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527 
· 어제 :  693 
· 최대 :  2,389 
· 전체 :  1,225,437 
 
  2004-05-11 00:01:408624 
제4회. 郊天應夢(교천응몽) 掘地見母(굴지현모)
양승국   (1708)
 掘地見母.jpg  (407.5K)   download : 245
 그림4-2. 공숙단의 반란시 정나라와 그 주변국 정세도 복사.jpg  (355.0K)   download : 184
일반

제4회 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꿈속의 계시로 교천제를 지내 천자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문공과

땅굴 속의 지하에서 모친과 상봉하는 정장공(鄭莊公)

1. 진국흥기(秦國興起)

- 서방의 강국으로 섬진을 흥기시키는 진양공(秦襄公) -

동쪽을 향해 어가를 타고 낙읍에 도착한 주평왕은 조밀한 시정과 장려한 궁궐이 호경과는 비할 바 없이 훌륭함을 보고,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했다. 도읍이 낙읍으로 이미 정해지자 천하의 제후들은 사자를 보내 표문과 함께 헌상품과 특산물을 바쳤다. 그러나 남만(南蠻)의 형국(荊國)① 만은 공물을 바치지 않아 천자국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았다. 이에 주평왕이 노하여 군사를 보내 토벌하려고 하자 군신들이 말리며 간했다.

「남방의 오랑캐 형만은 오랫동안 왕화를 행하지 못하다가 조부이신 선왕(宣王) 때에 이르자 비로소 토벌하여 처음으로 복종 시켰습니다. 선왕께서는 매년 제사에 쓸 술을 담그는데 사용하기 위하여, 공물로 청모(菁茅)② 한 수레만을 보내게 했습니다. 다른 공물을 보내지 않는다고 책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형만을 제어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왕실은 도읍을 옮긴지 오래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이 안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멀리 보내게 되면 그 싸움의 결과는 예측하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마땅히 좋은 말로 달래어, 그들로 하여금 대왕의 덕을 먼저 알게 하고 그래도 여전히 뉘우치지 않는다면 우리 군사의 수가 늘어 날 때를 기다렸다가 토벌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후로 주나라 조정에서는 형만을 정벌하자는 이야기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섬진의 군주 양공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인사하러 왔다. 평왕이 말했다.

「지금 기풍(岐豊)③의 땅 절반 이상을 견융이 점령하여 차지하고 있소. 경이 만약 견융을 몰아 낼 수 있다면 그 땅을 모두 경에게 하사하겠소. 나를 호종한 노고에 대한 대가로는 크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서쪽 변방을 평정하여 영원히 조용하게 하는 일도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소?」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받든 후에 자기 나라로 돌아간 양공은 그 즉시 견융을 멸할 계책을 세웠다. 이에 견융산 말을 구해 병거를 끌게 하고 나라 안의 전 군사들을 이끌고 나아가 견융을 공격했다. 전쟁을 개시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주나라 강역으로 침입한 견융의 군사 중 십 중 칠팔을 죽였다. 견융의 대장 만야속(滿也束)과 패정(孛丁)은 모두 섬진군과의 싸움 중에 죽었다. 이에 융주는 도망쳐 서쪽의 사람이 살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서 숨어 버렸다.

기풍의 땅을 모두 점령하여 그 영토를 사방으로 천리까지 확장한 섬진은 마침내 서방의 대국이 되었다. 이 일에 대해서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기풍은 문왕과 무왕이 주나라 기업을 일으킨 땅인데

어찌하여 가볍게 버리고 섬진에 주었는가?

기풍의 땅은 옛날부터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곳이라

섬진이 강성하게 되어 시황(始皇)을 칭하게 되었다.

文武當年發迹鄕(문무당년발적향)

如何輕棄畏秦邦(여하경기외진방)

岐豊形勝如依舊(기풍형승여의구)

安得秦强号始皇(안득진강호시황)

섬진은 오제의 한 사람인 전욱(顓頊)의 후예가 세운 나라다. 그 자손 중에 황도(皇陶)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요임금 때에 형벌을 다스리는 사사(士師)라는 관직을 지냈다. 황도의 아들은 백예(伯翳)라고 하였는데, 대우(大禹) 임금의 치수를 옆에서 도와, 산을 불태우고 소택지의 물을 뽑아 경작지로 만들었으며 맹수를 내 쫓았다. 이 공로로 영(嬴)이란 성을 하사 받았다. 또한 순임금을 위하여 목축의 일을 주관했다. 백예는 약목(若木)과 대렴(大廉)이란 아들 둘을 두었다. 약목이 서(徐)④라는 곳을 봉읍으로 받아 하(夏)와 상(商) 두 왕조 이래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서 그 곳의 제후가 되었다. 상조(商朝)⑤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 때에 이르러 대렴의 후손으로 비렴(蜚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걷기에 능하여 하루에 5백 리를 걸을 수 있었다. 비렴의 아들 오래(惡來)는 능히 호랑이 가죽을 맨손으로 찢을 수 있었던 장사였다. 부자가 모두 재주와 용기로 주왕의 총애를 받아 그의 학정을 옆에서 도왔음으로 주무왕이 상왕조를 멸할 때 비렴과 오래를 잡아 같이 죽였다. 비렴에게는 계승(季勝)이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고 후예 계승은 수레를 모는데 비상한 재주를 갖춘 조보(造父)라는 아들을 낳았다. 조보가 주목왕(周穆王)의 총애를 받아 조(趙)에 봉해져 당진 조씨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의 후손 비자(非子)는 견구(犬邱)⑥에 살면서 말을 키우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주효왕(周孝王)이 불러 견수(汧水)⑦와 위수(渭水)사이의 땅에서 말을 기르게 했다. 말이 크게 번식하자 효왕이 매우 기뻐하여 비자를 섬진 땅의 부용으로 삼아 영씨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섬진을 영진(嬴秦)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진양공은 비자의 6대 손이다. 양공이 군사를 동원하여 왕을 구원한 공로로 부용에서 백작의 작위에 봉해지고, 기풍의 땅을 또한 얻게 되어 나라의 세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도읍을 옹(雍)⑧땅에 정하고 중원의 여러 제후들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윽고 양공이 서융을 토벌하던 중 싸움 중에 죽자 그의 아들이 즉위하여 문공(文公)이라고 했다. 주평왕 5년 기원전 766년의 일이었다.

