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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30 17:12:174380 
지금의 한일관계와 같았던 전국 때 연제 두 나라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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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六. 제나라를 초토화시켜 연나라의 원한을 갚은 악의




악의는 연나라에서 출병하여 제나라를 공략한지 6개 월 만에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을 점령하여 모두 연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 이제 제나라 여러 성들 가운데에 단지 거성(莒城)과 즉묵(卽墨) 두 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악의는 즉시 군사들을 쉬게 하고 장수들을 접대하며 제왕이 내린 가혹한 법령을 취소하여 세금과 노역을 가볍게 감해주었으며 제환공(齊桓公)과 관이오(管夷吾)의 사당(祠堂)을 지어 제사를 올리고 집집마다 몸소 찾아다니며 백성들을 안심시키자, 제나라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제나라의 남은 두 개의 성을 비록 공격하여 손아귀에 넣는다 할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대사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악의는 제나라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그들 스스로 손을 들고 나와서 항복을 하게끔 만들려고 했다. 악의는 일단 전투를 중지하고 그 수하의 군사들을 편히 쉬게 했다. 이 일은 주난왕 31년 기원전 284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七. 악의를 모함한 태자에게 곤장을 치는 연소왕




악의는 즉묵(卽墨)을 포위하여 공격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악의는 할 수 없이 연나라 군사들의 포위망을 풀어 9리를 뒤로 후퇴시켜 장기전에 대비한 진지를 구축하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령을 내렸다.




“ 성안에서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 나오고자 하는 백성들이 있다면 그들의 청을 들어주고 절대로 붙들지 말라! 그들 중에 곤궁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자는 밥을 먹여주고, 추위에 떠는 자들은 옷을 입혀 주라!”




악의는 즉묵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감격하게 하여 투항시키는 것으로 작전을 바꾼 것이다.




한편 연나라의 대부에 기겁(騎劫)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제법 용력이 있었고 병법을 담론하기를 즐겨하였다. 기겁은 태자락(太子) 락(樂)과 서로 친하다는 것을 빌미로 하여 연나라의 병권을 노리고 있었다. 기겁이 태자에게 말했다.




“ 제왕이 이미 죽어 제나라의 대부분의 성이 다 함락되고 오로지 거성(莒城)과 즉묵(卽墨) 두 성만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의는 과거 6개월 동안에는 제나라 7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켰으면서, 단지 2개의 성만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악의가 즉시 두 개의 성을 함락시키지 않은 것은 제나라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위엄을 세우면서 서서히 그들의 인심을 사서 머지않아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자락(太子樂)은 기겁의 말을 근거로 소왕에게 간했다. 소왕이 듣고 노하며 말했다.




“ 내가 선왕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창국군(昌國君)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창국군이 정말로 제왕(齊王)이 되려고 한다 할지라도 그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스스로 제왕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




소왕이 좌우에게 명하여 태자에게 곤장을 20 대를 치도록 했다. 다시 부절을 사자에게 주어 임치로 보내 악의를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악의가 감격하여 목숨을 걸고 맹세하며 결코 제왕의 부절을 받지 않았다. 소왕이 돌아온 사자의 보고를 받고 말했다.




“ 내가 원래 악의의 진심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결코 나의 뜻을 저버릴 사람이 아니다!”




연소왕은 원래 신선(神仙)의 술법(術法)에 빠져있었다. 방사를 시켜 금과 돌을 단련하여 만든 연단(煉丹) 을 오래 동안 복용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몸 안에서 열이 나더니 발병하여 곧이어 죽고 말았다. 태자 락(樂)이 사위(嗣位)하여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연혜왕(燕惠王)이다.




※연단(煉丹)/ 도사가 수은과 유황으로 이루어진 진사(辰砂)라는 광물을 불에 단련시켜 만든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영약.




八. 연소왕이 죽고 태자가 뒤를 잇자 조나라 달아나버린 악의




한편 즉묵(卽墨)의 전단(田單)은 매번 세작(細作)을 보내 연나라의 정황을 정탐하고 있었다. 기겁(騎劫)이란 자가 악의가 쥐고 있는 병권을 노렸다가 태자락이 그 일로 해서 소왕에게 곤장을 맞았다는 것을 세작을 통해 들은 전단은 탄식하며 말했다.




