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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4-22 11:17:035341 
지금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전국 때 연제 두 나라 이야기1
양승국
일반

전국시대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연(燕)과 제(齊) 두 나라 이야기

이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 때인 기원전 3세기 초엽에 있었던 일로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연(燕)과 제(齊) 두 나라 사이에 벌어졌던 일이다. 물론 일본에 해당했던 나라는 제나라고 한국에 해당했던 나라는 연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연과 제 두 나라는 기원전 12세기 경 주나라의 창업공신이 봉해진 나라다. 주나라를 창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을 삼공(三公)이라고 부르는데 주무왕이 동생 주공(周公), 강태공으로 알려져 낙시군들의 조종쯤으로 여겨지는 태공(太公), 그리고 소공(召公)이 바로 그들이다. 이윽고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자 주왕실은 그들을 제후왕으로 봉했다. 태공은 노(魯)에, 소공(召公)은 지금의 북경시 일대의 땅인 연(燕)에, 태공은 지금의 산동성 일대인 제(齊)에 봉해졌다. 태공이 봉해진 제나라는 춘추로 접어들자 기원전 7세기 경 제환공과 관중과 그리고 후에 제경공과 안자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개혁을 단행하여 풍부한 물산에 기반을 둔 경제력으로 국력이 급신장한 결과 춘추전국시대 550년 전 기간을 통해 패권을 다투었던 강국으로 군림했다. 그에 비해 연나라는 물산도 풍부하지 못하고 희소한 인구로 인해 춘추전국시대 내내 가장 국력이 약한 나라였다. 따라서 강대국이었던 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연나라는 지금의 한국이 임진전쟁 이래 일본에게 두들겨 맞고 심지어는 식민지로 전락하여 살았던 것처럼 계속해서 제나라의 압박으로 시련을 겪다가 전국시대 중기에 이르자 결국은 내란이 발발하고 그 틈을 탄 제민왕(齊湣王)의 침략으로 제나라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나라를 간신히 다시 찾은 연소왕은 원수를 갚기 위해 30년 가까운 각고의 노력으로 내치에 힘쓰며 인재들을 초빙하고, 이윽고 문무를 겸전한 악의(樂毅)라는 장수를 얻었다. 연나라의 대장이 된 악의는 초나라를 제외한 4국과 함께 5국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공격했다. 연소왕의 굳은 신임과 악의의 뛰어난 지휘력으로 제나라는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으나 불행히도 연소왕이 급사함으로 해서 악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연소왕의 뒤를 이은 혜왕과 악의의 자리를 노렸던 기겁이라는 위인들은 소왕과 악의가 몇 십년 동안 노력하여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공업을 하루아침에 말아먹고 만다는 내용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연나라는 연소왕이라는 영웅이 나타나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 원수를 갚을 수 있었지만 21세기의 한국은 오히려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1. 내란으로 혼란에 빠지는 연나라

연나라 상국 자지(子之)는 키가 팔 척이고 허리는 십위(十圍)1)에 우람한 체격이었으나, 행동은 재빨라 능히 손으로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 있었으며 달리기는 말과 같은 속도로 뛸 수 있었다. 자지(子之)는 역왕(易王) 때부터 상국의 자리에 있으면서 연나라의 정권을 오로지 해왔다. 이어서 연왕(燕王) 쾌(噲)가 뒤를 잇자 매일 주색에 빠져 오로지 즐거운 놀이만 찾으면서 조당에 임하여 정사를 돌보는 일을 싫어하였다. 이에 자지는 연나라의 왕위를 넘보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소대(蘇代)와 소려(蘇厲) 두 형제는 평소에 자지와 교분이 깊었기 때문에 제후들의 사자가 연나라에 들릴 때마다 자지가 어진 사람이라고 선전했다. 연왕 쾌가 소대를 시켜 제나라에 보낸 인질의 안부를 알아보게 하였다. 연나라에서 돌아온 소대를 향해 연왕 쾌가 물었다.

「내가 들으니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사람은 천하에 보기 드문 인재라 하던데, 제왕은 그와 같은 어진 신하를 데리고 있으니 곧이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지 않겠소?」

소대가 대답했다.

