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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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07 09:58:5011147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양승국   (1994)
 그림1-2. 강융에게 패하고 태원에서 요민하는 주선왕 S.jpg  (571.8K)   download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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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길거리의 요언을 듣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주선왕과

원귀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두백(杜伯)과 좌유(左儒).

북송의 문인 유안(幼安) 신기질(辛棄疾)①이 노래했다.

삼황오제(三皇五帝)② 시대에는 도덕으로

하은주(夏殷周) 삼대에는

공(功)과 명(名)으로 천하를 다스렸으나,

영웅오패(英雄五覇)③가 춘추를 어지럽게 하자

순식간에 흥망이 무상하게 되었다.

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얼마며,

북망산(北邙山)④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덤은 얼마인가?

앞서간 선인들의 땅을

후세 사람들이 차지하려고 싸우니

이를 용쟁호투(龍爭虎鬪)라 하지 않았는가?

道德三皇五帝(도덕삼황오제)

功名夏后商周(공명하후상주)

英雄五覇鬧春秋(영웅오패뇨춘추)

傾刻興亡過手(경각흥망과수)

靑史幾行名姓(청사기행명성)

北邙無數荒丘(북망무수황구)

前人田地後人收(전인전지후인수)

說甚龍爭虎鬪(설심용쟁호투)

1. 공화증흥(共和中興)

- 공화를 끝내고 주나라를 중흥시킨 주선왕(周宣王) -

은(殷)의 주왕(紂王)을 정벌한 주무왕(周武王)이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라 주나라를 세우고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이 그 뒤를 이었다. 성왕과 강왕 두 왕은 주나라의 기업(基業)을 지켰다. 또한, 주공(周公), 소공(召公), 필공(畢公), 사일(史佚)등 여러 현명한 신하들이 정치를 보좌하여 문화를 일으키고 전쟁은 억제하여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재화는 넉넉해져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었다. 그러다가 주무왕(周武王)으로부터 10대인 이왕(夷王) 때에 이르러 세력이 강대해진 제후(諸侯)들은 천자를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다. 이왕이 죽고 그 뒤를 이은 려왕(厲王)은 포학무도(暴虐無道)했다. 그래서 폭동을 일으킨 국인(國人)들에 의해 쫓겨나 체(彘)⑤라는 곳으로 도망가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 일이600여 년 간 계속된 변란의 시작이었다.⑥ 그러나 다행히 주공(周公)과 소공(召公) 두 사람이 함께 협력하여 태자 정(靜)을 옹립하여 왕으로 세웠다. 이 사람이 주선왕(周宣王)이다. 선왕은 영명유도(英明有道)하여 방숙(方叔), 소호(召虎), 윤길보(尹吉甫), 신백(申伯), 중산보(仲山甫) 등과 같은 현신들을 등용하여 문무(文武)와 성강(成康)의 치세를 다시 이루어 주왕조를 찬란하게 중흥시켰다. 이것을 노래한 시가 있다.

이왕과 려왕의 정치는 진실로 옛날의 강령을 따르지 못했고

슬기로운 신하를 등용하여 치세를 이룬 이는 선왕이었다.

공화(共和)⑦ 이후에 선왕과 같은 중흥주가 없었다면,

어찌 주나라의 역사가 8백 년을 갔겠는가?

夷厲相乃政不綱(이려상내정불강)

任賢圖治賴宣王(임현도치뢰선왕)

共和若沒中興主(공화약몰중흥주)

周歷安能八百長(주력안능팔백장)

주선왕이 비록 정사에 부지런했다고는 했으나, 단서(丹書)⑧를 얻어 계율로 삼아 행한 공덕이 집집마다 창문에 새겨지는 경지에 이른 주무왕에게는 미치지 못했고, 또한 비록 중흥을 이루었다고 했으나 남만의 먼 나라가 여러 번 통역을 바꾸어가며 백치(白雉)를 공물로 바칠 정도로 교화를 크게 행했던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의 치세에도 역시 미치지 못했다.

주선왕 재위39년, 기원전789년에 강융(姜戎)⑨이 반하여 천자가 친히 정벌에 나섰으나 천무(千畝)⑩에서 패하여 전차와 병졸을 크게 잃었다. 군사를 다시 동원하여 정벌할 계획이었으나 군사의 수가 충분치 않아 천자가 몸소 태원(太原)⑪으로 가서 그곳의 백성들을 징발했다. 태원은 현재 고원주(固原州)⑫로 바로 융적(戎狄)의 땅과 이웃해 있다. 징발한 백성들은 태원의 주민들인데, 호적을 대조한 후에 한 곳에 모이게 하여 사열하고, 그 인원의 다소(多少)와, 또한 거마(車馬)와 양식 및 마초(馬草)의 많고 적음을 확인한 후에 왕성으로 이동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재(太宰) 중산보(仲山甫)가 이를 중지하라고 간(諫)했으나 듣지 않았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개나 돼지를 잡는데 어찌 검망(劍鋩)을 더럽히려 하는가?

수주를 던져서 참새를 잡으려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천자의 위엄이 다해 원수를 갚을 수 없다고

망녕되게 백성들을 징발하여 소란을 피우는가?

犬彘何須辱劍鋩(견체하수욕검망)

隋珠彈雀⑬總堪傷(수주탄작총감상)

皇威褒盡無能報(황위포진무능보)

枉自將民料一場(왕자장민료일장)

2. 檿弧幾亡周國(염호기복 기망주국)

- 뽕나무 활과 기초풀 전통은 주나라가 망할 징조로다.-

주선왕(周宣王)이 태원(太原)의 백성들을 징발하는 일을 끝내고 왕성으로 되돌아오던 중 날이 저물었으나, 어가를 멈추게 하지 않고 계속 길을 재촉하여 밤중이 되어서야 성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거리에서 어린아이들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한 목소리였다. 주선왕이 곧 어가를 세워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말은 다음과 같았다.

