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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04:369045 
제5회. 周鄭交質(주정교질), 助逆興兵(조역흥병)
양승국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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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회 周鄭交質 助逆興兵(주정교질 조역흥병)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하게 되는 천자와

역도를 도와 군사를 일으키는 노와 송 두 나라

1. 정위교병(鄭衛交兵)

- 정위 두 나라의 싸움으로 천하대란의 막이 오르다. -

정장공은 조카 공손활이 위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쳐들어 왔다는 보고를 받고 군신들에게 그 대책을 물었다. 상경 공자려가 앞으로 나와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풀은 잘라 버렸지만 뿌리가 남아 있으니 봄이 되면 다시 돋아나게 됩니다. 요행히 죽음을 피한 공손활이 위나라 군사를 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위후가 신정성을 습격하여 군위를 찬탈하려고 시도했던 태숙의 반역사건을 모르고 군사를 내어 공손활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태숙의 일을 설명하는 서신을 한 장 써서 보내면 위후는 틀림없이 위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활(滑)은 고립되어 싸우지 않고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장공은 즉시 국서를 써서 사신에게 주어 위나라로 보냈다. 위환공이 편지를 받아 보고 읽었다.

「오생이 위후 전하께 삼가 재배를 올리며 편지를 바칩니다. 가문에 일어난 불행한 골육상잔은 진실로 이웃나라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과인은 동생 단에게 정나라에서 가장 큰 대성인 경성에 봉해 나라를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행한 일이 발생한 원인은 과인이 우애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친의 총애만을 믿은 단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인은 선군께서 물려주신 사직을 지키는 일이 막중하다고 생각하여 부득이 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을 너무 편애한 모친께서 그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시기에 영읍에 일단 거처를 옮겨 사시게 했으나, 지금은 이미 도성으로 다시 모셔와 봉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비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활이 상국으로 도망가 거짓으로 고한 까닭에 그의 의롭지 못한 일을 알지 못하신 위후께서 군사를 내어 우리 정나라로 보냈습니다. 제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이 밝혀졌으니, 원컨대 위후께서는 저희와 함께 란적을 주멸하여 입술과 이 사이 같은 이웃나라끼리의 정을 깨트리지 않으신다면, 과인은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위환공이 읽기를 마치고 놀라서 말했다.

「태숙 단이 불의하여 스스로 죽음을 재촉했는데, 과인이 활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니 역신을 도와 준 결과가 되었구나!」

곧이어 위환공이 위나라 군사들을 회군시키기 위해 사자를 급파했다. 그러나 위나라의 사자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정나라 영토를 침범한 위나라 군사들이 미처 방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던 름연(廩延)을 공격하여 재빨리 함락시켰다. 정장공이 화를 크게 내고 대부 고거미(高渠弥)에게 명하여 병거 2백 승을 주어 름연을 탈환하도록 했다. 그러나 고거미가 군사를 이끌고 름연에 당도했을 때는 위후의 사자가 이미 당도하여 위나라 군사들이 물러간 후였다. 세가 고립되어 홀로 름연에 남아있던 공손활은 정나라 군사들을 대적하지 못하고 즉시 성을 버리고 위나라로 다시 도망갔다. 름연을 쉽게 탈환한 고거미가 승세를 타고 공손활의 뒤를 추격하여 위나라 국경까지 진격했다. 위환공이 군신들을 모두 불러 정나라 군사를 물리칠 계책을 물었다. 공자 주우(州吁)가 나와서 말했다. 주우는 환공의 이복동생이다.

「물이 흐르면 땅은 잠기게 되고 군사가 쳐들어오면 맞이하여 싸우면 됩니다.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대부 석작(石碏)이 아뢰었다.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정나라 군사가 쳐들어 온 이유는 우리가 활을 도와 역신의 편을 들어서입니다. 지난번에 정백이 보낸 편지에 우리는 아직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들어 사죄하는 답장을 보내면 군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정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옳은 말이오!」

위환공이 즉시 석작에게 명하여 쓴 편지를 사자에게 주어 정백에게 보냈다.

「왕실의 경사이신 정백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과인은 정백께서 동생을 죽이고 모친을 감금하여 그 아들인 공손활이 몸 둘 곳이 없다는 말을 잘못 듣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오늘 전하가 보낸 편지를 읽어보니 경성의 태숙이 반역을 일으킨 사실을 알게 되어 후회가 막급합니다. 그래서 과인은 그 날로 즉시 름연에 주둔하고 있던 본국의 병사들을 철수 시켰습니다. 만약 정백 전하께서 과인의 불찰을 헤아려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면 마땅히 활을 결박하여 전하께 바쳐 전하와 옛날의 우의를 다시 찾을까합니다.」

정장공이 읽기를 마치고 말했다.

「위나라가 이미 죄를 알았으니 과인이 더 추궁할 필요가 없겠다.」

그때 무강은 공손활의 문제로 장공이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공격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자 공손활이 죽어 태숙의 후손이 끊어질까 걱정한 무강은 곧바로 장공을 찾아와 활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부디 활이 너의 조카임을 생각하여 그 한 목숨을 보존케 해주기 바란다.」

모후의 면목도 있고, 또한 공손활이 고립무원되어 다시는 반역을 도모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장공은 위후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 자기의 뜻을 전했다.

「위후 전하의 가르침을 받들어 군사를 물리치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상국과 우호관계를 회복하려고 합니다. 활이 비록 죄가 있다 하나 동생의 유일한 아들입니다. 바라옵건대 목숨을 연명케 하여 동생 단의 후사를 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시에 장공은 고거미에게 군사를 거두어 회군하라는 명을 내렸다. 공손활은 위나라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늙어 죽었다.

2. 周鄭交質(주정교질)

- 제후국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하는 천자 -

정장공이 국내의 일로 인해 오랫동안 왕성에 들어와 경사의 일을 돌보지 않고 있던 중에 괵공(虢公) 기보(忌父)가 입조하여 주평왕에게 조현을 드렸다. 기보와 이야기를 나눠 본 평왕은 서로 의기가 투합하게 되었다. 평왕이 기보에게 말했다.

「정백 부자가 대를 이어 수십 년 동안 조정의 일을 맡아했으나 근래에 와서 오랫동안 경사로써의 직책을 수행하지 않았소. 경이 그 일을 대신해 주시오. 결코 사양하지 말기 바라오!」

괵공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정백이 오랫동안 래조하지 않은 이유는 틀림없이 정나라의 국내에 무슨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만약 그의 일을 대신한다면 정백이 저를 원망하게 되고, 그것은 또한 대왕께 누를 끼치게 됩니다. 신은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평왕의 명을 완강히 사양한 괵공은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원래 정장공은 본국에 머물고 있을 때도 왕도에 자기 사람을 머물게 하여,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염탐하여 항상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장공은 경사의 정보원을 통해 평왕이 괵공에게 자신의 경사 직을 빼앗아 주려고 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공은 즉시 길을 떠나 주나라에 당도하여 천자를 알현하고 아뢰었다.

「신이 성은을 받아 부자가 서로 대를 이어 조정의 정사를 돌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신이 재주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황송하게도 과분한 직책을 맡았다고 하겠습니다. 원컨대 경사의 직에서 물러나 변방의 신하로서 분수를 지키고자 합니다.」

「경이 오랫동안 경사의 직에 임하지 않아 짐의 마음은 무척 불안했었소. 오늘 경을 보니 마치 물을 만난 목마른 고기의 마음과 같은 마음인데 경은 어찌하여 그만두겠다고 하시오?」

「신이 본국에 있을 때 동생 단이 역모를 일으켜 오랫동안 경사의 직에 태만했습니다. 이제야 본국의 일이 대충 정리되어 밤길을 재촉하여 오던 중에, 대왕께서 괵공에게 정사를 맡기시려 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의 재주는 괵공에 비해 만 분의 일도 못 미치는데 어찌 감히 자리를 탐하고 국록만 축내어 대왕께 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장공이 괵공과의 일에 대해서 언급하자 평왕은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지며 더욱 완곡하게 권했다.

