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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14:5614508 
제12회. 築臺納媳(축대납식), 乘間易君(승간역군)
양승국   (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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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2회 築臺納媳 乘間易君(축대납식 승간역군)

며느리를 부인으로 삼아 신대에 같이 산 위선공과

기회를 노려 그 군주를 바꾼 정나라의 고거미

1. 축대납식(築臺納媳)

- 며느리를 가로채 신대(新臺)를 짓고 부인으로 삼은 위선공-

주우(州吁)의 뒤를 이어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위선공(衛宣公)은 이름을 진(晉)이라고 했는데 위인이 음탕하고 행동이 제멋대로였다. 공자 시절 그는 부친 장공(庄公)의 첩실이었던 이강(夷姜)과 사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위선공이 이를 숨기고자 민간에 맡겨 기르고 급자(急子)라 이름 지었다. 진(陳)나라의 손을 빌려 주우(州吁)를 죽인 석작(石碏)에 의해 위후(衛侯)의 자리에 오른 선공은 정부인 형비(邢妃)를 사랑하지 않고 오로지 이강만을 사랑하여 마치 그녀를 부인처럼 대하며 지냈다. 이강의 소생 급자를 세자로 세운 선공은 우공자(右公子) 직(職)을 태부로 삼아 급자를 가르치게 했다. 급자가 장성하여16세가 되자, 제희공(齊喜公)의 장녀를 맞이하여 배필을 삼고자 했다. 제나라에 혼사를 구하러 갔다가 돌아온 사절을 통해 제후의 딸이 절세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선공은 마음속으로 그 미색을 탐하게 되었지만 단지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곧바로 이름난 장인들을 동원하여, 기수(淇水)①의 강물 위에 높은 누각을 짓고, 난간은 모두 붉은 단청을 칠하고, 기둥과 서까래의 겉에는 모두 그림을 그리게 하였는데,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화려했다. 신대(新臺)라고 이름붙인 궁궐은 겹겹이 늘어선 건물과 수많은 방들이 딸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이윽고 선공은 며느리를 차지하기 위해 먼저 급자를 답례사절의 임무를 주어 송나라에 보내고, 다시 좌공자(左公子) 설(泄)을 파견하여 강씨를 제나라에서 데려와 신대에 머물게 한 후에,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선강(宣姜)이라고 불렀다. 당시 사람이 신대에 관한 시를 지었는데 선공의 음란함을 비꼬기 위해서였다.②

신대는 새롭고

강물은 출렁이네

고운님을 만나려 왔건만

더러운 대자리만 깔려 있구나!

新臺有泚(신대유차)

河水彌彌(하수미미)

燕婉之求(연완지구)

籧篨不鮮(거저불선)

신대는 높이 솟아 있고

강물은 넘실대네

좋은 님 구하여 왔건만

더러운 대자리는 걷지 않았구나.

新臺有洒(신대유쇄)

河水浼浼(하수매매)

嬿婉之求(연완지구)

籧篨不殄(거저부진)

고기를 잡고자 그물을 쳤으나

오히려 기러기만 날아가 버렸네

고운님을 만나러 왔건만

시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도다.

魚網之設(어망지설)

鴻則離之(홍즉이지)

燕婉之求(연완지구)

得此戚施(득차척시)

거저(籧篨)는 언인(偃人)으로 허리를 구부릴 수 없는 불구를 말하고, 척시(戚施)는 루인(僂人)이나 타배(駝背)로 곱사등이를 뜻하는데 모두 추악한 몰골의 선공을 빗대어 비난한 말이다. 선강이 아름다운 배우자를 찾아 왔건만 뜻밖에 추악한 사람을 모시게 되었다는 뜻이다. 후세 사람들이 사서를 읽다가 제희공의 장녀 선강은 시아버지와 살게 되고, 차녀인 문강은 자기 오라비와 정을 통하는 대목에 이르자, 인륜과 천리가 끊기게 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시를 지었다.

춘추에서 요염하기로는 선강과 문강이 제일인데

제위(齊衛)의 삼강오륜이 두 여인으로 인해 문란해졌다.

하늘이 미인으로 나라에 재앙을 내렸다고 하겠으나

임금을 도와 패왕으로 만든 무염③도 있지 않았던가?

妖艶春秋首二姜(요염춘추수이강)

致令齊衛紊綱常(치령제위문강상)

天生尤物殃人國(천생우물앙인국)

不及無鹽左伯王(불급무염좌백왕)