달이 뜨고, 해가 진다.

뽕나무 활과 풀로 엮어 만든 전통(箭筒)은

주나라가 망할 징조로다.

月將升 日將沒(월장승 일장몰)

檿弧簊箙幾亡周國(염호기복 기망주국)

노래를 듣게 된 주선왕은 그 노래말이 매우 불길하다고 생각하여 시종으로 하여금 그 연유를 묻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잡아오게 했다. 아이들은 놀라서 흩어지고 나이가 제법 든 아이와 어린 아이 두 명만을 잡아 와서 선왕의 수레 앞에 꿇어 앉혔다. 선왕이 물었다.

「그 노래는 누구에게서 배워 부르게 되었는가?」

나이가 많은 아이가 대답했다.

「우리들이 지어서 부른 노래가 아니고, 3일 전,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거리에 나타나 우리들에게 가르쳐 외우게 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가르쳐 부르게 하자 시정에 만연하여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어린아이들이 같이 부르게 되자, 한 곳에 멈추지 않고 이렇게 널리 퍼져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동자는 어디에 있는가?」

「노래를 가르친 후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선왕이 오랫동안 말없이 있다가 아이들을 꾸짖어 돌려보낸 후, 즉시 사시관(司市官)⑭을 불러 당장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명하고, 만약에 어린아이가 그 노래를 다시 부를 경우, 부모를 연좌시켜 죄를 주겠다고 했다. 주선왕은 그날 밤으로 궁궐로 들어갔다.

다음날 선왕이 조회에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삼공육경(三公六卿)⑮과 백관들이 모두 배례(拜禮)를 드리고 일어나 도열했다. 선왕이 어제 밤에 도성으로 돌아오다가 길거리에서 들은 어린 동자들의 노래 소리를 여러 신하들에게 들려주고 대신들을 향해 물었다.

「그 노래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대종백(大宗伯) 소호(召虎)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염(檿)은 뽕나무의 이름이고 활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그래서 염호(檿弧)라 합니다. 기(箕)는 풀이름입니다. 질겨서 화살통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화살통을 기복(箕箙)이라 부릅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나라에 궁시지변(弓矢之變)이 있을까 우려됩니다.」

태재(太宰) 중산보(仲山甫)가 뒤를 이어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궁시는 곧 나라의 무기인바, 대왕께서 견융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태원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일으킨 군대를 해산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환란이 닥칠 것임을 예언하는 노래입니다.」

선왕이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물었다.

「이 말은 홍의동자로부터 기인한 말인데 그 홍의동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가 대답했다.

「시중의 근거 없는 말을 요언(謠言)이라 합니다. 하늘이 임금에게 경계를 주기 위하여 형혹성(熒惑星)⑯에게명하여, 동자로 변해 요언(妖言)을 만들어, 어린 동자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했습니다. 작게는 한 사람의 길흉을 말하며, 크게는 국가의 흥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형혹성은 붉은 색의 별입니다. 대왕께서 들으신 망국의 노래는 곧 하늘이 왕께 경계를 주고자 함입니다.」

선왕이 백양보에게 다시 물었다.

「짐이 오늘 강융의 죄를 용서하고, 태원의 병사들을 해산하며, 무기 창고에 있는 활과 화살을 모두 불사르고, 다시 영을 내려 나라 안에서 활과 화살을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하면 그 화를 피할 수 있겠는가?」

「신이 하늘을 관측해 보니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나 왕궁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관(關)⑰안팎에서 일어나는 전란이 아니면 후에 반드시 여자가 있어 나라를 어지럽히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노래에 ‘달이 뜨고 해가 진다’에서 해는 임금을 말하고, 달은 음(陰)으로 여자를 의미합니다. 즉 일몰장승(日沒月升)은 음이 승하고 양이 쇠하다는 뜻이니 정치를 밝게 행해하여야만 그 화를 피할 수 있습니다.」

「짐은 강후(姜后)가 육궁(六宮)⑱을잘 주재하고 있고, 또한 왕비의 덕이 심히 높아 나에게 바치는 궁녀들은 모두 강후가 선택하면 내가 이를 어기지 않고 따르고 있는데 어찌 여자로 하여금 란이 일어난다고 하는가?」

「요언(妖言)에 ‘장승(將升)’ ‘장몰(將沒)’이라 했으니 목전의 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장(將)이라는 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장래에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왕께서 장차 덕을 쌓아 정사를 돌보시고 재난에 대비하신다면 자연적으로 화(禍)가 길(吉)로 변하게 되니, 구태여 활과 화살을 태워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3. 용시정령(龍)

- 용의 침을 받아 태어나는 포사(褒姒) -

백양보가 아뢰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조회를 파한 선왕은 퇴청하여 내궁으로 들어가 강후를 찾았다. 강후가 맞이하여 좌정하자 선왕은 아침 조회에서 길거리에서 들은 요언에 대해 군신들이 상주한 내용을 강후에게 상세히 말했다. 강후가 고했다.

「궁중에서도 이상한 일이 있어 바로 말씀드리려고 하던 참입니다. 지금 선왕(先王)⑲때부터 있었던 늙은 궁인이 있는 데 나이가50여 세가 되었습니다. 선왕때 아이를 밴 이래40여 년이 되었는데, 바로 어제 저녁에 여자아이를 낳았습니다.」

선왕이 크게 놀라 물었다.

「그 여자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강후가 대답했다. “

「첩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 이미 시자에게 명하여 가마니에 싸서20리 밖의 청수하(淸水河) 가운데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선왕이 곧 늙은 궁인을 불러서 아이를 밴 연고를 물었다. 늙은 궁인이 선왕 앞에서 엎드린 채로 대답했다.