「불가합니다.」

「어째서 불가하다고 생각하오?」

「맹상군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일을 맡기지 않으니 어떻게 제왕이 패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과인이 맹상군과 같은 신하를 얻어 정사를 맡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오?」

「지금의 상국 자지(子之) 정사에 밝으니 그것은 곧 연나라의 맹상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왕 쾌가 자지(子之)에게 연나라의 모든 국사를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겨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연왕 쾌가 대부 녹모수(鹿毛壽)를 보고 말했다.

「역사상 수많은 군주들 중 어찌하여 유독 요(堯)와 순(舜) 두 임금만이 성군으로 숭앙을 받고 있는가?」

역시 자지의 일당인 녹모수(鹿毛壽)가 대답했다.

「요(堯)와 순(舜)을 성군이라고 칭하는 것은 요임금은 천하를 순임금에게 양보하고 순임금은 천하를 다시 우(禹)임금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독 우임금만은 어찌하여 임금의 자리를 자기의 아들에게 전한 것인가?」

「우임금도 처음에는 천하를 익(益)2)에게 선양하려고 하여 정사를 대리하도록 했으나 그 태자를 미처 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연고로 우임금이 죽자 우의 태자 계(啓)가 결국은 익(益)으로부터 천하를 빼앗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람들은 우(禹)의 덕이 요순(堯舜) 두 임금에 미치지 못하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과인이 나라를 상국 자지(子之)에게 선양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왕께서 선양을 하신다면 어찌 그 공덕이 요순과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연왕 쾌가 즉시 여러 신하들을 대거 모이게 한 후에 태자평(太子平)을 폐하고 왕의 자리를 자지(子之)에게 선양하겠다고 말했다. 자지가 짐짓 겸손을 가장하여 세 번을 사양하다가 선양의 뜻을 받아 들였다. 이어서 교외에 제단을 쌓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춘 자지는 규(圭)3)를 손에 들고 남면하여 왕이라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전혀 부끄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쾌는 신하의 반열에 서서 북면하여 절을 올리고 선양의 의식이 끝나자 별궁으로 가서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소대와 녹모수는 모두 상경에 제수되었다. 장군 시피(市被)가 마음속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즉시 본부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자지를 공격하려고 하자 수많은 백성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자지(子之)와 시피(市被) 양쪽의 군사들이 10여 일을 계속해서 싸워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나 결국은 시피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자지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녹모수가 자지에게 말했다.

「시피가 란을 일으킨 원인은 태자 평(平)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지가 시피의 말을 듣고 태자 평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였다. 태부(太傅) 곽외(郭隗)와 태자평이 미복(微服)으로 갈아입고 둘이서 같이 무종산(無終山)4)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평의 서제(庶弟) 공자직(公子職)은 연나라를 탈출하여 한나라로 망명했다. 연나라의 백성들은 하나 같이 자지를 원망했다.

2. 내란이 일어나 제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한 연나라

연나라에서 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제민왕(齊湣王)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광장(匡章)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 10만을 동원하여 발해만을 통하는 길을 이용하여 연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연나라 백성들은 자지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 모두가 음식물을 준비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환영하고 아무도 그 군사들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광장이 출병하여 하루도 지체함이 없이 50일 만에 연나라 도성에 당도하자 연나라 백성들이 성문을 열고 그들을 맞아 들였다. 자지(子之)의 일당은 거침없이 몰려오는 수많은 제나라 군사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지(子之)는 자기의 용력을 과신하여 녹모수(鹿毛壽)와 함께 성안의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의 넓은 사거리로 나가 제나라 군사들을 막으려고 했으나 연나라 군사들은 도망치기 시작하여 그 수효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녹모수는 싸움 중에 제나라 군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자지도 싸움 중에 몸에 중상을 입게 되었으나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여 맨손으로 100여 명의 제나라 군사들을 때려죽인 끝에 힘이 다하여 사로잡히게 되었다. 연왕 쾌(噲)는 별궁에 있다가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었다. 소대(蘇代)는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쳐 주나라로 갔다. 광장(匡章)은 연나라의 종묘(宗廟)를 모두 부셔버리고 연나라 부고(府庫) 안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실은 다음 함거에 가둔 자지와 함께 제나라 본국에 호송하게 하여 자기의 전리품을 제왕에게 바쳤다. 연나라 땅 사방 3천여 리 대부분은 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광장은 연나라에 도성에 머물면서 연나라에 속하는 성읍을 다스렸다.

주난왕(周赧王) 원년 즉 기원전 314년의 일어난 일이었다.

