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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00:15:4514581 
제13회. 兄妹私通(형매사통), 君臣爲戮(군신위륙)
양승국   (2424)
 그림13-2. 제나라에 들렸다가 죽음을 당한 정나라의 군주 자미와 대부 고거미 001.jpg  (490.2K)   download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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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3회兄妹私通 君臣爲戮(형매사통 군신위륙)

친정에 들렸다가 오빠와 정을 통한 문강과

제양공의 함정에 빠져 죽임을 당한 정나라의 군주와 신하

1. 魯桓如齊(노환여제)

- 문강을 데리고 제나라를 방문하는 노환공

한편 정나라의 상경 제족(祭足)의 방문을 크게 기뻐한 제양공은 즐거운 마음으로 곧바로 답례사절을 정나라에 보내려고 했으나 고거미가 소공을 시해하고 자미를 정백으로 옹립했다는 갑작스런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격분한 제양공이 그 즉시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토벌하고 고거미와 자의를 주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마침 노환공 부부가 곧 제나라에 당도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정나라의 일은 뒤로 미루고 노후 부부를 영접하기 위해 락수(濼水)①까지 행차해야 했기 때문에 그 일을 뒤로 미루었다.

한편 제나라 사자가 와서 그 부부를 초대한다고 말을 전해들은 문강은 마음속으로 그 오라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친정에 한 번 들른 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도 노환공과 동행하여 제나라를 방문하겠다고 청했다. 문강에게 깊이 빠져있던 노환공은 감히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대부 신수(申繻)가 듣고 간했다.

「‘여자는 내실에서 살고 남자는 바깥채에 거한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예를 지키지 않으면 상호간 업신여기게 되고, 업신여기게 되면 란(亂)이 일어납니다. 여자가 출가하여 그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매 년 한 번씩 친정을 다녀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부인의 양친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세상에 누이가 오빠에게 문안을 드리러 친정에 가는 법은 없습니다. 노나라는 옛날부터 예를 숭상하는 나라인데, 어찌 이런 비례를 저질러 가면서 동행할 수 있습니까?」

노환공은 문강에게 이미 같이 가기로 허락을 해버렸기 때문에 신수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부부를 태운 노나라 군주의 수레가 락수에 이르자 제양공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은근한 정으로 대하며 각자 서로 인사말을 나눈 그들은 다시 어가에 올라 제나라 도성인 임치(臨淄)로 들어갔다.

2. 兄妹私通(형매사통)

- 오누이끼리 정을 통하는 제양공과 문강-

제나라의 역관에서 여장을 푼 노환공은 제양공에게 주천자의 명을 전하고 양공과 왕녀와의 혼사를 의논하여 정하려고 했다. 십분 감사하는 말로 화답한 제양공은 잔치상을 크게 차려 노환공 부부를 환대했다. 이윽고 잔치가 끝나자 제양공은 문강을 옛날 같이 지내던 궁녀들과 만나게 해준다는 구실로 궁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양공은 미리 만들어 놓은 밀실에 따로 술상을 준비하여 문강과 그 동안 나누지 못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두 사람이 술을 서로 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길이 마주쳐 결국은 욕정을 참지 못한 나머지 천륜을 저버리는 더러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두 사람은 계속해서 궁중에 유숙하며, 해가 떠서 장대의 그림자가 세 발이나 길어질 때까지 서로 껴안고 누워 있으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궁궐 밖의 역관에 묶고 있던 노환공은 혼자 쓸쓸하게 그날 밤을 보냈지만 제나라 측에서는 아무도 와서 돌봐 주지 않았다. 노후의 가슴속에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측근 한 사람을 궁궐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윽고 그 사람이 돌아와 알아본 바를 고했다.

「제후(齊侯)는 송녀(宋女)가 죽은 이래로 정부인을 다시 맞이하지 않고 그 자리를 비워 둔 채 오직 연씨(連氏)만을 후궁으로 두고 있을 뿐입니다. 연비는 곧 대부 연칭(連稱)의 동생입니다. 양공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는 아직껏 한 번도 같이 잠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부인이 궁궐에 들어간 어제 이후로는, 오누이가 서로 정다운 말을 나눈다 하면서 같이 기거하고 다른 궁녀들과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합니다.」

노환공은 좋은 일이 아님을 직감으로 알았으나, 한스럽게도 제나라 궁정으로 뛰어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라, 단지 궁궐 안의 동정만을 살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속의 화를 삭이며 지내고 있던 중에, 그때 마침 사람이 와서 알렸다.

