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63 
· 어제 :  87 
· 최대 :  2,389 
· 전체 :  1,515,223 
 
  2004-05-11 11:49:094100 
제56회. 登臺笑客(등대소객), 易服免君(이복면군)
양승국
 一笑之仇.jpg  (73.3K)   download : 146
 제56회- 기원전 589년 진제의 안(鞍)에서의 싸움 001.jpg  (826.1K)   download : 86
일반

제56회 登臺笑客 易服免君(등대소객 역복면군)

대에 올라 사신들을 회롱한 제나라의 소부인과

어의를 바꿔 입고 제후를 위난에서 구한 방추보

1. 察見淵魚者不詳(찰견연어자불상) 知料隱匿者有殃(지료은닉자유앙)

- 깊은 물속에 사는 고기를 본 사람에게는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기고 깊은 곳에 감춰 둔 일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재앙이 생긴다.

당진이 몇 년을 계속해서 나라 안에 기근이 들자 도적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순림보가 나라 안에서 도적을 기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던 중 한 사람을 얻었다. 극씨(郤氏) 종족 사람으로 이름은 옹(雍)이라 했다. 이 사람은 도적을 구별해 내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어느 날 순림보가 극옹과 함께 시정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그가 어느 한 사람을 도적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림보가 부하를 시켜 잡아다가 심문한 결과 과연 도적이었다. 순림보가 물었다.

「어떻게 그가 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가?」

「제가 그 사람의 미간을 살펴보니 시중의 물건을 탐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거리의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얼굴에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왔다는 소리에 얼굴에는 무서워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 수 있었습니다.”

극옹(郤雍)은 돌아다니며 매일 도적 수십 인을 잡아 들였다. 시정의 도적들이 모두 무서워하였으나 그 수는 오히려 더욱 많아 졌다. 대부 양설직(羊舌職)이 순림보를 찾아와 말했다.

「원수께서 극옹을 시켜 도적을 잡게 하고 있는데 도적들이 아직도 다 잡히지 않아 이로 인해 극옹은 죽을 때가 임박한 듯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옛말에 ‘깊은 물 속에 사는 고기를 본 사람에게는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기고 깊은 곳에 감춰 둔 일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재앙이 생긴다.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극옹 한 사람만의 능력만으로는 세상의 모든 도적들을 다 잡을 수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도적들이 힘을 합쳐 극옹을 해치려 한다면 그가 어떻게 화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양설직이 이야기 한지 3일이 못되어 우연히 교외에 나가게 된 극옹을 도적 떼 십여 명이 힘을 합쳐 공격해 죽이고 그 머리를 잘라 가 버렸다. 순림보도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진경공은 양설직이 한 말을 전해 듣고 불러서 물었다.

「경은 극옹이 죽게 될 것을 미리 헤아렸으니 도적을 없애는 대책도 알고 있겠소.」

「지혜로써 지혜를 제어하는 방법이 있는데 마치 바위를 풀 위에 눌러 놓으면 풀은 반드시 바위 틈 사이로 자라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방법인데 마치 돌을 던져 돌을 부수는 행위와 같아 두 개의 돌맹이는 모두 부셔지고 맙니다.② 고로 도적을 없애는 방법은 도적의 마음을 교화하여 염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도적을 많이만 잡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조정에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택해서 영화와 부귀를 내려 주어 백성들이 다 알 수 있도록 한다면 마음이 착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스로 감화되어 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면 어찌 도적 때문에 골치를 썩이게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 당진에 마음이 가장 선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경이 천거해 주기 바랍니다.」

「사회(士會)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말을 하면 반드시 지키고, 행동을 할 때는 의에 따라서 하고, 남과 좋게 지내지만 아첨하지 않으며, 청렴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강직하지만 도도하지 않고,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습니다. 주군께서는 반드시 그를 만인의 본보기로 받드십시오.③

얼마 전에 적적(赤狄)④의 땅을 평정하기 위해 출전했던 사회가 이윽고 임무를 끝내고 돌아왔다. 경공은 적적에서 잡아온 포로들을 주나라 정왕(定王)에게 바치면서 그것은 사회가 세운 공이라고 보고했다. 정왕은 사회에게 예복과 면류관(冕旒冠)을 하사하고 상경의 벼슬을 내렸다. 경공은 사회를 순림보가 죽어 공석 중인 당진의 중군원수의 뒤를 잇게 하고 더하여 세자를 위하여 태부의 직도 행하도록 명했다. 사회는 범(范)⑤ 땅에 봉해져 그는 범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회는 도둑을 잡기 위한 형법의 조항들을 모두 없애고 백성들을 교화하여 선민이 되도록 권장했다. 그때부터 간악한 무리는 모두 섬진으로 도망가고 당진에는 도적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당진은 이 후로 잘 다스려 져서 국력이 크게 신장되기 시작했다.

2. 登臺笑客(등대소객)

- 대에 올라 사신을 회릉하여 제나라에 전화를 불러들이는 소부인 -

이윽고 당진의 국력이 충실해지자 경공은 다시 패업의 뜻을 펴 보고자 모사 백종에게 그 의견을 물었다. 백종이 계책을 말했다.

「선군 문공께서 천토(踐土)⑥에서 회맹하기 시작한 이래 열국은 모두 우리 당진국에 복종했습니다. 문공의 아드님이신 양공 때에도 신성(新城)⑦에 다시 모여 맹약을 맺어 열국들은 감히 두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영호(令狐)에서 신의를 잃고⑧ 나서부터 섬진과는 우호관계가 두절되었고 곧이어 제(齊), 노(魯)에서 연이어 시역이 일어났어도 우리는 응징을 하지 못한 결과 산동 여러 나라들은 당진을 버리고 초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공하자 우리가 구원병을 보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으며, 계속해서 송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우리는 구원병을 보낼 수가 없어 결국은 송나라까지 포함하여 두 나라를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당진의 우산 밑에는 오로지 위(衛), 조(曹) 두 나라를 위시하여 서너 나라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제(齊)와 노(魯) 두 나라는 천하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제후국입니다. 주군께서 맹주의 업을 다시 일으키고 싶다면 우선 제노와 친선을 도모하십시오. 사신을 두 나라에 보내 그들의 정세를 계속 파악하고 있다가 초나라와의 사이에 틈이 생길 때를 기다려 초나라를 제압하면 맹주의 자리를 도모 할 수 있습니다.」

경공이 백종의 말을 따라 상군원수 극극(郤克)을 사신으로 삼아 예물을 후하게 준비하여 노와 제 두 나라에 보냈다.

