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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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회. 黃池爭歃(황지쟁삽) 子路結纓(자로결영)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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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82회 黃池爭歃 子路結纓(황지쟁삽 자로결영)

황지에서 삽혈의 순서를 다툰 오왕 부차와

위후에 항거하여 싸우다가 갓끈을 고쳐 매고 죽은 자로

1. 妖夢凶兆(요몽흉조)

- 요사스러운 꿈속의 흉조에도 불구하고 제나라 정벌을 감행하는 오왕 -

한편 주경왕 36년 즉 기원전 484년 봄에 월왕 구천은 대부 제계영에게 군사 3천을 주어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는 오군을 돕도록 했다. 오왕 부차는 즉시 구군(九郡)으로 이루어진 오나라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 대군을 소집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부차가 선발대를 미리 제나라 국경 근처인 구곡(句曲)에 보내 별궁을 짓게 하고 그 주위에 오동나무를 빽빽이 심게 했다. 사람들은 그 별궁을 오궁(梧宮)이라고 불렀다. 부차는 서시가 오궁으로 옮겨 피서를 하면서 그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돌아 올 때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같이 여름을 나고 귀국할 심산이었다. 오나라 병사들이 드디어 출병할 때가 되자 오자서가 다시 입궁하여 간언했다.

「월나라가 아직 남아 있음은 우리의 뱃속에 있는 커다란 화근이라면, 제나라는 조그만 종기에 불과합니다. 오늘 대왕께서 1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그 보급 부대의 행렬은 천리를 뻗치게 됩니다. 뱃속의 커다란 화근은 망각하시고 기껏해야 조그만 종기나 하나 짜기 위해 이렇듯 대군을 출동시키니 만일에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월나라는 우리의 허를 찔러 쳐들어오게 되면 오나라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부차가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 온 힘을 다하여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려는 마당에 늙은 도적놈이 어찌 감히 불길한 말을 입에 올려 나의 큰 계책을 방해하려 하느냐? 내 마땅히 너의 죄를 물으리라!」

부차가 자서를 죽이려 했으나 백비가 조용히 간했다.

「자서는 선왕 때부터 오나라의 조정에 일을 해온 노신이라 죽일 수 없습니다. 왕께서 만일 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우리의 공격을 알리게 하고 이어 제후로부터 결전의 날을 받아 오도록 한다면 제후가 노하여 우리 대신 자서를 죽일 것입니다.」

「태재의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부차가 곧바로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하여 오나라를 기만한 죄를 묻겠다.’라는 내용의 국서를 쓰게 한 후에 자서를 사자로 명하여 제나라로 가서 제후에게 전하도록 했다. 부차는 제후가 격노하여 자서를 죽여주기를 기대했다.

오나라의 멸망을 확신한 오자서는 아무도 몰래 그의 아들 오봉(伍封)을 데리고 제나라로 출발하였다. 자서가 이윽고 임치성에 당도하여 오왕의 국서를 제후에게 전했다. 제간공이 크게 노하여 자서를 죽이려고 했으나 대부 포식(鮑息)이 간하며 말렸다.

「자서는 곧 오나라의 충신입니다. 여러 번 오왕에게 우리나라를 공격하면 안 된다고 간하여 이제는 오왕과는 사이가 벌어져 물과 불의 관계로 되었습니다. 이번에 오나라가 그를 우리 제나라에 사자로 보낸 목적은 우리를 격노시켜 자서를 죽이게 하고 천하의 비방을 면함과 동시에 이를 트집삼아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마땅히 자서를 돌려보내 오나라로 하여금 충신과 간신이 서로 싸우게 하여 부차의 악명은 천하에 알리시기 바랍니다.」

제간공은 오자서를 후대하고 싸울 날짜를 돌아오는 봄철로 정해 부차에게 고하도록 했다. 원래 포목(鮑牧)은 죽기 전에 자서와 서로 교분을 두터웠다. 그래서 포식은 제후에게 자서를 죽이지 않도록 간언했다. 포식이 아무도 몰래 자서를 찾아와 넌지시 오나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물었으나 오자서는 단지 눈물만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아들 오봉으로 하여금 포식에게 절을 하게 한 다음 형으로 모시고 그의 집에 머물며 살도록 했다. 이후로는 이름과 성을 왕손봉(王孫封)으로 고치고 오씨 성은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포식이 탄식하며 말했다.

「자서가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충간하다 죽으려고, 오씨들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제나라에 남겨 두려고 하는구나!」

아들과 슬픈 마음으로 이별을 한 자서는 오나라로 돌아갔다. 한편 오왕 부차는 출병하는 날짜를 정해 서문을 통하여 왕성을 나와 그 행렬이 고소대에 이르자 행군을 잠시 멈추게 하고 잔치를 벌려 군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식사를 끝내고 낮잠을 자던 부차가 이상한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꿈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게 된 부차는 즉시 백비를 불러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했다.

「과인이 잠시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많은 꿈을 꾸었소. 꿈속에서 처음에 장명궁(章明宮)으로 들어가서 보니 가마 솥 두개가 놓여 있는데 아무리 불을 떼도 밥이 익지 않았소. 다시 어디선가 검은 개 두 마리가 뛰어 나오더니 한 마리는 북쪽을 향해 짓고 또 한 마리는 남쪽을 향해 짖었소. 쇠로 만든 삽 두 자루가 궁궐의 담장에 꽂혀 있었고 다시 난데없이 어디선가 큰물이 흘러 궁궐의 전당이 온통 물에 잠겼소. 이어서 궁궐의 뒤편에서는 북소리인 듯도 하고 종소리 같기도 한 소리와 대장간에서 쇠를 단련하는 듯한 소리가 동시에 들리더니, 궁궐의 뜰 앞에는 다른 나무들은 없고 오직 오동나무만이 심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소. 태재는 나를 위해 그 꿈이 길한지 불길한지 점을 쳐보기 바라오.」

태재 백비가 머리를 숙이며 칭하의 말을 올렸다.

「참으로 길한 꿈입니다. 대왕께서 꾸신 꿈은 제나라에 원정하여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음을 말합니다. 신은 듣기에 ‘장명(章明)이라는 말은 곧 적을 파하여 공을 이루고 외치는 랑랑한 소리를 말하고 두 개의 가마솥에 불을 떼어도 밥이 익지 않았음은 대왕의 덕이 성하여 남아돈다는 뜻을 말합니다. 또한 두 마리의 개가 각각 남북을 향하여 짓은 행위는 사방의 오랑캐들이 조빙 사절을 보내와 복종을 맹세하고 동시에 중원의 제후들이 패왕에게 내조한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궁궐 담장에 삽자루가 꽂혀 있음은 농부들과 장인들이 모두 힘을 다해 생업에 힘쓰고 있음을 말하며 전당 안으로 흘러들어 들어오는 큰물은 이웃나라가 조공으로 헌상품을 바쳐 우리나라의 재화가 풍족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궁실의 뒤편에서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릴 때처럼 나는 소리는 궁녀들이 희희낙락하며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노랫소리입니다. 궁궐의 앞뜰에 심어져 있는 오동나무는 즉 오동은 금(琴)과 슬(瑟)을 만드는 재료라 그 소리로 천하를 화합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대왕의 이번 행차는 실로 대길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록 백비의 아첨하는 말에 마음은 즐거웠지만, 부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다시 왕손락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고 그 길흉을 물었다. 왕손락이 대답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성의 서쪽에 있는 양산(陽山)이라는 조그만 산이 있는데, 그곳에 이름이 공손성(公孫聖)이라는 도사가 한 명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는 것이 많은 만물박사입니다. 그를 한번 불러 물어 보십시오」

「장군이 나를 위해 그 사람을 불러오도록 하시오.」

왕손락이 부차의 명을 받들어 수레를 몰아 양산으로 가서 공손성을 모시러 갔다. 공손성이 왕손락으로부터 부차가 꾼 꿈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갑자기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그의 처가 곁에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성격은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평소에 왕의 접견을 그렇게 원하더니 갑자기 왕의 부름을 받자 어찌하여 그렇게 슬프게 우십니까?」

공손성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슬픈 일이로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만 나는 이미 나의 운명을 알고 있었소. 그날이 바로 오늘이요. 오늘 그대와 영원히 이별하는 날이니 그것이 슬퍼서요.」

왕손락이 길을 떠나기를 재촉하여 공손성을 태우고 마차를 서둘러 몰아 부차가 있는 고소대에 당도했다. 부차가 공손성을 불러들여 자기의 꿈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공손성이 듣고 말했다.

「신이 그 꿈에 대한 해몽을 해 드리면 저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감히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고약한 꿈입니다. 대왕께서 꾸신 꿈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말함입니다. 장(章)이라는 말은 싸움을 해도 이기지 못하여 장황(章皇)히 달아난다는 말이고 명(明)이란 밝은 데로부터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두 개의 가마솥에 아무리 불을 때도 밥이 익지 않음은 대왕께서 싸움에서 패하여 익지 않는 밥을 드신다는 말입니다. 검은 개가 남북을 향하여 짓은 행위는 흑(黑)이라는 말은 어둡다는 뜻이니 어두운 곳으로 달아난다는 뜻이며 궁궐의 답장에 꽂혀 있었던 두 개의 삽은 월나라의 병사들이 오나라에 쳐들어와 사직을 폐허로 만든다는 뜻이며, 전당 안으로 흘러 들어온 큰물은 후궁이 물에 잠겨 텅텅 비게 된다는 뜻입니다. 궁궐의 뒤쪽에 있던 방에서 철을 단련하는 듯한 소리는 궁녀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 탄식하는 소리이며 궁궐의 뜰에 심어져 있던 나무가 모두 오동나무라 함은 오동나무는 관이나 순장한 기물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이라 대왕이 죽어 순장되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제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거두시고 다시 태재 백비님의 의관을 벗기고 맨몸으로 만들어 죄인으로 월나라에 보내어 구천에게 사죄를 청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나라를 보전하고 대왕은 생명을 건질 수 있습니다.」

백비가 곁에 있다가 큰 소리로 공손성을 비난했다.

