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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8:294039 
재55회. 登床劫將(등상겁장), 結草報恩(결초보은)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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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5회登床劫將 結草報恩(등상겁장 결초보은)

침상의 적장을 위협하여 화의를 이끌어 낸 송나라의 화원과

결초로 두회의 발목을 잡아 보은한 저승에서 온 노인

1. 鄭昭宋聾(정소송롱)

- 정나라는 시세에 밝아 안전하고 송나라는 귀머거리와 같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

초장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두 모아 놓고 당진의 군사적인 위협으로부터 정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도에 대해 의논하도록 했다. 공자측이 먼저 의견을 말했다.

「초나라와 사이가 좋은 나라는 제나라이고, 당진을 받들기로는 송나라가 제일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토벌한다면 당진은 송을 구하느라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어찌 감히 정나라를 놓고 우리와 다툴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계책은 비록 훌륭하기는 하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돌아가신 성왕께서 성득신을 보내 홍수에서 송나라 군사들을 파하고 송군의 팔에 상처를 입혔으나 송나라는 인내하였다. 송양공의 뒤를 이은 송소공(宋昭公)이 궐맥(厥貉)1)에 성을 쌓은 후 부왕이신 목왕을 청해 알현하고 극진히 모셨다. 이어 송나라에서는 문공(文公) 포(鮑)가 소공을 시해하고 송군의 자리에 오른 지 이미 18년째가 되었다. 무슨 명분으로 송나라를 토벌할 수 있겠는가?」

공자영제가 앞으로 계책을 말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나라에서 여러 번 사자를 보내와 우리를 초빙했었으나 우리는 아직껏 회답을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땅히 사자를 보내 제의 초빙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자가 송나라 경계를 지날 때 길을 빌려주는 지를 일단 시험해 보면 송나라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사신에게 길을 빌려준다면 이는 우리 초나라를 두려워함이니 대왕께서 회맹을 하겠다고 통지하고 부르면 반드시 명을 받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송나라가 예전과 같이 무례하여 우리 사신에게 욕을 보인다면 그것을 구실 삼아 송을 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사자로 보내면 되겠는가?」

영제가 대답했다.

「신무외(申无畏)는 이미 궐맥지회(厥貉之會)에 선왕을 수행할 때 송인들의 태만한 행동에 대한 죄를 묻고 관련자를 사형에 처형해서 원한을 산 일이 있습니다. 그를 사자로 삼아 송나라 영토를 지나가게 하여 송나라를 시험하십시오.」

장왕은 즉시 공자풍(公子馮)과 신무외(申無畏)를 불러 당진과 제나라에 각각 사자로 보내면서 경유국인 정나라나 송나라에 가도문서라고 불리는 문서를 사전에 통지를 하지 말라고 명했다. 공자풍은 그 즉시 길을 떠날 차비를 했으나 신무외는 주저하며 장왕에게 말했다.

「제나라에 가는 사자는 반드시 송나라 영토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송나라에 가도문서(假道文書)2)를 먼저 보내 허락을 받고 난 후에야 송나라 관문을 지날 수 있습니다.」

「경은 사신으로 가는 것이 두렵소? 공파풍은 주저하지 않고 이미 출발했는데 어찌하여 경은 명을 받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오?」

「정나라와 송나라는 그 성향이 서로 다릅니다. 정나라는 시류에 밝으나 송나라는 고지식하여 귀멍어리와 같습니다. 더욱이 옛날 궐맥지회에서 여러 나라 군주들이 선왕이신 목왕을 모시고 맹제(孟諸)의 땅에서 사냥할 때 송군이 령을 어겨 신이 그 종자들을 잡아서 죽이고 벌을 내려 법을 엄하게 집행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송나라의 군신들은 신에게 깊은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일 제가 가도문서(假道文書)도 없이 송나라로 들어간다면 그들은 반드시 신을 잡아서 죽일 것입니다.」

「문서상에 그대의 이름을 신주(申舟)로 고치고 무외(無畏)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 아니오?」

신무외가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고 말하였다.

「이름은 바꿀 수 있어도 얼굴은 바꿀 수 없습니다.」

장왕이 얼굴에 노기를 띠며 말했다.

「만일 그대가 송나라 사람들한테 잡혀 죽는다면 내가 마땅히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송나라를 멸망시켜 그대의 원수를 갚아 주겠소!」

신무외는 더 이상 못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그는 아들 신서(申犀)를 데리고 와서 장왕을 알현시키면서 말했다.

「신이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신하된 자의 본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원하옵건대, 제가 잘못되면 소신의 이 아들을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의 과인이 시킨 일에 대해서 경은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라오.」

신주는 사신이 가져가야 할 예물을 수령하고 장왕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후에 영도의 성문을 나가 송나라를 향해 출발했다. 아들 신서는 그 부친을 송별하기 위해 도성에서 미리 나와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무외가 아들 신서에게 당부했다.

「너의 아버지는 이번 행차에 송나라에서 반드시 죽어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필히 왕에게 청하여 나의 원수를 갚도록 하라! 너는 나의 이 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졌다. 신무외의 일행이 드디어 송나라 수양성(睢陽城) 밖의 교외에 있는 관문에 도착했다. 관문을 지키던 관리들이 그들의 일행이 초국 사신임을 알고 가도문서를 요구했다. 신주가 대답하였다.

「초왕의 명령으로 제나라에 가는 사신이라 제나라의 초빙 문서는 가지고 있지만 송나라에서 허가한 가도문서는 가지고 있지 않다.」

2. 鄙我亡也 伐我也亡(비아망야 벌아야망)

- 굴해도 망하고, 정벌을 당해도 어차피 망할 바에야 나라의 자존심을 살려야 합니다. -

관문을 지키던 송나라의 관리들은 신주를 관문 밖에 머물게 하고 송문공에게 파발을 띄워 알렸다. 당시 송나라는 화원(華元)이 정사를 맡고 있었다. 화원이 송문공에게 아뢰었다.

「초나라와 우리나라는 누대에 걸친 원수지간입니다. 이번에 사자를 공공연히 보내면서 가도(假道)의 예도 따르지 않고 우리나라의 국토를 통과하려는 행위는 우리를 심히 기만하는 짓입니다. 청컨대 초나라 사자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초나라 사신을 죽이면 초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보내 우리나라를 침f략해 올 것이오. 그 때는 어떻게 하겠소?」

「초나라에게 기만당하여 우리가 받게 되는 치욕은 군사의 침입을 받는 것보다 더욱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초나라가 지금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이것을 구실을 잡아 우리를 정벌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던 정벌을 받을 바에야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가 받은 치욕이나 갚아야 합니다.」

송문공은 즉시 사람을 보내 초나라 사자인 신주를 잡아 송나라 조정으로 압송케 했다. 화원이 초나라의 사신을 한 번 보고 그가 신무외라는 사실을 알았다. 화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신무외를 보고 꾸짖어 말했다.

「너는 옛날에 우리 선군의 어자들에게 형벌을 내려 죽였다. 오늘 이름을 바꾼다고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자기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신무외는 송문공 포(鮑)를 보고 크게 꾸짖었다.