「짐은 오랫동안 경을 용납했고 또한 경이 나라의 일로 다망하다고 생각하여 괵공으로 하여금 얼마동안 경의 일을 대리케 하려고 했으나 괵공은 재삼 고사하다가 이미 자기 나라로 돌아갔소. 경은 어찌 의심하시오?」

「국정을 주관하는 일은 대왕의 소관이지 소신의 집안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쓰는 권한은 대왕이 스스로 하시는 일이니 괵공의 재주가 마땅히 대왕을 보필할 수 있다면, 신은 마땅히 그 직을 사직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의 일로 인하여 여러 신하들도 필시 권세를 탐하여 진퇴의 시기에 어둡다고 신을 비난할 것입니다. 왕께서는 굽어 살펴 주십시오.」

「경의 부자는 나라에 큰공을 세웠고 그런 연유로 경사의 직을 서로 전하여 나라의 정사를 맡긴지 어언50 년이 다 되어, 임금과 신하가 서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소. 지금 경이 짐을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짐이 어떻게 하면 의심을 풀 수 있겠소? 경이 보지 않으면 믿지 않으니, 짐이 태자 고(孤)에게 명하여 경의 나라에 인질로 가 있으라고 하면 어떻겠소?」

장공이 절을 다시 올리며 말했다.

「정사를 돌본다든지 혹은 정사에서 물러나든지 하는 행위는 모두 신하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입니다. 어찌 감히 천자의 인질을 신하에게 맡기는 예를 취하겠습니까? 천하의 신하들이 천자를 협박하도록 만들지나 않을까 두려우며,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것도 안 된다면 태자를 시켜 정나라의 풍속과 민정을 살펴보게 한다고 보내면 눈앞의 의심은 없어지지 않겠소? 경이 그래도 만약 고사한다면 이는 짐의 허물일 뿐이오.」

장공이 수차에 걸쳐 한사코 명을 받지 않자 여러 군신들이 의논한 바를 아뢰었다.

「우리 여러 신하들이 의논한 바, 대왕께서 인질을 보내지 않으면 정백의 의심을 풀지 못하고, 그렇다고 만약 주나라의 인질만이 정나라에 보내진다면 이것 또한 정백으로 하여금 신하의 도리를 어기게 만드는 일입니다. 만약 군신이 모두 인질을 둔다면 양측 모두 시기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 상하의 은혜를 모두 보전할 수 있습니다. 」

「그 방법이 매우 좋다고 생각하오.」

장공이 사람을 시켜 먼저 세자 홀(忽)을 주나라로 불러 인질로 삼게 한 다음, 주왕에게 그 입은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주나라 태자도 역시 정나라로 가서 인질이 되었다. 사관이 주나라와 정나라가 인질을 교환한 일을 두고 평하기를 이후로 군신간의 직분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몸과 수족의 생각은 두 마음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서로 의심하여 남의 비웃음을 샀다.

인질의 교환은 분명 장사꾼이나 하는 일인데

이때부터 주왕실의 강령은 쇠퇴하게 되었다.

腹心手足本无私(복심수족본무사)

一體相猜事可嗤(일체상시사가치)

交質分明同市賈(교질분명동시고)

王綱從此遂陵夷(왕강종차수능이)

3. 도할맥화(盜割麥禾)

- 천자국의 경계를 침범하여 곡식을 약탈하는 정나라 -

한편 주왕실과 인질을 교환한 정장공이 주나라에 남아서 정치를 보좌하여 이후로는 왕실과는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게 되었으나 그 해에 곧바로 평왕이 죽었다. 평왕은 기원전 771년에 천자의 자리에 올라 기원전 720년에 죽었으니 51년 동안 재위에 있었다. 정백 오생과 주공 흑견(黑肩)이 같이 섭정에 올라, 주나라에 인질로 와있던 정세자 홀을 귀국시키고 주나라 태자 고를 정나라로부터 맞이하여 평왕의 뒤를 잇게 했다. 태자고는 그 부친이 병을 얻어 누워 있을 때 시중도 들지 못하고, 염습할 때 자리에 참석하지도 못한 사이에, 그 부왕이 죽은 일을 너무 슬퍼했다. 자기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너무 상심한 태자고는 주나라에 당도하자마자 죽었다. 태자고의 아들 림(林)이 주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주환왕(周桓王)이다. 제후들이 모두 와서 평왕과 태자고의 장례에 참석하고, 동시에 새로 즉위한 천자를 배알하여 축하의 의식을 행했다. 다른 제후들보다 서둘러 먼저 도착한 괵공 기보는 평왕과 세자고의 장례와, 환왕이 천자의 자리에 등극하는 의식을 주관했다. 주례에 부합하게 의식을 행한 기보를 모든 사람이 칭찬해 마지않았다. 평왕은 그 부친 태자고가 정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몸이 상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정백이 너무 오랫동안 조정의 정사를 맡아 해왔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생각이 일어나 주공 흑견과 은밀히 상의했다.

「정백이 주왕실의 태자였던 짐의 부친을 인질로 자기나라에 붙잡아 두었던 행위는 우리 주왕실을 가볍게 본 때문이고, 그 때문에 군신지간에 서로 편안하지 못하게 되었소. 괵공이 일을 맡아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공손합니다. 짐이 괵공을 경사에 임명하여 왕실의 정사를 맡겨 볼까 하는데 경의 뜻은 어떠하오?」

흑견이 자기 의견을 단호하게 아뢰었다.

「정백이라는 위인은 은혜를 베푸는데 각박한 자라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 주왕실이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할 때 당진과 정나라의 공로가 대단히 컸기 때문에 경사의 직을 제수하여, 우리 주왕실의 정사를 돌보게 헸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새로 등극하여 개원하는 날을 축하하는 행사가 내일 있을 예정입니다. 그때 정백으로부터 경사의 직을 빼앗아 괵공에게 주십시오. 다만 정백이 분노하여 발호할 경우를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짐은 앉아서 정백이 전횡하는 꼴을 보지 못하겠소. 짐의 마음은 이미 정했소!」

그 다음날 환왕이 아침 조회에서 정백을 향해 말했다.

「경은 곧 선왕의 신하라서 신료의 대열에 서서 허리를 굽히는 모습을 내가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소. 경은 스스로 편안한 방도를 찾기 바라오.」

환왕의 갑작스러운 말에 장공이 부지중에 대답했다.

「신에게 오랫동안 정사를 맡아보게 하여 감사드리며, 분부대로 이만 경사의 직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정장공이 곧바로 조정에서 서둘러 물러나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어린 천자가 정리를 저버리니 보좌하기가 어렵구나!」

정장공은 그날로 어가를 몰아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세자홀이 정나라의 여러 관원들을 이끌고 성곽 밖으로 나와 영접을 하면서 본국으로 돌아온 연유를 물었다. 주환왕에 의해 경사의 직에서 해임되어 돌아 왔다고 정장공이 대답하자 사람마다 모두 불만을 토로했다. 대부 고거미가 대열의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우리 정나라는 양대에 걸쳐 주나라 왕실을 보살핀 공로가 매우 큽니다. 하물며 지난 번 태자가 우리나라에 인질로 와 있을 때에도 우리는 예를 다하여 모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주군을 버리고 괵공을 등용한 처사는 크게 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어찌하여 군사를 일으켜 주나라 도성을 깨뜨리고 지금의 왕을 폐하고 주나라 왕손 중에 어진 사람을 뽑아 옹립하지 않으십니까? 천하의 제후들 중에 아무도 감히 정나라를 거스르지 못할 것이며 그렇게 하면 방백(方伯)의 위업도 이룰 수 있습니다.」

영고숙이 듣고 고거미의 말은 옳지 않다고 하며 말했다.

