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107 
· 어제 :  283 
· 최대 :  2,389 
· 전체 :  1,641,999 
  2004-05-11 12:28:474834 
제76회. 柏擧之戰(백거지전) 掘墓鞭尸(굴묘편시)
양승국
 굴묘편시1.jpg  (242.1K)   download : 147
 제76회- 기원전 506 오초의 백거지전(栢擧之戰) 전개도 001.jpg  (995.5K)   download : 143
일반

제76회 柏擧之戰 掘墓鞭尸(백거지전 굴묘편시)

백거의 싸움에서 이겨 영성을 점령한 오왕 합려와

무덤의 시신에 채찍질하여 부형의 원한을 갚은 오자서

1. 貪功誤國(탐공오국)

- 공을 탐하여 나라를 망친 낭와 -

심윤수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의 퇴로를 끊기 위해 신식(新息)을 향해 출발하고 나자 오와 초 두 나라 군사들은 한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무성흑(武城黑)이 영윤인 낭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했다.

「오나라 군사들이 배에서 내려 뭍으로 올라와 그들의 장기인 배를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이곳의 지리에도 어둡다고 생각한 사마께서 이미 그들을 파할 계책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오나라 군사들은 우리와 수일간 대치하면서 한수를 건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해이해 졌을 것입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우리가 서둘러 강을 건너 그들을 공격하면 승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낭와가 총애하는 장수 사황(史皇)이 곁에 있다가 무성흑을 거들었다.

「초나라 백성들은 영윤 보다는 심사마를 더 따르고 있습니다. 만약 사마가 오나라의 군선들을 불사르고 그들의 퇴로를 막아 파한다면 그 공은 모두가 심사마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관직은 높고 이름은 무거운 영윤께서 수차에 걸쳐 싸움에 패하고 오늘 다시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는 공을 사마에게 양보한다면 싸움이 끝난 다음에는 백관들을 거느릴 수 없어 결국 영윤을 대신하여 초나라의 모든 정사는 사마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무성흑 장군의 말대로 한수를 건너 승부를 한번 겨루어 보십시오」

낭와가 두 사람의 말에 혹하여 즉시 삼군에게 령을 내려 한수를 도하하여 소별산(小別山)① 산록에 진채를 세우게 했다. 사황이 선봉을 맡아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 영채 앞으로 나가 싸움을 걸었다. 손무는 오왕의 동생 부개(夫槪)를 선봉장으로 임명하여 출전시켰다. 부개가 부하들 중 용사 3백 명을 선발하여 출전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단단한 박달나무로 만든 큰 몽둥이로 무장시켰다. 오나라 군사들은 다짜고짜로 앞으로 달려가 초나라 군사들의 머리를 두들겨 패고는 재빨리 물러났다. 초나라 병사들은 일찍이 이런 군진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오나라 군사들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초장 사황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낭와가 사황을 보고 말했다.

「네가 한수를 건너 공격하자고 해서 왔는데 오자마자 싸움에서 패해 놓고 무슨 면목으로 나를 찾아 돌아 왔는가?」

「전투를 벌렸으나 적장을 참하지 못했고, 적진을 공격했으나 적국의 왕을 사로잡지 못했으니 이는 소장이 병가에서 말하는 용장이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오왕의 대채가 대별산(大別山)② 밑에 있으니 오늘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때를 이용하여 대채를 덮치면 오왕을 사로잡아 대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낭와가 사황의 계책을 따라 즉시 정예병 만 명을 뽑아 군장을 갖추게 한 후에 입에는 함매를 물리고 지름길을 이용하여 대별산 뒷면으로 돌아 오왕의 대채를 덮치려고 했다. 초나라의 남은 모든 군사들은 낭와의 군령에 따라 대별산을 향해 진군했다.

한편 손무는 부개가 초전에서 승리하여 오나라의 여러 장수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낭와는 곧 도량이 좁고 요행수나 바라보고 공을 탐하는 자이지만 그 밑의 사황이라는 장수가 있고 또한 초전의 싸움에서 져서 비록 군사가 조금 꺾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초군의 전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소. 초군은 초전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하여 오늘밤에 필시 우리의 대채를 습격해 올 가능성이 있소. 적군의 기습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하오.」

손무가 말을 마치고 령을 내려 부개와 전의(專毅)에게 본부병을 이끌고 대별산 어귀의 좌우에 각각 매복시키고 초각(哨角) 소리가 들리면 매복에서 일어나 초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다시 당과 채 두 나라 군주에게 명하여 부개와 전의의 군사를 뒤에서 각기 호응하도록 했다. 오원에게는 5천의 군사를 주어 소별산 쪽으로 나아가게 하여 낭와의 본진을 습격하게 하고 다시 백비에게 일군을 주어 그 뒤를 받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자산(公子山)에게는 오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기고 그 진채를 한음산(漢陰山)으로 옮겨 초군의 예봉을 피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대채를 비운 다음 깃발을 꽂고 나이가 들고 허약한 군사 수백 명을 남겨 지키게 했다. 손무가 호령을 끝내고 이윽고 시간은 삼고가 되었다. 과연 초나라의 정예병을 이끌고 대별산의 지름길을 가로질러 산 뒤에서 나타난 낭와는 오군의 대채가 적막하여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군사들에게 함성을 지르며 오군의 진영을 향하여 돌격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군의 대채는 텅 비어 있었다. 황망 중에 매복을 두려워한 초군은 오나라 대채를 빠져 나오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에서 초각 소리가 일제히 울리더니 전의와 부개가 이끄는 오나라의 양로 군사들이 좌우에서 일제히 일어나 초군을 협공했다. 낭와는 혼비백산하여 한편으로는 싸우고 한편으로는 달아났으나 이끌고 온 군사들 중 삼분의 일을 잃었다. 낭와가 간신히 부개와 전의의 군사들 공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갑자기 대포소리가 천지를 흔들어 쳐다보니 오른 쪽에는 채후와 왼쪽에는 당후가 초나라 군사들의 퇴로를 끊으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당후가 낭와를 향하여 소리쳤다.

「내 숙상마(驌驦馬)를 돌려주면 네 목숨은 살려주겠다.」

채후도 역시 낭와를 향하여 소리쳤다.

「나의 갖옷과 패옥을 돌려주면 네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낭와는 수치스럽기도 하고 또한 화가 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황망하여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낭와의 처지가 위급한 순간이 되었으나, 마침 무성흑이 일대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당과 채 두 군주의 군사를 크게 공격하여 낭와를 구출했다. 낭와와 무성흑이 몇 리를 앞으로 도망쳐 나아가는데 대채를 지키던 수비병 한 명이 앞으로 달려와 고했다.

「본영의 대채는 이미 오나라 장수 오원에게 점령당하고 사황 장군은 이미 크게 패하여 달아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진 낭와는 패잔병을 이끌고 밤새도록 달려 백거(柏擧)③라는 곳에 당도하여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사황도 역시 백거에 당도하고 그가 이끌던 잔병도 점차로 모여들기 시작하자 다시 영채를 세울 수 있었다. 낭와가 사황을 보고 말했다.

「적장 손무의 용병하는 법이 과연 임기응변에 능하니 이곳을 버리고 영성으로 돌아가 군사를 청하여 오나라 군사들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윤께서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출전한 목적은 한수를 건너 영도로 쳐들어오는 오나라 대군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곳의 진채를 버리고 영도로 도망친다면 오나라 군사들은 우리의 뒤를 추격하여 한수를 건너 곧바로 영성에 당도할 것입니다. 영윤께서는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차라리 이곳에서 남은 힘을 다하여 일전을 벌리다가 싸움 중에 죽는다면 아름다운 이름이나마 후세에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낭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참에 갑자기 군사가 들어와 보고를 하였다.

「초왕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다시 일군을 보냈습니다.」

낭와가 지원군을 맞이하기 위해 영채 밖으로 나가서 보니 지원군의 대장은 곧 원석(薳射)이였다. 원석이 낭와를 보고 말했다.

「세력이 강한 오나라 군사들을 영윤께서 혹시 이기지 못할 것을 걱정하신 주상께서 특별히 저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영윤을 돕도록 명하셨습니다.」

원석이 오나라와 벌린 싸움의 전말에 대해 물었다. 낭와가 싸움의 과정을 원석에게 상세히 설명하면서 얼굴에는 부끄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원석이 듣고 말했다.

「만약 심사마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계책은 오로지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올려 오나라 군사들과 싸우지 않고 굳게 지키며 심사마의 군사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힘을 합하여 양쪽에서 오나라 군사들을 협공하는 것입니다.」

「내가 병사들을 가볍게 움직여 오나라의 진채를 습격하였으나 그들의 함정에 빠져 오히려 우리의 진채를 오나라에 빼앗겼소! 만약에 장군이 이끌고 온 군사와 내가 거느린 군사들을 합한다면 어찌 우리의 힘이 오나라보다 약하다고 할 수 있겠소? 오늘 원기 왕성한 장군의 군사들이 전장에 곧바로 당도하였으니 그 예기를 이용하여 마땅히 죽음을 무릅쓰고 적군과 일전을 벌여야 될 것이오!」

원석이 낭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즉시 낭와의 본대와 떨어져 진채를 따로 세웠다. 명분은 비록 낭와와 기각지세를 이룬다고 했지만 양군이 세운 진채의 거리는 10리가 넘었다. 낭와는 자기의 직위가 높은 것을 믿고 원석을 존대하여 대하지 않았고 원석 또한 낭와가 무능하다고 업신여겨 그의 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마음을 합하여 상의하지 않고 각각 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오나라 선봉 부개가 초나라 장수들이 서로 불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탐지하고는 즉시 오왕 합려를 찾아와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초나라의 영윤 낭와는 탐욕스럽고 밑에 사람들에게 각박하게 대하여 군사들의 인심을 잃고 있습니다. 원석이 비록 지원군을 이끌고 달려 왔지만 서로 간의 약속한 바를 지키지 않고 불화하고 있어 초나라의 삼군은 모두 싸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두 사람이 불화하고 있는 틈을 타서 맹공을 가한다면 틀림없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려는 부개가 초나라 군사들을 습격하자는 계책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개가 합려의 앞에서 물러 나오면서 말했다.