「부인께서 궁궐을 나와 이쪽으로 오시고 계십니다.」

이윽고 문강이 역관에 당도하자 노환공이 화를 크게 내며 물었다.

「어제 밤에 궁중에서 누구와 같이 술을 마셨습니까?」

「연비와 같이 마셨습니다. 」

「언제 술자리가 끝났습니까?」

「헤어진지가 오래되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밤하늘에 달이 하얀 석회를 칠한 담장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봤으니 밤이 제법 깊었었습니다.」

「그대의 오라비도 술자리에 같이 있지 않았소?」

「저희 오라비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노환공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얼굴에 비웃음을 띄우며 다시 물었다.

「오누이 사이의 정을 말하기가 부끄러워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겠구려!」

「잔치 중간에 잠깐 오셔서 술 한 잔을 권한 후에 곧바로 자리를 뜨셨습니다.」

「잔치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궁궐 밖으로 나오지 않았소?」

「밤이 깊어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잠은 어디에서 잤소?」

「군후께서는 너무 심하십니다. 어찌하여 저를 심문하듯이 하십니까? 궁중에는 빈방이 허다한데 저의 작은 몸 하나 잠잘 곳이 없겠습니까? 첩은 서궁에서 잠을 잤는데 그곳은 제가 처녀 시절에 지내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오늘 이렇게 늦게 나왔습니까?」

「어제 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피곤한지라 늦게 일어나 머리를 손질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잠자리는 누구와 같이 했소?」

「궁녀들 밖에 더 있겠습니까?」

「당신 오빠는 어디에서 잠을 잤습니까?」

강씨가 부지중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여동생이 어떻게 오라버니가 잠자는 곳을 알 수 있습니까? 그 말씀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습니다.」

「자고로 남녀가 유별인데, 당신은 궁중에 머물면서 오라비와 여동생이 잠자리를 같이했음을 과인은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제 그만 속이려고 하지 마시오.」

문강이 비록 입으로는 얼버무리면서 잡아떼려고 흐느껴 우는 척하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역시 부끄러운 생각뿐이었다. 노환공도 역시 몸이 제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다. 비록 분하고 원통한 생각이 들었지만 밖으로는 감히 내색도 할 수 없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속만 태울 수 있을 뿐이었다. 노환공은 즉시 사람을 제후에게 보내 작별의 인사를 전하게 하고, 노나라에 당도한 후에 별도로 문강의 죄를 묻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했다.

한편 자기가 한 짓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던 제양공은 문강이 궁궐을 나가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몰래 자기의 심복인 장사 석지분여(石之紛如)를 시켜 뒤따르게 하여, 노후 부부가 만나서 한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 보고하도록 명했다. 얼마 후에 석지분여가 돌아와 고했다.

「노후 부부께서는 부인이 어제 궁궐에서 잠을 잔 일을 두고 언쟁을 하셨습니다.」

양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노후가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잠시 후에 노환공이 보낸 사자가 와서 귀국 인사를 전하자, 문강과의 일이 누설되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제양공은 즉시 노환공에게 사람을 보내 우산(牛山)에서 환송잔치를 베푼다고 전하고 참석을 청했다. 환공이 선뜻 허락하지 않자 양공은 사람을 보내 계속해서 독촉했다. 노환공은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어가의 방향을 우산으로 향하게 했다. 문강은 스스로 역관에 머물면서 혼자 속을 태웠다.

