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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45:314926 
제52회. 嘗黿搆逆(상원구역), 衵服戱朝(일복희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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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2회 嘗黿搆逆 衵服戱朝(상원구역 일복희조)

자라탕을 맛보려 하다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여자의 속곳으로 조당을 희롱한 진영공(陳靈公).

1. 食指顫動 必嘗異昧(식지전동 필상이미)

- 식지가 떨리면 진미를 맛보게 된다. -

정나라의 공자귀생(公子歸生)의 자는 자가(子家)이고 공자송(公子宋)의 자는 자공(子公)이다. 두 사람은 모두 정나라의 공실 출신으로써 경의 직을 맡고 있었다.

주정왕2년, 기원전 604년은 정영공(鄭靈公) 원년이다.

그 해 어느 날 공자송은 공자귀생과 조문 앞에서 만나 영공을 같이 알현하자고 한 약속 때문에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생을 만난 공자송은 자기의 식지가 자동적으로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 식지(食指)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람의 손가락 중 제일 첫 번째인 엄지손가락은 무지(拇指)라 하고 세 번째 손가락은 중지(中指), 네 번째 손가락은 무명지(无名指), 마지막 다섯 번째 손가락은 소지(小指)라 하는데, 두 번째 손가락만은 대체로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꼭 사용해야 할 손가락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공자귀생은 공자송의 손가락이 저절로 떨리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했다. 공자송이 공자귀생을 보고 말했다.

「저는 제 손의 식지가 움직일 때마다 매 번 그 날은 반드시 별미를 맛보게 되었었습니다. 제가 지난번 당진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식지가 떨리고 나서 석화어(石花魚)①를 먹었으며 후에 초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도 식지가 떨리더니 백조고기를 먹었습니다. 다시 초나라에 머물고 있던 중 식지가 떨리고 나서 맛있는 귤을 맛보았습니다. 저의 손가락 중 식지가 떨리고 나서 별미를 맛보지 않은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별미를 맛보게 될지 궁금합니다.」

두 사람이 조문을 들어서자 내시가 안에서 나오더니 궁중의 요리사를 급히 부른다는 영공의 명을 전했다. 공자송이 내시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그리 급하게 요리사를 찾는가?」

내시가 말했다.

「지금 한강(漢江)②에서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 무게가 2백 근이나 나가는 큰 자라 한 마리를 가지고 와서 주공께 바쳤습니다. 주공께서 자라를 받으시고 손님에게는 대신 상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그 자라를 당하에 묶어 놓으시고 요리사를 불러 자라요리로 여러 대부들과 같이 맛을 보시려고 하십니다.」

공자송이 듣고 말했다.

「별미를 맛보게 된다는 일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의 식지가 어찌 아무 이유도 없이 떨렸겠습니까?」

두 사람이 입조하여 당하의 기둥에 묶여 있는 엄청나게 큰 자라를 보고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영공을 알현하는 순간에도 웃음기를 여전히 머금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본 영공이 물었다.

「두 분 경들께서는 금일 무슨 좋은 일이 있어 만면에 희색이 만연합니까?」

공자귀생이 영공에게 웃는 이유를 말했다.

「자공과 제가 입조할 때 자공의 식지가 갑자기 저절로 떨려 제가 물어 봤습니다. 자공이 말하기를 그의 식지가 떨릴 때마다 매 번 별미를 맛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금일 당하에 매여 있는 거대한 자라를 보니 주공께서 필시 자라를 요리하게 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맛보시게 하시려는 것 같아 과연 자공의 식지가 효험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웃고 있습니다.」

영공이 문득 놀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말했다.

「자공의 식지가 효험이 있고 없고는 과인의 마음에 달려 있음이라!」

두 사람이 영공 앞에서 물러 나와 아무리 기다려도 영공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자 귀생이 공자송을 향하여 말했다.

「별미가 비록 있다 하나 주군이 별미를 맛보라고 그대를 아직 부르지 않고 있소! 어찌하면 좋겠소?」

「주공께서 여러 사람들을 불러 같이 맛보려고 하시는 데 어찌 우리 두 사람만 빼 놓을 수 있겠습니까?」

이윽고 시간이 신시가 되자 내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과연 여러 대부들을 불렀다. 공자송이 기쁜 마음으로 조당으로 들어가면서 귀생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원래 주군께서 틀림없이 우리들을 부를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정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모이자 영공이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면서 말했다.

「자라는 곧 바다의 별미라! 과인 혼자서만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여러 경들을 불러 같이 맛을 보고자 불렀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한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올렸다.

「주공께서 한 끼의 음식을 드시는데도 저희들을 잊지 않으시니 신등은 어찌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으리까?」

2. 嘗黿搆逆(상원구역)

- 자라탕을 맛보려다가 군주를 시해한 정나라의 공자송 -

이윽고 여러 신하들이 좌정하기를 끝내자 궁중의 요리사가 자라 요리가 이미 다 되었다고 고하고 먼저 영공에게 바쳤다. 영공이 자라 요리를 시식하더니 맛이 있다고 하면서 요리사에게 명하여 맨 끝 좌석에서부터 시작하여 상석에 이르기까지 자라탕 한 그릇과 상아 젓가락 한 쌍씩을 놓으라고 하였다. 자라탕을 담은 그릇과 젓가락이 끝에서부터 차례차례로 요리상에 놓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자라탕이 한 그릇만 남게 되자 궁중요리사가 영공에게 품했다.

「자라탕이 모두 떨어지고 단지 한 그릇만 남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남은 한 그릇을 어느 분에게 드려야 되는지 하명하시기 바랍니다.」

「자가에게 주어라.」

요리사가 자라탕을 귀생 앞의 상위에 가져다 놓았다. 영공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과인이 명하여 자라탕을 두루 여러 경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자공에게만 차례가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자라탕을 맛보지 못하게 되었구려! 자공의 식지가 효험이 다 떨어진 것 같소!」

원래 영공은 고의로 주방의 요리사에게 당부하여 연회장에 모인 신하들의 수보다 한 그릇을 부족하게 준비시켜 공자송의 식지가 효험이 없다는 모습을 보여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영공은 공자송이 이미 공자귀생의 면전에서 자기의 식지를 잔뜩 자랑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백관들이 모두 모여 영공이 하사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유독 자기에게만 주지 않자 공자송의 마음은 수치심을 느끼다가 이윽고 분노로 변했다. 분기탱천한 공자송이 갑자기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영공 앞으로 곧장 걸어가 자기의 손가락을 영공 앞에 놓인 자라탕 그릇에 손가락을 넣어 고기 한 덩어리를 꺼내 자기 입에 넣었다. 잠시후 먹기를 마친 공자송은 영공을 향해 말했다.

