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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09:367353 
제11회. 貪賂搆兵(탐뢰구병), 殺婿逐主(살서축주)
양승국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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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1회 貪賂搆兵 殺胥逐主(탐뢰구병 살서축주)

재물을 탐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송장공과

사위를 죽이고 임금을 쫓아내는 정나라의 제족

1. 탐뢰구병(貪賂搆兵)

- 재물을 탐하여 병화를 불러들이는 송장공 -

송장공의 사자는 정려공의 즉위를 축하하고 옛날 약속한3개의 성을 할양하고, 벽옥 및 황금과 매 년 바치기로 한 곡식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려공이 제족을 불러 상의했다.

「처음에 나라를 얻고 싶은 급한 마음에서 송공이 요구하는 대로 따랐소. 지금 송공이 사자를 보내와 자기가 강요해서 억지로 맹세하게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나에게 요구하고 있으나 내가 감히 그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소! 과인이 즉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사자를 보내 약속한 바를 이행하라고 재촉하니 만약 그 말을 따른다면 우리 정나라 부고는 텅텅 비게 되지 않겠소? 더욱이 세 개의 성을 아무런 이유 없이 송나라에 할양한다면 나는 이웃 나라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인들의 원망을 사게 됨은 자명한 일이오.」

제족이 대책을 말했다.

「백성들의 인심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만일3개의 성을 떼어 준다면 나라에 변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대고, 세 성에서 걷는 부세만을 보낸다고 송나라에 통고하십시오. 벽옥과 황금은 우선 약속한 숫자의 3분의 1만을 보낸다고 하면서 부드러운 말로 사죄하시고, 매 년 바치기로 한 곡식은 내년부터 시작하겠다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려공이 제족이 제안한 바를 문서로 작성하여 송나라에 통지하기로 했다. 먼저 벽옥 30쌍, 황금 3천 일(鎰)을 송나라 사신에게 주어 보내고, 떼어 주기로 한 3성에 대해서는 부세로 대신하여 겨울철 동짓달에 바치겠다고 했다. 송나라 사자가 돌아와 바친 정나라의 국서를 읽어본 송장공은 대노하여 말했다.

「죽게 될 돌(突)을 내가 살려 주었고, 가난하고 비천한 돌을 내가 부귀하게 해 주었으며, 그가 나에게 바치겠다고 승낙한 것들은 모두가 홀(忽)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돌이 감히 이렇듯 나에게 인색하게 군단 말인가?」

송장공은 그날로 다시 사자를 정나라에 보내 약속한 것들과 하나도 어긋나지 않게 받아오도록 명했다. 또한 세 성을 송나라에 당장 할양해 주기를 요구하고 부세 따위는 원치 않는다고 전하게 했다. 려공이 제족과 다시 상의하여 곡식 2만 섬을 더 보내 주었다. 송나라 사자가 곡식을 받아 돌아갔다가 다시 정나라에 와서 송장공의 말을 전했다.

「만약 옛날 약속한 땅과 재물을 보내는 일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제족이 직접 찾아와 그 연유를 해명하도록 하시오.」

제족이 려공에게 말했다.

「지금의 송공은 우리 선군에게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갚기 위해 머리털 한 오라기도 바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주군을 군위에 올린 공을 믿고 끝도 없이 탐욕을 부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무례하게 구니, 앞으로는 송군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사자를 제(齊)와 노(魯) 두 나라에 보내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려공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제와 노 두 나라가 과연 우리를 위해 힘써 주겠소?」

「옛날 우리 선군께서 허나라와 송나라를 정벌할 때 제나라와 노나라가 같이 종군했었습니다. 더욱이 은공을 시해한 노후가 군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실은 우리 선군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큽니다. 즉 제나라는 우리의 요청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노나라만큼은 거절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당초 화독이 송상공을 시해하고 우리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송공을 데려가 송군의 자리에 세울 때, 우리 선군께서는 제·노 두 나라와 함께 송나라에서 보내 온 재물을 받아들여 송공의 군위가 제후들에 의해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송공은 노나라에는 고성(郜城)의 대정(大鼎)①을 주고, 우리에게도 상이(商彝)②를 바쳤습니다. 오늘 마땅히 노나라에 호소하여 대정을 구한 후에, 상이와 함께 송나라에 돌려준다면 송공은 틀림없이 우리와의 옛날 맺은 정리를 생각하고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세 성과 공물을 달라는 요청을 중지할 것입니다.」

려공이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경의 말을 들으니 과인은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합니다.」

정려공은 즉시 예물을 들려 사자를 제와 노 두 나라에 보냈다. 우선 정나라에 신군이 섰음을 알리고 또한 송나라가 배은망덕하여 재물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사정을 호소하도록 했다. 정나라의 사자가 노나라에 도착하여 정백의 명을 전하자 노환공은 웃으면서 말했다.

「옛날 송군이 즉위할 때 우리는 대정 한 개만을 받았을 뿐인데, 오늘 정나라는 뇌물을 이미 적지 않게 바쳤건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과인이 마땅히 이 일을 떠맡아 즉시 송나라로 가서 정백을 구해주리라!」

정나라 사자는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편 제나라에 간 정나라 사자는 정백의 말을 제후에게 전했다. 그러나 제희공은 옛날 정소공이 세자 시절 구원군을 이끌고 출전하여 제나라를 침입한 융군의 침입을 물리쳐 준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그때까지도 잊지 않고 있었다. 희공의 차녀 문강을 정소공과 혼인시키려다가, 세자홀이 완강히 거절하는 바람에 비록 성사는 못시켰지만 여전히 제후의 마음 한구석에는 정소공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정나라가 정소공을 폐하고 돌을 즉위시킨 일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갖고 있던 제희공이 정나라 사자에게 말했다.

「군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잘못을 저지를 시간도 갖지 못했던 정백을 폐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운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송나라도 문제이지만, 정나라 군주도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과인이 친히 여러 제후들을 데리고 정나라 도성 앞으로 가서 새로운 정백을 만나 그 연유를 물어보겠노라!」

제희공은 정나라 사자가 가지고 간 예물을 받지 않았다. 사자가 돌아와 정려공에게 희공의 말을 전했다. 려공이 놀라 제족에게 물었다.

