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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2 18:24:474118 
화씨벽 이야기6-민지의 회맹에서 나라의 위신을 세운 인상여
운영자
답변

<지금의 하남성 민지현 관내 서쪽이다.>


6. 민지의 회맹에서 조나라의 위신을 세운 인상여




진소양왕은 화씨벽의 일로 해서 마음속에 앙심을 품고 다시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어 조왕과 서하(西河)의 민지(澠池)라는 땅에서 만나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공고히 다지자고 청했다. 조의 혜문왕이 군신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민지(澠池)/ 지금의 하남성 민지현(澠池縣) 경내. 낙양시 동쪽 약 50키로 지점에 위치한 고을로 춘추전국시대 때 진(秦)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는데 통과해야 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 옛날 진나라가 초나라의 회왕을 속여 회맹을 하자고 해놓고 그를 함양으로 데려가 구금하여 결국은 그곳에서 죽게 만들었다. 아직도 초나라 사람들은 그 일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다시 과인을 청하며 회합을 하자고 하니 진나라가 초회왕에게 했던 것처럼 과인을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가 머리를 모아 상의하였다.




“ 왕이 만약 가지 않는다면 진나라에게 우리의 약점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어서 두 사람이 혜문왕 앞으로 나가 상주하였다.




“ 신 상여(相如)는 원컨대 수행하여 어가를 보호하고 장군 염파는 태자를 보좌하여 나라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조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 상여는 옛날에 화씨벽도 능히 보전할 수 있었는데 과인이라고 해서 어찌 보전하지 못하겠는가?”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이 말했다.




“ 옛날 송양공(宋襄公)이 군사를 대동하지 않고 회맹에 참석하여 초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혔었습니다. 노후(魯侯)는 제후(齊侯)와 협곡(夾谷)에서 만날 때 좌우의 사마들을 호종시켜 신변의 안전을 꾀했습니다. 오늘 비록 상여가 어가를 수행한다고 하나 그 한 사람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으니 정예한 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대왕을 호종하게 하시어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 대군을 출동시켜 회합하는 장소에서 30리 떨어진 곳에다 진을 치게 하여 만전을 기하심이 옳을 것입니다.”




기원전 500년 노정공(魯定公)이 지금의 산동성 래무현(萊蕪縣)인 협곡(夾谷)에서 공자(孔子)와 노나라의 좌우 사마(司馬)들인 대부 신구수(申句須)와 락기(樂頎)가 이끄는 군사들을 대동하고 제경공(齊景公)과 회합한 것을 말한다.







조왕 “ 5천 명의 정예병을 선발해서 데려간다면 누구를 대장으로삼아야 하겠습니까?”




평원군 “ 신은 옛날부터 전부(田部)의 하급 관리인 조사(趙奢)이란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야 말로 진실로 대장의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왕 “ 어떻게 그가 대장의 재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까?”




평원군 “ 조사가 전부의 관리로서 조세(租稅)를 거둘 때 신의 가신(家臣)들이 기한이 넘도록 세금을 내지 않자, 그가 신의 가신들을 그 일로 붙잡아 가서 치죄하여 9 명이나 사형에 처했습니다. 신이 노하여 이목을 불러다가 꾸짖자 그가 신에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지탱되고 있는 것은 바로 법입니다. 만일 오늘 군의 가신들에게 죄를 주지 않고 방면해 주어 공사(公事)를 집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법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며, 법을 깨뜨리게 되면 그것은 곧 나라가 쇠약하게 되어 만일 제후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쳐들어온다면 우리나라는 결코 보존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군의 집안인들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군이 나라에서 귀한 신분인 것은 공사(公事)를 법대로 집행한 것 때문이며, 법이 서게되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그리되면 군께서는 부귀를 오래도록 누리게 될 것인데 어찌 이것을 옳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그는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비상한 사람이라 신은 곧 그가 대장의 재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왕이 즉시 조사를 불러 중군대부(中軍大夫)에 임명하고 군사들 중에서 선발한 정예병 5천 명을 이끌고 자기를 호종하게 하였다. 평원군은 대군을 지휘하여 조왕의 일행과는 거리를 두며 그 뒤를 따랐다. 염파가 조왕의 일행을 전송하여 따라 나섰다가 국경에 이르자 조왕에게 말했다.




“ 대왕께서는 지금 호랑이나 승냥이와 같은 진나라의 경내에 들어가시니 참으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대왕께서는 소신에게 약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왕께서 가시는 길의 여정을 헤아려본 바 회합하는 장소에 가서 진왕과 서로 간에 예를 행하고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상의하는데는 30일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만약 30일 지나도 대왕께서 돌아오시지 못하신다면, 옛날 초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거울 삼아 태자를 왕으로 세우고 진나라와의 국교를 끊겠습니다.”




조왕이 염파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이윽고 조왕의 일행이 먼저 민지(澠池)에 당도하자 진왕도 역시 얼마 있지 않아 도착하여 각기 자기의 관사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윽고 회합하기로 한 날이 되자 두 나라의 왕들은 서로 상견례를 취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서로 환담하였다. 술이 몇 순 배 돌고 분위기가 거나하게 되었을 때 진왕이 조왕에게 말했다.




