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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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6 이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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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07:197800 
제8회. 貪色弑逆(탐색시군) 攀高辭婚(반고사혼)
양승국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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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8. 북융군의 침입을 물리치고 제나라를 구원한 정세자 홀 복사 (1).jpg  (613.0K)   download : 195
일반

제8회 貪色弑君 利誘破戎(탈처시군 이유파융)

미색을 탐하여 그 군주를 시해하는 송나라의 태재 화독과

이(利)로써 유인하여 융병을 무찌른 정세자 홀(忽)

1. 輕師好兵 殺身之禍(경사호병 살신지화)

- 군사를 함부로 움직여 전쟁을 즐기다가 살신지화를 당하는 송상공-

송상공 여이(與夷)는 즉위한 이후 누차에 걸쳐 군사를 일으켰다. 정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목으로만 벌써 세 번째였다. 오로지 정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공자풍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태재 화독(華督)과 공자풍은 원래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화독은 매 번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침략하는 송상공에게 중지하도록 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송나라의 군정을 책임지는 관직은 사마(司馬)로써 공보가(孔父嘉)가 맡고 있었다. 그래서 화독은 빈번히 일으킨 전쟁에 대한 책임이 공보가에게도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평소에 항상 공보가를 해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공보가는 상공이 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병권까지 쥐고 있어 감히 손을 쓸 수 없었다. 또한 얼마 전에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던 군사들도 귀환 길에 대(戴)나라를 통과하다가, 정나라와의 한 번 싸움에서 전군이 전멸하고 공보가 한 사람만이 살아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일로 인해 상공을 원망하는 송나라의 국인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군주 되는 사람이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고 싸움을 즐겨, 가볍게 군사를 움직인 끝에, 나라 안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모두 과부와 고아들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호구가 줄어들고 나라와 백성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화독도 심복을 시켜 성안에다 유언을 퍼뜨렸다.

「시도 때도 없이 여러 번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터로 내 보낸 일은 모두가 공보가가 주장하여 저지른 짓이다.」

송나라의 국인들은 그 말을 믿고 사마인 공보가도 함께 원망하게 되었다. 화독은 이제야 비로소 일이 자기의 뜻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2. 奪妻弑君(탈처시군)

-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군주를 시해하는 화독-

한편 공보가의 후실 위씨(魏氏)는 용모가 지극히 아름다워 세상에 비할 바 없는 미인이었다. 그 소문을 전해들은 화독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위씨가 친정 부모님에게 인사하러 들렀다가, 친정집 사람들을 따라 성묘를 가기 위해 성문을 나서게 되었다. 때는 춘삼월이라, 수양버들은 아지랑이처럼 자욱하고, 꽃은 피어 비단처럼 빛을 내는데, 짝을 지어 밖으로 나와 같이 봄놀이를 하고 있던 선남선녀들 틈에 끼어 위씨가 수레의 휘장을 걷고서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그때 마침 성 밖의 교외에 나와서 봄놀이를 즐기고 있던 화독이 위씨 일행과 만나 그녀의 자태를 보게 되었다. 화독은 그녀가 꿈에도 보고 싶었던 위씨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 마음속으로 혼자 말했다.

「세간에서 뛰어난 미인이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과연 명불허전이로다!」

화독이 집으로 돌아온 뒤로는 밤낮 없이 위씨만을 생각하다가 넋이 나가 혼자 말했다.

「만약에 내가 그와 같은 미녀를 데려와 곁에 두고 같이 살 수만 있다면 남은 반생 동안 원이 없겠다! 사마 공보가를 죽여서 위씨를 빼앗아 내 첩으로 삼고 말리라!」

화독은 이후로 공보가를 해칠 마음을 더욱 굳게 먹었다.

주환왕(周桓王) 10년 기원전711년 봄, 공보가는 사냥을 나가기 위해, 전차와 병사를 열병하면서 호령을 매우 엄하게 했다. 화독이 다시 심복을 시켜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유언을 퍼뜨렸다.

