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167 
· 어제 :  282 
· 최대 :  2,389 
· 전체 :  1,703,678 
 
  2014-05-29 00:57:445608 
탁문군(卓文君)
운영자

탁문군(卓文君)

원이름은 문후(文后)다. 서한(西漢) 때 사람으로서 지금이 사천 공래(邛崍)지방인 임공(臨邛)의 거상이었던 탁왕손(卓王孫)의 딸이었다。용모가 수려한 탁문군은 원래 성격이 북을 두드리고 탄금을 하는 등 음악을 사랑했다,그녀는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미 문재가 있었다. 16세에 이르자 그녀의 부친이 동업자의 자식과 결혼시켰지만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그녀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그때 사마상여(司馬相如)라는 유명한 사부가(辭賦家)가 있었다,하지만 당시 황제였던 한경제(漢景帝)는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그래서 뜻을 이룰 수가 없게 된 상여는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인 성도로 돌아왔다. 상여는 한무제(漢武帝)로부터 인정을 받기 전까지는 가난하게 살았다. 그때 상여와 친분이 있었던 임공(臨邛)의 현령 왕길(王吉)이 그를 임공에 불러 며칠 머물게 하였다. 그는 임공의 대부호였던 탁왕손의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탁왕손은 당대 문장가이면서 거문고연주로 이름 높은 상여에게 한곡을 청했다。그 전에 상여는 절세미녀에 문재까지 갖춘 탁문군이 열일곱에 과부가 되었음을 듣고 있었다,그래서 상여는 음악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봉구황(求凰)》이란 노래를 연주했다. 문군을 사모하는 당시 모든 젊은이들이 마음을 토로한 셈이다.

봉(鳳)아, 봉아, 고향에 돌아왔구나 !

너를 찾아 사해에서 찾기를 원하였지만

이제까지 그 원을 이루지 못하다가

오늘 밤에야 이 마루에 올라 만나게 되었구나!

아름다운 낭자가 규방에 있으나

방은 가까워도 사람은 멀어 비통하게 하는가!

그녀와 함께 한쌍의 원앙이 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함께 저 높은 하늘을 날 수 있을텐데

봉(鳳)아, 봉아, 나를 따라 머무르렴 !

부지런히 여신님을 위해 뒤를 밀어주렴

정이 흐르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나니

깊은 밤 서로 의지하길 알아 주는이 누구이던가!

두 날개 활짝 펴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니

나는 더 이상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도다...

鳳兮鳳兮歸故鄕(봉혜봉혜귀고향)

翱遊四海求其凰(고유사해구기화)

時未遇兮無所將(시미우혜무소장)

何悟今夕升斯堂(하오금석승사당)

有艶淑女在閨房(유염숙녀재규방)

室邇人遐毒我腸(실이인하독아장)

何緣交頸爲鴛鴦(하연교경위원앙)

胡頡頏兮共翱翔(호힐항혜공고상)

鳳兮鳳兮從我棲(봉혜봉혜종아서)

得托孳尾永爲妃(득탁자미영위비)

交情通體心和諧(교정통체심화해)

中夜相從知者誰(중야상종지자수)

雙翼俱起翻高飛(쌍익구기번고비)

無感我思使於悲(무감아사사어비)

또한 어릴 때부터 음률을 알았던 문군 역시 상여의 봉구황을 듣고 바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知音),이로 인해 그녀는 상여의 재화(才華)와 기도(氣度)에 빠지게 되었다。그날 밤,탁문군과 상여는 밤을 새워 사랑을 나누고 그 즉시 사람들이 잠든 밤을 이용하여 임공에서 성도(成都)로 도망쳤다. 탁왕손은 자기 딸이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다른 사내와 함께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화가 나서 자기 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동안 만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했다. 사마상여는 원래 가난한 데다가 탁문군까지 같이 있으니 성도에서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 다시 임공으로 돌아와 옷도 팔고 하다가 결국엔 임공에서 조그만 주점을 하나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생활은 힘들었다. 탁문군도 손수 손님을 접대하며 술을 팔았고 사마상여는 짧은 바지를 입고 주점 내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사를 거들었다. 이 소식이 탁왕손에게 전해지자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정신이 돌 정도가 되었고 수치심이 극에 달하여 두문불출했다.

거부의 딸이 야반도주하여 코 앞에서 그런 생활을 보니 탁왕손으로써는 자연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친한 벗이 탁왕손을 찾아와 충고했다.

“자네가 딸에게 돈을 주지 않아서 두 사람의 체면은 읽호 있는데 그것은 자네의 체면도 아니겠는가? 사정이 어쨌든 자네 딸임에는 부인할 수 없으니 딸에게 돈을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나?”

친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탁왕손은 할 수 없이 딸에게 제법 큰돈을 주고 주점을 거두게 하였는데 그래도 딸과 사위의 내왕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도 중국의 공래시(邛崍市)성내에는 문군공원(文君公園)이 있고 경내에 문군정(文君井)이란 우물이 있는데 이것이 당시 사마상여와 탁문군이 주점을 차렸을 때 사용하던 우물이었다고 전해진다.

