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66 
· 어제 :  87 
· 최대 :  2,389 
· 전체 :  1,515,226 
 
  2004-05-11 11:45:014578 
제51회. 董狐直筆(동호직필), 絶纓大會(절영대회)
양승국
 동호.jpg  (197.0K)   download : 160
 제51회- 작피의 땅을 개간하여 초나라의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손숙오 복사.jpg  (858.7K)   download : 84
일반

제51회 董狐直筆 絶纓大會(동호직필 절영대회)

직필로 조돈을 책망한 사관의 사표 동호(董狐)와

투월초를 주살하고 절영대회를 연 초장왕

1. 도원지변(桃園之變)

- 도원에서 영공을 시해한 조천(趙穿) -

음모를 꾸며 조돈을 죽이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영공(靈公)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강도(絳都) 밖으로 떠나 버린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 영공은 마치 엄한 스승 곁을 떠나 기뻐하는 촌동처럼, 까다로운 주인 곁을 떠난 어리석은 종놈처럼, 가슴 속게 맺혀 있던 갑갑증이 풀렸다고 생각하여 든 기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즉시 궁궐의 시녀들과 시종들을 데리고 도원으로 가서 그곳에서 놀다가, 시간이 늦게 되면 머물며 잠을 자고 궁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 조천은 도성 밖 서쪽 교외에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는 마침 서쪽을 바라보고 도망치던 조삭부자를 만나게 되었다. 조천과 조삭 부자 일행이 모두 수레를 멈추어 땅에 내려 상봉했다. 조삭이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조천에게 말했다. 조천이 듣고 조돈을 향해 말했다.

「숙부께서는 국경에 당도하게 되면 넘어가시지 마시고 기다리셨다가 수 일 내에 제가 보내는 기별을 받으신 후에 거취를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일이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잠시 수양산(首陽山)① 어귀에 머물러 있으면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도록 하겠다. 너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여 설상가상으로 만들지 말라!」

조돈 부자와 헤어져 강성에 당도한 조천은 그때까지도 영공이 도원에서 숙식을 하며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천은 도원으로 달려가 영공에게 알현을 청했다. 영공이 허락하자 조천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의 말을 올렸다.

「신은 황공하게도 군주의 인척이었으나 이제는 죄인이 종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감히 전하의 좌우에서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소신을 파직하여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조천의 말을 진심이라고 생각한 영공은 위로의 말로 회유했다.

「조돈이 누차 나를 기만하고 멸시하여 과인이 실은 감당하지 못하였노라! 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니 경은 안심하고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면 될 뿐이다.」

조천은 감사의 말과 함께 영공의 비위를 맞췄다.

「신은 ‘백성의 주인 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오로지 즐거운 노래 소리와 아름다운 여자를 마음껏 누리는데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비록 궁정의 뜰에 종과 북을 걸어 놓으셨다 하지만 내궁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무슨 락이 있다 하겠습니까? 제환공은 비첩으로 궁궐을 가득 메웠고 정부인 이외도 정부인과 같은 격의 준부인을 여섯이나 두었습니다. 선군이신 문공께서도 비록 도망쳐 다니던 곤궁한 처지에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여럿 취하시어 환국 이후에는 모두 본국으로 불러 오셨습니다. 나이가 이미 육순이 넘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처첩과 잉첩(媵妾)을 무수하게 거느리셨습니다. 주공께서는 이미 높은 대를 짓고 넓은 정원을 갖추셨으니 이곳에서 침식을 하시면서 많은 양가집 규수들을 선발하여 누각의 모든 방을 가득 채우시고 좋은 선생을 시켜 가무를 가르치게 하여 오락을 준비하게 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의 말은 나의 뜻과 같도다! 그렇다면 나라 안의 미녀들을 찾아내려면 어떤 사람을 시켜야 하겠는가?」

「대부 도안고라면 이일을 능히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영공이 즉시 도안고에게 명을 내려 나라 안의 미녀들을 선발하는 일을 맡겼다. 성안이건 성밖이건 나이가 20세 미만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모두가 그 이름을 고하게 하여 그 중에서 얼굴이 고운 여자를 뽑되 한 달을 기한으로 정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조천은 이렇게 하여 도안고에게 공무를 떠 맡겨 영공의 곁에서 떼어놓았다. 다시 조천이 영공에게 고했다.

「도원을 경비하는 군사들이 너무 약합니다. 신이 이끌고 있는 군중에서 용감하고 사나운 정예 병사 2백 명을 뽑아 이곳을 지키도록 보내드리겠으니 바라옵건대 데려다 쓰소서!」

영공이 다시 조천의 말을 받아 들였다. 조천은 군영에 돌아와 과연 2백 명의 군사들을 선발하여 갑사로 만들었다. 갑사들이 조천에게 물었다.

「장군께서는 저희들을 어디로 보내려 하십니까?」

「주상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매일 도원에 머물며 하루 종일 행락만을 일삼고 있으면서 나에게 명하여 너희들을 선발하여 도원의 경비를 맡기라고 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번에 가면 풍찬노숙하면서 도원을 경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임무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

군사들이 모두 원망과 탄식을 동시에 하면서 말했다.

「그와 같은 무도혼군이 어찌하여 빨리 죽지 않는가? 만약에 조돈 상국께서 계셨더라면 이런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조천이 군사들이 하는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내가 너희들과 상의할 일이 하나 있다. 너희들이 나의 말을 들어줄지 모르겠다.」

갑사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장군께서 능히 우리들이 처하게 될 고생스러운 일에서 구하여 주신다면 그 은혜는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도원은 궁궐에 비해 그다지 깊지 못하다. 너희들은 밤이 깊어 이경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상을 타러 왔다고 핑계를 대고 소란을 피우다가 내가 소매로 신호를 하면 너희들은 달려가 무도혼군을 죽여라. 나는 상국을 다시 모셔와 따로 군주를 세우겠다. 나의 이 계획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갑사들 모두가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갑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어 2백 명의 갑사를 위로한 후에 도원 담장 밖에 도열시킨 조천은 도원 안으로 들어와 영공에게 경비병들을 선발하여 대기 시켜 놓았다고 보고했다. 영공이 갑사들을 불러 사열했다. 군사들은 하나 같이 정예하고 용맹하게 보였을 뿐 아니라 개개인이 모두 억세게 생겨 마음속으로 대단히 만족해 한 영공은 이어서 조천을 도원에 머물게 하여 자기와 술자리를 같이하도록 했다. 이윽고 밤이 깊어 이경에 이르자 바깥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영공이 놀라 무슨 영문인지를 물었다. 조천이 곁에 있다가 대답했다.

「이것은 아마도 숙위를 하던 군사들이 밤중에 길을 가는 행인들을 쫓아내면서 일어난 소란인 듯합니다. 신이 가서 한번 살펴보고 주군이 놀라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겠습니다.」

조천이 당하에 명하여 등불을 밝히게 한 후에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때는 이미 2백 명의 갑사들이 이미 영공이 있는 곳의 대문을 부수고 침입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갑사들을 진정시킨 조천이 그들을 이끌고 술을 마시고 있는 누각의 대청 앞으로 이끌고 가서 대기시키고 자신은 누각에 올라 영공 면전에 서서 고했다.

「군사들이 주공께서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고 있음을 알고 남은 술이나마 얻어먹을 수 없나 하고 소란을 피웠지 다른 뜻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영공은 내시들에게 명하여 갑사들에게 술을 나누어주어 위로하게 하고는, 자신은 난간에 기대어 음식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구경했다. 조천이 영공 곁에 있다가 소리쳐 말했다.

「주군께서 친히 너희들을 위로하니 모두들 감사히 생각하고 먹기 바란다.」

조천은 말을 마치고 팔을 들어 소매를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당하의 갑사들은 조천의 곁에 있는 사람이 군주임을 알게 되어 모두 몸을 솟구쳐 대 위로 뛰어 올랐다. 영공이 놀라 조천을 향해 말했다.

「대청 위로 뛰어 올라오는 갑사들을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경은 빨리 나의 뜻을 전하여 빨리 물러가라 이르시오.」

조천이 대답했다.

