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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05 11:16:206149 
소설 이목입신(移木立信)-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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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목입신(移木立信)

위(魏)나라 재상 공숙좌(公叔痤)1)는 병이 들어 앓고 누워 있으면서도 위(衛)나라로 부터 건너 온 공손앙(公孫鞅)을 위왕(魏王)에게 추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젊어서부터 배워온 형명학(刑名學)에도 밝을 뿐 아니라, 머리가 여간 좋지 않거든!'

 그러고 있을 때 마침 위혜왕(魏惠王)이 문병을 왔다. 왕이 먼저 공숙좌의 후계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었다.

 “재상의 병이 악화되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도 생기면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공숙좌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좌우를 물리친 뒤 왕께 은밀하게 말했다.

 “신의 집에 중서자 (中庶子)2)로 있는 공손앙이라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천하의 기재(奇才)이지요. 대왕께서는 그에게 나라 일을 크게 맡기면 우리 위(魏)나라의 앞날은 창창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가 현명하다지만 이제 겨우 스물 몇 살 밖에 안 되는 아이를 어떻게 재상 자리에 앉히겠소.”

 왕이 공손앙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자 공숙좌는 더욱 안달이 났다.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그를 높이 들어 쓰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런 젊은이를 믿고 큰 자리를 준다는 게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는구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국경 밖으로 내보내지 마십시오!”

 “그건 또 무슨 뜻이오?”

 “등용하지 않으시려거든 죽이시라는 얘깁니다.”

 “그가 그토록 대단하오?”

 “우리 위나라에게는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글쎄요…, 어쨌건 잘 생각해서 처리하겠소.”

 왕이 돌아간 후 공숙좌는 공손앙을 급히 불렀다.

 “잘 듣게. 왕께서는 내가 죽은 뒤 재상이 될만한 인재를 추천하라 하시기에 나는 주저 않고 자네를 추천했네.”

 “그랬더니요?”

 “왕의 표정을 살피니 내 추천을 들어주는 것 같지가 않았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내 생각은, 군주를 먼저 하고 신하를 뒤로해야 된다는 소신 때문에, 자네를 등용하지 않겠다면 죽이라고 했어.” 

“설마요?”

 “왕은 그러마고 하면서 떠났으니, 자네도 죽기 전에 어서 이 나라를 떠나란 말일세!”

 그러자 공손앙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려 비실비실 웃기까지 했다.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왕께서 대감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재상으로 임명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죽이라는 말씀인들 듣겠습니까?”

 “설마가 사람을 죽이는 법이네!”

 그러나 공손앙은 위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한편 위혜왕은 조정 회의가 열렸을 때 좌우 신하들을 돌아보며 공숙좌의 병세를 전했다.

 “ 재상의 병은 몹시 무거워 보였소. 자신이 죽은 뒤의 나라 일을 걱정해 재상을 천거하라 했더니, 글쎄 서른도 안 된 공손앙을 추천하지 않겠소! 어찌 올바른 정신으로야 그런 말을 하겠소!”

 신하들도 왕과 더불어 함께 웃었다. 공숙좌의 건의를 완전한 노망으로 본 것이다.  그때 진(秦)나라 군주로 새로 선 효공(孝公)은 평소에 품고 있던 부국강병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인재를 초빙한다는 포고문을 천하에 내어놓고 있었다.

 -위대한 선조 목공(穆公)께서 이룩하셨던 위업을 잇고, 잃어버린 동쪽의 땅 역시 되찾으려 한다. 이에 온 천하에 현명한 인재를 구하는 방을 붙이는 바이다!-

 공손앙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보따리를 싸면서 생각했다.

 '옳지 됐다! 진나라 군주는 법치주의에 입각한 부국강병책을 단행해 국세를 신장시키려 하는구나! 그렇다면 형명학을 공부한 내가 진나라에는 적격이다!'

 서쪽의 진나라에 도착한 공손앙은 우선 어떤 식으로 진나라 군주를 만날지에 대해 생각에 골몰했다.

“효공이 총애하는 경감(景監)의 식객으로 들어가 그 군주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해야되겠다.”

 공손앙의 계획은 오래 지연되지는 않았다. 경감에 의해 공손앙은 쉽게 진효공을 만날 수가 있었다.

