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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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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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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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29:314566 
제77회. 泣庭借兵(읍정차병) 退吳返國(퇴오반국)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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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7회 泣庭借兵 退吳返國(읍정차병 퇴오반국)

칠주야를 눈물로 호소하여 군사를 빌린 신포서와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찾은 초소왕

1. 報漁丈人之恩(보어장인지은)

- 정나라를 용서하여 어장인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다. -

오원이 수나라의 남쪽 국경에 군사들을 이끌고 주둔하고 있으면서 편지를 써서 수나라 군주에게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주나라 왕실의 자손으로써 한수 부근에 있던 거의 모든 나라는 초나라에 의해 병탄 되었습니다. 오늘 하늘이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 임금에게 그 죄를 묻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초왕 진(珍)을 잡아 바친다면 우리 오나라와는 우호를 맺고 한수 부근의 땅은 모두 수나라의 차지가 되고 우리 오왕과는 대대로 형제의 의를 지키면서 같이 주나라 왕실을 받들 것입니다.』

수나라 군주가 오원이 보낸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여러 군신들을 불러모아 상의를 하게 했다. 초나라의 자기(子期) 공자결(公子結)이 수후에게 가서 자기가 초왕과 얼굴이나 풍채가 비슷하다고 하면서 말했다.

「사태가 매우 급하니 나를 초왕으로 가장시켜 오나라 병사들에게 보내어 그 사이에 우리 왕이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후가 태사를 시켜 그 길흉을 점치게 했다. 태사가 점을 쳐서 나온 점괘를 지어 수후에게 바쳤다.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있고

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오는 길이 있다.

옛 것을 버리지 말 것이며

새 것을 탐하지 말라

서쪽나라는 호랑이가 되고

동쪽나라는 호랑이 밥이 되리라!

平必陂(평필파)

往必復(왕필복)

故勿棄(고물기)

新勿欲(실물욕)

西隣爲虎(서린위호)

東鄰爲肉(동린위육)

수후가 점괘를 읽고 말했다.

「초나라는 옛것이고 오나라는 새것이다. 귀신이 우리에게 나아 갈 길을 계시하고 있다.」

즉시 오원에게 사자를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초나라에 의지해서 지탱해 왔으며 대대로 초나라에 조공하기로 맹세한 처지라 초나라 임금이 만약 이 곳에 임한다면 우리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지금 초나라 왕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이곳에 없으니 장군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원이 낭와가 정나라에 있어 초왕도 역시 낭와를 쫓아 정나라로 간 것으로 의심했다. 또한 태자건을 살해한 정나라 군중에게 원수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오자서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행군하여 이윽고 정나라 교외를 포위했다.

그때 정나라에서는 현신 유길(游吉)이 얼마 전에 죽고 없었기 때문에 오나라 병사들이 쳐들어오자 정헌공(鄭獻公) 채(蠆)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두려움에 떨었다. 정군이 그 모든 일은 낭와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낭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백은 낭와의 시신을 오나라 진영으로 보내면서 초나라 왕은 아직 정나라에 당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오나라 군사들은 선뜻 물러가지 않고 기어이 정나라를 멸망시켜 태자건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정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성을 의지하여 죽기 살기로 일전을 하여 정나라의 존망을 정하자고 말했다. 정헌공이 듣고 말했다.

「우리 정나라 군사들과 말은 초나라의 군마들과 비교하면 어느 편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오? 우리보다 수십 배나 강한 초나라도 싸움에서 졌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조그만 나라가 어찌 오나라 병사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소?」

정백이 즉시 령을 내려 나라 안에 방을 붙이게 했다.

「능히 오나라 군사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인이 정나라를 나누어 그와 함께 다스리겠노라!」

이윽고 방을 붙인 지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그 때 마침 악저(鄂渚)①땅 어장인(漁丈人)의 아들이 오나라 군사들을 피해 도망 쳐와 정나라 도성 안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오나라 군사들의 대장이 오원임을 알게 된 그는 즉시 정백을 찾아와 알현을 청하면서 말했다.

「제가 능히 오나라 군사들을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헌공이 말했다.

「경이 오나라 군사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필요한 병거와 군사들이 얼마나 있어야 되겠소?」

어장인의 아들이 대답했다.

「신에게는 단 한 명의 군사도, 단 한 말의 양식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배 젓는 노 한 개만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메고 오나라 진영으로 가면서 노래 한 곡조만 부르면 오나라 군사들은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정백이 믿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별다른 대책이 없었음으로 할 수 없이 좌우에게 명하여 노 한 개를 가져와 어장인의 아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대의 말대로 오나라 군사들을 물러가게 할 수만 있다면 과인이 어찌 그대에게 내리는 상을 아까워하겠는가?」

어장인의 아들은 정나라 도성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곧바로 오나라 진영으로 가서 그 앞에서 들고 있던 노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갈대밭 속의 사람이여! 갈대밭 속의 사람이여!

허리에는 보검 칠성검을 차고

강을 건널 때 잊었는가?

보리밥과 생선국을!

蘆中人! 蘆中人!(노중인, 노중인)

腰間寶劍七星劍(요간보검칠성검)

不記渡江時(불기도강시)

麥飯鮑漁羹(맥반포어갱)

오나라 군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던 어장인의 아들을 붙잡아 오원에게 데리고 왔다. 그가 오원 앞에 끌려와서도 노중인(蘆中人)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다시 불렀다. 오원이 듣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 노래를 알고 있소?」

어장인의 아들이 노를 들면서 오원을 향해 말했다.

「장군께서는 저의 손에 들려 있는 노를 보시지 못하십니까? 저는 곧 악저 땅에 살았던 어장인의 아들입니다.」

오원이 듣고 마음이 측연해져서 말했다.

「그대의 부친이 나로 인해 목숨을 끊어 내가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방법을 찾지 못해 한탄하고 있었소. 오늘 다행히 그대를 만나 기쁘기 한이 없소. 그대가 노래를 불러 나를 보기를 청했으니 나에게 바라는 바가 있을 것이니 무엇이든지 말해 보기 바라오.」

어장인의 아들이 대답했다.

「달리 바라는 바는 없습니다. 단지 정나라 군주가 장군이 이끌고 온 병사들을 두려워하여 나라 안에 령을 내려 오나라 병사들을 물러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를 나누어 같이 다스리겠다고 했습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돌아가신 저의 부친께서 장군을 창졸지간에 만난 인연이 있어 오늘 장군께 정나라의 용서를 빌고자 온 것입니다.」

오원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오호라! 이 오원이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가 어장인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준 덕분이라! 하늘이 저렇게 창창한데 내가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

오원은 즉시 그날로 령을 내려 정나라 교외의 포위망을 풀고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어장인의 아들이 돌아와 정백에게 오나라 군사들이 물러갔음을 고했다. 정백이 크게 기뻐하면서 정나라 땅 중에 사방 백 리의 땅을 떼어 어장인의 아들을 그 곳에 봉했다. 정나라 백성들이 어장인의 아들을 어대부(漁大夫)라고 불렀다. 지금도 진수(溱水)와 유수(洧水)② 사이의 장인촌(丈人村)이라고 있는데 그 곳이 즉 어장인의 아들이 봉해진 땅이다. 염옹이 이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갈대 섬에서의 밀어로 생사가 갈라지고

노를 들고 크게 부르는 노래는 마치 초가와 같았다.

삼군은 이미 물러가고 봉토을 나누어 받았으니

당시 강 위에서 받은 은혜를 갚았음이라!

密語蘆洲隔死生(밀어로주격사생)

橈歌强似楚歌聲(요가강사초가성)

三軍旣散分茅土(삼군기산분모토)

不負當時江上情(불부당시강상정)

오원은 정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군사를 돌려 초나라 경계에 주둔하고는 각기 군사를 나누어 길을 지키게 하고는 본대는 미(穈)③땅에 영채를 세우게 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사방의 초나라 속국에 사신을 보내어 항복을 권하고 겸하여 초소왕의 행방을 탐문하였다.