「하(夏)나라 걸왕(桀王) 말년에 포성(褒城)⑳의신인(神人)이 용 두 마리로 변해 입에는 침을 흘리며 왕궁의 뜰 안에 내려앉더니 갑자기 사람으로 변해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곧 포성의 두 주인이다.”

걸왕이 두려워하여 두 마리의 용을 죽이려고 태사에게 점을 치게 했으나, 점괘가 불길하게 나왔습니다. 다시 용을 쫓아내면 어떤가 하고 점을 치게 한 바 역시 불길하게 나왔습니다. 태사가 점괘를 보고 걸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신인의 하강은 틀림없이 대왕께 상서로운 일입니다. 대 왕께서는 이 용의 침을 받아서 보관하십시오. 용의 침은 곧 용의 정기(精氣)라, 저장하여 두면 필히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걸왕이 태사에게 명하여 다시 점을 치게 하니 그때는 대길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용 앞에 제단을 만든 후에 비단 천으로 덮고 금으로 만든 쟁반으로 그 용의 침을 받아 붉은 궤에 넣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자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두 마리의 용은 먼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걸왕이 명하여 용의 침을 받은 궤를 창고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은(殷)왕조640년28왕을 거쳐, 우리 주나라 왕조300년이 지난 그때까지 궤의 뚜껑을 열지 않고 왕실의 창고에 깊숙이 보관해왔습니다. 이윽고 선왕이신 려왕 말년에 이르러 그 궤에서 희미한 빛이 비쳤습니다. 창고를 지키는 관리가 보고 그 일을 선왕에게 고했습니다. 선왕께서 들으시고 물으셨습니다.

“궤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관리가 선왕께 장부를 갖다 바치면서 용의 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선왕께서 궤를 열어 보겠다고 명하셨습니다. 관리가 붉은 궤를 깨뜨리고 뚜껑을 연 다음 그 안에 들어있었던 금쟁반을 꺼내 두 손으로 들어 선왕에게 바쳤습니다. 선왕께서 손을 들어 받으려고 한 순간 실수로 금쟁반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금쟁반에 들어 있던 용의 침이 뜰로 쏟아지자, 갑자기 여러 마리의 자라 새끼로 변하더니, 그 중 한 마리가 궁전 뜰 안에서 돌아 다녔습니다. 내시가 자라새끼를 뜰 안에서 쫓아냈습니다. 자라새끼는 왕궁의 뜰 안에서 쫓겨 도망다니다가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바로 열두 살이었는데 우연히 자라의 흔적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에 감각이 오고 점차로 배가 불러왔습니다. 이윽고 저의 몸은 애를 밴 모습이 되었습니다. 천한 것이 지아비 없이 애를 밴 저를 괴이하게 생각하신 선왕께서 소인을 깊은 방 속에 가둔 이래 지금까지4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밤중에 갑자기 배에 통증이 와 뜻밖에 여자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궁을 지키는 시자(侍者)들을 감히 속이기 어려워 부득이 왕후께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요물(妖物)은 결코 용납할 수가 없구나!”

왕후께서 즉시 시자들에게 명하여 애를 가져다 강물에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천한 계집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선왕이 이야기를 다 듣고 말했다.

「이 일은 선조(先朝)때의 일이라 너와는 무관한 일이다!」

늙은 궁인에게 큰 소리로 말하여 물러가게 한 선왕은 그 즉시 궁을 지키는 시자를 불러, 청수하로 달려가서 여자 아기가 떨어져 있는가 살펴보라고 명했다. 얼마 후에 시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이미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 버려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선왕은 더 이상 의심치 않았다. 다음날 아침 태사 백양보를 불러 용의 침[龍漦]으로 일어난 이상한 일에대해 점을 쳐보라고 명했다.

「그 여자아이가 강물에 빠져 죽어 요기가 없어 졌는지 경이 점을 한번 처 보라!」

백양보가 점괘를 보고 글로 만들어 바쳤다.

곡하고 웃고, 웃고 또 곡하다.

양(羊)이 귀신(鬼神)에게 잡혀 먹히고

말이 개를 만나 쫓겨다니니

신중하고 신중 할지어다,

뽕나무 활에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箭筒)이로다.

哭又笑 笑又哭(곡우곡 소우곡)

羊被鬼呑 馬逢犬逐(양피귀탄 마봉견축)

愼之愼之 檿弧簊箙(신지신지 염호기복)

선왕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백양보가 아뢰었다.

