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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05:498045 
제6회. 大義滅親(대의멸친), 假命伐宋(가명벌송)
양승국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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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6회 大義滅親 假命伐宋(대의멸친 가명벌송)

아들을 죽여 대의멸친하는 위나라의 대부 석작과

천자의 칙령을 사칭하여 송나라를 정벌하는 정장공

1. 調虎離山 借刀擒賊(조호이산 차도금적)

- 산을 떠나게 한 호랑이를 남의 칼을 빌려 포획하다. -

일단의 정나라 군사를 그럭저럭 이기게 되었다고 생각한 석후가 곧바로 회군한다는 영을 내리자, 다른 여러 나라의 장수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제히 주우 앞으로 달려와서 그 연유를 물었다.

「우리 군사들의 예기가 비로소 왕성하게 일어나 그 승세를 타고 신정성으로 진격하려고 하는 순간에 어찌하여 갑자기 회군하려고 하십니까?」

주우도 역시 의아하게 생각하던 참에 석후를 불러 물었다. 석후가 대답했다.

「신이 주군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좌우를 물리쳐주시기 바랍니다」

주우가 손을 휘저어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여 좌우에 아무도 없게 되자 석후가 말했다.

「정나라 군사는 원래 강합니다. 또한 그 군주는 주나라 경사의 직에 있어 제후들 사이에 명망이 높습니다. 오늘 우리가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위엄을 세우는 데는 충분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또한 주군께서 군위에 오르신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안의 일이 아직 안정이 안 되고 있는데 만일 오랫동안 나라 밖에 나와 있으면 국내에서 변란이 일어날까 걱정되어 회군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우가 깨닫고 말했다.

「경의 말이 아니었으면 과인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으리라!」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가자 노, 진, 채 삼국의 장수들이 모두 와서 승전을 축하하고 각각 회군하기를 청했다. 곧이어 사국의 연합군이 신정성의 포위망을 풀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신정성의 포위했던 5국 연합군은 겨우 5일 만에 물러갔다. 석후가 스스로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여 삼군에게 일제히 개선가를 부르게 하고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위나라로 돌아 왔다. 그때 부른 개선가를 야인들이 듣고 전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한 명의 영웅이 죽자 또 다른 영웅이 일어선다.

노래와 춤은 칼을 든 병사들을 변하게 하는데

태평성대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전하는 사람이 없음이여!

왕도에 호소하는 우리의 마음을!

一雄斃一雄興(일웅폐일웅흥)

歌舞變刀兵(가무편도병)

何時見太平 (하시견태평)

恨無人兮(한무인혜)

訴洛京(소락경)

주우가 위나라에 돌아와서 석후를 보고 물었다.

「백성들이 아직도 나를 따르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석후가 대답했다.

「상경의 벼슬로 있는 신의 부친 작(碏)은 평소에 백성들이 믿고 따랐습니다. 주공께서 그를 불러 함께 나라를 다스리자고 하신다면 주군의 자리를 조만 간에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주우가 사자에게 벽옥 한 쌍과, 흰 곡식 5백 종(鍾)①을 주어 석작을 찾아가 건강을 묻고 즉시 입조하여 국정을 돌보라는 명을 내렸다. 석작은 병이 위중하다는 핑계를 대고 완강하게 고사하면서 벽옥과 곡식을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주우가 다시 석후에게 물었다.

「경의 부친이 입조하기를 거부하니 과인이 직접 가서 계책을 물어보면 어떻겠는가?」

「주공께서 비록 가시더라도 아마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직접 가서 주군의 명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석후가 말을 마치고 즉시 집으로 가서 부친을 뵙고 새 군주가 경모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석작이 듣고 말했다.

「신주(新主)가 나를 부르니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고자 함이냐?」

「그것은 단지 백성들이 마음속으로 아직 복종하지 않아 신주의 군위가 아직 불안한 상태라 부친께 좋은 계책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제후가 새로 즉위하면 그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주천자)에게 고해야 한다. 새로 즉위한 위후(衛侯)가 주천자에게 조현을 드리고 불면(黻冕)②과 거복(車服)③을 하사 받는다면 바로 천자의 칙명과 같아 신주의 위나라 군주자리를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다. 어찌 우리 위나라 국인들이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매우 합당한 말씀입니다. 단지 명분 없이 주나라에 입조하면 천자는 분명이 우리를 의심하여 거복과 불면을 하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사람을 보내 우리의 사정을 먼저 알린 연후에 들어가 천자의 명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성을 다해 천자를 따르고 있는 진(陳)나라의 군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명을 거스르지 않고 시시때때로 왕성에 입조하여 조현을 올려 천자의 신임을 받고 있다. 또한 진나라는 우리 위나라와는 원래부터 서로 친하여 근자에 우리가 정나라를 정벌할 때도 군사를 보내 도와주기까지 했다. 신군이 진나라를 친히 방문하여 진후에게 우리의 사정을 천자에게 먼저 알려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신군이 입조하여 천자를 배알하면 되는데 어찌 어렵다고만 하느냐?」

