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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08:458178 
제10회. 僭號稱王(참호칭왕), 被脇立庶(피협입서)
양승국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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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0회 僭號稱王 被脇立庶(참호칭왕 피협입서)

참람하게 왕호를 칭하는 초무왕 웅통과

송장공의 위협에 굴복하여 군주를 바꾸는 정나라의 제족

1. 음렵피주(淫獵被誅)

- 사냥에 탐닉하다 살해당한 진려공(陳厲公) 타(佗)

진환공(陳桓公)의 서자 공자 약(躍)은 채후의 여동생 소생으로 채후의 생질이다. 주환왕이 정나라를 정벌할 때 진나라는 대부 백원제(伯爰諸)를, 채나라는 채후의 동생 채계(蔡季)를 각각 장수로 삼아 군사를 보내 돕게 했다. 채계가 은밀히 백원제에게 진나라의 찬역한 일에 대해서 묻자 백원제가 말했다.

「새로 즉위한 진후는 군위를 강제로 탈취하여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냥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미복차림으로 항상 사냥터만 찾아다니며, 국정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나라에 변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찬역의 죄를 물어 토벌하지 않습니까?」

백원제가 한탄했다.

「토벌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힘이 미치지 않아 한탄하고 있을뿐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나라와 수갈에서의 싸움에서 패한 왕군과 삼국의 군사들이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채나라로 돌아가 백원제가 말한 내용을 채계로부터 전해들은 채후가 말했다.

「태자 면(免)이 이미 죽었다면 다음의 진나라의 군위는 마땅히 내 조카 약이 물려받아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타는 시역을 저지른 역적인데 어찌 오랫동안 부귀를 누리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채계가 채후의 말에 맞장구치며 말했다.

「타는 사냥을 즐겨하니 그가 사냥 나올 때를 기다려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하면 그를 잡아서 죽일 수 있습니다.」

채계의 생각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채후는 그에게 병거 백 승을 주어 몰래 진나라 경계로 보내, 진후 타가 사냥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기습하도록 했다. 이윽고 군사를 이끌고 채나라 경계에 당도한 채계는 사람을 먼저 진나라 도성 안으로 들여보내 진후의 소식을 탐지해 오도록 했다. 정탐하러 간 사람이 돌아와 보고했다.

「진후는 3일 전에 사냥 나가 이곳과 가까운 진나라 국경에 머물고 있습니다.」

채계가 듣고 말했다.

「나의 계책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겠다.」

채계가 그 즉시 병거를10대로 나눈 후 군사들을 모두 사냥꾼으로 변장시켜 한걸음에 달려가 진나라 경내로 잠입시켜, 진후 타의 사냥터를 포위하게 했다. 그때 마침 일단의 진나라 군사들에게 쫓겨 달아나던 사슴이 채나라 군사들이 잠복하고 있던 곳에서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채계가 병거를 몰고 진나라 군사들 보다 먼저 달려가 사슴을 가로챘다. 화가 난 진나라 병사들이 채계를 잡으러 달려들었다. 채계가 병거의 방향을 돌려 도망치자, 진나라 병사들도 병거를 나눠 타고 타고 채계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갑자기 앞에서 징소리가 진동하더니 십 대로 나뉘었던 사냥꾼 복장을 한 채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와, 진나라 병사들을 포위했다. 채계가 큰소리로 진나라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채후의 동생 채계라는 사람이다. 역적 타가 너희들의 군주를 시해했기 때문에, 내가 형님이신 채후의 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려고 이렇게 왔다. 역적 타만 죄를 물어 죽이고 그 밖의 사람은 불문에 붙이겠다.」

진나라 병사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채계에게 절을 올렸다. 채계가 진나라 병사들을 한 사람씩 땅에서 일으켜 위무하며 말했다.

「죽은 진후에게는 약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우리 채후의 생질이다. 오늘 그를 진군으로 삼고자 하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여러 군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군의 생각은 우리 진나라 백성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저희들이 앞장서서 역적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겠습니다.」

채계는 진나라 군사들의 도움을 받아 사냥 중이던 진후를 생포하여 참수했다. 진후의 목을 병거에 달아 효수(梟首)한 채계는 길을 재촉하여 진나라 도성을 향해 행군했다. 진군을 따라 사냥 나왔던 진나라 군사들이 채계를 위해 앞장서서 길을 열고, 역적을 토벌한 채나라가 새로운 군주를 세울 계획이라고 큰 소리로 외쳐 알렸다. 그래서 진나라 백성들은 놀라지 않고 집에서 뛰쳐나와 길을 메우고 환호했다. 진나라의 도성에 당도한 채계는 진타의 목을 진환공의 묘소에 바치고 공자약을 받들어 진후의 자리에 앉혔다. 이가 진려공(陳厲公)이다.

주환왕14년 기원전 706년의 일이어난 일이었다.

진타가 진환공을 살해하고 군위를 차지한 기간은 단지1년 6개월에 불과 했다. 잠깐 동안의 부귀를 위해서 천추에 악명을 남겼으니 어찌 어리석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것을 노래한 시가 있다.

군주를 시해한 목적은 영원한 부귀를 누리기 위함인데

몰래 사냥하다가 하루아침에 죽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만약에 이렇게 흉악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란신적자는 계속해서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겠는가?

弑君指望千年貴(시군지망천년귀)

淫獵誰知一旦誅(음렵수지일단주)

若是凶人无顯戮(양시융인무현륙)

亂臣賊子定紛如(란신적자정분여)

진나라는 진려공이 즉위한 이후부터는 채나라와 화목하게 지내게 되어 수년 동안 별다른 일이 없게 되었다.