당시 노나라 군주 선공(宣公)은 제나라 혜공(惠公)의 도움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 문안을 올려 제나라를 극진히 섬기고 있었다. 얼마 후에 제나라에서는 혜공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세자 무야(無野)가 제후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제경공(齊頃公)이다. 제경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7년이 지났으나 노나라는 여전히 예전의 관례에 따라 제나라에 일이 있을 때 마다 조빙사절을 보내 계속 제나라를 극진히 섬겼다. 이때 친선사절로 노나라에 도착한 극극이 선공에게 예를 올리고 그 군주인 경공의 뜻을 전했다. 며칠 후 그는 다시 노선공에게 제나라에 사절의 임무를 띠고 들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직인사를 고했다. 노선공도 역시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야 할 때가 되었음으로 상경 계손행보(季孫行父)로 하여금 사자로 삼아 극극과 함께 동행하도록 했다. 두 사람의 사신이 제나라의 국경에 당도했을 때 마침 위(衛)나라의 상경 손량부(孫良夫)와 조(曹)나라의 대부 공자수(公子首)도 역시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우연히 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네 사람의 사신이 만나 서로 오게 된 내력을 말했다. 그들은 뜻밖에 모두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사자의 임무를 띠고 제나라에 가게 되었음을 알았다. 네 사람의 대부가 제나라에 당도하여 객관에 같이 들어 하루 밤을 새고, 다음 날 아침에 모두 함께 제나라 궁궐에 가서 각기 자기나라 군주의 뜻을 전했다. 네 나라의 사신을 접견하는 의식을 끝낸 제경공은 그들의 용모를 살펴보고 마음속으로 기이하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대부들은 공관에 돌아가서 잠시 쉬고 계시면 그 사이에 즉시 연회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나라 대부들은 궁궐에서 물러 나와 객관으로 갔다. 경공이 입궁하여 그의 모친인 소태부인(蕭太夫人)을 뵙자 네 대부의 용모가 기이한 것에 대한 생각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소태부인은 소(蕭)나라⑨ 군주의 딸로서 경공의 부군인 혜공의 부인이다. 당시 소부인은 죽은 혜공을 생각하여 매일 눈물로 밤을 새우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경공은 매사에 모친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다. 항간에 우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그 일의 자초지종을 세세하게 이야기하여 그 모친이 웃는 모습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날 만은 웃기만 할뿐 그 연유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태부인이 물었다.

「밖에서 무슨 즐거운 일이 있어 그렇게 웃기만 하는가?」

「바깥에 즐거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실로 괴이한 일이 있어서 입니다. 오늘 당진, 노, 위, 조 등의 네 나라에서 각기 대부들을 사신으로 보내 왔는데 당진의 대부 극극은 눈이 하나뿐인 애꾸눈이고, 노나라의 대부 계손행보는 머리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에다가, 위나라의 대부 손량부는 두 다리의 길이가 서로 같지 않은 절름발이며, 조나라의 공자수는 두 눈이 땅바닥을 쳐다보는 곱사등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병을 앓고 나면 오형사체(五形四體)를 전부 갖추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단지 지금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온 네 사람은 각기 한 가지씩의 질병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같은 시간에 우리나라에 당도하여 무리를 지어 당에 올라와 저에게 예를 취하니, 이는 정말로 기이한 일이라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입니다.」

소태부인이 반신반의하면서 말했다.

「내가 한 번 볼 수 있겠는가?」

「사신이 도착하면 공식적인 연회가 있게 되고 그런 다음에 다시 관례에 따라 사적인 연회를 열게 됩니다. 내일 제가 명을 내려 숭대(崇臺) 후원에다 사적인 연회를 열도록 해서 사국의 대부들을 참석케 하면, 그들은 반드시 숭대 밑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모친께서 숭대 위로 올라가 장막 사이로 보십시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 날 궁궐에서 열린 공적인 연회에서는 별다른 일이 없이 지났다. 그 다음 날이 되어 경공은 사적인 연회를 열도록 명했다. 경공으로부터 귀띔을 받은 소태부인은 숭대 위로 미리 올라가서 사국의 대부들이 그 밑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옛날에는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사신이 타고 있는 모든 거마에는 주빈국이 종복들을 제공함으로써, 사신들을 따라온 종복들을 쉬게 하여 그들의 노고를 잠시나마 덜어 주려고 했던 것이 관례였다. 경공은 그 모친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할 목적으로 명을 내려 나라 안에서 아무도 몰래 애꾸눈, 대머리, 절름발이 및 곱사 등을 각각 선발하여 사국의 사신들의 거마를 몰게 했다. 극극은 애꾸눈이라 애꾸눈 종복으로, 행보는 대머리라 대머리 종복으로, 손량부는 절름발이라 절름발이 종복으로, 공자수는 곱사등이라 곱사등 종복으로 거마를 몰게 했다. 제나라 상경 국좌(國佐)가 보고 간언 했다.

「나라에 타국의 사신이 들어와 접대하는 일은 국가의 대사라 주빈은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손님을 접대하여야 합니다. 공경하는 마음만이 예를 행할 수 있습니다. 절대 사신을 희롱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경공은 국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연회장으로 오는 사국의 사신이 타고 있는 마차에는 각각 두 사람씩의 애꾸눈, 절름발이, 대머리, 그리고 곱사등이 타고 숭대 밑을 지나갔다. 소태부인이 숭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장막을 걷고 이 광경을 보자 참지 못하고 자연히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좌우의 시녀들도 역시 웃게 되어 그 소리가 숭대 밖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극극이 처음에는 애꾸눈 종자를 봤을 때 우연으로 생각하고 별로 괴이치 않게 여겼으나 높은 누각 안에서 부녀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황급히 술을 몇 잔 마시고 연회석에서 물러 나와 객관으로 돌아갔다. 그는 좌우의 사람을 시켜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그 사람이 돌아와 숭대 위에서 큰 소리로 웃은 사람은 경공의 모친 소태부인이라고 고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노, 위, 조 삼국의 사신들도 뒤따라 와서 극극을 쳐다보며 자기들이 당한 일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들은 제후가 고의로 자기들의 종복을 그들과 용모가 비슷한 사람을 선발하여 부인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회롱했다고 말하며 제경공의 도리 없는 행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극극이 세 나라의 대부들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좋은 뜻으로 수교를 위해 사신으로 왔는데 오히려 욕을 당하였으니 이 치욕을 갚지 못하면 우리는 장부가 아니요.」

계손행보 등 대부 세 사람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대부께서 당진으로 돌아가 만일 군사를 내어 제나라를 토벌한다면 우리들도 각기 주군에게 상주하여 온힘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여러 대부들의 마음이 한결 같으니 마땅히 피를 마셔 결맹하여 제나라를 토벌할 때 힘을 다하도록 합시다. 만일 맹세를 어기는 자는 천지신명께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사국의 대부들이 밤이 새도록 의논을 하던 중 어느덧 날이 밝았다. 그들은 제후에게 인사의 말도 없이 마차를 타고 각기 자기나라로 돌아 가 버렸다. 국좌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제나라의 환란이 이 일로 해서 시작되는구나! 」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빈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하찮은 불구들에게 마차고삐를 잡게 했는가?

숭대 위의 웃음소리가 나라의 고요함을 깨뜨리자

제나라의 변경에는 전쟁을 알리는 봉화가 올랐네!

主賓相見敬爲先(주빈상견경위선)

殘疾何當配執鞭(잔질하당배집편)

臺上笑聲猶未寂(대상소성유미적)

四郊已報起烽烟(사교이보기봉연)

그때 동문중수(東門仲遂)와 숙손득신(叔孫得臣)이 연달아 죽어 노나라의 정경이 되어 정사를 맡고 있던 중에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가다 제나라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어서 돌아오게 된 계손행보는 자기가 받은 치욕을 언젠가는 반드시 갚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당진에 되돌아간 극극도 진경공에게 제나라에 다녀온 일을 복명한 후에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토벌해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태부 사회의 반대로 아 경공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당진군의 출동이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조급하게 된 계손행보는 노선공에게 청하여 사신을 초나라에 보내 제나라 토벌을 위한 군사를 빌려 오도록 했다.

초나라에서는 마침 그때 장왕이 여행 중에 병을 얻어 죽고 13살 난 세자 심(審)이 뒤를 이어 즉위했다. 이가 초공왕(楚共王)이다. 이때가 주정왕 16년 기원전 591년의 일이었다. 사관이 장왕의 업적을 시로 지어 칭송했다.

훌륭하다! 장왕이어,

지키기도 하고 새롭게도 했다.⑩

왕이 되어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으나,

종내에는 초나라의 국세를 떨쳤다.