「공사마가 다시 기병하여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어제 태재와 상의하고, 이미 그 뜻을 정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열병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전쟁에 다시 동원될까봐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된 군사들은 모두 삼삼오오 떼를 지어 태재인 화독의 집 대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화독의 접견을 청한 그들은 전쟁에 나가는 고충을 호소하고 정나라를 정벌하는 전쟁을 중지하도록 주군에게 건의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화독이 일부러 대문을 단단히 잠그게 하여 접견을 허락하지 않는 한편 문지기를 덧문으로 나가게 하여 좋은 말로 군사들을 위무하도록 했다. 군사들은 더욱 간절한 마음이 되어 화독의 집 앞으로 몰려들어 점점 그 수효가 불어났다. 날이 저물어 어두지기 시작하자, 많은 군사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화독의 상견을 청하기 위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집안에 있던 화독이 혼자 말했다.

「사람이 모이는 것은 어렵지만 흩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다.」

화독은 군심이 이미 변했다고 판단했다. 서둘러 갑옷을 꺼내 입고 허리에 찬 칼을 뽑아 손에 들고 문지기를 앞세운 화독이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장수들과 병사들을 향하여 명령을 전하여, 대오를 갖추게 하고 시끄럽게 소리치는 행위를 금했다. 화독은 대문 앞에 서서 먼저 자기의 속마음을 감추고 자비로운 말로 일장 훈시를 행하여 군중들의 마음을 가라 앉혔다. 화독이 군사들에게 말했다.

「공사마가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백성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고, 여러 사람들에게 해를 입혔다. 그러나 주공께서는 공사마 한 사람만 신임하여 내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또다시3일 후에 대군을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한다고 했다. 송나라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며 목숨을 담보한다는 말인가?」

화독의 선동하는 말에 현혹된 군사들이 격앙되어 소리를 질렀다.

「공보가 놈을 죽여라!」

화독이 짐짓 속마음을 숨기고 군사들을 만류하는 척 했다.

「너희들의 이런 난동을 공사마가 알게 된다면, 공사마는 주공에게 아뢰어 너희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

군사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말했다.

「우리들 부자, 친척들은 매년 번갈아 전쟁터에 끌려 나가 지금까지 절반이 넘게 죽었습니다. 오늘 또한 대군을 일으켜 출전하려고 하는데, 정나라의 장수들은 용기가 있고 병사들은 강합니다. 어찌 저희가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앞에나 뒤에나 모두 죽음뿐이니 공보가 놈을 차라리 죽여서 백성들을 해치는 도적을 없애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비록 저희가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화독이 속내를 감추고 화살을 상공에게 돌렸다.

「쥐를 때려잡으려고 하는 자는 마땅히 장독을 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①사마가 비록 악독하다 하나 실은 주공이 사랑하는 신하이다. 이 일은 결코 행할 수 없다!」

군사들이 소리쳤다.

「만약 태재가 이끄신다면 그 무도혼군을 저희가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한 무리의 군사들은 화독을 설득하고 또 다른 무리의 군사들은 화독의 소매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면서 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컨대 태재께서는 백성들을 해치는 원수를 죽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군사들이 곧바로 수레를 끌고 와서 화독을 들어서 수레에 태웠다. 수레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화독의 심복이 이미 섞여 있었다. 군사들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곧바로 달려가, 공보가의 집 앞에 당도하여 그 집을 겹겹이 에워쌌다. 화독이 군사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큰소리를 낼 필요 없다. 내가 대문을 두드리면 그가 나올 테니 그때 죽이면 간단히 끝나는 일이다.」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가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집안의 내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공보가는 대문 밖에서 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시켜 무슨 일인지 알아보도록 했다. 종자가 돌아와서 고했다.

「화독 태재께서 몸소 대문 밖에 당도하시어 긴밀히 상론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공보가가 황망 중에 의관을 정제하고 화독을 영접하기 위하여 내당을 나가 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대문 밖의 한쪽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군사들이 벌떼처럼 대문 쪽을 향하여 달려왔다. 갑작스러운 장면에 마음이 매우 황당해진 공보가는 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대문 안으로 다시 들어가 몸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화독이 안채의 마루에 올라가 서있었다. 화독이 공보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백성을 해치는 도적놈이 여기 있는데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느냐?」

공보가가 미쳐 말도 꺼내기 전에 그의 머리는 이미 군사들이 휘두르는 칼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독이 심복을 데리고 공보가 집의 내실로 들어가, 위씨를 강제로 납치하여 수레에 태우고 그 집을 나왔다. 위씨가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알고 수레 안에서 허리띠를 풀어 목에 걸고 두 손으로 잡아 당겼다. 수레가 화독의 집 앞에 이르자 위씨의 숨은 이미 넘어 간 뒤였다. 탄식해 마지않은 화독은 위씨의 시신을 짚으로 싸서 성문 밖에다 버리라고 종자들에게 분부하고, 그를 따랐던 심복들에게 그 일을 발설하면 안 된다고 엄히 당부했다. 화독으로써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하룻밤의 즐거움도 못 누리고 공연히 여자의 원한만 샀으니 후회막급이었다.