석후가 즉시 궁정으로 돌아가서 그 부친의 말을 주우에게 설명했다. 주우가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주우는 즉시 벽옥과 비단을 예물로 준비하여 수레에 가득 싣고 석후를 호위 삼아 어가를 타고 진나라로 출발했다. 원래 석작은 진나라의 대부 자침(子針)과는 평소에 자주 왕래하여 교분이 두터웠다. 석작은 즉시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로 편지 한 통을 써서 심복에게 주어 자침에게 밤을 도와 달려가서 전하게 했다. 자침은 그 편지를 진환공(陳桓公)에게 바쳤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외신 석작은 백배를 드리며 진후 전하께 편지를 올립니다. 위나라는 국토가 협소한데다, 하늘이 재앙을 거듭 내려 나라의 군주가 시해되는 불행한 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우리나라 군주의 동생이 반역을 한 결과이지만, 실은 신의 역자 석후가 작위를 탐하여, 포악한 사람을 도와서 일어난 일입니다. 두 반역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란신적자의 악행은 온 천하를 전염시킬 것입니다. 이미 70이 넘은 노부는 힘이 부족하여, 두 사람을 제압하지 못한 결과 선군에게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오늘 두 사람의 역신이 마차를 앞뒤로 해서 상국에 입조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실은 노부가 꾸민 계략에 의해 그리 된 일입니다. 다행히 상국이 잡아서 죄를 물어주신다면 신하된 자들의 도리를 바로 잡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천하의 다행스러운 일이며 어찌 저희 위나라에게만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까?」

진환공이 읽기를 마치고 자침에게 물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위나라에 나쁜 일은 우리 진나라에도 나쁜 일입니다. 오늘 두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진나라에 오고 있으니 어찌 그들을 붙잡아 죄를 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경은 뜻대로 하십시오.」

환공의 명을 받은 자침은 주우를 잡을 계획을 세우고 그의 일행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주우가 석후를 데리고 진나라에 당도했다. 아직 석작의 계획을 모르는 위나라의 군주와 신하는 의젓하게 진나라에 들어 왔다. 진후가 공자타(公子佗)에게 명하여 성밖으로 나가 두 사람을 영접하여 객관에 묶게 했다. 공자타는 다음날 아침 태묘에서 회견하겠다는 진후의 명을 전했다. 진후가 공자타를 보내어 자기를 극진하게 대한다고 생각한 주우는 매우 기뻐해마지 않았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자 자침은 태묘에 대청을 세워 가운데 자리에는 진환공이 앉고 좌우 양쪽에는 신하들을 배석하게 하여 대열을 엄정히 갖추게 했다. 석후가 먼저 당도하여 보니 태묘의 문 위에 달린 하얀 팻말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신하된 자로써 불충한 사람과 자식 된 자로써 불효한 사람은 이 태묘에 들어올 수 없다.』

석후가 크게 놀라 영접하러 나온 자침에게 물었다.

「이 팻말을 무슨 뜻에서 걸어 놓았습니까?」

「이것은 우리 선군의 교훈이라 우리 군주께서 한시라도 감히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석후가 의심을 풀었다. 잠시 후에 주우을 태운 수레가 도착하여 태묘 앞에서 내렸다. 석후가 맞이하여 태묘의 문 앞으로 인도하자 진나라의 손님을 접대하는 관리가 나와서 두 사람을 태묘에 들게 했다. 가져온 예물을 바친 주우는 홀(笏)④을 양손에 받쳐 들고 무릎을 꿇어 진환공에게 예를 올리려고 했다. 그 순간 진환공 곁에서 시립하고 있던 자침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두 사람을 향하여 큰 소리로 꾸짖었다.

「주나라 천자로부터 ‘시군적자(弑君賊子) 주우와 석후 두 사람을 잡고 나머지 사람들은 죄를 면해 주라!’는 명을 받았다.」

자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가 먼저 주우를 포박했다. 석후가 급히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대항하려고 했으나 황망 중이라 허리에 찬 긴 칼을 뽑을 수 없었다. 미처 칼을 뽑지 못한 석후는 할 수 없이 맨손으로 싸워 두 사람의 장사들을 넘어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태묘 좌우의 칸막이 뒤에 매복시켜 놓은 무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달려들어 석후마저 포박했다. 태묘 밖에는 주우를 따라온 병사들이 많이 있었으나,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포박 당하는 모습을 보고 감히 달려들 생각을 못했다. 두 사람을 꿇어앉힌 자침이 그들 앞에서 석작이 보낸 편지를 소리 높여 읽었다. 주우를 뒤따라온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석작이 주모하여, 진나라의 손을 빌려 두 사람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늘의 이치로 볼 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사관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주우가 옛날 환공을 전별연에서 죽이고

오늘 진나라 조당에서 똑같이 화를 당했다.

며칠이나 임금 노릇을 했는지 손가락으로 세워보고

푸른 하늘에 대고 물어보라, 천도가 무엇인지!

州吁昔日餞桓公(주우석일전환공)

今日朝陳受禍同(금일조진수화동)

屈指爲君能幾日(굴지위군능기일)

好將天理質蒼穹(호장천리질창궁)

2. 대의멸친(大義滅親)

- 자식을 죽여 대의를 행하다. -

진환공이 주우와 석후를 죄를 물어 죽이려고 하자 군신들 모두가 말했다.

