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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4:304204 
제50회. 一飛沖天(일비충천), 桃園忠諫(도원충간)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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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0회 一飛沖天 桃園强諫(일비충천 도원강간)

한 번 날아 하늘을 뚫은 초장왕과

도원에서 영공에게 온힘을 다해 간한 조돈

1. 살적입서(殺嫡立庶)

-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군주로 세우는 노나라의 삼환씨 -

노나라의 동문수와 숙손득신 두 사람이 동행하여 제나라에 사절로 와서 제후로 새로 즉위한 혜공(惠公)을 축하하고 한편으로는 노나라의 국상에 조문사절을 보내준 배려에 감사의 말을 올렸다. 두 사람으로부터 배례를 받은 제혜공(齊惠公)①은 연회(宴會)를 베풀어 노나라의 사자들을 접대하면서 그들의 새로운 군주에 관해 물었다.

「어찌하여 조후의 이름을 오(惡)라고 짓게 되었소? 세상에는 좋은 이름들이 파다하게 많은데 하필이면 이런 좋지 않은 글자를 이름으로 쓰게 되었소?」

동문수가 대답했다.

「선군께서 당초 신군을 낳으셨을 때 태사에게 점을 치게 했습니다. ‘장차 이 아이는 횡사할 운명이라 군주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라는 점괘를 얻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선군께서 오(惡)라고 이름을 지어 불길한 점괘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도록 기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결국 선군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군이 사랑한 공자는 제일 나이가 많은 왜(倭)입니다. 공자왜는 사람됨이 어질고 효자입니다. 능히 대신들을 높여 존경할 줄 압니다. 성안의 백성들이 항상 공자왜를 군주로 받들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단지 그가 적자의 신분이 아니라 이를 행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옛날부터 장자로 세자를 세우는 것이 법도고 더욱이 선군의 사랑까지 받았는데 군주로 세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오?」

숙손득신이 나서서 동문수의 말을 거들었다.

「노나라는 옛날부터 적서를 따져 세자로 정했지, 나이를 따져 적자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선군께서 노나라의 관례적으로 내려온 예를 쫓아 공자왜를 제치고 세자오를 세우셨으나 나라 안의 백성들은 모두 즐겨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노나라를 위하여 어진 사람으로 군주를 바꿀 뜻이 있다면, 원컨대 우리 노나라는 혼인으로 우호관계를 맺어 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시고 매년 조빙하는 사절을 보내 결코 빠뜨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혜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대부들께서 돌아가 능히 나라 안에서 일을 도모하신다면 과인은 그 뜻만을 쫓겠소!」

중손수와 숙손득신은 두 나라 사이의 혼인에 대한 약속을 삽혈의 의식으로 맹세하기를 제혜공에게 청했다. 혜공이 허락했다. 중수와 득신이 제나라에서 돌아와 계손행보에게 말했다.

「근자에 당진은 패자로써의 지위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제나라가 다시 강해지기 시작했다. 제후(齊侯)가 그의 정부인 소생의 딸을 공자왜의 부인으로 보내어 혼인 맺기를 허락했다. 이것은 제나라가 우리를 매우 후하게 대접하는 일이라 결코 거절하면 안 된다.」

「지금 군위을 이어 받은 세자 전하는 제나라 선군(先君)의 사위입니다. 제후가 딸이 있어 우리와 혼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어찌하여 세자 전하의 부인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공자왜의 부인으로 삼으려고 합니까?」

「제후가 공자왜를 사위로 삼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가 어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세자의 부인 강씨는 즉 제나라 소공(昭公) 반(潘)의 딸이다. 제환공의 여러 아들이 서로 싸우고 죽여 원수지간이 되어 4대에 이르도록 모두 형제간에 군주 자리를 서로 이어 받고 있다. 그들은 지금 형제간의 정도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은데 그까짓 사위쯤이야 눈 하나 깜짝하겠는가?」

계손행보가 그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탄해 하면서 말했다.

「동문씨가 장차 반역을 일으키려 하는구나!」

-중수의 집이 노성의 동문 부근에 있어 그 호칭을 동문씨라고 한 것이다.-

행보가 아무도 몰래 세자오의 태부 숙중팽생을 찾아와 중수의 말을 고했다. 팽생이 듣고 말했다.

「군위는 이미 정해졌는데 누가 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팽생은 그다지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중수와 경영이 비밀리에 계책을 세워 마구간에 자객들을 매복시킨 후에 말을 기르는 책임자를 보내 거짓으로 세자오에게 고하게 했다.

「말이 망아지를 낳았는데 매우 훌륭합니다.」

경영이 공자왜를 시켜 세자오와 공자시를 마구간으로 데리고와 망아지의 털색을 구경시키라고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마구간 앞에 나타나자 갑자기 매복해 있던 자객들이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곤봉으로 때려 죽였다. 두 사람이 죽자 중수가 다시 말했다.

「태부 팽생이 아직 살아 있어 만일 이 사람을 없애지 않는다면 일이 이루어 졌다고 말할 수 없다.」

중수가 즉시 내시를 보내 세자오의 명으로 팽생을 입궐하게 했다. 팽생이 명을 받고 입궁할 채비를 가노들에게 시켰다. 그때 공염무인(公冉務人)이라는 그의 가신은 평소에 중수가 궁궐의 깊숙한 곳에 사는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자오의 이름으로 내린 입궐하라는 명은 거짓이라고 의심한 공염무인은 팽손의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태부께서는 궁궐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들어가시면 틀림없이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주군께서 나를 부르는데 내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내가 들어가서 정말로 죽는다 할지라도, 도망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그것이 과연 군명이라면 태부께서는 죽지 않으시겠지만 만약 군명이 아니라면 죽게 될 터인데 그 죽음이 무슨 명분이 있겠습니까?」

팽생이 공염무인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궁궐로 들어가려고 하자 무인이 눈물을 흘리며 팽생의 옷소매를 붙들었다. 옷소매를 칼로 자르고 수레에 올라 궁궐로 들어간 팽생은 군주가 어디에 있냐고 내시들에게 물었다. 내시 중에 한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갓 낳은 망아지를 구경하기 위해 마구간으로 납시었습니다.」

내시가 앞장서서 곧바로 팽생을 마구간으로 안내했다. 마구간 뒤에 매복해 있던 자객들이 다시 일어나 곤봉으로 팽생을 때려죽여 그 시체를 말똥 무더기 속에 묻어 버렸다. 경영이 사람을 시켜 강씨에게 고했다.

「신군과 공자시가 미친 말에 채이고 물려서 모두 죽었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강씨가 큰 목소리로 곡을 하며 마구간으로 달려갔으나 두 사람의 시신은 이미 궁문 밖으로 실려 나간 뒤였다. 신군과 공자시의 죽음을 알게 된 계손행보는 마음속으로 그것이 중수가 한 짓임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감히 말을 입 밖으로 내어 세상에 밝히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중수를 찾아가 항의했다.

「아저씨의 수법은 참으로 악독하여 내가 그 일을 알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중수가 발뺌했다.

「그 일은 모두 경영부인이 한 짓이지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만약 당진이 토벌하러 군사를 보내면 어쩌려고 하십니까?」

「제와 송 두 나라에서 벌어진 시해 사건에 대한 일을 전말을 모두가 알고 있다. 제의공 상신(商臣)은 세자사(世子舍)를, 송의 공자포(公子鮑)는 송소공(昭公)을 모두 시해했는데 당진은 여지껏 토벌하여 죄를 묻지 않고 모두 용납하였다. 그런데 기껏 어린 아이 두 명을 죽인 일을 가지고 토벌하러 오겠는가?」

계손행보가 세자오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곡을 하다가 지쳐 정신을 잃었다. 중수가 보고 말했다.

「대신의 신분으로써 마땅히 큰일을 의논해야 하건만 한낱 아녀자의 여린 마음으로 그렇게 비통해 한다 한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행보가 정신을 차리고 울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숙손득신도 그들이 있는 곳에 당도하여 중수에게 그의 형 숙중팽생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중수가 모른다고 잡아떼자 득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의 형 팽생은 군주를 위해 죽으려고 하던 사람인데 구태여 나를 속일 필요가 있습니까?」

중수가 할 수 없이 팽손의 시체가 있는 곳을 득신의 귀에다 대고 알려주었다. 이어서 그는 백관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했다.