2. 응몽교천(應夢郊天)

-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교천제를 지내 천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문공 -

진문공이 하루는 부읍(鄜邑)⑨의 들판으로 나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누런 뱀이 하늘에서 내려와 산등성이에 멈추었는데. 뱀의 머리는 수레바퀴처럼 크고 몸통은 땅 끝까지 드리우고, 꼬리는 하늘에 연해 닿았다. 갑자기 어린 동자로 변한 뱀이 문공을 향해 말했다.

「나는 상제의 아들이다. 상제가 말하기를 너를 백제(白帝)로 명하여 서쪽 나라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셨다.」

말을 마친 동자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문공은 잠에서 깨어났다. 다음날 태사 돈(敦)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돈이 말했다.

「백(白)은 땅의 서쪽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주군께서 서방을 아우르시겠다는 뜻을 갖고 계신다면, 상제의 명을 쫓아 서쪽의 땅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십시오. 틀림없이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공은 즉시 부읍에 제단을 높이 쌓아 백제묘(白帝廟)를 세워 부치(鄜畤)⑩라고 이름 짓고 흰 소를 잡아 희생으로 바쳐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교천제(郊天祭)를 지냈다.

진창(陳倉)⑪에 사는 사람 한 명이 사냥을 나가서 생긴 모습이 마치 맷돼지처럼 닯은 짐승을 한 마리 잡았다. 몸통을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려도 죽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진문공에게 바치기 위해 끌고 가던 도중 동자 두 명을 만나게 되었다. 두 동자가 그 짐승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짐승의 이름은 고슴도치[猬(위)]라고 하며 항상 땅 밑에 숨어 있다가 죽은 사람의 뇌를 먹고삽니다. 머리를 때리면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역시 사람으로 변한 고슴도치도 말했다.

「꿩이 변신한 두 동자는 이름을 진보(陳寶)라고 한다. 숫놈을 얻으면 왕이 되고 암놈을 얻으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다.」

두 동자가 고슴도치에 의해 자기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즉시 들꿩으로 변해 날아가 버렸다. 그 중 암놈은 진창산(陳倉山) 북쪽 산등성이에 내려앉아 돌로 변해 석계(石鷄)가 되었다. 부지중에 고슴도치도 달아나 버리자 사냥꾼이 놀라서 문공에게 달려가 저간의 사정을 고했다. 문공이 다시 진창산에 진보사(陳寶祠)를 지어 해마다 교천제를 지내도록 했다.

한편 종남산(終南山)⑫에 거대한 가래나무가 있었는데, 문공이 궁궐의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톱으로 베어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톱니가 나무에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중, 갑자기 바람과 비가 크게 일어나 나무 베는 일을 중지 할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산 밑에서 밤을 새우게 된 어떤 사람이 나무와 귀신들의 이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여러 귀신들이 낮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큰 나무에게 축하의 말들을 하자 큰 나무도 역시 일일이 응하여 대답했다. 한 귀신이 말했다.

「섬진의 군주가 사람을 시켜, 그 머리를 풀어서 얼굴 위로 늘어뜨리게 하고, 붉은 명주실로 당신 몸을 칭칭 감게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큰 나무 귀신이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날 그 사람이 귀신들이 한 말을 문공에게 고했다. 문공이 듣고 인부들을 다시 보내 나무를 베어 오게 했다. 그 사람 말대로 하니 톱니가 들어가서 큰 나무를 벨 수 있었다. 나무를 베어 내자 그 나무 속에서 청우(靑牛) 한 마리가 튀어 나와 곧바로 옹수(雍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후에 옹수의 강변에 살고 있던 백성들은 물 속에서 나와 돌아다니던 청우를 보게 되었다. 문공이 듣고 말 탄 군사를 시켜 청우가 물 속에서 나오기를 기다려 잡게 했다. 힘이 대단히 센 청우가 말 탄 군사들을 뿔로 들이받자 군사들은 모두 땅에 굴러 떨어졌다. 군사들은 청우를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사들은 머리를 풀어 산발하여 얼굴을 가렸다. 청우가 귀신의 형상으로 변한 군사들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곧바로 백성들에게 머리를 길게 기르지 못하게 명하고, 또다시 노특사(怒特祠)라는 사당을 지어, 큰 가래나무 귀신에게 교천제를 지내게 했다.

그때 노나라 혜공(惠公)이 섬진이 참람하게 천자의 예에 따라 상제에게 교천제를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태재 양(讓)을 주나라에 보내어 노나라도 역시 천자의 의식에 따라 교천제를 지낼 수 있게 허락을 해달라고 청했다. 주평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노혜공이 말했다.

「우리 노나라의 시조이신 주공께서는 왕실에 큰 공훈을 세웠고 왕실의 예악(禮樂)도 역시 우리 조상이 제정했다. 예악을 제정한 조상의 자손들이 행한다고 하여 어찌 그것을 손상시킨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천자가 섬진에게는 금하지 못하면서, 어찌 우리 노나라만 못하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곧이어 노나라도 천자의 의식에 따라 교천제를 지내게 되었다. 주평왕이 알았으나 감히 문책하지 못했다. 이후로 왕실은 날이 갈수록 쇠약하게 되어, 제후들은 각각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게 되었고 서로 전쟁을 일으켜 천하가 어지러워지게 되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한탄하였다.

자고로 천자와 제후의 예법은 서로 차이가 크게 나서

제후의 나라가 교천제를 지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섬진과 노가 천자의 예법을 참람하게 앞서서 시작하니

열국들이 일어나서 대권을 도적질해 가기 시작했다.

自古王侯禮數懸(자고왕후예수현)

未聞侯國可郊天(미문후국가교천)

一從秦魯開端僭(일종진노개단참)

列國紛紛竊大權(열국분분절대권)

3. 편애지화(偏愛之禍)

- 편애(偏愛)의 비극 -

한편 정세자 굴돌은 정나라 본국으로 환국하여 군주자리에 올랐다. 이가 정무공(鄭武公)이다. 무공은 주나라가 동천하여 나라의 체제를 미처 정비하기 전의 혼란을 틈타 주변의 동괵(東虢)⑬과 회(檜)⑭ 등의 제후국들을 침략하여 병합했다. 회 땅에 도성을 건설하여 이름을 신정(新鄭)이라고 부르고 다시 동괵에게서 빼앗은 형양(滎陽)의 땅에도 대성을 축조하여 경성(京城)이라 했으며 제읍(制邑)⑮의 험지에는 관문을 설치하여 외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정나라는 이때부터 중원의 강대국이 되기 시작했다. 정무공은 또한 부군 정환공이 갖고 있었던 왕실의 경사(卿士) 직도 이어 받아 위무공과 함께 왕도에 머물면서 주나라의 정사를 돌보았다.