2. 日暮途遠(일모도원)

- 해는 지는 데 갈 길은 멀구나! -

한편 신포서(申包舒)는 영도가 함락되자 몸을 피하여 이릉(夷陵)④의 석비산(石脾山) 산중으로 도망쳤다가 오자서가 평왕의 묘를 파고 시신을 꺼내어 채찍질을 하고 이어서 소왕의 행방을 찾아다니며 잡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써서 사람 편에 들려 오자서에게 보냈다. 신포서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네는 옛날 평왕을 신하의 신분으로 북면하여 모셨던 처지였으나 지금은 그의 시신에다가 칼질을 하고 욕을 보였으니 그대가 비록 원수를 갚는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모든 일은 정도가 지나치면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이네. 이에 자네는 이쯤해서 마땅히 군사를 물리쳐 돌아가가게나. 그렇지 않고 계속 초나라에 머문다면 내 마땅히 옛날 그대에게 맹세한 초나라의 복국에 대한 약속을 실천하겠네!」

오원이 신포서의 편지를 받아 읽고 나더니 반 시진 정도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음만 하더니 곧 이어 편지를 가져온 사자를 향하여 말했다.

「내가 군무에 분주하여 편지를 쓸 시간이 없다. 내가 너의 입을 빌리고자 하니 옛날 신공과 나눈 친구의 정리를 전하여 주기 바란다. ‘충효를 양전하지 못했고, 그리고 나에게는 갈 길은 먼데 해는 이미 저물어 바쁜 마음에 이렇듯 거꾸로 행하여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네!’」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신포서가 말했다.

「자서가 기어코 초나라를 멸하려는 구나! 내가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3. 泣庭借兵(읍정차병)

- 섬진의 궁궐 뜰에 엎드려 7주야를 울어 군사를 빌린 신포서 -

초평왕의 부인은 곧 진애공(秦哀公)의 누이동생이기 때문에 평왕의 아들 초소왕은 곧 애공의 생질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신포서는 섬진으로 들어가 초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병을 청해야겠다고 결심한 신포서는 그 즉시 석비산을 나와 섬진을 향해 밤낮으로 길을 달려갔다. 신포서의 발바닥은 물집이 잡히고 갈라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서 피가 흘러 길을 적시었고 옷은 찢어져 속살이 다 보이게 되었다. 2천 리 길을 쉬지 않고 걸어 마침내 섬진의 도성 옹성(雍城)에 당도한 신포서는 애공을 배알하고 말했다.

「오나라는 탐욕스럽기가 마치 돼지와 같고 악독하기가 독사와 같습니다. 오나라는 천하의 제후국들을 모두 집어삼킬 계획을 세우고 먼저 초나라부터 쳐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주군께서 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잡초만 우거진 황량한 벌판으로 몸을 피하시면서 특별히 신에게 명하여 초나라의 위급함을 상국에 고하게 했습니다. 원컨대 여동생의 아들이라는 정리를 생각하시어 일단의 군사를 내어 초나라의 위기를 구해주소서!」

「우리 섬진은 서쪽의 외딴 곳에 자리 잡은 변방의 조그만 소국이라, 군사의 수효는 적고 장수는 부족하여 스스로 지키기에도 바쁜 실정이오. 어찌 다른 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킬 수 있겠소?」

「초와 섬진은 서로 국경이 접해 있어 침략을 당한 초나라를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다가 만약 오나라가 초나라를 멸한다면 그 다음에는 필시 그 화가 섬진에 미칠 것입니다. 군주께서 초나라를 구원하여 존속케 한다면 섬진의 안위도 공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초나라를 구해 섬진의 편에 서게 한다면 어찌 오나라를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한 초나라 백성들을 위무하여 나라를 존속케 하고 제사를 끊이지 않게 한다면 초나라는 진심으로 그 덕에 감사하여 연년세세로 북면하여 신하의 예로써 섬진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애공이 주저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말했다.

「대부는 잠시 역관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기 바라오. 그 동안 내가 군신들과 상의하여 보리다.」

「우리 주군께서는 잡풀만 우거진 황량한 벌판에서 방황하며 몸 쉴 곳도 찾지 못하고 계시온데 그 신하인 제가 어찌 감히 역관에 들러 몸을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섬진의 애공은 음주에 빠져서 나라 일을 전혀 돌보지 않고 있었다. 신포서가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구원군의 파견을 청했으나 애공은 결코 군사를 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포서는 머나먼 길을 오느라 다 헤진 의관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섬진국 조정의 뜰에 엎드려 밤낮으로 목소리를 높여 통곡하여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그와 같이 7일 밤낮을 계속해서 통곡을 하면서 한 모금의 물이나 음식을 취하지 않았다. 애공이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초나라 신하가 그들 임금의 위급함을 이렇듯 간절하게 생각한단 말인가? 초나라에는 아직도 이와 같은 현신이 있음에도 오나라가 여전히 초나라를 멸하려고 하는구나! 과인에게는 저와 같은 현명한 신하조차 없으니 오나라가 초나라를 멸한 후에 우리나라로 쳐들어온다면 어찌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애공이 눈물을 흘리며 <무의(舞衣)>⑥라는 시를 지어 싸움터에 들고 나갈 깃발에 쓰게 하였다.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그대와 같이 입으리라!

내가 군사를 일으킬 테니

그대와 함께 원수를 무찌르리라!

豈曰無衣(개왈무의)

與子同袍(여자동포)

王于興師(왕우흥사)

與子同仇(여자동구)

신포서가 애공에게 머리를 조아려 감사의 말을 올리고 나서야 가져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섬진의 애공은 자포(子蒱)를 대장으로 자호(子虎)를 부장으로 삼아 전차 5백 승을 이끌고 신포서를 따라가서 초나라를 구하라고 명하였다. 신포서가 자포와 자호에게 말했다.

「우리 임금이 지금 수나라에 있으면서 구원군을 기다리기를 마치 큰 가뭄 뒤에 한 줄기 비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고 계십니다. 이 포서가 먼저 한 걸음에 우리 임금이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 이 일을 알려야 되겠습니다. 원수들께서는 우선 상(商)⑦과 곡(穀)⑧ 두 땅을 경유하시어 동쪽으로 나아가시면 5일이면 양양(襄陽)⑨에 이르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행군로를 남쪽으로 꺾으면 바로 형초(荊楚)에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포서는 남아있는 초나라 군사들을 끌어 모아 석량산(石梁山) 남쪽으로 나오겠습니다. 생각하건대 지금부터 두 달 후면 원수의 부대와 그곳에서 합류하겠습니다. 지금 오나라 병사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필시 아무런 방비도 세우지 않고 또한 그들이 자기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들의 일부 군사들만이라도 파할 수만 있다면 오나라 군사들은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자포가 듣고 말했다.

「우리는 초나라로 들어가는 빠른 길은 모르고 있으니 필시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대부께서는 절대 우리와 약속한 기일을 어기지 마십시오.」

4. 楚秦聯軍 打敗吳師(초진연군 타패오사)

- 초진 연합군이 오군을 격파하다. -

신포서가 섬진의 장수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밤낮으로 말을 달려 수나라로 들어가서 소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소신이 섬진에 가서 구원군을 청해 얻었습니다. 섬진군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미 출병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소왕이 뛸 듯이 기뻐하며 옆에 있던 수후를 보고 말했다.

「태사의 점괘에 ‘서쪽에 있는 나라가 호랑이로 변하여 동쪽의 나라를 먹이로 삼는다’라고 했는데, 과연 섬진은 우리의 서쪽에 있고 오나라는 동쪽에 있어 그 점괘가 신통히 맞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원연(薳延), 송목(宋木) 등의 장수들도 역시 초나라의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소왕을 찾아 수나라에 속속 당도했다. 자서(子西) 공자신(公子申)과 자기(子期) 공자결(公子結)이 초나라 군사들을 재정비한 후에 수나라를 떠나 남진하고 있던 섬진의 구원군가 합류하기 위해 일제히 출진했다. 이윽고 섬진군이 양양에 당도하여 그곳에다 진영을 세우고 주둔하면서 초나라의 군사들을 기다렸다. 신포서는 자서(子西)․자기(子期)와 함께 섬진의 장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양양 땅에 당도했다. 두 나라 군사들이 서로 만나 진용을 새로 짠 후에 초군이 앞서고 섬진군이 뒤를 따라 초나라 경계로 진군했다. 이윽고 두 나라 연합군이 기수(沂水)에 이르자 합려의 동생 부개가 이끄는 일단의 오나라 군사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섬진군의 대장 자포가 신포서에게 말했다.