「너는 할머니를 범하고 적자인 조카 소공(昭公)을 죽였다. 어떻게 하늘의 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또한 대국 초나라의 사자를 함부로 죽이려고 하니 그 결과 우리 초나라 대군이 밀려오면 너희들 군신들 중 한 사람이나마 살아 날 수 있겠느냐?」

화원이 좌우의 무사들에게 명하여 먼저 신무외의 혀를 잘라 죽이고 그가 제나라에 바치려고 지녔던 예물과 문서는 성 밖의 교외에 내다가 불태워 없애 버렸다. 신무외의 수행원들이 마차를 버리고 숨어 있다가 곧바로 초나라에 돌아와 장왕에게 보고했다. 점심식사를 하려는 순간 신무외가 살해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장왕이 젓가락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왕은 곧바로 사마 공자측(公子側)을 대장으로 하고 신숙시(申叔時)를 부장으로 삼아 친히 군사를 이끌고 송나라 원정길에 나섰다. 또한 신무외의 아들 신서를 불러 군정(軍正)으로 삼아 종군하게 하였다. 신주가 피살된 것은 기원전 595년 그해 여름 4월이고 초군이 송나라 경계에 당도한 것은 그해 가을 9월이니 실로 신속히 군사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잠연(潛淵) 선생은 이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

송나라를 속이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알았지만

하늘과 같은 군왕의 명령이라 감히 몸을 돌보지 못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군사를 일으켜 풍우처럼 당도하니

지나가는 손님을 죽인 화원은 마땅히 후회막급하게 되었다.

明知欺宋必遭屯(명지기송필조돈)

君命如天敢惜身(군명여천감석신)

投袂興師風雨至(투몌흥사풍우지)

華元応悔殺行人(화원응회살행인)

3. 의석해양(義釋解揚)

- 죽음을 각오하고 군주의 명을 이행한 해양을 석방하다 -

초나라 군사들이 수양성을 포위하고 성 높이와 같은 루거(樓車)3)를 만들어 사면에서 성을 공격하였다. 화원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군사들과 백성들을 독려하여 성을 철통같이 지키는 한편 대부 락영제(樂嬰齊)를 당진에 보내 구원군을 청하게 했다. 당진의 경공(景公)이 송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경공의 모신 백종(伯宗)이 간하며 말했다.

「순림보가 600승의 군대를 가지고 정나라를 구하러 갔다가 필(邲)에서 초나라에게 크게 패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초를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나라를 구하러 군대를 보내도 별 전과를 올리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현재 중원 제후국 중 우리 당진과 수호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송나라 밖에 없는데 만일 구하지 않는다면 송나라를 잃을 것이다. 대책이 있는가?」

「초군은 2천 리가 넘게 떨어진 송나라에 군량미를 운반하기가 쉽지 않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사자 한 사람을 보내 ‘ 당진이 이미 대군을 일으켜 송을 구하러 오고 있는 중이다’라고 전하여 견고히 지키게만 하면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초군은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힘들여 초와 대적을 할 필요가 없으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송을 구했다는 공로가 될 것입니다.

경공이 백종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말했다.

「누가 송에 사자로 가서 이 임무를 능히 이룰 수 있겠는가?」

대부 해양(解扬)이 자청하여 임무를 맡았다.

「자호(子虎)가 아니면 이 임무를 능히 수행할 사람이 없겠다.」

해양이 미복으로 송나라 국경 근처에 당도했다가 초나라의 순찰병에게 발견되어 심문당한 결과 당진국이 송나라에 보낸 사자의 신분이 밝혀져 사로잡혀 장왕에게 보내졌다. 장왕은 그가 진나라의 대부 해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우리 주군의 명을 받들어 그의 뜻을 송나라에게 알려 송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당진의 구원병이 올 때까지 굳게 지키게끔 권유하러 왔습니다.」

「당진의 사신 임무를 띄고 온 것은 그렇다 치고, 너는 옛날 북림(北林)의 싸움4) 에서 우리의 위가(蔿價) 장군에게 사로잡혀 온 것을 내가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 주었거늘 다시 우리의 그물에 걸려서 잡혀 왔으니 이번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좋겠는가?」

「당진과 초 두 나라는 여러 대에 걸친 원수의 나라입니다. 잡히면 당연히 죽게 됩니다.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장왕이 사람을 시켜 해양의 몸을 수색하게 하자 그의 몸 안에서 문서가 나왔다. 문서의 읽기를 마친 장왕이 해양에게 말했다.

「송나라 수양성은 조석지간에 함락될 것이다. 너는 편지의 내용과는 반대로 ‘당진국은 국내 사정상 송나라에 구원병을 바로 보내줄 수 없게 되었다. 당진의 군주께서 송나라의 일을 그릇되게 만들까 걱정되어 특별히 나를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라고 전하면 송나라 사람들은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초와 송 두 나라의 많은 군사들과 백성들은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성사되면 너에게도 현을 다스리는 태수의 벼슬을 주어 초나라에 머물 수 있도록 해 주겠다. 」

해양이 머리를 조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장왕이 말했다.

「나의 말에 응하지 않으면 참수형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해양은 원래 장왕의 말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으나 초나라의 진중에서 죽게 되면 그 군주의 말을 송나라에 전달할 길이 없어지게 되는 것을 우려하여 일단은 거짓으로 장왕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했다. 장왕은 해양에게 사람을 딸려 루거(樓車)에 실어 올려 보내 장왕이 시킨 대로 전하게 했다. 초나라의 루거에 오른 해양은 성안의 송나라 사람들에게 소리쳐 말했다.

「나는 당진의 군주가 보낸 사신 해양(解揚)이라는 사람인데 지금 초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초왕은 나를 구슬려 여러분들을 항복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항복하면 안 됩니다. 당진의 군주께서 친히 대군은 끌고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머지않아 도착할 것입니다.」

해양이 한 말을 전해 들은 장왕은 루거에서 해양을 끌어내리라고 명령했다. 장왕이 끌려 내려온 해양을 보고 꾸짖었다.

「너는 이미 나의 말을 따르겠다고 하고 후에는 다른 말을 하여 나를 배신했으니 내가 너를 죽인다 한들 그것은 네가 신의가 없어서이지 나의 과오는 아닐 것이다.」

장왕은 즉시 좌우 사람들에게 소리쳐 해양을 끌어내어 참수한 다음 그 결과를 고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해양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한 목소리로 장왕을 보며 말했다.

「신이 신의가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제가 만일 초나라로부터 신의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당진으로부터는 신의를 잃게 되는 일입니다. 만일 이와는 반대로 초나라의 신하가 외국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 주군의 말을 배신한다면 군께서는 그것을 신의라고 하겠습니까? 신의가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신이 죽음을 청하여 초나라의 신의라는 것은 외국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임을 밝히겠습니다.」

장왕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충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더니 이는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장왕은 즉시 해양을 석방하여 당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4.登床劫將(등상겁장)

- 침상에 올라 적장을 위협하여 화의를 이끌어낸 송나라의 화원 -

한편 송나라의 화원은 해양이 전한 말을 듣고 성을 다시 수리하면서 마음속으로 결의를 더욱 굳게 다졌다. 한편 초장 공자측(公子側)은 군사를 동원하여 성과 마주 보고 토산을 쌓았다. 토산은 마치 높은 누각과 같아 그 안에서 숙식을 하면서 수양성 내의 일거일동을 살폈다. 화원도 역시 성안에서 토산을 쌓아 마주보게 했다. 이윽고 수양성은 그해 가을인 9월부터 포위를 당하기 시작하여 다음해 여름 5월이 되었다. 초와 송 두 나라 쌍방은 모두 아홉 달 동안 대치하면서 전투를 벌인 결과 수양성 내에는 식량과 마초가 전부 바닥이 나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있었다. 화원은 단지 충의로 그 부하들을 격려하고 백성들을 감읍시켰다. 백성들이 그의 자식들을 바꾸어 잡아먹고 해골을 주워 땔감으로 사용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싸우려는 투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장왕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초군의 보급을 보는 군리가 와서 군중에는 군량이 7일 분밖에 없다고 보고했다. 장왕이 말했다.