「조돈 상국을 그리워하는 당하의 군사들이 주공께서 상국을 다시 불러들이라고 시위하는 것입니다.」

영공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당상으로 뛰어 올라온 갑사들이 휘두르는 극에 찔려 숨이 넘어갔다. 영공의 좌우에 있던 시종들은 놀라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조천이 갑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비록 한 명의 사람이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마땅히 나를 따라 조돈 상국을 모셔와야만 한다.」

영공이 무도하여 사람 죽이기를 좋아해서, 주위에 있던 근시들을 아침저녁으로 모두 죽였기 때문에, 갑사들이 반역하여 영공을 시해하게 되었음에도 누구하나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은 오랫동안 고난을 당했던 관계로 영공의 죽음을 오히려 통쾌하게 생각하고 한 사람도 조천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7년 전에 혜성이 북두를 침입하자 점을 친 결과, 그 점괘에 이르기를 ‘제(齊), 송(宋), 당진(唐晉) 삼국의 군주 모두는 반란을 당하여 시해 될 것이다.’ 라고 했는데 과연 점괘가 모두 신통하게 들어맞게 되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까마득히 높은 누대 위의 노래 소리 끊이지 않더니

몰려든 군사들이 군주의 피로 붉게 물들였구나!

군주를 구하려는 사람이 없었음을 이상하게 생각 말라

탄궁을 피해 쫓겨 간 이후로는 백성들이 떠났음이라

崇臺歌管未停聲(숭대가관미정성)

血濺朱樓起外兵(혈천주루기외병)

莫怪臺前無救者(막괴태전무구자)

避丸之后絶人行(피환지후절인행)

2. 동호직필(董狐直筆)

- 직필로 시군의 죄를 조돈에게 물은 사관(史官)의 사표 동호 -

그때 도성 밖으로 나가 백성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미녀들을 선발하고 있던 도안고에게 갑자기 궁궐에서 사람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주군께서 시해되었습니다.」

도안고가 크게 놀라 마음속으로 영공을 죽인 사람이 조천의 짓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감히 소리를 높여 말하지 못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도 몰래 자기 집으로 돌아가 근신하는 태도를 취했다. 사회 등 당진의 대신들이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도원으로 달려갔으나 도원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공을 시해한 조천이 상국 조돈을 맞이하러 갔다고 생각한 사회 등의 신료들은 도원의 문을 봉쇄하고 조돈이 돌아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영공이 죽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조돈이 수레를 타고 돌아와서 강도에 입성했다. 조돈은 곧바로 도원으로 달려가 영공이 시해된 현장을 살펴보았다. 조돈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당진의 여러 군신들은 그를 보기 위해 일시에 도원으로 몰려들었다. 조돈이 영공의 시체 옆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 슬퍼하는 곡소리가 도원 밖에 까지 들렸다. 조돈의 통곡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모두가 말했다.

「조상국이 이렇듯 그 군주에게 충성을 바쳤음에도 주군이 시해를 당한 이유는 스스로 화를 자초했기 때문이지 상국의 허물은 아니로다!」

곡을 마친 조돈이 주위에 분부하여 영공의 시신을 거두어 염을 치르고 관에 넣어 상을 발해 곡옥에 장사지냈다. 이윽고 영공의 장례를 끝낸 조돈은 군신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신군을 세우는 일을 의논했다. 그때까지 영공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조돈이 먼저 말했다.

「선군 양공께서 돌아 가셨을 때 나는 나이를 든 사람을 군주로 세우고자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협조를 하지 않아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회가 나서서 말했다.

「나라 안에 나이가 지긋한 공자님이 계시다면 사직의 복입니다. 진실로 상국의 말씀을 따르리라!」

「문공의 아들 중 아직 살아 있는 분이 계십니다. 태어날 때 그 모친이 잠을 자다가 신인(神人)이 나타나 아기의 볼기에 검댕을 칠한 꿈을 꾸고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윽고 태어난 아기의 볼기가 시꺼멓게 변했다고 해서 이름을 흑둔(黑臀)이라 했습니다. 지금 주왕실에서 벼슬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의 나이는 장년이 되었으니 나의 뜻은 그 분을 모셔다 우리 당진국의 군주로 세우면 어떨까 합니다. 여러분들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백관들이 감히 조돈의 말에 반대하지 못하고 다 같이 말했다.

「상국의 생각이 심히 도리에 맞습니다.」

조돈은 조천이 저지른 시군의 죄를 벗게 해줄 목적으로 그를 사자로 임명하여 주나라에 가서 흑둔을 모셔 오게 했다. 흑둔이 조천과 함께 주나라를 떠나 강도에 당도하여 태묘에 고하고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올랐다. 이가 당진의 성공(成公)②이다.

성공이 당진의 군주 자리에 앉자, 나라 안의 모든 국정은 조돈이 일임하게 되었다. 또한 성공은 자기의 딸을 조삭과 혼인시켜 부마로 삼았다. 사람들은 성공의 딸을 장희(庄姬)라 불렀다. 조돈이 성공에게 상주했다.

「소신의 모친은 적주(翟主)의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선군 문공께서는 따님이자 주공의 누이이신 조희를 저희 선친과 혼인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조희께서는 겸양의 미덕을 보여, 사람을 적국으로 보내어 신의 모자를 귀국시킨 후에 황공하게도 신을 조씨 문중의 적자로 삼으셨습니다. 신은 그 일로 인해 이 나라의 중군원수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조희께서는 선친과의 사이에 아들을 셋을 두셨는데 조동(趙同), 조괄(趙括), 조영(趙嬰)이라 합니다. 그들은 이미 모두 장성했습니다. 원컨대 조희의 소생들이 각기 자기 자리를 찾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의 이복동생이라 함은 곧 내 누이의 아들들이고 짐의 조카들이라! 내 마땅히 불러 쓰겠으니 너무 겸양하지 마시오.」

성공은 즉시 조동, 조괄, 조영 등의 삼 형제를 불러 모두 대부의 직에 임명하였다. 조천은 옛날처럼 중군부수의 직에 있게 했다. 조천이 조용히 조돈을 찾아와 말했다.

「선군인 영공을 모시면서 우리 조씨 집안을 모함한 도안고란 놈은 우리와는 원수지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원의 거사도 오로지 도안고만이 마음속으로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이자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후에 우리 조씨 집안의 후환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람들이 너의 죄를 묻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네가 다른 사람의 죄를 묻고자 하는가? 우리 종족들이 귀하고 번성하고 있으니 마땅히 그들과는 같은 조당 안에서 서로 화목해야 하고 절대 남의 원한을 사면 안 된다.」

조돈의 말에 조천은 곧바로 도안고를 잡아다 죽이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도안고도 역시 근신하여 조씨들을 섬김으로써 스스로 화를 면하려고 하였다.

조돈이 도원에서 영공을 시해한 일을 항상 마음속으로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던 중 하루는 발걸음을 사관(史館)으로 옮겨 태사 동호(董狐)에게 영공에 대한 기록을 보자고 청했다. 동호가 영공의 일을 기록한 죽간을 찾아서 조돈에게 바쳤다. 조돈이 죽간을 받아서 읽었다. 동호가 영공의 죽음에 대해서 죽간에 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가을 7월 을축일에 조돈이 그 군주 이고(夷皐)를 도원에서 시해했다.」

조돈이 깜짝 놀라 말했다.

「태사는 일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나는 하동(河東)으로 나가 강성 밖 2백 리 되는 곳에 있었는데 내가 어찌 시군의 일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태사가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습니다. 태사가 나를 무고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경은 상국의 신분으로 도망간다 하면서 국경를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도성에 돌아와서도 역적을 토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일을 상국이 꾸미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습니까?」

「이 기록을 좀 고칠 수 없겠소?」

「시시비비를 가려야 만이 사관의 기록을 믿을 수 있습니다. 나의 목을 자를 수 있을지언정 이 죽간의 내용은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조돈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사관의 권세가 상국보다 더 무겁구나! 내가 어찌하여 국경 밖으로 나가지 않아 만세에 악명을 남기는 일을 면하지 못했는가?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로다! 후회막급이로다!」

이때부터 조돈이 성공을 받들기를 더욱 공경하고 매사에 더욱 근신했다. 그런데 조천은 오히려 자기가 공을 세웠다고 으스대며 정경의 자리를 원했다. 공론을 두려워한 조돈은 조천의 청을 물리쳤다. 조천은 가슴속에 분노가 치솟아 병을 얻게 되어 등 뒤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조천에게는 조전(趙旃)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가 조돈을 찾아와 자기 부친의 직을 잇게 해 달라고 청했다. 조돈이 조전에게 말했다.

「후일에 네가 공을 세우게 되면 비록 정경의 자리인들 구하기가 어렵겠는가? 잠시 기다리다보면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후세의 사관들은 조돈이 조천 부자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동호의 직필 때문이라고 논했다. 사관이 동호의 직필을 칭송했다.