2. 참호칭왕(僭號稱王)

- 참람하게 왕호를 칭하는 초나라 -

한편 남방에 초(楚)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성은 미(羋)씨였고 자작(子爵)에 봉해진 제후국이었다. 오제 중 한 사람인 전욱(顓頊)의 자손 중에 중려(重黎)라고 있었다. 고신씨(高辛氏)①를 위하여 화정(火正)②의 직을 수행한 그는 능히 천하를 빛내고 융화시킨 공을 세워 축융(祝融)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려가 죽자 그의 동생 오회(吳回)가 축융③의 뒤를 이어 육종(陸終)을 낳고 축융은 그 아들을 위해 귀방국(鬼方國)④ 군주의 딸을 맞이했다. 귀방의 여인이 회임을 한지 11년 만에 왼쪽 옆구리를 열고 아들 셋을 낳고 또다시 오른쪽 옆구리를 열고 아들 셋을 낳았다⑤. 계련(季連)은 육남 중 막내아들이다. 계련의 후손 죽웅(鬻熊)은 박학다식하고 덕망이 높아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모두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성을 웅(熊)으로 삼았다. 주나라 성왕(成王)은 문왕과 무왕을 위해 공을 세운 공신들의 후손을 뽑아 기용하고 제후에 봉할 때 죽웅의 증손자 웅역(熊繹)이 뽑혀 형만(荊蠻)에 봉해졌다. 웅역의 작위는 자작이었지만, 영지는 남작에 준하는 땅을 얻어 단양(丹陽)⑥에 도읍 했다. 웅역의 5대 손인 웅거(熊渠)는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사이에 살던 백성들로부터 민심을 얻게 되자, 감히 왕호를 참칭했다. 그러나 당시 포학한 주려왕(周厲王)에 의해 토벌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왕호를 계속 칭하지는 못했다. 다시 웅거의 8대손 웅의(熊儀)는 스스로를 약오(若敖)라 칭했으며, 또한 웅의의 손자 웅현(熊眴)은 분모(蚡冒)라 칭했다. 분모가 군위를 아들에게 전했으나, 그의 동생 웅통(熊通)이 조카를 죽이고 스스로 군위에 올랐다. 사나운 성격에 싸움을 좋아했던 웅통은 왕호를 사용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나 여전히 제후들이 주왕을 받들어 끊이지 않고 조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칭왕할 생각을 가슴에만 묻어두고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환왕 13년 기원전 707년, 주천자가 소집한 제후군과 함께 왕군을 일으켜 정나라 정벌전에 나섰다가 정나라 군사들과 수갈에서 싸워 패하고 자신은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천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웅통은 왕호를 칭하기로 결심했다. 웅통의 마음을 헤아린 영윤(令尹)⑦ 투백비(鬪伯比)가 진언했다.

「초나라가 칭왕을 하지 않은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오늘 다시 왕호를 사용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듣고 놀랄까 심히 우려됩니다. 필히 먼저 힘을 과시하여 제후들을 복종시킨 후에나 가능하겠습니다.」

웅통이 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

「한수 동쪽의 제후국 중에 수(隨)나라⑧가 국세가 제일 강하고 영토가 큽니다. 주군께서 군사를 끌고 나가 수나라 경계에 잠시 머물면서 사신을 보내 그곳에서 동맹을 맺자고 하시기 바랍니다. 수나라가 복종하면 한수와 회수사이의 제후국들은 모두 우리 초나라의 명을 받들게 될 것입니다.」

3. 강이시약 마비대방((强以示弱 麻痺對方)

- 강한 군사는 숨기고 약한 군사를 보여 상대방을 속이다. -

웅통이 투백비의 진언을 받아 들여 대군을 친히 인솔하고 하(瑕)⑨땅으로 나아가 주둔했다. 웅통은 대부 원장(薳章)을 수나라에 사자로 보내 동맹을 요청하게 했다. 당시 수나라에는 계량(季梁)이라는 어진 신하 한 사람과 소사(少師)라는 간신 한 사람이 있었다. 수후(隨侯)는 아첨배를 가까이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하고 있는 우매한 군주로 소사를 총애하고 있었다. 이윽고 초나라 사자가 당도하자 수후가 두 사람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계량이 먼저 아뢰었다.

「초나라는 강하고 수나라는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나라가 오늘 우리에게 동맹을 청한 것은 그 속마음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잠시 겉으로는 응하는 체 하고 안으로는 방어할 준비를 갖춘다면 그다지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자 소사가 나서서 말했다.

「청컨대 신이 동맹을 맺기 위한 사절로 초나라 진영에 가서 그 허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소사의 청을 허락한 수후는 그 즉시 그를 사자로 삼아 하땅으로 보냈다. 투백비는 소사가 사자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웅통에게 아뢰었다.

「신이 듣기에 소사는 천박하고 소견이 좁은 위인으로써 아첨이나 하여 총애를 받고 있는 자입니다. 이번에 사절로 임명되어 이곳에 오는 목적은 우리의 허실을 정탐하기 위해서입니다. 마땅히 우리의 예봉을 숨기고 노약함을 보여주면 소사라는 위인은 우리를 가볍게 보고, 필시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태만해 지고 우리는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대부 웅솔비(熊率比)가 말했다.

「계량이란 현능한 신하가 수나라에 있으니, 그렇게 해보았자 일을 성사시키는 데는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투백비가 대답했다.

「오늘 당장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고 먼 훗날을 보고 도모하는 일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나라 진영에 들어와서 좌우를 살펴보니, 무기는 녹슬고 병사들은 늙었거나 허약한 사람뿐이어서, 그런 무기와 병사들을 가지고는 감히 수나라에 싸움을 걸 수 없겠다고 생각한 소사는 얼굴에 거만한 기색을 띄우고 웅통을 향해 말했다.

「우리 두 나라는 각기 자기 영토를 지켜왔으며 또한 우리 수나라는 초나라를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귀국은 우리 수나라에 동맹을 요청하십니까?」

웅통이 미리 생각해둔 말로 대답했다.

「우리 고장은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소국들이 합심하여 우리나라의 변경을 침입할까 진실로 걱정되어 귀국과 형제의 맹약을 맺어 입술과 이 사이의 관계가 되고자할 뿐이오!」

소사가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한수 동쪽의 모든 소국들은 우리 수나라의 호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웅통은 곧바로 소사와 맹약을 맺었다. 소사가 돌아가자 웅통은 회군했다. 소사가 돌아와서 수후를 보고 초나라 군사들의 허약한 모습을 설명하면서 말했다.