「나는 송나라를 파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장왕이 스스로 전차를 타고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 주위를 한 바퀴 순시하면서 송나라 수비군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송나라의 군사들은 모두가 원기가 왕성하고 군기는 엄정하여 군용이 질서정연 하였다. 장왕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난 후 공자측을 불러 군사를 거두어 철군하는 일을 의논했다. 장왕이 퇴군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신서가 곧바로 장왕의 어가 앞에서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면서 말했다.

「신의 부친은 왕의 명을 받들다가 죽게 되었을 때에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저희 부친이 죽는다면 반드시 원수를 갚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회군을 하여 돌아간다면 저희 부친인 신하에게 신의를 잃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왕이 듣고 부끄러워하며 마음속으로는 신무외에 대해서 매우 미안한 생각을 갖게 되었으나 밖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당시 장왕의 어자로 종군하고 있던 신숙시가 한 가지 계책을 말했다.

「송나라가 아직 항복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초군이 오랫동안 머물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군대 막사를 짓고 농사를 짓는 체하며 포위망을 유지하여 끝까지 버틸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면 송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두려워 할 것입니다.」

장왕이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훌륭한 계책이라고 말했다. 곧이어 명령을 내려 군사들로 하여금 수양성 일대에 맞닿는 곳에 군대 막사를 짓는 체 하고, 막사를 짓는데 들어가는 재목은 수양성 밖의 민가를 헐거나 숲 속의 대나무를 잘라서 쓰기도 했다. 군사 10명을 한 조로 하고 5명은 남아서 성을 공격하고 5명은 나가서 밭에 나가 씨앗을 뿌렸다. 군사들은 두 조로 나뉘어 열흘에 한 번씩 임무를 교대했다. 초나라 군사들 서로 간에 전해지는 말이 화원에게도 들리게 되었다. 화원이 송문공에게 말했다.

「초왕이 군사를 물리쳐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진의 구원병은 아직도 오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신이 초나라 진영에 잠입하여 초장 공자측을 겁주어 화의을 맺는 방법 외는 다른 수가 없겠습니다. 혹시 운이 좋다면 일이 성사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송문공이 말했다.

「송나라 사직의 존망이 경의 이번 행차에 달렸으니 부디 조심하여 다녀오기 바랍니다」

화원은 공자측이 토산 위의 누각 위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좌우 측근들의 이름과 성을 탐문하여 미리 알아 놓고 또한 초병들의 경비제도 및 파수꾼들의 위치를 자세히 파악하여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화원은 초나라의 전령 모양으로 분장하고 성 위에서 소리를 죽여 밧줄을 타고 내려와 곧바로 토산 쪽으로 다가갔다. 딱따기 소리를 내며 순라를 돌고 있는 초나라의 경비병을 만나자 화원이 먼저 물었다.

「원수께서는 누각 위에 계시는가?」

「계십니다.」

「아직 취침 전이신가?」

「연일 공성전에 노고가 많으셔서 금일 밤에는 대왕께서 술통을 하나 하사 하셔서 술을 다 마시고 이미 잠자리에 들으셨습니다.」

화원이 순라병과 말을 마치고 토산 쪽으로 가서 누각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토산을 지키는 경비병이 길을 막고 못 오르게 했다. 화원이 말했다.

「나는 대왕의 전령 용료(庸僚)라는 사람이다. 대왕께서 금일 밤 긴급하고 대단히 중요한 일을 원수께 당부하고자 하셨다. 조금 전에 하사한 술통을 원수께서 다 마시고 취해서 잠자리에 들었을까 심려하신 대왕께서 특별히 나를 보내어 원수께서 술에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대왕의 분부를 전달하도록 명하셨다.」

경비병이 화원의 말을 믿고 토산 위로 올라가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화원은 토산 내부로 들어가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공자측이 묶고 있는 방에 당도했다. 그때 공자측은 등불 밑에서 옷을 입은 채로 쓰러져 자고 있었다. 화원이 곧바로 공자측이 자고 있는 침상위로 올라가 손을 재빠르게 움직여 공자측을 흔들어 깨웠다. 공자측은 깨어나서 몸을 뒤척이려고 했으나 양쪽 소매를 화원이 깔고 앉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공자측은 황망 중에 잠에서 깨어나 화원을 향해 물었다.

「너는 도대체 어떤 놈이냐?」

화원이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원수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송나라의 우사 화원이라는 사람입니다. 주공의 명을 받들어 특별히 금일 밤 강화를 구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원수께서 만일 강화의 뜻을 따르겠다고 허락하신다면 송과 초 두 나라는 동맹을 맺어 당세에 평화롭게 지내겠지만, 만일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화원과 원수의 생명은 오늘밤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화원은 말을 마치자 왼쪽 손으로는 침상 위에 누워 있는 공자측을 목을 잡고 오른 손으로는 소매 안에서 한 자루의 예리한 비수를 꺼냈다. 비수는 등불을 받아 휘황하게 빛나 춤을 췄다. 공자측이 황망 중에 대답하였다.

「일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상의하여 해결하면 될 일이지 이렇게 거칠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화원이 비수를 걷어 들이고 감사의 말을 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만 괴이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세가 심히 급하게 되어 부득이 이렇게 남몰래 찾아와 원수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대 나라 안의 정세는 어떠합니까? 」

「아이들은 바꿔서 잡아먹고 해골은 주어다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경에 처해 거의 낭패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공자측이 놀래면서 말했다.

「송국의 곤란한 지경이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모르고 있었오! 병법에 ‘허(虛)는 실(實)처럼 보이게 하고 실(實)은 허(虛)처럼 보이게 한다’는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대는 무슨 이유로 그대 나라의 실정을 나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까?」

「‘군자는 타인의 어려움을 동정하고 소인은 타인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이를 취한다’5)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께서는 군자이지 소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안의 정세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항복을 하지 않습니까?」

「성안의 모든 것은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백성들의 싸우려는 투지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과 백성들이 성과 함께 하여 죽음을 불사하고자 하는데 구태여 성을 내려와 굴욕적인 항복을 하겠습니까? 만일 송나라의 어려움을 동정하는 어진 마음을 베풀어 초나라의 군사들을 30리만 후퇴 시켜 주신다면 우리의 주군께서는 초나라를 따르고 절대 두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나도 그대를 속이지 못하겠습니다. 초나라의 군중에는 오로지 7일 분의 양식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만일 7일이 지나 성이 함락되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회군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막사를 짓고 밭을 갈라고 내린 명령은 단지 잠시 동안 상대를 겁먹게 하려는 작전일 뿐입니다. 내일 내가 대왕을 뵙고 초군에게 일사(一舍)를 후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대 송나라의 군신도 약속을 저버리면 안 될 것입니다.」

