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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3:234213 
제48회. 五將亂晉(오장란진), 召賢紿秦(소현태진)
양승국
 그림48-1. 선극을 찔러서 죽이고 란을 일으킨 당진(唐晉)의 다섯 장수들 001.jpg  (529.4K)   download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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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48회 五將亂晉 紿秦召賢(오장란진 태진소현)

선극을 살해하고 변란을 일으킨 당진의 다섯 장수들과

섬진을 속여 현인 사회를 불러온 당진의 위수여(魏壽余)

1. 오장란진(五將亂晉)

- 선극을 살해하고 변란을 일으킨 당진의 다섯 장수들 -

기정보(箕鄭父), 사곡(士穀), 양익이(梁益耳) 세 사람이 서로 모의하여, 섬진군의 공세로 당진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면 그 배후에서 란을 일으켜 조돈을 중군원수의 직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 조돈이 먼저 기습을 가하여 섬진군을 패퇴시키고 개선가를 부르며 도성으로 돌아오자 그들의 마음속 분노는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하군 부수 선도(先都)는 그의 주수였던 선멸이 조돈의 배신으로 섬진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그 역시 조돈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또한 괴득(蒯得)은 옛날 자기가 싸움 중에 휘하의 병거를 섬진군에게 뺏긴 잘못을 선극(先克)에 의해 추궁 당하여 그의 전답과 녹봉을 빼앗긴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원한을 갖고 있다가 사곡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곡이 듣고 말했다.

「오로지 조맹의 배려로 중군부수 직을 갖게 된 선극이 감히 전횡하고 있다.조돈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군사들은 오로지 중군일 뿐인데 만약 우리가 자객을 얻어 먼저 선극을 죽인다면 조돈은 혼자 고립될 것이다. 이 일은 자회(子會:선도의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괴득이 듣고 말했다.

「자회는 지금 그의 주수 선멸이 조돈의 배신으로 섬진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일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습니다.」

사곡이 괴득을 부추겼다.

「일이 그렇다면 선극을 죽이기는 쉬운 일이라고 하겠다.」

곧이어 선곡이 괴득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했다.

「그대가 선도에게 가서 내가 이른 대로만 전한다면 일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괴득이 듣고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당장 달려가 장군의 말을 선도 장군에게 전하겠습니다.」

일행과 헤어진 괴득이 곧바로 선도의 집으로 달려갔다. 사곡이 일러준 말을 괴득이 전하기도 전에 선도가 먼저 입을 열어 불만을 털어놓았다.

「조맹이 선멸과 사회를 배신하고 섬진군을 야밤에 기습하여 패퇴시킨 일은 전혀 신의가 없는 짓이다. 나는 결코 그와 함께 일할 수 없다.」

괴득이 선도에게 사곡이 한 말을 전했다. 선도가 말했다.

「진실로 그대의 말대로 된다면 당진에는 다행스러운 일이 되겠다.」

때는 겨울철이 거의 다 끝나 신춘을 맞게 되었다. 선극이 자기 할아버지 선진(先軫)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기성(箕城)①의 사당에 행차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도가 자기 집안의 가병들을 동원하여 기성 밖에 매복시키고 선극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극의 일행이 나타나자 선도의 가병들이 모두 한꺼번에 일어나 선극에게 달려들어 칼로 무수히 찔러 죽였다. 선극을 따르던 종자들은 놀라 달아났다. 선극이 도적들을 만나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노한 조돈은 사구(司寇) 집획(緝獲)에게 엄명을 내려 5일을 기한으로 도적들을 모두 잡아들이도록 했다. 선도는 자기가 한 짓이 드러날까 봐 마음이 황망하게 되어 괴득과 함께 사곡과 양익이를 찾아가 그들에게 하루 빨리 거사들 일으키도록 종용했다. 양익이가 그의 사촌동생인 양홍(梁弘)과 술을 마시다가 술이 취하여 자기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모의하고 있는 일을 발설했다. 양홍이 듣고 크게 놀라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일이 잘못되면 우리 양씨 종족은 씨가 말릴 것이다.」

양익이와 헤어진 양홍은 그들의 음모를 유병(臾騈)에게 알렸다. 유병은 다시 조돈에게 전했다. 그 즉시 병사들을 무장시킨 후에 병거에 올라탄 채로 자기의 명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조돈이 갑병과 병장기로 무장된 병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선도는 자기들의 음모가 이미 누설되었다고 의심하여 급히 사곡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속히 군사를 출동시키라고 재촉했다. 기정보는 정월 대보름날 당진의 군주가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어 잔치를 베풀 때를 이용하여 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장시간 논의했으나 갑론을박만 되풀이하고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조돈의 명을 받은 유병이 한 떼의 갑병을 이끌고 선도의 집을 포위하고 그 일당을 모두 사로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양익이와 괵득이 황망하게 되어 기정보와 사곡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넷이서 함께 집안의 가병들을 모아 우선 선도를 옥에서 구해낸 후 다섯 사람이 일제히 란을 일으키자고 했다. 조돈이 그들의 음모를 역이용하여 사람을 기정보에게 보내 상의할 일이 있으니 입조하라고 청했다. 기정보가 듣고 말했다.

「조맹이 나를 불러 보자고 하니 이것은 아직 나를 의심하지 않음이라!」

그는 급히 서둘러 조돈을 만나기 위해 입조했다. 원래 조돈은 기정보가 상군원수의 직위를 이용하여 그 휘하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란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돈은 거짓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기정보를 조당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기정보가 조돈의 계획을 모르고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조당으로 들어왔다. 조돈이 기정보를 조당에 딸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선도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그의 의견을 물었다.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순림보(荀林父), 극결(郤缺), 란돈(欒盾) 등의 세 장군들에게 군사를 삼분하여 각각 사곡, 양익이, 괴득 세 사람을 잡아오게 하였다. 세 사람의 장군들이 세 사람의 반란자들을 모두 잡아서 옥에 가두어 놓은 후에 조당에 돌아와 조돈에게 보고했다. 순림보가 기정보를 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너도 역시 반란을 일으킨 일당 중 한 명인데 어찌하여 감옥에 가지 않고 여기에 아직 있느냐?」

기정보가 황망한 마음으로 둘러댔다.

「나는 상국의 명을 받아 도성에 남아서 주군을 보호하고 있었고 당시 삼군은 도성 밖으로 출전하고 나 혼자 성중에 있었소. 내가 그 좋은 때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금일 여러 장군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아무 죄도 없는 생사람을 잡고자 하십니까?」

조돈이 본색을 드러내 비정보를 꾸짖었다.

「네가 그때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지금까지 지연시킨 이유는 바로 선도와 괴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

기정보가 머리를 숙이자 군사들에 의해 조당 밖으로 끌려 나가 감옥에 갇혔다.