주평왕 13년 즉 기원전 758년, 위무공이 노환으로 죽자 정무공이 주나라 정사를 독단하게 되었다. 신정과 왕성인 락읍(洛邑)과는 지척간⑯이라 주나라와 정나라 사이를 수시로 오고가고 하면서 왕실과 정나라 일을 동시에 처리했다.

정무공이 정나라 남쪽의 호(胡)⑰나라를 공격하여 병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먼저 자기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을 보내 인척관계를 맺었다. 그리고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정나라의 땅을 넓히려고 하는데 어느 나라가 좋겠는가?」

무공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던 대부 관기사(關其斯)가 대답했다.

「호를 치십시오.」

무공은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호는 내 사위의 나라다. 네 어찌 인척의 나라를 치라고 하느냐?」

그리고는 관기사를 죽여버렸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호나라의 군주는 정나라가 자기를 친애한다고 생각하고 정나라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러자 그 틈을 탄 정무공이 호나라를 기습하여 호나라 군주를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아 버렸다.

정무공은 신후의 딸 무강(武姜) 사이에서 아들 둘을 낳았다. 장자를 오생(寤生)이라 하고 차자를 단(段)이라 했다. 장자의 이름을 오생이라고 지은 이유는, 원래 무강이 첫 번째 아이를 분만할 때 산욕도 하지 않고 잠을 자다가 출산하게 되어 몽중에서 낳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오생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한 마음을 갖고 있던 무강이 얼마 후에 단을 낳았다. 단은 자라면서 한 사람의 훤칠한 장부가 되어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하얗고 입술은 주옥처럼 붉었으며, 또한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으며 무예가 고강 했다. 무강이 마음속으로 단을 편애하여 후사로 삼고 싶어 했다. 무강이 속으로 생각했다.

「만일 단으로 하여금 오생을 대신해서 정백의 자리를 잇게 한다면 내 마음은 열 배나 더 기쁘겠다.」

무강이 수차에 걸쳐 무공을 부추겨, 둘째 아들 단의 현명함을 칭찬하고 마땅히 후계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무공이 말했다.

「장유유서가 있는데 동생을 세울 수는 없는 일이오. 하물며 오생이 과실이 없는데 어떻게 장자를 폐하고 동생을 세울 수 있겠소?」

그리고는 정무공은 오생을 세자로 정하고 단에게는 단지 아주 작은 공성(共城)⑱만을 주어 식읍으로 삼게 했다. 그런 이유로 단을 공숙(共叔)이라고 불렀다. 무강의 마음은 더욱 좋지 않게 되었다.

무공이 재위 27년 만인 기원전 744년에 죽고 오생이 그 뒤를 이어 정나라 군주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정장공(鄭庄公)이다. 정장공은 부친이 갖고 있던 주왕실의 경사 직도 함께 이어 받았다. 정나라의 모든 것은 장공에게 돌아가고 공숙은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하자 무강은 앙앙불락하여 장공에게 그 불만을 토로했다.

「너는 부친의 뒤를 이어받아 수 백 리의 땅을 갖고 있으면서, 같은 배에서 나온 동생에게는 그 한 몸도 기거하기에 비좁은 고을만을 주고 있으니 어찌 내가 참을 수 있겠느냐?」

「모친이 말씀하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제읍에 봉하면 어떻겠느냐?」

「제읍은 바위가 많아 험하기로 이름난 곳입니다. 선군께서 그곳은 누구에게도 분봉하지 말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이곳 말고 다른 곳에 봉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경성(京城)에 봉하면 되겠다.」

장공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강이 얼굴에 노기를 띠며 말했다.

「다시 거절하면 오로지 네 동생을 타국으로 쫓아내 그곳에서 호구지책이나 마련하라고 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장공은 다만 ‘그럴 수 없다’는 소리만 연발하며 물러났다. 다음날 조당에 나간 장공은 동생 단을 경성에 봉하겠다고 선포했다. 대부 제족(祭足)이 간했다.

「불가합니다. 하늘에 해가 두 개가 아니듯이 백성들에게도 임금이 둘일 수 없습니다. 경성은 그 크기가 백치(百雉)⑲나 되는 대성 중의 대성입니다. 땅은 넓고 백성들은 많아 인접해있는 이곳 신정성과 그 세력이 비슷합니다. 하물며 공숙은 부인께서 총애하는 아들인데, 만약 대성을 봉지로 갖게 된다면 이것은 한 나라에 두 임금이 되는 격입니다. 공숙이 모친의 총애를 믿고 후에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모친의 명이라 내가 감히 거역하지 못하겠소.」

장공은 그날 곧바로 공숙을 경성에 봉했다. 공숙이 장공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와 무강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기 위해 들렸다. 좌우 사람들을 물리친 무강이 공숙에게 은밀히 말했다.

「네 형이 한 배에서 나온 형제의 정을 생각지 않고, 너를 심히 박절하게 대하는구나! 오늘 네 형이 너를 경성에 봉했다고는 하나, 내켜하지 않은 그를 내가 재삼 강권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틀림없이 순종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네가 경성에 당도하게 되면 마땅히 병사를 모으고 병거를 구하여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거사를 도모하기로 서로 약조를 하자. 네가 군사를 일으켜 이곳을 공격한다면 나는 안에서 응하겠다. 그리되면 나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만약 오생의 자리를 대신하여 정백의 자리에 오른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공숙은 그날로 길을 떠나 경성에 부임했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공숙을 경성의 태숙(太叔)이라고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공숙이 경성에서 정사를 보기 시작한 첫 날, 경성의 서쪽과 북쪽의 변경을 지키는 관리들이 와서 치하했다. 태숙이 두 관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관장하고 있는 두 땅은 지금은 나의 봉지에 속하게 되었다. 오늘 이후부터는 공물과 세금을 모두 나에게 바치고 병거의 징발과 군사의 조련은 모두 나의 명령을 받고 시행하라! 위반하여 일을 그르치지 말라!」

