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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7:234459 
제53회. 株林宣淫(주림선음) 蹊田奪牛牛(혜잔탈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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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3회 株林宣淫 蹊田奪牛(주림선음 혜전탈우)

주림에서 신하들과 함께 혼음을 즐기다가 시해당하는 진영공과

시군의 죄를 묻는다는 핑계로 진나라를 멸한 초장왕

1. 泄冶直音 身死名高(설야직음 신사명고)

- 직간하다가 몸은 죽었으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진나라의 충신 설야(泄冶)

진영공과 공녕, 의행보 등 군주와 신하 세 사람은 모두 하희가 준 속옷을 껴입고 조당에 올라 서로 희롱했다. 세 사람이 조당을 어지럽히는 소리를 들은 설야가 즉시 옷깃을 단정하게 여민 후에, 홀(笏)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조문을 통하여 조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공녕과 의행보 두 사람은 평소에 올곧은 설야를 싫어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설야가 조당에 다시 나타나자 세 사람은 필시 직간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짐작했다. 두 사람이 즉시 영공에게 인사를 드리고 물러 나와 조당 밖으로 나가 몸을 피했다. 영공도 역시 옥좌에서 일어나 몸을 빼내어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설야가 성큼성큼 당상으로 올라가 영공의 옷깃을 붙잡으며 무릎을 꿇고 간했다.

「신은 ‘군신간에는 서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며 남녀 간에는 서로 삼가 해야 한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금일 주공께서는《주남(周南)》①에서 이르는 가르침을 전혀 깨닫지 못하시고 나라 안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정조를 잃게 하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군신 간에 음락을 공공연히 자행하면서 조당에 올라 서로 간에 음행을 자랑하는 더러운 소리가 조당 안에 가득하니 군주로써의 염치와 체통이 모두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군신 간에는 서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만이 남녀 간에도 구분이 생기는 법인데 이제 윤리가 땅에 떨어져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무릇 공경하지 않게 되면 서로 간에 태만히 대하게 되고, 남녀가 구분이 없어지게 되면 기강이 문란해져 상호간에 조심하지 않게 됩니다. 남녀 간의 기강이 문란하게 되면 결국은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주군께서는 이 점을 명심하시어 반드시 그 나쁜 버릇을 고치셔야만 합니다.」

설야의 질타하는 소리에 영공은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면서 말했다.

「과인이 저지른 잘못을 지금은 뉘우치고 있으니 경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마오!」

설야가 인사를 드리고 조문 밖으로 나갔다. 그때 공녕과 의행보는 아직 가지 않고 조문 밖에 서성거리면서 조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엿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노기등등하여 조문 밖으로 나오는 설야의 모습을 본 두 사람은 재빠르게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몸을 피하려고 했다. 설야가 이미 두 사람을 보고 큰 소리로 불러 세우고는 목소리를 높여 야단쳤다.

「군주가 선한 일을 행하면 신하된 자는 마땅히 장려하여 널리 알려야 하며, 군주가 나쁜 짓을 하면 그 신하된 자는 마땅히 그 행함을 막아야 하거늘 지금 그대들이 스스로 나쁜 짓을 행하고 또한 그로써 군주를 꾀어내어 오히려 함께 자행한 못된 짓을 나라 안에 널리 알려 백성들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였으니 어찌 백성들을 다스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두 사람이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그저 「예, 예」라고 대답하며 가르침을 주어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설야가 물러가자 공녕과 의행보 두 사람이 영공에게 알현을 청한 후 들어와 설야가 그 군주를 책망한 말을 상세하고 전하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오늘 이후로는 주림에 다시는 놀러 가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 경들은 주림에 가서 놀고 싶지 않단 말이오?」

공녕과 의행보가 이구동성으로 영공에게 말했다.

「설야가 한 말은 주군이 지켜야하는 일이니 우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설야는 신하된 저희들은 주림에 놀러 갈 수 있으나 군주이신 주공께서는 가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영공이 안색을 바꾸며 정색을 하며 말했다.

「과인이 차라리 설야에게 죄를 지을망정 어찌 주림에서의 즐거움을 버릴 수 있겠소?」

공녕과 의행보가 다시 영공에게 말했다.

「주공께서 주림에 다시 간다고 하면 설야가 앞을 가로막으며 매우 성가시게 할 텐데 그때는 어쩌시겠습니까?」

「두 경에게 설야의 입을 막게 할 좋은 계책이 없겠소?」

공녕이 나서서 말했다.

「만약 설야의 입을 막고자 한다면 그로 하여금 그의 입을 열지 못하게 막으면 그뿐입니다.」

영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설야가 자기 입으로 말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의행보가 공녕의 말에 맞장구쳤다.

「공녕이 말하는 뜻을 신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릇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주공께서 교지를 내려 설야를 죽이도록 하면 주공께서는 죽을 때까지 주림에 가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과인은 도저히 그 일만은 못하겠소!」

공녕이 포기하지 않고 영공을 꼬드겼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시켜 죽이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결국은 영공이 머리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경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영공에게 인사를 올리고 조문 밖으로 나간 후에 은밀한 곳으로 가서 설야를 죽일 일을 상의한 두 사람은 많은 재물로 자객 한 사람을 사서 설야를 죽이도록 했다. 며칠 후 자객이 설야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잠복하고 있다가 그가 입조할 때를 기다려 갑자기 달려들어 칼로 찔러 죽였다. 성안의 백성들은 모두 영공이 사람을 시켜서 설야를 죽인 것으로 알았지 공녕과 의행보 두 사람이 모의하여 죽인 줄은 몰랐다. 사관이 시를 지어 설야의 기개를 찬양했다.

진나라에 밝고 어진 사람이 죽자

군신들이 음락을 내 놓고 즐기면서

여자의 속곳을 예복 안에 바쳐 입은 고관들이

주림에서 조당을 크게 열었다.

陳喪明德(군신선음)

君臣宣淫(진상명덕)

纓紳衵服(영신일복)

大廷株林(대정주림)

장하도다, 설야여!

오직 그대만이 군주에게 직간을 하다가

몸은 비록 죽었으나 그 이름은 높아져

관용봉과 비간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

壯哉泄冶(장재설야)

獨矢直音(독시직음)

身死名高(신사명고)

龍血比心(용혈비심)

2. 주림선음(株林宣淫)

- 주림에 나가 하희와 혼음을 즐긴 진(陳)나라의 군주와 신하들 -

설야가 죽고 나서부터 진나라의 망나니 같은 군신들은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어 수시로 주림에 같이 다니면서 하희와 동시에 차례로 정을 통하더니 이후로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공공연히 행하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성안의 백성들이《주림(株林)》②이란 노래를 만들어 진영공의 행위를 풍자하였다.