「오늘 시급한 일은 군주를 세우는 것이오. 공자왜가 어질기도 할뿐 아니라 또한 공자들 중 최고 연장자이니 마땅히 군위를 잇도록 해야 하오!」

백관들이 그저 「예, 예」라고 할뿐 다른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노나라의 문무 대신들은 곧바로 공자왜를 군주의 자리에 앉혔다. 이가 노선공(魯宣公)②이다. 백관들이 선공에게 축하의 예를 올렸다.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궁궐 밖의 권신과 궁궐 안의 총희가 몰래 모의를 하니

죄 없는 군위 계승자가 하루아침에 절단이 났구나!

가소롭구나, 우유부단한 계문자여(季文子)!

신중하게 궁리했다면 어찌하여 좋은 계책이 없었겠는가?

外權內寵私謀合(외권내총사모합)

無罪嗣君一旦休(무죄사군일단휴)

可笑模棱季文子(가소모릉계문자)

三思不復有良謀(삼사불복유양모)

득신은 중수가 일러 준 곳으로 가서 말똥 더미 속에서 묻혀있던 팽생의 시신을 찾아내어 장사를 지냈다.

한편 정부인 강씨는 두 아들이 모두 살해되고 중수가 공자왜를 노나라의 군주로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서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다가 혼절을 하고 다시 깨면 다시 통곡을 하기를 몇 번인가를 반복했다. 중수가 다시 그 모친으로써 그 아들이 귀하게 되다라는 뜻의 ‘모이자귀(母以子貴)’라는 네 글자를 글로 써서 선공에게 바치고 경영을 모부인(母夫人)으로 받들자 백관들이 모두 치하했다. 강부인이 궁중에서 살기가 불안하여 밤낮으로 흐느껴 울다가 좌우에게 수레와 행장을 꾸리도록 명하면서 제나라로 돌아가려 했다. 중수가 강부인에게 사람을 보내 노나라에 남아 있을 것을 권하면서 말했다.

「신군이 비록 부인의 소생은 아니나 부인은 선군의 정부인이었던 관계로 신군의 모친도 됩니다. 신군이 효성으로써 봉양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은데 어찌하여 친정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얹혀살려고 하십니까?」

강씨가 언성을 높여 중수를 욕했다.

「중수 역적 놈아! 우리 모자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와 같은 참혹한 짓을 우리에게 행하였단 말이냐? 오늘 네가 마음에도 없는 말로 나를 이곳에 머물라고 권하고 있지만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는 귀신이 너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강씨가 경영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수레를 타고 곧바로 궁문을 빠져 나왔다. 이윽고 수레가 성안의 번화한 큰 네거리에 이르자, 강씨는 수레에서 내려 목을 놓아 큰 소리로 울면서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두 어린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 천첩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역적 중수가 하늘의 도리를 능멸하고 정신이 돌아서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습니다. 내가 지금 성안의 백성들과 영원한 작별인사를 하여 다시는 노나라 땅을 밟지 않려고 합니다!」

성안의 길 가던 사람들이 듣고 애통해 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백성들이 모두 집으로 들어가 파시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후로는 강부인을 애강(哀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후에 그녀가 다시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돌아갔다고 해서 출강(出姜)이라고도 했다. 출강이 제나라에 돌아와 모친 소부인(昭夫人)을 만나 모녀가 상봉했다. 출강은 제소공의 딸이고 소부인은 제소공의 부인이다. 두 모녀는 각기 그들의 애통한 일을 말하며 목을 붙들고 통곡하였다. 제혜공이 두 사람의 곡소리를 듣기 싫어하여 별도로 궁실을 짓게 하여 옮겨 살게 했다.

2. 도정적구(挑灯績屨)

- 등불 밑에서 신발을 엮어 끼니를 해결한 노나라의 공자 숙힐(叔肹) -

노선공의 동복 동생의 이름은 숙힐(叔肹)이라 했는데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정직했다. 숙힐은 그 형이 중수의 힘을 빌려 동생을 죽이고 스스로 군위에 오르자 마음속으로 그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조당에 나와 선공에게 하례를 드리지 않았다. 선공이 불러 중용하려고 했으나 숙힐이 한사코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런 숙힐을 보고 그 연유를 묻자 숙힐이 대답했다.

「나는 원래 부귀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단지 나의 형님만을 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형님을 보게 되면 죽은 동생들이 생각나게 되어 내가 이를 참지 못하게 될까 봐서이다!」

친구가 듣고 말했다.

「그대가 이미 형의 일을 불의라고 생각한다면 어찌하여 타국으로 가서 살지 않는가?」

「나의 형이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감히 형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겠는가?」

선공은 때때로 사람을 보내 숙힐이 사는 형편을 살펴보게 하고 한편으로는 곡식과 비단을 가져다주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숙힐은 선공이 보낸 곡식과 비단을 받지 않고 선공이 보낸 사자에게 말했다.

「이 힐이 다행히 추위에 떨며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니 감히 나라의 공물을 축낼 수 없습니다.」

사자가 재삼 군명이라고 받아 줄 것을 간청하자 숙힐이 다시 말했다.

「그러면 내 집의 양식이 떨어지면 내가 가서 청하겠소. 오늘만은 내가 감히 받을 수 없소!」

곁에 있던 숙힐의 친구가 말했다.

「그대가 작록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대의 뜻을 충분히 세상에 밝혔다고 보네. 그대의 집에 양식이 다 떨어졌으니 보내 온 것들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여 아침저녁 끼니로 삼는다고 해서 그대의 청렴함을 더럽히지는 않을 것일세. 작록도 받지 않고 보내 온 선물들도 하나도 들이지 않으니 그것은 너무 심한 행위가 아닌가?」

숙힐이 웃기만 할뿐 대답을 하지 않자 친구가 탄식을 하더니 돌아가 버렸다. 사자가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 돌아와 선공에게 고했다. 선공이 듣고 말했다.

「내 동생이 양식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사람을 몰래 다시 보내어 살펴보게 했다. 숙힐은 등불을 밝혀서 밤새 신발을 엮어서 아침이 되자 가지고 나가 팔아서 그 돈으로 양식을 구해 생활을 해결하고 있었다. 사람이 돌아와 선공에게 고하자 탄식하며 말했다.

「내 동생은 백이와 숙제에게 배워 수양산의 고사리를 캐서 먹고살려고 하는가? 내가 마땅히 그가 백이숙제가 되고자 하는 뜻을 이루게 하리라!」

숙힐은 선공이 죽기 바로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토록 그의 형으로부터 단 한 필의 비단이나, 단 한 톨의 곡식을 받지 않았으며 또한 평생토록 그 형의 잘못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관이 시를 지어 칭송했다.

어질도다 숙힐이여!

시역을 알았을 때 피눈물을 흘렸음이여!

신발을 엮어 스스로 넉넉하게 살았으니

새로운 군주와는 닮지 않았다.

賢者叔肹(현자숙힐)

感時泣血(감시읍혈)

織屨自贍(직구자첨)

于公不肖(우공불초)

주나라의 어리석은 백성으로 사는 것은 치욕이라 여긴

백이와 숙제는 고사리를 먹고 살다가 그 마저도 떨어졌다.

숙힐에게는 오로지 죽은 군주의 소리뿐이라

신군의 부름을 받았으나 입조하지 않았다.

頑民耻周(완민치주)

采薇甘絶(채미감절)

惟叔嗣音(유숙사음)

入而不涅(이입불열)

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였음에도

형은 어리석고 동생은 고결하였다.

하물며 저 동문 밖 중수는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혀가 더렵혀지는 도다!

