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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9:404473 
제57회. 巫臣逃晉(무신도진), 趙氏孤兒(조씨고아)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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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7회-우산으로 몸을 숨긴 조씨 고아와 신전으로 도성을 옮긴 당진.JPG  (142.3K)   download : 82
일반

제57회 巫臣逃晉 趙氏孤兒(무신도진 조씨고아)

하희를 취해 당진으로 달아난 초나라 대부 무신과

정영(程嬰)의 도움으로 조씨 종족을 이은 조씨고아

1. 背城借一(배성차일)

- 굴욕적으로 항복을 하느니 성에 의지하여 결사일전을 치르겠소!

당진의 군사들에게 쫓긴 제경공은 안(鞍) 땅에서 후퇴하여 450리나 달려 임치성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가까운 고을인 원루(袁婁)①의 성안으로 들어가 공성전에 돌입했다. 마음이 황당해진 제경공은 여러 신하들을 향해 대책을 물었다. 국좌가 앞으로 나와 경공에게 말했다.

「원하옵건대 기(紀)나라 전래의 보물인 언(甗)②과 옥경(玉磬)③을 당진에 바쳐 강화를 체결 한 후에 노와 위 두 나라에게는 우리가 빼앗은 땅을 돌려주시고 그들과 수호를 맺으셔야만 합니다.」

「경의 말을 따를 경우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성의를 모두 표했다고 할 수 있소. 만약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당진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로지 목숨을 걸고 일전을 벌리는 방법 이외는 없소!」

국좌가 경공의 명을 받아 기나라의 보물이었던 언과 옥경을 가지고 당진의 진영에 도착하여 먼저 한궐을 만나 제후의 뜻을 전달했다. 한궐이 듣고 말했다.

「노와 위 두 나라가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그들의 땅이 자주 깎이자 우리 군주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그들의 땅을 찾아주기 위해 우리를 보내셨지 결코 제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우리 주군께 말씀드려 노, 위 두 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중군원수께서 계시니 제가 감히 어떻다고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국좌와 몇 마디 말을 나눈 한궐은 그를 극극 앞으로 인도했다. 극극이 크게 성을 내면서 국좌를 대했으나 국좌의 태도나 말씨는 매우 극진하고 공손했다.

기세등등한 극극이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 나라는 이제 조석지간에 망하게 되었다. 어찌 지금에 와서야 요사스러운 말을 늘어놓아 시간을 벌려고 하느냐? 만일에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제시하는 두 가지 조건을 따라야만 할 것이다.」

「어떤 조건이오?」

「첫째 소(蕭)나라 임금 동숙(同叔)의 딸을 우리 당진에 인질로 보내고, 둘째 제나라 땅의 모든 밭고랑의 방향을 동서로 고쳐야 한다. 만일 앞으로 제나라가 맹약을 배반하면 인질을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때 거마가 밭고랑을 타고 서에서 동으로 진격하게 되어 너희 제나라 도성에 곧바로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국좌가 극극의 이야기를 듣고 얼굴에 노기를 띠고 말했다.

「원수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소. 원수께서 말씀하신 소군(蕭君)의 딸은 바로 우리 임금의 모후가 되시는 분이오. 제나라와 당진은 서로 대등한 나라요. 따라서 우리 임금의 모후는 당진 군주의 모후와 같다 할 수 있는데 무슨 도리로 국모를 인질로 삼고자 한단 말이오? 또한 밭고랑의 방향은 세로가 되었던, 가로가 되었던 모두가 그 자연적인 지세에 따르게 되어 있는데 오로지 당진을 위해서 밭고랑을 고친다면 나라가 망한 것하고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소? 원수께서 이렇게 수락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시니 우리의 화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겠소.」

「설령 내가 화의를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제나라로서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원수께서는 저희 제나라를 너무 심하게 기만하고 있소. 제나라가 먼 변방에 떨어진 소국이나 군사가 아직 천승이 있고 공족들이 거느리고 있는 사병도 모으면 각기 몇 백 승 정도는 되오. 지금 우리가 한번 꺾이기는 했으나 크게 패하지는 않았소. 원수께서 우리 제나라와는 결코 화의를 할 뜻이 정녕코 없으시다면 우리는 남은 병사를 모아 성을 등지고 원수가 이끄는 당진군과 생사를 걸고 일전을 벌리도록 하겠소. 한번 싸워서 못 이기면 두 번 싸우고 두 번 싸워 못 이기면 세 번 싸울 것이며 세 번 모두 이기지 못하면 제나라 영토는 모두 당진의 소유가 되는데 하필이면 국모를 인질로 보내고 밭고랑을 동서로 낼 필요가 있겠소? 국좌는 이만 물러갈까 하오.」

국좌는 언과 옥경을 땅에 내려놓고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한번 하더니 앙연한 모습으로 당진군의 진영 밖으로 나가 돌아갔다. 계손행보와 손량부는 그때 원수 막사의 장막 뒤에 숨어서 국좌의 말을 들었다. 국좌가 돌아가자 두 사람이 나와서 극극에게 말했다.

「제나라가 우리에게 한을 깊게 갖게 되었으니 기필코 우리와 죽기 살기로 싸울 것입니다. 군사의 일이란 항상 이길 수 없습니다. 제나라의 화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제나라의 사신이 이미 가 버렸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계손행보가 다급한 마음에 말했다.

「뒤쫓아 가면 능히 따라 갈 수 있습니다. 」

두 사람은 즉시 양마가 끄는 병거를 골라 타고 전속력으로 국좌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탄 병거가 십여 리쯤 달려갔을 때 국좌의 수레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국좌를 붙잡아 간신히 설득하여 다시 당진의 영채로 데려 왔다. 극극이 계손행보, 손량부와 같이 국좌를 상견하고 말했다.

「제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 군주에게 죄를 짓게 되지나 않을가 두려워하여 감히 함부로 쉽게 화의를 허락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노위 두 나라 대부들께서 한 뜻으로 화의를 주장하여 제가 감히 그 뜻을 어기지 못하겠습니다. 제나라의 화의 신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국좌가 대답했다.

「원수께서 이미 우리의 화의 요청을 받아 들였으니 원컨대, 신의로써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제나라가 당진에 조공을 들이고 또한 노, 위 두 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면 당진은 군사를 물리쳐 추호도 제나라 영토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노위 두 나라 대부들도 글로 써서 맹세하도록 해야 합니다.」

극극이 희생의 피를 가져오게 하여 다 같이 나눠 마시고 맹약을 한 후에 헤어졌다. 제나라와 화의를 맺은 극극은 그 후속조치로 방추보를 석방하여 제나라로 돌려보냈다. 제경공은 방추보를 상경으로 삼았다. 당진, 노, 위, 조 등의 네 나라 군대는 각기 자기나라로 회군했다. 송나라 때 유자(儒者)가 이 때에 맺은 맹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극극이 일시적인 승리를 믿고 교만하게 되어 불공스러운 태도로 국좌를 대한 결과 그의 분노를 샀다. 비록 두 나라 사이에 화의가 성립되어 극극은 공을 세우고 무사히 당진으로 돌아갔지만 제나라 사람들의 인심을 얻지는 못했다.』