「다행히 맹약을 맺어서 초군이 즉각 회군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한 떼의 군사를 주시어 초군의 뒤를 쫓아 추격하게 하신다면, 설사 초나라 군대의 전부를 포로로 잡아 올 수는 없겠지만, 그 절반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는 앞으로 감히 우리 수나라를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 수 없을 것입니다.」

수후가 소사의 말을 따라서 군사를 내어 초나라 군사들의 뒤를 추격하게 하려고 하자, 계량이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와 간했다.

「절대 불가합니다. 초나라는 약오와 분모 이래 여러 대를 거치면서 정치를 쇄신하고 무력을 길러 강수와 한수 사이의 땅을 병합해 왔습니다. 웅통은 자기의 조카를 죽이고 스스로 군주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성격이 흉포하기가 그지없는 위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초나라가 우리에게 동맹을 청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갖고 노약자만을 우리 사자에게 보인 이유는 우리를 유인할 목적에서입니다. 만약 우리가 군사를 내어 추격한다면 필시 그들의 계략에 빠져 나라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수후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점을 쳐보게 하자, 점괘가 불길로 나왔다. 수후는 초군을 쫓는 추격군을 내지 않았다. 수후가 계량의 간하는 말을 듣고 추격군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초왕은 투백비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투백비가 말했다.

「제후들을 심록(沈鹿)⑩에 모이게 하십시오. 만약 수나라가 사절을 보내 참석한다면 우리에게 진심으로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이 사절을 보내오지 않는다면 수나라는 우리와 이미 맺은 맹약을 위반하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빌미로 토벌하면 됩니다.」

웅통은 투백비의 말을 따라, 사자들을 한수 동쪽의 군소 제후국들에게 각각 보내어 여름철 칠월 초하루 날 일제히 심록 땅에 모이게 했다. 파(巴), 용(庸), 복(濮), 등(鄧), 우(鄾), 교(絞), 나(羅), 운(鄖), 이(貳), 진(軫), 신(申), 강(江) 등 강회지간(江淮之間)의 군소 제후국⑪들은 모두 사절을 보내 웅통의 명에 응했으나, 오로지 수와 황(黃) 두 나라만은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웅통이 원장과 굴하(屈瑕)를 황나라와 수나라에 각각 사자로 보내어 나무라게 했다. 황나라 군주는 답례사자를 보내 죄가 있음을 인정했으나 수후는 복종하지 않았다. 웅통이 수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켜 한수와 회수사이의 땅으로 나아가 진채를 세우고 주둔했다. 수후가 군신들을 모이게 하여 초나라 군사들의 공격을 물리치는 대책을 강구했다. 계량이 아뢰었다.

「제후들을 규합하여 대군을 일으켜 우리나라 경계에 임하고 있는 초나라 군사들은 그 예봉이 매우 강성하여 가볍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겸손한 말로 화의를 요청하는 우리의 뜻을 초나라가 받아들인다면 다시 옛날의 맹약을 지키는 일만으로도 충분하겠으나 만일 초나라가 거절한다면 모든 허물은 초나라에 있게 됩니다. 또한 초나라가 우리의 겸손한 화의 신청을 거짓으로 받아들인다면, 초나라 군사들의 마음은 해이해지고, 반대로 우리 군사들은 우리의 화의 신청을 거절하는 초나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것입니다. 우리 군사들은 분노를 느끼고 초나라 군사들은 마음이 해이해지니, 일전을 치르게 된다 해도, 어쩌면 요행히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사가 곁에 있다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으로 나와 말했다.

「그대는 어찌 그리 겁이 많습니까? 먼 길을 행군하여 피로에 지쳐 있는 초군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행위를 범했다고 할 수 있소. 만약 빨리 공격하지 않으면 또다시 지난번처럼 도망가 숨어 버리게 되어 그때는 애석해 해도 소용없을 것이오.」

소사의 말에 혹한 수후는 곧바로 그를 융우(戎右)로 계량을 어자(御者)로 삼아⑪ 친히 군사들을 인솔하고 초군을 공격하기 위해 출동하여 청림산(靑林山) 밑에 다다랐다. 전차를 몰고 초나라 진지를 살펴본 계량이 수후에게 말했다.

「초나라 군사는 좌우2군으로 나누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초나라의 습속은 왼쪽을 우선합니다. 따라서 초나라 군주는 틀림없이 정예병 위주로 편성된 좌군의 진영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원컨대 초나라의 우군을 공격하여 파한다면 좌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소사가 나서서 말했다.

「당당한 우리 수나라가 상대방의 허약한 군사만을 골라 공격한다면 초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수후가 소사의 말을 쫓아 초나라의 좌군부터 공격했다. 초나라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채의 문을 열고 수나라 군사를 진영 안으로 끌어 드렸다. 수후가 초나라 중군 진영을 향하여 쇄도해 들어가자, 사면에 매복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포위했다. 수후가 거느린 수나라 군사들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다. 초나라 병사들은 모두가 용맹무쌍한 정예병들이었다. 소사와 초나라 장수 투단(鬪丹)이 마주쳐 교합을 시작했으나 불과 십 합도 안 되어 소사의 목은 잘려 마차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계량이 수후를 죽을힘을 다하여 호위하였으나, 흉맹한 초군을 물리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융거를 버리고 옷을 미복으로 바꿔 입은 수후는 일반 군졸 틈에 숨었다. 그 사이 계량이 한 가닥의 혈로를 간신히 뚫어 겹겹이 에워싼 초군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자기 진영에 되돌아 온 수후가 군사들을 점고해본 결과 출전한 병사 중 십에 삼사가 돌아오지 않았다. 수후가 계량을 보고 말했다.

「내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이 지경으로 되고 말았다. 소사는 어디에 있는가?」

소사가 초나라의 투단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죽는 모습을 본 군졸이 있어 수후에게 아뢰었다. 소사가 전투 중에 죽었다는 보고에 수후는 탄식해 마지않았다. 계량이 수후를 보고 말했다.

「소사라는 자는 나라를 그르친 사람인데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애석해 하십니까? 오늘의 난국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속히 초나라에 화의를 청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라의 일은 그대의 말만을 듣고 행하겠다.」

계량이 초나라 진영에 화의를 청하고자 들어갔다. 웅통이 대노하여 말했다.