「신이 이미 자라고기 맛을 보았으니 저의 식지가 효험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공자송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연회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영공도 역시 노하여 젓갈을 던지면서 말했다.

「송이란 놈이 불손하여 과인을 몹시 업신여기는구나! 정나라에 어찌 송이라는 놈의 목을 치는데 필요한 칼 한 자루가 없을소냐?」

귀생 등 백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리고 정영공에게 사죄의 말을 올렸다.

「공자송은 주공의 깊은 총애를 믿고 주공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을 받아 즐거움을 찾고자 했을 뿐이지 어찌 감히 주군에게 무례를 행했겠습니까? 주군께서는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공자송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영공이 노여움을 풀지 않자 군신들은 모두가 마음이 즐겁지 않게 되어 영공 앞에서 물러 나와 흩어져 돌아갔다. 공자귀생이 즉시 공자송의 집에 가서 영공이 노여움을 풀지 않고 있다고 전하면서 말했다.

「내일 입조하여 죄의 용서를 빌도록 하시오!」

공자송 역시 화를 풀지 않고 말했다.

「옛말에 남을 태만히 대하는 자는 자기도 역시 타인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먼저 나를 업신여기셨는데 어찌하여 스스로를 먼저 책하시지 않으시고 나를 책하신단 말입니까?」

「일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신하된 자가 군주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이 법도요!」

다음날 귀생과 같이 입조한 공자송은 군신의 반열에 끼어 영공에게 조배를 드렸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죄를 짓고 사죄를 청하는 죄인의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곁에 있던 귀생이 마음이 불안하게 되어 영공에게 대신 사죄의 말을 올렸다.

「공자송이 어제 주공의 요리그릇에 손가락을 넣은 무례를 저지른 일에 대해 혹시 주공께서 죄를 물을까 봐 두려워하여 이렇게 특별히 입조하여 무슨 말로 죄를 고하며 사죄의 말을 드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주공께서는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이 자공에게 죄를 얻었음을 근심하고 있는데 어찌 자공이 과인을 두려워하겠소?」

영공이 말을 마치고 옷소매를 떨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자송도 조당에서 물러 나와 귀생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주공께서 나에 대해 저렇듯 심히 노하고 계시니 나는 장차 주살당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먼저 란을 일으켜 일이 성사되면 죽음을 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귀생이 귀를 막으며 말했다.

「육축(六畜)③도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 차마 죽이지 못하거늘 하물며 나라의 군주를 어찌 감히 시역 운운하며 망언을 내뱉는가?」

「제가 농담을 한 번 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귀생이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공자송은 귀생과 영공의 동생 공자거질(公子去疾)이 서로 교분이 두터워 왕래가 잦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조당에 나와 큰 소리로 떠들었다.

「자가와 자량(子良 : 거질의 자)이 아침저녁으로 수시로 만나는데 무슨 모의를 하는지 알지 못하겠으나 사직에 이롭지 않은 일을 모의하고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귀생이 당황하며 달려오더니 공자송의 팔을 급히 끌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갔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자가께서 협조를 하지 않으니 자가를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게 하려고 그럽니다.」

귀생은 성격이 원래 유약한 사람이라 공자송의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그대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가?」

「주상의 무도함은 자라탕을 나눌 때 이미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대사가 성공한다면 자가와 내가 지량을 옹립하여 정나라 군주로 받든 후에 당진과 수호를 한다면 우리 정나라는 수년간이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귀생이 마음속으로 한 참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자공의 처분대로 맡기겠으니 알아서 처리하고 나는 단지 다른 사람에게 발설은 하지 않겠소!」

공자송은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집안의 장정들을 비밀리에 모았다. 이어서 영공이 가을 제사를 주제하기 위해 제궁(齋宮)에 나와 목욕재계하고 하룻밤을 머물 때 틈을 이용하여 살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공자송은 영공의 측근들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작당한 후에 한 밤중에 제궁에 잠입하여 침상에서 자고 있는 영공의 몸 위에 흙으로 채운 가마더미를 올려놓아 질식시켜 죽였다. 공자송은 사람들에게 영공이 잠자다가 악몽에 시달려 갑자기 죽었다고 둘러댔다. 귀생은 공자송이 한 짓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감히 입 밖에 내어 발설할 수 없었다.

『공자께서 춘추를 편찬하실 때‘정나라 공자귀생이 그의 군주 이(夷)를 시해했다.’라고 기록했다. 공자송이 저지른 죄를 귀생의 것으로 적은 이유는 일국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써 공자송의 협박에 못 이겨 역적의 말을 따랐으니 그것은 소위 ‘중책을 맡은 자는 그 책임도 역시 중하다’란 말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성인께서 이와 같이 글을 써서 후세의 다른 신하들에게 경계를 하셨으니 신하된 자들은 누구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3. 정국칠목(鄭國七穆)

- 정나라에 칠목이 일어나 공실의 우환을 잉태하다. -

영공이 죽은 다음날 귀생과 공자송이 의논하여 공자거질을 받들어 정나라 군주로 세우려고 하였다. 거질이 크게 놀라며 사양하였다.

「선군의 아들은 모두8명이오. 만약 어진 사람을 세운다면 이 거질은 덕이 없으니 자격이 없고, 장유를 따져 세둔다면 공자견(公子堅)이 제일 맏이니 그를 세우면 되오. 이 거질은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절대 군주의 자리에는 오르지 않겠소.」

그래서 공자송의 생각과는 달리 공자견이 정백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정양공(鄭襄公)④이다. 정목공 란(蘭)에게는 모두 1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영공은 공자송에게 살해되고 양공(襄公) 견(堅)이 그 뒤를 이어서 나머지 공자들은 모두 열 한 명이었다. 열 한 명의 공자들은 공자거질(公子去疾 : 子良), 공자희(公子喜 : 子罕). 공자비(公子騑 : 子駟), 공자발(公子發 : 子國), 공자가(公子嘉 : 子孔), 공자언(公子偃 : 子游), 공자서(公子舒 : 子印) 등의 후에 칠목(七穆)이라고 부르게 되는 일곱 명과 공자풍(公子豊), 공자우(公子羽), 공자연(公子然), 공자지(公子志) 등의 네 명이었다.