함거에 갇혀 송환되어온 자지(子之)를 자기 앞으로 끌고 오게 한 제민왕은 친히 그의 죄상을 열거한 후에 능지처참의 형에 처하고 그 고기로 젓을 담궈 여러 신하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자지가 연왕으로 재위한 기간은 겨우 일 년 남짓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왕위를 탐하여 나라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마저 잃게 되었다.

3. 죽은 천리마의 뼈

연나라 백성들은 비록 자지에게는 원한이 맺혀있기는 했지만 제왕(齊王)의 뜻이 연나라를 멸망시켜 제나라의 영토로 삼을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이어서 모두 뜻을 모아 무종산(無終山)에 숨어있던 태자평을 찾아 데려와 연왕으로 받들었다. 이가 연소왕(燕昭王)이다. 곽외(郭隗)는 연나라의 상국이 되었다. 그때 제나라가 연나라를 병합하여 강국이 되는 경우를 싫어한 조나라의 무령왕(武寧王)은 당시 한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공자직(公子職)을 맞이하여 연왕으로 앉히려고 했다. 무령왕의 명을 받든 악지(樂池)가 군사를 이끌고 태자직을 호송하여 연나라 경계에 당도했을 때 태자평이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악지는 태자평과 함께 조나라로 돌아갔다. 한편 연나라 상국 곽외는 격문을 써서 연나라 도성 안의 백성들에게 전하여 연나라를 수복하려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미 제나라에 항복한 지방의 여러 속읍(屬邑)들도 곽외가 전한 격문을 보고 일시에 제나라에 반하였다. 광장(匡章)이 연나라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제나라로 철수했다. 연소왕(燕昭王)이 연나라 도성에 입성하여 종묘를 수리하고 제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많은 폐물(幣物)로 어진 선비들을 초빙하려고 하면서 상국 곽외에게 말했다.

「선왕께서 당한 치욕스러운 일을 과인이 아침저녁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지혜로운 선비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와 함께 제나라로부터 당한 치욕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인이 온 몸을 바쳐 어진 사람들 받들려고 하니 선생께서는 오로지 과인을 위해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천거해 주십시오.」

「옛날에 군주 한 분이 그 시종관(侍從官)에게 천금을 주어 천리마를 구해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시종관이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길을 가던 도중에 길 가운데서 둥그렇게 모여서 탄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시종관이 탄식하는 이유를 묻자 그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살아 있을 때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었는데 지금 죽고 말았으니 이를 애석하게 생각하여 탄식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종관이 즉시 군주가 준 천금 중에서 오백 금을 주고 그 천리마의 뼈를 사서 배낭에 짊어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군주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죽은 말의 뼈다귀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너는 내가 준 황금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았느냐?’ 시종관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오백 금을 주고 산 이유는 그것이 천리마의 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을 주고 산 일은 세상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이한 일 중의 하나라서 사람들이 장차 이 일을 다투어 입으로 전하며 필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천리마라면 그 뼈도 귀한 가격으로 사는데 하물며 산 말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머지 않아 천리마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 년도 채 못 되었으나 그 군주는 천리마를 세 필이나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왕께서 천하의 어진 선비를 초청하시려고 하신다면 청컨대 이 곽외를 천리마의 뼈로 생각하시어 높이 받든다면 항차 이 외(隗)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기가 신보다 더 높이 대우를 받는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4.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부국강병을 꾀하는 연소왕(燕昭王)

그래서 연소왕은 특별히 곽외를 위해 별궁을 짓고 그 곳에 머무르게 한 후에 스승의 예를 갖추어 북면하여 가르침을 청했다. 또한 소왕은 한 자리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곽외를 대하기를 극진하게 모셨다. 다시 역수(易水)의 강변에 높은 누각을 지어 황금을 쌓아 놓고 사방의 어진 선비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라고 선전했다. 누각의 이름을 초현대(招賢臺)라고 부르고 다시 황금대(黃金臺)라고도 고쳐 불렀다.

이윽고 연왕이 어진 선비를 찾는다는 소식이 먼 지방까지 전해지자 조나라의 극신(劇辛)5), 주나라로 도망친 소대(蘇代), 제나라의 추연(騶衍)6), 위(衛)나라의 굴경(屈景) 등이 달려왔다. 연소왕은 그들을 모두 객경(客卿)의 벼슬을 제수하고 그들의 의견을 물어 국정을 수행했다.

