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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2 18:17:084883 
화씨벽 이야기-3. 소진의 격심술에 의해 진나라로 들어가는 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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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3. 被激往秦(피격왕진) 소진의 격심술에 의해 진나라로 들어가는 장의


소진이 합종책에 대해 유세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조숙후(趙肅侯)가 소진을 불러 입조케 하여 긴급한 일에 대해 상의하려고 하였다. 소진이 황망 중에 달려와 조숙후를 알현하였다. 조숙후가 소진에게 말했다.

“ 조금 전에 변방을 지키던 관리에게서 급보를 받았습니다. ‘ 진(秦)나라 상국 공손연(公孫衍)이 군사를 대거 발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장수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그 군사 4만 5천 명을 참수했습니다. 위나라는 할 수 없이 하수(河水) 북쪽의 땅에 있는 10여 개의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고 화의를 맺었습니다. 공손연은 다시 군사들의 진공 방향을 돌려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러하니 지금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소진은 조숙후의 말을 듣고 놀라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 진나라의 군사들이 만약 조나라에 쳐들어온다면 조후(趙侯)는 필시 위나라와 똑같이 진나라에 땅을 바치고 화의를 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추진하는 합종책(合縱策)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소진은 ‘ 사람이 급하게 되면 빠져나갈 방도가 생기는 법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내고는 일단은 조숙후에게 안심하라고 이른 다음 그 순간을 모면하고 물러 나온 다음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다. 생각을 정리한 소진이 즉시 태연한 표정을 짓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조숙후에게 읍을 올린 다음 말했다.

“ 이 진(秦)이 살펴보건대 진나라 군사들은 위나라 군사들과의 싸움으로 피로하여 당장은 조나라에 쳐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조나라에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신에게는 그들이 물러가게 할 별도의 계책이 있으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조숙후 “ 선생께서는 잠시 이곳에 머무르시어 진나라 군사들이 과연 쳐들어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시고 열국에 유세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조숙후의 말은 소진의 뜻한 바를 정확히 맞추었다고 볼 수 있었다. 소진은 분부대로 당분간 조나라에 머물겠다고 한 다음 그 앞에서 물러 나왔다.

소진이 상부(相府)에 돌아오자 문하의 심복 중이 이름을 필성(畢成)이라는 사람을 밀실로 불러 분부하며 하였다.

“ 나에게는 동문수학한 옛날 친구가 있다. 이름은 장의(張儀)라고 하고 자(字)는 여자(餘子)라고 하는데 대량(大梁) 사람이다. 내가 너에게 황금 천근을 줄 것이니 너는 장사꾼으로 분장하고 이름은 고사인(賈舍人)으로 바꾼 다음 위나라의 대량(大梁)으로 가서 장의를 찾도록 해라. 네가 그를 만나게 되거든 내가 일러준 대로 행하라. 그리고 그를 데리고 조나라에 당도하거든 그때는 또 내가 별도로 일러준 대로 행하라. 너는 매사에 조심하여 나의 뜻한 바를 그르치면 안될 것이다.”

고사인(賈舍人)이 소진의 명을 받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의를 찾기 위해 위나라 대량성(大梁城)을 향해 달려갔다.

고사인(賈舍人)이 장의를 만나기 위해 조나라를 출발하여 위나라에 당도했을 때는 장의가 초나라에서 돌아온 지 이미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 때 장의도 소진이 조숙후(趙肅侯)에게 유세를 한 결과 그 뜻을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소진을 한번 방문해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장의가 밖에 볼일이 있어 문을 나서는데 그의 집 대문 밖 거리에서 수레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고사인(賈舍人)을 만나 서로 수인사를 나누던 중에 그가 조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의가 고사인에게 물었다.

“ 소진(蘇秦)이라는 사람이 조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었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는데 과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고사인 “ 선생은 어떤 분이십니까? 저희 나라 상국과 옛날에 교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어찌하여 물으시는 것입니까?”

장의가 조나라 상국으로 있는 소진이 자기와는 동문수학하며 결의형제를 맺은 사이라고 말해주었다. 고사인이 듣고 말했다.

