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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8 09:21:412701 
준불의(雋不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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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불의(雋不意)

한무제 말년, 군국(郡國)에서 도적들이 일어나자 직지사자(直指使者)에 임명된 포승지(暴勝之)는 수의(繡衣)와 부월(斧鉞)을 하사받아 도적을 추포하기 위해 군국을 독려하고 고과를 행하면서 동해에 이를 때까지 군사를 일으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자들을 주살했음으로 그의 이름은 주위의 주군을 진동시켰다. 평소에 준불의(雋不意)의 현능한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포승지가 발해(지금의 하북성 창주(滄州))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준불의를 불러 만나기를 청했다. 발해를 방문한 포승지는 준불의(雋不疑)라고 부르는 저명인사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다. 머리에는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허리에는 검과 패옥(佩玉)을 차고 넓고 긴 옷에 두터운 허리띠를 두른 화려한 복장을 입고 거처의 문 앞에서 당도하여 포승지를 뵙기를 청했다. 문을 시키던 사람이 칼을 풀어 맡기라고 하자 준불의가 말했다.

「검은 뜻밖의 일을 당했을 때 군자가 대비하여 자신을 지켜야함으로 검을 풀어놓을 수 없소. 나는 이만 돌아가야 하겠소!」

문을 지키던 관리가 포승지에게 준불의의 말을 전했다. 승지는 누각의 문을 열게 하고 그를 들어오게 하고서는 멀리서 준불의 용모를 보니 자못 위엄을 갖추었는데 의관은 심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승지가 문쪽으로 나가 맞이하여 당 위로 인도하여 좌정을 청하자 불의가 서서 말했다.

「바닷가에 몸을 피해 조용히 살고 있는 저는 포공의 위엄과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이제 다행히 존안을 뵙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무릇 관리란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그렇다고 너무 약하면 령이 서지 않습니다. 위엄으로 행하되 은혜를 베풀면 공명을 세울 수 있어 영원히 천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준불의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사살을 알게 된 포승지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겨 경계로 삼고 예와 성을 다해 그를 접대하면서 당세에 행해야할 일에 대해 물었다. 그곳에 모인 관리들은 모두 주군에서 선발한 관리들로써 불의의 말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주연이 끝난 후에 포승지는 그 즉시 불의를 천거하는 표장을 올리고는 불의를 공거에 태우고 황도로 들어가 황제에게 알현시키자 황제는 불의를 청주자사(青州刺史)에 임명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무제가 죽고 소제(昭帝)가 즉위하자 제효왕(齊孝王)의 손자 유택(劉澤)은 군국의 호걸을 모아 모반을 획책하여 먼저 청주자사의 자리에 있던 준불의를 살해하려고 기도했다. 불의가 사전의 모반사건을 적발하여 모조리 체포하여 그들의 죄행을 밝혀냈다.

이 공으로 준불의는 경조윤(京兆尹)으로 발탁되고 상금 백만전을 하사받았다. 경사의 관리들과 백성들은 위엄과 신의를 갖춘 준불의를 존경했다. 범인의 죄상에 대한 현청의 심사기록이 올라올 때마다 준불의의 모친은 수시로 묻곤 했다.

「잘못된 사건을 판결하여 몇 명이나 목숨을 구했느냐?」

잘못된 사건으로 많은 사람을 석방했다고 불의가 말하면 그의 모친은 매우 기뻐하며 음식을 맛잇게 먹고 평상시와는 달리 매우 명랑한 언어를 사용했다. 어쩌다가 석방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의 모친은 화를 내며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래서 불의가 관리가 되었되어 엄격하기는 했지만 잔혹하게 하지는 않았다.

한소제(漢昭帝) 시원(始元) 5년 기원전 82 년, 어떤 남자가 누런 송아지 가 끄는 수레를 탔는데 수레에는 용과 거북이 그려진 노란 깃발을 꽂고 황조(黃旐)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노란 모자를 쓰고 북궐에 이르러 자신을 위태자(衛太子)라고 고했다. 공거(公車)가 소식을 듣고 2천석 이상의 공경과 장군들에게 알려 살펴보게 했다. 장안성 내의 관리와 백성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몰려 들었는데 그 수효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우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북궐로 달려와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승상과 어사대부 및 중2천석의 이르는 고관들도 감히 한 마디도 그 광경에 대해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후에 현장에 당도한 경조윤 준불의가 관리들에게 호통을 쳐서 그 자를 포박하도록 시키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아직 일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잠시 두고 보시지요.」

준불의가 대답했다.

「여러분들은 어찌하여 위태자로 인하여 걱정하십니까? 춘추 때 위(衛)나라영공(靈公)의 태자 괴외(蒯聵)가 군주의 명을 거슬려 나라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사이에 영공이 죽자 위나라 군주의 자리를 이은 괴외의 아들 출공(出公) 첩(輒)은 그의 귀국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춘추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위태자 유거(劉據)는 선제에게 죄를 얻었으나 죽지 않고 도망친 사람으로 지금 스스로 찾아왔으니 이는 바로 죄인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그 자를 압송하여 옥에 가두었다. 천자와 대장군이 소식을 듣고 준불의의 조치를 칭찬하며 말했다.

「공경과 대신들은 마땅히 준불의를 본받아 경전과 술법을 이용하여 대의를 밝혀야만 한다.」

이로써 준불의 명성은 조정에서 더욱 무겁게 되어 대신들은 모두가 스스로 준불의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대장군이 곽광(霍光)이 그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으려고 했으나 준불의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한사코 사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집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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