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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7-07 11:50:425717 
화씨벽 이야기1. 변화가 화씨벽을 바치고 다리를 잘리다.
양승국
일반


<화씨벽이 나왔다는 옥인암>




1. 獻玉刖足(헌옥월족)-변화가 화씨벽을 바치고 발이 잘리다.

춘추시대 초기에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형산(荊山)1)에서 옥돌을 얻어 초나라의 려왕에게 바쳤다. 려왕이 궁중의 옥공을 불러 감정시켰다. 옥공이 감정한 결과 변화가 바친 옥돌은 아무 쓸모가 없는 돌맹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초왕이 크게 화를 내며 상금이 탐이나 자기를 기만했다는 죄명을 들어 변화의 왼쪽 발을 잘랐다. 려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무왕이 초왕으로 새로 섰다. 변화가 다시 옥돌을 새로운 왕에게 바쳤다. 무왕이 옥공을 불러 감정을 시켰으나 그 옥공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 옥들은 돌맹이에 불과하다고 고했다. 무왕도 역시 노하여 변화의 남은 오른쪽 발마저 잘랐다. 이어서 오랜 시간이 흐르자 무왕이 죽고 문왕이 새로 즉위했다. 변화는 그 옥들을 다시 바치려고 했지만 두 다리가 잘려 걸을 수가 없어 옥들을 가슴에 품고 형산 밑에서 4일 밤낮을 쉬지 않고 통곡하여 이윽고 변화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왔다.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변화가 당한 일을 알고 찾아가 말했다.

" 그대는 두 번이나 돌맹이를 옥이라고 하면서 초왕에게 바쳐 두 다리를 잘렸으니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대가 혹시나 아직도 상을 바라고 옥돌을 다시 바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그렇게 구슬피 울고 있는 것인가?"




변화가 대답했다.

" 내가 이렇게 슬피 우는 것은 상을 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한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본래 좋은 옥이 오히려 아무 쓸모 없는 돌맹이라고 판정되어 그것은 마치 올곧은 선비를 잘못된 선비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시비가 거꾸로 되었음에도 스스로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여 울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가 통곡하며 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문왕이 사람을 시켜 그 옥돌을 가져오게 한 다음 옥공(玉工)을 불러 그 겉을 걷어 내게 하자 과연 흠집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옥을 얻게 되었다. 문왕이 옥공에게 명하여 벽옥(璧玉)으로 만들게 하고 이름을 화씨벽(華氏壁)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오늘도 양양부(襄陽府) 관하 남장현(南漳縣)에 있는 형산(荊山)의 정상에 연못이 있는데 그 한쪽 켠에 포옥암(抱玉岩)이라는 석실이 있다. 그 석실이 바로 변화가 머무르면서 옥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던 곳이다. 초문왕이 변화의 지성에 감동하여 그에게 대부에 준하는 봉록을 내려 여생을 편하게 살게 하였다.




후세에 어떤 사람이 화씨벽의 천하의 지보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이 옥을 어두운 곳에 놓아두면 밝은 빛을 발하여 그 위에는 티끌 하나 머무를 수 없으며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도 하여'야광지벽(夜光之璧)'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그 벽옥을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에 놔둔다면 겨울에는 주위가 훈훈해져 가히 화로를 대신할 수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해져 그 앉아 있는 장소에서 백 보 안에는 먼지나 해충이 달려들지 못한다. 이 외에도 다른 일반 벽옥은 따를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많이 나타나 이것을 지보(至寶)라고 부르는 것이다."




1)형산(荊山) :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남장현(南漳縣) 서남 무당산(武當山) 동남. 저수(沮水)와 장수(漳水)의 발원지




2)초무왕(楚武王) : 기원전 740년 재위에 올라 690년에 죽은 춘추초 때 초나라의 왕이다. 형인 분모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후 제후의 입장에서 왕호를 사용했다.




3)초문왕(楚文王) : 기원전 690년 즉위하여 677년에 죽은 초무왕의 아들이다.




4)양양부(襄陽府) :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襄樊市) 일대를 관할했던 명나라 때의 지방관서 이름이다. 양번시는 지금의 하남성과 호북성의 접경지역인 한수 강안의 도시다.




5)남장현(南漳縣)/ 양양부에 속했던 현 이름으로 지금도 양번시 같은 이름으로 양번시 관할하의 현이다. 사진은 변화가 화씨벽을 발견했다는 옥인암(玉印岩)으로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襄樊市) 남장현(南漳縣) 경내의 荊山에 있다. 산상에는 발이 잘린 변화가 화씨박을 품고 슬피 울었다는 포박암(抱璞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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