于赫庄王(우혁장왕)

干父之盖(간부지개)

始不飛鳴(시불비명)

終能張楚(종능장초)

안의 일은 번희가 도왔고,

밖의 일은 손숙오가 보좌했다.

하징서를 죽여 의를 세상에 세우고,

당진군을 물리쳐 무력을 천하에 뽐냈다.

樊姬內助(번희내조)

叔孫外輔(숙오외보)

戮舒播義(육서파의)

衄晉覿武(육진적무)

주왕실을 엿보고 송나라를 포위했고,

목소리에는 위엄이 서려 마치 호랑이 같았다.

형만(荊蠻)의 꿈틀거리는 벌레가,

제환공, 진문공과 같은 반열에 섰도다!

窺周圍宋(규주위송)

威聲如虎(위성여호)

蠢爾荊蠻(준이형만)

桓文爲伍(환문위오)

3. 삼환천정(三桓擅政)

- 군주를 제치고 정사를 멋대로 주무르는 노나라의 삼환씨 -

노나라의 출병 요청을 받은 초공왕은 부왕의 상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를 일으킬 수 없다고 거절했다. 계손행보는 초나라에서 돌아온 사자로부터 초공왕이 노나라의 청을 거절했다는 보고를 받고 마음속으로 분한 생각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진에 보낸 사람이 돌아와 그곳의 사정을 자세하게 고했다.

「극극은 매일 제나라를 토벌하는 이점을 말하고 제나라를 토벌하지 않고는 패업을 이룰 수 없다고 주청하여 그 군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극극의 생각을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극극에게 중권원수의 직무를 넘겨주고 향리로 은퇴했습니다. 지금 극극이 당진군의 중군원수가 되어 나라의 정무를 주관하고 있어 불원간 제나라를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보가 심히 기뻐하며 동문수의 아들 공손귀보(公孫歸父)에게 당진에 사신으로 보내야 한다고 노선공에게 품했다. 그를 보내려는 이유는 첫째로는 중군원수가 된 극극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제나라를 토벌할 시기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노선공은 중수의 도움으로 노후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중수의 아들 공손귀보를 다른 신하들과는 달리 매우 총애하고 있었다. 그때 노나라는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 등 세 집안의 자손이 번창했음으로 선공은 자기의 자손이 삼환씨(三桓氏)에게 능멸을 당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공은 사신으로 떠나는 공손귀보를 불러 두 손을 붙잡고 은밀히 부탁했다.

「삼환족은 날이 갈수록 번창하고 공실은 쇠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도 잘 알고 있는 일이오. 경은 이번 행차에 기회를 엿보아 당진의 군주에게 은밀히 이곳의 사정을 고한 후에 군사를 일으켜 삼환씨를 축출해 달라고 청하시오. 당진이 군사를 보내어 삼환씨를 축출해 주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매년마다 조공을 바치고 영원히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는 나의 마음을 전하기 바라오. 이 말은 조심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절대 누설시키지 마시오.」

노선공의 명을 받은 귀보는 많은 재물을 들고 당진국 도성으로 들어갔다. 귀보는 당시 진경공의 총신 도안고(屠岸賈)를 찾아갔다. 도안고에게 지참한 재물을 뇌물로 바친 귀보는 당진의 도움을 받아 노나라의 삼환씨를 축출해 달라는 노후의 뜻을 진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 도안고는 경공에게 아첨하여 사구(司寇)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당진의 조씨 집안에 죄를 얻은 도안고는, 조씨들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란씨(欒氏), 극씨(郤氏)들과 친분을 맺기 위해 왕래를 자주 하고 있었다. 도안고가 공손귀보의 이야기를 란서(欒書)에게 전하자 난서가 말했다.

「극극 원수께서 노나라의 계손씨와 함께 제나라에서 입은 치욕을 씻고자 하는데 이 일은 아마도 협조를 얻기 힘들겠습니다. 제가 한번 원수의 의중을 떠보겠습니다.」

란서가 극극을 만나 담론을 하다가 기회를 보아서 귀보의 일을 고했다. 극극이 듣고 말했다.

「이 사람이 노국을 변란에 빠뜨리고자 하는데 이는 결코 들어줄 수 없는 일이오.」

란서가 돌아가자 극극은 즉시 밀서를 한 장 써서 심복을 시켜 비보를 띄워 밤낮으로 달려가게 하여 계손행보에게 전하게 했다. 행보가 극극의 편지를 받아 보고 대노하여 말했다.

「옛날에 공자오(公子惡)와 공자시(公子視)를 시해한 일은 모두가 귀보의 아비인 중수(仲遂)가 모의하여 한 짓이었다. 나는 나라가 어지러워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옛일을 묻어두고 그들을 비호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그 아들이 나를 쫓아내려고 하니 이것은 과연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만드는 일과 같지 않은가?」

행보는 즉시 숙손교여를 불러 극극이 보낸 밀서를 보여 주었다. 숙손교여가 편지를 읽어보고 말했다.

「주공이 조정의 정사를 돌보지 않은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주공이 병을 핑계 대며 당진의 군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들이 다 같이 병문안을 가서 침상 앞에서 죄를 청하여 주공이 어떻게 나오나 살펴봅시다. 」

행보는 중손멸(仲孫蔑)을 불러 셋이 함께 병문안을 드리고 선공의 의중을 떠보자고 했다. 중손멸이 거절하면서 말했다.

「군신 간에 대질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 멸은 감히 동행하지 못하겠습니다.」

행보는 할 수 없이 사구 장손허(臧孫許)를 불러 동행했다. 세 사람이 궁문에 이르렀으나 선공의 병이 위독하다 하여 문병을 못하고 단지 선공의 병세만을 묻고 되돌아갔다. 다음날 선공이 죽었다. 그때가 주정왕 16년으로서 기원전 590년의 일이었다. 계손행보가 세자 흑굉(黑肱)을 노나라 군주로 옹립했다. 이가 노성공(魯成公)이다. 그때 성공의 나이는 13살이었다. 성공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노나라의 모든 정무는 계손행보가 전결했다. 행보가 노나라의 여러 대신들을 조당에 모아 놓고 의견을 말했다.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허약합니다. 정치와 형벌을 크게 밝혀야만 합니다. 원래 적자를 시해하고 서출을 임금으로 세워 제나라의 환심을 샀으나 당진과의 좋은 관계를 해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동문수가 저지른 짓으로 그는 나라를 그르치게 만든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합니다.」

여러 대부들은 행보의 말에 감히 이의를 제기 하지 못하고 모두가 명령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계손행보가 즉시 사구 장손허를 시켜 동문씨 종족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하도록 했다. 당진에서 사자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공손귀보는 노나라 경계에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선공은 이미 죽고 계손씨(季孫氏)들이 선친(先親)의 죄를 물어 중손씨(仲孫氏) 종족(宗族)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보는 길을 바꿔 제나라로 망명했다. 중손씨 종족들은 귀보의 뒤를 따라 모두 제나라로 들어갔다. 후에 유자(儒者)들이 논하기를 ‘중수가 몸소 세자를 죽이고 선공을 세웠으나 그가 죽자 자손들이 나라 밖으로 쫓겨나났다. 이는 그가 저지른 악행으로 얻은 이익이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도다!’ 라고 한탄했다. 염옹(髥翁)이 이 일을 시를 지어 노래했다.

공을 세워 천추에 걸친 부귀를 바랐는데

삼환과 원수가 되어 쫓겨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동문(東門)의 기둥은 부러지고 큰 나무는 말라죽으니

오로지 푸른 죽간에는 악명만 남았네!