군사를 이끌고 당진에 돌아온 극극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과 맹약서를 경공(景公)에게 바쳤다. 경공은 안(鞍)에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극극의 전공을 포상하여 그의 봉지를 더하여 크게 넓혀 주었다. 또한 기존의 군제를 증강하여 삼군을 새로 두어 신삼군(新三軍)이라 칭했다. 신삼군의 중군원수와 부수에는 한궐과 조괄을, 상군원수와 부수에는 공삭과 한천(韓穿)을, 하군원수와 부수에는 순추(荀騅)와 조전(趙旃)을 각각 임명하고 그들의 작위는 모두 경으로 했다. 이때부터 당진은 육군을 두게 되어 패업에 대한 야심을 다시 갖기 시작했다.④

그때 당진의 경공에게 총애를 받아 사구 벼슬을 하던 도안고는 조씨 집안이 다시 부흥하게 되자 시기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는 매일 밤낮으로 조씨의 잘못한 점을 찾아내어 경공에게 참소하였다. 또한 그는 란씨(欒氏)와 극씨(郤氏) 두 집안과 왕래를 빈번히 하여 그들과의 관계를 두텁게 했다. 이로써 조씨가 도안고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제경공은 당진과의 안 땅의 싸움에서의 패패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는 전사한 장병 집에 직접 찾아가서 문상을 행했다. 경공은 백성들을 위무하고 정치를 개혁하여 당진에게 당한 치욕을 갚으려고 했다. 당진의 군주와 그 신하들은 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와 자기들이 모처럼 시작한 패업을 향한 계획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당진의 군주와 신료들은 제나라가 공손하게 자기들을 섬기고 있다고 하면서 노와 위 두 나라에게 제나라로부터 찾은 땅을 다시 돌려주라고 했다. 이 일로 해서 당진은 제후들로부터 다시 신임을 잃고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2. 굴무도진(屈巫逃晉)

- 하희를 취하여 당진으로 달아난 초나라의 대부 굴무 -

앞서 제나라가 안에서의 싸움에서 패하고 당진에 항복한 해는 주정왕 18년인 기원전 589년이고 초장왕이 진(陳)나라를 정벌하여 얻은 하희를 윤양로에게 주어 같이 살게 해 준 해는 9년 전인 초장왕 16년, 기원전 598년이다. 윤양로가 필(邲)의 싸움에 출전하는 초장왕을 따라 종군한 해는 1년이 지난 그 다음 해로 기원전 597년이다. 양로가 집을 비우자 하희는 그의 전실 아들 흑요(黑要)와 정을 통하고 전장의 윤양로는 당진의 장수 순수(荀首)가 쏜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그러나 흑요는 하희와의 음락에 젖은 나머지 그 부친의 시신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 백성들 사이에 흑요가 행한 패륜의 일을 두고 의논이 분분하게 되었다. 하희는 흑요와의 일을 부끄럽게 여겨 양로의 시신을 찾는다는 핑계를 대고 친정인 정나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에 항상 하희의 근황을 엿보고 있던 신공(申公) 굴무(屈巫)가 그녀의 측근을 매수하여 자기의 마음을 그녀에게 전하게 했다. 하희의 측근이 그녀에게 굴무의 말을 전했다.

「신공의 사모하는 마음이 너무 절실하여 만약 부인이 정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신공도 뒤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편 굴무가 사람을 정나라에 보내 그 군주인 양공(襄公)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군후의 동생 하희가 친정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군후께서는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모셔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양공이 과연 사신을 초나라에 보내 하희를 데려 가려고 했다. 초장왕이 여러 대부들에게 물었다.

「정나라가 하희를 데려가겠다고 사자를 보낸 뜻은 무엇을 위함인가?」

굴무가 장왕에게 청하여 독대한 자리에서 말했다.

「하희가 양로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 시신을 거두어 달라고 정나라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정나라가 하희를 데려가려고 하는 뜻은 양로의 시신을 당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로의 시신은 당진에 있는데 정나라가 무슨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한테 사로 잡혀 있는 당진의 장수 순앵(荀罃)은 순수가 애지중지하는 아들입니다. 순앵이 싸움 중에 초나라의 포로가 되자 순수는 그 아들 생각만을 간절히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해장을 대신하여 새로이 당진의 중군부수로 임명된 순수는 정나라 대부 황수(皇戍)와는 오랫동안 사귀어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는 반드시 정나라의 황수에게 도움을 청하여 초나라와 강화를 맺은 후 그의 아들을 풀어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지난 번 필의 싸움에서 당진에 사로 잡혔으나 그때 입은 부상으로 그곳에서 돌아가신 대왕의 아드님이신 공자곡신(公子穀臣)과 윤양로 두 사람의 시신을 살아있는 순앵과 교환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백은 필에서의 싸움 이후 당진이 토벌해 오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백 역시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당진에 미소를 보내 나라의 안전을 꾀하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진실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하희가 초왕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입궐했다. 그녀는 초장왕에게 인사를 하며 정나라로 돌아가려는 까닭을 말하면서 주옥같은 눈물을 빗물처럼 흘렸다.

「만약 제가 지아비의 시신을 찾지 못하면 결코 초나라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하희의 흐느끼는 모습을 측은하게 여긴 초장왕은 정나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청을 허락했다. 초왕의 허락을 받은 하희는 정나라로 출발하기 위해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에 굴무는 정양공에게 편지를 써서, 하희를 자기의 부인으로 삼겠다는 뜻을 전했다. 옛날에 초장왕과 공자영제도 하희를 취하려다 그만 둔 사실을 알 수 없었던 정양공은 초나라의 중신인 굴무와 인척을 맺어 두면 정나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정양공은 굴무가 보낸 예물을 받아들여 그의 청을 허락했다. 굴무가 이 모든 일을 극비밀리에 진행했기 때문에 초나라 사람 중에는 일의 정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굴무가 다시 순수에게 편지를 써서 당진이 갖고 있는 공자곡신과 윤양로 두 사람의 시신을 초나라에 포로로 잡혀 있는 순앵과 교환하라고 알려 줬다. 그런 그의 행동은 자기의 말을 증명하여 장왕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굴무가 알려 준대로 순수는 사람을 정나라의 황수에게 보내, 초나라와 당진이 포로와 시신을 교환하는 일에 대해 그가 중간에 나서서 성사되도록 도움을 청했다. 아들 공자곡신의 시신을 찾아오고 싶었던 장왕은 곧 바로 순앵을 당진으로 송환시켰다. 당진도 역시 공자곡신과 윤양로 두 사람의 시신을 초나라에 보냈다. 당진과 초나라 사이에 교환이 성사되자 초나라 사람들은 굴무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아무도 그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기원전 591년 초장왕이 재위 23년 만에 죽고 아들 심(審)이 뒤를 잇게 되었다. 이가 초공왕(楚共王)이다. 그리고 2년 후인 기원전 589년에 당진이 군사를 일으켜 노(魯), 위(衛), 조(曹) 3국의 제후군과 함께 제나라를 토벌할 때 제경공이 초나라에 구원병을 청했다. 그러나 새로이 초왕의 자리에 오른 공왕은 나이가 어려 구원병을 보낼 수 없었다. 그 해에 안(鞍)의 싸움에서 당진군에게 크게 패한 제경공이 국좌(國佐)를 시켜 당진과 이미 맹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초나라에 전해졌다. 공왕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제나라가 당진을 따르게 된 이유는 우리가 제나라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제나라의 본뜻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과인이 제나라를 도와 위와 조 두 나라를 토벌토록 하여 제나라가 안 땅에서 입은 치욕을 갚도록 해야겠소. 누가 능히 과인의 뜻을 제나라 군주에게 전달하겠소?」

신공 굴무가 공왕의 말을 받아서 말했다.