「군주는 직분은 령을 내리는 것이고, 신하된 자의 직분은 군주의 뜻을 행하는 것이니, 내가 혼자서라도 초나라 진영을 공격하리라. 다행히 이번 싸움에서 초나라 군사를 파할 수 있다면 능히 영도(郢都)에 입성할 수 있으리라!」

이윽고 다음 날 새벽이 되자 부개는 본부병 5천 명을 이끌고 낭와의 진채를 향하여 돌격을 감행했다. 손무가 듣고 급히 오원에게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부개를 돕도록 했다. 부개가 낭와의 대채를 덮치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던 낭와의 진영은 크게 흔들렸다. 무성흑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적을 막았다. 혼란 중에 수레에 오르지 못한 낭와는 할 수 없이 걸어서 대채의 후문을 통하여 달아나다가 왼쪽 팔에 화살을 맞았다. 그가 어쩌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마침 사황이 본부병을 이끌고 나타나 낭와를 구출하여 자기의 병거에 태우고 달아났다. 사황이 달아나면서 낭와에게 말했다.

「영윤께서는 스스로 알아서 이곳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소장은 이곳에서 싸우다 힘이 다하게 되면 죽겠습니다.」

전포와 갑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병거를 바꿔 타고 나는 듯이 앞을 향하여 달려가던 낭와는 감히 영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나라 국경을 향하여 달아났다. 염옹이 이 일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갖옷과 패옥을 두르고, 명마가 끄는 수레를 타면서

오로지 천년만년 영도에서 살기를 바랬는데

싸움에서 한번 지니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세상의 백성들에게 탐부의 좋은 교훈이 되었다.

披裘佩玉駕名駒(피구패옥가명구)

只道千年住郢都(지도천년주영도)

兵敗一身逃難去(병패일신도난거)

好敎萬口笑貪夫(호교만구소탐부)

오원이 이끄는 오나라의 구원군이 뒤이어 당도한 모습을 본 초장 사황은 오군이 낭와의 뒤를 쫓을까 걱정하여 즉시 본부병을 이끌고 극을 휘두르며 오나라 진영으로 돌격했다. 그는 좌충우돌하며 오나라의 장수와 병사 2백여 명을 찔러 죽였으나 초군도 와중에 2백여 명 넘게 전사했다. 몸에 중상을 입은 사황은 힘이 다하여 싸움 중에 죽었다. 무성흑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부개와 싸우다가 역시 부개에 의해 목이 잘렸다. 원석의 아들 원연(薳延)은 낭와의 영채가 오군의 습격을 당해 함락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부친에게 고한 후에 군사를 내어 구원하려고 하였다. 원석이 허락하지 않고 스스로 진영 앞으로 나와 추상같은 군령을 내렸다.

「함부로 군중을 어지럽히는 자는 참한다.」

낭와가 이끌던 군사들 중 죽지 않은 패잔병들은 모두 원석의 진영으로 도망쳐 왔다. 만여 명에 달한 패잔병들을 점고한 원석은 그들을 모두 자신의 본대에 합류시켜 초군은 그나마 와중에 어느 정도 세를 회복할 수 있었다. 원석이 말했다.

「오군이 승세를 타고 이곳으로 밀려오고 있으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 예봉을 당할 수 없다. 오군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대오를 정비하여 영도로 퇴각한 후에 다시 그 곳에서 오군을 막을 방도를 찾겠다.」

즉시 군령을 발하여 진채를 걷게 한 원석은 원연으로 하여금 전대를 이끌고 앞서게 하고 자기는 친히 뒤에 남아 오군의 추격군을 막고자 했다. 원석이 영채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은 부개는 초군의 후미를 계속 추격하다가 청발수(淸發水) 강안에 당도했다. 이윽고 초나라 군사들이 배들을 끌어 모아 강을 건너려고 하자 오나라 병사들이 곧바로 그 뒤를 공격하려고 했다. 부개가 오군을 제지하면서 말했다.

「짐승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되돌아서서 덤비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약 우리가 초군을 너무 급하게 몰아친다면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에게 대항할 것이다. 잠시 병사들을 쉬게 했다가 그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우리가 공격하면 이미 강을 건넌 자들이야 죽음을 면하겠지만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군사들은 서로 먼저 건너기 위해 다투느라 어찌 우리와 싸우려는 마음을 갖겠는가? 그리되면 틀림없이 승리는 우리가 취할 수 있다.」

부개가 즉시 군사들을 20여 리 뒤로 물러나게 하여 영채를 세우게 했다. 중군에 있던 손무가 부개의 진영에 당도하자 사람들이 모두 부개의 작전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합려가 오원에게 말했다.

「과인에게 이와 같이 명석한 동생이 있으니 어찌 우리가 영도에 입성하지 못하겠는가?」

오원이 조용한 목소리로 부개에 대해서 평했다.

「신은 옛날 피리가 부개의 관상을 보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부개의 몸에 난 털이 거꾸로 섰으니 필시 후에 모반하여 주군을 배반할 상이라 했습니다. 부개 공자가 비록 영용하다 하지만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기지 마십시오.」

합려가 듣고 얼굴에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한편 원석은 오군이 뒤를 추격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진영을 갖추어 싸움에 대비하려는 순간에 다시 오군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옛말에 오나라 사람들이 겁이 많다고 하더니 결국은 감히 우리의 뒤를 따르지 못하는구나!」

그는 즉시 령을 내려 다음날 새벽 오고에 밥을 지어 배불리 먹고 일제히 청발수를 도하한다고 했다. 이튿날 새벽이 되어 도하를 시작한 초군의 병력의 십 분의 삼도 미처 건너기 전에 부개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오군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초나라 군사들은 배를 타기 위해 서로 다투기 시작하자 진영은 큰 혼란에 빠졌다. 원석은 더 이상 초군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배에 승선하기를 포기하고 수레를 타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지 못한 군사들은 모두 원석의 뒤를 따랐다. 오나라 군사들이 달아나는 원석과 그 군사들을 뒤에서 추격하여 잡히는 대로 살해하고 빼앗은 군기와 북 및 무기와 갑옷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손무가 당과 채 두 나라 군주들에게 명하여 각기 그들 본국병들을 이끌고 초나라가 청발수를 건너기 위해 준비한 배들을 빼앗아 타고 강안을 따라 내려가 부개를 돕도록 했다. 원석이 도망쳐서 옹서(雍澨)의 땅에 당도하였으나 장수들과 병사들이 음식을 먹지 못하여 기운이 딸려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고 멈추었다. 오나라의 추격병을 멀리 따 돌렸다고 생각한 원석은 군사들을 잠시 멈추게 하여 솥을 걸고 밥을 짓게 했다. 밥이 거의 다 되려는 순간에 오나라 군사들이 다시 쫓아 왔다. 초나라 군사들은 급하여 아궁이의 불도 끄지 못하고 밥을 버리고 달아났다. 초나라 군사들이 버리고 간 밥은 그 사이에 모두 익어 오히려 오나라 군사들을 위해 밥을 지어 준 꼴이 되었다. 밥을 배불리 먹은 오군은 또다시 온 힘을 다하여 초나라 군사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초나라가 군사들은 달아나다가 서로 자기들끼리 부딪쳐 넘어져 밟혀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원석이 타고 도망치던 수레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던 부개가 극을 휘둘러 원석을 살해했다. 그의 아들 원연도 역시 오나라 군사들에 포위되어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으나 포위망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원연이 싸움 중에 거의 기진맥진하여 위험한 순간에 처한 순간에 갑자기 오군 진영의 동북방 모서리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더니 군사들이 대거 자기가 있는 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원연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나라 군사들이 다시 몰려오니 나의 목숨도 여기서 끝났구나!」

그러나 그 일단의 군사들은 다름이 아니라 좌사마 심윤수가 신식(新息)에 당도하여 계획대로 회예(淮汭)로 진군하려고 하는 순간에 낭와가 자기와의 약속을 어기고 한수를 도하하여 오나라 진영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싸움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하던 초나라의 군사들이었다. 그때 마침 옹서에서 오나라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당하고 있던 원연의 군사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심윤수가 거느리고 있던 만 명의 군사를 3대로 나누어 오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하게 하였다. 당시 여러 번의 싸움에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어 만일의 사태에 미처 대비를 하지 않았던 부개는 갑자기 초나라의 군사들이 세 방향에서 돌진해 오고 있는 모습을 보자 적군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여 대항하여 싸워 볼 생각도 못하고 즉시 원연을 에워싼 포위망을 풀고 후퇴했다. 심윤수가 온 힘을 다하여 달아나는 오나라 군사들의 뒤를 추격하여 천여 명 이상 죽였다. 심윤수가 계속 오나라 군사들의 뒤를 추격하려 했으나 오왕이 이끄는 오나라 본대가 이미 당도하여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진채를 세웠다. 두 나라의 군사가 마주 보고 진을 친 다음 대치했다. 심윤수가 그의 가신 오구비(吳句卑)를 불러 말했다.