조돈이 영공(靈公)에게 다섯 사람의 반란자들을 처형하겠다고 고했다. 그때 영공은 나이가 어려 조돈에게 단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영공이 조당에서 나와 내궁으로 향했다. 영공의 모친 양(襄) 부인은 이미 다섯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려다가 발각이 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양부인이 영공을 향해 물었다.

「상국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상국이 나에게 고하기를 그들의 죄는 주살(誅殺)에 해당한다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권세를 다투려는 마음으로 란을 일으켰지 군주의 자리를 노리고 한 짓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는 단지 선극을 포함하여 한 두 사람을 죽인 일에 불과합니다. 그들에 대한 죄는 주범과 공범이 있어 주범만 처형하면 되는 일을 어찌하여 한꺼번에 모두 죽인단 말이오! 어린 군주께서 나이가 들게 되면 모든 일이 쇠퇴하게 되어 인재들도 찾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아침에 다섯 사람의 신하를 죽여 버린다면 조당이 텅 비게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어찌 이를 염려하지 않습니까?」

다음날 아침 영공이 조돈에게 양부인이 한 말을 전했다. 조돈이 듣고 말했다.

「군주의 나이가 어리니 나라의 백성들이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대신들이 자기들 멋대로 다른 대신을 죽이니 만일 이번에 크게 죽이지 않는다면 후에 일이 커진 다음에는 어찌 할 수 없게 됩니다.」

조돈은 즉시 선도, 사곡, 기정보, 양익이, 괴득 등 다섯 사람은 군주를 잘 모시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시정으로 끌고 나가 모두 참수형에 처하게 했다. 성안의 백성들은 조돈의 지엄함을 두렵게 생각하여 부들부들 떨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호석고가 로국(潞國)에 살면서 그 일에 대해 소식을 듣고 놀라며 말했다.

「참으로 다행이로다! 내가 진정 죽음에서 벗어났음이라!」

하루는 로국대부 풍서(酆舒)가 찾아와 호석고에게 물었다.

「조돈과 조쇠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조쇠는 곧 겨울철의 태양이고 조돈은 여름철의 태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의 태양은 세상을 품어 따뜻하게 한다고 할 수 있고 여름철의 태양은 그 뜨거움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품게 합니다.」

풍서가 웃으면서 말했다.

「경은 싸움터에서는 백전노장이지만 역시 조맹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2. 초목도패(楚穆圖覇)

- 정과 진 두 나라를 정벌하여 진나라의 패권에 도전하는 초목왕 -

한편 부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한 초목왕은 그 역시 중원의 제후국들과 패자(覇者)를 다투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때 당진에서 첩자가 와서 보고하였다.

「당진의 군주가 새로 서서 조돈이 정권을 잡고 정치를 제 마음대로 처리하자 대신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서로 죽이고 죽이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목왕이 즉시 군신들을 모이게 하고는 정나라에 군사를 보내는 일에 대해 의논하게 하였다. 대부 범산(范山)이 말했다.

「새로 즉위한 당진국의 군주는 나이가 아직 어리고 그 신하들은 서로 권력만을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어 그 군주는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군사를 내어 북방을 도모한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당하겠습니까?」

목왕이 크게 기뻐하며 투월초(鬪越椒)를 대장으로 위가(蔿賈)를 부장으로 명하여 병거 300승을 이끌게 하여 정나라를 정벌하라고 명하고 자기는 양광(兩廣)의 정예병을 친히 이끌고 나가 낭연(狼淵)②에 주둔하면서 투월초의 뒤를 후원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공자(息公子) 주(朱)를 대장으로 공자패(公子茷)를 부장으로 삼아 병거 300승을 주어 진(陳)나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한편 정나라 목공은 초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와 국경에 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대부 공자견(公子堅), 공자방(公子龐), 락이(樂耳) 등 세 사람에게 군사를 주어 국경에 나가 초나라의 군사들을 막게 하고 절대 싸움을 하지 말고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당부했다. 한편으로는 사자를 당진으로 보내어 사태의 위급함을 알려 구원군을 청했다. 투월초가 연일 정나라 진영에 싸움을 걸어왔지만 정나라 군사들은 관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위가가 투월초를 은밀히 찾아와 말했다.

「성복의 싸움 이후로 우리 초나라 병사들은 오랫동안 정나라 땅을 밟아 보지 못했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이 당진의 구원군만 믿고 우리와 싸우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진의 군사가 당도하기 전에 정나라 군사들을 유인하여 격파해야만 옛날 성복에서의 치욕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중원 제후국들의 구원군이 몰려오게 되면 옛날에 자옥(子玉)에게 닥친 일이 또다시 장군이나 나에게 닥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나라의 군사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무슨 계책을 써야 하겠소?」

위가가 투월초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였다. 투월초가 알아듣고 위가의 계책을 쫓아 군중에 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군량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촌락으로 나아가 빼앗아 와서 식량으로 써야 되겠다. 」

그리고 투월초 자신은 막사 안에서 장구를 치고 술을 마시며 즐기기 시작했다. 투월초는 매일 밤이 깊어서야 주연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일을 어떤 사람이 낭연(狼淵)에 있던 목왕에게 고했다. 목왕은 투월초가 적군을 가볍게 보고 있지나 않나 의심하여 자기가 직접 가서 싸움을 독려하려고 했다. 곁에 있던 범산이 간했다.

「부장 백영(伯嬴; 위가의 자)은 지혜가 있는 선비입니다. 그것은 필시 그의 계략인 듯 싶으니 며칠만 참고 계시면 승전보를 전해 올 것입니다.」

한편 정나라의 공자견 등은 초나라 군사들이 싸움을 걸어오지 않자 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사람을 시켜 적진의 형세를 정탐하게 하였다. 정탐을 하러 갔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했다.

「초나라 병사들이 사방으로 나가 민간에서 곡식을 약탈하여 그들의 식량으로 쓰고 있습니다. 초군 대장 투월초는 중군에 있으면서 매일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술을 마시며 놀고 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정나라는 아무 데도 쓸데없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하면서, 쳐들어가서 점령해 봐야 쓸데없는 헛수고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견이 기뻐하며 말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사방으로 나가서 노략질을 하고 있으니 그 진영은 필시 비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초나라 장수가 매일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셔 대니 군사들의 마음은 필시 해이해 졌을 것이다. 만약에 밤을 틈타 그들의 진영을 덮친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음이라!」

공자방, 락이 등도 모두 좋다고 찬성했다. 그날 정나라 군사들은 야습할 준비를 끝내고 군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공자방은 군사들을 전중후(前中后) 삼대로 나누어 순서에 따라 진격시키려고 했다. 공자견이 의견을 말했다.

「진영을 습격하는 것과 결진(結陣)을 하여 적군을 맞대고 싸우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일시에 적진을 치기 위해서는 부대를 좌우로 나누어야지 전후로 나누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나라의 세 장수는 행렬을 같이 해서 초나라 진영으로 진격했다. 초나라 진영에 당도하여 멀리서 초군의 막사를 쳐다봤는데 촛불이 휘황찬란하게 켜져 있고 생황(笙簧)부는 소리가 맑고 깨끗하게 들려 왔다. 공자견이 보고 말했다.