한편 공보가를 죽인 군사들은 공씨의 집안을 노략질하여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공보가에는 이름을 목금보(木金父)라고 부르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그때는 나이가 아직 어려 그 가신 중 한 사람이 품에 안고 노나라로 도망쳐 성을 공(孔)으로 삼았다. 후에 노나라에 태어난 성인(聖人) 공자는 목금보(木金父) 6세손이다.

3. 투서기기(投鼠忌器)

- 돌을 던져 쥐를 잡을 때는 장독대를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

한편 사마 공보가가 란군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송상공은 주모자가 화독이라는 사실을 알고고 대노하여, 그에게 죄를 묻고자 즉시 사람을 시켜 입궐하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화독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상공이 어가를 대령케 하고, 공보가의 상을 치르는 곳에 친히 방문하려고 했다. 화독이 소식을 듣고 군정(軍正)②을 불러 말했다.

「너희들도 알고 있듯이 주공이 신임하고 있는 신하는 오로지 공사마 한 사람뿐이다. 그런데 멋대로 사마를 죽였으니, 너희들 중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선군 목공(穆公)이 그의 아들 풍(馮)을 버리고 지금의 주공에게 군위를 넘겨주셨다. 주공은 은혜를 원수로 갚기 위해 공보가를 사마로 임용하여 공자풍을 죽이기 위해 정나라에 대한 정벌을 쉬지 않고 했다. 지금 공사마가 너희들에게 죽임을 당한 일은 하늘의 뜻임이 분명하다. 만약에 대사를 병행하여 선군 목공의 아들을 추대하여 군주로 세우면 너희들의 행위를 전화위복로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모두에게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군정이 화독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태재의 말씀은 정히 우리 여러 사람들의 뜻과 같습니다.」

군정은 군사들을 다시 불러 모아 공보가 집 문 앞에 잠복시켰다. 송상공(宋殤公)이 공보가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하여 그 집 앞에 당도하자 망을 보고 있는 군사가 북을 한번 울리니, 잠복하고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상공을 호위하던 군사들은 놀라서 모두 도망가 버리고 혼자 남은 상공은 란군들 손에 죽었다. 상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화독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에 당도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곧바로 북을 울려, 대소 관료들을 조당에 모이게 한 다음 란을 일으킨 장수 중 두 명을 지목하여, 상공을 살해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참수형에 처했다. 그것으로 중인들의 이목을 가렸다고 생각한 화독은 큰소리로 외쳤다.

「선군의 아들 풍이 현재 정나라에 살아 있고 백성들은 선군의 덕을 잊지 못하고 있으니 마땅히 모셔와 군위를 잇도록 해야 하오.」

여러 신하들은 다만 화독의 강업적인 말에 그저 “예, 예” 라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화독은 즉시 사자를 정나라에 보내 송공의 죽음을 알리고 동시에 공자풍을 데려와 송군으로 세우려고 사자를 정나라에 보낸 것이었다.

한편 송나라 사절을 접견하고 국서를 받아 읽어본 정장공은 몇 마디 질문만으로도 송나라가 공자풍을 데려가 송군으로 세우겠다는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정장공이 즉시 어가를 손보게 하여 공자풍을 귀국시켜 송군의 자리를 잇게 하려고 했다. 출발 준비를 끝낸 공자풍이 장공을 뵙고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저의 쇠잔한 목숨이 아직까지 붙어 있음은 모두가 군주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로 돌아가게 되어 선군의 제사를 받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대대로 정나라를 신하의 예로 모시고 절대로 두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다.」