「군신의 관계는 부모 자식과 같습니다. 모친의 잘못을 참으시는 주공께서, 어찌 임금의 잘못을 못 참으신다 하십니까? 잠시 은인자중하시고 그 동향을 살피시다보면, 주왕은 틀림없이 마음에 후회하는 뜻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절대로 일순간의 분노로 조부이신 환공께서 죽음으로써 지킨 절의를 훼손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제족이 나서며 두 사람의 의견을 절충하는 의견을 내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두 분의 의견을 모두 따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주나라 변경에 바로 달려가서 흉년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온(溫)과 락(洛)①사이에 주둔시켜 그곳에서 나오는 양식으로 군사들을 먹인다면 주왕은 사자를 보내 우리보고 물러가라고 꾸짖을 것입니다. 우리가 철군을 거절하고 계속 주둔하고 있을 때 주군이 왕성으로 들어가 주왕을 알현하면서 동향을 살펴 그때 상황에 따라 행동을 하셔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족의 절충안을 받아들인 장공은 그에게 한 떼의 군사를 주어 형편에 따라 현지에서 대응하게 했다. 제족이 온과 락의 땅 사이를 순회하면서 군사들에게 말을 퍼뜨리게 했다.

「정나라 본국이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음으로 온읍대부에게 곡식 천 종(鍾)을 빌리기 위해 행군하는 중이다.」

이윽고 제족이 이끄는 정나라 군사가 온읍에 당도하여 온읍대부에게 다짜고짜 곡식을 내놓으라고 통고했다. 온읍대부는 예상대로 왕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주지 않았다. 제족이 말했다.

「마침 보리와 밀이 이미 익어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절이다. 우리가 스스로 베어서 취할 수 있는데 구태여 구걸할 필요가 있겠는가?」

제족은 곧바로 군사들에게 낫을 준비시켜 밭으로 보내 보리와 밀 이삭을 전부 베어,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게 했다. 제족이 정예 병사들을 끌고 와서 대치를 하니, 온읍대부가 정나라 군사들이 강성함을 알고 감히 싸움을 걸어오지 못했다. 정나라 군사들은 온읍의 경계에서 3개 월 가량을 머무른 후에 다시 왕성인 낙읍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했다. 그때는 가을 구월 중순이라 논에는 벼가 이미 무르익은 계절이었다. 군사들을 상인으로 변장시킨 제족은 마차들을 각 촌마을에 감추어 둔 후에 시간이 삼경에 이르자, 일제히 벼의 이삭을 잘라서 기다리고 있다가, 북소리가 다섯 번 울리면 일제히 일어나 마차에 싣고 달려오게 했다. 결국 락읍의 성밖 교외의 논에는 이삭이 달린 벼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벼이삭이 전부 잘려 나간 것을 본 낙읍의 교외를 지키는 수장은 군사를 점고하여 성밖으로 나갔으나, 정나라 군사들은 이미 멀리 가버린 후였다. 두 곳의 대부와 수장이 모두 서장을 써 왕성의 환왕에게 정나라 군사들이 곡식의 이삭들을 모두 잘라서 가버렸다고 고했다. 환왕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보내어 그 죄를 묻고자 했다. 주공 흑견이 아뢰었다.

「정나라의 제족이 비록 곡식의 이삭을 도둑질 해 갔지만, 그것은 변경의 조그만 일입니다. 조그만 일로 화를 내어 오랫동안 유지한 좋은 관계를 해치는 일은 절대 불가합니다. 마음이 불안해진 정백은 조만간에 반드시 친히 내조하여 사죄를 올리고 왕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환왕은 흑견의 주청을 받아 들였다. 단지 변경지방의 치소에 명을 내려, 방비를 한층 강화하고 절대로 다른 나라의 군사들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 그 후로는 보리와 벼이삭을 자른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4. 석문지맹(石門之盟)

- 석문에서 공수동맹을 맺은 정(鄭)과 제(齊) 두 나라 -

정백이 주나라로 떠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전령이 와서 고했다.

「제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장공을 접견한 제나라 사신이 석문(石門)②에서 서로 만나 회담을 하자는 제희공(齊僖公)의 국서를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제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싶어했던 장공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제희공의 회담 요청을 허락했다. 이윽고 약조한 날자가 되어 두 나라의 군주가 석문으로 행차하여 서로 만나 닭의 피를 마셔 삽혈의 의식을 행하고, 형제의 맹약을 맺어 두 나라에 일이 있으면 서로 돕기로 했다. 회맹의 의식이 끝나자 제후가 장공에게 물었다.

「세자홀이 이미 혼인하여 부인을 얻었습니까?」

「아직 혼인 전입니다.」

「저에게 사랑스러운 딸이 있습니다. 나이가 아직 시집을 보낼 수 있는 열다섯 살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제법 재주가 있고 총명합니다. 혹시 싫지 않다면 원컨대 몇 년 후에 혼인을 시키기로 약속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정장공은 확답을 미루며 오로지 감사의 뜻만을 전하고 정나라로 돌아와서 세자홀에게 그 뜻을 전했다. 홀이 대답했다.

「지금 정나라는 작은 나라이고 제나라는 큰 나라입니다. 크고 작은 것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제가 배우자를 제나라 여인으로 맞이한다면 이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여인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소자는 감히 우리나라보다 큰 나라의 군주 딸을 감당하지 못 하겠습니다.」

「혼인은 제나라가 요청한 일이다. 만약에 제나라 군주의 사위가 된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세자는 사양하는가?」

「장부가 스스로 그 뜻을 세우는 것에 두어야지 어찌하여 혼인을 맺어 남의 도움을 얻는데 두겠습니까?」

세자의 기개가 장하다고 생각한 장공이 기쁜 마음으로 더 이상 강권하지 않았다. 후에 제나라 사신이 정나라에 와서 세자홀의 혼인을 상의하고자 했으나 정나라가 혼인을 원치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귀국하여 제나라 희공에게 아뢰었다. 희공이 한탄했다.

「정나라 세자가 겸양의 덕을 갖추었구나. 내 딸이 아직 나이가 어리니 장성하기를 기다려 후일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후세 사람이 정나라의 세자홀이 제나라와의 혼사를 거절한 일을 시를 지어 자기보다 지체 높은 사람과 혼인 관계를 맺어 재산을 쌓은 사람들을 조롱했다.

혼인하는 두 집안의 세가 서로 비슷해야지

크고 작으면 반듯이 스스로 저울질을 하게 된다.

반고(攀高)③로 성공하려는 사람을 용렬하다고 비웃으며

헌 수건을 버리듯 재물을 대한 사람처럼 행했다.

婚姻門戶要相當(혼인문호요상당)

大小須當自酌量(대소수당자작량)

却笑攀高庸俗子(각소반고용속자)

拚財旦買一巾方(변재단매일건방)

5. 寵過必驕 驕必生亂(총과필교 교필생란)

- 총애가 지나치면 교만하게 되고, 교만은 란을 낳는다. -

정장공이 군신들과 조정의 일로 상의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위나라의 사자가 와서 위환공의 부음을 알렸다. 위환공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의아스럽게 생각한 장공이 위나라의 사자를 심문한 결과, 공자 주우가 위환공을 시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공이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했다.