주림에는 왜 가는가? 하남을 따라 간다네

주림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남을 따라 간다네

나는 네 필 말 수레를 타고 주림의 뜰에 묵으리라

나는 네 필 망아지 수레를 타고가서

주림에서 아침을 먹으리라.

胡爲乎株林 從夏南(호위호주림 종하남)

匪適株林 從夏南(비적주림 종하남)

駕我乘馬 說于株野(가아승마 승아승구)

乘我乘駒 朝食于株(세우주야 조식우주)

진영공(陳靈公)이 하징서(夏徵舒)의 모친 하희(夏姬)에게 음탕하여 조석으로 하씨(夏氏)의 식읍인 주림에 갔다. 그래서 백성들이 말하기를 ‘임금이 어찌하여 주림에 오는가?’ ‘하남(夏南)을 따라간 것 뿐이다.’ ‘그렇다면 주림에 가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남(夏南)을 따라왔을 뿐이다.’라고 했다. 아마도 하희(夏姬)와 간음한 일을 말할 수 없었던 영공이 그녀의 아들을 보러 왔다고 말한 것은 시인의 성정이 충후(忠厚)했음을 말한 것이다.

진영공이란 위인은 본시 아무 생각이 없이 제 멋대로 행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공녕과 의행보 두 사람은 영공의 뜻을 받들어 하희와의 일을 거들어 주는 동시에 자기들도 같이 음사를 즐기면서 전혀 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하징서가 점점 장성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모친이 영공 및 공녕과 의행보 세 사람 사이의 혼음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친의 혼음을 알게 된 징서는 심장이 칼로 에어 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진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진후가 주림에 들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징서는 핑계를 대고 주림 밖으로 나가 몸을 피해 주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지 않으려 했다. 난음을 일삼는 남녀 무리들은 밖으로 나가 자리를 피하는 징서의 행위를 오히려 편하게 생각했다. 세월은 화살과 같아 징서의 나이가 이미 18세가 되어 그 생김새가 체격이 장대하고 힘이 무척 세었을 뿐 아니라 활을 아주 잘 쏘았다. 영공이 하희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하징서를 하어숙이 갖고 있던 사마(司馬)의 직을 잇게 하여 병권을 장악하게 했다. 징서가 영공에게 감사의 말을 드리고 주림으로 돌아와 그 모친을 뵙고 인사를 올렸다. 하희가 징서에게 말했다.

「네가 사마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진후의 은전을 입은 바라! 너는 마땅히 그 직분에 충실하여 나라를 위해 근심할망정 집안일에 대해서는 절대 신경쓰지 말라!」

3. 하남시군(夏南弑君)

- 주림에서 혼음을 일삼던 진영공을 시해한 하징서(夏徵舒).-

징서가 모친에게 인사를 올린 후에 다시 입조하여 맡은 바 임무에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영공과 공녕 두 대부가 다시 주림에 놀러 가서 하희와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 징서가 자기에게 자기 부친의 작위를 잇게 해 준 배려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주림에 들려 영공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를 준비했다. 하희는 그 아들이 연회석에 좌정하고 있어 감히 연회석 상에 나와 영공과 배석을 하지 못했다. 술이 몇 순 배 돌아 정신이 거나해진 군신들은 다시 서로 간에 농지거리를 하면서 손과 발을 놀려 춤을 추었다. 징서가 그 꼴이 보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석 뒤쪽으로 물러 나와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듣게 되었다. 영공이 의행보에게 말했다.

「징서의 장대한 체구와 늠름한 풍채는 당신을 닮은 것 같은데 혹시 그대의 자식이 아닌지는 모르겠소.」

의행보가 웃으면서 말했다.

「징서의 두 눈의 형형(熒熒)한 안광은 주공을 빼다 박았습니다. 혹시 주공의 소생이 아닌지요?」

공녕이 곁에서 거들며 말했다.

「주공과 의대부는 징서를 낳을 만한 나이가 되지 못해 해당하지 않습니다. 징서의 모친이 여러 남자와 관계하였으니 그 부친도 매우 많지 않겠습니까? 하부인이 상대한 사내가 너무 많아 그 아비가 누구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분명 잡종이 틀림없습니다.」

세 사람이 손뼉을 두드리며 크게 웃었다. 징서가 연회석 병풍 뒤에 있으면서 그 소리를 들지 않으려고 했으나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서는 마음속에 수치심을 느끼다가 어느덧 분노로 변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마치 ‘가슴속에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그 결과 담대한 악행을 생각하게 된다.’라는 경우였다.

징서가 아무도 몰래 그 자리에서 나와 내실의 하희를 밖으로 못 나오게 열쇠를 채워 가두고 집의 곁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자기가 데려온 수행 군사들과 시종들에게 분부하였다.

「집 주위를 단단히 포위하고 진후와 공녕 및 의행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아라!」

징서의 명을 받은 군사들은 큰소리로 함성을 질러 대답한 후에 하씨의 집을 포위했다. 갑옷을 꺼내 입고 병장기로 무장을 갖춘 징서는 예리한 장검을 손에 치켜들고 가병 몇 명을 거느리고 자기 집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하징서의 일행이 영공 일행이 묵고 있던 연회석 상으로 돌진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음탕한 도적놈들을 빨리 잡아라!」

영공은 술에 취해 농담을 즐기느라 징서가 외친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단지 공녕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영공에게 말했다.

「주공,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징서가 마련한 이 연회는 좋은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군사들을 끌고 오면서 ‘음탕한 도적놈들을 잡아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만 합니다.」

의행보가 거들었다.

「대문으로 나가는 길을 군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 동안 항상 하씨 집에 놀면서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던 세 사람은 하씨 집안의 내부 구조를 환하게 알고 있었다. 진후가 내실로 가서 하희에게 구원을 부탁하려고 했으나 내실의 문에 달려 있는 큰 자물쇠를 보았다. 세 사람의 마음은 더욱 황망하게 되어 다급하게 후원을 통해 담을 넘어 도망치려고 했다. 징서가 짐작하고 도망가는 진후의 뒤를 추격했다. 진후는 하씨 집의 동쪽 마구간에 접해 있는 곳의 담장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그곳으로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징서가 뒤를 따르며 소리쳤다.