一乳同枝(일유동지)

兄頑弟洁(형완제길)

形彼東門(형피동문)

言之汚舌(언지오설)

노나라 백성들이 숙힐의 의로움을 높여서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윽고 기원전 591년 노선공이 재위 18년 만에 죽자 그 뒤를 이어 노후의 자리에 오른 노성공(魯成公)③이 즉위년에 숙힐의 아들 공손영제(公孫嬰齊)를 불러 대부로 삼았다. 이때부터 숙손씨 와는 별도로 숙씨가 번창하게 되었는데 숙노(叔老), 숙궁(叔弓), 숙첩(叔輒), 숙앙(叔鞅), 숙예(叔詣)등이 모두 그 후예들이다.

이야기는 앞으로 돌아가 주광왕(周匡王) 5년은 기원전 608년으로 노선공 원년이다. 그해 정월 초하루 날에 군신들이 조당에 나와서 선공에게 신년인사를 올렸다. 이윽고 의례가 끝내자 중수가 대신들 반열에서 앞으로 나와 상주했다.

「주군의 안주인 자리가 아직 비어 있습니다. 신이 옛날 제후를 찾아뵈었을 때 제후의 딸과 주공과의 혼인을 약속함으로써 주군의 군위를 담보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늦추면 안 되는 일입니다. 」

「누가 나를 위해 제나라에 가서 혼사를 주선하겠소?」

「혼사의 일은 신으로부터 나온 일이라 신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노선공은 즉시 중수를 사자로 해서 제나라로 가서 폐백을 바치고 혼인을 청하게 했다. 그해 정월달에 중수는 제나라에 다시 가서 그 다음 달인 2월 달에 부인 강씨를 노나라에 데려왔다. 중수가 노선공을 배알하는 자리에서 주위를 물리치고 비밀리에 고했다.

「우리가 제나라와 혼인관계를 맺어 장인과 사위사이가 비록 되었지만 장래에도 우호 관계가 계속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물며 주공께서 군위를 얻으신 벙법이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필히 회맹에 참가하여 여러 제후들의 반열에 같이 서야만 비로소 이 나라의 군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이 제후와 이미 삽혈의 의식을 행하고 매년 빠지지 않고 조빙 사절을 보내기로 맹세했습니다. 그것을 허락함으로써 제후로부터 주군의 자리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주군께서는 필히 재물을 아까워하시지 말고 제후에게 회합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마약 제후가 우리의 뇌물을 받아들이고 회합을 허락한다면 주군께서는 제후를 아주 정중하게 모셔야만 합니다. 두 나라의 군주가 서로 친하게 되면 이것은 마치 두 나라의 처지가 입술과 이 사이처럼 공고하게 되어 주군의 자리를 태산처럼 든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선공이 중수의 말을 따랐다. 이어서 선공은 계손행보를 사신으로 제나라에 보내 혼사를 허락해 준 처사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게 하고 노나라의 국서를 바치게 했다.

『과인은 군주 전하의 보살핌을 받아 종묘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혹시나 제후들의 반열에 끼지 못하게 되어 군주 전하를 욕보이게 되지나 않을까 매우 근심하고 있습니다. 군주님께서 만약 저를 어여삐 생각하시어 저와 한 번 회합을 해 주신다면 변변치는 않지만 당진의 문공이 성복의 싸움 때 초나라로부터 빼앗아 우리에게 하사한 제서(濟西)④의 땅을 상국에 바치려고 하니, 우리의 성의를 받아 주신다면 저로써는 무한한 기쁨이 되겠습니다.』

국서를 읽어본 제혜공이 크게 기뻐하며 노후와 그해 여름 5월, 평주(平州)⑤의 땅에서 회합하기를 허락하였다. 이윽고 회합하기로 한 날이 되어 두 나라의 군주가 모두 평주로 와서 먼저 장인과 사위로써의 정의를 표한 후에 다시 군주로써 예를 갖추어 인사를 나누었다. 중수가 제서 땅의 지적부와 지도를 제후에게 바쳤다. 제후가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두 나라 군주가 일을 끝마치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노나라에 돌아온 중수가 말했다.

「내가 오늘부터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편안히 잘 수 있겠다.」

이때부터 노나라의 군주가 직접 제나라를 방문하여 제후에게 조현을 행하고 돌아오면 다시 뒤를 이어 조빙 사절이 출발하곤 해서 당진을 극진히 받들기 시작했다. 노나라의 군신들은 앞 다투어 모두 제나라를 왕래하면서 허구한 날 많은 세월을 허비하고 비록 령이 없다 하여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시키지 않는다 하여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혜공 만년에 이르기까지 노후가 변함없이 제나라에 순종하자 혜공이 이에 감격하여 노나라가 바친 제서의 땅을 다시 돌려주었다. 이것은 후의 일이다.

3. 一鳴驚人 一飛沖天(일명경인 일비충천)

- 내가 한 번 울면 세상사람들이 놀라고 한 번 날기 시작하면 하늘을 뚫으리라! -

한편 초나라에서는 초목왕이 죽고 그의 아들 태자 려(旅)가 뒤를 이어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초장왕(楚莊王)이다. 장왕은 즉위한지 3년이 되었는데도 군주로써의 령을 한 번도 내지 않고 매일 사냥터에서 살았다. 그는 궁중에 있을 때는 오로지 부인들과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즐기기만을 할뿐이었다. 술을 마실 때는 조문에다 패(牌)를 걸어 놓아 대신들의 간언을 막고자 했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을 감히 간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용서치 않고 죽이리라!」

대부 신무외(申無畏)가 입조하여 알현을 청하고 장왕 앞으로 갔다. 그때 장왕은 종과 북을 연회석 옆에 걸어 두고 그 사이에 의자를 놓고 걸터앉아 좌우에 정희(鄭姬)와 채녀(蔡女)를 안고 희롱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장왕이 신무외를 보고 물었다.

「대부가 나를 찾은 목적은 같이 술을 한잔 마시고자 함이오? 아니면 노래 소리를 듣고자 함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못하게 간하는 말을 하고자 함입니까?」

「신이 폐하를 뵙고자 하는 목적은 술을 마시거나 노래 소리를 듣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신이 예전에 정나라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신에게 말해 준 은어(隱語)의 뜻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대왕께서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은어이기에 대부가 그 뜻을 모른단 말이요? 어디 한 번 과인이 들어봅시다.」

「몸이 오색으로 된 큰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초나라의 높은 언덕에 앉아 3년이 되도록 날지를 않고 또한 한 번도 울지 않고 있다 합니다. 이 새가 어떤 새인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장왕은 그 이야기가 자기를 빗대어 하는 말임을 알고 웃으면서 말했다.

「과인은 그 새가 무슨 새인 줄을 알겠소! 3년을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을 뚫을 것이고 또한 한 번 울면 그 소리에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대부께서 참고 기다리신다면 그때를 볼 것입니다.」⑥

신무외가 재배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장왕은 수 일 후에 다시 음주와 노래 소리를 멈추지 않고 여전히 즐겼다.

3. 소종대곡(蘇從大哭)

- 죽음을 각오하고 간하여 초장왕을 깨우친 초나라의 대부 소종 -

그리고 며칠 후 대부 소종(蘇從)이 장왕에게 알현을 청하고는 곡을 하면서 들어왔다.

「소대부는 무엇을 그토록 심하게 슬퍼하십니까?」

「신이 곡을 하는 이유는 신이 죽게 되어 장차 멸망하는 초나라의 운명을 슬퍼해서입니다.」

「대부가 어찌하여 죽는단 말이오? 그리고 초나라가 어찌하여 망한단 말이오?」

「신이 대왕께 음주 가무를 그만 두라고 간하면 대왕께서 듣지 않으시고 신은 반드시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신이 죽게 되면 초나라에는 대왕의 잘못을 간하는 자가 없어지게 되어 대왕은 더욱 멋대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초나라의 정사는 땅 끝 깊은 곳으로 추락하게 되어 초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장왕이 얼굴에 노기를 띄우며 말했다.

