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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2:144698 
제46회. 被激察機(피격찰기), 渡河焚舟(도하분주)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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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46회 被激察機 渡河焚舟(피격찰기 도하분주)

고모를 격분시켜 부왕의 뜻을 살핀 초나라의 태자 상신과

하수를 건넌 후 배를 불태워 전의를 불태운 섬진군

1. 진적환시(晉翟換尸)

- 시신을 서로 교환하는 당진(唐晉)과 적(翟) -

백부호를 따라나섰던 기병 중에 도망쳐 살아 돌아온 자가 싸움 중에 당진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적주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본진에 남아있던 백돈에게 고했다. 백돈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형님에게 당진은 하늘이 돕고 있기 때문에 쳐들어가면 안 된다고 간했으나 기어코 나의 말을 듣지 않으시더니 오늘 마침내 화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되었구나!」

백돈이 선진(先軫)의 시신에서 목을 베어내려고 하다가 백부호의 시신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즉시 사람을 당진의 진영으로 보내어 죽은 두 사람의 시신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극결(郤缺)이 백부호의 수급을 들고 와서 여러 장수들과 같이 중군막사에 들러 선진에게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선진 원수는 막사 안에 없었다. 막사를 지키던 군사가 여러 장수들에게 고했다.

「원수께서는 병거 한 대만을 끌고 영문 밖으로 나가시면서 저희들에게 영채의 문을 굳게 지키라고만 분부하셨을 뿐 어디로 가시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진의 아들 선차거(先且居)는 마음속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장막 안을 살펴보다가 탁자 위에 놓인 표문(表文)을 발견했다. 차거가 표문을 들고 읽었다.

「신 중군원수 선진이 감히 주공께 글을 올립니다. 신은 주군에게 무례를 저질렀음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신에게 죄를 물어 죽이지 않으시고 다시 불러 중용하여 다행히 싸움에서 이기게 되어 제가 다시 상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이 돌아가 상을 사양하고 받지 않는다면 공을 세웠음에도 상이 없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만약 개선하여 제가 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주군에게 무례를 저지른 신하에게 전공을 기려 상을 내리는 일이 됩니다. 공이 있는데 상을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여러 장군들에게 무슨 명분으로 공을 세우라고 권할 수 있겠으며, 만일 그 주군에게 무례한 짓을 저지른 자의 공을 논하여 상을 준다면 어찌 죄를 지은 자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그 결과 공과 죄가 문란하게 되면 결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됩니다. 신이 홀로 병거를 몰아 적군(翟軍)의 진영으로 돌진하여 하여 생을 끝내려고 하는 이유는 적인(翟人)들의 손을 빌려 주군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려고 함입니다. 신의 아들 차거(且居)는 대장으로 갖추어야 할 지략이 있으니 신의 직을 대신 시킬 수 있는 인재입니다. 신 선진은 죽음에 임하여 외람되이 이 표문을 올립니다.」

선차거가 표문을 다 읽더니 말했다.

「제 부친께서 홀로 병거를 몰고 적진으로 달려가신 이유는 스스로 죽기 위해서요!」

그는 말을 마치자 땅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한참 통곡하면서 당장 병거를 몰고 달려가 적군 진영으로 돌입하여 그 부친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 차거를 영채 안에 모여 있던 극결, 란돈, 호국거, 호석고 등의 장수들이 모두 달려들어 진정시켰다. 선차거의 마음을 진정시킨 장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상의했다.

「먼저 사람을 적진으로 보내어 원수의 생사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군사들을 진격시키도록 합시다.」

그때 갑자기 전초병이 회의 중인 영채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적주의 동생 백돈(白暾)이 전할 말이 있다고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적국의 사자를 불러서 전할 말이 무엇인지 묻자 적주와 선진 두 사람의 시신을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사자가 전하는 말을 들은 선차거는 자기 부친은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땅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진정된 선차거가 적국의 사신에게 말했다.

「내일 진영 앞에서 각기 시신을 가지고 나와 교환하기로 하자.」 적국의 사자가 돌아간 후에 선차거가 말했다.

「융적은 속임수가 많으니 내일 시신을 교환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가야할 것입니다.」

여러 장수들은 서로 상의하여 극결과 란돈은 옛날처럼 좌우 양쪽으로 포진하여 그 날개 부분을 맡고 있다가 만일에 양군이 교전하게 된다면 즉시 달려와 양쪽에서 협공하기로 하고 호국거와 호석고는 중군을 지키기로 했다.

다음날 양쪽의 군사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대채를 나가 출동하여 진을 굳게 치고 서로 대치했다. 선차거가 소복을 입고 병거에 올라 혼자서 앞으로 나가 적진 가까이 다가가 부친의 시신을 받으려고 했다. 선진의 영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던 백돈은 선진의 시신에서 화살을 전부 뽑아내고 물로 깨끗이 목욕을 시킨 후에 향수를 뿌리고 자기의 비단 전포를 벗어 입혀서 수레에 실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된 선진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진영 앞으로 나가 선차거에게 넘기도록 했다. 당진군도 역시 백부호의 수급을 수레에 실어 적군 진영으로 보냈다. 그러나 적군이 보낸 선진의 시신은 향수를 뿌린 완전한 형태였는데 당진 쪽에서 보낸 백부호의 것은 단지 피가 엉겨 붙은 한 덩어리의 머리통뿐이었다. 백돈이 억울함에 참지 못하고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

「당진 놈들아! 사람을 어찌 이렇게 속일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온전한 시신을 보내주지 않는가?.」

선차거가 백돈의 말을 받아 대답했다.