「초야의 필부가 함부로 입을 놀리니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공손성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백비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욕을 했다.

「태재 백비야! 너는 높은 벼슬자리와 많은 록을 받으며 힘을 다하여 충성을 바쳐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려 하지 않고, 하는 일마다 아첨과 모함만을 일삼으니 훗날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킬 때 어찌 능히 너 혼자만 그 더러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부차가 대노하며 말했다.

「들판에 사는 무식한 야인 주제에 앞뒤 생각 없이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란언을 지껄이니 죽이지 않는다면 혹세무민할 것이다.」

부차가 자기 곁에 서 있던 장사 석번(石番)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철추로 저 도적놈의 머리를 쳐서 죽여라!」

공손성이 하늘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의 원통함을 아십니까? 충성스러운 말을 했으나 죄를 얻게 되어 무고하게 몸이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죽은 다음에 땅에 묻지 말고 양산 밑에 던져 놓기 바라오. 내가 나중에 그림자라도 되어 오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게 되면 그 소식을 전하여 대왕에게 그 은혜에 보답하리라!」

부차가 석번을 재촉하여 공손성을 격살하게 한 후에 그 시체를 가져가 양산 밑에다 던져 버리게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저주의 말을 했다.

「표범과 승냥이가 너의 고기를 먹고, 산불이 일어나 너의 뼈를 태우게 되고, 광풍이 타다 남은 너의 해골을 날려 버려 형체도 그림자도 없게 될텐데 네가 어찌 능히 말을 하며 나에게 알릴 수 있겠느냐?」

백비가 술잔에 술을 따라 부차에게 바치며 말했다.

「대왕에게 경하의 말을 드리겠습니다. 요사스러운 자를 이미 죽였으니 원컨대 술을 한 잔 올리겠습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했다.

요사스러운 꿈속에서 흉조가 이미 나타났건만

교만한 임금은 여전히 제나라를 정벌하여 공만을 탐하는구나!

오나라 조정에 지략과 무예를 갖춘 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공손성과 같이 충성심을 다하여 간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妖夢先機已兆凶(요몽선기이조흉)

驕君尙戀伐齊功(교군상연벌제공)

吳庭多少文和武(오정다소문화무)

誰似公孫肯盡忠(수이공손긍진충)

2. 艾陵之戰(애릉지전)

- 기원전 484년 애릉의 싸움에서 제군을 섬멸한 오왕 부차

부차는 스스로 중군 대장이 되고 태재 백비를 부장으로, 서문소(胥門巢)는 상군대장으로 왕자 고조(姑曹)는 하군 대장으로 삼았다. 군사의 수효는 모두 합하여 10만을 헤아리는 대군이었다. 부차가 이끄는 대군은 월나라에서 보내 온 3천의 군사와 함께 호호탕탕 제나라를 향해 진격했다. 부차는 먼저 사람을 노애공에게 사자를 보내어 같이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자는 뜻을 전하게 했다. 자서가 중도에 부차를 만나게 되어 제나라에 갔다 온 일을 복명하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오나라로 들어가 부차를 따라 종군하지 않았다.

한편 문상(汶上)①에 주둔하면서 노나라를 노리고 있던 제나라의 장수 국서는 오노(吳魯) 두 나라가 서로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장수들을 불러 적군을 막을 계책을 의논하던 중에 급보가 왔다.

「진상국께서 그의 동생 진역(陳逆)을 사자로 보내왔습니다.」

국서가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진역을 중군으로 맞이하여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오나라 군사들이 우리 제나라를 향해 거침없이 쳐들어 와 그들의 행렬은 이미 박(博)②과 영(嬴)③을 통과하여 행군 중이라 나라의 안위는 경각지간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상국께서는 여러분들이 적군을 막는데 힘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소장을 보내어 독려하도록 하셨소. 오나라와의 싸움은 단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외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싸우다가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고 결코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아야하며, 군중에는 오로지 전진만을 알리는 북소리만 쳐야하며 후퇴를 알리는 쟁이는 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나라의 여러 장수들이 자리에 일어나더니 일제히 말했다.

「우리들은 목숨을 걸고 적을 막겠습니다.」

국서가 령을 전하여 진채를 거두고 오나라 군사들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했다. 제군이 애릉(艾陵)④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오군을 기다렸다. 이윽고 서문소가 이끄는 오나라의 상군이 제군의 진영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국서가 보고 여러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먼저 출진하여 적세를 시험해 보겠는가?」

공손휘(公孫揮)가 흔연히 앞으로 나와 출전을 자청하고 한 떼의 본부 병사들과 병거를 이끌고 바람같이 달려서 앞으로 나갔다. 서문소가 황망 중에 공손휘의 공격을 막으며 두 장수들 간에 칼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30여 합을 싸웠음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국서가 사기충천한 기세로 두 사람이 승부를 내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중군을 이끌고 나와 서문소를 뒤에서 협공했다. 군중의 북소리가 벼락치듯이 나며 제나라의 본군이 밀려오자 서문소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전에서 승리를 취하여 기세가 더욱 등등해진 국서는 군사들에게 긴 밧줄을 구하여 몸에 휴대하도록 명하며 말했다.

「오나라 사람들은 머리털을 자르지 않고 길게 기르는 습속을 가지고 있다. 마땅히 준비한 밧줄로 그들의 목을 꿰어 가져오도록 하라!」

제나라의 군사들의 기세는 마치 미친 파도와 같이 스스로 도취되어 조석지간에 오나라의 군사들을 모조리 도륙하여 없애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문소가 패잔병들을 이끌고 돌아가 오왕을 접견하였다. 오왕이 크게 노하여 서문소를 죽여 제물로 삼으려 했다. 서문소가 상주하며 말했다.

「신이 처음으로 싸움에 임하여 적군의 허실을 미처 살피지 못한 관계로 어쩌다가 군사를 꺾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시 싸워서 싸움에 지게 되면 그때는 기꺼이 군법을 받겠습니다.」

백비가 옆에 있다가 그 역시 있는 힘을 다해 서문소의 죄를 용서하라고 부차에게 간했다. 부차가 큰 소리로 질책하며 서문소를 상군대장의 자리에서 면직시키고 목숨만을 살려주었다. 이어서 전여(展如)를 대장으로 삼아 서문소 대신 상군을 이끌게 했다. 그때 마침 노나라의 장수 숙손주구(叔孫州仇)가 원병을 이끌고 오나라의 군사를 돕기 위해 부차의 진영에 당도했다. 숙손주구에게 갑옷과 칼을 하사한 부차는 그에게 향도의 일을 맡도록 하고 애릉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진채를 세우도록 명했다. 국서가 사자를 시켜 전서를 써서 부차에게 전하게 했다. 오왕이 내일 싸우자는 비답을 써서 보냈다. 다음날 아침 두 나라 군사들은 각기 자기 진채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와 서로 대치했다. 부차가 숙손주구로 하여금 제 일진을 맡겨 앞으로 나가 싸우게 하고, 전여는 제2진으로 왕자 고조는 제3진으로 삼아 순서에 따라 앞으로 나가 싸우게 하였다. 그리고 월나라의 원군 3천은 제계영(諸稽郢) 대신 서문소를 대장으로 삼아 선봉을 맡겨 적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겼다. 부차와 백비는 대군을 이끌고 높은 곳에 머무르면서 전세를 살펴 가며 돕도록 했다. 또한 월나라 장수 제계영은 자기 곁에 머물게 하여 싸움을 관전토록 했다.

한편 제나라 진영에서도 싸움에 임하기 위해 전투대형으로 이루자 진역이 여러 장수들에게 모두 입에 구슬을 물라고 명하면서 말했다.

「싸우다 죽으면 즉시 관에 넣어 주리라!」

공손하와 공손휘는 군사들로 하여금 모두 장송곡을 부르게 하여 출전케 하면서 맹세를 했다.

「살아 돌아오는 자는 열렬 장부가 아니로다!」

국서가 보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필사의 각오로 스스로 용기백배하니 어찌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양쪽 군사들이 대진을 마치자 서문소가 먼저 앞으로 달려 나와 싸움을 걸었다. 국서가 공손휘에게 명했다.