「석후는 곧 석작의 친아들입니다. 석작의 뜻이 어떠한지 알 수 없으니 뒷말이 없도록 위나라에 청하여 스스로 치죄토록 하십시오.」

「경의 말이 옳소!」

진환공은 그 즉시 위나라의 임금과 신하 두 사람을 각각 나누어 주우는 함거에 실어 위나라의 복읍(濮邑)으로 보내고 석후는 진나라 본국에 감금하여 서로 간에 소식을 모르게 했다. 자침은 사자를 위나라로 밤새 달려가게 하여 두 사람을 잡아서 주우는 복읍으로 호송하고 석후는 옥에 가두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석작에게 직접 전하게 했다.

한편 석작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을 버린 후로 집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진후의 사자가 당도했다는 말을 듣고 종자들에게 명하여 마차를 몰게 하여 궁궐로 향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자들을 풀어 여러 대부들을 조당에 나오도록 통지했다. 위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석작의 부름을 받고 매우 놀랐다. 석작이 친히 당도하여 여러 관리들을 모두 조당에 모이게 한 후, 진후가 보낸 서찰을 꺼내어 겉봉을 뜯고 읽었다. 조정에 모인 관리들은 주우와 석후를 진나라가 사로잡아 두 사람에 대한 논죄를 위나라 대부들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나라의 관리들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사직에 관한 큰일입니다. 저희 모두는 나라의 원로이신 대부께서 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역적 두 놈의 죄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정의를 밝히고 형벌을 바로 세워 선령에게 고해야 합니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시겠습니까?」

우재추(右宰醜)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란신적자는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이 추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일찍부터 주우가 한 행위에 대해 의분을 품어 왔습니다. 역적 주우가 있는 곳에 임해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대부들이 모두 같이 말했다.

「우재는 이 일을 능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단지 이번 일의 수범인 주우는 이미 법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석후는 주우를 따랐을 뿐이니 가볍게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석작이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주우의 악행은 모두가 역자 석후가 조장하여 생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법의 집행을 가볍게 하자고 하는 말은 자기 새끼를 핥아 귀여워하는 어미소 같이, 내가 사정에 얽매인 사람이라고 의심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 노부가 직접 진나라도 들어가 이 손으로 그 역적 놈을 죽이겠습니다. 그 역적을 죽이지 않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의 묘소를 대할 수 있겠습니까?」

석작의 가신 누양견(獳羊肩)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국로께서는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신 가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석작은 우재추는 복읍으로, 누양견은 진나라 도성으로 각각 보내어 주우와 석후를 죽이는 자리에 참석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형국(邢國)⑤에 망명 중인 공자진(公子晉)을 모셔와 비어있는 위나라의 군주자리를 잇기 위해 어가를 정비하여 그곳으로 보냈다. 노나라의 좌구명(左邱明)이 춘추좌전(春秋左傳)을 편찬할 때, 석작의 일에 대해 칭송했다.

『대의를 위해 자식을 죽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충신이로다.』

후세의 사관도 시를 지어 석작의 대의멸친(大義滅親)한 일에 대해 찬양했다.

공의와 사정은 같이 행할 수 없어서

기꺼이 아들을 죽이고 임금의 원한을 갚았다.

자식 사랑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잃은 속인들이

어찌 아름다운 이름을 만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公義私情不兩全(공의사정불양전)

甘心殺子報君寃(감심살자보군원)

世人溺愛偏多昧(세인익애편다매)

安得芳名壽万年(안득방명수만년)

그러나 농서거사(隴西居士)는 시를 지어 석작에 대해 논하기를 석후가 주우와 같이 돌아다니며 시정을 어지럽히고 다닐 때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후에 주우와 같이 시군의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논했다.

역모의 뿌리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어찌하여 미리 역자를 죽이지 않았는가?

노신이 앞날을 내다보고 염려하였으나

아들이라 죽이지 못해 주우를 망치게 했다.

明知造逆有根株(명지조역유근주)

何不先將逆子除(하불선장역자제)

自是老臣懷遠慮(자시노신회원려)

故留子厚誤州吁(고유자후오주우)

진나라 도성에 함께 당도한 우재추와 누양견은 먼저 진환공을 알현하고 반란자들을 대신 체포해 준 일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린 연후에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헤어졌다. 우재추가 복읍에 이르러 주우를 시정 한가운데로 끌고 나오게 했다. 주우가 우재추를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너는 나의 신하가 아니냐? 어찌 감히 나를 범하려 드느냐?」

「위나라에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한 자가 있었다. 내가 그를 본받아 행하고자 할뿐이다.」

주우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머리를 굽혀 순순히 형을 받았다. 한편 진나라의 도성에 남은 누양견은 석후의 형을 집행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석후가 누양견을 보고 말했다.

「나의 죄는 당연히 죽어 마땅하나 함거를 타고 가서 부친의 얼굴이나 한 번 뵙고 형을 받들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너의 부친의 명을 받들어 반역도를 죽이려고 왔다. 부친을 보고 싶어 하니 너의 목을 가져가 상면시켜 주도록 하겠다.」

누양견이 주저하지 않고 즉시 허리에 차고 있던 자신의 검을 뽑아 석후의 목을 베었다.