「만약 너희들이 백부호의 시신을 전부 찾아가고 싶으면 대곡에 사람을 보내 시체더미 중에서 찾아라.」

백돈이 대노하여 손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기병들을 지휘하여 당진의 군사들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돈거(軘車)로 연결하여 세운 당진의 진채는 마치 돌로 둘러친 담장과 같아서 몇 번에 걸쳐 돌격했으나 아무도 그 진을 돌파 할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달래지 못한 백돈이 말을 타고 당진군 진채 앞을 좌우로 뛰어 다니며 울부짖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당진의 군중에서 북소리가 울리며 군사들이 무리를 짓더니 진채의 문을 열고 앞으로 돌격해 나왔다. 군사들 맨 앞에는 한사람의 대장이 극을 옆으로 꼬나 쥐고 달려 나오는데 보니 호석고였다. 호석고는 백돈을 향해 달려들며 싸움을 걸었다. 두 사람이 어우러져 몇 합도 미처 겨루기 전에 그들의 왼쪽에서는 극결이 오른 쪽에서는 란돈이 군사를 이끌고 좌우 양쪽에서 나타나 백돈의 군사들을 포위해 버렸다. 당진의 군사들의 수가 많아 당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한 백돈은 황급히 말머리를 자기 진영 쪽으로 돌려 달아나려 했다. 당진군은 달아나는 백돈의 뒤를 맹렬하게 추격해 왔다. 셀 수없이 많은 적병(翟兵)들이 당진의 군사들에게 잡혀 목숨을 잃었다. 호석고가 도망치는 백돈을 알아보고 그 뒤를 바싹 붙어 추격했다. 백돈이 본영으로 들어가다가 당진의 군사들을 영채 안으로 끌어들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말의 방향을 돌려 산비탈 쪽으로 달아났다. 호석고가 놓치지 않고 백돈이 타고 있던 말의 뒤쪽에 따라 붙었다. 백돈이 머리를 뒤로 돌려 호석고를 바라보고 말했다.

「장군은 내가 예전에 뵌 적이 있는 듯 하오! 혹시 가계(賈季)가 아닙니까?」

「그렇소!」

「장군은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장군의 부자가 모두 우리 적국에서12년을 지내셨는데 우리가 모시기를 그렇게 박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에게 온정을 조금 베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후일에 우리가 어찌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백부호의 동생 백돈입니다.」

호석고는 백돈에게서 옛날 적국에 살았던 때의 일을 듣고 차마 매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말했다.

「옛정을 생각해서 그대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을 한 가지 가르쳐 주겠소. 그대는 즉시 군사들을 거두어 회군하도록 하시오! 이곳에 머물러 있어 보았자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을 것이오!」

백돈을 추격하기를 그만둔 호석고는 말머리를 돌려 당진군의 대채로 회군했다. 당진의 군사들이 한판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뒤라 백돈을 붙잡지 못한 호석고에 대해서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날 밤 백돈은 당진의 군사들이 미쳐 눈치를 채기도 전에 군사를 이끌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백부호는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백돈이 백부호의 상을 주제하고 적국의 군주 자리를 이었다.

적병을 물리친 당진군이 개선가를 부르며 회군했다. 여러 장수들이 양공을 알현하고 선진이 쓴 표문을 바쳤다. 선진의 죽음을 애통하게 생각한 양공은 친히 그 시신을 염했다. 그러자 선진의 시신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분노하는 기색을 얼굴에 띄웠다. 양공이 그 시신을 어루만지며 달랬다.

「장군이 나라의 일을 위해 죽었으면서 아직 그 혼이 못 떠나고 있음은 장군이 표문으로 올린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오. 내가 장군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장군이 한 말을 잊겠소!」

양공은 즉시 선진의 관 앞으로 선차거를 불러 대령하게 한 후에 중군원수로 임명한다는 명을 내려 그 부친의 직을 대신하게 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선진의 시신은 부릅뜬 눈을 감았다. 후에 사람들이 기성(箕城)①에다 선진을 위한 사당을 짓고 때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 양공은 극결이 백부호를 죽인 공을 칭찬하면서 옛날의 극씨 문중의 식읍이었던 기(冀)②땅을 다시 돌려주면서 말했다.

「그대의 공은 그대 부친의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고도 남는다 하겠소! 이에 그대 선조들의 봉지를 다시 돌려주기로 했소!」

양공이 다시 서신을 향해 말했다.

「극결을 추천하여 그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였으니 미자(微子)가 아니었으면 과인이 어찌 극결을 알고 임용할 수 있었겠소?」

양공은 서신에게도 선모(先茅)③의 땅을 상으로 하사했다. 여러 장수들은 전공에 대해 빠짐없이 상을 내리는 양공의 모습을 보고 모두 마음속으로 복종하며 기뻐했다.

2. 假意決戰 誑敵退軍(가의결전 광적퇴군)

-거짓으로 결전을 청하여 초군을 기망하고 무사히 철군한 당진의 장수 양처보-

이때 진문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허(許)와 채(蔡) 두 나라는 당진에 등을 돌리고 다시 초나라와 수호를 맺었다. 이에 양공이 양처보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가서 허나라를 토벌한 후에 다시 채나라를 치도록 했다. 허․․채(許蔡)두 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초성왕이 투발을 대장으로 성대심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가서 허․채두 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초나라의 구원군의 행렬이 지수(泜水)④에 이르자 강 건너에 진을 치고 있는 당진군을 보았다. 초군도 지수를 사이에 두고 당진군의 맞은편에 진을 쳤다. 초군은 지수의 남쪽에 당진군은 지수의 북쪽에 진을 치게 되었다. 두 나라 군사들은 강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지수만을 가운데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 진영에서 치는 딱따기 소리마저 서로 들을 수 있었다. 두 나라 군사들은 지수를 가운데에 두고 대치한 상태로 두 달 여 가량을 버티는 사이에 시간은 어느덧 흘러 연말이 되었다. 양처보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 군량 때문에 군사를 물리쳐 회군하려고 했으나 초군이 그 틈을 타서 추격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진이 초나라를 피하여 후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세상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감히 군사를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양처보가 궁리 끝에 초나라 진영에 사자를 보내 초군 대장 투발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옛말에 ‘쳐들어 온 자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여 또한 두려워하는 자는 쳐들어오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장군이 만약에 우리와 한번 일전을 겨루고 싶다면 내가 마땅히 우리의 군사를 일사(一舍)의 거리를 뒤로 물리쳐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지수(泜水)를 건널 수 있도록 한 후에 장군과 목숨을 걸고 싸워 보리라! 만약 장군의 군사들이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일사의 거리를 뒤로 물리쳐 주면 우리가 대신 지수를 건너 장군과 한번 결전을 벌려 보겠소. 만약 앞으로 나가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고 한 곳에만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면 군사들을 피곤하게 할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도 헛되게 낭비될 뿐입니다. 이 양처보가 병거에 타고 장군의 회답을 기다리니 속히 결단을 내려 알려주기 바랍니다.」

양처보의 도발에 분노한 투발이 성대심을 보고 말했다.

「당진놈들이 내가 겁을 먹고 강을 건너지 못할 것으로 알고 이렇듯 나를 기만하는구나!」

그 즉시 강을 건너 당진군과 일전을 벌이려는 투발을 성대심이 급히 진정시키고 말했다.