「너의 군주인 수후는 우리와 맺은 맹약을 배반하고 심록에서의 회합에 참석하기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사를 동원하여 항거했다. 싸움에 패하고 난 오늘에서야 화의를 청하니 이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계량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에 간신 소사가 우리 주군의 총애를 믿고 강권하여 출전한 것이지 사실은 우리 주군의 본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소사가 이미 죽고 우리의 주군이 이미 자기의 죄를 깨달아 신하인 소신을 전하 앞에 보내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게 했습니다. 군주께서 만약 너그러이 우리 수나라를 용서해 주신다면 마땅히 한수 동쪽에 있는 제후국의 군주들을 모두 이끌고 조석으로 초나라 조정에 봉사하여 영원히 초나라를 모시게끔 하겠습니다. 오로지 군주께서 허락을 해주시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웅통이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투백비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하늘의 뜻이 아직 수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망령된 신하 소사를 죽게 했습니다. 수나라는 아직 멸할 수 없겠습니다. 만약 화의를 허락한다면 한수 동쪽에 있는 제후국들을 이끌고 가서, 초나라 공적을 주나라에 고하게 하여 왕호를 얻어오게끔 하고, 그 왕호를 이용하여 남쪽의 만이들을 진압하여 복종하게 한다면 초나라에게 해로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웅통이 말했다.

「좋은 계책이오.」

웅통이 그 즉시 원장을 계량에게 보내 은밀히 그 뜻을 전하게 했다. 원장이 계량을 찾아와 웅통의 뜻을 전하며 말했다.

「우리 군주께서는 한수와 강수사이의 넓은 땅을 차지하여 왕호를 사용하시고자 하는 뜻을 오랫동안 품어 왔습니다. 왕을 칭한 연후에 남쪽의 만이를 진압하고 복종시켜 왕화를 넓히려고 하십니다. 상국이 만이의 군장들을 끌고 주왕실에 가서 초나라가 왕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청하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우리 주군의 광영일뿐 아니라 또한 상국의 공로라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군주께서는 군사를 물리쳐 잠시 쉬시면서 기다리겠다고 하십니다.」

계량이 돌아와 초왕의 뜻을 수후에게 아뢰었다. 감히 초나라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수후는 그 즉시 한수 동쪽 지방의 제후들의 뜻이라고 하면서, 초나라의 공적을 적은 표문을 지니고 주왕실에 들어가 초나라가 왕호를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만이들을 토벌하게끔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주환왕은 허가하지 않았다. 수후가 돌아와 웅통에게 주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알리자, 웅통이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의 조상이신 죽웅께서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 두 임금을 보좌하고 인도한 공로가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리 떨어진 형산(荊山)⑫과 같은 보잘것없는 땅에 봉했다. 이제 와서 땅은 개간되어 백성들이 많이 살게 되었지만 남쪽의 오랑캐들은 아직도 신하로서 복종을 하지 않고 있어 우리가 대신 왕화를 행하려 하는데, 주왕은 우리의 작위를 올려달라는 청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은 곧 무상(無賞)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환왕 자신은 정나라 놈들한테 어깨에 활을 맞고서도 힘이 없어 토벌할 수가 없으니 이것은 무벌(無罰)이라 할 수 있다. 주나라가 무상무벌(無賞無罰)하는데 어찌하여 왕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왕호는 우리 선조 웅거님이 스스로 칭했다. 나 역시 옛날에 사용했던 왕호를 다시 쓰려고 할 뿐이니 어찌 주나라에 구태여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웅퉁은 곧바로 초나라의 백성들에게 자기를 무왕(武王)이라고 부르게 했다. 이어서 수나라와 맹약을 맺은 초무왕은 군사를 이끌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후 한수 동쪽의 여러 나라들은 각기 사자를 보내어 웅통에게 하례를 올렸다. 주나라 환왕 역시 초나라의 행위에 대해서 분노했으나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주나라 왕실을 더욱더 쇠약해 졌다. 그런 반면에 초나라는 더욱 꺼릴 것이 없이 방자하게 행동했다. 웅통이 죽고 그의 아들 웅자(熊貲)가 뒤를 이었다. 웅자는 도읍을 단양(丹陽)에서 영(郢)⑬으로 옮기고 남만의 모든 오랑캐를 복속 시킨 후에 서둘러 중원의 여러 나라를 침범하려 했다. 만일 그 뒤로 초나라를 소릉(召陵)에서의 회맹⑭에서 굴복시키지 못하고 다시 성복(城濮)의 싸움⑮에서 초군을 이기지 못했다면 중원의 제후국들은 초나라의 사나운 기세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4. 포사오국(怖死誤國)

- 죽음을 두려워하여 나라를 그르친 제족(祭足) -

한편 정나라에서는 정장공이 주환왕의 군사를 얻은 승리는 공자원의 공로라고 생각하고 큰 성읍인 역읍(櫟邑)⑯에 봉하고 부용(附庸)으로 삼았다. 여러 대부들에게도 각각 해당하는 상을 내렸는데 유독 축담의 공로만은 인정하지 않고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다. 축담이 와서 장공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장공이 설명했다.

「왕을 활로 쏘았다는 이유로 상을 내리면 사람들이 앞으로 나를 무엇이라고 일컫겠는가?」

축담이 물러 나왔으나 분노에 못 이겨 한을 품고 살다가 얼마 가지 않아 등창이 나서 죽었다. 장공이 그 가족들에게 재물을 내리며 장례를 후하게 지내 주라고 명했다.

주나라 환왕19년 기원전 701년, 정장공이 병에 걸려 죽음이 임박하자 제족을 머리맡에 불러 말했다.