「과인이 령을 내려 ‘감히 나에게 간하는 자가 있다면 죽이리라’라고 했다. 대부는 간하는 자는 죽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오히려 나를 찾아와 과인을 범하려고 하니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신이 어리석기야 하지만 대왕의 어리석음에 비할 수야 있겠습니까?」

장왕이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과인이 어찌하여 어리석다고 하는가?」

「대왕께서는 만승(萬乘)을 거느리시는 지존이시며 사방 수천 리로부터 걷어 들이는 부세를 향유하고 계실 뿐 아니라 군사들은 정예하고 말은 강건하여 제후들이 두려움에 떨며 복종하여 매 년 철이 바뀔 때마다 초나라 조정에 바치는 조공의 행렬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말해서 만세에 이르는 이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주색에 빠져 정신이 황망하게 되고 음악에 탐닉하여 조정의 정사를 돌보지 않을 뿐 아니라 어진 선비들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라 밖의 대국들은 초나라를 쳐들어오고, 나라 안의 소국들은 반란을 획책하고 있는 와중에, 대왕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일은 당장 눈앞의 일이나 장차 일어날 재난은 후일에 있습니다. 무릇 일시적인 유희를 즐기기 위해 만세동안 누릴 수 있는 지존의 자리를 포기하는 짓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비록 우매하여 이 몸 하나 죽게 되면 그만이지만 그러나 대왕께서 신을 죽임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신을 용봉(龍鳳)⑦과 비간(比干)⑧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충신이라 칭송하게 되니 신이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왕의 어리석음은 진실로 한낱 필부에게서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는 우매한 행위입니다. 신이 이제껏 하고 싶은 말씀을 다 올렸으니, 청컨대 대왕께서 허리에 차고 계신 칼을 빌려주시면 신이 스스로 목을 찔러 대왕 앞에서 죽음으로써 대왕의 령이 서도록 하겠습니다.」

장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종 앞으로 나와 말했다.

「대부께서는 이제 그만 멈추시기를 바랍니다. 대부의 간언은 충성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인 줄 과인은 알고 있습니다. 과인은 대부의 간언을 쫓겠습니다.」

장왕은 즉시 자기 옆에 걸어 놨던 종과 북을 자르게 하고, 정희와 채녀를 멀리하고 번희(樊姬)를 부인으로 세워 궁중의 일을 주관하게 했다. 장공이 말했다.

「옛날 과인이 사냥을 즐겨 했을 때 번희는 나에게 간하여 사냥을 나가지 말라고 했으며, 또한 사냥에서 잡아온 짐승들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것은 곧 나를 현명하게 내조했음이라!」

이어서 위가(蔿賈), 반왕(潘尫), 굴탕(屈蕩)을 임용하여 영윤 투월초(鬪越椒)가 갖고 있던 권력을 나누게 했다. 아침마다 열었던 연회는 없애 버리고 조정을 주제하고 정령을 발했다. 또한 인질로 와 있던 정나라의 공자귀생(公子歸生)에게 명하여 송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장왕의 명을 받은 공자위생은 출전하여 송나라 군사들과 대극(大棘)⑨이라는 곳에서 싸워 대파하고 송나라 우사 화원을 사로잡았다. 이어서 송나라를 구하기 위해 진격해 오고 있는 당진군의 공격으로부터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위가를 대장으로 삼아 출벼시켜 북림(北林)⑩에서 싸웠다. 위가는 당진군을 물리치고 장수 해양(解揚을 사로잡아 개선했다. 해양은 몇 년 후에 석방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때부터 초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성하게 되었다. 초장왕은 중원의 방백이 되고자 하는 뜻을 더욱 굳게 했다.

한편 당진의 상경 조돈은 초나라가 강성하게 되어 중원의 제후국들의 일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자 섬진과 동맹을 맺어 초나라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조천이 계책을 내어 말했다.

「숭(崇)⑪이라는 나라는 오랫동안 속국이 되어 섬진을 섬겨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군의 병거와 군마를 보내 숭국을 공격한다면 섬진은 필시 숭국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달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섬진과 강화를 맺을 수 있으며 또한 강화를 맺을 때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조천의 계책을 받아들인 조돈은 영공에게 고하고 병거 300승에 조천에게 주어 숭국을 공격하게 했다. 조삭이 듣고 달려와 말했다.

「섬진과 당진은 누대에 걸친 원수지간인데 또다시 그 속국을 침략한다면 섬진의 분노는 더욱 깊어 질 텐데 어찌 우리와 강화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내가 이미 허락하여 다시 번복하지 못하겠다.」

조삭이 한궐에게 달려가 자기의 뜻을 말하자 한궐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조삭의 귀에 대고 말했다.

「상국께서 조천을 시켜 숭국을 정벌하시려는 이유는 조천을 조씨 문중의 주춧돌로 삼기 위해서지 섬진과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시는 일은 아닐 것이오.」

조삭이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물러났다. 당진이 숭국을 침범했다는 소식을 들은 섬진은 구원병을 내어 숭국으로 진격시키지 않고 당진국을 직접 공격해와 초성(焦城)⑫을 포위했다. 초성이 섬진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조천은 숭국에 대한 포위를 풀고 초성을 구하기 위하여 군사들을 이동시키자 섬진군 역시 물러갔다. 조천은 이때부터 당진의 군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상군부수 직으로 육경의 반열에 있던 유병(臾騈)이 병에 걸려 죽자 조천이 그를 대신했다.

4. 有道之君 以樂樂人(유도지군 이락락인), 無道之君 以樂樂身(무도지군 이락락신)

- 유도한 군주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락으로 삼고 무도한 군주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락으로 삼는다. -

이때에는 이미 당진의 영공(靈公)은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어 있었다. 영공이란 위인은 황음포악하고 백성들을 혹사시켜 토목공사를 크게 벌리며,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놀며 즐기는 일에 탐닉했다. 영공은 한 사람의 대부를 총애하였는데 이름을 도안고(屠岸賈)라 했다. 도안고는 곧 도격(屠擊)의 아들이며 도안이(屠岸夷)의 손자였다. 도안고란 위인은 상대방의 비위를 잘 맞추었기 때문에 영공은 도안고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들였다. 영공이 도안고에게 명하여 강주성 내에 화원을 짓게 하였다. 온 나라 안의 진기한 꽃들과 이상한 풀들을 구하게 해 놓고는, 다시 그 중에서 오로지 복숭아꽃 종자만을 골라내어 심게 했다. 이윽고 봄이 되자 꽃들이 피었는데 그 현란함이 마치 수놓은 비단들과 같다고 해서 화원의 이름을 도원(桃園)이라 했다. 도원 한 가운데에 삼층의 높은 대를 짓게 하고는 그 대 위에 다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강성(絳城)의 누각(樓閣)이란 뜻’의 강소루(絳霄樓)라는 누각을 짓게 했다. 강소루의 모든 기둥에는 그림을 그리고 대들보에는 조각을 새기게 했으며 굵고 둥근 기둥에는 붉은 단청을 칠하고 서까래란 서까래에는 모두 조각을 하게 했다. 또한 각 층의 란간은 모두 붉은 색으로 칠하여 강소루의 화려함은 비할 데 없는 극치를 이루었다. 강소루의 맨 꼭대기에서 란간에 기대어 멀리 쳐다보면 강도의 시정 모습은 모두 한 눈에 들어왔다.

영공이 강소루에 올라가 구경을 한 번 하더니 대단히 기뻐하여 그 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올라가서 도안고와 같이 가끔 탄궁(彈弓)⑬-미을 가지고 나는 새 잡기 내기를 하면서 즐기곤 하였다. 하루는 영공이 우인(優人) 정백(呈百)을 도원의 강소루로 불러 유희를 즐기고 있는데 도원 밖의 백성들이 몰려들어 영공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영공이 백성들을 보고 도안고에게 말했다.

「탄궁(로 새를 잡기보다는 사람을 잡는 것이 어떠한지 과인과 경이 한번 내기를 하면 어떠한가? 눈을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고 사람의 팔을 맞추면 벌을 면하게 하고 아무 것도 맞추지 못하면 큰되로 벌주를 마시기로 합시다.」

영공이 탄궁으로 오른 쪽의 백성들을 향해서 탄환을 겨누자 도안고는 왼쪽을 향해서 겨누었다. 대 위에서 큰 소리로 ‘발사’라는 소리가 들리자 강서루 위에서 두 사람이 탄궁의 시위를 둥근 달처럼 잡아당겼다. 탄궁에서 발사된 탄환은 마치 유성처럼 날아가 도원의 담장 밖에 몰려 있던 군중들 가운데 있던 사람의 한쪽 눈을 맞추고 다른 한 개의 탄환은 또 다른 사람의 어깨를 맞추었다. 백성들이 놀라서 서로 밀치며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면서 외쳤다.