「저자는 너에게 싸움에서 진 패장이 아닌가? 그대가 가서 잡아오기 바란다!」

공손휘가 극들 들고 달려 나가자 서문소는 다짜고짜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숙손주구가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공손휘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움을 걸어왔다. 서문소가 달아나다가 방향을 바꾸어 다시 공손휘를 향하여 공격해 왔다. 국서가 보고 공손휘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할까 걱정하여 다시 공손하에게 출정을 명하여 공손휘를 돕도록 했다. 서문소는 앞으로 달려나오다가 공손하를 보더니 말머리를 돌려 다시 달아났다. 공손하가 서문소의 뒤를 추격했다. 오나라의 진영에서는 상군대장 전여가 다시 군사를 이끌고 앞으로 나와 공손하의 앞을 가로막으로 공격해 왔다. 서문소가 다시 방향을 돌려 앞으로 돌진하여 전여을 도왔다. 제나라 장수 고무평(高无平)과 종루(宗褸)가 보고 분기탱천하여 일제히 출진하자 오나라의 왕자 고조(姑曹)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앞으로 나와 두 장수를 상대하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쪽의 군사들이 모두 있는 힘을 다하여 쌍방 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비슷한 전황을 유지하였다. 오나라 병사들이 물러서지 않자 국서가 북채를 병졸로부터 빼앗아 친히 북을 두드리며 대군을 모두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 싸움을 돋우려 했다. 오왕 부차가 높은 언덕에 앉아서 친히 전세를 살피다가 제나라의 군사들이 십분 용기백배하여 용감히 싸워 오나라의 군사들이 점점 밀리는 모습을 보고 즉시 백비에게 1만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나가 싸움을 도우라고 명했다. 국서는 다시 달려 나오는 오나라의 원군을 보고 군사를 나누어 막으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퇴각을 알리는 쟁이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울렸다. 제나라 군사들은 그 소리가 오나라 군사들이 퇴각하는 신호로 알았다. 그러나 그 쟁이 소리는 3대로 나윈 3만의 그의 정예병들이 제나라 진영의 측면을 향해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제나라의 대군은 세 군데로 갈라졌다. 전여, 고조 등 오나라의 장수들은 오왕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싸움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용기백배하여 앞으로 나아가 제나라 진영으로 돌격을 감행했다. 오군의 맹공에 제나라 군사들은 십중칠팔이 꺾이고 말았다. 전여는 제나라 진영에서 공손하를 사로잡고 서문소는 병거에 타고 있던 공손휘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부차도 친히 활을 쏘아 종루를 맞추어 죽였다. 여구명(閭邱明)이 국서에게 말했다.

「제나라 군사들은 거의 전멸했습니다. 원수께서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군사들 틈에 끼어 달아났다가 후에 별도의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가 제나라의 10만 군사를 모두 오나라 군사들에 손에 죽게 만들었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주군을 뵐 수 있겠는가?」

국서는 즉시 갑옷을 벗어 던지고 오나라 군사들 속으로 달려가 난군 중에 섞여 죽었다. 여구명은 숲 속의 풀 더미 속에 숨어 있다가 역시 노나라 장수 숙손주구에게 발각되어 사로 잡혔다. 부차가 제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치고 여러 장수들은 자기들의 전공을 고했다. 그들은 모두 제나라의 상장 국서와 공손휘를 죽이고 공손하와 여구명을 생포했다고 보고하였다. 생포한 공손하와 여구명은 즉시 참수형에 처해졌다. 도망쳐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제나라의 장수는 고무평과 진역 두 사람뿐이었고 기타 생포되어 참수 당한 제나라의 군사들과 장수들의 수효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제나라의 병거 800승은 모두 오나라의 소유가 되었으며 오나라 병사들에게 화를 면한 자는 거의 없었다.

부차가 옆에 있던 제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대는 오나라 병사들의 용맹함이 월나라의 병사들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제계영이 머리를 숙여 말했다.

「오나라 병사들의 강성함은 천하에 당할 나라가 없습니다. 어찌 우리 월나라에 비하십니까?」

부차가 크게 기뻐하여 월군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제계영에게 그들을 데리고 귀국하여 오나라의 승전을 월왕에게 알리게 했다. 제간공이 크게 놀라 진환과 감지를 불러 상의한 후에 오나라 진영에 사자를 급파하여 많은 황금과 비단을 공물로 바치고 죄를 빌며 강화를 청하였다. 부차는 강화요청을 받아들이고 제와 노 두 나라가 형제지국으로 지내며 서로 공격하여 해치는 일이 없도록 회맹을 주재했다. 두 나라 군주들이 모두 부차의 명을 쫓아 회맹을 받아들였다. 부차가 이어서 개선가를 부르며 회군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애릉에 백골이 산처럼 쌓이게 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오왕이 개선했다고 알았더라

장한 기개는 한 때는 우주라도 집어 삼킬만 했건만

오나라 관문 안에 잠복한 우한을 누가 알았으리요?

艾陵白骨壘如山(애릉백골루여산)

盡道吳王奏凱還(진도오왕주개환)

壯氣一時呑宇宙(장기일시탄우주)

隱懮誰想伏吳關(은우수상복오관)

부차가 구곡(句曲)에다 새로 지은 오궁(梧宮)으로 개선하여 서시를 보고 말했다.

「과인이 그대를 이곳에 와서 머물도록 한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그대를 보기 위함이었다!」

서시가 인사를 올리고 부차의 승전을 치하했다. 그때는 초가을이라 오동나무의 녹음이 우거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다. 부차와 서시가 고대에 올라 술을 마시며 마음껏 즐기다가 시간이 어느덧 야심하게 되었다. 갑자기 궁궐 담장 밖에서 어린아이들이 노래를 합창하여 부르자 부차가 듣게 되었다.

오동잎은 차가운데

오왕은 아직도 술에 깨지 않았는가?

오동잎은 가을을 알리는데

오왕은 슬픔에만 잠겨 있는가?

桐葉冷(오엽냉)

吳王醒未醒(오왕성미성)

梧葉秋(오엽추)

吳王愁更愁(오왕추갱수)

부차가 노래 말을 불쾌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게 하였다. 어린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노래는 누가 가르쳐 주어 부르게 되었는가?」

아이들이 말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차가 화를 내며 말했다.

「과인은 하늘이 보내 주어 태어나게 했으며 신이 도와 일을 이루고 있는데 어찌 내가 수심에 잠겨 있다고 하느냐?」

부차가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자 서시가 가까스로 말려 그만두게 했다. 백비가 들어와 말했다.

「봄이 오면 만물은 기뻐하며, 겨울이 오면 만물은 슬퍼함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어찌하여 근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부차가 즉시 기쁜 마음이 되었다. 오궁에서 서시와 3일을 지낸 다음 어가를 움직여 오도로 돌아왔다.

3. 子胥之死(자서지사)

- 만고의 열혈남아 오자서의 죽음 -

이윽고 오왕이 전당에 오르자 만조백관이 모두 달려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개선한 공을 치하했다. 자서 역시 조당에 들어왔지만 그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차가 오자서를 비난하며 말했다.

「경은 과인에게 제나라에 대한 정벌은 옳지 않다고 극력 간했으나 오늘 내가 오히려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겨 공을 이루고 돌아왔소. 그래서 유독 경 한 사람만이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이것은 마땅히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오?」

오자서가 두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치며 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내 놓으며 말했다.

「하늘은 장차 사람이 나라를 망하게 할 때는 먼저 조그만 기쁨을 내려 주고, 후에 커다란 환란을 내리는 법입니다.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긴 일은 조그만 기쁨에 불과한 일입니다. 신은 조만 간에 커다란 환란이 들어 닥칠 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부차가 얼굴빛을 바꾸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동안 상국을 오래 동안 보지 않아 내 귀가 한 동안 조용하더니만 이제 다시 와서 시끄럽게 굴며 성가시게 하는 구려!」

부차가 말을 마치고 즉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런 자세로 옥좌에 앉아서 오래 동안 눈을 크게 뜨고 무엇인가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여러 신하들이 물었다.

「대왕께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내가 조금 전에 보았는데 네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잠깐 사이에 네 사람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다시 전당 아래에 두 사람이 싸우더니 북쪽을 향해 서 있던 사람이 남쪽을 향해 서 있던 사람을 죽였다. 여러분들도 그 일을 보았는가?」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자서가 나서서 말했다.

「네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사방으로 달아난 일은 전하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짐을 의미하며 전당 밑에서 도적 두 명이 싸운 일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한다는 뜻이니 즉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왕께서 만일 경계의 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신다면 필시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하는 화를 입을 것입니다.」

부차가 노하여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 불길하도다. 내가 더 이상 그대의 말을 듣지 않겠노라!」

백비가 나서서 부차의 비위를 맞추었다.

「네 사람이 흩어져 사방으로 달아남은 우리 오나라 궁궐의 뜰로 달려온다는 뜻이니 이것은 곧 오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되어 주나라를 대신하게 됨을 말합니다. 또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했음은 신하가 그 군주를 범하는 뜻이니 우리가 주나라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태재의 말이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 주는 구려! 상국은 이미 나이가 들었으니 어찌 내가 취할 수 있겠소?」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월왕 구천이 월나라의 여러 신하들을 이끌고 몸소 부차에게 내조하러 왔다. 부차가 제나라와 싸워서 얻은 승전을 축하한 구천은 오나라의 군신들에게 모두 뇌물을 바쳤다. 백비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제후들이 모두 우리 오나라 궁궐의 뜰 안으로 달려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왕이 문대에 술상을 준비하라 이르고 구천을 접대했다. 구천이 곁에 앉아서 부차를 모시고 여러 대부들은 그 곁에서 시립했다. 부차가 말했다.

「과인이 듣기에 ‘임금 된 자는 공이 있는 신하는 잊어서는 안 되고 아비 되는 자는 힘을 다하여 자기를 받드는 아들을 잊으면 안 된다’했다. 오늘 태재 백비는 과인을 위해 군사를 훈련시킨 공이 있으니 내가 장차 그를 상경으로 삼고자 한다. 또한 월왕 구천은 과인을 효로써 받들며 시종일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니 내가 장차 월나라의 영토를 더 넓혀 주어 내가 제나라를 정벌하는데 원군을 보내 세운 공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데 여러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여러 군신들이 모두 대답했다.