「대부께서 먼저 초군을 이끌고 오군과 전투를 벌리면 우리는 마땅히 오군의 배후를 공격하겠소!」

신포서가 출전하여 부개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몇 합을 겨루었다. 자기의 용기를 과신한 부개는 신포서가 별도의 대비책을 세워두고 있는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계속해서 십여 합을 겨루었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자포와 자호가 섬진의 군사들을 휘몰아 오나라 본군을 향하여 대거 엄습해 왔다. 부개가 싸움을 하다가 자기의 본진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새로운 부대의 깃발에 진(秦)이라는 글자를 발견하자 크게 놀라 말했다.

「서쪽의 섬진군이 어찌하여 이곳까지 올 수 있단 말인가?」

부개가 놀라 마음이 황망해진 나머지 군사를 거두는 과정에서 그의 군사들은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태반이 꺾였다. 자서와 자기는 크 틈을 타서 반격을 가하여 도망치는 오나라 군사들을 추격하여 50리를 전진하고서야 추격을 멈추었다. 부개가 도망쳐 영도에 돌아와 합려를 뵙고 정예한 섬진군에 대항해 싸움을 계속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합려가 두려운 빛을 띄우자 손무가 앞으로 나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군사들이란 곧 흉기라, 잠시 동안은 쓸 수 있으나 오래 사용하면 오히려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치는 법입니다. 한편 우리가 평정하지 못한 초나라의 땅은 아직도 넓고 초나라 백성들의 인심도 얻지 못하여 신이 일전에 대왕께 초나라 공자 미승을 불러와 초나라 백성들을 위무하자고 청한 것은 바로 이런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사자를 섬진으로 보내 그들과 통호를 한 후에 초왕을 불러들여 왕위를 돌려주는 대가로 초나라의 동쪽 땅을 떼어 오나라 땅으로 만들어 영토를 넓히면 대왕께서 얻는 이익도 역시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초나라 궁궐의 호사스러움에 연연하여 그들과 오랫동안 대치하다가는 초나라 백성들이 분기탱천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들게 되고 또한 우리 오나라 군사들은 승리에 취하여 교만한 끝에 타성에 젖게 될 것이며, 이어서 호랑이나 늑대와 같이 용맹스러운 섬진의 군사들까지 가세하여 우리 오나라를 공격해 온다면 저로써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니 부디 이점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원도 역시 결코 초나라 왕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손무의 계책이 옳다고 생각했다. 합려가 손무의 계책을 따르려 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백비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우리 오나라 군사들은 멀고먼 동오에서 출발하여 단숨에 파죽지세로 달려와 다섯 번의 싸움 끝에 초나라의 도성인 영성을 함락시켜 그들의 사직을 없애 버렸습니다. 오늘 섬진의 군사를 한번 만나 싸워 졌다고 해서 즉시 군사를 물리치려 하니 어찌하여 예전에는 그렇게 용맹스러운 오나라 군사들이 지금은 이렇듯 겁이 많게 되었습니까? 원컨대 소신에게 군사 일만 명만 내어 주신다면 제가 필히 섬진의 군사들 단 한 명도 그들의 나라에 돌아갈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기꺼이 군령을 받겠습니다.」

합려가 백비의 말을 장하게 여겨 백비에게 군사를 주어 섬진의 군사를 막으라고 했다.

손무와 오원은 섬진의 군사들과 싸우면 안 된다고 한사코 말렸지만 백비는 듣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영성을 떠났다. 두 나라 군사들이 군상(軍祥)이라는 곳에서 조우하여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적군의 대오가 산만하고 정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 백비가 즉시 북소리를 크게 울리라고 명하고 병거를 몰아 적진 속으로 돌입하였다. 초군의 진두에 있던 자서를 보자 백비가 소리쳤다.

「너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여 달아났던 놈인데 아직도 차갑게 식어 버린 잿더미 속에서 불씨를 찾아내어 불을 지피려고 하느냐?」

자서도 역시 백비를 보자 큰 소리를 대꾸했다.

「나라를 배반한 반역자 놈이 무슨 낯짝으로 이곳을 찾아 왔느냐?」

백비가 듣고 대노하여 극을 비껴들고 자서에게 달려들었다. 자서 역시 들고 있던 과를 휘두르며 백비의 공격에 대항하였다. 두 사람이 몇 합도 싸우기 전에 자서가 거짓 못 이기는 체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백비가 자서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미처 2리도 가기 전에 백비의 좌측에서는 심윤술의 아들 심제량(沈諸梁)이 이끄는 일군이 나타나고 우측에서는 원연의 일군이 나타나서 협공하였다. 이어서 섬진의 장수 자포와 자호가 원기가 생생한 섬진의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 진영의 정면을 향하여 곧 바로 돌입하였다. 세 방향에서 적군을 맞이하게 된 오군은 세 부대로 절단되어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백비는 섬진과 초 두 나라 연합군의 포위망 속에서 좌충우돌하였으나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오원이 이끄는 오나라의 구원군이 싸움터에 당도하여 크게 한번 공격하고 사경에 처한 백비를 구하였다. 백비가 이끌고 온 오나라의 일만 병사들은 거의 죽거나 달아나 버리고 단지 이천 명만 돌아 올 수 있었다. 백비가 스스로 죄수의 몸을 자청하고 포승줄에 묶이어 오왕 앞으로 나가 대죄하였다. 손무가 오원에게 말했다.

「백비라는 위인은 공이 있음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이니 후일에 필시 오나라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번의 패전을 이유로 군령에 따라 그를 참하여 후환을 없애십시오.」

「그가 비록 군사를 잃은 죄를 지었다고 하나 옛날에 세운 공이 적지 않고 또한 적군을 눈앞에 두고 우리의 대장 한 사람을 참할 수는 없습니다.」

오원이 곧이어 오왕에게 백비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 사이에 섬진과 초 두 나라 연합군은 계속 진군하여 영성 부근에 당도하여 진채를 세웠다. 합려가 부개에게 명하여 공자산과 함께 영성을 수비하라 하고 자기는 대군을 이끌고 영성에서 나와 기남성(紀南城)에 주둔했다. 이어서 오원과 백비에게는 각각 마성과 려성에 나누어 주둔하게 하여 두 사람이 서로 기각지세를 이루어 섬진군의 공격에 대비하도록 명을 내린 합려는 사자를 당과 채 두 나라에 보내 지원군을 보내라고 청했다. 초나라 장수 자서가 섬진의 대장 자포에게 말했다.

「오나라 병사들이 우리 영성을 그들의 소굴로 삼고 견고한 성벽에 의지하여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만약 당과 채 두 나라의 지원군이 당도한다면 우리는 세 나라의 협공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이 틈을 이용하여 당나라에 군사를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여 멸한다면 채나라는 필시 두려워하여 스스로 지키기에 급급하게 되어 우리는 오나라 군사들을 향해 전력을 기우릴 수 있습니다.」

자서의 말을 옳다고 여긴 자포는 섬진의 군사를 나누어 자기에게 주어 당나라를 습격하게 했다. 자기는 당나라를 공격하여 당성공을 잡아 죽였다. 당나라는 이로써 망하고 사직이 끊겼다. 당성공이 잡혀 죽고 당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채소후(蔡昭侯)는 두려움에 떨어 감히 군사를 내어 오나라를 돕지 못했다.

한편 초나라 군사를 파하는데 일등의 공을 세웠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던 부개는 기수에서 섬진과의 일전에서 패전했다고 영성을 지키라는 합려의 명령을 받고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합려가 이끄는 오군이 섬진군과 승부를 결하지 못하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자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혼자 생각했다.