「탄환이 날아온다!」

영공이 대노하여 좌우에게 탄궁을 쏘라고 명하자, 그들은 모두 백성들을 향하여 탄환을 쏘았다. 탄궁을 떠난 탄환이 마치 우박처럼 쏟아져 백성들이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진 사람, 얼굴이 상한 사람, 눈에 탄환을 맞아 실명한 사람, 앞니가 부러진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도저히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 자기 딸 이름을 부르는 사람, 머리를 숙이고 재빨리 달아나는 사람, 서로 밀고 밀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 창망 중에 몸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는 백성들의 모습은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영공은 강소루에서 도원 밖에서 벌어진 참상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탄궁을 땅바닥에 던지며 큰 소리로 웃으며 도안고를 쳐다보며 말했다.

「과인이 이곳에 오른 후에 즐거운 놀이를 수차 해 봤지만 오늘처럼 즐거운 때가 없었다.」

이후로 백성들은 누각 위를 쳐다보고 사람이 있으면 감히 도원의 담장을 따라 걷지 못했다. 시중에 그 일로 인해서 노래 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강소루를 쳐다보지 말라

탄궁의 탄환이 날아온다

문밖을 나설 때는 웃으며 즐거워하였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곡을 하며 슬퍼해야 한다네!

莫看臺(막간대)

飛丸來(비환래)

出門笑且忻(출문소차흔)

歸家哭且哀(귀가곡차애)

어느 날 주나라 사람이 영공에게 맹견 한 마리를 받쳐 이름을 영오(靈獒)라고 지었다. 몸의 높이가 세 자이고 몸의 털은 붉은 색을 띄우고 있었는데 능히 주인의 말을 알아들었다. 좌우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영공이 즉시 영오를 불러 물게 하였다. 영오가 달려들어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를 물었다 하면 죽지 않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영공은 궁중 노예 한 사람을 정해 이 개의 먹이를 전담하게 했다. 그는 영오에게 매일 몇 근의 양고기를 먹였다. 영오도 역시 그가 지시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사람들은 그 노예를 오노(獒奴)라고 불렀다. 영공은 오노에게 중대부가 받는 녹봉을 주었다. 영공이 모든 대부들에게 침전 밖에서 조현을 행하는 것을 폐하고. 모두 침전 안으로 들어와 행하도록 명했다. 조회를 할 때나 밖으로 놀러 갈 때나 오노가 영오를 줄에 묶어서 영공의 곁을 따랐는데 오노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몰골이 송연해 했다. 영공의 무도한 행위로 인하여 열국의 제후들 마음은 당진에서 떠나 버렸고, 백성들 가슴속에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조돈 등의 당진의 대신들은 영공에게, 어진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아첨배들을 멀리 하며, 또한 정사를 돌보아 백성들을 사랑하라 여러 차례 권하여 간하였지만 쇠귀에 경 읽기라 전혀 귀를 기우려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만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공이 조회를 파하여 여러 대부들이 모두 헤어졌으나 조돈과 사회 두 사람은 영공의 침전 문 앞에 남아서 나랏일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두 사람이 나랏일을 걱정하고 영공의 행위를 원망하며, 한탄하는 말을 하던 중에, 두 사람의 내시가 한 개의 대나무 바구니를 둘이 바쳐 들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궁중에 어찌하여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나오는가? 이것은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조돈이 두 내시를 큰 소리로 불었다.

「거기 내관 두 분은 이리 좀 오시오. 」

내시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조돈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조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조돈이 다시 내시들에게 물었다.

「대나무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상국 어르신이 아니십니까? 이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궁금하다면 이곳으로 오셔서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감히 무어라고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조돈이 마음속으로 더욱 의심하는 생각이 들어 사회에게 청하여 같이 가서 대나무 바구니 안은 살폈다. 두 사람은 사람의 한쪽 손이 바구니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바구니를 열게 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토막 난 죽은 사람의 시체였다. 조돈과 사회가 크게 놀라 바구니 안에 토막 난 시체가 들어 있게 된 연유를 내시들에게 물었다. 내시들은 조돈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조돈이 말했다.

「너희들이 사실대로 고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너희들을 죽이리라!」

내시들이 그때서야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이 사람은 공실의 요리사입니다. 주군이 이 요리사에게 곰발바닥을 삶으라고 명하시고 다시 급히 술을 드시고 싶으신 나머지 수차에 걸쳐 재촉을 하셨습니다. 요리사가 할 수 없이 재촉에 못 이겨 미처 다 삶기 전에 주공에게 요리를 바쳤습니다. 주공이 맛을 보시더니 곰발바닥 요리가 미처 다 익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아 동으로 만든 철퇴로 요리사의 머리를 때려죽이고, 다시 그 시체를 여러 토막으로 내더니 우리들에게 명하여 성 밖의 들판에다 가져다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가져다 버리고 돌아와서 보고하라는 시각이 정해져서, 만일 우리가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면 우리도 죄를 얻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5. 桃園强諫(도원강간)

- 도원에서 목숨을 걸고 충간하는 조돈 -

조돈이 내시들에게 가도 좋다고 허락하자, 내시들은 종전에 했던 것처럼 대나무 바구니를 둘이서 바쳐 들고 조당문 밖으로 사라 사라졌다. 조돈이 사회를 보고 말했다.

「주상이 무도하여 사람의 생명을 마치 초개처럼 여깁니다. 국가의 멸망이 조석지간에 있습니다. 나와 대부가 같이 주공을 배알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직간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두 사람이 한꺼번에 가서 간하여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우리 뒤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먼저 내가 들어가 간하고 만약 듣지 않거든 상국이 뒤를 이어 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영공은 아직 침전에 남아 있다가 사회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가 필시 직간을 하러 오는 것임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하며 사회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대부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으셔도 과인은 이미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장 고치리라!」

사회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그 허물을 능히 고칠 수 있다 하니 이것은 사직의 큰 복이라 하겠습니다. 신의 기쁜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회는 말을 마치고 영공 앞에서 물러 나와 조돈에게 영공이 한 말을 전했다. 조돈이 사회의 말을 듣고 말했다.

「주공이 만약에 지난날의 과오를 회개한 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조만간에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다음날이 되자 영공이 조회에 나오지 않고 수레를 도원으로 향하게 하여 그곳에서 유희를 즐겼다. 조돈이 듣고 여러 대신들을 향해 말했다.

「주공의 거동이 이렇듯 옛날과 다름이 없으니 어찌 자기의 허물을 뉘우친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오늘 어쩔 수 없이 한 말씀 드려야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조돈은 즉시 수레를 타고 도원으로 달려갔다. 영공보다 먼저 도원에 당도한 조돈은 그 문 밖에서 영공을 기다렸다. 이윽고 영공이 당도하자 조돈이 앞으로 나가 알현을 청했다. 영공이 놀란 표정을 짓고 조돈에게 말했다.

「과인이 경을 부른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곳에 와 있는 것입니까?」

조돈이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한 후에 말했다.