「십이지간(十二支干)으로 미루어 보건대 양(羊)은 미(未)이고, 마(馬)는 오(午)입니다. 곡하면서 웃는 것은 희비의 상입니다. 그것은 응당 오미년(午未年)㉑간에 있을 일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신의 생각으로는 요기가 비록 궁 밖으로 나갔다고는 하나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주선왕은 백양보가 아뢰는 말을 듣고 앙앙불락(怏怏不樂)하다 곧바로 영을 내렸다. 성안이건 성밖이건 집집마다 방문하여 여자아이를 찾게 했다. 생사에 관계없이 찾아서 갖다 바치는 자에게는 비단300 필을 상으로 준다고 했다. 거두어 기르면서 고하지 않는 자를 발견하고 신고한 자에 대해서는 같은 상을 줄 것이며, 그 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그의 전 가족을 연좌시켜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이어서 선왕은 상대부(上大夫) 두백(杜伯)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염호기복(檿弧箕箙)이라는 점괘에 대한 조치로써는 하대부(下大夫) 좌유(左儒)로 하여금 사시관들을 이끌고 성안의 시정(市井)을 순행하여, 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게 하고, 위반자는 사형에 처하게 했다. 좌유는 감히 일을 태만히 할 수 없어 사시관들로 하여금 일반 노역들을 데리고, 한편으로는 알리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돌아다니게 하면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안의 백성들은 기꺼이 좌유의 지시하는 바를 따랐다. 그러나 성밖 향촌(鄕村)의 백성들은 아무도 선왕의 명령을 알지 못했다. 그 다음날, 성안을 순행하던 좌유는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대 몇 개를 품에 안은 여자가 앞서고, 뽕나무로 만든 활10여 개를 등에 맨 남자가 그 뒤를 따르며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부부 두 사람은 성밖 멀리 떨어진 향촌에 사는 촌사람들인데 낮 동안에 가지고 온 물건을 시장에 팔 목적으로 성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 부부는 미처 성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성문 앞에서 사시관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사시관이 화살과 전통을 들쳐 맨 여인을 보고 휘하의 노역들에게 체포하라고 소리쳤다. 앞선 여자는 잡았으나 남자는 미처 사시관의 눈에 띄지 않아서, 재빨리 등에 맨 활을 길거리에 버리고 나는 듯이 도망쳤다. 사시관은 여자에게 칼을 씌우고 뽕나무 활과 풀잎으로 엮어 만든 전대와 같이 하대부 좌유가 있는 곳까지 압송했다. 좌유가 혼자 생각했다.

「노래에 상응하는 두 가지 물증을 얻었고, 더욱이 태사가 말하기를 여인으로 하여금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으며, 그리고 이제 여자를 이미 잡았으니 마땅히 왕에게 알려야겠다.」

좌유는 그 즉시 활을 버리고 도망친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고 단지 여자가 금령을 어기고 활을 만들어 팔려고 했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선왕은 여자는 참하고 그 뽕나무 활과 전대를 저자거리에서 불태우라고 명하여 활과 전통을 만들어서 팔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를 삼도록 했다. 후세사람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선정을 베풀어 하늘의 변란을 없애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요언을 믿고 죄 없는 부인을 죽였다

중흥으로 가는 길은 멀고 더딘데

이번에는 어찌하여 직간(直諫)하는 신하조차도 없는가?

不將美政消天變(불장미정소천변)

却泥謠言害婦人(각니요언해부인)

漫道中興多補闕(만도중흥다보궐)

此番直諫是何臣(차번직간시하신)

한편 뽕나무 활을 버리고 위기일발의 순간을 면하고 목숨을 건진 남자는 급히 도망을 하면서도 도무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관리들이 내 부인을 잡아 갔는지 정녕 모를 일이로다!」

그 남자는 자기 부인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 성문 밖10리 되는 야산에서 밤을 새웠다. 그 다음날 아침, 지나가는 사람이 소식을 전해 주면서 말했다.

「어제 북문에서 한 여자가 뽕나무 활과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만들어 팔지 말라는 왕의 영을 어겨 즉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부인이 이미 죽은 것을 알게 된 사내는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달려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는 화를 면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발길 닫는 대로10여 리를 걸어서 당도한 곳이 청수하 강변이었다. 사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저 멀리서 많은 새가 울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간 사내의 눈에 어린 갓난아이가 풀로 엮은 바구니에 담겨 물위에 떠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갓난아이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여러 마리의 새들이 부리로 물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 울면서 강변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 남자가 보고 소리쳤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구나!」

그 남자가 새들을 쫓아 버리고 물속에서 바구니를 건저내서 풀밭이 있는 언덕으로 옮겨 아기를 꺼내어 살펴봤다. 갓난아이는 여아였는데 사내의 손에 닿자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사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아를 누가 버렸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새들이 부리로 물어 물가로 끌고 나온 것을 봐서 이는 필시 고귀한 신분의 귀인임에 틀림없다. 내가 오늘 데리고 가서 성인으로 키우면 소득이 있겠다.」

사내가 자기의 상의를 벗어 이 여아를 쌓아 가슴에 안고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한 끝에,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낫다고 생각하여 포성(褒城) 쪽을 바라보고 홀홀히 사라졌다. 염옹(髥翁)은 이 여아가 목숨을 구한 것은 오로지 기이한 운명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시를 지어 노래했다.

임신한지 장장40년인데

물속에서의3일간이 위험할 리가 있겠는가?

요물이 생겨나서 나라에 재앙을 안기는데,

왕법은 어떻게 하늘의 뜻을 헤아리겠는가?

懷孕遲遲四十年(회잉지지사십년)

水中三日尙安然(수중삼일상안연)

生成妖物殃家國(생성요물앙가국)

王法如何勝得天(왕법여하승득천)

4. 경살무고(輕殺無辜)

- 죄 없는 신하를 함부로 죽이는 주선왕-

한편 뽕나무 활과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팔려고 했던 부인을 잡아서 처형한 주선왕은 동요에 나오는 경계의 내용에 부응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또한 태원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강융을 정벌하는 일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어 그 후로 몇 년간은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내게 되었다.

선왕43년 즉 기원전785년, 선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재궁(齋宮)으로 나가 묵게 되었다. 밤이 이경이 되어 사람의 인적이 끊어 졌을 때, 홀연히 아름다운 여인이 서쪽으로부터 한들한들 걸어와 바로 궁궐의 뜰에 도달했다. 여인의 신분으로 재궁의 금도(禁道)를 범한 것을 괴이하게 여긴 선왕은 노하여 큰소리로 좌우의 시자들에게 명하여 잡아오게 했으나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인도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주왕실의 위패를 모시는 태묘(太廟)에 들어가 크게 세 번 웃더니 또 크게 세 번 울고 난 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주나라 칠묘(七廟)㉒의신주를 묶어서 들고 동쪽으로 걸어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선왕이 몸을 일으켜 쫓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정신이 드니 바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선왕은 노곤한 심신을 끌고 태묘에 들어가서 예를 행했다. 구례(九禮)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재궁으로 돌아온 선왕은 태사 백양보를 아무도 몰래 조용히 불렀다. 선왕이 꿈에서 본 이야기를 하자 백양부가 아뢰었다.