이윽고 급자가 송나라에서 돌아와 신대에 와서 복명했다. 선공이 급자에게 명하여 선강을 서모의 예로 선강을 알현하게 했다. 그러나 급자는 추호도 원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선공이 선강을 맞이한 이후로는 오로지 신대에만 머물면서, 낮 동안에는 같이 놀고 저녁에는 음락을 즐겼다. 자연히 이강과 사이가 멀어진 위선공은3년 동안 신대에 머물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아들 둘을 낳아, 큰아들을 수(壽)라 했고 작은아들을 삭(朔)이라 했다. 예로부터 그 모가 총애를 받으면 그 자식도 귀여움을 받는다고 했다. 선강을 매우 사랑한 위선공은 옛날 급자를 사랑하던 마음을 모두 수와 삭에게 쏟았다. 마음속으로 장차 위나라의 강산을 모두 수와 삭에게 전할 생각을 품기 시작한 위선공은 옛날 급자 한 아들만을 사랑했던 것 보다 두 아들을 같이 사랑하게 되었음을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한편 천성적으로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공자수는 급자와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낳은 친형제처럼 서로 가까이 지냈다. 그래서 공자수는 부모 면전에 있을 때마다 그 형에 대해서 좋은 말로 이야기하곤 했다. 급자 또한 성격이 온유하고, 매사에 조심하여 조금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세자를 바꾸려고 하는 마음을 속으로만 품고 밖으로 내색할 수 없었던 선공은 공자수를 좌공자 설(泄)에게 맡기면서 장래에 공자수로 하여금 군위를 이을 수 있도록 도우라고 은밀히 당부했다. 그러나 공자삭은 공자수와는 동모형제였지만 어질고 어리석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형제들 중 나이가 가장 어렸던 공자삭은 천성이 교활하였으며, 그 모친의 총애를 믿고 비밀리에 자객을 길러 장래에 엉뚱한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공자삭은 급자뿐만 아니라 그 친형 공자수도 함께 이마의 혹처럼 증오했다. 그렇지만 일이란 완급이 있어 먼저 급자를 죽이는 일이 순서라고 생각해서. 항상 급자에 대해 나쁜 말을 하여 그 모친의 마음을 격하게 하였다.

「부친의 살아 계시기에 급자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모자를 다정하게 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급자가 앞에 있어 그는 형이고 우리들은 동생입니다. 부군께서 돌아가시면 위나라의 군위는 장유의 순서에 따라 전해지고 모친에게 그 총애를 빼앗겨서 마음속으로 분노를 품고 있는 급자의 생모 이강은 만약 급자가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면 자연히 국모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모친과 우리 두 형제는 몸 하나 둘 곳이 없는 외로운 처지로 떨어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

원래 급자의 배필로 위나라에 시집와서 어떻게 해서 선공의 부인이 된 선강은 급자가 장차 자기의 두 아들에게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강은 공자삭과 같이 모의하여 선공 앞에서 기회만 있으면 급자를 헐뜯었다.

하루는 급자의 생일날이었다. 공자수가 축하의 술자리를 마련하여 공자삭도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급자와 공자수는 술잔을 권하면서 담화를 하는데 은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정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끼지 못한 공자삭은 아프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그 모친 선강에게 달려가 눈물을 두 눈에 가득 흘리면서 말을 크게 꾸며 늘어놓았다.

「제가 좋은 마음으로 형님과 급자에게 축하의 잔을 올렸습니다마는, 급자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저를 희롱하면서 저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좋지 않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계속해서 급자가 저보고 ‘ 너의 모친은 원래 나의 부인이었다. 따라서 너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라고 희롱했습니다. 항의하는 저를 팔을 치켜들어 때리려고 하는 급자를 다행히 수 형님이 말려서 자리를 피해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큰 욕을 보았으니 모친께서는 부군께 말씀드려 저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선강이 그 말을 믿고 선공을 퇴청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선공이 내궁으로 들어오자, 선강은 말없이 흐느껴 울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급자가 저를 욕보이려고 ‘원래 할아버지의 서모를 아버지께서 취해 첩으로 삼았던 이강은 나의 모친이다. 더욱이 너의 모친은 원래 나의 배필로 제나라에서 데려왔다. 부친은 단지 나의 처를 잠시 빌렸다고 생각하시니 머지않아 위나라의 강산과 함께 나에게 돌려주시지 않겠느냐?’라고 삭에게 말했다 합니다.」

위선공이 선강의 말을 듣고 공자수를 불러 사실 여부를 물었다. 수가 대답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선공이 반신반의하면서 단지 내관을 보내 자기의 뜻을 군명으로 전하여, 이강이 아들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고 책했다. 이강은 분노가 가슴속 깊이 차올랐으나 하소연 할 곳이 아무 데도 없어 마침내 목을 메달아 죽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탄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같이 정을 통하였는고?

부자가 한 여인을 취하니 위나라의 음풍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강은 이 날에 와서야 목메어 죽었는데

어찌하여 처음부터 절개를 지켜 죽지 못 했는가?

父親如何與子通(부친여하여자통)

聚麀傳笑衛淫風(취우전소위음풍)

夷姜此日投繯晩(이강차일투환만)

何似當初守節終(하사당초수절종)

급자가 그 모친을 애통해 하면서 그리워했으나 부친의 책망이 두려워 속으로만 흐느껴 울뿐이었다. 공자삭과 선강이 선공 앞에서 급자를 욕하면서 말했다.

「급자는 그의 생모가 비명에 죽자 원망하는 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가 앞으로 군위를 잇게 되면 우리 모자는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선공은 원래 이런 말을 믿지 않았다. 질투 많은 부인과 참소하는 아들이 필히 급자를 죽여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고 밤낮으로 부추겼으나 선공은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강의 끈질긴 참소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하며 주저하던 선공은 마침내 급자를 아무도 모르게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의 손을 빌려 길가는 도중에 죽여야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다고 선공은 생각했다.