 오전에 왕궁으로 들어갔던 공손앙이 오후가 채 되지 못한 시간에 쫓겨 나오는 것을 보고는 경감은 서둘러 왕궁으로 들어가 효공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대가 추천한 그자 말이오? 무어 쓸 만한 말이 한 마디도 없이, 허망스럽기 이를 데 없는 장광설만 늘어놓다가 도망치듯 가버렸소.”

 집으로 돌아온 경감은 숙사에 누워있는 공손앙을 흔들어 깨우며 화난 목소리로 추궁했다.

 “도대체 그대가 대왕께 무얼 어떻게 무슨 말씀을 올렸기에 그토록 탐탁찮게 여기시게 하였소?”

 부스스 일어난 공손앙은 귀찮은 듯이 말했다.

 “제딴엔 제왕의 도를 열심히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졸기만 하시는 걸 보니 알아듣지 못하시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 물러나왔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사흘이 못 가서 저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진효공은 정작 닷새 만에 공손앙을 다시 불렀다. 그런 공손앙이 왕궁으로 들어간 지 한 식경도 안 되어 다시 쫓겨나왔다.

 이번에는 경감이 대놓고 공손앙을 꾸짖었다.

 “오늘은 또 무슨 허튼 소리를 하였기에 그토록 바쁘게 쫓겨 나왔소?”

 경감의 꾸짖음에도 공손앙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오늘은 왕도(王道 : 夏殷周 3대의 聖王들이 행한 정치의 道)를 설득했는데 대왕께선 역시 마음에 드시지 않았나 봅니다. 계속 하품만 하셨거든요. 그렇지만 저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효공은 사흘 후에 공손앙을 다시 불렀다.

 공손앙은 오전에 입궐하더니 이날따라 오후 늦게야 퇴궐했다. 공손앙이 나오는 걸 본 경감은 서둘러 어전으로 들어갔다.

 “역시 공손앙은 쓸모가 없지요?”

 “아니오. 아주 쓸 만하오. 더불어 이야기할 만큼 쓸모 있는 손님이오!”

 숙사로 공손앙을 찾아간 경감은 그에게 물었다.

 “대체 오늘은 그대가 군주께 무슨 말씀을 드렸기에 그토록 흡족해 하시오?”

 “패도(覇道: 武力으로 정치하는 覇者의 道)를 가지고 설명해 드렸더니 몹시 관심을 가지시더군요. 이제는 군주의 마음을 알았으니, 다음에 뵙게 될 때는 완전히 사로잡아 놓겠습니다.”

 공손앙은 의기양양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 후에 그는 다시 궁으로 불려 들어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경감은 며칠 동안이나 공손앙을 만날 수가 없었다.

 경감이 그를 다시 만난 건 열흘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그대는 대체 무엇을 말씀드렸기에 그토록 대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소?”

 “처음에는 제가 대왕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도를 실행하면 하은주(夏殷周) 삼대에 비견될 만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제왕의 도를 실천하겠다고 하셨소?”

 “아니오. '너무나 길고 멀어서 나는 기다릴 수가 없네'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개 현명한 군주란 자기 일대 동안에 천하에 이름을 날려야 하는데 어찌 답답하게 수십 수백 년을 기다리는 정치를 해야 한단 말인가'하고 탄식하더군요.”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렸소?”

 “단대(單代)에 이루는 부국강병책을 말씀드렸더니, 그토록 좋아하실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열흘 동안이나 대왕께 부국강병책을 강론했단 말이오?”

 “그런 셈이지요. 그러나 제가 그 책임은 모면해야 하겠기에, '부국강병책만으로는 하은주(夏殷周) 시대의 임금의 덕화(德化)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하고 못을 박았지요.”

 “어쨌거나 잘 되었소.”

 얼마 있지 않아 공손앙은 진효공에 의해 크게 등용되었다.




 그런데 공손앙이 국법을 고치려고 서두르자 진효공은 천하 사람들이 자신을 비방할까봐 더럭 겁을 내었다.

 “국법을 이토록 엄하게 고쳐도 정작 과인에게 돌아오는 후환은 없겠소?”

 진효공이 겁먹은 소리를 하자, 공손앙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신 없는 행위에는 공명이 따르지 않고, 확신 없는 사업엔 성공도 없습니다. 또한 남보다 뛰어난 행위를 하면 원래가 세상의 비난을 받기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탁견을 가진 자는 반드시 오만하다는 소리도 듣게 됩니다.”

 “정말 그렇소?”

 “어리석은 자는 일의 성과에 대해 예측할 수 없지만, 슬기로운 인물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성과를 미리 압니다.”