援宣富貴望千秋(원선부귀망천추)

誰料三桓作寇仇(수료삼환작구구)

楹折東門喬木萎(영절동문교목위)

獨余靑簡惡名留(독여청간악명유)

4. 안지전(鞍之战)

- 안 땅에서 싸우는 진제(晉齊) 두 나라 -

노성공 2년 기원전 589년, 노와 당진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에 대한 토벌군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제경공(齊頃公)은 초나라와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내 그 시기에 관계치 않고 도움을 받고자 미리 예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몸소 병졸과 거마를 정돈하여 노나라를 먼저 치기 위해서 평음(平陰)⑪을 지나 용읍(龍邑)⑫으로 군사를 진격 시켜 진영을 세웠다. 그때 미천한 출신으로 경공의 총애를 받고 있던 노포취괴(盧蒲就魁)라는 아장 한 명이 병거를 휘몰아 경솔하게 앞으로 나아갔다가 용읍의 북문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경공이 사람을 루거의 사다리에 올라가게 해서 용읍의 군민들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우리의 로포장군을 돌려주면 곧바로 군사를 물리치겠다.」

용읍의 군민들이 믿지 않고 취괴를 죽여 토막낸 시체를 성 밑으로 던졌다. 경공이 크게 노하여 제나라의 전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제나라 군사들은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용읍을 공격하여 그 성곽을 무너뜨렸다. 용읍의 북문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간 제경공은 그 군민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서 취괴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때 마침 전방을 살피러 나간 초마가 돌아와 위나라의 손량부가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향해 진격 중이라고 소식을 전했다. 경공이 말했다.

「우리의 빈틈을 엿보고 있던 위나라가 틈을 타서 우리나라의 경계를 침범해왔다. 마땅히 군사를 되돌려 위나라의 군사를 맞이해 싸워야 하겠다.」

제경공은 즉시 용읍에는 수비하는 군사만을 남겨 두고 위나라의 군사들을 막기 위해 군사들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이윽고 신축성(新築城)⑬ 경내에 당도한 제군은 이미 그곳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있던 위군 부장 석직(石稷)이 지휘하는 선봉대와 조우했다. 행군을 멈춘 제군은 그 즉시 영채를 짓고 위군과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석직이 중군에 있던 대장 손량부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가 주군의 명을 받아 제나라의 허를 찔러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나라의 군사가 이미 되 돌아와 그 군주가 친히 군사들을 이끌고 있으니 가볍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일단 군사를 물리쳐서 제나라 군사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가 당진과 노 두 나라의 연합군이 오면 힘을 합쳐서 제나라를 도모한다면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손량부가 대답했다.

「원래 나는 옛날 제후에게서 받은 수모를 갚기 위해서 군사를 출전하여 이곳에 이르렀다. 이제 목전에 원수를 두게 되었는데 어찌하여 그들에게 길을 비켜 준다는 말인가?」

손량부가 석직의 말을 듣지 않고 그날 밤 중군을 이끌고 제나라 진영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제군은 위군의 야습을 우려하여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손량부가 제나라 진영에 쇄도하여 보니 진영이 모두 비어 있어 회군하려고 했으나 좌측에는 국좌(國佐), 우측에는 고고(高固), 두 사람의 대장이 양쪽에서 일어나 포위망을 치고 공격해 왔다. 양군이 뒤섞여 혼전에 빠졌다. 그때 갑자기 대군과 함께 매복해 있던 제후(齊侯)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절름발이 병신아, 너의 목을 빨리 내놔라!」

손량부는 사력을 다하여 버텼으나 어느 한 곳도 제대로 당해 내지 못하고 위급한 지경에 빠지려는 순간 영상(寧相)과 상금(向禽)이 거느리고 있던 좌군과 우군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손량부와 그 군사들을 구출해 가지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손량부가 이끌던 위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크게 꺾여 대패했다. 제경공은 국좌와 고고 두 사람의 대장을 이끌고 손량부의 뒤를 추격했다. 위나라의 선봉대장 석직이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달려와 손량부를 구하기 위해 달려와 말했다.

「원수께서는 앞만 보고 계속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석직을 뒤로 한 체 몇몇 군사들과 함께 황급히 도망치던 손량부는 일 리도 미처 가기도 전에 전면에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오는 우레와 같은 전차 바퀴 소리를 들었다. 손량부가 탄식하며 말했다.

「다시 제나라의 복병을 만났으니 내 목숨도 이젠 끝이로구나!」

그러나 잠시 후에 가까이 다가온 전차부대를 살펴보니 자기편 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손량부가 있는 곳에 당도한 전차부대 중에서 한 대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전차에 타고 있던 장수가 그 안에서 무릎을 꿇어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소장은 원수께서 전투 중에 있는지 알지 못하여 구원병을 늦게 도착시켜 일을 그르쳤습니다.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소장은 신축성의 대부 중숙우해(仲叔于奚)입니다. 경내의 군사를 모두 모은 병력이 백여 승정도 되어 한번 싸워 볼만하니 대부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우해의 말을 들은 손량부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어 말했다.

「지금 석직장군이 뒤에서 고전하고 있으니 그대가 가서 같이 싸워 구해오시오!」

중숙우해가 큰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휘하의 전차부대를 몰고 석직이 있는 전쟁터로 달려갔다. 한편 석직이 이끌던 위나라 군사들이 제나라의 추격군의 앞을 막아서며 싸움을 벌이려는 순간, 갑자기 위군의 북쪽에서 전차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먼지가 일어나 하늘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전초병을 보내 알아오게 한 석직은 그 부대는 바로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대부 중숙우해가 이끄는 위나라 군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영토 안에 있어서 후군과의 연락이 끊어질까 염려한 제경공은 징을 쳐서 군사들을 불러 들였다. 제군은 위군이 버리고 간 병장기와 치중을 거두어 노획품으로 삼아 제나라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석직과 우해 역시 제나라 군사의 뒤를 추격하지 않았다.

후에 위후가 우해에게 손량부를 구한 공이 있다고 생각해서 상으로 한 고을을 주려고 했다. 우해가 사양하며 말했다.

「고을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곡현(曲懸)과 번영(繁纓)을 즐길 수 있도록 영을 내려 주셔서 붉은 비단과 사대부의 띠를 매고 장식을 한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대부로서의 광영을 누리게 해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주례에 의하면 천자는 네 면에 악기를 걸 수 있는데 이를 궁현(宮懸)이라 한다. 그러나 제후는 삼면에만 걸고 남면에는 걸지 못하고 이것을 곡현(曲懸) 또는 헌현(軒懸)이라 했다. 그리고 대부는 좌우 두 면밖에는 걸지 못한다. 번영(繁纓)이라는 말은 제후들이 타는 말의 장식품을 일컫는다. 두 가지 의례는 모두 제후들만이 행할 수 있는 예법이라 대부들이 감히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우해가 자기의 공을 믿고 제후의 의식을 행할 수 있도록 위후에게 청한 일은 신분을 망각한 참월한 짓이었다.

위후가 웃으면서 허락했으나 후에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면서 이 일을 논했다. 군주가 명기(名器)의 사용을 허가할 때는 그 신분의 귀천을 분명히 하여 절대 거짓으로 시행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위후가 상으로 우해에게 곡현과 번영의 의식을 허락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패군을 수습하여 신축성으로 들어간 손량부는 군사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면서 계속 그곳에서 주둔하려고 하자 여러 장수들이 도읍으로 돌아가자고 청했다.

손량부가 대답했다.