장공도 역시 눈물을 흘렸다. 공자풍이 송나라에 당도하자 화독이 받들어 송군으로 세웠다. 이가 송장공(宋庄公)으로 주환왕10년 기원전710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독은 옛날 관직을 그대로 따라 태재가 되었다. 화독은 자기가 저지른 시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중원의 여러 나라에 뇌물을 바쳤다. 중원의 제후국들은 화독이 보낸 뇌물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송나라의 일을 문제삼지 않았다. 제(齊), 노(魯), 정(鄭) 세 나라 군주들은 직(稷)③이라는 곳에서 만나 회맹하고 새로 등극한 장공을 송군으로 인정했다. 얼마 후에 송장공은 화독을 태재의 자리에서 상국으로 올려 송나라의 정사를 맡아 하게 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했다.

춘추 연간에 빈번한 찬시(簒弑)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는데

송노에서 일 년을 사이에 두고 기이한 소식이 전해졌다.

열국이 능히 뇌물을 물리쳐 찬시의 죄를 용납하지 않았다면

란신적자들이 어찌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겠는가?

春秋簒弑嘆紛然(춘추찬시탄분연)

宋魯奇聞只隔年(송노기문지격년)

列國若能辭賄賂(열국약능사회뢰)

亂臣賊子豈安眠(란신적자개안면)

또한 송상공이 의를 버리고 풍을 시기하여 결국은 시해 되었는데, 그것은 하늘의 뜻이었다고 노래한 시가 있다.

송목공이 나라를 양보한 일은 공명한 마음에서였는데

공자풍을 시기한 상공의 행위는 한심스러운 일이었다.

금일 상공이 시해 당하고 풍이 즉위하였으니

구천의 상공은 부친과 백부를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穆公讓國乃公心(목공양국내공심)

可恨殤公反忌馮(가한상공반기풍)

今日殤亡馮卽位(금일상망풍즉위)

九泉羞見父和兄(구천수견부화형)

4. 이유파융(利誘破戎)

- 이(利)로써 유인하여 융병을 물리치는 정세자 홀(忽)-

한편 제나라 희공은 직에서 귀국하던 중에, 본국에서 보내온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현재 북융주가 대량(大良)과 소량(小良) 두 원수에게 군사 만 명을 주어 제나라 변경을 침략해 왔습니다. 축가(祝柯)④를 이미 함락시키고 역하(歷下)⑤를 공격 중에 있습니다. 그곳을 지키던 장수들이 당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속히 환국하시기 바랍니다.」

제희공이 놀라 말했다.

「북융이 지금까지 누차에 걸쳐 침략을 해와 변경을 어지럽혔으나, 그것은 쥐새끼가 곡식을 훔쳐 먹는 정도였고 또한 개가 나라를 엿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대거 침범하여 왔으니 만약에 노략질을 하여 물러가게 한다면 장차 우리나라의 북쪽 변경은 편안한 날이 없게 될 것이다.」

제희공은 곧바로 사람들을 나누어 정, 노, 위 세 나라에 보내어 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공자원과 공손대중(公孫戴仲) 등에게 군사를 주어 역하로 보내 북융의 군사들을 막는데 돕도록 했다.

융병의 침략을 받아 구원병을 요청하는 제나라의 국서를 받아 읽어 본 정장공은 곧바로 세자홀을 불러 분부했다.

「우리 정나라와 제나라는 환란을 같이 하기로 옛날 석문(石門)에서 동맹을 맺었고 또한 정나라가 군사를 일으킬 때마다 제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보내 도움을 주었다. 오늘 제나라가 구원을 요청하니 마땅히 빨리 달려가 돕도록 하라!」

정장공은 그 즉시 전차3백 승을 선발하여, 세자홀을 대장으로, 고거미를 부장으로, 축담(祝聃)을 선봉으로 각각 삼고, 제나라를 향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행군하여 제나라를 구원하도록 명했다. 정나라의 구원군은 행군 중에 제희공이 역하성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그곳으로 직행했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정나라의 구원군이 역하에 당도했을 때는 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노와 위 두 나라의 군사들이 미처 당도하기도 전이었다. 정나라의 구원군이 신속한 행동에 감격한 제희공은 친히 역하성 성문 밖으로 나와 마중한 후 군사들을 배불리 먹여 접대했다. 이윽고 정나라 군사들이 진영을 세우고 안정을 취하기를 기다렸던 제희공이 세자홀에게 융병을 물리칠 계책을 물었다. 세자홀이 대답했다.