2. 二子乘舟(이자승주) 泛泛其景(범범기경)

- 두 형제가 배를 타고, 유유히 경치를 즐기며 흘러가네-

그때 마침 제희공이 기(紀)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구원군을 위나라에 청하면서 회견하기를 청해 왔다. 위선공과 공자삭이 상의하여, 군사를 보낼 날짜를 정한다는 핑계로 급자를 제나라에 사절로 보내기로 했다. 이윽고 길을 떠나는 급자에게 선공은 명하여 백모(白旄)④를 깃대에 달아 위나라의 사절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했다. 제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신야(莘野)⑤를 거쳐야 하는데 신야까지는 배를 타고 가다가, 그 후에는 뭍에 올라 육로를 이용해야 했다. 선공 부자는 자객을 미리 신야에 보내 잠복하여 기다리게 한 다음, 급자의 일행이 신야에 당도하여 배에서 내릴 때를 이용하여 모두 살해한다면, 별도의 준비가 없이도 일을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삭은 그 동안 숨겨 놓고 기르던 자객들을 드디어 이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객들이 몰래 숨겨놓았던 곳으로 가서 즉시 도적의 복장으로 변장시킨 공자삭은 그들을 신야로 보내 잠복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백모의 장식을 한 깃발을 든 위나라 사신이 지나가면 일제히 들고일어나 손을 써서 살해 한 후, 그 증거로 백모와 사신의 머리를 가지고 와서 복명하면 큰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자객들에게 분부를 내리고 돌아온 공자삭이 일의 전말을 자세하게 보고하자 선강은 매우 기뻐했다.

한편 공자수는 그의 부친이 좌우의 시종들을 물리치고 나서 동생 삭만을 불러 의논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의혹이 일어났다. 그 즉시 입궁하여 선강을 배알하고 기색을 살폈다. 제강이 급자의 일을 숨기지 못하고 모든 계획을 들려주고 당부했다.

「이 일은 우리 모자를 위해 후환을 없애고자 너의 부군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다. 절대 타인에게 발설하면 안 된다.」

음모가 이미 정해져 간해 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공자수는 그 즉시 아무도 몰래 급자에게 달려가 부군의 계획을 알렸다.

「이번에 형님께서 신야의 길을 통해 제나라에 가시는 일은 화는 많고 좋은 일은 적어 차라리 다른 나라로 도망쳐 숨어 살다가, 후일에 별도로 좋은 계책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급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부모의 명을 따름이 효도의 제일로 삼는다. 그 부친의 명을 버리는 자식을 역자(逆子)라 한다. 세상에 어찌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그렇다고 다른 나라로 도망친다면 도대체 어느 나라로 갈 수 있단 말이냐?」

급자는 공자수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즉시 행장을 꾸리게 하여 배에 올라 길을 재촉했다. 공자수가 눈물을 흘리며 출발을 못하게 막으면서 생각했다.

「우리 형님은 진실로 인자로다. 이번 행차로 만약 형님께서 도적의 손에 죽는다면, 부친께서는 나로 하여금 군위를 잇게 하실 것이다. 그런 일을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부모 없는 아들 없고 형님 없는 동생 없다고 했다. 내가 마땅히 형님보다 길을 먼저 출발하여 대신 죽는다면, 형님은 반드시 죽음을 면할 수 있음이라!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부친이 다행히 뉘우치면 효도도 같이 하게 되니, 우애와 효도를 동시에 이루게 되어 만고에 이름이나마 남길 수 있지 않겠는가?」

공자수가 즉시 시종에게 명하여 배 한 척에 술통 한 개를 싣고는 강의 하류 쪽으로 급히 노를 젓게 하여 급자의 뒤를 쫓게 했다. 얼마 후 앞서간 일행과 가까워지자 송별의 술자리를 허락해 달라고 급자에게 청했다. 급자가 거절하면서 말했다.

「군명을 받은 몸인데 어찌 감히 한시라도 지체할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공자수는 개의치 않고 자기가 가지고 온 술독을 급자가 탄 배로 옮기게 하고 자신도 옮겨 타 주위에 명하여 술상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윽고 공자수가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급자에게 권했다. 자기도 모르게 흘린 공자수의 주옥같은 눈물이 술잔 속으로 떨어졌다. 급자가 급히 술잔을 받아 마셨다. 공자수가 말했다.

「눈물이 술잔에 떨어져 더럽게 되었습니다.」

「마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동생의 마음이리라.」

공자수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오늘 술자리는 우리 형제가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의 자리입니다. 형님께서 만약 이 동생의 정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주신다면 제가 드리는 몇 잔의 술을 마셔주십시오.」

「어찌 동생의 잔을 사양하겠느냐?」

두 사람이 눈에 눈물을 머금고 술잔을 서로 주고받았다. 마음속으로 작정한 바가 있었던 공자수는 급자에게 계속 술을 권해 마시게 했다. 공자수가 주는 술잔을 모두 받아서 마신 급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취해 이윽고 자리에 쓰러졌다. 잠에 떨어진 급자는 코를 심하게 골았다. 공자수가 따라 나온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군명은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으니 내가 대신하여 가리라!」

3. 兄弟爭死(형제쟁사)

- 대신 죽기를 서로 다투는 형제들-

공자수는 즉시 급자 손에서 백모를 빼앗아 의도적으로 뱃머리에 꽂아 세우고 자기 종복들에게 따라 오라고 명했다. 급자의 종복들에게 그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한 공자수는 소매 속에서 죽간 한 개를 꺼내급자가 깨어나면 전하도록 당부했다.