「나는 아들을 열한 명을 두었소. 그 중 세자홀 말고도 자돌(子突), 자미(子亹), 자의(子儀)는 모두가 왕자의 풍모가 있소. 특히 자돌은 그 중에서 재주나, 지혜, 복록 등 모두 특출하여, 나머지 세 공자(公子)의 위에 있다고 하겠소. 또한 자돌을 뺀 나머지 세 공자는 모두 자기들 명대로 살다가 죽을 상이 아니오. 나의 뒤를 자돌에게 물려주려 하는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세자 홀(忽)은 원비의 소생이며 적장자입니다. 오랫동안 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번 전쟁터를 다니며 큰 공을 세워 정나라 사대부들의 신망을 받고 있습니다. 적자를 폐하고 서출을 세우는 일을 신은 감히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자돌은 남의 밑에서 안주할 사람이 아니니 만약 홀을 세우려거든 돌을 자기의 외가에 보내야 하오!」

「아들을 잘 아는 자는 그 아비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주군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장공이 한탄했다.

「정나라는 내가 죽고 나면 어지럽게 되겠구나!」

장공은 그 즉시 명을 내려 자돌을 송나라의 외가로 보내 그곳에서 살게 했다. 그해 5월 장공이 죽고 세자 홀이 즉위했다. 이가 정소공(鄭昭公)이다. 정나라는 여러 대부들을 각 나라에 사절로 보내 세자홀이 정백의 자리에 즉위했음을 알렸다. 정나라 국내 사정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한 제족은 자돌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볼 겸해서 사절의 신분으로 송나라에 들어갔다.

한편 자돌의 모친은 송나라의 대부 옹씨(雍氏)의 딸로 이름은 옹길(雍姞)이다. 대부분 송나라에 출사하고 있었던 옹씨 종족들은 송장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정나라에서 쫓겨나서 송나라에 살게 된 자돌은 그의 모친 옹길을 그리워하여 정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옹씨들과 상의했다. 옹대부가 송장공에게 자돌의 이야기를 전하자, 장공은 계책을 마련해 보겠다고 허락했다. 그때 마침 제족 일행이 송나라에 친선사절의 임무를 띠고 당도했다. 송장공이 희색이 되어 쾌재를 불렀다.

「자돌이 정나라에 들어가 정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이 여부는 지금 당도한 제족에게 달려있음이라!」

송장공은 그 즉시 장사 남궁장만(南宮長万)에게 명하여 무장한 장사들을 조정의 낭하에 매복시킨 후에 제족의 일행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제족이 입조하여 친선사절로서의 예를 올리기를 다하자 무사들이 뛰어 나와서 제족을 붙잡았다. 제족이 송장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웃나라와의 우호를 맺기 위해 온 사신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십니까?」

「잠시 후 군부(軍府)에 가서 논하도록 합시다.」

그날로 제족은 송나라 군사들에게 붙잡혀 군부의 감옥에 감금되고, 무사들이 주위를 물샐 틈 없이 지켰다. 제족은 의구심에 좌불안석이 되어 안절부절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송나라 상국 화독이 술병을 들고 친히 군부의 감옥에 찾아와 제족을 진정시키며 대접했다. 제족이 화독에게 자기를 잡아 군부의 감옥에 가둔 행위에 대해 항의했다.

「우리 정나라 군주께서 상국과 수호를 맺기 위해 나로 하여금 사절로 삼아 방문하게 했소.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잡혀와 갇혀야 할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여 노여움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오? 나를 붙잡아 가둔 이유는 우리 과군께서 상국에 무례를 범했기 때문이오? 아니면 내가 사자의 임무를 잘못 수행하여 실수를 했기 때문이오?」

화독이 대답했다.

「모두가 아니오. 귀국의 공자 자돌이 우리 송나라 출신의 옹씨 소생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소. 지금 이곳에 망명하여 숨어사는 자돌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는 우리 주공께서는 유약한 자홀이 정나라 군주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대감께서 만약 정백을 폐하고 자돌을 세우겠다고 동의만 해준다면 우리 주공께서는 대대로 대감의 집안과 혼인으로 관계를 맺어 그대 집안이 영원히 부귀를 누릴 수 있도록 할 예정이시오. 그러나 대감께서는 우리 주공의 말씀을 받아들여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소.」

「과군은 선군의 명에 따라 정백의 자리에 올랐소. 그런데 신하된 자가 나서서 그 군주를 쫓아낸다면 제후들이 장차 나의 죄를 묻기 위해 토벌군을 일으킬 것이오.」

「정나라 선군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옹길은 즉 자돌의 친모로써 그 자식이 귀하게 되는 일은 세상의 정해진 이치요. 어찌 불가하다고 하시오? 또한 어찌 시역의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만 할 수 있겠소? 천하의 제후들이나 백성들은 오로지 힘이 있는 지의 여부만 살필 뿐이니, 누가 감히 죄를 주겠다고 덤벼들겠소?」

그리고는 화독이 제족의 곁으로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주공께서도 역시 선군을 폐한 후에 즉위했으나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제후들을 잘 무마했소. 그대가 만약 우리가 청한 바를 행한다면 우리 주공께서 말썽이 나지 않도록 감당해 주실 것이오.」

제족이 눈썹을 찌푸리고 대답하지 않자 화독이 말했다.

「그대가 우리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주공께서는 남궁장만을 장수로 삼아 병거 6백 승을 내어, 정나라를 정벌하고 자돌을 귀국시켜 정백의 자리에 즉위시킬 생각이오. 군사가 출진하는 날 그대의 목을 베어 군중에 제사를 지낼 예정이니, 오늘 이후로는 그대를 보지 못할 것이오.」

화독의 협박에 마음이 무너진 제족은 크게 두려워하여 송나라의 요청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화독이 제족에게 하늘에 맹세를 하도록 요구했다. 제족은 맹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돌을 즉위시키지 못하면 천지신명이 용서하지 않으리라!』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제족을 비난했다.

장부는 총애나 욕됨을 받아도 놀라면 안 되거늘

재상의 신분으로 위협에 굴하여 능멸을 감수했는가?

만약에 충신의 길을 걸어 목숨을 서슴없이 버렸다면

송나라 사람들은 감히 정나라를 깔보지 않았으리라.

丈夫寵辱不能驚(장부총욕불능경)

國相如何受脇陵(국상여하수협능)

若是忠臣拚一死(약시충신변일사)

宋人未必敢相輕(소인미필감상경)

화독이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곧바로 송장공에게 달려가 아뢰었다.

「제족이 이미 군명을 받들기로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날 송공이 사람을 시켜 자돌을 밀실로 불러들여서 말했다.

