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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0 12:14:5911460 
제2회. 贖罪獻美人(속죄헌미인), 烽火戱諸侯(봉화희제후)
양승국   (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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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2회

贖罪獻美 烽火戲諸侯(속죄헌미 봉화희제후)

유왕에게 미녀를 바쳐 속죄한 포성의 성주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회롱한 주유왕

성문 밖 동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목숨을 돌려 달라는 두백(杜伯)과 좌유(左儒)의 혼백을 만나 병을 얻어 궁으로 돌아온 주선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고 약을 먹지 않았다. 자리에 누운지 3일이 되어도 선왕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 그때 주공(周公)은 나이가 들어 벼슬을 버린지 오래고 중산보는 이미 죽고 없어 단지 윤길보와 소호 두 사람만이 조정을 지키고 있었다. 자기의 병세가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후사를 부탁하기 위해 선왕은 두 원로대신을 불렀다. 두 신하가 왕의 침상 바로 앞에 와서 엎드려 인사를 올렸다. 주선왕이 내시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화려하게 수를 놓은 요에 기대어 두 신하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 경들의 힘으로46년 동안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남정북벌(南征北伐)하여 세상을 평안하게 했으나, 병 때문에 자리에서 못 일어날 줄은 몰랐소. 태자 궁열(宮涅)은 나이는 비록 들었다 하나 성격이 공정하지 못하고 암매하니, 경들은 있는 힘을 다해 사직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좌하기 바라오!」

윤길보와 소호 두 대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받았다. 두 사람이 궁문을 나오다가 태사 백양보를 만났다. 소호가 선왕의 유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자 백양보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지난번 동요에서 나는 이미 궁시지변이 걱정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사냥터에서 주상께서 몸소 성난 귀신이 쏜 주궁적시(朱弓赤矢)를 맞고 병을 얻었으니 그 예언이 이미 발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왕께서는 이번에는 아마도 일어나지 못하실 것입니다.」

소호가 듣고 말했다.

「내가 하늘의 천문을 보니 요성(妖星)이 천자의 자리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나게 되면 왕 한 사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곁에 있던 윤길보가 거들었다.

「하늘이 사람의 일을 정하고, 사람이 또한 하늘의 일을 정하니 여러분들은 단지 천도(天道)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우리 주나라는 삼공육경이라도 몸 붙여 살 땅이 없겠습니다.」

두 사람이 백양보와 말을 마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주나라의 수많은 대소 관리들이 왕의 안부를 묻기 위해 궁궐 문 앞으로 몰려왔다. 어체가 매우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대소 관리들은 그날 밤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날 저녁을 못 넘기고 주선왕이 죽었다. 강후(姜后)가 유지를 받들어 고명노신(顧命老臣) 윤길보와 소호에게 명하여,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태자 궁열을 보좌하여 상례를 치르게 했다. 태자 궁열이 선왕의 관 앞에서 즉위하니 이가 곧 주유왕(周幽王)이다. 이때가 주선왕 46년 기원전 780년이었다.

선왕이 죽은 다음 해인 기원전781년은 주유왕 원년이다. 신백(申伯)의 딸 신후(申后)를 왕비로, 의구(宜臼)를 태자로 삼고, 신백은 작위를 신후(申侯)로 삼아 한 등급 올렸다. 사관이 시를 지어 주선왕이 일으킨 중흥의 덕을 찬미했다.

선왕이 치세를 빛내어

온 세상에 덕이 베풀어지게 되었다.

먼 오랑캐 땅 끝가지 위엄을 떨치고

변란을 진압하여 사직을 보전케 했다

바깥일은 중산보가, 내전의 일은 강후가 있어

치세를 크게 일으킬 수 있었고

부왕의 좋은 유업은 계승하고

나쁜 제도는 개변하여 중흥의 깃발을 올렸다.

於赫宣王 今德茂世(어혁선왕 금덕무세)

威震窮荒 變消鼎雉(위진궁황 변소정치)

外仲內姜 克襄隆治(외중내강 극양융치)

干父之蠱 中興入幟(간부지고 중흥입치)

1. 地震議政(지진의정)

- 천재로 폐허가 된 나라에 미녀만을 구하는 주유왕 -

선왕의 죽음을 너무 슬퍼한 강후도 몸이 상해 얼마 후에 죽었다.

선왕의 뒤를 이은 유왕이라는 위인은 성격이 포악하고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할 뿐만 아니라, 변덕이 무상한 위인이었다. 선왕이 죽어 상복을 입고 초막에 기거할 때도, 시정 무뢰배들과 육식과 술을 전혀 거리낌 없이 먹으면서, 부친이 죽음에 대해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더욱이 강후마저 죽은 후로는 아무도 거리낄 사람이 없어 성색(聲色)만을 탐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유왕의 그런 행위에 대해 국구 신후가 누차 간했지만 듣지 않자 신후도 자기 봉읍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른 한편, 주나라의 기운이 다하려고 해서 그런지 윤길보, 소호 등 일반 노신들도 연이어 죽었다. 유왕은 괵공(虢公), 제공(祭公)과 윤길보의 아들 윤구(尹球)를 삼공으로 임명했다. 세 사람은 모두가 남을 헐뜯고 아첨을 일삼으며, 벼슬자리와 녹봉만을 탐하는 무리였다. 그들은 모두 왕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몸을 돌보지 않고 찾아다가 바쳤다. 그 때는 오로지 사도(司徒) 정백(鄭伯) 우(友)①만이 올바른 사람이었지만 유왕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루는 유왕이 조정에서 정사를 보는데 기산(岐山)을 지키는 관리가 달려와 고했다.

「경수(涇水)②, 낙수(洛水), 하수(河水)의 세 강의 주변이 한꺼번에 지진이 났습니다.」

유왕이 듣고 말했다.

「산이 무너지거나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인데, 구태여 왕에게 고하여 번거롭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유왕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며 미소를 머금고 조정에서 물러나 궁궐로 뒤돌아 갔다. 태사 백양보가 대부 조숙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기산에서 발원하는 삼천이 모두 마르면 호(胡) 땅에 지진이 일어나게 됩니다. 옛날 낙수가 마르자 하나라가 망했고, 하수가 마르자 상나라가 망했습니다. 지금 삼천 주변의 땅에 지진이 나면 강의 물길이 막히고, 강바닥이 말라 산은 반드시 무너지게 됩니다. 기산은 곧 태왕(太王)④이 우리 주족을 일으킨 곳인데 이 산이 무너지면 주나라도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만일 나라에 변란이 일어난다면 그때가 언제 이겠습니까?」

「10년 이내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선행이 쌓이면 복이 되고 악이 쌓이면 화가 됩니다. 10년이면 모두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⑤

「천자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간사한 사람들을 불러서 곁에 두고 쓰고 있으니, 내가 대부의 벼슬을 걸고 마음을 다하여 간해야 되겠습니다.」

「간할 수는 있겠으나 별로 소용이 없을까 걱정됩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서서 나눈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괵공 석보에게 먼저 달려가 조숙대가 유왕에게 간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석보는 조숙대가 간할 경우 자기가 망녕된 신하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까 두려워 곧바로 궁궐로 들어가 백양보와 조숙대가 서로 나눈 이야기를 유왕에게 고해 바쳤다. 석보는 그 두 사람이 조정을 비방하고 요사스러운 말을 퍼뜨려 백성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유왕에게 참소했다.