「당진의 장수들은 신의가 없는 놈들입니다. 일사의 거리를 뒤로 물러선다는 말은 우리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는 계략입니다. 만약 우리가 건너기 시작하여 강의 반쯤 갔을 때 그들이 공격을 해 온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진격할 수 없고 또한 뒤로 후퇴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잠시 일사의 거리를 뒤로 후퇴하여 당진의 군사들이 강을 건너게 양보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주가 되고 당진은 객이 되어 오히려 주도권은 우리가 잡게 되지 않겠습니까?」

투발이 즉시 깨닫고 말했다.

「손백(孫伯)의 말에 옳소!」

투발은 즉시 일사의 거리를 후퇴하여 진을 치도록 명령을 내려 당진의 군사들이 강을 건너오면 일전을 벌이겠다는 뜻을 양처보가 보낸 사자에게 말해 전하도록 했다. 사자가 돌아와 투발이 전하는 말을 고했다. 양처보는 투발이 전한 말을 바꾸어 여러 군사들 앞에서 말했다.

「초나라 대장 투발이 우리를 두려워하여 감히 강을 건너지 못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버렸다.」

양처보의 말에 당진군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기회를 노치지 않은 처보가 계속 말했다.

「초나라의 군사들이 물러 가 버렸는데 우리가 무었 때문에 강을 건너겠는가? 이미 연말이 되어 추위가 다가오니 일단 귀국하여 휴식을 취한 후에 때를 기다려 다시 출병하도록 하겠다.」

즉시 영채를 뽑아 군사를 거둔 양처보는 당진으로 회군해버리고 말았다. 한편 초군 대장 투발은 군사를 뒤로 물리치고 당진군의 도강을 이틀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지만 적군의 움직임이 없어 정탐병을 보내 살펴보도록 했으나 그때는 이미 당진군은 이미 철수하여 자기나라로 돌아가버린 후라는 사실을 알았다. 투발 역시 군중에 영을 내려 군사를 끌고 초나라로 돌아갔다.

3. 피격찰기(被激察機)

- 고모를 격분시켜 기밀을 알아낸 초나라 태자 상신(商臣) -

초나라 성왕의 장자는 이름이 상신(商臣)이라 했다. 일찍이 성왕이 상신을 태자로 세우려고 투발에게 그 의견을 물었다. 투발이 성왕에게 말했다.

「초나라의 왕위 계승 방법은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유리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옛날부터 당연한 일로 여겨져 그대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이 상신의 관상을 살펴 본 바 그 눈은 벌과 같이 동그랗고 목소리는 시랑와 같은 쇳소리를 내고 있어 그 성정이 매우 잔인합니다. 만약에 대왕께서 오늘 상신을 사랑하여 태자로 세우시고 후일에 그를 싫어하시어 다시 태자의 자리에서 쫓아내시려고 하신다면 그것은 필시 변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초성왕이 투발의 말을 듣지 않고 상신을 태자로 세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 반숭(潘崇)으로 하여금 태부(太傅)로 삼았다. 투발이 자기의 태자 책봉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신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원한을 품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투발이 허나라와 채나라를 구하러 군사를 끌고 출전했다가 싸움을 피하여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오자 상신이 성왕에게 투발을 참소했다.

「자상(子上)이 양처보의 뇌물을 받고 당진군에게 퇴군의 명분을 주기 위해 군사를 물리쳤다 합니다.」

상신의 참소를 믿은 성왕은 투발의 알현을 허락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 단검을 전하게 했다. 스스로 무고한 죄를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한 투발은 그 단검으로 목을 찔러 죽었다. 성대심이 스스로 성왕 앞으로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군사를 물리친 연유를 자세히 고하면서 말했다.

「절대 당진의 대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퇴군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회군한 일이 죄가 된다면 그 죄는 마땅히 신에게 있습니다.」

성왕이 성대심의 말을 듣고 말했다.

「경에게 허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나 역시 투발을 죽인 일을 후회하고 있노라!」

이때부터 성왕은 태자 상신의 마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후에 성왕은 나이가 아직 어린 아들 직(職)을 사랑하게 되어 상신을 태자의 자리에서 폐하고 직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상신이 반란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차마 폐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던 성왕은 단지 상신이 잘못을 저지를 때를 기다려 죄를 물어 죽이려고 했다. 궁궐에 살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전하여 궁궐밖에 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상신은 차마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태부 반숭에게 의견을 물었다. 반숭이 상신에게 말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가히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계책입니까?」

「지금 부왕에게는 강(江)나라에 시집간 고모님이 지금 친정인 이곳에 와 머물고 있습니다. 부왕이 사랑하는 동생 강미(江羋)는 궁중에 머무른 지 이미 오래되어 그 소문의 진위를 알고 있음이 틀림 없습니다. 강미는 그 성격이 참을성이 없고 조급합니다. 태자께서 연회를 베풀어 성심껏 대한 후에 다시 태만히 대하여 그녀의 마음을 격하게 만드십시오. 그녀의 화를 돋운다면 필시 궁중에 있던 일을 입 밖으로 누설할 것입니다.」

상신이 반숭의 계책을 따라 즉시 동궁에 연회를 마련하고 강미를 모셔오게 했다. 동궁에 당도한 강미에게 상신이 절을 하며 맞이했다. 강미를 맞이하는 상신의 태도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연회석의 상석에 앉자 상신이 강미에게 술잔을 연거푸 세 번 권하며 대하기를 극진히 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와중에 상신이 태도를 바꿔 점점 거만을 떨기 시작했다. 상신은 심지어 부엌에서 일하던 요리사를 불러서 강미의 음식 시중을 들게 했다. 상신 자신은 몸도 일으키지 않고 다시 시중드는 동자에게 시켜 술을 따라 바치게 하면서 강미는 쳐다보지 않고 그 동자들과 계속해서 속삭이기만 했다. 강미가 두 번이나 상신에게 말을 걸었으나 상신은 모두 못들은 척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미가 드디어 크게 화를 내고 음식상을 발로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이 버릇없는 망나니 같은 놈아! 네 행동거지가 이러하니 대왕께서 너를 죽이고 직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상신이 일부로 사죄를 하는 척 했으나 강미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수레를 타고 가는데 상신을 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숭의 집으로 곧바로 달겨간 상신은 강미가 전한 말을 고하고는 머리를 숙이고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계책을 알려 달라고 청했다. 반숭이 말했다.