「백분(伯棼; 투월초의 자)의 목숨도 여기서 끝이 났음이라!」

공자견은 즉시 병거를 휘몰아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격했으나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초나라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공자견이 먼저 초군 진영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군영 안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버리고 오로지 투월초만이 멍청하게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공자견은 앞으로 나아가 살펴보고는 크게 놀랐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풀로 엮어서 투월초 모양으로 분장시켜 만든 인형이었다. 공자견이 황급히 부르짖었다.

「적의 함정에 빠졌다.」

정나라 군사들이 초군의 진채에서 물러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진채의 뒤편에서 포성이 크게 한번 울리더니 한 사람의 대장이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 나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초나라의 대장군 투월초가 여기 있다.」

공자견은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공자방과 락이 두 장수를 중도에 만나 군사들을 한 곳으로 합친 후 길 하나를 택하여 본진을 향해 도망 쳤다. 정나라 군사들 일행이 일 리도 미처 가기 전에 맞은편에서 포성이 일어났다. 그것은 위가가 미리 한 떼의 군마를 도중에 매복시켰다가 퇴각하는 정나라 군사들의 퇴로를 끊기 위한 군사들이 내는 소리였다. 전면에는 위가가, 후면에는 투월초가 양쪽에서 협공하니 정나라 군사들은 대패하고 말았다. 공자방과 락이가 초군에게 사로잡히는 모습을 본 공자견은 목숨을 걸고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병거를 휘몰아 초군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너무 급히 모는 바람에 수레가 전복하여 공자견마저도 초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정나라 군사들이 싸움에서 대패하고 세 장수가 초나라의 포로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정목공은 크게 두려워하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세 장군이 적군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당진의 구원군은 아직 당도하지 않으니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여러 신하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군의 사기가 매우 사납습니다. 만약 항복하여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조만간에 정나라 도성은 함락 당해 그때가 되면 비록 당진의 군사들이 당도한다 한들 아무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정목공이 공자풍(公子豊)을 초나라 진영에 보내어 사죄의 말을 전하게 하고 뇌물을 바치면서 화의를 청하고 다시는 초나라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맹세문을 전하게 하였다. 투월초가 사람을 목왕에게 보내어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 주기를 청했다. 정나라와의 화의를 허락한 목왕이 즉시 공자견, 공자방 및 락이를 석방하여 정나라로 돌려보내도록 했다. 목왕은 영을 내려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돌아왔다. 한편 진(陳)나라를 정벌하러 간 식공자(息公子) 주(朱)와 공자패(公子茷)가 싸움에서 패하고 부장 공자패(公子茷)는 생포되어 포로가 되고 말았다. 식공자가 목왕을 배알하기 위해 낭연(狼淵)으로 갔다가 다시 회군하는 군사들 뒤를 따라와서 목왕을 배알하고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한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내 달라고 청했다. 목왕이 대노하여 군사를 다시 내어 진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사람이 와서 보고를 하였다.

「진나라에서 사자를 보내와 공자패를 우리 초나라에 돌려보내고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보내 왔습니다.」

목왕이 진공공(陳共公) 삭(朔)이 보낸 국서를 뜯어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과인 삭(朔)이 다스리는 진나라는 그 땅이 한쪽 변방에 치우친 아주 조그만 나라라서 아직 군왕의 좌우에 시립하여 모시지 못했습니다. 군왕께서 한 떼의 군마를 보내시어 우리나라를 훈계하시려고 하는데 국경을 지키는 어리석고 우악스러운 자가 상국의 공자를 욕보여 죄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삭은 황송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삼가 한 사람의 사자를 보내 상국의 거마를 하나도 빠짐없이 돌려 드립니다. 이 삭은 원하옵건대 상국의 그늘에 남아 보호를 받고자 하오니 오로지 대왕께서 저희들의 항복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목왕이 읽기를 마치고 웃음을 띄며 말했다.

「우리가 죄를 묻기 위해 토벌군을 보내지 않을까 매우 두려워한 나머지 국서를 보내 항복을 구하고 있는 진나라 군주는 가히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아는 자라 하겠다.」

3. 초맹궐맥(楚盟厥貉)

- 주원의 제후들을 궐맥으로 불러 맹회를 주재하는 초나라 -

목왕은 즉시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다시 격문을 써서 정과 진 두 나라의 군주에게 전달하게 하고 채후(蔡侯)와 같이 금년 겨울 10월 초하루에 궐맥(厥貉)③에 모이라고 하였다.

한편 당진의 집정 조돈은 정나라가 사태의 급함을 고해 옴에 따라 송(宋), 노(魯), 위(衛), 허(許) 등 네 나라에 사자를 보내 군사를 출동시키라는 명을 전했다. 이윽고 제후군들이 한 곳에 집결하자 당진군과 일대를 이루어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정나라의 경계에 당도하기도 전에 정나라가 초나라에게 항복하고, 초나라의 군사들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뒤이어 진(陳)나라도 초나라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들 끌고 왔던 송나라 대부 화우(華耦)와 노나라 대부 공자수(公子遂)는 진나라와 정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조돈에게 청했다. 조돈이 대답했다.

「우리가 사실은 구원병을 이끌고 나는 듯이 빨리 달려오지 못해 결국은 두 나라가 초나라에 항복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죄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군사를 되돌려 나라 안의 정치를 돌보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조돈은 즉시 네 나라의 군사들을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 이르고 자기도 당진의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염옹(髥翁)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정권을 잡고 제후들을 호령했던 사람이 누구이건데

군령으로 군사를 물리치니 형만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금일에 이르러 정진이 앞다투어 형만으로 달려가니

중원의 제후들을 호령하는 패자의 뜻을 접었음이라!

誰專國柄主諸侯(수전국병주제후)

却令荊蠻肆蠢謀(각령형만사준모)

今日鄭陳連臂去(금일정진연벽거)

中原伯氣黯然收(중원백기암연수)

진공공 삭과 정목공 란(蘭)이 그해 가을이 끝날 무렵 동시에 식(息) 땅에 당도하여 초목왕의 수레를 기다렸다. 이윽고 목왕이 당도하여 서로 상견례를 마치자 목왕이 두 사람에 물었다.

「원래 회맹하기로 한 장소는 궐맥의 땅인데 어찌하여 이곳까지 왕림하셨소?」

정백과 진후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왕과 약속한 날짜를 혹시라도 어기게 되어 죄를 얻지나 않을까 마음속으로 걱정하여 미리부터 이곳에서 군왕을 기다려 궐맥까지 수행하려는 뜻에서입니다.」

목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던 중 사람이 달려와서 보고를 올렸다.