「무도혼군은 어디로 도망가느냐?」

징서는 등에 차고 있던 활을 벗어 손에 들고 화살을 재더니 쉿하는 소리와 함께 영공을 향해서 쐈으나 화살은 영공을 비켜갔다. 그 사이에 재빨리 마구간 쪽으로 달려간 영공이 뒷담을 넘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마구간에 있던 말들이 놀라서 날뛰게 되자 할 수 없이 마굿간 밖으로 다시 나온 영공의 몸은 완전히 밖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영공을 추격하던 징서가 달려와 영공과의 거리는 지척지간이 되었다. 징서가 영공을 보더니 다시 활에 화살을 재어 쐈다. 징서가 쏜 그 화살은 영공의 심장 한가운데를 맞추었다. 가련하게도 진영공은 나라를 다스린 지 15년 만에 오늘 하징서 집의 마구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공녕과 의행보는 진후가 동쪽을 향해 먼저 도망가자 징서가 틀림없이 진후의 뒤를 추격할 줄로 믿고 그들은 서쪽을 향하여 도망쳐서 활터로 나가게 되었다. 징서는 과연 진후의 뒤만을 추격하여 동쪽으로 갔다. 공녕과 의행보 두 사람은 모두 담장 밑에 뚫린 개구멍을 통하여 하씨의 집에서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맨몸으로 초나라를 향해 도망쳤다.

진후를 활로 쏴서 죽인 후에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간 하징서는 진후가 술을 마시던 중에 갑자기 병이 나서 죽으면서 세자 오(午)를 진후로 세우라는 유명이 있었다고 했다. 징서는 세자오를 진나라 군주 자리에 앉혔다. 이가 진성공(陳成公)이다. 진성공이 마음속으로 징서를 매우 원망하였으나 징서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 은인자중하여 자기의 생각을 숨기며 기회를 기다렸다. 징서 역시 제후들이 자기의 죄를 묻기 위해 쳐들어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성공으로 하여금 당진으로 들어가 조현을 행하고 수호를 맺도록 했다.

4. 장왕평진(莊王平陳)

- 진나라의 반란을 평정하는 초장왕 -

한편 초나라의 사신이 초왕의 명을 받들어 진후(陳侯)에게 신릉(辰陵)③에서 열리는 회맹에 참석하라는 전갈을 전하기 위해 진나라로 가던 중 중도에서 진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영공(靈公)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마침 하징서의 집에서 간신히 몸을 빼내 초나라로 도망치던 공녕과 의행보를 만나게 된 사신은 그들을 데리고 발길을 돌려 초나라로 돌아갔다. 공녕과 의행보 두 사람은 초장왕을 알현하고 진나라 군신들의 난음을 숨기며 단지 징서의 시역(弑逆)한 일만을 고했다.

「하징서가 반역을 일으켜 진후를 살해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초나라의 사신이 장왕에게 복명한 사실과 부합되어 장왕은 즉시 군신들을 소집하여 진나라에 대한 대책을 상의했다. 그때 초나라에는 굴무라고 하는 공족 출신의 대부 한 사람이 있었다. 자령(子靈)이라는 자를 갖고 있던 굴무(屈巫)는 곧 굴탕(屈蕩)의 아들이다. 굴무는 그 용모가 수려하고 미장부였을 뿐 아니라 문무를 겸전한 재사였다. 그러나 음행을 즐기고 색을 밝히는 한 가지 병페를 지니고 있었다. 굴무는 팽조(彭祖)④가 창시했다는 방중술에 심취하여 이를 읽혔다. 팽조라는 사람은 방중술을 통하여 800년을 살 수 있었다는 전설상의 사람이다. 몇 년 전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던 굴무는 이미 밖으로 놀러 나온 하희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하희의 용모를 엿보게 된 굴무는 방중술에 능한 하희는 나이와는 반대로 몸은 더 젊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더욱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징서가 영공을 시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기회에 잘만하면 하희를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장왕에게 강력하게 간했다. 영윤 손숙오도 역시 진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마땅히 진나라가 저지른 시역의 죄를 물어야만 우리 초나라의 이름을 천하에 알릴 수 있습니다.」

장왕이 마음을 굳히고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그 때가 주정왕 9년 즉 기원전 598년의 일로써 진성공 원년이었다. 초장왕이 격문을 써서 진나라에 전달하도록 했다.

「초왕이 그대들에게 밝히노라! 소서씨(少西氏)가 그대들의 주군을 시해하여 귀신이나 사람이나 모두 이를 분노하고 있는 바다! 그대들 나라가 소서씨를 스스로 치죄하지 못하니 과인이 그대들을 위해 죄를 물으려 하노라! 시역은 오로지 소서씨가 저지른 죄이니 진나라의 나머지 신하들이나 백성들은 너무 근심하지 말지어다!」

진나라 백성들은 초왕의 전하는 격문을 보자 모두가 그 죄를 징서에게 돌렸다. 그들은 일부러라도 초나라로부터 힘을 빌려서 징서를 치죄 하여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진나라의 상하는 초나라에 대항할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초장왕이 공자영제(公子嬰齊), 공자측(公子側) 및 굴무 등의 일반 장군들과 함께 삼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서서 비바람이 몰아치듯이 달려와 마치 무인지경으로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이윽고 진나라 경계에 당도한 초장왕은 우선 백성들을 안심 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휘하의 군사들에게 그들의 머리털 한 가닥도 범하지 못하도록 명을 내렸다. 한편 하징서는 백성들이 자기를 매우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안에서 몰래 나와 주림으로 도망쳐 몸을 피했고 진성공 역시 당진에 조현을 드리러 출타 중이었다. 초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대부 원파(轅頗)가 진나라의 여러 신하들과 상의했다.

「초왕이 우리를 위하여 역신을 토벌하러 왔는데 징서만 잡아서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차라리 징서를 잡아서 바치고 사자를 보내 강화를 청한다면 사직은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만이 상책입니다.」

군신들 모두가 원파의 말에 찬성하였다. 원파가 즉시 그의 아들 교여(僑如)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주림에 가서 하징서를 잡아오도록 했다. 교여가 미처 주림에 당도하기도 전에 초나라 군사들은 이미 진성 밑에 당도했다. 진나라에는 오랫동안 정령이 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진후마저도 본국을 비우고 조현을 하기 위해 당진을 방문 중에 있어, 성안의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성문을 열고서 초나라 군사들을 입성시켰다. 초장왕이 정예스러운 병사들을 질서정연하게 이끌고 진성 안으로 입성하였다. 초나라의 여러 장군들이 원파등 진나라 군신들을 끌고와 장왕 앞으로 데려오자 장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징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원파가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지금 주림에 있습니다. 」

「여기 모여 있는 너희들중 진후의 신하가 아닌 자가 있는가? 어찌하여 그런 역적을 잡아서 죽이지 않고 용납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를 잡아 죄를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힘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왕이 즉시 원파에게 앞서서 길을 인도하라고 명하고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주림을 향해 출발하고 공자영제에게는 일군을 이끌고 진성 안에 진을 치고 머물게 했다. 한편 징서는 그때 가재를 수습하여 그 모친 하희를 모시고 정나라로 도망치려고 시각을 다투고 있었다. 미처 징서가 출발하기도 전에 초나라 병사들은 이미 주림에 당도하여 징서의 집을 에워 싸 버렸다. 징서는 꼼짝없이 초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장왕이 좌우에게 명하여 징서를 잡아 함거에 가두어 싣고 뒤따르게 명하고는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하희는 보이지 않는가?」

초나라의 장수와 군사들은 집을 수색하여 하희를 찾았다. 군사들은 결국 후원의 외진 곳에 숨어 있던 그녀를 찾아내어 장왕 앞으로 끌고 왔다. 하화는 이미 도망가 버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희가 장왕을 향하여 절을 올리며 말했다.