「세자께서 술에서 깨어나시면 드리도록 하라!」

공자수가 종복들에게 명하여 노를 저어 배를 출발시켰다.

이윽고 공자수 일행이 신야에 당도하여 배를 정박시키고 뭍으로 올라 마차로 바꿔 타려고 했다. 그때 삭의 명령을 받고 미리 매복하고 있던 자객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꽂은 배 한 척이 강상에서 뭍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그것은 급자 일행이 타고 온 배라고 생각했다. 백모를 든 일단의 행렬이 뭍으로 오르자 자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지르면서 마치 벌떼처럼 공자수의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공자수가 자객들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곧 위나라의 세자인데 군명을 받아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이다. 너희 놈들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나의 길을 막느냐?」

여러 도적들이 일제히 소리쳐 대답했다.

「우리들은 위후의 밀명을 받아 너의 목을 취하러 왔다.」

도적들이 공자수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어 칼을 들어 내리쳤다. 도적들의 흉맹한 기세를 본 공자수의 종자들은 그 내력을 알지 못한 채 놀라서 모두 흩어져 도망쳤다. 가엽게도 공자수의 머리는 도적들의 칼을 맞고 땅에 떨어졌다. 도적들이 공자수의 머리를 주어서 목갑에 소중히 담아 간직한 후에 일제히 배에 올라 백모로 장식한 깃발을 뱃머리에 꽂고서 위나라를 향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편 마신 술이 그리 많지 않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잠에서 깨어난 급자는 공자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곁에 있던 종자가 봉함된 죽간을 바쳐서 겉봉을 뜯자 죽간에는 여덟 개의 글자가 써있었다.

『弟已代行兄宜速避(제이대행 형의속피)』

‘ 동생이 형님 대신 이미 길을 떠났으니 형님께서는 속히 몸을 피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이었다.

급자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동생이 나를 위하여 죽으려고 하는데, 어찌 내가 목숨을 구하여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 도망칠 수 있겠는가? 나는 마땅히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가 봐야 되겠다. 만약 내가 가지 않는다면 동생이 나로 오인되어 죽지 않겠는가?」

종자들이 아직 자기 곁을 떠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한 급자는 그 즉시 공자수가 남겨놓고 간 배를 타고 사람들을 재촉하여 노를 젓게 명하여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나는 듯이 미끄러져 가는 배를 보고 놀란 물새들이 흩어져 날아갔다. 그날 밤의 달빛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유난히 밝았다. 급자가 그의 동생을 염려하는 마음에 배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뱃머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하류 쪽에서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공자수의 배가 백모를 달고 앞에서 나타나자 기뻐하며 말했다.

「하늘이 동생을 아직 살아있게 하였구나!」

종자들이 말했다.

「저 배는 공자님의 것이 아닙니다.」

급자가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노 젓는 사람에게 명하여 배를 가까이 대게 했다. 두 배가 가까이 다가서자 뱃머리와 노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배 위에는 오로지 도적들만 타고 있고 공자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급자가 더욱 의심이 들어 자기가 위후가 보낸 사람이라고 하며 물었다.

「주공의 명을 이미 거행하였는가?」

급자가 비밀스러운 일을 언급하자 도적들은 공자삭이 보내 마중 나오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뚜껑이 덮인 상자를 급자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일을 이미 끝냈습니다.」

급자가 상자를 받아 안에 들어있는 공자수의 목을 보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통곡을 하며 말했다.

「하늘이여 원통합니다.」

도적들이 놀라 물었다.

「부친이 그 아들을 죽였는데 어찌하여 원통하다고 하십니까?」

「내가 바로 급자이니라. 부친에게서 죄를 얻어 죽을 사람은 바로 나다. 죽은 이 사람은 내 동생 수인데 어찌하여 죽였는가? 빨리 나의 목을 베어 부친에게 갖다 바쳐 수를 잘못 죽인 죄를 용서받아라!」

두 공자를 알고 있는 자가 도적들 중에 섞여 있다가 달빛에 급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을 잘못 죽였다.」

여러 도적들이 다시 급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베어 공자수의 목과 같이 상자 속에 넣어 가지고 갔다. 급자를 따라온 종자들도 모두 놀라서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시경(詩經)․국풍(國風)․패풍(邶風)』의『이자승주(二子乘舟)』는 급자(急子)와 공자수(公子壽) 두 형제의 죽음을 노래한 시가다.

二子乘舟 泛泛其景(이자승주 범범기경)

두 형제가 배를 타고

유유히 떠내려가며 경치를 즐기네

願言思子 中心養養(원언사자 중심양양)

내 그대들을 생각하니

마음속에서 슬픈 마음이 일어나도다.

二子乘舟 泛泛其逝(이자승주 범범기서)

두 형제가 배를 타고

유유히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했네

願言思子 不瑕有害(원언사자 불하유해)

내 그대들을 생각하니

죄 없는 그대들이 어찌하여 죽음들 당했는가?