보통의 사관은 사실대로 기록하지만,

훌륭한 사관은 뜻으로 죽이는 도다!

조천이 그 군주를 시해했는데,

조돈이 그 죄를 뒤집어썼다.

庸史紀事(용사기사)

良史誅意(양사주의)

穿弑其君(천시기군)

盾蒙其罪(돈몽기죄)

비록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지만,

어찌 감히 붓으로 그대에게 아첨하리오.

장하다, 동호여!

시비를 가리는 일은 두려운 일이구나!

寧斷吾頭(영단오두)

敢以筆媚(감이필미)

卓哉董狐(탁재동호)

是非可畏(시비가외)

이때가 바로 주광왕 6년인 기원전 606년의 일이었다. 그 해에 광왕이 죽고 그 동생 유(瑜)가 뒤를 이었다. 이가 주정왕(周定王)이다.

3. 問鼎窺周(문정규주)

- 구정의 무게를 물어 천자의 자리를 넘본 초장왕 -

주정왕 원년에 초장왕이 육혼(陸渾) 땅의 융족들을③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장왕은 도망가는 융족의 뒤를 추격하여 낙수(洛水)를 건넜다. 이윽고 주나라 강계(疆界)에 당도한 초장왕은 군사들을 멈추게 하여 진채를 세우게 한 후에 천자를 위협하여 주나라와 천하를 나누어 다스리려고 했다. 주정왕이 대부 왕손만(王孫滿)을 사자로 보내 장왕을 찾아가 위문하게 했다. 장왕이 왕손만을 보고 물었다.

「과인이 듣기에 대우(大禹)④께서 구정(九鼎)⑤을 주조하시어 삼대(三代)⑥에 걸쳐 내려왔는데 그것은 천하의 가장 귀한 보물이라! 지금 낙읍(洛邑)에 있는데, 나는 그 정의 생김새와 크기 및 무게가 얼마나 되는 알고 싶소. 경은 나에게 그것을 일러줄 수 있겠소?」

왕손만이 대답했다.

「하상주(夏商周) 삼대(三代)는 덕으로써 서로 천하를 전했지 어찌 한낱 정(鼎)과 같은 기물에 의해 천하가 전해졌다고 하겠습니까?! 옛날에 우임금이 천하를 지배하고 있을 때, 천하의 구목(九牧)들이 조공으로 바친 쇠를 사용하여 아홉 개의 정을 주조하여 그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시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무도하여 그 정은 상(商)으로 전하여 졌고 상나라의 주왕(紂王)이 포학하여 구정은 또다시 주(周)나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정을 갖고 있는 천자가 유덕하면 비록 정이 작게 생겼다 할지라도 그 무게는 중할 것이며 만일 무도하다면 그 정이 비록 크다 할지라도 그 무게는 가벼울 것입니다. 우리 주나라 성왕(成王)께서 정을 겹욕(郟鄏)⑦에 안치하신 이래 세대수로는 30세, 햇수로 700년이 되도록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것은 모두 천명에 의해입니다. 어찌하여 일 개 제후의 신분으로 정에 대해 묻습니까?」

초장왕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군사를 데리고 물러갔다. 이후로는 장왕은 감히 주나라를 넘보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4. 神箭驚軍 詐言除恐(신전경군 사언제공)

- 신전으로 동요된 군심을 유언(流言)으로 안정시키다.

한편 초나라 영윤 투월초(鬪越椒)는 장왕이 그의 권세를 나누어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을 때부터 마음속으로 심히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어 그때부터 이미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의 용력은 세상에 견줄 사람이 없다고 과신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투씨 선조들이 초나라에 세운 공로로 백성들이 믿고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오랫동안 모반의 뜻을 품고 있었던 그는 평상시에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초나라의 인재라고는 오로지 사마 백영(伯嬴; 위가(蔿賈)의 자)뿐이다. 나머지는 아무리 수가 많다 한들 걱정할 것 없다.」

초장왕은 육혼 땅의 융족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할 때 역시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특별히 위가를 도성 안에 남겨 두어 감시토록 했었다. 투월초는 장왕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할 때 즉시 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투월초가 투씨 일족을 모두 동원하려 하였으나 투극(鬪克)이 따르지 않자 살해하고 곧바로 사마 위가를 습격하여 죽였다. 위가의 아들 위오(蔿敖)가 그 모친을 모시고 몽택(夢澤)⑧으로 난을 피했다. 투월초가 투씨들로 구성된 군사를 이끌고 도성을 나가 증야(蒸野)⑨에 진을 치고 머물러 귀국하는 장왕을 중도에서 요격하려고 했다. 본국의 도성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장왕이 행군을 재촉하여 장서(漳澨)⑩에 이르자 투월초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서 장왕과 그 군사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투월초가 이끌고 있는 반란군의 군세는 매우 장엄했다. 활을 어깨에 비껴 차고 손에 극을 꼬나 쥔 투월초가 흉맹한 모습으로 장왕의 본진 앞으로 말을 달려 앞으로 다려 나왔다. 투월초의 모습을 바라본 장왕의 군사들은 모두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웠다. 장왕이 보고 군사들을 향해 말했다.

「투씨 종족들은 대대로 우리 초나라 조정에 세운 공훈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어찌 그들의 세운 공을 잊겠는가? 백분(伯棼 ; 투월초의 자)이 나를 배반한 것은 내가 그를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장왕은 즉시 대부 소종(蘇從)을 시켜 투월초의 진영으로 보내 강화를 청하도록 했다. 강화조건으로 사마 위가를 살해한 죄를 용서할 것이며 또한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장왕의 왕자 중 한 사람을 투월초에게 인질로 보내고 투월초가 지니고 있던 초나라 영윤의 직을 그대로 유지 시켜 주겠다고 했다. 투월초가 듣더니 말했다.

「나는 초나라의 영윤 벼슬을 하고 있는 것조차 치욕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찌 내가 죄의 용서를 빌겠는가? 나는 능히 그를 이길 수 있으니 우리 앞에는 오로지 싸움만 있을 뿐이다.」

소종이 재삼 강화를 권유했지만 투월초는 듣지 않았다. 소종이 할 수 없이 물러가자, 투월초는 군사들에게 명하여 북을 쳐서 앞으로 전진하게 하였다. 장왕이 여러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투월초를 상대하겠는가?」

대장 락백(樂伯)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자신의 병거를 몰고 투월초의 진영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격했다. 투월초의 아들 투분황(鬪賁皇)이 진영을 나와 락백을 맞이해 싸웠다. 락백이 투분황을 상대로 수십 합을 교환했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을 본 반왕(潘尫)이 병거를 몰아 락백을 돕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투월초의 종제 투기(鬪旗)역시 병거를 몰고 싸움을 돕기 위해 앞으로 달려와 싸움에 합세했다. 장왕은 전포 차림으로 융거에 타고 친히 북채를 잡고 북을 두들겨 싸움을 북돋웠다. 투월초가 멀리서 쳐다보고 병거를 몰아 장왕이 있는 곳으로 나는 듯이 달려가 강궁에다 화살을 재어 장왕을 향해 쐈다. 화살은 곧바로 날라가 수레의 끌채를 통과하여 북을 매단 고리 위에 꽂혔다. 북을 계속 두드리던 장왕이 놀라 북채를 버리고 융거에서 뛰어 내렸다. 장왕이 급히 좌우에게 명하여 화살을 막아 자기 몸을 보호하라고 명했다. 장왕의 측근들이 각기 큰 삿갓 모양의 방패를 손에 들고 장왕의 앞을 가렸다. 투월초가 쏜 두 번 째 화살이 날라 와 장왕을 가리고 있던 왼쪽편의 방패를 뚫었다. 장왕은 즉시 융거를 뒤로 물리치라고 명하고 쟁이를 쳐서 병사들을 불러 들였다. 투월초가 용기백배하여 후퇴하는 장왕과 그 군사들 뒤를 추격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장왕의 우군대장 공자측(公子側)과 좌군대장 공자영제(公子嬰齊)가 양쪽에서 일제히 쇄도해와 투월초와 그 군사들을 공격했다. 투월초도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군사를 물리쳤다. 락백과 반왕 두 사람도 쟁이 소리를 듣더니, 그들의 진영을 버리고 본군이 있는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 싸움에서 장왕 쪽의 적지 않은 군사들이 투월초의 군사들에게 꺾였다. 장왕은 결국 군사들을 황호(皇滸)⑪까지 후퇴시켰다. 이윽고 진영을 다시 세운 초나라의 여러 장수들은 투월초가 쏜 화살을 가지고 와서 살펴봤다. 그 길이는 다른 화살보다도 약 반 배가 길고, 활의 깃은 황새의 깃털로 만들었으며, 표범의 이빨을 화살촉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끝이 비상하게 날카로웠다. 좌우에 서서 살펴본 사람들은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였다. 그날 밤이 되자 장왕이 군사들의 사기를 살펴보기 위해 진영을 한 바퀴 돌다가 진영 안의 군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투월초 영윤이 쏘는 화살은 사람이 아닌 귀신의 것이라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이번 싸움에서 이길 수가 있겠는가?」