「대왕께서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애써 노력한 자에게는 그 수고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고로 패왕으로써 가져야할 합당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오자서는 갑자기 땅에 엎드리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충신의 입을 막고 간신을 옆에 두어 요사스럽고 아첨하는 말로 굽은 것을 바르다 하고, 어지러운 것을 기르고 간사함을 축적하니, 장차 오나라가 멸망하여 종묘사직은 폐허가 되고 전당은 무너져 잡초만 우거질 것이로다!」

부차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늙은 도적이 어찌 그리 나를 기만하는가? 오나라에 요사스러운 말을 퍼뜨리고 있는 자는 바로 오나라의 정사를 혼자 독차지하여 자기 멋대로 위세를 부려 필경은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네 놈이라는 사실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네가 전왕을 모셨던 사람이라 차마 죽이지 못했다. 오늘부터는 물러나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노신이 만약 불충불신했다면 어찌 내가 선왕의 신하가 되었겠습니까? 제가 처한 처지는 마치 하나라의 충신 용봉(龍逢)이 걸왕(桀王)을, 은나라의 충신 비간(比干)이 주왕(紂王)을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이 비록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군도 역시 죽게 될 운명이니 신은 여기서 대왕과 영원히 이별하여 다시는 살아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자서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박차고 부차 앞을 떠났다. 오왕이 화가 나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자 백비가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신이 듣자오니 자서가 제나라로 사자로 갔을 때 그의 아들을 제나라 신하인 포식에게 맡겼다 합니다. 그것은 자서가 반역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말합니다. 대왕께서는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

부차가 즉시 사자를 보내어 자서에게 촉루검(屬鏤劍)을 전하게 했다. 자서가 사자 편에서 전해 받은 검을 칼집에서 뽑아 손에 들고는 한탄하며 말했다.

「왕이 결국은 나로 하여금 자결을 하도록 하는구나!」

자서가 즉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계단을 내려가 정원의 한 가운데에 서며 하늘을 향하여 소리 높여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옛날 선왕께서 부차 너를 세우려 하지 않으려 했을 때 내가 있는 힘을 다하여 간하여 너를 세웠다. 나는 너를 위하여 초나라를 파하고 월나라를 항복시켜 그 위세가 중원의 제후들을 떨게 만들었다. 오늘 네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나를 죽이는구나! 내가 오늘 비록 죽지만 내일은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너의 사직을 파 해치리라!」

그리고 그의 집안사람들에게 당부했다.

「내가 죽게 되면 나의 눈을 빼서 오성의 동문 밖에 걸어 놓아라! 내가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리라!」

자서가 말을 마치고 손에 들었던 촉루검으로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부차가 보낸 사자가 촉루검을 가지고 부차에게 돌아와 오자서가 죽을 때 한 말을 전했다. 부차가 오자서의 집에 와서 그의 시체를 보고 그의 죄목을 들어가며 말했다.

「자서야! 너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나라의 장래에 대해 안다고 하겠느냐?」

부차가 허리에서 칼을 뽑아 자서의 머리를 베어낸 후에 좌우에게 명하여 오성의 남쪽에 나 있는 반문(盤門)⑤위에 걸어 두도록 하고 그의 시체는 술 담는 가죽 포대에 넣어서 강물 속에 던져 버리라고 명하면서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저 하늘의 해와 달이 너의 뼈를 삭히고, 어별은 너의 살을 삼키며, 너의 뼈는 재로 변할 텐데, 네가 무슨 수로 이 세상 일을 볼 수 있겠느냐?」

부차의 명을 받은 사람이 시체를 넣은 가죽 부대를 강속에 던지자 곧이어 오자서의 시신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얼마 후에 오자서의 시신을 넣은 가죽부대는 강물에 밀려 떠내려가다 격랑에 휩쓸려 강변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지방의 토인들이 두려워하여 아무도 몰래 시체를 취하여 오산(吳山)에 묻었다. 후세에 이르러 오산을 서산(胥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오늘도 서산에는 자서의 사당이 있다. 농서거사(隴西居士)가 고시 한편을 써서 오자서의 일생을 노래했다.

其一

장군은 어려서부터 영민 용맹하였고

빼어난 영웅의 기상은 천고에 따를 자 없었다.

하루아침에 간신의 참소를 입어 부형이 살해되니

장강을 건널 때 형초를 망하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將軍自幼称英武(장군자유칭영무)

磊落雄才越千古(뢰낙웅재월천고)

一旦蒙讒殺父兄(일단몽참살부형)

襄流誓濟呑荊楚(양류서제탄형초)

其二

활을 둘러메고 도망치던 망명객은 어디로 향했는가?

정과 송 두 나라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소관의 빗장을 넘을 때 날게 없음을 걱정하다가

장군의 귀밑털은 하루저녁 사이에 하얀 서리로 변했도다!

貫弓亡命欲何之(관궁망명욕하지)

滎陽睢水空棲遲(형양수수공서지)

昭關鎖鈅愁無翼(소관소춸수무익)

鬢毛一夜成霜絲(빈모일야성상사)

其三

완사녀와 어장인은 깊은 물에 빠져 죽게 했으며

피리를 불며 오나라 거리를 돌아다니다

어장검 하나로 군신의 자리를 정하게 하고

다시 강병을 기르기 위해 손자를 천거했다.

浣女沉溪漁丈死(완녀심계어장사)

簫聲吹入吳人耳(소성취입오인이)

魚腸作合定君臣(어장작합정군신)

復爲强兵進孫子(복위강병진손자)

其四

다섯 번의 싸움 끝에 곧바로 초궁으로 쳐들어가자

초왕은 눈물을 흘리며 운중으로 달아났다.

굴묘편시(掘墓鞭尸)로 철천지원수를 갚았음은

정기가 해를 뚫어 긴 무지개를 만들었음이라!

五戰長驅据楚宮(오전장구거초궁)

君王含淚逃雲中(군왕함루도운중)

掘墓鞭尸吐宿恨(굴묘편시토숙한)

精誠貫日生長虹(정성관일생장홍)

其五

영웅은 다시 오나라의 기업을 바로 세워

부초에서의 일전으로 월나라를 굴복시켰다.

부중어별(釜中魚鼈)의 월왕은 백비와 부차에 의해

산으로 돌아간 호랑이가 되어 이빨을 갈았다.

英雄再振匡吳業(영웅재진광오업)

夫椒一戰棲强越(부초일전서강월)

釜中魚鼈宰夫手(부중어별재부수)

縱虎歸山還自嚙(종호귀산환자교)

其六

오나라의 고소대에서는 서시의 웃음소리만 높았고

간신의 아첨하는 소리에 충신만 죽었다.

가련하구나! 오나라의 두 임금을 섬겨 공을 세웠음에도

다툼의 뒤끝에 뒤집어 잡은 촉루검이라!

高蘇臺上西施笑(고소대상서시소)

讒臣称賀忠臣弔(참신칭하충신조)

可怜兩世輔吳功(가령양세보오공)

到鬪飜把屬鏤報(도투번파속루보)

其七

치이⑥는 격랑을 타고 전당의 파도에 섞이어

아침과 저녁마다 쉬지 않고 소리쳐 외쳤다.

오월의 흥망은 이왕 지나간 일이지만

충성스러운 혼백은 천고의 한이 되어 풀지 못했도나!

鴟夷激氣錢塘潮(치이격기전당조)

朝朝暮暮如呼號(조조모모여호호)

吳越興衰成往事(오월흥쇄성왕사)

忠魂千古恨難消(충혼천고한난소)

4. 螳螂捕蟬 黃雀在后(당랑포선 황작재후)

- 매미를 잡으려고 노려보고 있는 버마재비는 참새가 뒤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는 줄 모른다.-

오자서를 죽인 부차는 태재 백비를 올려 상국으로 삼았다. 다시 월나라의 봉지를 더해 주려했으나 구천이 고사하여 그만 두었다. 오나라를 방문하여 부차의 개선을 축하하고 월나라로 귀국한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월왕 구천의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마음이 더욱 교만방자하게 된 부차는 수만 명의 군사를 선발하여 강수와 회수 사이에 한구(邗溝)⑦라는 운하를 파는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부차는 두 강을 연결하여 동북쪽으로는 사양호(射陽湖)⑧로 통하게 하고 북쪽으로는 기수(沂水), 서쪽으로는 제수(濟水)까지 배를 타고 사통팔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부차가 또다시 군사를 이끌고 중원으로 나아가 회맹을 주재하여 패자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태자우(太子友)가 간절히 간하고자 했으나, 부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다른 일을 빗대어 말해 그 부친을 깨닫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맑은 아침에 태자가 의복과 신발이 모두 물에 젖은 채로 탄궁과 탄환을 손에 들고 후원에서 나와 부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 나왔다. 부차가 보고 괴이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태자우가 대답했다.

「제가 후원을 거닐고 있는데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어 가까이 가서 봤습니다. 그 매미는 시원한 가을바람에 길게 소리를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미는 버마재비가 나무 가지를 타고 그의 긴 허리를 끌고 기어와 접근해 와서 자기를 잡아먹기 위해 노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매미만을 잡아먹을 생각으로 골몰해 있던 그 버마재비도 숲 속의 녹음을 배회하다가 자기를 발견한 참새가 자기를 쪼아 먹으려 하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새도 또한 버마재비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소자가 탄궁에 탄환을 재어 자기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소자 또한 제 옆에 물구덩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발을 잘못 디뎌 구덩이 속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그런 사연으로 인해 저의 의복과 신발이 물에 적시게 되어 부왕의 웃음을 사게 되었습니다.」

부차가 듣고 말했다.

「너야말로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후일의 화근을 생각하지 않으니 천하에 어리석기가 어찌 이리 심하단 말인가?」

태자우가 대답했다.