오래 전부터 국모가 태숙을 총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두 지방의 관리들은 태숙이 정백의 자리를 이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날 공숙을 보니 풍채가 훤칠하고 인물이 출중했음으로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스스로 복종했다. 태숙이 사냥을 핑계로 매일 성 밖으로 나가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동서 양쪽 변경의 군사들을 병합하여 자기의 군적에 같이 넣었다. 또 사냥을 한다고 가장하고 출병하여, 언성(鄢城)⑳과 름연(廩延)㉑을 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두 고을을 다스리던 관리들이 신정성(新鄭城)으로 도망쳐와 태숙이 군사를 이끌고 자기들이 지키던 고을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장공에게 장황하게 고했다. 장공은 미소만을 얼굴에 띄우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군신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 나와서 큰 목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단을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정장공이 머리를 돌려 쳐다보니 상경 공자려(公子呂)였다. 장공이 물었다.

「경은 무슨 고견을 갖고 있소?」

「신하된 자는 결코 사사로운 군사를 거느릴 수 없으며 만약 이를 위반하면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작금에 이르러 태숙이 안으로는 모후의 총애를 믿고 밖으로는 경성의 성곽이 견고함을 과신하여 밤낮으로 병사들을 훈련하고 무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군위를 찬탈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군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경성으로 달려가 단을 사로잡아 처형하여,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십시오.」

「단이 비록 나쁜 짓을 범했다 하기로서니 어떻게 죽이기까지야 하겠소?」

「금일 경성의 양쪽 변경지방을 태숙이 접수하였고, 계속해서 름연을 공격하여 빼앗아 갔습니다. 선군께서 물려준 땅을 매일 잘라 나누어주시니 어이된 일이십니까?」

장공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단은 곧 모친이 총애하는 아들이고 과인과는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간이오. 과인이 비록 땅을 조금 잃었기로서니 어찌 형제간의 정을 해치면서 모친의 뜻을 저버리겠소?」

공자려가 멈추지 않고 다시 아뢰었다.

「신이 걱정하는 바는 땅이 아니라 나라를 잃는 일입니다. 오늘날 백성들의 인심이 흉흉하게 된 이유는 태숙의 힘이 크고 세력이 강하여 모두가 관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서 입니다. 머지않아 도성의 백성들도 두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주공은 오늘 태숙을 용납하더라도, 후일에 태숙은 주공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경은 더 이상 거론하지 마시오. 과인이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겠소!」

공자려가 물러 나와 대부 제족을 찾아가 말했다.

「주공이 내궁의 사사로운 일로 해서 사직이 그릇 될까 심히 걱정되어 찾아뵙습니다.」

제족이 조용한 어조로 대답했다.

「주공은 재능과 지혜를 겸비하신 분이라 필시 태숙의 일을 좌시만 하고 있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단지 궁궐의 이목이 있어 말이 밖으로 새 나갈까 염려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공자께서는 주군과는 인척으로 신분이 고귀하신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찾아가 뵈면 주공께서는 반드시 가슴 속의 생각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공자려가 제족의 말을 따라 궁문을 두드려 다시 장공을 뵙기를 청했다. 뜻밖에 찾아온 공자려를 보고 장공이 물었다.

「경이 이렇게 나를 찾아 온 이유는 무슨 일 때문이오?」

「주공께서 군위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은 모후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모후와 태숙이 안팎으로 모의하면 변란은 바로 코앞의 일이 될 것입니다. 정나라가 주공의 손에서 떠나려고 하는데 신이 어떻게 침식을 편안히 하겠습니까? 그 일로 해서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장공이 한숨을 쉬며 공자려를 향해 말했다.

「이 일은 모후가 개입되어 있어 대단히 난처한 일이오.」

「주공께서는 주나라의 주공단(周公旦)이 그의 동생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죽인 일㉒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당연히 끊어야 할 것을 안 끊으면, 후에 되돌아와 화근이 됩니다. 원하옵건대 서둘러 결심을 굳히시기 바랍니다.」

장공이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아픈 심경을 공자려에게 토로했다.

「과인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단이 비록 무도한 짓을 하고 있으나, 아직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소. 내가 만약 잡아서 죽이려고 하면 모친께서는 반드시 죽이지 못하게 방해할 것이오. 이렇게 되면 괜한 헛수고만 하고, 백성들과 조정 대신들의 의견만 분분하게 만들 뿐이오. 또한 나는 사람들에게서 형제간에 불화하고 모친께는 불효를 행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오. 그래서 과인은 지금까지 결단을 못 내리고 주저하고 있소. 그저 단이 모친의 총애를 믿고 뜻을 얻어 함부로 행동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반역을 도모하여 그 죄가 명백히 밝혀지게 되면, 백성들도 감히 단을 돕지 않게 되고, 모친도 더는 어쩌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서요.」

장공의 속마음을 알게 된 공자려가 간했다.

「주공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는 지혜에는 신이 감히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태숙의 세가 크게 자라서, 마치 덩굴이 무성하게 되어 베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주공께서 만일 태숙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신다면, 마땅히 그에게 충동을 일으키게 하여 움직이게 하십시오.」

「좋은 계책이 있소?」

「주공께서 오랫동안 천자께 입조하지 않으신 이유는, 태숙의 일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즉시 주공께서 주나라에 가신다고 공포하시면, 태숙은 반드시 나라 안은 비게 된다고 믿고 군사를 움직여 도성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 전에 미리 신이 군사를 끌고 경성 밖에 몰래 매복하고 있다가 태숙이 성 밖으로 출동하면 그 틈을 이용하여 경성을 차지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주공께서는 본대를 이끌고 언릉으로 들어가 기다리십시오. 경성을 잃어버린 태숙은 군사를 재정비하기 위해 언릉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경성에서 나와 태숙의 뒤를 추격하고 주공께서는 성에 의지하여 태숙의 군사를 막으면 앞뒤에서 적을 맞이하는 형세이니 태숙이 비록 어깨에 날개가 달려 있다 한들 어찌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경의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이 일은 절대 밖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하시오.」

공자려가 인사를 드리고 궁문 밖으로 나오면서 감탄하여 혼자 말하였다.