 “옳은 말이오.”

 “백성들에게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으나, 일의 성과는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지고한 덕을 논하는 자는 속설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성과를 이루는 자는 범인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聖人)은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옛 법에 구애받아 모범으로 삼지 않으며, 적으나마 백성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구태여 구례(舊禮)를 쫓지 않는 법입니다.”

 공손앙의 간곡한 설득에 진효공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좋소! 그대로 해 보시오!”

 그러나 대신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감룡(甘龍)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인은 백성의 풍속을 고치지 않고서 교화(敎化)하며, 지혜로운 자는 법을 고치지 않고 다스립니다. 백성의 풍습에 따라 교화하면 애쓰지 않고도 공을 이루며, 옛 법에 따라 다스리면 관리들도 익숙하고, 백성들도 편안해 합니다.”

 감룡의 반대에 효공의 의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자 공손앙은 즉각 감룡에 반발하고 나섰다.

 “평범한 사람들은 옛 풍습만 좋아하고, 천박한 학자들은 배운 바에만 빠집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법을 지키게 하기에는 알맞으나 법을 넘어선 문제들은 함께 논할 수가 없습니다. 하은주 3대는 예(禮)가 서로 같지 않고도 왕자(王者)가 되었으며, 춘추의 오백(五伯)3)은 법제가 같지 않고도 모두 패자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법의 제재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예를 고치고, 못난 사람은 예에 구속됩니다.”

 감룡과 한패인 두지(杜摯)도 목소리를 높였다.

 “백 배의 이로움이 없는 한 법을 고쳐서는 안되며, 열 배의 효과가 없으면 기(器:즉 禮)를 바꿔서도 안됩니다. 고법(古法)을 본받으면 잘못이 없고, 고례(古禮)를 따르면 허물이 없습니다.”

 공손앙이 다시 나섰다.

 “세상 다스리는 길에 어찌 한 가지 방법밖에 없겠습니까. 그 나라에 편리하면 옛 법을 본받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은(殷)의 탕왕과 주(周)의 무왕은 고법을 따르지 않고서도 왕업을 이루었고, 하의 걸왕(桀王)과 은의 주왕(紂王)은 예를 바꾸지 않고서도 멸망했습니다.”

 공손앙은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고로 옛법에 반한다 해서 비난할 것도 아니며, 고례를 따른다 해서 굳이 칭찬할 일도 못됩니다.” 

드디어 진효공이 결단을 내렸다.

 “좋소. 공손앙의 생각대로 하겠소!”

 진효공은 공손앙을 좌서장(左庶長)4)으로 삼고 법을 바꾸는 영(令)을 확정케 했다.




 그런데 공손앙은 법령을 마련하고서도 아직 공포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법령을 믿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묘안이 없을까?…옳지! 그렇게 하면 되겠군!'

 공손앙은 3장(三丈:약 9m)이나 되는 나무기둥을 도성 저자 남문 옆에다 세우고는 방을 붙였다.

 -이 나무기둥을 북문 옆으로 옮겨 놓은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겠다.-

 물론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지켜 믿게 한다(移木之信)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이상하게만 생각하고 아무도 그것을 옮겨가는 자가 없었다.

 '역시 아무도 믿지 않는군! 그러면 작전을 달리 써 볼까?'

 공손앙은 현상금을 대폭 올렸다.

 -이 나무기둥을 옮겨서 북문 곁에 세우는 자는 50금을 주겠다.-

 백성들은 여전히 방을 흘낏거리며, 심지어 어진 백성들을 농락하는 짓거리라면서 욕까지 퍼부어대며 지나쳐 갔다.

 그런 중에, 잔뜩 술 취한 백성 하나가 이 방목을 보았다.

 “무어야? 북문에다 옮기면 50금씩이나 그냥 준다고? 이거 사람 누굴 놀리나? 그래도 혹시 모르지. 정작 50금을 주는지. 설사 현상금을 못 받게 될지라도… 가만 있자! 통나무를 옮겼다는 죄로 곤장을 50장씩이나 얻어 맞지나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횡재 터지는 거다!”

 취한 백성이 술기운으로 그 나무기둥을 옮겼다. 북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리들에 의해 그 백성은 곧 체포되었다.

 “그 보라고! 나무 기둥 하나 옮겼대서 50금씩이나 그냥 주는 관청이 어디 있겠나. 그걸 믿고 옮긴 그놈이 바보지. 천하의 바보지. 죽도록 얻어맞고 나와도 싸지 싸!”