「이 화원이 정녕코 초나라 진영에 남아 인질로 남겠으니 원수께서는 근심하시지 마시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서를 같이하여 서로 간에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하늘에 대고 맹세를 한 다음 다시 결의형제를 맺었다. 공자측은 화원에게 초나라 군영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통행증에 해당하는 영전(令箭) 한 개를 주며 빨리 수양성을 다녀오라고 재촉했다. 화원은 공자측이 내준 영전을 휴대하고 초나라 진영을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빠져 나와 수양성 밑에 와서 성 위를 향해 암호를 외쳤다. 성 위에서 바구니가 한 개 내려와 화원을 성 위의 토산으로 끌어 올렸다. 밤을 틈타 수양성으로 돌아온 화원은 그 동안 공자측과의 협의 내용과 경과를 송문공에게 보고했다. 두 사람은 내일 중으로는 초군이 물러간다고 생각을 하면서 매우 기뻐했다. 다음날이 되어 날이 밝자 공자측은 지난밤에 화원이 와서 한 이야기를 장왕에게 고했다.

「신의 목숨은 한 자루의 비수에 달려 있었으나 다행히 화원이 인정을 베풀어 저는 목숨을 구했습니다. 화원은 성내의 정황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군사를 물리쳐 주기를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신은 그의 청을 받아들여 퇴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우리 초군에게 일사의 거리를 퇴군하도록 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나라가 이렇게 까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과인은 이 번 기회에 송을 취한 연후에 돌아가겠다.」

공자측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우리의 군사들은 군량이 7일 분밖에 없다고 신은 이미 화원에게 말해 버렸습니다.」

장왕이 얼굴색을 바꿔 화를 내며 말했다.

「사마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의 실정을 적에게 알려 주었단 말인가?」

「작고 구구한 약소국인 송나라가 자기의 정세를 사실대로 이야기해 신을 속이지 않았는데 크고 당당한 초나라의 장수인 제가 차마 속일 수 없었습니다.」

장왕의 얼굴에 노여움이 가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마의 말이 심히 타당하오! 」

장왕은 즉시 삼군에 령을 발해 수양성 30리 밖으로 후퇴하여 진채를 세우도록 했다. 이에 신서는 군령이 이미 내려져서 감히 다시 간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할 뿐이었다. 장왕이 사람을 보내 위로하면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는 너무 상심하지 말라. 조만 간에 그대의 효심이 이루어 질 것이다.」

초군의 진채가 이미 세워지자, 화원이 즉시 수양성 밖으로 나와 초나라 진영에 당도했다. 화원은 장왕에게 초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겠다는 송공의 뜻을 전했다. 공자측이 화원을 따라 송나라 수양성에 입성해서 송문공과 닭의 피를 마시며 서약했다. 송공은 화원을 시켜 신무외의 관을 초나라 진영에 보내고 화원은 초나라에 인질로 머물게 했다. 장왕은 군대를 거두어 초나라에 돌아갔다. 장왕은 신무외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하고, 모든 조정대신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의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이윽고 장례가 끝나자 신서로 하여금 신무외가 갖고 있던 대부의 직을 잇게 했다.

화원이 초나라에 있을 때 공자측과 공자영제가 서로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자연히 공자영제와도 사귀게 되었다. 하루는 서로 모여 담론하던 중 화제가 시국문제에 이르렀다. 영제가 시국을 한탄하여 말하였다.

「당진과 초 두 강대국이 서로 다투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하고 있는데 언제나 천하에 평화스러운 날이 오겠는가?」

「저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당진과 초가 서로 자웅을 다투어 상호간에 상하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중간에 나서 성심으로 두 나라가 맹약을 맺어 여러 소국은 각기 그 맹주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며 군사를 쉬게 하고 서로 우호적으로 지낸다면 백성들을 전쟁의 도탄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을 위하여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일을 우사께서 맡아서 해봄이 어떻겠습니까?」

「저와 당진의 장수 란서는 서로 사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당진에 사신으로 갔을 때 역시 이 일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초나라에는 그 일을 중간에 맡아서 연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음날 화원의 이야기를 영제로부터 전해들은 공자측이 반대하며 말했다.

「당진과 초 두 나라는 군사를 거둬 휴전할 의사가 아직 없습니다. 이 일을 가볍게 거론하는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화원은 초나라에서 주정왕 18년 기원전 588년까지 모두 6년을 체류하다 송문공 포가 죽고 그 아들 공공(共公)이 즉위하자 조문을 이유로 귀국을 청해 송나라로 돌아갔다. 이것은 후일의 일이다.

5. 제랑득호(除狼得虎)

- 이리를 쫓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여 나라를 잃은 로국 군주 -

한편 당진의 경공은 초나라의 군대가 송을 포위하고 1년이 경과하도록 물러가지 않는 것을 보자 모신 백종에게 말했다.

「송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다. 과인이 송나라에게 신의를 잃을 수는 없다. 마땅히 군사를 보내 구원하여야 하겠다.」

경공이 송나라 구원군을 일으키려고 할 때 갑자기 로국(潞國)6)으로부터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로국은 적적(赤狄)에 속하는 이족의 나라로 성씨는 외(隗)이며 봉호는 자작(子爵)이고 여국(黎國)7)과 이웃하였다. 주평왕 때 로군이 여주(黎主)를 축출하고 그 봉지를 차지하여 그때부터 로국이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로자(潞子)에게는 영아(嬰兒)라는 아들이 있었다. 영아는 경공의 여동생 백희(伯姬)를 부인으로 맞아 들였다. 로국의 군주 자리에 오르게 된 영아라는 위인은 무능하고 연약하여 그 나라 재상인 풍서(酆舒)가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전에 당진의 장군 호석고(狐射姑)가 로국에 피신해 와 있을 때는 그가 진나라 공신으로 식견이 넓고 재능이 출중했던 관계로 풍서가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했다. 호석고는 결국은 당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로국에서 죽었다. 호석고가 죽자 풍서는 무서운 것이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로국과 진나라와의 친선관계를 끊기 위해 백희를 무고하여 죄를 씌워 로군으로 하여금 그녀를 목메 달아 죽이게 하였다. 또한 풍서는 로군과 함께 교외로 사냥을 나가서 임금과 신하가 같이 술에 취해 활쏘기 놀이를 하다가 나는 새를 쏴서 맞추는 내기를 하였다. 풍서가 활을 쐈으나 잘못 조준하여 로군의 눈을 상하게 했다. 풍서가 활을 땅바닥에 던지고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새를 명중시키지 못했으니 그 죄로 벌주 한 잔을 들겠습니다」

로군이 풍서의 학대 행위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으나 그를 제어 할만한 힘이 없어, 당진의 경공에게 풍서를 토벌해 달라는 밀서를 써서 보냈다. 모신 백종이 건의했다.