「일을 꿰뚫어 보는 제족의 안목은 가히 귀신같구나!」

다음날 아침 조회에서 장공은 공자려의 말을 쫓아 거짓 영을 내렸다. 대부 제족을 감국(監國)㉓으로 하고 자기는 왕성으로 들어가 천자를 뵙고 정사를 보좌하겠다고 했다. 무강이 그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하면서 혼자말로 했다.

「단이 복이 있어 정나라의 군주가 되겠구나!」

무강은 즉시 5월 초순에 군사를 동원하여 신정성을 습격하라는 내용의 밀서를 한 통 써서 심복에게 주어 경성의 태숙에게 전하게 했다. 그때가 4월 하순이었다. 그러나 공자려의 명을 받고 미리 요로에 매복 하고 있던 군사들이 무강의 밀사를 잡아서 죽이고 밀서를 빼앗아 장공에게 보냈다. 장공이 밀서의 겉봉을 뜯어 읽은 후에 다시 겉봉을 견고하게 봉하고 다른 사람을 밀사로 가장시켜 태숙에게 보냈다. 밀사가 무강에게 보내는 태숙의 밀서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밀서의 내용은 5월 초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그때가 되면 성 위에 백기를 걸어 놓고 안에서 내응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장공이 단의 밀서를 얻자 기뻐하면서 속으로 말하였다.

「단의 밀서가 여기 있으니 이번에는 모친께서 더 이상은 단을 비호하지 못하리라.」

장공이 곧바로 입궁하여 모친에게 주나라에 들어간다는 인사를 올린 후에 즉시 군사를 이끌고 신정성을 나와 행군을 시작했다. 공자려는 그 사이에 전차 200승을 이끌고 비밀리에 북쪽으로 행군하여 경성 근교에 매복했다.

한편 무강의 밀서를 받은 태숙은 아들 공손활(公孫滑)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위나라에 바치고 병사를 빌려 오도록 했다. 이어서 경성의 군사와 양쪽 변경의 수비군에게 동원령을 내린 태숙은 정백이 주나라에 들어갈 때 자기를 감국으로 임명했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꿩깃으로 만든 대패기(大旆旗) 밑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 태숙은 군사들을 호군(犒軍)㉔한 다음 성문을 열고 나와 호호탕탕 신정성을 향해 진군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공자려가 마차 열 대에 상인으로 분장한 군졸들을 경성 안으로 잠입시켜 놓고 오로지 태숙이 군사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온 태숙의 행렬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성안에 잠복하고 있던 군사들이 성루 위에 불을 질렀다. 불길을 본 공자려가 즉시 군사를 이끌고 호호탕탕 성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성안에 잠복해 있던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공자려의 군사들을 맞아들였다. 힘들이지 않고 경성을 얻은 공자려는 곧바로 방문을 붙여 백성들을 안무했다. 장공은 모친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려고 했으나 태숙이 형제의 정을 저버리고 배신했다는 내용의 방을 써서 성안의 여러 곳에 붙였다. 경성의 백성들은 모두 태숙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한편 태숙은 군사를 끌고 신정성으로 진군하던 중 이틀이 채 되지 않아 경성이 함락된 소식을 들었다. 뜻밖의 소식에 마음이 황망하게 된 태숙은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들의 행군 방향을 돌려 경성으로 달리게 했다. 경성 밖에 진영을 세운 태숙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싸움을 걸어왔다. 그러나 수하 장병들은 의견이 분분할 뿐이었다. 그때 경성이 고향인 군사 한 사람이 자기집에서 부쳐온 편지를 동료들에게 보였다.

「정백이 덕으로써 태숙을 대했는데 태숙은 오히려 정백을 배반했다. 태숙은 어질지도 의롭지도 않는 사람이다.」

편지의 내용이 한 사람에게서 열 사람에게, 열 사람에게서 백 사람에게 전해져 모든 군사가 알게 되어 하나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옳은 것을 등지고 역도를 따르고 있다. 하늘이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군사들이 동시에 떠들고는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태숙이 점고 하여 보니 남은 군사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경성의 백성들 마음도 이미 자기에게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태숙은, 언성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군사들을 다시 모아 재정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장공이 언성에 들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행군 중에 장공이 언성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태숙은 방향을 다시 바꿔 원래의 자기 식읍인 공성(共城)으로 들어갔다. 공손활이 빌려올지도 모르는 위나라 군사들의 도움을 받게 되면 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태숙은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아들 공손활을 위나라에 보내 군사를 청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위나라 구원군의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공자려가 이끄는 군사들과 힘을 합한 정장공의 본대가 신속하게 추격해와 공성을 맹렬히 공격했다. 원래 공성은 성벽이 낮고 사람도 많이 살지 않은 조그만 성에 불과하여 정나라 대군을 당해 내지 못하고, 마치 태산이 계란을 누르는 것과 같은 기세에 눌려 곧바로 함락되고 말았다. 장공이 곧 공성 안으로 입성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은 태숙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모친이 나를 망하게 했구나! 내가 무슨 면목으로 형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

태숙은 그 즉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성안으로 입성한 장공이 단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하면서 말했다.

「어리석기가 어찌 이와 같단 말인가?」

태숙의 시신을 안장한 장공은 행장을 수습하고, 모친이 보낸 편지와 함께 태숙의 답장을 같은 봉투 안에 넣어 봉하여, 사람을 시켜 도성으로 보내 제족으로 하여금 무강에게 바치게 한 다음 그녀를 영(潁)㉕ 땅으로 추방하라는 명을 내렸다. 장공이 하늘에 스스로 맹세하며 말했다.

「황천이 아니면 살아서는 절대로 모친을 보지 않으리라!」

장공이 보내온 편지 두 통을 본 무강은 수치감으로 어쩔 줄 몰랐다. 장공을 볼 면목이 없게 된 무강은 그 즉시 궁궐을 떠나 영 땅으로 들어갔다. 장공이 신정으로 돌아와서 모친을 볼 수 없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후회하는 마음이 들어 한탄하면서 말했다.