「3년 전의 동요를 왕께서는 어찌 잊으셨습니까? 신은 여자로부터 화가 생기고 요기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노랫말의 곡소(哭笑)라는 말은 왕께서 이번에 꾼 꿈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전에 한 여자를 죽인 것만으로는 염호기복(檿孤箕箙)의 참(讖)을 없애는데 부족하다는 이야기인가?」

「하늘의 뜻은 너무 높아 이제 그 효험이 바로 나타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일 개 아녀자로 천도의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백양보의 말을 들은 선왕은 신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3년 전 상대부 두백에게 명하여 용시의 정기로 태어난 요녀를 찾아내도록 명했으나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음을 생각해 냈다. 제사음식을 먹고 조당에 돌아온 선왕은 백관들에게 제사를 지낸 고기를 나누어준 다음 두백에게 물었다.

「요기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경은 어찌하여 오랫동안 요녀의 일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는가?」

두백이 아뢰었다.

「신이 그 여자아이를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요부를 잡아 죄를 주어 동요의 효험이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한 나머지 쉬지 않고 수색작업을 하면 백성들이 놀랄까 걱정하여 중지했습니다.」

선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일을 이렇게 명백하지 못하게 처리하니 이것은 임금의 명령에 태만하여 멋대로 행한 짓이 아닌가? 이런 불충한 신하를 어디다 쓰겠는가?」

선왕이 무사들에게 소리쳐 명했다.

「저 자를 조문으로 데리고 나가 참수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라!」

선왕의 갑작스런 명에 여러 백관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때 문반 대열 중에서 한 사람의 관원이 뛰쳐나와 무사들에게 끌려 나가는 두백을 황급히 잡으면서 주선왕을 향해 외쳤다.

「절대로 불가한 입니다.」

선왕이 보니 곧 하대부 좌유(左儒)였다. 좌유는 두백의 친구로서 두백의 천거에 의해 벼슬길에 나온 사람이었다. 좌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간했다.

「신이 듣기에, 요임금께서는9년 홍수에도 황제로서 실덕한 일이 없었고 탕임금은7년 가뭄에도 왕의 위엄을 손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변괴를 아직도 막지 못하고 있어, 백성들이 요언을 오히려 믿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한 왕께서 두백을 죽이신다면 백성들이 요언을 퍼뜨려 변방 오랑캐가 전해 듣고 쳐들어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원컨대 두백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친구를 위하여 왕의 명을 거역하니 왕을 친구보다 더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왕이 옳고 친구가 그르면 마땅히 친구를 버려 왕을 따라야 하고 친구가 옳고 왕이 그르다면 마땅히 왕을 버리고 친구를 따라야 합니다. 더욱이 두백이 지은 죄는 사형에 처할 만큼 중한 죄가 아닙니다. 왕께서 두백을 죽이신다면 천하가 대왕을 어질지 못하다고 할 것이며, 신이 만약 간하여 중지시키지 못한다면 천하가 신이 불충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왕께서 그래도 기여코 두백을 죽이시겠다면, 신도 두백과 같이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선왕의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했다.

「짐이 두백을 죽이거든 처형장으로 나가 장광설을 늘어놓아라.」

선왕이 무사에게 소리쳐 빨리 두백을 끌고 나가 참수하라고 했다. 무사가 두백을 궁궐 대문 밖으로 끌고 나가 목을 벴다. 좌유가 집에 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좌유를 찬미했다.

슬기로운 좌유여!

직간하다가 용의 비늘을 건드렸구나.

옳은 일은 친구의 말일지라도 따르고

옳지 않은 일은 임금의 명이라도 따르지 않았으니

벼슬아치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문경지교(刎頸之交)의 도리를 밝혀

이름을 천고에 높였도다!

신하의 도리를 세웠도다!

賢哉左儒 直諫批鱗(작건비린 현재좌유)

是則順友 非則違君(사죽순우 비즉위군)

呑冠誼重 刎頸交眞(탄관의중 문경교진)

名高千古 用式彛倫(명고천고 용식이륜)

두백의 아들 습숙(隰叔)은 동쪽의 당진(唐晉)으로 달아나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사사(士師)라는 관리가 되었다. 그의 자손은 성을 사(士)씨로 하고 범(范)㉓을식읍으로 받았다. 그런 연유로 또한 범(范)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씨와 범씨는 당진(唐晉)의 유력한 세가(世家)가 되어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국위를 빛냈다. 후세 사람들이 두백을 위해 사당을 짓고 그의 충성심을 애도했다. 두백의 사당을 두릉(杜陵)에, 그 사당의 주인을 두주(杜主)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한 우장군(右將軍) 묘라고 부르기도 하며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이것은 모두 후일의 이야기이다.

다음날 좌유도 친구를 위해 목을 찔러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선왕은 두백을 죽인 것을 후회하며 번민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날 밤부터 선왕은 잠자리에서 잠을 못 이루더니 이내 정신이 몽롱한 병을 얻게 되었다. 말의 두서가 없어지고 일을 하다가 많은 일을 잊어 먹게 되니 언제나 중도에서 정사를 중단하곤 했다. 강후도 선왕이 병이 난 것을 알고 다시 간하지 않았다.