「우리나라에 병화가 닥쳐오게 되었구나!」

여러 신하들이 물었다.

「주공께서는 어떻게 병화가 일어나리라고 짐작하십니까?」

「위나라 주우라는 위인은 평소에 병사를 함부로 부리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번에 군주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필시 군사를 동원하여 위세를 떨쳐 그의 뜻을 과시하려고 할 것이다. 정나라와 위나라는 옛날에 틈이 벌어져 있어 그가 군사를 보내어 맨 처음으로 시험하고자 하는 나라는 바로 우리 정나라임이 자명한 일이다. 마땅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원래 위환공의 부군 위장공(衛庄公)의 부인은 곧 제나라 동궁득신(東宮得臣)의 누이로 이름을 장강(庄姜)이라 했다. 그녀는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으나 아들이 없었다. 장공의 두 번째 부인은 려규(厲嬀)라는 진(陳)나라 여인으로 역시 자식이 없었다. 려규의 동생에 대규(戴嬀)라고 있었다. 언니와 함께 위장공에게 시집와 아들 둘을 낳아 장자를 완(完)이라 했고 차자를 진(晉)이라 했다. 장강은 성격이 질투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기 때문에 완을 그의 아들처럼 길렀다. 또한 장강이 측근에 데리고 있다가 바친 궁녀를 장공이 총애하여 아들을 낳아 주우라고 했다. 주우의 성격은 포악하고 무예를 좋아했으며 군사의 일에 관하여 담론하기를 즐겨했다. 위장공이 주우를 한층 더 총애하여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모두 하게 했다. 대부 석작(石碏)이 위장공에게 일찍이 간했다. (미주 석인(碩人 참조)

「신이 듣기에 자식을 사랑한다 함은 가르쳐서 품행을 방정하게 만드는 일이지, 절대 사악한 짓을 용납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총애가 과하면 반드시 교만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면 란을 일으키게 됩니다.⑤ 주공께서 만약 주우에게 뒤를 잇게 하실 요량이면 마땅히 세자로 세우십시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실 요량이시라면, 필히 미리 눌러 놓아야만 교만, 사치, 그리고 음락과 방종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장공은 석작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석작에게는 석후(石厚)라는 아들이 있었다. 석후는 주우와 친교를 맺고 가까이 지내다가 어느 날 주우와 함께 전차를 타고 사냥을 나가 민가를 어지럽혔다. 석작이 석후를 잡아다가 채찍 50대를 쳐서 그 잘못을 벌하고, 빈방에 가두어 열쇠로 잠가 출입을 못하게 했다. 석후가 열쇠를 부수고 담을 넘어 집을 나와 주우에게 가서 살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석작으로서는 별다른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위장공이 죽자 공자완이 뒤를 이었다. 이가 위환공다. 환공은 원래 유약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석작이 환공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집에 눌러 앉아 조정의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주우는 더욱 무서운 사람이 없게 되어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주우는 석후와 함께 군위 찬탈의 음모를 꾸미게 되었다. 마침 그때 주나라 평왕이 죽었다는 부고와 함께, 주환왕이 새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왕실의 사자가 당도했다. 위환공은 주평왕이 죽음을 문상하고 환왕이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주나라에 내조할 채비를 차렸다. 이 소식을 들은 석후가 주우에게 말했다.

「대사를 이룰 수 있겠습니다. 내일 주공께서 주나라로 출발할 때 도성의 서문에서 주공을 환송한다는 구실로 연회를 준비한 후 성문 밖에 갑사 5백 명을 미리 매복시키십시오. 그런 다음 술잔이 몇 순 배 돌았을 때 소매 속에서 단검을 꺼내 주공을 찔러 죽이시고, 수하 중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무사들을 시켜서 즉시 참수하면, 위나라 군주의 자리는 손바닥에 침 뱉기보다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주우가 크게 기뻐했다. 이어서 석후에게 명하여 미리 무사 5백 명을 이끌고 서문 밖에 매복하게 하고 주우는 친히 마차를 몰아 환공의 전별연이 벌어지고 있는 관사로 갔다. 환공과 여러 신하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주우가 몸을 굽혀 술잔을 바치며 말했다.

「형님께서 멀리 길을 떠나시게 되어 평안한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박하로 담근 술을 가져와서 올리오니 맛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환공이 당부했다.

「동생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었다. 나의 이번 행차는 불과 한 달이면 돌아오는데, 동생에게 정사를 맡겨 나를 대신하게 하는 번거로움을 끼치게 되었다. 부디 조심하여 정사를 돌봐주기 바란다.」

「형님은 마음을 놓으시고 무사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술잔이 몇 순 배 돌자, 주우가 몸을 일으켜 금잔에 술을 가득 부어 환공에게 바쳤다. 환공이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다시 그 잔에 술을 가득 부어서 주우에게 권했다. 주우가 두 손으로 받아 실수 한 척 하면서 술잔을 땅에 떨어뜨렸다. 주우가 황망한 태도로 허리를 굽히고 술잔을 주워서 손수 닦았다. 그것이 거짓으로 꾸민 짓인지 알지 못한 환공은 술잔을 가져오게 하여 술을 가득 따라 주우에게 다시 권하려고 했다. 주우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재빨리 환공이 앉아 있는 단 위로 뛰어 올라 환공의 등 뒤에 붙더니 옷소매에 숨긴 단검을 꺼내어 환공의 등을 찔렀다. 주우가 찌른 칼은 환공의 가슴을 관통하여 앞으로 튀어 나와 환공은 깊은 상처를 입고 즉시 숨이 넘어갔다.

주환왕 원년, 기원전 719년 봄 삼월 무신(戊申) 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위환공의 뒤를 따랐던 여러 신하들은 주우의 무예와 완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을 평소에 알고 있었다. 더욱이 석후가 5백 명의 무사들을 끌고 와서 연회가 벌어졌던 관사를 포위하자, 자기들을 도와 줄 원병이 없었던 위나라 신하들은 주우에게 항복하는 방법 외는 다른 수가 없었다. 석후는 마차에 환공의 시신을 싣고 궁궐에 돌아와 장례를 치르면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다고 둘러댔다. 환공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군주 자리에 스스로 오른 주우는 석후를 상대부에 임명했다. 환공의 동생 공자진(公子晉)은 형국(邢國)⑥으로 도망쳤다. 사관이 시를 지어 장공이 주우를 지나치게 총애한 결과 변란의 원인이 되었음을 한탄했다.

자식 교육은 의(義)와 정직을 반드시 알게 하여야 하며

교만과 방종을 방조함은 재앙을 만드는 일과 같다.

동생 단을 죽인 정장공도 천륜에 야박하다고 욕을 먹었지만

동생의 손이 죽은 위환공의 경우에 비할 수야 있겠는가?

敎子須知有義方(교자수지유의방)

養成驕佚必生殃(양성교일필생앙)

鄭庄克段天倫薄(정장극단천륜박)

猶勝桓侯束手亡(유승환후속수망)

6. 立威壓衆(입위압중)

- 전쟁을 일으켜 세운 위세로 백성들의 입을 막으려는 주우.-

주우가 위후의 자리에 즉위한지3일 만에 궁궐 밖에서는 형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백성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여 인심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우는 대부 석후를 불러 물었다.

「이웃나라에 위엄을 세워 백성들의 여론을 잠재워야 하겠는데, 어느 나라를 정벌해야 하는가?」

석후가 대답했다.