「불행히도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고 집안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녀자인 천첩의 목숨은 단지 대왕의 손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천한 첩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어 노비라도 만들어 주신다 해도, 원컨대 온 정성을 바쳐 대왕의 뜻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하희의 얼굴은 아름다웠고 그 목소리를 청아하여 장왕이 한번 보자 마음속에 혹하는 마음이 들어 여러 장수들을 향하여 말했다.

「초나라에 후궁이 그렇게 많다 하나 하희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 과인이 후궁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여러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평소에 하희에게 뜻을 두고 있던 굴무가 듣고 간했다.

「그것은 절대 불가한 일입니다. 주군께서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에 임하신 이유는 시역의 죄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하희를 맞아들이신다면 그것은 곧 여색을 탐하여 군사를 일으켰다는 오명을 쓰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역의 죄를 묻는 일은 의를 세우기 위함이며 여색을 탐하게 되는 일은 음락을 즐기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의를 세우기 위해 일을 시작해 놓고 끝에 가서는 음락을 위한 일로 결말을 내시는 처사는 천하의 패주가 되려고 하시는 대왕으로써는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자령(子靈)의 말이 매우 옳다! 과인이 감히 하희를 받아들일 수 없겠노라! 단지 이 여자는 세상의 빼어난 미인이니 만약에 과인의 눈에 다시 뜨인다면 필연코 내가 자제하지 못할까 걱정하노라!」

장왕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하씨의 집을 둘러싸고 있던 후원의 담을 헐어서 하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살라고 놓아주었다. 그때 장왕을 따라 나선 공자측 역시 하희의 미모를 탐하고 있었다. 이미 하희를 취하지 않겠다는 장왕의 말을 듣고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청했다.

「신이 이미 중년이나 아직 부인이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하희를 저에게 하사하시어 저의 부인으로 삼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굴무가 듣고 다시 장왕 앞으로 나와 간했다.

「공자측의 청을 받아 주시면 안 됩니다.」

공자측이 듣고 얼굴에 노기를 띠고 말했다.

「자령은 무엇 때문에 내가 하희를 처로 삼겠다는 청을 반대하는가?」

「이 여인은 세상의 상서롭지 못한 물건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만 해도 정나라의 자만(子蠻)을 요절하게 하고, 다시 하어숙(夏御叔)을 젊은 나이에 죽게 만들으며, 진후가 시해되게 하였으며, 공녕과 의행보가 나라 밖으로 도망치게 하고, 아들 하징서 역시 시군의 죄를 저질러 결국은 진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하희는 이렇듯 불길하기가 그지없는 요물입니다. 천하의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 이 여인 한 사람 뿐이겠습니까? 사마께서는 하필이면 이와 같은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 화를 스스로 불러들여 나중에 후회하려고 하십니까?」

장왕이 듣고 말했다.

「자령의 말을 들으니 과인도 역시 두려운 생각이 드는도다!」

공자측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왕지사 그렇게 되었다고 하고 나 역시 그녀를 취하지 않으리라! 단지 이 일에 대해서 그대는 대왕께 그녀를 취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나 역시 취하지 않겠소. 그대도 또한 하희를 취하지 마시오!」

굴무가 다급하게 외치면서 말했다.

「감히 제가 어찌 하희를 취하기 위해서였겠습니까?」

「미인이 주인이 없으니 사람이 필경 차지하려고 서로 다툴 것이다. 내가 들으니 윤양로(尹襄老)가 얼마 전에 상처를 했다 하니 내가 하희를 그에게 주어 그의 부인의 자리를 잇게 하겠노라!」

그때 윤양로는 군사를 이끌고 장왕을 따라 나서서 진성에 남아있던 후대에 있었다. 장왕이 양로를 부른 후에 하희를 주어 양로의 부인으로 삼게 했다. 장왕 앞에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감사의 말을 올리고 물러났다. 공자측은 눈앞에서 하희가 윤양로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굴무는 장왕에게 간하여 하희에 대한 공자측의 뜻을 일단 좌절시키고 원래 자기가 데려 가려고 했으나, 장왕이 하희를 윤양로에게 주어 버리자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리로고!」

굴무는 계속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윤양로는 이미 늙었으니 어찌 그가 하희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길어 봐야 일 년, 아니면 반년이면 윤양로는 죽게 될 것이고 그때 하희가 옛날처럼 과부의 처지가 될 때를 기다려 다시 방도를 강구하면 되리라!」

굴무는 자기의 이런 속마음은 가슴속에 묻어 두고 절대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장왕이 주림에서 하루를 묶고 다음날 징서를 잡아 함거에 싣고 진나라 도성 안으로 돌아오자 공자영제가 성밖으로 마중을 나와 영접했다. 장왕이 령을 전하여 징서를 감옥에서 율문(栗門)으로 끌어내어 거열형에 처하여 죽였다. 이 일을 두고 사관이 시를 지었다.

진후가 황음하여 스스로 화를 당했다고 했지만

하징서도 시역죄를 저질러 국법을 어겼다.

장왕의 토벌은 단비가 내리듯 시의적절하여

사수⑤ 강변의 제후들은 초나라 편이 되었도다!