「천하에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습니다. 노나라는 주공의 후예로써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 이웃나라들을 침범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웃인 제나라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노나라를 정벌하여 그들의 소유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오나라가 나라 안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수천 리를 행군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리라는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오나라 또한 제나라를 크게 파하고 그 땅이 자기의 소유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월왕이 자기나라의 결사대를 이끌고 바다로 나온 후에 다시 삼강⑨의 어귀를 타고 태호(太湖)로 들어와 우리 오나라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궁궐을 불태울 생갹을 모르고 있으니 천하의 어리석은 일이 이 보다 더하겠습니까?」

부차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그 말은 옛날 오원이 나에게 귀가 아프도록 한 말인데 어찌하여 네가 다시 거론하여 나의 큰 계책을 깨뜨리려고 하느냐? 더 이상 왈가왈부하면 너는 네 아들이라고 하지 않겠다. 」

5. 越王襲吳(월왕습오)

- 오왕이 외정을 나간 틈을 이용하여 오도를 기습한 월왕 구천 -

태자우가 머쓱해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부차 앞에서 물러났다. 부차가 즉시 태자우에게 왕자지(王子地)와 왕손 미용(弥庸)을 데리고 나라를 지키도록 명하고 자기는 친히 오나라의 모든 정예병들을 이끌고 한구의 운하를 이용하여 배를 타고 북상하여 중원을 향해 진군했다. 오나라의 대군이 탁고(橐皐)⑩ 땅에 이르자 부차는 노애공을 불러 회맹을 행했다. 계속해서 서진하다가 운(鄖)⑪ 땅에 이르렀을 때 다시 부차의 부름에 응하여 당도한 위출공(衛出公)과 송나라의 우사(右師) 황원(皇瑗)과 함께 오(吳), 노(魯), 위(衛), 송(宋) 등의 4국이 회맹을 행했다. 이윽고 황지(黃池)⑫에 당도한 부차는 중원의 제후들을 모두 불러 회맹을 행하는 자리에서 당진과 맹주의 자리를 다투려고 했다.

한편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월왕 구천은 오왕이 군사를 이끌고 중원으로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범려에게 오나라를 공격해도 좋은지를 물었다. 범려가 가하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구천은 수군 2천명, 월나라의 정예병 4만 명, 그리고 월나라 사대부들의 자제들로 구성된 근위군(近衛軍)⑬ 6천 명을 이끌고 회계에서 수로를 이용하여 전당강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바다로 나와 삼강구(三江口)를 이용하여 태호로 들어가 오도를 기습했다. 월나라의 장군 주무여(疇无餘)가 선봉을 맡아 군사를 이끌고 먼저 오성의 교외에 이르자 오나라 장군 미용(弥庸)이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그 앞을 막았다. 두 사람의 장수가 앞으로 나와 몇 합을 싸우던 중 오성에 있던 왕자지가 구원군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와 우회하여 주무여가 이끄는 월나라의 선발대를 배후에서 협공하였다. 주무여는 두 장수의 협공을 받고 고전하다가 타고 있던 병거가 넘어져 오군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다음날 월왕 구천이 이끄는 월군의 본대가 일제히 오성 밖에 당도하여 주무여가 이끌던 선봉대와 합류했다. 태자우가 성안에서 농성하며 굳게 지키려고 하자 미용이 말했다.

「월나라 군사들은 아직도 우리 오나라를 두려워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먼 길을 와서 지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만 더 싸워 승리를 취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도망칠 것입니다. 싸워서 혹시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을 때 지켜도 늦지 않습니다.」

태자우는 미용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겨 즉시 그에게 군사를 끌고 나가 적군을 막게 하고 자기는 본대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월왕 구천이 친히 진영 앞으로 나와 싸움을 독려하며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이윽고 범려와 설용(泄庸)이 이끄는 양익의 군사들도 마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기세로 휘파람을 불며 달려와 구천의 본진과 합류했다. 그때 오나라의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정예병들은 모두 오왕을 따라 원정길에 나가고 도성 안에 남은 군사들은 모두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노약병들 뿐이었다. 그 반면에 월나라의 군사들은 몇 년간을 궁노술과 격검술을 익힌 병사들이라 하나같이 굳세고 정예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범려와 설용은 지모와 용기를 겸전한 백전노장이었다. 이윽고 두 나라 군사가 교전에 들어가자 오나라 장수 미용과 그 군사들은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월군의 기세를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하고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 미용은 싸움 중에 월나라의 장수 설용에게 잡혀 죽었다. 월나라 대군 속에 갇힌 태자우는 있는 힘을 다해 포위망을 뚫기 위해 좌충우돌했으나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몸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한 태자우는 월군에게 사로잡혀 치욕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스스로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월나라의 대군은 미용과 태자우의 군사들을 함몰시키고 오성 밑에까지 쇄도했다. 왕자지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성안의 백성들을 이끌고 결사적으로 항거하면서 한편으로는 중원에 원정 중이던 부차에게 사자를 보내 사태의 위급함을 알렸다. 별도로 편성한 수군 2천 명을 태호의 호반에 주둔케 하고 자기가 거느린 본대의 병력은 오성의 서문(胥門)과 창문(閶門) 사이에 진채를 세워 주둔시킨 월왕 구천은 범려에게 고소대를 불태우라는 명을 내렸다. 고소대의 불은 한 달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고 계속 탔다. 그밖에 부차가 타고 놀던 큰배 여황(餘皇)과 대주(大舟) 등은 모두 태호 안의 한 곳으로 모아 두었다. 오나라 군사들은 감히 성 밖으로 싸우러 나오지 못했다.

6. 黃池爭歃(황지쟁삽)

- 황지에서 당진과 맹주를 다투는 오왕 부차 -

한편 노후와 위후를 대동하고 황지에 당도한 오왕 부차는 즉시 사자를 당진에 보내 진정공(晉定公)에게 회맹에 참석하라고 청했다. 정공은 오군의 위세에 눌려 감히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부차가 왕손락을 시켜 당진의 상경 조앙(趙鞅)과 의논하여 회맹의 맹세문에 이름을 올리는 순서를 정하게 했다. 조앙이 왕손락을 향해 말했다.

「당진은 대를 이어 오래 동안 중원의 맹주였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오나라 다음에 이름을 올려야 한단 말이오?」

「당진의 개조는 당숙우로 곧 주성왕의 동생이고 우리 오나라의 개조는 태백(太伯)⑭ 님이라 곧 문왕의 큰할아버지가 되오. 항렬의 높고 낮음을 따지면 당진의 개조는 우리 오나라의 개조인 태백님보다 까마득한데 어찌 당진이 맹주가 될 수 있겠소? 하물며 비록 옛날에 당진이 송이나 괵(虢)에서 맹회를 주재했다지만 모두 초나라에게 맹주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소? 그런데 오늘날 어찌하여 우리 오나라 위에 군림하려 하시오?」

왕손락과 조앙이 매일 설왕설래하여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본국을 지키고 있던 왕자지로부터 밀사가 와서 급보를 전했다.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서 태자를 죽이고 고소대를 불태웠습니다. 현재 도성을 포위하여 사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부차가 크게 놀랐다. 백비가 칼을 뽑아 급보를 전한 사자를 찔러 죽였다. 부차가 놀라 물었다.

「경은 무슨 연고로 아무 죄도 없는 사자를 죽였는가?」

「일이란 허와 실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 국내 사정을 이곳 제후들이 모르고 있는데 만일 사자를 살려 두었다가는 국내의 사정이 세어 나가 제와 당진이 우리의 위급한 상황을 틈타 공격하게 되면 대왕께서 어찌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겠습니까?」

「경의 말이 옳소! 그러나 우리 오나라와 당진이 아직까지 맹주의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다투고만 있어 언제 정해질지 모르고 있소. 그러니 본국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고 있다 하니 회맹을 중단하고 돌아가야 하겠소? 아니면 회맹에 참석한 제후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먼저 회맹을 끝내야 하겠소?」

「두 가지 다 행하기는 불가합니다. 회맹을 중단하고 귀국길에 오르면 우리의 위급한 처지가 제후들에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가 회맹을 주재하여 맹주 자리를 다툰다면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회맹에서의 모든 일은 당진의 뜻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필히 회맹을 주재하여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여야만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급한 순간에 어떻게 해야 맹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소?」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으니 왕께서는 북소리를 크게 내어 군사를 동원하고 싸움을 걸어 당진의 군신들에게 위협을 가하여 무력으로 차지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날 밤 부차가 영을 내려 군사와 말들을 모두 배불리 먹인 후에 입에는 함매를 물게 하여 바람과 같은 동작으로 당진의 영채로 달려가게 하였다. 이윽고 오군은 당진의 영채에 일리쯤 다가가 방진을 쳤다. 백 명의 군사를 일행(一行)으로 하고 일행마다 큰 깃발을 세우고 120 행을 일면(一面)으로 배치했다. 그 중 오나라의 중군은 병거, 깃발, 갑옷 그리고 화살까지도 모두 흰색으로 무장하여 마치 하얀 띠 풀이 핀 것처럼 보여 장관을 이루었다. 오왕 부차가 친히 손에는 부월을 들고 큰 백기 밑의 중군 한 가운데에 섰다. 좌측에 진을 치고 있던 좌군도 역시 120행이었는데 병거나, 깃발이나, 갑옷, 그리고 화살까지도 모두 붉은 색이라 그 진영은 마치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좌군은 태재 백비가 지휘했다. 우측에 진을 치고 있던 우군도 역시 120행으로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어 그것은 마치 먹물로 된 늪처럼 보였다. 우군의 대장은 왕손락이었다. 부차가 이끌고 온 오나라의 갑병들은 모두 합해 3만 6천 명이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 오는 새벽이 되자 부차가 친히 북채를 손에 잡고 북을 치자 군중의 만 개에 달하는 북이 일제히 울리고 이어서 종과 방울 소리와 함께 정녕(丁寧)⑮과 순우(錞釪)⑯를 두드리는 소리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거기다가 삼군이 지르는 함성이 더하여 온 천지가 진동했다. 당진의 군사들이 그 연고를 몰라 매우 놀랐다. 즉시 당진군의 진영에서 대부 동갈(董褐)을 오군 진영에 보내 무슨 일 때문인지를 알아보게 했다. 부차가 동갈에게 직접 말했다.