「채장공(蔡庄公) 갑오(甲午)가 이미 궐맥 땅의 경계에 당도하여 대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레에 다시 오른 초목왕은 정과 진 두 나라 군주와 함께 나는 듯이 궐맥으로 내달았다. 채후가 궐맥에서 목왕을 영접하고 신하의 예로서 인사를 올렸다. 절을 두 번 올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하는 예는 제후가 천자를 배알하며 행하는 의례였다. 진후와 정백이 크게 놀라 둘이서 소곤거렸다.

「채후가 이렇듯 굽실거리며 예를 취하니 초왕은 필시 우리를 태만하다고 여기지 않겠소?」

두 사람은 즉시 의견을 모아 목왕에게 청했다.

「군왕께서 어가를 이곳까지 몰고 오셨는데 송군이 아직 참배하러 오지 않으니 대왕께서는 마땅히 군사를 보내 송나라의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목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곳에 와서 군사를 주둔시킨 이유는 바로 송나라를 정벌하려는 뜻에서요.」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있어 송나라에 가서 전했다.

그때 송나라는 성공(成公) 왕신(王臣)은 이미 죽고 그 아들 소공(昭公) 저구(杵臼)가 새로 선지 이미 3년이 지난 후였다. 소공의 사람 됨됨이는 소인배들을 믿고 임용하며, 공족들은 배척하고 멀리했다. 목공(穆公)과 양공(襄公)의 후손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작당하여 란을 일으켜 사마 공자앙(公子卬)을 살해하자 사공(司空) 탕의제(蕩意諸)는 노나라로 도망쳤다. 송나라에 마침내 내란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사구(司寇) 화어사(華御事)가 중간에 나서서 국사를 조정하고, 다시 탕의제의 관직을 돌려주어 노나라에서 불러들이자고 송군에게 청했다. 소공이 허락하여 탕의제를 귀국시키자 송나라는 다소나마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때 송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은 초왕이 여러 제후들을 궐맥에 모이게 해 놓고 송나라를 정벌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어사가 송소공에게 청했다.

「신이 듣기에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국은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초나라가 진과 정 두 나라를 복종시켰으나 단지 우리 송나라만을 복종시키지 못하고 있어 궐맥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우리를 엿보고 있는 중입니다. 청컨대 먼저 궐맥으로 납시어 초왕을 영접하십시오. 만약 초나라의 눈치를 보다가 그들이 정벌을 결심한 후에나 화의를 청한다면 그때는 늦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송소공이 화어사의 진언을 받아들여 즉시 궐맥으로 가서 초왕을 배알하였다. 또한 사냥에 필요한 일체의 기구들을 준비하여 맹제(孟諸)④의 소택지에서 사냥대회를 열기를 청했다. 목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진후가 목왕의 전대를 맡아 길을 열고 송공은 우측을 정백은 좌측을 맡고 채후는 후대를 맡아 목왕을 모시고 사냥을 하게 되었다. 목왕이 령을 내려 제후들을 따라온 시종들에게 다음 날 아침 동틀 때까지 말들을 모두 수레의 끌채에 매달고, 각 수레에는 각기 부싯돌과 마른 풀을 싣고 사냥 중에 불을 붙여 사용하게 될 때를 대비하게 하였다. 이윽고 사냥하기로 한 날이 밝아오자 사국의 군사들은 서로 대열을 합하여 사냥터를 에워싸고 목왕의 행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목왕이 사냥터의 우측에서 마차를 타고 군사들과 함께 질풍같이 내달려 왔다. 그때 마침 한 떼의 여우들이 목왕의 시야에 나타나자 모두들 그 뒤를 쫓았다. 여우들은 도망가다가 깊은 굴속으로 숨어 버렸다. 목왕이 송공을 쳐다보며 부싯돌과 마른 풀을 꺼내어 연기를 피우라고 했다. 그러나 수레에는 부싯돌이 없어 연기를 피울 수 없었다.. 초나라 사마(司馬) 신무외(申无畏)가 상주하였다.

「송공이 령을 위반하였으니 왕께서는 죄를 주지 않으면 패자로써 령을 세울 수 없게 됩니다. 청컨대 송공의 수레를 모는 마부를 잡아 다스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무외는 즉시 송공의 수레를 모는 어자를 잡아 큰 소리로 꾸짖고 곤장 300대를 치게 하여 제후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했다. 송공이 마음속으로 크게 치욕감을 느꼈다.

이때가 주경왕(周頃王) 2년 기원전 617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초나라의 세력이 중원 제후국들보다 월등하게 강하여 전횡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목왕이 투월초를 제(齊)와 노(魯) 두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자기가 중원의 패자라고 스스로 칭했다. 그러나 당시 당진으로써는 초나라를 제어할 만한 힘이 없었다.

4. 사마한궐(司馬韓厥)

- 정실에 얽매이지 않고 엄격하게 군법을 집행하여 사마의 직책을 다한 한궐 -

주경왕 4년 즉 기원전 615년 섬진의 강공(康公)이 군신들을 모이게 하여 말했다.

「내가 영호(令狐)에서 당진의 군사들에게 당한 원한을 가슴에 품고 있기를 이제 5년이나 되었다. 지금 조돈이 대신들을 도륙하느라 국경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진(陳), 채(蔡), 정(鄭), 송(宋) 네 나라가 다시 팔을 바꾸어 초나라를 받들게 되었음에도 당진이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당진의 국세가 약해졌음을 알 수 있음이라! 이때 우리가 당진을 정벌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여러 대부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컨대 목숨이 다하도록 힘을 다하여 전하의 원한을 풀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라 안의 거마와 군사를 대대적으로 징발하여 직접 사열한 진강공은 맹명시를 국내에 남겨 도성을 지키게 하고 서걸술은 대장으로 백을병은 부장으로, 사회를 참모로 임명하고 병거 500승을 동원하여 호호탕탕 하수를 건너 하동(河東)으로 진격했다. 섬진군을 기세를 몰아 기마성(羈馬城)⑤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그곳에 주둔했다. 당진의 조돈이 급보를 받고 섬진의 군사를 막을 계책을 세웠다. 조돈 자신은 스스로 중군원수가 되고 상군원수 순림보를 중군의 부수로 옮겨 선극을 대신하게 하고 시미명(提弭明)을 발탁하여 극결이 맡고 있던 차우장군으로 삼고 극결은 기정보를 대신하여 상군원수로 삼아 군사를 일으켜 섬진군을 막으려고 했다. 조돈의 종제에 조천(趙穿)이라는 자가 있었다. 일찍이 그는 양공(襄公)의 부마가 되어 총애를 받았었다. 그가 자청하여 상군부수를 원하였으나 조돈이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용기는 조금 있다 하나 아직 나이가 있으니 조금 더 경험과 수련을 쌓고 후일을 기다려라!」

조돈은 이어서 유병(臾騈)을 상군부수로 임명했다. 다시 란지(欒枝)로 하여금 하군원수로 삼아 선멸을 대신토록 하고 서신의 아들 서갑(胥甲)을 부수로 삼아 선도를 대신토록 했다. 조천이 다시 자청하여 그 사병들을 끌고 나와 상군에 소속되어 종군하여 공을 세워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했다. 조돈이 허락했다.