“ 선생이 진정 소상국(蘇相國)과 그렇게 막연한 사이라면, 어찌하여 조나라에 한번 들러 상국(相國)을 만나시지 않으십니까? 상국께서는 필시 선생을 조후에게 천거해 줄 것입니다. 마침 저의 장사 일이 끝나 조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만일 선생께서 저의 미천한 신분을 개의치 않으신다면 원컨대 선생과 함께 이 마차를 타고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장의가 흔쾌히 허락하고 고사인을 따라 조나라로 가기로 했다. 이윽고 장의가 탄 고사인의 수레가 조나라 도성인 한단성(邯鄲城) 교외(郊外)에 이르자 고사인이 장의를 향해 말했다.

“ 저의 집은 도성 밖에 있는데 제가 집에 볼일이 있어 잠시 헤어져야 되겠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시면 각 성문 주위에는 여관이 많이 있어 멀리서 온 손님들이 편안히 묶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잠시 머무르시고 계시면 제가 집안의 일을 보고 몇 일 후에 뵈러 오겠습니다.”

장의가 수레에서 내려 고사인과 작별인사를 한 다음 헤어져 성안으로 들어가 여관을 잡고 그 곳에서 유숙했다.

다음 날, 장의가 명패를 하나 만들어 조나라의 상부(相府)에 들러 소진의 접견을 신청하려고 했다. 소진은 미리 상부(相府)의 문을 지키는 하인들에게 절대로 외부의 손님을 안으로 들여보내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해 놓았다. 장의가 5일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그의 접견을 청하는 명패를 상부에 접수시킬 수 있었다. 소진은 자기의 일이 너무 많이 밀려 있다고 하면서 장의와의 접견 일을 별도로 정해서 통고하겠다고 하인을 시켜 알려왔다. 장의는 다시 몇 일 더 기다렸으나 소진을 만날 수가 없어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어 위나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여관의 주인이 돌아가려는 장의를 붙들고는 말했다.

“ 선생께서 이미 상부(相府)에 상국의 접견을 청하는 명패를 접수시켜 놓고 아직 그에 대한 통고를 받지 못했는데 가버리신다면, 만일 상국께서 찾으시기라도 한다면 제가 어떻게 대답하라고 벌써 가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비록 반년이나 일년이 걸린다 할지라도 상부의 통고를 받지 않고는 감히 이곳을 떠나시면 안될 것입니다.“

장의가 마음속으로 고민을 심히 하다가 문득 고사인이 생각나서 그에 관해 여관주인에게 물었으나 그에 대한 행적도 전혀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일이 더 지나서 장의는 명패에 이만 돌아간다는 내용을 써서 상부에 접수시켰다. 소진이 장의가 쓴 명패의 내용을 보고 사람을 보내 다음 날 만나겠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장의가 여관주인에게 의복과 신발을 빌리고는 이윽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상부로 가서 소진과의 접견을 기다렸다. 소진이 먼저 의관을 정제하고 위엄을 갖춘 다음 당상(堂上)에 좌정하고 중문을 열어 자기와의 접견을 청한 손님들을 들어오게 하였다. 장의가 상부(相府)에 들어와 소진이 당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계단을 통해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장의를 제지하며 말했다.

“ 상국께서 아직 공무가 다 끝나지 않았으니 손님께서는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장의가 계단 밑에 서서 기다리며 눈을 들어 당 앞을 쳐다보니 소진을 배알하기 위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관속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에 대한 접견이 끝나자 다시 여러 사람이 줄을 이어 소진 앞으로 나아가 자기들의 업무를 품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상에서 소진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 나를 찾아온 손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좌우에 서있던 시종들이 장의를 향해 말했다.

“ 상국께서 선생을 부르고 계십니다.”

장의가 의관의 옷깃을 바로 하고, 소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를 맞이하며 자리를 권할 것을 기대하며 계단을 통하여 당상으로 올랐다. 그러나 장의의 생각과는 달리 소진은 자기 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의가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고 소진 앞으로 나가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올렸다. 소진이 자리에 일어서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어 답례를 하면서 장의에게 말을 건넸다.

“ 여자(餘子)는 그 동안 무양하셨는가?”