「소신이 가서 대왕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경은 이번 길에 정나라에 먼저 들려서 군사들을 이번 겨울 시월 보름에 위나라 경계에 보내 우리 초나라 군사들과 합류하라고 이르시오. 그리고 제나라로 가서 정 과 초 두 나라의 군사들이 제나라를 돕기 위해 출동한다는 사실을 제후(齊侯)에게 알리기 바라오.」

공왕의 령을 받고 집에 돌아온 굴무가 다시 자기의 봉지인 신읍(申邑)에 가야 한다고 그의 가속들에게 짐을 꾸리도록 지시했다. 그는 신읍에 가서 부세를 받아 온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가속들을 시켜 재물과 폐백을 십여 대의 수레에 실어서 계속 성 밖으로 내 보내고 자기는 초거(軺車)⑤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밤낮으로 수레를 몰아 정나라에 당도한 굴무는 정백에게 정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출동하여 위나라 경계에서 초군과 합류하라는 초왕의 뜻을 전했다. 이어서 굴무와 하희는 정나라의 관사에서 성례를 치렀다. 두 사람은 크게 희희낙락하며 음사를 마음껏 즐겼다. 이 일에 대해 노래한 시가 있다.

아름다운 여인은 원래 늙은 요정이었다.

이르는 곳마다 사통하여 그 이름이 이미 높았고

방중술에 달통한 한 쌍이 드디어 짝을 이루었으니

마침내 온힘을 다해 기필코 승부가 나겠구나!

佳人原是老夭精(가인원시노요정)

到處偸情舊有名(도처투정구유명)

采戰一雙今作配(채전일쌍금작배)

這回鏖戰定輸嬴(저회오전정수영)

하희가 베개머리에서 굴무에게 말했다.

「이 일을 초왕에게 아뢰어 허락을 받았습니까?」

굴무는 옛날 장왕과 공자영제가 하희를 취하려고 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부인을 얻기 위해서 지나치게 마음을 써오다 오늘 다행히 고기가 물을 얻어 평생 원하는 바를 얻었소! 어찌 내가 초나라로 다시 되돌아간단 말이오. 부인과 같이 백년해로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도록 합시다.」

「일이 이왕 이렇게 되어 초나라로 되돌아가지 않으실 계획이라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초왕의 명을 수행하는 일은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나는 제나라에 가지 않겠소! 초나라의 숙적인 당진이야말로 제일 안전한 나라요. 당진은 부인과 내가 별 문제없이 여생을 편안히 살 수 있는 곳이오.」

다음날 아침, 굴무는 표문 한 통을 써서 자기 종자에게 주어 초왕에게 가서 바치게 하고 자기는 하희를 데리고 당진으로 달아났다. 그때 당진의 군주 경공(景公)은 옛날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순림보를 대장으로 삼아 보낸 당진군이 필(邲)의 땅에서 초군과 싸워 대패한 일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경공은 그 이후로 항상 초나라에 그 원수를 갚으려고 생각하던 차에 굴무가 망명해 왔다는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돕기 위하여 굴무를 보냈음이다.」

경공은 당일로 굴무를 대부에 임명하고 형(邢)⑥ 땅을 하사하여 식읍으로 삼게 했다. 굴무는 굴(屈) 성을 버리고 무씨(巫氏)로 바꾸고 이름은 신(臣)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신공(申公) 무신(巫臣)이라고 불렀다. 이후로 무신과 그 후손들은 당진에서 살게 되었다.

한편 초공왕은 무신이 보낸 다음과 같은 표문을 받았다.

「정나라 군주가 하희를 저의 내실로 삼게 해준 은혜를 베풀어 불초 신은 감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왕께서 저의 죄를 물을까 걱정되어 잠시 당진에 가있겠습니다. 제나라에 가는 사신의 임무는 다른 훌륭한 신하를 별도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표문을 보고 대노한 공왕은 공자영제와 공자측을 불러 굴무의 표문을 보여주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공자측이 말했다.

「초나라와 당진은 누대에 걸친 원수지간입니다. 오늘 굴무가 당진으로 도망친 행위는 반역죄에 해당합니다. 마땅히 나라에 남아있는 굴씨를 토벌하여 죄상을 밝혀야 합니다.」

공자영제가 뒤를 이어 말했다.

「자기의 계모와 사통한 흑요의 죄도 역시 큽니다. 마땅히 같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공왕이 그 말을 따라서 공자영제는 군사를 이끌고 가서 무신의 남은 족속들을 몰살시키도록 하고 공자측에게는 흑요를 잡아서 참하도록 명했다. 무신과 흑요 두 족속들의 재산과 노비들은 공자영제와 공자측이 나눠가졌다. 초나라에 남아 있던 자기 종족이 모두 주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무신은 편지를 써서 두 사람에게 각각 보냈다.

『그대들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 군주에게 아첨하여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무수히 죽였다. 나는 필연코 그대들이 길을 가다가 지쳐서 쓰러져 죽게 하리라!』

무신의 편지를 받아 읽어본 두 사람은 초왕에게는 비밀로 했다. 무신은 즉시 당진의 경공에게 초나라를 견제할 수 있는 계책을 냈다. 그는 초나라 동쪽에 있는 오나라와 통호하고 전차전의 전술을 전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경공이 허락하자 그는 아들 호용(狐庸)을 보내 고문의 신분으로서 머물면서 오나라를 섬기게 하고 당진과 오 두 나라가 서로 믿고 통호하게 하였다. 이윽고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사신의 왕래가 빈번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오나라의 국력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 지고 병사의 수가 늘어나 초나라의 속국 신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오나라의 군장은 수몽(壽夢)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여 왕호를 참칭했다. 당진의 지원과 수몽의 활약으로 변경을 침략당한 초나라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게 되었다. 무신이 죽자 호용은 다시 원래의 굴씨 성을 찾았다. 그는 당진에 귀국하지 않고 계속 남아서 오나라를 섬겼다. 오나라는 그를 상국에 임명하여 국정을 맡겼다. 이 일은 후일의 이야기다.

그해 겨울 시월에 초공왕이 공자영제를 대장으로 삼아 중원 원정군을 일으켰다. 초군은 정나라 군대와 합동하여 위나라를 침공했다. 초와 정 두 나라 연합군은 위나라 변경에서 그 군사들을 격파했다. 초정 연합군은 계속해서 노나라를 향해 진격하여 그 변경지대인 양교(楊橋)⑦라는 곳에서 진을 쳤다. 이에 노나라의 대부 중손멸(仲孫蔑)은 초나라 진영에 뇌물을 바쳐 화의를 맺어야한다고 노후에게 간언했다. 이에 노나라는 나라 안에서 양장(良匠), 직녀(織女), 침녀(針女) 각 100명 씩을 선발하여 초군에게 바치고 화의를 청하자 초군은 허락하고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주정왕(周定王) 20년, 즉 기원전 585년에 정양공(鄭襄公) 견(堅)이 죽고 세자 비(費)가 위에 올랐다. 이가 정도공(鄭悼公)이다. 정나라가 허나라와 국경문제로 다투던 중에 허군이 억울함을 초나라에 호소했다. 초공왕은 허군의 호소가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사신을 보내 정나라를 비난했다. 정도공이 노하여 곧바로 초나라를 버리고 당진 편에 섰다. 그해가 다 가기 전에 당진의 중군원수 극극이 안(鞍)에서 제나라와의 싸움 중 화살에 맞아 난 상처를 잘못 치료하여 왼쪽 팔을 잘라 내야만 했다. 이어서 그는 나이를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은퇴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죽었다. 란서(欒書)가 극극의 뒤를 이어 중군원수가 되었다. 다음 해에 초나라의 공자영제가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정나라를 공격했다. 당진은 란서를 보내 정나라를 구원했다.

