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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2 18:26:274371 
화씨벽 이야기7-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운영자
일반

7. 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조혜문왕은 민지의 회맹에서 돌아와 인상여를 상경(上卿)으로 임명하고 그의 직위를 염파보다 높게 두었다. 인상여가 자기 보다 높은 직급을 차지하자 염파는 화를 내며 말했다.

“ 나는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큰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헛되이 혀만 놀려 별로 애쓴 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그가 나보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인상여라는 사람은 내시 나부랭이의 문객 노릇을 했던 출신이 미천한 자인데 내가 어찌 그의 밑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인상여가 내 눈에 띄우기만 한다면 내 결코 그를 살려두지 않으리라!”

인상여는 염파가 한 말을 전해듣고 조회를 열 때마다 병이 들었다고 참석하지 않아 염파와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그가 매우 겁이 많다고 하면서 서로들 모여 앉아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가 밖으로 외출을 나갔는데, 그때 마침 염파도 외출을 나왔다. 염파가 탄 수레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인상여는 황급히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골목길로 몰게 한 다음 염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큰길로 나왔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화를 내며 서로 의논을 하더니 이윽고 상여를 찾아가 항의하였다.

“ 우리들이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대감 밑으로 들어와 문객이 된 것은 대감은 당대의 대장부라 생각하고 서로 사모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 대감과 염파 장군은 동열의 작위에 직급은 오히려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염파 장군은 매 번마다 대감에게 욕을 하고 다님에도 대감은 복수하려는 마음을 먹기는 고사하고 조회에도 나가지 못하다가 오늘은 외출 나갔다가 골목길에 숨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대감께서는 그리도 염파를 무서워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들은 대감과 같은 겁쟁이 밑에서 문객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오를 대감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이 집을 떠날까 합니다.”

인상여가 문객들을 간곡하게 만류하며 말했다.

“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인상여의 문객들이 물었다.

“ 우리들은 천박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청컨대 대감께서 그 연유를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인상여 “ 여러분들은 염파장군이 진왕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십니까?”

문객들 “ 그렇지 않습니다.”

인상여 “ 무릇 진왕의 위세는 천하의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여는 진왕을 그의 궁정 뜰에서 야단을 쳤으며 그의 신하들을 욕보였습니다. 이 상여가 비록 재능이 없고 아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 유독 염파 한 사람만을 두려워하겠오? 강포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군사를 보내어 침략하지 않은 것은 다만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이 싸운다면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인데, 진나라가 그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 틈을 이용하여 조나라를 침공할 것입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파장군을 피하기만 한 것은 나라의 일을 중하게 여기고 사사로운 원한을 더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그의 말에 탄복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여와 염파의 문객들이 뜻밖에 주막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양쪽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비가 붙게 되었다. 인상여의 문객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 우리 인상여 대감은 나라의 일을 더 중하다고 여겨 염장군에게 양보하고 있다. 우리들도 마땅히 주인의 뜻을 본받아 염장군의 문객들에게 양보하겠다.”

그래서 염파의 문객들은 더욱 교만해졌다. 그때 마침 하동인(河東人) 우경(虞卿)1)이라는 사람이 조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상여의 문객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조왕을 만나 말했다.

“ 대왕께서는 지금 조나라의 신하들 중 가장 신임하고 있는 사람은 인상여와 염파가 아닙니까?”

조왕 “ 그렇소!”

우경 “ 신이 듣기에 옛날의 조나라 조정에는 본받을만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가득하여 서로 삼가하며 공사에 힘써 마음을 합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믿고 계시는 두 사람의 중신들은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물과 불같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조나라의 사직에 좋지 않는 일입니다. 무릇 인상여와 그의 편에 속한 사람들은 더욱 양보만 하고 있고, 이와는 반대로 염파와 그에 속한 사람들은 인상여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염파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더욱 교만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인상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감히 그들의 기세를 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정에 일이 있어도 서로 같이 의논하지 못하고 장차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되어도 서로 구하려고 하지 않으니, 신은 대왕을 위해 마음속으로 걱정한 끝에 염파와 인상여를 서로 화해시켜 대왕을 도우려고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왕이 우경의 청을 허락하였다. 우경은 즉시 염파의 집을 방문하여 먼저 염파가 세운 공로를 칭송하였다. 염파가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우경 “ 조나라에 끼친 공로를 말한다면 장군만한 사람은 없으며 도량이 크기를 말한다면 인상여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염파가 듣더니 얼굴색을 바꾸어 화를 내며 말했다.

“ 그자는 한갓 겁 많은 필부에 불과할 뿐이라 혓바닥만 나불거려 공명을 취한 자인데 어찌 도량 운운하는 것입니까?”

우경 “ 인상여는 겁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도량이 매우 큰 사람입니다.”