「우리 진나라는 이웃나라와 모두가 사이가 원만하나 오로지 정나라만이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 란을 일으킨 공손활을 정나라가 토벌할 때 우리나라까지 쳐들어오자 선군 환공께서 죄를 인정하고 애걸하여 화를 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은 우리나라가 받은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주공께서 군사를 일으켜 다른 나라를 정벌하시겠다면 정나라를 택하십시오.」

주우가 의심쩍은 바를 물었다.

「예전에 제나라와 정나라는 석문에서 만나 맹약을 맺어 서로 동맹국이 되었다. 만일 우리가 정나라를 정벌한다면 제나라가 필시 구원군을 보낼 텐데, 우리 위나라 혼자만으로 어찌 두 나라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현재 주왕실의 타성으로써 공작의 작위를 갖고 있는 대국으로서는 오로지 송나라뿐입니다.⑥ 또한 동성의 나라로서는 노나라만이 주왕실의 숙부의 나라로써 존대를 받고 있습니다.⑦ 주공께서 정나라를 정벌코자 하신다면 사자를 송과 노 두 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하시고, 또한 진과 채 두 나라의 군사를 합쳐 다섯 나라가 함께 정나라를 공격한다면 비록 제나라가 정나라 편을 든다 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진과 채 두 나라는 소국이지만 원래부터 주왕실을 극진히 모셔왔다. 최근에 들어서 정나라가 주왕실과 틈이 벌어진 사실을 알고 있는 진채(陳蔡) 두 나라가 정나라 토벌전에 호응한다 하겠지만, 대국인 송과 노 두 나라는 무슨 방법으로 참전시킬 수 있겠는가?」

「주공은 단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고 계십니다. 옛날 송선공(宋宣公)은 죽을 때 군위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동생 송목공(宋穆公)에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송목공(宋穆公)도 죽게 되었을 때 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인 풍(馮)에게 군위를 물려주지 않고 지금의 송공의 자리에 앉아있는 형의 아들 이(夷)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공자풍은 부친을 원망하고 또한 이를 시기하여 정나라로 도망가자, 정장공이 받아들여 후하게 대접하며 지금까지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정장공은 항시 공자풍을 위하여 병사를 동원하여 송나라를 정벌한 다음 상공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풍을 앉히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정벌하자고 하면 그것은 바로 송상공이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던 바라 송나라는 틀림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와 함께 행동을 같이 할 것입니다. 한편 노나라의 모든 국사는 공자휘(公子翬)가 전결하고 있고, 또한 병권도 그의 손아귀에 있어 노나라 군주는 마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공자휘에게 뇌물을 많이 가져다 바치면 노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7. 조역흥병(助逆興兵)

- 역신을 도와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공격하는 사로 제후군 -

주우가 크게 기뻐하며, 그날로 사절을 노(魯), 진(陳), 채(蔡) 삼국에 파견했다. 유독 송나라만은 마땅한 사람이 없어 사절을 보내지 못하다가 석후가 한 사람을 추천했다. 성은 영(寧)이고 이름은 익(翊)이라 했는데 곧 중모(中牟)⑧사람이었다. 석후가 주우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구변이 매우 좋아서 사절로 보내면 송나라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주우가 석후의 말을 쫓아 영익을 사자로 삼아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군사를 얻어 오라고 했다. 이윽고 송나라에 당도한 영익이 송상공에게 접견을 청했다. 영익을 보고 송상공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가?」

영익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정백이 무도하여 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모친을 가두었습니다. 또한 그의 조카도 용납하지 않아 공손활은 지금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위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토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나라의 세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저희 선군이신 환공께서는 얼굴가죽을 두껍게 하신 후 겉으로 복종하는 체하고 병화를 간신히 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희 군주께서는 선군이 받은 치욕을 설욕하여 송나라와 함께 원수를 갚고자 대국인 상국에 원조를 구하고자 함입니다.」

「송나라와 정나라는 원래 원한 산 일이 서로 없다. 그대가 말하기를 공동의 원수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좌우의 사람을 물리쳐 주시면 제가 그 연유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손짓으로 좌우의 시자들을 물러가게 한 송상공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어떤 가르침이 있는가?」

「군후의 송나라 군위를 누구로부터 물려받았습니까?」

「숙부 목공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물려받게 되는 것은 옛날부터의 전해오는 별하지 않는 법도입니다. 목공이 비록 요순과 같은 어진 마음으로 군위를 군후에게 물려줬다 하더라도, 목공의 아들 공자풍은 잃어버린 군주 자리에 대해 한을 품고 달아나 이웃나라에 거처하고 있으면서 잠시라도 송나라를 잊지 않고 군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중입니다. 정나라는 공자풍을 받아들여 매우 후하게 대접하여 지금은 이미 친교가 매우 깊어졌습니다. 일단 그들이 풍을 송나라 군주 자리에 앉히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면, 송나라 백성들은 선정을 베푼 목공의 은혜를 생각하여 그의 아들을 잊지 않고 안에서 호응할 것입니다. 송나라의 안과 밖에서 동시에 변란이 일어난다면, 군후의 자리는 위태롭기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거사는 겉으로는 정나라를 정벌한다고 하지만, 실은 군후의 가슴속의 화근을 없애는 일입니다. 군후께서 만일 그 일을 주관하신다면 저희 위나라는 노, 진, 채 삼국과 연합하여 군사를 이끌고 일제히 송나라의 뒤를 따라 있는 힘을 다하여 공격할 것입니다. 정나라의 멸망은 불문가지이고 공자풍에 대한 걱정도 사라지게 되어 군후의 자리는 반석과 같이 튼튼해 지지 않겠습니까?」

영익의 유세는 원래 마음속으로 공자풍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송상공의 마음을 곧바로 꿰뚫어, 송나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킬 수 있게 만들었다. 송나라의 대사마(大司馬) 공보가(孔父嘉)는 은나라 탕왕(湯王)의 후손으로서 정직무사한 사람이었다. 상공이 위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군사를 일으킨다는 소식을 접한 공보가가 간했다. .

「위나라 사신의 말을 들으시면 안 됩니다. 만약에 정백이 동생을 죽이고 그 모친을 가둔 행위가 죄라면, 주우는 형을 시해하고 위나라 군주의 작위를 찬탈한 행위는 어찌하여 죄가 되지 않는단 말입니까? 원컨대 주공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영익에게 군사를 파병하기로 약속한 상공은 공보가의 간함을 듣지 않고 그 날로 명을 발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한편 위나라로부터 많은 재물을 받은 노나라의 공자휘도 대군을 이끌고 위나라를 도우러 출정했다. 공자휘는 노은공(魯隱公)에게 위나라를 도와 정나라 정벌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고하지도 않았다. 진과 채 두 나라의 군사도 역시 시간에 맞추어 집결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5국의 군사들은 송나라의 작위가 공작으로써 여러 제후들 중에 제일 높다고 하여 송상공을 맹주로 추대했다. 위나라의 석후는 선봉으로, 주우는 위나라의 본대를 이끌고 후위를 맡아 많은 식량과 마초를 가지고 와서 사국의 군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배불리 먹이고 위로했다. 1300승이나 되는 오국의 병거와 그에 따르는 군사들이 행군을 시작해서 이윽고 정나라에 당도하여 그 도읍인 신정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했다.