유왕이 듣고 말했다.

「어리석고 망령된 자들이 국정을 논하는 일은 마치 허허벌판에서 하늘에 대고 하는 화풀이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 내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겠는가?」

한편 조숙대는 한 가닥의 충의지심(忠義之心)을 가슴에 품고, 유왕게게 여러 번 나아가서 간하고자 했으나 좀처럼 기회를 잡기가 힘들었다. 며칠이 지나 기산을 지키는 관리가 다시 표문를 올려 보고했다.

「삼천의 강바닥이 모두 마르고 뒤이어 기산이 무너졌습니다. 흙더미에 깔려 부셔진 백성들의 집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기산이 무너졌다는 표문를 받고도 아무런 내색도 보이지 않던 유왕은 오히려 좌우에게 미색을 구해 부족한 후궁을 채우라는 엉뚱한 명을 내렸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조숙대가 준비해 뒀던 표문를 올려 간했다.

「산이 무너지고 강바닥이 마른 일은 사람에게 있어서 지혈이 모두 굳어 버린 형상과 같으며,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위태롭게 되어 모두 낮은 곳으로 추락하려고 하는 형국입니다. 그것은 곧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항차 왕업이 일어난 기산이 무너졌으니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왕께서는 정사를 부지런히 돌보아 백성들을 위무하여야 하고, 현자를 구하여 정사를 보좌케 해야만 하늘에서 내린 변란을 미구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현자를 찾지 않으시고 미색만 찾으십니까?」

괵석보가 앞으로 나와 조숙대를 비난했다.

「나라의 도읍을 풍호(豊鎬)에 정한지 천추만세(千秋萬歲)가 되었습니다. 기산을 버리기를 이미 헌 신발처럼 하였거늘 지금에 와서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숙대는 오랫동안 군주의 마음을 어지럽히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주숙대의 말은 왕을 비웃고 비방코자 하는 마음을 빗댄 것입니다. 왕께서는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

「석보의 말이 옳도다.」

유왕은 그 즉시 조숙대를 파직하고 성밖의 들판으로 쫓아냈다. 조숙대가 한탄하며 말했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변란이 있는 나라에는 살지 말라!’고 했거늘 나는 주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는 살 수가 없다.」

조숙대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가족을 데리고 당진(唐晉) 땅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사람이 바로 후에 당진에서 유력가문을 이루는 조씨 집안의 시조이다. 현인으로 이름이 높은 조쇠(趙衰), 조돈(趙盾)이 그 후예이고 조씨는 나중에 한(韓), 위(魏) 두 종족과 당진을 삼분하여 조나라를 일으키게 된다. 이는 먼 훗날 이야기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충신이 난을 피하여 북쪽으로 가버리니

세상의 운세도 따라 동쪽으로 옮기려 하는구나!

옛날부터 노신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거늘

현인이 떠나니 나라는 텅 비게 되었도다!

忠臣避亂先歸北(충신피란선귀북)

世運凌夷漸欲東(세운능이점욕동)

自古老臣當愛惜(자고노신당애석)

仁賢一去國虛空(인현일거국허공)

포성(褒城)의 대부 포향(褒珦)이 조숙대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와 유왕을 배알하고 간했다.

「천자께서 하늘의 변란은 두려워하지 않고 어진 신하를 쫓아내니, 나라가 공허하게 되고 사직을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유왕이 대노하여 포향을 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 후로는 간하는 자가 없어지고 어진 신하들과 호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2. 헌미속죄(獻美贖罪)

- 포성의 성주가 미녀를 바쳐 죄를 용서받다 -

한편 뽕나무 활과 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팔려다가 도망친 남자는 요녀를 가슴에 품고 포성으로 가서 기르고자 하였으나, 갓난아이에게 먹일 젖이 없었다. 마침 사대(姒大)라는 사람의 아내가 있었는데, 여아를 낳았으나 바로 죽어서 애를 기를 수 없었다. 사대는 약간의 비단과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가서, 갓난아이에게 젖을 얻어 먹였다. 이윽고 갓난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자 이름을 포사(褒姒)라고 지었다. 나이는 비록 열 네 살이었지만 키가 크고 신체가 발달하여 시집 갈 수 있는 16살 먹은 처녀처럼 보였다. 게다가 수려한 눈과, 청초한 눈썹, 붉은 입술, 새하얀 치아,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카락, 옥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손가락 등, 마치 꽃과도 같고 달과도 같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자태였다. 하지만 사대가 외진 시골에 살았고, 또한, 포사는 당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비록 천하절색이었지만 그 때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한편 포향에게는 홍덕(洪德)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홍덕이 포성 밖에 사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기 위해 마을에 왔다가, 포사가 집밖으로 나와서 우물에서 물을 기르고 있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비록 차림새는 시골 여자였지만, 타고난 국색(國色)의 자태를 숨길 수는 없었다. 홍덕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이렇게 궁벽한 시골구석에 어떤 연유로 천하절색의 미인이 살고 있단 말인가?」

홍덕은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부친이 호경의 감옥에 갇힌 지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석방되지 않고 있다. 만약 이 여인을 사서 천자에게 바치면, 부친께서 속죄를 하고 풀려나올 수 있음이라!」

그 즉시 홍덕은 이웃집에 가서 포사의 성과 이름을 자세히 알아 본 후에 집에 돌아와 모친에게 고했다.

「부친께서 왕의 잘못을 간하다가 죄를 얻었는데,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큰 죄가 아닙니다. 오늘날 천자가 황음무도하여 사방에서 미녀를 사다가 후궁을 삼고 있습니다. 성밖에 사는 사대라는 사람에게 자태가 비상한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많은 돈을 주고 사서 천자에게 바치면 마치 은나라 말년에 산의생(散宜生) 등이 계책을 내어 주문왕을 감옥에서 구출해 냈듯이⑥ 아버님을 구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홍덕의 모친이 말했다.

「너의 계획을 이룰 수만 있다면 어찌 재화를 아까워 할까보냐? 너는 재물과 금품을 들고가 속히 사대의 집에 가서 포사를 데려오도록 하여라!」

곧바로 사대의 집으로 달려간 홍덕은 비단3백 필을 주고 포사를 사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홍덕은 매일 사람을 시켜 그녀의 몸을 향수를 뿌린 물에 목욕시키고, 수를 놓은 비단옷을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예절을 가르쳤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포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뀌었다. 이윽고 포사를 데리고 호경으로 들어간 홍덕은 먼저 괵공에게 뇌물을 은밀히 바치며 포사의 일을 고하고 자기 부친이 석방될 수 있도록 유왕에게 상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조회에 나간 괵공이 유왕에게 진언했다.