그때까지 조돈은 군법을 집행할 군중사마에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자여(韓子輿)의 아들 한궐(韓厥)은 어렸을 때부터 조돈의 집안에서 자라 이내 장성하자 계속해서 조씨 집안의 문객이 되었다. 사람됨이 어질고 재주가 있어 조돈이 영공에게 천거하여 사마로 임명했다.⑥

당진의 삼군이 강도를 떠나 행군할 때 군기가 매우 엄숙하였다. 군사의 행렬이 강도를 빠져 나와 십여 리도 못 갔을 때 갑자기 수레를 타고 중군 속으로 돌진해 오는 자가 있었다. 한궐이 사람을 보내 어인 일인지 물어 보게 하였다. 수레를 모는 자가 말했다.

「저는 조상국의 수레를 모는 어자인데 상국께서 차를 마시는 잔을 잊으셔서 제가 군령을 받들어 가지고 오느라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한궐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부대의 행군 순서가 이미 정해졌는데 어찌 감히 병거를 타고 중군을 내달릴 수 있단 말인가? 군법에 따라 참수하라!」

어자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다.

「저는 상국의 명을 받들었을 뿐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궐이 황공하게 사마의 직을 맡았는데 나는 단지 군법만을 알뿐 이지 상국이 있음은 모르겠도다!」

한궐은 주저 없이 어자를 참수하고 그가 타고 온 병거를 부숴 버렸다. 여러 장수들이 조돈에게 말했다.

「상국이 천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궐은 오히려 상국의 수레를 부셔 버리고 그 어자는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이는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이니 사마의 직을 빼앗기 바랍니다.」

조돈이 미소를 지으며 즉시 사람을 보내 한궐을 불렀다. 여러 장수들은 조돈이 필히 궐을 욕보여 그 원한을 갚으려고 하는 줄로 생각했다. 한궐이 당도하자 조돈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밑으로 내려와 예를 취하고 말했다.

「내가 들으니 군주를 모시는 자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대는 군법을 집행하기를 이처럼 공평무사하게 하니 내가 천거한 뜻을 저버리지 않았소! 앞으로 더욱 힘써 주기 바라오!」

한궐이 감사의 말을 드리고 조돈의 앞을 물러 나왔다. 조돈이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후일 당진의 정사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한궐이겠고 한씨 문중은 그로 인하여 장차 번창할 것이오!」

5. 하곡지전(河曲之戰)

- 진진(晉秦)의 하곡(河曲) 싸움 -

당진의 군사들은 행군을 끝내고 하곡(河曲)에다 진영을 세웠다. 유병이 계책을 내었다.

「섬진의 군사들이 그 정기(精氣)를 수년 간 축적한 결과 이번에 출정하였으니 그 예봉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단지 지키기만 하고 절대 싸움에 응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보급로 사정으로 오랫동안 우리와 대치를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군사를 물리쳐 돌아가야만 합니다. 섬진군의 후퇴를 기다려 뒤를 추격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조돈이 유병의 계책을 따랐다. 섬진의 강공이 싸움을 걸었으나 당진 군 진영 쪽에서는 결코 응하지 않았다. 강공이 사회를 불러 그 대책을 물었다. 사회가 말했다.

「조씨가 이번에 새로이 한 사람의 모사를 기용하였는데 성은 유(臾)이고 이름은 병(騈)이라고 합니다. 유병은 지모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금일 굳건히 지키기만 하고 싸움에 응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그의 계책을 채용하여 우리 군사들을 피로에 지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돈의 사촌 동생 중에 이름이 조천(趙穿)이라는 서출이 한 명 있습니다. 일찍이 그는 돌아가신 양공의 사위가 되어 사랑을 몹시 받았었습니다. 제가 들으니 그가 상군부수의 직을 원했으나 조돈이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유병을 그 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조천은 분명 마음속으로 한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조맹이 유병의 계책을 받아들여 싸움에 임하고 있으나 조천은 필시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가병을 이끌고 종군하여 싸움터에 임했으나 단지 싸우지 말고 지키기만 하라는 유병의 계책은 결과적으로 조천에게는 공을 세울 수 없게 되어 유병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만약 발빠른 군사들을 뽑아 당진의 상군 쪽으로 보내 싸움을 도발하게 한다면 유병이 비록 출전하지 않는다 해도 조천이 자기의 용기를 믿고 군사를 내어 도전에 응할 것입니다. 이로써 싸움의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강공이 사회의 말을 쫓아 즉시 백을병으로 하여금 병거 100승을 몰고 당진의 상군을 기습하여 싸움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다. 극결과 유병은 모두 굳게 지키기만 할뿐 섬진군의 도전에 전혀 응하지 않았으나 섬진의 군사들이 몰려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천은 100승에 달하는 조씨 족인들로 구성된 군사들을 인솔하고 당진군의 영문 밖으로 나가 섬진군과 전투를 벌이려고 했다. 조천의 군사들이 진군해오자 백을병이 수레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백을병이 이끄는 병거들은 모두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백을병의 뒤를 쫓아 10여 리쯤 추격했던 조천이 그들의 뒤를 따를 수 없어 본진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하릴없게 된 조천은 다른 한편으로 유병 등이 군사를 내어 자기를 도와 같이 섬진군을 추격하지 않은 행위를 괘씸하게 여겨 즉시 상군의 군리를 불러 욕설을 퍼부었다.

「양식을 짊어지고 갑옷을 입는 목적은 원래 싸움을 하기 위해서다. 오늘 적군이 쳐들어 왔는데 나가서 맞서 싸우지 않으니 도대체가 상군의 군사 놈들은 모두 아녀자들로만 이루어 졌는가?」

군리가 대답했다.

「우리 상군의 원수께서 스스로 적을 파할 계책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조천이 계속해서 욕했다.

「쥐새끼 같은 놈들에게 무슨 깊은 계략이 있단 말이냐? 솔직히 말하면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닌가? 다른 놈들은 모두 섬진의 군사들을 무서워하겠지만 이 조천만큼은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있다. 내가 장차 혼자서라도 섬진의 군사들을 추격하여 목숨을 걸고 한번 싸워서 이렇게 견고한 담벼락에만 의지하며 처박혀 있는 치욕을 씻어 보리라!」

조천은 말을 마치고 즉시 수레를 몰고 진영 앞으로 나가더니 큰소리로 외치며 여러 군사들을 향하여 말했다.