8. 투이퇴적(投饵退敌)

미끼로 명분을 주어5국 연합군을 물리치다. -

한편 정장공은 군신들에게5국 연합군을 물리칠 계책을 물었다. 어떤 사람은 싸우자 하고 어떤 사람은 화의를 맺자고 하여 의견이 분분하여 일치하지 않았다. 정장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경들의 의견은 모두가 좋은 계책이라고 할 수 없다. 주우는 군위를 찬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을 아직 얻지 못하고 있다. 단지 옛날의 원한을 갚는다는 구실로 4국으로부터 군사를 빌려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의 귀를 막기 위해서 쳐들어 왔다. 또한 노나라 공자휘는 위나라의 뇌물을 탐하여 자기 군주에게 상주하지도 않고 군사를 끌고 왔으며, 진과 채 두 나라는 우리와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어 아무도 우리와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는 전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송나라만이 오로지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공자풍을 두려워하여 실제로 위나라에 협력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앞으로 공자풍을 장갈(長葛)⑨로 옮기게 하여 그곳에 살게 하면, 송나라 군사는 반드시 그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런 다음 공자려를 시켜 군사 5백을 끌고 동문을 나가 단지 위나라 군사들에게만 싸움을 걸어 거짓으로 패하여 도망치게 한다면, 주우는 전공을 세워 그가 뜻한 바가 이미 이루어 졌다는 핑계를 대고, 아직도 유동적인 위나라의 내부 일을 걱정하여, 싸움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틀림없이 군사를 거두어 물러갈 것이다. 또한 내가 들으니 위나라 대부 석작은 충성스러운 사람이라 하는데, 아마도 위나라 국내에 있으면서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나라는 머지않아 내란에 휩싸일 것인데 주우가 어찌 스스롤 돌아보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우리나라를 해칠 수 있겠는가?」

정장공이 말을 마치고 대부 하숙영(瑕叔盈)에게 명하여 한 떼의 군사를 인솔하고 공자풍을 장갈로 호송하게 했다. 장공이 다시 사람을 송나라 진영으로 보내 송상공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죽음을 피하여 우리나라로 피신하러 온 공자풍을 제가 차마 죽이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가 장갈에서 엎드려 죄를 청하고 있으니 다만 군주께서 스스로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송상공이 과연 군사를 이동시켜 장갈을 포위했다. 채, 진, 노 삼국의 군사는 송나라 군사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모두 회군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공자려가 신정성 동문 밖으로 병거를 몰아 위나라 진영 앞으로 달려 나와 싸움을 걸어 왔다. 삼국의 장수들은 모두 보루 위에 올라가 싸움에 응할 생각 대신 사태의 추이만을 관망하고자 했다.

이윽고 석후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공자려와 대적하여 몇 합을 싸웠으나 공자려는 시간을 끌다가 방천화극을 늘어뜨리고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석후가 동문 앞까지 쫓아갔으나 성안에서 구원병이 나와 공자려를 구하여 성안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그 사이에 석후는 신정성의 동문 밖 논에서 벼이삭을 모두 베어 가지고 와서 군사들에게 식사를 배불리 먹였다. 잠시 후에 석후가 주우에게 싸움을 중지하고 이만 회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우가 듣고 말했다.

「아직 크게 이기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회군하자고 하는가?」

석후가 주위사람을 물리치고 군사들을 회군시켜야 하는 이유를 주우에게 설명했다. 주우가 듣고 크게 기뻐했다. .

주석

①온(溫)과 락(洛)/ 온(溫)은 지금의 하남성 황하 북안의 온현(溫縣) 일대이고 락(洛)은 왕성 낙읍의 남쪽을 흐르는 락수 연안이다.

②석문(石門)/현 산동성(山東省) 평음현(平陰縣) 부근

③반고(攀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보다 권세가 큰 사람에게 의지하여 출세하려는 행위를 말함.

④愛子者, 敎以義方, 弗納于邪.夫寵過必驕, 驕必生亂

⑤형국(邢國)/현 하북성(河北省) 형태시(邢台市)에 있었던 춘추시대 때의 소 제후국

⑥주왕실과의 타성 제후국으로써 강대국의 반열에 드는 나라는 강성(姜姓)의 제나라, 자성(子姓)의 송나라, 미성(羋姓)의 초나라, 영성(嬴姓)의 섬진(陝秦) 등인데 그 작위는 제나라는 후작국(侯爵國), 섬진(陝秦)은 백작국(伯爵國), 초나라는 자작국(子爵國), 송나라만이 유일하게 공작국(公爵國)이었다.

⑦숙부의 나라라 함은 주무왕의 동생 주공단은 무왕의 아들인 주성왕(周成王)에게는 숙부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⑧ 중모(中牟)/현 하남성 정주시와 개봉시 사이에 있는 중모현(中牟縣)이다.

⑨장갈(長葛)/ 현 하남성 신정시와 허창시(許昌市) 사이로 지금도 장갈시(長葛市)라고 부르고 있다.

- 제5회 끝-

※ 다음은 위장공(衛莊公)의 부인 장강을 노래한 시가로 시경(詩經) 위풍(衛風)에 실려있다.

석인(硕人)

- 훌륭하신 님이시여 -

제장공(齊莊公)의 딸 장강(莊姜)이 위장공(衛莊公)에게 시집갈 때의 모습을 노래한 시가다. 위장공은 위무공(衛武公)의 아들로 기원전 757년에 즉위하여 735년에 죽은 위나라의 군주다. 위장공이 자식을 낳지 못한 장강을 멀리하고 다른 부인을 얻어 총애하자 위나라 국인들이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다음은 사기 위세가에 나오는 관련 기사다.

“ 장공5년 기원전 753년, 장공이 제나라 여인을 취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제녀(齊女)는 미인이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했다. 장공이 다시 진(陳)나라 여인은 취하여 부인으로 삼아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어려서 죽고 말았다. 진녀(陳女)의 여동생 역시 장공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하나 낳아 이름을 완(完)이라고 했다. 완이 어렸을 때 그 모친이 죽자 장공은 제녀에게 완을 주어 기르도록 했다. 장공은 완을 태자로 삼았다. ”

一.

碩人其頎 衣錦褧衣(석인기기 의금경의)

귀하신 그 님은 훤칠한 키에, 비단옷에 홑옷 입으셨네

諸侯之子 衛侯之妻(제후지자 위후지처)

제후의 따님에, 위나라 임금의 부인이시고

東宮之妹 邢侯之姨(동궁지매 형후지이)

제나라 동궁(東宮)의 누이에, 형후(邢侯)의 처제이시며

譚公維私(담공유사)

담공(譚公)은 형부가 되신다네

碩人(석인)은 장강(莊姜)을 말하고 頎(기)는 훤칠하게 키가 큰 모양을 뜻한다. 錦(금)은 문채가 있는 옷이고, 褧(경)은 홑옷이니, 錦衣(금의)에 褧衣(경의)를 더한 것은 문채가 더욱 드러나기 때문이다. 東宮(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이니 제(齊)나라 태자 득신(得臣)이다. 석인은 태자와 같은 모친의 소생으로 매우 귀한 신분임을 말한 것이다. 뒤에 태어난 여자 형제를 妹(매)라 하고 妻(처)의 姊妹(자매), 즉 처제나 처형을 姨(이)라 하고 형부나 자부를 私(사)라 한다.

장강의 일은 패풍(邶風) 녹의(綠衣) 편에도 보인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이르기를, “ 장강이 아름다웠으나 아들이 없어 위나라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석인(碩人)을 노래했다.”고 했다. 이 첫 장은 장강의 일족을 거론하여 그 귀함을 극칭하고 적실의 소군(小君)으로 높였다. 자식이 없다고 장강을 버린 위장공의 혼미함을 탄식했다.

二.

手如柔荑 膚如凝脂(수여유이 부여응지)

손은 부드러운 띠싹 같고, 살결은 기름처럼 윤이 나네

領如蝤蠐 齒如瓠犀(영여추제 치여과서)

목덜미는 나무굼벵이 같고, 가지런한 흰 이는 박씨와 같네

螓首蛾眉 巧笑倩兮(진수아미 교소천혜)

매미같은 이마에 나방의 눈썹, 미소짓는 보조개는 너무 어여쁘고,

美目盼兮(미목반혜)

초롱초롱한 눈은 곱기도 해라!