장왕이 듣고 돌아와 사람을 시켜 군중에 다음과 같은 헛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옛날에 선군이신 문왕께서 살아 계셨을 때 오랑캐인 융만(戎蠻)이 화살촉이 매우 날카롭게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융만에 사자을 보내자 그들이 견본으로 두개의 화살을 보내 왔다. 문왕께서는 그 화살의 이름을 투골풍(透骨風)이라 이름 짓고 태묘에 보관하셨다. 이번에 투월초가 출병할 때 태묘에서 훔쳐서 가져와 사용한 화살이 바로 그것이다. 투월초는 오늘 두 개의 화살을 다 사용해 버렸으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일 다시 싸우게 되면 우리가 틀림없이 이길 수 있다.」

초장왕이 퍼뜨린 소문을 들은 군사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었다. 다시 장왕은 수국(隨國)으로 퇴각한다는 명령을 군사들에게 내리고 다음과 같은 소문을 퍼뜨렸다.

「수국으로 일단 후퇴하였다가 한수 동쪽의 제후국들의 군사들을 모아 투씨들을 토벌해야겠다.」

소종이 장왕의 명을 전해 듣고 말했다.

「강적이 눈앞에 있는데 한 번 뒤로 물러난다면 적군은 승세를 타게 되고 우리는 실기하여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공자측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이것은 대왕이 일부러 퍼뜨린 헛소문입니다. 우리들이 찾아가 뵙고 여쭈어 보면 반드시 별도의 계획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소종, 공자측, 공자영제 등의 세 사람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한 밤중에 장왕을 몰래 찾아갔다. 장왕이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역적 투월초의 군세가 워낙 강하여 힘으로써 정면으로 대결해서는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하오. 오로지 계략을 사용하여만 이길 수 있소.」

장왕은 공자측과 공자영제 두 장군을 가까이 오라하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무어라 계책을 일러주면서 매복을 위해 출동 준비를 하라는 명을 내렸다. 두 장수가 장왕의 명을 받고 물러갔다. 다음날 아침 새벽이 오자 장왕이 대군을 이끌고 후퇴했다. 투월초가 그 사실을 탐지하고 군사를 이끌고 뒤를 추격해 왔다. 초나라 군사들이 평소의 행군 속도보다 두 배로 빨리 하여 장왕의 군사들의 뒤를 추격하여 이미 경릉(竟陵)⑫의 북쪽을 지나가게 되었다. 투월초가 낮과 밤을 꼬박 행군하여 2백 리를 진군하여 청하교(淸河橋)에 이르렀다. 장왕의 군사들은 청하교 건너 북쪽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다가 뒤따라오던 투월초의 군사들을 보더니 짓고 있던 솥 속의 밥도 버리고 도망쳤다. 투월초가 군사들에게 말했다.

「초왕을 사로잡은 후에 아침을 먹겠다!」

먼 길을 달려와 피로에 지친 반군들은 다시 배고픔을 참아 가며 어쩔 수 없이 투월초의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 장왕의 후대를 맡고 있던 반왕(潘尫)의 군사들 뒤를 추격했다. 반왕이 수레를 타고 도망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투월초를 보고 말했다.

「그렇게 걸음이 늦어서야 어떻게 왕을 잡을 수 있겠는가?」

투월초는 반왕이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하는 말인 줄 알고 반왕의 군사들을 버리고 장왕의 본대 뒤를 맹렬한 기세로 추격했다. 다시 앞으로 60여 리를 더 진군하여 청산(靑山)에 닿았다. 그 곳에 기다리던 장왕의 쪽의 장수 웅부기(熊負羈)를 보자 투월초가 물었다.

「초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왕은 아직 이곳에 당도하지 않았다.」

웅부기의 대답에 투월초의 마음에 의심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웅부기에게 물었다.

「그대가 만약에 내가 왕이 되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면, 그대와 같이 이 나라를 다스릴 용의가 있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장군의 군사들을 보니 피곤에 지치고 굶주리고 있어 일단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여야만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소.」

웅부기의 마리 말이 옳다고 생각한 투월초가 즉시 병거의 행진을 멈추고 군사들에게 아궁이를 파고 식사를 준비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투월초의 반군이 식사 준비를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공자측과 공자영제가 군사들을 이끌고 양쪽에서 쇄도해 왔다. 피곤과 기아에 지쳐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 전의를 상실한 투월초의 반군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반군이 도망쳐 청하교에 다시 이르렀으나 그때는 다리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원래 장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다리의 좌우에 매복하고 있다가 투월초의 반군이 지나간 뒤에 다리를 끊어 그들의 귀로를 차단했었다. 투월초가 크게 놀라 좌우의 측근에게 명하여 다리 밑의 수심을 재 보게 하여 수심이 얕으면 강을 건너 회군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청하교 건너편에서 포 소리가 한번 크게 울리더니 장왕의 군사들이 강 건너 언덕에 나타나 좌우로 늘어서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락백이 여기 있다. 역적 투월초는 빨리 항복하여 오랏줄을 받지 않고 무엇하느냐?」

투월초가 대노하여 군사들에게 강 건너를 향해 활을 쏘도록 명했다.

5. 神弓試技(신궁시기)

- 목숨을 걸고 궁술을 겨루는 초나라의 신궁(神弓) 양요기(養繇基)와 투월초

그때 락백의 군중에는 활에 정통한 양요기(養繇基)란 소교(小校) 가 있었다. 군사들은 그를 신전(神箭) 양숙(養叔)이라고 불렀다. 양요기는 락백에게 투월초와 활쏘기 시합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자청했다. 락백이 허락하자 그는 즉시 강 언덕 위로 올라가 투월초 진영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강폭이 이렇게 넓은데 화살이 어떻게 이곳까지 미치겠소? 공연히 화살만 낭비할 일이 아니라, 영윤께서 활을 잘 쏘신다고 하니 저와 활쏘기 시합을 하여 누구의 활솜씨가 높은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다리의 높은 곳에 서서 각기 화살을 세 번 쏘아 생사를 걸고 한번 겨루어 보면 어떻겠소?」

투월초가 물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저는 락백장군 휘하에 있는 소장 양요기라는 사람이오.」

양요기가 무명소졸이라는 소리를 듣고 투월초가 말했다.

「네가 나와 활솜씨를 겨루겠다고 하면 너는 반드시 나에게 먼저 세 개의 화살을 양보해만 한다.」

「설사 화살 세 대가 아니고 백 대라 한들 내 어찌 영윤을 두려워하겠소? 그리고 내가 만약 영윤의 화살을 피한다면 어찌 대장부라고 칭할 수 있겠소?」

두 사람은 즉시 각기 군사들을 뒤로 물리치고 끊어진 다리의 양쪽 끝에 서서 남북으로 마주 보았다. 투월초가 먼저 활을 잡아 당겨 양요기를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단지 양요기를 맞추어 강물 속으로 떨어뜨리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요기의 머리와 두개골을 동시에 겨냥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자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일을 이루는 자는 서두르지 않는다.’⑬라는 말도 있듯이 투월초는 조급한 마음으로 양요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양요기는 투월초가 쏜 화살이 자기 앞으로 날아오자 들고 있던 활의 한쪽 끝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쳤다. 투월초가 쏜 첫 번째 화살은 강물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날아오는 화살을 활로 쳐서 떨어뜨린 양요기가 의기양양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계속해서 빨리 쏘지 않고 무엇하고 있소?」

투월초가 다시 두 번째 화살을 활에 재고 시위를 잡아당기고 먼저 번보다는 좀 더 오랫동안 양요기를 노려보더니 쉿 소리와 함께 화살을 날렸다. 양요기가 몸을 굽혀 자세를 낮추자 그 화살은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가 버렸다. 투월초는 양요기가 자기의 화살을 몸을 굽혀 피하는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너는 날아오는 화살을 몸을 비켜 피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몸을 굽혀 몸을 피하는가? 너는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구나!」

양요기가 대답했다.