「내가 제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싸움에서 패하고 군사들을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도성에 돌아가 주군을 뵐 수 있겠는가? 마땅히 당진(唐晉)에 군사를 청하여 제후를 사로잡아 내 가슴속에 있는 분기를 풀어야 겠다.」

손량부는 석직 등의 여러 장수들을 신축성에 머물게 하고 자기는 몸소 당진을 방문하여 제나라에 대한 정벌군을 청하려고 했다. 그때 마침 노나라의 사구 장손허(臧孫許)도 당진에 들어와서 제나라 정벌군을 청하고 있는 중이었다. 먼저 극극을 찾아간 두 사람은 진경공을 배알했다. 안과 밖이 한 마음이 되어, 한쪽에서 주장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화답하는 식으로 해서 경공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극극은 제나라는 강대국이기 때문에 적어도 8백 승의 군사가 아니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공은 결국 극극의 청을 허락하고 말았다. 마침내는 당진국은 800승에 달하는 제나라 정벌군을 일으켜 극극은 중군원수에, 해장(解張)은 중군부수로, 중군의 차우장군은 정구완(鄭丘緩)을, 상군원수에 사섭(士燮), 하군원수에 란서(欒書), 중군사마에는 한궐(韓厥)을 각각 임명했다.

주정왕(周定王) 18년, 당진의 경공 11년으로 기원전 589년의 일이었다.

8백 승에 달하는 당진군은 강주성의 동문을 나와 호호탕탕 동쪽을 향해 진군했다. 장손허가 먼저 노나라에 돌아와서 당진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로 진격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계손행보는 숙손교여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당진군과 합류하기 위해서 신축성으로 출발했다. 위나라의 손량보 역시 소식을 듣고 조나라의 공자수에게 연락하여 군사를 이끌고 신축에서 만나자고 했다. 각 나라의 군사가 제나라를 치기 위해 위나라의 신축성으로 모여서 대오를 다시 짜고 순서에 따라 행군을 하는데 그 길이가 3십 리에 달하고 전차가 굴러가는 소리가 며칠 밤낮을 끊이지 않았다. 제경공이 명으로 노나라와의 경계에서 소식을 염탐한 사람이 돌아와 노나라의 사구 장손허가 당진에 들어가 그 군주를 설득하여 제나라 에 대한 정벌군을 일으켰다고 고했다. 경공이 듣고 말했다.

「만약에 당진의 군사들과 3국의 연합군이 우리나라 영토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백성들이 놀라, 민심이 흉흉해 질 우려가 있으니 내가 우리나라 변경으로 나가 적군을 맞이해서 싸워야겠다. 」

제경공은 즉시 전국의 병거와 군사를 대거 소집하여 우선 병거 500승을 차출한 후에 3일 밤낮으로 500 리를 행군하여 안(鞍)⑭ 땅에 당도하여 진을 쳤다. 전초병이 와서 보고했다.

「당진군이 이미 미계산(靡笄山)⑮ 밑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제경공이 당진군의 진영에 사자를 보내 도전장을 보내자 극극이 다음 날로 결전의 날을 정하여 약속하였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자 제나라의 대장 고고(高固)가 경공에게 청했다.

「제와 당진은 아직 교전한 일이 없어서 당진의 군사들이 용감한지 겁이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이 한 번 나아가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고고는 경공의 허락이 떨어지자 즉시 병거를 몰아 단거로 당진의 영채를 향해 달려가 싸움을 돋구었다. 당진의 진영에서 아장 한 사람이 역시 병거를 타고 단거로 앞으로 나와 싸움에 응하려고 했다. 고고가 당진의 장수를 향해 큰 돌을 하나 집어서 던졌다. 그 돌은 정확하게 날아가 당진의 장수 가슴팍을 맞추었다. 당진의 장수는 돌을 맞고 병거 위에 쓰러지자 병거 뒤를 따르고 있던 보졸들은 장수를 뒤에 남겨 놓고 자기 진영으로 달아나 버렸다. 고고가 재빨리 몸을 날려 당진군의 병거 위로 뛰어 올라 그 장수를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주인을 잃은 말들의 고삐를 부여잡은 고고는 병거를 몰아 당진군 진영 주위를 돌면서 외쳤다.

「나와 한바탕 싸워 볼 용기 있는 사람은 나와라!」

그 모습을 본 제나라 군사들이 당진군을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당진군 진영에서 뒤늦게 이를 알고 진영에서 나와 고고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고고가 제나라 진영으로 돌아간 후였다. 본영에 당도한 고고가 경공에게 말했다.

「진나라 군사의 수가 비록 많으나 싸움에 능한 자가 적은 듯 하니 아 그다지 우려할 바가 없겠습니다. 」

그 다음날 갑옷을 차려 입은 제경공은 병하(邴夏)로 하여금 병거의 말고삐를 잡게 하고 방추보(逄醜父)를 차우장군으로 삼아 친히 전장에 나왔다. 제군은 안읍의 성을 뒤로 하고 당진군을 마주보고 진을 쳐 대치했다. 당진의 중군과 대치한 경공은 다시 국좌(國佐)는 우군을 이끌고 노나라 군사를 막고 고고는 좌군을 이끌고 위와 조 두 나라 연합군을 막도록 했다. 두 진영의 좌우 양군은 서로 대치하면서 교전을 미루고 중군의 동정을 살폈다. 제후는 자기의 용맹함을 과신하고 당진군을 얕보았다. 비단 전포를 입고 그 위에 화려하게 수를 놓은 갑옷으로 무장한 제경공은 금색의 호화찬란한 병거를 타고 출전했다. 경공이 제군에게 활에 화살을 재라는 명령을 내리며 말했다.

「나의 병거가 이르는 곳을 향해 한꺼번에 화살을 쏘아라! 」

이윽고 북소리가 한번 울리자 제경공은 자기의 융거를 당진군의 진영 쪽으로 몰았다. 제경공의 지시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제나라 군사들이 당진군의 진영을 향해 화살을 마치 빗발치듯이 쏘아 댔다. 당진군은 제나라 군사들이 쏜 화살을 맞고 무수히 죽어나갔다. 팔꿈치에 연이어 화살 두 대를 맞은 당진군의 중군부수 해장은 그가 흘린 피가 병거의 바퀴를 적셨지만 아픔을 참으며 말고삐를 놓지 않았다. 그때 당진군의 중군원수 극극도 군사들을 진격시키기 위해 북을 치려는 순간 왼쪽 옆구리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가 흘린 피는 신발까지 적시게 되어 그 고통으로 북을 크게 두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해장이 말했다.

「군사들의 이목이 모두 중군의 기와 북에 쏠려 있어 삼군은 기와 북소리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나기도 합니다. 다행히 상처가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니 있는 힘을 다하여 군사들을 독려해야만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곁에 있던 차우장군 정구완이 해장의 말을 거들었다.

「해장의 말이 옳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있습니다.」

극극은 해장의 말에 힘을 얻어 고통을 참으며 북채를 연속해서 힘차게 두드렸다. 해장이 말고삐를 채어 전차를 몰아 빗발치는 화살을 무릅쓰고 앞으로 돌격했다. 정구완도 왼손으로 방패를 들어 극극을 호위하며 오른 손으로는 과를 휘둘러 적을 찔러 죽였다. 당진군의 좌우에서 일제히 북을 두드리니 북소리가 하늘을 진동 시켰다. 중군이 이미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당진군의 상하 양군은 선두를 다투어 마치 산을 밀고 바다를 뒤집을 만큼 흉맹한 기세로 진군하자 제나라 군사들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다. 양군 간에 회전이 시작되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제나라 진영이 크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극극의 상처가 중한 모습을 본 한궐이 말했다.