띠풀이 처음 난 것을 荑(이)라 하는데, 부드럽고 새하얀 것을 말한 것이다. 凝脂(응지)는 기름이 차가운 기운에 엉긴 것이니, 하얗게 빛나는 살결을 말한 것이다. 領(영)은 줄기이다. 蝤蠐(추제)는 하얗고 긴 나무굼뱅다. 瓠犀(호서)는 하얀 박속에 박힌 씨로 미인의 고르고 반듯하게 밝힌 하얀 치아를 뜻한다. 螓(진)은 그 이마가 넓고 아름다운 작은 매미로 미인의 이마를 말하고 蛾(아)는 누에이니, 그 눈썹이 가늘고 길며 동그랗게 구부러졌음을 뜻한다. 倩(천)은 보조개가 아름다운 것이고, 盼(반)은 눈동자의 흑백이 분명한 것이다.

이 장은 장강의 용모가 아름답다는 것을 찬미한 것이다.

三.

碩人敖敖 說于農郊(석인오오 세우농교)

도도하고 아름다운 석인님, 위나라 교외에 묵으셨다.

四牡有驕 朱幩鑣鑣(사모유교 주분표표)

수레 끄는 네 필의 말은 늠늠하고,

재갈을 장식한 붉은 색의 천은 찬란하다.

翟茀以朝 大夫夙退(적불이조 대부숙퇴)

뀡깃 장식의 수레에 포장치고 입조하니, 대부들은 일찍 퇴궐하여

無使君勞(무사군로)

우리 임금님 수고롭게 하지 마세나

敖敖(오오)는 키가 훤칠하고 아름다운 모양이다. 說(세)는 머무러 유숙함이다. 農郊(농교)는 도성 밖 근교다. 四牡(사모)는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이고 驕(교)는 말이 씩씩한 모양이다. 幩(분)은 말의 재갈을 장식하는 천으로 주분은 군주되는 사람이 달 수 있는 장식이다. 鑣鑣(표표)는 성함이다. 적(翟)은 翟車(적거)이니, 부인이 타는 수레는 꿩깃으로 수레를 장식한다. 茀(불) 부녀자들이 타는 수레의 앞뒤를 가리는 포장이다. 夙退(숙퇴)은 일찍 물러감이다. 大夫夙退(대부숙퇴) 無使君勞(무사군로)는 대부들은 일찍 조회을 끝내고 퇴궐함으로 해서 위후(衛侯)가 새로 얻은 어여쁜 부인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장강이 제나라로부터 시집올 때에 위나라 도성의 근교의 역사에 멈추어 유숙했다가 다음 날 위나라 궁궐에 들어갈 때 그 일행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국인들이 기뻐하고 여러 대부들이 임금에게 조회하는 것은 마땅히 일찍 물러나서 임금으로 하여금 정사에 수고로움이 없도록 한 결과 대부들과 사이가 소원하게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장강이 자식이 없다고 해서 총애하지 않게 된 것을 탄식한 것이다.

四.

河水洋洋 北流活活(하수양양 불류괄괄)

양양한 하수는 북으로 세차게 콸콸 흐르는데

施罛濊濊 鱣鮪發發(시고활활 전유발발)

그 물에 그물 던지니 팔딱이는 전어와 다랑어

葭菼揭揭 庶姜蘖蘖(가담걸걸 서강얼얼)

물가의 갈대풀 길게 우거져 있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몸종들은 뒤따르고

庶士有朅(서사유흘)

수행하는 무사들 씩씩도 하네

하수(河水)는 제(齊)나라의 서쪽과 위(衛)나라의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바다로 들어가간다. 洋洋(양양)은 성대한 모양이요, 活活(괄괄)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양이다. 鱣魚(전어)는 용과 흡사하고 노란색의 머리에, 예리한 입이 턱 아래에 있으며, 등 위와 배 아래에 모두 껍질이 있으니, 큰 것은 천근이 넘는 것도 있다. 鮪(유)는 전어와 흡사한데 작고 색은 청흑색이다. 發發(발발)은 기가 성한 모양이다. 菼(담)은 갈대인데 , 또한 荻(적)이라고도 한다. 揭揭(걸걸)는 기름이다. 庶姜(서강)의 서(庶)는 무리이니 장강을 따라온 몸종들을 뜻한다. 孽孽(얼얼)은 화려하게 치장한 모양이고 庶士(서사) 역시 장강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나선 무사들이다. 朅(흘)은 씩씩한 모양이다.

크고 풍요로운 제나라에서 위나라 군주의 부인으로 시집을 오는 장강이 용모가 빼어나게 예쁘고 또한 예절에도 밝고 그 행렬이 성대하니 위나라 국인들이 매우 기뻐해 노래했다.

※역주(譯註)

정(鄭)나라를 공격한 다섯 제후국 중 산동성 곡부시(曲阜市) 부근의 노나라를 제외한 네 나라의 소재지와 연혁은 다음과 같다.

위(衛)

원래 은(殷)나라의 도성이었다가 주무왕이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을 죽이고 그 땅에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제후로 봉해 은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무왕(武王)은 무경 녹보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 등 세 명의 동생을 은나라의 감시하는 삼감(三監)으로 임명하고 은나라의 영토를 패(邶), 용(鄘), 위(衛) 세 지방으로 나누어 세 사람에게 각각 한 지방씩 맡겨 감시하게 했다. . 후에 무왕이 죽고 주공이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삼감이 무경 녹보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 . 주공이 반란을 진압하고 은나라 백성들의 일부를 상(商) 땅으로 소개시키고 나머지 유민들이 사는 땅에 주공의 막내 동생인 강숙(康叔)을 봉했다. 원래 위나라의 소재지는 현재 하남성 동북쪽 황하 북안의 기현(淇縣)이었으나 주위의 강대국과 북융(北戎)의 침입을 받아 도성을 수차에 걸쳐 다음과 같이 옮겼다.

①조가(朝歌)/ 원래 도읍지로 현 하남성 기현(淇縣) 부근

②조(漕)/ 조가에서 황하를 건너 동으로 약 40키로

③초구(楚丘)/조에서 동쪽 약 10키로

④제구(帝丘)/ 현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부근

전국시대에 이르러 위(衛)나라는 후에 삼진(三晋)의 한 나라인 위(魏)나라에 영토를 계속 잠식당하고 후에 복양성(濮陽城)에서 쫓겨나 지금의 산서성 심양현(沁陽縣)인 야왕성(野王城)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다시 진나라 이세황제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여 춘추 제후국 중 가장 오래 존재했다.

