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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2 18:28:084917 
화씨벽 이야기8- 후기
운영자
일반


그림은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제후군에 참여했다가 낙양의 우물에서 화씨벽으로 만든 옥쇄를 발견한 손견을 그린 그림이다. 손견은 그 옥쇄로 인해 제후군을 이탈하여 강동으로 돌아가 황제의 뜻을 키웠다.





8. 화씨벽 후기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진나라의 성 15개와 바꾸기 위해 화씨벽을 들고 갔다가 진시황이 화씨벽만 취하고 성을 할양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목숨을 걸고 진나라의 소양왕을 속여 화씨벽을 보전함으로써 ‘완벽(完璧)’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을 앞서 말한 바 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중국은 진나라의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어 조나라의 소유였던 화씨벽도 진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진시황이 공인에게 명하여 화씨벽을 갈아 옥새를 만들라고 하자 이사(李斯)가 “ 受命天下(수명천하), 旣壽永昌(기수영창)”이라는 전자(篆字) 체의 여덟 자를 새겨 넣었다.




☛화씨벽에 새겨 넣은 영창(永昌)이라는 단어는 약 1800년 후에 조선의 선조가 그의 어린 아들에게 사용함으로 해서 광해군의 비극을 잉태하게 하여 인조반정의 구실을 제공하고 결국은 조선을 병자호란이라는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이 후로 화씨벽은 황제의 명을 상징하는 전국(傳國)의 옥쇄로 사용되게 되었다. 진시황 28년 즉 기원전 219년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지 3년이 되는 해다. 시황이 순수를 나갔다가 동정호를 배를 타고 건너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풍랑이 크게 일어 진시황이 타고 있던 배가 전복하려고 했다. 이에 진시황이 명하여 화씨벽으로 만든 옥쇄를 호수 속으로 던져 넣자 파도가 이내 잠잠해 졌다. 진시황 36년 기원전 211년에 시황이 다시 순수를 나가 그 일행이 화음(華陰)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이 시황의 행열을 가로막으며 시황의 수행원들에게 “ 이 것을 조룡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이다.”라고 말한 다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그 옥쇄는 다시 진나라 궁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음 해에 진시황이 죽고 이어서 이세의 뒤를 이은 자영(子嬰)이 항복하면서 한고조 유방에게 바쳤다.




화씨벽으로 만든 옥쇄는 한나라 황제들에게 전국(傳國)의 보기(寶器)로 전해지다가 서한 말기에 왕망(王莽)이 유씨들을 대신하여 황제의 위에 찬탈할 때 왕도(王導)와 소헌(蘇獻)이 옥쇄를 빼앗아 왕망에게 바치려고 하였다. 이에 분격한 효원황태후가 옥쇄를 두 사람을 향해 던져 그 모서리가 부셔졌다. 후에 금을 녹여 부셔진 모서리를 떼웠다.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 유수(劉秀)가 의양(宜陽) 땅에서 옥쇄를 얻어 한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무대가 삼국시대에 이르러 화씨벽을 갈아 만든 옥쇄는 후한 말 영제(靈帝 : 재위 168-189년) 때 일어난 십상시(十常侍)의 란으로 인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십상시의 란에 뒤이어 동탁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휘두르자 그를 토벌하기 위해 지방의 군벌들이 정벌군을 일으켰다. 동탁은 군벌들의 세력에 위협을 느끼고 낙양을 버리고 외부의 적을 막는데 유리한 지형을 갖고 있던 장안으로 황제와 함께 천도했다. 토벌군의 선봉을 맡았던 손견(孫堅)이 낙양성의 궁궐로 진입했다가 우물 안에서 옥새를 발견하였다. 옥쇄를 얻은 손견이 황제가 될 욕심으로 토벌군에서 이탈하여 자기의 본거지인 강동으로 돌아가갔다. 후에 손견이 유표와 싸우다가 전사하자 옥새는 그 아들 손책에게 전해졌다.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표를 공격한 손책은 오히려 싸움에서 패전했다. 이에 손책은 옥쇄를 원술에게 바치고 군사를 얻어 강동에 오나라를 세웠다. 옥쇄를 얻은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다가 유비와의 싸움에서 지고 죽었다. 옥쇄는 그의 조카 원윤(袁胤)에게 전해졌으나 원술의 부하로 여겨지는 서구(徐璆)라는 자가 원윤과 원술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옥쇄를 빼앗아 조조(曹操)에게 바쳤다. 조조가 그 공로로 서구를 고릉태수에 봉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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