후에 한무제에 의해 재능을 인정받아 중랑장이라는 높은 관직을 받은 사마상여는 그만 첩을 들여놓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탁문군은《백두음( 白頭吟)》라는 시를 병서(竝書)와 함께 지어 상여에게 주며 절교를 선언했다.



《백두음( 白頭吟)》

병부서(竝附書)



春華競芳(춘화경방)

봄날의 백화는 만개하여 그 아름다움을 다투고


五色淩素(오색능서)

현란하고 흰 색조는 순결한 얼굴을 가린다.


琴尚在御(금상재어)

거문고에서는 여전히 옛 노래 소리 울리는데


而新聲代故(이신성대고)

옛사람은 이미 모두 떠나고 새사람이 대신했다.


錦水有鴛(금수유앙)

금강(錦江)에 노니는 원앙 한 쌍


漢宮有木(한궁유목)

한나라 궁궐에 우뚝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彼物而新(피물이신)

모두들 한결같이 언제나 새로운 모습인데


嗟世之人兮(차세지인혜)

아, 세상 사람들여!


瞀於淫而不悟(무어음이불오)

미색에 미혹되어 새로운 것만 찾고 옛 것을 버리는구나!


朱弦斷(주현단명결경)

거문고 줄 끊어져 사랑하는 이 발길 끊어지고


明鏡缺(명경결)

맑은 거울은 흠집이 나니 남편과 아내가 헤어진다.


朝露晞(조로희)

아침 이슬이 마르자 연분은 다 했고


芳時歇(방시헐)

여인의 향기가 사라지니 사람들은 떠나간다.


白頭吟(백두음)

이에 백두의 노래를 불러


傷離別(상이별)

이별을 슬퍼하노라!


努力加餐勿念妾(노력가찬물염첩)

희망하건대 맛있는 음식을 드실 때 저를 괘념치 마십시오


錦水湯湯(금수탕탕)

저 호호탕탕한 금강에 대고 맹세하건대


與君長訣(여군장결)

이후로는 당신과 영원히 만나지 않으리라!



皚如山上雪(애여산상설)

희기도 하구나, 산 위의 눈처럼!


皎若雲間月(교약운간월)

밝기도 하구나, 구름 사이의 달처럼!


聞君有兩意(문군유양의)

그대 두마음 품었단 말 듣고


故來相決絶(고래상결절)

영원히 헤어지자 일부러 갔지


今日斗酒會(금일두주회)

오늘은 술을 함께하고


明旦溝水頭(명단구수두)

날 밝으면 도랑가에 서 있으리


躞蹀御溝上(섭접어구상)

궁궐 해자변을 걷자니


溝水東西流(구수동서류)

도랑물도 동서로 나누어 흐르네


淒淒復淒淒(처처부처처)

처량하고 또 처량해라


嫁娶不須啼(가취불수제)

혼인 때 눈물 흘리지 않았고


願得一心人(원득일심인)

한사람 마음 얻고자 했지


白頭不相離(백두불상리)

흰머리 되어도 서로 헤어지지 말자 했는데


竹竿何嫋嫋(죽간하뇨뇨)

낚싯대 어찌 그리 연약할까


魚尾何簁簁(어미하사사)

고기 꼬리 어찌 그리 팔딱일까


男兒重意氣(남아중의기)

남자는 의기를 중히 여기는데


何用錢刀爲(하용전도위)

어찌 금전을 사용해서 사랑을 사려 하는가!

상여는 탁문군의 백두음과 후에 덧 붙인 병서(竝書)인 결별서를 읽고 감동했다. 옛날에 그녀에게서 입은 은혜와 사랑을 상기한 상여는 첩을 들이는 일을 중지하고 탁문군의 편지에 다음과 같이 회답했다.

「그대의 아름다운 시를 읽으니 함께 걸어왔던 옛날을 생각하게 하오 而回予故步(이회여고보), 이후로는 백두음의 노래를 생각하여 단청과 같은 한결같은 마음을 저버리지 않겠소.」

그리고 얼마 후 사마상여는 고향집으로 돌아와 두 사람은 숲과 샘물이 있는 집에 살면서 해로했다. 그리고 사마상여는 기원전 117년에 사망하고 탁문군은 그 후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탁문군이 지은 백두음은 마음이 돌아선 남편을 되돌아서게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천고에 전해지게 되었다.