「융병은 모두 보군이라 앞으로는 쉽게 나갈 수 있지만 쉽사리 패하기도 잘합니다. 우리는 모두 전차병이라 나아가기는 어려우나 또한 쉽사리 패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융병의 성격은 경솔하고 그 지휘계통이 엄정하지도 않아, 탐욕스럽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지도 않습니다. 또한 승리를 하고도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싸움에 패하여도 서로 돕지 않습니다. 따라서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유인책을 써야합니다. 더욱이 현재 조그만 승리감에 도취된 그들은 우리가 유인책을 쓰면 반드시 우리 뒤를 경솔하게 추격해 올 것입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우리의 예비부대로 하여금 싸움을 걸어 거짓으로 못이기는 체하고 도망치게 하면 융병은 틀림없이 뒤를 쫓을 것입니다. 그사이 미리 매복시킨 본부병은 융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일제히 일어나 공격하게 합니다. 크게 놀라 방향을 뒤로하여 달아나는 융병을 추격해서 공격하면 필시 승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제희공이 정세자의 명쾌한 계책을 듣고 거들었다.

「세자의 계책은 참으로 훌륭하오. 제군은 동쪽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군의 앞을 가로막고 정군은 북쪽에 매복하여 융병의 후위를 공격하기로 합시다. 앞과 뒤에서 공격하면 승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소!」

세자홀이 작전 계획에 따라 정․제(鄭齊) 연합군은 북쪽 방면으로 나아가 군사를 두 대로 나누어 동서 양쪽에 매복했다. 희공은 공자원을 불러 계책을 일러주었다.

「그대는 군사를 끌고 동문에 매복하고 있다가 융병들이 뒤따라오면 즉시 나아가 공격하라!」

제후는 계속해서 공손대중에게는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성문 밖으로 나아가 적군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기며 당부의 말을 했다.

「너는 싸워서 지기만 하고 절대 이겨서는 안 된다. 융병을 우리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는 동문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공을 세운 것으로 해 주겠다.」

희공이 서로에게 임무를 나눠 배치를 끝내자, 공손대중이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성문 밖으로 나가 싸움을 걸었다. 북융의 장수 소량이 칼을 들고 말에 올라 융병3천 명을 이끌고 제군을 맞이하여 싸우기 위해 앞으로 돌진했다. 두 사람이 교전하기를20여 합에 이르자 대중이 더 이상 당해내지 못한 척하고 전차의 방향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뒤쪽에 있던 북문 쪽으로 가지 않고 성을 한 바퀴 돌아 동문을 향해 달아났다. 소량이 놓치지 않고 힘을 다하여 뒤쫓아 왔다. 북융군의 영채에 남아있던 대량은 소량이 이끄는 융군이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고 진채에 남아있던 군사들을 전부 동원하여 소량의 뒤를 따랐다. 소량이 이끄는 전대가 동문에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포성과 함성이 크게 진동하더니 이어서 북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덤불과 갈대 숲 속에 숨어 있던 제나라 군사들이 마치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을 해왔다. 소량이 급하게 소리쳤다.

「적의 계략에 빠졌다.」

소량이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고 할 때 뒤따라오던 대량의 군사들과 마주치게 되어 서로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방향을 같이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손대중과 공자원이 군사를 합하여 융병의 뒤를 쫓았다. 대량이 소량에게 앞의 길을 열라고 분부하고 자기는 후위를 맡아 추격해 오는 제나라 군사를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싸우다가 한편으로는 달아나곤 했다. 융병의 대열에서 낙오된 적병들은 모두 제나라의 군사들의 포로가 되었거나 죽임을 당했다. 작산(鵲山) 근처에 당도한 융족의 패잔병들이 뒤를 바라보니 제나라의 추격군이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게 되자,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휴식을 취했다. 허기에 지친 융병들이 밥을 짓기 위해 솥을 걸고 불을 피우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진지 앞의 산등성이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났다. 이어서 한 떼의 군마가 뛰어 나오면서 맨 앞에 선 대장이 융병들을 보고 외쳤다.