「태자께서는 신하의 자리에 서서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린 동생 직을 왕으로 모실 수 있습니까?」

「나이 많은 내가 어찌 어린아이를 왕으로 모실 수 있단 말이오?」

「만약 태자께서 머리를 숙여 어린 동생을 모실 수 없다면 다른 나라로 도망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습니까?」

「도망갈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치욕스러운 일입니다.」

「직을 왕으로 섬기든가 그것이 싫다면 외국으로 도망가든가 하는 방법 외는 다른 수는 없습니다.」

상신이 계속해서 다른 방법을 일러 달라고 고집하자 반숭이 마지못해 말했다.

「한 가지 계책이 있기는 한데 그 행동이 매우 재빨라야 하고 또한 태자께서 그 일을 인내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반숭이 상신을 가까이 오게 하여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이고 나더니 말했다.

「차제에 대사를 행하신다면 곧 전화위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제가 능히 행할 수 있습니다.」

4. 웅장난숙(熊掌難熟)

- 곰발바닥요리는 쉽게 익지 않는다. -

상신은 그날 밤으로 즉시 동궁 소속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궁중에 변이 일어났다는 핑계를 대고 왕궁을 포위했다. 그 사이에 반숭이 검을 들고 장사 몇 사람을 데리고 궁궐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바로 성왕의 침전에 당도하여 그 면전에 섰다. 성왕을 모시고 있던 시종들이 놀라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성왕이 칼을 들고 서 있는 반숭을 보고 물었다.

「경은 무슨 일로 왔는가?」

반숭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왕께서는 왕위에 계신지 이제47년이 되었습니다. 공을 이루셨으니 이제 물러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새로운 왕이 서기를 매우 갈망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왕위를 태자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성왕은 정신이 황당하여 말을 더듬으며 반숭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이 자리에서 즉시 태자에게 양위를 한다 해도, 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한 사람의 군주가 죽어야 새로운 군주가 설 수 있습니다. 나라에 어찌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살려고만 하십니까?」

「내가 조금 전에 주방의 요리사에게 명하여 곰발바닥을 요리하도록 시켰다. 그 곰발바닥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먹을 수가 있다면 내가 비록 죽는다 해도 한이 없겠노라!」

반숭이 목소리를 높이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곰발바닥 요리는 몇날 며칠을 끓어야 합니다. 이것은 왕께서 시간을 지연시켜 외부로부터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이 아니십니까? 청컨대,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어 기다리고 있는 신으로 하여금 손을 쓰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반숭이 말을 마치자 자기의 허리띠를 풀어 왕 앞으로 던졌다. 성왕이 천장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지혜로운 투발이여! 지혜로운 투발이여! 내가 그대의 충성스러운 말을 듣지 않아 스스로 화를 불러 들였구나! 지하에서 그대를 무슨 면목으로 만날 수 있겠는가?」

성왕은 말을 마치자 반숭이 던져 준 허리띠를 스스로 그의 목에 걸었다. 반숭이 좌우에 있던 장사들에게 명하여 허리띠를 잡아당기게 했다. 잠깐 사이에 성왕은 숨을 거두었다. 성왕이 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강미가 말했다.

「왕은 나 때문에 죽었구나!」

그녀 역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주양왕26년 기원전626년 겨울10월 정미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성왕이 동생의 신분으로 그 형을 시해하더니 다시 그 아들이 그 부친을 시해하니 하늘의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언제나 분명하다고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했다.

초성왕이 옛날에 형인 웅간을 죽이고 왕이 되더니

오늘은 상신이 아비를 죽여 큰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하늘이 반숭을 보내 반역의 스승으로 삼게 했는데

어리석은 성왕은 죽음에 임해서도 곰발바닥 타령만 했도다!

楚君昔日弑熊艱(초군석일시웅간)

今日商臣報叔寃(금일상신보숙원)

天遣潘崇爲逆傅(천견반숭위역부)

痴心猶想食熊蹯(치심유상식웅번)

상신이 그 부친을 죽이고는 지체하지 않고 부왕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다고 여러 제후들에게 부고를 전하고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초목왕(楚穆王)이다. 목왕은 벼슬을 태사(太師)로 높인 반숭에게 왕성 안의 군사들을 관장하도록 했으며 다시 자기가 태자 시절 쓰던 동궁을 내주어 그곳에 살도록 했다. 영윤 투반(鬪班) 등은 성왕이 태자에게 피살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감히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성왕이 변을 당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상공(商公) 투의신(鬪宜申)은 조문을 핑계대고 영도(郢都)에 들어와서는 대부 중귀(仲歸)와 모의하여 목왕을 살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의는 사전에 누설되어 목왕이 보낸 사마 투월초(鬪越椒)에 의해 투의신과 중귀는 살해되었다.

옛날 무당 범율(范矞)이 친 점괘에 ‘초성왕과 자옥(子玉) 및 자서(子西) 세 사람은 모두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으리라!’라고 했는데 지금에 이르니 그 점이 과연 맞게 되었다.

투월초가 영윤(令尹)의 자리를 탐하여 목왕에게 말했다.

「자양(子揚) 투반이 항상 사람들에게 ‘우리 부자가 대를 이어 초나라의 정사를 맡을 수 있었음은 모두가 선왕인 성왕의 크나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어찌 성왕의 뜻을 거스를 수가 있겠는가?’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성왕의 뜻이란 직을 도와 세자로 세워 초나라 왕위를 잇게 하는 일입니다. 자서(子西)가 자기의 봉지인 상(商) 땅에서 왕성으로 들어온 것은 실은 자양(子揚)이 불렀기 때문입니다. 금일 자서가 잡혀 죽게 되자 자양이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른 음모라도 꾸미고 있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대비하시지 않으시면 안 될 것입니다.」

목왕이 투월초의 말을 듣고 투반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투반을 불러 공자직을 죽이도록 명했다. 투반은 자기는 결코 직을 죽일 수 없다고 사양했다. 목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공자직을 받들어 세자로 세우려고 했던 선왕의 뜻을 이루고자 함이더냐?」

목왕이 직접 쇠뭉치를 들어 투반의 머리를 내리쳐 죽였다. 투반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직은 성문을 빠져나가 당진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투월초가 뒤를 쫓아가 교외에서 사로잡아 살해했다. 목왕은 죽은 투반을 대신해서 성대심을 영윤으로 삼았다. 그러나 성대심은 영윤에 취임한지 며칠 만에 죽고 말았다. 이에 목왕은 투월초를 영윤에, 위가(蔿賈)를 사마(司馬)로 삼았다. 후에 목왕은 자문이 초나라를 다스려 크게 부흥시킨 공을 생각하여 투극황(鬪克黃)을 잠윤(箴尹)⑤에 임명했다. 투극황의 자는 자의(子儀)로써 즉 투반의 아들이고 자문의 손자였다.