 백성들은 그런 식으로 쑤군거렸다. 그런데 관청으로 끌려갔던 그 술꾼이 싱글벙글 웃으며 나왔다.

 “어? 저 양반 반죽음되어 나오는 줄 알았더니, 좋아서 입이 째지게 웃으며 나오네! 너무 맞아 미쳐버렸나?”

 사람들이 술꾼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떻게 됐소?”

 한 사내가 물었다.

 “뭐가요?”

 “남문에서 북문으로 나무기둥을 당신이 옮기지 않았소?”

 “그랬었지요.”

 “끌려가서 얻어맞지 않았소.”

 “무슨 소리요? 50금이나 상을 받아 나오는 중인데. 어디, 구경 좀 해 보겠소?”

 50금을 얻어 가지고 나온 술꾼의 자루 속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너무 부러운 나머지 탄식했다.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구나!”

 그 소문이 한참이나 퍼지고 난 다음에야 공손앙은 새 법령을 공포했다.

 신법(新法)이 백성들에게 시행된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런데 새 법령이 불편하고 까다롭다면서, 국도로 올라와 폐기를 호소하는 자가 1천을 헤아렸다. 공손앙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한다?'

 바로 그 즈음이었다. 태자가 범법을 했다.

 '됐다! 바로 이거다!'

 공손앙은 즉시 어전회의에 참석했다.

 “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태자일 지라도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합니다!”

 효공은 난감해 했고, 대신들이 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그 무슨 소리요! 태자는 주공의 후사요. 그래서 처벌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그렇다면 편법이라도 써야 합니다.”

 “어떻게?”

 “태자를 잘못 인도한 태자의 소부(少傅:太子의 보좌관) 공자 건(虔)을 처형하고, 태자의 스승 공손가 역시 태자를 잘못 가르친 죄가 있으니, 경형(黥刑)5)에 처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시겠다면 새 법령은 폐기 처분하십시오. 저는 책임을 지지 않겠습니다!”

 효공도 속수무책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소! 공손앙의 주장대로 시행하시오!”

이윽고 상앙이 제정한 변법이 전국에 반포되어 시행에 들어갔다.

1) 백성들을 십(什) 또는 오(伍)로 짜서 통반(統班)을 만들어 서로 감시하게 만들고, 그 죄에 대해 연좌하게 한다.

2) 죄지은 자를 고발하지 않는 자는 허리를 베는 형에 처하며 그 죄를 고발하는 자는 전장에 나가 적의 수급을 베어 온 자에게 내리는 것과 같은 상을 준다.

3) 동료의 죄를 숨긴 자는 적에게 항복한 자에게 주는 것과 같은 형벌에 처한다.

4) 아들 두 사람을 두었음에도 분가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세금을 두 배로 올린다.

5) 군공이 있는 자에게는 그 공의 비율에 따라 상등의 벼슬을 주고 사사로운 싸움을 한 자는 각각 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내린다. (여기서 사사로운 싸움이란 부족간의 벌어지는 분쟁이다. 당시는 국가보다는 부족이 상위개념이라 부족간에 싸움이 국가가 벌리는 전쟁보다도 우선이었다. 상앙은 이 싸움을 금한 것이다.)

6) 농사짓고 길쌈을 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아 곡식과 피륙을 많이 바친 자에게는 부역을 면제한다. 상공업을 일삼는 자와 게을러서 가난한 자는 모두를 붙잡아서 노예로 만든다.

7) 종실일지라도 군공이 있지 않으면 심사하여 공족의 족적(族籍)에서 제외한다. 높고 낮은 작위와 녹봉의 등급을 분명히 하여 각각 등급과 차례가 있게 하여 점유하는 전택, 신첩과 의복의 제도는 그 집의 신분에 따라 차례를 정한다.

8) 공이 있는 자는 현달하고 영화스럽게 하며 공이 없는 자는 비록 부유하더라도 화려하게 살 수 없다.

 법은 엄하고 철저하게 시행되었다. 대신들은 공손앙의 법령 시행을 눈여겨 보며 공포에 떨었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살기를 느끼는 듯했다.

 그렇지만 진나라 백성들은 새 법령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시행된 지 10년이 경과하자 마음으로 복종하게 되었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제 것이 아니면 줍지 않았고, 산에는 도적이 사라졌다. 생활은 풍족해지고, 전쟁에는 용감하였으며, 사사로운 싸움에는 법의 엄격으로 겁을 먹었으며, 그런 이유들로 나라는 잘 다스려졌다.