陳主荒淫雖自取(진주황음수자취)

徵舒弑逆亦違條(징서시역역위조)

庄王弔伐如時雨(장왕조벌여시우)

泗上諸侯望羽旄(사상제후망우모)

5. 혜전탈우(蹊田奪牛)

- 밭을 밟아 농작물을 좀 해쳤다고 소까지 빼앗으면 되겠는가? -

장왕이 호령하여 하징서를 거열형에 처하여 죽이고 나서, 진나라의 호적과 지도를 자세히 파악한 후에 그 사직을 끊고 초나라의 현으로 만들어 공자영제를 진공(陳公)으로 봉하여 지키도록 했다. 원파 등 진나라 군신들은 초나라 도성 영성으로 끌고가 살도록 이주시켰다. 남방의 속국들은 초장왕이 진나라를 멸하여 초나라의 영토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모두 같이 영도에 와서 조현을 드리고 진나라를 얻었음을 축하했다. 현을 다스리던 초나라의 여러 지방장관들도 모두 영도에 속속 당도하여 장공에게 조현을 드리고 경하했다. 그때 대부 신숙시(申叔時)는 제나라에 사자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혜공(惠公) 원(元)이 죽고 그의 세자 무야(無野)가 그 뒤를 이어 제후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장왕이 신숙시를 사자로 삼아 혜공의 문상과 함께 세자 무야의 즉위를 경축하도록 해서 옛날부터 유지해온 제와 초나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제나라 세자 무야가 제경공(齊頃公)⑥이다. 신숙시가 제나라에 사자로 갈 때는 장왕이 진나라를 정벌하기 전의 일이었고, 그가 돌아온 때는 장왕이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에 귀환한지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신숙시가 돌아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갖다 온 일을 장왕에게 복명하고 그 앞에서 물러 나오면서 진나라를 복속 시킨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하의 말도 하지 않았다. 장왕이 내시를 시켜 신숙시를 책하는 말을 전하게 했다.

「과인이 진나라의 군주를 시해한 하징서의 죄를 물어 잡아 죽였다. 그리고 진나라의 호적과 지적도를 초나라에 가져와 우리의 현으로 만들고 시역자를 토벌하여 의를 천하에 떨쳤다. 천하의 제후들과 우리 초나라의 현을 다스리고 있는 제공(諸公)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찾아와 축하했는데 유독 그대만이 한마디 말도 없으니 과인이 진나라를 토벌한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어찌 그대가 이렇듯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신숙시가 즉시 사람을 시켜 장왕의 알현을 청하고 장왕의 면전에서 그 연고를 말하겠다고 했다. 장왕이 허락했다. 신숙시가 들어와 장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혜전탈우(蹊田奪牛)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보지 못했소.」

「근자에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길을 가로 질러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소가 그 사람의 밭에 자라고 있던 작물을 밟고 가자 밭의 주인이 노하여 그 사람의 소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 일을 대왕 앞으로 가져와 판결을 내려 달라고 한다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소를 끌고 가다 다른 사람의 밭을 상하게 한 행위는 그렇게 큰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 소를 빼앗는 행위는 너무 심한 일 아니오? 과인이 만약 이 송사를 맡게 된다면 소를 끌고 남의 밭으로 들어가 작물을 상하게 한 자에게는 가벼운 벌을 내리고 소를 밭주인에게서 빼앗아 돌려주겠소. 경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소?」

「대왕께서 송사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현명한 생각을 갖고 계시온데 진나라 문제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어리석게 처리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릇 징서가 지은 죄는 단지 진나라의 군주 한사람을 죽인 것이지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께서는 징서의 죄를 물어 처형하는 것으로 끝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진나라를 멸하고 그 나라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소를 빼앗은 일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니 제가 어찌 왕께 경하의 말을 드릴수가 있겠습니까?」

장왕이 발을 동동 구르며 놀라면서 말했다.

「참으로 경의 말이 옳소! 과인은 아직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소!」

「대왕께서는 신의 말이 옳다고 하시고서 어찌하여 빼앗은 소를 되돌려 주지 않으십니까?」

장왕이 즉시 진나라 대부 원파를 불러 물었다.

「지금 진후는 어디 있는가?」

「옛날에 당진국으로 조현을 하기 위해 나라밖으로 나갔었습니다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원파가 말을 마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려 슬퍼하였다. 장왕의 마음도 처연하게 되어 원파에게 말했다.

「내가 마땅히 그대의 나라를 복국 시켜 줄 테니 그대는 진후를 찾아서 진나라의 군주로 세우기 바란다! 그대 진나라는 세세손손이 초나라를 받들어 절대 우리의 뜻을 배반하지 말고 절대 내가 베푼 은혜를 저버리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공녕과 의행보를 불러 분부하였다.

「그대들도 그대의 나라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니 원파를 도와 진군을 보좌하라!」

원파는 공녕과 의행보가 망국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감히 장왕 앞에서 말을 올리지 못하고 일단을 덮어두고 장왕에게 감사의 말을 올린 후에 진나라로 가는 귀국길에 올랐다. 그들의 일행이 초나라 국경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초나라로 들어오고 있던 진성공(陳成公) 오(午)를 만나게 되었다. 진후는 당진에 조현을 하고 귀국하던 중 진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에 가서 초왕을 뵙고 진나라의 사직을 보전시켜 달라는 사정을 해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원파가 초왕의 아름다운 뜻을 성공에게 상세하게 전하였다. 진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이 수레를 나란히 하고 진성에 당도했다. 진나라 도성을 지키던 장수 공자영제는 이미 초왕의 명을 받고서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진나라의 호적과 지도를 진나라에 돌려주고 자기는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돌아갔다. 이것은 초왕이 행한 훌륭한 일이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속국 진나라를 복국 시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도척⑦이냐 순임금이냐는 마음을 먹기 나름인데

남방의 초나라가 의기를 사해에 드높게 했으니

어진 신하들의 말을 들은 현군 때문이었다!

縣陳誰料復封陳(현진수료복봉진)

跖舜還從一念新(척순환종일념신)

南楚義聲馳四海(남초의성치사해)

須知賢主賴賢臣(수지현주뢰현신)

한편 귀국한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백주 대낮에 하징서의 혼이 찾아와 목숨을 돌려 달라는 꿈을 꾸게 된 공녕은 갑자기 미쳐서 스스로 연못에 빠져 죽었다. 공녕이 죽고 얼마 후에 의행보도 꿈속에서 영공, 공녕, 하징서 세 사람에 의해 상제 앞으로 끌려가 송사를 받고 깨어나 크게 놀란 후 그 역시 갑자기 병을 얻어 죽었다. - 이것이 음탕한 사람들의 최후였다. -

한편 초나라에 돌아온 공자영제는 장왕을 알현하면서 자기를 진공(陳公)이라고 자칭하며 스스로를 높였다. 장왕이 동생 영제에게 말했다.

「과인이 이미 진나라를 복국 시켰으니 마땅히 별도로 너의 벼슬을 내려 주리라!」

영제가 즉시 신(申)과 여(呂)의 땅 중에서 한 곳을 청하자 장왕이 허락하려고 하였다. 굴무가 반대하면서 말했다.

「신과 여 땅은 우리나라의 북방의 요지라 그곳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북쪽의 당진세력을 막고 있습니다. 그곳을 상으로 내리시면 북방을 지킬 수 없습니다.」

장왕이 신과 여 땅 중에서 한 곳을 공자영제에게 식읍으로 주려고 한 약속을 취소했다. 자기의 봉지인 신 땅을 공자영제에게 줄려고 한 사실을 들은 신공(申公) 신숙시는 나이가 들었음을 이유로 벼슬을 내놓고 초야로 물러났다. 장왕이 굴무를 신공으로 봉했다. 굴무는 겸양의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신 땅을 봉지로 받았다. 영제가 이 일로 인해 굴무와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때가 주정왕 10년 기원전 596년의 일이었다.