우경이 이어서 인상여의 문객들이 하는 말을 염파에게 상세하게 들려주며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장군이 만약에 조나라에 몸을 두지 않기로 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기왕에 조나라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면 두 사람의 대신들 중 한 사람은 마냥 양보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의 대신은 마냥 싸움만 하고 있으니 내가 걱정하는 것은 결국은 이름을 떨치게 되는 것은 장군이 아니고 인상여 대감일 것이요.”

염파가 듣고 크게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 선생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인상여 대감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염파는 우경을 먼저 인상여에게 보내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이어서 자기는 윗통을 벗어 육단(肉袒)2)의 몸으로 몽둥이를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이르자 큰 소리를 쳐 사죄의 말을 했다.

“ 비루한 사람의 천박하고 좁은 소견으로 상국의 넓고 큰 도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렇듯 교만하게 행세했으니 나는 죽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염파는 인상여의 집 앞뜰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인상여에게 죄를 청했다. 인상여가 소식을 듣고 급히 집안에서 뛰쳐나와 염파를 일으키며 말했다.

“ 우리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주군을 모시고 있어 사직을 지키고 있는 신하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장군은 능히 이제 나의 뜻을 헤아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장군께서 번거롭게 나에게 죄를 청하는 것입니까?”

염파 “ 소인은 성격이 천박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또한 포악하기조차 합니다. 대감의 너그러운 은혜를 입었으니 참으로 내가 부끄러워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염파가 인상여를 붙들고 눈물을 훌렸다. 인상여도 역시 염파를 붙들고 같이 울었다. 염파가 말했다.

“ 오늘부터 대감과 생사를 같이하는 결의형제를 맺어 비록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변치 않겠습니다.”

염파가 먼저 인상여에게 절을 올리자 상여도 같이 절을 하여 답하였다. 이어서 인상여는 술을 내와 잔치를 벌려 염파를 극진히 대하며 서로 즐겁게 놀다가 헤어졌다. 후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맺은 교우관계를 일컬어 문경지교(刎頸之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무명씨가 시를 지었다.




引車趨避量誠洪(인차추피량성홍)

수레를 골목으로 몰아 몸을 피한 인상여의 도량은

참으로 넓다 하겠거니와




肉袒將軍志亦雄(육단장군지역웅)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 육단을 행한 염파도 역시 영웅이라!




今日紛紛競門戶(금일분분경문호)

지금의 사람들은 분분하게 서로 앞다투어

자기 세력을 다투기에 바쁘니




誰將國計量胸中(수장국계량흉중)

그 누가 나라를 위해 가슴에

웅대한 계책을 지니고 있겠는가?




조혜문왕은 우경에게 황금 백일(百鎰)을 하사하고 상경(上卿)의 벼슬을 내렸다.







1) ▶우경(虞卿)/ 전국 때 사람으로 이름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조효성왕(趙孝成王)을 찾아가 유세하여 상경에 임명되고 지금의 산서성 평륙현(平陸縣)인 우(虞) 땅을 봉지로 받았다. 이에 우경이라 한 것이다. 진과 조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장평대전(長平大戰) 직전에 우경은 조왕에게 많은 보물과 함께 사자를 초(楚)와 위(魏) 두 나라에 보내 회유하여 조나라 측에 끌어들여 진나라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조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서 진나라가 공격해오자 조나라는 장평의 싸움에서 지고 그 군사 45만을 잃었다. 진나라는 승세를 타고 계속 진격하여 조나라의 도성인 한단을 포위했다. 초와 위 두 나라가 구원군을 보내자 진나라는 포위망을 풀고 물러갔다. 조왕이 진나라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조나라의 땅을 떼어 바치고 진나라와 강화를 맺으려고 하였다. 우경은 온 힘을 다하여 진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했다. 조왕이 자기의 뜻을 꺾고 우경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했다. 후에 위제(魏齊)와의 우의를 지키기 위해 조나라의 만호에 달하는 봉읍과 재상의 인장을 버렸다. 원래 위제는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진나라의 재상 범수(范睢)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범수가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자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위나라에 위제의 목을 요구했다. 위제가 위나라에서 달아나 조나라로 들어가 평원군의 집에 숨었으나 진나라가 조나라를 위협하여 위제를 잡아 보내라고 했다. 조왕은 군사를 평원군의 집에 보내 사로잡으려 하자 위제는 다시 평원군의 집에서 나와 우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경은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들어가 신릉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신릉군이 만나주지 않자 위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경은 그 일로 해서 대량성(大梁城)에서 고난을 겪었다. 저서에 <우씨춘추(虞氏春秋)> 15편이 있다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2) ▶육단(肉袒)/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적국의 군주에게 항복할 때 혹은 사대부가 그 상대에게 죄를 청할 때 행하는 의식으로 윗통을 벗고 목에는 밧줄을 메고 입에는 구슬을 물고 손에는 양을 끌고 적장 앞으로 나와 승리한 쪽의 처분에 따르겠다는 뜻을 표시하는 요식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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