처음 변법이 시행되자 법령이 불편하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그때는 법령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공손앙이 말했다.

“ 이런 자들이야 말로 백성들의 교화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다.”

공손앙은 그들 모두를 변방으로 추방하여 살게 했다. 그 후로는 진나라 백성들 중 상앙의 변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진효공은 공손앙의 작위를 올려 대량조(大良造)6)로 삼았다. 그 해에 공손앙은 장군이 되어 병사를 이끌고 위(魏)나라 안읍(安邑)을 포위해 항복시켜 그의 세력은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공손앙의 권위는 더욱 일취월장이었다. 3년 후에는 토목공사를 일으켜 새 법령을 써서 걸어놓는 궁궐문인 기궐(冀闕)7)을 세우고 , 또 함양(咸陽)에 새 궁궐을 지었다. 진나라는 옹(雍:섬서성) 땅에서 함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농지를 개간해 경지간의 경계를 처음으로 분명히 했으며 부세를 공평하게 하고, 도량형도 통일했다. 이런 식으로 공손앙의 새 법령 시행이나 개혁정책은 미친 말처럼 그 속력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들이나 공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손앙의 강력한 정책 시행은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주(周)의 천자도 제후국인 진나라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천자는 진효공에게 종묘의 제사를 지낸 고기를 보냄으로써 패자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천자가 제후에게 제사를 지낸 고기를 하사하는 것은 패자로 인정한다는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주변의 제후국들은 모두 진나라의 패권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모두가 공손앙의 덕택이었다.

 즈음에 동방의 강국 제(齊)나라가 위(魏)나라를 쳐서 그 군대를 계릉(桂陵)과 마릉(馬陵)에서 크게 무찌르고 위나라의 태자를 사로잡고, 장군 방연까지 전사함으로써 위나라의 세력이 크게 타격을 입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듣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공손앙이 진효공에게 말했다.

 “우리 진나라와 위나라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의 뱃속에 있는 병과 같습니다. 사람이 이기느냐 병이 이기느냐 입니다. 말을 바꾸면, 위나라가 진나라를 삼키지 않으면 진나라가 위나라를 삼켜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니까 경의 말은 우리 진나라가 위나라를 먼저 공략하자는 얘기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를 공격하면 버텨내지 못하고 우리 진나라가 황하와 준령의 요해를 차지해 동쪽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왕께서 제왕의 위업을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진효공은 공손앙의 제안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오! 그대가 장군이 되어 위나라를 치시오!”

 공손앙이 장군이 되어 위나라로 쳐들어가자, 위에서는 공자 앙(卬)이 장군이 되어 진군과 맞서려 출전하고 있었다.

 공손앙은 하나의 계략을 마련해 놓고는 위의 공자 앙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와 그대는 전날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겠소. 왕명에 의해 출전해 서로 적국의 장군이 되었지만 옛정을 생각하면 차마 공격을 할 수가 없소이다. 차제에 우리 서로 만나 옛정을 더듬고 즐겁게 먹고 마시며 화약(和約)을 맹세한 다음, 서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답을 주십시오.’

 위나라로서는 제나라에 격파당한 후, 그 후유증으로 진나라와 싸워서도 이길 승산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었다. 위의 장군 공자 앙은 진의 공손앙 제안에 응할 도리밖에 없었다. 결국 공자앙은 상앙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맹약을 끝내고 유쾌하게 서로 술잔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공손앙이 매복시켜 두었던 진의 무장병이 위의 공자앙을 덮쳤다.

 “이게 뭐냐!”

 공자 앙은 발버둥을 쳤지만 속절없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미안하오. 맹약을 믿고 찾아온 그대가 어리석을 뿐이오!”

 여세를 몰아 위나라 군사를 맹공해 들어간 진의 군사에 의해 위군은 철저하게 격파되었다. 장군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위나라 입장에서는 서쪽의 진나라나 동쪽의 제나라가 두려울 뿐이었다. 불안해진 위혜왕은 황하 서쪽의 땅을 갈라 진나라에 바치고는 강화하면서 옛날 일을 후회했다.

 “전날 재상 공숙좌는 죽기 전 공손앙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지 말든가. 높이 들어 쓰지 않겠거든 반드시 죽이라며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과인은 그런 부탁을 예사롭게 들었다. 그로 인해 결국 위나라는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다!” 