한편 제민왕(齊湣王)이 연나라를 점령하고, 연왕 쾌(噲)를 스스로 자살하게 만들었으며, 다시 자지(子之)는 잡아와 처형하자 그의 위엄은 천하를 진동하게 되었다.

5. 마침내 악의(樂毅)를 얻은 연소왕.

한편 연소왕(燕昭王)은 연왕의 자리에 즉위한 이후로 밤낮으로 제나라에 당한 치욕을 갚을 생각으로 세월을 보냈다. 초상집에 친히 들려 문상을 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안부를 물으며 사졸들과는 같이 걸으며 동고동락을 하고, 지혜로운 선비들을 예를 갖추어 존대하니 사방의 호걸들은 모두 연나라로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그 중에 조나라 출신으로 이름이 악의(樂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곧 위문후(魏文侯) 때의 명장인 악양(樂陽)의 후예로 어렸을 때부터 병법을 논하는 일을 즐겨했다. 원래 악양은 중산국을 멸한 공로로 위문후로부터 영수(靈壽)7)에 봉해져 그 후손들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후에 조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이 기원전 295년 사구(沙邱)에서 일어난 변란으로 죽을 때 그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영수를 떠나 대량성(大梁城)으로 돌아와 살았다. 그 뒤 악의는 위(魏)나라로 들어가 소왕(昭王)을 받들었으나 소왕은 그를 신용하지 않았다. 연소왕(燕昭王)이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초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악의는 연나라로 들어가 벼슬을 구하려고 했다. 그는 즉시 한가지 계교를 내어 위나라로부터 사신의 임무를 맡아 연나라에 가게 되었다. 악의가 연소왕을 접견하고 그 앞에서 병법을 강론했다. 연왕은 악의가 현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연나라의 객경으로 삼으려고 했다. 악의가 겸양하며 감히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자 연왕이 말했다.

「선생은 조나라에 태어나서 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이제 연나라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선생을 객경으로 삼으려고 할 뿐입니다.」

「신이 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된 이유는 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대왕께서 보잘것없는 소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청컨대 제가 가족들을 불러와 그들을 인질로 삼아 연나라의 신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연소왕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악의를 상경 다음의 아경(亞卿)에 제수하고 그 지위를 극신(劇辛) 등의 다른 신하들 위에 놓았다. 악의는 그의 종족들을 모두 불러 연나라에 살게 하였다. 이후로는 악씨 종족들은 연나라 사람이 되었다.

5. 오국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는 악의

그때 국세가 강성한 제나라는 주변의 제후국들을 수시로 침범했다. 연소왕은 가슴속 깊이 자기의 뜻을 감추고 겉으로 들어내지 않으며 군사를 양병하고 백성들을 돌보면서 제나라에 대한 군사 행동에 들어갈 시기만을 엿보고 있었다. 이어서 제민왕이 맹상군을 내쫓고 백성들을 포학하게 다스리면서 제멋대로 정치를 하자, 제나라 백성들은 학정에 시달리게 되었다. 반면에 연나라는 십수 년 동안 휴식을 취하고 이어서 연소왕이 국정을 잘 보살펴 나라의 재정은 튼튼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은 수효는 늘어났고 병사들은 전쟁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전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왕은 악의를 불러 물었다.

「 과인은 제나라로부터 당한 선왕의 원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지 햇수로 어언 28년이 되었소! 나는 어느 날 아침 덧없는 인생을 갑자기 마감하게 되어 제왕의 배에 비수를 꽂아 이 나라가 옛날 당한 치욕을 갚지 못할까 걱정하며 밤을 지새며 살아왔소! 오늘 제왕이 교만하여 스스로의 힘만을 믿고서 밖으로는 제후들로부터 마음을 잃고 있어 지금이야말로 제나라를 멸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오. 과인은 온 나라의 국력을 기우려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벌려보려고 하는데 선생은 어떤 가르침을 주시겠소?」