5. 화려명원(化厉鸣)

- 무서운 원귀(寃鬼)가 되어 원수를 갚은 두백(杜伯)과 자유(子儒).-

선왕46년 기원전782년7월, 임금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호경(鎬京) 밖으로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심신이 즐거워 진 선왕은 사공(司空)과 사마(司馬)에게 어가를 정비하고 거마꾼을 점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사가 점을 쳐서 길일을 잡아 그 날이 되자 왕이 근위대의 호위를 받아 어가를 타고 오른쪽에는 윤길보, 왼쪽에는 소호를 거느리고, 기치를 높이 들고 병장기로 무장한 군사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동쪽의 사냥터를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그 동쪽 일대는 넓은 평원으로써 원래 왕의 사냥터로 사용하던 곳이다. 정신이 상쾌해진 선왕은 행군을 중지시키고 영채를 세우라고 했다. 선왕이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발했다.

첫째 논밭의 농작물을 밟으면 안 된다.

둘째 숲 속의 나무를 태우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민가에 들어가서 함부로 백성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 사냥한 짐승이 많건 적건 모두 한 곳에 갖다 바쳐 사냥을 끝내고 주는 상급에 참고해야 한다. 사사로이 은닉하여 후에 발각된 자는 중벌에 처한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사람마다 용기를 뽐내어 각각 서로 앞을 다투어 사냥감을 쫓았다. 수레를 모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후퇴하고, 맴돌고 하면서 온갖 기술을 발휘하고, 활을 가지고 있는 자는 종횡으로 활을 쏘아 그 실력을 뽐냈다. 여우와 토끼들은 매서운 매와 사냥개의 기세에 어지러이 달아났다. 활이 향하는 곳은 혈육이 낭자하고, 화살은 마치 새의 깃털처럼 날아다녔다. 선왕이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이 번의 사냥몰이는 지나치게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구나!」

이윽고 시간이 흘러 해가 서쪽으로 이미 넘어가자 선왕은 영을 내려 사냥터의 포위망을 풀게 했다. 여러 군사들이 각각 잡은 들짐승과 날짐승을 한꺼번에 묶어서 왕에게 갖다 바쳤다. 사냥을 끝낸 선왕은 어가를 타고 궁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다가3∼4리도 채 못 되는 곳에서 갑자기 한 대의 조그만 수레가 멀리서 나타나, 마치 왕의 어가와 부딪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왔다. 붉은 색의 활을 어깨에 둘러메고, 역시 붉은 색의 화살을 손에 든 두 사람이 선왕을 향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왕께서는 무양하신지요?」

선왕이 눈을 크게 치켜뜨고 바라보니 바로 상대부 두백과 하대부 좌유였다. 크게 놀란 선왕이 다시 쳐다보니 순식간에 사람과 마차가 어디론가 사라져 모두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시자들에게 물어 봤으나, 모두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왕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사이에 두백과 좌유가 조그만 수레를 몰고 왕의 어가 바로 앞에 다시 접근해 왔다. 선왕이 대노하여 소리쳤다.

「죄를 지은 귀신들이 어찌 감히 어가를 범하려드느냐?」

선왕은 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 태아(太阿)㉔를뽑아 들고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두백과 좌유가 한 목소리로 꾸짖어 말했다.

「무도혼군아! 스스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올바른 정치를 펼치지 않고, 무고한 신하들을 망령되게 죽이니, 오늘 우리가 원한을 갚아 너의 수명을 끝내려고 우리가 왔으니 네 목숨을 내놔야 되겠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이 동시에 주궁(朱弓)에 적시(赤矢)를 꿰어 선왕의 명치를 향해 쐈다. 선왕이 ‘악’ 소리와 함께 어가 안에서 혼절했다. 당황한 윤길보는 다리를 주무르고, 소호는 눈언저리를 문지르고, 좌우의 시자들은 생강탕을 끓여 마시게 해 간신히 정신을 들게 했다. 정신을 차린 듯하던 선왕이 갑자기 가슴의 고통을 못 이기고 소리를 질렀다. 좌우의 신하들이 곧바로 선왕을 모시고 어가를 재촉하여 회궁했다. 결국 그날의 사냥대회는 군사들에게 상급도 나누어주지 못하고 흩어지게 되었다. 흥겨운 마음으로 출발해서 우울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적시주궁을 지니고 마치 천신과 같이 모습으로

천군만마의 대오 속에서 수레를 몰아 내달려 왔다.

왕도 죄 없는 신하를 함부로 죽여 보복을 받았는데

하물며 구구한 일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赤矢朱弓貌似神(적시주궁모사신)

千軍隊里騁飛輪(천군대리빙비륜)

君王枉殺環須報(군왕왈살환수보)

何況區區平等人(하황구구평등인)

- 제1회 끝 -

주석

①신기질(辛棄疾:1140-1207): 남송의 무장이자 문인으로 자(字)는 유안(幼安)이고 호(號)는 가헌(稼軒), 산동성(山東省) 역성(歷城) 출생이다. 서강월이라는 별호도 갖고 있다. 당시 금(金)나라의 지배 하에 있던 산동성에서 자랐으나, 금나라에 지배에 대한 저항군을 일으킨 경경(耿京)의 휘하로 들어가 항금전쟁에 참전했다가 경경이 죽자 남송 정권에 귀의하여 효종(孝宗)의 인정을 받았다. 그가 호남에서 편성한 비호군(飛虎軍)은 금군의 침입에 대한 장강을 방어하는 주력군이 되었다. 1182년 탄핵을 받아 직(職)을 잃었으나, 얼마 후 다시 기용되어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에 임명되고 추밀도승지(樞密都承旨)에 이르렀다. “천고강산(千古江山), 영웅무멱(英雄無覓)”(산하는 영원히 있으나, 영웅은 얻을 수 없다) 등 강개무량(慷慨無量)한 구절을 남긴 반면, 섬세한 정서를 노래한 작품도 적지 않다. 북송 말기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와 더불어 송나라 사(詞)의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녀의 호 이안(易安)과 함께 송조의 이안(二安)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②삼황(三皇): 역(易)을 제정한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인류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여와(女媧) 수인씨(燧人氏),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를 말하고, 오제(五帝): 헌원씨(軒轅氏) 황제(黃帝),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 도당씨(陶唐氏) 당요(唐堯), 유우씨(有虞氏) 우순(虞舜)을 말한다.