「제후가 나를 책망하니 이는 반드시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나의 죄를 물으려고 하는 것 같소. 어찌 대처해야 하겠소?」

「친히 군사들을 모아 사열하고 병거를 손보아 미리 대비하십시오. 적군이 당도하면 대항하여 싸우면 되는 일이지 어찌 걱정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한편 노환공은 자기 아들 공자 유(柔)를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송공과 만날 날짜를 정하게 했다. 송장공이 대답했다.

「노후가 회견을 요청했는데 과인이 마땅히 노나라 경계까지 가야지, 어떻게 감히 노후를 이 먼 곳까지 오게 하여 번거로움을 끼칠 수 있겠는가?」

공자유가 본국으로 돌아가 노환공에게 송장공의 말을 전했다. 다시 노후가 사람을 보내 송공의 약속을 받아오게 하여 작(酌)의 땅 부종(扶鍾)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환왕20년, 기원전 700년 가을 9월의 일이었다.

이윽고 약속한 기일에 송장공과 노환공은 부종에서 서로 만났다. 노후가 정나라를 대신하여 감사의 말을 올리고 또한 너그러운 처분을 해주기를 청했다. 송공이 대답했다.

「정백이 나의 은혜를 크게 입었습니다. 계란에 비유하면 제가 품속에 품어서 날개를 달아 준 격입니다. 그래서 정백은 나의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재물과 땅을 주겠다고 본심에서 우러나온 심정으로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정백이 귀국하여 군위에 오르자마자 자기가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니, 과인이 어찌 나쁜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귀국이 정나라에 베푼 일을 어찌 정나라가 잊을 리 있겠습니까? 단지 군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약속대로 재물을 전부 바치면, 정나라의 창고가 텅텅 비게 되어 일시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따름이지 시간이 지나면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서는 제가 있는 힘을 다하여 보증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벽옥과 황금은 설사 나라의 창고가 비게 된다는 핑계 될 수겠으나 세 성을 할양하겠다고 한 약속은 몇 마디 간단한 말이면 될 터인데, 아직도 해결을 안 하고 있는 이유는 어찌 된 일입니까?」

「땅을 남에게 할양하는 행위는 옛날 자기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공업을 잃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웃음거리로 되어 국인들로부터 받을 비난을 걱정한 정백이 그곳에서 걷은 부세로 대신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곡식도 만 종(鐘)은 이미 바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래 매 년 갖다 바치기로 한 곡식의 량은3만 종입니다. 세 개의 성을 할양하는 문제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더욱이 약속한 재물은 아직 반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불문가지이겠습니다. 오로지 전하께서는 저를 위해서 힘써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고집을 꺾지 않는 막무가내의 송장공의 행위에 대해 불쾌한 마음이 된 노환공은 앙앙불락하며 자기 나라로 되돌아갔다. 본국으로 귀환한 노후는 공자유를 정나라에 사자로 보내 송공이 전혀 너그럽게 대하지 않았다고 전하게 했다. 정백이 다시 옹규에게 상이를 들려서 노나라에 보내 바치게 하면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이것은 송나라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보물입니다. 제가 함부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 없어, 청컨대 송나라 부고에 되돌려 보내 우리의 세 성과 대신하고자 합니다. 또한 벽옥 30 쌍, 황금 2천 일을 다시 보내니, 전하께서 전하여 좋은 말로 저희와 송나라 사이의 문제를 중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환공이 인정상 거절하지 못하고 송나라에 사절을 파견하여 송공과 곡구(谷邱)③의 땅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송공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 노후는 다시 정백을 대신하여 정나라의 불안한 마음을 말하고, 정나라에서 보내온 벽옥과 황금을 바치며 말했다.

「정나라가 약속한 재물을 아직 반도 안 주었다고 말씀하시는 군후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바른말로 책망을 했더니 정나라가 알아듣고 온 힘을 다하여 마련한 이 재물들을 가져왔습니다.」

송공이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오로지 물었다.

「세 개의 성은 언제 할양한다고 했습니까?」

「정백이 자기 선조들이 누대에 걸쳐 지켜 온 영토를 감히 사사로운 은혜를 갚기 위해 가볍게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대신 한 가지 물건을 나에게 보내 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지금 가져 왔는데, 가히 성 세 개에 해당할 수 있는 보물입니다.」

노후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노란색 비단보로 싼 물건을 높이 바쳐 들어 송공에게 바치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노후로부터 ‘사사로운 은혜’ 운운하는 말을 듣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송공이 보자기를 풀어 보니 그것은 바로 예전에 송나라가 정나라에 뇌물로 갖다 바친 상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안색을 갑자기 바꾸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 물었다.

「이 물건은 도대체 어디다 쓰는 것입니까?」

「이것은 옛날 귀국의 부고에 있었던 보물입니다. 정나라 선군인 장공이 살아 있을 때 귀국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기 때문에, 귀국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정나라에 선물한 보물입니다. 이것은 귀국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며 간직했던 보물이라, 정나라의 새로운 군주가 감히 갖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원래 주인인 귀국에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원컨대 옛날의 정을 생각하시어 세 개의 성을 바치라는 명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인이 된 정나라 장공은 귀국에서 주는 물건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새로운 정백은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송공은 노후가 옛날 일을 들먹이자 부지중에 양미간을 붉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옛날 일은 과인이 알 수 없습니다. 도성에 돌아가 부고의 관리들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두 군주가 의논 중에 송나라 관리가 달려와 송장공에게 고했다.

「연(燕)나라④ 군주가 우리 송나라 도성에 들어갔으나 주공께서 계시지 않아 수레를 여기 곡구까지 몰고 와서 뵙고자 합니다.」

송장공이 연백(燕伯)을 청해 들여 노환공과 같은 자리에서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연백이 송공을 보더니 호소했다.

「우리 연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은 제나라가 쉴 사이 없이 우리나라를 침범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소국의 사직을 보존할 수 있도록 제나라와 화의를 맺도록 주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장공이 연백의 청을 허락했다. 노환공이 송장공에게 말했다.