「오나라의 왕위는 원래 형제끼리 전하게 되어있다. 내가 마땅히 오왕의 뒤를 이어야 되건만 지금 왕이 그의 아들 왕자 파(波)를 태자로 이미 세워 내가 왕위를 물려받기는 이미 물 건너가고 말았다. 차라리 왕이 대군을 이끌고 출병하여 국내가 텅텅 빈 이 기회를 이용하여 내가 아무도 몰래 귀국하여 왕위를 빼앗는다면 어찌 먼 후일에 왕위를 위해 서로 다투어 이기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부개가 즉시 본부의 병사들과 전차를 이끌고 영도의 동문으로 아무도 몰래 빠져나가 한수를 도하한 후에 오나라를 향하여 귀국 길에 올랐다. 부개가 후퇴하면서 거짓으로 주위의 백성들에게 알리게 했다.

「합려가 섬진의 구원병과 교전한 결과 패하여 그 행방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왕위를 잇고자 한다.」

부개는 즉시 자기 스스로 오왕이라고 자칭하고 그의 아들 부장(夫臧)을 시켜 군사를 이끌고 회수의 도하 지점에 가서 합려가 오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게 하고 자신은 오도를 향해 진군을 계속했다. 오나라 세자파와 전의는 부개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성루에 올라 성을 굳게 지켜 부개의 공격에 대비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부개는 즉시 사자를 삼강(三江)을 경유하여 월나라에 보냈다. 그는 월나라에게 오나라 도성을 같이 협공하여 일이 성사되면 오나라의 다섯 개 성을 떼어 주겠다고 설득하게 했다.

한편 섬진의 구원병이 군사를 나누어 보내 당나라를 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합려는 크게 놀라 곧 바로 오나라의 모든 장수들을 소집하여 섬진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자 했다. 그때 갑자기 공자산이 보낸 사자가 당도하여 고했다.

「부개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본부병을 이끌고 아무도 몰래 본국으로 회군했습니다.」

오원이 듣고 합려에게 말했다.

「부개가 이번에 본국으로 군사를 이끌고 회군한 이유는 필시 반심이 있어서 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부개는 일개 힘이 센 장수에 불과합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려되는 일은 월나라가 우리 오나라에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군사를 움직여 본국을 기습하는 경우입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속히 회군하시어 우선 내란을 진압하십시오」

5. 楚吳和議(초오화의)

- 강화를 맺고 초나라에서 철수하는 오군 -

합려가 손무와 오자서를 영도로 돌아가게 하여 지키게 하고 자기는 백비와 함께 수로를 이용하여 강수의 흐르는 물길을 타고 오나라 본국을 향해 출발했다. 합려의 일행이 한수를 건너자 태자파가 보낸 사자가 급보를 갖고 달려왔다.

「부개가 반역을 일으켜 왕이라 칭하고 다시 월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쳐들어와서 도성의 운명이 조석지간이 달려 있습니다.」

합려가 크게 놀라 말했다.

「모든 것이 자서가 예측한 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구나!」

합려는 즉시 사자를 영도에 보내어 손무와 오원에게 군사를 이끌고 회군하도록 하고 한편으로는 밤새도록 달려 오나라로 달려가면서 강안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왕의 유지를 전하였다.

「부개의 반란에 참여한 군사들은 그 본래의 자리에 돌아오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나중에 부개가 잡힌 연후에야 항복한 자는 모두 죽이겠다.」

회수의 도하 지점에서 합려의 귀국길을 막기 위해 부개가 남겨 두었던 오나라 군사들은 모두 창을 거꾸로 들고 달려와 항복했다. 부개의 아들 부장은 혼자가 되어 곡양(谷陽)으로 도망쳤다. 원래 부개는 백성들을 끌어 모아 갑옷을 입혀 군사의 수를 보충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합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백성들은 부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모두 산 속으로 도망가서 숨어 버렸다. 부개는 할 수 없이 자기가 데려온 본부병만을 데리고 합려와의 싸움에 나섰다. 합려가 부개를 보자 큰 소리로 외쳐 꾸짖었다.

「나는 너를 수족처럼 생각하여 너에게 의지한 바가 많았거늘 어찌하여 반역을 일으켰느냐?」

「왕료를 살해하고 왕이 된 너야말로 반역자가 아니면 누가 반역자란 말이냐?」

합려가 듣고 대노하여 백비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를 위해 저 반적을 잡아오시오!」

부개와 백비가 교봉을 몇 합도 나누기 전에 합려가 대군을 휘몰아 곧 바로 부개의 진영으로 돌진했다. 부개가 비록 용맹하다 하나 중과부적으로 합려의 군사들에게 대패하여 도망쳤다. 부개의 아들 부장이 배를 모아 회수의 강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도망쳐 온 부개와 그 군사들을 실어 날랐다. 회수를 건넌 부개와 부장은 도망쳐 송나라로 가서 몸을 의탁했다. 합려는 백성들을 위무하면서 오도에 입성했다. 태자파의 영접을 받은 합려는 오도에 입성하여 월나라의 공격에 대한 대책을 상의했다.

한편 오왕으로부터 회군하라는 조서를 받은 손무는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오원을 불렀다. 그때 갑자기 군사 한 명이 달려와 손무를 만나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던 오원에게 고했다.

「초나라 군중에서 사자가 와서 편지를 전해 왔습니다.」

오원이 군사로부터 받아 읽어보니 신포서가 보낸 편지였다.

「자네의 오나라의 군신들이 영도를 점령하여 그 곳에 주둔한지 철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나 아직 초나라의 남은 땅은 평정하지 못했다! 이것은 하늘이 아직 초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뜻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자네가 능히 초나라를 멸하겠다는 맹세를 실천하고 있다면 나 역시 초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을 실천하고 있음이라! 친구의 정리 상 서로 간에 자기의 뜻한 바를 실천하였으니 이제 여기에서 그치고 더 이상 서로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면 좋지 않겠나? 그대가 군사들을 부려 더 이상 싸우기를 그친다면 나 역시 섬진군의 도움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하겠네!」

오원이 신포서의 편지를 가지고 가서 손무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오나라의 수만 군사를 이끌고 와서 곧바로 진격하여 초나라의 종묘를 불사르고 그 사직을 부셔 버렸습니다. 또한 죽은 평왕의 시체를 찾아내어 채찍으로 때려 벌을 주었고 살아남은 초나라 군신들의 처첩들을 욕보였습니다. 옛날의 신하였던 자가 이렇듯 원수를 갚은 일은 고금을 통틀어 없는 통쾌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섬진군이 비록 우리의 군사들과 싸워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타격을 입지 않은 대부분의 군사들이 남아 있습니다. 병법에 ‘앞으로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서기는 어렵다’⑩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초나라가 우리의 다급한 처지를 모르고 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군사를 물리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물러간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장군께서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초나라에 청하여 태자건의 아들 미승을 귀국시키도록 하십시오.」

「좋은 생각이십니다.」

오원이 손무의 말을 따라 즉시 신포서의 편지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평왕이 아무 죄도 없는 그의 아들을 쫓아내고 또한 죄 없는 그의 신하들을 죽여 내가 실로 분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여 사태가 여기까지 진전되었네. 옛날에 제환공은 적족(狄族) 일파인 수만(瞍瞞)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 형국(邢國)을 다시 세워 주었고⑪, 섬진의 목공은 당진의 군주를 세 번이나 세울 수 있었네. 두 군주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나라의 영토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그 일로 해서 아직까지 그들의 덕이 찬양되고 있음을 자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네. 내가 비록 재주가 없으나 그들이 이웃나라에 베푼 덕은 들어 알고 있네. 오늘 태자건의 아들 미승이 오나라의 호구(餬口)⑫에 살고 있으면서 한 뼘의 땅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네. 초나라가 만약 미승을 귀국시켜 죽은 태자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면 내가 옛날부터 품어 왔던 뜻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 감히 물러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포서가 오원의 편지를 받아 읽고 나서 자서에게 보여주었다. 자서가 신포서에게 말했다.

「태자의 아들을 불러서 초나라의 한 고을을 떼어 봉하는 일은 바로 내가 바라던 바이오!」

자서가 즉시 사람을 오나라에 보내 미승을 데려오려고 하자 심제량이 간하며 말했다.