「너에게 화살이 하나 더 있지 않느냐? 다음에는 내가 몸을 비켜 몸을 결코 피하지 않으리라! 네가 만약 그 화살로 나를 못 마친다면 틀림없이 나로 하여금 활을 쏠 수 있도록 할 수 있겠느냐?」

투월초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네가 내 화살을 피하지 않는다면 이 화살이 틀림없이 너를 맞추어 네 목숨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 터인데 네가 활을 쏠 기회나 있겠느냐?」

다시 투월초가 세 번째 화살을 취하여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 양요기를 향하여 발사했다. 잠시 후에 반군 진영에서 나는 함성이 들렸다.

「맞았다!」

양요기는 땅에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군사들이 자세히 보니 날아오는 화살을 입을 크게 벌려 이빨로 물고 있았다. 자기가 쏜 세 개의 화살이 전부 양요기를 맞히지 못하자 마음속으로 이미 황망하게 된 투월초는 자기가 대장부라는 말을 꺼내어 호언장담한 말에 대해 실언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내가 너에게 활을 세 번 쏠 것을 허락한다. 네가 만약 세 번다 맞추지 못한다면 다시 내가 화살을 다시 세 번 쏘겠다.

양요기가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에게 화살을 날리는 영윤의 솜씨를 보니 나를 따라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소. 영윤의 목숨을 끊는 데는 단지 한 개의 화살만으로도 족하겠습니다.」

투월초가 대답했다.

「네가 큰 소리를 친다마는 조그만 기량이라도 있고 없는지는 네가 활을 쏘는 모습을 보아야만 하지 않겠느냐?」

투월초가 말을 마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찌 화살 한 개로 나를 맞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이번 화살로 나를 맞추지 못한다면 내가 큰소리를 쳐서 그를 멈추게 해야겠다.」

투월초는 마음을 대담하게 먹고 양요기로 하여금 활을 쏘도록 했다. 그러나 투월초는 양요기의 활 솜씨가 백발백중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양요기가 화살을 한 대 뽑아 손에 들고 투월초를 향해 소리쳤다.

「영윤은 나의 활 솜씨를 한번 보시라!」

그러나 양요기는 화살을 활에 재지 않고 활시위만을 잡아 당겼다. 투월초가 활시위 소리를 듣고 화살이 날아오는 줄로 알고 몸을 좌로 한번 틀어 피하려고 했다. 양요기가 보고 말했다.

「화살이 아직 내 손에 있어 활에 재지도 않았는데 영윤은 화살이 날아오는 줄 알고 몸을 피하니 정말로 대장부가 아니로다! 영윤은 이번에도 몸을 돌려 피하겠는가?」

「내가 몸을 돌려 피할줄 알고 화살을 쏘지 않음은 네가 진정 활 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양요기가 다시 화살을 재지 않고 활시위만 당기자 투월초도 역시 몸을 우로 한번 틀어 피하려고 하였다. 양요기가 그 순간을 틈타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활에 재고 쏘자 투월초는 화살이 날아오는 줄도 모르고 미처 몸을 피하지 못했다. 양요기의 화살은 날아가 투월초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가련하게도 전쟁터를 평생 누빈 백전노장이며 십수 년간 초나라의 영윤을 지냈던 투월초가 금일 한낱 이름도 없는 소장 양요기의 화살 한 개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양요기의 무용을 노래했다.

자기 분수를 아는 자만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데

욕심이 많은 영윤은 다시 왕의 꿈을 꾸었구나!

신전장군이 시합을 한번 청한 것만으로도

다리 건너편의 투월초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人生知足最爲良(인생지족최위량)

令尹貪心又想王(영윤탐심우상왕)

神箭將軍聊試技(신전장군료시기)

越椒已在隔橋亡(월초이재격교망)

6. 不逃就烹(부도취팽)

- 죽음을 피해 도망가지 않고 가마솥의 끓는 물 앞으로 달려온 투극황(鬪克皇) -

투월초 휘하의 투씨 종족들의 군사들은 이미 스스로 배도 고프고 한편으로는 피로에 지쳐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의 주장이 화살에 맞아 절명한 모습을 보자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공자측과 공자영제는 길을 갈라 도망가는 투씨 집안의 군사들을 추격하여 살해했는데 그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그 피는 흐르는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투월초의 아들 투분황은 얼마간의 일족들을 데리고 당진으로 도망쳤다. 당진의 군주가 투분황을 대부에 임명하고 묘(苗)⑭땅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래서 투분황은 성씨를 묘(苗)로 삼았다.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다.

초장왕이 이미 투월초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자 군사들에게 회군을 명하고 사로잡은 투씨 종족들을 포함한 반란군들을 모두 영문에서 참수형에 처했다. 장왕의 군사들은 개선가를 부르며 영도(郢都)에 다시 입성하여 투씨 종족들은 크고 작고를 불문하고 하나도 남김없이 잡아서 참수했다. 단지 투반의 아들로써 잠윤(箴尹) 벼슬을 하고 있었던 투극황(鬪克黃)은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장왕의 명을 받아 제나라와 섬진에 수호사절로 가는 바람에 초나라를 떠나있게 되었다. 투극황은 제나라에 갔다가 다시 섬진으로 가기 위해 송나라에 들리게 되었다. 그는 송나라에서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싸움 중에 전사하고 투씨 일족이 멸족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투극황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초나라에 귀국하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극황이 좌우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군주는 하늘과 같다. 하늘의 명을 내가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투극황은 그 즉시 좌우에게 수레를 빨리 달리게 하여 영도에 들어와 제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일을 복명하고는 사구(司寇)에게 지시하여 포박을 지우게 하여 스스로 죄수가 되어 장왕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나의 조부이신 자문(子文)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투월초는 반골의 상을 갖고 있어 필시 그로 인해 우리 투씨 일족은 멸족을 당할 운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부께서 임종하실 때에 저의 부친을 불러 멸족의 화를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치라고 당부하셨지만 부친께서는 초나라로부터 입은 은혜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어 다른 나라로 망명하지 않으시다가 결국은 투월초로 인하여 주살 당하셨습니다. 이는 과연 조부이신 자문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미 불행히도 우리는 역적의 가족이 되었고 또한 선조의 훈시를 따르지 않아 이렇게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오늘 제가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어찌 형을 피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장왕이 듣고 탄식하였다.

「자문은 진실로 귀신과 같은 사람이로다. 하물며 초나라를 다스려 큰공을 세운 사람인데 어찌 내가 그의 후사를 끊을 수 있겠는가? 」

장왕이 즉시 투극황의 죄를 용서하고 말했다.

「투극황은 형을 피하여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자청하였으니 그는 곧 충신이다.」

장왕은 다시 그의 관직을 예전과 같이 복귀시키고, 그의 이름을 투생(鬪生)으로 바꾸어 부르게 했다. 죽음을 청하여 삶을 얻었다고 해서 장왕이 지어 준 이름이었다. 이어서 장왕은 양요기가 화살 한 개로 세운 공을 표창하여 큰상을 내리고 근위군을 이끄는 장수에 임명하고 다시 장왕의 융거에 타는 차우장군의 직을 겸하게 했다. 장왕은 또한 영윤의 자리에 앉힐 사람을 그때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가 심(沈)⑮땅의 윤(尹)으로 가 있던 우구(虞邱)가 어질다고 하여 그로 하여금 초나라의 국사를 맡겼다.

8. 絶纓大會(절영대회)

- 관끈을 끊어 신하를 보호하다. -

장왕은 투월초와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영도의 궁궐 안에 있는 점대(漸臺)위에 큰 연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궁궐의 비빈들을 모두 나오게 하여 같이 어울리도록 하였다. 장왕이 말했다.