「과인은 옹대부와 언약을 맺었는데 공자를 정나라에 귀국시켜 정백의 자리에 올리기로 했소. 오늘 정나라에서 새로운 군주가 섰음을 알리는 사자가 도착하였는데 밀서를 한 장 가지고 와서 과인에게 바쳤소. 그 밀서에는 공자를 죽여준다면 정나라가 3개의 성을 떼어주겠다고 했소. 과인이 허락하지 않고 이렇게 은밀히 공자에게 알려 주는 이유는 공자의 부군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요.」

자돌이 일어나 절을 하면서 말했다.

「이 돌이 불행하여 상국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돌의 죽고 사는 문제는 모두가 전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 돌을 가엽게 여겨 정나라로 들여보내, 선조들의 종묘를 배알할 수 있게끔 해 주신다면, 전하의 분부에 따라 어찌 성 3개만을 바치겠습니까?」

송장공이 얼굴에 덕색을 띠우며 말했다.

「내가 제족을 군부에 감금해 놓은 목적은 오로지 공자를 위해서인데, 이번 대사는 제족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오. 내가 장차 제족을 불러 맹세하도록 하겠소.」

송장공이 그 즉시 제족을 불러 자돌과 상면시키고 이어서 옹대부도 불러 장차 홀을 폐하고 돌을 세우기 위한 계획을 설명했다. 세 사람이 삽혈의 의식을 행하고 하늘에 맹세했다. 송장공은 자신은 그들의 맹세의식을 주재하고, 상국 화독은 자돌을 정백의 자리에 올리기 위한 계책을 세우기로 했다. 송장공은 자돌에게 정백의 자리에 올려주는 댓가로 정나라 3개의 성 외에 벽옥 백 쌍, 황금 만일(萬鎰)⑰, 그리고 매년 양식 삼만 종(鍾)⑱을 바쳐 자기가 베푼 은혜에 대해 보답하라고 요구했다. 제족이 문서로 만들어 서명하여 증거로 삼게 했다. 자돌이 나라를 얻는다는 급한 생각에서 주저하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 또한 자돌은 정나라의 정사는 모두 제족에게 위임한다는 송장공의 요청을 허락했다. 또 제족의 딸을 옹대부의 아들 옹규(雍糾)와 혼인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옹규를 정나라로 데려가 그의 딸과 혼례를 치르게 한 다음, 대부로 임명하여 정나라 조정에 출사시키도록 했다. 옹규는 송장공이 제족을 감시하기 위해 보내는 감시역에 해당했다. 제족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5. 피협입서(被脅立庶)

- 송나라의 협박에 굴하여 서출을 군주로 세우는 정나라 상경 제족.-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낸 제족은 미복 차림에 상인으로 분장한 자돌과 옹규를 수레에 같이 태워 함께 정나라로 길을 떠났다. 제족의 일행이 정나라에 도착한 때는 9월 초하루였다. 자돌과 옹규를 자기 집에 숨긴 제족은 노독으로 병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여러 대부들이 모여서 제족의 집에 문안 인사차 들렸다. 장막 뒤에다 자객 백여 명을 숨겨놓은 제족은 여러 대부들을 내실로 불러 상면했다. 몸이 아프다는 제족이 얼굴색이 충만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좌정하고 있는 모습을 본 대부들은 크게 놀라 말했다.

「상국께서는 무양하신데, 어찌하여 조정에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제족이 대답했다.

「병이 난 것은 이 제족이 아니라 우리 정나라입니다. 돌아가신 선군께서 자돌을 총애하여 송나라 군후에게 그 뒤를 부탁했습니다. 지금 송공은 대장 남궁장만에게 병거 600승을 주어 자돌을 도와 정나라 군위에 앉히려고 합니다. 선군께서 돌아가신 이래 정나라는 미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정나라 대부들이 눈치를 보며 서로 쳐다보고 감히 면대하여 대답을 못했다. 제족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송나라 군사를 물리칠 방법은 오로지 지금의 주공을 폐하고, 자돌을 새로 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자돌이 이미 가까운 데에 있으니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원컨대 한마디로 가부 간을 말해 주셨으면 합니다.」

옛날 소공이 세자 시절 자기를 상경으로 임명하려고 했던 장공에게 간하여 자기가 그 자리에 앉지 못한 일을 두고 오랫동안 불만을 품고 있었던 고거미는 여러 중신들 대열에서 가장 먼저 앞으로 나와 허리의 칼을 어루만지며 제족을 향해 말했다.

「상경께서 말씀을 이렇게 하시니 사직의 복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신군을 뵙기를 원합니다.」

고거미의 말을 들은 여러 대부들은 먼저 제족과 선약을 하여 짜고 벌리는 일이라고 의심했다. 또한 벽장 뒤에는 수많은 자객들이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운 마음이 되어 모두가 한 목소리로 “ 예, 예 ”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제족은 숨어 있던 자돌을 불러 상석에 앉게 했다. 제족과 고거미가 먼저 엎드려 절을 올렸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체념한 여러 대부들도 모두가 일제히 땅에 엎드려 자돌에게 절을 올렸다. 먼저 표장을 준비하여 대부들에게 서명하게 한 제족은 사람을 시켜 정소공에게 바치도록 했다.

「송나라가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자돌을 군위에 올리려 하고 있어 신 등은 더 이상 주군을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제족은 밀서를 한 통 써서 소공에게 몰래 마쳤다.

「주군이 군위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실은 선군의 뜻이 아니라 바로 신이 주장에 의해서였습니다. 지난 번에 제가 사절로 송나라에 가자, 송군이 신을 감옥에 가두고 자돌을 군위에 세우겠다는 맹세를 강제로 시켰습니다. 목숨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주군께 이로운 점이 없다고 생각하여 신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도성 가까이 와 있는 송나라의 병사들의 강대한 세력을 두려워한 군신들이 서로 모여 송나라 군사들을 영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공께서 형세에 따라 잠시 피하고 계시면, 기회를 보아 신 등이 다시 모셔 오도록 도모하겠습니다.」

또한 밀서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맹세를 했다.

