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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06:358001 
제7회. 暗箭傷人(암전상인), 獻諂弑君(헌첨시군)
양승국   (1664)
 그림7-1. 영고숙과 수레를 놓고 다투다가 활을 쏘아 죽인 정나라의 공손알 001.jpg  (547.5K)   download : 196
 7국의 국제전으로 번지는 정과 송의 갈등.jpg  (200.8K)   download : 245
일반

제7회 暗箭傷人 獻諂弑君 (암전상인 헌첨시군)

수레를 다투던 영고숙을 쏘아 죽인 공손알과

아첨이 안 먹히자 오히려 노은공을 시해한 공자휘

1. 鷸蚌相持 漁父之利(휼방상지 어부지리)

- 물총새와 조개가 싸우는 틈을 타서 어부가 이득을 취하다.-

급보를 받은 정장공은 본국의 안위가 근심되어 군사들을 회군시키려고 즉시 전령을 보냈다. 이중년과 공자휘 등이 친히 본영에 와서 장공을 보고 말했다.

「저희 소장들이 승승장구하여 이제 앞으로 나아가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을 취하려고 하는 순간에, 오히려 회군하신다는 명령을 내리시니이는 어찌된 일입니까?」

정장공은 지략이 많은 간웅이라 송위 두 나라가 정나라 본국을 습격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말했다.

「제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송나라를 토벌하고 있는데 오늘 상국의 군사들을 빌려 송나라의 두 성을 함락시켜, 이미 송나라의 땅을 빼앗아 그 벌을 대신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하겠습니다. 또한 송나라는 주나라 천자께서 손님으로 대하는 공작의 나라라 왕실도 평소에 예를 다하여 높이고 있습니다. 어찌 감히 제가 더 많은 것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점령한 고성과 방성 두 고을은 제와 노 두 나라가 각각 한 곳씩 차지하시어 제가 추호도 사사로움이 없는 사람임을 알아주시면 그저 감사할뿐입니다.」

정장공의 공정한 처사에 감복한 제군 대장 이중년이 고사했다.

「정나라가 왕명으로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토죄하는데 우리나라도 뒤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달려와 약간의 노력을 한 끝에 조그만 공을 세웠습니다마는 이것은 예를 따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뿐입니다. 결코 저희는 그 고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중년이 재삼 사양하자 장공이 말했다.

「기왕 공자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하니 두 고을을 모두 노나라에 주어 공자휘께서 노도에서 세운 일등공에 보답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휘가 사양하는 말도 없이 두 손을 높이 올려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즉시 장수를 뽑아 군사를 이끌고 고성과 방성 두 고을로 보내 지키게 했다. 정장공이 삼군을 배불리 먹이고 이중년과 공자휘와 삽혈의 의식을 행하여 앞으로 3국은 어느 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는 서로 돕기로 맹세했다.

『앞으로 우리 세 나라는 이후에도 환란이 있으면 같이 도와주고 서로 돕는다. 이를 어길 때는 천지신명께서 용서치 않으리라!』

정장공와 헤어져 제나라에 귀국한 이중년이 제희공에게 방성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복명했다. 희공이 듣고 말했다.

「옛날 나와 정백이 석문(石門)의 회맹에서 두 나라에 일이 생기면 서로 돕는다고 했다. 오늘 다른 나라의 고을을 취했다면 이는 당연히 정나라의 소유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백이 취하지 않고 모두 노나라에게 주었습니다.」

희공은 정백의 공평무사함을 들어 칭찬해 마지않았다.

한편 정백이 군사를 물리쳐 정나라 본국으로 행군하던 도중에 다시 본국에서 보내온 급보를 받았다.

「송과 위의 군사는 이미 물러가 대국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습니다.」

장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두 나라 장수들의 무능함을 알겠노라! 병법에 밝지 못한 공보가는 자기 본국을 구하고자 하면서 엉뚱하게 다른 나라에 화풀이를 할 줄은 몰랐다. 내가 마땅히 계책을 써서 대성을 취하리라.」

곧바로 군사들을4대로 나눈 정장공은 장수들에게 각각 계책을 일러주었다. 이어서 입에 함매(銜枚)를 물린 군사들에게 북을 옆으로 뉘여 소리를 죽이고 아무도 몰래 대나라를 향해 행군하게 했다. 한편 송나라의 요청을 받고 출동한 채나라의 원병이 당도하여 공성전에 합세하자 마침내 대성은 북소리 한 번만 더 울리면 함락될 순간이었다. 갑자기 탐마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정나라가 대성을 구하기 위해 상장 공자려를 보냈습니다. 지금 공자려는 군사들과 함께 대성 50리 밖에 진을 치고 정세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혈기가 왕성한 우재추가 말했다.

「공자려는 옛날 위나라의 군사들과 싸우다가 패전하여 도망친 패군지장이라 싸움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자입니다.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탐마가 와서 보고했다.

「대나라 군주가 정나라의 구원병을 성안으로 맞이해 들였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진 공보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우재추에게 의견을 물었다.

「눈앞의 대성은 손만 내밀면 넣을 수가 있었는데 뜻밖에 정나라 군사들이 도우니 또다시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정나라의 구원병을 얻은 대나라 군주는 힘을 합하여 필시 싸움을 걸어올 것입니다. 사마와 제가 진채의 망루에 같이 올라가 성안의 동정을 살펴보고 나서 대비책을 세우면 어떻겠습니까?」

두 장수가 망루 위에 바로 올라가 대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서로 상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포성 소리가 연달아 끊이지 않고 들려 왔다. 이어서 대성의 성루 위에는 정나라 국기가 꽂히고, 공자려가 전신에 갑옷을 입고 성루 위에 나타나 난간에 기대어 서서 송채위(宋蔡衛) 삼국연합군의 진채에 세운 망루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상국의 장군들이 힘써 준 덕분에 우리 주군께서 이미 대성을 취하셨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래 정장공이 계책을 세우기를, 겉으로는 공자려로 하여금 군사를 인솔하여 대성을 구한다고 하면서, 실은 장공이 친히 융거를 타고 소란한 틈을 이용하여 대성에 진입했다. 정장공은 대나라 군주를 쫓아내고 성안의 군민들을 수습했다. 그때 성안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연일 계속되는 싸움에 지치고 또한 정백의 위명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몇 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대나라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망해 결국 정나라 땅이 되고말았다. 대나라 군주는 가솔과 궁인들을 데리고 대성에서 쫓겨나 서쪽의 섬진으로 들어갔다. 정백이 이미 대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공보가는 분기가 탱천하여 투구를 벗어 땅에 내 던지며 말했다.