그 동생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후일에 변이라도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매우 싫어한 정양공은 거질과 비밀리에 상의하여 거질을 제외한 나머지 동생들을 모두 나라 밖으로 쫓아내려고 했다. 거질이 듣고 말했다.

「조부이신 문공께서 부군을 나실 때 꿈속에서 보시매, 이를 점을 치게 하여 ‘이 아이는 장차 정나라의 희씨(姬氏) 종족을 번창하게 하리라!’라는 점괘를 얻었습니다. 무릇 공족들 형제들이 란(蘭)과 같이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라야만 번성하게 되지, 만약 가지를 쳐버리고 잎사귀를 떼어 내면 뿌리가 모두 들어나 말라 죽고 맙니다. 주군께서 형제들을 용납하심은 제가 본래 원하고 있던 일이라고 하겠으나 만약 용납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다른 형제들과 같이 이 나라를 떠나겠습니다. 어찌 저 혼자만 이 나라에 남아 살다가 후일에 죽게 되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계시는 부군을 뵈오리까?」

양공이 거질의 말에 감동하여 이내 깨우치고 즉시 거질을 포함한 그의 동생들11명을 모두 대부의 직에 임명하여 정나라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어서 공자송을 당진에 사절로 보내어 수호를 청하게 하여 나라의 안정을 구하게 했다. 이때가 주정왕 2년 즉 기원전 605년의 일이었다.

다음해 정양공 원년, 기원전 604년 초장왕이 공자영제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정나라를 정벌하여 시군의 죄를 물으라고 명했다. 이에 당진이 순림보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보내 정나라를 구원하도록 하자 공자영제는 군사를 이동하여 당진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정양공은 진성공(晉成公)과 흑양(黑壤)⑤의 땅에서 회맹을 행했다.

주정왕3년 기원전 603년에 당진의 상경 조돈이 노환으로 죽자 그의 중군원수 직을 극결(郤缺)이 이었다. 진(陳)나라가 초나라에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극결은 성공에게 고한 후 순림보로 하여금 성공을 모시고 송(宋), 위(衛), 정(鄭), 조(曹) 4국의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당진의 성공은 진나라로 행군 중에 병이 나서 군중에서 죽었다. 순림보는 4국의 군사들은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본국의 군사들을 이끌고 회군했다. 당진의 군신들은 세자 유(孺)를 군주로 세웠다. 이가 당진의 경공(景公)⑥이다. 그 해에 초장왕이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친히 거느리고 출동하여 유분(柳棼)⑦이라는 곳에 주둔했다. 당진의 극결이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동하여 초군 진영을 급습하자 초군은 싸움에서 패하고 물러갔다. 정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으나 유독 공자거질 만은 매우 걱정하였다. 정양공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그 연유를 묻자 거질이 대답했다.

「당진군이 초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에 의해서였습니다. 유분의 싸움에서 패한 초나라가 그 노여움을 장차 우리 정나라에 풀려고 할 텐데 어찌 당진만 믿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머지않아 초나라 군사들을 우리 정나라 교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다음 해 기원전602년 초나라 장왕이 다시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와서 영수(潁水) 북안에 진을 쳤다. 그때 마침 공자귀생이 병들어 죽게 되자 공자거질은 자라탕 사건을 치죄하여 공자송을 죽였다. 그리고 그 시체는 조문 앞에 세워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하게 하였다. 다시 공자귀생의 관을 파내어 부셔 버리고 두 사람의 족속들을 모두 나라 밖으로 추방했다. 이어 사자를 초왕에게 보내어 사죄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역적 귀생과 송은 지금 모두 주살되었습니다. 저희 군주께서는 진후와 함께 초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기 위해 삽혈의 의식을 행하여 맹세하기를 원하십니다.」

초장왕은 정나라의 청을 허락하고 진(陳)과 정(鄭) 두 나라를 신릉(辰陵)⑧으로 불러 회맹을 행하려고 했다. 장왕은 즉시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진후(陳侯)를 신릉으로 불렀다. 진나라에 다녀온 사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진후는 대부 하징서(夏徵舒)에게 시해되어 진나라에서는 내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중원의 여러 나라에서 연이어 일어난 내란에 대해 노래한 시가 있다.

주나라가 동천한 이래 천하에 난리가 끊이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은 군주 죽이기를 해를 거르지 않았다.

요성이 북두를 침범하니 한 해에 세 군주가 죽었건만

또다시 진후마저 하징서에게 죽임을 당했도다!

周室東遷世亂離(주실동천세란리)

紛紛簒弑歲无虛(분분찬시세무허)

妖星入斗征三國(요성입두정삼국)

又報陳侯遇夏舒(우보진후우하서)

4. 소녀하희(素女夏姬)