「포성의 신하 향이 자기가 만 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고, 그 아들 홍덕도 그 부친이 죽을 경우 다시 살아 날 수 없음을 애통히 여겨 특별히 포사라는 미인을 구하여 진상하여, 그 아비의 죄를 속죄하겠다 합니다. 바라옵건대 왕께서는 부디 포향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왕이 듣고 포사를 궁전으로 불러 전당에 오르게 했다. 절을 하고 춤을 춰 알현하는 절차가 끝나자 유왕은 포사에게 머리를 들게 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자태는 유왕은 그때까지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포사의 몸에 왕의 눈길이 닫자 아름다운 광채가 일어나 사방에 비치는 듯하니, 과연 경국지색의 여자였다. 유왕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비록 나라 안과 밖에서 헌상한 미녀들이 많이 있었지만, 포사의 만분지일도 못 미쳤다. 희희낙락한 유왕은 신비에게 미처 알릴 틈도 없이 그 즉시 포사를 별궁에 머물게 한 후에 곧바로 포향의 죄를 사하여 석방하고 그의 예전 관직과 작위를 돌려주었다. 그날 밤 포사와 잠자리를 같이 한 유왕은 그 즐거움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나 노니는 것처럼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유왕과 포사는 앉으면 무릎을 맞대고, 서있게 되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음료는 맞바꾸어 마시고, 음식은 같은 그릇을 쓰게 되었다. 유왕은 계속해서 열흘 동안이나 조정에 나오지 않고 정사를 전폐했다. 군신들이 조문 앞에서 문안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모두가 유왕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탄식을 금치 못하고 물러 나왔다. 이것은 유왕 4년 기원전 788년의 일이었다. 이 일을 두고 노래한 시가 있다.

아름다운 꽃을 얻었는데 바로 경국지색이라

형만의 포백을 주고 사서 궁궐의 침상으로 보내니

풍류천자는 정사를 혼미해져 정사를 잊었도다.

용의 침이 발현하여 재앙이 시작되었음이라!

折得名花字國香(절득명화자국향)

布荊一旦荐匡床(표형일단존광상)

風流天子渾閑事(풍류천자혼한사)

不道龍漦已伏殃(부도용시이복앙)

3. 褒姒得宠(포사득총)

- 궁궐로 들어가 주유왕의 총애를 받게 된 포사 -

유왕이 포사를 얻은 이래 포사의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경대(瓊臺)에 머물게 한지 3개 월이 지났으나 그때까지 포사는 신비에게 들려 인사를 올리지 않았다. 이 일을 궁중 사람들이 알고 신비에게 그 전후의 일을 자세히 일러 바쳤다. 신비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시녀들을 데리고 경대로 올라갔다가, 유왕과 포사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포사는 신비를 보고도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 맞이하지 않았다. 신비가 참지 못하고 포사를 꾸짖었다.

「어찌 천한 계집이 궁궐의 규율을 어지럽히느냐?」

신비가 포사에게 해를 입힐까 걱정된 유왕은 그의 몸으로 신비의 앞을 가로막으며 포사를 변호했다.

「이것은 짐이 미인을 새로 얻었으나, 아직 그 직첩을 정하지 못하여 배알을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오. 너무 화내지 마시오.」

신비가 한바탕 큰소리로 꾸짖고 나서 분함을 머금은 채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포사가 유왕에게 물었다.

「지금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왕비다. 너는 내일 왕비에게 가서 인사를 올리도록 하라!」

포사가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었으나 포사는 왕비의 처소를 찾지 않았다. 신비가 내궁에서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을 때, 문안인사를 올리기 위해 방문한 태자 의구가 신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모친께서는 육궁의 주인이신 데 어찌하여 언짢은 표정을 하고 계십니까?」

「너의 부왕께서 포사에 빠져 왕비의 위엄을 세워 주시지 않는구나! 앞으로 그 천한 계집이 때를 만나 득세하게 되면 우리 모자는 발붙일 데가 없을 것 같구나!」

포사가 왕비인 자기에게 배알을 하러 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몸소 경대에 들렸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쳐다보기만 한 일을 자세히 태자에게 일러주면서, 부지중에 눈물을 흘렸다. 태자 의구가 신비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다지 크게 고민하실 일이 아닙니다. 내일은 바로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삭일(朔日)입니다. 부왕께서는 삭일에는 반드시 조당에 나가 정무를 보셔야합니다. 그 시간에 맞춰 모친께서 궁녀들을 보내 경대의 화단에 있는 꽃을 따게 하시면 포사가 밖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내고 살필 것입니다. 그때 제가 나타나 그 계집을 몇 대 쥐어박아 모친의 분기를 풀어 드리겠습니다. 만일 부왕께서 아시고 노하시면 저를 책하실 것입니다. 모친과는 무관한 일로 하겠습니다.」

「세자의 몸으로 이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자.」

태자 의구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모후의 처소에서 물러나왔다.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날 아침, 과연 유왕이 조정에 나가자 여러 신하들이 그 달의 초하루를 축하했다. 그 사이에 태자가 일부러 궁녀 수십 명을 경대 아래로 보내 불문곡직하고 화단에 핀 꽃의 봉오리를 마구 따버리도록 시켰다. 그러자 경대 안에서 한 무리의 궁녀들이 뛰어 나와 태자가 보낸 궁녀들의 앞을 막고 말했다.

「이 꽃들은 우리 포랑랑(褒娘娘)께서 수시로 감상하신다. 함부로 꺾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죄가 엄중할 것이다.」

태자가 보낸 궁녀들이 대답했다.

「동궁의 명을 받들어 꽃봉오리를 따서 왕후마마에게 바치려고 하는우리들을 누가 감히 방해하느냐?」

이윽고 양쪽 궁녀들이 목소리를 높여 싸우게 되었다. 궁녀들이 싸우는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와 그 연유를 물어 자초지종을 알게 된 포사는 마음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태자가 나타나자 포사는 전혀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가 없었다. 원수 같은 포사를 발견한 태자는 눈을 부릅뜨고 계단 위로 뛰어 올라 포사의 검은 머리채를 잡고 큰소리로 욕했다.

「천한 계집년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어디서 감히 망령되게 랑랑(娘娘)이라고 호칭하며 안하무인으로 행세하느냐? 오늘 너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겠다.」

태자 의구가 한 손으로는 포사의 머리채를 잡더니,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쥐고서 때리기 시작했다. 태자가 계속 포사의 몸을 주먹으로 때리자 여러 궁녀들이 유왕에게 죄를 받을까 걱정하여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 높여 외쳤다.

「태자마마, 화를 참으시고 랑랑의 목숨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을 부왕께서 아시게 될 테인데 어떻게 용안을 보려고 하십니까?」

태자가 그 말을 듣고 포사의 목숨이 끊어질까 걱정하여 손쓰기를 멈추었다. 포사가 치욕스러운 심정으로 고통을 참으면서 경대 안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신비의 분기를 태자가 대신하여 화풀이 했음을 알게 된 포사는 억울함에 못 이겨 흐느껴 울었다. 포사를 모시는 궁녀들이 위로하면서 말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태자의 부왕이신 대왕이십니다. 랑랑께서는 너무 슬피 울지 마십시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조정의 일을 서둘러 끝내고 곧바로 경대로 들어온 유왕은 머리를 풀어 헤쳐지고 두 눈에는 주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던 포사를 보고 그 연유를 물었다.

「사랑스러운 그대가 어찌하여 오늘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고 있는가?」

포사가 유왕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방성대곡하면서 태자에게 당한 일을 고했다.

「태자가 궁녀들을 경대 아래의 화원에 끌고 와 꽃을 꺾게 하여 제가 나가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가 없는데 태자가 다짜고짜로 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궁녀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컨대 왕께서 저의 억울함을 살펴주소서!.」

말을 마친 포사가 큰소리를 내어 더욱 서럽게 울었다. 유왕이 마음속으로 그 전말을 짐작하고 포사에게 말했다.