시인은 감히 누구인지를 밝히지 못하고 단지 배를 탄 형제들을 추모함으로 슬픈 이야기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여러 도적들은 밤낮으로 길을 재촉하여 위나라 도성에 당도하여 먼저 공자삭을 찾아서 백모와 함께 두 사람의 목을 바쳤다. 그리고 두 사람을 살해한 경위를 자세히 이야기하고는 공자수를 잘못 죽인 죄를 받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죽인 일은 화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은 격이 되어, 그것은 바로 공자삭이 마음속으로 바라던 바가 이루어진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황금과 비단을 내어 여러 도적들에게 상을 후하게 내린 공자삭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모친에게 고했다.

「수 형님이 급자 대신 백모를 들고 먼저 길을 떠났기 때문에 스스로 명을 재촉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 급자가 뒤를 쫓아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말해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형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강이 비록 공자수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으나, 반면에 급자를 다행히 제거하게 되어 마치 눈에 가시를 없애버린 것처럼 후련하게 생각했다. 선강은 한편으로는 슬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즐거워했다. 모자가 서로 상의하여 위선공에게는 천천히 기회를 보아 고하기로 했다.

원래 급자와 공자수를 보좌하라는 명을 선공으로부터 받고, 각자 두 공자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있었던 좌공자 설(泄)과 우공자 직(職)은 평소에도 사람을 시켜 두 공자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두 공자의 동정을 살펴보던 사람들이 돌아와 그들이 죽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동병상련의 생각으로, 각기 그 주인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서로 연락하여 만나 상의하여 선공을 함께 찾아가 두 공자의 죽음을 고하기로 했다. 두 공자는 조당에 아침 일찍 나가 위선공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공이 나타나자 두 사람이 곧바로 달려 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린 후에, 목을 놓아 크게 울었다. 선공이 놀라 그 연유를 물었다. 두 좌우공자는 한 목소리로 급자와 공자수가 피살된 정황을 상세히 고한 후에 그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청했다.

「원컨대 두 분의 시신과 머리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게 허락해 주소서. 주공께서 옛날 저희들에게 보좌하도록 한 군명을 이행하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좌우 두 공자는 더욱 슬퍼하는 목소리로 통곡했다. 선공은 급자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생각을 갖지 않았으나, 공자수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는데, 갑자기 두 아들이 동시에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래어, 얼굴색이 흑 빛이 되더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애통해 하는 마음에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연이어 한탄하는 말만 반복했다.

「선강이 나를 그르치게 만들었구나! 선강이 나를 그르치게 만들었구나!」

위선공의 부름을 받아 공자수의 죽음에 대해 추궁을 받은 공자삭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대노한 선공이 공자삭에게 명하여 두 공자를 살해한 도적들을 잡아오도록 명했다. 선공 앞에서 당장 잡아오겠다고 약속한 공자삭은 도적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달려가 오히려 몰래 도망치게 만들었다. 두 공자가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선공은 놀램증에 걸리기도 하고 또한 공자수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한 나머지 병을 얻었다. 눈을 감으면 이강, 급자, 공자수가 같이 선공 앞에 나타나서 흐느껴 울어대곤 했다. 무당을 불러다 기도를 해 봤으나 결국은 아무런 효험도 못보고 반 달 만에 죽고 말았다. 공자삭이 뒤를 이어 위후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위혜공(衛惠公)이다. 그때 삭의 나이는 불과15세였다. 위후의 자리에 오른 혜공은 그 즉시 좌우 공자를 파직하고 쓰지 않았다.

4. 자증서모(子蒸庶母)

- 서모를 부인으로 취한 위선공의 아들 공자석(公子碩)⑥-

이강의 소생이며 급자와는 동모제인 공자석의 자는 소백(昭伯)이다. 그는 자기 형을 죽이고 위후의 자리에 오른 혜공에게 불만을 품고 밤을 도와 도망쳐 제나라로 가서 살았다. 또한 혜공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던 공자직과 공자설도 항상 급자와 공자삭의 원수를 갚을 생각뿐이었지만 그때까지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위후 삭이 즉위한 그 해에 기(紀)나라를 정벌하는 제나라의 요청을 받은 위후가 원군을 보냈으나, 기나라를 구하기 위해 원병을 이끌고 출정한 정·노(鄭魯) 연합군에 의해 패해 많은 군사를 잃었을 뿐이었다. 위혜공이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정나라가 사자를 보내 왔다. 혜공을 접견한 정나라 사자는 려공을 쫓아낸 정나라 군신들이 위나라에 망명 중에 있는 소공(昭公) 홀(忽)을 정백의 자리에 복위시키기 위해 모시러 왔다고 고했다. 혜공이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하며, 즉시 병거와 군사를 동원하여 정소공을 호송하여 정나라에 귀국시켰다.