「내가 가무를 즐기지 않은지 이제 6년이 되었다. 금일 역적의 목을 쳤으니 나라 안이 이제 안정이 되었다. 오늘은 여기 있는 모든 경들과 같이 온종일 즐겨 볼까 하여 내가 이를 태평연(太平宴)이라 이름 짓고 잔치를 벌여볼까 한다. 문무대소 관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들어와 자리에 앉아 음식과 술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마시기 바란다.」

군신들이 모두 장왕에게 배례를 올리고 순서에 따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요리사들은 음식을 내오고 태사들은 음악을 연주하였다. 초나라의 군신들은 음식과 술을 즐기던 중 해가 어느덧 서산으로 떨어져 천색이 희미하게 되었으나 연회의 흥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장왕이 내시들에게 명해 등불을 밝히도록 명하고 그가 총애하는 허희(許姬)를 시켜 여러 대부들에게 술을 한잔씩 따르게 했다. 대부들이 모두 일어나 서서 술을 받아 마시던 중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더니 당내의 등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좌우에서 미처 불을 켜지 못하고 있던 중에 연회석 상에 어떤 사람이 있어 허희의 미모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어둠을 이용하여 그녀의 소매를 손으로 잡아 당겼다. 허희가 왼손으로는 자기의 소매를 끊고 오른손으로는 그 사람의 관끈을 낚아채어 떼어 내자 어둠 속의 그 사람이 놀라 손을 놓았다. 허희가 관끈을 손에 쥐고서 어둠 속을 더듬어 장왕 앞으로 걸어와서는 귓속말로 고했다.

「첩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백관들에게 술을 따르고 있는데 무례한 자가 하나 있어 등불이 꺼진 틈을 타서 강제로 첩의 소매를 잡아 당겼습니다. 첩이 이미 그의 관끈을 끊어 손에 가지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불이 켜시고 그자를 잡아들이십시오!」

장왕이 서둘러 등불을 밝히려는 자에게 명하였다.

「잠시 등불 켜기를 멈추어라! 과인이 오늘 연회를 베푼 목적은 여기 있는 여러 백관들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여러 백관들은 모두 머리에 쓴 관의 끈을 끊고 마음껏 마시기 바란다. 관끈을 끊지 않은 자는 내가 마련한 연회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기겠다.!」

그러자 백관들이 장왕의 명을 쫓아 모두 자기가 쓰고 있던 관끈을 끊었다. 장왕은 여러 신하들이 모두 관끈을 끊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등불에 불을 붙이고 술과 음식을 계속 내어 백관들로 하여금 마음껏 즐기게 하였다. 결국은 허희의 소매를 잡아당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연회가 끝나고 궁궐의 침전으로 돌아온 장왕에게 허희가 불만을 말하였다.

「첩은 남녀지간에는 서로 무례하게 굴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군신 간에는 더욱 불가한 일입니다. 오늘 대왕께서 첩으로 하여금 여러 신하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여 제가 공경하는 태도로 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무례한 자가 어둠을 이용하여 제 소매를 잡아당겨 제가 그의 관끈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대왕께서는 무례한 자를 찾아내시지 않으셨으니 앞으로 어찌 상하간의 예의를 밝혀 남녀 간을 구별하도록 하시겠습니까?」

장왕이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일은 부녀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옛말에 군주와 신하가 같이 즐기기 위해 마시는 술은 석 잔을 초과하면 예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도 단지 낮 동안만 가능하고 밤에는 같이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오늘 과인이 군신들에게 마음껏 즐기라고 명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등불까지 밝히라고 하였다. 술을 마시면 실수를 범하는 됨은 인지상정이다. 만약에 내가 무례한 자를 찾아내어 벌을 주었다면 부인의 절제는 빛나게 되었겠지만 반대로 나라의 사대부들은 마음을 상했을 것이다. 군신들의 마음이 모두 불쾌하게 되면 그것은 과인이 연회를 베풀어 군신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던 원래의 뜻에 반하기 때문이다.」

허희가 마음속으로 복종했다. 후세 사람들은 장왕이 베풀었던 그 연회를 절영회(絶纓會)라고 이름지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장왕의 처사를 칭송했다.

어둠속에서 소매를 잡아당김은 취중의 인지상정이라!

섬섬옥수가 바람과 같아서 관끈을 이미 끊어 버렸다!

다만 군왕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니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 살 수 없음을 알지 못하는가?

暗中牽袂醉中情(암중견메취중정)

玉手如風已絶纓(옥수여풍이절영)

盡說君王江海量(진설군왕강해량)

畜魚水忌十分淸(축어수기십분청)

9. 一人之智 掩無窮才士(일인지지 엄무궁재사)

- 혼자만의 지혜로 재사들의 앞길을 막지 말라 -

하루는 영윤 우구(虞邱)와 정사를 논하다가 어느덧 밤이 되어 바로 궁궐로 되돌아 온 장왕에게 부인 번희(樊姬)가 물었다.

「조당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늦게까지 조회를 파하지 않으셨습니까?」

「과인이 우구와 정사를 논하다가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러 늦게 되었소.」

「우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 초나라의 어진 사람이오!」

「이 첩의 소견으로는 우구는 틀림없이 어진 사람이 아닌 듯 싶습니다.」

「부인이 어떻게 우구가 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소?」

「신하된 자가 군주를 받들어 모시는 방법은 마치 부인이 그 남편을 모시듯이 해야 합니다. 첩은 중궁의 일을 주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궁중의 아름다운 여자라면 모두 대왕 안전에 바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구가 대왕과 국정을 밤늦도록 까지 논하면서 아직까지 한 사람의 현인도 천거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무릇 한 사람의 지혜는 유한하고 우리 초나라의 인재는 무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구는 자기 한사람의 지혜로써 우리 초나라의 무궁한 재사(才士)들의 지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찌 그를 현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⑯

장왕이 그 말을 옳다고 생각하여 다음날 아침에 조회에 나가 번희의 말을 우구에게 전했다. 우구가 듣고 말했다.

「신의 어리석음은 도저히 부인의 지혜에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마땅히 부인의 말대로 나라 안의 재사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우구가 여러 군신들을 찾아다니며 나라 안에 현사가 있으면 추천하라고 했다. 투생이 위가의 아들 위오(蔿敖)가 현인이라고 천거했다.

「그는 투월초의 란을 피해 몽택의 들판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 초나라의 장상 재목입니다.」

우구가 장왕에게 위오를 천거하자 장왕이 말했다.

「위오의 부친 백영(伯嬴) 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이라면 필시 범상하지 않은 재사일 것이오. 경의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잊을 뻔 했소」

장왕이 즉시 우구에게 명하여 투생과 동행하여 수레를 몰고 몽택으로 가서 위가를 데려와 오게 하여 임용해 쓰려 하였다.

10. 埋兩頭蛇之報(매양두사지보)

- 양두사를 땅에 묻은 선행으로 화를 복으로 만든 손숙오(孫叔敖)

한편 자가 손숙(孫叔)인 위오를 사람들은 손숙오(孫叔敖)라 불렀다. 모친을 모시고 투월초의 란을 피하여 몽택의 들판으로 들어간 그는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자급하여 살았다. 하루는 호미로 땅을 일구다가 밭 가운데에서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을 보게 되었다. 위오가 놀라며 혼자 말로 하였다.

「내가 들으니 머리가 둘 달린 뱀은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라 그것을 보게 되는 자는 필시 죽는다고 하는데 내가 이제 죽게 되었구나!」

그리고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만약에 이 뱀을 살려 두었다가는 다른 사람이 다시 보게 되면 또한 그 사람도 죽게 되지 않겠는가가? 차라리 이 뱀을 죽여 다른 사람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위오는 즉시 호미를 휘둘러 머리가 둘 달린 독사를 죽여 밭 가장 자리에 묻고 모친에게 달려가 흐느껴 울었다. 그의 모친이 우는 까닭을 묻자 위오가 대답했다.

「제가 들으니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본 사람을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아들이 그 뱀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어머님을 모시지 못하게 되어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그 모친이 위오에게 물었다.