「네가 태자의 모친인 왕비에게 알현을 하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이 일은 왕비가 시켜서 한일이지 태자가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 섭섭하다고 해서 일을 크게 만들면 안 될 것이다.」

「태자가 자기 모친의 분함을 갚기 위해 첩을 죽인다 할지라도 첩은 여한이 없사오나, 대왕의 몽은을 입어 첩은 회임을 하여 이미 두 달이 넘었습니다. 첩의 한 목숨은 즉 두 목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저를 궁 밖으로 내쳐, 저희 모자가 목숨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대는 안정이 필요하니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그 동안 내가 조치를 취해 놓겠다.」

유왕이 그날로 왕명을 내었다.

「태자 의구는 용기만 믿고 무례하여 장차 사직을 보존할 수 없겠다. 잠시 신국(申國)으로 보내어 외조부인 신후에게서 가르침을 받게 하고, 동궁의 태부(太傅)와 소부(少傅) 등의 관원은 태자를 잘못 보좌한 죄로 그 직을 삭탈한다.」

태자가 입궁 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했으나 유왕이 궁문에 태자를 들이지 말라는 명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길로 마차를 몰아 신국으로 가게 되었다. 신비가 오랫동안 태자가 입궁 하여 아침 문안을 드리러 오지 않자 궁녀들을 불러 알아보게 했다. 신비는 태자가 신국으로 쫓겨 갔다는 시실을 알았다. 신비는 고장난명(孤掌難鳴)의 신세가 되어 종일토록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4. 소반지변(小弁之變) *미주참조*

- 포사를 총애하여 태자와 왕비를 바꾸는 주유왕 -

포사가 회임한 지 만10개 월 만에 아들을 낳았다. 유왕이 보배처럼 애지중지 하여 이름을 백복(伯服)이라 지었다. 곧이어 적자인 의구를 태자의 자리에서 폐하고 백복을 세우려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자를 폐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여 당장에는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유왕의 뜻을 짐작한 괵석보가 윤구와 상의한 후에 비밀리에 포사를 찾아가 모의했다.

「태자는 이미 외가인 신국으로 쫓겨갔습니다. 마땅히 백복님께서 왕위를 물려받아야 합니다. 안으로는 침전에서 랑랑께서 대왕에게 호소하여 도모하시고, 밖에서는 조당에서 저희 두 사람이 협력하여 돕는다면 어찌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포사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두 분 대감께서 변치 않은 마음으로 저희를 도와 주셔서 우리 백복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해 주신다면, 천하는 마땅히 두 분의 대감과 같이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겠습니다.」

포사가 이때부터 좌우의 심복을 몰래 신비의 주변으로 보내 그녀의 잘못을 엿보게 했다. 궁궐 안팎에 심복으로 눈과 귀를 풀어놓아, 바람이 부는 것이나 풀잎이 움직이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같이 지내는 사람이 없이 홀로 살게 된 신비는 매일 종일토록 눈물을 흘리며 지내게 되었다. 신비의 측근에 나이가 지긋한 궁녀가 한 명 있었었다. 그녀가 신비의 마음을 알고 무릎을 꿇고 다가와 아뢰었다.

「왕후께서 태자마마를 그리워하신다면 편지 한 통을 쓰셔서 비밀리에 신국으로 보내 태자마마로 하여금 사죄의 표문을 대왕마마께 올리게 하십시오. 만약 대왕께서 감동하시어 태자마마를 환궁케 하면, 모자가 다시 상봉할 수 있으니 실로 좋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대의 말은 매우 훌륭하기는 하다마는 그 편지를 전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한이로구나!」

「저의 모친 온온(溫媼)은 의술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왕후께서 아프다는 핑계로 진맥을 보신다고 하면서 저희 모친을 부르십시오. 준비한 편지를 저희 모친에게 주어 궁궐 밖으로 내보내면, 저희 오빠를 시켜 신국에 계시는 태자마마께 전하면 됩니다.」

신비가 그 말을 따라서 편지 한 통을 썼다.

「천자가 무도하여 요부를 총애한 끝에 우리 두 모자가 이렇게 헤어져 살게 되었다. 지금 요부가 아들을 낳아 천자의 총애가 더욱 깊어졌다. 태자는 비록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거짓으로 죄를 인정하는 척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표문을 올리기 바란다. ‘오늘 저는 반성하여 각오를 새롭게 하였사오니 원컨대 저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다행히 태자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늘이 돕는다면 모자가 서로 상봉할 수 있게 되고 그 후의 일은 우리가 서로 만나서 별도의 방도를 의논하도록 하자!」

편지 쓰기를 마친 신비가 거짓으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침상에 드러누운 후에 온온(溫媼)을 불러 진맥을 보게 했다. 포사의 밀정이 이 일을 알고 포사에게 알렸다. 포사가 말했다.

「이것은 틀림없이 왕비 모자가 다리를 놓아 서로 소식을 전하려고 하는 일이다. 온온이 일을 끝내고 궁궐을 나가기 위해 궁문을 통과할 때 붙잡아 몸을 수색하면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신비가 사는 궁궐에 당도한 온온에게 그녀의 딸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신비가 거짓으로 진맥을 보게 하고 침상 곁에서 편지를 꺼내 온온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밤낮으로 달려가게 해서 이 편지를 신국에 있는 태자에게 전하기 바란다. 속히 전달하여 일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신비가 채색 비단 두 필을 온온에게 하사했다. 온온이 그 편지는 품속에 감추고 비단은 손에 들고 거리낌 없는 모습으로 궁문 쪽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궁문에 이르자 문을 지키는 궁감(宮監)에게 조사를 받게 되었다.

궁감이 온온을 심문했다.

「이 비단은 어떻게 얻었는가?」

「진맥을 보아준 대가로 왕후께서 직접 하사하신 것이오.」

「별도로 몸 속에 숨긴 물건이나 서신 같은 것은 없는가?」

「없습니다.」

온온이 궁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순간 한 사람이 뒤따라와 그녀의 앞을 막고 말했다.

「몸도 수색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물건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온온은 그 사람에게 붙들려 다시 궁문의 수비대 방으로 끌려갔다. 궁궐 문을 벗어낫다고 생각한 온온은 다시 불려온 까닭에 안절부절하며 당황하는 기색을 띄우게 되자, 궁감에게 더욱 의심을 받게 되었다. 궁감의 명을 받은 군사들이 일제히 온온 앞으로 달려들어 옷깃을 당겨 찢어 버리자 왕후가 준 편지가 품속에서 튀어 나왔다. 온온의 몸에서 신비의 편지를 발견한 궁감은 즉시 그녀를 편지와 함께 경대의 포사에게 연행했다. 겉봉을 뜯고 편지를 읽은 포사가 크게 화를 내며, 좌우에 명하여 온온을 쇠사슬로 묶어 빈방에 가둬 두게 했다. 포사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하고 신비가 하사한 비단 두 필은 가져오게 하여 모두 갈가리 찢어 버렸다. 정무를 끝내고 포사의 경대(瓊臺)에 들어온 유왕이 방안에 가득 쌓여 있는 찢어진 비단 조각을 보고 그 연유를 물었다. 포사가 울면서 대답했다.