「영윤이 공을 탐하여 나와 한 약속을 어기고 한수를 건너 오나라 군사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싸움에서 패했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겠다. 오늘 적들이 이미 초나라 땅 깊숙이 쳐들어 왔으니 내일 아침 내가 마땅히 목숨을 걸고 그들과 일전을 벌리리라! 다행히 우리가 승리를 하면 영성에 입성하려는 오군을 막을 수 있어 초나라의 복이라 할 수 있겠으나 만일에 우리가 싸움에서 진다면 내일 나의 목을 너에게 맡길 테니 절대로 나의 목이 오나라의 병사들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

심윤수가 다시 원연을 향하여 말했다.

「그대의 부친이 이미 적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했으니 그대마저 싸움에서 죽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대는 마땅히 시간을 재촉하여 영도로 돌아가 나의 말을 자서(子西)에게 전하여 영도를 방어할 방도를 마련하도록 전 하라!」

원연이 절을 하며 심윤수에게 말했다.

「부디 사마께서 동쪽의 도적들을 물리치시어 대공을 세우시기를 기원합니다.」

원연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마치고 하직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두 나라 군사들이 진영을 갖추고 전투를 시작했다. 심윤수는 평소에 군사들을 사랑하고 지휘하는 방법에 능숙하여 군졸들은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하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싸움에 임했다. 부개가 비록 용기가 있는 장수라 하나 초군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싸움에서 밀려 패전 직전에까지 처하게 되었다. 그때 손무가 군사를 이끌고 당도하여 그의 오른 쪽에는 오원과 채후가, 왼쪽에는 백비와 당후가 이끄는 군사들이 부개를 도와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했다. 강궁과 쇠뇌를 앞에 세워 쉴 사이 없이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쏘아 댄 다음 후방에 대기 시켜 놓고 있던 단병들을 일제히 진격시켜 공격하니 초병들은 십 중 칠팔이 쓰러졌다. 심윤수가 죽을힘을 다하여 겹겹이 둘러쳐진 포위망을 뚫고 나왔으나 몸에는 이미 수많은 화살을 맞아서 거동이 불가능하여 수레에 쓰러져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심윤수가 그의 가신 오구비를 불러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다. 너는 빨리 나의 목을 베어서 초왕에게 전하라.」

오구비가 차마 심윤수의 목을 베지 못하고 주저하자 심윤수가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의 목을 빨리 베라고 대갈일성하고 나서 이어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어 심윤수의 목을 벤 오구비는 그의 윗도리를 벗어 심윤수의 목을 싸서 가슴에 품고, 다시 그의 시체는 땅을 파서 묻고 흙으로 덮었다. 심윤수의 시신을 처리한 오구비는 영도가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오나라 군사들은 그의 뒤를 따라 영도를 향해 파죽지세로 침입해 들어갔다. 사관이 심윤수에 대해 찬사의 글을 썼다.

초나라가 행한 짓은 옳지 않았으니

어진 사람을 죽이고 망녕된 자를 취하였다.

오원(伍員)의 가족들은 몰살당하고

다시 극완(郤完)의 종족들을 씨가 말렸다.

楚謀不臧(초모불장)

賊賢升佞(적현승영)

伍族旣捐(오족기연)

郤宗復盡(극종복진)

의연한 심윤수 한 사람만 남게 되어

초나라는 기둥 하나로 지탱하게 되었다.

쳐들어온 적군은 그 손바닥 안에 있었으나

탐욕스러운 낭와로 인하여 싸움에 지게 되어

表表沈尹(표표심윤)

一木支厦(일목지하)

操敵掌中(조적장중)

敗于貪瓦(패우탐와)

공도 세우지 못하고 몸은 죽게 되었지만

그 기상은 서리보다 차갑고 해보다 뜨거웠다!

하늘이 충신을 도와

그의 목은 무사히 초나라에 돌아 왔다.

功隳身亡(공휴신망)

凌霜暴日(능상폭일)

天佑忠臣(천우충신)

歸元于國(귀원우국)

2. 吳軍入郢(오군입영)

- 오왕 합려가 초나라의 도성에 입성하다. -

한편 원연이 먼저 돌아와 소왕을 찾아가 낭와가 싸움에서 패한 후에 달아났다고 울면서 고하고 그의 부친 원석은 싸움 중에 오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고했다. 초소왕이 크게 놀라 황급히 자서와 자기(子期)등을 불러 대책을 상의하여 다시 군사를 내어 오나라 군사들을 막으려고 했다. 곧이어 오구비도 돌아와 심윤수의 머리를 소왕에게 바치고 심윤수가 싸움에서 패한 이유를 상세히 고했다.

「우리 초군이 패한 이유는 모두가 영윤이 사마의 말을 듣지 않고 공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소왕이 듣고 통곡하며 외쳤다.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은 내가 일찍이 사마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나의 죄로다!」

이어 낭와에게 큰 소리로 욕을 해대었다.

「나라를 말아먹은 간신 놈이 구차스럽게 목숨이 아까워 도망쳤으니 개나 돼지도 더러운 너의 고기는 먹지 않으리라!」

오구비가 다시 말했다.

「오나라 군사들이 우리 뒤를 바싹 쫓아오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빨리 이 영도를 지킬 계책을 마련하셔야 합니다.」

소왕이 한편으로는 심제량(沈諸梁)을 불러 부친의 수급을 전한 후에 장사를 지내는데 필요한 기구들을 후하게 내주었다. 심제량을 섭공(葉公)④에 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달아나려고 하면서 여러 군신들을 불러 상의하게 하였다. 자서가 듣고 목을 놓아 울면서 소왕에게 간했다.

「우리 초나라의 사직과 능침(陵寢)이 모두 이곳에 있는데 만약 왕께서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달아나신다면 다시 이곳에 돌아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은 강수와 한수의 천험(天險)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그 이점을 잃어 버렸소! 오나라의 군사들이 조석지간에 몰려 올텐데 어찌 그때까지 두 손을 놓고 있다가 그들의 포로가 될 수 있단 말이오?」

「성중에는 아직 수만의 장정이 남아 있으니 대왕께서는 궁중의 창고에 남아 있는 곡식과 천을 모두 꺼내 장정들을 모집하여 나누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성벽 위에 오르게 하여 성가퀴를 굳게 지키게 하시고, 다시 사자를 한수 동쪽의 여러 나라에 보내 군사를 모아 원조하라는 령을 내리십시오. 우리의 땅에 깊숙이 침입한 오나라 군사들에게 양식과 보급품이 뒤를 잇지 못할 터인데 어찌 그들이 우리의 땅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땅에서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오군이 어찌 식량을 걱정하겠소? 당진이 한번 호령하니 돈(頓)과 호(胡)가 모두 그들에게 붙어 버렸고 오나라 군사들이 동쪽의 우리나라를 향하여 군사들을 진발 시키니 당과 채나라가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 초나라를 쳐들어 왔소. 이는 세상의 인심이 모두 우리 초나라를 떠났다고 할 수 있소. 우리가 무엇을 믿을 수 있단 말이오?」

「신 등이 성중의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오나라 군사들에 대항하다가 만약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게 되면 그때 도망쳐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 초나라의 존망은 모두가 자서 숙부님과 자기 형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두 분께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저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소왕이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궁 안으로 들어갔다. 자서와 자기가 남아 서로 상의한 후에 대장 투소(鬪巢)에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맥성(麥城)으로 가서 북쪽의 길을 취하여 진군해 오는 오군을 막게 하고, 대장 송목(宋木)에게도 5천의 군사를 주어 기남성(紀南城)에 보내 영성의 서북쪽의 길을 막도록 했다. 자서는 스스로 정예병 1만을 거느리고 영성의 동쪽으로 흐르는 노복강(魯濮江)으로 나아가 그곳에 진을 치고 지킴으로써 영성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渡口를 지켰다. 단지 영성 서쪽의 천강(川江)과 남쪽의 상강(湘江)은 모두가 초나라 땅이었으나 그 쪽 지방은 모두가 멀고 길이 험하여 오나라 군사들이 취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아무런 방비를 두지 않았다. 자기는 왕손요우(王孫繇于)와 왕손어(王孫圉), 종건(鐘建), 신포서(申包舒) 등을 거느리고 성안을 순시하면서 십분 긴장한 자세로 엄하게 지켰다.

한편 여러 장군들을 소집한 오왕 합려가 영성에 언제 입성할 예정인지를 물었다. 오원이 대답했다.

「초나라가 비록 우리와의 싸움에서 여러 번 패했다고는 하나 영도는 여전히 철옹성과 같이 견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또한 북쪽의 맥성 및 서쪽의 기남성과 정족지세를 형성하여 서로 의지하며 연락을 긴밀하게 취하고 있어 성을 함락시키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성의 동쪽 노복강을 향해 진격하면 지름길이기는 하나 초나라는 필시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노복강 연안을 굳게 지키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영성을 파하기 위해서는 군사를 삼분하여 일대는 영성의 북쪽을 크게 돌아 맥성을 공격하게 하고, 또 다른 일대는 영성의 서쪽에 있는 기남성으로 보내 공략하고, 대왕께서는 대군을 이끌고 영성으로 번개처럼 돌진하여 그들이 혼비백산하는 사이에 두 성을 함락할 수 있다면 영성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파할 수 있습니다.」

「자서의 계책이 매우 훌륭합니다.」

합려는 즉시 오원의 계책을 따라 오원 자신에게는 공자산과 함께 일 만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맥성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다시 채후에게는 그의 본국 병을 데리고 오원을 뒤에서 돕도록 했다. 손무에게는 부개와 함께 1만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기남성을 공략하도록 하고 다시 당후에게 그의 본국 병들을 이끌고 손무를 돕게 하였다. 합려 자신은 백비와 함께 본대의 대군을 이끌고 영성으로 진격했다.