당진의 양공(襄公)은 초목왕이 부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곁에 있던 조쇠의 아들 조돈(趙盾)에게 물었다.

「하늘이 마침내 무도한 초나라를 벌하였는가?」

조돈이 말했다.

「성왕이 비록 횡포를 부리기는 했으나 그래도 예의로써 백성들을 교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신은 그 부친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였으니 항차 다른 사람의 목숨이야 안중에 두겠습니까? 머지않아 그 화가 중원 제후들에게 닥칠 것입니다. 신은 그것이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과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목왕이 사방으로 군사를 출동시켜 제일 먼저 강(江)⑥을 후에 육(六)⑦을, 그리고 료(蓼)⑧를 차례로 멸하고 다시 진(陳)과 정나라를 침략했다. 중원의 여러 나라는 초나라 때문에 시끄러워져 과연 조돈의 말대로 되었다.

5. 狼瞫之勇 死得其所(랑심지용 사득기소)

- 죽을 곳을 선택하여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당진의 용사 랑심-

한편 주양왕27년 기원전626년 봄 이월 섬진군의 대장 맹명시(孟明視)가 목공에게 군사를 청해 당진군에게 당한 효산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했다. 맹명시의 뜻을 장하게 여긴 진백은 당진의 정벌을 허락했다. 맹명시가 서걸술, 백을병을 부장으로 삼아 병거400승을 이끌고 출동하여 당진을 공격했다. 그때 섬진군의 삼수를 방면한 이후로 그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내어 쳐들어 오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던 진양공은 매일 사람을 시켜 섬진의 소식을 정탐하게 하고 있었다. 마침내 섬진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한 양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섬진에서 드디어 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말을 받아 가려는 사람이 오는구나!」

양공은 즉시 선차거를 대장으로, 부장에는 조쇠를, 차우장군에는 호국거를 임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출동하여 섬진의 군사를 국경에서 막도록 명했다.

대군이 출동하려는 순간 랑심이 개인적으로 모은 사병을 거느리고 와서 종군시켜 달라고 자청해 왔다. 선차거가 허락했다. 그때 맹명시 등의 섬진의 군사들은 아직 당진의 경계에 당도하기 전이었다. 선차거가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섬진의 군사들을 이곳에서 기다려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섬진의 경계로 쳐들어가 싸우는 편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오.」

선차거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하수를 건넜다. 마침내 진진(晉秦) 두 나라의 대군은 팽아(彭衙)⑨라는 곳에서 조우했다. 양쪽의 군사들이 대치한 상태에서 각각 진영을 세웠다. 랑심이 선차거에게 청했다.

「옛날에 작고하신 선진 원수께서 이 심(瞫)이 용기가 없다 하시면서 저를 쓰지 않으시고 주군께서 내려 주신 차우장군의 자리마저 파직했습니다. 금일 이 심이 선봉을 자청하는 목적은 저의 용기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이지 결코 공을 세워 녹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옛날에 제가 받은 치욕을 풀고자 함이니 간절한 저의 청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선차거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랑심은 곧바로 그 친구인 선백(鮮伯) 등의 무리100여 인과 함께 다짜고짜로 섬진의 진영으로 돌격했다. 랑심의 일행이 초목을 쓰러뜨리는 폭풍우처럼 돌격하여 섬진군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살상했다. 선백은 와중에 불행히도 백을병의 창에 살해되었다. 병거에 올라 적진의 정세를 살펴보던 선차거는 섬진의 진영이 이미 무너져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고 본진의 대군을 휘몰아 돌격하여 적진을 덮쳤다. 명맹시 등이 돌격해 오는 당진의 군사들을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군사를 수습한 후에 도망쳤다. 선차거가 랑심을 구출해서 본영으로 데리고 와서 살펴보니 온몸에는 상처투성이였다. 랑심이 피를 한 말도 넘게 토하더니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당진군은 개선가를 부르며 강도(絳都)로 귀환했다. 선차거가 양공에게 고했다.

「이번 싸움에서의 승리는 랑심의 분전 때문이었지 소장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양공이 명하여 랑심을 상대부에게 행하는 예를 갖추어 강도의 서쪽 성곽부근에 장사지내게 하고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그의 장례 행렬을 전송하도록 했다. 이것은 양공이 인재를 알아보고 그 장점을 격려하여 공을 이루게 하는 좋은 성품이라 할 수 있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랑심의 용기를 칭찬했다.

장하다, 차우장군 랑심이여!

죄수의 목을 닭모가지 자르듯 했도다!

오히려 쫓겨났으나 분노를 삭히고

적진으로 몸을 날려 위엄을 세웠다.

壯哉狼車右(장재랑차우)

斬囚如割鷄(참수여할계)

被黜不妄怒(피출불망노)

輕身犯敵威(경신범적위)

한번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모습을 보여

섬진군은 이로 인하여 물러갔도다!

만일 멀고 먼 구천이 있다고 한다면

선진은 마땅히 눈썹을 내려깔고 부끄러워하리라!

一死表生平(일사표생평)

秦師因以摧(진사인이최)

重泉若有知(중천약유지)

先軫應低眉(선진응저미)

6. 濟河焚舟 死而後生(제하분주 사이후생)

- 하수를 건넌 선박을 불살라 필사의 전의를 불태운 섬진군-

한편 싸움에서 다시 패하고 섬진으로 돌아온 맹명시는 패전의 책임을 추공당하여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고 각오하고 있었으나 목공은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하면서 세 장수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거나 하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단지 옛날처럼 사람을 시켜 교외에 나가 세 장수들을 영접하도록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여 군사에 관한 일을 계속해서 맡게 했다. 맹명시 등 삼수는 당진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일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나머지 섬진의 정치를 크게 쇄신하고 모든 가재를 털어 싸움터에서 전사한 군사들의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들은 오로지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으로 온힘을 다하여 매일 군사들을 조련했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여력이 생겼다고 생각한 삼수는 다음 해를 기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당진을 정벌하려고 했다.