- 희대의 음녀 하희 -

진영공의 이름은 평국(平國)이다. 곧 진공공(陳共公) 삭(朔)의 아들이다. 영공은 주경왕(周頃王) 6년 즉 기원전 612년에 군위에 올랐다. 위인이 경망스럽고 게으르며 남을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위엄이나 예의라고는 털끝만큼도 갖추지 않고 주색잡기와 유희에만 탐닉하고 나라의 정사는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영공이 총애하는 두 사람의 대부가 있었다. 한 사람은 성는 공(孔)이고 이름은 녕(寧)이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성은 의(儀)이고 이름은 행보(行父)라 했다. 두 사람 모두가, 주색을 즐기는 무리들을 위해 징과 북을 쳐주는 하인배와 같은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한 임금과 두 신하가 의기투합하여 입으로 하는 말마다 더러운 쌍소리로 희희낙락하며 각기 거리낌이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였다. 그때 진나라 조당에 한 사람의 어진 신하가 있었다. 성은 설(泄)이고 이름은 야(冶)라 했다. 위인이 충성스럽고 정직한 신하였는데 군주가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할 때마다 간언을 하여 임금과 그 두 신하가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다시 하어숙(夏御叔)이라는 대부가 있었다. 그는 진나라 공자 소서(少西)의 아들이었다. 자가 자하(子夏)인 소서는 곧 진정공(陳定公)의 아들이었다. 이런 연유로 어숙(御叔)은 하(夏)로써 자로 삼고 또한 소서(少西)씨라고도 했다. 하어숙은 그 부친이 갖고 있던 진나라의 사마 직을 이어받고 주림(株林)이란 곳을 식읍으로 삼고 있었다. 하어숙은 정목공의 딸을 맞이하여 처로 삼아 하희(夏姬)라 불렀다. 하희의 생김새는 초승달처럼 아름다운 눈썹에 봉황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살구 같은 얼굴에 그 뺨은 복숭아꽃이 활짝 핀 것처럼 탐스러웠다. 옛날 려희(麗姬)와 식규(息嬀)와 같은 아름다운 용모에 달기(妲己)와 문강(文姜)과 같은 요염함과 음욕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하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혼백을 빼앗겨 정신이 돌아 버렸다. 옛날에 하희가 어렸을 때 그녀에게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가 15세 되던 때였다. 하희가 꿈속에서 머리에는 별 모양의 관을 쓰고 몸에는 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입은 한 사람의 헌헌장부를 만났다. 그 장부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천계의 신선이라 하희와 성교를 하면서 남자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기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꿈속의 장부와 성교를 하자 그 즐거움이 끝닿는 데가 없었으며 성교 중에 양기를 빨아들이고 음기를 보충하게 되는 방중술을 익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하희는 나이를 먹을수록 반대로 젊어졌다. 그래서 하희가 꿈속에서 배운 방중술을 이름하여 소녀채전지술(素女采戰之術))⑨이라 했다. 하희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정나라에 있었을 때도 이미 정영공의 서형이며 그녀에게는 이복 오빠인 공자만(公子蠻)과 사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만은 하희와 정을 통한지 3년도 되지 않아 요절했다. 후에 하어숙에게 시집을 와서 그의 부인이 되어 징서(徵舒)라는 아들을 낳았다. 징서는 자를 자남(子南)이라 했는데 그의 나이 열두 살 때 하어숙은 병이 들어 죽었다. 하희가 자기 남편의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징서를 성내에 남겨 스승을 찾아서 글을 배우게 했다. 그녀 자신은 성에서 나와 하씨들의 식읍인 주림으로 와서 살았다.

4. 정풍하기음(鄭風何其淫)

- 정나라의 풍속은 어찌 그리 음탕한가? -

그때 진나라의 대부 공녕(孔寧)과 의행보(儀行父)는 옛날 이미 하어숙과 같이 조당에서 같이 벼슬을 살면서 서로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각기 하희의 미색을 넘보고 있었다. 하희에게는 하화(荷華)라는 시녀가 있었다. 생긴 것이 영악하고 경망스러운 그 계집은 옛날부터 자기 주인을 위해 남자를 불러들이는 일을 습관적으로 해 오고 있었다. 공영이 하루는 징서와 같이 교외에 사냥을 나갔다가 날이 저물자 하징서를 집에다 데려다 준다는 핑계를 대고 주림에 와서 그곳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옛날부터 하희에게 계속해서 음심을 품어 오고 있었던 공녕은 먼저 하화에게 귀고리 한 쌍을 선물로 주어 환심을 산 후에 그녀의 주인에게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곧이어 공녕은 하희에게 인도되어 하희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공녕은 하희가 벗어 놓은 비단 속곳을 훔쳐 가지고 나와서 성안으로 돌아왔다. 의행보를 만난 공녕은 하희의 속곳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의행보가 부러워하며 그 역시 많은 비단을 준비해 가지고 주림에 갔다. 많은 선물로 하화를 매수한 의행보는 그녀에게 하희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에 의행보를 알고 있었던 하희는 장대한 신체에 콧날이 오뚝하고 시원한 용모의 그를 마음을 두고 있었다. 하희는 즉시 하화를 의행보에게 보내어 비밀리에 서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의행보는 하희와의 잠자리를 위해 기묘한 강장약을 널리 구하여 복용하여 자기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였다. 잠자리를 같이해 본 하희는 의행보를 공녕보다 몇 배나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의행보가 하희에게 말했다.

「공대부가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그대의 비단 속곳을 얻어 대단히 기뻐하고 있소. 나에게도 하나 주어 그대가 나도 공대부처럼 똑 같이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시해 주기 바라오.」

하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공대부가 가지고 있는 저의 비단 속곳은 나 몰래 훔쳐 간 것입니다.」

하희가 말을 마치고 의행보에게 다가와 귀속 말로 했다.

「제가 비록 잠자리를 두 분과 다 같이 했다 한들 어찌 차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희는 즉시 자기가 입고 있던 푸른색 비단 속적삼을 벗어서 의행보에게 주었다. 의행보가 크게 기뻐했다. 이후로 행보가 주림(株林)에 왕래를 자주 하게 되었고 공녕과의 사이는 잠시 소원해 졌다. 이때의 문란함을 이야기한 옛 시가 있다⑩.

정나라의 풍속은 어찌 그리 음탕한가?

환공과 무공의 교화는 어디에 갔나?

사내와 계집들 사통하길 분주히 하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구나.

중자(仲子)는 남몰래 담을 넘으려 하고

호남아는 어느새 교활한 놈 되어 버렸다.

鄭風何其淫(정풍하기음)

桓武化已渺(환무화이묘)

士女競私奔(사녀경사분)

里巷失昏曉(이항실혼효)

仲子墻欲窬(중자장욕유)

子充性偏狡(자충성편교)

동문 밖의 꼭두서니 풀을 생각하면

들판의 덩굴 풀도 무성하겠다.

치마를 올리기란 어렵지 않을 테니

수레에 그녀 태워 어디로 데려갈까?

새파란 님의 옷깃 내 마음을 잡아끌고

허리에 단 방울 소리 세월을 멎게 한다.

東門憶茹藘(동문억여려)

野外生蔓草(야외생만초)

搴裳望匪遙(건상망비요)

駕車去何杳(가거거하묘)

靑衿縈我心(청금영아심)

瓊琚破人老(경거파인노)

비바람이 불어오고 새벽닭이 울 때라도

서로가 교묘히 남모르게 만난다.