「정나라의 상장 고거미가 여기 있다.」

대량과 소량이 황급히 말에 올라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체 도망치기 시작했다. 고거미가 뒤를 쫓아 엄살해 들어갔다. 대량과 소량이 도망치면서 앞으로 몇 리쯤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전면에 함성이 또다시 일더니, 세자홀이 군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뒤쪽에서는 공자원이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추격해오고 있는 중이었다. 앞뒤에서 포위된 융병들은 십에 칠팔은 목숨을 구해 도망쳐 흩어졌다. 소량은 축담이 쏜 화살에 뒤통수를 막고 말에서 떨어져 죽고 대량도 말을 타고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다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세자홀이 휘두른 칼에 맞고 목이 떨어져 죽었다. 사로잡은 융국의 갑병은3백 명에 불과 했으나, 싸움 중에 죽인 융병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세자홀이 대량과 소량의 수급과 생포한 갑병들을 모두 제후 앞에 바쳤다. 희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세자의 이와 같은 영웅적인 분투가 있었는데 융병이 어찌 도망갈 수 있었겠소? 금일 세자의 덕분으로 우리 제나라의 사직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소!」

세자홀이 겸양의 말로 대답했다.

「어쩌다가 세운 조그만 공로인데 과분한 상을 받아 전하를 번거롭게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제희공이 사자를 노와 위 두 나라에 보내 원군의 출발을 중지시켜 먼 길을 행군하는 수고를 덜게 했다. 제희공은 명을 내려 잔치를 크게 열게 하여 정나라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기는 친히 세자홀을 접대했다.

5. 반고사혼(攀高辭婚)

- 분수에 맞지 않는 대국과의 혼사를 사양한 정세자 홀(忽)

제희공은 세자홀과 같이 앉아서 담소하다가 옛날 정장공에게 청했다가 그때까지 답을 받지 못하고 있던 혼사문제를 다시 꺼냈다.

「내가 어린 딸이 있는데 그대와 짝을 맺어 주고 싶은데 세자의 생각은 어떠하오?」

세자홀이 재삼 사양했다. 연회가 끝나고 희공이 이중년을 시켜 고거미로 하여금 다시 혼사문제를 세자홀에게 청해 보라고 부탁했다.

희공의 명을 받은 이중년이 고거미를 찾아와 말했다.

「과군이 영웅의 풍모의 세자를 사모하여 혼인을 맺고자 이전에도 사자를 보냈으나 허락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금일 저희 군주께서 직접 세자에게 혼인을 맺고자 청했으나, 다시 세자가 고집을 부려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는 세자의 뜻을 알 수 없으니 대부께서 나서서 능히 혼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청컨대 벽옥 두 쌍과 황금 백 냥을 바치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중년의 청을 허락한 고거미가 세자를 찾아가 제후가 세자를 앙모하여 혼인으로 인척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했다.

「만약 혼사가 이루어져 제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대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고거미의 말에 세자홀이 분명히 거절의 뜻을 밝혔다.

「옛날 아무런 일이 없었을 때도 제후가 청한 혼사를 거절했었소. 그것은 감히 나보다 권세가 큰 사람에게 빌붙어 공을 이룩하고픈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아서였소. 오늘 부군의 명을 받들어 다행히 제나라를 구하고 공을 이룬 내가 제나라로부터 부인을 얻어 귀국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필시 나를 공을 앞세워 부인을 얻었다고 비난하지 않겠소?」

고거미가 재삼 간청했으나 세자홀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제희공이 이중년을 세자홀에게 보내 혼사문제를 의론해보도록 했다. 세자홀이 말했다.

「부친에게 아뢰지도 않고 사사로이 혼사를 정하면 죄를 짓는 일이라 제가 감히 결정할 수 없어서입니다.」

세자홀은 그날로 인사를 드리고 정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제희공이 노하여 말했다.

「내 여식의 미색이 빠지지 않는데 어찌 신랑감이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정나라 본국으로 귀환한 세자홀이 제후가 청한 혼사를 거절했던 일을 장공에게 고했다. 장공이 말했다.

「내 아들이 스스로 공업을 이룩하고자 하니 어찌 좋은 혼처가 없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세자홀이 제나라가 제안한 혼사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족이 은밀히 고거미를 찾아와 말했다.