공손앙이 대공을 세우고 개선하자 진왕은 그에게 오(於:하남성) 땅과 상(商:商州의 동쪽) 땅 등 15읍에다 봉하면서 상군(商君)이라 불렀다.

 공손앙이 진의 재상이 된 지 10년이 흐르는 동안 그의 빛나는 공로만큼이나 진의 종실과 대신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와 원망 역시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공손앙은 자신이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량(趙良)이라는 학식 높은 선비가 있었다. 공손앙이 그를 만났을 때 무척 거드름을 피며 주문했다.

 “맹란고(孟蘭皐) 선생한테서 그대 얘기를 많이 들었소. 수준높은 인사들 끼리의 사귐은 당연한 행복이 아니겠소. 선생과 사귀기를 청하오.”

 그런데 조량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저는 싫습니다.”

 놀란 쪽은 당연히 공손앙이었다. 천하의 선비들이 모두 사귀기를 원해 몰려들 오는데, 조량은 이쪽에서 부탁해도 냉정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어째서입니까?”

 “공자 말씀에, 현명한 자를 밀어 주군으로 받드는 자는 번영하고, 불초한 자들을 모아 왕노릇하는 자는 몰락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불초하기 때문에 감히 사귀는 명령을 받들 수가 없습니다.”

 “그 뜻은 내가 불초하다는 얘기가 아니오!”

 공손앙이 화난 목소리로 고함쳐도 조량은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 없이 대꾸했다.

 “자격 없는 자가 그 지위에 있는 것을 탐위(貪位)라 하고, 받아야 할 명예가 아닌데도 그 명예를 입는 것을 탐명(貪名)이라 했습니다. 제가 교제를 거절하는 이유는 귀하가 불초하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제가 귀하의 뜻을 받아들임으로써 혹시 탐위·탐명하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공손앙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둘러치고 있지만, 결국은 내가 진나라를 다스린다는 자체가 불만스럽다는 얘기 아니겠소!”

 “반성하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일을 강(彊)이라 합니다. 성인이신 순(舜)임금의 말에도 스스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높아진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에게까지 물을 필요도 없이 대감께서도 순임금의 도리를 따라야 하겠지요.”

 “하지만 선생께서 모르고 계시는 나의 공적부터 말해 보지요. 원래 우리 진나라의 풍습이 서쪽 오랑캐의 것과 같았소. 예를 들면 부자(父子)가 한 여자를 공유하고 산다든가, 남녀의 구별도 없다든가, 하여튼 그러저러한 더러운 풍습을 법으로 분명하게 고쳐 놓았지요. 뿐이겠소. 문화가 진보한 노(魯)나 위(衛)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궁문도 세웠소. 선생께서는 내가 진을 다스리는 것이 목공 때의 재상 백리해(百里亥)보다 현명하다고 생각되지 않소?” 

“천 마리의 양가죽도 한 마리 여우 겨드랑이 가죽보다는 값이 싸지요. 천 사람이 굽실대는 말도 한 사람의 거리낌 없는 직언만 못합니다. 은의 주왕(紂王)은 신하들의 말을 봉쇄함으로써 멸망했고, 주의 무왕은 직언을 받아들였기에 번창했습니다. 만약 대감께서 무왕이 그르다 생각하지 않고, 나를 주살하지만 않으시겠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정직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역시 공손앙은 영리한 인물이라, 조량의 말 속에서 한 가지라도 유익한 말을 얻어들을 요량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속하지요. 외양을 장식한 말은 꽃이고, 지극한 말은 열매이며, 괴로운 말은 약이고, 달콤한 말은 독이라고 했던거요. 선생께서 바른말만 해 주신다면 그건 나에겐 약이겠지요.”

 그제서야 조량은 안심하고 말문을 열어 놓았다.

 “백리해를 예로 들겠습니다. 그는 초 땅의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진목공이 백리해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초청했으나 그는 진(秦)나라로 갈 여비조차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진으로 가는 여행자에게 자신을 팔아 그의 노예가 되어 남루한 옷을 입고 따라갔습니다. 목공은 한 해쯤 뒤에야 소를 치고 있는 누더기옷의 백리해를 알아보았습니다. 몇 마디 대화를 해 보고는 하루 아침에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습니다

 공손앙이 갑자기 조량의 말을 잘라들었다.

 “그렇지만 백리해와 내가 무슨 상관이오?”