「만일 풍서를 잡아서 죽이고 로국의 영지를 차지하면 로국의 이웃나라도 자연히 우리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적족(狄族)의 땅은 모두가 당진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동쪽 변경지대가 한층 넓어지면 우리는 군사력은 더욱 확충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 될 것입니다.」

경공도 역시 로군 영아가 그 아내이며 자기의 딸을 풍서로부터 지키지 못하고 죽게 만든 일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경공이 즉시 순림보를 대장으로 위과(魏顆)를 부장으로 명하여 군사 3백 승을 동원하여 로국을 토벌하게 하였다. 풍서가 군사를 거느리고 곡량(曲梁)8)에서 당진의 군사들과 맞서 전투를 벌였으나 싸움에서 지고 위나리로 도망쳤다. 그때 위목공(衛穆公) 칙(遫)은 얼마 전에 당진과 관계를 개선하여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진의 요청에 따라 위나라로 도망쳐 온 풍서를 잡아 진나라 군중으로 보냈다. 순림보가 풍서를 결박하여 강도로 보내자 진경공이 죽여 백희의 원수를 갚았다. 로성에 입성한 당진군을 로군 영아가 말을 타고 나와 마중했다. 순림보는 백희를 무고하여 죽인 죄를 로군에게 물어 포승으로 묶어 끌고 가면서 말했다.

「로국에게 망한 여국(黎國)의 백성들이 그들의 군주를 그리워하고 있는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순림보는 로나라 군주를 여나라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뜻을 일부러 비쳤다. 순림보는 민심을 따른다고 핑계를 대고 여후(黎侯)의 후예를 찾아서 로국의 백성들 중 5백 호를 떼어 봉한 다음 여나라를 복국 시켰다는 명분을 삼고 나머지 로국의 영토는 당진국에 편입시켰다. 순림보가 행한 일은 실제로 로국(潞國)의 사직을 없애 버린 처사였다. 나라를 빼앗긴 영아는 통분한 마음을 참을 길이 없어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로나라 백성들이 슬퍼하여 영아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현재 산서성 여성(黎城) 15리 되는 곳에 로사산(潞祠山)이라고 있는데 이곳이 로군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6. 結草報恩(결초보은)

- 풀을 엮어 섬진의 대장 두회의 발목을 잡아 은혜에 보답한 구천에서 온 노인 -

초장왕이 신무외의 목숨을 희생한 대가로 얻은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포위한 해는 주정왕 13년 기원전 595년이고 초나라의 공격에 견디지 못한 송나라가 초나라에 항복한 해는 다음 해인 기원전 594년의 일이다. 이 해에 당진은 적적(赤狄)의 로국(潞國)을 정벌하여 당진국의 영토로 삼았다. 때문에 초나라의 공격을 받은 송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섬진의 환공(桓公)은 당진이 필의 싸움에서 초군에 의해 격파당하고 중원의 패권이 초나라에 넘어간 것을 보고 목공 이래로 숙원사업이었던 동방으로의 진출을 꿈꾸게 되었다. 진환공은 곧이어 대군을 일으켜 동쪽의 보씨(輔氏)의 땅에 주둔하며 기회를 엿보아 당진국으로 진공하도록 했다. 이에 당진의 경공은 로국에 주둔하고 있던 당진군의 대장 위과에게 명을 내려 서쪽으로 이동하여 보씨 땅의 섬진군을 요격하도록 했다. 위과는 경공에 명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했다. 이윽고 위과의 당진군 행렬이 보씨 땅에 가까워지자 전방에 먼지가 크게 일고 함성소리로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군사들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앞서 나간 전초병이 돌아와 전방의 부대는 대장 두회(杜回)가 이끄는 섬진의 대군이라고 보고했다.

그때는 섬진(陝秦)의 강공(康公)이 주광왕(周匡王) 4년 즉 기원전 598년에 죽고 그의 아들 공공(共公) 도(稻)가 뒤를 이엇다가 4년 만에 죽고 다시 그의 아들 환공(桓公) 영(榮)이 재위에 있었다. 그 동안 당진의 장군 조천(趙穿)이 섬진의 속국인 숭국(崇國)을 침략하자 섬진은 당진의 속국인 초(焦)를 공격하여 두 나라 사이에 틈이 다시 생기게 되었고 또한 기원전 597년 필의 싸움에서 초나라에게 참패를 당해 국력이 쇠약해진 당진국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서 었다.

섬진군의 대장 두회(杜回)는 섬진의 유명한 장사였다. 그의 긴 이빨은 무쇠라도 깨물 수 있을 만큼 단단했으며 두 눈은 이글이글한 금빛 광채를 발했다. 그의 주먹은 마치 철추처럼 크고 단단했으며 그의 얼굴은 쇠로 주조한 것처럼 시커멓게 생기고 머리와 수염은 곱슬에, 키는 한 장이 넘었다. 그의 힘은 천근이 넘는 무게를 들 수 있었으며 항상 120근이 나가는 큰 도끼를 지니고 다니면서 무기로 사용했다. 원래 백적(白翟) 출신의 두회는 일찍이 청미산(靑眉山)9) 밑에서 살다가 하루는 산으로 사냥을 나가서 주먹으로 호랑이 다섯 마리를 때려잡아 모두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환공(桓公)이 두회의 용맹함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불러서 우장군으로 삼았다. 장군이 된 두회는 300명의 군사만을 데리고 차아산(嵯峨山)10)에 할거하고 있던 산적 만여 명을 잡아들여 그 이름이 섬진의 온 나라 안을 진동시켰다. 두회는 그 공으로 대장이 되었다.

이윽고 앞에서 달려오고 있던 무리가 섬진의 군사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위과는 진용을 갖추고 두회와의 결전에 대비했다. 두회는 병거에 타지도 않고 큰 도끼를 손에 들고, 역시 도끼를 든 역전의 용사 300명을 거느리고 아무 것도 거침없다는 듯이 당진군 쪽으로 돌입해 왔다. 밑으로는 병거를 끄는 말의 다리를 찍고 위로는 장수들을 베는 두회와 300 용사들의 모스븐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악귀들처럼 보였다. 당진구는 그와 같이 생긴 악귀들을 그때까지 본적이 없었다. 당진의 전대는 두회와 그 부하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어 초전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위과는 당진군에게 진채를 세우고 그 문을 굳게 봉쇄하고 절대 출전하면 안 된다고 명령했다. 두회가 300명의 도부수를 데리고 당진군 진영 밖에 와서 3일 밤낮을 욕설을 하며 싸움을 걸어왔지만 위과는 감히 싸움에 응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당진의 본국에서 위과의 동생 위기(魏錡)가 증원군을 끌고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위기가 당진군의 본채에 당도하여 그의 형 위과에게 자기가 지원군을 이끌고 온 연유를 보고했다.

「주공께서 섬진군과의 싸움에서 혹시나 지지 않을까 걱정하신 나머지 특별히 저에게 군사를 주어 형님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위과가 섬진군의 대장 두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용력으로는 당할 자가 없어 마침 본국에 원병을 청할 작정이었다고 말했다. 위기가 믿지 않으며 말했다.