“ 제나라는 연왕이 죽고 나서야 복국이 가능하겠구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연소왕이 죽고 그 뒤를 태자 락이 이었다는 보고를 받은 전단은 세작을 보내 연나라에 소문을 내며 돌아다니게 했다.




“ 악의가 오래 동안 제왕(齊王)이 되려고 했지만 선왕(先王)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차마 배반을 못하였으나, 제나라의 남은 즉묵(卽墨)과 거성(莒城) 두 성에 대한 공격을 늦추어 선왕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려왔다. 오늘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으니 한편으로는 즉묵과 연계하여 강화를 하려고 할 것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연나라가 악의 대신 다른 장수를 보내는 것이다. 새로 부임하는 장수는 지체하지 않고 즉묵과 거성에 대한 공격을 하여 함락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




연혜왕은 태자로 있을 때부터 악의를 의심해 온데다가 다시 시중에 나돌고 있는 요언이 기겁이 말한 것과 서로 부합하여 그 말을 사실로 믿게 되어 즉시 악의를 대신하여 기겁을 연나라 정벌군의 대장으로 삼았다. 대장의 부절을 기겁에게 넘기고 연나라로 귀국하라는 명을 받은 악의는 돌아가면 연혜왕에게 주살 될 것을 두려워하며 말했다.




“ 나는 원래 조나라 사람이었다.”




악의는 그 가족과 종족들을 버리고 서쪽으로 길을 바꿔 조나라에 몸을 의탁했다. 조혜문왕(趙惠文王)은 악의(樂毅)를 관진(關津) 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기겁(騎劫)이 악의(樂毅)를 대신하여 연나라 군사들을 지휘하게 되자 악의가 시행했던 모든 작전과 명령을 자기 뜻대로 바꾸어버렸다. 연나라 군사들은 기겁의 되지도 않은 명령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원망을 하며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았다. 기겁은 군중에서 3일 간을 체류한 다음 연나라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나와 즉묵성을 향하여 진군한 다음 그 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 쌓고 돌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제나라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즉묵성을 결사적으로 더욱 굳게 지켰기 때문에 기겁과 연군은 어쩌지 못했다.




※관진(關津)/지금의 하북성 무읍현(武邑縣) 동남




九. 악의와 연소왕이 이룩한 공업을 하루아침에 말아먹은 연혜왕과 기겁




전단은 성민들 중에서 젊고 씩씩한 장정들 5천 명을 선발하여 민가에 몰래 잠복시켜 놓고 나머지 늙고 허약한 성민들은 부녀자와 같이 순번을 정하여 성벽 위에 올라가 성을 지키게 하였다. 이어서 전단은 항복문서를 만들어 사자에게 주어 연나라 진영으로 보내어 말을 전하게 했다.




“ 성안의 식량은 모두 떨어져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장차 제가 날짜를 정하여 성 밖으로 나가 항복을 하겠습니다.”




연나라의 대장 기겁은 전단이 보낸 항복문서를 받아들고 여러 장수들을 향해 물었다.




“ 내가 악의에 비해 어떤가?”




연나라의 여러 장수들이 대답했다.

“ 악의 장군보다 두 배는 더 훌륭하십니다.”