「용기 있는 자는 모두 나를 따르라!」

삼군의 군사들은 아무도 조천의 돌출행동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단지 하군 부수 서갑(胥甲)만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용사로다. 내가 마땅히 도우리라!」

서갑이 즉시 자기 휘하의 군사를 내어 조천의 뒤를 따르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상군원수 극결은 사람을 조돈에게 급히 보내 조천이 군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고했다. 조돈이 놀라며 말했다.

「미친 어린놈 하나가 돌출행동을 하니 이는 필시 섬진의 포로가 될 것이다.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조돈은 즉시 삼군에 령을 내려 일시에 진영 밖으로 출동하여 섬진의 군사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조천의 군사들을 돕도록 했다.

한편 자신의 가병을 이끌고 섬진의 진영으로 돌진해 들어간 조천은 백을병을 보고 달려들어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쌍방 간에 3십여 합을 겨루고 있는 동안에 그들이 거느린 군사들은 피차간에 많은 사상자가 났다. 서걸술이 진영 밖으로 나와서 조천과 그의 군사들을 협공하려고 하는 순간 다른 한쪽 편에서 당진의 대군이 일제히 돌진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양쪽의 군사들이 혼전을 감행하지 못하고 징을 울려 군사들 거두었다. 조천이 본진으로 돌아와 조돈에게 불평을 토로했다.

「제가 혼자의 힘으로 섬진의 군사를 물리쳐 여러 장수들의 치욕을 풀어 주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징을 울려 군사들을 거두셨습니까?」

「섬진은 대국이라 가볍게 볼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마땅히 계책을 써어야만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책, 계책하지 마십시오.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부아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조천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사람이 달려와 조돈에게 보고하였다.

「섬진에서 사람을 시켜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

조돈이 유병으로 하여금 섬진의 사자를 데려오도록 했다. 사자가 들어와 전서를 꺼내어 바치자 곁에 있던 유병이 받아서 조돈에게 건넸다. 조돈이 겉봉을 뜯고 읽었다.

「양국의 전사들이 아직도 모두 건재하니 청컨대 내일 일전을 결하여 승부를 내도록하자!」

조돈이 사자에게 군후전하의 명에 따르겠다고 전하게 했다. 섬진의 사자가 돌아간 후에 유병이 조돈에게 말했다.

「섬진의 사자가 입으로는 비록 싸움을 청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안정이 안 되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우리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그들은 군사를 물리쳐 회군할 것으로 봅니다. 청컨대, 하수를 건너는 입구에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가 그들이 강을 건너는 순간에 일제히 일어나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오!」

조돈이 령을 내려 곧바로 군사를 발진시켜 하수를 건너는 나루 입구에 매복하도록 했다. 그때 그 계획을 알게된 하군부수 서갑이 조천을 찾아가 고했다. 조천과 서갑이 본진의 군문에 당도하여 큰소리로 같이 외쳤다.

「여러 군사들은 내 말을 들어라! 우리 당진의 군사들은 강하고 장수들은 많은데 어찌하여 서쪽의 섬진군보다 못하다고 하는가? 섬진과 내일 결전을 이미 허락해 놓고 다시 하구(河口)에 군사를 매복시켜 섬진의 군사를 몰래 기습하려는 계책을 어찌 사나이 대장부들이 할 짓이겠는가?」

조돈이 듣고 두 사람을 불러 타일렀다.

「내 계획은 원래 그대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니 결코 군심을 어지럽히지 말라!」

섬진의 첩자가 조천과 서갑이 군문에서 소리친 말을 듣고 돌아와 보고하자 진강공은 지체하지 않고 군령을 발해 진채를 거두고 군사를 남쪽 방향으로 이동시켜 하수를 건넜다. 철군하던 섬진군은 하수 남안의 하읍(瑕邑)⑦을 점령하고 다시 서쪽으로 나아가 도림색(桃林塞)으로 돌아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섬진의 군사가 퇴각해 버리자 조돈도 역시 군사를 물리쳐 강도(絳都)로 돌아와 군사기밀을 누설한 죄를 다스렸다. 조천은 사랑을 받았던 선군의 부마였었고 또한 자기의 사촌 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특별히 용서해 주고 모든 죄를 서갑에게 넘겨 그의 관작을 빼앗은 후에 위(衛)나라로 추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돈이 서갑을 향해 말했다.

「내가 너를 참수형에 처하지 않는 이유는 너의 부친 구계(臼季)가 전대에 세운 공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조돈은 서갑의 아들 서극(胥克)을 하군부수에 임명하여 그를 대신하게 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조돈의 처사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군문에서 함께 기밀을 누설한 죄는 다 같은데

서갑 혼자만이 법률에 따라 죄를 받게 되었다.

종족들을 비호하려는 뜻이 아니었다고 조돈이 말한다면

청컨대 도원에서의 일을 동호에게⑧ 물어보아라!

同呼軍門罪不殊(동호군문죄불수)

獨將胥甲正刑書(독장서갑정형서)

相君庇族非无意(상군비족비무의)

請把桃園問董狐(청파도원문동호)

6. 家小被捕 逃脫詐降(가소피포 도탈사항)

- 구금시킨 가족을 핑계로 달아나 섬진에 거짓 항복하는 당진의 위수여(魏壽余) -

주경왕(周頃王) 5년 기원전 614년은 당진의 영공이 선지 7년째 되는 해다. 섬진군이 다시 쳐들어 오지나 않을까 걱정한 조돈은 대부 첨가(詹嘉)를 하읍(瑕邑)에 보내 탈환하여 머물러 지키도록 하면서, 도림색(桃林塞)의 방어를 맡겼다. 유병이 조돈에게 진언했다.

「지난 번 하곡의 싸움에서 섬진이 사용한 계책은 모두 사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섬진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한 우리들은 결코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조돈이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즉시 제부(諸浮)의 땅에 별도로 지은 관사에 당진의 육경을 모이게 하여 회의를 열어 대책을 상론하려고 했다. - 그 육경들이란 조돈(趙盾), 극결(郤缺), 란돈(欒盾), 순림보(荀林父), 유병(臾騈), 서극(胥克) 등의 3군을 통솔하는 주수와 부수를 맡고 있는 장군들이었다.- 육경들이 관사에 다 모이자 조돈이 입을 열어 말했다.

「오늘 호석고는 적(狄) 땅의 로국(潞國)에 있고, 사회는 섬진에 있소. 두 사람은 우리 당진을 해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이들을 대처해야 되겠소?」

중군부수 순림보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청컨대 호석고를 불러 다시 복직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는 국정의 일을 감당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우리 당진에 큰공을 세운 자범(子犯:호언의 자)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마땅히 불러 그 선친이 세운 공로를 생각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군대장 극결이 반대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호석고가 비록 우리 당진국의 훈구대신 아들이긴 하지만 제 멋대로 대신을 살해한 큰 죄인입니다. 만약 그를 복직시킨다면 장래에 무엇으로 이 나라의 잘못한 사람들에게 경계를 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사회를 불러오십시오. 사회는 세상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마음이 온유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지혜가 많은 사람입니다. 또한 사회가 섬진으로 도망가서 살고 있는 이유도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적국은 멀고 섬진은 가깝습니다. 만약에 섬진의 침략을 막으시고자 한다면 먼저 섬진을 돕고 있는 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를 불러오면 섬진을 돕는 자는 자연히 제거됩니다.」

조돈이 좌중을 향해 다시 물었다.