3. 趙氏孤兒(조씨고아)

- 조씨고아를 멸족의 화에서 구한 당진의 정영과 공손저구 -

당진의 경공은 제와 정 두 나라가 동시에 자기에게 복종하자 마음이 태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간신 도안고를 총애하여 중용하고 같이 사냥 나가서는 술을 대작하며 마시곤 했다. 경공의 총애를 받게 된 도안고는 마치 영공(靈公) 때의 영화를 되찾은 듯했다. 그때 조동(趙同), 조괄(趙括) 형제는 그들의 형 조영제(趙嬰齊)와 불목했다. 이윽고 조동과 조괄이 작당하여 그의 형 조영제가 음란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경공에게 무고했다. 영제는 결국 동생들에게 참소를 당해 나라밖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제나라로 망명하여 살았다. 그때 하서 땅의 양산(梁山)⑧이 아무런 까닭 없이 허물어져 하수의 물길을 막아 3일 동안이나 물이 흐르지 못했다. 경공이 태사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였다. 도안고가 태사에게 뇌물을 주어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했다.

태사가 점괘를 고하자 경공이 말했다.

「내가 아직까지 형벌을 편파적으로 시행한 적이 없는데 어찌 공평하지 못하다고 하는가?」

곁에 있던 도안고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씨들을 참소했다.

「형벌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은 실수로 형벌을 잘못 내렸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내려야 될 형벌을 내리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옛날 조돈이 선군 영공을 도원에서 시해한 일은 실록에 기록된 실로 용서받지 못할 대역죄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군께서는 주살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정을 모두 위임해 중용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신의 자손들은 조정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들의 죄를 물어 후손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신이 들으니 조삭(趙朔), 조원(趙原), 조병(趙屛) 등의 조씨 종족들의 수가 많음을 믿고 장차 반역을 모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음모를 밝히려고 했던 조영제는 조씨들의 방해를 받아 나라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또한 란(蘭), 극(郤) 두 집안도 조씨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감히 입 밖에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양산이 무너진 일은 주공으로 하여금 조씨들에게 죄를 물어 영공의 원한을 풀어 주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경공은 당진이 초나라와 필에서 싸울 때 조동과 조괄이 지휘계통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한 사실을 그때까지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어 도안고의 말을 따르려고 했다. 경공은 한궐을 불러 조씨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한궐이 대답했다.

「도원의 변은 어찌 조돈 혼자만의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항차 조씨는 성계(成季)⑨이래 누대에 걸친 공신 집안입니다. 주공은 어찌하여 한낱 소인배의 일시적인 말을 듣고 공신들의 자손을 의심하십니까?」

경공이 한궐의 말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여 다시 란서와 극기(郤錡)를 불러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 전에 미리 도안고에게서 부탁을 받았던 두 사람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조씨들을 위해 변호하지 않았다. 경공은 도안고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곧이어 조돈의 죄를 목판에 적어 도안고에 주면서 말했다.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의 뜻대로 처분해도 좋다.」

도안고의 무서운 음모를 알게 된 한궐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하궁(下宮)이라고 부르고 있는 조씨부(趙氏府)로 달려가 조삭에게 알리면서 도안고가 군사를 이끌고 잡으러 오기 전에 미리 도망가서 숨으라고 권했다. 조삭이 대답했다.

「저의 부친 조선자(趙宣子)께서는 폭정을 일삼던 영공이 죽이려고 해서 본의 아니게 대항한 결과 나쁜 이름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도안고가 군명을 받들어 나를 반드시 죽이려고 하는데 내가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은 내 부인이 임신해서 산달이 닥쳤습니다. 만약 여자아이를 낳으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천행으로 남자아이를 낳으면 조씨의 명맥을 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컨대, 장군께 이 일점혈육을 맡기니 부디 보전토록 해주시면 제가 비록 몸은 죽어도 마음은 살아 있는 것과 같겠습니다.」

한궐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궐은 선친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금일 장군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실로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입은 일과 같습니다. 오늘 힘이 닿지 못하여 간적을 처단할 수 없음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할 뿐입니다. 부탁하신 일은 어찌 감히 마다 하겠습니까? 다만 간적이 조씨 문중에 원한을 쌓은 지가 이미 오래되어 일단 란을 일으키면 옥석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죽일 것이니 이 궐이 비록 힘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직 란이 일어나기 전인데 어찌하여 공주를 궁궐로 몰래 보내 이번의 란을 피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후일 그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원수를 갚을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군의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술을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조삭이 장희(長姬)를 궁궐로 들어가 몸을 피하라 이르며 뱃속에 든 아이의 장래에 대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여아를 낳거든 문(文)이라 하고 만약 남아를 낳거든 이름을 무(武)라고 지으시오. 문인은 하늘의 뜻이라 어쩔 수 없고 무인은 우리 집안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오.」

조삭은 이 일을 조씨 집안의 문객 정영(程嬰)에게만 알려 장휘를 궁궐로 호송토록 했다. 정영의 호위를 받으며 온거(溫車)를 타고 조씨부의 후문을 빠져나가 궁궐에 당도한 장희는 그 모친 성부인에게 몸을 피했다. 부부가 이별할 때의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도안고가 갑사를 친히 인솔하고 조씨부를 포위하고 경공이 조돈의 죄상에 대해 써서 준 목판을 대문에다 걸어 놓고 소리쳐 말했다.

「주군의 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러 왔다.」

도안고는 조삭(趙朔), 조동(趙同), 조괄(趙括), 조전(趙旃) 등과 그 가속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명도 남김없이 죽였다. 그때 조전의 아들 조승(趙勝)만은 한단에 있다가 조씨들에게 닥친 변란의 소식을 듣고 송나라로 몸을 피해 참변을 면할 수 있었다. 도안고에 의해 살해된 조씨들의 시체가 하궁 안을 가득 메워 그 시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곳의 정원과 계단을 낭자하게 적셨다. 도안고가 살해한 사람들을 점고하여 시체의 수효를 헤아렸다. 그러나 그 시신들 중에 장희의 시체가 보이지 않자 도안고가 말했다.

「공주의 시체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현재 임신 중인데 장차 해산하여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역신의 종자를 남겨 놓게 되어 후에 반드시 화근이 될 것이다. 」

주위에 있던 자가 도안고에게 말했다.

「지난밤에 조씨부를 빠져나와 궁궐로 들어가는 온거 한 대를 보았습니다.」

「온거를 타고 간 사람이 장희임에 틀림없다.」

도안고가 즉시 궁궐로 들어가 경공에게 고했다.