연나라의 군중에 있던 병사들은 즉묵성의 제나라 사람들이 드디어 항복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뛸 뜻이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전단은 다시 성민(城民)들로부터 황금 천일(千鎰)을 거두어, 그것들을 부자 몇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아무도 몰래 연나라 장수들을 찾아가 즉묵성(卽墨城)에 입성하게 되면 자기들의 집만은 안전하게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게 하였다. 연나라 장수들이 크게 기뻐하며 황금을 모두 받고서 부자들에게 각기 조그만 깃발을 나누어주며 연나라 군사들이 성안으로 진입하게 되면 그 깃발을 그들의 집 문 위에 꽂도록 하여 그 신호로 삼게 했다. 그 후 연나라 군사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단지 전단이 성안에서 나와 항복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전단은 즉시 사람을 시켜 성안에 있던 천여 마리의 소를 모두 거두어들여 붉은 색의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그 표면에 오색으로 용의 그림을 그려 넣은 다음에 소에게 입혔다. 그리고 소뿔에 예리한 단도를 단단하게 붙들어 매고 다시 삼으로 꼰 굵은 밧줄을 기름에다 적신 다음에 소꼬리에다 묶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빗자루를 매 단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항복하기로 한 전 날이 되어 전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맡은 바 임무를 나누어주었다. 즉묵성 안의 많은 사람들은 전단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전단은 소를 잡고 술을 내어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민가에 숨겨 두었던 5천 명의 정예병들을 불러 배불리 마음껏 먹게 한 다음, 그들의 얼굴을 다섯 가지 색으로 칠하고 각기 예리한 병장기를 나누어주고 소들의 뒤를 바싹 따르게 했다. 즉묵의 성민들이 성벽에 십여 개의 구멍을 뚫어 소들을 그 구멍을 통하여 성밖으로 내 몰았다. 이어서 성민들은 소꼬리에 메 단 빗자루 모양의 굵은 밧줄에 불을 붙였다. 밧줄에 붙은 불의 열기에 놀란 소들은 곧바로 연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했다. 5천 명의 제나라 정예병들은 입에 함매(銜枚)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연나라 군사들은 다음 날 전단의 항복을 받고 즉묵성에 입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여 마리의 소 떼가 달리면서 나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자 연나라 군사들이 잠결에 놀라 일어나 살펴보니, 천여 개가 넘는 횃불이 온 천지를 대낮처럼 비추면서 다섯 가지의 색깔을 한 용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기들의 진영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윽고 소 떼가 연나라 진영을 덮쳐 수많은 군사들이 그 뿔에 메달아 놓은 칼에 찔려서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연나라 군중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지고 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윽고 용의 형상을 한 짐승들의 뒤를 한 떼의 용맹한 병사들이 따라와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며 연나라 군사들을 향해 큰칼과 도끼를 휘둘렀다. 연나라 군사들은 그들이 휘두르는 큰칼과 도끼에 수없이 죽어 나갔다. 그들의 수효는 비록 5천 명에 불과했지만 마음이 황망해진 연나라 군사들의 눈에는 마치 수만 명처럼 보였다. 또한 전단이 친히 성안의 노약자들을 이끌고 나와 그들에게 북을 치면서 함성을 지르게 하자, 그들이 동기(銅器)를 두드려 내는 소리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켜 연나라 군사들은 더욱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윽고 연나라 군사들은 크게 놀라 서로 다리가 걸려 넘어지며 감히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연나라 군사들은 드디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망가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쳐 밀고 넘어져 서로 밟혀 죽은 자 만도 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연나라의 대장 기겁(騎劫)도 수레를 타고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연나라 진영을 향해 돌격해 오던 전단을 만나 그가 휘두른 극(戟)에 찔려 죽었다. 연나라 군사들은 이 한 번의 싸움으로 궤멸되고 말았다. 이때가 주난왕(周赧王) 36년 기원전 279년의 일이었다.




전단이 대오를 정돈하여 승세를 타고 패주하는 연나라 군사들을 뒤를 추격했다. 연나라를 향해 북진하던 전단과 그 군사들의 모습을 보게 된 제나라 성읍의 백성들은 모두 연나라에 등을 돌리고 제나라로 투항하였다. 전단의 병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그 병력을 이끌고 계속 북진하여 하수(河水)까지 진격하여 그 이남의 땅을 모두 제나라의 영토로 하였다. 연나라가 빼앗아 간 제나라의 70여 성도 모두 탈활했다.




한편 연혜왕(燕惠王)은 기겁(騎劫)이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수많은 군사들을 잃어버리자 그때서야 악의의 지혜로움을 알고서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연왕이 사람을 조나라에 보내 자기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게 하고 악의를 다시 연나라로 데려가려고 했다. 악의가 서신을 써서 사자에게 주고 연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연혜왕은 조나라가 악의를 장수로 삼아 자기 나라를 공격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즉시 악의의 아들 악한(樂閑)을 창국군(昌國君)에 봉하고 그의 사촌 동생인 악승(樂乘)을 장군으로 삼아 두 사람을 중용했다. 그후 악의는 연나라를 자주 방문하여 연조(燕趙) 두 나라의 화합에 노력하였다. 두 나라는 모두 악의(樂毅)를 객경(客卿)으로 임명했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늙어 죽었다




十. 사마천의 사기 악의열전(樂毅列傳)