「첩이 불행하여 깊은 궁궐에 몸을 담아 대왕의 은총을 잘못 입어 정궁(正宮)의 투기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제가 아들을 낳아 정궁의 투기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왕비가 태자에게 써서 보내려는 편지 말미에 ‘별작계교(別作計較)’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후에 계략을 써서 우리 모자 두 사람의 목숨을 반드시 뺏으려고 하는 뜻입니다. 원컨대 차라리 왕께서 친히 저희 모자를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포사가 바친 편지를 읽어 본 유왕은 그것은 왕비가 쓴 편지임을 알았다. 그 편지 심부름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포사가 말했다.

「온온이란 여자인데 제가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유왕이 온온을 끌고 오게 하여 불문곡직하고 칼을 빼어 그녀의 몸을 베어 죽였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이 이 일을 한탄했다.

깊은 궁중의 편지 한 통을 전하지 못하여

온온이 흘린 원한의 피가 튀어서 서리가 맺혔다

후일에 만일 태자가 무사했던 연유를 묻는다면

첫 번째 공은 마땅히 온온의 차지가 될 것이다.

未寄深宮信一封(미기심궁신일봉)

先將寃血濺霜鋒(선장원혈천상봉)

他年若問安儲事(타년약문안저사)

溫媼應居第一功(온온응거제일공)

그날 밤 포사가 유왕 앞에서 애교와 응석을 부려가며 말했다.

「이 천한 모자의 목숨은 태자의 손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왕인 내가 있는데 태자가 무엇을 어찌한단 말인가?」

「대왕께서 천수를 하신 후 어린 백복이 보위를 잇지 못하고, 더욱이 지금 궁궐에서 왕후가 우리에게 매일 원망과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후일에 태자 모자가 권력을 손에 잡으면 첩과 백복은 묻힐 땅조차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친 포사가 소리 내어 슬피 울고는 또다시 목을 놓아 통곡했다. 유왕이 포사를 달래며 말했다.

「내가 왕비와 태자를 폐하고 그대를 정궁으로 하고 백복을 동궁에 임명하겠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신하가 임금의 말을 따르는 일은 순리이며 임금이 신하의 말을 따르는 일은 역리입니다. 대왕께서 지금 말씀하신 뜻을 대신들에게 널리 알려 공론이 어떻게 되는지 우선 살펴보시고 난 후에, 여론에 따라 별도의 대책을 세우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그날 밤 포사는 심복을 괵석보와 윤구 두 사람에게 보내 내일 조정에서 준비한 대로 공론을 발하고 거기에 따르는 대답을 하도록 미리 단속했다. 다음날 아침 조례가 끝나자, 공경들을 전당으로 부른 유왕이 물었다.

「왕비가 후궁들을 질투하고 그에 대한 원망과 함께 짐을 빨리 죽으라고 저주하고 있어, 국모로 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잡아다가 죄를 묻고자 한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괵석보가 앞으로 나와 상주했다.

「왕비는 내궁의 주인인데 비록 죄가 있다하나 잡아다 죄를 주는 일은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덕이 부족하여 왕비의 자질이 없다면 왕명으로 정궁의 자리를 폐하면 됩니다. 정궁은 별도로 덕을 갖추고 슬기로운 사람을 택하여 국모로서의 예를 갖추어 모셔오게 되면 실로 만세의 복이 될 것입니다.」

윤구가 뒤를 이어 거들었다.

「신이 듣기에 포비가 덕이 높고 품성이 정숙하여 능히 중궁의 자리에 적합하다 하겠습니다.」

「만약에 신비를 왕비의 자리에서 쫓아낸다면 신국에 있는 태자는 어찌해야 하는가?」

괵석보가 말했다.

「그 모가 귀하게 되면 그 자식도 귀하게 되고 그 자식이 귀하게 되면 그 모도 귀하게 된다고 신은 들었습니다. 작금에 이르러 태자가 죄를 피하여 신국에 거하고 아침마다 드리는 문후의 예를 폐한지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하물며 태자의 모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하였는데 어찌 그 아들을 태자로 그냥 놔둘 수 있겠습니까? 신등은 원하옵건대 백복 왕자를 동궁에 봉하시면 사직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유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교지를 내려 신비를 중궁에서 쫓아내 냉궁에 유폐시키고 태자 의구도 동궁의 자리에서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포사를 정비로, 백복을 태자로 세웠다. 간언하는 자는 모두 태자 의구의 일당이라고 하여 멀리 떨어진 벽지로 쫓아냈다. 이 일은 유왕 9년 즉 기원전 773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문무의 신하들은 마음속에 불평을 품고 있었으나, 유왕이 뜻을 이미 정해 함부로 간했다가는 살신지화만을 당하고 아무런 이로운 일이 없을 것으로 알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5. 烽火戱諸侯(봉회희제후)

- 거짓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희롱하다.-

태사 백양보가 혼자 한탄하면서 말했다.

「삼강이 이미 끊어 졌으니 주나라의 멸망은 시간문제로구나!」

백양보는 그 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많은 대신들도 백양보를 뒤따라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조정에는 오로지 윤구, 괵석보, 제공이(祭公易) 등, 측근에는 망령된 신하들만 남게 되었다. 유왕은 내궁에서 조석으로 포사와 음락을 즐겼다. 포비가 비록 정궁의 자리를 강제로 빼앗아 유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아직껏 얼굴을 펴고 웃어 본적이 없었다. 유왕이 포비의 환심을 사서 웃어 보게 하려고 악공을 불러 종을 울리고 북을 치고, 대나무 피리를 불고, 가야금을 타게 하였고 궁녀들에게 춤을 추게 하고 술잔을 바치게 하였으나 포비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유왕이 포사에게 물었다.

「사랑스러운 그대가 음악을 듣기 싫어 하니 무슨 일로 그대를 즐겁게 할 수 있겠는가?」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으나 옛날에 오색 비단을 찢을 때 그 소리가 상쾌하여 마음이 즐거웠다는 생각이 납니다.」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면 어찌하여 일찍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유왕이 그 즉시 창고지기에게 명하여 오색 비단 백 필을 가져오게 하여 힘이 센 궁녀들을 선발한 후, 서로 맞잡고 찢게 만들어 그 소리로 포비를 즐겁게 했다. 포비가 비록 비단 찢어지는 소리를 즐기기는 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싫증이 나서 다시 옛날처럼 얼굴에 웃음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유왕이 물었다.

「왕비는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는가?」

「소첩은 일찍이 웃어 본적이 없습니다.」

「짐은 그대가 웃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구나!」

유왕이 명을 내려 문서로 만들어 세상에 공포하게 했다.

「궁 안이건 궁 밖이건 관계없이 포비를 한번 웃게 한 사람은 천금의 상을 주겠다.」

괵석보가 계책을 냈다.

「선왕께서 옛날 서융(西戎)이 강성할 때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여산(驪山) 밑에다 봉화대 20여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봉화대 안에 수십 개의 큰북과 쟁이를 걸어 놓고, 오랑캐가 쳐들어오면 연기를 피워 하늘로 올려 알리면 제후들이 보고 군사를 끌고 구하러 오게 했습니다. 동시에 봉화대 안의 쟁이와 큰북을 쳐서 제후들의 출병을 독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천하가 태평하게 되어 봉화가 모두 꺼지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왕비의 웃음을 보고 싶으시다면, 왕비와 동행하시어 여산 위에 올라가 밤중에 봉화를 올리게 하고, 제후들이 병사들을 끌고 구원하러 오는 모습을 구경하십시오. 제후들이 병사를 끌고 왔을 때 오랑캐가 쳐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제후들이 놀라면, 왕후께서는 틀림없이 기뻐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경의 생각이 참으로 훌륭하오!」

유왕은 그 즉시 포후와 동행하여 어가를 같이 타고 여산으로 놀러 나갔다. 이윽고 저녁때가 되자 유왕은 여산의 별궁에서 연회를 열고 주흥이 무르익자 봉화를 올리라는 명을 내렸다.