「주왕께서 유지를 내려 나에게 중화의 맹주가 되어 제후국들의 잘못을 바로 잡으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당진의 군주가 천자의 명을 거역하고 맹주의 자리를 나와 다투어 시간을 끌며 회맹을 행하게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이에 과인은 천자의 사자가 왕도에 오가는 번거로움을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왕성의 울타리 밖에서 친히 왕명을 받들고자 하니 따르겠는지 아니면 따르지 않겠는지 오늘 결판을 내야 되겠다.」

동갈이 돌아와 정공에게 오왕의 말을 전했다. 그때 정공의 곁에 앉아 있는 노와 위 두 나라 군주의 모습을 본 동갈은 자세한 말을 못 올리다가 기회를 보아 별도로 조앙에게 조용히 말했다.

「제가 보건대 오왕은 입으로는 비록 완강하게 말하지만 그 기색은 매우 다급했습니다. 아마 마음속에 큰 걱정거리가 있는 듯 했습니다. 혹시 월나라가 오도를 공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오왕에게 맹주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면 필시 그 독을 우리에게 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로 하여금 맹주의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대신 왕호는 버리게 하여 명분을 취하십시오.」

조앙이 정공을 독대하여 동갈의 말을 전했다. 정공은 다시 동갈을 오나라 진영으로 보내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군주께서 왕명을 받아 제후들에게 선포하려 하는데 저희 군주께서 어찌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상국은 작위가 백작에 불과한데 오왕이라고 호칭한다면 주왕실과는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군주께서 만약 왕호를 쓰는 대신에 공라는 호칭을 쓰신다면 우리 당진국은 군주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부차는 즉시 동갈의 전하는 말에 동의를 표하고 군사들을 거두어 원래의 진영으로 물리쳐 막사에 머물도록 명했다. 제후들을 불러 자리를 같이한 부차는 자신의 칭호를 오공이라고 부르게 하고 회맹의 의식을 진행하여 선두에 서서 희생의 피를 얼굴에 발랐다. 오왕의 뒤를 다음에 당진, 노, 위의 군주들이 작위의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회생의 피를 발랐다.

부차는 회맹의 절차를 끝내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강수와 회수를 연결한 한구의 운하를 이용하여 회군 길에 올랐다. 오군이 귀환하던 도중에 사태의 위급함을 알리는 급보가 잇달아 당도하자 이미 자기들의 도성이 월나라에 의해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나라 군사들은 모두 놀라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또한 몇 천리를 길을 원정하여 몸과 마음은 지쳐 있던 군사들은 싸우려는 투지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오왕이 간신히 군사들을 독려하여 행군하다가 이윽고 월나라 군사들과 조우하여 서로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이어서 두 나라 군사들이 교전에 들어갔으나 오나라 군사들은 사기충천한 월나라 군사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대패했다. 부차가 두려워하며 백비를 향해 말했다.

「월나라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의 말을 따라 월왕을 자기나라로 돌려보냈소. 경이 마땅히 나를 위해 월나라 진영으로 가서 화의를 청해 성사시키시오. 만일 화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자서가 찔러 죽은 촉루검이 아직 여기에 있으니 이 칼로 자서의 뒤를 따르시오.」

백비가 즉시 월나라 진영으로 가서 구천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리고 오나라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빌었다. 옛날 월나라처럼 이번에는 오나라가 월군을 위해 호군의 예를 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범려가 월왕에게 말했다.

「오나라는 아직 망할 때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잠시 화의를 받아 들여 태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오나라의 국세는 이후로는 옛날처럼 그렇게 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범려의 말을 따라 오나라의 화의 요청을 받아들인 구천은 오나라가 마련한 음식을 군사들에게 베불리 먹인 후에 군사를 이끌고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이때가 주경왕 38년의 일로써 기원전 482년의 일이었다.

7. 獲麟(획린)

- 노나라가 기린을 죽이다. -

그 다음해 즉 주경왕 39년에 노애공은 대야택(大野澤)⑰에 사냥을 나갔다. 애공을 따라간 숙손씨의 가신 서상(鉏商)이라는 사람이 짐승 한 마리를 잡았다. 몸은 노루와 같이 생겼고 꼬리는 소와 같았으며 그 뿔에는 살이 붙어 있었다. 그 짐승을 괴이하게 여긴 서상이 죽이고 사체를 도성으로 가져와서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죽은 짐승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기린(麒麟)이라는 짐승이오.」

공자가 기린의 뿔을 살펴보니 붉은 끈이 그 때에도 여전히 메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옛날 공자의 모친 안징재가 공자를 낳았을 때 메달아 놓았던 끈임을 알 수 있었다. 공자가 보고 한탄하였다.

「나의 도는 결국은 끝이 났단 말인가!」

공자가 제자들에게 명하여 기린의 시체를 거두어 묻도록 했다. 오늘도 산동성 거야현(巨野縣) 고성 동쪽 10리 밖에 흙으로 쌓은 대가 있는데 그 크기가 가로 세로 각각 큰 걸음으로 약 40여 보에 달하는 획린퇴(獲麟堆)가 바로 그곳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시켜 기린을 묻은 곳이다. 공자가 거문고를 가져오게 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다.

밝은 임금이 계실 때에나

기린과 봉황이 세상에 나와 노니는 법인데

지금은 밝은 임금도 없는데

무엇을 구하려 나다녔단 말인가?

기린이여! 기린이여! 내 마음이 괴롭구나!

明王作兮麟鳳游(명왕작혜린봉유)

今非其時欲何求(금비기시욕하구)

麟兮麟兮我心懮(린혜린혜아신우)

이 노래는 《노사(魯史)》⑱에 실려 있다. 《노사》는 은공(隱公) 원년인 기원전 722년에 시작하여 기린을 잡던 해인 노애공 14년 기원전 481년까지의 242년 동안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공자가 《노사》필삭(筆削)을 가하여《춘추(春秋)》라 명했다. 《춘추》는 《주역(周易)》, 《시경(詩經)》, 《상서(尙書)》, 《예기(禮記)》, 《악기(樂記)》와 더불어 육경이라 한다.

8. 전씨대제(田氏代齊)

- 전씨들이 제나라의 국권을 차지하다. -

그해에 제나라 우상 진항은 오나라가 월나라와 싸워 크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강력한 제후국들도 더 이상 없고 또한 나라 안에는 진씨들과 세력을 겨룰 씨족들이 더 이상 없었지만 단지 감지 한 사람만이 진씨들의 장애물로 남게 되었다. 진항이 즉시 그의 아들인 진역과 진씨 종족인 진표(陳豹)를 시켜 감지를 공격하여 살해했다. 제간공은 란을 피해 성 밖으로 달아났으나 진항이 뒤를 쫓아가 잡아서 죽이고 다시 감지의 씨족들과 그 일당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몰살 시켰다. 진항이 간공의 동생 오(驁)를 제후의 자리에 앉혔다. 이가 제평공(齊平公)이다. 공자가 제나라에서 변란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목욕재계한 후에 노애공을 찾아가 군사를 청하여 진항에게 시군의 죄를 물으라고 하였다. 애공이 공자에게 당시 노나라의 국정을 전단하고 있던 삼가의 수장들과 상의해 보라고 말했다. 공자가 듣고 말했다.

「신은 나라에 군주가 있음을 알뿐이지 삼가가 있음은 알지 못합니다.」

진항도 역시 중원의 제후국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자기가 저지른 시군의 죄를 묻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제나라가 침략하여 차지한 노와 위 두 나라의 옛 땅을 모두 돌려주고 북쪽으로는 당진의 정권을 맡고 있던 네 집안에 뇌물을 바쳐 좋은 관계를 맺었다. 다시 남쪽으로는 오와 월 두 나라에 수호를 구하는 조빙사절을 보냈다. 다시 진항은 진환자(陳桓子)⑲)가 옛날에 한 일을 본받아 재물과 곡식을 창고에서 꺼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했다. 제나라 백성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진항에게 복종했다. 이어서 포씨(鮑氏), 안씨(晏氏), 고씨(高氏), 국씨(國氏) 등 제나라의 여러 세가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제나라의 공족 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땅을 떼어 봉읍으로 주고, 그곳으로 내려가 살게 했다. 다시 나라 안의 여인들을 선발하여 그 키가 7척 이상이 되는 사람은 백여 명 선발하여 모두 자기 집 뒤채에 살게 하고는 자기 가문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들어 그 여인들과 관계를 하게 하여 사내아이 7십여 명을 낳게 하였다. 이것은 진씨의 종족들을 번성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이윽고 제나라의 도성 임치성 밖 교외의 지방관리들은 진씨가 아닌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것은 후의 일이다.