한편 위나라 본국에서는 형국에서 돌아온 공자진은 주우를 주살한 일을 위나라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무궁(武宮)에 들어가 고하고, 주우에게 시해 당한 환공의 장례를 다시 치르고 위나라 군위에 올랐다. 이가 위선공(衛宣公)이다. 위선공은 석작을 국로로 삼고 그 후손들로 하여금 대대로 경의 직위를 잇도록 했다. 이후로 진과 위 두 나라는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3. 離間宋陳(이간송진)

- 진나라를 이간시켜 송나라를 고립시키는 정장공 -

한편 오국의 군사들이 물러가 흩어지는 모습을 본 정장공이 사람을 장갈에 보내 공자풍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시자가 달려와 고했다.

「공자풍이 장갈에서 빠져나와 이곳 도성에 당도하여 조문 밖에서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공자풍을 조당으로 들어오게 한 장공이 장갈에서의 정황을 물었다. 공자풍이 호소했다.

「장갈은 이미 함락되어 송나라 군사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저는 간신히 목숨을 구해 이렇듯 도망쳐 나왔습니다. 불쌍한 이 몸을 부디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공자풍이 통곡했다. 장공이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공자풍이 전에 머물렀던 관사를 내주며 옷과 음식을 후하게 주어 대접하게 했다. 공자풍이 장갈에 돌아온 지 하루도 미처 되기 전에, 주우는 진나라의 복읍에서 피살되고 위나라는 새로운 임금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정장공이 말했다.

「위나라의 주우가 우리 정나라에 행한 짓은 새로운 위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겠으나 우리나라를 침략해 온 나라들 중 주동자는 송나라이다. 내가 마땅히 먼저 송나라부터 정벌해서 원수를 갚아야 하겠다.」

이어서 여러 신하들을 불러 모이게 하고 송나라를 정벌할 계책에 대해 물었다. 제족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지난번에 다섯 나라가 연합하여 우리나라를 공격해 왔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 송나라를 정벌한다면 나머지 네 나라는 반드시 우리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되어, 병사를 모아 송나라를 도울 것입니다. 이는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현재로써 가장 좋은 계책은 우선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의를 맺고 다시 이를 내세워 노나라와 결맹해서 송나라를 고립시켜야 합니다.」

장공이 제족의 의견을 좇아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관계를 수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진후는 정나라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공자타가 진후에게 간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음은 나라의 홍복입니다. 정나라가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하는데 이를 거절하심은 옳지 않습니다.」

진환공이 공자타를 향해 말했다.

「정백이라는 사람은 교활하고 남을 잘 속이는데 어찌 가볍게 믿을 수 있겠소? 그렇기 때문에 송과 위 같은 대국과는 우호관계를 맺지 않고 우리 진나라 같은 소국과 먼저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함이 아니겠소? 이것은 이간책이 분명하오. 더욱이 우리는 지난번에 송나라의 뒤를 따라 정나라를 정벌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우리가 다시 정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으면, 송나라는 반드시 노하여 우리나라를 정벌하지 않겠소? 정나라를 새로 얻고 송나라를 잃으면 어느 편이 이득이겠소?」

진환공은 결국 정나라의 사신을 접견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진나라가 강화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정장공은 화를 내며 말했다.

「진나라가 믿는 바는 오직 송과 위 두 나라뿐인데, 위나라는 반란을 진압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백성들의 마음이 아직 안정이 안 되어 자기 앞가림만 하는데도 여념이 없어, 다른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일단은 노나라와 결맹을 맺고 다시 제나라에 군사를 청해 먼저 송나라에 원수를 갚고, 차후에 진나라를 친다면 이것이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족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나라는 강하고 진나라는 약합니다. 우리의 화의 요청을 진나라가 거절한 이유는 이간책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나라 변경의 군사들에게 명하여, 진나라 변경의 방비가 허술한 곳을 골라 쳐들어가서, 그곳의 백성들과 재물을 로획하여 치중에 가득 싣고 돌아오게 하십시오. 후에 구변이 좋은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포로와 재물 등을 돌려준다면, 진나라는 우리가 자기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속내를 알게 되어, 필시 우리의 수호 요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은 후에 서서히 송나라를 정벌한다면 만전을 기하는 일입니다.」

좋은 계책이라고 제족의 계책을 받아들인 정장공은 그 즉시 정나라의 동서 양쪽 변경 지방에 있는 고을의 수장에게 명하여 군사 5천 명과 치중 백여 대를 인솔하고 사냥을 핑계로 진나라 땅으로 잠입하여 그곳의 백성과 재물들을 약탈하여 가득 싣고 돌아오게 했다. 갑자기 정나라 군사들의 침략을 당한 진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수장이 진환공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환공이 크게 놀라 여러 신하들을 불러 상의하여 대책을 세우려고 하는데, 중 갑자기 시자가 달려와서 고했다.

「정나라의 영고숙이라는 자가 사자의 신분으로 국서를 지참하고 지난번에 약탈해간 포로와 노획물을 치중에 싣고 와서 조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환공이 공자타를 향해 물었다.

「정나라가 사절을 보낸 이유는 무슨 뜻에서요?」

공자타가 대답했다.

「사절의 래방은 좋은 일입니다. 다시 물리치면 안 됩니다.」

환공이 영고숙을 불러 접견했다. 고숙이 인사를 올리고 정나라의 국서를 바치자 환공이 겉봉을 뜯고 읽었다.