「내가 부득이 하여 동생을 죽이게 되었고 또한 모친을 멀리 떠나보내 천륜을 어긴 죄인이 되었구나!」

4. 假借鴟鴞 闡說孝道(가차치효 천설효도)

- 올빼미의 일을 빌려 효의 길을 설파한 영고숙 -

그때 영읍의 지방관리에 이름이 영고숙(潁考叔)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인이 정직무사하고 천성적으로 효성이 지극하며 친구 사귀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모친 무강을 자기 고을인 영읍에다 안치시키는 장공의 처사를 보고 영고숙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부모가 비록 부모답지 않을 수는 있어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곧바로 올빼미 몇 마리를 구한 그는 신정성에 들어가 사냥한 짐승을 바치려 한다는 구실로 장공에게 배알을 청했다. 영고숙의 접견 요청을 허락한 장공이 보고 물었다.

「이 새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영고숙이 대답했다.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에는 태산처럼 큰 것도 볼 수 없지만, 밤에는 머리카락 한 오라기라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는 밝지만 큰 것에는 어둡습니다. 어릴 때는 그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지만 성장하게 되면 그 어미를 쪼아서 먹어버리는 짐승이라 바로 불효의 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이 새를 포획하여 잡아먹고 있습니다.」㉖

장공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궁정의 요리사가 삶은 양을 요리해서 가지고 들어왔다. 장공이 좌우에 명하여 삶은 양의 어깻죽지 한쪽을 잘라서 영고숙에게 주어 먹도록 했다. 영고숙이 먹기 좋은 부위만을 골라 천에 싸 소매 속에 넣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장공이 그 연유를 묻자 영고숙이 대답했다.

「소신에게는 늙은 어머님이 계신데 집안이 빈한하여 매일 사냥을 해서 날짐승을 갖다 바쳐 입맛을 돋워 드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맛있는 양고기는 갖다 드리지 못했습니다. 노모를 생각하니 저 혼자서만 먹을 수 없어 이 고기를 싸서 집에 가지고가 국을 끓여, 늙으신 어머님께 올리고자 해서입니다.」

「효자는 바로 그대와 같은 사람이라!」

말을 마친 장공은 부지중에 마음이 처연하게 되어 장탄식했다. 영고숙이 보고 물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한탄하십니까?」

「그대는 모친을 봉양하여 아들로서의 마음을 다하고 있지만, 과인은 제후의 귀한 몸이지만 모시고자 하는 모친이 계시지 않아 오히려 그대만큼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영고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고 다시 물었다.

「주공의 모친은 조당에 계시어 무양하신데 어찌하여 안 계신다고 하십니까?」

5. 掘地見母(굴지현모)

- 황천을 파서 모친과 상봉하는 정장공 -

모친 무강이 태숙과 공모하여 도성을 습격하여 군위를 찬탈하려는 역모를 장공이 미리 대비한 결과 태숙은 죽고 무강은 영읍에 들어가 살게 된 일을 상세하게 말했다.

「내가 모친을 황천이 아니면 안 만나겠다고 하늘에 맹세해버렸으니 한 번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어 그저 후회막급할 뿐이오.」

「태숙은 이미 죽고 강부인께서는 아들이라고는 오로지 주공 한 분뿐입니다. 그런데 모친을 봉양하지 않는다면 제가 잡아온 올빼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정녕 황천에서나마 상견하시겠다는 마음이시라면,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주공의 괴로운 마음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오?」

「우선 사람을 동원하여 샘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서 그곳에 집을 지어 모친을 살게 한 다음, 주공께서 찾아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고하십시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모친께서는 결코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황천이란 '땅 밑의 샘물이 있는 곳'이라 주공께서는 황천에서 모친과 상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공의 ‘황천이 아니면 안 만나겠다’고 한 맹세를 깨뜨리지 않고도 모친과 상봉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크게 기뻐한 장공이 그 즉시 영고숙에게 명하여 장사 5백 명을 데리고 가서 곡유(曲洧)㉗의 우비산(牛脾山) 밑에다 깊이가 수십 장이 되도록 샘물이 용솟음 칠 때가지 파고, 샘물이 나오는 곳 옆에 나무를 사용하여 집을 짓도록 했다. 집이 완성되자 긴 사다리를 세워 통로를 만든 영고숙은 무강을 찾아가 장공이 후회하여 도성으로 다시 모셔서 효로써 봉양하고 싶다는 뜻을 정성을 다하여 말했다. 무강이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다. 영고숙이 먼저 무강을 모시고 우비산 밑의 지하에 있는 집으로 모신 후에 장공에게 달려가 고했다. 장공도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우비산의 지하 가옥에 당도하여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 무강을 보고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리고 고했다.

「제가 불효하여 오랫동안 아침 문안을 못 드렸습니다. 이 불효자식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모두가 늙은 이 몸의 죄이지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무강이 팔을 뻗어 장공을 일으키자, 모자가 머리를 서로 부여잡고 대성통곡했다. 얼마 후에 두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땅위로 올라왔다. 장공이 친히 무강을 부축하여 어가에 태우고 자기가 직접 말고삐를 잡고 수레를 몰았다. 백성들이 장공 모자가 같이 도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손은 들어 얼굴을 가리며 장공의 효성을 칭송했다. 이것은 모두가 영고숙이 중간에 조정한 공이었다.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영고숙의 행동을 칭송했다.

황천이 아니면 안 만나겠다고 모친과의 인륜을 끊고

다시 큰 동굴을 파니 모친의 구금을 위해서라고 의심을 샀다.

고숙이 회육계(懷肉計)를 행하지 아니했다면

장공이 무슨 방법으로 천륜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黃泉誓母絶彝倫(황천서무절이륜)

大隧擾疑隔世人(대수요의격세인)

考叔不行懷肉計(고숙불행회육계)

庄公安肯認天親(장공안긍인천친)

자기 모자의 정을 다시 찾게 해 준 것은 전적으로 영고숙의 덕분이라고 생각한 장공은 그에게 대부의 벼슬을 제수하고 공손알(公孫閼)과 함께 군사의 일을 주관하게 했다.

한편 태숙의 아들 공손활은 위나라에 군사를 청하러 가는 도중에 그의 아버지는 음모가 탄로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나라로 도망쳐 들어갔다. 공손활은 위후(衛侯) 환공(桓公)에게, 백부 정장공이 자기 부친인 태숙을 살해하고 그 모친을 멀리 귀양 보내 동굴에 가두었다고 호소했다. 위환공이 말했다.