「나는 맹세하건대 금일 이후로는 정백과는 결코 같은 하늘에 살지 않겠다.」

곁에 있던 우재추가 근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 늙고 교활한 도적은 병법에도 능합니다. 계속해서 우리 진영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만일 안과 밖에서 호응하여 협공하면 우리는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대부께서는 어찌 그리 겁이 많으십니까?」

두 사람이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고가 올라 왔다.

「성안에서 사절이 전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공보가가 주저하지 않고 즉시 다음날 결전을 하자는 답서를 보내고 한편으로는, 위와 채 두 나라 장수들을 불러 송나라를 포함한 3로의 병사들을 일제히 20리를 후퇴시켜, 적의 기습에 대비했다. 공보가는 자신의 군사를 중군으로 하고, 채와 위 두 나라 군사들은 좌우에 진을 치게 했다. 3로의 군사들이 진채를 세우는 일을 간신히 끝내는 사이 날은 어느 덧 깊은 밤이 되어 군사들이 가쁜 숨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순간, 홀연히 진채의 뒤편에서 포 소리가 한 번 울리더니 이어서 화광이 하늘을 찌르고 전차 구르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전령이 뛰어와서 보고했다.

「정나라 군사들이 기습해 왔습니다.」

대노한 공보가가 방천화극을 집어 들고 전차에 올라타 적군을 맞이하러 나갔다. 그러자 이내 전차 굴러가는 소리가 멎고, 화광은 모두 꺼져 버려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 되어 할 수 없이 영채로 돌아오려고 하는 순간, 이번에는 왼쪽 진영에서 포성이 다시 들리며 화광이 뒤를 이었다. 공보가가 영채를 다시 나와 살펴보니, 왼쪽의 화광은 다시 꺼지고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연달아 포성소리가 나며, 한줄기의 화광이 나무숲 사이로 은은히 나타났다. 공보가가 군령을 발했다.

「이것은 늙은 도적의 의병계로서 우리를 현혹하려는 계책이다. 함부로 난동하는 자는 참한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좌변에서 화광이 또다시 일어나며 함성이 진동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초병이 달려와 급보를 전했다.

「채나라 진영이 습격당했습니다.」

「내가 몸소 출전하여 구하리라.」

공보가가 영채의 문을 열고 전차를 이끌고 나가자 오로지 오른쪽에서 화광이 다시 일어나는데 도무지 정나라 군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보가가 어자에게 큰소리로 명령했다.

「너는 오로지 전차를 왼쪽을 향하여 몰기만 해라.」

어자가 당황하여 공보가가 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전차를 몰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대략 한식경 정도 싸우던 중에, 상대방의 군사가 위나라 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나라 군사들이 서로 소통한 후 군사들을 합하여 중군의 영채를 향해 행군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정나라 장수 고거미가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점령한 다음 매복하여 적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정군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은 공보가는 군사들의 행군 방향을 돌려 영문을 통해 달아나려 하자, 영문의 오른쪽에는 영고숙이, 왼쪽에는 공손알이 길을 막고 있었다. 공손알은 우재추와 교전하고 영고숙은 공보가와 싸우게 되었다. 양쪽의 군사들은 서로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던 중, 어느덧 동쪽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정군이 파 놓은 함정에 갇혀 전의를 상실한 공보가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고거미가 그 앞을 가로막자 몇 합 싸우다가 이내 전차를 버리고 도보로 도망가는데, 옆에 따르는 군사는 20 명도 채 안 되었다. 우재추는 싸움 중에 죽고 3국의 전차와 병사들은 모두 정나라의 포로와 노획물이 되었다. 그리고 정나라 경성 교외에서 공보가에 의해 사로잡힌 포로와 약탈되었던 가축 및 치중도 정나라가 다시 찾아갔다. 대성의 싸움은 정장공의 신출귀몰한 계책에 의해 정나라 군사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정장공이 대성을 얻고 또한 포로로 잡힌3국의 군사들도 같이 개선가를 큰 소리로 부르게 하면서, 치중과 노획물을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 왔다. 장공이 크게 잔치를 열고 종군했던 여러 장군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 때의 이을 노래했다.

주객과 자웅이 미처 정해지기 전에

장공이 세운 지략의 묘하기가 마치 귀신과 같았다.

이는 황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늘어지고 있는 사이에

그물을 치고 기다리던 어부가 차지한 일이었다.

主客雌雄尙未分(주객자웅상미분)

庄公智計妙如神(장공지계묘여신)

分明鷸蚌尙持勢(분명휼방상지세)

得利還歸結罔人(득리환귀결망인)

2. 爭車比武(쟁거비무)

- 무예를 겨루어 수레를 다투는 정나라의 장수들

대성을 얻은 정장공이 포로로 잡은 송위채 삼국의 군사들에게 정군과 함께 개선가를 큰 소리로 부르게 하면서, 치중과 노획물을 마차에 가득 싣고 본국에 개선했다. 장공이 크게 잔치를 열고 종군했던 여러 장군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장수들이 차례로 술잔을 올려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장공이 얼굴에 덕색을 띄우며 술잔을 들어 땅에 쏟으며 말했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조상의 신령으로부터 도움과 여러 경들의 노고 덕분에,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겨 위엄이 상공(上公)에 못지않게 되었다. 경들은 과인이 옛날의 방백(方伯)과 비교하여 어떠하다고 생각하는가?」

정나라의 군신들이 모두 천세에 없는 공적이라고 치하를 하고 있는데 유독 영고숙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서있었다. 장공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영고숙이 아뢰었다.

「주군께서는 실언하셨습니다. 무릇 방백이 된 자는 왕명을 받아, 어느 일정한 지역의 여러 제후들 중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천자의 명령이 있으면 정벌하고, 영이 없으면 행하지 않고,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습니다. 오늘 주공께서 왕명을 구실로 송나라의 죄를 물었으나, 천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항차 정벌군을 청하는 격문을 여러 나라에 보냈으나, 채와 위 두 나라는 오히려 송나라를 돕고, 성(郕)①과 허(許)②같은 소국도 공공연히 토벌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방백의 위엄이 어찌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음에도 천세의 공적 운운하십니까?」

장공이 얼굴색을 바로 하고 웃으면서 영고숙을 향해 말했다.