악의의 선조는 위나라의 장수 악양(樂陽)이다. 악양은 위문후(魏文侯)의 장수가 되어 중산을 정벌하여 취했다. 위문후는 그 공으로 악양을 중산의 영수(靈壽)에 봉했다. 악양이 죽자 그 시신을 영수에 묻었다. 그후부터 그 자손들이 영수에 살게 되었다. 후에 중산국은 나라를 다시 세웠으나 조무령왕에 의해 다시 멸망당했다. 그 후에 악씨(樂氏)들의 후손에 악의(樂毅)라는 사람이 있었다. 악의는 지혜롭고 병사의 일을 좋아하여 조나라 사람들이 천거하여 임용하였으나 이윽고 조무령왕이 사구(沙丘)의 란1)으로 인해 굶어 죽자 그는 조나라를 떠나 위(魏)나라로 들어갔다. 이때 연소왕(燕昭王)이 옛날 선왕 때 자지(子之)의 란을 기화로 제나라가 쳐들어와 연나라 군사를 크게 패주시킨 일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어, 하루라도 제나라에 그 원수를 갚을 생각을 잊지 않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연나라는 소국이며 중원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음으로 해서 힘으로는 제나라를 제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소왕은 몸을 굽혀 선비들을 대했으며 우선 조정의 관리인 곽외(郭隈를 예로써 대하며 천하의 어진 사람들을 초빙했다. 악의는 이런 때에 위소왕에 의해 사자의 임무를 띠고 연나라에 가게 되었다. 연왕이 악의를 손님의 예로써 대했다. 악의가 사양하며 예물을 바치고 연나라의 신하가 되려고 하였다. 연소왕은 악의를 아경(亞卿)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때 천하의 정세는 제민왕(齊湣王)2)이 다스리던 제나라가 강대하여 남쪽으로는 초나라 상국 당매(唐眛의 군사를 중구(重丘)에서 격파했고, 서쪽으로는 삼진(三晋)의 군사를 관진(觀津)에서 물리치고 이어서 삼진과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다. 다시 조나라가 중산국을 정벌하는데 지원군을 보내 도왔으며 송나라를 멸하고 제나라의 강역을 천여 리나 넓혔다. 민왕은 진소양왕과 세력을 다투며 제호(帝號)를 칭했으나 자신은 곧바로 제호를 버리고 왕호(王號)를 다시 사용하였다. 이 일로 인해 제후들은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모두 제나라에 귀의하였다.




민왕이 자기가 불세출의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며 자존망대하자 백성들은 그의 정치를 견뎌낼 수 없었다. 이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연소왕이 악의에게 제나라를 정벌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악의가 대답했다.




“ 제나라는 옛날부터 패업을 이루어 무시 못할 여력과 땅은 넓고 백성들은 많아 연나라 혼자서 공격해서는 쉽게 이길 수 없는 나라입니다. 대왕께서 만일 제나라를 기필코 정벌하려고 하신다면 조(趙), 초(楚), 위(魏) 삼국과 연합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연왕은 악의를 사자로 삼아 조혜문왕에게 보내고, 초와 위 두 나라에는 별도의 사자를 보냈다. 악의는 조나라로 하여금 제나라를 공격하여 생기는 이익을 들어 진나라를 설복하게 했다. 제후들은 제민왕의 교만하고 포악한 행동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다투어 연나라와 합종하여 제나라에 대한 정벌전에 참여하려고 했다. 악의가 조나라에서 돌아와 복명하자 연소왕은 나라의 군사들을 모두 일으켜 악의를 상장군에 임명했다. 조혜문왕은 상국의 인장을 악의에게 보내 조군을 악의의 지휘 하에 두었다. 악의는 조(趙), 초(楚), 한(韓), 위(魏), 연(燕) 오국의 병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제서(濟西)에서 대파했다. 연나라를 제외한 사국의 군사들은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악의는 연나라를 군사를 이끌고 싸움에서 지고 패주하는 제군(齊軍)의 뒤를 추격하여 제나라의 서울인 임치성(臨淄城)에 이르렀다. 제민왕은 제서에서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쳐 거성(莒城)으로 들어갔다.




악의는 연나라 군사들만으로 제나라에 머물면서 그 땅을 순행하였으나 제나라의 모든 성들은 항복하지 않고 굳게 지켰다. 악의가 임치성을 함락시킨 후에 진입하여 제나라의 보물과 재물 및 제기들을 모두 탈취하여 연나라로 보냈다. 연소왕이 크게 기뻐하며 친히 제수 강변까지 나와 연나라 군사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하고 음식을 준비하여 배불리 먹였다. 또한 소왕은 악의를 창국(昌國)에 봉하고 창국군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연소왕은 제나라의 포로와 노획물을 모두 거두어 연나라로 돌아가며 악의에게 제나라의 항복하지 않은 성들을 모두 평정하라는 명을 내렸다.