목록
9215
[] 울료자(尉繚子) 병법에 관해서

무경칠서: 울료자(尉繚子) 《울료자》의 저자 울료자의 이름을 놓고 ‘위료자’와 ‘울료자’가 대립하고 있다.중국의 사전 《사해》
운영자 21-03-26
[] 한무제의 모후 왕태후와 전분의 가계도

왕태후는 괴리(槐里)① 사람이다. 그 모의 이름은 장아(臧兒)라고 했는데 옛날 연왕 장도(臧荼)의 후손이다. 장아가 괴리의 왕중(王仲)에게 시
운영자 15-09-30
[] 위자부와 위청의 가계도

 위황후(衛皇后)의 자는 자부(子夫)로 미천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모친의 성을 따라 위씨(衛氏)로 성씨를 삼았다.① 위온(衛媼)은 평양후 봉읍
운영자 15-09-30
[] 서한왕조의 사생아들

서한왕조의 사생아들 1. 유방 - 교룡의 아들[蛟龍之子] - 한왕조의 사생아들 중에서 한고조 유방이야 말로 첫 번째 사생아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운영자 14-08-24
[] 《한서혹리(漢書·酷吏)· 윤상전(尹賞傳)》

《한서혹리(漢書·酷吏)· 윤상전(尹賞傳)》 윤상의 자는 자심(子心)이고 거록군(巨鹿郡) 양지(楊氏)① 사람이다. 군의 관리로 있을 때 청렴함이 들
운영자 14-07-08
[] 한무제가 시작한 중국최초의 지방정부 감찰제도 - 육조문사(六條問事)

육조문사(六條問事) 1. 간개 한무제 원봉(元封) 5년(전106),한무제는 중국 전역을 13주로 나누고 각 주에 자사(刺史) 한 명씩을 파견하여 매년
운영자 14-07-02
[] 준불의(雋不意)

준불의(雋不意) 한무제 말년, 군국(郡國)에서 도적들이 일어나자 직지사자(直指使者)에 임명된 포승지(暴勝之)는 수의(繡衣)와 부월(斧鉞)을 하사받
운영자 14-06-28
[] 탁문군(卓文君)

탁문군(卓文君) 원이름은 문후(文后)다. 서한(西漢) 때 사람으로서 지금이 사천 공래(邛崍)지방인 임공(臨邛)의 거상이었던 탁왕손(卓
운영자 14-05-29
[] 상계제(上計制)

상계제(上計制) 상계제는 중국 고대왕조에서 시행했던 지방정부의 업무보고 제도다. 자기 관할 내의 회계연도에 발생한 정적(政績)을 문서로 작성
운영자 14-05-27
[] 무고(巫蠱)의 란

무고지란(巫蠱之亂) [1] 사건의 전개 1. 사건의 단초 한무제가 건장궁(建章宮)에 머물렀는데 한 사람이 검을 차고 궁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
운영자 14-05-16
[] 楚漢爭覇之際年表(초한쟁패지제연표)

楚漢爭覇之際年表(초한쟁패지제연표) 전221년 진시황제 재위 26년 1. 진나라 장군 왕분(王賁)이 연나라를 점령한 후에 남하하다가 방향을
운영자 14-01-27
[] 동인(銅人) 혹은 금인(金人)

동인(銅人) 혹은 금인(金人) 통일진제국을 창건한 진시황은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는 무장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지방세력을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운영자 13-12-05
[] 소무목양(蘇武牧羊)

소무목양(蘇武牧羊) 소무의 부친 소건(蘇建)은 무제 원삭 2년(前127년)에 교위(校尉)의 직채으로 대장군 위청을 따라 흉노정벌전에 종군하여 공
운영자 13-11-22
[] 강충(江充)과 무고(巫蠱)의 화(禍)

강충(江充 : ?-기원전91년) 본명은 강제(江齊)고 자는 차천(次倩)이며 서한의 조나라 한단(邯鄲) 출신이다. 거문고와 춤을 잘 추는 자신
운영자 13-11-20
[] 한무제 연표(전140-87년)

한무제(漢武帝) 연표(전140-87년) 한무제 원년 기원전 140년, 건원(建元) 원년 1. 전해인 한경제가 16년만인 기원전 139년에 죽자 황태자 유철
운영자 13-11-19
[] 진나라의 도성 이동사

진(秦)나라의 도성 이동사 1. 기원전 16-11세기 감숙성 천수(天水), 감곡(甘谷) 일대에서 일어났다. 2. 기원전 11세기(서조초기) 천수 부
운영자 13-07-09
[] 진시황의 공과

秦始皇(진시황) 진시황제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국역사상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통일
운영자 13-01-10
[] 조충국(趙充國)- 둔전을 최초로 시행한 서한의 명장

조충국(趙充國)  조충국의 자는 옹손(翁孫)이고 서한의 상규(上邦) 사람이다. 한무제4년 기원전137년에 태어나서 한선제(漢宣帝) 22년인 기원전52
운영자 12-10-06
[] 장건의 원정 당시 서역제국

Zhang Qian's[張騫] Expedition & Nomadic Countries adjacent to Silk Road Zhang Qian taking leave from emperor Han Wudi[漢武帝], for h
운영자 12-07-12
[] 진나라의 군현제 실시를 위한 정부기구와 녹봉제도

1. 행정기구 1) 중앙조직 진시황은 전국시대 각 나라가 설치한 관제를 기초로 조절과 확충을 가해 통일국가의 새로운 정부기구를 만들어냈다.
운영자 12-05-09
1 [2][3][4][5][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