「경의 말이 옳도다! 채와 위 두 나라는 송나라에 보낸 원군이 모두 전멸하였으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징벌은 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성과 허 두 나라에 그 죄를 묻고자 하는데, 두 나라 중 어느 나라를 먼저 정벌해야 한다고 경은 생각하는가?」

영고숙이 대답했다.

「성은 제나라와 인접해 있고 허는 우리 정나라와 접해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토벌군을 보내 두 나라의 항명죄를 추궁하셔야 합니다. 우선 장수 한 사람을 제나라에 보내 성나라가 저지른 죄명을 고하고 제나라로 하여금 성나라를 토벌하도록 요청하십시오. 약속이 일단 잡히면 한 떼의 군마를 보내 제나라를 돕도록 하십시오. 성나라 토벌전이 끝나면 제나라에 한 떼의 군사를 청하여 우리 정나라가 허나라를 토벌하는데 지원을 받도록 하십시오. 성나라를 얻으면 제나라에 복속시키고 허나라를 얻으면 정나라에 병합하여 양국이 같이 일을 도모하여 우의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 나라를 정벌하는 일이 끝나면 주나라에 첩보를 올려 천하 제후들 이목을 피해야 합니다.」

「매우 훌륭한 계책이오. 단 순서에 따라서 하나하나 행하도록 하겠소.」

장공이 그 즉시 한 사람의 장수를 선발하여 제나라에 사자로 보내, 성(郕)과 허(許)나라의 죄를 제후에게 고하게 했다. 제후는 흔연히 동의하고 이중년을 대장으로 삼아 대군을 일으켜 성나라 정벌에 나서게 하자, 정나라도 공자려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직접 성나라로 쳐들어가 제군을 돕도록 했다. 성나라 사람들이 크게 놀라 제나라에 항복하기를 청하자, 제후가 이를 받아들였다. 성나라의 항복을 받아낸 제후가 사절을 공자려와 함께 정나라에 동행하게 하여, 허나라를 정벌할 시기를 물어 보게 했다. 정장공은 제희공과 시래(時來)③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다시 제후에게 부탁하여 노후와도 같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기를 청했다.

그때가 주환왕8년으로 기원전 712년 봄의 일이었다. 이 해에 성나라 정벌을 끝내고 돌아오던 공자려가 도중에 병을 얻어 본국에 당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장공이 소리 높여 울고는 애통해 하며 말했다.

「자봉(子封)이 박복하여 죽었으니 나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구나!」

장공은 공자려의 유족들을 후하게 보살펴 주고 그의 동생 공자원(公子元)을 대부로 삼았다. 공자려가 죽어 정경의 자리가 비자, 장공은 고거미를 임용하려 했다. 그러나 세자홀이 은밀히 간했다.

「고거미는 탐욕스럽기가 이리와 같아 올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중용하면 안 됩니다.」

장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고쳐 제족을 정경으로 삼아 공자려의 직을 대신케 하고 고거미는 아경(亞卿)으로 삼았다. 그해 여름에 제희공과 노은공(魯隱公)이 시래에 당도하여, 정백과 만나 허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는 날짜를 정했다. 두 나라 군주는 가을철 칠월 삭일(朔日)에 허나라 땅에서 같이 모이기로 약속한 후에 헤어져 본국으로 각각 돌아갔다.

도성으로 돌아온 정장공은 대군을 사열하고, 제사 날을 택일하여 태묘에 고한 후, 여러 장수들을 훈련장에 모이게 했다. 정장공은 큰 모호기(蝥弧旗)④를 다시 만들게 하여 수레 가운데에 세운 다음 쇠사슬로 동여매도록 지시했다. 모호기는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길이가 1장 2척이고, 가장자리에는 24개의 방울은 매달았으며, ‘봉천토죄(奉天討罪)’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수놓게 했다. 또한 그 깃대는 길이가 3장 3척이나 되었다⑤. 장공이 영을 내렸다.

「이 대기를 손에 들고 평상시처럼 걷는 장수가 있다면 공격의 선봉으로 삼고 이 모호기와 같이 로거(輅車)⑥를 상으로 주겠다.」

정장공이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장군의 대열 중에서 한 사람의 대장이 뛰어 나왔다. 머리에는 은빛 투구를 쓰고, 몸에는 붉은 색 전포에 금빛 갑옷을 입은 그 장수는 검은 얼굴에 수염은 곱슬하고, 짙은 눈썹에 눈알이 커다란 사람이었는데, 바로 대부 하숙영(瑕叔盈)이었다. 하숙영이 장공이 앉아 있던 전당 위로 올라와 아뢰었다.

「신이 능히 모호기를 손에 들고 평상시처럼 걸을 수 있습니다.」

하숙영이 한 손으로 깃대를 뽑아 단단히 잡고서 앞으로3보 뒤로 3보를 걷고, 다시 수레 위에 깃대를 꽂았는데,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군사들이 보고 박수갈채를 쳤다. 숙영이 큰소리로 외쳤다.

「로거를 모는 마부는 어디로 갔느냐? 수레를 나에게 몰고 오너라.」

하숙영이 감사의 말을 장공에게 드리려고 하는 순간, 또다시 장군들의 반열 중에서 한 사람의 대장이 뛰어 나오는데, 보니 영고숙이었다. 머리에는 꿩깃으로 장식한 투구를 쓰고, 이마에는 녹색 비단으로 띠를 만들어 두른 영고숙은 붉은 색 전포에 물소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장공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기를 들고 몇 발자국 걷는 것쯤이야 별로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은 기를 들고 능히 춤을 출 수 있습니다.」

하숙영 앞으로 수레를 몰고 오던 마부가, 큰소리를 치는 영고숙의 모습을 보고 잠시 수레를 멈추고 서서 동정을 살폈다. 왼손으로 자기의 옷자락을 걷어 올린 영고숙은 오른손으로 깃대를 묶은 쇠사슬을 풀더니 곧바로 뒤로 돌아서서, 깃발을 뽑아 들고 몸을 솟구쳐 수레 위로 뛰어 올랐다. 순식간에 모호기는 수레에서 뽑혀 그의 손안에 들어가 있었다. 영고숙은 다시 재빨리 왼손으로 깃발을 부여잡고, 자연스런 자세로 몸을 한 바퀴 돈 다음, 오른손으로 깃발을 옮겨 들었다. 영고숙이 깃발을 들고 왼쪽으로 돌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으로 도니, 그 깃발은 마치 자루가 긴 창을 휘두르는 동작과 같이 되었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윙윙하며 내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말렸다가 다시 펴지고 펴졌다가 다시 감기곤 했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 아연해 했다. 장공이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진실로 호랑이 같은 장수로다. 마땅히 로거는 고숙에게 주고, 그를 선봉으로 삼아야 하겠다.」