악의가 5년 동안 제나라 땅을 순행하면서 70여 개 성을 점령하고 군현(郡縣)으로 만들어 연나라에 복속시켰으나 오직 거성(莒城)과 즉묵(卽墨)만은 떨어 뜨리지 못했다. 그때 연나라 본국에서는 소왕이 죽고 그 아들 혜왕이 새로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 혜왕은 그가 태자 때부터 악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어서 연나라에 태자가 왕위에 새로 섰다는 소식을 들은 제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반간계를 쓰기 위해 첩자를 연나라로 보내며 다음과 같은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 연나라 장수 악의가 제나라의 모든 성을 점령했으면서도 유독 거성과 즉묵 두 곳만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악의가 연나라의 새로운 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군사를 계속 거느린 체 제나라에 계속 머물면서 남면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제나라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악의를 대신해서 다른 장수가 오는 것 뿐이다.”




그 소문을 전해들은 연혜왕은 악의를 의심하게 되어 제나라의 반간계에 따라 기겁(騎劫)을 보내 대장의 직을 대신하게 하고 악의는 연나라 본국으로 소환했다. 악의는 연왕이 자기를 대장의 직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좋지 않은 감정에서 행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연나라에 돌아가면 주살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발길을 서쪽으로 돌려 조나라에 투항했다. 조나라는 악의를 관진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조나라가 악의를 받드는 것을 본 연과 제 두 나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즉묵의 제나라 장수 전단은 후에 기겁과 힘껏 싸웠는데, 우선 연나라 군사들을 미혹시키고 속여 마침내 기겁이 거느린 연군(燕軍)을 즉묵의 성 밑에서 크게 물리쳤다. 전단은 계속해서 제나라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연나라 군사들을 하수 북쪽으로 몰아내고 제나라의 모든 땅을 수복했다. 이어서 거성(莒城)으로 사람을 보내 제양왕을 모셔오게 하여 임치로 입성하게 하였다.




연혜왕이 악의를 쫓아내고 기겁을 대신 대장으로 삼은 결과 싸움에서 지고 장수를 죽게 만들어 결국에는 제나라를 잃어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또한 악의가 본국에 돌아오지 않고 조나라에 항복한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또한 조나라가 악의의 재능을 이용하여 연나라가 제나라와의 오랜 싸움에 지친 틈을 타서 공격해오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연혜왕은 즉시 사자를 악의에게 보내 악의를 책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죄의 말을 전하게 했다.




“ 선왕께서는 이 연나라의 모든 것을 장군에게 맡기자 장군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파하고 선왕의 원수를 갚아 천하가 모두 진동하게 되었소. 과인이 어찌 감히 하루인들 장군이 이룬 공을 잊겠오? 선왕께서 돌아가시고 과인이 새로 즉위하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과인을 그르치게 만들었오. 과인이 기겁(騎劫)으로 하여금 장군의 자리를 대신시키려고 했던 것은, 장군이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이슬을 맞으며 전장터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잠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후일을 도무하기 위함이었오. 그런데 장군은 나의 뜻을 잘못 알고 과인과의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결국은 장군은 우리 연나라를 버리고 조나라에 투항한 것이오. 장군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위한 계책으로는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으로 장군으로 하여금 뜻을 펼치게 해 준 선왕의 보살핌에 보답하겠오? ”