그 때 조당에는 선왕의 동생으로 유왕의 숙부되는 정백(鄭伯) 우(友)가 사도(司徒)의 직을 맡고 있었다. 유왕이 내린 명령을 전해 듣고 대경실색한 정백이 여궁에 머물고 있던 유왕에게 급히 달려가 간했다.

「선왕께서 위급한 일을 대비하여 설치한 봉화대는 제후들의 믿음을 취한 시설입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봉화를 올리는 행위는 제후들을 희롱하는 짓입니다. 만일 후일에 예측하지 못한 변란이 일어나서 봉화를 올린다 해도 그 때는 제후들은 절대로 믿지 않게 됩니다. 그때는 무슨 방법으로 제후들의 군사들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유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은 천하가 태평한데 무슨 변란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짐이 오늘 왕후와 같이 여궁에 와서 잠시 즐기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희롱 운운하십니까? 잠시 제후를 희롱하여 흥을 돋우고자 합니다. 후일에 변란이 생긴다 해도 경과는 무관한 일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마십시오.」

유왕은 정백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곧이어 봉화를 올리게 하고 큰북을 치게 하니, 그 소리가 천둥 같았다. 이윽고 봉화대의 화광이 충천하고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왕성에 변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호경 주변의 여러 제후들이 그 즉시 병사를 모집하고 장수들을 점고하여 밤을 타고 여산을 향해 달려 왔다. 그러나 여산에 당도하여 보니 여궁의 누각에서 관악기와 단소 소리만 들리고 유왕과 포비가 술을 마시면서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유왕이 사람을 보내 제후들에게 노고에 사의를 표했다.

「다행히 외적의 침입은 없었다. 고생스럽게 멀리 갈 것까지는 없다.」

제후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깃발을 내린 후에 둘둘 말아서 되돌아 가버렸다. 포비가 누각 위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제후들이 황급하게 와서는 또한 황급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박장대소했다.

유왕이 보고 말했다.

「그대가 한번 웃으니 온갖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다. 이것은 괵석보(虢石父)의 공이다.」

말을 마친 유왕은 명을 내려 괵석보에게 천금의 상을 주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금매소(千金買笑)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일로 기인했다. 염옹이 ‘봉화로 제후를 희롱하다’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좋은 밤에 여궁에서 피리와 생황을 타게 하고

무단히 봉화에 불을 붙여 하늘에 올렸다.

가련하도다, 고생하며 열심히 달려온 제후들이여!

단지 포비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으니!

良夜驪宮奏管簧(양야여궁주관황)

无端烽火燭穹蒼(무단봉화촉궁창)

可怜列國奔馳苦(가령열국분치고)

止博褒妃笑一場(지박포비소일장)

한편 유왕이 신비를 폐하고 포비를 정궁으로 세우자, 신후(申侯)는 유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간했다.

「옛날 걸왕은 말희(妺姬)를 총애하여 하나라가 망하였고, 주왕(紂王)은 달기(妲己)를 총애하여 은나라가 망했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왕께서는 포비를 총애하여 적자을 폐하고 서자를 태자로 정하여, 이미 부부 사이의 윤리에 틈이 생기고, 또한 부자지간의 정의도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걸주(桀紂)의 일을 지금 다시 보게 되니, 하와 은 두 나라에 미친 화가 머지않아 주나라에 닥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왕께서는 란명(亂命)을 거두어 부디 망국의 재앙을 면하옵소서!」

상소문을 읽은 유왕이 대노하여 책상을 치며 말했다.

「이 반적이 어찌 감히 이런 무엄한 말을 하는가?」

곁에 있던 괵석보가 거들었다.

「신후는 태자가 쫓겨난 이래 오랫동안 대왕을 원망해 왔습니다. 근자에 들어 신비와 태자가 모두 폐위된 일로 모반의 뜻을 품고 감히 대왕께 이런 무엄한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신후는 원래 아무런 공도 세운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딸이 왕비가 되는 바람에 작위를 올려 받았습니다. 오늘날 왕비와 태자가 모두 폐위된 바, 신후의 작위도 역시 거두어 옛날처럼 그의 작위를 백(伯)으로 내려야 할 것입니다. 만일 신후가 말을 듣지 않으면 군사를 동원하여 죄를 물어 후일의 화근을 없애십시오.」

유왕이 괵석보의 건의를 받아 들여 신후의 작위를 후작에서 원래의 백작으로 강등한다는 내용으로 왕명을 발해 사자를 시켜 전하게 했다. 신후가 령을 거역할 경우에 대비해서 괵석보를 토벌군의 대장으로 임명하여 별도의 명을 기다리도록 했다.

-제3회 끝 -

주석

①정백(鄭伯) 우(友): 주선왕의 서제로 유왕의 숙부다. 원래는 섬서성 동쪽 방면의 화현(華縣)에 있던 정(鄭)이란 땅에 봉해 졌으나 서주가 견융의 침입으로 위험하게 되자 유왕에게 청해 지금의 하남성 신정시 부근의 회(檜) 땅을 봉지로 받고 나라를 옮긴 후에 그 땅의 이름을 신정(新鄭)이라 했다.

②경수(涇水): 현 영하성(寧夏省) 회족자치구(回族自治區)에서 발원하여 서안시 북쪽 경양(涇陽)에서 위수(渭水)와 만나는 하천. 지금도 당시와 물길이 크게 변하지 않고 흐르고 있다.

③락수(洛水): 섬서성 북단 황토고원에서 발원하여 남북으로 흘러서 위수와 황하가 합류하는 곳으로 흐르는 하천. 지금의 이름도 락수라 칭하고 있다.

④태왕(太王): 주나라를 창건한 문왕의 할아버지로써 이름은 고공단보(古公亶父)다. 원래 거주지인 빈(豳) 땅(현 산서성 서북쪽 빈현(彬縣))에서 살고 있던 주족들을 이끌고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건너 기산 밑으로 이주시키고 기산 땅의 원주민 족장의 딸인 강원(姜嫄)과 혼인하여 아들 셋을 낳았다. 맏이는 태백(太伯)이고, 둘째는 우중(虞仲)이며 막내는 계력(季歷)이라 했다. 태백과 우중은 족장의 자리를 막내인 계력에게 물려주기 위해 형만(荊蠻)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습속으로 바꾸어 살다가 오나라를 세운 자손들의 시조가 되었다. 계력은 태임(太任)과 혼인을 하여 창(昌)을 낳았는데 이 창이 은나라 왕으로부터 서백(西伯)에 봉해진 주문왕이다.