장공이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무반의 반열에서 소년장군 한 사람이 달려나왔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이 하얗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로 바른 것 같이 빨겠으며, 머리에는 자주색 투구를 썼는데 머리를 땋아 묶은 형상에 몸에는 녹색의 비단 전포를 두르고 달려 나온 소년장군이 고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네가 기를 들고 춤을 출 수 있는데 나라고 할 수 없겠느냐? 수레를 잠깐 멈추어라!」

발걸음을 크게 하고 흉맹한 기세로 다가오는 소년장군을 본 영고숙은, 한 손으로는 모호기의 자루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수레의 끌채를 잡으며 마치 나는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년장군이 놓치지 않으려고 교장 한쪽의 병장기를 보관해 놓는 선반에서 방천화극 한 자루를 꺼내어 들고 교장 밖으로 도망치고 있던 고숙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큰길로 나가자 장공은 대부 공손획(公孫獲)에게 달려가게 하여 두 사람이 싸우기를 그만 두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그 소년장군이 보니 영고숙은 이미 멀리 도망가 버려 쫓아 갈 수 없음을 알고는 할 수 없이 돌아오면서 분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 놈이 우리 희성(姬姓) 공족 중에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멸시를 하고 있는데 내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이고 말리라!」

그 소년 장군은 바로 공족대부로써 이름은 공손알(公孫閼)이라 하고 자는 자도(子都)라 했다. 당시 정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남으로서 장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공손알은 장공의 동생 공자려(公子呂)의 아들로 장공에게는 조카가 되었다. 후에 맹자가 이 사람에 대해서 ‘ 자도(子都)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면 이는 눈이 없는 사람이다’⑦ 라고 말할 정도로 미남이었다. 공손알은 장공의 총애를 믿고, 또한 용기와 힘을 겸비하여 영고숙과는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영고숙을 쫓다가 교장에 다시 돌아온 공손알은 모호기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했다. 장공이 그의 용력을 칭찬하며 말했다.

「호랑이 같은 두 장수들은 서로 다투지 말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

장공이 영고숙과는 별도로 공손알과 하숙영에게도 수레를 각각 상으로 하사하자, 두 사람은 모두 장공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헤어졌다. 염옹(髥翁)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군법이 원래 귀하게 된 것은 정제함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인데

방천화극을 손에 잡고 수레 다투기를 감히 제 멋대로 하니

정나라 궁궐의 뜰에는 비록 사나운 장수들이 많다 했지만

무례한 자로 인하여 그들의 목숨은 필시 위태롭게 되었음이라.

軍法從來貴整齊(군법종래귀정제)

挾轅拔戟敢胡爲(협원발극감호위)

鄭庭雖是多驍勇(정정수시다효용)

無禮之人命必危(무례지인명필위)

3. 妒賢射死(투현사사)

- 현능한 사람을 질투하여 활로 쏘아 죽이는 공손알 -

그 해 칠월 초하루 날 정장공은 제족과 세자홀을 본국에 남겨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거느리고 허나라를 향해 진군했다. 제와 노 두 나라 군주들은 이미 허성 밖 20리 되는 곳에 도착하여 진채를 세우고, 장공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나라 군주들이 서로 만나 예를 행한 후 가운데 자리는 제후에게 양보하고 오른쪽은 노후가 왼쪽은 장공이 앉았다. 그날 장공은 잔치를 크게 열어 두 나라 군주를 접대했다. 제후가 소매 속에서 격서 한 장을 꺼내어 두 나라 군주에게 보였다. 격서에는 허남(許男)⑧이 주나라에 입공하지 않은 죄상을 열거하고, 왕명이 있어 그 죄를 물어 토벌한다고 했다. 노와 정 두 나라의 군주들도 격서를 읽기를 마치고, 일제히 두 손을 맞잡고 높이 들어 읍을 행하며 말했다.

「마땅히 격문의 내용은 이래야만 합니다. 군사를 출동시킬 명분이 섰습니다.」

세 나라의 군주들은 다음날 진시에 일제히 성을 공격하기로 약속하고, 휘하의 장수 한 사람에게 시켜 격문을 화살에 매달아서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세 나라 군사들이 자기들의 진영에서 포를 쏘며 허성(許城)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허나라는 작위가 남작국이라서 그 도성은 아주 조그만 성읍에 불과했다. 높지 않은 성벽에, 해자도 깊지 않아서, 허성은 삼국의 군사들에 의해 겹겹이 포위되어 물샐 틈도 없게 되었다. 허성의 성안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허장공(許庄公)은 도리가 있는 군주로 평소에 백성들의 인심을 얻고 있었다. 일치단결한 허나라의 백성들이 굳게 지켰음으로 삼국 연합군은 허성을 쉽사리 함락시킬 수 없었다. 제와 노 두 나라 군주들은 원래 이번 토벌 작전을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힘을 다해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오로지 정나라 장수들만이 힘을 다하고 용기를 내어 허성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 중에서 특히 영고숙은 공손알과 수레를 두고 다투었던 관계로, 더욱더 그보다 먼저 공을 세우려고 했다. 허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지 3일 째 되는 날 오시(午時)에, 영고숙이 초거(軺車)⑩에 올라가서 모호기를 뽑아 어깨 위에 들고, 몸을 솟구쳐 뛰어올라 허성의 성벽 위에 올라섰다. 공손알이 두 눈을 손으로 씻고 자세히 바라보니, 영고숙은 이미 성벽 위로 올라가 있었다. 허성에 올라 공을 세운 고숙을 시기한 공손알을 여러 군사들 틈에 끼어 고숙을 쳐다볼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쉿 소리와 함께 화살 한 개를 날렸다. 영고숙은 머리 뒤에 화살을 맞고 숨이 끊어졌다. 영고숙이 들고 있었던 모호기는 성 위에서 미끄러져 밑으로 떨어졌다. 영고숙이 수비군의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했다고 생각한 하숙영이 분노를 참지 못하여, 번개 같은 동작으로 진중에서 뛰쳐나와 성 위에서 떨어진 모호기를 주워 손에 들고, 한 번에 용솟음쳐서 성벽으로 뛰어 올라가 성 위를 한 바퀴 돌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이미 성 위에 올라 왔다!」

비단으로 만든 모호기가 성 위에서 바람에 펄펄 나부끼는 모습을 보자 정백이 이미 입성했다고 생각한 정나라 군사들은 용기백배하여 일제히 성 위로 기어오른 후에 성문을 부수고, 제와 노 두 나라 군사들을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어서 3국의 군주들도 군사들의 뒤를 따라 입성했다. 허장공은 옷을 바꿔 입고 패잔병과 난민 중에 섞여서 성문을 빠져 나와 위나라로 도망쳤다.