「제나라와 기(紀)나라는 누대에 걸친 원수의 나라입니다⑤. 제나라는 항상 틈만 있으면 기나라를 공격하려는 마음뿐입니다. 송공께서 만약 연나라를 위해 화의를 주선하신다면, 저도 역시 기나라를 위해 제나라와 화의를 주선하겠습니다. 각기 수교하여 화목하게 지내면, 두 나라 간의 전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세 나라 군주가 한 뜻이 되어 곡구에서 회맹을 맺었다. 노환공은 귀국하여 송나라의 회답을 기다렸으나 그 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아무런 회답도 받지 못했다. 그 사이에 송나라 사자는 시도 때도 없이 정나라에 들이 닥쳐 재물과 성을 바치라고 다그쳤다. 이에 정려공은 또다시 노후에게 사람을 보내 도와 달라고 청했다. 노후는 부득이 송공에게 청하여 허구(虛龜)⑥의 경계에서 회견하기를 청하고, 그 곳에서 정나라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송공은 오지 않고, 사자만을 보내 노후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이번의 일은 송나라와 정나라 사이에 맺은 약속이라, 군후께서는 더 이상 우리 두 나라의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말기바랍니다.」

노후가 대노하여 사자를 향해 꾸짖으면서 말했다.

「한낱 필부도 탐욕이 많고 신의가 없으면 장래가 걱정스럽거늘 하물며 나라의 임금인 바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노환공은 즉시 수레를 정나라를 향해 돌려 정백과 무보(武父)⑦ 땅에서 회견한 후에 병사를 합하여 송나라를 토벌하기로 약속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정려공이나 노환공이나 군위를 찬탈한 흉악한 군주들인데

서로 돕자고 하니 저지른 죄악이 저절로 드러나는구나!

오로지 탐욕에만 눈이 먼 송장공은 남을 심하게 속이니

결국은 노와 정의 군사를 불러들여 전쟁이 일어났구나!.

逐忽弑隱幷元凶(축홀시은병원흉)

同惡相求意自濃(동악상구의자농)

只爲宋庄貪詐甚(지위송장탐사심)

致令魯鄭起兵鋒(치령노정기병봉)

노후가 화를 내고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송장공은 어떻게 되었던 좋은 결말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또한 제후도 결코 정백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송장공은 공자 유(游)를 제나라에 보내 수호조약을 맺도록 하고 돌의 배덕한 일을 호소하게 했다. 송나라의 공자유가 제나라에 당도하여 회공을 알현하고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는 마음속으로 정나라가 돌을 군위에 올린 일을 매우 한스럽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과군께서는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돌을 쫓아내고 홀의 군위를 다시 찾아 주고 싶어 하십니다. 더불어 연백을 위하여 화의를 허락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한편 송나라에서는 제나라에 간 사자가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국경을 지키는 관리가 달려와 고했다..

「노와 정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 기세가 매우 사나워 머지않아 이곳 수양성에 당도할 예정입니다.」

송장공이 크게 놀라 여러 대부들을 불러 모아 적군을 막을 대책을 세우게 했다. 공자 어설(御說)이 나와 아뢰었다.

「군사들이 강하고 약함은 모두 그 명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정나라의 재물을 탐하고 또한 노나라의 호의를 저버려서 틈이 생겼습니다. 차라리 죄를 청하여 싸움을 피하고, 군사들을 쉬게 하심이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사 남궁장만이 분연히 앞으로 나와 말했다.

「외적이 성 밑까지 쳐들어 왔음에도,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화살 한 개도 쏘아보지도 않고 화의를 청하여 허약함만을 보여준다면 어찌 나라를 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화독이 앞으로 나와 장만의 말에 맞장구쳤다.

「장만의 말이 옳습니다.」

송공이 어설의 말을 듣지 않고 장만을 장수로 삼아 정노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우게 했다. 장만은 맹획(猛獲)을 선봉으로 삼아 병거 3백 승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서 군사들을 양대로 나누어 진을 쳤다. 병거를 타고 진영 밖으로 같이 나온 노후와 정백이 송공도 같이 나와서 도리를 따져 보자고 송나라 진영을 향해 큰소리로 쳐서 알리게 했다. 송장공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응하지 않았다. 한편 송나라 진영의 장만은 멀리서 두 대의 병거 위에 제후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수놓은 비단 덮개가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노·정 두 나라 군주가 탄 융거라고 생각한 장만이 곧바로 맹획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오늘 같은 날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얻겠는가?」

맹획이 장만의 명을 받아 강모(鋼矛)를 손에 꼬나 쥐고 전차를 휘몰아 두 나라 군주가 있는 곳을 향하여 앞으로 돌진했다. 노·정 두 나라 군주는 자기들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적장을 보고 융거의 말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나자 그 좌우에서 두 사람의 장수가 뛰어 나오는데 보니 노나라의 공자 익(溺)과 정나라의 상장 원번이었다. 두 장수가 각기 전차를 몰고 나가, 달려오는 적장 앞에 이르자 먼저 맹획의 이름을 물었다. 맹획이 대답했다.

「나는 송나라의 선봉장군 맹획이다!」

원번이 웃으면서 말했다.

「무명소졸에게 어찌 내 칼을 더럽힐 수 있겠느냐? 속히 돌아가서 너희들 대장보고 나오라고 하라. 그와 함께 일전을 겨뤄 보고 싶구나.」

맹획이 대노하여 창을 꼬나 잡고 원번을 향해 달려들었다. 원번이 칼을 휘두르며 맞이하여 싸웠다. 공자익이 이끌고 온 노나라 군사들 중에서 철엽반(鐵葉般)이라는 장수가 뛰어 나와 원번과 합세했다. 맹획이 두 장수와 싸우는데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이 힘을 다하여 싸웠다. 노와 정 두 나라의 진영에서 다시 진자(秦子), 양자(梁子) 및 단백(檀伯) 등의 세 장수가 일제히 달려와 싸움에 합세했다. 노·정의 여섯 장수들을 상대하기에는 힘이 부친 맹획은 고전을 면할 수 없었다. 맹획이 지쳐 머뭇거리는 사이에 양자가 활을 쏘아 맹획의 팔을 맞추었다. 부상을 당해 창을 들고 싸울 수가 없게 된 맹획은 할 수 없이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들어 포로가 되었다. 맹획이 거느린 전차와 군사들도 모두 사로잡히고 단지 보졸 50여 명만이 도망쳐 돌아올 수 있었다. 맹획이 싸움에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남궁장만은 이빨을 갈며 말했다.