「 제나라는 땅은 넓고 백성들의 수효는 많으며 그 군사들은 실전에 익숙하여 우리 연나라 혼자 힘만으로는 제나라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대왕께서 기필코 제나라를 정벌하실 마음을 갖고 계시다면 반드시 천하의 제후들과 힘을 합한 후에 도모하여야만 합니다. 오늘 연나라의 이웃 나라 중에 가장 친밀하게 지내는 나라는 조나라입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우선 조나라와 먼저 맹약을 맺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는 자연히 그 뒤를 따르게 됩니다. 또한 제나라에서 쫓겨난 맹상군(孟嘗君)은 위나라로 가서 상국의 자리에 있습니다. 맹상군은 제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힘을 합쳐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하면 위나라는 싫어할 이유가 없어 기꺼이 함께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나라와 합종을 맺고 그 힘을 합하여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멸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계책입니다.」

연소왕은 즉시 악의에게 부절을 주어 조나라에 가서 조왕을 설득하여 맹약을 청하게 했다. 악의는 우선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을 찾아가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자고 설득했다. 평원군은 연나라의 제의를 혜문왕(惠文王)에게 전하며 연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에 이득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혜문왕이 연나라와의 맹약을 허락했다. 그때 마침 진나라의 사자가 조나라에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악의는 진나라 사자에게도 열국이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게 되면 이로운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진나라의 사자가 돌아가 진소양왕에게 악의가 한 말을 전했다. 그때 소양왕은 강성해지는 제나라를 시기하고 있었고 또한 열국의 제후들이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제나라를 받들게 되는 경우를 두려워하여 다시 그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 진나라도 같이 제나라의 정벌전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위나라에는 극신(劇辛)이 사자로 가서 위왕을 알현한 다음 맹상군을 찾아가 연왕의 뜻을 전했다. 맹상군은 과연 군사를 일으켜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시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 같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기로 약조하였다. 이윽고 약속한 날이 되자 연왕은 나라 안의 모든 정예병사들을 동원하여 악의를 대장으로 삼아 제나라 정벌군을 일으켰다. 진나라는 백기(白起)를, 조나라는 염파(廉頗)를, 한나라는 포연(暴鳶), 위나라는 진비(晉鄙)를 대장으로 삼아 각기 일군(一軍)의 군사들을 이끌고 약속한 기한에 맞추어 당도하였다. 이어서 연왕은 악의로 하여금 오국의 군사들을 지휘하도록 하고 그를 상장군(上將軍)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악의가 지휘하는 다섯 나라의 군사들은 거침없는 기세로 제나라로 쳐들어갔다.

다섯 나라의 연합군이 제나라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제민왕은 스스로 제나라의 본군을 거느리고 대장 한섭(韓聶)과 함께 출전하여 제수(濟水)의 서쪽에 진을 치고 적군을 막으려고 하였다. 악의가 사졸들 앞에 서서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하게 돌진하자 연나라 군사들은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나라 진영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사국의 장병들도 용기 백배하여 연나라 군사들의 뒤를 따라 제나라 군사들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삽시간에 붕궤(崩潰)되어 그 시체가 들판에 가득 차고 흐르는 피는 강물을 이루었다. 한섭은 악의의 동생 악승(樂乘)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오국의 연합군은 승승장구하여 제나라의 패잔병의 뒤를 추격하자 제민왕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제나라의 도성 임치성(臨淄城)으로 후퇴하였다. 제민왕은 임치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하면서 초나라에 사자를 급파하여 구원군을 청하면서 그 대가로 옛날에 초나라에서 빼앗은 회수 이북의 땅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백성들과 군사들을 점검하여 성벽 위에 올라가게 하여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게 하였다. 진(秦), 위(魏), 한(韓), 조(趙) 등의 네 나라는 승세를 타고 각기 길을 나누어 제나라의 변경에 있던 성들을 점령하였다.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 군사들은 거침없이 제군(齊軍)의 뒤를 추격하여 제나라 영토 깊숙이 진격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위엄과 덕으로 선무했다. 제나라의 성들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모두 떨어져 그 세는 마치 파죽지세(破竹之勢)라 할만 했다.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의 대군이 이윽고 임치성(臨淄城) 밑에 당도하자 제민왕은 크게 두려워하여 문무 대신 수십 명과 함께 임치성의 북문을 열고 아무도 몰래 도망쳤다.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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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08-12-05
[일반] 화씨벽 이야기2-화씨벽으로 인해 곤욕을 당해 원한을 품게 되는 장의

2. 盜璧之寃(도벽지원) - 화씨벽으로 인해 곤욕을 당해 원함을 품게 되는 장의(張儀) - 그후 화씨벽은 초나라 왕실의 가장 귀중한 보물이 되어
운영자 06-10-06
[일반] 은어술로 제선왕의 비가 된 천하의 추녀 종리춘 이야기

제선왕(齊宣王)이 총신 왕환(王驩)등에 정사를 모두 맡겨 버리고는 사냥과 주색에만 몰입하자, 전기(田忌)가 여러 번에 걸쳐 간했다. 그러나 선왕
양승국 06-05-07
[일반] 화씨벽 이야기1. 변화가 화씨벽을 바치고 다리를 잘리다.