「정백이 이렇게 무도하니 내가 마땅히 공손활을 위해 토벌하지 않을 수 없겠다.」

위나라는 즉시 정나라를 토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 제4회 끝 >

주석

①형국(荊國): 형만(荊蠻)이라고 하며 현재 호북성과 호남성에 있었던 남만족(南蠻族) 나라들을 총칭하며, 후에 이곳의 나라들을 초나라가 모두 합병하여 남방의 강국이 되어 형(荊)이라는 말을 대표하게 되었다.

②청모(菁茅): 풀이름으로 띠풀의 일종이다. 일명 삼척모(三脊茅)라고도 한다. 고대에서 청모초(菁茅草)를 볏단으로 만들어 그 위에 부어 거른 술로 제사를 지냈다.

③기풍(岐豊): 기산(岐山)과 풍(豊)을 말한다. 기산은 현재 섬서성(陝西省) 미현(媚縣) 북 30키로에 있는 산으로 주나라가 일어선 곳이며, 풍은 서안시(西安市) 서쪽 부근에 있던 지방이다. 주왕이 기풍의 땅을 섬진에게 주었다는 말은 현 서안시 이서의 땅을 섬진에게 할양했다는 뜻이다.

④서(徐):현 산서성(山西省) 동남부(東南部) 장치시(長治市) 서쪽 돈류(屯留) 부근

⑤상(商)과 은(殷): 탕(湯) 임금이 하나라의 걸왕(桀王)을 멸하고 세운 나라의 이름은 상(商)이다. 상나라의 시조 설(契)이 하남성의 상이라는 곳에 봉해졌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상이라고 했다. 기원전 13세기에 이르자 상의 반경(盤庚)이라는 임금이 상나라의 도읍을 은(殷) 땅으로 천도했다. 은은 지금의 하남성 안양시(安陽市)로써 상나라는 그곳을 270년간 도읍으로 삼았다. 1899년 청조 말 유철운(劉鐵云)이라는 사람이 거북과 동물의 뼈에 새겨진 갑골문을 발견하여 상나라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졌는데, 그 장소의 이름이 은허(殷墟)였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은나라로 부르게 되었다. 즉 상이라는 이름은 자칭이고 은이라는 이름은 타칭이다.

⑥견구(犬邱): 섬서성(陝西省) 무공시(武功市)와 함양시(咸陽市) 중간의 위수 강변에 위치한 곳으로서 지금의 흥평현(興平縣) 부근이다.

⑦견수(汧水): 감숙성(甘肅省) 장가천(張家川) 회족자치현(回族自治縣)에서 발원하여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북쪽으로 흘렀던 위수(渭水)의 지류

⑧옹(雍): 현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鷄市) 북쪽 약 10키로 봉상현(鳳翔縣) 부근. 덕공(德公 : 재위 BC677-674년)이 그 도읍을 지금의 보계시(寶鷄市) 동 30키로의 평양(平陽)에서 옹(雍)으로 옮겼다. 이후로 진효공(秦孝公) 때 상앙(商鞅)이 변법(變法)을 시행하면서 기원전 350년 함양으로 천도할 때까지의 진나라 수도였다.

⑨부읍(鄜邑): 현 섬서성(陝西省) 락수(洛水) 강안(江岸)에 있는 락천시(洛川市) 동남쪽 약 30km 지점

⑩부치(鄜畤)의 치(畤)는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는 곳

⑪진창(陳倉): 현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鷄市)와 보계현(寶鷄縣)사이에 있던 지명. 섬서성에서 사천성(四川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에 세워진 관문을 통과해야 했음.

⑫종남산(終南山): 현 섬서성(陝西省) 위수의 남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진령(秦嶺)의 동쪽에 솟아 있는 해발 2600미터의 높은 산. 서안시(西安市) 남쪽 약 50 키로에 위치해 있다.

⑬동괵(東虢): 현 하남성 정주시(鄭州市) 서쪽 약 20키로 지점의 형양시(滎陽市)에 부근에 있었던 제후국

⑭회(檜): 회(鄶))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 밀현(密縣)에 소재했던 주나라 건국 초기에 봉해진 운성(妘姓) 제후국으로 축융(祝融)의 후예라고 전해진다. 주평왕 때 정무공(鄭武公)이 병합하여 그 땅에 도성을 건설하고 신정(新鄭)으로 개명했다.

⑮제읍(制邑): 지금의 하남성 공의시(鞏義市) 부근에 있던 관문(關門)으로 동쪽과 남쪽에서 정나라를 쳐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가야 했던 요새지로써 후에 호뢰(虎牢)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⑯주나라의 왕성 락읍과 정나라의 도성 신정성과의 거리는 약 150km 임.

⑰호(胡): 지금의 하남성 언성시(郾城市)에 있었던 희성(姬姓) 제후국이다.

⑱공성(共城):현 하남성 신향시(新鄕市) 북쪽 약 20키로 지점의 휘현(輝縣)일대의 성읍이다.

⑲치(雉):고대의 성벽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높이 1장, 길이 3장을 1치라고 했다. 즉 백치의 성이란 높이 2.2m의 높이에 길이가 220미터에 달하는 성벽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⑳언성(鄢城):현 하남성(河南省) 허창시(許昌市) 동쪽 20km 지점인 언릉(鄢陵)을 말한다.

㉑름연(廩延):현 하남성(河南省) 신향시(新鄕市) 동북쪽 30km지점으로 연진(延津)과 기현(淇縣)의 중간에 있는 후하향(后河鄕) 부근.

㉒주공단(周公旦)이 그의 동생 관숙과 채숙을 죽인 일(周公誅管蔡): 관채(管蔡)는 관숙과 채숙을 말하는 데 모두 주무왕(周武王)의 동생들이다. 은나라를 멸한 주무왕은 주왕(紂王)의 맏아들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은나라 구토에 봉하고 그 동생 관숙과 채숙 및 곽숙(霍叔)을 무경의 상(相)으로 임명하여 삼감(三監)이라 칭하고 녹보를 감시하게 했다. 무왕이 죽자 조정의 정사는 무왕의 바로 밑의 동생인 주공단이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의 자리에 올라 주관했다. 관숙과 채숙이 불복하여 주공단이 천자의 자리를 찬탈할 것이라는 요언을 만들어 퍼트리고 무경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 주공단이 반란을 진압한 후에 관숙은 죽이고 채숙과 곽숙은 나라 밖으로 추방했다. 채숙은 나라 밖으로 유랑하다가 죽었다. 주공단이 채숙의 아들 채호(蔡胡)를 불러서 채숙의 봉국을 돌려주고 채나라의 사직을 지키게 했다.