출렁이는 물결에 가시단 흘러가듯

비방하는 말을 해서 어지럽게 말아라.

습관이 되면 많은 사람 알게 되니

어찌 이를 아름답다고 하랴?

風雨鷄鳴時(풍우계명시)

相會密以巧(상회밀이교)

揚水流束薪(양수유속신)

讒言莫相攪(참언막상교)

習氣多感人(습기다감인)

安能自美好(안능자미호)

5. 衵服戱朝(일복희조)

- 하희의 속곳으로 조당을 희롱하는 진(陳)나라의 군주와 신하들 -

의행보는 그 동안 하희의 비단 속곳을 가지고 자랑하며 다니는 공녕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자기도 하희의 푸른 비단 속적삼을 얻게 되자 그 역시 공녕에게 과시하려고 싶었다. 의행보가 하희와 정을 통하고 그녀의 속적삼을 정표로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공녕은 하희를 찾아가 은밀히 그 내막을 물었다. 공녕은 하희와 의행보가 매우 긴밀할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속으로 시기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윽고 의행보를 떼어 낼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공녕은 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원래 음락을 탐해 왔던 진영공은 하희의 미색에 대해 오래 전부터 소문을 듣고 여러 번 언급을 하면서 몹시 간절하게 사모하여 왔으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녕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주군을 끌어들여 다 같이 즐기는 방법으로 하면 평소에 여색에 빠져있는 주공은 필시 나에게 감격할 것이다. 더욱이 주공은 의서에 호취(狐臭) 혹은 액기(腋氣)라고 하는 고약한 질병을 앓고 있어 하희가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겠으나, 내가 진후 곁에 바싹 붙어서 모시고 다니면서 두 사람 사이가 잘되도록 애쓴다면 남녀 사이의 문제라 어쩔 수 없이 정분이 싹트지 않겠는가? 그때가 되면 두 사람 사이가 무르익어 정을 나누게 되고, 그 결과 의행보는 어쩔 수 없이 하희와의 관계가 조금은 소원해 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서운한 감정이 어느 정도 풀어지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좋은 계책이로다!」

공녕은 즉시 영공을 독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하희의 아름다운 자태는 천하에 비할 바가 없다고 영공에게 고했다. 영공이 듣고 공녕에게 말했다.

「과인도 역시 오래 전에 그 이름을 들었소! 단지 그녀의 나이가 이미 40이 넘어, 늦봄에 지는 복숭아꽃이 되어 그 아름다움이 이미 퇴색하지나 않았나 하고 생각하여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소!」

「하희는 방중술에 능하여 그 얼굴은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으며 그녀의 몸매는 항상17-8세의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성행위는 매우 교묘하여 주공께서 한번 해보시면 아마도 혼이 달아날 것입니다.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공녕의 말을 듣고 영공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달아올라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경은 무슨 방법으로 과인과 하회를 만나게 해 주겠소? 과인이 맹세컨대 그대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으리라!」

「하희는 쭉 주림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대나무가 매우 울창하여 한 번 가서 놀아 볼만한 곳입니다. 주공께서 내일 아침 일찍 단지 주림에 행차한다는 말만을 전하게 한다면 하희는 필시 주연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주공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희에게는 이름이 하화라는 몸종이 있습니다. 그녀는 남녀사이의 애정문제에 대해 자못 능합니다. 신이 주공의 뜻을 하화에게 전하면 그녀는 다시 그 뜻을 하희에게 전할 것입니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영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일은 전적으로 경이 알아서 처리하기 바라오.」

다음날 진영공은 수레를 준비시키라는 명을 내린 후에 사대부들이 입는 평복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공녕 한 사람만을 데리고 주림으로 놀이를 나갔다. 공녕이 사람 편에 편지를 보내 하희에게 전하여 군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하화에게는 영공이 방문하는 목적을 밝혀 하희로 하여금 그 뜻을 전하여 받들도록 했다. 하희로서도 망설이며 주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영공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가복들에게 지시하여 준비하도록 시켰다. 영공의 마음은 오로지 하희에게만 가있어 주림에서의 놀이는 단지 명색뿐이라 마치 다음의 싯귀가 말하려는 것과 같았다.

옥과 향수를 도적질하는데 마음이 팔려 있으니

관산완수에 무슨 관심이 있으랴?

竊玉偸香眞有意(절옥투향진유의)

觀山玩水本无心(관산완수본무심)

영공이 놀이를 대충 생략하고 발길을 옮겨 하희의 집에 당도하자 하희가 문밖으로 나와 영접하여 집안으로 인도하여 대청으로 모셨다. 하희가 배알하고 치사했다.

「첩의 아들 징서가 성안의 스승에게 공부를 하는 중이라 주공의 왕림을 알지 못해 영접하는 예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희의 목소리는 마치 신록 속에서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아름다웠다. 하희의 자태를 본 영공의 눈에는 진실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였다. 그때까지 영공은 궁궐 안의 허다하게 많은 비빈들을 겪어 봤지만 하희와 견줄 만한 여인은 하나도 없었다.. 영공이 하희를 보며 말했다.

「과인이 이곳에 한가로운 놀이를 나와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우연히 들렀으니 그대는 너무 놀라지 말기 바라오!」

하희가 옷깃을 여미며 대답했다.

「주공께서 귀한 발걸음을 옮겨 왕림하시니 누추한 이곳이 빛나게 되었습니다. 소첩이 푸성귀로 담근 술을 준비하여 두었사온데 어찌 그냥 가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왕 술과 음식을 준비하였다고 하니 구태여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겠느냐? 나는 그대의 집에 딸린 정원의 정자가 그윽하고 아름답다고 들었다. 원컨대 한번 들어가 구경하면서 주인이 차린 성찬을 그대와 함께 먹으면서 접대를 받고 싶다. 가능하겠는가?」

「소첩의 바깥주인이 세상을 떠난 이래로 오랫동안 방치하여 소제를 하지 않아 후원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군주님의 행차를 태만하게 대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미리 말씀드리오니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하희가 자기를 공손하게 대하자 마음이 더욱 하희에게 쏠리게 된 영공이 다시 말했다.