 “그런 백리해를 재상으로 등용해도 세상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는 사실에 얘기의 초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소.”

 “백리해는 진의 재상이 된 지 육칠 년이 지나자 동쪽으로 정나라를 치고, 진(晋)의 군주를 세 번이나 세우고, 한 번 초나라의 재난을 구해주고 국내를 교화하니 파인(巴人:사천 성의 백성)이 공물을 가져오고, 은덕을 제후에게 베푸니, 팔방의 오랑캐까지 귀복했습니다. 서융(西戎)의 현인 유여까지도 소문을 듣고 와 문을 두드리며 뵙기를 간청했습니다.”

 “나도 그만한 공훈은 세웠다고 보오.”

 “더 들어보십시오. 백리해는 진의 재상이 되고서 아무리 피로해도 수레에 앉지 않았고, 더워도 덮개를 씌우지 않았습니다. 호위수레를 거느리지 않았고, 무장 호위병도 없었습니다. 그의 공로와 명예는 기록에 올라 부고(府庫)에 보존되고, 덕행은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백리해가 죽자 진나라의 남녀들은 눈물을 흘리고,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절구질하는 아낙들은 방아타령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백리해의 덕망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덕이라?”

 “그런데 대감께서는 진군(秦君)을 처음 뵐 때 왕의 총애하는 신하 경감을 통해서였고, 또 경감의 집에 편히 머무르면서 그를 주인으로까지 섬겼습니다.”

 “굳이 명예스럽지 못한 행위라고는 볼 수가 없지요.”

 “어쨌건 대감은 진의 재상이 되어 백성의 이익을 일삼기보다는 장대한 궁문부터 세웠습니다.”

 “그것을 공적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가 없지요.”

 “또한 태자의 사(師)와 부(傅)를 처형 또는 경형으로 수치스럽게 만들고, 가혹한 형벌로 백성들을 살상했습니다. 이것은 남의 원한을 사고, 자신에게 재난을 불러들이는 일이 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재상의 교화가 군주명보다 더 지독하고, 재상의 처분이 군주의 칙어보다 더 빨랐습니다. 게다가 대감이 세운 제도는 도리에 어긋났으며, 바꾼 법령도 이치에 어긋나니, 결국 그것은 교화라고도 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건 선생의 견해겠지요.”

 “ 대감께서 상군(商君)에 봉해진 이후로는 마치 임금처럼 남면(南面)하여 과인이라 칭하며, 날마다 하는 일이란 게 진나라 공자들의 탈법이나 감시하고 규탄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시경'에 보면 '쥐한테도 체통이 있는데, 사람으로서 예가 없겠나. 인간에게 예가 없다면, 차라리 일찍 죽기라도 하지'라고 씌어졌습니다.”8)

 조량의 공손앙에 대한 질책은 계속된다.

 “이 시에 비추어 보면, 대감은 자신이 자행하고 있는 행위로 인해 하늘이 준 수명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너무 심한 말씀이오!”

 “공자 건은 코를 베인 형을 당한 사실을 부끄러이 여겨 벌써 8년 동안이나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귀하께선 축환을 사형에 처하고 공손가를 경형에 처했습니다.”

 “모두 법을 어겼기 때문이오.”

 “'일시(逸詩)'에 보면, '인심은 얻어서 일어나고, 인심을 잃어서 망한다네'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들 중에서 대감은 몇 가지 사례가 인심을 얻을 만한 일들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되묻겠소. 법이 느슨할 때 나라의 기강인들 선다고 생각하시오?”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대감께선 외출할 때 뒤따르는 수레가 수십 량이고, 창칼로 무장한 힘센 무사 수백이 배승(陪乘)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그토록 삼엄한 경비를 세우고서도 한 가지라도 꺼림칙하게 느껴지면 대감께서는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서경(書經)'에 보면, '덕을 믿는 자는 번창하고, 힘을 믿는 자는 망한다'고 적혔습니다. 귀하가 아무리 위험을 방비하고자 하나 제가 보기엔 그 위태로운 상태가 아침 이슬처럼 보일 뿐입니다.”

 실상 공손앙은 말대꾸는 하고 있으면서도 속으로 슬슬 밀려드는 두려움은 속일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께선 내가 어떻게 처신하기를 바라오?”

 “장수하시기를 바란다면 제 말을 들으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습니다.”

 “어떻게요?”