「저의 행동이 큰 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신이 상주하여 드릴 말씀이 있으니, 원컨대 넓으신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신은 ‘ 유도한 군주는 사람들을 기쁘게 함으로써 즐거움을 찾고 무도한 군주는 자기 한 몸을 기쁘게 함으로써 즐거움을 찾는다.’라고 들었습니다. 궁궐의 미천한 출신의 궁인들과 같이 사냥을 나가 유락을 즐기시어 전하 한 몸의 쾌락을 탐하더니, 이제는 결국은 사람을 죽여 그 즐거움을 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맹견을 풀어 사람을 물게 하고, 탄궁을 쏘아 사람을 다치게 하며, 또한 조그만 잘못을 트집 잡아 요리사를 죽이고 그 시체를 절단하였으니, 이것은 유도한 군주라면 결코 행할 수 없는 짓이며, 주군께서는 자기가 스스로 무도한 군주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귀중한 사람의 목숨을 이렇듯 함부로 죽이니 백성들은 나라 안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제후들은 나라 밖에서 우리 당진과의 사이가 멀어지니, 나라를 망하게 한 걸주(桀紂)의 화가 주군의 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이 오늘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렇게 말씀을 올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신은 주군과 나라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어 감히 이렇게 숨김없이 직언을 드리는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주군께서는 수레를 돌려 입조하여 전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절대 유락에 탐닉하지 말 것이며, 또한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위태로운 우리 당진국이 다시 안정을 찾게 된다면 신은 비록 죽는다 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영공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경은 일단 물러가기 바라오. 과인이 단지 금일 하루만 더 놀고 다음부터는 경의 의견을 따르리라!」

조돈이 몸으로 도원의 문 앞을 가로막으며 영공이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도안고가 영공의 곁에 있다가 말했다.

「상국께서 간하신 것은 비록 좋은 뜻으로 하셨다 하지만 그러나 어가가 이미 이곳까지 행차를 하였는데 그냥 돌아간다면 백성들의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 청컨대 상국께서는 잠시 방편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나라의 정사에 관하여는 내일 아침에 주공이 조당에 나가시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곳에서 의논함이 어떻겠습니까?」

영공이 도안고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내일 아침 조회에 나가 내가 마땅히 경을 부르리라!」

조돈이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영공이 도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도안고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라와 가문이 망하는 것은 모두가 너같은 무리들 때문이다!」

조돈이 한탄해 마지않았다. 도안고가 영공을 모시고 유희를 하며 즐거움에 큰소리로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한탄하였다.

「이런 즐거움도 이제는 다시없으리라!」

영공이 도안고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대부는 어찌하여 이렇듯 즐거운 자리에 한탄을 하는가?」

「조상국이 내일 아침이 되면 필시 조당을 소란하게 하여 시시콜콜 못살게 굴 것입니다. 어찌 주공으로 하여금 다시 이곳으로 나오게 하겠습니까?」

영공이 얼굴색을 바꾸며 분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자고로 군주가 신하된 자를 다스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신하된 자가 그 군주를 다스린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노인이 곁에 있으니 과인이 매우 불편하다. 없애 버릴 무슨 좋은 계책이 없는가?」

「신에게 서예(鉏麑)라는 문객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집안이 가난하여 신이 평상시에 양식을 끊지 않고 계속 보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저의 은혜에 감격하여 목숨을 바쳐 보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를 시켜 상국을 찔러 죽이게 한다면 주공께서는 마음대로 놀이를 다닐 수 있으며 또다시 그로 인하여 다시는 근심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일이 만약 이루어지기만 경이 세운 공이 적다고 하지 않으리라!」

그날 밤 도안고가 서예(鉏麑)를 몰래 불러서 술과 음식을 주면서 말했다.

「조돈이 권력을 오로지 하여 우리 주군을 기만하고 있다. 오늘 너를 시켜서 조돈을 죽이라는 주군의 명을 받았다. 너는 조상국의 집 문 앞에 숨어 있다가 오고가 되어 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집 대문을 나올 때를 기다려 찔러서 죽여라. 절대 실수를 하면 안 될 것이다.」

서예가 도안고의 명을 받고 일체의 준비를 다 마친 다음 설화반(雪花般)이라는 비수를 가슴에 품고 조씨부의 담장을 넘어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 성안의 망루에서 북을 쳐 오경이 되었음을 알리자 그는 조씨부의 대문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조씨부의 이중으로 된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문밖에는 이미 수레가 대령하고 있었다. 환하게 켜진 등불은 부중의 당상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서예가 다시 조씨부의 마당 앞을 가로질러 중문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는 어두운 곳을 찾아 몸을 숨기고 중문 안을 자세히 살폈다. 당상에는 한사람의 관원이 조복에 큰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손에는 홀을 잡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관복을 입고 정좌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상국 조돈이었다. 그는 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나 등청할 준비를 끝내고, 그래도 조회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음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좌정하여 묵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예가 크게 놀라 조씨부의 대문 밖으로 물러나와 탄식하며 혼자 말했다.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백성들의 어른이로다! 도적이 백성들의 주인 되는 분을 죽인다면 이것은 곧 불충이라 할 것이나 또한 군명을 받아 이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즉 신의를 저버리게 되어 불충(不忠)하고 불신(不信)하게 되니 어찌 천지간에 서 있을 수가 있겠는가?」

서예는 즉시 조씨부 안을 향하여 외쳤다.

「나는 서예라는 사람입니다. 군명을 받아 왔으나 충신을 죽이는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내가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합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또 올지 모르니 상국께서는 부디 몸조심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서예는 조씨부 문 앞에 있던 한 그루의 큰 홰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머리가 깨지면서 이내 죽고 말았다. 후세의 사관이 이를 두고 찬 하였다.

장하다, 서예여!

자객들의 으뜸이로다!

의를 알고 이를 능히 행하였으니,

죽음을 알기를 마치 집에 돌아가는 듯이 여겼다.

壯哉鉏麑(장재서예)

刺客之魁(자객지괴)

聞義能徙(문의능사)

視死如歸(시사여귀)

도가의 은혜도 갚고 조돈도 살렸으니,

몸은 비록 죽었다 하나 그 이름은 청사에 남았다.

홰나무 녹음이 드리운 곳에,

그의 의기를 그리워하노라!

報屠存趙(보도존조)

身滅名垂(신멸명수)

槐陰所在(괴음소재)

生氣依依(생기의의)

이 때 조씨부의 문을 지키던 사람이 서예가 한 말을 듣고 놀라 조돈에게 고했다. 조돈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던 시미명(提弭明)이 말했다.

「상국께서는 오늘 입조 하시면 안되겠습니다. 변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주공께서 오늘 아침에 나를 만나 주기로 이미 약속하셨는데 내가 만약 나가지 않는다면 이것은 신하로써 예가 아니다. 죽고 사는 것은 모두 하늘의 뜻인데 내가 어찌 이를 두려워하여 입조하지 못할 것인가?」

조돈은 말을 마치고 집안의 가노들에게 분부하여 우선 서예의 시체를 거두어 홰나무 근처에다 묻게 하고는 자기는 수레를 타고 조당에 나가 여러 군신들을 이끌고 영공에게 예를 행하였다. 영공이 조돈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도안고에게 서예의 일을 물었다. 도안고가 아무도 몰래 영공에게 대답했다.

「서예가 어제 저녁 조씨부에 갔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사람들 말로는 조씨부 문 앞에 있는 홰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리 된 것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서예가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으니 앞으로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신에게 아직 한 가지 계책이 남아 있는데 이번에는 틀림없이 조돈을 능히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계책이요?」

「주공께서 내일 식사를 하신다 하고 조돈을 궁중으로 부르시기 바랍니다. 연회장 뒤에 무사들을 매복시킨 후에 술이 3배쯤 돌았을 때를 기다려 주공께서 조돈이 허리에 찬 칼을 한번 구경하겠다고 하십시오. 조돈은 틀림없이 그 칼을 풀어 주공에게 바칠 것입니다. 그때 신이 옆에 있다가 큰소리를 쳐 외치겠습니다. ‘조돈이 주군 앞에서 칼을 빼 들고 서 있는 것은 흉악한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니 좌우의 사람들은 빨리 주군을 구하여라!’ 그 틈을 이용하여 갑사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조돈을 잡아 묶은 후에 참수해 버리면 외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스스로 화를 불러들여 죽임을 당했다고 할 것입니다. 조공께서는 대신을 살해했다는 욕을 먹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계획이 어떠합니까?」

「참으로 기발한 계획이오. 그대로 시행하도록 합시다!」

다음날 영공이 다시 조회를 주제하고 조돈을 향해 말했다.