제희공이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허나라 땅을 노나라에 주려고 했다. 노은공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제희공이 말했다.

「이번의 싸움은 원래 정나라가 계획하여 주도했고 또한 노나라가 받지 않으니 허나라 땅은 정나라에 귀속되어야 마땅합니다.」

정장공은 마음속으로는 허나라 땅이 탐이 났지만 제와 노 두 나라가 겸양하자 자기도 오로지 사양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 문제로 세 나라 군주들이 상론하고 있을 때 보고가 올라왔다.

「허나라 대부 백리(百里)가 어린아이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세 나라의 군주들이 이구동성으로 접견을 허락했다. 백리가 들어와 땅에 엎드려 통곡한 후에 고개를 들어 애걸했다.

「원컨대 태악(太岳)⑪이래 전해 내려온 허나라의 종묘에 제사나마 끊어지지 않고 지내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후가 물었다.

「이 어린아이는 누구인가?」

「저희 허군께서는 자식이 없습니다. 허군의 어린 동생 신신(新臣)이라 합니다.」

제와 노 두 나라 군주들은 처연한 마음이 되어 허나라의 처지를 동정하게 되었다. 정장공도 동정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났으나, 곧이어 신신을 이용하여 허나라를 정나라에 귀속시키기 위한 계책으로 삼고자 마음을 고쳐먹고 백리를 보고 말했다.

「과인이 원래 왕명을 쫓아 두 나라 군주의 뒤를 따라 허나라의 죄를 토벌하였는데, 내가 그 땅을 탐하여 이를 추구한다면 이는 옳지 않는 일이다. 오늘 비록 허군이 도망가버렸으나, 그 사직을 위한 제사마저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그 동생이 여기 있으니 일단은 허나라 대부인 백리 그대에게 잠시 맡겨 다스리게 하면 군주가 있고 신하가 있으니, 마땅히 허나라를 돌려줄 수 있겠다.」

백리가 대답했다.

「우리 허나라의 군주는 도망가고 나라는 망했습니다. 원하옵건대 어린 고아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할뿐입니다. 허나라 땅은 이미 군주에게 복속되었는데 어찌 감히 나라를 되찾으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허나라를 다시 복국 시키려고 함은 나의 진심이로다. 단지 신신의 나이가 어려 나라의 일을 맡길 수가 없으니 과인이 사람을 파견하여 돕도록 하겠다.」

이어서 정장공은 허나라를 두 지방으로 나누어 동쪽은 백리로 하여금 신신을 받들어 살게 하고, 서쪽은 정나라 대부 공손획을 보내어 다스리게 했다. 공손획을 보낸 의도는 겉으로는 허나라를 돕는다 했지만, 실은 허나라의 일반 정사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제와 노 두 나라 군주들은 장공의 그 계책을 알지 못하고 그의 조치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칭찬해 마지않았다. 백리가 신신과 같이 세 나라 군주들에게 감사하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물러갔다. 세 나라 군주들도 각기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염옹(髥翁)이 정장공의 속임수에 대해 비난하는 시를 지었다.

잔인하기가 골육의 은혜도 모르는 사람인데

구구한 허나라와는 무슨 까닭으로 친하다고 하는가?

허나라를 두 개로 쪼개어 감시하고자 했으니

허명만 앞세워 사람을 속이기를 이와 같이 하는가?

殘忍全無骨肉恩(잔인전무골율은)

區區許國有何親(구구허국유하친)

二偏分處如監守(이편분처여감수)

却把虛名哄外人(각파허명홍외인)

한편 위나라로 도망친 허장공은 그곳에서 살다가 늙어 죽었다. 그의 동생 허숙(許叔) 신신은 두 개로 나뉜 허나라의 동쪽 지방의 영주로 임명되어 정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후에 정나라에서는 정장공이 죽자 장공의 아들들 사이에 수십 년간에 걸친 후계자 싸움이 일어났다. 홀(忽)과 돌(突)이 허나라에 번갈아 오고가고 다시 그 동생들이 군주 자리를 찬탈하는 동안 공손획은 병들어 죽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허숙의 계책을 받아들인 백리가 몰래 허성에 잠입하여 허나라를 복국시켰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한편 정장공은 귀국하여 하숙영에게 큰상을 내리고 영고숙의 죽음에 대해 애통해 했다. 이어서 고숙을 쏴 죽인 자에 대하여 한을 품었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장공은 허나라에 출정했던 병사들을 시켜 백 명마다 돼지 한 마리씩과 25명으로 이루어진 한 행(行)마다 개와 닭을 각각 한 마리씩을 내놓게 한 다음, 무당을 불러 주문을 외워 저주하게 했다. 공손알은 마음속으로 몰래 웃었다. 장공은 무당에게 저주를 3일 동안 계속하게 하고, 이어서 축문을 태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여러 대부들을 대동하여 친히 왕림했다. 무당이 저주를 행하는 장소에 장공의 일행이 당도하자, 갑자기 머리를 산발한 사람이 장공 앞으로 곧바로 다가 와서는 무릎을 꿇고 통곡하면서 말했다.