「저 풀잎 같은 도적이 무슨 능력이 그렇게 대단하겠습니까? 내일 제가 출전하여 싸워서 이겨 보이겠습니다.」

다음날 두회가 다시 나와 싸움을 걸어왔다. 위기가 위과의 말림도 듣지 않고 출전했다. 위기는 자기가 새로 데려온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전차를 몰아 곧바로 섬진군 진영으로 돌격했다. 섬진의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위기는 전차대를 여러 대로 나누어 추격하게 했다. 그러자 섬진의 진영에서 홀연히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300명의 도부수들과 두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큰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밑으로는 말의 다리를 찍고 위로는 장수를 찌르면서 돌격해 왔다. 전차에 쫓겨 북쪽으로 달아나던 보졸들도 다시 방향을 바꿔 반격해 오자 당진군의 전차는 미처 방향을 바꿀 수가 없어 섬진군의 협공을 받게 되었다. 섬진군이 전후좌우에서 당진군의 빈틈을 찾아 공격하고 두회와 300명의 도부수들도 기세를 떨치며 공격에 합세하자 위기의 군사들은 또다시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 다행히 위과가 병사들을 끌고 와서 구원했기 때문에 위기와 그 군사들은 간신히 자기 진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위과는 막사에서 앉아서 여러 가지 궁리로 고민을 하였으나 섬진의 군사들을 격파할 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삼경이 되어 몸이 피곤하여 몽롱한 상태에서 깜빡 잠이든 중에 누군가가 귀에 대고 ‘청초파(靑草坡)’라는 세 글자를 말해 줬다. 위과가 꿈에서 깨어났으나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잠을 청하여 자는데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위과가 동생 위기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위기가 듣고 말했다.

「보씨의 땅 왼쪽으로 십리를 가면 큰 언덕이 한 개 있는데 그 이름이 청초파(靑草坡)입니다. 혹시 우리가 이곳에서 섬진군을 물리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군을 끌고 먼저 가서 매복을 하고 있겠습니다. 형님은 이곳으로 적군을 유인하십시오. 우리 둘이서 섬진군을 좌우에서 협공한다면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가 매복을 하기 위하여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청초파를 향해 먼저 출발하자 위과는 휘하의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진채를 거두어 모두 본국으로 회군한다. 」

위과가 군사를 거두어 후퇴를 시작하자 과연 두회가 그 뒤를 추격 해왔다. 위과는 두회를 막아서며 몇 합을 싸우다가 못 이기는 척하며 병거의 방향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두회는 도망치는 위과의 뒤를 쫓아 청초파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큰소리가 나며 섬진군의 배후에서 위기의 복병이 쏟아져 나와 두회의 군사를 공격해 왔다. 도망치던 위과도 몸을 돌려 위기와 함께 두회가 이끄는 섬진군을 양쪽에서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그러나 두회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120근 짜리 도끼를 상하좌우로 힘껏 마구 휘둘러 당진의 수많은 장졸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비록 두회가 거느린 살수들이 위씨 형제들의 포위 공격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혔다고는 하나 결정적인 타격을 줄 정도는 되지 못했다. 위씨 형제는 군사들을 독려하여 두회와의 싸움에서 끝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섬진군의 주력이 앞으로 나와 잠깐 사이에 청초파의 중간 지점까지 이르자 두회가 갑자기 헛발을 내딛고 넘어졌다. 마치 신발 밑창에 기름을 바르고 빙판 위에 걷다가 미끄러지는 것처럼 두회는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군사들의 함성소리에 위과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니 도포를 걸치고 짚신을 신은 모습의 한 노인이 파란 풀들을 한 가닥으로 묶어 두회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위과와 위기의 병거 두 대가 두회에게 다가가서 둘이 동시에 같이 창을 겨눠 땅바닥에 쓰러트린 다음에 군사를 시켜 생포하여 결박을 지우게 했다. 두회가 거느렸던 살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다가 당진 병사들의 추격에 거의 다 죽고 도망갈 수 있었던 사람은 4-50명에 불과 하였다. 위과가 사로잡힌 두회에게 물었다.

「너는 스스로 영웅행세를 해 왔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우리의 포로가 되었는가?」

「나의 두 발이 풀잎에 걸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 내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위과가 속으로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기가 위과를 향해 두회의 처리 문제에 대해 말했다.

「두회는 힘이 무쌍한 사람이라 군중에 그대로 놔두면 큰 변이 일어날까 근심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위과는 즉시 두회를 참수토록 하고 도성의 경공에게 전과를 보고했다.

8. 인자종치명 부종란명(人子從治命 不從亂命)

- 아들 된 자는 치명을 받들어야지 란명을 받들면 안된다.-

그날 밤 위과가 막 잠이 들자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읍을 하면서 다가와 말했다.

「장군은 두회가 어떻게 해서 잡히게 된 줄 아십니까? 그것은 이 노구가 결초하여 두회로 하여금 발이 걸려 넘어지도록 해서 잡게 된 것입니다.」

꿈속의 위과가 놀래 말했다.

「나는 본래 노인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인데 이렇게 큰 도움을 얻었으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곧 조희(祖姬)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장군이 옛날 부친이 돌아가실 때 내린 란명(亂命)을 받들지 않고 평소에 내리신 치명(治命)을 받들어 내 딸을 죽이지 않고 좋은 배필을 골라 개가시켜 주셨습니다. 당시 구천지하에 있었던 노구가 그 사실을 알고 지금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이번 차제에 미력한 힘을 사용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군공을 이룩케 한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이후에도 부단히 공덕을 쌓기를 노력하시면 후에 이르러 장군의 가문은 영화롭게 되어 존귀한 왕후의 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래 위과의 부친 위주에게는 조희라는 애첩이 있었다. 위주가 매 번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위과에게 당부하여 말했다.

「내가 만일 전쟁터에서 죽게 된다면 너는 반드시 조희를 좋은 배필을 구하여 개가시켜 주도록 하라. 반드시 이 말을 이행하여 내가 이승에서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윽고 위주가 병이 들어 임종할 때 위과에게 평상시에 한 말과는 달리 유언을 하고 죽었다.

「조희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다. 내가 죽거든 나와 함께 순장을 해서 내가 구천을 가는데 동행을 하도록 하라.」

위과는 그 부친을 장사지낼 때 조희를 같이 순장하지 않았다. 동생 위기가 말했다.

「형님은 아버님께서 유언하신 말을 잊으셨습니까?」

위과가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평상시에는 조희를 개가시키라고 하시고는 임종하실 때는 평소와는 달리 순장을 하라고 하셨다. 효자는 평상시의 맑은 정신으로 하신 치명을 따라야지 임종시의 정신이 어지러운 때에 하신 란명을 따르면 안 된다.」

장례가 끝나자 위과는 조희를 좋은 배필을 찾아서 개가를 시켰다. 이러한 음덕을 쌓았던 관계로 구천에 있던 노인이 지상으로 나와 결초(結草)하여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위과가 꿈에서 깨어나서 동생 위기에게 말했다.

「나는 당시 부친을 정성을 다해 곁에서 모시면서 평소에 하신 말씀대로 조희를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 시켰던 것뿐인데 뜻밖에 그녀의 부친이 지하에서 올라와 이렇게 은혜를 갚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형의 말을 들은 위기가 탄식해 마지 않았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위과의 덕행을 칭송했다.

누가 결초하여 두회를 잡게 했는가?

꿈속의 노인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음덕을 널리 쌓으라고 권하노라!

순리에 맞춰 마음을 편안히 하면 복 받을지어다.

結草何人亢枓回(결초하인항두회)

夢中明說報恩來(몽중명설보은래)

勸人廣積陰功事(권인광적음공사)

理順心安福自該(이순심안복자해)

섬진군은 싸움에서 패하고 옹주로 퇴군했다. 두회가 전사했다는 보고를 접한 섬진의 군신들은 사기가 크게 꺾여 이후로 당분간은 당진을 감히 넘보지 못했다. 당진의 경공은 위과가 세운 공이 매우 장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영호(令狐)11)의 땅에 봉하고 다시 큰 종을 만들어 그 종 위에다 모년모일에 섬진의 장군 두회와 싸워 이겼다는 사적을 새겨 써넣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 종을 당진의 경공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경종(景鐘)이라고 지어 불렀다.