송(宋)

위나라 땅에 살았던 은나라 유민의 일부를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邱市)였던 상 땅으로 소개시키고 주왕(紂王)의 서형인 미자개(微子開)를 그곳에 봉한 나라로 그 도성을 수양성(睢陽城)이라고 했다. 주공은 송군이 은나라의 왕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그 작위를 왕실과 동격인 공으로 정했다. 송나라의 봉지 상 땅은 원래 은나라가 일어난 곳이며 은나라의 원래 이름인 상나라는 이곳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송나라는 기원전 285년 위(魏), 초(楚) 두 나라와 연합한 제나라의 민왕(湣王)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영토는 세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진(陳)

호공(胡公) 만(滿)은 순임금의 자손이다. 순임금이 평민의 신분이었을 때 요임금이 그의 두 딸을 주어 규예(嬀汭)라는 곳에서 살게 했던 관계로 그 후손의 성씨는 규씨(嬀氏)가 되었다. 순임금이 죽자 천하는 우임금에게 넘어가 순임금의 아들 상균(商均)은 일개 제후의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 하왕조 때 순의 제사는 끊기게 되어 은왕조에 이르게 되었다. 주무왕이 은의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울 때 순의 후손 중 규만(嬀滿이라는 사람을 찾아 진(陳)에 봉하고 순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 규만이라는 사람이 호공(胡公)이다. 기원전 672년 진(陳)나라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나 제나라로 망명한 공자완(公子完="陳敬仲)을 제환공은 대부로 삼아 전(田)에 봉했다. 진완의 후손들은 성씨를 전씨(田氏)로 바꿑 후 계속 번창해 제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윽고 기원전 386년, 전화(田和)의 대에 이르자 강성(姜姓)의 제나라 정권을 탈취하고 전성(田姓)의 제나라를 세웠다. 전화는 주천자로부터 정식으로 제나라 군주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본국인 진나라는 기원전 479년 초혜왕(楚惠王)의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진나라의 위치는 현 하남성 주구시(周口市) 동쪽 30키로 지점의 회양시(淮陽市) 부근이다.

채(蔡)

주무왕의 동생으로 관숙(管叔), 곽숙(霍叔)과 함께 은나라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감시하는 삼감(三監)에 임명되었으나 주무왕이 죽고 주성왕이 나이가 어려 주공단이 섭정에 올라 주나라 정사를 독단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관숙 및 곽숙과 함께 녹보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 주공단은 은나라의 반란을 진압한 다음 관숙을 죽이고 채숙과 곽숙은 나라 밖으로 추방했다. 채숙은 유랑 중에 죽고 아들 채호(蔡胡)가 그의 부친의 잘못을 뉘우치며 덕을 쌓고 선행을 행했다. 주공단이 듣고 채호를 불러 노나라의 경사 직을 맡겼다. 채호의 노력에 의해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 지자 주공단이 그 공을 높이사서 성왕에게 품하여 채숙의 봉지였던 채읍(蔡邑)을 채호에게 돌려주고 채숙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채호가 채중(蔡仲)이다. 채나라의 소재지는 현 하남성 남부 탑하시(漯河市) 남쪽 40km 지점에 위치한 상채시(上蔡市) 부근이었으나 남방의 강국 초나라에 시달려 그 도읍을 여러 번 옮기다가 결국은 초혜왕(楚惠王)에 의해 기원전 446년 멸망당하고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 및 괵공(虢公)

1. 주공(周公)

① 주무왕의 동생 희단(姬旦)을 말한다. 채읍이 지금의 섬서성 기산(岐山) 동북인 주읍(周邑)이다. 주읍은 주족(周族)이 고공단보(古公亶父)를 따라 빈 땅을 떠나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건너 이주하여 기산 밑에 정착한 주족의 선주지이다. 후에 주공(周公) 단(旦)은 노나라에 봉해졌다. 이어서 그의 형인 주무왕이 일찍 죽자 나이가 어린 주성왕(周成王)을 대신하여 주왕의 자리에 올라 섭정을 했다. 주나라가 안정을 찾고 성왕이 장성하자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다시 신하의 자리에 돌아가 섰다. 공자로부터 성인으로 추앙 받았다.

②주려왕과 선왕(宣王) 때의 명신으로 이름은 실전되었다. 주공단의 차자 희군(姬君) 진(陳)의 후예이다. 주려왕 때 주공의 작위에 올랐다. 기원전 841년 공화 원년에 려왕의 폭압정치에 국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려왕이 체 땅으로 달아났다. 이에 주공과 소공(召公)이 힘을 합쳐 대신 나라를 다스렸다. 공화 14년 려왕이 체 땅에서 죽자 주공과 소공은 대신들과 함께 태자 정(靜)을 주왕에 추대하고 주나라의 통치권을 돌려 주고 자신들은 경사(卿士)자리에 돌아가 국정을 도왔다. 태자 정이 주선왕이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선왕은 주나라의 중흥을 이룰 수가 있었다.

③주공(周公)이라는 뜻은 위의 두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읍에 봉해진 작위를 말하기도 한다. 주나라가 창건될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주무왕의 동생 주공 단은 처음에는 주족들의 선주지였던 주읍에 봉해져 주공이라고 하다가 다시 노나라에 봉해져 노공(魯公)이라고도 했다. 노나라는 자기의 장남인 백금에게 물려주고 주공의 자리는 둘째 아들인 희군(姬君) 진(陳)에게 물려주었다. 진에게 전해진 주공이란 작위는 그 후손들에게 계속 세습되었다. 따라서 주공이란 주읍에 봉해진 작위를 말하는 일반 명칭이기도 하다.

2. 소공(召公)

①주무왕을 도와 주왕조를 창건한 세 명의 창업공신인 삼공중의 한 사람이다. 삼공이란 태공(太公) 여상(呂尙), 주공(周公) 단(旦), 소공(召公) 석(奭)을 말한다. 태공은 제(齊)에, 주공은 노(魯)에, 소공(召公)은 연(燕)에 봉해졌다. 주무왕이 죽자 그 뒤를 이은 성왕이 나이가 어려 주공과 소공이 섭정을 하였다. 주공과 소공은 주나라의 영토를 둘로 나누어 현재 하남성 섬현(陝縣)의 이서 지역, 즉 섬서 지역은 소공이, 이동 지역은 주공이 다스리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두 사람은 주나라의 통치권을 되돌려 주었다. 현재 주나라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서주의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을 섬서성(陝西省)이라는 이름 지은 것은 섬(陝) 땅 이서(以西) 지역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본문에서 언급한 락읍(洛邑)은 주공이 섬현 이동의 지역을 통치할 때 치소(治所)로 세워진 성이다. 소공이 섬서를 다스릴 때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해 부른 노래가 감당나무란 제목으로 시경 국풍 중 소남에 실려있다.

②소공이라 함은 위의 주읍에 봉해진 주공처럼 주족의 원주지인 기산 부근의 고을인 소읍에 봉해진 제후를 일컫는 말로써 그 작위가 계속 세습되면서 주왕실에 나와서 봉직하였다.

3. 괵(虢)

괵은 주문왕의 동생들인 희중(姬仲)과 희숙(姬叔)이 봉해진 제후국의 이름이다. 괵국의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1) 동괵(東虢)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 부근에 주문왕의 동생 숙이 봉해진 제후국이며 주평왕4년 기원전 767년 정무공에 의해 멸망당하고 정나라 영토에 편입되어 그 도성은 경성(京城)이라고 이름 지었다. 경성은 정장공의 동생 공숙단이 이 곳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킨 곳이다.

2) 서괵(西虢)

주문왕의 동생 괵중이 봉해진 제후국으로써 지금의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부근에 있었다. 서주가 망하고 낙읍으로 동천하자 서괵도 주나라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괵으로 칭했다.

3) 북괵(北虢)

서괵이 동천하여 지금의 하남성 상양성(上陽城) 옮긴 후 그 나라 이름을 북괵이라 했다. 주혜왕(周惠王) 22년 (기원전 655년) 헌공(獻公) 치세 때인 당진(唐晉)의 순식(荀息)이 펼친 가도멸괵(假道滅虢)작전에 의해 멸망당했다.

4) 小虢(소괵)

서괵의 주력이 동쪽으로 이주하고 잔존 세력이 남아 나라를 유지시킨 나라를 일컫는다. 주장왕 10년 (기원전 687년) 섬진(陝秦)의 무공(武公) 11년에 의해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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