장의가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어떻게든 응대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아무 말도 못했다. 소진이 좌우의 시종들에게 명하여 점심을 내오게 하고는 장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 공사가 너무 다망하여 자네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지금 너무 시장한 듯 보이니 일단 간단한 식사를 한 다음에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기로 하세!”

소진이 좌우의 시종들에게 명하여 당하에 자리를 준비하여 식사를 내오게 하였다. 소진은 당상에 그대로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그 요리는 진수성찬으로 식탁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당하의 장의에게 내온 식탁에는 고기와 채소 각기 한 접시와 현미로 지은 밥 한 공기에 불과하였다. 처음에는 밥상을 물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던 장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에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배가 매우 허기가 진 상태였고, 더욱이 지금까지 여관에 체제하면서 그 주인에게 진 빛이 적지 않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저 오늘 소진을 접견하여 바라는 것이라고는, 비록 그의 천거에 힘입어 조나라에서 벼슬은 얻지 못하더라도, 얼마간의 비용을 얻어 여관의 외상 밥값을 갚고 남은 돈으로 돌아갈 노자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마치 ‘ 처마가 낮은 집에 들렸는데, 누구인들 머리를 숙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1)’ 라는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처지였다. 이윽고 장의는 어쩔 수 없이 수치심을 가슴에 묻고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다가 눈을 들어 소진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술잔과 접시가 식탁 위에 즐비하게 놓여있고 그 남은 음식을 좌우에 있던 시종들에게 상으로 나누어주는 음식만 해도 장의가 먹은 음식보다 훨씬 양도 많았고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장의의 마음속에는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다른 한편으로는 울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자 소진이 좌우를 시켜 자기의 말을 장의에게 전하게 했다.

“ 손님을 이곳으로 모셔라!”

장의가 눈을 치켜 뜨고 살펴보니 소진은 식사하기 전에 했던 것처럼 거만하게 자리에 앉아서 장의가 올라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의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당상으로 뛰어 올라가 큰 소리로 소진을 향해 꾸짖었다.

“ 계자(季子)야! 나는 네가 옛날 친구를 잊지나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먼길을 마다 않고 이렇게 너를 찾아왔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까지 욕보이는 것이냐? 동문수학하고 결의형제를 맺은 옛날의 친구의 정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

소진이 듣고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

“ 자네의 재주로 보아 나는 자네가 나보다 먼저 뜻을 얻은 것으로 알았지, 이렇게 곤궁한 처지에 있는 줄은 몰랐네! 내가 어찌 자네를 조후(趙侯)에게 천거하여 자네를 부귀하게 만들 만한 능력이 없겠는가 만은 내가 걱정하는 것은 자네의 포부와 재능이 쇠퇴하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천거한 내가 그 허물을 뒤집어쓰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라네!”

장의 “ 대장부가 스스로 노력하여 부귀를 취해야지 어찌 너 따위에게 천거를 받겠느냐?”

소진 “ 자네는 능히 스스로 부귀를 취할 능력이 있다하면서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보자고 했는가? 내가 자네와 동문수학한 정을 생각해서 황금 한 홀(笏)2)을 내주겠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때 노자에 보태 쓰도록 하게나!”

소진이 말을 끝내고 좌우에게 명하여 금덩이를 내와 장의에게 주도록 했다. 장의가 분을 참지 못하고 금덩이를 땅 위로 팽개쳐버리고 노기발발하여 소진의 부중(府中)에서 물러 나왔다. 소진도 역시 장의를 만류하지 않았다.

장의가 여관에 돌아와 보니 자기가 자던 방에는 자기의 침상과 덮을 것만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것들은 모두 밖에다 내 놓았다. 장의가 그 연고를 물으니 여관 주인이 대답했다.

“ 오늘 선생께서 상국을 접견하셨으니 필시 잠자리를 넓히시고 더 좋은 음식을 청하실 것 같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짐을 밖으로 내 놓은 것입니다. ”

장의가 여관 주인의 말을 듣고 머리를 가로 저으며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않으면서 탄식하는 소리만 연속 질러 대었다.

“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로다!”

장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의복과 신발을 벗어 여관주인에게 반납했다. 여관주인이 물었다.