㉓감국(監國): 군주가 나라 밖으로 출행(出行)할 때 세자를 도와 정사를 돌보게 했던 관직이름.

㉔호군(犒軍):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음식을 배불리 먹이는 일.

㉕영읍: 현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부근. 정나라를 서북쪽에서 동남으로 관통하여 흐르던 영수(潁水) 강안의 고을이다. 즉 장공은 그의 모친 무강을 영으로 보내 유폐시켰다.

㉖ 此鳥名鴞, 晝不見泰山, 夜能察秋豪, 明于細而暗于大也, 小時其母哺之, 旣長, 乃啄食其母, 此乃不孝之鳥, 故捕而食之”

㉗곡유(曲洧): 현 하남성 언릉(鄢陵) 동남쪽 약 20키로 지점의 유수(洧水) 강안의 고을. 허창시(許昌市) 서쪽 약 40키로 지점이다.

목록 비추천
1611
占쏙옙占쏙옙천
[일반] 프롤로그 - 550년 대동란의 서막

프롤로그 - 550년 대동란의 서막 주나라는 기원전 12세기 말엽 주무왕(周武王)이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을 목야(牧野 : 지금의 하남
운영자 12-02-11 1973
[일반] 제후연표1-일어서는 제후들

12제후연표 태사공은 《춘추역보첩(春秋曆譜牒)》을 읽다가 주나라 려왕(厲王)에 이르면 책을 내던지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다. 슬프구나!
496.0K 양승국 04-10-26 3277
[일반] 제1부-제1권 諸侯崛起(제후굴기 - 일어서는 제후들) 목차

열국연의 목차 제1부 통권1 제후굴기(諸侯崛起) 제1회 周宣王聞謠輕殺(주선왕문요경살) 길거리의 노래를 듣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양승국 04-05-11 2714
[일반] 제13회. 兄妹私通(형매사통), 君臣爲戮(군신위륙)

제13회兄妹私通 君臣爲戮(형매사통 군신위륙) 친정에 들렸다가 오빠와 정을 통한 문강과 제양공의 함정에 빠져 죽임을 당한 정나라의 군주와 신하 (1)
양승국 04-05-11 2654
[일반] 제12회. 築臺納媳(축대납식), 乘間易君(승간역군)

제12회 築臺納媳 乘間易君(축대납식 승간역군) 며느리를 부인으로 삼아 신대에 같이 산 위선공과 기회를 노려 그 군주를 바꾼 정나라의 고
양승국 04-05-11 2386
[일반] 제11회. 貪賂搆兵(탐뢰구병), 殺婿逐主(살서축주)

제11회 貪賂搆兵 殺胥逐主(탐뢰구병 살서축주) 재물을 탐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송장공과 사위를 죽이고 임금을 쫓아내는 정나라의 제족 1
양승국 04-05-11 1730
[일반]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길거리의 요언을 듣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주선왕과 원귀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두백( (1)
양승국 04-07-07 2114
[일반] 제10회. 僭號稱王(참호칭왕), 被脇立庶(피협입서)

제10회 僭號稱王 被脇立庶(참호칭왕 피협입서) 참람하게 왕호를 칭하는 초무왕 웅통과 송장공의 위협에 굴복하여 군주를 바꾸는 정나라의 제족
양승국 04-05-11 1633
[일반] 제9회. 文姜婚魯(문강혼노) 射王中肩(사왕중견)

제9회 文姜婚魯 射王中肩 (문강혼노 사왕중견) 문강은 노환공(魯桓公)에게 시집가고 정나라 장수 축담은 활을 쏘아 주천자의 어깨를 맞추었다.
양승국 04-05-11 1567
[일반] 제8회. 貪色弑逆(탐색시군) 攀高辭婚(반고사혼)

제8회 貪色弑君 利誘破戎(탈처시군 이유파융) 미색을 탐하여 그 군주를 시해하는 송나라의 태재 화독과 이(利)로써 유인하여 융병을 무찌른 정세
양승국 04-05-11 1753
[일반] 제7회. 暗箭傷人(암전상인), 獻諂弑君(헌첨시군)

제7회 暗箭傷人 獻諂弑君 (암전상인 헌첨시군) 수레를 다투던 영고숙을 쏘아 죽인 공손알과 아첨이 안 먹히자 오히려 노은공을 시해한 공자휘
양승국 04-05-11 1651
[일반] 제6회. 大義滅親(대의멸친), 假命伐宋(가명벌송)

제6회 大義滅親 假命伐宋(대의멸친 가명벌송) 아들을 죽여 대의멸친하는 위나라의 대부 석작과 천자의 칙령을 사칭하여 송나라를 정벌하는 정장공
양승국 04-05-11 1802
[일반] 제5회. 周鄭交質(주정교질), 助逆興兵(조역흥병)

제5회 周鄭交質 助逆興兵(주정교질 조역흥병)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하게 되는 천자와 역도를 도와 군사를 일으키는 노와 송 두 나라 1. 정위교
양승국 04-05-11 1815
[일반] 제4회. 郊天應夢(교천응몽) 掘地見母(굴지현모)

제4회 應夢郊天 掘地見母(응몽교천 굴지현모) 꿈속의 계시로 교천제를 지내 천자에의 꿈을 잉태시키는 진문공과 땅굴 속의 지하에서 모친과 상봉
양승국 04-05-11 1708
[일반] 제3회. 身亡國破(신망국파) 東遷洛邑(동천락읍)

제3회 身亡國破 東遷洛邑(신망국파 동천낙읍) 몸은 죽고 나라를 망하게 한 주유왕과 나라를 동쪽의 락읍으로 옮긴 주평왕 1. 신망
양승국 04-05-10 1563
[일반] 제2회. 贖罪獻美人(속죄헌미인), 烽火戱諸侯(봉화희제후)

제2회 贖罪獻美 烽火戲諸侯(속죄헌미 봉화희제후) 유왕에게 미녀를 바쳐 속죄한 포성의 성주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회롱한 주유왕 성
양승국 04-05-10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