「이 말을 어기는 자는 사람의 자식이 아닐지어다!」

대부들이 연서한 표장과 제족의 밀서를 받아 읽어본 정소공은 자신은 이미 고립무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규비(嬀妃)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고한 후 위(衛)나라로 몸을 피했다.

그해9월 기해(己亥) 일에 제족이 공자돌을 받들어 정백으로 세웠다. 이가 정려공(鄭厲公)이다. 이후로는 정나라의 대소 정사는 모두가 제족이 전결하게 되었다. 제족이 그의 딸을 옹규에게 시집보내고 옹희(雍姬)라 불렀다. 제족은 려공의 허락을 받아 옹규를 대부의 직에 임명했다. 송나라의 옹대부는 원래 정려공의 외조부고 그 아들 옹규는 려공의 외삼촌이다. 송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옹대부에 의지하여 이미 친숙한 사이가 된 려공은 외삼촌인 옹규를 믿고 총애하여 제족 다음에 두었다. 려공이 즉위한 이래 사대부들이 모두 복종하였으나 오로지 자미(子亹)와 자의(子儀) 두 사람만이 마음속에 불평을 품고 있다가 려공이 자기들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자미는 채나라로, 자의는 진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송장공은 자돌이 무사히 정백의 자리에 즉위하자, 사람을 보내 치하를 하면서 문서를 보내 왔다. 이 문서로 해서 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나 결국은 국제전으로 비화하게 되었다.

< 제 11회로 계속 >

주석

①고신씨(高辛氏)/ 오제(五帝) 중 제곡(帝嚳)을 말한다.

② 화정(火正)/ 중국 고대의 요순시대에 오행을 관장하는 벼슬 중 불을 관장했다.

③ 축융(祝融)/ 원래 이름은 중려(重黎)로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를 위해 화정(火正)의 벼슬을 맡아 큰공을 세웠다. 그로 인하여 천하가 밝게 빛나게 되었다. 제곡이 명하여 중려를 세상을 밝게 빛냈다는 뜻의 축융(祝融)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공공씨(共工氏)가 란을 일으키자 제곡(帝嚳)이 중려에게 명하여 공공의 무리들을 잡아죽이게 하였으나 모두 소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제곡이 경인(庚寅) 일에 중려를 죽이고 그 후임에 중려의 동생 오회(吳回)를 세워 화정의 벼슬을 주었다. 오회가 축융이 되었다. (초세가)

④ 귀방국(鬼方國)/ 은나라와 서주초기에 지금의 청해성(靑海省) 일대에 있었던 이민족 국가

⑤귀방국왕의 딸이 낳은 여섯 아들의 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次順

封地

爵位

特 記 事 項

長男

衛墟

夏伯

은나라의 탕(湯)임금이 걸(桀)을 정벌할 때 같이 멸했다.

次男

參胡

韓墟

주나라 때 호국(胡國)으로 되었다가 후에 초나라에 의해 병합되었다.

三男

彭祖

韓墟

商伯

상나라 말에 망했다.

四男

會人

鄭墟

五男

邾墟

六男

季連

荊蠻子爵

후손들 중 죽웅(鬻熊)이라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초나라를 세운 웅(熊)씨들의 시조다

⑥단양(丹陽)/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다음의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1)현 호북성(湖北省) 자귀(秭歸)-의창(宜昌) 서쪽 약 50키로의 사천성과의 경계에 있는 장강(長江) 강안(江岸)이라는 설과 .2)지금의 하남성 석천현(析川縣) 부근으로 단수(丹水) 이동과 석수(析水) 이서 사이의 땅이라는 설이다.

⑦영윤(令尹)/ 춘추 때 초나라의 관직으로 백관을 통괄하는 재상(宰相)에 해당한다.

⑧수(隨)/현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漢市)로 흘러 한수와 같이 장강(長江)과 합쳐지는 운수(溳水-淸發水)의 상류에 있었던 희성(姬姓) 제후국(諸侯國)이다.현 수주시(隨州市) 부근임. 후에 춘추 말엽 초나라에 합병되었다.

⑨하(瑕)/ 춘추 때 지금이 하남성 초작시(焦作市) 부근에 존재했던 국력이 극히 미력했던 군소제후국이었으로 초나라와가 청발수 강안의 수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주둔했다는 지명과는 거리가 멀다.

⑩심록(沈鹿)/ 현 호북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 동쪽 60km 지점

⑪융우(戎右)와 어자(御者)/ 고대의 전투용 전차에는 3인이 탑승하게 되었는데 병거의 중앙에는 말을 모는 마부 즉 어자(御者)가 타고 왼쪽에는 주장(主將)이 그리고 어자의 오른쪽에는 실제적인 전투원인 차우(車右)가 탔다. 융거(戎車)라 함은 군주가 타는 전차를 말하며 융거에 타는 차우와 어자를 융우(戎右)와 융어(戎御)라 한다.

⑫형산(荊山)/ 현 한수(漢水)와 강수(江水) 사이에 뻗어 있는 산맥 이름이다.

⑬ 영(郢)/ 지금의 호북성 강릉시(江陵市)로 삼국연의에 나오는 형주(荊州)의 치소(治所)가 있었다.

⑭소릉지맹(召陵之盟)/ 기원전 657년 제환공(齊桓公)은 일곱 제후국들의 군사를 규합하여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출정하여 현 하남성 탑하시(漯河市) 부근에 있었던 소릉(召陵)에 집결하여 주둔했다. 제환공은 초나라가 주왕실에 조공(朝貢)하는 조건으로 초성왕(楚成王)과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한 후 철군했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24회 참조

⑮성복대전(城濮大戰)/ 기원전 636년에 진문공(晉文公)이 거느리는 당진(唐晉)의 전차 700승과 보군 37,000명이 초나라 영윤 성득신(成得臣)이 지휘하는 초나라 군사를 위주로 결성된 진(陳), 채(蔡), 정(鄭), 허(許) 다섯 나라 연합군 11만명의 보군(步軍)을 성복(城濮)에서 대파하여 초나라의 중원 진출을 저지시킨 싸움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40회 참조-성복(城濮)은 현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동남 40키로 부근임

⑯역읍(櫟邑)/ 지금의 하남성 우현(禹縣) 일대다. 우임금이 하나라를 세우고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전국 때 한나라 령인 양책(陽翟)으로 여불위(呂不韋)는 이곳 출신의 상인이었다.