「역신의 무리들은 모두 도륙 되었습니다. 단지 장희공주 한 사람 만이 궁중으로 몸을 피했을 뿐입니다. 주공께서 친히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누이는 모친께서 무척 총애하고 계시기 때문에 감히 그 죄를 묻지 못하겠소!」

「공주가 임신 중이라 장차 해산하여 만일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역신의 종자가 살아남아 앞으로 장성하면 반드시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또다시 도원의 변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공께서는 결코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해산날을 기다렸다가 사내아이를 낳으면 죽이시오.」

도안고가 사람을 보내 장희의 해산 소식을 밤낮으로 탐문하게 했다. 이윽고 며칠 후 장희가 아이를 낳았는데 사내였다. 성부인(成夫人)이 궁중의 나인들에게 분부하여 여아를 낳았다고 거짓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도안고가 믿지 않고 자기 집안의 유모 한사람을 궁궐로 보내 알아보게 했다. 장희가 당황하여 그 모친 성부인과 상의하여 여아를 낳기는 했는데 태어나자 곧바로 죽어 버렸다고 말하게 했다. 그때 경공은 음락에 빠져 당진의 국사는 모두 도안고에게 맡겨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안고가 무슨 일을 하던 경공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도안고 역시 새로 태어난 아이는 여아도 아니고 또한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한 나머지 자기가 직접 여복(女僕)들을 데리고 궁중에 들어가서 어린아이를 수색했다. 장희는 갓난아이를 속바지 속에 감추고 마음속으로 하늘에 기도했다.

「하늘이여, 만일 조씨 종족의 후사를 끓으려고 한다면 아이로 하여금 울게 하시고, 다행히 다시 조씨의 맥을 잇게 하려거든 울지 않게 해주옵소서!」

도안고가 보낸 여복들이 들어와서 장희를 궁실 밖으로 끌어내고 궁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갓난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장희의 속바지 속에 숨겼던 갓난아이는 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도안고가 아이를 찾지 못하고 궁궐 밖으로 나왔지만 마음속으로는 도저히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도안고가 혼자 생각했다.

「사람을 시켜 아이를 이미 궁 밖으로 내 보내지 않았을까?」

안고가 궁궐의 대문 위에 현상을 건다는 방문을 걸었다.

「조씨의 갓난아이에 대해 신고하는 자에 대해서는 천금의 상을 내리겠다.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자는 역신과 같이 취급하여 일가족을 멸할 것이다.」

또한 궁궐 문지기에게 출입하는 사람에 대해서 검색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4. 舍子救孤(사자구아)

- 조씨고아를 구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는 정영(程嬰)과 자기 목숨을 바치는 공손저구(公孫杵臼) -

한편 조돈이 살아 있을 때 그에게는 두 사람의 심복 문객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름이 공손저구(公孫杵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영(程嬰)이었다. 그 중 공손저구라는 문객은 옛날 양공이 죽어 그 후계를 정할 때 조돈의 명을 받아 조씨 집안의 갑사들을 데리고 진(陳)나라에서 귀국하는 공자락(公子樂)을 중간에서 기다렸다가 살해한 일이 있었다.⑩ 도안고가 조씨들의 하궁(下宮)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먼저 들은 공손저구는 정영의 집으로 달려가 둘이서 같이 하궁으로 가서 조씨들과 운명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정영이 듣고 말했다.

「도안고가 군명을 빙자하여 역적을 토벌한다는데, 우리가 가서 같이 죽어 버린다면 조씨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비록 조씨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고 은혜를 입은 주인이 어려움에 빠졌는데 어찌 감히 몸을 빼어 삶을 도모한단 말인가?」

「조삭의 처 장희가 임신 중인데 만일 아들을 낳으면 우리가 같이 모셔야="겠고," 만일 여자아이를 낳으면 그때`123 죽어도 늦지 않네!」

두 사람은 얼마 후에 장희가 여아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하늘이 조씨의 명맥을 끊었도다!」

정영이 말했다.

「아직 확실치 않으니 내가 직접 알아봐야 되겠네.」

정영이 궁인들에게 재물을 후하게 주고 장희와 연락을 취했다. 장희가 정영의 충의를 알고 밀서에 ‘무(武)’라는 글자를 써서 정영에게 보냈다. 정영이 밀서를 받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부인께서 과연 남아를 낳으셨구나! 」

그 때가 바로 도안고가 여복들을 데리고 궁중을 수색했으나 갓난아이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정영이 저구에게 말했다.

「조씨의 갓난아이가 궁중 안에 있으나 간적이 아직 찾지 못하고 있네. 이것은 하늘이 조씨 문중을 돕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간적을 일시적으로 속이는 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세. 후일에 고가 다시 궁중을 수색하면 언젠가는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겠는가? 반드시 계략을 써서 갓난아이를 궁중에서 몰래 빼내 먼 곳에다 피신 시켜야만 만전을 기할 수 있네.」

저구가 한참을 신음하면서 생각한 후에 정영에게 물었다.

「살아서 갓난아이를 키우는 일과 지금 죽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

「죽는 것은 쉽고 고아를 키우는 일은 어렵네.」

「자네는 어려운 일을 맡고 나는 쉬운 일을 맡겠네. 어찌 생각하는가?」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갖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갓난아이를 구하여 조씨의 아이라고 속여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수양산(首陽山)⑪으로 들어가 숨어 지내고 있으면, 자네는 도안고에게 가서 나와 조씨의 갓난아이가 숨어 있는 곳을 고하게! 도안고 간적은 가짜 아이를 조씨의 갓난아이로 생각하고 죽이지 않겠나? 그리 되면 진짜 아이는 화를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씨의 갓난아이를 대신할 아이는 내가 쉽게 구할 수 있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조씨의 갓난아이를 궁궐 밖으로 빼내 안전한 곳에 숨겨야 하네.」

「여러 장군들 중 오로지 한궐만이 조씨의 은혜를 가장 많이 입었다고 할 수 있네. 궁중에 있는 갓난아이를 빼내 오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이네.」

「나에게 금방 낳은 어린아이가 하나 있는데 조씨의 갓난아이와 태어난 날이 비슷하네. 나의 아들로 가짜 아이를 대신하면 되겠지만, 조씨의 갓난아이를 감춘 죄로 그대는 반드시 도안고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네! 자네의 죽음을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나는 차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네!」

정영이 눈물을 흘리기를 끊이지 않자 저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일은 큰일이고, 또한 아름다운 일이거늘 어찌하여 아녀자처럼 눈물을 흘리는가?」

저구의 힐난에 눈물을 멈추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정영이 한밤중에 그 의 갓난 아들을 품고 돌아와서 저구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한궐에게 달려가 먼저 장희에게서 받은 무(武)자라고 쓴 밀서를 보여주고 두 사람의 계획을 고했다. 한궐이 말했다.

「장희가 병이 나서 나에게 의원을 구해 보내 달라고 했소. 그대가 안고 도적놈을 속여 수양산으로 데려가면 나는 그 사이에 조씨의 갓난아이를 궁궐에서 꺼내 오겠소.」

한궐의 집에서 물러 나온 정영은 며칠 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정에 나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도안사구께서 조씨의 어린아이를 찾고 있는데 어찌하여 궁중만을 뒤지고 있는가?」

여러 사람 중에 도안씨 문객이 끼어 있다가 물었다.

「조씨의 갓난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당신은 알고 있다는 말이오?」

정영이 그 사람을 향해 대답했다.

「방문의 내용대로 나에게 천금의 상금을 준다면 알려 주겠소.」

그 문객이 정영을 도안고에게 인도했다. 안고가 우선 이름과 성을 물었다. 정영이 대답했다.

「성은 정(程)이고, 이름은 영(嬰)입니다. 공손저구와 함께 조씨를 섬겼습니다. 공주가 사내아이를 낳자 그 모친 성부인(成夫人) 편에 몰래 안아서 궁문 밖으로 내보내 우리 두 사람에게 주어 감추어 기르도록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니 후에라도 이 일이 탄로 나서 천금을 탐한 다른 사람이 고하게 된다면 나와 나의 전 가족이 죽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이렇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안고가 물었다.