제양공은, 하나는 문강이 돌아가는 것이 싫었고, 둘은 노후가 원한을 품어 원수지간이 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장사 팽생(彭生)을 시켜 술자리가 끝나고 역관으로 돌아가는 노환공을 곁에서 호위하는 척 하다가, 기회를 보아 수레 안에서 노후를 살해하도록 밀명을 내렸다. 옛날 기(紀)나라 정벌전에 참전하여 당시 노나라 군사들에게 팔에 활을 맞아 패전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었던 팽생은 흔쾌히 양공의 명을 받들었다. 우산에서의 송별연은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참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제양공도 정성을 다하여 접대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노환공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잔치가 벌어진 동안 내내 입을 꼭 다문 채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양공은 여러 대부들에게 명하여 노환공과 함께 술잔을 돌려 마시게 하고, 또한 궁녀와 내시들에게 명하여 술독을 받들고 옆에 꿇어앉아 술을 따르게 했다. 노환공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술잔에 담아 괴로운 심정을 잊고자 계속해서 술잔을 들이켰다.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대취한 환공은 잔치가 끝나고 헤어질 때는 인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제양공이 팽생에게 노후를 안아 수레에 태워 역관으로 모시도록 명했다. 양공의 명을 받은 팽생은 노환공을 안고 수레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을 태운 수레가 성문을 나와2리 쯤 갔을 때였다, 노후가 깊이 잠들었음을 확인한 팽생이 팔을 뻐쳐 그의 허리를 힘껏 잡았다. 힘이 장사인 팽생의 팔뚝은 마치 철퇴와 같았다. 팽생이 그의 팔로 환공의 허리를 잡고 힘을 쓰자, 환공은 허리가 부러지면서 큰소리를 한번 지르더니 피를 마차 안에 가득 쏟은 후에 절명했다. 수레 밖에 따르던 환공의 여러 종자들이 수상쩍게 생각했으나 아무도 감히 수레 안의 일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다. 사관이 이 일에 대해 시를 지어 한탄했다.

남녀의 애정 문제는 명백하게 밝힘이 가장 중요한데

어찌하여 부부가 국경을 넘어 어리석게 행차했는가?

전날에 신수(申繻)가 간했을 때 말을 들었다면

어찌6자 넓이의 좁은 수레 안에서 비명에 죽었겠는가?

男女嫌微最要明(남녀혐미최요명)

夫妻越境太胡行(부처월경태호행)

當時若聽申繻諫(당시약청신수간)

何至車中六尺橫(하지차중육척횡)

3. 穢亂內宮 殺人滅口(예란내궁 살인멸구)

- 동생과 간통하여 내궁을 더럽히고 살수를 죽여 입을 막은 제양공-

노환공의 죽음을 확인한 제양공은 거짓으로 한바탕 통곡을 한 후에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장사를 후하게 지내게 하고, 사자를 노나라에 보내 노후의 관을 모셔 가도록 통고했다. 노환공을 모셨던 종자들이 귀국하여 노후가 수레 안에서 피살된 경위를 노나라 신료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대부 신수가 노나라의 대소 신료들 앞에서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임금의 자리가 비어 있으면 안 됩니다. 우선 세자 동(同)을 받들어 장례를 준비하게 하고 선군의 관을 실은 수레가 도착하면 즉시 세자의 주관 하에 장례를 치르도록 해야 합니다. 」

자를 맹(孟)이라고 하는 환공의 서장자 경보(慶父)가 팔을 걷어 부치면서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제후란 자는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무례지배라서 그 화가 우리 선군에게 까지 미쳤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병거3백 승만 내어 주시면, 제나라를 정벌하여 그 죄를 만천하에 알리겠습니다.」

대부 신수가 그 말에 혹하여 은밀히 그의 모사 시백(施伯)에게 물었다.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이 문제는 아무런 뚜렷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 하더라도, 소문이 이웃나라에서 전해지면 안 됩니다. 더욱이 노나라는 약하고 제나라는 강합니다. 정벌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혹시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그 부끄러움만 더할 뿐이니 참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잠시 분함을 참고, 선군이 수레 안에서 죽은 변고를 밝혀 달라고 청하여 제후로 하여금 팽생을 죽이도록 하고, 그 사유를 열국에 설명하도록 요구하면 제나라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수가 공자경보에게 시백이 한 말을 전하고, 이어서 시백을 시켜 제나라에 보내는 국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국서가 준비되자 세자는 상중이라 노후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들이 연서하여 사자에게 주어 제나라에 보냈다. 제양공이 노나라의 국서를 받아 읽었다.