6. 당교보은(唐狡報恩)

- 절영대회에서 받은 장공의 은혜를 갚은 초나라의 장군 당교 -

초장왕은 진나라가 비록 자기에게 복종을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초나라에 복종하지 않고 있는 정나라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 대부들을 불러 의논하도록 했다. 영윤 손숙오가 일어나 말했다.

「우리가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출동시키면 당진은 틀림없이 구원군을 보낼 것입니다. 그래서 대군이 아니면 정나라를 정벌할 수 없습니다.」

「과인의 뜻도 경과 같소.」

즉시 초나라의 삼군과 양광의 군사를 대거 일으켜 호호탕탕 정나라로 진군하여 형양(滎陽)에 이르렀다. 장왕은 윤양로에게 전대를 맡겨 앞서가서 본대의 행군로를 확보하도록 명했다. 윤양로가 행군을 시작할 때 늠름한 체격의 당교(唐狡)라는 장수가 찾아와 청했다.

「정나라는 소국이라 대군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장에게 백여 명의 군사를 딸려 주신다면 하루를 앞서 나가 전군을 위해 길을 열겠습니다.」

윤양로가 그 뜻을 장하게 여겨 허락했다. 당교가 있는 힘을 다하여 만나는 정나라 군사들을 모두 무찌르고는 매일 저녁때가 되면 영채를 세울 수 있도록 깨끗이 땅을 청소해 놓고 대군을 기다리곤 했다. 장왕이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정나라 도성 밖에 당도하였으나 중도에 단 한 명의 정나라 군사들로 구경할 수 없었었고 단 하루도 군사들의 진격을 지체시키지도 않았다. 군사들이 하루도 지체함이 없이 신속하게 행군하는 모습을 본 장공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양로를 불러 치하의 말을 했다.

「뜻밖에 경이 노익장하여 젊은 사람들과 같은 용기를 내어 애쓴 결과 이렇듯 본대의 전진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윤양로는 장왕이 치하하는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신이 힘써 그리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데리고 있는 부장에 당교라는 장수가 있는데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싸운 결과입니다.」

장왕이 즉시 후한 상을 내리기 위해 당교를 불렀다. 당교가 상을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이미 대왕으로부터 후한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금일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데 어찌 감히 다시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장왕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과인이 전에 장군을 본 적이 없는데 어찌 나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가?」

「대왕께서 절영회(絶纓會)를 열었을 때 미인의 옷소매를 잡아당긴 사람은 소장이었습니다. 군왕께서 저를 죽이지 않은 은혜를 갚고자 목숨을 걸고 보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장왕이 탄식하며 말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그때 과인이 촛불을 밝혀 죄인을 잡아 들여 벌을 주었던들 어찌 이와 같이 목숨을 바쳐 힘써 싸우려는 훌륭한 장수를 얻었겠는가?」

장왕이 군정에게 명하여 당교의 공을 일등으로 기록하게 하고는 정나라를 평정한 후에 돌아가 장차 중용하려고 하였다. 당교가 장왕 앞에서 물러 나와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군주에게 죽을죄를 지었으나 군주가 이를 감추어 주어 죽임을 면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정나라 군사들과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이제 내가 그 일을 이미 밝혔는데 어찌 감히 죄인의 몸으로써 후일에 그 상을 다시 탐할 수 있겠는가? 」

당교는 말을 마치고 그날 밤으로 사라져 숨어 버렸는데 아무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왕이 듣고 탄식하였다.

「참으로 열사로다!」

7. 以力勝人 以義服人(이력승인 이의복인)

- 힘으로써 싸움을 이기고 의로써 복종시킨다. -

초나라의 대군은 이미 정나라 교외의 관문을 파하고 곧바로 정성 밑에 당도했다. 장왕이 령을 내려 사면에서 정성을 포위한 후 공격을 가했다. 초군은 열흘에 걸쳐 7일 동안 주야로 쉬지 않고 성을 공격했으나 당진에 요청 중인 구원군이 틀림없이 달려올 곳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초나라에 강화를 청하지 않았다. 초군의 치열한 공격으로 수 많은 정나라 군사들은 죽거나 상했다. 이윽고 정성의 동북쪽 모서리에 수십 장이나 되는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곳으로 통하여 성 위로 오르려고 했다. 그 순간 장왕은 정성 안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곡성소리를 듣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측은한 생각을 참지 못한 장왕은 군사를 이끌고 성 밖 10리를 뒤로 후퇴하였다. 공자영제가 장왕 앞으로 나와 말했다.

「성이 무너져 바야흐로 승리를 목전에 두게 되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군사를 물리치셨습니까?」

「정나라에게 우리 군사들의 위세를 이미 알렸으나 우리의 은혜는 아직 모르고 있다고 여겨 우리가 덕을 보여주기 위해 잠시 군사를 뒤로 물리쳤다. 그들이 우리를 따르겠는지 아니면 여전히 우리를 거역하는지를 살펴보고 나서 군사들을 앞으로 진격시킬지 아니면 퇴군할지를 결정하리라!」

갑자기 물러간 초나라 군사들의 모습을 보고 마침내 당진의 구원군이 당도했다고 오해한 정양공은 즉시 백성들을 이끌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은 후에 성안의 백성들을 남녀구별 없이 모두 성 위로 올려 보내 성을 지키려고 했다. 정나라에게 항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초장왕은 다시 군사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려 정성을 포위하게 했다. 정나라는 그 후로도 도성을 3개 월 동안이나 굳게 지켰으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초나라 장수 락백이 군사들을 이끌고 황문(皇門)⑧으로 먼저 올라 성문을 부셔서 열었다. 장왕이 령을 내려 노략질을 금하고 삼군이 질서 정연하게 성안으로 들어가 성안의 넓은 광장에 도열시켰다. 마침내 정양공은 어쩌하는 수 없이 웃통을 벗고 양을 끌고 나와 제후들이 행하는 항복의 의식을 갖추어 장왕을 알현하고 사죄의 말을 올렸다.

「과인이 덕이 없어 대국을 받들어 복종하지 않고 군왕의 노여움을 사서 죄를 얻었습니다. 이제 폐읍을 바쳐 대왕 앞에서 항복을 하오며 제가 그 죄를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존망과 저의 생사는 오로지 대왕의 명령 하나에 달려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선인들의 우호관계를 생각하시어 은혜를 베푸시어 이 나라를 멸하시지 않으시고 종사나마 잇도록 해주시면 우리는 상국의 부용국(附庸國)이 되어 군왕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

곁에 있던 공자영제가 장왕에게 말했다.