「갓난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좌우를 물리쳐 주시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안고가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치자 정영이 말했다.

「수양산 깊은 계곡 속에 숨어 있습니다. 머지않아 섬진으로 피신하려고 하기 때문에 빨리 가야만 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조씨 집안의 많은 일당들과 함께 있어 대부께서 직접 가셔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시켜서는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단지 나를 갓난아이가 숨어 있다는 수양산으로 데려다 주면 된다. 신고한 내용이 사실이면 상을 줄 것이고, 거짓이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제가 산중에서 급히 달려오는 바람에 배가 매우 고픕니다. 식사를 한 끼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도안고가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해서 정영을 먹였다. 식사를 끝낸 정영이 빨리 가자고 안고를 재촉했다.

안고가 직접 도안씨 집안의 사병 3천 명을 동원하여 정영을 앞세워 곧바로 수양산으로 달려갔다. 수양산은 강도(絳都)에서 6백리 길이었다. 밤낮으로 달려 수양산에 밑에 당도한 안고의 일행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몇 리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자 길이 아주 외딴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에는 개천이 있고 그 옆에 초가가 몇 채 있었는데 사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정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집이 저구와 조씨의 갓난아이가 사는 곳입니다. 」

정영이 문을 두드리자 저구가 집안에서 나왔다. 갑옷을 입은 수많은 무사들을 발견한 저구는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을 띠며 뒷걸을 쳐서 도망가려고 했다.

정영이 보고 저구를 향해 외쳤다.

「어디로 도망가려 하는가? 사구께서 조씨의 갓난아이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친히 왕림하셨다. 빨리 데려와서 바치도록 하게나!」

정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사들이 저구를 결박하여 도안고 앞으로 끌고 왔다. 안고가 물었다.

「역도의 씨앗은 어디 있는가?」

저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없다! 」

안고가 집안을 수색하라고 갑사들에게 명령했다. 군사들이 저구가 살던 집을 수색하다가 자물쇠가 견고하게 채워져 있는 벽실을 하나 발견했다. 갑사가 자물쇠를 부수고 벽실 안으로 들어갔다. 벽실 안은 매우 어두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대나무 침상 위에 무엇인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어린 갓난아이가 놀라 울기 시작했다. 갑사가 갓난아이를 안아서 밖으로 나왔다. 수를 놓은 비단 보자기로 싸여 있는 간난아이는 마치 지체 높은 집안의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구가 쳐다보고 어린아이를 뺏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결박을 당한 몸이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윽고 체념한 저구가 시선을 정영에게 향하더니 큰소리로 꾸짖었다.

「정영 소인배야! 옛날 조씨 종족이 하궁에서 난을 당할 때 네가 한 말이 생각나지 않느냐? 그때 내가 같이 따라 죽자고 했더니, 네가 먼저 ‘공주가 잉태했으니 우리가 만일 죽으면 누가 갓난아이를 돌보겠느냐?’ 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공주의 부탁을 받고 우리 두 사람이 이 산중에 아이를 데리고 숨었음은, 너와 내가 같이 상의하여 행한 일인데, 천금의 상이 탐이 나서 의리를 저버리고 몰래 이곳을 빠져나가 밀고를 했단 말인가? 내가 비록 죽는 것은 원통하지 않지만 조선맹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지 못하는 것이 분할뿐이로다!」

저구는 정영을 보고 소인배라고 하면서 계속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정영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안고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저놈을 빨리 죽이지 않으십니까?」

안고가 소리쳐 명령을 내렸다.

「저 놈을 참수하라 」

공손저구를 죽인 도안고는 자신이 직접 갓난아이를 갑사에게서 빼앗아 땅 바닥에 내동댕이치자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도안고의 명을 받은 갑사들이 달려들어 갓난아이를 난도질하자 아이는 육젓이 되어 죽었다. 염옹이 이 일에 대해 시를 지었다.

조씨의 일점혈육이 궁중 안에서 위험에 처하자

자기의 혈육을 조씨의 아들로 대신해서 죽게 만들고

간신 도안고를 속여 그가 친 그물을 거두게 하였다.

누가 알았으랴? 공손저구가 이미 손을 썼음을

一線宮中趙氏危(일선궁중조씨위)

寧將血胤代孤兒(영장혈윤대고아)

屠奸縱有弭天网(도간종유미천망)

誰料公孫已售欺(수료공손이수사)

도안고가 수양산으로 행차하여 조씨 집안의 갓난아이를 잡아서 죽인 일에 대해 성중 백성들 간에 소식이 퍼졌다. 도씨 집안을 위해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기뻐하였고, 조씨 집안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은 한탄했다. 이윽고 조씨고아를 감시하기 위해 삼엄했던 궁문 출입의 검사는 자연히 해이해 졌다. 한궐이 그 문객 중 심복 한 사람에게 지시하여 민간의 의원으로 분장시켜 장희를 간병하게 한다고 핑계를 대고 궁궐로 들여보냈다. 그 심복은 정영에게서 받은 ‘무(武)’자가 써진 천 쪼가리를 약바구니 위에 붙이게 했다. 장희가 보고 그 뜻을 짐작했다. 한궐의 심복이 진맥을 끝내고 산후에 몸조리하는 처방을 상식적인 선에서 몇 마디 알려주자 장희는 좌우를 살펴보았다. 장희는 자기 주위에 있던 궁녀들이 모두 자기의 심복들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 즉시 갓난아이를 약바구니에 담았다. 아이가 놀라 울기 시작하자 장희가 약바구니를 잡고 기도했다.

「조무야! 조무야! 우리 조씨 가문의 원수를 갚는 것은 일점혈육인 너에게 달려 있지 않느냐? 궁 밖에 나갈 때 절대 울면 안 되느니라!」

장희의 말이 끝나자 아이는 신통하게도 울음을 그쳤다. 의원이 바로 약 바구니를 들고 궁 밖으로 나갔다. 궁문을 지키는 군사들은 검문을 하지 않았다. 한궐이 조씨의 갓난아이를 구하여 마치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깊은 밀실에 감추고 유모를 시켜 돌보게 했으나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 일을 몰랐다.

한편 도안고가 수양산에서 돌아와 자기의 부중에 당도하자 정영에게 천금의 상을 내리려고 했다. 정영이 받지 않으며 사양하자 도안고가 말했다.

「그대는 상을 바라고 신고를 하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상을 마다하는가?」

「소인은 오래 전에 조씨의 문객이 되어 그들의 록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그 집안의 어린아이를 죽이고 내 목숨을 건진 행위는 의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감히 많은 상금을 바라겠습니까? 만일 사구께서 소인의 조그만 공로를 생각해 주셔서, 원컨대 이 상금으로 조씨들의 시신이나마 거두어 주게 해주신다면 소인이 조씨 문중에 있으면서 받은 은혜에 만 분의 일이나마 갚음이 되겠습니다.」

안고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는 진실로 신의가 있는 선비로다. 조씨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내 주는 일을 금하지 않겠다. 이 상금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사용하도록 하라.」

정영이 인사를 올리고 상금을 받았다. 정영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조씨들의 시신과 해골을 수습하여 좋은 관을 마련하여 입관한 후에 조돈의 묘 옆에다 순서를 정하여 매장하였다. 장례를 모두 끝낸 정영이 도안고에게 다시 와서 감사하다는 치사의 말을 했다. 도안고가 정영을 자기 옆에 머물게 하여 쓰고자 하였으나 정영이 눈물을 흘리며 사양했다.