「외신 신수 등은 제후 전하께 삼가 국서를 바칩니다. 폐국의 군주께서 천자의 명을 태만히 할 수 없어 혼사를 논의하기 위해 상국에 들렸습니다. 그러나 어제 출국은 하셨는데, 오늘은 다시 돌아오시지 않으시니 그 소문이 분분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수레 안에서 변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에게도 그 잘못을 물을 데가 없으니 그 치욕이 주위의 제후들에게 알려질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팽생에게 그 죄를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제양공이 노나라에서 보내온 국서를 읽기를 마치자, 즉시 사람을 보내 팽생을 입조하게 했다. 스스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 팽생이 고개를 높이 쳐들고 입궐했다. 양공은 노나라 사자의 면전에서 큰소리로 팽생을 꾸짖었다.

「과인은 술이 너무 과한 노후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편안히 모시도록 명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조심하여 모시지 않고 갑자기 돌아가시게 만들었는가? 네 죄를 용서할 수 없구나!」

양공이 좌우의 무사들에게 소리쳐 팽생을 포박시키게 한 후에 시정으로 끌고 나가 참수하도록 명했다. 상을 받으러 왔다가 졸지에 노후를 죽인 흉수로 지목된 팽생이 큰소리로 외쳤다.

「누이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인 일은 모두가 무도혼군인 네가 시키지 않았으냐? 오늘 다시 그 죄를 나에게 덮어씌우니 내가 비록 죽겠지만 명심하고 있다가 반드시 귀신이 되어 너의 목숨을 취하러 오겠다.」

제양공이 당황해 하며 자기의 두 귀를 막자 좌우의 시자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팽생을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형에 처하라고 명한 제양공은 두 사람의 대부를 지명하여 주나라와 노나라에 각각 사자를 보냈다. 주나라에 가는 사자에게는 혼인을 허락해 준 천자의 배려에 감사의 말을 전한 후 혼사 날을 받아 오게 하고, 노나라 보내는 사자에게는 노후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가서 돌려주도록 했다. 그러나 문강은 노나라에 귀국시키지 않고 제나라에 계속 머물게 했다. 세자 동을 모시고 노나라 변경까지 나와서 노환공의 영구를 맞이한 신수 등의 노나라 대부들은 세자 동으로 하여금 환공의 관 앞에서 장례를 치르게 하고 노후의 자리를 잇게 했다. 이가 노장공(魯莊公)으로 주장왕(周莊王) 3년 기원전694년의 일이었다. 신수, 전손생(顓孫生), 공자익(公子溺), 공자언(公子偃), 조말(曹沫) 등 노나라의 일반 문무대신들은 서로 한 마음으로 뜻을 같이 하여 노장공을 도와 조정의 기강을 새롭게 일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우렸다. 노장공은 서형 공자경보와 서제 공자아(公子牙), 장공의 동모제인 공자 계우(季友) 등을 모두 대부로 봉하고 국정에 참여시켰다. 신수가 시백의 재주를 높이 사서 장공에게 천거하여 상사(上士)의 직에 임명하도록 했다. 다음 해에 노나라는 개원하여 장공 원년으로 했다.

장공 원년은 주장왕4년 기원전693년이다.

이윽고 노나라의 국내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한 노장공은 여러 신하들을 불러 선군이 천자의 명으로 받았던 제후를 위한 혼사를 의론하도록 했다. 그러자 시백이 먼저 나와서 상주했다.