「섬진이 바야흐로 사회를 총애하고 신임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부른다 해도 틀림없이 따르지 않을 텐데 무슨 방법으로 그를 복국 시킨단 말이오?」

유병이 말했다.

「제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옛날 당진의 대신이었던 필만(畢万)의 손자이며 성은 위(魏)이고 이름은 수여(壽餘)라고 합니다. 위주(魏犨)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지금 식읍인 위(魏)⑨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당진국의 명문세가 후손이지만 아직 조당에서 벼슬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기응변에 능한 이 사람이라면 사회를 능히 불러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유병이 말을 마치고 즉시 몸을 앞으로 기우려 조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돈이 듣고 기뻐하며 유병을 향해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나를 위하여 위수여에게 우리의 뜻을 전해 주기 바라오!」

당진의 육경이 모두 해산하자 유병이 즉시 그날 저녁으로 위읍으로 가서 수여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수여가 유병을 마중하여 집안으로 들여 서로 예를 취한 후 좌정했다. 유병이 수여에게 비밀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서 밀실이 있는지 청했다. 자리를 밀실로 옮긴 두 사람이 다시 대좌했다. 유병이 섬진에 가 있는 사회를 다시 당진으로 불러오는 문제를 당진의 육경이 서로 상의한 일을 수여에게 고했다. 위수여는 유병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유병이 돌아와 위수여가 허락했다고 조돈에게 복명했다.

다음날 아침 조회에서 조돈이 영공에게 상주했다.

「섬진이 누차 우리 당진의 경계를 침범하여 나라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하동의 성읍들을 다스리는 관리들에게 령을 내려 각각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을 훈련시켜 황하의 강안을 진채로 연결하여 순번을 정해 파수를 보도록 하고, 아울러 식읍(食邑)과 채읍(采邑)의 관리들에게 파수를 보는 곳에 머물게 하여 감독시키도록 해야합니다. 만일 그 일을 태만히 하는 자가 있다면 즉시 그 자의 직책을 삭탈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온 마음을 다하여 섬진의 침입에 대비하도록 경계를 주시기 바랍니다.」

조돈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동의 땅 중에서 위(魏)는 큰 고을입니다. 위읍이 앞장선다면 여러 고을들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즉시 영공의 명으로 위수여를 불러들여 하수의 동안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훈련시키고 파수를 보게 하는 일을 책임지고 감독하게 하였다. 영공으로부터 명을 받은 위수여가 불만을 토로했다.

「신은 선조들이 이룩한 공업으로 인해 주공으로부터 큰 읍을 하사받은 은혜를 입어 의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신은 군사의 일을 모를 뿐만 아니라 항차 하상(河上)의 백 리가 넘는 지역은 모두 배를 타고 건너면 못 건널 곳이라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 넓은 곳에 모두 군사를 내어 지키는 일은 힘만 들뿐 실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공의 곁에서 시립하고 있던 조돈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너 같은 하찮은 시골의 벼슬아치가 감히 나라의 대계를 어지럽히려 하느냐? 너에게 3일의 말미를 주겠으니 네 고을의 장정들에게 대한 병적을 만들어 바쳐라! 만약 이 명령을 어긴다면 마땅히 군법에 따라 죽이겠노라!」

수여가 탄식하며 조당에서 물러나와 위읍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 고민해 마지않은 척했다. 수여의 처가 그 까닭을 묻자 수여가 말했다.

「조돈이 무도하여 나로 하여금 하수의 동안을 지키는 일을 책임지라고 하니 기한 내에 내가 어찌 그 일을 해 낼 수 있겠소? 그대는 집안의 가재도구와 재물들을 모두 수습하여 나를 따라 섬진으로 달아납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수여는 즉시 집안의 가정들에게 분부하여 거마를 정비하도록 명했다. 그날 밤, 위수여는 밤을 새워 술을 마시다가 가지고 들어온 음식들이 불결하다고 트집을 잡아 요리사를 채찍으로 백여 대를 때리고 나서도 그 분함이 풀리지 않아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요리사가 도망쳐서 조씨부(趙氏府)로 달려가 수여가 당진을 배반하고 섬진으로 도망치려고 한다고 고했다. 조돈이 한궐을 시켜 군사를 끌고 가서 위읍에 있는 위수여를 잡아들이게 했다. 수여를 도망치게 놓아준 한궐은 단지 그들의 처자들만 잡아 가지고 와서 옥에 가두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하수를 건너 섬진으로 도망쳐 강공을 알현한 수여는 조돈이 한 짓을 상세히 고하고 제멋대로 당진의 정사를 전횡하는 무도한 자라고 비난했다.

「처자들은 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저는 혈혈단신으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어 이렇게 상국으로 달려와 투항했습니다.」

강공이 사회를 향해 물었다.

「과연 그가 믿을 만합니까?」

「당진 사람들은 꾀가 많아 쉽게 믿으면 안 됩니다. 만약 수여가 진실로 우리에게 투항했다면 마땅히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바쳐 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곁에 서 있던 수여가 소매 안에서 서책을 한 권 꺼내어 강공에게 바쳤다. 강공이 보니 그것은 곧 위읍의 토지와 백성들의 수를 적은 호적(戶籍)이었다.

7. 意在言外 假託誘誓(의재언외 가탁유서)

- 행간의 말로 섬진을 속여 사회를 본국으로 불러오다. -

수여가 강공에게 말했다.

「군후께서 능히 이 수여를 거두어 주신다면 원컨대, 저의 식읍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강공이 다시 사회에게 물었다.

「위읍을 우리가 능히 취할 수 있겠소?」

수여가 사회를 곁눈질로 보면서 그 발꿈치를 아무도 모르게 슬쩍 밟았다. 사회 역시 당진에서 도망쳐와 섬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가슴속 한편에는 당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회는 수여가 자기에게 한 짓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 뜻을 짐작한 바가 있어 강공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우리 섬진이 하동(河東)의 다섯 성을 버린 이유는 당진과 혼인을 위해서였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양국이 서로 군사를 동원하여 싸움을 하게 된지가 십수 년이 되었습니다. 성을 공격하여 주변의 고을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힘에 의해서입니다. 하동의 여러 성중에 위읍만큼 큰 곳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위성(魏城)을 얻게 되어 그곳에 군사를 주둔시킬 수 있게 된다면 하동의 땅은 머지않아 우리의 차지가 될 수 있습니다. 수여가 스스로 찾아와 위성을 바친겠다고 청함은 우리 섬진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단지 걱정되는 바는 위읍의 관리들이 당진이 군사를 보내 토벌하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떤 나머지 기꺼이 우리에게 복속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수여가 듣더니 앞으로 나와 말했다.

