吳人(잔인해리시오인)

요리가 오도에서 도망쳐 오나라 국경에 이르는 동안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경기의 소재를 탐문했다. 요리는 어렵지 않게 경기가 위(衛)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리가 위나라에 가서 경기에게 접견을 청하고 받아주기를 청했으나 경기가 의심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요리가 즉시 그의 옷을 벗어 자기의 몸을 보여주었다. 경기는 요리의 한쪽 팔이 잘려 나간 모습을 보고 그때서야 비로소 믿기 시작했다. 경기가 요리에게 물었다.

「오왕이 이미 너의 처자를 죽였고 너에게는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형을 가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나를 찾아 온 이유는 어째서 인가?」

「신은 오왕이 공자의 부친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아 간 일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공자께서는 중원의 제후들과 연합하여 장차 부왕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은 목숨이나마 의탁하러 왔습니다. 신은 오나라의 사정에 밝사오니 만약에 만부부당한 용력의 공자님께서 신을 향도로 삼는다면 능히 오나라에 다시 들어가 크게는 오왕에게 부왕의 원수를 갚고 적게는 신 역시 아내와 자식들의 원한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그래도 미심쩍어 하며 깊이 믿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오나라의 사정을 정탐하러 간 심복이 돌아와서 보고 하기를, 요리의 처자가 과연 오왕에게 살해되어 그 시체가 시정에서불 태워졌다고 했다. 경기가 듣고 즉시 의심을 풀었다. 그가 요리에게 물었다.

「나는 오왕이 오자서와 백비를 책임자로 임명하여 군사들을 훈련하고 장수들을 선발한 끝에 오나라는 크게 다스려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내가 거느린 군사들은 힘이 약하고 그 수효가 보잘것없는데 어찌 능히 가슴속의 원한을 설욕할 수 있겠는가?」

「백비라는 위인은 지혜가 모자란 쓸모없는 사람인데 어찌 걱정거리가 되겠습니까? 오나라의 쓸 만한 신하는 오로지 오자서 한 사람 뿐입니다. 그는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왕과 틈이 생겨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자서는 곧 오왕이 지금까지 있게 한 은인이라 임금과 신하로써 서로 의지하고 있는 사이인데 어찌 틈이 생겼다고 말하는가?」

「공자께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계십니다. 오자서가 온힘을 다해 합려를 도운 목적은 오왕으로부터 군사를 빌려 초나라를 정벌하여 그의 부친과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초나라의 평왕과 그의 원수라 할 수 있는 비무극도 이미 죽은 반면에 합려는 오자서의 도움으로 왕위를 차지하여 부귀하게 되어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자서가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 없었던 합려는 신이 오자서를 위해 진언을 하자 분노를 일으켜 신의 한 팔을 자르고 다시 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죽여 그 시체를 저자거리에서 태워 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오자서가 어찌 마음속으로 합려를 원망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신이 다행히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자서가 주도면밀하게 힘을 써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자서가 도망치려고 하던 저에게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 이번에 그대가 오나라에서 탈출하게 되면 반드시 공자를 만나서 그가 어떤 뜻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시오. 만약 공자가 기꺼이 나로 하여금 우리 오씨 가문의 원수를 갚게 해 줄 수 있다면 원컨대 내가 안에서 내응하여 옛날 선왕을 죽인 죄를 속죄할까 하오!’

공자께서 이번 기회를 타서 군사를 동원하여 오나라에 들어가시지 않으신다면 그 사이에 자서와 합려가 다시 가까워지게 되어 신과 공자님의 원수를 갚을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요리가 말을 마치자 목 놓아 큰소리로 울면서 머리를 기둥에다 부딪쳐 죽으려는 시늉을 하였다. 경기가 급히 요리를 제지하며 말했다.

「내가 그대의 말을 따르리라!」

경기가 즉시 요리와 같이 애성으로 다시 가서 요리를 심복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사졸들을 훈련시키게 하고 출전할 때 타고 갈 배들을 수선하게 했다. 이윽고 사졸들을 훈련시킨지 석 달이 되자 배를 띄워 수수(修水)의 수로를 타고 출병하여 오나라를 기습하려고 하였다. 경기와 요리가 같은 배에 타고 진군하여 그들의 일행이 파양호(鄱陽湖)를 빠져 나와 장강의 흐름을 타고 그 중류에 이르렀을 때 뒤따라오던 배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리가 경기를 향하여 말했다.