한편 진양공은 예상되는 섬진의 공격을 기다리기보다는 선공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겨울, 양공은 송(宋), 진(陳), 정(鄭) 등 세 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출병시키라고 요청했다. 이에 송나라는 대부 공자성(公子成)을, 진나라는 대부 원선(轅選)을, 정나라는 대부 공자귀생(公子歸生)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보내왔다. 다시 양공이 선차거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당진군을 이끌고 세 나라의 군사들과 힘을 합쳐 섬진을 정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당진군이 주도한 제후연합군은 하수를 건너 쳐들어가 섬진의 왕(汪)⑩과 팽아(彭衙) 두 고을 빼앗았다. 선차거는 두 고을을 지키는 군사를 남긴 후에 본국으로 회군했다. 양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 두 고을은 맹명이 지난 번 나에게 말을 받기 위해 쳐들어오면서 가지고 온 선물이렸다!」

옛날에 곽언(郭偃)이 점을 쳐서 점괘를 얻은 바가 있었다. ‘한번 치니 세 번 상한다’라는 점괘였다. 이것은 섬진이 당진과 싸워 세 번 패배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과연 그 점이 맞았다고 할 수 있었다. 섬진의 신료들과 백성들은 자국의 영토에 침입하여 두 고을을 뺏어가는 당진의 군사들을 바라만 보면서 마지못한 듯이 군사를 내어 당진의 침략을 막으려고만 하는 삼수를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공만은 삼수의 능력을 깊이 믿고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맹명 등의 삼수는 반드시 그리고 능히 당진에게 우리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단지 그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삼수는 일심협력하여 군사들을 보충하고 병거를 수리하여 훈련에 임했다. 이윽고 삼수는 섬진의 병사들이 이미 당진과 일전을 겨루어 볼만한 정예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시 목공에게 출전을 허락해 달라고 말하면서 목공도 친정에 임해 그들의 싸움을 독려해 줄 것을 청했다.

「만약에 이번에도 옛날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맹세컨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과인은 당진과의 세 번에 걸친 싸움에서 모두 패했다. 이번에도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과인인들 무슨 면목으로 이 나라에 다시 돌아 올 수 있겠는가?」

목공은 세 장수를 시켜 병거500승을 선발하고 길일을 택해 당진으로 진격하라고 명했다. 싸움터에 나가는 모든 군사들의 집에 양식과 포목을 후하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군사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병사들을 이끌고 포진관(蒲津關)⑪ 쪽으로 나가 하수를 건너자 맹명시가 군령을 발해 강을 건너면서 타고 온 배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했다. 맹명시의 군령을 이해하지 못한 목공이 물었다.

「배를 불태우라는 원수의 군령은 무슨 뜻에서인가?」

「무릇 싸움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병사들의 사기뿐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여러 번 싸움에 져서 병사들의 사기가 많이 꺾여 있는 상태입니다. 다행히 싸움에서 이기면 하수는 다른 방도를 강구하더라고 능히 건널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배를 불태워 버린 이유는, 군사들에게 우리는 필사의 각오로써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며 후퇴는 없다는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오!」

하수를 건넌 맹명시는 스스로 선봉이 되어 당진국의 영내를 계속 진격하여 왕관성(王官城)을 포위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왕관성이 함락되었다는 패전의 소식이 강도에 날라 들어 사태가 위급함이 알려졌다. 모든 대소 신료들을 조당에 모이도록 한 양공이 섬진의 군사를 물리칠 계책을 세우게 했다. 조쇠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섬진이 온 국력을 기울려 쳐들어와 군사들은 모두가 우리와의 싸움에서 죽으려는 각오입니다. 또한 섬진의 군주도 친정을 하고 있어 우리가 감히 대적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싸움을 피해 잠시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가 적당한 기회를 보아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중군원수 선차거도 역시 조쇠의 의견에 동조했다.

「힘이 약한 미물일지라도 궁지에 몰리게 되면 사나워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큰나라인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백이 우리와의 싸움에서 진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있으며 또한 삼수는 모두 용기를 갖춘 장수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그만두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은 하고 있습니다. 일단 그들과 군사를 동원하여 부딪치게 되면 언제 싸움이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자여의 말씀이 옳습니다.」

양공이 유지를 전하여 사방의 성읍들은 굳게 지키기만 하고 절대 섬진의 군사들과의 전투에 응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7. 崤谷封尸(효곡봉시)

- 효산의 계곡으로 나아가 전사한 섬진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위령제를 지낸 진목공-

한편 섬진군 진영의 요여는 싸움에 응하지 않고 굳게 지키기만 하고 있는 당진군의 태도를 보고 목공에게 말했다.

「당진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효산으로 납시어 전사한 군사들의 시신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부디 그들의 장사를 지내 옛날에 당한 치욕스러운 패배를 씻으십시오.」

목공이 요여의 말을 쫓아 즉시 군사를 이끌고 모진(茅津)⑫에서 다시 하수를 건너 동효산(東崤山)에 이르러 진채를 세웠다. 섬진군이 자국 영토 내에서 아무 것도 꺼리지 않는다는 듯이 이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겁을 먹은 당진군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진목공은 섬진군을 효산(崤山)에 오르도록 명하여 타마애(墮馬崖), 절명암(絶命巖), 낙혼간(落魂澗)등에서 섬진군의 시신과 해골들을 거두게 한 후에 풀을 베어 관으로 삼아 산곡의 깊고 외딴 곳에 모아 매장하도록 했다. 다시 제단을 크게 준비하고 말을 잡아 희생으로 바쳐 효산에서 죽은 군사들의 혼령을 위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소복으로 갈아입은 목공은 손수 술잔을 따라 제단에 바치고 소리 높여 곡을 했다. 맹명시 등 삼수도 뒤를 따라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오랫동안 일어설 줄 몰랐다. 섬진의 모든 군사들이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군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옛날 출정하는 병사를 위해 곡했던 이로에게 성을 내더니

오늘은 어이하여 스스로 곡을 하고 있는가?

시신을 거두어 호화롭게 장례를 치렀다고 뽐내지 말라!

효산은 원래 험하지만 시신은 원래 없던 곳이었다.

曾嗔二老哭吾師(증진이노곡오사)

今日如何自哭之(금일여하자곡지)

莫道封尸豪擧事(막도봉시호거사)

崤山雖險本無尸(효산수험본무시)

한편 왕(汪)과 팽아(彭衙) 두 고을의 백성들은 진백이 당진의 땅에 쳐들어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용기를 얻어 한 곳에 모이더니 당진의 수장을 쫓아버리고 다시 섬진에 복속했다. 이윽고 목공이 군사를 이끌고 개선하여 맹명을 아경(亞卿)에 제수하여 요여와 공손지 두 사람의 재상들과 함께 국정을 돌보게 했다. 서걸술과 백을병에게도 모두 봉작을 더하여 주고 상을 후하게 내렸다. 다시 포진관(蒲津關)의 이름을 대경관(大慶關)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여 이번에 출정한 모든 군사들의 공로를 기리도록 했다.