「맹획을 구하지 않고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장만은 즉시 장남 남궁우(南宮牛)에게 병거 30승을 끌고 나가 싸움을 걸도록 명하면서 말했다.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면서 적군으로 하여금 서문으로 쫓아오도록 유인하라.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다.」

창을 비켜들고 달려 나가 정나라 진영에 당도한 남궁우가 큰소리로 욕을 해대었다.

「배은망덕한 정나라 돌이란 놈아! 스스로 무덤을 찾아 왔으면서 어찌하여 속히 나와서 항복하지 않느냐?」

그때 마침 궁노수 몇 사람과 병거 한 대를 끌고 정나라 진영 밖을 순찰 하던 정나라 비장(裨將) 한 명이 남궁우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들어 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3합도 미처 나누기 전에 남궁우가 전차의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나라 장수가 놓치지 않고 뒤를 쫓았다. 이윽고 도망치던 남궁우의 송군이 서문에 이르자 갑자기 뒤에서 포성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남궁장만이 뛰어나와 정나라 장수가 타고 있던 병거의 배후를 막아섰다. 남궁우도 병거의 방향을 돌려 공격을 해와 정나라 군사들은 양쪽에서 협공을 받게 되었다. 정나라 장수가 화살을 재어 남궁우를 향하여 연달아 몇 발을 쏘았으나, 모두 빗나가자 마음이 황망해 졌다. 그 사이에 장만이 정나라 장수의 병거 속으로 뛰어올라, 그를 손으로 잡아 끌어내려 포로로 삼았다. 한편 정나라 장군 원번은 본영의 비장 한 명이 단거로 적군을 쫓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 적에게 해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단백과 같이 한 무리의 군사를 끌고, 질풍과 같이 병거를 몰아 싸움터 근처인 서문에 당도했다. 원번과 단백이 보니, 송나라 도성 수 양성의 성문이 크게 열리면서 화독이 대군을 친히 이끌고 성을 뛰쳐나와 정나라 군사들을 향해 돌격해왔다. 양쪽 진영의 군사들은 서로 얽혀 싸우게 되었다. 노나라 대장 공자익도 역시 진자, 양자와 같이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와서 정나라 군사들과 합세했다. 양쪽 진영은 혼전을 거듭하다가 날이 어둑해 지자, 다시 횃불을 준비하여 주위를 밝힌 다음 서로 뒤섞여 계속 싸웠다.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싸움을 중지하고 군사를 거두어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싸움의 결과 송나라 진영의 손실은 매우 컸다.

남궁장만은 정나라의 장수 한 명을 사로잡은 공로를 세운 뒤에, 송장공에게 정나라의 장수와 맹획을 교환하겠다고 청했다. 송공이 허락했다. 송나라 사자가 정나라 진영에 당도하여 두 사람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정백이 응하여 각기 자기들의 포로를 함거에 싣고 진영 앞으로 나와서 서로 맞바꾸기로 했다. 정나라 비장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오고 맹획은 수양성으로 되돌아갔다. 그날은 더 이상 전투를 벌리지 않고 병사들을 쉬게 했다.

2. 구기지전(救紀之戰)

- 기나라를 구원하는 전쟁이 7국의 국제전으로 번지다. -

한편 송나라의 사자로 와서 송장공의 말을 전한 공자유에게 제희공이 말했다.

「정나라 돌이 그의 형을 쫓아내고 스스로 군위에 앉은 행위를 과인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그러나 지금은 기나라에 급한 일이 있어 아직은 송나라를 도와 정나라를 정벌할 여유가 없소. 만약에 귀국이 먼저 군사를 내어 과인이 기나라를 정벌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과인이 어찌 송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하는데 돕지 않을 수 있겠소?」

한편 노후와 정백이 진채의 막사에 머물면서 송나라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기나라에서 사람이 와서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노후가 불러 접견하고 기나라 사자가 바친 국서를 읽었다.

「우리 기나라는 제나라 군사의 공격으로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되어 나라의 존망이 조석지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혼인으로 맺은 우호관계를 생각하시어, 얼마의 군마를 보내 발등의 불을 꺼 주시기 바랍니다.」

노환공이 크게 놀라 정백에게 말했다.

「모후의 친정나라가 위급함을 알려왔는데 제가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나라 도성도 언제 파할지 기약이 없으니 철군하느니만 못하겠습니다. 송공도 앞으로는 감히 두 번 다시 재물을 갖다 바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

「군후께서 이미 마음을 정하여 군사를 움직여 기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니 과인 역시 폐읍의 군사를 이끌고 같이 가서 돕고 싶습니다.」

노후가 크게 기뻐하여 즉시 명을 내려 진채를 걷고 일제히 기국을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노후가 먼저 30리쯤 앞서 가고 정백은 후위를 경계하며 뒤를 따랐다.

이때 송나라에서는 제나라에 갔던 공자유가 돌아와서 제후의 말을 전해들은 송공은 노·정 두 나라의 군사들이 공격을 중지하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그것이 유인책이 아닌가 의심하여 즉시 뒤를 쫓지 않고 단지 탐마만을 보내어 동정을 살폈다. 탐마가 돌아와 아뢰었다.

「이미 우리나라 국경 밖으로 나간 적군은 기국을 향해 행군하고 있습니다.」

그때서야 마음을 놓고 한숨을 놓은 송장공에게 태재 화독이 상주했다.

「제나라는 이미 우리가 정나라를 공격할 때 군사를 보내 돕기로 했습니다. 우리도 또한 마땅히 원병을 보내 기국을 공격하는 제나라를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공의 명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장만이 대열에서 나와 청했다.

「원컨대 신을 보내 주십시오.」

송장공이 병거2백 승을 내어 장만에게 주어 기나라를 공격하는 제나라를 돕도록 했다. 맹획을 선봉으로 삼은 장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나라를 향해 행군했다.