그러자 악의는 연혜왕(燕惠王)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 신은 재주가 없어, 왕의 좌우에 있던 신하들의 뜻에 따라 왕명을 받들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선왕의 영명하신 뜻을 해치고 족하의 도의를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몸을 숨겨 여기 조나라로 도망쳐 온 것입니다. 지금 족하께서 사람을 시켜 편지를 보내와 신이 지은 죄를 열거하며 책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은 대왕을 곁에서 모시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선왕께서 신을 받아들여 총애한 까닭을 살피지 못하고, 또한 신이 선왕을 모셨던 마음을 명백히 밝히지 못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신은 감히 글을 써서 대왕께 올립니다. 신은 ‘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까운 측근이라고 해서 작록을 내리지 않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자리를 준다3).’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재능을 살펴 관직을 주어야만 성공하는 군주가 되며, 그 행적을 논하여 친구를 사귀어야 이름을 세울 수 있는 선비가 되는 것입니다. 선왕께서 인재를 등용하시던 방법을 신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선왕께서는 세상의 군주들과는 다른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이 위나라 사신의 부절을 빌려 연나라로 들어가자 선왕께서는 신의 재능을 알고 걷어 주신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나를 과분하게 대접하여 이름 높은 빈객들 가운데에 서게 하시고, 또한 뭇 신하들의 위에 놓으셨습니다. 또한 왕실의 종친들과 상의도 없이 신을 아경(亞卿)으로 삼으셨습니다. 신은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명령을 따라 가르침을 받들게 되면 다행히 죄는 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명령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 명을 내리기를 ‘ 나는 제나라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어, 우리 연나라의 국세가 가볍고 약함에 개의치 않고 그저 제나라를 도모하는 것이 과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신이 대답했습니다. ‘ 무릇 제나라는 일찍이 천하를 제패한 업적이 있고 전쟁에서 항상 승리한 전적이 있는 나라임으로 병사와 무기가 잘 갖추어져 있고 싸움을 하여 공을 세우는데 능숙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시고 하신다면 반드시 천하의 제후국들과 같이 하셔야만 합니다. 천하의 제후국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데에는 먼저 조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또 회수(淮水) 북쪽의 땅과 송나라의 땅은 초(楚)와 위(魏) 두 나라가 탐을 내고 있는 땅입니다. 만일 조나라가 우리와의 동맹을 승낙하여 그 결과 네 나라가 함께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크게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왕께서 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어, 신에게 부절을 주어 남쪽의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셨습니다. 신이 조나라에서 돌아와 복명하자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도리와 선왕의 생령에 힘입어 하수 이북에 있던 나라들은 선왕의 뒤를 따랐음으로, 그곳의 군사들은 모두 제수(濟水) 강안에 집결한 5국 연합군은 선왕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그 군사들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날래고 정예한 군사들을 이끌고 거침없이 진격하여 이윽고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성에 진입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제왕은 몸을 숨겨 달아나 거성으로 들어가 근근히 죽음만을 면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임치성 안에 있던 제나라의 주옥(珠玉), 재보(財寶) 및 진기한 제기(祭器)들을 모두 거두어 연나라로 보냈습니다. 제나라의 제기들은 영대(靈臺)에 진열하고 대려(大呂)라는 제나라의 유명한 종은 원영궁(元英宮) 궁문 앞에 달았으며, 옛날 제나라가 빼앗아 간 정은 찾아와 궁궐의 역실(磿室)에 두고, 문수(汶水)에 서식하는 문황(汶簧)이라는 대나무를 그곳 계성(薊城)의 언덕에 옮겨 심어 오백(五伯) 이래로 지금까지 선왕보다 더 큰 공업을 이룬 군주는 없었습니다. 선왕께서는 이에 뜻을 이루었다고 만족하시어 나라의 땅을 떼어 신을 그곳에 봉해 작은 나라의 제후들과 함께 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신은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명령을 따라 가르침을 받들게 되면 다행히 죄는 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명령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신이 듣기에 ‘ 성군이 공을 이루게 되면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춘추(春秋)에 그 행적이 오르게 되고, 선견지명이 있는 선비가 이름을 세우게 되면 그 명성을 훼손하지 않게 됨으로 후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선왕께서는 원수를 갚고 치욕을 설욕하셨으며 만승지국의 강대한 나라를 평정하고 그 나라의 8백년 동안 축적한 보물과 제기를 연나라로 옮겨 놨으며, 또한 선왕께서 죽음에 이르심에 생전에 남기신 정령과 훈시는 결코 쇠하지 않았으며, 정사를 담당하고 있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신하들에게 지시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왕실의 종친 자제들의 적서를 구분하여 신중하게 배치함으로써 그 은혜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고루 미치게 한 이러한 모든 일들은 후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또한 듣기에 ‘ 일을 잘 꾸미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성사 시킬 수 없고, 일을 잘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오자서가 합려를 설득하자, 합려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몇 천리나 떨어져 있던 초나라의 서울 영도(郢都)를 점령하여 공적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의 아들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아 그에게 죽음을 내리고 말가죽에 그 시체를 담아 장강의 물결에 띄웠습니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가 건의한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죽여 그 시체를 장강의 물결에 띄우고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자서도 그가 모시던 군주가 다 같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비명에 죽고 그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지게 됨에도 자기의 의견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릇 신이 화를 면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선왕의 공적을 밝히는 것만이 최상의 계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받고 참소를 당하여 선왕의 명성을 해치는 것이야말로 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죄를 얻게 되었으나 다행히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면했으면서도, 또다시 어부지리(漁父之利)4)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은, 신은 의리상 도저히 행하지 못할 일입니다. 신이 듣기에 ‘옛날 군자는 친구와 절교를 함에도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기의 억울함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은 비록 무능하나 오랫동안 군자의 가르침을 따라왔습니다. 다만 대왕의 주위의 시종과 측근들의 말을 듣고 신을 멀리 내치신 결과 신이 행한 행동을 살피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감히 글로 써서 바치오니 원컨대 군왕께서는 신의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