오원이 일 만의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수일이 지나자 앞서 보낸 첩자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이곳에서 맥성까지의 거리는 일사 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금 대장 투소가 군사를 끌고 와서 지키고 있습니다. 」

군사들에게 진을 치게 하여 휴식을 취하도록 명한 오원은 미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사졸 두 사람만을 데리고 영채 밖으로 나가서 주위의 지리를 살피려고 하였다. 오원의 일행이 어느 촌락에 이르렀는데 촌부 한 사람이 당나귀에 연자방아에 줄을 메달아 돌리게 하여 보리를 빻고 있었다. 그 촌부가 몽둥이로 당나귀를 때리자 당나귀가 달리더니 보리가 찧어지고 남은 찌꺼기가 휘날렸다. 오원이 보더니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어 소리쳤다.

「나는 맥성을 함락시킬 방법을 알았다.」

그는 즉시 막사로 돌아와서 조용히 령을 내렸다.

「모든 군사들은 포대 한 개씩을 준비하여 그 안에 흙을 가득 채우고 다시 풀잎을 베어 단을 만들어 한 개씩 내일 아침 오고까지 바치도록 하라!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참수형에 처하리라!」

다음날 오경이 되자 다시 명령을 내렸다.

「모든 수레에는 돌을 가득 싣게 하라. 어기는 자는 참하리라!」

이윽고 아침이 다가오자 그의 군사들을 두 대로 나뉘어 채후에게 일대를 이끌게 하여 맥성의 동쪽으로 가게하고 공자건(公子乾)에게 다른 일대를 주어 맥성의 서쪽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리고 각 장수들에게 분부하여 군사들이 휴대한 돌과 흙이 담긴 포대 및 풀을 베어 만든 단으로 작은 성을 쌓아 영루(營壘)로 대신 삼게 하고 오원 자신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였다. 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 쌓기가 끝났다. 동쪽에 쌓은 성은 좁고 길게 쌓아서 그 형상이 당나귀와 흡사 하다고 해서 려성(驢城)이라 이름짓고 서쪽의 성은 동그란 원형을 하고 있어 그 형상이 마치 연자방아와 같아서 그 이름을 마성(磨城)이라 지었다. 채후가 성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여 오원에게 물었다. 오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동쪽에 있는 당나귀가 서쪽에 있는 연자방아를 돌리는 형상인데 그 가운데에 들어 있는 맥성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투소가 맥성에 있다가 오나라 병사들이 맥성 동서 양쪽에다 성을 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싸움을 걸기 위해 급히 군사를 이끌고 출동했으나 그때는 이미 성이 완성된 후라 평지에 우뚝 솟아 견고하기가 마치 철옹성과 같았다. 투소가 먼저 동쪽의 려성 쪽으로 달려가서 싸움을 걸었으나 성 위에는 수 많은 기가 펄럭이고 큰 방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투소가 보고 노하여 성을 향해 돌격하려고 하는 순간 성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의 소년 장군이 군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투소가 소년 장군에게 그 성과 이름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나는 채후의 작은아들 희건(姬乾)이다.」

「너와 같은 어린아이가 어찌 나의 상대가 되겠는가? 너희들의 대장 오자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자서 장군은 이미 너의 맥성을 취하려 가시고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투소가 더욱 화를 내며 자루가 긴 극을 비껴 들고 희건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희건도 과를 빼어 들고 대항하여 두 사람이 어우러져 극과 과를 주고받기를 이십여 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초마가 달려와 투소에게 고했다.

「지금 오나라 군사들이 달려와서 맥성을 심히 공격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속히 맥성으로 돌아가시어 오군의 공격을 막으셔야 합니다.」

자기의 본진을 오나라 군사들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걱정한 투소는 급히 금을 불어 싸움 중에 있던 군사를 거두었다. 갑작스러운 퇴각 명령에 초군이 혼란에 빠지자 그 틈을 탄 희건이 대거 공격하여 한 떼의 군마를 무너뜨렸으나 감히 도망가는 초나라의 군사들을 끝까지 쫓지는 못했다. 추격을 멈춘 희건은 중도에 회군하여 다시 려성으로 돌아갔다. 투소가 회군하여 맥성에 이르자 그 때 맥성을 공격하고 있던 오원을 보았다. 투소가 극을 밑으로 내리고 다시 두 손을 맞잡고 높이 들어 인사를 올리며 오원을 향해 말했다.

「자서께서는 그 동안 별고 없었는가? 그대 선세들의 원한은 모두가 비무극의 참소로 인한 일이었소. 오늘 참소한 자가 이미 주살되었으니 그대는 이제 갚아야 할 원한이 더 이상 없지 않겠소? 또한 그대의 선세들께서 3대를 거쳐 초나라를 섬겨 초왕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은혜를 잊고 있소?」

오원이 보고 대답했다.

「우리 선세들께서는 초나라에 큰공을 세웠음에도 초왕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나의 부친과 형님을 죽이고 또한 내 목숨도 끊으려고 했던 사실을 그대도 알고 있는 일이오. 다행히 내가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 초왕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어 그 후로 19년이 지나 이제 오늘이 있게 되었소. 그대는 나의 이 처지를 이해하여 속히 멀리 몸을 피하여 나의 칼끝에서 벗어나 우리가 옛날 맺은 서로간의 우의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하시오.」 투소가 듣고 노하여 큰소리를 쳐서 오원에게 욕을 하였다.

「주인을 배신한 도적놈아! 너를 피해 도망가면 내가 사나이가 아니다.」

투소는 장극을 고쳐 잡고 오원을 향하여 달려들어 싸움을 걸자 오원도 역시 극을 치켜들며 투소를 맞이하여 싸웠다. 둘이서 몇 합을 겨루다가 오원이 투소에게 말했다.

「그대가 먼 길을 달려오느라 이미 피로한 것 같아 내가 그대를 성안으로 들어 갈 수 있게 길을 열어 주겠으니 쉬었다가 내일 다시 싸움을 시작함이 어떠한가?」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면 결코 살려 두지 않으리라!」

양군이 서로 군사를 거두어 물러갔다. 맥성 위의 군사들이 자기 편 군사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자 성문을 열고 나와서 맞이하여 같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밤중이 되자 갑자기 성 위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자 성을 지키던 초나라 군사 한 명이 투소에게 달려와 보고하였다.

「성안에 이미 오나라 병사들이 진입하였습니다.」

원래 오원이 투소를 풀어 맥성으로 들어가게 해줄 때 자기의 군사들 중에 속해 있었던 초나라 항졸 몇 명을 변장시켜 초나라 군사들 속에 섞이게 하여 성안으로 잠입시켰었다. 성안으로 들어가 으슥한 곳에 숨어 있던 오나라 병졸들은 밤이 깊어지자 성 위로 올라 밧줄을 밑으로 내려뜨려 오나라 군사들을 끌어올렸다. 성 위로 기어 오른 오나라 군사들은 잠깐 사이에 이미 백여 명이 넘게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성밖의 오나라 대군과 내응했다. 성을 지키던 오나라 군사들은 혼란에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투소는 달아나는 군사들을 도저히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결국 투소 본인도 어쩔 수 없이 병거를 타고 맥성을 빠져나가 달아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오원은 달아나는 투소의 뒤를 쫓지 않았다. 맥성을 얻은 오원은 사람을 합려에게 보내 맥성을 점령했음을 알리는 승전보를 띄었다. 잠연(潛淵) 선생이 시를 지어 오원의 지혜를 노래했다.

동서로 려성과 마성을 쌓아 맥성을 파하여

성을 얻은 공을 세웠음은 우연히 얻은 영감 때문이었다.

지혜와 용기의 자서와 비견할 인재가 초나라에 없었으니

초나라의 양신들은 모두 없어졌음을 알 수 있었노라!