“ 과인은 옛날에 조왕께서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지금 과인에게는 보물과 같이 귀히 여기는 거문고가 여기 있으니 청컨대 저에게 한 번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수치감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감히 진왕의 청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진왕을 모시던 시종 한 사람이 거문고를 들고 조왕의 면전으로 가져갔다. 조왕이 거문고를 받아들고 <상령(湘靈)>이라는 곡을 연주하였다. 진왕이 조왕의 거문고 타는 솜씨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윽고 진왕이 상령곡의 연주를 마친 조왕을 향해 말했다.




“ 과인은 조나라의 시조(始祖)와 그 뒤를 이었던 열후(烈侯)들이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과연 조왕께서도 가문의 전통을 이어 받으신 것 같습니다.”




진소왕이 대동하고 왔던 사관들을 불러 조왕이 자기 앞에서 거문고를 탔다는 것을 사서에 써넣도록 했다. 진나라의 사관이 붓을 들고 목간에다 다음과 같이 기재하였다.




“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이 조왕과 민지(澠池)에서 회합을 하고 조왕에게 명하여 거문고를 타게 했다.”


인상여가 보고 앞으로 나오더니 진왕을 향해 말했다.




“ 진왕께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을 들으신 저희 조왕께서는 신에게 삼가 이 분부(盆缶)를 바치게 하여 이것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한 곡 불러, 이 회합을 즐겁게 해 주실 것을 청하셨습니다. ”




분부(盆缶)/ 액체를 담는 도기로 만든 용기의 하나. 달걀을 눕혀 놓은 모양으로 그 중간에는 좁은 아가리가 나 있다. 고대의 진나라 풍속에 연회장에서 이것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진왕이 노하여 얼굴색이 벌겋게 변하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상여(藺相如)는 즉시 술이 가득 찬 술단지를 들고 진왕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끓으며 그것으로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어 노래부르기를 청했다. 진소양왕이 여전히 술단지를 두드리려고 하지 않자 인상여가 노기를 띄우며 말했다.




“ 대왕께서는 진나라의 세력이 강하다고 믿고 계시는 듯 하나, 오늘은 단지 소신과는 다섯 발자국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이 상여의 머리로 대왕의 몸을 피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소양왕의 좌우에 있던 측근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 참으로 무례한 자로다!”




그들이 앞으로 달려나가 붙잡으려고 하자 인상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까지 곤두세워 큰소리로 일갈하자 달려들던 소양왕의 측근들은 모두 크게 놀라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뒷걸음질을 쳤다. 소양왕은 결코 내키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인상여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인상여가 바친 술단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인상여가 이윽고 몸을 일으키더니 조나라에서 데려온 사관을 불러 역시 목간에 자기가 부르는 대로 적게 하였다.




“ 모년 모월 모일에 조왕은 진왕과 민지(澠池)에서 회합을 하다가 진왕에게 명하여 분부(盆缶)를 치게 하였다. ”




진나라의 신하들은 진왕이 모욕을 당한 것에 분노하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조혜문왕(趙惠文王) 앞으로 가서 무례한 요구를 하였다.




“ 오늘 조왕께서 이곳으로 왕림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청컨대 조나라의 15개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쳐 우리 대왕님의 만수를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인상여도 역시 자리에 일어나 진왕 앞으로 가더니 말했다.




“ 예란 서로 주고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조나라가 이미 15개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쳤다면 진나라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어 보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청컨대, 진왕께서는 함양성(咸陽城)을 떼어 바쳐 우리 조왕의 만수를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소양왕이 큰 소리로 진나라의 신하들을 꾸짖었다.




“ 두 나라의 군주들이 회합을 하여 양국간의 친선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대들은 왜 이리 잔말이 많은가?”




진왕은 즉시 좌우의 측근에게 명하며 술잔에 술을 따라 돌리게 하고 짐짓 유쾌하게 즐긴 척 하다가 연회를 파했다. 진나라의 객경 호상(胡傷) 등이 진왕에게 가서 조왕과 인상여를 붙잡아 억류시켜야 한다고 은밀히 권했다. 진왕이 대답했다.




“ 내가 보낸 첩자가 와서 보고하기를 조나라는 이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오. 만일 섣불리 일을 행했다가 실패라도 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이어서 소양왕은 조왕을 더욱 공경하며 결의형제를 맺고 두 나라는 영원히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어서 소양왕은 진나라의 태자 안국군(安國君)의 아들 중에서 이인(異人)이란 공자를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기로 약속했다. 진나라의 대신들이 모두 불평을 하며 소양왕에게 말했다.




“ 형제의 맹약을 맺은 것만으로 족한 일인데 하필이면 인질을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양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 조나라는 바야흐로 국세가 강성해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도모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인질을 보내지 않는다면 조나라는 믿지 않을 것이다. 조나라가 우리를 믿게된다면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는 공고해질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한나라 경영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 ”




진나라의 신하들은 모두 소양왕의 의견에 탄복하였다.




조왕이 진왕에게 작별을 고하고 정확하게 30일 만에 귀국했다. 조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 과인은 인상여 덕분으로 태산과 같은 신변의 안전을 얻었고 이제 우리 조나라의 사직은 구정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인상여의 공이라 하겠으며 어떤 신하들일지라도 그의 공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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