한편 제희공은 위후(衛侯)와 연백(燕伯)의 지원을 받아 기국(紀國)을 정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위나라에서는 제나라의 요청으로 군사를 일으켜 출병하려고 하는 순간 위선공(衛宣公)이 노환으로 죽었다. 위나라는 세자 삭(朔)이 즉위하여 그 뒤를 이었다. 이가 위혜공(衛惠公)이다. 비록 상중이었지만 감히 제나라의 출군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위혜공은 병거 2백 승을 보내 제나라를 돕게 했다. 제나라가 자기나라를 병탄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던 연백도 이 번 기회를 이용하여 우호관계를 맺을 생각으로, 친히 연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제나라를 돕기 위해 왔다. 기나라 도성 밖에 진을 친 수 많은 세 나라 병사들의 위세를 보고 기후는 두려운 생각에 감히 성 밖으로 출전하여 싸우지 못하고,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을 높이 올려 굳게 지키면서, 노나라의 원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노와 정 두 나라 군주가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성 위에 올라 성 밖에 두 나라 군사들이 전진해 오는 모습을 바라본 기후는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했다. 기후는 두 나라 군주를 성안으로 인도하여 온 성의를 다해 접대했다. 이윽고 접대가 끝나자 노환공이 먼저 성 밖으로 나가 제희공에게 접견을 청해 군영 앞에서 서로 만났다. 노환공이 장인이기도 한 제희공을 향해 말했다.

「기나라는 곧 대대로 우리나라와 혼인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제가 들으니 기나라가 상국에 죄를 지었다고 하여, 과인이 이렇게 몸을 굽혀 대신 용서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제희공이 응수했다.

「옛날에 우리의 선인이신 애공(哀公)께서 기군의 참소에 의해 주나라에서 잡혀가 끓는 가마솥에 삶겨 돌아가신 이래로, 지금까지 8세에 이르렀으나 아직 그 원수를 갚지 못하고 있소. 군후는 그 친척을 돕고자 하고, 나는 그 원수를 갚고자 하니 오늘의 일은 오로지 싸울 수밖에 없겠소!」

노후가 크게 노하여 즉시 공자익을 앞세워 병거를 이끌고 나가 싸움을 걸게 했다. 제나라 진영에서도 장수 공자팽생(公子彭生)이 나와서 대적했다. 팽생은 만부부당의 힘을 가지고 있던 장사였기 때문에, 공자익으로써는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 노나라 진영에서 진자와 양자 두 장수가 앞으로 전진하여 같이 힘을 합쳐 팽생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세 사람이 힘을 합하여도 이기기는커녕 간신히 가로막기에도 바쁠 지경이었다. 그때 제군과 노군이 교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위군과 연군이 달려와 싸움을 도왔다. 그러나 뒤따라온 정백의 대군이 이미 당도하고, 원번과 단백을 위시한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제나라 군사들의 본영에 들이 닥쳤다. 기후 역시 그의 동생 영계(嬴季)를 시켜 군사들을 끌고 성 밖으로 나가 돕게 하자, 군사들이 지르는 함성이 하늘을 진동시켰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적군을 공자팽생은 감히 더 이상 당해내지 못하고 허둥지둥 본진으로 회군했다. 여섯 나라의 병거가 한곳에서 서로 뒤섞여 싸우게 되어 싸움터는 피아의 식별도 어려울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 노후가 싸움 중에 연백을 발견하고 말했다.

「지난 번 곡구(谷丘)에서 노, 송, 연 삼국이 서로 만나 맹약을 맺을 때, 입술에 바른 피가 미처 마르기도 전에 송군이 맹약을 어겨 과인이 정벌했소. 내가 보니 그대도 송군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신의가 없는 사람인 것 같소. 제후의 면전에서 아첨만 함으로써 어찌 나라를 오랫동안 지킬 수 있겠소?」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연백은 부끄러운 생각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자리를 피하여,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핑계 삼아, 자기가 이끌고 온 군사들을 거두어 본국으로 도망치듯이 철수하고 말았다. 연나라 군사들이 물러가 버리자, 대장이 없어 지휘계통이 무너진 위군도 싸움에 지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제나라의 군사들도 역시 싸움에서 져서, 전사한 군사들의 시체가 들판에 가득 차고 흐르는 피는 강을 이루었다. 공자팽생도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목숨이 위급한 순간에 송나라 군사가 당도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노와 정 두 나라 군주들이 군사들을 불러 들여 치열했던 싸움을 멈추게 했다. 호증(胡曾) 선생이 이 싸움에 대해 시를 지어 읊었다.

약하고 작은 나라를 속여 멋대로 쳐들어가면

외로운 성은 장차 경각지간에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러나 소국이 망하기도 전에 자신의 나라가 먼저 패하니

사람들은 천년을 두고 제희공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明欺弱小恣貪謀(명사약소자탐모)

只道孤城頃刻收(지도고성경각수)

他國未亡我已敗(타국미망아이패)

令人千載笑齊侯(영인천재소제후)

이때 송나라 군사들은 뒤늦게 기나라 경내에 당도하여 영채를 세우고 정세를 살펴보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노와 정 두 나라가 한 떼의 군마를 보내 송나라 진영으로 쇄도해 쳐들어갔다. 미처 군영을 정비하기 전에 창졸간에 기습을 당한 송군은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군사가 크게 꺾여 물러가 버렸다. 싸움에서 패하고 어쩔 수 없이 제나라 본국으로 철수하게 된 제희공이 기성을 돌아보며 맹세했다.

「내가 있으면 기나라는 없을 것이며 기나라가 있으면 내가 없을 것이다.」

기후가 노·정 두 나라 군주를 성안으로 영접하여 잔치를 베풀어 환대하고 군사들에게는 많은 상을 내린 다음 배불리 먹였다. 영계가 앞으로 나와 의견을 말했다.

「제후가 싸움에서 지고 물러갔으나, 우리나라에 대한 한은 더욱 골수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지금 두 나라 군주께서 이곳에 계시니 원컨대 우리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방도를 세워주셨으면 합니다.」

노환공이 대답했다.