악의의 답장을 받아온 연혜왕은 악의의 아들 악간(樂間)을 불러 악의가 갖고 있었던 창국군에 봉했다. 그 후로는 악의는 다시 연나라에 왕래를 하게 되었고 연과 조 두 나라는 동시에 그를 객경에 임명했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죽었다. 악의 아들 악간은 연나라에서 살게 된지 30년이 되는 해에 연왕 희(喜)가 그 상국 율복(栗腹)의 계책에 따라 조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악간을 불러 그 의견을 물었다. 악간이 말했다.




“ 조나라는 사방에 적을 두고 있어 항상 싸움을 하여 그 백성들은 싸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조나라를 정벌한다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연왕이 악간을 말을 듣지 않고 율복을 대장으로 삼아 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조나라는 장군 염파를 시켜 연군을 막게 했다. 염파는 연나라 군사를 호(鄗) 땅에서 크게 무찌르고 그 장수 율복과 악승을 사로잡았다. 악승은 악간의 동족이었다. 악승이 조나라에 투항하자 악간은 연좌되어 죄를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조나라로 달아났다. 조나라가 염파와 아간 및 악승을 장수로 삼아 연나라를 공격했다. 연나라는 땅을 떼어 조나라에 바치고 강화를 청하자 염파가 허락하고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연왕은 악간의 의견을 듣지 않고 조나라를 공격한 것을 후회했으나 악간은 이미 조나라로 가 버린 뒤였다. 연왕이 악간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 은나라 때 주왕(紂王)이 기자(箕子)의 간함을 듣지 않았으나 기자는 계속해서 간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자기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했오. 또한 상용(商容)은 그 말이 주왕에게 통하지 않고 그 몸은 추방되어 욕됨을 입었지만 주왕이 마음이 변하기를 바랐오. 상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스스로 탈출할 때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조정에서 물라나와 몸을 숨겼오. 그렇기 때문에 주왕은 포학한 임금이라는 허물을 썼지만 기자와 상용 두 사람은 충성스럽고 어진 이름을 잃지 않게 된 것이오. 무슨 까닭에서 겠오? 그 두 사람은 끝까지 나라의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오. 오늘 과인이 비록 어리석은 군주라 하나 주왕과 같은 폭군은 아닐 것이오. 연나라 백성들이 비록 어지럽기는 하겠지만 은나라 백성들 처럼 심하는 않을 것이오. 집안에서 할 말이 있음에도 다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웃집에 고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오. 그대가 자기의 의견을 계속 주장하여 나를 설득하지도 않고, 또다시 연나라를 배신하고 조나라로 가버린 두 가지 일은 결코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이오. ”




악간과 악승은 연왕이 자기들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원망을 하며 두 사람 모두가 연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조나라에 머물렀다. 조나라는 악승을 무양군(武襄君)에 봉했다. 그 다음 해에 악승과 염파는 조나라의 장수가 되어 연나라의 도성을 포위했다. 연나라는 많은 예물을 바치고 강화를 맺었다. 조와 연 두 나라는 이후로는 다투지 않게 되었다. 조효성왕(趙孝成王)이 죽고 양왕(襄王)이 새로 섰다. 양왕이 염파를 대신해서 악승을 대장으로 임명하자, 염파는 불복하고 악승을 공격했다. 악승은 도망가고 염파는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망명했다. 그후 16년 후에 조나라는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그 후 20년 후에 한고조 유방이 조나라를 지나갈 때 주위의 측근들에게 물었다.