「정나라가 힘을 다하여 우리에게 항거하다가 이제 어쩔 수 없이 하는 항복이니 우리가 용서한다면 후에 다시 배반할 것입니다. 차라리 정나라를 멸하고 초나라의 현으로 삼으십시오.」

「신공 신숙시가 만약 여기에 있다면 또다시 혜전탈우(蹊田奪牛)의 말로써 나에게 간하지 않겠느냐?」

장왕이 즉시 군사를 이끌고 정성 30리 밖으로 퇴군했다. 정양공은 초군의 진영에 친히 방문하여 죄의 용서를 빌고 회맹을 하기를 청하고 그의 동생 거질(去疾)을 인질로 초나라 진영에 남게 했다. 초장왕이 군사를 이끌고 정성 북쪽으로 회군하여 연(郔) 땅에 이르자 첩자가 와서 보고하였다.

「당진이 순림보를 대장으로 선극을 부장으로 삼아 병거 600승을 동원하여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는데 이미 하수를 건넜다 합니다.」

장왕이 여러 장수들에게 물었다.

「당진의 군사들이 이곳에 오고 있는데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싸워 당진의 군사를 막아야 하는가?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영윤 손숙오가 말했다.

「우리가 만약 정나라를 아직도 굴복시키지 못했다면 마땅히 당진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정나라를 얻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구태여 당진과 싸워 원수의 사이가 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만전을 기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천민 출신으로 장왕의 총애를 받게 된 오삼(伍參)⑨이 나서서 말했다.

「영윤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정나라는 우리의 힘이 당진을 누르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당진을 섬긴 것입니다. 만약 당진의 군사들이 오는데 우리가 군사를 물리쳐 피하게 된다면 진실로 우리의 힘이 당진에 못 미친다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정나라가 초나라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당진은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로 진군할 것입니다. 당진이 정나라를 공격한다면 우리도 역시 정나라를 구하려 와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손숙오가 오삼을 힐난했다.

「옛날 우리가 진나라를 원정하였고 지금은 또한 정나라를 원정하여 초나라 군사들은 이미 피로에 지쳐 있다. 그런데 또한 만약에 우리가 당진군과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비록 그대 오삼의 몸을 찢어 그 고기는 먹을 수 있다 하나 어찌 그것으로 만으로 속죄를 다 할 수 있겠는가?」

오삼이 물러서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했다.

「만약에 당진군과 싸워서 우리가 이긴다면 영윤께서는 앞을 내다보시는 식견이 없음을 보이는 것이며 만일 우리가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이 오삼의 고기는 당진군이 먹게 될 것입니다. 어찌 초나라 사람들에게 돌아갈 여분이 있겠습니까?」

장왕이 여러 제장들을 두루 살펴보며 각기 붓을 들게 하여 그 손바닥에 싸움을 주장하는 자는 ‘전(戰)’자를 퇴각을 주장하는 자는 ‘퇴(退)’자를 쓰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쓰기를 마치자 장왕이 손바닥을 펴게 했다. 단지 중군원수 우구(虞邱), 급련(及連), 윤양로(尹襄老), 비장(裨將) 채구거(蔡鳩居), 팽명(彭名) 네 사람만이 손바닥에 퇴 자를 쓰고 나머지 공자영제(公子嬰齊), 공자측(公子側), 공자곡신(公子穀臣), 굴탕(屈蕩),반당(潘党), 락백(樂伯), 양요기(養繇基), 허백(許伯), 웅부기(熊負羈), 허언(許偃)등 20여명은 모두 전 자를 썼다. 장왕이 말했다.

「노신 우구의 견해가 영윤의 것과 같으니 마땅히 군사를 물리쳐야 하겠다.」

장왕은 즉시 령을 전하여 원문을 남쪽으로 내게 하고 퇴각한다는 뜻의 반패(反旆)를 달도록 했다. 장왕은 다음날 하수 강안을 경유하여 말에 물을 먹이고 초나라로 귀환하려고 결심했다. 이윽고 밤이 되자 오삼이 장왕을 찾아와 말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당진을 그리도 두려워하십니까? 당진을 두려워하여 정나라까지 버리려고 하십니까? 」

「과인은 아직 정나라를 버린다고는 하지 않았다. 」

「우리 초나라 군사들이 90여 일 동안 외지에 원정 나와 정성 밑에 주둔하다가 간신히 정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일 당진군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군사를 물리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진군으로 하여금 정나라를 구할 수 있는 공을 세우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초나라는 결코 정나라를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정나라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십입니까?」

「당진군과 싸워 혹시라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걱정하는하는 영윤의 말에 따라 후퇴를 결정했다.」

「신은 이미 당진의 장수들의 면모를 살펴 두었습니다. 순림보는 중군원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위엄과 믿음을 여러 제장들로부터 얻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군원수 보좌인 선극(先克)은 선진의 손자이며 선차거의 아들인데 자기 조부와 부친의 공적만을 믿고 고집불통에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남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있어 장수의 재목이 못되는 자입니다. 또 란씨(欒氏)와 조씨(趙氏) 종족들의 무리는 모두가 권문세가 출신들이라 각기 자기 뜻대로만 행동하려고 하여 군령이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지휘계통이 문란한 당진군은 그 수효가 비록 많다 하나 싸움이 벌어지면 쉽게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왕은 한 나라의 주인 되시는 분인데 당진의 신하들을 피하여 군사를 물리치신다면 장차 천하의 웃음거리로 남게 될 것입니다. 장차 무슨 수로 정나라를 복속 시키겠습니까?」

장왕이 불현듯이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과인이 비록 군사를 부리는데 능하지 않아도 어찌 당진의 여러 신하들보다 못하겠는가? 과인은 그대의 말을 쫓아 당진과 일전을 벌리리라!」

초장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영윤 손숙오에게 령을 전하게 하고 장차 원문의 방향을 일제히 북쪽 방향으로 돌리게 하고는 군사들을 행군시켜 관성(管城)에 이르자 그곳에서 진을 치고 당진군을 기다렸다.

《제54회로 계속》

주석

①주남(周南)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詩經) 중 각 지방의 민간 가요을 모아 논 시집인 국풍(國風) 중 맨 처음에 올라 있는 편명으로 무왕의 동생 주공단(周公旦)이 남쪽에 순행 갔다가 그곳에 구전하고 있는 시를 모아 놓은 것이 <주남(周南)>이고 소공석(昭公奭)이 모아 놓은 것을 <소남(召南)>이라 했다. 일설에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에 실려 있는 시들은 초사(楚辭)의 모태로써 시경에 실려 있는 국풍의 시들은 주남과 소남의 시들로 부터 영향을 받아 발전되었다고도 했다.