「우리나라는 치욕스러운 일이 셋이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알고 계시는 지요?」

「세 가지 치욕이란 무엇인가?」

「선군의 장례는 이미 무사히 마쳤지만 그 죽음에 대한 구설수가 백성들 사이에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고, 선군의 부인이 아직도 제나라에 묵고 있으면서 돌아오지 않아 백성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것이 두 번째입니다. 제나라는 원수의 나라이며 더욱이 주군께서는 상중인데 제후의 혼사를 주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어 만약 이 일을 사양하면 왕명을 거역하게 되는 일이고 그대로 명을 받들다 보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것이 세 번째입니다.」

노장공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그 세 가지 치욕을 어떻게 하면 면할 수 있겠소?」

「사람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자기 몸을 아름답게 해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믿어야 합니다.②선군은 그 서형 되시는 은공(隱公)을 시해하고 즉위하셨기 때문에 아직 주왕실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후의 혼사를 주관하는 기회를 틈타, 주왕실에 승인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는다면 구천에 계시는 선군에게는 영화로운 이름을 얻게 해주는 일이니, 즉 이것으로 첫 번째 치욕을 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 제나라에 머물고 있는 선군의 부인을 마땅히 예를 다하여 모셔 오면 이는 주공께서는 효를 이루게 되니 두 번째 치욕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제후를 위하여 혼사를 주관하는 일만 남아 있으나, 이것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충족시켜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이것 역시 별도의 계책이 있습니다.」

「그 계책은 무엇이오?」

「제후에게 시집가기 위해 장차 왕희(王姬)가 오면 성 밖에 관사를 짓고 그곳에 머물게 하십시오. 주군께서는 상중이라는 이유를 대고 상대부를 시켜 대신 맞이하게 하고 다시 전송하게 하면, 위로는 천자의 명을 거역하지 않는 일이 되고, 아래로는 대국에게 정리를 저버리지 않는 일이 됩니다. 또한 안으로는 상중의 예를 잃지 않는 일이 되니 이렇게 함으로써 세 가지의 치욕을 한꺼번에 면할 수 있습니다.」

「신수가 말하기를 그대는 정리보다는 지혜가 앞서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이오!」

노장공은 시백의 계책대로 하나하나 시행하도록 신하들에게 명했다. 이어서 장공은 대부 전손생을 주나라에 사자로 보내 왕녀를 모셔오도록 하면서, 한편으로는 불면(黻冕)③과 규벽(圭璧)④을 하사해 주시면, 지하에 계시는 선군에게는 다시없는 영광이 되겠다고 주왕에게 청하게 했다. 주왕은 노후의 청을 허락하고 주나라의 대신 한 사람을 골라 노나라에 사자를 보내 환공을 노나라 군주로 인정한다는 칙명을 전하도록 했다.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나서서 스스로 노나라에 사자로 가기를 청했으나, 주장왕이 허락하지 않고 대부 영숙(榮叔)을 대신 보냈다.

원래 환왕은 살아 있을 때 장왕의 동생 극(克)을 사랑한 나머지 흑견에게 극을 잘 보살피라는 유언을 하고 죽었다. 그래서 장왕은 흑견이 다른 마음을 품고 은밀히 제후국들과 우호관계를 맺어 왕자극을 위한 무리를 만들지 않을까 의심하여 흑견을 보내지 않았다. 주왕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음을 알게 된 흑견은 깊은 밤에 왕자극을 찾아가 상의하여 왕희를 제나라로 시집보내는 날에 란을 일으켜 장왕을 죽이고 극을 세우기로 음모를 꾸몄다. 그때 그들의 모의를 엿들은 대부 신백(辛伯)이 그 사실을 장왕에게 고했다. 장왕은 곧바로 흑견을 잡아서 죽이고 왕자극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왕자극은 연(燕)나라로 도망쳤다.

한편 왕희를 제나라에 데려다 준 노나라의 전손생은 노장공의 명을 받들어 문강을 데리고 귀국하려고 했다. 제양공이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으나, 공론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문강의 귀국을 허락했다. 이별할 때가 되자 두 사람은 서로 소매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며 몸조심하라는 말과, 앞으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천 번도 더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다. 문강이 첫째는 애욕에 눈이 멀어 제양공을 버리지 못했고, 둘째는 천륜을 어기고 인륜을 어지럽힌 자신이 스스로 부끄럽기도 해서 한 걸음 가서 쉬고, 또 한 걸음 가고 쉬곤 했다. 수레가 작(禚)⑤ 땅에 당도하여 유숙하고자 역관에 들렸는데, 그 깨끗함을 보고 한탄하며 말했다.