「태자는 옛날에 폐위 당했고 그의 아들 미승은 지금 적국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데려와 영토를 떼어 봉하는 일은 원수를 키워 나라에 재앙을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미승은 일개 필부에 불과한데 어찌 우리 초나라에 해를 끼칠 수 있겠소?」

자서는 초왕의 명으로 공자승을 불러 큰 고을에 봉하겠다고 허락했다. 초나라의 사자로부터 공자승을 부르러 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손무와 오원은 즉시 군사를 거두어 영도를 비우고 오나라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그 전에 두 사람은 병사들에게 명하여 초나라의 부고 안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 수레에 가득 실으라고 명하고 한편으로는 초나라 변경 지방에 사는 1만 호의 백성들을 오나라의 황무지에 이주시켜 살도록 했다.

6. 일반천금(一飯千金)

- 천금으로 한끼 밥의 은혜를 갚다. -

오원은 손무에게 먼저 배를 타고 강수의 물줄기를 이용하여 먼저 출발하라고 이르고 자기는 육로를 택하여 역양산(歷陽山)⑫을 경과하여 동고공(東皐公)을 찾아 옛날에 자기가 소관(昭關)을 통과하도록 도와준 은혜를 갚으려고 했다. 그러나 오원이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는 자기가 묶었던 초가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고공의 종적은 묘연했다. 다시 사람을 용동산(龍洞山) 계곡에 살았다던 황보눌(皇甫訥)의 행방을 찾았으나 그 역시 아무런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오원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진실로 고고한 처사들이로다!」

오원은 동고공이 살았던 집 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린 후에 역양산을 떠났다. 오원이 군사를 이끌고 소관에 이르렀으나 이미 그곳에는 관을 지키는 초나라 병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오원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소관을 부셔 버렸다. 다시 오군의 행렬이 강수를 도하하여 율양(溧陽)을 지나 뢰수(瀨水) 강변에 이르자 오원은 탄식하며 좌우의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옛날에 이곳에서 허기가 져서 쓰러질 지경에 처하게 되자 이곳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에게 걸식을 했었다. 그 여인이 바구니 속의 장국과 밥을 꺼내어 나에게 주어 먹게 하고는 자신은 강물 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 내가 그때 바위 위에 글을 새기고 흙으로 덮어두었는데 아직도 그 바위에 글씨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오원이 좌우의 부하들에게 명하여 흙을 걷어 내라고 하자 과연 바위 위에 새긴 글씨가 하나도 마모되지 않고 뚜렷이 그대로 있었다. 오원이 천금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으나 여인의 집을 알 수가 없었다. 즉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천금을 뇌수 강물 속에 던지라고 하면서 말했다.

「여인이여! 그대가 만일 나를 알아볼 수 있다면 내가 그대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알리라!」

오원의 일행이 다시 행군을 시작한지 일리도 채 못 가서 길 옆에서 한 노파가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군사들의 행렬을 보더니 큰 소리를 내어 통곡했다. 군사들이 보고 노파를 붙잡아 물었다.

「할머니는 어찌하여 우리를 보고 그렇게 슬피 우십니까?」

노파가 말했다.

「나에게 나이가 3십이 넘도록 시집을 가지 않은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이 옛날에 뢰수 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허기진 사람 한 명을 우연히 만나 가지고 있던 밥을 선뜻 내주고는 자기는 그 일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하여 뢰수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내가 후에 우리 딸에게서 밥을 얻어먹은 사람은 곧 초나라의 망명객 오자서 장군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자서 장군이 싸움에 이겨 개선한다고 하는데, 아직 오자서 장군으로부터 제 딸이 베푼 은혜에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해, 제 딸만 억울하게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슬피 울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그 노파에게 말했다.

「우리 대장님이 바로 오자서 장군이요. 천금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려 했으나 할머니의 집을 찾지 못하여 그 금을 강물 속에 던져 놓고 가는 길입니다. 할머니는 빨리 금이 있는 곳을 가셔서 건져가지십시오」

노파가 강으로 돌아가 금을 건져서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지금도 오자서가 밥을 나누어 준 여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황금을 던진 곳의 이름을 투금뢰(投金瀨)라고 해서 전해지고 있다. 염선(髥仙)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변함없이 출렁이며 흐르는 투금뢰의 강물 모습은

다시 찾아와 보은한 망명객을 잊지 않는 듯하구나!

나이 삼십이 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지만

그대의 이름은 오자서와 함께 천추에 빛나도다!

投金瀨下水澌澌(투금뢰하수시시)

猶億亡臣報德時(유억망신보덕시)

三十年來无匹偶(삼십년래무필우)

芳名已共子胥垂(방명이공자서수)

손무 등이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로 회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월나라 군주 윤상은 용병술에 능한 손무의 오군과 싸워 봐야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역시 군사를 이끌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월과 오는 결코 가까워 질 수 없는 원수의 나라이다.」

윤상은 회군한 즉시 스스로 월왕이라 칭했다.

7. 공성신퇴(功成身退)

- 공을 이루고 물러나 몸을 보존한 손무 -

초나라에 원정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취하고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손무의 공이라고 생각한 합려는 그에게 상응하는 상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손무는 더 이상 오나라 조정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벼슬을 버리고 자기가 옛날에 은거했던 라부산으로 돌아가겠다고 간곡히 청했다. 합려가 오원을 보내 오나라 조정에 머물러 좀더 자기를 위해 애써 달라고 설득하게 하였다. 손무가 찾아온 오원에게 말했다.

「장군은 천도가 있음을 아십니까?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고 봄이 지나면 가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니 오왕은 그 강성함을 과신하는 성격이라 이제 오나라가 천하에 그 위세를 떨쳤으니 오왕의 마음속에서 교만한 마음이 생겨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고 행락만을 일삼게 될 것입니다. 무릇 공을 이루고서도 물러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장차 화를 입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다만 나 자신만을 위해 이렇듯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으니 장군께서도 저와 함께 이곳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전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오원은 손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손무는 즉시 표연히 자기의 거처를 떠나면서 자기가 오왕에게서 받은 황금과 비단을 마차에 싣고 가다가 도로 변에 사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손무가 어디로 가서 살다가 그의 생애를 마쳤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손무를 찬양했다.

손무의 재주는 오원을 빛나게 했고

왕의 애첩에게 집행한 군법으로 삼군을 떨게 하여

많은 군사들을 한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적을 헤아리기를 마치 귀신처럼 했다.

초나라를 원정하여 큰 뜻을 펼쳤으나

섬진군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이유는

지혜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계책을 내지 않아서였다.

작록도 마다하며

물러 날 때와 머무를 때를 알았으며

세상에 나와서 공을 세워 몸을 빛내고

이름을 남긴 뒤에 물러가니

그가 쓴 병법 13편은 병가들의 경전이 되었다.

孫子之才 彰于伍員(손자지재 창우오원)

法行二嬪 威振三軍(법행이빈 위진삼군)

御衆如一 料敵若神(어중여일 요적약신)

大伸于楚 小挫于秦(대신우초 소좌우진)

智非偏拙 謀无盡行(지비편졸 모무진행)

不受爵祿 知亡知存(불수작록 지망지존)

身出道顯 身去名成(신출도현 신거명성)

書十三篇 兵家所尊(서십삼편 병가소존)

손무가 초야로 돌아가 은퇴하자 합려는 즉시 오원을 오나라의 상국에 임명하여 제나라의 관중이나 초나라의 자문의 예를 따라 그를 부를 때 원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단지 자서(子胥)라고만 부르도록 했다. 백비는 태재에 임명하여 오자서와 함께 국정을 같이 맡아보도록 했다. 이어서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오도의 성문 이름 중에 창문(閶門)의 이름을 파초문(破楚門)이라고 고쳐 부르게 했다. 다시 오나라의 남쪽 변경에 돌로 성을 쌓아 관문을 설치하고 이름을 석관문(石關門)이라 칭하여 월나라의 침공에 대비했다. 월나라의 대부 범려(范蠡)도 역시 절강(浙江)⑬의 어귀에 성을 쌓아 오나라의 공격에 대비하게 하고는 그곳의 이름을 굳게 지킨다는 뜻으로 고릉(固陵)이라 했다. 이 일은 주나라 경왕 15년 기원전 505년의 일이었다.

