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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9 17:18:593039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의 전말
운영자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


손자가 말한 바가 있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도궁비현(圖窮匕見)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통상적으로 평화적인 수단을 채용하여 적대국의 목표를 약화시키거나 심지어는 분쇄시킬 수 있어 자연히 경제적인 수단은 가장 훌륭한 전술로 인식되어야 한다.」

현대전에 있어서 “경제전” 혹은 “평화적인 수단”을 가장 선호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경제전은 일찍이 늘상 있는 일이라서 새롭지 않지만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역사상 가장 최초로 등장한 경제전은 세련된 경제수단을 사용하여 적국에 타격을 가하고 중대한 승리를 취한 예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管仲)이다. 《관자(管子)·경중무제84(輕重戊第八十四)》에 경제전에 대한 관중의 사상과 그 실례가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관중이 펼친 경제전으로 인해 피해를 본 나라는 당시 제나라의 인접국인 노나라였다. 제와 노 두 나라의 개국조는 서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공 희단(姬旦)과 태공 강자아(姜子牙)로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관계가 매우 깊어 원래는 이웃국으로써 화목하게 지냈을 뿐만 아니라 혼인으로 맺은 우호국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 날카롭게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비록 다방면에서는 상호간에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경제적인 교역만큼은 비상할 정도로 밀접하게 상호의존했다. 당시 노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은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고 얇기로 유명하여 “노호(魯縞)”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강력한 힘의 쇠뇌도 끝에 가면 그 세가 노나라 산의 얇은 비단 옷 조차 뜷지 못한다.(强弩之末势不能穿鲁缟者也)라는 성어에도 등장할 정도로 노호는 유명한 비단이었다. 관중은 노나라의 비단을 목표로 삼고 먼저 제환공에게 건의하여 제나라의 조정 대신들에게 모두 노나라 산의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도록 명했다. 그래서 제나라는 일시에 노나라 산의 비단 옷을 입으면 영예롭다는 풍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제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일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려 제나라 사람들이 필요한 비단은 모두 노나라에서 수입된 것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자 노나라 비단은 물건이 없어서 팔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가격은 폭등했다. 노나라 백성들은 비단을 짜는 일이 소득을 늘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때려치우고 모두 비단 짜는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노나라가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관중은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는 관리들을 선발하여 노호(魯縞)를 노나라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성적에 따라 포상을 내린다고 반포했다. 그는 노호 1천 필을 판매한 자에게는 3백 금, 1만 필을 판매한 자에게는 3천 금의 중상을 내린다고 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노나라는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은 베틀 돌아가는 소리와 노호의 일로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고 비옥한 전답은 거의 황폐화 되고 말았다. 이윽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관중은 갑자기 노호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노나라의 경제는 일순간에 붕괴되고 노호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반대로 양식은 극도로 부족하게 되어 곡물가격은 폭등했다. 그래서 노나라 사람들은 하릴 없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노호를 쳐다보며 굶주린 창자를 부여잡고 기아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노나라로써는 결국 제나라에서 양곡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으나 관중은 그 즉시 곡물가를 대폭 인상시켰다. 노나라의 경제는 엎친데 겹친 겪이 되어 마침내 제나라의 어떤 요구에도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노나라는 제나라의 위성국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에 관중은 다시 창끝을 초나라로 돌렸다. 초나라는 강대국으로 제나라가 패권을 유지하는게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써 중원 제후국들에게는 가장 큰 위협적인 존재였다. 관중은 환공에게 사슴을 대대적으로 기르기 위해 사방 백리에 이르는 양록원(養鹿苑)을 조성하라고 건의하고 초나라로부터 고가로 사슴을 사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반대로 곡물은 싼 가격으로 공급하라고 했다. 제나라가 사슴을 사들이는 가격을 대폭적으로 인상하고 동시에 수출하는 곡물가를 대폭적으로 인하하자 초나라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들어가 사슴 사냥에 여념이 없게 되어 전답은 모두 황폐화되었다. 이윽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관중은 갑자기 제나라의 곡물에 대한 수출을 금지시키고 사슴을 기르는 일을 중지했다. 그 결과 초나라의 식량은 부족하게 되어 곡가는 폭등했으나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해야할 돈이 없었다. 관중은 다시 관리들에게 명해 제나라의 남부 변경에서 곡식을 저가에 판매하게 하자 초나라 사람들은 떼 지어 제나라로 도망쳐 들어왔다. 기원전 656년 제환공은 제(齊), 송(宋), 진(陳), 위(衛) 등의 8국 연한군을 이끌고 초나라 변경에까지 진군하여 열병식을 전개했다.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를 상실했음으로 초왕은 할 수 없이 소릉(召陵)에서 제나라와 강화를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역사상 유명한 소릉지맹(召陵之盟)이라 한다. 제나라가 초나라를 굴복시킴으로써 마침내 패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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