「이 땅은 제나라도 아니고 노나라도 아니라서, 이곳이야말로 바로 내가 머물 곳이로구나!」

문강이 종자들에게 분부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말을 노후에게 전하도록 했다.

「부인께서는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환궁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죽은 후에나 돌아가겠다고 하시면서 우리들만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노장공은 문강이 귀국할 면목이 없어 안 돌아오는 줄 알고, 곧바로 제나라와는 멀리 떨어진 축구(祝邱)⑥에 관사를 짓게 하고 그곳에서 살게 했다. 문강은 수시로 양쪽 땅을 마음 내키는 대로 드나들었다. 노장공이 음식을 준비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문안을 올리기를 끊이지 않고 했다. 후에 사관이 논하기를, 노장공에게 있어서 문강은 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 몸을 낳아 주신 생모이고 의리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의 부친을 살해한 원수이다. 만약 문강이 노나라에 돌아 왔더라면 장공으로서는 오히려 매우 난처한 일이 되었을 것이며, 단지 제와 노 양쪽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노장공으로서는 부모 양쪽에게 다 효도를 할 수 있게 된 셈이 되었다고 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말했다.

시부가 무슨 면목으로 동몽⑦에서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작(禚) 땅에 머물면서 제노(齊魯)를 오고가고 했으니

만약에 부끄러운 얼굴을 들고 시가에 돌아왔다면

모친과 원수 사이에서 어찌 지낼 수 있었겠는가?

弑夫无面返東蒙(시부무면반동몽)

禚地徘徊齊魯中(작지배회제노중)

若使腼顔歸故國(약사면안귀고국)

親仇兩字怎融通(친구양자매융통)

다른 한편 제양공이 노환공을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된 제나라 사대부들은 의견이 분분하게 되여 모두가 하나같이 말했다.

「제후가 무도하여 음탕하고 인륜에 어긋난 일을 범했다. 」

4. 君臣爲戮(군신위륙)

- 제양공의 파논 함정에 빠져 살해당하는 정나라의 군주와 신하-

제양공이 마음속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급히 사람을 시켜 왕희를 맞아들이게 하여 성례를 올렸으나 사대부들의 분분한 의견은 가라앉지 않았다. 양공은 세상에 의로운 일을 한두 가지 행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시키고자 했다. 양공이 생각했다.

「정나라의 공자미가 고거미와 작당하여 소공을 시해하고, 위나라의 두 공자는 위후를 몰아내고 검모를 새로운 군주로 세웠으니, 두 가지 일은 모두가 큰일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위나라 군주인 공자 검모는 주나라 천자의 부마라, 내가 방금 왕희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동서간이 되었는데, 검모와는 맞설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내가 정나라의 죄를 먼저 묻는다면 제후들은 반드시 두려워하게 되어 나에게 복종하리라!」

그러나 제양공은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에 쳐들어가서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경우를 걱정하여, 국서를 써서 정나라의 공자미에게 보내 두 나라의 군주가 수지(首止)⑧에서 만나 회맹을 하자고 통지했다. 공자미가 제양공의 국서를 받고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제후가 수호를 맺자고 하니 나의 군주 자리는 이제 안전하기가 마치 태산과 같이 되었다.」

자미가 고거미와 제족을 불러 같이 수지에 동행하기를 명했으나 제족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원번이 제족을 찾아와 물었다.

「신군이 제후와 수교를 맺어 나라의 안전을 도모 하려고 하는데 대부께서는 마땅히 따라가서 도와야 함에도 어찌하여 같이 동행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족이 대답했다.