섬진군을 물리친 당진의 경공이 다시 사회에게 군사를 주어 적적(赤狄)의 땅에 남아 있던 삼국을 공격하게 하여 멸망 시켰다. 그때 멸망된 삼국은 갑씨(甲氏)12), 유우(留吁)13), 그리고 유우(留吁)의 속국(屬國) 탁진(鐸辰)14)이었다. 이윽고 적적의 땅은 모두 당진에 귀속되어 당진국은 국세를 어느 정도 만회하여 중원의 패권경쟁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 제 56회로 계속 >

주석

1) 궐맥지회(厥貉之會)/ 기원전 617년 초목왕(楚穆王)이 정목공(鄭穆公) 란(蘭), 진공공(陳共公) 삭(朔), 송소공(宋昭公) 저구(杵臼), 채장공(蔡庄公) 갑오(甲午)등 사국의 제후들을 채(蔡)와 진(陳)나라 사이의 궐맥(厥貉)의 땅에 불러 사냥대회를 열고 상기 네 나라에 대한 종주권을 확인하였다. 연의 48회 참조

2)가도문서(假道文書)/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비자에 해당한다. 다른 나라를 통과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 통과하는 사람의 인적 사항을 대상국에 알려 사전에 허가를 받는 제도이다.

3) 루거(樓車)/ 수레 위에 긴 고가 사다리를 설치하여 적의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병거의 일종

4) 북림(北林)의 싸움/ 연의 50회 참조. 초장왕(楚庄王)이 즉위한 후에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내다 3년만에 심기일전하여 초나라의 내정을 쇄신한 직후 초나라에 적대하고 있던 송나라를 공자귀생(公子歸生)을 시켜 정벌하게 하여 송나라 화원(華元)이 이끄는 송군을 대극(大棘)이라는 곳에서 대파하고(기원전 608년) 화원을 사로잡았다. 이에 당진에서는 송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해양(解揚)을 대장으로 초나라의 동맹국인 정나라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초나라의 대부 위가(蔿賈)가 이끄는 초군과 북림(北林)에서 만나 싸운 결과 당진군(唐晉軍)은 크게 패하고 대장 해양(解揚)은 초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해양은 초나라로 압송했다가 2년 후에 석방되어 당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장왕은 이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대극(大棘)은 송나라 도성인 수양성(睢陽城)에서 서쪽 약 40키로 떨어진 곳이고 북림은 현 하남성 중모현(中牟縣) 부근이다.

5)君子矜人之厄, 小人利人之危

6) 로국(潞國)/현 산서성 장치시(長治市) 북쪽 약 20키로 되는 곳의 로성(潞城)부근의 이민족인 적적(赤狄)이 세운 제후국

7) 여국(黎國)/ 처음에는 현 산서성 장치시(長治市) 남쪽 약 20키로 지점에 있었으나 로국(潞國)의 침입을 받아 그 소재지를 장치시 북동쪽 50키로 지점에 위치한 지금의 여성현(黎城縣)으로 이동했다. 로국에 병합되었다가 결국은 당진에 편입되었다.

8) 곡량(曲梁)/ 지금의 산서성 심현(沁縣) 경내

9)청미산(靑眉山)/ 지금의 섬서성 연천현(延川縣) 북쪽에 있는 산 이름.

10) 차아산(嵯峨山)/ 지금의 섬서성 경양현(涇陽縣) 북쪽 20키로 되는 곳에 있는 산이름.

11) 영호(令狐)/ 지금의 산서성 임의현(臨猗縣) 경내.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의 하나인 위(魏)나라의 발흥지이다.

12) 갑씨(甲氏)/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 동 20키로에 있었던 이민족 국가

13) 유우(留吁)/ 지금의 산서성 장치시(長治市) 서쪽 둔류향(屯留鄕) 부근에 있었던 이민족이 세운 국가

14) 탁진(鐸辰)/ 지금의 산서성 장치시(長治市) 경내

[평설]

필(邲)에서 당진군을 격파하여 중원에 대한 패권을 확립한 초장왕은 기원전 595년 송나라 정벌전에 나섰다. 초와 송의 싸움은 쌍방간 지모를 다한 훌륭한 전략을 채택함으로 해서 결국은 강화조약의 체결로 끝났다. 남방에 근거를 둔 초나라가 북상하여 당진국과 패권을 다투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인 전략목표를 초강대국들인 당진국과 초국 사이에 낀 당진국의 위성국 송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에 그 목표를 두었다.

초나라가 파놓은 함정에 송나라가 빠지게 되면 그것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제나라에 가는 우호사절을 송나라 경내를 경유하여 보내는 방법이다. 만약 사전에 적법한 수속을 밟지 않는 초나라의 사절이 송나라가 방관한다면 그것은 바로 송나라가 초나라의 위세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드러내어 결국은 초나라의 패권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송나라가 초나라의 사자의 통행을 허가하지 않고 위해를 가한다면 그것은 자연히 송나라를 정벌하게 되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나라는 두 가지 형태의 위협을 가하여 그 중 가벼운 것을 취하게 만든 것이다. 즉 초나라의 사자를 통과시켜 국가로써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아니면 초나라로부터 정벌을 당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송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송나라의 화원(華元)의 생각은 국가로서의 위신에 상처를 입는 것이 병화를 당하는 것 보다 더 큰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초나라가 송나라에 모욕을 가하는 목적은 장차 송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송나라는 초나라의 군사행동을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원은 초나라의 사자를 먼저 죽이고 옛날에 받은 치욕을 설욕했다. 그런 다음 초나라의 공격에 대처하기로 한 것이다. 화원은 결코 일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결국은 사태의 전개는 화원의 예상대로 되어갔다. 잠연(潛淵)의 시에 ‘ 지나가는 손님을 죽인 화원은 마땅히 후회막급하게 되었다(華元応悔殺行人)’라는 싯귀는 화원의 지혜를 저급하게 생각하는 통상적인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송나라가 제나라로 들어가는 초나라의 사신을 죽이자 초나라 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와 수양성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송나라는 당진에게 구원을 청하며 초나라를 앞뒤에서 협공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진국은 교활했다. 입으로는 구원병을 보내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장기전의 결과 초군이 양식이 떨어져 스스로 물러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한 명의 군사도 보내지 않고 송나라를 구원했다는 명분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당시 당진국의 정세는 섬진과 적적(赤狄)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송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초(楚), 송(宋), 당진(唐晉) 삼국은 모두 노련하고 용의주도한 뛰어난 책략가가 있었다. 당진국이 거짓된 뜻을 송나라에 전달하기 위해 보낸 사자를 체포한 초군은 그 사자에게 당진국에 급한 사정이 있어서 송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구원군을 파견할 수 없다는 뜻을 송나라 진영에 전달하여 송군의 사기를 꺾어 항복을 유도하려고 했다. 당진의 사자 해양(解揚)은 초왕의 말대로 한다고 대답한 후에 송군을 향해 “ 당신들은 절대 투항하지 말라! 당진국의 병마가 당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조만간에 당도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당진국의 의도는 초와 송 두 나라가 강화를 맺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로써 초군은 당진국이 정말로 구원군을 보낼 것이라고 걱정했고, 송군은 성을 수선하고 항전의지를 더욱 굳건히 했다. 당진국의 사자 해양은 한 번의 거짓말로 두 번의 거짓말을 하고 그 한 번의 거짓말은 진실로 송나라를 안심시키고 초나라를 궁지에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초와 송 두 나라는 9개여 월 동안 싸워 군사들은 모두 피로에 지치고 힘이 다하게 되었다. 그때 누가 능히 차원 높은 계책을 내어 다시 한 번 전세를 견지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군의 전략은 초군의 양식이 떨어져 퇴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송군의 심리에 반하여,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장기전에 대비한 계책을 세워 수양성 밖에 막사를 대대적으로 지어 군사들을 독려하여 생산활동에 종사하게 함으로 해서 송나라 사람들을 향해 초나라가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였다.