⑤善盈以後福 惡盈以後禍, 十者數之盈也

⑥산의생(散宜生)등이....: 은(殷)나라 말기에 주왕(紂王)은 서백(西伯) 창(昌, 즉 주문왕)이 세상의 인심을 얻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시기하여 잡아다가 유리(羑里: 지금의 하남성 안양시 남 탕음현(湯陰縣) 경내)라는 곳에 감금해 버렸다. 이에 산의생(散宜生), 태전(太顚), 굉요(宏夭), 죽자(鬻子), 신갑대부(辛甲大夫)등 서백의 신하들이 유신씨(有莘氏)의 미녀, 여융(驪戎) 산 명마인 붉은 갈기의 백마, 유웅(有熊)씨 산의 양마 36필과 기타 많은 금은보화를 주왕(紂王)에게 바쳐 서백 즉 주문왕을 석방시킨 일을 말한다. (사기 주본기)

미주

다음은 주유왕에 의해 태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의구가 한탄하며 불렀다고 하는 소반(小弁)이라는 제목의 시가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지습(小旻之什)의 한 편이다. 이 시의 제목으로 인해 소반이라는 말은 태자를 바꾸는 변을 의미하게 되었다.

小弁(소반)

- 갈가마귀 -

주유왕(周幽王) 신(申)나라에 장가들어 의구(宜臼)를 낳아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포사(褒姒)를 얻어 미혹되어 아들 백복(伯服)을 얻었다. 포사의 참소를 믿은 주유왕이 신후(申后)를 내치고 의구를 쫓아냈다. 이에 의구가 원망하여 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전(傳)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맹자의 제자 고자(高子)가 ‘소반(小弁)은 소인의 시다.’라고 말하자 맹자가 ‘무엇을 말함인가.?’라고 물었다. 고자가 ‘원망하기 떄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맹자가 고자를 질책했다. ‘고수(高叟)여, 고집불통이구나, 시를 해석함이여. 어떤 사람이 활을 쏘려고 하는 월(越)나라 사람에게는 웃으면서 말하여 멈추게 함은 소원하기 때문이고, 그 형이 활을 당겨서 쏘려고 하면 눈물을 떨구며 멈추게 함은 다름이 아니라 서로 친하기 때문이다. 소반(小弁)의 원망은 어버이를 친히 여기기 때문이고, 어버이를 친히 대하는 것은 인(仁)이다. 고루하구나, 高叟의 시를 해석함이여!’ 그러자 고수가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개풍(凱風)」은 어찌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개풍」은 어버이의 허물이 작고, 「소반」은 어버이의 허물이 크다. 어버이의 허물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는 부모를 소원하게 대하는 태도이고, 어버이의 허물이 작아 다툴 수 없는 일임에도 원망한다면 더욱 소원해지는 일이다. 부모를 소원하게 대하는 것도 불효요, 조그만 일로 다투는 일도 또한 불효인 것이다.’”

弁彼鸒斯 歸飛提提 (반피여사 귀비시시)

저기 저 갈가마귀 즐거운 듯,

둥지를 향해 떼지어 날라 가네

民莫不穀 我獨于罹 (민막불고 아독우리)

백성들은 모두 즐겁게 살아가건만,

나만 홀로 근심에 싸여 있네

何辜于天 我罪伊何 (하고우천 아죄이하)

하늘에 무슨 죄가 있으며,

나는 어찌하여 죄를 지었는가?

心之憂矣 云如之何 (심지우의 운여지하)

내 마음의 시름이여, 이를 어이할까나?

흥(興)이다. 弁(반)은 날면서 날개짓을 하는 모양이다. 鸒(여)는 아조(雅烏)로 갈가마귀다. 작고 무리를 많이 지어 다니고, 배 아래 쪽이 희니 강동(江東)에서는 부르기를 ‘鵯烏(비조)’라 한다. 斯(사)는 어조사다. 提提(시시)는 떼로 날며 한가한 모양이다. 穀(곡)은 善(선)이요, 罹(이)는 근심함이다.

○ 옛말에 주유왕(周幽王)의 태자 의구(宜臼)가 폐위당하여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떼지어 날아가는 저 갈가마귀는 날아 돌아오기를 한가로이 한다. 선하지 않은 백성들은 없거늘 나만 홀로 근심하니 갈가마귀만도 못하구나. ‘何辜于天 我罪伊何’라는 말은 원망하면서도 사모함이다. 순임금께서 호천(旻天)에 울면서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심은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인가.”라고 한 말과 상통한다. “心之憂矣 云如之何”는 어쩔 수 없는 줄 알고서 편안해한다는 말이다.

蹠蹠周道 鞫爲茂草 (척척주도 국위무초)

저 평탄한 큰 길은, 잡초가 우거져 무성하고

我心憂傷 惄焉如擣 (아심우상 역언여도)

내 마음 근심으로 저리고 아파, 가슴을 짓찧듯 하네

假寐詠嘆 維憂用老 (가매영탄 유우용로)

옷 입은 채로 누워 탄식하니,

내 마음 근심으로 다 늙어 가네!

心之憂矣 疢如疾首 (심지우의 진여질수)

마음속의 시름이여!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구나!

흥(興)이다. 축축(踧踧)은 평이함이요, 주도(周道)는 큰길이다. 국(鞠)은 궁(窮)이요, 역(惄)은 사(思)요, 도(擣)는 용(舂)으로 곡식을 찧는 행위다. 의관(衣冠)을 벗지 않고 자는 것을 가매(假寐)라 한다. 진(疢)은 일종의 열병으로 질(疾)과 통한다.

〇 축축(踧踧)한 주도(周道)는 장차 모두 무성한 풀밭이 될 것이요, 내 마음에 우상(憂傷)하기를 허탈하여 방아질하는 듯하다. 정신이 산란하여 가매(假寐) 중에 이르도록 잊지 못하고 길게 탄식하며, 걱정으로 날을 지새우기를 오래했음으로 늙지 않았는데도 늙는다. 열병으로 머리가 아프다면 근심하기를 더욱 심히 한 것이다.

維桑與梓 必恭敬止 (유상여재 필공경지)

뽕나무와 가래나무라도,

반드시 그것에는 공경하는 뜻이 있으니

靡瞻匪父 靡依匪母 (미첨비부 미의비모)

아버지 말고 누구를 우러르며,

어머니 말고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不屬于毛 不離于裏 (불속우모 불리우리)

머리털도 물려받지 않았는가,

마음도 물려받지 않았는가?

天之生我 我辰安在 (천지생아 아신안재)

하늘이 나를 낳으매,

어찌하여 하필이면 이 때 낳게 하였는가?

상(桑)은 뽕나무이고 재(梓)는 가래나무다. 옛날 오무(五畝)의 집 담장 아래에 심어서 자손(子孫)에게 남겨 주어 잠식(蠶食)을 공급하고 기용(器用)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다. 첨(瞻)이란 것은 높이 우러름이요, 의(依)는 친하여 의지함이다. 속(屬)은 연이음이다. 이(離)는 걸림이고 리(裏)는 심복(心腹)이다. 진(辰)은 시(時)와 같다.

〇“ 상(桑)과 재(梓)와 같은 나무도 부모께서 심으신 것이면 반드시 더 귀하게 여기거늘, 하물며 지극히 높고 지극히 친밀한 부모님이라면 마땅히 첨의(瞻依)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니, 아마도 나는 부모님의 터럭에도 속하지 못하는가? 혹시 나는 부모의 마음속에 걸린 것이 없는가? 허물을 돌릴 곳이 없어서 하늘에 미루어 말하기를 “아마 내가 난 때가 좋지 않았는가? 어찌 상서롭지 못함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는가?”