한편 사위를 죽이고 려공을 쫓아낸 정나라의 상경 제족은 위나라에서 돌아온 소공에게 절을 올리고, 옛날에 그를 보호하지 못한 행위를 사죄했다. 소공이 비록 제족에게 죄를 묻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공은 옛날과 달리 제족을 소원하게 대했다. 제족 역시 두려워한 생각이 든 나머지 몸을 사리며 매일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옛날부터 소공으로부터 신임을 잃고 있었던 고거미도 역시 복위한 소공에게 살해되지나 않을까 매우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몰래 자객을 길러 소공을 죽이고 공자미를 옹립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한편 정나라에서 쫓겨난 정려공 돌은 채나라에 있으면서 그곳 사람들과 교분을 두텁게 맺었다. 려공이 력성(櫟城)을 지키고 있던 단백(檀伯)에게 사람을 보내, 력성의 땅을 빌려 복국의 근거지로 삼고자 그 뜻을 전하게 했으나, 단백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채나라 사람들을 상인으로 변장시켜 력 땅으로 보내 장사를 하게 하면서 그 곳 사람들과 친교를 맺게 하고, 후에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게끔 비밀리에 약조하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기회를 틈타 채나라 사람을 시켜 단백을 살해한 려공은 력성을 점령하고 거처를 옮겨 살기 시작했다. 려공은 채나라의 도움을 받아 력성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고 해자를 깊이 판 후에 굳게 지키다가, 기회를 보아 군사를 크게 일으켜, 장차 정나라를 공격하여 정백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려고 했다. 제족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소공에게 고해 대부 부하(傅瑕)에게 명하여 대릉(大陵)⑦에 주둔시켜 려공의 침입에 대비하도록 했다. 정나라가 자신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어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 려공은 사자를 노환공에게 보내, 옛날 자기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일에 대해 송장공에게 사죄한다는 뜻과, 만약 복국하게 해주면 지난번 주기로 한 땅과 곡식 중 아직 주지 못한 것들을 전부 바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도록 부탁했다. 노나라 사자가 송나라에 당도하여 정려공의 뜻을 전하자 송장공의 탐심이 다시 동하여 채와 위 두 나라와 연맹하여 군사를 일으켜 려공을 복국시키려고 기도했다.

그때 정백의 자리에 복위하기 위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정소공 홀을 군사를 내어 호위하여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위혜공 삭은 정작 소공이 그 일에 대해 아무런 감사의 말도 표하지 않아 소공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위혜공은 정나라를 정벌하자는 송장공의 요청을 허락하고 정려공의 복위를 위해 정나라 정벌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위후의 자리에 즉위한 이래 제후들과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 위혜공은 제후들과 만나 회맹을 행한 후에 곧바로 친히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다. 이윽고 위후 삭이 군사를 이끌고 나라밖으로 나가자 공자설이 공자직을 만나 말했다.

「나라의 군주가 멀리 출타하였으니 드디어 우리들이 거사할 때가 왔소!」

공자직이 응대했다.

「거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주를 정하여야만 합니다. 백성들은 군주가 있어야만 마음속으로 승복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은밀히 계책을 의논하고 있는데 심부름하는 사람이 와서 말했다.

「대부 영궤(寧跪)가 문 앞에 당도하여, 상의할 일이 있다며 뵙고자 합니다.」

두 공자가 같이 나와 영궤를 안으로 맞이했다. 두 공자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좌정한 영궤가 말했다.

「두 공자께서는 세자 급자와 공자수가 배를 타고 가다가 목숨을 잃은 원통한 일을 이미 잊으셨습니까? 이번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공자직이 대답했다.

「저희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나 새로 모셔야 할 군주를 아직 정하지 못해 거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궤가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이 즉시 대답했다.

「여러 공자들 중 오로지 주나라에 살고 있는 검모(黔牟)만이 어질고 덕이 높아 군주로 모실만 합니다. 더욱이 검모는 천자의 사위가 되어 우리 위나라 국인들을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검모를 새로운 군주로 추대하기로 약속한 세 사람은 즉시 희생을 잡고 그 피를 얼굴에 발라 맹세했다. 그들은 비밀리에 급자와 공자수의 종자들을 찾아 그들로 하여금 거짓소문을 나라 안에 퍼뜨리게 했다.

「위후가 정나라를 정벌하다가 싸움에서 패하여 란군 중에 죽었다.」

그런 다음 사자를 주나라에 보내 왕녀와 혼인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던 검모를 모셔와 위후로 세웠다. 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조당에 나와서 새로 즉위한 검모를 알현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어서 위선공은 위후 삭이 두 형을 배 위에서 살해한 사실을 알고 그 일로 인해 화병으로 죽었다고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급자와 수를 위해 상을 발하고 그들의 시신을 파서 다시 개장했다. 또한 사자를 주나라에 보내 검모가 위후에 즉위하였음을 고하고 영궤에게는 군사들을 이끌고 위나라 변경에 나가 혜공이 돌아오는 경우를 대비하게 했다.

한편 급자와 공자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선강이라고 생각한 공자설이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나 공자직이 만류했다.

「선강의 죄는 비록 죽어 마땅하나 제후(齊侯)의 누이라 만약 우리가 죽인다면 제후가 노하여 죄를 묻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올까 두렵습니다. 살려두어 제나라와 수교를 맺을 때를 대비해야 만전을 기하는 일이 됩니다.」

두 사람은 선강을 궁 밖으로 내보내 별궁에 머물게 하고 매 달마다 의복과 음식물을 보내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이윽고 정려공의 복위를 위해 송(宋), 노(魯), 채(蔡), 위(衛) 네 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제족이 스스로 군사를 끌고 대릉(大陵)에 당도하여 부하와 힘을 합쳐 네 나라의 군사들을 임기응변의 전법으로 막아내어 잘 버텼다. 네 나라의 연합군은 결코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 결국은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아무런 전과도 못 올리고 회군하던 위후 삭은 두 공자가 란을 일으켜 이미 검모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방향을 바꿔 곧바로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양공이 위후를 보고 조카라고 부르면서 숙식을 마련해주고 후하게 대접하면서, 장차 군사를 내어 나라를 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위후 삭이 양공에게 맹세했다.