9. 子路結纓(자로결영)

- 갓끈을 고쳐 매어 관모를 바로 쓰고 죽은 자로 -

한편 위나라 세자 괴외(蒯聵)는 척(戚) 땅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아들 출공(出公) 첩(輒)이 위후의 자리에 앉아 부친의 귀국을 방해하고 있었다. 공자의 제자로써 위출공을 모시던 대부 고시(高柴)⑳가 위후에게 부친을 맞이하여 그의 군주 자리를 양보하라고 간하였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괴외에게는 손위 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대부 공어(孔圉)에게 출가하여 공희(孔姬)라고 불렀다. 공희는 공어와의 사이에 리(悝)라는 아들을 낳았다. 공어가 젊은 나이에 죽자 공리가 그 뒤를 이어 대부가 되어 출공을 모시면서 위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했다. 공씨의 가신 중에 이름이 혼량부(渾良夫)라고 부르는 사람은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공희와 정을 통했다. 공희가 혼량부를 척 땅으로 보내어 그의 동생인 괴외를 위문하게 했다. 괴외는 혼량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대가 능히 나로 하여금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대와 면류관을 나누어 쓰고 어가를 같이 타고 다니겠노라! 또한 그대가 죽을죄를 짓더라고 세 번은 용서하겠노라!」

혼량부가 돌아와 공희에게 괴외의 말을 전했다. 공희가 혼량부에게 부인의 복장으로 변장하여 척 땅으로 가서 괴외를 모셔 오게 했다. 그날 밤이 깊어지자 혼량부와 괴외가 모두 부인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장사 석걸(石乞)과 맹염(孟黶)이 모는 온거를 타고 성안으로 잠입했다. 그들은 모두 궁궐에서 일하는 비첩이라고 둘러대고 성문 앞이 혼란한 때를 틈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공희의 집에 숨었다. 공희가 그의 동생인 괴외를 보며 말했다.

「네가 위후의 자리에 앉고 못 앉고는 모두가 내 아들 리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 리는 궁궐에서 연회가 열려 술을 마시고 있다. 일단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붙들어서 위협을 가하여 우리말을 듣게 한다면 일은 이미 이루어 진 것이나 다름없다.」

공희가 석걸, 맹염, 혼량부 등에게 명하여 갑옷과 칼로 무장을 갖추어 기다리게 하고 괴외는 대청 위의 광 속에 숨겼다. 그리고 얼마 후에 궁궐의 연회가 파해 공리가 술에 취해서 돌아왔다. 공희가 아들 공리를 불러서 물었다.

「부모의 친척 중에 부계의 가장 중한 사람은 누구이며 모계의 가장 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아느냐?」

「부계의 가장 중한 친척은 백부이고 모계의 가장 중한 친척은 외숙부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이미 외숙이 모계의 가장 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아직까지 나의 동생이며 너의 외숙부 되는 분을 불러다 모시지 않는가?」

「아들을 폐하고 손자를 세운 일은 선군의 유명이었습니다. 어찌 제가 선군의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공리가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희가 석걸과 맹염을 시켜 화장실 곁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공리가 일을 마치고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붙잡아 데리고 와서 자리에 앉히고 말했다.

「외숙부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는 말할 틈을 주지도 않고 석걸과 맹염에게 다시 명하여 우격다짐으로 공리를 떠밀어 대청 위로 올려 보내 괴외 앞에 대령시켰다. 이미 괴외의 곁에 앉아 있던 공희가 공리를 보더니 소리쳐 꾸짖었다.

「태자인 너의 외숙부가 여기에 와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인사를 올리지 않느냐?」

공리가 어쩌지 못하고 괴외를 향해 절을 올렸다. 공희가 다시 공리에게 소리쳤다.

「너는 지금부터 너의 외숙부의 명을 따르겠는가?」

공리가 순순히 대답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

공희가 즉시 숫되지를 잡아 그 피를 받아서 얼굴에 피를 바르며 서로 맹세하도록 했다. 다시 석걸과 맹염을 대청에 머물며 공리를 지키라고 명한 공희는 그 아들 공리의 이름으로 가갑들을 모두 모아 혼량부에게 주어 궁궐을 습격하도록 했다. 그때 술에 잔뜩 취해서 막 침실에 들려던 위출공 첩은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자 좌우를 시켜 공리를 입궐하라 명했다. 좌우에 있던 시종이 출공에게 아뢰었다.

「란을 일으킨 자는 바로 공리입니다.」

출공이 크게 놀라 즉시 궁 안에 있던 보기들을 챙긴 후에 속도가 빠른 경거를 타고 노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위나라의 대신들 중에서도 괴외를 모시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져 같이 달아났다.

당시 자로는 공리의 가신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때 성 밖에 나가 있던 자로는 공리가 습격을 받아 감금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안으로 들어가 공리를 구하려고 했다. 마침 성안에서 나오던 대부 고시(高柴)를 만나게 되었다. 고시는 자로와 함께 공자의 문하에서 같이 학문을 한 사이였다.

고시가 자로를 보고 말했다.

「성문은 이미 폐쇄되었네! 그대는 정사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니 구태여 들어가 화를 당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이미 공씨들의 록을 먹은 사람인데 어찌 감히 앉아서 좌시만 할 수 있겠는가?」

고시와 작별을 고한 자로가 성을 향해 달려갔으나 성문은 과연 닫혀 있었다. 성문을 지키던 관리 손감(孫敢)이 자로를 보고 말했다.

「주군께서는 이미 성문 밖으로 달아나셨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다시 성안으로 들어오려 하는가?」

「나는 남의 록만을 받아먹다가 모시던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달아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돌아왔소.」

그때 마침 성문을 빠져 나온 사람이 있어 그 틈을 타서 성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공리의 집 대청으로 달려갔다. 자로가 공리의 집안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자로가 왔습니다. 공대부는 빨리 내려오시오.」

그러나 공리는 감히 자로의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지 못했다. 자로가 건물에 불을 지르려고 하자 석걸과 맹염이 극을 들고 달려 나와 자로를 찌르고 다시 그의 모자를 메고 있던 끈을 끊어 버렸다. 자로가 극에 찔려 몸에 중상을 입고 곧 숨이 넘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쳤다.

「예란 곧 군자가 죽을지언정 관을 벗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자로는 즉시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하고 끊어진 자기의 관 끈을 다시 붙들어 매더니 이어서 숨을 거두었다.

공리가 괴외를 받들어 위후에 자리에 즉위시켰다. 이가 곧 위장공(衛庄公)이다. 그리고 그의 차자 질(疾)을 태자로 세우고 혼량부를 경으로 삼았다.

그때 위나라에 머물고 있었던 공자는 괴외(蒯聵)가 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고시는 돌아오겠지만 자로는 아마 죽어 돌아오지 못하리라!」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고시는 대의를 아는 사람이니 능히 그 몸을 보전할 수 있으나 자로는 용기가 있고 목숨을 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진실로 목숨을 버릴 때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공자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고시가 과연 달려와서 사제지간이 서로 상견했다. 공자는 자로가 죽은 것에 슬퍼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시가 살아 돌아온 것에 기뻐도 했다. 위나라의 새로운 군주가 된 위장공 의 사자가 고시의 뒤를 곧바로 따라와서 공자에게 말을 전했다.

「새로 즉위하신 과군께서는 평소에 선생을 경모해 왔습니다. 이에 감히 별미를 한 가지 보내셨습니다.」

공자가 절을 올리고 위후가 보낸 물건을 받아 뚜껑을 열고 살펴보니 고기로 담근 젓갈이었다. 공자가 황급히 제자들에게 명하여 뚜껑을 다시 닫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사자를 향해 물었다.

「이것은 나의 제자 중유(仲由)의 시체로 담근 육젓이 아닙니까?」

사자가 놀라 물었다.

「이것을 어찌 아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위후가 저에게 줄 물건이 있겠습니까?」

즉시 제자들에게 명하여 육젓을 땅에 묻도록 명한 공자는 땅에 엎드려 통곡했다.

「나는 중유가 아직 혹시 살아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가 정말로 죽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위후가 보낸 사자는 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공자도 병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때 공자의 나이 73세로 주경왕(周敬王) 41년 즉 기원전 479년 여름철 4월 을축(乙丑) 일이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공자를 찬양했다.

성인께서 니구에서 태어나시어

궐리에서 덕을 쌓으셨다.

나이 칠십에 돌아가실 때까지

사방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양쪽을 넘보는 소정묘를 참하고

협곡에서 제나라를 물리쳤다.

尼丘誕聖(니구탄성)

闕里生德(궐리생덕)

七十昇堂(칩싱승당)

四方取則(사방취즉)

行誅兩觀(행주양관)

攝相夾谷(섭상협곡)

봉황이 재빨리 늙어 버림을 한탄했고

기린이 이유 없이 나타남을 슬퍼하였다.

성인은 천하의 귀감이시며

만고에 빛나시는 사표로다.

嘆鳳遽衰(탄봉거쇠)

泣麟何促(읍린하족)

九流抑鏡(구류억경)

萬古欽躅(만고흠촉)

제자들이 곡부의 북쪽의 아늑한 땅에 공자의 시신을 안장했다. 공자의 무덤 크기는 그 넓이가 일경(一頃)㉑이었고 까마귀나 참새도 무덤 주위에 있던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았으며 누대의 왕조를 내려오면서《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는 봉호를 받았다. 지금은 다시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師)》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다. 온 나라에 문묘(文廟)를 세우고 매 년마다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그 자손들은 대대로 연성공(衍聖公)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대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위장공 괴외(蒯聵)는 공리가 출공의 무리라고 의심하여 술을 실컷 먹이고는 트집을 잡아 쫓아냈다. 공리는 송나라로 달아났다. 위장공은 텅텅빈 나라 안의 창고를 보고 혼량부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어떤 계책을 써야 첩이 가지고 달아난 보기들을 되찾아 올 수 있겠소?」

혼량부가 귀속 말로 조용히 말했다.