「신 고숙은 허성에 제일 먼저 성벽에 올랐었습니다. 어찌하여 제가 정나라를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예전에 수레를 두고 다투었던 간신 자도란 놈의 활을 맞고 죽게 되었습니다. 신은 이미 상제에게 청을 드려, 신을 억울하게 죽인 자에게 원수를 갚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주군께서 저를 이렇듯 생각해 주시니, 그 은혜 구천에서도 잊지않겠습니다.」

그 사람이 말을 마치고 자기 손으로 그의 목을 더듬자, 목구멍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아 내고는 곧이어 기절해서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을 살펴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영고숙의 혼이 달라붙은 공손알이었다. 장공은 공손알의 목숨을 구하려고 사람을 시켜 이름을 부르고 몸을 어루만지게 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하였으나,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이는 원래 공손알의 몸에 영고숙의 혼이 달라붙어, 장공 앞에 와서 스스로 호소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공손알이 영고숙을 쏘아 죽인 사실을 알았다. 장공은 애통해 마지않으며 고숙의 영령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영곡(穎谷)에 사당을 짓게 했다. 현 하남성 등봉현(登封縣)이 당시의 영곡이며 아직까지 존재하는 그 사당을 순효묘(純孝廟)라고 부르고 있다. 또 유천(洧川)에도 영고숙의 사당이 있다. 농서거사(隴西居士)가 시를 지어 장공을 비난했다.

수레를 두고 다투더니 또다시 몸을 상하게 했으니

어지러운 나라라 신하들이 군주를 멋대로 대했다.

만약에 군신의 예법이 지엄함 알게 했더라면

구태여 계견을 잡아 신명을 불러올 까닭이 있었겠는가?

爭車方罷復傷身(쟁차방파복상신)

亂國全然不忌君(란국전연불기군)

若使君臣知畏法(약사군신지외법)

何必鷄犬黷神明(하필계견독신명)

4. 獻諂弑君(헌첨시군)

- 아첨이 먹히지 않자 그 군주를 시해한 공자휘 -

정장공은 예물을 들려 제와 노 두 나라에 사신을 보내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제나라에 간 사자는 별일 없이 무사히 다녀왔으나 노나라에 간 사자는 국서와 예물을 그냥 가지고 돌아와 장공에게 바쳤다. 장공이 그 연유를 물었다. 사자가 장공에게 아뢰었다.

「신이 바로 노나라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에 노후가 공자휘에게 살해되었고, 새로운 군주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이 가지고 간 국서의 내용과 예물이, 노나라의 새로운 정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감히 가볍게 버릴 수 없어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장공이 물었다.

「노후는 겸양의 덕이 있고 어질고 인자한 군주인데 무슨 까닭으로 살해되었단 말인가?」

사자가 노은공이 시해된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말씀드리자면 긴 이야기입니다. 노나라 선군인 혜공(惠公)이 원비를 일찍 잃자, 총첩 중자(仲子)⑫를 정비로 삼았습니다. 중자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궤(軌)라 했습니다. 중자가 그의 소생인 궤로 하여금 노후의 후계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죽은 노은공은 정비가 아닌 첩의 소생으로써 서출입니다. 혜공이 죽자 여러 신하들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노후로 하여금 혜공의 뒤를 잇게 했습니다. 노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노후가 그의 부친의 유지를 행하고자 매번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이 나라는 적자인 궤의 것이다. 그가 나이가 어려 과인은 잠시 섭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자휘가 노후를 찾아가 자기를 태재(太宰)의 자리에 임명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노후가 듣고 말했습니다.

“어린 궤가 장성하여 군위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그에게 부탁하시오.”

공자휘는 오히려 은공이 궤를 시기하는 마음이 있는 줄 알고 의심하여 노후에게 은밀히 아뢰었습니다.

“신은 듣기에‘좋은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했습니다. 주공께서는 이미 군위를 계승하여 노나라의 군주가 되었고, 사대부들은 즐거이 따르고 있습니다. 천세까지 마땅히 자손에게 노나라 군주의 자리를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섭정이라는 명분만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궤의 나이가 장성하여 장래에 주공에게 이롭지 않게 됨이 우려 되는데, 신은 청하옵건대 궤를 죽여 주공을 위해 보이지 않은 근심을 없애면 어떻겠습니까?”

노후는 귀를 막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미친놈이 아니냐? 어찌하여 이런 어지러운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미 사람을 시켜 토구(菟裘)⑬에 궁실을 짓게 하여 노년을 보낼 계획에 있다. 머지않아 나는 노나라의 군위를 궤에게 전해 줄 작정인데, 무슨 당치않은 소리를 하고 있는냐?”

무참한 마음이 된 공자휘는 말없이 은공 앞에서 물러 나와 자기의 실언을 후회했습니다. 또한 공자휘는 자기가 궤를 죽이라고 말한 사실이 궤에게 전해지고, 이어서 은공의 뒤를 이어 궤가 즉위하면, 자기는 반드시 죄를 추궁 받게 된다고 걱정했습니다. 공자휘는 깊은 밤에 공자궤를 방문하여 거꾸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공께서 성장하는 공자를 보고 군위를 뺏길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군께서 나를 불러 은밀히 나에게 그대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공자궤가 겁을 먹고 계책을 묻자 공자휘가 대답했습니다.

“그가 어질지 못하니 우리는 의를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공자가 화를 꼭 면하려고 한다면 대사를 도모해야만 합니다.”

궤가 물었습니다.

“지금의 노후는 군위에 오른 지 이미10년이 넘고 신하들과 백성들이 믿고 따르고 있어 만약 대사를 그르치게 되면 오히려 큰 재앙을 면치 못할까 염려되오.”

휘가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공자를 위하여 마음을 정했습니다. 지금 주공께서는 군위에 오르기 전에 정나라와 호양(狐壤)⑭에서 싸울 때정나라의 포로가 되어, 대부 윤씨(尹氏)의 집에 감금된 적이 있었습니다. 윤씨 일족은 종무(鍾巫)라는 귀신을 모시고 있었는데, 주공은 그 귀신에게 노나라에 몰래 도망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땅에 엎드려 마음속으로 빌고 점을 친 결과, 점괘가 대길로 나와서 윤씨에게 그 사정을 고했습니다. 윤씨는 이것을 정나라 군주에게 보고하지 않고 주공과 같이 노나라로 도망쳤습니다. 노나라에 무사히 돌아온 주공은, 곧바로 성밖에다 종무를 모시는 사당을 짓고, 매년 동짓달이 되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친히 가서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지금 제사를 지낼 때가 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낸 주공은 예전처럼 근처의 위(寪)대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것입니다. 제가 미리 일꾼으로 가장시킨 장사들을 주공의 행렬 좌우에 뒤섞여 따르게 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후에 주공이 잠들기를 기다려 칼로 찔러 죽이면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가능한 일입니다.”

궤가 물었습니다.