「오늘은 불가하겠습니다. 다음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다음날 기후가 성 밖30리까지 전송을 나와 두 나라 군주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기후와 헤어진 노·정 두 나라 군주도 각기 본국으로 개선했다. 신정성으로 돌아온 정려공은 노나라에 사자를 보내 옛날 무보에서 맺은 회맹을 상기시키고 우호관계를 다시 확인했다. 이때부터 노와 정이 한편이 되고 제와 송이 또 다른 한편이 되었다.

이때 정나라 력(櫟) 땅을 지키는 대부 공자원이 죽자 제족이 려공에게 말하여 단백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했다. .

주환왕22년 기원전 698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희공이 기나라에 정벌 나갔다가 오히려 싸움에서 패하고 돌아와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병이 들었다. 이어서 겨울철이 다가오자 그 병세가 더욱 위독하게 되었다. 희공이 세자 제아를 침상 곁으로 불러 당부의 말을 했다. .

「기나라와 우리나라는 누대에 걸친 원수지간이다. 기나라를 멸하는 일이야말로 나에 대한 효도이니, 네가 나의 뒤를 이으면 마땅히 기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라. 이 원수를 갚기 전에는 절대로 내 묘당 앞에 얼굴을 내밀지 말라!」

제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제후의 유언을 받들었다. 희공이 그의 동생 이중년의 아들 공손무지(公孫無知)를 불러 제아에게 절을 올리게 한 후에 당부했다. .

「무지는 나의 동모제 이중년의 일점혈육이다. 너는 마땅히 잘 보살펴 주고 의복과 예의 절차를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행하도록 하라!」

옛날 사랑하는 동생 이중년이 병이 들어 일찍 죽자 제희공은 명을 내려 그의 아들 공손무지를 매우 애지중지하여 작록(爵祿) 및 거마(車馬)와 복식(服飾), 봉록(俸祿)의 등급 등을 모두 태자와 똑같이 주도록 하고 그를 대할 때는 태자를 대하듯이 대우하도록 해왔다. 제후는 죽을 때 공손무지에 대한 대우를 변하지 말고 계속해주도록 유언한 것이다. 제후가 말을 마치고 죽었다. 제나라의 여러 대부들이 세자 제아를 제후로 세웠다. 이가 제양공(齊襄公)이다.

송장공이 정나라에 대한 한이 뼈에 사무쳐 또다시 사자를 정나라에 보내 황금과 벽옥을 약속대로 바치라고 압박한 다음 동시에 제(齊), 채(蔡), 위(衛), 진(陳) 네 나라에 뇌물을 바치고 병사를 빌려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그때 제나라는 상중이라는 이유로 대부 옹름(雍廩)에게 병거 150승의 군사만을 주어 송나라를 돕게 했다. 채와 위 역시 정나라를 정벌하려는 송나라를 돕기 위해 장수와 군사를 보냈으나 단지 진나라만이 국내 사정상 응하지 않았다. 정려공이 사국의 군사들을 중도에게 맞이하여 싸우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출전하여 응전하려고 했다. 상경 제족이 말리면서 말했다.

「네 나라의 군사들과는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송나라는 대국입니다. 온 나라의 힘을 기우려 군사를 일으켰으니, 그 기세가 자못 성합니다. 만약 싸우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사직을 보전할 수 없게 됩니다. 다행히 이긴다 하더라도 그들과는 세상을 같이 할 수 없는 원한만을 쌓아, 우리나라는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대항하여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기만 해야 합니다.」

정려공이 뜻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제족이 곧바로 영을 발해 정나라 군민에게 성을 굳게 지키게만 하고 싸움을 청하는 자가 있으면 죄를 주겠다는 명을 발했다. 정성 밖에 당도한 송장공은 정나라 군사가 성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자, 정성의 동쪽 교외를 크게 노략질하면서 진격하여, 거문(渠門)을 불태웠다. 기세가 오른 송군은 정성 교외의 큰길까지 진입하여 태궁(太宮)을 파괴하고, 그 기둥들을 전부 뽑아 송나라로 가져가 새로 크게 짓고 있던 로문(盧門)의 서까래로 사용하여 정나라를 욕보이려고 했다. 정려공은 치밀어 오는 화를 참을 수 없어 한탄하면서 말했다.

「나는 제족의 의해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한데 어찌 군주라 부를 수 있겠는가?」

정려공은 이때부터 마음속으로 몰래 제족을 죽일 뜻을 갖게 되었다.

3. 親父害夫(친부해부)

-부친을 도와 지아비를 죽이는 옹희(雍姬)-

그 다음해 봄3월에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된 주환왕은 주공 흑견을 침대 곁으로 불러서 후사를 당부했다. .

「적자를 후사로 세우는 일은 주례를 따르는 바이나 차자 극(克)을 짐이 사랑하고 있으니 오늘 이후로 경이 잘 보좌하도록 하시오. 내 뒤를 이어 즉위한 세자가 죽게 되거든 왕위를 태자의 아들에게 전하게 하지 말고 극이 물려받을 수 있도록 경이 맡아서 처리하시오.」

환왕이 말을 마치고 죽었다. 주공이 환왕의 명을 받들어 세자 타(佗)를 왕위에 앉혔다. 이가 주장왕(周庄王)이다.

주환왕23년 기원전 697년의 일이었다.

주나라로부터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정려공이 사자를 보내 조문을 행하려고 했다. 제족이 강경하게 간했다.

「주나라는 곧 선군의 원수입니다. 더욱이 수갈의 싸움에서 축담이 쏜 화살에 팔을 맞아 생긴 상처가 덧나 주환왕이 죽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원한이 사무쳐 있는 주왕실에 조문사절을 보낸다면 우리가 보낸 사자는 잡혀 욕을 보게 될 것입니다.」

려공이 비록 어쩔 수 없이 제족을 말을 따르기는 했으나 마음속에는 원한만 더욱 깊어졌다. 하루는 려공이 후원의 뜰에서 노닐고 있는데 대부 옹규(雍糾)가 따라 나왔다. 려공이 하늘을 날며 우는 새를 보고 마음이 처연하게 되어 탄식했다. 옹규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이곳은 봄 경치가 어우러져 뭇 새들은 자기 마음대로 놀지 않는 것이 없고, 주공께서는 귀하기가 제후의 반열에 있으신 분인데, 어찌하여 슬퍼하는 기색을 띠고 계십니까?」

「뭇 새들도 자기 마음대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지저귀면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데 과인은 하늘을 나는 새만도 못하니 어찌 마음이 즐겁겠소?」

「정권을 자기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사람 때문에 주공께서 우려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려공이 대답을 하지 않자 옹규가 다시 말했다.