8. 昭王返國(퇴오반국)

- 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찾은 초소왕

한편 초나라의 자서와 자기는 다시 영도에 입성하여 평왕의 해골을 수습하여 다시 중건한 종묘사직에 안치하는 한편 신포서에게 수군을 거느리고 수나라로 가서 초소왕을 모셔 오도록 했다. 소왕이 수나라를 떠날 때 수후와 회맹을 하여 두 나라는 영원토록 서로 침범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수후가 친히 소왕이 탄 배에까지 올라 전송을 한 다음에야 돌아갔다. 소왕이 큰 강 가운데에 이르러 배의 난간에 기대에 사방을 둘러보면서 옛날의 고생스러운 날들을 생각하고 다시 오늘 초나라에 돌아가기 위해 강의 중류에 있게 되었음을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강물 위에서 떠내려오는 물건이 하나 보였다. 그 크기가 마치 커다란 곡식을 재는 말통만 했고 그 껍질은 붉은 색을 띄우고 있었다. 소왕이 헤엄을 잘치는 수부를 시켜 그 물건을 건져 오게 하여 주위의 군신들에게 그 물건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군신들 중에 그 물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시 허리에 찬 검을 뽑아 그 물건을 자르자 안에는 오이와 비슷한 속이 들어 있어 맛을 보니 감미롭기가 그지없었다. 즉시 그 속을 주위의 군신들에게 두루 나누어주어 먹게 하면서 말했다.

「이름은 알 수 없는 과일이나 먹을 수는 있소! 세상일에 능통한 인사를 만날 때 물어 보도록 합시다.」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데 하루도 채 못 가서 소왕의 행렬이 운몽의 한 가운데에 이르렀다. 소왕이 한탄했다.

「이곳에서 과인이 도적을 만나 곤경에 처한 곳이라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좌우에게 명하여 배를 강안에 대고 뭍으로 내린 소왕은 투신(鬪辛)에게 명하여 인부들을 독려하여 운몽 지간에 작은 성을 쌓게 하여 그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묵을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도 운몽현에 땅 이름이 초왕성(楚王城)이라는 곳이 있는데 바로 이곳을 말한다. 자서와 자기 등이 영도의 성문을 나와 5십 리나 되는 곳까지 나와 소왕을 영접했다. 초나라의 모든 군신들이 서로 상봉하여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초소왕이 행군을 계속하여 영성에 당도하여 그 주위를 둘러 둘러보니 그 때까지도 성 밖에는 백골이 즐비하였고 성안의 궁궐은 이미 그 태반이 부셔져서 폐허가 되어 버려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슬퍼져서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이어 궁궐로 들어가 그의 모친 백영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나서 모자간에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소왕이 울음을 그치고 그의 모친에게 말했다.

「국가가 불행한 일을 당하여 이와 같이 큰 변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종묘사직은 동쪽의 오랑캐에게 부셔지고 침릉은 능욕을 당했습니다. 이 원한을 언제나 갚아 설욕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다시 복위를 하는데 있어 군신들의 공이 크니 마땅히 그 공을 찾아 상을 주어야 하고 또 한 나라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망신들은 그 책임을 물어 벌을 내려야 하오! 그런 다음 백성들을 무휼하여 서서히 그 기력을 키워 옛날의 국력을 되찾게 되면 그때는 우리가 당한 치욕을 갚을 수 있을 것이오!」

소왕이 백영에게 절을 올리고 그 가르침을 받았다. 그때부터 소왕은 감히 침실에 들지 못하고 재궁(齋宮)에 머물러 잠을 잤다. 다음 날 소왕은 종묘사직에 자기의 복국을 고하고 왕릉의 분묘에 성묘한 후에 전당에 올라서 백관들의 칭하를 받았다. 소왕이 군신들을 향해 말했다.

「과인이 옳지 않은 사람들을 임용하여 그들로 인하여 망국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에 여기에 있는 경들이 아니었다면 어찌 또다시 우리 초나라 하늘의 태양을 볼 수 있었겠소?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과인이고 나라를 다시 찾은 사람들은 바로 경들의 공이요.」

여러 대부들이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며 감히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소왕이 먼저 섬진의 대장인 자포와 자호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들의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에 많은 상을 내려 그들의 나라에 돌아가게 했다. 이윽고 소왕이 여러 신하들의 논공행상을 시작했다. 자서는 영윤에 자기는 좌윤으로 삼고 신포서는 섬진에 가서 군사를 빌려 온 대공을 세워 우윤(右尹)을 삼으려 했으나 그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이 섬진에 가서 군사를 빌려 온 일은 왕을 위해서였지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왕께서 이미 환국을 하시게 되었으니 신의 뜻은 이미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 감히 제가 사사로운 이익을 쫓겠습니까?」

신포서가 완강히 고사하여 우윤의 직을 맡지 않았다. 소왕이 다시 강권하자 신포서는 즉시 그의 처자들을 데리고 밤중에 아무도 모르는 데로 도망쳐 버렸다. 신포서의 처가 말했다.

「당신은 온 힘을 다해 섬진으로부터 군사를 빌려와 초나라를 안정시켰으나 그 결과 몸은 지치고 정신은 피곤해져 있습니다. 마땅히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하여 이렇듯 도망가십니까?」

신포서가 대답했다.

「나는 원래 친구의 정리 때문에 도망가던 오자서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아 결국은 자서로 하여금 초나라를 망하게 하였소. 죄를 짓고도 공을 세웠음은 실은 나의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소! 」

신포서는 즉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리고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왕이 사람을 보내어 불러오려고 했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이어 그가 살던 동네에 ‘충신지문(忠臣之門)’라는 글을 써서 정표(旌表)를 세우게 하였다. 소왕이 할 수 없이 왕손요를 우윤에 임명하면서 말했다.

「운중에서 도적들이 휘두르는 과를 몸으로 막아 나를 보호한 일을 내가 어찌 감히 잊겠소? 」

그밖에 심제량(沈諸梁), 종건(鐘建), 송목(宋木), 투신(鬪辛), 투소(鬪巢), 원연(薳延)등은 모두 작위를 올리고 봉읍을 더하여 주었다. 또한 투회(鬪懷)도 같이 불러 상을 내리려고 하자 자서가 반대하며 말했다.

「투회는 왕을 시해하려고 했던 자라 마땅히 불러 죄를 주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상을 주시려고 하시니 어인 이유에서입니까?」

「그가 자기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 일은 즉 그가 효자임을 말합니다. 그 부모에게 능히 효를 다할 수 있다면 어찌 충신인들 못 되겠습니까?」

9. 남윤경군(藍尹儆君)

- 몽진 중의 왕을 배에 태우지 않고 경계를 준 남윤미(藍尹亹) -

투회도 역시 불러서 대부의 직을 주었다. 람윤미(藍尹亹)가 배알하겠다고 사람을 시켜 알려오자 소왕은 옛날에 성구(成臼)⑭에서 자기를 태우지 않고 달아났던 그의 소행이 생각나서 그를 잡아다 죽이려고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게 했다.

「너는 재난을 당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던 과인을 보고도 버려두고 갔으면서 무슨 염치로 오늘 다시 나를 보려고 하는가?」

람윤미가 글로 대답해 올렸다.

『낭와는 단지 덕을 버리고 남에게 원한을 살 일만을 골라서 해 왔습니다. 순전히 낭와 한 사람 때문에 백거의 싸움에서 오나라에게 패하고 나라는 망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사람을 쓰셨습니까? 예전에 성구에서 제가 탔던 배와 지금 영도의 궁궐에 비하면 어느 것이 더 안락하다고 하겠습니까? 신이 성구에서 대왕께 배를 내어 드리지 않은 이유는 왕께 경계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제가 찾아가 뵈려고 하는 목적은 대왕께서 예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계신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잃은 잘못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계신다면 신이 왕을 태우지 않은 죄로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으나 단지 애석한 것은 초나라의 종사입입니다.』

「람윤미의 말이 충심에서 나온 말인 것 같으니 왕께서는 마땅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왕은 즉시 람윤미를 불러 알현을 허락하고 예전과 같이 대부의 직에 계속 머물게 하였다. 초나라의 군신들은 소왕의 도량이 넓고 깊은 것을 보고 모두가 기뻐하였다. 소왕의 부인이 합려에게 몸을 허락하여 정조를 잃었음을 부끄러워하여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다.