⑰일(鎰)/ 고대 중국의 중량의 단위로서 20량 혹은 24량에 해당 한다. 1량은 16 그람으로 鎰은 300-400그람이다. 황금 만일은 지금의 단위로는 대략 3-4천 키로에 해당한다.

⑱종(鍾)/ 일종(一鍾)은 십곡(十斛)이고 일곡(一斛)은 십두(斗)다.. 즉 3만 종은 30만 섬에 해당한다.

※미주) 열국연의(列國演義)의 진(陳)나라 진완(陳完)에 관련된 내용이 정사(正史)인 사기(史記)와 좌씨전(左氏傳) 사이에 차이가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연의(演義)

진환공(陳桓公)의 이모제(異母弟)인 진타(陳佗)가 환공과 세자 면(免)을 죽이고 자립하여 진군(陳君)의 자리에 앉았다가, 채후(蔡侯)가 그의 동생 채계(蔡季)를 시켜 사냥 중인 진타를 죽이고 그의 조카인 약(躍)을 세웠다. 약이 진려공(陳厲公)이다.

사기(史記)와 좌씨전(左氏傳)

려공은 채나라 여인의 소생인데 문공(文公)이 죽자 진타(陳他)의 형 진포(陳鮑)가 즉위하여 환공(桓公)이라 했다. 진환공이 병이 들어 누워 있을 때, 채나라가 환공과 세자 진면(陳免)을 죽이고 환공의 이모제(異母弟)인 진타(陳他)를 대신 세웠다. 이가 진려공(陳厲公)이다. 려공이 채나라의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으나 려공의 부인은 시집오기 전에 이미 채나라에서 정을 통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채나라에 들렸다. 려공도 역시 채 부인을 따라 채나라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환공의 아들 진림(陳林)은 려공이 채나라의 도움을 얻어 자기의 부친과 형을 죽인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다가 채나라 사람을 시켜 려공을 유인하도록 하여 같이 죽였다. 진림이 스스로 진후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진장공(陳庄公)이다. 장공이 죽고 그의 동생 저구(杵臼)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이가 진선공(陳宣公)이다. 선공이 어구(御寇)를 태자로 세웠다가 어구가 잘못을 저지르자 죽였다.

즉 연의(演義)의 내용은, 진려공(陳厲公)은 세자 면(免)의 이모제(異母弟) 약(躍)의 시호(諡號)로 상정했으나 정사인 사기(史記)와 좌전(左傳)에 의하면 진타(陳佗)를 가리킨다. 전제(田齊)의 시조로 받들고 있는 진경중(陳敬仲) 완(完)은 려공의 장남이다. 진장공 림(林)에 의해 려공이 피살된 관계로 진완은 진나라 군주 자리에 앉지 못했다. 후에 선공의 아들 어구와 가깝게 지내가다 선공이 어구를 죽이자 이에 생명에 위협을 느낀 진완은 제나라에 망명하게 되고 그 후손인 태공 전화(田和)의 대에 이르러 제나라의 국권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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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4-07-07 1994
[일반] 제10회. 僭號稱王(참호칭왕), 被脇立庶(피협입서)

제10회 僭號稱王 被脇立庶(참호칭왕 피협입서) 참람하게 왕호를 칭하는 초무왕 웅통과 송장공의 위협에 굴복하여 군주를 바꾸는 정나라의 제족
양승국 04-05-11 1525
[일반] 제9회. 文姜婚魯(문강혼노) 射王中肩(사왕중견)

제9회 文姜婚魯 射王中肩 (문강혼노 사왕중견) 문강은 노환공(魯桓公)에게 시집가고 정나라 장수 축담은 활을 쏘아 주천자의 어깨를 맞추었다.
양승국 04-05-11 1458
[일반] 제8회. 貪色弑逆(탐색시군) 攀高辭婚(반고사혼)

제8회 貪色弑君 利誘破戎(탈처시군 이유파융) 미색을 탐하여 그 군주를 시해하는 송나라의 태재 화독과 이(利)로써 유인하여 융병을 무찌른 정세
양승국 04-05-11 1589
[일반] 제7회. 暗箭傷人(암전상인), 獻諂弑君(헌첨시군)

제7회 暗箭傷人 獻諂弑君 (암전상인 헌첨시군) 수레를 다투던 영고숙을 쏘아 죽인 공손알과 아첨이 안 먹히자 오히려 노은공을 시해한 공자휘
양승국 04-05-11 1503
[일반] 제6회. 大義滅親(대의멸친), 假命伐宋(가명벌송)

제6회 大義滅親 假命伐宋(대의멸친 가명벌송) 아들을 죽여 대의멸친하는 위나라의 대부 석작과 천자의 칙령을 사칭하여 송나라를 정벌하는 정장공
양승국 04-05-11 1621
[일반] 제5회. 周鄭交質(주정교질), 助逆興兵(조역흥병)

제5회 周鄭交質 助逆興兵(주정교질 조역흥병)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하게 되는 천자와 역도를 도와 군사를 일으키는 노와 송 두 나라 1. 정위교
양승국 04-05-11 1631
[일반] 제4회. 郊天應夢(교천응몽) 掘地見母(굴지현모)

제4회 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꿈속의 계시로 교천제를 지내 천자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문공과 땅굴 속의 지하에서 모친과 상봉
양승국 04-05-11 1577
[일반] 제3회. 身亡國破(신망국파) 東遷洛邑(동천락읍)

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몸은 죽고 나라를 망하게 한 주유왕과 나라를 동쪽의 락읍으로 옮긴 주평왕 1. 신망
양승국 04-05-10 1435
[일반] 제2회. 贖罪獻美人(속죄헌미인), 烽火戱諸侯(봉화희제후)

제2회 贖罪獻美 烽火戲諸侯(속죄헌미 봉화희제후) 유왕에게 미녀를 바쳐 속죄한 포성의 성주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회롱한 주유왕 성
양승국 04-05-10 1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