「그 뱀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그 사람도 죽게 되니 제가 죽여 파묻었습니다.」

「사람이 한 가지 마음으로 선하게 생각하면 하늘이 반드시 돕는 법이다. 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여 죽여서 묻었다 하니 네가 행한 선행을 어찌 한 가지 마음으로만 끝나겠느냐? 너는 절대 죽지 않고 오히려 장차 복을 받게 되리라! 슬피 울지 말아라!」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구와 투생이 위오가 살고 있는 곳에 당도하여 장왕의 명을 전했다. 그 모친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은 뱀을 죽여 매장한 선행에 대해 보답을 받았음이라!」

손숙오와 그 모친이 우구를 따라서 영성으로 돌아왔다. 장왕이 손숙오를 만나서 그와 대화를 한번 해보고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초나라의 여러 신하들 중에 그대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소.」

장왕은 즉시 손숙오를 초나라의 영윤으로 임명하였다. 손숙오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밭에서 농사나 짓던 농부에 불과한 사람인데 갑자기 나타나 초나라의 정사와 같은 큰일을 맡으라 하시니 어찌 사람들이 신에게 복종하겠습니까? 청컨대, 여러 대부들의 뒤에 서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이 경을 알고 있도다! 경은 절대 사양하지 말라!」

손숙오가 재삼 사양한 끝에 결국은 영윤의 직을 받아 들였다. 영윤에 임명된 손숙오는 초나라의 제도를 살펴서 군법을 세웠다. 무룻 병참부대는 군행(軍行)이라 하고 군우(軍右)와 군좌(軍左)로 나누었다. 군우에 속해 있는 군사들은 진영에서 전투 준비를 하고 군좌에 속해 있는 군사들은 마초와 깔개를 구하여 군사들의 숙영을 준비하는 암무를 주어 구분했다. 전대(前隊)는 모려무(茅慮无), 중군(中軍)는 중권(中權), 후대(後隊)는 후경(後勁)이라 했다. 전대에 해당하는 모려무의 임무는 깃발을 앞세우고 적병의 유무를 살핀다는 뜻에서 ‘꾀하여 살피다’라는 뜻의 모려(謀慮)라고도 했으며, 중권이라는 것은 모든 군령과 작전지시가 이곳에 나오니 절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의해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이름지었다. 후경이라는 부대는 가장 강한 군사로 후위를 삼아 싸울 때는 기습을 하는 군사로 쓰고 후퇴할 때는 아군의 후위를 맡아 적의 추격군을 막는 임무의 부대였다. 왕의 호위를 위해서 근위군을 두는데 이광(二廣)으로 나누었다. 매 광은 병거 15승으로 하고 매 승(乘)은 보졸 100인과 후위에 25인을 보충병으로 따르게 했다. 우광은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시(五時) 동안을 경비하게 했으며 좌광은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로 나누어 또 다른 오시동안을 경비하게 하였다. 매일 닭이 울 때가 되면 우광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사방을 순시하다가 해가 중천에 이르게 되면 좌광과 임무를 교대하고 황혼이 되면 순찰을 중지하게 하였다. 궁궐의 내시들도 분반을 하여 순서에 따라 해시와 자시에 이르는 동안 순찰을 돌게 하여 뜻밖의 변란에 대비하게 하였다. 초나라의 군사들은 우구로 하여금 중군을 맡게 하고 공자영제는 좌군, 공자측은 우군을, 양요기는 우광, 굴탕(屈蕩)은 좌광을 지휘하게 하였다. 각군의 지휘관들에게 수시로 군사들을 집합시킨 후에 사열을 하여 평상시에도 군기를 갖추게 하여 삼군이 엄숙하게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작피(芍陂)⑰)지방에 수리 공사를 크게 벌려 육(六)⑱땅과 요(蓼)⑲땅을 경계로 하여 수전(水田) 만경(萬頃)⑳을 새로 개간하여 모든 백성들이 칭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초나라의 여러 신하들은 장왕이 손숙오만을 총애하자 처음에는 모두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았으나 이어 손숙오가 처리하는 일에는 하나하나가 모두 조리가 분명히 서 있어 모든 사람들이 찬탄해 마지않으면서 말했다.

「초나라에 복이 있어 이렇게 훌륭한 신하를 얻었으니 마치 자문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다고 하겠다.」

- 당초 영윤 자문을 얻게 되어 초나라가 크게 다스려 졌는데 이번에 다시 손숙오를 얻게 되어 마치 자문이 다시 살아났다고 한 말이다.-

한편 주정왕 원년 기원전 606년 정나라에서는 목공(穆公) 란(蘭)이 죽고 세자 이(夷)가 그 뒤를 이었다. 이가 정영공(鄭靈公)㉑이다. 공자송(公子宋)과 공자귀생(公子歸生)이 정나라의 정사를 맡아 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당진과 초나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느 쪽에 붙을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초장왕과 손숙오가 상의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던 차에 갑자기 정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정영공이 공자송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장왕이 정나라의 정변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내가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던 참에, 마침 명분을 찾게 되었다.」

《제52회로 계속》

주석

①수양산(首陽山)/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가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산 이름으로 지금의 산서성 하곡부(河曲部)의 수산(首山)을 말한다.

②진성공(晉成公)/ 진문공의 막내 아들로 기원전 606년에 즉위하여 600년에 죽었다. 기원전 600년 진성공이 제후들을 지금의 하남성 원양현 서의 호(扈) 땅에 소집한 회맹에 참석했다가 불참한 진(陳)나라를 정벌하러 행군 중에 죽었다.

③육혼지융(陸渾之戎)/ 융족(戎族)의 한 지파. 원래 섬진(陝秦)과 당진(唐晉)의 경계인 황하 남안(南岸)에 살다가 이천(伊川) - 지금의 하남성 이천현(伊川縣)과 숭현(嵩縣) 동북 일대- 부근으로 옮겨 살았다.

④대우(大禹)/ 요임금 밑에서 황하의 치수 공사를 맡았으나 실패하여 살해된 곤(鯤)의 아들이다. 순임금으로부터 그 부친의 뒤를 이어 치수 사업을 물려받아 용문산(龍門山)을 뚫어 황하의 강물을 하류로 흐르게 하여 백성들이 마 놓고 농사를 짓게 만들었다. 순임금으로부터 임금의 자리를 선양 받아 하(夏)왕조를 창건했다.

⑤구정(九鼎)/ 하나라의 우(禹)임금이 천하의 물길과 땅을 평정한 다음 모든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고 그것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정(鼎)을 주조(鑄造)하였다. 이후로 천하의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보물이 되었다.

⑥삼대(三代)/ 하(夏), 은(殷), 주(周) 세 왕조를 말함.

⑦겹욕(郟鄏)/ 현 하남성 낙양(洛陽) 서쪽에 있었던 주나라의 옛 도성(都城)

⑧몽택(夢澤)/ 동정호 일대의 소택지로 운몽택(雲夢澤)을 말함.

⑨증야(蒸野)/ 지금의 하남성 양번시(襄樊市) 북 30키로의 신야현(新野縣)을 말한다. 삼국지의 유비가 이곳의 성주로 있다가 양번시 근교의 융중(隆中)에 살고있던 제갈공명을 만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⑩장서(漳筮)/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를 말한다.

⑪황호(皇滸)/ 지금의 하남성 양번시(襄樊市) 경내 서쪽에 있었던 초나라 소속의 고을.

⑫경릉(竟陵)/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잠강(潛江) 서쪽, 초나라 도성인 영성(郢城) 동 30키로 있었던 고을

⑬忙者不會(망자불회), 會者不忙(회자불망)

⑭묘(苗)/춘추 때 당진의 영토로서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경내 서쪽 25키로의 소원향(邵源鄕)에 있었던 고을.

⑮심(沈)/지금의 하남성 평여(平輿)에 있었던 희성(姬姓) 제후국. 주문왕의 아들 계재(季載)가 처음으로 봉해진 나라였으나 춘추시대 초반에 채나라에 멸망했다가 다시 초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⑯“臣之事君, 猶婦之事夫也. 妾備位中宮, 凡宮中有美色者, 未常不進于王前. 今虞邱與王論政, 動至夜分, 然未聞進一賢者. 夫一之智有限, 而楚國之士無窮, 虞邱欲役一人之智, 以掩無窮之士, 又烏得爲賢乎?」

⑰작피(芍陂)/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수현(壽縣) 남쪽에 있었던 소택지.

⑱육(六)/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동북의 육안시(六安市)에 있었던 언(偃) 성(姓)의 군소 제후국. 순임금이 수리 공사에 공을 세운 고도(皐陶)를 이곳에 봉했다. 초목왕(楚穆王) 4년 기원전 622년에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⑲요(蓼)/ 무(繆)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고시현(固始縣) 북의 당시 여수(汝水)와 회수(淮水)가 합류하는 곳에 있었던 중소제후국. 처음에는 희성(姬姓) 제후국이었으나 후에 고도(皐陶)의 후예들로 교체되었다. 초목왕 4년 기원 622년 육(六)과 함께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⑳만경(萬頃)/일경(一頃)은 백 무(畝)에 해당하고 춘추전국 시대 때 한 무(畝)는 55평(약 180㎡)이다. 즉 일경은 5,500 평이며, 만경은 5,500만 평에 해당하는 넓이이다.

21)정영공(鄭靈公)/ 기원전 605년에 재위에 올라 그 해에 자라탕 문제로 인해 공자송(公子宋)과 공자가(公子家)에게 살해당했다.