「만일 제가 군후의 도움으로 위후의 자리에 다시 오른다면 위나라의 창고에 있는 모든 보물과 재화를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양공이 듣고 크게 기뻐하던 중 갑자기 보고가 들어 왔다.

「노후가 보낸 사자가 당도하여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노나라의 사자는 주나라에 혼사를 구한 제후의 청을 주왕이 허락했으며 동시에 노후로 하여금 혼사를 주관하도록 명했다고 전했다. 주나라는 왕녀를 제양공에게 시집보내기로 허락했음을 통고한 것이다. 노후가 친히 제나라에 와서 제후와 서로 만나 혼사에 대해 상의하려고 한다는 뜻을 노나라 사자가 전하자, 양공은 그 여동생 문강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음을 생각하고는, 노후가 올 때 문강도 같이 대동했으면 좋겠다는 자기의 뜻을 전하고 다시 자기도 별도의 사자를 노나라에 보내 문강도 같이 오라고 청했다. 제나라의 여러 대부들이 위나라를 정벌할 시기를 묻자 양공이 대답했다.

「검모는 주나라 천자의 사위로 나와는 장차 동서지간이 될 것이다. 과인이 주나라에 혼사를 청하고 있는 순간이니 위나라를 정벌하는 일은 잠시 뒤로 미루어야 하겠다.」

그러나 그 사이에 위나라 사람들이 선강을 살해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제양공은 공손무지(公孫无知)로 하여금 제나라에 망명하고 있는 급자의 동모제인 공자석을 데리고 위나라에 가게 했다. 제양공은 공자석과 선강을 부부로 만들어 같이 살게 한다면 앞으로 위혜공이 복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공손무지에게 은밀히 당부했다. 공손무지가 양공의 명령을 받고 공자석을 데리고 위나라에 가서 새로 즉위한 검모를 알현했다. 그 당시 공자석의 부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무지가 제후의 뜻을 여러 군신들에게 널리 알리고 또한 선강에게도 전했다. 선강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선강에 대해 평소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던 위나라의 여러 신료들은 금일에 이르러 그 이름을 오히려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제후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공자석만이 부자지간의 윤리를 생각하여 완강하게 거절했을 뿐이었다. 무지가 공자직에게 은밀히 이야기했다.

「이 일이 잘 처리되지 않으면 내가 돌아가서 우리 주군에게 어떻게 복명할 수 있겠소?」

공자직이 제후에게서 환심을 잃을까 걱정하여 미리 계책을 정하여 공자석을 연회에 청한 후에 여자들로 하여금 권하여 마시게 하여 흠뻑 취하도록 만들었다. 술에 취해 쓰러진 공자석을 시자들을 시켜 부축하여 별궁에 있던 선강의 방에 들여보내 취중에서 일을 치르게 했다. 이윽고 술에서 깨어나 자기가 저지른 일을 알게 된 공자석은 마음속으로 크게 후회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쩌는 수가 없었다. 선강과 공자석은 결국 부부가 되어 후에5남매를 낳았다. 장남 제(齊)는 어려서 죽고 차자는 의공(懿公-혜공 삭의 아들)의 뒤를 잇게 되는 대공(戴公) 신(申)이며 삼남은 대공이 죽자 그 뒤를 잇게 되는 문공(文公) 훼(燬)이다. 두 딸은 송나라 환공(桓公)과 허나라 목공(穆公)의 부인이 되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하였다.

어찌하여 며느리를 훔쳐서 부인으로 삼았는가?

그 아들이 서모를 범하니 업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강이 낳은 아들이 선강을 계실로 삼으니

그 집안의 가법의 원류는 가히 진기하기가 그지없구나.

子婦如何攘作妻(자부여하양작처)

子烝庶母報非遲(자증서모보비지)

夷姜生子宣姜繼(이강생자선강계)

家法源流未足奇(가법원류미족기)

옛날 선공이 그 부친의 후비였던 이강을 범하여 급자, 검모 및 공자석을 낳았는데 그 중 공자석이 위선공의 미망인인 선강을 범하여5남매를 낳은 일에 대해 언급한 시다. 이것은 신대의 업보만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집안의 가법과도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5. 승간역군(乘間易君)