西磨東驢下麥城(서마동려하맥성)

偶因觸目得功城(우인촉목득공성)

子胥智勇眞無敵(자서지용진무적)

立見荊蠻右臂傾(입견형만우벽경)

한편 손무도 군사를 끌고 호아산(虎牙山)을 통과하여 당양판(當陽阪)에 당도했다. 그 북쪽으로는 장수(漳水)가 흐르고 있었는데 물살이 매우 거세었다. 기남성은 당양판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당양판의 서쪽에는 적호(赤湖)가 있어 그 호수로써 기남성과 영성이 통하고 있었다. 손무가 지세를 살펴보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었다. 군사들에게 언덕의 높은 곳에 진을 치게 한 손무는 군령을 내려 삼태기와 가래를 각기 준비하게 하여 그날 밤 안으로 참호를 깊게 파도록 했다. 이윽고 장수의 물을 끌어들여 적호와 통하게 하고 장수를 가로질러 긴 제방을 쌓게 했다. 이윽고 장수의 물이 적호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장수의 물로 적호가 범람하여 그 부근의 평지에는 물이 이삼 장이나 높이 차게 되었다. 그때가 마침 겨울이라 서쪽에서 찬바람이 크게 불었다. 범람하여 넘쳐 난 적호의 물은 기남성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기남성을 지키던 장수 송목(宋木)은 단지 장강에 홍수가 들어 물이 넘쳐서 그리 된 줄 알고 성중의 백성들을 모두 영도로 보내 홍수를 피하게 하였다. 장강에서 흘러들어 오는 수세가 더욱 세차게 되어 그 물길이 영도에까지 닿게 되어 그 물세가 마치 강으로 이루어진 호수처럼 되었다. 손무가 군사들에게 명하여 산 위로 올라가 대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게 하여 그것을 타고 영성으로 나아가게 했다. 성중에 있던 군민들은 그때서야 적호의 물이 불어 난 이유는 오나라 군사들이 장수의 물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성의 군민들을 마음이 황당해져서 각기 목숨을 구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초소왕은 성을 지키기 어렵다고 보고 급히 잠윤고(箴尹固)를 시켜 배를 준비하여 끌고 오도록 하여 영도의 서문을 통하여 그의 어린 여동생 계미(季羋)와 함께 배를 타고 달아났다. 자기(子期)가 성 위에 있다가 밀려오는 물길을 보고 군사를 이끌고 물길을 막으려고 하려는 순간에 초왕이 이미 성 밖으로 배를 타고 백관들과 함께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할 수 없이 자기의 처자와 집안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단신으로 성 밖으로 나갔다. 영도는 주인이 없게 되어 오나라 군사들이 공격도 하기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한수에 의지하여 방성에서 범처럼 웅크리고 있던 초나라가

오군이 쳐들어오자 연기가 사그라지듯이 없어져 버렸다!

충량스런 신라들을 모두 버리고 아첨배와 탐관로 조정을 채웠으니

높은 성벽이 하늘에 닿아 있다한들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虎踞方城阻漢川(호거방성저한천)

吳兵迅掃若飛煙(오병신소약비연)

忠良棄盡讒貪售(충량기진참탐수)

不怕隆城高入天(불파융성고입천)

손무가 합려를 모시고 영도에 입성한 후에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장수를 가로질러 막은 둑을 허물게 하여 성안의 물을 모두 장강으로 돌아가게 하고 군사들을 모아서 영성의 사방을 지키게 했다. 오원도 역시 맥성에서 합려를 알현하기 위해 영도로 들어 왔다. 합려가 초왕의 왕좌에 앉아서 백관들의 하례를 받았다. 이어 당과 채 두 나라의 군주들도 역시 들어와 합려에게 축하의 말을 올렸다. 합려가 크게 기뻐하여 고대에서 술을 내와 주연을 베풀었다. 날이 저물자 합려는 초왕의 궁궐에서 묵으려고 하자 좌우의 시자들이 초왕의 부인을 데려와 오왕의 잠자리에 바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감히 뜻을 정하지 못하며 주저하는 합려를 보고 오원이 말했다.

「나라를 이미 차지하셨는데 망한 나라 왕의 부인 정도 가지고 무엇을 그리 고민하고 계십니까?」

합려가 오원의 말을 듣고 초왕의 궁궐에 유숙하면서 초왕의 부인과 그 후궁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불러서 모조리 범하여 음락을 즐겼다. 좌우의 시자들이 다시 합려의 마음을 혹하게 하면서 말했다.

「초왕의 모친 백영(伯嬴)은 곧 태자건의 부인으로 섬진에서 데려왔으나 그 미모에 반한 초나라의 전왕이 가로챈 여인입니다. 지금도 아직 나이가 있어 그 자태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합려가 마음이 동하여 사람을 보내 백영을 불러오라고 했다. 백영이 부름에 응하지 않고 자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합려가 노하여 좌우의 시자들에게 명했다.

「오지 않거든 붙잡아서라도 끌고 오라!」

백영이 자기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 다시 칼을 들고 문을 내리치며 합려가 보낸 시자들을 향하여 말했다.

「내가 알고 있기에 무릇 제후라는 자들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라 그 나라 백성들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란 남녀가 같은 자리에도 앉지 않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같은 그릇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유별함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오늘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신분으로써 지켜야 할 예를 버리고 음행을 저질러 나라 안의 백성들에게 소문을 내어 알게 하고 있으니 내 비록 미망인의 신분으로써 칼 위에 엎드려 죽을지언정 왕의 명을 따르지 못하겠노라!」

백영이 한 말을 시자들로부터 전해들은 합려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즉시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며 말을 전하게 했다.

「내가 부인의 높은 덕을 평소에 앙모하여 단지 부인의 얼굴만을 뵙고자 했을 뿐이었습니다. 어찌 감히 내가 부인에게 어지러운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인께서는 근심하는 마음을 놓으시기 바랍니다.」

합려가 자기의 오래된 측근을 백영의 처소에 보내어 지키게 하여 아무도 백영의 처소에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초소왕을 잡지 못하여 분함을 참지 못한 오원은 손무, 백비 등 오나라 장수들로 하여금 초나라의 여러 대부들의 집에 분산하여 기거하게 하면서 그 처첩들을 범하여 욕보이게 하였다. 당후와 채후가 공자산과 함께 낭와의 집을 수색하여 대나무 바구니 속에 들은 갖옷과 패옥 및 마구간에 매어 있던 숙상을 찾았다. 두 나라의 군주들이 각기 자기의 물건들을 찾아 가지고 와서 모두 오왕에게 바치고 그 밖에 낭와의 집 창고에 가득 차 있던 금은보화는 그들의 좌우에게 명하여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싣게 하여 자기나라로 실어 나르게 하였다. 그들이 싣고 가다가 흘린 재물들이 길거리에 낭자하였다. 낭와가 한평생 탐욕스럽게 모은 재물들을 모두 써 보지도 못하고 다시 빼앗겼으니 그 동안의 수고가 허사가 되었다. 공자산이 낭와의 부인을 탐하여 취하려고 하였으나 그때 마침 낭와의 집에 들린 부개에 의해 공자산은 쫓겨나고 낭와의 부인은 부개의 차지가 되었다. 오나라의 군신들이 모두 공공연히 음행을 저질러 남녀가 무별하게 되어 영도의 성중은 짐승과 금수들만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한탄했다.

왕비의 신분이건 신하의 아내이건 가리지 않고 범하여

비록 사심을 채우기는 했지만 인륜을 거슬렸다!

단지 백영이 늦게나마 절개를 지켜

미망인 한 사람이 밝은 기운 한 가닥을 비추었다.

行淫不避楚君臣(행음불피초군신)

但快私心瀆大倫(단쾌사심독대륜)

只有伯嬴持晩節(지유백영지만절)

淸風一線未亡人(청풍일선미망인)

3. 掘墓尸鞭 斬屍報仇(굴묘시편 참시보구)

- 초평왕의 무덤을 파서 꺼낸 시신에 채찍을 가하고 부관참시하여 부형의 원수를 갚다.

한편 오원이 오왕에게 말하여 초나라의 종묘를 모조리 파해치려고 하였다. 손무가 듣고 오왕에게 말했다.

「무릇 군사를 동원할 때는 의를 세워 그 명분이 뚜렷이 해야 하는 법입니다. 초평왕이 태자건을 폐하고 다시 섬진 출신 백영의 소생을 그 후사로 삼아 아첨배와 탐관들을 임용하고 다시 안으로는 충신들과 양신들을 아무 죄도 없이 잡아다 죽이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포악한 짓을 저지른 결과 우리 오나라의 병사들이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초나라 도성 영성이 이미 함락되었으니 마땅히 태자건의 아들 미승(羋勝)을 불러 초나라의 왕위에 앉혀 그들의 종묘사직을 잇게 하고 지금의 초왕을 대신하게 한다면 초나라 백성들은 죄 없이 죽은 태자를 동정하여 필시 미승을 따르게 되어 초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오나라가 베푼 덕을 감사하게 생각한 미승은 대대로 끊이지 않고 기꺼이 우리 오나라에 조공을 올릴 것입니다. 대왕께서 비록 초나라의 종묘를 잇게 하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초나라를 얻은 일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신다면 명분과 실리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려는 초나라를 멸하고 싶은 마음에 손무가 하는 말을 듣지 않고 즉시 초나라의 종묘를 부셔 버렸다. 당과 채 두 나라의 군주는 각기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합려가 다시 장화대에 술을 내와 잔치를 크게 벌이고 악공들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하게 하여 군신들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으나 오로지 오원 한 사람만이 통곡해 마지않았다. 합려가 오원을 보고 물었다.

「경은 초나라의 종묘를 부셔 원수를 이미 갚았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슬픔을 멈추지 않소?」

오원이 눈물을 머금고 합려를 향하여 말했다.

「평왕은 이미 죽고 그 자식 초왕은 도망쳐 버려 신의 부친과 형님의 원수는 아직 만 분의 일도 갚지 못하여 이것을 원통히 생각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경의 원한에 찬 마음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오?」

「대왕께 청하오니 신으로 하여금 초평왕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어 참수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어 소신의 원한을 씻게 해 주소서!」

「경이 과인을 위하여 많은 공을 세웠는데 과인이 어찌 썩은 해골을 아까워하여 경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지 않을 수 있겠소!」

합려가 즉시 오원의 청을 허락하였다.

평왕의 묘가 영성의 동문 밖 요대호(寥臺湖) 호반의 실병장(室丙庄)에 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알아낸 오원은 본대의 병사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출동했다. 그러나 실병장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요대호는 망망한 호수뿐이어서 도무지 평왕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병사들을 사방으로 풀어 평왕의 무덤을 찾게 했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평왕의 무덤을 찾을 수 없게 된 오원은 두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며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었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과 형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게 하십니까?」

오원이 한탄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는 사이에 홀연히 노인 한 사람이 나타나 오원에게 다가오더니 읍을 하면서 물었다.