【평 설】

하나라를 세운 대우(大禹)가 천하를 9주로 나눈 후에 구정을 주조하여 그 땅들을 대표하도록 하여 중국의 권력을 상징하는 전국의 보기가 되었다. 구주의 이름은 기(冀), 예(豫), 청(靑), 서(徐), 양(揚), 형(荊), 연(兗), 양(梁), 옹(雍)이다. 구정은 하상주(夏商周) 삼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최고 통치자 즉 천자의 전유물 되어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면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다.

기원전 606년 초장왕(楚莊王 : 재위 기원전 613-592년)이 마침내 그 금기를 깨고 구정의 크기와 무게에 대해 질문하면서, 주천자의 권력을 넘보고 있다는 자기의 뜻을 밝히고 최소한 주천자의 깃발 아래 패자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했다.

초나라는 장강과 한수 일대를 근거지로 일어난 나라다. 기원전 740년 초무왕이 왕호를 칭한 이래, 성왕(成王), 목왕(穆王)의 치세로 그 국력이 점점 강대해져 중원의 여러 제후국들을 속국으로 삼았다. 이에 패자가 된 진문공은 초나라의 북상을 저지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초목왕은 쉬지 않고 진나라에 도전했다. 목왕의 뒤를 이어 초왕의 자리에 오른 장왕은 처음 3년 동안은 황음무도하고 신하들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들은 교묘한 간언으로 그를 개변시켜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 三年不飛 飛必沖天, 三年不鳴 鳴必驚人’의 경우인 것이다.

장왕이 재위기간 중 이룬 행적은 다음과 같다.

1. 중원으로 북상하여 진(晉)나라와 패권을 다투었다. 송나라를 정벌하여 진나라의 참전을 유도, 필에서의 싸움에 승리를 취함으로 해서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는 중원에 대해 무력을 행사하여 중원의 현실적인 실력을 시험했다. 육혼지융(陸渾之戎)을 정벌하고 낙수(雒水)를 도하하여 주천자의 나라에 들어가 구정에 관해 물었다. 그 목적은 주천자의 초나라에 대한 주의를 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섬진군이 당진군을 정벌함으로 해서 주천자는 섬진을 패자로 책봉하려는 마음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2. 투월초의 반란을 진압함으로 해서 내부의 단결을 공고히 했다. 투월초는 초장왕이 북벌을 위해 원정을 나간 틈을 이용하여 영도에 남아있던 장왕의 충신들을 살해한 다음 도성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장왕의 퇴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장왕은 거짓으로 후퇴하는 작전을 펼처 투월초의 군사들을 유인하여 반란군을 피로에 지치게 만들어 결국은 싸움에서 승리하고 반란을 진압했다.

3. 조그만 예절에 묶이지 않고 국인들을 단결하게 했다. 이는 그가 연 절영대회의 진행과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투월초의 란을 진압한 장왕은 기쁜 마음으로 커다란 잔치를 열었다. 장왕의 애첩이 자기를 희롱한 신하의 관 끈을 끊어 그를 벌주기를 장왕에게 청했으나, 장왕은 오히려 모든 신하들에게 관끈을 모두 끊은 후에 계속 술을 마시게 해서 그의 애첩을 희롱한 관원이 죄를 면하게 했다.

일국의 주인으로써 초장왕이란 위인은 ‘재상의 뱃속에서는 배도 저을 수 있다(宰相肚里能撑船)’라는 말의 재상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추구하고자한 것은 자기의 애첩을 희롱한 자를 비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소 책략적이었던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는 애첩의 면목을 살리는 것과 정권을 공고히 하여 패업을 이룩하는 것을 서로 비교하여 전자는 작은 일이고, 후자는 큰 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한 것이다. 인재들을 필요한 시점에서 자기 애첩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하들의 마음을 잃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4. 손숙오(孫叔敖) 등의 현인을 임용하여 내정을 개혁하고 군사들을 조련함으로써 초나라의 국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상술한 국내외의 여러 가지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초장왕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날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목록
1411
[일반] 제3부5권 초장왕 연표(기원전 626 - 581년)

제3부 중원을 놓고 다투는 당진(唐晉)과 초(楚) 제5권 초장왕(楚庄王) - 기원전 626 - 581년 기원 전 周 대사(大事) 魯
42.5K 양승국 04-05-11
[일반] 제3부5권 초장왕 목차

제 III 부진초쟁패(晉楚爭覇) 제5권 초장왕(楚庄王) 제46회 被激察機 渡河焚舟(피격찰기 도하분주)고모를 격분시켜 부왕의 뜻을 살핀 초나라
양승국 04-05-11
[일반] 제57회. 巫臣逃晉(무신도진), 趙氏孤兒(조씨고아)

제57회 巫臣逃晉 趙氏孤兒(무신도진 조씨고아) 하희를 취해 당진으로 달아난 초나라 대부 무신과 정영(程嬰)의 도움으로 조씨 종족을
양승국 04-05-11
[일반] 제56회. 登臺笑客(등대소객), 易服免君(이복면군)

제56회 登臺笑客 易服免君(등대소객 역복면군) 대에 올라 사신들을 회롱한 제나라의 소부인과 어의를 바꿔 입고 제후를 위난에서 구한 방추보
양승국 04-05-11
[일반] 재55회. 登床劫將(등상겁장), 結草報恩(결초보은)

제55회登床劫將 結草報恩(등상겁장 결초보은) 침상의 적장을 위협하여 화의를 이끌어 낸 송나라의 화원과 결초로 두회의 발목을 잡아 보은
양승국 04-05-11
[일반] 제54회. 縱屬亡師(종속망사), 托優悟主(탁우오주)

제54회 縱屬亡師 托優悟主(종속망사 탁우오주) 부하장수들을 다스리지 군사를 잃은 당진의 순림보(荀林父)와 연극으로 초장왕을 깨우친 초나라의
양승국 04-05-11
[일반] 제53회. 株林宣淫(주림선음) 蹊田奪牛牛(혜잔탈우)

제53회 株林宣淫 蹊田奪牛(주림선음 혜전탈우) 주림에서 신하들과 함께 혼음을 즐기다가 시해당하는 진영공과 시군의 죄를 묻는다는 핑계로
양승국 04-05-11
[일반] 제52회. 嘗黿搆逆(상원구역), 衵服戱朝(일복희조)

제52회 嘗黿搆逆 衵服戱朝(상원구역 일복희조) 자라탕을 맛보려 하다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여자의 속곳으로 조당을 희롱한 진
양승국 04-05-11
[일반] 제51회. 董狐直筆(동호직필), 絶纓大會(절영대회)

제51회 董狐直筆 絶纓大會(동호직필 절영대회) 직필로 조돈을 책망한 사관의 사표 동호(董狐)와 투월초를 주살하고 절영대회를 연 초장왕 1. 도
양승국 04-05-11
[일반] 제50회. 一飛沖天(일비충천), 桃園忠諫(도원충간)

제50회 一飛沖天 桃園强諫(일비충천 도원강간) 한 번 날아 하늘을 뚫은 초장왕과 도원에서 영공에게 온힘을 다해 간한 조돈 1. 살적입서(殺嫡立
양승국 04-05-11
[일반] 제49회. 厚施買國(후시매국), 竹池遇變(죽지우변)

제49회 厚施買國 竹池遇變(후시매국 죽지우변) 백성들에게 인심을 베풀어 나라를 산 송나라의 공자포와 죽지에서 변을 당해 목숨을 잃은
양승국 04-05-11
[일반] 제48회. 五將亂晉(오장란진), 召賢紿秦(소현태진)

제48회 五將亂晉 紿秦召賢(오장란진 태진소현) 선극을 살해하고 변란을 일으킨 당진의 다섯 장수들과 섬진을 속여 현인 사회를 불러온 당진
양승국 04-05-11
[일반] 제47회. 吹簫跨鳳(취소과봉), 背秦立君(배진입군)

제47회 吹簫跨鳳 令狐失信(취소과봉 영호실신) 퉁소로 부른 봉황을 타고 하늘에 올라 선녀가 된 농옥과 영호에서 섬진과의 신의를 버리고 영
양승국 04-05-11
[일반] 제46회. 被激察機(피격찰기), 渡河焚舟(도하분주)

제46회 被激察機 渡河焚舟(피격찰기 도하분주) 고모를 격분시켜 부왕의 뜻을 살핀 초나라의 태자 상신과 하수를 건넌 후 배를 불태워 전의를 불태
양승국 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