「오생이 진후 전하께 삼가 국서를 올립니다. 군후께서는 천자의 총애를 받아 왔습니다. 과인 역시 황공하게도 천자의 신하로 주왕실의 경사의 직을 맡아 왔습니다. 이로써 이치를 따지자면 두 나라는 상호간에 우호관계를 유지하여야 마땅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 두 나라는 주나라 왕실의 번방(藩邦)으로써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과인이 상국에 수호를 요청 드렸으나 아직 허락을 못 받고 있는 차제에, 우리나라 변방의 관리가 두 나라 사이에 틈이 생겼다고 의심한 나머지, 귀국의 변경을 함부로 어지럽혔습니다. 과인이 그 일에 대해 듣고 자나깨나 늘 불안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변경 관리들이 노획한 상국의 백성들과 재물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치중에 실어 되돌려 드리며, 저의 신하인 영고숙 편에 저의 잘못에 대해 사죄의 뜻을 전하게 합니다. 원컨대 과인은 진후 전하와 결의형제를 맺어 우의를 굳건히 하고자 하오니, 오로지 진후 전하의 허락이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국서를 다 읽고 난 진후는 정나라가 화의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이어 영고숙을 극진히 접대하고 공자타를 답례사절로 정나라에 보냈다. 이로써 진과 정 두 나라는 수호를 맺어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4. 가명벌송(假命伐宋)

- 천자의 명을 사칭하여 송나라를 정벌하는 정장공 -

주환왕 3년 기원전 717년, 정장공이 세자홀에게 본국의 정사를 맡기고 자기는 제족과 함께 왕성으로 들어가 천자를 알현했다. 그날이 동짓달 11월 초하루로, 마침 제후들이 천자에게 하례를 올리는 날이었다. 주공 흑견이 왕에게 권하여 정백을 예로 대하여 열국의 제후들에게 본을 보이기를 권했다. 그러나 환왕은 정백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고, 또한 정백이 주나라의 변경을 침입하여 보리와 벼이삭을 베어 간 일이 생각나자, 앞에 대령한 장공을 면전에서 빈정대며 말했다.

「경의 정나라는 금년농사 작황이 어떠하오?」

「대왕의 은혜와 하늘이 내려 준 복으로 홍수나 한발도 입지 않고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왕실도 온(溫) 땅에는 보리와 밀이, 왕성의 교외 땅에는 벼농사가 풍년이 들어 짐도 굶지 않고 견딜만 하오.」

정장공은 가시 돋친 환왕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조당에서 물러 나오고 말았다. 환왕은 정백을 위해 잔치도 베풀지도 않았고 기념으로 아무 물품도 하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하루는 사람을 시켜 곡식을 실은 마차 열 대를 보내면서 자신의 말을 전하게 했다.

「받아 두었다가 그대 정나라에 흉년이 들 때 쓰도록 하시오.」

장공이 주나라에 입조한 행위를 후회하면서 제족에게 말했다.

「경의 말을 듣고 입조했는데 지금 주왕이 나를 심히 태만히 대하고, 하는 말마다 원망만을 늘어놓으면서 곡식을 실은 마차를 보내 나를 조롱하고 있소. 내가 곡식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야 되겠는데 어떤 구실을 대야 하겠소?」

제족이 대답했다.

「제후들이 정나라를 존중하는 이유는 누대에 걸쳐 주왕실에 경사의 직으로 봉직하여 천자를 보좌해 왔기 때문입니다. 왕이 하사한 물건은 많고 적고 간에 모두 일컫기를 천총(天寵)이라 합니다. 주군께서 만일 받지 않으신다면 주왕실과는 분명 틈이 생기고 경사의 직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나라는 더 이상 제후들의 존중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정장공과 제족이 주왕의 문제로 의논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주공 흑견의 내방을 받았다. 사사로이 준비한 채색비단을 수레 두 대에 싣고 와서 정장공에게 바친 흑견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태도가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후에 시간이 지나 흑견이 되돌아가자 장공이 제족에게 물었다.

「주공 흑견이 선물을 들고 찾아와서 한담만 하다가 되돌아 간 연유가 무엇인지 경은 짐작할 수 있겠소?」

「주나라 천자는 아들을 둘을 두었는데 장자는 타(沱)라 하고 차자는 극(克)이라 합니다. 주왕은 극을 총애하여 주공에게 보좌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주공이 갑자기 찾아온 목적은 장차 장자로부터 태자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음모의 일환인 것 같습니다. 금일 주공(周公)이 주군과 먼저 좋은 관계를 맺어 두려는 이유는 극을 태자로 옹립할 때,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주공께서 채색비단을 받아 두시기 바랍니다. 장차 쓸데가 있습니다.」