「돌아가 예복을 바꾸어 입고 나와 나를 후원으로 인도하여 한 번 즐길 수 있도록 하라!」

하희가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데 몸에는 담백한 화장만을 하고 있어 마치 월하의 배꽃이나 눈 속의 매화 같아 평상시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희가 앞장을 서서 영공을 후원으로 인도했다. 후원으로 통하는 계단은 비록 넓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송백나무와 기이한 바위와 아름다운 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정원의 한쪽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연꽃에 둘려 쌓인 정자가 몇 개 세워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 처마가 높은 건물이 있었는데 붉은 색을 칠한 난간에 비단 장막이 쳐져 있어 보기에도 매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 건물이 바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그 건물 양쪽 곁에는 행랑채가 달려있었고, 처마 밑 후면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밀실도 눈에 띄었다. 그 건물의 회랑을 따라 이리저리 구부러져 들어가면 곧바로 내실의 침소에 직통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정원의 가운데 마구간에는 지금도 말을 몇 마리 기르고 있었고 정원의 동쪽 공지 한쪽 곁에는 활 쏘는 기구가 한 벌 놓여 있었다. 영공이 한번 둘러보고 다시 돌아 나오자 건물 안에는 이미 깔고 앉을 자리와 음식들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희가 술잔을 들고 좌정하여 영공의 맞은편에 앉았다. 영공이 자기 곁의 자리를 내주며 앉으라고 권하자 하희가 사양하며 감히 다가와 앉지 못했다. 영공이 보고 다시 말했다.

「주인은 어찌하여 가까이 다가와 좌정하지 않는가?」

영공은 다시 명하여 공녕은 자기 오른쪽에 하희는 자기 왼쪽에 앉도록 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군신간의 신분을 버리고 마음 놓고 한번 즐겨 보리라!」

군신 간에 술을 주고받으며 마시는데 영공의 눈은 한시도 하희의 몸에서 떼지 못하고 계속 쳐다보는데 하희도 역시 영공에게 계속 추파를 던졌다. 영공이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치정이 발동하자 영공의 옆에 앉아 있던 공녕도 영공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들은 계속 술을 마셔 얼마나 많이 마신지 모르게 되었다. 해가 서산에 기울자 주위에 등불을 키고서 술잔을 닦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영공이 대취하여 자리에서 쓰러지더니 코를 골면서 잠에 떨어져 버렸다. 공녕이 목소리를 낮추어 하희에게 말했다.

「주공께서 그대의 미모를 오랫동안 사모하다가 금일 이곳까지 오시어 그대와 정을 나누고자 하고 계시니 절대 그 뜻을 어기지 마시오!」

하희가 대답하지 않고 얼굴에 미소만을 띄울 뿐이었다. 공녕이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가 어가를 몰고 온 종자들을 점고하여 쉬도록 명한 후에 자기도 객사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비단 이불과 베개를 준비하여 건물 안으로 들여보낸 하희는 향초를 넣어 끓인 물에 목욕을 하고 영공이 부름에 대비하고 하화에게는 영공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들도록 명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술에게 깨어난 영공이 눈을 크게 뜨고는 곁에 있던 하화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하화가 무릎을 꿇고 대답하였다.

「하화라는 천비이온데 주인마님의 명을 받들어 군주님을 모시고 있는 중입니다.」

하화가 준비해 놓은 매실탕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영공이 물었다.

「이 탕은 누가 끓였는가?」

하화가 대답했다.

「천비가 끓였습니다. 」

「너는 매실탕도 끓일 줄 아니 나를 위해 능히 중매도 할 수 있겠다.」

하화가 시치미를 떼며 영공에게 물었다.

「천비가 중매는 아직 서보지 못했으나 단지 심부름은 바삐 다닐 줄 압니다. 그러나 군주님께서 어느 분에게 뜻을 두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과인은 너의 주인 생각에 정신이 산란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너는 능히 나를 위해 이 일을 성사시켜 주면 내 마땅히 너에게 상을 주리라!」

「저희 마님께서는 과부의 몸이라 군주님의 옥체를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사오나 만일 이를 허물치 않으신다면 천비가 군주님을 모시고 마님 계시는 곳으로 인도할까 합니다.」

영공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하화에게 명하여 등불을 들고서 자기를 인도하라고 명하였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길을 따라 내실 문 앞에 당도했을 때는 하희는 이미 등불을 밝히고 영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희가 문 밖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에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영공이 먼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하화가 다시 은촛대의 등불을 들고 방안에서 나가자 영공은 구차스러운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하희를 안고 장막 안으로 들어가 옷을 벗기고 침상에 눕혔다. 하희의 근육과 피부는 탄력이 있고 부드러워서 마치 영공의 몸을 빨아들이는 듯 했다. 더욱이 영공은 자기의 성기를 하희의 음부에 삽입할 때 하희의 몸은 처녀와 같아 하희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하희가 대답했다.

「첩은 스스로 몸을 치유하는 법을 채득한 관계로 비록 제가 아이를 낳는다 해도 불과3일이면 다시 처녀의 몸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영공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인이 비록 하늘에 사는 선녀를 만났다 한들 이보다 낫겠느냐?」

영공의 성기를 말할 것 같으면 원래 공녕이나 의행보의 것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악취를 풍기는 질병을 갖고 있어 두 대부에 비해 나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신분이 일국의 군주로써 부녀자들이란 원래 권세와 부를 좋아하는 관계로 감히 하희가 불평을 하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거짓으로 만족하는 체하여 영공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생전에 천하에 보기 드문 기이한 일을 경험한 영공은 이내 하희 곁에서 잠이 들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닭 우는소리가 들리자 하희가 영공을 깨웠다. 영공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다.

「과인이 그대와 잠자리를 같이 해보니 육궁의 수많은 비빈들은 참으로 분토(糞土)와 같구나! 단지 그대의 마음에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영공이 자기가 공녕과 의행보 두 대부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하는 말로 짐작한 하희가 대답했다.

「소첩은 감히 주공을 속이지 못하겠습니다. 바깥주인을 잃은 이래 스스로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몸을 허락한 일이 있습니다. 오늘 군주님을 이미 모시게 되었는데 이는 저로서는 마땅히 광영스러운 일인데 어찌 감히 다시 두 마음을 품어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영공이 한 마음으로 말했다.