“ 상국이 선생과 동문수학한 사이라면서 어째서 경솔하게 이렇게 의관과 신발을 돌려주는 것입니까?”

장의가 주인의 소매를 붙잡고 옛날에 소진과 동문수학하며 결의형제를 맺으며 우정을 나누며 지냈으나 오늘에 이르러 그가 자기를 대했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여관의 주인이 말했다.

“ 상국께서 비록 선생에게 오만하게 대했다고는 하나, 상국의 지위는 높고 권세는 막중하여 예의에 크게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겠습니다. 또한 선생에게 황금 한 홀을 내렸으니 그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습니까? 선생께서 그 금덩이를 받아 가지고 와서 저에게 진 빚을 갚고 나머지 황금으로는 고향에 돌아가는 노자로 쓰시면 되었을 것을 구태여 그렇게 내동댕이치실 필요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장의 “ 제가 한 때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금덩이를 땅에다 던져버려 지금 저의 수중에는 무일푼이라 이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여관의 외상값 문제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옛날에 자기를 조나라까지 태워다 준 고사인(賈舍人)이라는 사람이 여관 문을 열고 안으로 달려와서 장의와 서로 수인사를 나눈 다음 말했다.

“ 본의 아니게 오래 동안 찾아 뵙지 못해 선생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선생은 그 사이에 소상국(蘇相國)을 이미 접견하셨습니까?”

장의가 고사인의 말을 듣자 다시 가슴에 맺혀있던 화가 머리끝까지 다시 뻗쳐 여관 방안 있던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소진을 향해 욕을 해대었다.

“ 그 각박하고 의리 없는 도적놈에 대해서는 다시 입에 올리지 마시오.”

고사인 “ 선생의 말씀이 매우 과격하신데 어찌하여 이렇듯 화를 내시는 것입니까?”

여사의 주인이 장의가 소상국을 접견했던 일의 전말을 장의를 대신하여 상세하게 설명하며 말했다.

“ 오늘 지금까지 밀린 여관비도 갚지 못하고, 또한 노자도 없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고사인 “ 원래 제가 선생을 부추겨 이곳까지 오시게 만들어 결국은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당하게 했으니 이것은 즉 제가 선생에게 누를 끼친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옵건대 선생을 대신하여 여관의 밀린 방값과 밥값을 대신 갚고 수레를 준비하여 선생을 고향으로 모셔다 드리고 싶은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의 “ 제가 비록 고향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빈손이라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습니다. 이번에 진나라에 가서 유세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그곳에 갈 수 있는 노자가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고사인 “ 선생이 진나라에 가셔서 유세를 한다고 하시니 혹시 진나라에도 같이 공부한 친구나 아니면 형제분들이 있는 것입니까?”








장의 " 진나라에는 아는 사람이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천하의 일곱 나라 중에 오로지 진나라만이 가장 강성한 나라입니다.진나라의 힘이라면 조나라를 궁지에 몰아 널 수 있습니다. 제가 진나라에 가서 다행히 임용되어 뜻을 얻는다면 내가 소진에게 당한 복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오."




고사인 " 선생이 만약에 다른 나라로 가시겠다면 제가 그 뜻을 받들 수가 없겠으나, 진나라로 가시겠다면 제가 마침 그 나라에 가서 친척을 찾아야 됨으로 지난번처럼 저와 함께 수레에 같이 타고 서로간에 말동무나 해가며 간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의가 고사인(賈舍人)의 말을 듣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 세상에 이렇듯 높은 의인이 계시니 제가 족히 소진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에 못 이겨 죽음에 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두 사람은 결의형제를 맺었다. 고사인(賈舍人)은 밖에 수레를 대령해 놓고 여관으로 들어가 장의를 대신해서 밀린 여관비를 계산한 다음 장의와 같이 수레에 올라 서쪽의 진나라를 바라보고 출발했다. 길을 가던 중에 고사인은 장의를 위해 의관과 복식을 포함하여 종복에 이르기까지 장의가 필요한 것은 모두빠짐없이 돈을 지불하여 구해 주며 그 비용에 대해서는 추호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이 진나라에 당도하자 다시 고사인이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진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을 모시고 있는 총신들에게 재물을 바쳐 장의의 이름을 알렸다.