「어디다 쓰기 위해서요?」

「주공께서 주나라에 입조한 일은 주변의 모든 나라가 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 주공 흑견이 선물한 채색비단을 마차 열대에 나누어 싣고, 마차 겉에는 비단보로 다시 덮고 왕도를 떠나면서 ‘이것은 주왕의 하사품으로 오랫동안 주왕실에 조공하지 않은 송나라를 토벌하여 그 죄를 물으시라는 천자가 칙명을 내리시고 동시에 그 징표로 동궁(彤弓)과 적시(赤矢)를 하사받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십시오. 그런 다음 본국에 당도하면 주공께서 왕명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토벌할 예정이라고 천하의 제후들에게 통지하면서 열국을 소집하여 종군하라고 명하시면, 불응하는 자는 왕명에 항거하는 일이 됩니다. 왕명을 거역하는 일은 큰일이기 때문에, 모든 제후들은 반드시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송나라가 비록 대국이기는 하지만, 어찌 감히 왕명을 받아 출동한 군사를 당할 수 있겠습니까?」

장공이 제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경이야말로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과인은 경이 말한 대로 어김없이 따르리라!」

농서거사(隴西居士)가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천자의 비단과 훔쳐 간 곡식의 양이 같지 않았다고 해서

어찌하여 있지도 않은 왕의 명을 받았다고 하는가?

필경은 거짓 이름으로 많은 군사들이 움직여

송나라의 수양성(睢陽城)만 전쟁터로 만들겠구나!

彩繒禾黍不相當(채증화서불상당)

无命如何假托王(무명여하가탁왕)

畢竟虛名能動衆(필경허명능동중)

睢陽行作戰爭場(수양행작전쟁장)

정장공이 주나라 땅의 경계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곳마다 왕명을 빙자하여, 송나라가 신하된 자의 본분을 지키지 않았음을 소리 높여 널리 알리자, 듣는 사람은 모두가 사실인 줄 알았다. 그 소문은 송나라에 곧바로 전달되었다. 송상공은 마음속으로 놀라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여, 은밀히 사절을 위선공에게 보내 정나라와의 관계개선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위선공은 제희공의 동의를 얻어, 송과 정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키려고 하였다. 위선공은 날짜를 정하여 와옥(瓦屋)⑥이라는 곳에서 제희공의 입회하에 송과 정 두 나라 군주와 함께, 삽혈(歃血)의 의식을 행한 뒤에 회맹을 맺고, 두 나라 사이의 쌓인 감정을 풀어 주려고 했다. 송상공은 많은 예물과 함께 사람을 위나라에 보내, 먼저 위선공과 견구(犬丘)⑦에서 만나 정나라의 일을 상의한 후에 와옥에 당도하였다. 제희공 역시 날짜를 맞추어 도착했으나, 정장공만은 오지 않았다. 제후가 말했다.

「정백이 오지 않았으니 화친을 맺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희공이 말을 마치고 어가를 돌려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려고 하자. 송상공이 간곡히 만류하여 머무르게 하고 세 나라 만이라도 회맹을 행하자고 청했다. 제희공은 송상공이 강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겉으로는 회맹을 승락했지만, 속으로는 관망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단지 송나라와 위나라만이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내 온 탓으로 진심으로 회맹을 맺고 헤어졌다. 이때에 주환왕은 정백이 맡아보고 있던 정사의 임무를 파하게 하고, 괵공 기보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하고자 하였으나, 주공 흑견이 간곡히 만류하여 기보를 우경사(右卿士)로 삼아 주나라 정사를 맡아보게 하고 정백은 이름 뿐인 좌경사(左卿士)로 삼았다. 정장공이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주왕이 내 벼슬을 완전히 빼앗지는 못했구나!」

정장공은 제나라와 송나라가 와옥에서 회맹을 행하고 힘을 합쳐 협력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족에게 그 대책을 물었다. 제족이 대답했다.

「제와 송은 원래부터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모두가 위나라 군주가 중간에 나서서 두 나라 사이를 조정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회맹은 같이 행했지만, 사실은 진심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습니다. 주공께서 왕명을 받았다고 제와 노나라에 선포하시고, 즉시 노나라에 부탁하여 제나라를 규합하도록 한 다음에, 삼국이 같이 힘을 합쳐 송나라를 토벌하십시오. 노나라와 제나라는 땅이 인접해 있고 대대로 혼인을 하여, 노나라 군주가 일을 같이 도모한다면 제나라는 필시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채(蔡), 위(衛), 성(郕)⑧, 허(許)⑨ 등의 제후들에게는 마땅히 격문을 보내 불러서 같이 토벌하자고 하십시오. 만일 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군사를 움직여 그 나라를 토벌하시면 됩니다.」