「저는‘군주는 아버지와 같고 신하는 그 자식과 같다’고 배웠습니다. 아들이 그 아비의 근심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불효입니다. 신하로서 능히 그 주군을 위해 어려운 일을 마다하면 그것은 즉 불충입니다. 만약에 주공께서 이 규를 불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무슨 일이 되었건 저에게 말씀만 하신다면, 어찌 감히 죽을힘을 다하여 애쓰지 않겠습니까?」

옹규의 말에 혹한 려공이 좌우를 물러가게 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은 제족의 사랑하는 사위가 아니오?」

「제가 비록 사위이기는 하지만 총애는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씨와의 혼인은 실은 송나라 군주가 강제로 시켜서 했지, 제족이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제족은 항상 옛날 쫓겨난 소공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아직도 그를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나, 단지 송나라를 두려워하여 다시 도모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경이 능히 제족을 없애만 준다면, 내가 경을 제족의 자리를 대신 하도록 하겠소. 단 이 계획을 절대 남에게 알리면 안 되오.」

「지금 도성 동교(東郊)가 송나라 병사들에게 약탈당하여, 민간의 주거지가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내일 사도(司徒)에게 명하여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를 수리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제족에게는 곡식과 피륙을 가져가 백성들을 안무하도록 지시하신다면 신은 그곳에 잔치상을 차려 놓고 짐독(鴆毒)⑧을 탄 술을 권하여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경에게 모든 일을 맡기겠으니 경은 세심하게 살피고 주의하여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집으로 돌아온 옹규가 그의 처 옹희를 보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을 띄웠다. 마음속에 의아한 생각이 든 제씨가 물었다.

「오늘 궁중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소.」

「첩이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낭군님의 기색을 보니 금일 궁중에서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큰일이건 작은일이건 마땅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군께서 그대의 부친을 시켜 동교에 가게 하여 백성들을 안무하게 하였소. 나는 그대의 부친이 그 곳에 당도하면 잔치상을 차려 그대 부친을 위해 축수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은 없었소.」

「낭군께서 나의 친정아버님을 위한 잔치를 하필이면 동교에 차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더 이상 물어 보지 말기 바라오. 이것은 주공의 명이오.」

마음 속에 더욱 의심을 품게 된 옹희가 술상을 장만하여 옹규에게 권하여 취하게 한 후에, 그가 정신이 몽롱하게 된 틈을 타서 넘겨짚어 물었다.

「주군이 당신에게 명하여 제족을 살해하라고 명하셨는데 당신은 벌써 잊었습니까?」

옹규가 술에 취하여 얼떨떨한 사이에 대답했다.

「그 일을 내가 어찌 감히 잊겠소!」

그 다음날 옹규가 일찍 일어나자 옹희가 말했다.

「낭군께서 저의 친정아버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저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어제 밤 취중에 스스로 한 말인데 구태여 숨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처신하겠소?」

「이미 출가한 아녀자는 그 남편만을 쫓아야 합니다. 어찌 다른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옹규가 결국 제족을 죽이기 위해 정백과 모의한 사실을 제씨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제씨가 말했다.

「우리 친정아버님이 동교에 행차하는 날짜를 아직 정하지 않았으니, 내가 마땅히 먼저 친정에 들려 행차를 빨리 하시도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만약 일이 성사되면 내가 그대 부친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니 당신도 함께 영화를 누리릴 수 있도록 하겠소!」

옹희가 과연 그날로 먼저 친정에 가서 그 모친에게 물었다.

「부친과 지아비 중 누가 더 친합니까?」

그 모친이 대답했다.

「모두 친하다.」

「두 사람 중 정은 누가 더 깊습니까?」

「부친이 남편보다 더 깊다.」

「어째서 입니까?」

「출가하지 않는 딸은 지아비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부친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출가한 딸은 재가하면 다시 지아비를 얻을 수 있지만, 한번 죽은 부친은 다시 살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지아결합한 사람이지만, 부친은 하늘이 정해 준 사람이다. 어찌 지아비를 부친과 견줄 수 있겠느냐?」

그 모친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옹희의 마음을 깨우치게 했다. 옹희가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제가 금일 부친을 위해 나의 지아비를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4. 살서축주(殺胥逐主)

- 사위를 죽이고 그 군주를 쫓아낸 제족 -

마침내 옹희는 옹규의 음모를 그 모친에게 전부 고했다. 그 모친이 크게 놀라 딸과 함께 제족에게 가서 전했다. 제족이 말했다.

「절대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조만간 내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다. 」

이윽고 동교에 나갈 때가 되어, 제족이 심복 강서(强鉏)를 시켜 가슴속에 예리한 단도를 숨긴 무사 10여 명을 이끌고 뒤를 따르게 하고, 다시 공손알(公孫閼)⑨에게 문중의 갑사 백여 명을 인솔하여 교외에 잠복시켜 혹시 모르는 변란에 대비하게 했다. 제족의 일행이 동교를 향해 나아가자 옹규가 중도까지 와서 마중나왔다. 제족을 접대하기 위하여 잔치상의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했다. 제족이 말했다.

「국사가 분주한데 예만 취하면 될 일을 이렇게 잔치상까지 차려 노고를 끼치면서 나로 하여금 송구한 마음을 들게 하는가?」

옹규가 시치미를 떼고 응대했다.

「교외에 봄기운이 완연하여 가히 즐길 만합니다. 잠시 머물러 술 한 잔 드시면서 노고를 푸시기 바랍니다.」

옹규가 말을 마치자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제족의 다리 밑에 꿇어앉아, 만면에는 웃음을 머금으며 백수를 기원하면서 권했다. 제족이 술잔을 받는 척 하다가 먼저 오른손으로 옹규의 어깨를 붙잡고, 왼손으로는 술잔을 빼앗아 땅에 쏟았다. 과연 쏟아진 술에서 화광이 일어나며 땅이 갈라졌다. 제족이 큰소리로 옹규를 꾸짖었다.