「장군께서 평왕의 무덤을 찾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십니까?」

「평왕은 그의 며느리를 빼앗고 아들을 버렸으며 충신을 죽이고 간신을 임용한 끝에 나의 종족을 멸하였소. 내가 지금까지 군사를 얻지 못하여 그의 목을 취하지 못하였는데 그가 비록 죽었다고 하나 내가 마땅히 그의 시체나마 얻어서 육시를 하여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과 형님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기 때문이오!」

노인이 말했다.

「살아 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한을 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평왕은 원수들이 자기의 무덤을 파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그의 무덤을 호수 안의 물속에 만들게 했습니다. 장군께서 꼭 그의 관을 얻으려고 하신다면 필시 그곳의 물을 퍼내어 호수의 밑바닥을 드러나게 하십시오」

노인이 말을 마치고 요대(寥臺)에 올라 평왕의 무덤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알려 주었다. 오원은 수영에 능한 사람을 시켜 호수 밑으로 잠수시켜 무덤을 찾게 하였다. 과연 요대 동쪽의 호수 안에서 돌로 만든 큰 궤를 발견하였다.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각기 흙 포대 한 자루씩을 짊어지게 하여 그 수중릉(水中陵) 주위에 쌓게 하여 호수의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고 그 안의 물을 퍼내게 하였다. 물을 다 퍼내자 과연 그 안에서 돌로 만든 큰 궤가 모습을 들어 냈다. 그 돌궤 안에 다시 돌로 만든 관이 있었는데 대단히 무거웠다. 오원이 군사들에게 관의 뚜껑을 부수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단지 의관과 정교하게 만든 철제품 수 백 근만 있을 뿐이었다. 노인이 오원에게 다시 말했다.

「이것은 곧 가짜 관입니다. 진짜 평왕의 관은 그 큰 관 밑에 들어 있습니다. 」

오원이 병사들에게 명하여 다시 그 큰 관의 밑판을 뜯게 했다. 과연 그 밑에 관이 하나 더 들어 있었다. 오원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관을 부수어 시체를 꺼내어 살펴보니 평왕의 시신이었다. 수은을 사용하여 염습하였기 때문에 그 시신의 살색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산 사람과 거의 같았다. 오원이 평왕의 시신을 보자 분기가 충천하여 구리로 만든 구절편(九節鞭)을 가져오게 하여 평왕의 시체에 300 대의 채찍질을 가했다. 평왕의 시체는 살이 흩어지고 뼈가 으스러졌다. 오원이 다시 그의 왼 발로 시체의 복부를 밟고 오른 손으로 시체의 눈알을 뽑아 여러 병사들에게 내 보이며 말했다.

「너는 살아 생전에 눈동자를 잘못 굴려 충신과 망신도 구별하지 못하고 간신의 참언을 믿고 나의 부형을 살해했으니 내가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어찌 원통하지 않겠느냐?」

말을 마친 오원은 즉시 칼을 들어 평왕의 시신에서 목을 끊고 시신의 의복 및 부셔버린 관을 평왕의 해골과 함께 들판에 내다 버렸다. 염옹이 글을 지어 오자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부형의 원수를 갚은 일에 대해 찬사를 바쳤다.

남에게 원한을 쌓지도 말며

심하게 대하여 억울한 마음을 갖도록 하지 말라!

억울함이 극에 달하면 임금도 없게 되고

원한을 쌓으면 생사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라!

怨不可積(원불가적)

寃不可極(원불가극)

極寃無君長(극원무군장)

積怨無存歿(적원무전몰)

목숨을 구하여 도망친 필부의

원한이 해골에게 까지 미쳐

피 눈물을 흘리며 채찍을 휘두르니

원한에 서린 기운은 하늘을 어둡게 했다.

匹夫逃死(필부도사)

僇及朽骨(육급후골)

淚血洒鞭(루혈쇄편)

怨氣婚日(원기혼일)

효성은 임금에 대한 충성도 잊게 했고

집안의 원수는 군주에게 이르게 되었다!

장하도다, 오자서여!

천고에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孝意奪忠(효의탈충)

家仇及國(가구급국)

烈哉子胥(열재자서)

千古猶爲之飮泣(천고유위지음읍)

평왕의 시체를 채찍으로 내리쳐 그의 원한을 갚은 오원이 옆에 서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께서는 평왕이 묻힌 곳과 그 관이 거짓인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평왕의 관을 만들었던 석공입니다. 옛날 평왕이 우리들 석공 50여 명에게 영을 내려 가짜 무덤을 돌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비밀을 사람들에게 누설할까 걱정하여 그 무덤이 완성된 후에 공사에 동원된 모든 석공들을 안에 가두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은 아무도 몰래 무덤 안에서 탈출하여 목숨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장군께서 부모를 생각하는 간절한 효심에 감동되어 일부러 이곳까지 와서 평왕의 무덤을 알려 저 역시 평왕의 무덤 안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한을 달래려고 해서입니다.」

오원이 황금와 비단을 가져오게 하여 그 노인에게 후하게 사례하고는 군사를 데리고 영성으로 돌아갔다.

4. 楚王蒙尘 遇賊雲夢(초왕몽진 우적운몽)

- 란을 피해 몽진하다가 운몽에서 도적을 만나는 초소왕 -

한편 초소왕은 배를 타고 서쪽의 저수(沮水)를 건너고 다시 우회하여 강수를 건너 운몽(雲夢)⑤ 땅으로 들어갔다. 그때 도적 떼 수 백 명이 밤이 되자 소왕의 탄 배를 습격하여 과로 소왕을 찌르려고 하였다. 그때 왕손 요우(繇于)가 소왕의 곁에 있다가 소왕을 감싸 보호하면서 큰 소리로 도적 떼를 향하여 소리쳤다.

「이 분은 초왕이시다. 너희들이 어찌 감히 이리도 무례하게 구느냐?」

요우가 미쳐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도적들이 휘두르는 과에 그의 어깨를 찔려 흐르는 피가 그의 발뒤꿈치까지 흐르더니 곧이어 혼절하여 땅위로 쓰려졌다. 도적들이 초왕의 일행을 향하여 말했다.

「우리들은 단지 재물과 비단을 알뿐이며 왕이 무엇인지 모른다. 영윤이라는 대신도 재물을 탐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시골의 촌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도적들이 즉시 초왕이 타고 온 배를 수색하여 배 안의 금은보화와 각종 비단 및 포목 등을 찾아냈다. 잠윤고(箴尹固)가 급히 소왕을 부축하여 뭍에 올라 도적들로부터 몸을 피했다. 소왕이 소리쳤다.

「누가 나의 어린 누이동생을 다치게 하지 않고 보살펴 이곳으로 데려오겠느냐?」

하대부 종건(鐘建)이 소왕의 어린 누이동생 계미를 등에 업고 소왕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도적 떼들은 소왕이 타고 온 배에 불을 질러 태웠다. 소왕의 일행은 밤을 도와 몇 리를 도망쳤다. 날이 밝아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 자기(子期)와 송목(宋木), 투신(鬪辛), 투소(鬪巢)등이 계속해서 뒤를 이어 소왕의 종적을 쫓아 뒤따라 당도했다. 투신이 소왕을 보며 말했다.

「신의 집은 운(鄖)⑥ 땅에 있는데 이곳에서 40리가 채 못 됩니다. 대왕께서는 세력이 왕성한 적으로부터 일단 몸을 피해 있다가 다시 대책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요우도 역시 소왕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소왕이 놀라 물었다.

「경은 도적 떼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어 쓰러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올 수 있었소?」

「도적떼의 과에 찔린 신은 배 안에서 넘어져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도적들이 배를 태우기 위해 지른 불이 일어나 신을 덮치려는 순간 갑자기 사람이 한 명 나타나더니 신의 몸을 밀어 뭍에 오르게 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신에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나는 옛날 영윤을 지낸 손숙오(孫叔敖)라는 사람이오. 왕에게 가서 오나라 군사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조만간에 물러가 사직은 오랫동안 면면히 이어지게 된다는 나의 말을 전하시오.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은 상처가 난 소신의 팔에 약을 발라 주었습니다. 잠시 후에 정신이 들어 깨어 보니 어깨의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통증이 진정이 되어 이렇게 이곳으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왕이 듣고 말했다.

「손숙오는 원래 이곳 운몽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그의 혼령이 아직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듯하오!」

초나라의 군신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 투소가 허리에 차고 있던 말린 양식을 꺼내어 서로 나누어 먹고 잠윤고가 허리에 찬 표주박을 풀어 물을 떠와 소왕에게 바쳤다. 소왕이 투신을 시켜 성구(成臼)의 나루에 가서 배를 찾아보게 하였다. 다행히 나루의 동쪽에서 장정과 그 처자인 듯한 사람들을 태운 배가 한 척 다가오고 있었다. 투신이 그 배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바로 람윤미(藍尹亹)였다. 투신이 람윤미를 향하여 소리쳤다.

「대왕께서 이곳에 있소! 빨리 이곳으로 배를 돌려 왕을 모시도록 하시요!」

람윤미가 대답했다.