「제후는 흉폭하고 잔인한 사람입니다. 또한 큰 나라를 물려받아 항상 패업을 이루려는 호기를 마음속으로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항차 선군 소공은 세자 시절에 제나라를 도와 공을 세운 적이 있어 제나라는 항상 소공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큰 나라의 속셈은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라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게 청하여 회맹하려함은 그 속에 필시 음흉한 계략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이번 행차에 임금과 신하가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하고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입니다.」

「대부의 말이 과연 사실이라면 앞으로 정나라의 임금은 누가 적당할 것 같습니까?」

「반드시 자의(子儀)가 되어야합니다. 자의의 얼굴에는 군주의 상이 있다고 돌아가신 선군께서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부께서는 지혜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잠시 믿고 기다려 보겠습니다.」

제양공은 정백 자미와 회맹하기로 한 날자가 되자, 왕자 성보(成父)와 관지보(管至父) 두 사람에게 각각 자객 백여 명을 딸려 좌우에 시립 하게 하고, 장사 석지분여는 양공의 뒤에 바싹 붙어서 자기를 호위하게 했다. 고거미가 자미를 인도하여 회맹을 거행하는 제단에 같이 오른 다음 제후에게 예를 올렸다. 제양공의 총신 맹양(孟陽)이 희생의 피를 담은 그릇을 손으로 받쳐 들고 자미 앞에 무릎을 꿇고 마시기를 청했다. 양공이 자미를 노려보자 맹양이 황급히 일어났다. 양공이 자미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귀국의 선군 소공은 어떻게 해서 죽었습니까?」

공자미의 얼굴색이 바뀌면서 놀래어 몸을 부들부들 떨고 말을 하지 못하자, 고거미가 대신 대답했다.

「선군께서는 병이 들어 돌아 가셨는데 어찌하여 군후께서 물어보십니까?」

양공이 계속 추궁했다.

「나는 소공이 증제(蒸祭)를 올리려 성밖으로 나가던 중에 도적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들었지 병으로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소.」

고거미가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고쳐 말했다.

「선군께서는 원래 한질을 앓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다시 적도를 만나 놀래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성밖으로 나가는데 경비가 없을 수 있는가? 그 도적들은 어디서 왔는가?」

「정나라의 군위는 적서가 다투기를 하루 이틀이 아니라 서로가 사당을 만들어 항상 그 틈만을 노리고 있는데 어느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도적들은 이미 잡았는가?」

「지금까지 계속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종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공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선군을 죽인 도적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하여 번거롭게 잡는다고 하느냐? 너는 나라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대부인데 개인적인 감정으로 임금을 죽이고 이제 과인의 눈앞에 와서 또다시 발뺌을 하며 얼버무리려고 하는가? 과인이 오늘 너희들 선군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제양공이 소리쳐 장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을 빨리 잡아 포박하지 않고 무엇 하는가?」

고거미는 더이상 감히 변명하지 못했다. 석지분여가 먼저 고거미를 포박하자 자미는 제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했다..

「이 일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고거미가 저지른 일입니다. 부디 이 한 목숨을 불쌍히 여겨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고거미가 한 짓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죄를 주지 않았는가? 그대는 오늘 지하에나 가서 변명하라.」

제양공이 손을 들어올리자 왕자성보와 관지보가 갑사들을 인솔하고 들어와 일제히 제단에 올라와서 공자미의 몸을 난도질했다. 공자미는 비명 속에 절명했다. 공자미를 따라온 수행원들은 제나라 사람들의 세력이 흉맹한 것을 보고, 감히 대항해서 싸우지 못하고 삽시간에 모두 흩어져 도망가 버렸다. 양공이 고거미를 향하여 말했다.

「너의 임금은 이미 죽었다. 아직도 너는 살기를 바라고 있느냐?」

「내가 저지른 죄가 중한 것을 스스로 알고 있소. 오로지 죽기만을 바랄 뿐이오.」

「한칼에 죽인다면 너에게는 너무 과분한 벌이 되리라!」

제양공은 곧바로 고거미를 제나라 도성으로 압송하여 남문의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하도록 명했다. 거열형이란 죄인의 머리와 사지를 다섯 개의 수레의 끌채에 묶은 후, 각기 한 방향으로 소를 잡아매게 한 다음 채찍으로 소를 때려, 소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하여 가운데에 있던 사람의 몸과 팔과 다리가 찢어져서 그 몸이 다섯 조각이 되는 형벌이었다. 속칭 오우분시(五牛分尸)라고도 했다. 거열형은 형벌 중에서 가장 극형에 해당하는 벌이었다. 양공이 이 일을 중원의 제후들의 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러한 극형을 행하게 하여, 자기가 행한 일을 세상에 크게 선전하고자 했다. 고거미가 절명하자 그 머리를 남문에 효시하고 그 밑에 방을 붙이게 하여 백성들에게 알렸다

「이것은 역신의 머리이다 」

이어서 제양공은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자미의 시신을 수습하게 하여 성의 동문밖에 묻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정나라에 보내 자미와 고거미를 죽인 일을 알렸다.