「원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힘을 다하여 적군을 쫓도록 하겠습니다.」

5. 역복면군(易服免君)

- 의복을 바꿔입어 그 군주를 탈출시킨 제나라의 장군 방추보 -

한궐이 극극을 대신하여 중군원수가 타는 병거에 올라 본부군을 이끌고 제나라 군사들의 뒤를 추격했다. 당진군의 추격을 받은 제나라 군사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제경공은 화부주산(華不注山)⑯을 옆으로 돌아 우회하여 도망쳤다. 제군의 뒤를 쫓던 한궐이 멀리서 금빛으로 치장한 수레를 발견하고 있는 힘을 다해 그 뒤를 쫓았다. 제경공의 차우장군 방추보가 어자 병하를 향해 말했다.

「장군은 빨리 포위망을 돌파하여 구원병을 데리고 오시오. 내가 대신 병거의 말고삐를 잡고 있겠소.」

병거에서 내린 병하가 구원병을 불러오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당진의 대군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화주부산을 중심으로을 삼면에서 포위했다. 방추보가 경공에게 말했다.

「사태가 위급하게 되었으니 주공께서는 입고 계신 전포와 갑옷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신 입고 주공 행세를 하겠습니다. 주공은 제 옷을 입은 후 곁에서 말고삐를 잡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당진군의 눈을 속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들의 눈을 속일 수 없더라도 제가 주공을 대신해서 죽어 주공이 몸을 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공이 그 말을 쫓아 방추보와 옷을 바꿔 입었다. 경공이 탄 병거가 화천(華泉)이란 곳에 이르자 그 뒤를 추격해 온 한궐의 전차가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한궐은 비단 전포에 수를 놓은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자 그가 제후(齊侯)라고 생각했다. 경공의 융거에 올라탄 그는 방추보로 가장한 경공에게서 말고삐를 뺏어 자기가 잡으며 머리를 숙여 재배하면서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 노후와 위후의 청을 물리치기 어려워 신 등으로 하여금 상국의 죄를 묻게 하였습니다. 외신 궐(厥)은 군문에 있는 사람이라 저희 군주의 명령을 받들어야 합니다. 황공하오나 제가 군후의 수레를 몰아 저희 진영으로 모시겠습니다.」

한궐의 말에 목이 말라 대답을 미처 못하는 것으로 가장한 방추보는 자기 옷으로 변장하고 한궐 옆에 서 있는 경공에게 표주박을 내주며 말했다.

「추보여, 내가 목이 마르니 이 표주박에 물을 담아 오너라!」

제후가 수레에서 내려서 화천의 샘물에서 물을 떠서 가져왔다. 그러나 방추보가 물이 탁하여 마실 수 없다고 하면서 다시 깨끗한 물을 떠오라고 했다. 제후가 다시 수레에서 내려 물을 떠오는 척 하면서 산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 마침 제나라 장수 정주보(鄭周父)가 병거를 끌고 제경공 앞으로 달려왔다. 주보가 경공을 보고 말했다.

「병하는 아직도 당진군에 포위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진의 군사가 사방에 깔려 있으나 오로지 이 길만은 당진군이 없습니다. 빨리 수레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융거에 오른 제경공은 간신히 당진군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방추보를 생포한 한궐이 사람을 먼저 중군에 보내 보고했다.

「제후를 사로잡았습니다.」

극극이 듣고 매우 기뻐했다. 한궐이 방추보를 극극에게 데려 왔다. 방추보를 본 극극이 말했다.

「이 자는 제후가 아니다.」

극극은 옛날에 제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제후를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후의 생긴 모습을 알고 있었다. 제후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한궐은 봉추보의 계략에 속았음을 알고 성이 나서 물었다.

「너는 어떤 놈이냐?」

방추보가 태연히 대답했다.

「나는 제나라의 차우장군 방추보라는 사람이다. 바로 화천에서 군사로 변장하고 물을 뜨러 간 사람이 우리 주군이다.」

극극이 화를 내며 말했다.

「군법에 삼군을 기만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너는 제후로 가장하여 우리의 삼군을 기만했다. 어찌 살아남기를 바라겠느냐?」 극극은 좌우에 대고 소리 쳤다

「방추보를 데려다가 목을 쳐라.」

추보가 큰소리로 외쳤다.

「당진의 군사들은 나의 말을 들어보시오. 오늘 이후로는 환난에 처해 있는 그 임금을 대신할 신하는 없을 것이다. 이 방추보는 임금의 환난을 구하고 죽음을 당한다.」

극극이 듣고 방추복의 포승을 풀어 주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말했다.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을 신하를 죽이는 것은 상서러운 일이 아니다.」

봉추보를 다시 불러오게 한 극극은 다른 병거에 태워 자기 뒤를 따르게 했다. 잠연거사(潛淵居士)가 이 일을 시를 지어 노래했다.

산 밑자락에 숲을 이룬 창칼 속에서

비단 갑옷을 입은 임금이 포로가 될 처지였다.

천척 깊이의 화천(華泉)이 마르지 않을 만큼 깊어도

추보의 지모만큼 깊기야 하겠는가?

繞山戈甲密如林(요산과갑밀여림)

綉甲君王險被擒(수갑군왕험피금)

千尺華泉愿不竭(천척화천원불알)

不如醜父計謀深(불여추보계모심)

후에 화불주산을 금여산(金與山)으로 불렀는데 이것은 제후의 금빛 수레가 머물렀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당진군의 포위망에서 탈출하여 제군의 본영으로 되돌아간 제경공은 방추보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고 그 즉시 가볍고 속도가 빠른 병거를 타고 당진군의 진영을 드나들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방추보를 구출하려고 했다. 제나라의 대장 국좌, 고고 두 대장은 중군이 이미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후를 잃을까 걱정했다. 그들은 각기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제후의 병거를 구하러 진격해왔다. 당진군 진영 쪽에서 전차를 타고 달려 나오는 제후의 모습을 발견한 두 사람은 크게 놀라 외쳤다.

「어찌하여 일국의 군주인 지존으로서 몸을 가볍게 하여 호랑이 굴을 드나드십니까?」

「나를 대신하여 적진에 빠진 방추보의 생사를 아직 모르고 있다. 내가 편안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때 갑자기 전초병이 황급하게 달려와 경공에게 고했다.

「당진군이 다섯 갈래로 부대를 나누어 밀물 듯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국좌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군사의 사기가 이미 꺽여 주공께서는 이곳에 오래 머무심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차제에 도성으로 돌아가 지키면서 초나라의 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옳을 줄 압니다.」

제후가 국좌의 말을 쫓아 곧 바로 대군을 이끌고 임치(臨淄)로 되돌아갔다. 극극은 당진군 본대와 노, 위, 조 3국의 연합군을 끌고 제나라 군사의 뒤를 파죽지세로 쫓아 요새와 각 관문을 통과한 후 모두 불로 태우면서 이윽고 제나라의 도성 임치(臨淄) 성 앞에 당도하였다. 극극은 기어코 제나라를 멸망시키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제57회로 계속》

주석

①‘察見淵魚者不祥, 智料隱匿者有殃’

②夫以智御智, 如用石壓草, 草必罅生. 以暴禁暴, 如用石擊石, 石必兩碎. 故彌盜之方, 在乎化其心術, 使知廉恥, 非以多獲爲能也.

③言依于信, 行依于義, 和而不諂, 廉而不矯, 直而不亢, 威而不猛.

④적적(赤狄) : 고대 중국의 북쪽 지역에 거주했던 이민족의 이름으로 적적(赤翟)이라고도 한다. 항상 붉은 옷을 즐겨 입었음으로 적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춘추 때 지금의 산서성 장치시(長治市) 일대에 살았으나 기원전 6세기 경 진나라에 병합되었다.