「주공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자돌(公子突), 공자의(公子儀), 공자미(公子亹) 등 세 공자는 모두 군위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습니다. 세자가 만약 혼사를 받아들여서 제나라를 후견으로 한다면 나중에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나라가 혼사를 거론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쪽에서 오히려 청해야 할 일인데, 어찌하여 스스로 자기의 날개를 자르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고대부께서는 세자를 모시고 제나라에 간 신하인데 어찌하여 간하여 혼사를 받아 드리도록 설득하지 않았습니까?」

고거미가 대답했다.

「저도 역시 몇 번 간했으나 말을 듣지 않아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제족이 탄식하여 물러갔다. 염옹이 시를 지어 세자홀의 혼사문제를 논했다.

장부가 일을 도모할 때는 강유를 겸해야 하는데

끝가지 혼사를 거절함은 지혜가 없는 행위였다.

시경의 재구(載軀)⑥와 폐구(敝笱)⑦를 읽어 보라!

노환공은 그렇게 비명에 죽지 않았으리라.

丈夫作事有剛柔(장부작사유강유)

未必辭婚便失謀(미필사혼편실모)

詩咏載軀幷敝笱(시영재구병폐구)

魯桓可是得長籌(노환가시득장수)

고거미는 원래 공자미와 서로 교분이 두터웠다. 게다가 공자미가 군위를 엿보고 있다는 제족의 말을 듣고는 더욱 관계를 긴밀히 했다. 세자홀이 장공에게 고했다.

「고거미라는 자는 공자미와 사사로이 교분을 쌓아 남몰래 왕래를 자주하고 있어 그 마음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장공이 세자홀의 말을 듣고 고거미를 불러 심하게 나무랐다. 고거미가 묵묵히 장공 앞에서 물러 나와, 공자미를 찾아가 장공에게서 나무람을 받은 이야기를 했다. 공자미가 말했다.

「부군께서 정경으로 있던 공자려가 죽자 그 후임으로 그대를 임명하려고 하였으나 세자가 간하여 제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소. 이번에도 우리 두 사람이 왕래를 못하게 하려고 세자가 부군에게 일러바쳤소. 부군이 살아 계실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으나 만약 부군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어찌 세자가 우리를 용납하겠소?」

「세자는 우유부단하여 사람을 해치지 못합니다. 공자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공자미와 고거미는 이때부터 세자홀과 틈이 생기게 되었다. 후에 고거미가 세자홀을 시해하고 공자미를 옹립하게 된 일은 이로 인해 생겼다.

한편 제족이 세자홀에게 진(陳)나라에서 그 배필을 구하고 위나라와는 우호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하면서 말했다.

「진과 위 두 나라는 서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데 만약에 정나라도 두 나라와 같이 수호를 맺고 혼인을 하게 되면 ‘솥발 같은 세’ 즉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어 스스로 세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세자홀이 동의하자 제족이 장공에게 아뢰었다. 장공이 허락했다. 이어서 곧바로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혼인을 청하자, 진후가 받아들였다. 세자홀이 진나라에 당도하여 친히 규(嬀)씨를 맞이하여 정나라로 데리고 같이 돌아왔다.

한편 노환공도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청혼했다. 문강(文姜)을 세자홀과 혼인을 시키려다 거절당한 제후는 노후의 청혼을 허락했다. . 이것은 또한 수많은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제9 회로 계속>

주석

①投鼠者當忌其器(투서자당기기기)

②군정(軍正)/ 사마(司馬) 밑에서 군사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군리(軍吏)들의 장(長)

③직(稷)/ 지금의 하남성 신양시(信陽市) 서 약30키로 되는 곳의 동백현(桐柏縣) 경내다.

④축가(祝柯)/현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서쪽25km 되는 곳에 있었던 고을이다.

⑤역하(歷下)/현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동쪽 근교다.

⑥재구(載軀)/ <시경(詩經)> 국풍(國風) 중 제풍(齊風)의 편명이다. 전문(全文)은 본서14회에 있다.

⑦폐구(敝笱)/<시경(詩經)> 국풍(國風) 중 제풍(齊風)에 실려 있는 시로써 전문은 본서14회에 실려 있다. 제양공(齊襄公)과 애정행각을 위해 만나러 가는 문강(文姜)을 노장공(魯庄公)이 막지 못한 것을 노래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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