정장공이 제족의 의견대로 사절을 노나라에 보내 군사를 일으킬 날짜를 알리고, 송나라를 공격하여 빼앗은 땅은 모두 노나라에 준다고 하였다. 노나라의 공자휘는 바로 재물에 욕심이 많은 탐욕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나라의 요청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공자휘는 노은공(魯隱公)에게 상주하여 제희공과 약속하고 정나라와 같이 중구(中邱)⑩에서 회합하기로 했다. 제희공은 그의 동생 이중년(夷仲年)을 장수를 삼아 전차 3백 승을 주어 출동하게 하고 노은공은 공자휘를 대장으로 하여 전차 2백 승을 출전시켜 정나라를 돕게 했다. 정장공은 친히 공자려, 고거미, 영고숙 등의 장수를 이끌고, 자신은 친히 중군을 지휘하여 꿩 깃으로 만든 큰 깃발을 세워 모호(蝥弧)라 부르게 하고 그 깃발 위에다 ‘천자의 명을 받들어 죄를 묻는다’라는 뜻의 ‘봉천토죄(奉天討罪)’ 라는 네 글자를 써서 로거(輅車)⑪에 꽂았다. 다시 동궁호시(彤弓弧矢)⑫를 천자에게 하사받은 것처럼 꾸며 로거 위에 걸고서, 주나라의 경사가 죄 있는 자를 토벌한다고 천하에 공포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정장공은 이중년이 이끄는 제나라 군사를 좌군으로 공자휘가 이끄는 노나라 군사들을 우군으로 삼아 위풍당당하게 송나라로 쳐들어갔다. 공자휘가 먼저 노도(老桃)⑬의 땅에 당도하자, 노도의 수장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공자휘의 앞길을 막았다. 공자휘가 용기백배하여 병사들의 앞에 서서 나아가 단지 노나라 군사들만으로 송나라 군사들을 파할 수 있었다. 송나라 군사들은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땅에 끌며 도망갔다. 공자휘는 250명이나 되는 송나라 군사들을 포로로 붙잡고, 정백에게 첩보를 띄웠다. 공자휘가 노도에서 정장공을 영접하였다. 정장공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노도에 진채를 세워 본진으로 삼게 했다. 공자휘가 정백을 배알하고 포로와 노획물을 바쳤다. 정장공이 크게 기뻐하여 칭찬해 마지않으며, 수하에게 명하여 공자휘가 세운 공로가 일등이라고 기록하게 하였다. 장공은 소를 잡아 군사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3일 동안 휴식을 충분히 취하게 한 후에, 군사를 나누어 진격하도록 했다. 영고숙에게는 일단의 군사를 주어 공자휘와 같이 고성(郜城)⑭으로 나아가 공자려를 돕게 하고 공자알(公子閼)에게도 한 떼의 군마를 맡겨 이중년과 같이 방성(防城)⑮으로 나아가 고거미를 돕게 하였다. 자기는 노도의 본영에 남아 후방을 지키며 첩보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5. 투습형양 해위송도(偸襲滎陽 解圍宋都)

- 정나라 형양을 기습하여 도성의 포위망을 푸는 송나라-

한편 3국의 군사들이 이미 송나라 경계로 쳐들어 왔다는 소식에 놀라 얼굴이 사색이 된 송상공이 황급히 사마(司馬) 공보가(孔父嘉)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공보가가 아뢰었다.

「신이 이미 사람을 왕성에 보내 소식을 알아 본 바 송나라를 토벌하라는 왕명은 없었습니다. 정나라가 천자의 명을 받았다고 한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노(齊魯) 두 나라는 정나라의 술수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세 나라가 이미 군사를 합했음으로, 그 세력이 커서 같이 다툴 수 없습니다. 오늘의 난관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가지 계책 밖에 없습니다. 정나라로 하여금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만들어 퇴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송상공이 공보가의 말에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고 대책을 물었다.

「정나라가 이미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중인데 어찌 물러가게 할 수 있단 말이오?」

「정나라가 거짓으로 왕명을 빙자하여 여러 제후국들을 소집했으니, 지금 거짓 왕명에 응해 군사를 동원한 나라는 단지 제와 노 두 나라뿐입니다. 예전에 위나라가 주동이 되어 정나라에 쳐들어가 신정성의 동문에서 송(宋), 노(魯), 진(陳), 채(蔡)가 같은 편이 되어 싸웠습니다. 그러나 노나라는 다시 재물을 탐내어 정나라 편이 되었고 진나라는 정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어 역시 정나라 편에 섰습니다. 아직도 우리 송나라에게서 돌아서지 않은 나라는 채나라와 위나라입니다. 정백이 친히 정나라의 대군을 끌고 우리 송나라 경계까지 쳐들어 왔다는 사실은 거꾸로 정나라 본국은 텅텅 비었음을 의미합니다. 주공께서 많은 재물을 들려 사절을 위나라에 보내, 우리나라의 위급함을 알리시고 동시에 위나라로 하여금 채나라를 규합하도록 청하십시오. 우리 송나라를 포함한 3국의 연합군이 결성되면 행장을 가볍게 하여 신속한 행동으로 정나라를 급습하십시오. 정나라 본국이 3국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급보를 받게 되면 정백은 자기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나라 군사가 물러가는데 제와 노 두 나라가 어떻게 계속 머물 수 있겠습니까?」

「경의 계책은 매우 훌륭하나 경이 위나라에 직접 사절로 가지 않으면, 위나라는 필시 군사들을 곧바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

「그렇다면 신이 마땅히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위와 채 두 나라를 위한 향도가 되겠습니다. 」

송상공은 공보가에게 전차 2백 승과 보졸 6천 명을 주었다. 공보가는 황금과 백옥 및 비단 등의 재물을 수레에 가득 싣고, 밤낮으로 달려 위나라에 당도했다. 위후를 접견한 공보가는 재물을 바치고 정나라를 공격하는데 원군을 내어 주기를 요청했다. 막대한 뇌물에 마음이 움직인 위선공(衛宣公)은 주저하지 않고 우재추에게 군사를 주어 공보가를 돕도록 했다. 공보가는 우재추와 함께 소로를 이용하여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신속한 행동으로 하수를 도하한 다음 정나라의 부도(副都) 경성(京城) 교외까지 쳐들어갔다. 경성의 수장이 신정성에 남아 본국을 지키던 세자홀과 제족에게 송위 연합군이 공격해왔다는 급보를 띄웠다. 세자홀과 제족은 황급한 마음이 되어 사자를 보내 군사들에게 성을 굳게 지키라고 명령을 전달했으나 그때는 이미 경성 외곽은 송위 연합군에게 사람과 가축 및 치중을 크게 노략질 당하여 폐허가 된 후였다. 승리감에 도취된 우재추가 계속 앞으로 진격해 경성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공보가가 말리며 말했다.