한편 서융주(西戎主) 적반(赤斑)은 처음에 섬진이 당진에게 여러 번의 싸움에서 지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서 섬진의 국세가 허약하다고 깔보아 융족에 속한 여러 부족들을 선동하여 섬진에 반기를 들려고 획책하고 있었다. 낌새를 눈치 채고 있던 목공이 당진을 정벌하고 개선하여 돌아온 여세를 몰아 군사를 서쪽으로 이동하여 적반을 토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요여는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을 행하기 전에 격문을 써서 보내 적반의 태도를 보아가며 군사를 일으켜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상주했다. 목공의 허락을 받은 요여는 적반이 그 동안 조공을 바치지 않은 해위를 꾸짖고 만약 당장 조공사를 보내지 않으면 군사를 끌고 가서 토벌하겠다는 격문을 써서 보냈다. 그때는 옛날과는 달리 적반은 맹명시가 당진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개선했다는 소식을 듣고 섬진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윽고 요여가 보낸 격문을 읽어 본 적반은 즉시 서쪽 융족의24여 개 나라 추장을 이끌고 조공을 올린 후에 복속하기 위해 옹성(雍城)으로 들어왔다. 적반은 목공을 서방의 방백(方伯)으로 받들기로 맹세했다.

후에 사관이 섬진의 목공에 관해서 논하기를 ‘천군의 병사는 얻기 쉬어도 한 사람의 장수는 구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실천했다고 했다. 목공이 맹명시의 능력을 믿고 여러 번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버리지 않고 임용해서 백업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이 일로 해서 섬진의 국위는 주나라 왕실에까지 전해져 주양왕이 윤무공(尹武公)에게 말했다.

「섬진과 당진은 서로 그 국세가 비슷한 나라들이다. 또한 그 두 나라가 다 같이 선대에 우리 왕실에 공을 세운바 있다. 옛날에 중이가 중원에서 회맹을 주재할 때 내가 왕명으로써 후백(侯伯)에 임명하였다. 오늘 임호(任好)가 다스리는 섬진의 국세가 당진에 뒤떨어지지 않으니 내가 역시 그를 당진과 같이 후백으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섬진이 스스로 서융의 백주가 되었지만 아직 당진의 군주처럼 우리 왕실을 받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섬진과 당진이 서로 사이가 나빠지고 또한 그 부친의 뒤를 이은 진후가 후백의 역할을 아무런 잘못 없이 잘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우리가 섬진을 다시 후백에 봉한다면 당진은 우리의 처사를 싫어 할 것입니다. 섬진의 군주를 후백으로 임명하기 것보다는 차라리 서융의 백주(伯主)가 되었음을 축하한다는 국서를 써서 사자 편에 보내십시오. 진백은 대왕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할 것이고 진후(晉侯) 또한 우리를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게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양왕이 윤무공의 말을 따랐다.

《제47회로 계속》

주석

①기성(箕城)/ 지금의 산서성 포현(蒲縣) 동남20키로

②기(冀)/ 지금의 산서성 직산(稷山) 북. 춘추 초기에 제후국이었으나 당진(唐晉)에 병합되었다

③선모(先茅)/ 정확한 위치는 미상이다.

④지수(泜水)/ 사기 회음후한신열전에 ‘斬陳餘泜水上’이라는 기사가 있다. 지금의 하북성 찬황현(贊皇縣)으로 한서지리지에는 저수(沮水)라고 했다. 그러나 본 회의 장면에서 나오는 지수는 하남성 서쪽의 복우산(伏牛山) 북록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여수(汝水)와 합류하는 하천이다. 춘추 때 초나라의 북쪽 경계이다.

⑤잠윤(箴尹)/ 춘추시 초나라에만 있던 관직 이름. 왕에게 간하는 업무를 관장하고 또한 외교와 군사활동에 참여했다.

⑥강(江)/ 섬진과 같은 영(嬴)씨 성의 제후국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식현(息縣) 서20키로의 회수(淮水) 강안에 위치했던 소제후국이다.

⑦육(六)/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동북의 육안시(六安市)에 있었던 언(偃) 성(姓)의 군소 제후국. 사기 하본기(夏本紀)에 하우(夏禹)가 수리 공사에 공을 세운 고도씨(皐陶氏)의 후예를 이곳과 영(英)에 봉했다고 전한다. 초목왕4년 기원전622년에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⑧료(蓼)/ 무(繆)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고시현(固始縣) 북의 당시 여수(汝水)와 회수(淮水)가 합류하는 곳에 있었던 중소제후국이다. 처음에는 희성(姬姓) 제후국이었으나 후에 고도(皐陶)의 후예들로 교체되었다. 초목왕4년 기원622년 육(六)과 함께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⑨팽아(彭衙)/ 지금의 섬서성 징성현(澄城縣) 북서20키로. 하수를 건너 락수(洛水) 강안의 섬진 령의 고을이다.

⑩왕(汪)/ 지금의 섬서성 징성현(澄城縣)에 있었던 춘추 때 섬진령의 고을이다.

⑪포진관(蒲津關)/ 포판관(蒲阪關)의 다른 지명이며 섬서성과 산서성을 건너는 포구(浦口)가 있었다. 포구 양쪽에 관문을 설치해서 사람들의 통행을 감시했다. 섬서성 쪽의 관문은 임진관(臨晉關), 산서성 쪽의 관문은 포판관(蒲阪關)이다.

⑫모진(茅津)/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峽市) 황하 대안(對岸)에 있었던 고을로 황하를 건너던 나루가 있었다.

【평 설】

섬진과 당진의 관계악화는 곧바로 당진국에 대한 섬진국의 매년 계속되는 군사행동으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이 일로 인해 당진국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부분의 병력을 섬진국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배치해야만 했다.