“그대의 계획은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군주을 시해했다는 오명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소?”

휘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아무도 몰래 자객을 도망치게 미리 조치해 놓고, 그 죄를 위대부에게 둘러씌우면 문제 없습니다.”

공자궤가 무릎을 꿇고 공자휘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습니다.

“대사가 만약 이루어진다면 그대를 마땅히 태재로 삼아 서로 벗하며 지내겠소!”

그리고 얼마 후 공자휘는 모의한대로 은공을 시해했습니다. 노후의 자리에 오른 공자궤는 약속대로 공자휘를 태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위씨 일가를 붙잡아 은공을 시해한 죄를 덮어씌워 모두 죽였습니다. 노나라의 사대부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공자휘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감히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장공이 군신들에게 물었다.

「노나라를 토벌하는 것과 화의를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정나라에 유리하겠는가?」

제족이 앞으로 나와 의견을 말했다.

「노나라와 정나라는 대를 이어 오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화의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노나라가 보낸 사신이 머지않아 당도할 것입니다.」

제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나라의 사신이 도착하여 이미 외국의 사신이 묶는 관사에 들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장공이 사람을 시켜 노나라의 사신이 온 연유를 먼저 물어 보게 했다. 노나라의 사신이 대답했다.

「노나라에 새로운 군주가 즉위하여, 돌아가신 우리 선군께서 맺은 우호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또한 양국의 군주가 서로 만나 맺을 맹약에 대해 상의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장공이 노나라의 사절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낸 후, 그해 4월에 월(越)⑮ 땅으로 나아가 노나라의 신군과 서로 만나 희생의 피를 바르고 회맹의 의식을 행한 후에, 우호관계를 영원히 변치 말자고 맹세했다. 그 이후로는 노나라와 정나라 사이에는 사절이 오고가는 것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가 주환왕(周桓王) 9년 기원전 710년의 일이었다.

염옹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공자휘가 노나라의 병권을 쥐자 그 군주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제 멋대로 정나라와 송나라를 쳐들어가, 그때 이미 반역의 기미를 이미 알아 챌 수 있었고, 더욱이 동생 궤를 죽이자고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은공이 오히려 그 어지러운 이야기를 용납한 행위는 노은공의 잘못이라고 논했다. 만약에 공자휘의 죄를 밝혀 조정과 시정에 널리 알렸으면, 동생 궤를 감동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위를 한다고 말만 하다가, 마침내 시역의 악행을 불러들였으니 그것은 은공이 우유부단했던 탓이고, 스스로 화를 불러들여 몸을 망친 행위라고 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했다.

제멋대로 날뛰는 발호장군을 보고도

서리를 밟으면서도 얼음이 언다는 사실을 못 깨우쳐

결국은 토구에 세운 성에서 노후를 보내지 못했다.

억울하게 죽은 위씨들은 누구에게 한을 품어야 하는가?

跋扈將軍素橫行(발호장군소횡행)

履霜全不戒堅氷(이상전불계견빙)

菟裘空筑人雖老(토구공축인수노)

寪氏誰爲抱不平(위씨수위포불평)

또한 종무라는 귀신에게 해다마 거르지 않고 제사를 받든 행위는 무익한 일이라고 은공을 비난했다.

호양 땅에서 도망쳐 와서 사당을 짓고 현판을 달아

해마다 제사상을 올려 귀신에게 사사로운 은혜를 갚았다.

종무라는 귀신이 능히 효험이 있었다면

마땅히 하늘에서 벼락을 쳐서 공자휘를 벌했으리라.

狐壤逃歸廟額題(호양도귀묘액제)

年年設祭報神私(연연설제보신사)

鍾巫靈感能相助(종무영감능상조)

応起天雷擊子翬(응기천뇌격자휘)

한편 송목공의 아들 공자풍은 주평왕 말년, 기원전 719년에 정나라로 도망쳐 와서 주환왕 9년인 기원전 710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정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나라에서 국서를 전하기 위해 사신이 당도하여 말했다.

「우리 송나라 사절은 귀국에 망명하고 있는 공자풍(公子馮)을 군주로 세우기 위해 모시러 왔습니다.」

송나라 사신의 말을 전해들은 장공이 말했다.

「송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이 공자풍을 데려가려고 하는 목적은 우리를 속여 유인하여 죽이려는 음모일 것이다.」

제족이 나와 말했다.

「사신을 접견하고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십시오. 국서의 내용이 진실한지의 여부는 자연히 밝혀질 것입니다.」

<제 8회로 계속>

①성(郕)/ 주무왕의 7번 째 아들 성숙(成叔) 무(武)가 봉해진 제후국이다. 춘추 초기 노나라에 병합되어 노나라 삼환(三桓) 씨 중 맹손(孟孫)씨의 식읍이 되었다.

②허(許)/ 요임금으로부터 선양이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한 전설상의 인물인 허유(許由)의 후손이 봉해진 나라다. 일설에는 하나라를 세운 우왕이 황하의 치수 공사를 도운 도고(陶皐)의 후손을 영(英), 육(六), 허(許) 등에 봉했다고 했다. 허나라는 전국 초에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③시래(時來)/ 하남성(河南省) 정주시(鄭州市) 정북 황하(黃河)의 남안(南岸)에 있던 고을 이름

④모호기(蝥弧旗)/ 제후들이 사용하던 비단으로 만든 깃발

⑤모호기의 크기/ 춘추전국시대 때의 길이 단위는 1장은 소척으로 1.8m, 1척은 22.5cm임으로 1장 2척의 깃발 부분은 2.25m이고 3장3척의 깃대 부분은 6.07m로 총 길이는 8m 30cm에 달하는 크기다.

⑥로거(輅車)/ 천자나 제후가 타는 크고 호화로운 수레

⑦不知子都之嬌者 無目者也

⑨허남(許男)/제후들의 작위는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5등급인데 허나라 군주의 작위는 남작(男爵)이기 때문에 허남(許男)으로 표기했다.

⑩초거(軺車)/ 중국 고대에 공성전을 할 때 사용되는 수레로써 사닥다리를 장착한 병거를 말한다.

⑪태악(太岳)/ 요순(堯舜)때 사시(四時)를 관장하고 사방(四方)을 순수(巡狩)하며 지방관리를 관장하던 중국 고대의 관직명. 사악(四岳)이라고도 한다.

⑫ 중자(仲子)/ 다음은 사마천의 사기 노주공세가의 기록이다.