⑤범(范) : 지금의 산동성 양산현(梁山縣) 경내에 있었던 당진 소속의 고을로서 사회가 이곳에 봉해진 이후로 사씨들은 그 성을 범씨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⑥천토(踐土) : 지금의 하남성 신향시(新鄕市) 원무향(原武鄕). 당진의 문공(文公)이 초나라 장수 성득신(成得臣)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를 기원전 632년 성복(城濮)에서 격파하여 패자가 되어 중원의 제후들을 불러 회맹한 곳

⑦신성(新城) : 춘추(春秋) 초기에 섬진(陝秦)의 목공(穆公)이 당진으로부터 빼앗아 간 성읍으로 지금의 섬서성 징성현(澄城縣) 경내 북. <진세가(晉世家)> 양공(襄公)5년 「 진벌진(晉伐秦), 취신성(取新城), 보왕관역야(報王官役也)」

⑧영호(令狐)에서의 실신(失信) : 당진(唐晉)의 양공(襄公)이 죽자 당시의 권신(權臣) 조돈(趙盾)이 세자(世子) 이고(夷皐)가 나이가 너무 어려 섬진(陝秦)에 망명 가 있던 문공의 아들 공자옹(公子雍)을 모셔와 당진(唐晉)의 군주 자리에 앉히기 위해 사회(士會)와 선멸(先蔑)을 사자로 보냈다. 섬진(陝秦)의 강공(康公)은 공자옹(公子雍)이 당진(唐晉)의 군주로 즉위하는데 돕기 위해서 백을병(白乙丙)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군사 오백 승을 내어 호송하게 했다. 그사이에 당진(唐晉)에서는 양공의 아들 세자 이고(夷皐)가 별다른 하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세자를 폐하고 공자옹을 데려다가 군주로 옹립한다고 백성들 간에 여론이 분분하게 되었다. 이에 조돈은 생각을 바꾸어 세자 이고(夷皐)를 옹립(擁立)하여 당진(唐晉)의 군주(君主)의 자리에 앉혔다. 공자옹이 섬진(陝秦)의 군사들 호위를 받아 당진의 도성(都城) 강성(絳城)으로 계속 진격해 오자 섬진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조돈(趙盾)이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영호(令狐)라는 곳에서 섬진의 군사들을 기습하였다. 불시에 당진군의 공격을 받은 섬진군은 궤멸되고 공자옹은 란군 중에 죽었다. 섬진군의 대장 백을병은 간신히 목숨을 구해 섬진으로 달아났다. 선멸(先蔑)과 사회(士會)는 섬진으로 되돌아가서 대부 벼슬을 받아 살았다. 이 일로 인하여 당진이 섬진에게 실신(失信)을 했다고 한 것이다.

⑨소국(蕭國) :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소현(蕭縣)에 있었던 송나라와 같은 동성의 자성(子姓) 제후국이다. 춘추 때 송나라에 의해 봉해진 부용국(附庸國)으로 소숙대심(蕭叔大心)이 시봉(始封)되었다. 기원전 597년 초나라의 장왕에 의해 멸망당했으나 후에 송나라에 다시 돌려주었다.

⑩간부지개(干父之蓋)다. 부왕(父王)이 세운 좋은 제도는 지키고, 나쁜 제도는 고쳐서 국정을 쇄신시키는 일을 말한다.

⑪평음(平陰) : 지금의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평음현(平陰縣) 경내에 있었던 춘추 때 제나라 소속의 고을.

⑫용읍(龍邑) : 춘추 때 노나라의 영토로 지금의 산동성 태안시(泰安市) 서남 쪽.

⑬신축성(新築城) : 지금의 하북성 대명현(大名縣) 남 10키로 되는 곳에 신축성이라는 지명이 있음. 대명현은 하북(河北), 산동(山東), 하남(河南) 삼 성의 경계에 있음.

⑭안(鞍) : 지금의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북서 약 10키로에 있었던 제나라 소속의 고을

⑮미계산(靡笄山) : 지금의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역성(歷城) 동남의 역산(歷山)을 말한다.

⑯화부주산(華不注山) : 지금의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역성구(歷城區) 화산진(華山鎭)에 있었던 산 이름.

[평설]

1. 당진국이 도둑을 다스리는데 두 가지 방법을 차례로 사용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상이한 결과를 얻었다. 그 이유는 먼저 시행한 정책은 겉에 나타난 상황만을 보고 시행했고 나중에 시행한 정책은 그 원인을 발본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도적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극용이 사용한 방법은 그의 타고난 재주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가 시정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도적들은 아무도 그의 눈길을 피해 지나가지 못했다. 그가 도적이라고 지목한 사람들 붙들어 심문하면 과연 도적이었다. 그는 도적들을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확실히 그 방면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나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근에 허덕이자 도적들이 일어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다 잡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도적들을 다 잡지 못하고 자신은 도적들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극옹의 실패는 그가 도적들을 식별해 내는데 무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만을 다스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 뿌리를 찾아 뽑아버리는 방법이다. 그는 말을 하면 지켰고, 행하는 것은 의를 따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켜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인도했다. 그가 풀의 지상부만 짜르지 않고 뿌리까지 들어내어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개변시켰던 방법은 백성들로 하여금 선행을 행할 수 있게 마음부터 교화하는데 전력을 기울린 것이다. 그 결과 당진국은 큰 치세를 이룩하게 되었다. 사회의 성공은 정치는 그 근본을 본령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목적은 같으나 방법이 다르면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이나 큰 차이가 난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이판사판으로 모험을 행하게 되는 조건 하에서 사회가 취한 방법은 극옹의 방법에 비해 그 효과가 대단히 크게 나타난 것이다.

2. 북쪽의 여러 융족(戎族)들을 물리치고 국내의 정치적인 기반을 튼튼히 구축한 진경공(晉景公)은 진문공이 이룩한 패업을 다시 재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섬진이 초나라와 이웃해 있으면서 굳게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방의 대국들인 제(齊)와 노(魯) 등의 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를 도모하려고 했다. 그와 같은 전략 구상은 주관적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정확하고 치밀하게 수행되어야만 한다.

문제는 객관적으로 볼 때, 전략에 대한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당시 제나라 군주였던 경공(頃公)은 심모원려(深謀遠慮)를 갖추지 못한 경솔한 위인으로 동관(潼關) 이동의 정(鄭)과 송(宋) 등의 나라가 당진국을 가볍게 보고 초나라에 붙은 정세 하에서 당진국이 받고 있는 상실감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을 갖지 못했고, 여러 제후국들과 연합하여 북상하고 있는 초나라 세력에 대항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윽고 기원전 592년 당진국이 그때까지 남아있던 위성국들이었던 조(曹), 위(衛) 및 노(魯) 등 삼국의 사자와 함께 제나라로 가서 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하는 일을 의론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은 제경공의 모친이 네 나라 사신들의 신체적인 결함을 가지고 크게 회롱했다. 그 결과 제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왔던 사국 사신들은 오히려 원한을 품고 돌아갔다. 제경공은 가만히 앉아서 네 동맹국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를 오히려 네 개의 적대국을 만들게 되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우렸으면 좋은 조건을 유도하여 제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노친 것은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행위였다.