「소인은 한 때 마음을 잘못 먹고 죽음을 무서워하여 삶을 탐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로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나라 안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제 멀리 떨어져 있는 땅으로 가서 호구나 이으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정영이 안고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한궐을 찾아갔다. 한궐이 유모와 갓난아이를 정영에게 주었다. 정영은 조무를 자기 자식이라도 된 것처럼 품에 안고 어루만지며 수양산의 반대편에 있는 우산(盂山)⑫으로 들어가 숨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 산 이름을 장산(藏山)으로 바꿔 불렀다. 그것은 정영과 조씨의 갓난아이가 숨었던 산이라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당진의 경공이 신전(新田)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 땅이 기름지고 물이 맑은 모습을 보고 도읍(都邑)을 옮겼다. 당진의 새로운 도읍의 이름을 신강(新絳)이라 짓고 옛날의 도읍은 고강(故絳)으로 부르게 했다. 모든 벼슬아치들이 새로운 도읍으로 이사를 와서 경공에세 경하를 드렸다. 경공은 신하들을 위해 내궁에 잔치를 열었다. 연희가 무르익어 해가 저물자 좌우의 시종들에게 명해 촛불을 키라고 명했다. 그때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나더니 당중으로 불어와 사람들로 하여금 찬 기운을 느끼게 하였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가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 바람이 별안간 경공이 앉아 있는 곳으로 불어오자 머리를 산발한 큰 귀신이 경공 앞에 나타났다. 키는 한 장이 넘고 긴 머리카락을 땅에 질질 끌며 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자기 가슴을 치며 경공을 향해 욕을 했다.

「너는 우리 자손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모두 죽였느냐? 내가 이미 상제에게 청하여 너의 목숨을 걷으러 왔다. 」

귀신이 말을 마치고 동추를 들어 경공을 향해 날렸다. 경공이 비명소리를 질렀다.

「누가 나를 구할 사람이 없느냐? 」

경공이 허리에 찬 칼을 뽑아 귀신의 목을 베려고 했으나 잘못하여 자기 손가락을 잘랐다. 조당 안의 여러 신하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황망 중에 진경공의 칼을 빼앗았다. 이윽고 경공은 입에서 선혈을 토하더니 땅바닥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제58회로 계속》

주석

①원루(袁婁) :현 산동성(山東省) 임치시(臨淄市) 서 25키로 되는 곳에 있었던 고을.

②언(甗) :동으로 만든 시루처럼 생긴 취사도구의 일종.

③옥경(玉磬) : 옥으로 만든 북채

④기원전 588년 당진(唐晉)이 처음으로 시작한 6군의 군제표

군별(軍別)

원수(元帥)

부수(副帥)

기타

삼군

三軍

중군(中軍)

극극(郤克)

해장(解張)

중군사마(中軍司馬) : 한궐(韓厥)

차우장군(車右將軍): 정구완(鄭丘緩)

상군(上軍)

사섭(士燮)

하군(下軍)

란서(欒西)

신삼군新三軍

중군(中軍)

힌궐(韓厥)

조괄(趙括)

상군(上軍)

공삭(鞏朔)

한천(韓穿)

하군(下軍)

순추(荀騅)

조전(趙旃)

⑤초거(軺車) : 말 한 필이 끄는 작은 수레를 말한다.

⑥형(邢) : 원래 형(邢) 땅은 형나라의 도읍이었던 지금의 하남성 형태시(邢台市) 부근에 있었으나 북적(北狄)의 군장(君長) 수만(瞍瞞)의 침략을 받아 현 산동성(山東省) 료성현(聊城縣)으로 이주하였다. 굴무가 봉해진 곳은 형국의 고토인 지금의 형태시를 말하는 것임. 본서 23회 참조

⑦양교(楊橋) :금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남 약 50키로 태산(泰山)의 서쪽

⑧양산(梁山) : 산서성과의 경계를 이루는 하수 서안에 남북으로 뻗어 있는 섬서성(陝西省) 경내의 산 이름.

⑨성계(成季) : 자가 자여(子餘)인 조쇠(趙衰) 시호(諡號)가 성(成)이다. 조쇠는 사형제 중 막내였기 때문에 계(季)를 붙여 시호와 함께 성계(成季)라 했다. 조쇠는 조성자(趙成子), 그의 아들 조돈(趙盾)은 조선자(趙宣子) 그리고 후에 복권된 조무는 조문자(趙文子)다.

⑩당진의 양공(襄公)이 죽자 세자였던 영공(靈公)이 나이가 어려 당시의 실권자 조돈(趙盾)은 섬진에 살고 있었던 공자옹(公子雍)을, 조돈과 권력을 다투었던 호석고는 진(陳)나라에 살고 있었던 공자락(公子樂)을 옹립하려고 했다. 이에 조돈은 문객인 공손저구를 시켜 진나라에서 귀국하던 공자락을 도중에 매복하고 있다가 습격하여 죽이도록 했다. 후에 조돈은 국내의 여론이 악화되자 공자옹조차 습격하여 죽이고 영공을 옹립했다. (연의 47회 참조)

⑪수양산(首陽山) : 지금의 산서성 하곡부(河曲部)에 연해 있는 지금의 설화산(雪花山)을 말한다. 서주 초기 때 백이숙제가 이 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은 곳이다. 높이는 약 2천 미터이다.

⑫우산(盂山) : 지금의 하남성 초작시(焦作市) 서 30키로 되는 곳에 있었던 산이름.

역주 : 조싸고아에 대한 문헌 소개

조씨고아 즉 조무에 관한 이야기는 《좌전(左傳)》과 《사기(史記)》의 《진세가(晉世家)》와 《조세가(趙世家)》및 《12제후연표》에 가각 다른 내용으로 기재되어있다. 좌전의 내용은 조씨들 종족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 때문이라고 했다. 조돈의 아들 조삭은 진성공(晉成公)의 누이동생이인 장희(庄姬)와 혼인했다. 조동, 조괄, 조영제 등의 3인은 조돈의 이복동생으로 진문공(晉文公)이 딸 조희의 소생이다. 조삭은 세 사람 모두에게 조카가 된다. 진경공 13년(기원전 587), 조영제가 장희와 간통했다. 다음해인 진경공 14년 조동과 조괄이 장희와의 간통사건에 대한 죄를 물어 조영제를 나라 밖으로 추방했다. 진경공 17년 앙심을 품은 장희가 조동과 조괄 두 사람이 장차 난을 일으킬 것이라고 진경공에게 무고했다. 당시 조씨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란씨(欒氏)와 극씨(郤氏) 두 종족들이 조씨들이 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위증한 결과 진후(晉侯)가 조씨들을 토벌하여 멸족시키고 당시 어린 나이의 조무(趙武)만은 장희에게 주어 공궁에서 기르게 하고 그 해에 한궐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진경공은 조씨들을 복권시켜 조무를 후계로 삼고 그들의 봉읍을 돌려주었다.