「도망간 군주도 역시 주군의 자식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불러오지 않으십니까?」

《제 83회로 계속》

주석

①문상(汶上)/ 현 산동성 제녕시(濟寧市) 북 20키로. 지금의 문상현(汶上縣)과는 동쪽으로 약 20 키로 떨어져 있음.

②박(博)/ 현 산동성 태안시(泰安市) 남동쪽 약 10키로

③영(嬴)/ 현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래무현(萊蕪縣) 북서쪽 20키로

④애릉(艾陵)/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경내 남쪽에 있는 노산(魯山) 서쪽 산록

⑤반문(盤門)/사문(蛇門)과 같이 나있는오성(吳城)의 남쪽에 나있는 문으로써 물이 굽이치는 곳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사문(蛇門)이란 그 있는 곳의 방위(方位)가 사방(巳方) 쪽에 있기 때문이며 십이간지(十二干支)로 말하면 뱀띠에 속한다. 본서 74회 내용 참조

⑥치이(鴟夷)/ 가죽포대를 말한다.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망명한 범려가 자신의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지은 이유는 자기와 비슷한 공을 세웠으나 결국은 그 군주에게 피살되어 가죽포대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운명을 맞은 오자서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⑦한구(邗溝)/ 춘추 말 오나라의 부차가 지금의 강소성 장강 북안에 있는 강도시(江都市)에서 시작하여 회수(淮水) 남안 도시인 회안시(淮安市)까지 굴착한 운하의 이름.

⑧사양호(射陽湖)/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揚州市) 보응현(寶應縣)에 사양호진(射陽湖鎭)에 있었던 호수 이름이다.

⑨삼강(三江)/ 강소성 항주만(杭州灣) 북안으로 흐르는 송강(松江), 루강(婁江), 동강(東江)이 만나는 곳을 가리킨다.

⑩탁고(橐皐)/ 지금의 안휘성 소현(巢縣) 서북의 자고진(柘皐鎭)에 있던 고을이다. 부차가 탁고에서 노애공을 만났다는 기록은 사기 오태백 세가에 나온다. 곡부에서 탁고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500km다. 《사기(史記)․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 「13年 吳召魯, 衛之君會于橐皐」로 되어 있으나 《좌전(左傳)․애공(哀公)》12년 조에는「秋, 衛侯會吳于鄖. 公及衛侯, 宋皇瑗盟, 而卒辭吳盟.」로 되어 있어 부차가 노애공 및 위출공(衛出公) 첩(輒)을 동시에 탁고로 부른 것이 아니라 먼저 노애공을 탁고로 불러서 만나 같이 중원을 향해 행군하다가 지금의 호북성 안륙시(安陸市)에서 위후와 송나라의 우사(右師) 황원(皇瑗)을 불러 회맹을 행한 후에 황지로 향했다. 노애공 12년은 기원전 483년이다.

⑪발양(發陽)

⑫황지(黃池)/ 지금의 하남성 봉구현(封丘縣) 서남. 사마천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 晉定公與吳王夫差盟, 爭長于黃池」라는 기사가 있다. 황지는 황하를 사이에 두고 개봉시(開封市)와 마주하고 있는 고을로 현재는 황하의 북안에 있지만 당시는 황하의 남안 도시였다.

⑬근위군(近衛軍)/ 사마천의 사기에는 「君子六千人」으로 되어있다. -君子則君王親近有恩的 禁衛軍이라 했다.

⑭태백(太伯)/ 주문왕의 조부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주족을 데리고 기산(岐山)으로 이주하고 기산의 원주민 족장의 딸 강원(姜嫄)과 결혼하여 태백(太伯), 우중(虞仲), 계력(季歷)을 낳았다. 고공단보가 계력을 사랑하자 태백과 우중은 남만(南蠻)으로 달아나 후에 오나라를 세운 후세들의 선조가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의 뒤를 이어 서백(西伯) 창(昌)을 낳고 창은 무왕(武王), 주공(周公) 등을 낳았다.

⑮정녕(丁寧)/동정(銅鉦)을 말하며 고대의 행군할 때 치던 종 모양의 동으로 만든 징

⑯순우(錞釪="錞于)/" 동으로 만든 위는 좁고 밑은 넓은 북

⑰대야택(大野澤)/ 춘추시 현 산동성 제녕시 서쪽 거야현(巨野縣) 북쪽에 있었던 큰 소택지. 노나라의 도성인 곡부에서 서쪽으로 약 60키로 거리에 있었음.

⑱노사(魯史)/ 노은공 원년(주평왕 49년/기원전 722년) 시작하여 노애공 14년 (주경왕 39년/기원전 481년)에 끝난 242년 간의 노나라 역사를 기록한 책. 공자가 필삭을 가하여 〈춘추(春秋)〉라고 하였음

⑲진환자(陳桓子)/ 강태공의 후예들인 강씨의 제나라를 빼앗은 전상(田常)의 선조로써 진무우(陳无宇)를 말한다. 봉지의 백성들로부터 부세를 걷을 때는 작은되로 곡식을 꾸어 줄 때는 큰되로 하여 백성들의 인심을 사기 시작했다. 전제(田齊)를 시작한 전화(田和)는 진환자 무우(无宇)의 오대손이다. 진무우에 대한 이야기는 연의 67회에 나온다.

⑳고시(高柴)/ 춘추때 위나라의 대부이다. 공자의 제자이며 공자보다 30세 연하이다. 자로와 함께 위나라에서 벼슬했다. 기원전 521년에 태어났으나 죽은 해는 알 수 없다. 자(字)는 자고(子羔)이다. 신장은 5척에도 못 미쳤으며 그 외모는 못났다. 공자는 그를 가르칠 때 우직하다고 평했다.

㉑일경(一頃)/ 일경은 백무(百畝) 2만 평임.

[평설]

제나라 보다는 월나라를 먼저 정벌해야 한다는 오자서의 충심어린 건의를 물리치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노나라를 구해 제와 노 두 나라를 얻어 당진과 패권을 다투라는 자로(子路)의 유세를 받아들인 오왕 부차가 오나라의 뒤뜰에는 호랑이를 키우면서 중원의 제후들에게 자기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행한 군사행동은 전략상의 중대한 실책이다.

기원전 484년, 오왕 부차가 재차 제나라에 원정하여 애릉(艾陵)에서 제군을 대파하고 개선했다. (기원전 489년에 행해진 일차 정벌전은 제나라가 오나라의 패권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었다.) 오왕은 이 일로 인해 더욱 자기의 실력에 대해 과신을 하게 되어 월나라에 대한 방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기원전 482년 태자 우(友)의 당랑포선(螳螂捕蟬)이란 비유로 중원에로의 원정을 중지하라는 권고를 무시한 오왕 부차는 오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중원 제후들과 황지(黃池)에서 회맹을 주재하고 당진과 맹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다.

이에 월왕 구천은 오왕이 국내의 대부분의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여 황지에 머물고 있던 기회를 틈 타 수군에 해당하는 습류(習流) 2천,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사졸인 준사(俊士) 4만, 월나라 귀족계급의 자제들로 구성된 군자(君子) 6천, 군대의 각급 지휘관 급에 해당하는 제어(諸御) 1천 등의 병력으로 오나라를 기습했다. 구천은 월군을 2대로 나누어 일대는 바다로 나아가 회수에 진입하여 황지에 주둔하던 오군의 퇴로를 끊게 하고, 월군 주력군으로 이루어진 다른 일대는 곧바로 오나라의 도성인 고소성(姑蘇城)으로 진격하여 지금의 소주시(蘇州市) 서남의 횡산(橫山)인 홍상(泓上)에서 태자 우(友)가 이끌던 오나라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고소성을 점령했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 시기나 부서의 구성은 모두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왕 부차와 당진의 정공(定公)은 황지에서 회맹의 맹주 자리를 놓고 서로 대치하면서 상대방에게 어느 한쪽도 양보를 하지 않았다. 후에 부차는 주왕이 그로 하여금 맹주가 되라고 했다는 억지를 부려 가까스로 맹주의 자리에 올라 그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오나라의 도성이 월나라에 의해 점령당한 후였다. 이에 오왕 부차는 황급히 장강과 회수의 수로를 이용하여 오나라로 회군하여 월군에 반격을 가하려고 했으나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한 결과 대패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오왕 부차는 월나라를 향해 강화를 청할 수밖에 없었다. 오왕 부차는 패주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월군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다시 그 자리를 내놔야 했다.

그러나 오나라는 아직 망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범려의 건의를 받아들인 월왕 구천은 부차가 청한 강화를 받아들이고 군사를 거두어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오왕이 장거리 원정으로 인하여 그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있던 기회를 이용하여 오나라를 일거에 멸하지 않은 행위는 전략상 실패인가 아니면 올바른 선택이었던가? 구천이 그 당시 오나라를 멸하지 않고 ‘아직 오나라를 멸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철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사서에는 본서 82회에 내용과 합치되는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지금으로써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1. 당시 장거리 원정에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군의 저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점령한 고소성에서 노획한 전리품과 포로들이 매우 많아 모두를 월나라로 가져가서 월나라의 국력을 신장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오나라의 국민들과 군사들은 이미 피폐해졌고, 날래고 정예한 군사들은 중원으로 원중 중에 제와 당진과의 전쟁에서 모두 죽어 오나라는 이미 월나라의 장중지물(掌中之物)로 여겨 일단 회군했다가 오나라가 더욱 쇠퇴해졌을 때를 기다려 멸망시켜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에 진행된 역사적인 사실들을 살펴보면 당시 오나라는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은 월나라에 의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을 뒤로 미루었던 것은 마치 고양이가 늙은 쥐를 구석에 몰아넣고 잠시 노려보고 있는 경우와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猫要老鼠(묘요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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