菀彼柳斯 鳴蜩嘒嘒 (울피류사 명조혜혜)

저기 무성한 버드나무 숲에,

매미가 한가롭게 울어대고 있는데,

有漼者淵 萑葦淠淠 (유최자연 환위비비)

저 깊은 연못에는, 키를 넘는 물억새가 우거졌네!

譬彼舟流 不知所屆 (비피주류 부지소계)

그러나 저 정처 없이 흘러가는 조각배처럼,

네 쉴 곳은 어디인가?

心之憂矣 不遑假寐 (심지우의 불황가매)

마음의 시름이여, 옷 입은 채 잘 겨를도 없네!

완(菀)은 무성한 모양이다. 조(蜩)는 매미이다. 혜혜(嘒嘒)는 메미가 우는 소리다. 최(漼)는 물이 깊은 모양이다. 추(萑)는 크게 자란 모습이고 비비(淠淠)는 무성함이다. 계(届)는 이름이요, 황(遑)은 겨를이다.

〇 무성한 저 버드나무 위의 매미는 요란하게 울고 깊은 연못에는 크게 자란 물억새풀이 무성도 하다. 지금 나만이 홀로 버려지고 쫓겨나니, 배가 강물에 휩쓸려 흘러가 이를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함과 같다. 그래서 깊이 근심한 나머지 가매(假寐)라도 하였는데, 지금은 그럴 겨를도 없다.

鹿斯之奔 維足伎伎 (녹사지분 유족기기)

사슴도 달릴 때는, 걸음을 늦추어 무리를 떠나지 않고

雉之朝雊 尙求其雌 (치지조구 상구기자)

장끼가 아침에 울어대는 건, 까투리를 찾고자 함이라네!

譬彼懷木 疾用無枝 (비피회목 질용무지)

저 병든 나무와 같이, 병들어 가지가 떨어진 신세라,

心之憂矣 寧莫之知 (심지우의 영막지지)

마음속의 근심이여,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네!

기기(伎伎)는 느린 모양이다. 마땅히 빨리 쫓아가야 하는데 느린 것은 무리를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 구(雊)는 꿩이 우는 소리다. 괴(壞)는 마음이 상해 병이 듬이다. 녕(寧)은 하(何)와 같다.

〇 달려가는 사슴의 발들도 기기(伎伎)스럽고 아침에 우는 꿩도 그 짝을 구할줄 알거늘 지금 나만이 홀로 버림받아 쫓겨나니, 나무도 마음이 상하여 병이 들어 마르니 가지가 하나도 없다. 때문에 근심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相彼投免 尙或先之 (상피투토 상흑선지)

저 쫓기다 달려드는 토끼도, 달아날 수 있는 놈이 있고

行有死人 尙或墐之 (행유사인 상흑근지)

길 가다가 죽은 행인도, 묻힐 수가 있는 법인데

君子秉心 維其忍之 (군자병심 유기인지)

내 님의 마음 쓰심은, 어찌하여 그리 잔인한가?

心之憂矣 涕旣隕之 (심지우의 체기운지)

마음속의 근심이여, 눈물만 비오듯이 쏟아지는구나!

상(相)은 봄이고, 투(投)는 달림이며, 행(行)은 길을 떠남이고, 근(墐)은 파묻는 행위다. 병(秉)은 손으로 잡는 행위이고 운(隕)은 떨어짐이다.

○ 쫓김을 당하여 사람에게 달려드는 토끼의 곤궁함을 보고 애처롭게 여겨서 먼저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자가 있으며, 죽은 사람의 시신이 길가에 폭로(暴露)함을 애처롭게 여겨 묻어주는 자가 있음은 모두 마음 속에 불인지심(不忍之心) 혹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고 있어서다. 지금 왕은 참소하는 말을 믿어서 그 자식을 버리고 쫓아내니 이는 달려드는 토끼와 길가의 시신을 보는 돌봐주는 사람들보다도 못하니, 그 마음가짐이 잔인하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에 근심을 품고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君子信讒 如或酬之(군자심참 여흑수지)

내 님은 헐뜯는 소리를, 마치 술잔 돌리는 듯이 즐겨 하고

君子不惠 不舒究之(군자불혜 불서구지)

내 님은 헤아리기도, 살펴보지도 않으시네

伐木掎矣 析薪杝矣(벌목기의 석신이의)

나무를 베는데도 먹줄을 치며, 장작을 패는 데도 결을 보거늘

舍彼有罪 予之佗矣(사피유죄 여지타의)

저 죄 있는 자는 놓아두시고, 나에게만 모든 것을 돌리시네!

수(酬)는 보답함이고, 혜(惠)는 사랑함이며, 서(舒)는 느슨함이요, 구(究)는 살핌이다. 의(掎)는 의지함이니, 물건으로 그 위를 떠받치고 있음이다. 이(柂)는 피나라무 결을 따르기 쉽다. 타(佗)는 더함이다.

○ 왕이 오직 참언만을 듣고서 마치 권하는 술잔을 받으면 즉시 마시듯이 하여 일찍이 은혜를 베풀면서 시간을 갖고 서서히 살피지 않는다. 만일 서서히 살핀다면 참소하는 자의 본마음을 알 수 있음이다. 나무를 벨 때는 그 윗부분을 떠받쳐야하며 장작을 쪼갤 때는 그 결을 따라야만 헛되이 힘을 낭비하여 낭패를 보지 않게 되거늘 지금 죄가 있는 참소하는 사람을 버려두고 무고한 나에게 죄를 더하니 이는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는 일만도 못한 짓이다.

莫高匪山 莫浚匪泉(막고비산 막준비천)

높지 않은 것은 산이 아니며, 깊지 않으면 샘이 아닌가?

君子無易由言 耳屬于垣 (군자우이유언 이촉우원)

내 님께서는 한 말을 바꾸지 마시오!

저 담에도 귀가 있답니다.

無逝我梁 無發我笱 (무서아량 무발아구)

내 어살에 가까이 오지 말고,

내 통발을 꺼내지 말라 했거늘

我躬不閱 遑恤我後 (아궁불열 황휼아후)

이 내 몸조차 용납되지 않으니,

뒷일을 걱정할 겨를이 없도다!

산이 지극히 높지만 봉우리에 올라갈 수도 있고 샘이 매우 깊지만 어떤 때는 밑바닥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군자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니 귀를 담장에 붙이고 있는 자가 좌우를 관망하여 참소하는 말을 내는 자가 있을까 살피는 것이다. 왕이 이에 마침내 포사(褒姒)를 왕후로 삼고 백복(伯服)을 태자로 삼았다. 그래서 시인은 말했다.

“나의 어량(魚梁)에 가지 말고 나의 통발을 꺼내지 말았으면 하지만 내 몸도 주체하지 못하거늘 어느 겨를에 나의 뒤를 궁휼하겠는가?.”

宋人 여조겸이 말했다.

“당덕종(唐德宗)이 장차 태자를 폐위하고 서왕(舒王)을 세우려고 하자 이필(李泌)이 간하면서 말하기를 ‘원컨대 폐하는 환궁(還宮)하여 이 뜻을 드러내지 마소서. 좌우에서 듣는다면 장차 서왕(舒王)을 위해 공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태자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으니, 이는 바로 ‘군자는 말을 입밖으로 낼 때는 쉽게 하지 말지어다. 귀가 담장에 붙어 있음이다.’라고 했다. 소반(小弁)이 지어진 시기는 태자가 이미 폐위되었으나 이렇게 말한 이유는 난리가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었음을 풍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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