그러나《사기·조세가》 편에는 조씨가 멸족된 해는 진경공 3년 기원전 597년의 일로써 이 해에 공손저구와 정영이 조씨고아 조무를 구해내어 산으로 피신했다고 했으나 《사기. 진세가》편의 진경공 12년 즉 기원전 588년 기사에 조괄이 당진의 육경 중의 한 사람으로 임명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조세가》의 조괄이 기원전 597년에 죽었다는 기록은 잘못이다. 조씨고아에 대한 기사는 전국시대에 들어서 조나라의 창건사를 쓰면서 사실과 다르게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평설]

一. 신공(申公) 굴무(屈巫)의 애정행각

굴무는 속임수를 써서 하희(夏姬)를 취해 초나라를 떠나 당진국으로 망명했다. 굴무가 사용한 수단은 참으로 고차원적이라고 할만하다. 그는 정(鄭)과 초(楚) 두 나라 국군(國君)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원하는 바를 얻었다.

하희라는 여인이 이르는 곳에서는 모두 치정사건이 일어나고야 마는 절세의 미녀였으나, 그러나 그녀가 초나라에 하릴없이 머무르고 있었음으로 해서 결국은 정나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에 굴무는 일단 그녀가 정나라에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녀를 부인으로 삼겠다는 자기의 뜻을 전했다. 이에 그녀는 정나라로 돌아갈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하희가 자연스럽게 초나라를 떠나 정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자, 굴무는 자기의 직권을 이용하여 정나라 군주에게 사람을 보내 하희를 모셔갈 사자를 초나라에 파견하라고 청했다. 굴무는 하희가 비록 진(陳)나라 여인이지만 정나라는 진나라의 종주국이라 정양공은 여동생이기도 한 하희가 정나라로 돌아오겠다는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정나라가 과연 하희를 데려가기 위해 사람을 보내왔다. 그러나 일찍부터 하희에게 뜻을 두고 있었던 초장왕은 하희를 순순히 정나라로 돌려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굴무는 자신의 세치 혀를 이용하여 하희의 정나라 방문은 초․정(楚鄭), 초․진(楚晉), 진정(晉․鄭) 등의 관계개선에 기여할 수 있으며 특히 두 나라보다 가장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되는 나라는 초나라라고 설득했다. 이에 초장왕은 굴무의 계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초장왕이 마음에 두고 있던 하희가 찾아와 주옥과도 같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며, 전장에 나가 전사한 남편 윤양로의 시신을 초나라에 돌려주지 않는 당진국의 처사를 하소연했다. 이는 마치 굴무와 함께 각본을 짠 한 편의 연극을 연출한 경우가 되었다. 정나라의 도움으로 자기 남편의 시신을 찾으면 다시 초나라에 돌아오겠다는 하희의 애원을 측은하게 여긴 초장왕은 결국은 허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희는 마침내 초나라를 떠나 정나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하희와 함께 초나라를 떠나 정나라로 가려고 했던 굴무는 곧바로 정양공(鄭襄公)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는 하희를 부인으로 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정양공은 초나라가 조만간에 굴무를 중용하여 정나라가 초나라와 친선을 맺는데 굴무가 통로 역할을 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하희의 친정 사람 신분으로 굴무의 요청을 받아 들였다. 굴무는 그러한 일들을 극비로 진행시켜 , 초나라 사람 중에는 아무도 그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또한 굴무의 복안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정양공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동시에 굴무는 또한 당진국에 사람을 보내 중군원수 순수(荀首)와 연락을 취해 필(邲)의 싸움에서 전사한 하희의 남편 윤양로(尹襄老) 및 장왕의 아들 공자 곡신(穀臣) 등 두 사람의 시신을 초나라에 보내주면, 초나라는 순수의 아들 순앵(荀罃)을 석방하겠다고 했다. 당시 순앵은 초나라에 포로로 잡혀있었다. 이에 순수는 오랫동안 교우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정나라의 대부 황수술(皇戍)에게 중개를 부탁함으로써 굴무의 계획은 그럴듯하게 진행되었다. 순수야말로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던 일이었다. 이로써 초나라 사람들은 굴무의 계획에 대해 더욱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기원전 590년 장왕이 죽고 초공왕(楚共王)이 그 뒤를 이었다. 제나라를 위해 위(衛)나라를 정벌하기로 결정한 공왕(共王)은 자기의 뜻을 제나라에 전하고 다시 정나라에 출병준비를 통지하기 위해 사람을 뽑아 사자로 보내려고 했다. 이에 굴무는 자연스럽게 그 임무를 맡아 초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정당한 명분과 이치에 맞는 언사로 정나라에 하희와 같이 당도한 굴무는 곧바로 혼인식을 올려 자기의 오랜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초나라가 그에게 부여한 사신의 임무는 그때는 이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초나라와 패권 다툼을 하고 있었던 당진국이 초나라의 중신을 매우 귀중한 존재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 굴무는 하희를 데리고 정나라에서 당진국으로 들어갔다. 진경공은 굴무의 바램대로 굴무를 당진국 형(邢) 땅의 대부에 봉했다. 미인을 취함과 동시에 대부에도 봉해진 굴무는 당진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초나라에 대한 계책을 내었다. 이에 당진국이 오나라와 국교를 통하여 초나라를 양쪽에서 공격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은 바로 굴무의 건의에 따른 결과이다.

당시 오나라는 중원 제후국에 비해 문화적으로나 체제적으로나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춘추 중엽에 이르러 청동(靑銅)에 대한 제련 기술과 그것을 이용한 제검(製劍) 기술만은 중원국가를 능가했고 또한 군사력도 점차 증강되고 있었다. 기원전 584년 굴무가 사신으로 가서 오나라에 전차전을 전수함과 동시에 당진국과 오나라 두 나라간간에 초나라에 대한 공수동맹을 체결했다. 이로써 당진국은 초나라와의 패권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二. 조씨고아 이야기

초나라와 패권 다툼을 하려던 당진국에 내란이 일어났다. 도안고(屠岸賈)라는 위인은 나라를 어지럽히는데 능했다. 당진국의 내우는 대부분이 그가 야기시켰다고 할 수 있다. 나라를 어지럽혔던 도안고라는 위인은 ;

-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취했다.

진경공의 교만한 마음에 영합해서 사냥과 음주를 함께 하며 마침내는 군주의 총애를 받고 높은 관직을 얻었다.

- 치밀하게 그물을 엮어 상대방을 몰아넣었다.

일단 권력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면 명령을 멋대로 발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여 한편으로는 겁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유도 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웠다.

- 요언으로 군주를 현혹시켰다.

진경공이 당진의 공신가문이었던 조씨들을 시기하여 멸문시킨 일은 도안고가 자연적인 재해를 이용하여 지어낸 요언으로 역사를 전도시켜 조씨들을 모함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도안고는 진경공으로 하여금 조씨들에 대한 모함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해서 조씨들을 멸문시키게 만들었다.

- 이리와 같은 마음에 수단이 매우 악독했다.

진경공의 명령을 집행함에 있어서, 그는 조씨 부중에 조씨들의 시신을 당 중에 늘어놓고 그 흘린 피가 계단을 흠뻑 적시도록 했다. 조씨 문중의 문객들이 몰래 피난시킨 조씨 고아를 찾아내 땅에 던진 후에 울음을 터뜨린 간난아이를 부하들을 시켜 칼로 짓이기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악함 정의로움을 덮었고, 검은 구름이 푸른 하늘을 덮은 형세가 되었으나 결국은 의로운 사람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조씨의 가문은 단절되지 않았다. <조씨고아(趙氏孤兒)>라는 희곡(戱曲)을 편집한 본편은 현재까지도 인기리에 상연되고 있다. 사람들이 간악하고 망령된 자는 싫어하고, 충의지사를 사랑한다는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이 고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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