<화씨벽이 나왔다는 옥인암> 1. 獻玉刖足(헌옥월족)-변화가 화씨벽을 바치고 발이 잘리다. 춘추시대 초기에 초나라 사람 변
양승국 05-07-07
[일반] 화씨벽 이야기-3. 소진의 격심술에 의해 진나라로 들어가는 장의

3. 被激往秦(피격왕진) 소진의 격심술에 의해 진나라로 들어가는 장의 소진이 합종책에 대해 유세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조숙후(趙
운영자 06-09-02
[일반] 화씨벽 이야기4. 회벽유죄(懷璧有罪)의 화를 면한 목현

4. 회벽유죄의 화를 면한 목현 한편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이름이 목현(繆賢)이라는 내시를 총애하고 있었다. 혜문왕은 그에게 내시
운영자 06-09-02
[일반] 화씨벽 이야기5-완벽귀조의 정신을 구현한 인상여

5. 완벽귀조(完璧歸趙)의 정신을 구현한 인상여 한편 목현에게 화씨벽을 감정해 준 옥공(玉工)이 일이 있어 진나라에 들렸다가 진소왕(秦昭
운영자 06-09-02
[답변] 화씨벽 이야기6-민지의 회맹에서 나라의 위신을 세운 인상여

<지금의 하남성 민지현 관내 서쪽이다.> 6. 민지의 회맹에서 조나라의 위신을 세운 인상여 진소양왕은 화씨벽의 일로 해서 마음속에
운영자 06-09-02
[일반] 화씨벽 이야기7-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7. 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조혜문왕은 민지의 회맹에서 돌아와 인상여를 상경(上卿)으로 임명하고 그의 직위를 염파보다 높
운영자 06-09-02
[일반] 화씨벽 이야기8- 후기

그림은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제후군에 참여했다가 낙양의 우물에서 화씨벽으로 만든 옥쇄를 발견한 손견을 그린 그림이다. 손견은 그 옥쇄로 인해
운영자 06-09-02
[일반] 지금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전국 때 연제 두 나라 이야기1

전국시대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연(燕)과 제(齊) 두 나라 이야기 이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 때인 기원전 3세기 초엽에 있었던 일로 지금의 한국과
양승국 05-04-22
[일반] 지금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전국 때 연제 두 나라 이야기2

六. 제나라를 초토화시켜 연나라의 원한을 갚은 악의 악의는 연나라에서 출병하여 제나라를 공략한지 6개 월 만에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을
운영자 06-09-30
[일반] 송양지인(宋襄之仁))

패업(霸業)에 뜻을 두었다가 초나라에게 사로잡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만 송양공(宋襄公)은 큰 치욕을 당해 원망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
양승국 05-03-21
[일반] 사광(師曠) 3. - 악사 사광이 진평공에게 거문고를 던지다.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 술이 얼큰해진 진평공(晉平公)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군주보다 더 즐거운 지위는 없구나! 군주의 말은 그
양승국 05-03-01
[일반] 사광(師曠)2 - 망국의 노래, 미미지악(靡靡之樂)

열국의 제후들은 당진의 평공으로부터 사기궁(虒祁宮)의 낙성식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아 들고 비웃지 않는 사람은 비록 한 명도 없었으나, 그
양승국 05-03-01
[일반] 음악으로 길흉을 점쳤던 사광(師曠)이야기-1

제후의 군사들 행렬이 축아(祝阿)에 이르러 제후들에게 주연을 베풀었을 때 평공은 초나라의 군사들과 싸우는 것을 매우 걱정하여 제후들과 술
양승국 05-03-01
[일반]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 제위왕(齊威王)1)이 왕의 자리에 새로 올랐으나 매일 주색과 풍악소리에만
양승국 0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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