「과인이 상국의 충성스러운 말에 따라 군신들과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경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약간의 음식을 준비하여 공의 노고를 위로하려고 하니 사양하지 말기 바랍니다.」

영공이 즉시 도안고에게 명하여 조돈을 인도하여 궁중으로 들게 하였다. 조돈의 호위를 맡고 있는 차우(車右) 시미명이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려 했으나 도안고가 시미명을 제지하며 말했다.

「군주께서 상국과 연회를 하는 자리이니 다른 사람들은 올라오면 안 됩니다.」

시미명은 층계를 오르지 못하고 당하에서 서서 대기했다. 조돈이 절을 올리고 영공의 오른편에 앉자 도안고는 영공의 왼쪽에 시립하였다. 궁중의 요리사가 음식을 내와 술이 석 잔째 돌자 영공이 조돈에게 말했다.

과인은 상국이 차고 다니는 칼이 매우 예리하다는 소리를 들었소. 허리에서 풀어서 이쪽으로 가져와 보시요. 내가 한번 살펴보리라!」

조돈은 그것이 영공의 흉악한 계략인줄도 모르고 바로 칼을 풀어 바치려고 하는데 당하에서 있던 시미명이 그것을 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신하된 자가 군주의 초대를 받아 연회에 참석할 때는 3배 이상은 마시지 않는 것이 예법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3배를 든 연후에도 물러나지 않고 군주 앞에서 칼을 뽑는 것입니까?」

조돈이 즉시 깨닫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미명이 노기발발하여 곧바로 당상에 뛰어올라 조돈을 부축하고 당하로 내려왔다. 도안고가 오노에게 영오를 풀어 자색 도포를 입은 자를 쫓아가라고 시켰다. 영오가 아직 궁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돈의 뒤를 질풍처럼 날아서 쫓았다. 시미명은 천근을 들 수 있는 천하장사였다. 두 손으로 영오를 잡아 그 목을 부러뜨려 죽였다. 영공이 매우 노하여 연회장 뒷면에 매복하고 있던 갑사들을 나오게 하여 조돈을 공격하도록 했다. 시미명이 몸으로 조돈을 막으면서 조돈에게 빨리 몸을 피하라고 했다. 시미명이 혼자 남아 갑사들과 싸웠으나 아무리 천하장사라 한들 혼자만의 힘으로는 수많은 갑사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는 결국 중과부적으로 온몸에 상처를 입고 힘이 다하여 갑사들의 칼을 무수히 맞고 죽었다. 사관이 이를 칭송했다.

군주가 맹견을 길렀는데 신하도 역시 맹견을 길렀다.

그러나 군주의 맹견은 신하의 맹견보다 못했다.

군주의 맹견은 사람을 해쳤지만

신하의 맹견은 주인을 지켰기 때문이다.

오호라, 두 마리의 맹견이여!

주인과 친한 맹견을 나는 알고 있노라!

君有獒臣亦有獒(군유오신역유오)

君之獒不如臣之獒(군지오불여신지오)

君之獒能害人(군지오능해인)

臣之獒克保身(신지오극보신)

鳴呼二獒(명호이오)

吾誰如親(오수여친)

7. 예상아인(翳桑餓人)

- 뽕나라 밑에서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주어 목숨을 구하다. -

조돈은 시미명이 갑사들을 막고 있는 사이에 몸을 빼내어 궁문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미친 듯이 조돈의 뒤를 추격하여 오자 조돈이 심히 두려워하였다. 그 사람이 가까이 오더니 조돈을 향하여 말했다.

「상국께서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상국을 구해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조돈이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건대 나를 구하려고 하는가?」

그 사내가 대답했다.

「상국께서는 예상(翳桑) 땅에서 굶주리고 있었던 사람을 기억하시지 못하십니까? 제가 그때의 영첩(靈輒)이라는 사람입니다.」

『5년 전에 구원산(九原山)⑭에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예상이라는 곳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던 조돈은 나무 밑에 누워 있던 사람을 보았다. 조돈은 그가 자객이 아닌가 의심하여 사람을 시켜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굶주림에 지쳐 일어날 수도 없는 상태에 있었다. 조돈이 그에게 이름을 묻자 간신히 입을 떼어 대답했다.

「나는 이름이 영첩이라는 사람인데 위(衛)나라에서 가서 공부를 하다 끝내고 지금 귀국하던 중입니다. 그러나 도중에 여비와 음식이 떨어져 아무 것도 먹지 못한지 3일이 되었습니다.」

조돈이 이를 가엽게 여겨 그에게 밥과 말린 고기를 주도록 했다. 영첩은 품속에서 조그만 바구니를 꺼내더니 조돈에게서 얻은 음식에서 먼저 반을 꺼내어 담은 후에, 남아 있는 것을 먹었다. 조돈이 보고 물었다.

「그대가 음식의 반을 먹지 않고 작은 바구니에 담은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영첩이 대답했다.

「집에 늙은 어머님이 계셨는데 이곳 서문에 살고 있습니다. 소인이 외국에 오래 나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아직 살아 계신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집까지는 몇 리 길이라 아직 어머님이 살아 계시다면 대인께서 주신 음식으로 늙으신 어머님의 배를 채워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조돈이 한탄하며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효자로다!」

조돈은 말을 마치고 영첩에게 나머지 음식을 다 먹게 하고 별도로 대광주리 속의 음식과 고기를 내주었다. 영첩이 음식과 고리를 받아 자기의 배낭 속에 넣고서 감사의 말을 올리고 물러나 자기 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지금도 강주에는 포기판(哺饑坂)이라는 이름의 언덕이 있는데 그것은 이일에 연유하여 얻은 이름이다. 후에 영첩은 공도(公徒)에 응모하여 공실을 지키는 군사가 되었다가 마침 조돈을 살해하기 위해 영공이 동원한 갑사들 틈에 끼게 되었다. 영첩은 조돈에게서 옛날에 입은 은혜를 못 잊고 이렇게 특별히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그때 조돈의 시종들은 그의 신상에 변이 일어났음을 알고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린 후였다. 영첩이 조돈의 뒤를 보호하며 조당의 문을 향하여 나아갔다. 시미명을 죽인 수많은 갑사들은 힘을 합하여 조돈의 뒤를 추격해 오고 있었다. 그때 마침 병거를 타고 조씨부의 가병들을 거느리고 달려온 조삭이 조돈을 맞이하여 병거에 태웠다. 조돈이 급히 영첩을 불러 수레에 태우려고 하였으나 그는 이미 어디론지 도망치고 보이지 않았다. 영공이 동원한 갑사들은 조씨 부중의 수많은 가병들을 보고 감히 그 뒤를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조돈이 조삭에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이번에 내가 국경 밖으로 나가게 되면 적국(翟國)이나 섬진으로 가서 이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 되겠다. 」

조돈 부자는 동행하여 서문을 통하여 강주성 밖으로 나간 후에 서쪽을 바라보며 계속 앞으로 갔다.

《제51회로 계속》

주석

①제혜공(齊惠公) : 제환공(齊桓公)의 둘째 아들로 의공의 뒤를 이어 기원전 608년 에 즉위하여 기원전 599년에 죽었다.

②노선공(魯宣公) : 노문공(魯文公)의 서장자로 기원전 608년 즉위하여 591년에 죽었다. 재위 기간 중 그 정통성 때문에 노나라 공실은 삼환씨의 세력에 눌려 쇠락하게 되었다.

③노성공(魯成公) : 노선공의 아들로 기원전 590년에 계위하여 18년간 재위에 있다가 기원전 573년에 죽었다. 이름은 흑굉(黑肱) 혹은 흑고(黑股)다. 재위 기간 중 제나라와의 여러 번에 걸친 전쟁으로 노나라 공실의 힘은 더욱 쇠락해졌다.

④제서(濟西) : 제수(濟水) 서쪽의 땅으로 제수는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 동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노나라의 북쪽 경계에 있던 대야택(大野澤)을 흘러 들어간 다음 다시 대야택에서 북동으로 흘러나와 지금의 제남시 북쪽을 통과하여 래주만(萊州灣)으로 흘렀던 고대의 강이름이다. 지금의 황하의 수로와 비슷하게 흘렀다. 원래 조(曹)나라의 땅이었으나 성복대전 전에 진문공이 조나라를 점령하고 그 땅을 떼어 노나라에 할양했다.