「망한 나라의 임금을 내가 무엇 때문에 태운단 말이오?」

람윤미가 뒤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갈 길을 가 버렸다. 투신이 오랜 시간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간신히 고깃배를 한 척 발견하여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고 간신히 초왕이 있는 곳으로 끌고 올 수 있었다. 초왕이 이어 그의 누이동생 계미와 함께 고깃배를 타고 강을 건너 운읍(鄖邑)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5. 兄忠于君 弟孝于父(형충우군 제효우부)

- 군주를 살려 충성을 바치려는 형과 군주를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아 효를 행하려는 동생

투신의 바로 밑의 동생 투회(鬪懷)가 초왕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어귀까지 나와서 맞이하였다. 투신이 배에서 내린 후 투회에게 초왕을 위해 식사 준비를 시켰다. 투회가 식사를 준비하여 초왕에게 바치면서 여러 번 소왕을 곁눈질하며 쳐다보았다. 투신이 이상히 여겨 즉시 그의 막내 동생인 투소와 함께 친히 왕이 자는 침소를 지켰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밖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투신이 문을 열고 살펴보니 그의 동생 투회가 숫돌에 칼을 갈면서 얼굴에 노기를 띠고 있었다. 투신이 물었다.

「너는 이 야밤에 무엇을 하려고 칼을 갈고 있느냐?」

「왕을 죽이기 위해서요.」

「너는 어찌하여 역심을 품고 왕을 죽이려고 하느냐?」

「옛날에 아버님께서 초왕에게 충성을 바쳤건만 간신 비무극의 참언을 들은 평왕이 아버님을 살해했습니다. 평왕이 저의 아버님을 아무 죄도 없이 살해했으니 나도 평왕의 아들을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데 형님은 어찌하여 안 된다고 하십니까?」

투신이 듣고 노하여 투회를 꾸짖었다.

「임금은 곧 하늘과 같은 존재라! 하늘이 인간에게 화를 내렸는데 어찌 감히 인간으로써 하늘에다 대고 원수 운운하느냐?」

「나라가 있고 나서 왕이 있는 법입니다. 오늘 왕이 나라를 잃었으니 왕은 우리의 임금이 아니라 원수입니다. 원수를 보고 갚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행위요.」

「옛말에 원한은 그 자손에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왕이 또한 자기 부왕의 잘못을 뉘우치고 우리 형제들을 불러 봉록을 주었는데 오늘 그가 위험한 지경에 빠진 틈을 타서 죽인다면 하늘이 어떻게 우리를 용납하겠는가? 내가 정녕 왕을 죽일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너의 목을 베겠다!」

투회가 날이 선 칼을 옆구리에 끼고 나가면서 원통해 마지않았다. 잠을 자다가 창문 밖에서 나는 호통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 소왕이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와 투씨 형제들이 다투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다. 소왕은 두 형제가 싸우는 이유를 알게 되어 이어 운 땅에 더 이상 유숙할 마음이 없어지게 되었다. 투신과 투소 형제가 자기와 상의하여 왕을 모시고 운 땅의 북쪽에 있는 초나라의 속국 수(隨)나라로 들어가 몸을 의탁하려고 했다.

한편 초나라의 본대를 이끌고 영성의 서쪽을 지키기 위해 노복강 강안에 주둔하고 있었던 공자신은 영도가 이미 오군에 의해 함락되고 소왕은 그 와중에 성밖으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왕이 도망친 사실을 초나라의 백성들이 알게 되면 나라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질까 걱정하여 즉시 자기가 왕의 복장에 또 왕의 수레를 타고서는 스스로 초왕이라고 칭하고는 비설(脾泄)⑦이라는 곳으로 가서 나라를 다시 세워 백성들을 안무했다. 초나라 백성들이 오나라 군사들을 피해 비설 땅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초왕이 이미 몸을 피해 수나라로 무사히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공자신은 백성들에게 초왕이 수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린 후에 자신도 즉시 달려가 초왕과 상봉했다. 끝내 초소왕을 붙잡지 못한 오자서는 한으로 생각하고 합려에게 청했다.

「초왕을 붙들지 못했으니 우리가 아직 초나라를 멸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신에게 일군의 병사를 주시면 서쪽으로 달아난 초왕의 뒤를 추격하여 사로잡아 돌아오겠습니다.」

합려가 오원의 청을 허락했다. 오원이 초왕의 뒤를 추격하다가 초왕은 이미 수나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수나라로 군사들을 진격시켰다. 오원은 수나라의 국경에 이르자 편지 한 장을 써서 수나라 군주에게 보내 초왕을 붙잡아 자기에게 보내라고 위협했다.

<제 77회로 계속>

주석

①소별산(小別山)/ 호북성 한천시(漢川市) 마안향(馬鞍鄕)에 있던 명나라 때의 산이름으로 한수 남안의 고을이다.

②대별산(大別山)/ 지금의 호북성 서북 쪽에 있는 산맥이름으로 안휘성과의 경계를 짓고 있다.

③백거(柏擧)/ 안휘성과의 경계를 이루는 대별산맥(大別山脈) 밑의 호북성(湖北省) 마성시(麻城市) 서쪽 약 20키로

④섭(葉)/ 지금의 하남성 섭현(葉縣) 서남에 있던 고을 이름으로 춘추 때 초나라 령이다.

⑤운몽(雲夢)/ 지금의 호북성 안륙시(安陸市) 남 30키로의 운몽(雲夢)현을 말한다.

⑥운(鄖)/현 호북성(湖北省) 안륙시(安陸市)-무한시 북서쪽 약 70키로-에 있었던 군소제후국. 초장왕 때의 명재상 투곡오토(鬪谷於兎), 즉 자문(子文)이 태어난 곳으로 그의 외가이다. 후에 투씨들의 봉지가 되었다.

⑦비설(脾泄)/ 위치 미상

[평설]

손무가 오나라의 대장이 되어 올린 가장 위대한 공적은 2000키로 이상의 먼 거리를 6만이란 대군을 이끌고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 행군하여 초나라의 국도인 영도(郢都)를 기습, 점령한 일이다. 손무의 영도 점령은 중국 군사사상 공전의 장거였다. 손무가 행한 작전의 군사학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우회전략(迂回戰略)

오나라는 장강의 하류에, 초나라는 장강의 중류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오나라가 택한 초나라 원정로는 장강의 연안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나아가 회수를 타고 서쪽으로 진공하여 장강 이북의 깊은 곳에서 비밀작전을 전개한 끝에 대별산맥(大別山脈)을 크게 우회하여 인질을 오나라에 보내고 같이 초나라를 정벌하자고 제안했던 채나라로 들어갔다. 채나라 군사들과 합류한 오군은 군량을 보충한 후에 그들을 향도로 해서 초나라를 목표로 서남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어 불시에 초국의 수도 영도를 습격했다. 그와 같은 대우회 전략은 손무처럼 탁월한 지휘자가 아니라면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극도로 어려운 작전이다.

2. 구속사주(求速舍舟)

즉 행군속도를 빨리 하기 위해 배를 버리고 육로를 택했다.

오나라 군대가 배를 이용하여 수로로 진군하다가 주래(州來)에 이르러 회수의 급류를 역류하느라 행군속도가 현저히 지체되자 배를 버리로 육지에 올라 채(蔡)와 당(唐) 두 나라 군대의 인도 하에 비교적 방어시설이 취약한 초나라의 북부지역인 직례(直隷) 등 세 관문을 전격적으로 통과하여 곧바로 초나라의 심장부인 장강과 한수 부근의 땅으로 돌입했다. 손무가 행한 그와 같은 전술은 한 마디로 속도전을 의미하며 병법에 군사 작전의 요체는 속전속결이라는 원칙에도 부합하여 적군이 전혀 예상하게 하지 못한 효과를 거두었다.

3. 임기응변(臨機應變)

오군이 한수의 우측 강안에 주둔하자, 초군은 한수의 좌측에 황급히 방어선을 구축하고 한수를 사이에 두고 오군과 대치에 들어갔다. 그때 만일 초나라가 중원 제후국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그 북부 변경에 배치한 군사들과 오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동부 변경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을 모두 한 곳으로 집결시켜 일군은 한수에 의지해서 오군의 도하를 막고, 다른 일군은 우회하여 오군의 퇴로를 끊었다면, 오군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초군은 그런 작전을 구사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한수를 건너 오군 진영을 공격했다. 그것은 바로 오군이 바라던 바였다. 한수를 도하한 초군은 소별산 밑에까지 진격하여 영채를 세우자, 손무는 군사들에게 단단한 몽둥이를 든 한 떼의 돌격대를 보내어 초군의 영채를 난타하도록 했다. 졸지에 기습을 당한 초군은 별다른 대항도 못하고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도주하기에 바빴다. 다시 초나라 장수들의 심리를 분석한 손무는 그 날 밤 필시 초군이 돌격대를 구성하여 오군 진영에 대한 기습을 예견하고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다. 과연 초군은 오군의 영채를 기습했으나 그들의 작전은 물거품이 되었고, 오히려 그들의 본채만 역습당하고 말았다. 백거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주하던 중에 내부 분열이 일어난 초군을 오군이 공격하여 궤멸시켰다. 다시 패잔병을 수습하여 황망 중에 도강을 하던 초군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해서 전멸시켰다. 그런 다음 본대가 백거에서 이미 싸움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하던 증원군을 옹서(雍筮)에서 요격하여 패퇴시켰다. 오군은 초군의 뒤를 따라 신속하게 한수를 건너 초군이 패잔병을 수습하여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백거의 싸움 이후 영도를 향한 전격전은 심모원려에 따른 작전이었다. 그것은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을 실현하여 적을 제압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4. 교취영도(巧取郢都)

교묘한 전술로 영성을 점령했다. 영도(郢都), 맥성(麥城) 및 기남성(紀南城) 등의 세 성은 많은 병사들로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며 호응하도록 하여 난공불락을 자랑했던 성채였다. 이에 오자서는 자신은 맥성을, 손무에게는 기남성을 각각 맡아서 공략하도록 제안했다. 지형을 살펴본 손무는 장수(漳水)의 물을 끌어들여 기남성을 잠기게 하고 계속해서 영성을 범람시켰다. 영도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초소왕(楚昭王)은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손무가 수공을 성공시킨 결과 군사들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영도를 점령했다.