『혜공이 재위46년 만인 기원전 723년에 죽고 그의 서장자(庶長子) 식(息)이 혜공의 어린 적자를 대신하여 정무를 대리하고 국권을 행사했다. 이가 노은공(魯隱公)이다. 원래 혜공의 정비에게서는 자식이 없었고 천비인 성자(聲子)에게서 식(息)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식이 장성하자 혜공이 송녀(宋女)를 데려와 그의 비로 삼으려 했으나 혜공이 보고 그녀의 미색에 혹하여 빼앗아 자기의 비로 삼았다. 송녀가 아들 윤(允)을 낳자 혜공이 그녀를 정비로 삼고 윤을 태자로 세웠다. 이윽고 혜공이 죽자 태자 윤(允)이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노나라의 국인(國人)들이 상의하여 식(息)으로 하여금 섭정(攝政)을 하게 하였으나 은공이 노후의 자리에 즉위하였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좌전(左傳)에 의하면 송무공(宋武公)이 딸을 낳았는데 손바닥에 “ 장차 노나라의 부인이 될 것이다”라는 글이 써있었다. 그래서 무공이 그의 딸을 노나라에 시집을 보냈다. 이어 아들 윤(允)을 낳았는데 이가 후에 노환공(魯桓公)이다. 환공이 즉위한 다음 송녀의 시호를 중자(仲子)라 했다. 좌전은 중자를 식의 부인으로 데려온 것이 아니고 혜공의 정비로 데려온 것이며 혜공을 무도한 임금이라고 하지 않았다.

⑬토구(菟裘)/ 지금의 산동성 곡부시(曲阜市) 동북쪽 40키로 되는 곳의 루덕향(樓德鄕) 부근이다.

⑭호양(狐壤)/ 현 하남성(河南省) 허창시(許昌市) 동북쪽 20km 되는 곳이다.

⑮월(越)/ 지금의 산동성 교남시(膠南市) 랑야산(琅邪山) 일대를 말하며 춘추전국 때 전당강 이남의 월나라 지방과는 다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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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부-제1권 諸侯崛起(제후굴기 - 일어서는 제후들) 목차

열국연의 목차 제1부 통권1 제후굴기(諸侯崛起) 제1회 周宣王聞謠輕殺(주선왕문요경살) 길거리의 노래를 듣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양승국 04-05-11 2803
[일반] 제13회. 兄妹私通(형매사통), 君臣爲戮(군신위륙)

제13회兄妹私通 君臣爲戮(형매사통 군신위륙) 친정에 들렸다가 오빠와 정을 통한 문강과 제양공의 함정에 빠져 죽임을 당한 정나라의 군주와 신하 (1)
양승국 04-05-11 2715
[일반] 제12회. 築臺納媳(축대납식), 乘間易君(승간역군)

제12회 築臺納媳 乘間易君(축대납식 승간역군) 며느리를 부인으로 삼아 신대에 같이 산 위선공과 기회를 노려 그 군주를 바꾼 정나라의 고
양승국 04-05-11 2408
[일반] 제11회. 貪賂搆兵(탐뢰구병), 殺婿逐主(살서축주)

제11회 貪賂搆兵 殺胥逐主(탐뢰구병 살서축주) 재물을 탐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송장공과 사위를 죽이고 임금을 쫓아내는 정나라의 제족 1
양승국 04-05-11 1744
[일반]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길거리의 요언을 듣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주선왕과 원귀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두백( (1)
양승국 04-07-07 2122
[일반] 제10회. 僭號稱王(참호칭왕), 被脇立庶(피협입서)

제10회 僭號稱王 被脇立庶(참호칭왕 피협입서) 참람하게 왕호를 칭하는 초무왕 웅통과 송장공의 위협에 굴복하여 군주를 바꾸는 정나라의 제족
양승국 04-05-11 1645
[일반] 제9회. 文姜婚魯(문강혼노) 射王中肩(사왕중견)

제9회 文姜婚魯 射王中肩 (문강혼노 사왕중견) 문강은 노환공(魯桓公)에게 시집가고 정나라 장수 축담은 활을 쏘아 주천자의 어깨를 맞추었다.
양승국 04-05-11 1579
[일반] 제8회. 貪色弑逆(탐색시군) 攀高辭婚(반고사혼)

제8회 貪色弑君 利誘破戎(탈처시군 이유파융) 미색을 탐하여 그 군주를 시해하는 송나라의 태재 화독과 이(利)로써 유인하여 융병을 무찌른 정세
양승국 04-05-11 1759
[일반] 제7회. 暗箭傷人(암전상인), 獻諂弑君(헌첨시군)

제7회 暗箭傷人 獻諂弑君 (암전상인 헌첨시군) 수레를 다투던 영고숙을 쏘아 죽인 공손알과 아첨이 안 먹히자 오히려 노은공을 시해한 공자휘
양승국 04-05-11 1664
[일반] 제6회. 大義滅親(대의멸친), 假命伐宋(가명벌송)

제6회 大義滅親 假命伐宋(대의멸친 가명벌송) 아들을 죽여 대의멸친하는 위나라의 대부 석작과 천자의 칙령을 사칭하여 송나라를 정벌하는 정장공
양승국 04-05-11 1843
[일반] 제5회. 周鄭交質(주정교질), 助逆興兵(조역흥병)

제5회 周鄭交質 助逆興兵(주정교질 조역흥병)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하게 되는 천자와 역도를 도와 군사를 일으키는 노와 송 두 나라 1. 정위교
양승국 04-05-11 1848
[일반] 제4회. 郊天應夢(교천응몽) 掘地見母(굴지현모)

제4회 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꿈속의 계시로 교천제를 지내 천자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문공과 땅굴 속의 지하에서 모친과 상봉
양승국 04-05-11 1709
[일반] 제3회. 身亡國破(신망국파) 東遷洛邑(동천락읍)

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몸은 죽고 나라를 망하게 한 주유왕과 나라를 동쪽의 락읍으로 옮긴 주평왕 1. 신망
양승국 04-05-10 1570
[일반] 제2회. 贖罪獻美人(속죄헌미인), 烽火戱諸侯(봉화희제후)

제2회 贖罪獻美 烽火戲諸侯(속죄헌미 봉화희제후) 유왕에게 미녀를 바쳐 속죄한 포성의 성주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회롱한 주유왕 성
양승국 04-05-10 2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