초군은 결코 물러갈 기미도 없고, 당진의 구원군은 그림자도 없는 것을 본 화원은 성 밖으로 나가 하나의 대담하고 모험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하려고 했다. 즉 초장 공자측을 위협하여 강화를 맺으려고 한 것이다. 초와 송 두 나라의 싸움은 가히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발전되었다.

초나라 대장 공자측은 몰래 잠입하여 비수를 들이대는 화원의 위협 하에서 어쩔 수 없이 화원의 강화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당하고 우수한 담판가인 화원은 공자측에게 “ 군자는 남의 위태로움을 동정하고, 소인은 남의 위태로움을 이용한다.”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 공자는 소인이 아니라 군자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군사상의 ‘ 허허실실’ 법의 군사이론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수양성 안의 정세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있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는 비록 어려움에 빠져 있지만, 그 백성들은 여전히 투지가 왕성합니다. ” 즉 송나라 군민들은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고 있음으로 해서 결코 투항을 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성 아래에서 쌍방 동등한 자격으로 강화조약을 맺는 조건 한 가지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만약 당신들 초군이 남의 위태로움을 동정하는 군자의 마음으로 30리 뒤로 물러나 준다면 우리 송나라 군민들은 초나라에 복종한다는 강화를 맺겠다.”라고 말했다. 초장 공자측도 초군의 실상을 사실대로 말하며 초군은 식량이 단지 7일 분밖에 남아 있지 않아 다시 7일 동안 수양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할 수밖에 없어 ‘ 축실경전(築室耕田)’ 계책은 단지 송나라 군민들을 속이기 위한 계책에 불과하다고 이식직고했다.

“ 병사(兵事)의 일이란 상대편을 속이는 것이다.”는 병법의 요체이지만 그러나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적군을 속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초와 송 두 나라는 강화조약과 맹약을 맺었다. 이로써 초나라는 당진과의 패권 다툼에서 승리를 취할 수 있었으며 송나라로서는 멸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초나라는 송나라를 이용하여 제나라까지 회맹에 끌어들여 자기 세력권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초와 송 두 나라의 교묘한 작전이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섬진과 당진의 싸움에서 역시 쌍방간의 작전 역시 정교하고 뛰어난 점이 있다.

당진국의 북쪽 경계에 적적(赤狄) 족이 세운 로국(潞國)이라고 있었다. 당진국은 로국과 혼인을 맺어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진경공(晉景公)의 누이 백희(伯姬)가 로국의 군주 로자(潞子)에게 시십을 간 것이다. 당시 로국은 풍서(酆舒)가 상국으로 있으면서 전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풍서가 백희를 모함하여 죽이고 그 군주를 학대했다. 이에 로자는 비밀리에 당진국에 편지를 보내 풍서의 죄를 고했다. 그때 마침 적족의 땅을 점령하려고 했던 당진국은 기원전 594년 로국을 정벌하고 풍서를 죽였다. 이어서 옛날 로국에 의해 멸망된 여국(黎國)을 복귀시킨다는 명목으로 로국을 멸하고, 그 결과 나라를 빼앗긴 로자를 자살로 몰았다. 당진국은 초나라의 공격에 항전하고 있던 송나라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고 로국을 멸하고 북방에 영토를 확장한 것이다. 당진국에 행동에 대해서 말한다면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로국은 이미 섬진과 공수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당진국이 로국을 정벌하자 자연히 섬진과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섬진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두회와 당진군 사이에 로국을 사이에 두고 싸움이 벌어지고 되었다. 두회는 천하장사로 전투를 할 때는 전차나 말도 타지 않고 손에는 큰 도끼를 들고 3백의 도부수들과 함께 큰 걸음으로 적진에 돌진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벌리곤 했다. 두회는 ‘ 큰 칼에 큰 도끼를 든 도부수들을 이끌고 밑에서는 병거를 끄는 말의 다리를 찍고 위로는 장수들을 베었다.’ 이에 당진군은 전차를 전투대형으로 전개시키지 못한 결과 접전만 하면 패했다. 두회가 싸움에서 승리를 취한 것은 전차에 대해 보병전술을 택하여 당시 전차전을 위주로 하고 있던 전투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라 당진군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진군도 곧이어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중간에 파논 함정 주위에 군사를 매복시켜 놓은 다음 두회의 섬진군을 유인한 결과 결국은 두회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어떤 노인이 당진군이 매복해 있는 곳에서 풀을 묶어 두회의 발목을 붙들어 맴으로써 천하장사인 두회를 우물에 빠진 늙은 소 처지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사람의 손으로 설치한 장애물은 전사상 보기 드문 회귀한 일이다. 두회를 사로잡는데 공을 세운 노인은 원래 죽은 조희(祖姬)의 부친으로 당진군의 대장 위과(魏顆)가 조희를 자기 아버지와 함께 순장시키지 않은 은혜에 대해 보답을 하기 위해 전장에 나와 위과를 도운 것이다. 그것은 영혼불멸이라는 작자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임한달(林漢達)의 고증에 의하면 당시 살아있던 조희의 부친은 위과(魏顆)가 싸움에 패해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알고 청초파(靑草坡)로 달려가 친히 풀을 메어 장애물을 설치하여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하여 그 은혜에 보답한 것이라고 했다. 조희의 부친은 아마도 병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섬진과 당진의 청초파 싸움은 일방이 기묘한 계책을 내면 다시 다른 일방이 묘책을 내어 상대방을 제압함으로 해서 패배를 승리로 반전시켰다. 섬진과 당진은 이 싸움으로 더욱 사이가 벌어졌으며 당진국은 패권국으로써 전략상 중대한 과오를 범한 결과가 되었다. 로국(潞國)의 정벌은 진진대전(晉秦大戰)을 발발시키고, 당진국이 승리함으로 해서 패전국 섬진은 더욱 더 초나라와 밀착했다.

용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성이다. 유능한 지휘관은 자기 부대는 가장 효과적인 기동성을 확보하고, 적군에게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기동성을 둔화시킨다.

2차세계대전 이래 전쟁의 양상은 대부분 설치된 장애물과의 투쟁이었다. 함정의 설치, 지뢰의 부설, 해상봉쇄, 방공망의 형성 등은 현대적으로 발전한 장애물이다.

(軍事學者 劉先廷評說 東周列國志-解放軍文藝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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