5. 순수추주(順水推舟)

초나라를 멸한 손무는 초나라의 영토는 너무 넓어 모두 오나라에 병합 할 수 없음으로, 마땅히 섬진과 수호를 맺은 후에 초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미승을 초왕으로 세우고, 그 댓가로 초나라의 일부 땅을 할양받도록 제안했다. 그러나 오왕은 손무의 정확하게 분석한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손무와 오자서를 영성에 주둔하며 지키라 명하고 자기는 부개(夫槪)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오나라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나라에 당도한 합려는 월나라의 위협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영성에 주둔하고 있던 오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때 손무 역시 초나라의 대신 신포서(申包舒)가 친구의 신분으로 오자서에게 철군을 종용하는 편지를 접수했다. 그 권고에 따라 손무와 오자서는 장강의 흐름을 따라 선박을 이용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초나라가 동의하자 오군은 승리자의 신분으로 오나라로 회군하여 월군의 침입에 대비했다.

오나라의 초나라 정벌전은 많은 새로운 전략이 등장했다. 손무는 초나라 정벌전을 수행하면서 자기가 저술한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이론을 운용하고 검증했다. 물론 손무라고 해서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신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행한 용병은 인간으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송나라의 문인 소순(蘇洵)은 당시 손무가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적군에게 지나치게 위협을 가하여 대화의 통로를 막아 버린 결과 초나라의 신포서가 섬진으로 달려가 7일 밤낮을 궁전의 뜰에서 통곡을 하여 마침내 섬진의 구원군을 얻게 만들게 했다. 둘째는 난폭한 군대를 오랫동안 주둔시킴으로 해서 오군의 예기를 떨어뜨리고, 군비를 탕진함으로 해서, 그 기회를 틈타 제후들이 반기를 들게 만들었다. 셋째는 적을 죽여 상대방을 분노케 했다. 오자서는 초평왕의 시신에 채찍을 가하여 초나라 백성들을 격노케 함으로 해서 오군에 대하여 반감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와 같은 소순의 손무에 대한 비평은 일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모든 결정권은 오왕 합려의 수중에 있어 오군이 저지른 실책을 모두 손무에게 돌린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손무의 초나라 정벌전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어떠한지는 별도로 치고, 오나라의 그와 같은 심대한 일격은 초나라의 원기를 손상하게 하여 초나라의 위세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오나라는 원래 초나라의 속국이었다가 후에 중원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강대하게 된 나라다. 당시 오나라의 주검(鑄劍) 기술은 중원의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기원전 584년 즉 수몽(壽夢) 2년에 오나라는 무신(巫臣)의 건의를 채택하여 당진국와 공수동맹을 맺고 초나라에 대항하기로 하고 중원의 군사전략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증강된 군사력으로 초나라의 일부 영토를 탈취했다. 이로써 당진과 패권전쟁을 수행하던 초나라는 그 측면에 오나라라는 새로운 적을 맞이하게 됨으로 해서 심대한 타격을 받아 국력이 피폐되기 시작했다. 이에 기원전 531년 초나라도 월나라와 공수동맹을 체결하고 그들로 하여금 오나라의 후방을 교란하도록 했다. 오왕 합려는 기원전 515년 즉위한 이후부터 초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초나라의 내정이 부패되어 국세가 수세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6년 동안이나 그 변경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윽고 초나라가 오나라의 침략 행위에 대해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을 때 돌연히 오나라의 전군을 동원하여 초나라를 공격하여 영도를 함락시켜 버렸다. 기원전 505년 월나라는 오군이 초나라 로 원정 나가 그 도성이 빈틈을 타서 공격했다. 그리고 다시 섬진의 구원군이 초나라의 구원을 위해 출병하자 오군은 할 수 없이 본국으로 철수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오나라와 연계하여 초나라에 대항하려고 했었던 당진국이, 정작 오나라가 초나라를 대거 공격했음에도 소극적인 방법으로 일관하고 결국은 군대를 내어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행위는 초나라가 오나라에 의해 원기가 크게 손상을 당하기는 했지만 초나라로서는 천만 다행한 결과였다.

목록
1511
[일반] 제4부7권 오자서, 장강의 물결을 요동시키다-목차

제71회 二桃殺三士 取媳逐太子 (이도살삼사 취식축태자) 복숭아 두 개로 제나라의 세 장사를 죽인 안평중과 며느리를 가로채고 태자를 쫓아
양승국 04-05-11
[일반] 제83회. 葉公定楚(엽공정초) 滅吳稱覇(멸오칭패)

제83회 葉公定楚 滅吳稱覇(엽공정초 멸오칭패) 백공 미승을 죽여 초나라를 안정시키는 엽공 심제량과 오나라를 멸하고 중원의 패자가 된 월왕 구
양승국 04-05-11
[일반] 제82회. 黃池爭歃(황지쟁삽) 子路結纓(자로결영)

제82회 黃池爭歃 子路結纓(황지쟁삽 자로결영) 황지에서 삽혈의 순서를 다툰 오왕 부차와 위후에 항거하여 싸우다가 갓끈을 고쳐 매고
양승국 04-05-11
[일반] 공자연표와 각 제후국의 정세

공자연표(孔子年表) 공자나이 기원전 魯 연대기 周 齊 唐晉 楚 宋 衛 陳 蔡 曹 鄭 吳 1 (1)
82.8K 양승국 04-05-11
[일반] 제81회. 西施入吳(서시입오) 說客子貢(세객자공)

제81회 美人西施 說客子貢(미인서시 세객자공) 오왕 부차는 미인계로 보낸 월나라의 서시에 빠지고 자공은 열국을 유세하여 노나라를 전쟁의 위험
양승국 04-05-11
[일반] 제80회. 違諫釋越(위간석월) 竭力事吳(갈력사오)

제80회 違諫釋越 竭力事吳(위간석월 갈력사오) 오자서의 간함을 듣지 않고 구천을 석방하는 부차와 있는 힘을 다하여 부차를 받드는 구천. 1.
양승국 04-05-11
[일반] 제79회. 遊說天下(유세천하) 會稽之恥(회계지치)

제79회 遊說天下 會稽恥辱(유세천하 회계치욕) 노나라를 떠나 천하의 제후들에게 유세를 행하는 공자와 회계에서 오왕에게 치욕을 당한 월왕 구천 (1)
양승국 04-05-11
[일반] 제78회. 夾谷却齊(협곡각제) 墮城伏法(타성복법)

제78회夾谷却齊 伏法聞人(협곡각제 복법문인) 협곡의 회맹에서 제나라의 불손함을 물리치고 요설을 퍼뜨리고 다니는 문인(聞人)을 법에 따라 처형
양승국 04-05-11
[일반] 제77회. 泣庭借兵(읍정차병) 退吳返國(퇴오반국)

제77회 泣庭借兵 退吳返國(읍정차병 퇴오반국) 칠주야를 눈물로 호소하여 군사를 빌린 신포서와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찾은
양승국 04-05-11
[일반] 제76회. 柏擧之戰(백거지전) 掘墓鞭尸(굴묘편시)

제76회 柏擧之戰 掘墓鞭尸(백거지전 굴묘편시) 백거의 싸움에서 이겨 영성을 점령한 오왕 합려와 무덤의 시신에 채찍질하여 부형의 원한을
양승국 04-05-11
[일반] 제75회. 演陣斬姬(연진참희) 納質乞師(납질걸사)

제75회 演陣斬姬 納質乞師(연진참희 납질걸사) 진법 훈련 중에 오왕의 총희를 참한 손자와 인질을 바쳐 오나라에 군사를 청하는 채소후 1. 단지
양승국 04-05-11
[일반] 제74회. 誅戮無極(주륙무극) 貪名刺客(탐명자객)

제74회 誅戮無極 貪名刺客(주륙무기 탐명자객) 희대의 간신 비무극을 주살하는 초나라의 영윤 낭와와 명예를 탐하여 가족을 버리고 경기를 죽인
양승국 04-05-11
[일반] 제73회. 吹簫乞吳(취소걸오) 進炙刺王(진자자왕)

제73회 吹簫乞市 進炙刺王(취소걸시 진자자왕) 오성에서 피리를 불며 걸식하는 오자서(伍子胥)와 생선구이 속에 숨긴 비수로 왕료를 찔러 죽인
양승국 04-05-11
[일반] 제72회. 捐軀父難(연구부난) 變服過關(변복과관)

제72회 捐軀父難 變服過關(연구부난 변복과관) 목숨을 버려 부친과 위난을 같이 맞이한 오상과 변복하여 소관을 넘어 오나라로 들어간 오자
양승국 04-05-11
[일반] 제71회.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取媳逐太子(취식축태자)

제71회 二桃殺三士 取媳逐太子 (이도살삼사 취식축태자) 복숭아 두 개로 제나라의 세 장사를 죽인 안평중과 며느리를 가로채고 태자를
양승국 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