「과인도 그대가 평상시 정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하겠으니 구태여 그대의 행실을 숨길 필요는 없다!」

「공녕과 의행보 두 대부는 저의 소생인 징서를 돌본다고 하면서 저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을 뿐이지 아직 그들과는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영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공녕이 말하기를 그대의 방중술은 심히 묘하여 세상에 보기 드물다고 나에게 말했는데 만약에 그가 그대의 방중술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어찌 그것을 과인에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소첩이 먼저 공녕과 의행보 두 대부에게 몸을 허락한 죄를 지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녕은 그대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천거해 주어 과인은 감격하고 있는 중이니 그대는 의심하지 말라. 단지 원하는 바는 수시로 그대를 만나 이렇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나의 이 마음을 거절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고 그대가 다른 남자들과 정을 나누는 일은 내가 상관하지 않겠다.」

「주공께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만 주신다면 어찌 제가 주공을 모시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자리에 일어서는 진영공에게 다가선 하희가 그의 겉옷을 벗기고 자기의 입고 있던 땀에 절은 속적삼을 벗어 입혀 주면서 말했다.

「주공께서 이 적삼을 보시며 소첩을 항상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화가 등불을 들고 들어와 왔던 길을 되돌아 원래 머물렀던 건물 앞으로 왔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가자 방안에는 이미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공녕은 시종들을 간수하여 어가를 대령하고 영공이 나오기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공에게 당상으로 오르기를 청하여 문안 인사를 드린 하희가 요리사로 하여금 음식을 바치게 하고 이어서 영공을 따라 왔던 시종들에게도 모두 음식을 주어 배불리 먹게 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공녕이 영공을 위해 어자가 되어 어가를 몰아 조당에 당도했다. 진나라의 백관들은 영공이 밖에 나가 민가에서 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날이 밝자 백관들이 조례를 올리기 위해 조당에 모여 영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아침 조회는 취소한다는 령은 전하게 한 영공은 자기는 조당에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침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행보가 공녕의 뒤를 따라와 주공이 어제 저녁에 유숙한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의행보를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한 공녕이 솔직히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의행보는 그것이 공녕이 영공을 부추겨서 한 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그와 같은 좋은 일을 하는데 나는 빼놓고 어찌 당신 혼자서만 공을 차지하려고 하십니까?」

「주공께서 십분 기뻐하셨으니 다음에 갈 때는 그대가 모시고 가서 공을 세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헤어졌다.

다음날 영공이 아침 일찍 조회를 나와 백관들로부터 조례를 받았다. 백관들이 예를 마치고 모두 물러가자 공녕을 불러서 앞으로 오게 하여 하희를 천거한 일에 대해 치사하고, 다시 의행보를 불러 물었다.

「그처럼 즐거운 일을 어찌하여 진작 과인에게 고하지 않았소? 그대들 두 대부들은 나보다 먼저 하희를 차례로 선점한 행위는 도대체 무슨 도리요?」

공녕과 의행보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신 등은 모두 하희와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

「그 미인이 직접 자기 입으로 실토했으니 경들은 구태여 거짓말 할 필요가 없소.」

「그것은 마치 주군께서 맛 잇는 음식을 드실 때는 그 신하들이 먼저 맛을 보아야 하며 그 부친에게 맛 잇는 음식을 바칠 때는 그 자식이 먼저 맛을 보아야 하는 이치입니다. 만약 먹어 봤는데 맛이 없다면 어찌 감히 그 군주에게 바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소! 그것은 마치 곰발바닥 요리와 같아 그대들이 먼저 맛을 보지 않아도 맛이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오.」

공녕과 의행보 두 대부가 모두 웃었다. 영공도 같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희가 나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그 징표로 그녀가 입고 있던 속적삼을 벗어 내게 주었소.」

영공은 즉시 웃옷을 풀어 헤쳐 안에 입고 있던 하희의 속적삼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것은 하희가 나에게 준 것이고 두 대부들도 하희와 이미 정을 통했으니 두 대부들은 무엇을 받았소?」

공녕이 먼저 대답했다.

「신 역시 하희에게서 받은 징표가 있습니다.」

「경이 받은 징표가 무엇이오?」

공녕이 옷을 걷어올리더니 속에 껴입고 있던 하희의 비단 속곳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하희가 저에게 준 징표입니다. 단지 신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행보에게도 주었습니다.」

영공이 의행보를 쳐다보며 물었다.

「경은 징표로 무엇을 받았소?」

행보도 역시 웃옷을 풀어헤치더니 속에 바쳐 입고 있던 푸른색 비단 속적삼을 영공에게 보여주었다. 영공이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이 하희가 준 정표를 모두 몸에 지니고 있으니 다음에 날을 잡아 주림에 들려 셋이서 동시에 하희와 같이 놀아 봄이 어떻겠는가?」

군주와 두 사람의 신하가 조당에서 서로 희롱을 하며 떠드는 소리가 조당의 문 밖에 까지 들리게 되었다. 그때 충직한 신하인 설야가 문 밖에서 세 사람의 군주와 신하가 서로 희롱하는 소리를 듣고 분노에 못 이겨 이빨을 갈며 조당 안으로 들어와 큰 소리로 외쳤다.

「조정은 법과 기강이 서린 곳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음탕한 말들로 조당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장차 진나라가 망하게 되는 일는 조석지간에 달려있게 되었습니다.」

의관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손에는 죽간을 든 설야가 조당 안으로 달려 들어와 간언을 올렸다.

< 제 53회로 계속 >

주석

① 석화어(石花魚) : 석화잉어(石花鯉魚)를 말하는데 황하의 천교협(天橋峽) 지방에서 나는 어류 중 가장 진귀한 생선이다. 천교협은 산서성 북단의 보덕현(保德縣) 북쪽 20리 되는 곳에 있는 황하의 험난한 지역으로 양안은 절벽이고 낙차가 매우커서 물의 흐름이 세차다. 협곡 내 미로처럼 나 있는 수많은 석굴 속에서 자라는 석화초(石花草)는 이곳에서 나는 석화어의 먹이가 된다. 천교협 부근에서만 나는 석화어는 산량이 극히 적다. 석화어의 특징은 붉은 눈에 금빛 나는 큰 비늘이 있고 등에는 한 개의 붉은 색의 선이 있다.