「무릇 적군을 기습하는 전술은 상대방이 방비가 없는 틈을 타서 전광석화와 같은 행동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이미 승리를 취했으면 마땅히 중지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군사들을 견고한 성 밑에 주둔시키고 있다가, 성을 구하려고 정백이 대군을 몰고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앞뒤에서 적을 맞이하게 되어 앉아서 곤란을 당하게 됩니다.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음으로 마땅히 대(戴)나라로 통하는 길을 이용하여 퇴군해야 합니다. 경성이 기습당했다는 소식이 정백에게 전해지면 3국 연합군은 송나라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본국으로 철수할 것입니다.」

이윽고 경성의 교외에서 철수한 송위 연합군은 사절을 대나라로 보내 길을 빌려 본국으로 퇴군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나라 군주는 두 나라가 자기나라를 습격하는 것으로 의심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나라에 동원령을 내려 소집한 군사들을 성가퀴로 올려 보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송위 두 나라 군사들의 공격에 대비하게 했다. 뜻밖에 대나라에 의해 퇴로가 막힌 공보가는 대노하여 대성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다 우재추와 같이 전후 양쪽으로 나눠 진을 치고 대성을 공격하기 위해 전투준비를 시켰다. 대나라 사람들이 성을 굳게 지키면서 여러 번 성밖으로 나와 송위(宋衛) 두 나라가 군사들과 싸워, 쌍방간에 서로 죽이기도 하고 혹은 포로가 되기도 했다. 마음이 초조해진 공보가가 채나라로 사절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했다.

한편 송나라를 공격하던 정나라 장수 영고숙은 이미 송나라의 고성을 함락시키고, 공손알도 역시 방성(防城)을 공격하여 점령하여 정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듯이 기세등등했다. 두 사람이 각각 정백이 있는 노도의 본영에 첩보를 띄웠다. 그 때 마침 세자홀이 보낸 사자가 정장공이 머물고 있는 노도의 본영에 당도하여 급보를 전했다.

<제6회 끝>

①종(鍾); 일종(一鍾)은 춘추 때 일종은 지금의 단위로 50리터다.

②불면(黻冕); 옛날 중국 주나라 때 대부 이상의 관리가 제사 때 입는 예복. 직급에 따라 그 색깔과 재료가 달랐다. 불(黻)은 조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 가죽으로 만들어 무릎을 가리던 예복의 일종이며 면(冕)은 대부 이상의 작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조회를 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 쓰던 관이다. 그리고 면의 앞뒤로 주옥을 단 끈을 류(旒)라 하여 면류관이라고 통칭했다. 천자는 12줄, 제후는 9줄, 상대부는 7, 하대부는 5 줄을 각각 달았다.

③거복(車服); 제후가 거동할 때 마차를 덮어 치장하는 장식으로 천자가 하사했다. 제후의 작위에 따라 각각 등급이 있었다.

④홀(忽); 1.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에 조복(朝服)에 갖추어 손에 쥐던 물건 2. 혼례나 제례 때 의식의 순서를 정한 글인 홀기(笏記)의 준말. 여기서는 1번의 뜻임.

⑤형국(邢國); 현 하북성 형태시(邢台市)에 있었던 군소 제후국

⑥와옥(瓦屋); 현 하남성(河南省) 온현(溫縣) 서북 10키로

⑦견구(犬丘) : 현 산동성 견성(鄄城) 남동 10키로 지점에 있었던 고을

⑧성(郕="成);" 주무왕의 7남 성숙무(成叔武)가 지금의 산동성 영양현(寧陽縣)에 봉해진 제후국으로 후에 노나라의 맹손씨의 식읍이 되었다.

⑨허(許); 현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서쪽 10키로 지점에 있었던 군소 제후국

⑩중구(中邱); 현 산동성(山東省) 기남시(沂南市) 남쪽 25키로 지점

⑪로거(輅車); 천자가 타는 큰 수레

⑫동궁호시(彤宮弧矢): 동궁(彤弓)은 붉은 색을 칠한 활을 말하는데 고대에 제왕(帝王)이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상으로 하사한 것으로 천자 대신 죄를 지은 제후들을 토벌하는 권한을 상징하였음. 호시(弧矢)는 나무로 만든 화살을 말함. 동궁적시(彤弓赤矢)라고도 함.

⑬노도(老桃); 산동성 문상현(汶上縣) 동북 20키로

⑭고성(郜城); 현 하남성과 접경지역인 산동성 성무현(成武縣) 부 근에 있었던 고을

⑮방성(防城); 현 산동성(山東省) 성무현(成武縣) 북동 20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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