 “우선 상·오땅의 15개 읍을 공실에 반환하고 전원으로 은퇴하여 화초에 물주며 자연과 더불어 여유자적하게 지내십시오. 그러시기 전에, 동굴에 숨어 사는 현인을 세상에 나오도록 추천하고, 노인을 모시고, 고아를 기르고, 부모를 공경하는 유덕한 자에게는 알맞은 지위를 주고, 게다가 이런 이들을 존중한다면, 그나마도 은퇴하는 귀하의 마음은 많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아직도 상·오땅의 부를 탐내고, 진의 정치를 전횡하게 되면 반드시 만인으로부터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입게 될 것입니다. 대감께선 지금 아무리 재상의 지위에 있다지만 어차피 빈객(외국인)의 처지이십니다. 진군께서 갑자기 서거라도 하실 경우 대감의 파멸은 잠깐이란 얘깁니다. 어찌 대감을 죄 주려는 자가 적다하겠습니까.”

 조량은 돌아갔다.

 공손앙은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화사한 햇살 아래로 천하는 태평성대였으며, 자신을 우러러 보는 백성들의 눈빛은 온화하기만 했다.

 '조량은 바보다!'

 공손앙은 그의 충고를 일소에 부쳤다.




그리고 얼마 후에 진효공이 노환으로 죽자 태자가 진나라의 새로운 군주로 즉위했다. 이가 진혜공이다. 옛날 자기의 스승이 상앙에 의해 처형당하고 묵형에 처해진 것에 원한을 품고 있던 진혜공은 상앙을 반역죄로 체포하여 거열형에 처하고 그 삼족을 멸했다.




1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위혜왕 10년인 기원전 361년에 죽었다. 성은 희(姬)이고 씨는 위(魏)이고 이름은 좌(痤)이다. 위나라 공족 출신으로 위무후(魏武侯) 때 전문(田文)의 뒤를 이어 위나라 재상이 되었다. 왕착(王錯)과 함께 오기를 모함하여 오기가 초나라로 달아나게 했다. 위혜왕 8년 기원전 362년 그는 위나라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회수(澮水) 북안에서 한(韓), 조(趙) 두 나라의 연합군을 대파하고 조나라 땅으로 진공하여 피뢰(皮牢)의 땅을 점령했다. 같은 해 진나라가 위나라 땅인 소량(少梁)을 공격해 오자 공손좌는 군사를 이끌고 다시 출전하여 싸웠으나 진나라 군사들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 후에 진나라로부터 석방되어 돌아와 위나라의 재상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공손앙(公孫鞅= 商鞅)은 오래 전부터 그의 가신이었다. 그가 병이 들어 눕게 되자 위혜왕이 찾아와 그의 후임을 물었다. 공손좌는 자기의 후임으로 공손앙을 추천하고 다시 말하기를 그를 쓰지 않을 경우는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할 것이라고 진언했다. 양혜왕은 공손앙을 쓰지도 죽이지도 않았다.

2) 주나라 때 서자(庶子)라는 관제로 주로 제후와 경대부(卿大夫)들의 서자들의 계율과 교리(敎理)를 관장했다. 나라에 일이 있을 때 그들은 모두 태자에게 귀속되어 그 지시를 받았다. 전국 때 각 제후국들은 이를 본따 중서자라는 관제를 만들어 운용했다.

3)춘추오패(春秋五覇)를 말한다. 즉 제환공, 송양공, 진목공, 진문공, 초장왕으로써 춘추시대 천자를 등에 업고 제후들을 호령한 다섯 제후들을 일컫는다. 일설에는 송양공과 진목공 대신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을 말하기도 한다.

4)진나라 관직의 명칭. 진나라의 관직은 모두 20 등급으로 나뉘었는데 좌서장은 그 중 10등급의 직위로써 군사의 일을 관장하였다

5) 묵형(墨刑)이라고도 하며 죄수의 얼굴에 글자를 바늘로 떠서 그 위에 먹을 메기는 오형(五刑)중의 하나인 형벌

6) 전국시대 초기에 진나라 군정(軍政)의 최고 책임자였다. 뒤에 작위로 바뀌었는데 진나라 20등급의 작위 중 16번째다.

7) 옛날 궁문의 양쪽에 설치했던 관루(觀樓)로써 법령을 기록하여 발표했던 곳이다. 기(冀)는 기(記)와 통한다. 상위(象魏) 혹은 상궐(象闕)이라고도 한다. 상(象)은 법률을 의미하고 위(魏)는 높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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