⑤평주(平州) : 지금의 산서성 래무시(萊蕪市) 서

⑥이 말의 원전은 『사기(史記)·초세가(楚世家)』에 오자서의 조부인 오거(伍擧)가 초장왕에게 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기회주고증(史記會注考證)>에 의하면 초장왕(楚庄王)에 간한 사람은 오거(伍擧)가 아니라 오삼(伍參)이라 했다. 오삼은 오자서(伍子胥)의 증조부로서 초장왕 때 사람이며 그의 조부인 오거는 초장왕의 아들들인 초강왕(楚康王)과 초영왕(楚靈王)때 사람이고 오자서의 부친 오사(伍奢)는 초평왕(楚平王) 때 활약한 사람이다.

또 이 말은 『사기(史記)·골계열전(滑稽列傳)』에도 실려있다. 초장왕(楚庄王 : 재위 613- 591년 )보다 약 250년 후의 사람인 제위왕(齊威王:재위 기원전 378-343년)때 순우곤(淳于髡)이 이 말을 인용하여 향락만을 일삼고 있는 제위왕을 깨우쳤다.

『史記.·滑稽列傳』淳于髡說之以隱曰 國中有大鳥 止王之庭 三年不蜚又不鳴 王知此鳥何也?」 王曰 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不鳴卽已 一鳴驚人.

<列國演義> 申无畏曰 有大鳥 身被五色 止于楚之高阜三年矣. 不見其飛 不聞其鳴 不知此何鳥也?」 庄王知其諷己 笑曰 寡人知之矣 是非凡鳥也. 三年不非 飛必沖天. 三年不鳴 鳴必驚人. 子其俟之.」

⑦용봉(龍鳳) :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왕(桀王) 때의 충신으로 걸왕의 학정을 간하다가 죽은 관용봉(關龍逢)을 말함.

⑧비간(比干) :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주왕의 폭정을 여러 차례 간하다가 주왕이 노하여 성인(聖人)의 심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본다고 비간을 죽여 그 시체를 갈라 간을 꺼내도록 했다.

⑨대극(大棘) : 현 하남성 상구시(商丘市) 서쪽 약 40키로 지점으로 소오향(小吳鄕) 부근

⑩북림(北林) : 춘추(春秋) 때 정나라 땅으로, 지름의 하남성 중모현(中牟縣) 경내의 서남쪽.

⑪숭(崇) : 현 하남성 낙양시(洛陽市) 남쪽 약 30키로 지점에 위치했던 소제후국

⑫초성(焦城) :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峽市)에 있었던 당진 령의 성읍. 하수의 남안에 있던 고을로 북괵이 당진에게 망하기 전의 상양성(上陽城)에 해당한다.

⑬탄궁(彈弓)

1. 모양과 사용법 : 탄궁은 화살이 아닌 탄환을 발사하는 활이나 노(弩)를 말한다. 아래 그림의 탄궁은 소림사에 전해지는 것으로 탄환을 날려보내기 위해 현의 중앙에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활 형태로 되어 있는 탄궁은 화살을 쏘는 활보다 크기가 작으며 노 형태로 되어 있는 탄궁은 크기가 보통의 노와 별 차이가 없지만 소매 속에 들어가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 발사되는 탄환은 공 모양의 형태로서 재질은 돌을 사용한 석탄(石彈), 점토를 건조하여 사용하는 니탄(泥彈), 철을 주조하여 사용한 철탄(鐵彈)이 있다. 탄환의 크기는 골프 공 정도의 크기에서부터 조그만 쇠구슬 크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사용되었다. 탄궁은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용도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수렵용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암기로서 사용하는 것은 대인용으로, 사정거리나 상대방에게 주는 타격 정도가 맨손으로 던지는 경우보다는 훨씬 나았다. 또한 탄환이 휴대하기 편리하고 탄한이 날아가는 소리가 화살에 비하여 조용하여 얼른 알아차리기도 힘들어 여러가지 암기들 중 가장 두려운 무기였다.

2. 역사와 세부 내용 : 싸움에 있어서 최초의 방식인 돌을 던지는 것에 뒤어이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투사병기가 탄궁이다. 화살을 사용하는 활은 탄궁을 선조로하여 출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활과 비교해보면 공 모양의 탄한은 탄도를 단정시키기가 쉽지 않아 긴 사정거리나 높은 명중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따라 춘추 시대에는 싸움터에서 사용하기 위한 병기라기보다는 주로 수렵용 무기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 병기의 장점을 살려 암기로 발전시켜 사용하였다.

고대신화에 나오는 옥황상제의 조카인 이랑진군(二郞眞君) 양전(楊戩)이 사용한 무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랑진군이 즐겨 사용하는 선궁은 활 본체가 금으로 만들어 져 있으며 탄환은 은으로 된 것을 사용하였다. 천신인 이랑진군이 사용한 무기였기 때문에 법보(法寶)로 정하고 있다.

⑭구원산(九原山) : 지금의 산서성 후마시(侯馬市)였던 신전(新田) 북서쪽에 있었던 산 이름이다. 당진은 그 도읍을 경공(景公 : 재위 기원전 599 - 581) 때 지금의 익성현(翼城縣)에서 서쪽으로 나와 분수 강안의 도시였던 신전(新田)으로 도읍을 옮겼다.

[평설]

‘유도한 군주는 백성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무도한 군주는 자기의 몸을 즐겁게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라는 말은 실로 사리에 맞는 말이다. 어린 나이에 재위에 올라 이윽고 장성하게 된 진영공(晉靈公 : 재위 기원전 621-607년)은 오로지 자기 일신상의 안락만을 추구하며, 백성들의 생활을 편안하게 한다는 생각은 품고 있지 않았다.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락으로 삼고, 신하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삼아 즐거움을 구했다. 그는 맹견을 풀어 사람을 물어 죽이고, 탄궁으로 궁궐 밖에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쏘아 맞추기를 했으며, 걸핏하면 사람을 죽여 시체를 토막내어 길거리에 버리게 했으니 포악하기가 그지없는 군주였다. 신하가 충간을 올리게 되면, 속박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후에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살해하려고 했다. 간신의 아첨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모두 받아들이고,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재물로 호사스러운 도원(桃園)을 축조함으로 해서 오로지 자기의 즐거움만을 추구했으니, 진영공이야 말로 무도한 폭군이었다.

진영공은 자기 몸의 안락만을 추구한 무도혼군과 같은 사람이 어찌 능히 그 패업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또한 그 자신 당연히 그 신하들에게 피살될 운명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군주와 신하 아비와 자식간의 모순, 적자와 서자간의 모순, 그리고 양자가 뒤섞인 모순 등은 시해와 찬탈의 징조인 것이다.

노문공(魯文公 : 재위 기원전 626-609년)이 죽자 세자 오(惡)가 그 뒤를 이었다. 당시 정권을 쥐고 있던 동문수(東門遂)는 문공의 폐첩(嬖妾)이 준 막대한 뇌물을 받고 문공이 지정한 계승자이며 정부인의 소생인 세자 오(惡)와 그 동생 시(視)를 시해하고, 폐첩의 아들 왜(倭)를 세웠다. 왜가 노선공(魯宣公 : 재위 기원전 609 -591년 )이다. 그 과정에서 오의 사부 팽생(彭生)도 피살되었다. 당시 노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었던 사람은 팽생의 동생 득신(得臣)이었으나, 그의 형이 동문수 일당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추호도 슬퍼하지 않으며 오히려 입가에 웃음을 띄며 마음속으로 즐거워했다. 권력과 이익 앞에서 소인배의 작태가 들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선공의 동모제였던 숙힐(叔肹)은 결코 동요되지 않고 형이 주는 재물과 작록을 거절하고 자기의 힘으로 생활을 하며 생을 마쳤으느 참으로 드문 일이라고 하겠다. 노나라 사람들이 그의 높은 뜻을 칭송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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