③영웅오패(英雄五覇):춘추오패(春秋五覇)를 가리킴. 즉 제환공(齊桓公), 송양공(宋襄公), 진문공(晉文公), 진목공(秦穆公), 초장왕(楚庄王)을 말함. 일설에는 진목공과 송양공을 빼고 오부차(吳夫差)와 월구천(越句踐)을 대신 넣기도 한다.

④북망산(北邙山): 현 하남성 낙양시(洛陽市) 부근에 있던 산 이름으로 고대의 공동묘지로 유명하다.

⑤체(彘): 현 산서성 곽현(霍縣) 부근으로 분수(汾水) 강안(江岸)의 고을이다.

⑥600년 간의 변란기: 국인폭동이 일어난 기원전841년부터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진제국을 창건한 기원전221년까지의 서주말과 춘추전국시대를 합한 기간을 말한다.

⑦공화(共和):려왕(厲王)이 폭정을 하자 주나라의 국인(國人)들이 반란을 일으켜 려왕은 체(彘)로 피신하자 주나라는 소공(召公)과 주공(周公)이 협력하여 왕을 세우지 않고 려왕(厲王)을 대신하여 통치했다. 이윽고 려왕이 체(彘)에서 죽자 태자 정(靜)을 왕위에 앉히고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태자정이 주선왕이다. 즉 려왕이 체로 피신한 기원전841년에서 그곳에서 죽은 기원전828년 동안에 해당하는14년간 소공과 주공이 주나라를 통치한 것을 공화(共和)라 한다. 사마천의 사기 중12제후 연표는 이해를 기점으로 시작되는데 즉 기원전841년 이전의 역사적 사실은 그 기록이 확실하지 않음으로 해서 주나라 역대 왕의 정확한 재위연대 조차도 확인이 안 되다가 기원전841년 이후의 모든 기록은 분명해 졌다. 일본에서 활약 중인 중국인 역사학자 진순신(陳舜臣)은 이 해를 중국사의 원년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서양사람들이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자기들의 국체Republic이라는 말을 한문으로 번역하는데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다가 왕 없이 통치를 한다는 뜻에서 사용했던 것이 공화국(共和國)의 유래가 되었다.

⑧단서(丹書) :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이 태어날 때 붉은 새가 붉은 서책을 입에 물고 산실의 창문으로 날라와 가져다준 책이다. 주문왕이 천명을 받아 은나라를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했음을 뜻한다. 단서수계(丹書受戒)라고 한다.

⑨강융(姜戎):강씨지융(姜氏之戎)을 말하며 융족(戎族)의 한 지파이다. 원주지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서쪽의 과주(瓜州)였으나 후에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여 주나라와 국경을 접했다. 사마천의 사기<주본기> 기사에 주선왕39년인 기원전789년 ‘ 선왕(宣王)이 천무(千畝)에서 싸웠으나, 왕의 군사들은 강씨지융에게 다시 패했다.(戰于千畝, 王師敗積于姜氏之戎)고 했다. 춘추때 섬진에 의해 쫓겨 그 수령인 오리(吾離)가 그 종족을 이끌고 당진의 남쪽인 지금의 산서성 남서쪽으로 이주하여 당진에 복속되었다.

⑩천무(千畝): 서주(西周) 시대 당진(唐晉)의 영지다. 현 산서성(山西省) 개휴시(介休市) 남쪽 천무원(千畝原)을 말한다.

⑪태원(太原):현 감숙성(甘肅省) 평량현(平凉縣) 서북 약80키로

⑫고원주(固原州): 명조(明朝) 때 감숙성 일대에 설치했던 행정구역의 하나로 치소(治所)는 현 섬서성 고성시(固城市)에 있었다.

⑬수주탄작(隨珠彈雀): 수나라의 귀중한 보물인 구슬을 던져 참새를 잡는다는 말로 쓸모없는 일에 귀중한 재화를 낭비한 다는 뜻이다. 수주(隨珠)는 수(隨)나라 군주가 강을 건너다 얻은 귀중한 구슬이다. 수나라는 춘추 때 호북성 청발수(淸發水) 강안(江岸)에 있는 제후국으로 춘추 초기 초나라에 합병되었다.

⑭사시관(司市官): 저자거리의 장사꾼을 감독하던 고대의 하급관리

⑮삼공(三公):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

육경(六卿):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에 따른 육부의 장을6경이라 했다.

총재(冢宰): 천관(天官)이라고 하며 일반행정을 총괄하고 내외의 출납과 관청(官廳)의 사무를 관장. 후에 태재(太宰)라 했다.

사도(司徒): 지관(地官)이라고 하며 백성의 교육, 농업, 공업, 상업등을 담당하고 지방 행정을 관리,

종백(宗伯): 춘관(春官)이라고 하며 제사와 외국에 보내는 사절 및 외국과의 회합 등을 관장하며 대종백(大宗伯)이라고도 함.

사마(司馬): 하관(夏官)이며 군사 및 국토사무를 관장,

사구(司寇): 추관(秋官)이며 법령, 소송 및 국제사무를 관장하고

사공(司空): 동관(冬官)이며 토목공사 및 그 지원업무를 관장하였다.