“ 악의(樂毅)의 후손들을 찾을 수 있는가?”




측근들이 대답했다.

“ 악숙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고조는 악숙을 악향(樂鄕)에 봉하고 화성군(華成君)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화성군 악숙은 악의의 손자다. 악씨의 종족에는 악하공(樂瑕公), 악신공(樂臣公)이 있었는데 조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하자 그들은 제나라의 고밀(高密)5)로 옮겨가 살았다. 악신공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설에 능통하여 제나라에 이름이 높아 현사(賢師)라는 칭송을 받았다.




태사공이 말한다.




“ 옛날 제나라의 괴통(蒯通)6)과 주보언(主父偃)7)이 악의가 연왕에게 쓴 서한을 읽을 때마다 그 책을 덮고 울었다고 했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의 학설을 배웠다. 그의 원래 조종은 하상장인(河上丈人)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는데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상장인이 안기생(安其生)을 가르치고 안기생은 모흡공(毛翕公)에게 전했다. 모흡공은 악하공(樂瑕公)에게 악하공은 악신공(樂臣公)에게 전했다. 악신공은 다시 개공(盖公)에게 전해 주었다. 개공은 고밀(高密)과 교서(膠西)에서 제자들을 모아 가르쳤다. 조상국(曺相國) 참(參)은 개공의 제자이다.




1)사구(沙丘)의 란/ 무령왕의 원래 태자는 조장(趙章)이었으나 작은아들 하(何)를 총애하여 장을 폐하고 하를 세웠다. 하가 조혜문왕(趙惠文王)이다. 곧이어 무령왕 자신은 나라 밖의 일에 전념하겠다는 구실로 조왕의 자리를 하(何)에게 넘겨주고 스스로는 주보(主父)라고 칭했다. 후에 무령왕이 마음이 바뀌어 조나라를 둘로 나누어 장(章)을 대왕(代王)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측근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장이 그 소식을 듣고 무령왕이 혜문왕과 함께 사구(沙丘)에 있던 행궁에 행차한 틈을 이용하여 란을 일으켜 혜문왕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장은 목숨을 구하여 무령왕의 숙소로 피했다가 조성(趙成)과 이태(李兌)에게 잡혀 살해되고 이어서 사구궁을 포위하자 무령왕은 석달 만에 굶어 죽었다.




2)제민왕(齊湣王)/ 전국 때 제나라 왕으로 재위 기원전 301년-284년




3)聖賢之君不以祿私親, 其功多者賞之, 其能當者處之.




4)원문은 ‘이행어리(以幸漁利)’로 어부지리(漁父之利)란 말은 제나라와 싸워 피폐해진 연나라를 공격하여 개인적인 명성을 얻는 다는 말이다. 연혜왕이 악의가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조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와의 싸움에 지친 연나라를 공격해 올 것을 걱정하여 악의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악의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혀 연왕을 안심시킨 것이다.




5)고밀(高密)/ 지금의 산동성 고밀현(高密縣) 경내에 있었던 고을




6)괴통(蒯通)/ 본명은 괴철(蒯徹)이다. 한초(漢楚) 분쟁시 제왕(齊王)이 된 한신(韓信)의 모사다. 그는 한신에게 한고조로부터 독립하여 천하를 삼분할 것을 권했으나 한신은 듣지 않았다. 후에 한신은 한고조가 한왕조를 창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 한고조에 의해 잡혀 살해 되었다.




7)주보언(主父偃)/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26년에 죽은 서한(西漢) 때의 대신이다. 성은 주보이고 이름은 언이다.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동북의 임치(臨淄) 인이다. 종횡설, 주역, 춘추 및 백가의 학술에 밝았다.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자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들어가 위청(衛靑)의 천거를 받아 무제에 의해 낭중의 벼슬을 얻었다. 다시 알자(謁者)로 옮기고 후에 중대부(中大夫)가 되었다. 그가 관직에 있을 때 제후들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자 무제는 그 의견을 쫓아 <추은령(推恩令)>이라는 조서를 내려 제후들로 하여금 그 자제들에게 소유의 봉지를 나누어 후로 봉하도록 했다. 그 후로 강력한 지방 제후국들은 분열되어 세력이 약화되었다. 기원전 127년에 한나라의 승상이 되자 제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만들고 제후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하옥되어 멸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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