10. 초국중흥(楚國中興)

- 초소왕의 선정으로 부흥한 초나라 -

당시 오나라와 분쟁이 잦았던 월나라는 초왕이 돌아와 나라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축하함과 동시에 월왕의 종녀를 초왕에게 바쳤다. 소왕이 월녀를 취하여 부인으로 세웠다. 월녀는 현명하고 덕이 매우 깊어 소왕이 예를 갖추어 대했다. 소왕은 그의 여동생 계미(季羋)와 환난을 같이 했기 때문에 좋은 짝을 골라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소왕이 자기를 시집보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계미가 말했다.

「여자의 본분은 남자를 멀리 해야 하는 법인데 종건이 항상 나를 업고 다녔으니 그가 즉 나의 지아비입니다. 어찌 감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갈 수 있겠습니까?」

소왕이 곧 계미를 종건에게 출가시키고 종건에게 사락대부(司樂大夫)에 명했다. 다시 죽은 손숙오의 영혼이 자기를 도왔다고 생각해서 사람을 보내 운중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자서는 영도가 전란에 대부분이 파괴되고 또한 오나라 군사들이 오랫동안 주둔하여 영도 내의 길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여 약(鄀)⑮ 땅에 성을 쌓아 궁궐을 축조한 후에 종묘사직을 다시 세우고 천도했다. 약 땅에 새로 세운 성을 신영(新郢)이라 불렀다. 소왕이 신궁을 짓고 옮겨와 군신들을 불러 술을 내와 잔치를 벌렸다.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악사 호자(扈子)는 소왕이 지금의 안락을 젖어 옛날의 고생스러움을 잊어버리고 다시 평왕의 옛날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소왕의 안전에서 거문고를 가슴에 안고서 상주했다.

「신이 《궁육(窮衄)》이라는 곡을 알고 있는데 대왕을 위해 한번 연주해 보겠습니다.」

소왕이 말했다.

「과인이 한번 듣고 싶노라!」

호자가 거문고를 타기 시작하자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였다. 《궁육》 의 노래말은 다음과 같았다.

왕이시어, 왕이시어! 어찌하여 못된 신하의 꾐에 빠져

종묘사직도 돌보지 않고 참언의 못된 말만을 들으시어

등용한 비무극으로 하여금 죄 없는 신하들을 죽이게 하고

충신과 효자를 주멸하여 초나라의 기강을 끊으셨습니까?

王耶王耶何乖劣(왕야왕야하괴열)

不顧宗廟廳讒孽(불고종묘청참얼)

任用无忌多所殺(잉묭무기다소살)

誅夷忠孝大綱絶(추이충효대강절)

자서와 백비가 동쪽의 오나라로 넘어가니

오왕이 애통해하는 그들을 도와 슬퍼하였습니다.

눈물을 떨구며 군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쳐들어오니

장수들은 오자서, 백비, 손무였습니다.

다섯 번 싸움에 함락되고 왕께서는 도망친 영도에

오군은 남아 초궁을 유린하였습니다.

二子東奔適吳越(이자동분적오월)

吳王哀痛助忉怛(오왕애통조도달)

垂涕擧兵將西伐(수체거병장서벌)

子胥伯嚭孫武決(자서백비손무결)

五戰破郢王奔發(오전파영왕분발)

留兵縱騎虜荊闕(유병종기로형궐)

선왕의 해골은 다시 파 해쳐져서

채찍으로 맞아 당한 치욕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종묘사직은 거의 끊어질 뻔 했고

왕께서는 죽음을 피하여 먼 곳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先王骸骨遭發掘(선왕해골조발굴)

鞭辱腐尸恥難言(편욕부시치난언)

幾危宗廟社稷滅(기위종묘사직멸)

君王逃死多跋涉(군왕도사다발섭)

대신들과 선비들은 슬픔에 젖어 피 눈물을 흘렸고

오군은 비록 물러갔으나 두려움은 아직 끊이지 않았으니

원컨대 왕께서는 다시 한 번 충신들을 위무하시어

더러운 참언이 충신들을 해칠 수 없도록 해주시옵소서!

卿士凄愴民泣血(경사처창민읍혈)

吳軍雖去怖不歇(오군수거포불헐)

愿王更事撫忠節(원왕갱사무충절)

勿爲讒口能謗褻(물위참구능방설)

소왕은 거문고 곡조에 따라 부르는 《궁육》의 노래말 뜻을 알아 듣고 눈물을 흘리기를 멈추지 못했다. 호자가 거문고를 거두고 계단 밑으로 내려가자 연회는 곧이어 끝이 났다. 이때부터 소왕은 조회를 아침 새벽부터 열고 저녁 늦게 까지 국정에 전념하였다.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였으며, 군사를 양성하여 훈련에 전념하게 하고 다시 변경의 관문을 수리하여 군사들을 보내 엄하게 지키게 하였다. 미승이 오나라에서 돌아오자 소왕은 그를 백(白) 땅에 봉해 공(白公)이라 부르게 했다. 미승은 봉지에 축조하여 백공성(白公城)⑯이라 부르고 자기의 종족들을 모아 그곳에서 살게 한 다음 성을 백씨로 했다.

초왕이 옛날의 모든 원한을 잊고 용서하여 천하의 인재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부개는 송나라에서 다시 초나라로 와서 그의 몸을 의탁하려고 하였다. 부개가 용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소왕은 그를 받아 들여 당계(堂谿)⑰에 봉하고 당계씨라 부르게 하였다. 초나라가 재난은 모두가 채(蔡)와 당(唐) 두 나라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한 자서는 당나라는 이미 멸망시켰으나 아직도 건재한 채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것을 소왕에게 청했다. 소왕이 말했다.

「나라 안의 정세가 아직 안정이 안 되었고 또한 과인이 전화를 입은 백성들을 미처 위무하지 못하여 지금은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공자는 자신이 편찬한 《춘추(春秋)》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여 초소왕을 칭송했다.

「초소왕은 그의 재위 10년 즉 기원전 506년에 오군의 침입으로 몽진을 떠나 수나라로 피신했으며 11년에 다시 영도에 돌아와 복위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기원전 496년이 되어서야 군사를 일으켜 돈(頓)을 멸한 후에 돈자(頓子) 장(牂)을 잡아왔다. 이어서 다음해인 그의 재위 21년에는 호(胡)나라를 멸하고 호자(胡子) 표(豹)를 잡아와서 옛날에 그가 당진에 붙어서 초나라를 침입한 행위에 대한 원수를 갚았다. 22년에 다시 군사를 일으켜 채나라를 포위하고 오나라의 향도가 되어 초나라의 영도를 공격한 죄를 묻자 채소후가 항복을 청했다. 소왕이 채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그 나라를 강(江)⑱과 여수(汝水) 사이의 땅으로 이주 시켰다.」

초소왕이 환국한 다음 10년 동안 백성들을 휴식시켜 힘을 기른 다음에 군사를 일으켜 번개같이 작전을 행하여 공을 이루고 초나라를 다시 부흥시켰다. 그것은 모두 담로검(湛盧劍)이 스스로 소왕을 찾아오고 다시 한수와 운수를 건널 때 당시로써는 이름을 알지 못했던 평실(萍實)이라는 과일을 얻은 상서러운 징조가 앞일을 예언한 것이라고 했다.

< 제 78회로 계속 >

주석

①악저(鄂渚)/ 현 호북성 무창(武昌) 부근.

②진수(溱水)와 유수(洧水)/ 유수(洧水)의 지류다. 유수는 중악(中嶽)에 해당하는 숭산(嵩山)의 동록에서 발원하여 정나라 땅을 동서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흐르다가 지금의 주구시 북쪽에서 영수(潁水)와 합류한 강이고 진수는 하남성 신밀시(新密市) 북쪽 백채진(白寨镇)에서 발원하여 유수와 가로하(贾鲁河)에서 합류한 옛 하천이다.

③미(穈)/ 현 섬서성 백하시(白河市)에 있었던 춘추 때 소 제후국으로써 한수의 상류에 위치했다.