「필부가 어찌 나를 우롱하려고 하는가?」

좌우에 있던 무사들에게 호령했다. .

「무사들은 빨리 손을 써서 이 역적 놈을 죽이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강서와 여러 무사들이 일제히 단상에 올라와 옹규를 잡아서 참수하고 그 시체는 주위의 연못에 던져버렸다. 옹규를 돕기 위해 려공이 동교 부근에 잠복시킨 갑사들은 공손알에게 발각되어 십중팔구는 잡혀 죽었다. 일이 틀어진 것을 알게 된 려공은 크게 놀라 말했다.

「제족이 나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정려공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채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후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옹희가 옹규의 모의를 알게 된 것은 제족이 미리 그 딸에게 당부하여 방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려공이 도망치면서 말했다.

「나라의 대사를 그 아낙네와 상의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놈이로다.」

한편 려공이 다른 나라로 도망가 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제족은 공보정숙(公父定叔)⑩을 위나라에 보내어 소공을 영접해 오게 하여 복위시키면서 말했다.

「나는 옛날 군주에게 신의를 잃지 않게 되었다.」

< 12 회로 계속 >

주석

①대정(大鼎)/ 발이 셋이고 귀가 둘인 큰 솥. 고대에 솥은 나라의 국권을 전하는 중요한 징표였다. 화독이 송상공을 시해하고 정나라에 망명 중이었던 공자풍을 데려가 송공으로 추대한 후 군위를 여러 제후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나라에게는 고성에 있던 대정을 뇌물로 주었다

②상이(商彝)/상나라 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송나라의 보기로써 그 안에 술을 채워 제사를 지내는 기구. 송나라는 원래 상나라 후예들이 봉해진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상이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가지고 있었다. 송장공은 자기의 군위를 인정받기 위해 정나라에 상이를 뇌물로 바쳤다.

③곡구(谷邱)/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邱市) 동남 20키로 지점의 곡숙집향(谷熟集鄕)에 있던 고을. 송나라 도성 수양성(睢陽城)은 상구시를 말한다.

④연(燕)/ 지금의 북경 부근에 있었던 소공(召公) 석(奭)이 봉해진 연(燕)나라와는 다른 길(姞) 성 제후국으로 남연(南燕)을 말한다. 지금의 하남성 연진현(延津縣)에 소재한 연국은 황제(黃帝)의 후예로 개국조는 백조(伯鯈)다.

⑤기(紀)나라는 현 산동성 익도현(益都県) 동쪽 약 25km 지점에 위치했던 제나라와 같은 강성(姜姓)의 작은 제후국이다. 후에 제양공에 의해 제나라에 병합 되었다. 기나라 군주가 제애공(齊哀公)을 주이왕(周夷王)에게 참소하자 주나라에 입조한 애공을 이왕은 가마솥의 끓는 물에 삶아 죽였다. 이후로 기나라는 제나라와 원수지간이 되었다.

⑥허구(許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남쪽 임기시(臨沂市) 서쪽 20키로 지점의 마장향(馬庄鄕)이다.

⑦무보(武父)/ 현 하남성(河南省) 란고현(蘭考縣-개봉시 동 약 40키로, 산동성과의 경계) 북쪽 약 20km

⑧짐독(鴆毒)/ 짐새의 깃으로 담궈 만든 독. 술에 타서 독살하는데 주로 쓰인다.

⑨정나라가 허나라를 정벌할 때 공손알이 영고숙을 쏘아 죽인 해는 노은공11년인 기원전 712년의 일이고 제족이 정려공을 축출할 때는 노장공 697년의 일이며 쫓겨난 정려공이 17년 만에 복국하여 공손알을 죽인 해는 기원전 680년이다. 영고숙을 죽인 자가 공손알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장공이 죽이려고 하자 제족이 간하여 살려준 은혜에 감복하여 그의 심복이 되었다고 원작자는 상정한 듯하다.

⑩공보정숙(公父定叔)/ 태어난 해와 몰년 및 이름 모두 미상고 정(定)은 시호다. 정장공의 동생 공숙단의 손자고 공손활(公孙滑)의 아들이다.

※미주: 정장공 사후 정나라 후계자 분쟁의 경과

기원전701년 정장공이 죽고 세자 홀(忽)이 즉위했다. 이가 정소공(鄭昭公)이다. 그러나 이 해에 송나라의 위협에 굴복한 제족이 소공을 쫓아내고 자돌(子突)을 군위에 앉혔다. 이가 정려공(鄭厲公)이다.

기원전700년 자돌이 정백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가로 송나라에 바치기로 한 재물과 세 개의 성을 할양한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노나라와 지원을 받아 송나라를 침공했다.

기원전699년 정·노(鄭魯) 연합군이 연(燕), 위(衛), 송(宋) 과 연합하여 기(紀)나라를 침공한 제군을 기성(紀城)에서 물리쳤다.

기원전698년 송나라가 제, 위, 채, 진 등의 제후군을 규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했다. 송군은 수비에만 치중한 정나라의 교외를 크게 노략질한 다음 물러갔다.

기원전697년 사위 옹규를 죽인 제족이 정려공을 축출하고 위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정소공을 불러 복위시켰다.

기원전695년 고거미(高渠彌)가 소공을 시해하고 자미(子亹)를 옹립했다.

기원전694년 제양공이 파 놓은 함정에 떨어져 제나라에 들어간 자미와 고거미가 살해당하자 본국에 있던 제족은 자의(子儀)를 군위에 앉혔다.

기원전680년 옹규의 란으로 쫓겨난 정려공은 채나라의 도움으로 역성으로 들어가 기회를 노리다가 보하(甫瑕)의 협력으로 정성에 입성했다. 려공은 동생 자의와 제족이 심복이 되어 옹규를 죽인 공자알을 살해하고 강서는 두 발을 잘랐다. 공보정숙은 위나라에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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