1667년 2월, 청나라의 강희황제(康熙皇帝)가 준가르(準噶爾:Junggar)부의 갈단(噶爾丹:Galdan) 칸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던 중 보덕(保德)을 지날 때 지방관이 석화어를 헌상했다. 석화를 맛있게 먹은 황제가 크게 칭송했는데 당시 북경에 머물던 심복인 태감에게 보낸 17개의 서신 중 3개의 서신에 석화어를 언급했다. 그 중 하나에는 “28일, 황하의 강변에 있는 보덕주에 당도하여 짐은 작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로 나갔는데 강물에 사는 고기들은 모두 석화어였다. 요리를 해서 바친 석화어의 맛은 신선하고 맛있어 편지로는 다 말할 수 없다.”라고 표현했다.

석화잉어의 맛에 감탄한 황제는 지방관에게 명해 매년 황실에 진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래 석화잉어는 그곳 백성들의 수입원으로 생활에 보탬이 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재앙으로 변하고 말았다. 보덕의 백성들에게 석화어가 재앙으로 변한 까닭은 지방관들은 매년 12척의 관선을 보내 황제를 위해 석화어를 잡아 공물로 착취해 갔기 때문이었다. 황제에게 바치는 석화어는 140마리에 불과했으나 층층시하의 각급 관원들이 수량을 늘려 매년 바쳐야 하는 수량은 4천 마리에 달했다. 그렇게 늘어난 석화어는 보덕의 농민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 동안 포획한 석화어를 모두 양식어장에 기른 후에 겨울이 되면 고기를 잡아내 모두 얼음으로 얼린 후에 공물로 바쳐야 했다. 신해혁명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덕의 농민들은 공물에 대한 의무에 벗어나 석화어로 인한 고통을 면할 수 있었다.

②한강(漢江) : 한수(漢水)와 강수(江水)를 말하며 강수는 양자강의 다른 이름이다. 초나라의 발흥지는 한수와 강수 사이의 땅인 지금의 호북성 형주시(荊州市) 부근임으로 한강에서 온 손님이란 초나라의 사신임을 의미한다.

③육축(六畜) : 소, 말, 양, 돼지, 닭, 개를 말한다.

④정양공(鄭襄公) : 정영공의 서제로 기원전 604년 계위하여 18년 간 재위에 있다가 기원전 586년에 죽었다. 재위에 올라 당진과 수호했으나 초나라의 침략을 받자 다시 당진과의 수호를 끊고 초나라에 붙었다. 그러자 당진의 공격을 받았다. 재위 기간 중 당진과 초 중간에 끼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⑤흑양(黑壤) : 현 산서성 심수현(沁水縣) 부근

⑥진경공(晉景公) : 기원전 599년 즉위하여 18년 동안 재위에 있다가 기원전 581년에 죽었다. 2년 기원전 597년 정나라를 공격하는 초나라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순림보(荀林父)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출동시켰다. 당진군과 초군은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 북쪽 황하 연안에 있었던 필성(邲城)에서 조우하였으나 각 부대간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진군은 초군에게 대패하고 중원의 패권을 초나라에 넘겨주었다. 11년 기원전 588년 제나라와 안(鞍)에서 싸워 대패시키고 12년 처음으로 육경(六卿) 제를 시행했다. 15년 기원전 584년 수도를 회수(澮水) 강안의 강성(絳城)에서 분수(汾水) 강안의 신전(新田)으로 옮겼다.

⑦유분(柳棼) : 지명미상이다.

⑧신릉(辰陵)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주구시(周口市) 북쪽 약 20키로 지점의 서화향(西華鄕) 부근

⑨소녀(素女) : 음악에 정통하고 음양술(陰陽術)과 방중술(房中術)에 능했다고 하는 전설상의 선녀(仙女)

⑩《시경(詩經)·국풍(國風)·정풍(鄭風)》에는 모두 21수의 시가가 실려 있다. 본 시는 정풍의 싯귀를 따서 지은 독특한 시다. 정풍의 전문과 해설문은 본 열국연의 싸이트 ‘한시의세계>시경>국풍>정풍’ 에 올려져 있다. 주소는<http://www.yangco.net/new0822/?doc="bbs/gnuboard.php&bo_table=jungpung>이다.

[평설]

초장왕은 당진국과 패권을 다투기 위해서는 중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던 정나라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정나라의 영공(靈公)은 공자송(公子宋)에게 자라탕 사건으로 인해 원한을 산 나머지 공자송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고 그 후임으로 공자견(公子堅)이 새로운 군주가 되어 있었다. 공자견이 정양공(鄭襄公)이다. 공자송은 사자를 당진국에 보내 새로운 군주의 승인과 초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정나라를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시군의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그 군주를 죽인 시군이라는 사건은 그냥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이에 초장왕은 기원전604년 정나라에 시군의 죄를 물어 정벌군을 일으켜 천하의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그러나 당시 군사력에 있어서 당진국을 압도하지 못했던 초나라는 당진국이 군사들이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가 불리한 것을 의식하여 군사를 이동시켜 진(陳)나라를 공격했다. 정나라 대신 진나라라도 초나라 세력으로 편입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당진국은 다시 송(宋), 위(衛), 정(鄭), 조(曹) 등의 4국과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다. 당진과 정나라가 군사를 일으키자 자기가 구축한 중원에 대한 세력권이 와해된 것을 본 초장왕은 다시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여 정나라를 공격했다. 기원전 600년 당진은 다시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정나라를 공격하고 있던 초군을 패퇴시켰다. 당진과 초나라 사이에 낀 중원의 중소제후국들은 두 나라 사이를 전전해야만 했다. 당진군이 초군을 격퇴시키자 정나라의 사대부들은 매우 고무되어 환호했다. 그러나 공자거질만은 그 사태를 매우 우려했다. 그는 정나라를 지원한 당진군이 초군을 물리치고 얻은 승리는 단지 일시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당시 당진국의 국세는 약화되고 있었고, 초나라의 국세는 상승 중이라고 생각하여 정나라로서는 장기간 당진국에 의지할 수만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당진군에게 패퇴한 초군은 필시 그 원한을 정나라에 갚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거질의 예상대로 초장왕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공격해 왔다. 이에 공자거질은 친당진파인 공자송을 살해하고 초나라의 세력권으로 자진해서 들어갔다.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정나라 거질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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