②주림(株林) : 《시경(詩經)‧국풍(國風)‧진풍(陳風)》에 수록되어 있다.

③신릉(辰陵) : 지금의 하남성 주구시(周口市) 서북 30키로 있었던 고을 이름이다.

④팽조(彭祖) : 고대 전설상의 인물. 성은 전(籛)이고 이름은 갱(鏗)이다. 전(翦)이라고도 한다. 전욱(顓頊)의 현손(玄孫)이고 육종(陸終)의 아들이다. 요(堯), 순(舜), 우(禹) 와 같은 동시대인으로 순임금이 팽조를 지금의 강소성 서주시(徐州市)인 대팽(大彭)에 봉해 천하 12목(牧) 중 하나로 삼았다. 방중술에 통달하여 800년을 살았어도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장수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⑤ 사수(泗水) : 지금의 산동성 신문현(新汶縣) 부근에서 발원하여 서쪽의 곡부시(曲阜市)를 거쳐 미산호(微山湖)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서주시(徐州市)를 통과 동으로 흐르다가 동쪽의 기수(沂水)와 합류하고 다시 홍택호(洪澤湖)에 이르러 회수(淮水)와 합쳐졌던 강의 이름이다.

⑥제경공(齊頃公) : 기원전 598년에 즉위하여 582년에 죽었다. 재위 기간 중 백성들에 대해 요역을 즐이고 부세를 가볍게 하여 백성들의 질고를 덜어줬다. 이윽고 제나라의 정치는 안정되어 당진, 초와 함께 중원의 강국이 되었다. 이에 패권 다툼에 들어가 당진에 여러번 도전했으나 번번히 싸움에서 패배했다. 기원전 589년 안(鞍)에서 당진군과 싸워 대패하고 당진과 강화조약을 맺고 다음 해인 기원전 588년 당진에 들어가 그 군주인 경공(景公)에게 조현을 드리며 왕으로 호 칭했으나 당진의 경공은 감히 왕호를 받지 못했다.

⑦도척(盜跖) : 장주(莊周)가 지은 장자(莊子)라는 책의 편명으로 중국 고대전설 상의 유명한 도적 이름이다. 장주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하고 그의 제자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춘추 때 노나라의 현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⑧황문(皇門) : 춘추(春秋) 때 정(鄭)나라 도성(都城)의 여러 성문 중 서문의 별칭이다.

⑨오삼(伍參) : 오사(伍奢)의 할아버지이며 오자서(伍子胥)의 증조부다. 오자서 열전에 오삼은 오자서의 증조부, 오거는 조부, 오사는 부친이라고 했다.

⑩관성(管城) :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 소재의 땅으로 원래 정주시는 서주 창건시 주무왕의 동생 관숙선이 봉해진 제후국 관(管)의 영토였다. 삼국쟁패시 조조와 원소가 싸웠던 관도(管渡) 대전이 벌어진 곳이다.

[평 설]

기원전 599년 진나라의 사마 하정서(夏征舒)가 황음무도하고 충신을 해친 진영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진후를 세워 진나라에서는 대란이 일어났다. 다음 해 초장왕은 친히 삼군을 이끌고 진나라의 시역죄를 치죄하고 하정서를 죽인 다음, 주저없이 진나라의 땅을 초나라의 군현으로 삼아버렸다. 초장왕은 자기의 그와 같은 행위를 대의를 밝히는 의로운 일이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윤리도덕적 기준에 의하면 군주가 아무리 어리석고 용렬하다 할지라도 시군의 행위는 모두 당시의 사회적인 예에 어긋나는 일로 간주되었으나, 그 국가를 멸망시키는 것은, 제환공 시대 때 국가의 존망이나 그 후계를 잇고 끊는 모든 일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볼 수 있다. 초장왕은 단지 역신을 토벌한 의거만을 의식했지, 남의 국가를 멸망시키는 것이 불의라는 것을 간과했다. 신숙시의 '혜전탈우(蹊田奪牛)'라는 비유는 참으로 완곡하고 은근하며 예술적이기도 하다. 혜전탈우란 지나가던 소가 자기 밭의 농작물을 밟아 훼손시켰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일시적인 과오를 깨닫게 된 초장왕은 진나라를 즉시 복국시켰다.

초나라의 일개 현으로 삼은 진나라를 다시 회복시켜 준 원인은 어진 신하의 간언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구시대적인 관념을 대신하는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간언을 받아들인 초장왕 역시 어진 임금이었고, 초장왕은 어진 임금이어야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원리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초장왕은 정나라가 다시 당진국을 따르자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북상했다. 그때 100명의 소부대를 이끌던 당교(唐狡)라는 하급 장교가 온 힘을 다하여 본대의 진군로를 열어 초장왕이 이끌던 대군이 순조롭게 정나라 교외에 당도할 수 있었다. 당교는 절영회에 초장왕의 애첩의 손목을 잡았으나 장왕의 관대한 처분으로 용서를 받은 사람이다. 초장왕이 당교를 포상하려고 하자 이미 죄인의 몸으로 용서를 받아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애쓴 노력의 보상으로 다시 포상을 받는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하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정양공이 당진의 원군을 기다리며 정성을 굳게 사수하려는 방침을 정하자 초군은 정성을 사면에서 철통같이 애워 싸고 맹공을 퍼부었다. 마침내 70여 일 동안 주야로 맹공을 가한 결과 정성의 동북쪽 모서리가 무너져 큰 구멍이 나버렸다. 초군이 그 무너진 곳을 통하여 돌입하려고 할 때, 초장왕은 정성 안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백성들의 곡성소리를 들었다. 이에 장왕은 진격을 멈추게 하고 성 밖 30리까지 군사를 물리침으로 해서 정나라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다. 초장왕의 호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정양공은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던 당진의 구원군이 도착한 것으로 오인하고 초군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안 했다. 그러자 초군이 다시 진격해 와 정나라 도성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다. 초군은 또다시 3개월 이상을 공격한 끝에 정나라 성문을 깨뜨리고 성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초장왕은 초군에게 정나라에 대한 노략을 금함으로써 다시 그의 덕을 베풀었다. 신하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정나라를 멸하고 현으로 만들어 초나라 영토에 편입시켜 다시 정나라가 당진국을 따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라고 했으나 초장왕은 혜전탈우의 일을 생각하고 정성에서 물러 나와 30리 밖에 주둔했다. 정양공은 초나라 군중으로 들어가 항복의 의식을 행하고 초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초장왕은 정나라 정벌전을 수행할 때 당시 국제간 통용되었던 윤리 규범을 따랐고, 그 결과 대가의 풍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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