효산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진목공은 기원전625년 당진국 정벌전에 나섰다. 그러나 진양공은 당진국의 서부 변경의 방비를 강화하여 공격하는 섬진군을 변경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어망을 이미 완성해 놓고 있었다. 당진국은 정예하고 용맹한 군사들로 소부대를 편성하여 공격해 오는 섬진군을 타격한 다음, 섬진군 진영이 혼란에 빠지자 다시 대부대를 진격시켜 쇄도해 들어갔다. 섬진군은 싸움에서 대패하여 진양공(晉襄公)이 말한 바 있는 ‘하사품을 받기 위해 방문’을 한 섬진군에게 예의를 갖춰 대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당진군의 공격을 받아 타격을 입어 미처 그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 기회를 틈탄 진양공은 송(宋)과 정(鄭) 두 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다. 중원 연합군은 진나라의 왕(汪)과 팽아(彭衙) 두 고을을 점령하자 즉시 진격을 멈추고 회군해 버렸다. 비록 진양공이 농담조로 ‘하사품을 받기 위해 일으킨 전역(戰役)’에 대한 보복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섬진국에 대한 공격은 ‘손님이 찾아왔음에도 방문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였다. 섬진군이3차에 걸쳐 계속 공격했지만, 당진국은 그때마다 모두 대비를 철저히 하고, 주도면밀한 조직과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로 모두 물리쳤다.

그러나 진양공은 계속된 승리에 젖어 이성을 잃고 한 번 시작하면 결코 중도에서 멈출 줄 모르는 섬진국의 의욕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진양공은 결국 섬진국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하사품을 내주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고야 말았다.

옛날 진목공은 줄곧 섬진 서쪽의 융족들을 공략하는데 몰두하고, 다시 혼인으로 우호관계를 맺은 당진국의 란을 두 번이나 평정했으나, 기근이 든 섬진에게 양식을 빌려주지 않았던 당진국을 정벌하기 위해 아주 적은 병력으로 출정하여 용문산에서 일차 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환공이 주재한 수지(首止)의 회맹, 그리고 초성왕이 송양공으로부터 맹주의 자리를 빼앗은 록상(鹿上)의 회맹, 그리고 당진의 문공이 주재한 천토(踐土)의 회맹 등에는 모두 참가하지 않았다. 단지 천토의 회맹 이후 당진의 문공이 천자를 조현하기 위해 제후들을 소집하자 진목공은 그때서야 비로소 병거와 보병을 이끌고 나와 처음으로 중원의 땅을 밟았다. 제후들이 주양왕에게 올리는 엄숙한 조현 의식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진목공은 그때서야 진문공의 소집에 불응하고 회맹에 참가하지 않았던 허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제후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이다. 후에 다시 진문공과 상호 공수동맹을 맺은 진목공은 당진군과 함께 정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정나라의 세객 촉지무(燭之武)에 설득당한 진목공은 당진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군사를 물리쳐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후로 진목공은 독자적으로 중원에 진출하여 패자가 되려는 꿈을 키우다가 정나라를 기습하기 위해 보낸 군사들이 당진군에 의해 패함으로 해서 일차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당진국의 인도에 의해 중원으로 진출한 섬진이 다시 당진국을 향해 중원의 패권을 노리고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한 사태는 원래 당진국의 군주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정나라를 기습한 진목공의 의도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중원 제후국들을 상대로 시작한 그의 패권 쟁탈전은 섬진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커다란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그래서 비록 그의 군대가 당진군에 의해3번이나 패배를 당했으나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여 그 싸움의 실패를 모두 일선 장수들에게 돌려 죽이지 않고 모두 자기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일의 처음은 모두 어렵기 때문에 경험을 축적함으로 해서 동방 공략을 한걸음씩 나가는 방법으로 취해야지 급하게 추진하는 방법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맹명시를 변함없이 신임하여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당진국에 대한 공격을 주관하도록 했다. 군사들을 맹훈련시켜 사기를 올려 증대된 전력으로 당진군과의 전투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당진국으로부터 받은 세 번의 싸움에 패한 수치를 설욕하려고 했다.

기원전624년 섬진군이 출격하여 황하를 건널 때 대장 맹명시는 부하들에게 배로 연결하여 만든 다리를 불살라 당진군을 무찌르지 않고는 결코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투지를 보인 후에 일거에 당진국의 왕관성(王官城)을 함락시켰다. 기원전206년 한초 쟁패시 항우(項羽)가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장하(漳河)를 건널 때 취사도구인 가마솥을 부셔버리고 도하에 사용했던 배를 침몰시켜 군사들의 사기를 고무시켜 일거에 장한이 지휘하던 진나라 진압군을 격멸한 거록지전(鉅鹿之戰)은 맹명시가 황하를 건넌 배를 불사른 일이 있은 지400여 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가마솥을 부시고 배를 가라앉혀’ 싸움 에 승리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 뿐이다’라 뜻의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고사성어는 정형관(井陘關)의 싸움에서 한신이 진여(陳餘)가 이끌던 조(趙)나라 군사들에게 구사했던 배수진(背水陣)과 같은 뜻으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섬진군이 배를 불살라 싸움에서 이기지 않고는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사의 의지로 공격해 오는 섬진군의 기세에 압도당한 당진군은 그들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단지 성을 의지하여 굳게 지킬 수밖에 없었다. 당진군이 싸움에 응하지 않자 섬진군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하수를 도하하여 효산의 전투에서 전사한 섬진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른 후에 매장했다. 그리고 그 전에 당진에게 빼앗긴 왕(汪)과 팽아(彭衙)를 수복한 섬진군은 마침내 당진과의 싸움에서 개선하고 회군했다. 그 전쟁은 예전의 원정에 비해 많은 전과를 올리고, 최소한 군사들의 사기로도 당진군을 압도 할 수 있었다. 감히 섬진이 독자적인 힘으로 중원의 패권국과 힘을 겨룰 수 있었던 원인은 한 두 번의 실패로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던 정신력에 있었다. 적대국으로 하여금 감히 다시는 자기 나라를 넘볼 수 없게 만들어 최종적으로 섬진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섬진에게 반기를 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낸 서융의 여러 나라들은 그 군대가 당진으로 원정 나갔다가 개선을 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원전623년 다시 섬진국을 신하의 예로써 받들었다. 또한 주천자도 당진국과 싸워 대등하게 싸운 섬진국을 서융의 패주로 책봉했다. 섬진군의 효산에서 당진군의 매복에 걸려 전멸한 해는 진목공33년 기원전627년의 일이고 황하를 도하여 당진군의 영토를 유린하고 황하를 도하하여 효산에서 섬진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위령제를 지낸 해는 그로부터3년 후인 기원전624년이다. 이로써 중국의 중원에 대한 패권 투쟁에는 섬진국이 더 참여하게 되었다.

당진국이 섬진국에 의해 견제당하는 것을 본 초나라는 그 기회를 틈타서 강(江), 육(六), 요(蓼) 등의 제후국들을 멸하고 북상하여 진(陳), 채(蔡) 등의 제후국들을 그 세력권 하에 두어 그 위세를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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