④이릉(夷陵)/ 지금의 호북성 의창시(宜昌市)를 말한다. 삼국지의 유비(劉備)가 관우(關羽)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다가 이곳에서 오장(吳將) 육손(陸孫)의 화공에 걸려 대패한 곳이다.

⑤忠孝不能兩全(충효부능양전), 吾日暮途遠(오일모도원), 故倒行而逆施耳(고도행이역시이)’」

⑥무의(舞衣)/ 《시경(詩經)·진풍(秦風)》의 시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豈曰無衣(개왈무의)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與子同袍(여자동포) 그대와 함께 나의 도포를 같이 입겠오/ 王于興師(왕우흥사) 임금께서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 脩我戈矛(수아과모) 내 과(戈)과 모(矛)를 세워 /與子同仇(여자동구) 그대와 함께 원수를 무찌르리라! / 豈曰無衣(개왈무의)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 與子同澤(여자동택) 그대와 함께 속옷을 같이 입겠소 /王于興師(왕우흥사) 임금께서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 脩我矛戟(수아모극) 내 모와 극을 세워/ 與子偕作(여자개작) 그대와 함께 일어나리라 / 豈曰無衣(개왈무의)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 與子同裳(여자동상) 그대와 함께 바지를 같이 입겠소 / 王于興師(왕우흥사) 임금이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脩我甲兵(수아갑병) 내 갑옷과 병장기를 세워 / 與子偕行(여자개행) 그대와 함께 전장에 나가리다.

⑦상(商)/ 지금의 섬서성 단봉시(丹鳳市)에 있었던 고을로 관중에서 하남성 남쪽으로 통하느 관문인 무관(武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다.

⑧곡(穀)/ 현 호북성 양번시(襄樊市) 북서 쪽 약 50키로 떨어진 곡성(谷城)으로써 한수(漢水) 강안에 있었던 고을

⑨양양(襄陽)/ 현 호북성 양번시(襄樊市)는 한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의 번성(樊城)과 남쪽의 양양(襄陽)이 합쳐진 도시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의 결과 양양은 촉나라, 번성은 위나라에 속해 이곳을 두 나라의 경계로 삼았다. 후에 관우가 수공으로 번성을 공략하고 위장 방덕(龐德)을 잡아죽인 곳이다.

⑩견가이진(見可以進) 지난즉퇴(知難則退 )

⑪제환공이 형국을 다시 세운 일은 본서 23회 내용 참고.

⑫역양산(歷陽山)/ 지금의 안휘성 화현(和縣)에 있었던 소관(昭關) 부근에 있었던 산이름이다. 화현은 원나라 때 역양(歷陽)으로 불렀다.

⑬절강(浙江)/ 지금의 절강성(浙江省)의 남서부에서 동북으로 가로질러 항주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전당강(錢塘江)의 옛 이름.

⑭성구(成臼)/ 지금의 호북성 경산(京山)과 종상(鍾祥) 일대를 흐르던 구성하(臼成河)를 말한다.

⑮약(鄀)/ 현 호북성 의성시(宜城市) 동남 약 30키로 한수의 강안 도시로 초나라의 수도가 된 것은 초소왕 12년 기원전 504년의 일이다.

⑯백공성(白公城)/지금의 하남성 식현 서쪽의 장릉향(長陵鄕)에 백공성의 유지(遺址)가 있다.

⑰당계(堂谿)/ 지금의 하남성 여남현(汝南縣) 오방진(吳房鎭)을 말하며 지금도 당계정(堂谿亭)이라는 유적이 있다.

⑱강(江)/ 현(現) 하남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 서쪽 약 20키로의 회수(淮水) 강안에 있었던 소제후국이다.

[평설]

나라가 망하기는 했지만 깨닫는 바가 있다면 망하지는 안했으나 깨닫지 못한 것 보다는 좋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오나라에 망한 초나라는 섬진(陝秦)이 구원군을 보내 돕고, 다시 오나라의 본국을 월나라가 기습함에 따라 천행으로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초소왕은 외국으로 도망 다니다가 1년여 만에 왕의 자리에 복귀한 것이다. 그는 영성 교외의 굴러다니는 해골과 파괴된 종묘, 묘지에서 파헤쳐져 부셔져 버린 시신들을 보고 나라가 망한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사람 같지 않은 인사를 임용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즉 임용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임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적절치 못한 사람을 임용함으로 해서 전략상 착오가 발생하고, 지휘 계통이 서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병들의 마음을 떠나게 해서 그 결과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소왕은 올바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사를 임용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당시 초나라의 국내에는 인재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군주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면 그렇다고 하는 아첨꾼들을 보물과 같이 여겨 모두 중용함으로 해서 한 마음으로 충절을 다하고, 감히 군주의 뜻을 거슬려가며 직간을 서슴치 않으며, 주군을 위해서는 견마지로를 마다하지 않던 충신들은 모두 눈엣가시가 되어 배척되었다. 그와 같은 일들은 평상시에는 군주를 매우 평온하게 지낼 수 있게 했지만, 일단 전시와 같은 비상시국을 당하게 되자 대사가 망가지게 된다. 화장을 하고 다시 그 위에 가면을 쓴 망년 된 자를 식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일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초소왕이 사람을 임용할 때 실수를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낭와(囊瓦)는 탐욕스럽고 어질지가 못했고 반면에 지모는 보통사람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음에도 초소왕은 그에게 초나라 정사와 함께 초나라 군사들에게 대한 지휘권을 모두 맡겼다. 이런 낭와가 전쟁이 발발하자 연전연패하고 결국은 자기 군주는 사지에 몰리게 하고, 초나라는 패망 직전으로 떨어지게 해 놓고는, 자신은 타국으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때서야 초소왕은 비로소 낭와를 ‘ 나라를 그르친 간신배!’라고 크게 욕했다. 그러나 그때는 일을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람을 임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식별하는 일이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초소왕은 초왕의 자리에 복위되자 있는 힘을 다하여 인재를 구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도망치던 초소왕이 운읍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대부였던 투신(鬪辛)이 음식을 준비하여 초대했다. 그때 투신의 동생 투회(鬪懷)가 초소왕을 죽이려고 기회를 노렸다. 투씨 형제들의 부친으로 영윤이었던 투성연(鬪成然)을 간신 비무극(費無極)의 참소를 듣고 초평왕이 살해하자 투회가 그 아들인 초소왕을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은 투신의 만류로 투회는 초소왕을 죽이지 못했다. 이윽고 초소왕이 왕위에 복위하자 투회를 불러 임용하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능히 그 부친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사람은 효자라, 효자와 충신은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인식은 비교적 깊은 사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철저한 인재 식별법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람윤(藍尹) 미(亹)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소왕은 다소 물러서는 자세를 취한다.

소왕이 도성을 탈출하여 도주하던 중 성구(成臼)의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다가 마침 배를 타고 지나가는 람윤 미(亹)를 보고 자기를 태워 건너 줄 것을 명했다. 그러나 미(亹)는 소왕에게 ‘망한 나라의 군주’라고 하면서 그 명을 받들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후에 소왕이 초왕의 자리에 복귀하자 람윤 미가 찾아와 접견을 청했다. 소왕은 옛날 성구에서 자기를 배에 태워주지 않은 것에 대해 한을 품고 그를 죽이라고 명했다. 란윤 미가 항변했다.

“ 영도에서 안락함에 젖어 계시던 왕께서 무슨 일로 인해 성구(成臼)의 나루터까지 달려왔습니까? 신이 성구에서 대왕께 배를 내어 드리지 않았던 것은 왕께 경계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제가 찾아가 뵈려고 하는 목적은 대왕께서 예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계신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잃은 잘못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계신다면 신이 왕을 태우지 않은 죄로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으나 단지 애석한 것은 초나라의 종사일 뿐입니다.”

소왕이 듣고 람윤 미가 갖고 있었던 옛날 대부의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인재는 나라의 근본이고, 강한 군대의 요체다. 진정한 인재는 항상 아첨과 비위를 맞추는 도배들과는 달리 왕왕 윗사람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소왕이 고통속에서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윽고 그것을 인식하게 됨으로 해서 초나라는 전체적으로 봐서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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