「공자께서 뱃머리에 친히 자리를 잡고 앉아 계시면서 지휘하시면 뱃사람들이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노를 저을 것입니다.」

경기가 뱃머리로 와서 자리를 잡고 앉자 요리가 한 손으로 자루가 짧은 창을 들고 경기의 옆에 섰다. 갑자기 강 가운데서 일진광풍이 불자 요리가 몸을 돌려 바람을 향하여 선 다음 그 바람의 세를 이용하여 창을 들어 경기를 찌르자 그 창은 경기의 심장을 꿰뚫고 등 뒤로 튀어 나왔다. 경기가 손으로 요리의 몸을 거꾸로 들고 그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꺼내기를 세 번에 걸쳐 하다가, 다시 요리의 작은 몸을 가슴에 품더니 무릎 위에 앉히고 웃음 띤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천하에 어찌 이와 같은 용사가 있단 말인가? 어찌 감히 나를 창으로 찌를 수 있단 말인가? 」

경기의 좌우에서 경기를 호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요리를 찔러 죽이려고 과와 극을 들고 달려들자 그가 손을 들어 말리면서 말했다.

「이 사람은 천하의 진정한 용사로다! 어찌 하루 동안에 천하의 용사가 둘이나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이어서 좌우의 무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요리를 죽이지 말고 그를 놓아주어 오나라에 돌아가게 해서 그의 충성을 기릴 수 있도록 하라!」

말을 마친 경기가 요리를 그의 무릎에서 밀어낸 다음 가슴에 꽂혀 있던 창을 뽑아냈다. 이윽고 경기는 마치 강물처럼 피를 쏟고 숨을 거두었다.

<제 75회로 계속>

주석

①고소산(姑蘇山) :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蘇州市) 서남에 있는 산 이름으로 산 위에 고소대(姑蘇臺)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②팔풍(八風) :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서 구분한 여덟 가지의 바람 즉 北 :寒風, 北西 :麗風, 西 :醪風, 西南 :涼風, 南 :巨風, 東南 :惠風, 東 :條風, 東北 :炎風

③팔총(八聰) :

④호구(虎邱) : 지금의 소주시 교외의 서북쪽에 있는 호구진(虎丘鎭)을 말한다. 소주시를 상징하는 호구탑(虎丘塔), 합려의 묘, 손무정(孫武亭), 검지(劍池), 시검석(試劍石) 등의 유적이 있다.

⑤장화(張華) : 서진(西晉) 때의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로 서기 232년에 태어나서 300년에 죽었다. 자는 무선(茂先)이고 하북성 출신이다. 위(魏)나라 초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고 정권이 사마염(司馬炎)으로 넘어가자 그가 세운 서진(西晉)을 섬겼다. 오(吳)나라 토벌에 공을 세워 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르고 장무군공(壯武郡公)에 봉해졌으나 서기 299년 팔왕(八王) 란에 조왕(趙王) 사마윤(司馬倫)과 연루되어 그 일족과 함께 살해되었다. 시문에 능했고 저서로는 박물지(博物志)가 있는데 천하의 이문(異聞)과 신선(神仙) 및 고대 일화 등을 모았다. 10권으로 되어 있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집에는 많은 책 외에 다른 재산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⑥예장군(豫章郡) :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성도(省都)인 남창시(南昌市) 일대

⑦풍성(豊城) : 지금도 강소성 남창시(南昌市) 남쪽 약 50키로 되는 곳에 풍성현(豊城縣)이라고 있음.

⑧연평(延平) : 현 복건성(福建省) 남평(南平)을 말하며 복건성의 서북쪽에서 동쪽의 복주로 흐르는 민강(閩江)이 이곳을 지난다.

⑨건강(建江) : 지금의 복건성(福建省)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는 민강(閩江)의 명나라 때 이름

⑩오산(五山) : 동서남북의 산과 중악(中嶽)을 합한 중국의 명산. 동악(東嶽)은 산동성의 태산(泰山), 서악(西嶽)은 섬서성의 화산(華山), 북악(北嶽)은 항산(恒山), 남악(南嶽)은 호남성의 형산(衡山), 중악은 하남성의 숭산(嵩山)을 가리킴.