「주천자께서 우리 제나라에게 적신역자(賊臣逆子)는 누구든지 또한 언제든지 그 죄를 물으라고 명하셨다. 그대 나라의 고거미는 군주를 시해하고 함부로 서자를 세웠다. 내가 정나라의 선군 소공의 상에 참석하지 못한 일을 애통해 하다가, 정나라를 위해 두 사람을 이미 죽여 정나라 사직을 바로 잡았다. 바라건대 신군을 다시 세워 옛날의 우호 관계에 변함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원번이 듣고 감탄했다.

「제족의 지혜는 내가 감히 따르지 못 하겠구나!」

정나라의 여러 대부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군주를 세우는 일을 의논했다. 숙첨이 말했다.

「옛날 쫓겨난 우리의 군주가 력성(櫟城)에 있습니다. 어찌 모셔 오지 않습니까?」

제족이 반대하며 말했다.

「망해서 도망친 임금은 모셔 와서 또다시 종묘를 욕보이게 할 수 없습니다. 자의를 세워야합니다.」

원번도 역시 제족의 말에 찬성했다. 정나라 대신들은 자의를 진나라에서 맞아들여 정나라 군주의 자리를 잇게 했다. 제족은 상대부, 숙첨은 중대부, 원번은 하대부가 되었다. 정백의 자리에 오른 자의는 제족에게 정사를 맡겨 백성들의 구휼에 힘쓰게 하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제나라와 진(陳)나라에 수호를 구하는 사절을 보냈다. 또한 초나라를 받들기로 하고 매년 조공을 바쳐 영원히 초나라의 속국이 되기로 맹세했다. 그 결과 정려공은 틈을 노릴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정나라의 정세는 당분간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제1부 제후굴기끝』

주석

①락수(濼水)/현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부근으로 흐르던 강으로 제나라 령이다.

②欲人勿惡, 必先自美, 欲人勿疑, 必先自信.

③불면(黻冕)/고대 대부 이상의 관원이 제사를 지낼 때 입었던 예복으로 불(黻)은 가죽으로 만든 무릎을 보호하기 위하여 검은 실로 꽃 모양의 수를 놓았던 보호대이고 면(冕)은 고대의 천자, 제후, 경, 대부 이상이 머리에 쓰던 예모(禮帽)다.

④)규벽(奎璧)

1. 규(圭="玉笏)/고대에" 중요한 의식이 행해질 때 참석한 문관(文官)이 예의(禮儀)를 표하기 위하여 손에 들었던 상아나 대나무로 길쭉하게 만든 판대기 모양의 것으로 주로 회의 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하여 사용했다. 각자 신분에 따라 크기나 재료가 서로 같지 않았다.

2.벽(璧)/ 옥구슬로 천자가 신하에게 내리는 신분증에 해당하는 신표다. 불면(黻冕)이라는 말은 노후(魯侯)를 노나라의 군주로, 규벽(圭璧)이라는 말은 노후를 주천자의 신하로 인정한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했다.

⑤작(禚)/현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서쪽50km 지점

⑥축구(祝邱)/현 산동성 임기(臨沂) 남쪽25km 지점

⑦동몽(東蒙)/ 몽산(蒙山)은 지금의 산동성 몽음현(蒙陰縣) 과 비현(費縣) 경내에 서북에서 동남으로 뻗어 있는 산 이름으로서 춘추시대 때 제나라와 노나라는 문수(汶水)와 몽산(蒙山)을 기준으로 구분되었다. 동몽(東蒙)이라는 말은 몽산의 동쪽 즉 제나라를 말한다.

⑧수지(首止)/현 하남성(河南省) 상구시(商丘市) 서쪽50Km 지점으로 지금의 수현(睢縣) 경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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