그때 혜문왕은 옛날에 찾아온 소진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던 참이라 좌우의 총신들이 천거를 하자 즉시 장의를 입궐하라 하고 몇 마디 말을 나눠 본 다음 그 자리에서 객경(客卿)으로 임명한 다음 제후들과의 관련된 일을 맡아보도록 했다. 장의가 진나라에 임용되는 것을 본 고사인은 작별의 인사를 올렸다. 장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내가 참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 그대의 도움을 입어 결국은 진나라까지 와서 벼슬을 얻고 몸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재서야 비로소 그대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렇듯 서둘러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고사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 선생의 재능을 알아본 것은 소인이 아니라 바로 소상국(蘇相國)입니다."






장의가 크게 놀라며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물었다.





" 그대의 황금과 비단으로 내 노자로 충당했는데 어찌하여 소상국(蘇相國) 운운하는 것이오?"






고사인 " 소상국께서는 오랜 노력 끝에 가까스로 합종책(合縱策)을 제창하여 그 뜻을 이루려는 순간에 왔는데, 만일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게 된다면 상국의 합종책이 깨지게 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진나라에 중용 되어 권력을 잡아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 외는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소인을 장사꾼으로 분장시켜 조나라로 데려오게 한 것입니다. 상국께서는 선생께서 조나라에서 작은 벼슬에 만족하고 머물러 있을까 걱정하여 일부러 태만하게 대하여 선생으로 하여금 격노케 하였습니다. 선생은 과연 상국의 생각대로 진나라에 와서 유세할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상국께서는 우리가 조나라에서 출발할 때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주며 선생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대주어 반드시 진나라에 중용되어 권력을 잡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선생님은 이미 진나라의 객경 벼슬에 앉게 되었으니 신은 빨리 돌아가 소상국께 보고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기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의가 고사인의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 오호라! 내가 소진의 손바닥안에 놀고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나야말로 소진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그대는 돌아가 내가 고맙게 생각하더라고 전하라! 내 마땅히 소진을 위해 '조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음으로써 소진의 크나큰 은혜를 갚으리라!"




1)在他矮檐下(재타왜첨하), 誰敢不低頭(수감불저두)




2)홀(笏)/ 고대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홀은 10량을 가리킨다. 춘추 때의 한 량은 16그람임으로 한 홀은 160그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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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연(燕)과 제(齊) 두 나라 이야기 이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 때인 기원전 3세기 초엽에 있었던 일로 지금의 한국과
양승국 05-04-22
[일반] 지금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전국 때 연제 두 나라 이야기2

六. 제나라를 초토화시켜 연나라의 원한을 갚은 악의 악의는 연나라에서 출병하여 제나라를 공략한지 6개 월 만에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을
운영자 06-09-30
[일반] 송양지인(宋襄之仁))

패업(霸業)에 뜻을 두었다가 초나라에게 사로잡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만 송양공(宋襄公)은 큰 치욕을 당해 원망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
양승국 05-03-21
[일반] 사광(師曠) 3. - 악사 사광이 그 군주 진평공에게 거문고를 던지다.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 술이 얼큰해진 진평공(晉平公)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군주보다 더 즐거운 지위는 없구나! 군주의 말은 그
양승국 05-03-01
[일반] 사광(師曠)2 - 망국의 노래, 미미지악(靡靡之樂)

열국의 제후들은 당진의 평공으로부터 사기궁(虒祁宮)의 낙성식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아 들고 비웃지 않는 사람은 비록 한 명도 없었으나, 그
양승국 05-03-01
[일반] 음악으로 길흉을 점쳤던 사광(師曠)이야기-1

제후의 군사들 행렬이 축아(祝阿)에 이르러 제후들에게 주연을 베풀었을 때 평공은 초나라의 군사들과 싸우는 것을 매우 걱정하여 제후들과 술
양승국 05-03-01
[일반]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 제위왕(齊威王)1)이 왕의 자리에 새로 올랐으나 매일 주색과 풍악소리에만
양승국 0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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