⑪육기(六氣) : 하늘과 땅의 천지(天地)와 동서남북(東西南北) 여섯 방향의 기운

⑫애성(艾城) : 현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수수현(修水縣) 서쪽 20키로에 있던 고을로 호북, 호남, 강서 세 성의 접경지역에 있다. 수수는 호남성과의 접경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파양호(鄱陽湖)로 흘러 들어간다.

[평설] 민심은 거슬릴 수 없다.

음모와 간교한 계략을 행하여 충신을 해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결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사람은 일시적으로 나쁜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었지만 결과는 항상 좋게 끝나지 않는 법이다.

아첨배 비무극(費無極)은 초평왕의 총애를 이용하여 계속적으로 일련의 수작들을 행했다. 채평공의 서자 동국(東國)이 평공의 적자 주(朱)의 군주 자리를 빼앗기 위해 비무극에게 뇌물을 바쳤다. 이에 비무극은 그를 위해 힘을 다해 돕다가 채나라의 충신 조오(朝吳)의 방해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그를 모함하여 채나라에서 추방시켰다. 그런 후에 다시 초왕의 명을 사칭하여 채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주를 군주의 자리로부터 끌어내리고 동국을 대신 앉히게 했다. 태자건은 그의 부친 초평왕의 꽁무니에 숨어서 알짱대며 마치 기생충 같이 기생하여 온갖 나쁜 꾀를 내는 비무극을 대단히 혐오했다. 자기를 노리고 있는 태자건의 시선을 의식한 비무극은 적극적으로 초평왕과 태자의 부자지간을 이간질해서 소원하게 만들었다. 특히 나쁜 것은 비무극이 마침내 태자건의 부인으로 데려온 며느리를 그 부왕으로 하여금 빼앗게 함으로 해서 태자가 어쩔 수 없이 초나라 도성을 떠나게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비무극은 태자건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태자건은 어쩔 수 없이 초나라에서 도망쳐 결국은 외국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태자건의 태부(太傅)였던 오사가 대신 태자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생각한 나머지 오사와 그의 큰아들인 오상(伍尙)을 영도(郢都)로 소환해 죽였다. 이윽고 초평왕이 죽고 그 뒤를 소왕(昭王)이 뒤를 이었으나 비무극은 여전히 초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 했다.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백극완에게 소왕이 상으로 무기와 갑옷을 상으로 내리자, 이를 크게 시기한 비무극이 다시 극완을 모함했다. 그는 소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영윤 낭와(囊瓦)에게 먼저 가서 극완이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자기에게 맡겨 주면 극완의 집을 방문하여 낭와 초대에 응할지의 여부를 대신 살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극완에게 가서는 영윤이 그의 집에 들려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고 말하면서 그 초대 건에 대해서 자기에게 맡겨 주면 주선하겠다고 했다. 극완이 그러겠다고 하자 비무극은 그에게 영윤은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들을 살펴보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왕에게서 상으로 받은 갑옷과 병기들을 모두 전시하여 낭와에게 보여주면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이윽고 낭와가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극완의 집으로 가려고 할 때, 비무극은 그에게 아무래도 연회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극완이 연회를 연 목적은 아마도 영윤을 해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했다. 낭와가 믿지 않자 그는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극완이 영윤의 자리를 탐내어 아무도 몰래 오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낭와가 반신반의하면서 사람을 보내 살펴보라고 했다. 과연 극완의 집에는 정말로 갑옷과 병기로 가득차서 분위기가 살벌했다. 낭와가 대노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극완의 집을 공격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비무극이 쳐 논 함정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된 극완은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비무극이 사용했던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충직한 사람들을 모함했던 수법은 그 후에도 간사하고 망녕된 자들이 물려받아 늘상 사용한 전형적인 방법이다.

‘공론(公論)과 공심(公心)은 항상 백성들에게 있다.’는 말과 같이 초나라 백성들은 극완이 어진 신하임에도 낭와에게 피살되자 그를 위해 노래를 지어 그의 원혼을 달래고 가가호호마다 향불을 피워 제사를 지냈다. 낭와가 백성들의 그러한 마음을 읽고 기원전 515년 드디어 희대의 간신 비무극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백성들이 그 소식을 접하자, 집집마다 장정들이 뛰어나와 힘을 합하여 비무극의 저택으로 달려가 불을 지르고 그 종족들을 멸족시켰다. 비무극은 그가 저지른 간악한 행동에 대해 징벌을 받고 마침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민심에 반한 행동이냐, 민심에 따르는 행동이냐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백성들이나 국민들임은 동서고금에 걸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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