사국 사신들 중 원래 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제나라와 우호조약을 목적으로 들렸던 당진국의 사신이 원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제나라와 전투를 벌려야 되겠다고 결심한 행동은 소아에 사로잡혀 원대한 전략을 어지럽혔다. 그것은 결코 사리에 밝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춘추시대 전 기간을 통틀어 제(齊)와 노(魯) 두 나라는 그 국경 문제로 항상 다투어왔다. 기원전 589년 제경공(齊頃公)은 일면 초나라와 우호조약을 체결한 후에 노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스스로 원정길에 올랐다. 그러나 적국에 대한 정세에 무지했던 제경공은 그의 군사가 노나라 령인 용읍(龍邑)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위(衛)나라 군대가 노나라를 돕기 위해 제나라 경내로 진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제경공은 황망 중에 용읍을 버리고 위나라의 진군을 막기 위해 철수해야 했다. 이윽고 제경공은 신축(新築 : 지금의 산동성 대명현(大名縣) 경내)에서 위군과 조우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위군과의 전투에서 취한 승리도 제나라가 범한 전략상의 실책을 매꿀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노(魯)와 위(衛) 두 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진경공(晉景公)이 제나라와의 연합은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인식하고 노와 위 두 나라와 힘을 합쳐 제나라를 공격하기로 방침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제군은 결국은 사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싸움을 벌려야 했다.

서전에서 승리를 취한 제경공은 다시 사국의 연합군에 대해 전술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의 군사들을 안(鞍 : 지금의 산동성 제남시 부근)으로 시급히 철수시켰다. 제경공은 사국 연합군을 경적한 나머지 굳게 지키는 수비전략 대신 결전을 택했다. 좌군은 조(曹)와 위(衛)의 연군을, 우군은 노나라 군대를, 자신은 중군을 이끌고 당진군에 대항했다. 그와 같은 포진은 당시의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문제는 제경공이 당진군의 허실에 대해 무지했다는데 있었다. 이윽고 전투가 진행되자 제군은 당진군에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경공은 싸움에 패하고 도망치다가 결국은 사졸의 복장으로 변장하고 달아나 포로가 되는 실세를 면할 수 있었다.

사국의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제나라 도성 임치성 앞에서 진을 쳤다. 제경공이 사람을 보내 강화를 청하며 당진국에 매년 조공을 바치고 그 전에 위와 노 두 나라로부터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당진국이 강화를 하고 연합군을 해산하고 각기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제나라가 당진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 것은 전략상 실책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경공은 당진군의 전력을 너무 과소평가했으며, 또한 우호협정을 맺은 초나라의 존재는 제나라에 대해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곳의 화급한 불을 끌 수 없다는 경우에 해당했다. 무력을 사용해서 제나라를 자기 세력권으로 끌어들인 당진국은 여러 가지 전략을 사용하여 제나라와 연합함으로 해서 초나라와의 패권 다툼에서 제나라에 대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당진국은 제와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제나라를 안무했다. 당진국은 노나라로 하여금 안(鞍)의 싸움에서 돌려 받은 문양(汶陽)의 땅을 다시 제나라로 돌려주도록 강압했다. 이 일로 인해 중원의 여러 제후국들은 당진국이 신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점점 이반하기 시작하여 중원의 패권에 임하고 있던 당진국에 대해 불리하게 작용했다.

목록
1411
[일반] 제3부5권 초장왕 연표(기원전 626 - 581년)

제3부 중원을 놓고 다투는 당진(唐晉)과 초(楚) 제5권 초장왕(楚庄王) - 기원전 626 - 581년 기원 전 周 대사(大事) 魯
42.5K 양승국 04-05-11
[일반] 제3부5권 초장왕 목차

제 III 부진초쟁패(晉楚爭覇) 제5권 초장왕(楚庄王) 제46회 被激察機 渡河焚舟(피격찰기 도하분주)고모를 격분시켜 부왕의 뜻을 살핀 초나라
양승국 04-05-11
[일반] 제57회. 巫臣逃晉(무신도진), 趙氏孤兒(조씨고아)

제57회 巫臣逃晉 趙氏孤兒(무신도진 조씨고아) 하희를 취해 당진으로 달아난 초나라 대부 무신과 정영(程嬰)의 도움으로 조씨 종족을
양승국 04-05-11
[일반] 제56회. 登臺笑客(등대소객), 易服免君(이복면군)

제56회 登臺笑客 易服免君(등대소객 역복면군) 대에 올라 사신들을 회롱한 제나라의 소부인과 어의를 바꿔 입고 제후를 위난에서 구한 방추보
양승국 04-05-11
[일반] 재55회. 登床劫將(등상겁장), 結草報恩(결초보은)

제55회登床劫將 結草報恩(등상겁장 결초보은) 침상의 적장을 위협하여 화의를 이끌어 낸 송나라의 화원과 결초로 두회의 발목을 잡아 보은
양승국 04-05-11
[일반] 제54회. 縱屬亡師(종속망사), 托優悟主(탁우오주)

제54회 縱屬亡師 托優悟主(종속망사 탁우오주) 부하장수들을 다스리지 군사를 잃은 당진의 순림보(荀林父)와 연극으로 초장왕을 깨우친 초나라의
양승국 04-05-11
[일반] 제53회. 株林宣淫(주림선음) 蹊田奪牛牛(혜잔탈우)

제53회 株林宣淫 蹊田奪牛(주림선음 혜전탈우) 주림에서 신하들과 함께 혼음을 즐기다가 시해당하는 진영공과 시군의 죄를 묻는다는 핑계로
양승국 04-05-11
[일반] 제52회. 嘗黿搆逆(상원구역), 衵服戱朝(일복희조)

제52회 嘗黿搆逆 衵服戱朝(상원구역 일복희조) 자라탕을 맛보려 하다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여자의 속곳으로 조당을 희롱한 진
양승국 04-05-11
[일반] 제51회. 董狐直筆(동호직필), 絶纓大會(절영대회)

제51회 董狐直筆 絶纓大會(동호직필 절영대회) 직필로 조돈을 책망한 사관의 사표 동호(董狐)와 투월초를 주살하고 절영대회를 연 초장왕 1. 도
양승국 04-05-11
[일반] 제50회. 一飛沖天(일비충천), 桃園忠諫(도원충간)

제50회 一飛沖天 桃園强諫(일비충천 도원강간) 한 번 날아 하늘을 뚫은 초장왕과 도원에서 영공에게 온힘을 다해 간한 조돈 1. 살적입서(殺嫡立
양승국 04-05-11
[일반] 제49회. 厚施買國(후시매국), 竹池遇變(죽지우변)

제49회 厚施買國 竹池遇變(후시매국 죽지우변) 백성들에게 인심을 베풀어 나라를 산 송나라의 공자포와 죽지에서 변을 당해 목숨을 잃은
양승국 04-05-11
[일반] 제48회. 五將亂晉(오장란진), 召賢紿秦(소현태진)

제48회 五將亂晉 紿秦召賢(오장란진 태진소현) 선극을 살해하고 변란을 일으킨 당진의 다섯 장수들과 섬진을 속여 현인 사회를 불러온 당진
양승국 04-05-11
[일반] 제47회. 吹簫跨鳳(취소과봉), 背秦立君(배진입군)

제47회 吹簫跨鳳 令狐失信(취소과봉 영호실신) 퉁소로 부른 봉황을 타고 하늘에 올라 선녀가 된 농옥과 영호에서 섬진과의 신의를 버리고 영
양승국 04-05-11
[일반] 제46회. 被激察機(피격찰기), 渡河焚舟(도하분주)

제46회 被激察機 渡河焚舟(피격찰기 도하분주) 고모를 격분시켜 부왕의 뜻을 살핀 초나라의 태자 상신과 하수를 건넌 후 배를 불태워 전의를 불태
양승국 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