「위읍의 관리들은 비록 당진의 신료이지만 실은 우리 위씨 집안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한 떼의 군마를 하서(河西)에 주둔시켜 멀리서 성원해 주신다면 신이 온힘을 다해 섬진을 위해 위읍을 지켜내겠습니다.」

강공이 사회를 보고 말했다.

「경은 당진의 일을 잘 알고 있으니 반드시 과인과 같이 하서로 나가야 하겠소!」

강공은 즉시 서걸술을 대장으로 사회를 부장으로 삼아 친히 대군을 인솔하여 위읍을 접수하기 위해 하동의 땅을 향해 진군했다. 섬진군의 행렬이 하수의 강안에 당도하자 강공은 군사들에게 영채를 세우도록 명을 내렸다. 이윽고 진채를 세우기를 다 마칠 때쯤 강 건너로 보낸 정탐병이 돌아와 보고했다.

「강 건너에 한 떼의 군마가 주둔하고 있는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수여가 말했다.

「이것은 필시 위성의 백성들이 섬진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에게 대항하기 위해 전투준비를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이 수여가 섬진에 몸을 맡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소신이 저처럼 당진에서 투항해 온 사람을 한 명 구하여 함께 그들을 찾아가 화복(禍福)으로 그들을 설득하겠습니다. 위성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이 수여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공이 사회에게 명하여 수여와 같이 하수는 건너 위성에서 나온 관리들과 군사들의 진영을 찾아가 섬진에 투항하도록 설득하라고 했다. 사회가 머리를 가로 저으며 사양하는 척했다.

「당진의 사람들은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심성을 지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이 신이 가서 그들을 설득하여 그들로 하여금 섬진을 따르게 한다면 그것은 나라의 복이지만 그렇지 않고 그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고 신을 억류한다면, 주군께서는 신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원망하신 나머지 그 죄를 신의 처자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군께도 무익 할뿐만 아니라, 저와 저의 가족들은 억울하게 재앙을 입어 죽게 되니, 그때 가서 구천에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회가 속이는 사실을 전혀 생각 못한 강공이 말했다.

「경은 마땅히 온 정성을 다해 다녀오기 바라오! 만약 그대가 위읍을 얻기만 한다면 봉작과 상을 더하여 주겠으며, 만약 당진 사람들에게 잡혀 억류가 된다 하더라도 과인이 마땅히 그대의 가족들을 돌려보내어 그대와 함께 지낸 정을 표시하겠으니 마음 놓고 다녀오시오!」

강공은 사회를 가까이 불러 같이 황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가 한 말을 어기지 않겠다고 맹세 했다. 섬진의 대부 요조(繞朝)가 간했다.

「사회는 당진의 모신입니다. 이번에 그를 하수를 건너게 하여 하동 땅으로 보낸다면 큰 고기를 강물에 놓아주는 경우가 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수여의 말을 그렇게 가볍게 믿으시고 지혜가 많은 신하를 놓아 보내 적으로 삼으려 하십니까?」

「이 일은 과인 능히 감당할 수 있으니 경은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사회와 수여가 강공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길을 떠나려고 하자 요조가 황급하게 수레를 몰아 뒤따라 와서는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사회에게 선물로 주며 말했다.

「그대는 우리 섬진에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고 업신여기지 마시오. 우리 섬진에 지혜로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주공께서 나의 말을 듣지 않으셨을 뿐이오. 그대는 이 채찍으로 말 등을 쳐서 속히 돌아가시오. 지체했다가는 화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서요.」

사회가 절을 올리며 감사의 말을 하고는 수레를 몰아 나는 듯이 달아났다. 사관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말에 채찍질하여 옷소매가 휘날리도록 앞으로 달려와

은근한 정으로 친구에게 긴 채찍을 선물하고는

섬진에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강공이 충간을 받아 주지 않으니 어찌 하겠는가?

策馬揮衣古道前(책마휘의고도전)

殷勤贈友有長鞭(은근증우유장편)

休言秦國無名士(휴언진국무명사)

爭奈康公不納言(쟁나강공불납언)

사회와 수여가 드디어 하수를 건너 하동으로 건너왔다.

《제49회로 계속》

주석

①기성(箕城) : 지금의 산서성 포현(蒲縣) 북

②낭연(狼淵) :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남

③궐맥(厥貉) : 지금의 하남성 항성시(項城市) 남 말릉진(秣陵鎭) 부근

④)맹제(孟諸) :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丘市) 북쪽의 땅으로 당시 단수(丹水)가 흐르고 있었다. 즉 맹제는 송나라 도성인 수양성(睢陽城) 북동 쪽 30키로 있었던 단수 강안의 소택지(沼澤地)이다.

⑤기마성(羈馬城) : 하수(河水)가 북쪽에서 흐르다 동쪽으로 꺾이는 하곡부(河曲部)에 있던 고을. 섬서성을 관통하는 위수(渭水)와도 합류되는 산서성 쪽의 하수 강안에 있었던 당진의 성읍이다.

⑥당진의 영공(靈公) 이고(夷皐) 6년인 기원전 615년에 개편한 당진의 군제표

軍 別

元 帥

副 帥

其 他

三軍

中 軍

趙 盾

荀 林 父

車右將軍/弭明

中軍司馬/韓厥

조천(趙穿)

上 軍

郤 缺

臾 騈

下 軍

欒 盾

胥 甲

⑦하읍(瑕邑) : 지금의 하남성 영보시(靈寶市) 양평진(陽平津)을 말한다. 섬진군 서쪽으로 나아가 원래 지금의 풍릉도진(風陵渡津)에서 하수를 건너 퇴각하려 했으나 조천의 기밀 누설로 인하여 그 방향을 동쪽으로 나아가 다시 남쪽으로 바꿔 하수를 건넌 후에 하읍을 점령한 것이다.

⑧동호(董狐) : 본서 50회에 나오는 내용으로써 당진의 군주 영공(靈公)이 성장하여 황음무도하고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아 조돈이 적극 만류하자 영공은 오히려 조돈을 살해하려고 하였다. 조돈은 이를 알고 국경으로 도망쳐서 사태를 관망하였는데 그 때 당진의 중군원수가 되어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천이 도원(桃園)으로 가서 영공을 죽이고 조돈을 불러들였다. 조돈은 조천이 일으킨 정변으로 당진의 상국 자리에 복귀하게 되었다. 조돈 밑에서 사관을 하고 있던 동호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서에 ‘조돈이 그 군주를 시해했다’라고 적어 후세 사가의 모범을 보인 일을 말한다.

⑨위(魏) : 현 산서성 남단 황하의 하곡부 북안에 있었던 고을임. 전국칠웅 중의 하나인 위(魏)나라의 발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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