- 기회를 틈타 그 군주를 바꾼 정나라의 고거미-

한편 정나라의 제족은 4국 연합군이 물러가자 대릉에서 도성으로 돌아왔다. 제족은 력성에 정나라의 옛날 군주였던 려공 돌이 주둔하고 있는 한 결국 정나라의 우환은 없어지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가지로 궁리 끝에 려공을 막을 한 가지 계책을 세웠다. 옛날 제희공이 기(紀)나라를 정벌할 때, 정려공이 노나라와 같이 기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물리친 일로 해서 전통적인 우호국 관계였던 두 나라는 원수의 나라가 되고 말았으나 얼마 전에 려공을 복위시키려고 사국의 제후들이 연합하여 정나라에 쳐들어 올 때는, 오로지 제후만이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음을 제족은 상기했다. 더욱이 융병을 물리쳐 제나라에 공을 세운 소공이 다시 복위하여 마침 제나라와 수교를 맺으려고 하려던 참이었다. 또한 노환공이 제양공을 위하여 혼사를 주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나라가 제나라와 수교를 맺게 되면 노나라도 정나라 편에 끌어들일 수 있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공에게 주청하여 허락을 받아낸 제족은 많은 폐백을 가지고 친히 제나라에 가서 친선을 맺고 뒤이어 노나라로 들어가 수교를 맺으려고 했다. 만약에 두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송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또한 송나라의 지원을 받고 있는 려공의 복위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옛말에 ‘지자는 천 가지를 생각하지만 그 중에 반드시 한 가지는 놓치는 일이 있다’⑧고 했다. 제족은 단지 려공(厲公)만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고거미의 악독한 음모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거미는 모든 준비를 해 놓고 있었지만, 오로지 지혜로운 제족을 두려워하여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제족이 제나라로 먼 길을 떠나자,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어진 고거미는, 비밀리에 채나라에 망명하여 머물고 있던 공자미를 맞이해 와 자기 집에 숨겨 놓고 거사를 일으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공이 겨울철에 지내는증제(烝祭)를 올리기 위해 출타할 일정을 미리 알고 있던 고거미는 자객을 도중에 매복시켜 놓았다. 이윽고 예상대로 행차한 소공을 자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살해했다. 고거미는 소공이 도적들의 습격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고 백성들에게 공포하고, 공자미를 받들어 정백의 자리에 앉혔다. 공자미는 사자를 제나라로 달려가게 해서 제족에게 즉시 환국하여 고거미와 함께 정나라의 정사를 돌보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애석하게도 소공은 복국한지3년도 채 안되어 역신으로부터 화를 당했다. 염선(髥仙)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자 ‘소공이 세자 때부터 이미 고거미의 악독함을 알고 있었고, 또한 두 번이나 정백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신하를 미리 자르지 못하고 있다가 스스로 화를 당하였으니, 어찌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이 아니었는가?’ 하면서 시를 지어 한탄하였다.

악초는 마땅히 호미로 파서 제거해야 하지 않았는가?

뱀과 호랑이가 여하히 같이 살 수 있겠는가?

내가 타인을 제압 못하면 타인이 나를 제압할 텐데

당년에 소공은 고거미를 잘못 다려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明知惡草自當鉏(명지악초자당서)

蛇虎如何與共居(사호여하여공거)

我不制人人制我(아부제인인제아)

當年枉自識高渠(당년왕자식고거)

『13회로 계속』

①기수(淇水)/ 황하의 지류로써 위나라 도성이 있었던 지금의 기현(淇縣)으로 흘렀던 강이름이다. 위나라의 도읍 조가(朝歌)는 기수 강변에 건설된 도시다.

②원전은 『시경(詩經)․국풍(國風)․패풍(邶風)』의 『신대(新)』다.

③무염(無鹽)/ 전국 때 제선왕(齊宣王)의 비인 종리춘(鍾離春)의 별칭으로 그녀는 무염(無鹽)이라는 고을 출신이다. 무염은 천하의 박색이었으나 제선왕에게 내조를 잘하여 제나라가 크게 다스려지게 했다. 무염녀(無鹽女)는 추녀(醜女)를 뜻한다. 연의89회 내용 참조

④모(旄)/깃대의 꼭대기를 소꼬리나 새의 깃을 달아 드리운 장식. 이것으로 장식한 기를 정기(旌旗)라 하고, 이 장식은 지휘봉이나 춤추는 사람이 손에 드는 기구의 끝에 달기도 했다.

⑤신야(莘野)/현 산동성(山東省) 신현(莘縣)부근. 하북, 하남과의 접경지역에 있었던 고을.

⑥공자석(公子碩)/ 위선공은 이강과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낳았는데 장자는 혜공에게 살해당한 급자, 차자는 후에 위혜공 삭을 몰아내고 위후의 자리에 앉은 검모(黔牟), 막내가 공자석이다. 따라서 선강은 공자석의 계모가 되는 셈이다. 후에 혜공의 뒤를 이은 의공(懿公)이 북융(北戎)의 침입으로 전사하여 혜공의 후대가 끊기자 당시 제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공자석과 선강사이의 소생인 대공(戴公) 신(申)과 문공(文公) 훼(毁)를 제환공이 차례로 위나라로 들여보내 위후의 자리에 앉혔다.

⑦대릉(大陵)/현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남20키로

⑨知者千慮 必有一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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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3회. 身亡國破(신망국파) 東遷洛邑(동천락읍)

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몸은 죽고 나라를 망하게 한 주유왕과 나라를 동쪽의 락읍으로 옮긴 주평왕 1. 신망
양승국 04-05-10 1563
[일반] 제2회. 贖罪獻美人(속죄헌미인), 烽火戱諸侯(봉화희제후)

제2회 贖罪獻美 烽火戲諸侯(속죄헌미 봉화희제후) 유왕에게 미녀를 바쳐 속죄한 포성의 성주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회롱한 주유왕 성
양승국 04-05-10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