⑯형혹성(熒惑星): 화성(火星)의 다른 이름으로 재난과 병화의 징조를 알려주는 별이다.

⑰관(關): 주나라의 도성은 섬서성(陝西省)의 호경(鎬京)에 자리잡아 외적의 침입을 막을 때 서쪽은 대산관(大散關), 동쪽은 동관(潼關), 남쪽은 무관(武關)에 의지하였다. 따라서 관(關) 안이란 말은 주나라와 후에 섬진(陝秦)이 일어난 곳인 지금의 섬서성(陝西省)에 해당하는 지역인 관중(關中)을 가리키는 말이다.

⑱)육궁(六宮): 황후(皇后)와 후궁이 사는 여섯 채의 집이 있는 궁궐. 황후가 사는 정침(正寢) 한 채와 후궁이 사는 연침(燕寢) 다섯 채를 통틀어 육궁이라 했음

⑲선왕(先王):여기서 선왕(先王)이라 함은 선왕(宣王)의 부왕인 려왕(厲王)을 말함. 치세 중의 폭정으로 인하여 국인(國人)들이 반란을 일으켜 현 산서성(山西省) 곽현(霍縣) 부근인 체(彘)라는 곳으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려왕이 체 땅에서 죽자 당시 세자였던 정(靜)이 즉위하니 이가 주선왕이다.

⑳포성(褒城): 현 섬서성(陝西省) 한중시(漢中市)의 옛 지명이다. 삼국연의(三國演義) 후반부에서 촉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魏)의 사마중달(司馬仲達)과 치열하게 싸운 곳으로 촉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제갈공명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㉑)오미년(午未年):주유왕(周幽王)이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도망치다 잡혀 죽고 서주(西周) 왕조가 망한 해인 기원전771년을 말한다. 주선왕은 기원전781재위46년 만인 기원전782년에 죽고 그 아들인 유왕이 뒤를 이은 후10만에 망했다.

㉒)칠묘(七廟): 천자나 황제가 제사 지내는 일곱 명의 조상신. 주왕조 시대에는 문왕(文王), 무왕(武王)과 희씨(姬氏)의 시조 후직(后稷) 기(棄), 문왕의 고조부 아어(亞圉), 증조부 공숙조류(公叔祖類), 조부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 부(父) 계력(季歷)등 일곱 명의 신위(神位)를 모셨다.

㉓범(范):현 산동성(山東省) 양산(梁山) 부근

㉔)태아(太阿): 명검의 이름으로<월절서(越絶書)>에 오나라의 간장(干將)과 월나라의 구야자(歐冶子)가 만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당시에 저명한 대장장이였는데 초나라와 왕이 풍호자(風胡子)를 오월 두 나라에 가서 간장과 구야자를 불러오게 하여 용연(龍淵), 태아(太阿), 공포(工布)라는 이름의 명검3자루를 만들게 했다. 후에 이 명검을 알게 된 진(晉)나라와 정(鄭)나라가 구하고자 했지만 초왕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포위했다. 초왕이 태아를 허리에 차고 성루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하여 두 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쳤다. 태아도지(太阿倒持)라는 성어는 칼자루를 남에게 넘겨주어 그로 인해 오히려 자기가 해를 입는다는 성어다. 여기서는 천자가 차고 다니는 명검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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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文姜婚魯 射王中肩 (문강혼노 사왕중견) 문강은 노환공(魯桓公)에게 시집가고 정나라 장수 축담은 활을 쏘아 주천자의 어깨를 맞추었다.
양승국 04-05-11 1458
[일반] 제8회. 貪色弑逆(탐색시군) 攀高辭婚(반고사혼)

제8회 貪色弑君 利誘破戎(탈처시군 이유파융) 미색을 탐하여 그 군주를 시해하는 송나라의 태재 화독과 이(利)로써 유인하여 융병을 무찌른 정세
양승국 04-05-11 1589
[일반] 제7회. 暗箭傷人(암전상인), 獻諂弑君(헌첨시군)

제7회 暗箭傷人 獻諂弑君 (암전상인 헌첨시군) 수레를 다투던 영고숙을 쏘아 죽인 공손알과 아첨이 안 먹히자 오히려 노은공을 시해한 공자휘
양승국 04-05-11 1503
[일반] 제6회. 大義滅親(대의멸친), 假命伐宋(가명벌송)

제6회 大義滅親 假命伐宋(대의멸친 가명벌송) 아들을 죽여 대의멸친하는 위나라의 대부 석작과 천자의 칙령을 사칭하여 송나라를 정벌하는 정장공
양승국 04-05-11 1621
[일반] 제5회. 周鄭交質(주정교질), 助逆興兵(조역흥병)

제5회 周鄭交質 助逆興兵(주정교질 조역흥병)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하게 되는 천자와 역도를 도와 군사를 일으키는 노와 송 두 나라 1. 정위교
양승국 04-05-11 1631
[일반] 제4회. 郊天應夢(교천응몽) 掘地見母(굴지현모)

제4회 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꿈속의 계시로 교천제를 지내 천자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문공과 땅굴 속의 지하에서 모친과 상봉
양승국 04-05-11 1577
[일반] 제3회. 身亡國破(신망국파) 東遷洛邑(동천락읍)

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몸은 죽고 나라를 망하게 한 주유왕과 나라를 동쪽의 락읍으로 옮긴 주평왕 1. 신망
양승국 04-05-10 1435
[일반] 제2회. 贖罪獻美人(속죄헌미인), 烽火戱諸侯(봉화희제후)

제2회 贖罪獻美 烽火戲諸侯(속죄헌미 봉화희제후) 유왕에게 미녀를 바쳐 속죄한 포성의 성주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회롱한 주유왕 성
양승국 04-05-10 1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