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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2 06:08:292624 
섭정고사고(聶政古事考)
운영자

자객섭정(刺客聶政)


1. 섭정이 거문고를 배워 아버지의 원수를 갚다.[聶政學琴報父仇]

채옹(蔡邕)의 금조(琴操)


전국 때 섭정의 부친은 한왕을 위해 검을 만드는 공인이었다. 섭정의 부친이 검을 만들어 바친 기일을 어기게 되자 한왕이 내린 명으로 살해되었다. 그때 섭정은 태어나기 전이었다. 섭정이 태어나서 장성하게 되자 그의 모친이 부친이 당한 억울한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이때부터 섭정은 한왕을 씰러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했다.

스승을 찾아 무예를 배워 일종의 검법을 터득한 섭정이 벽돌공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궁궐로 잠입했다. 그러나 여러 번 한왕을 찔러 죽이기 위해 기회를 노렸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섭정은 궁궐에서 도망쳐 태산으로 들어가 한 사람의 선인으로부터 거문고를 배웠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신분이 드러나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자신의 용모를 바꿨다. 몸에 칠을 발라 무서운 모습으로 바꾸고 숯을 삼켜 그의 음성을 변조시켰다.

뿐만 아니라 입을 부딪쳐 이빨을 모두 뽑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고된 훈련을 계속해서 세월은 10년이 지났다. 마침내 그의 거문고 솜씨가 훌륭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섭정은 스승과 작별을 고하고 한나라로 다시 들어갔다.

한나라에 들어간 섭정은 시정에서 거문고를 타자 지나가던 사람들과 거마가 가던 길을 멈추고 구름처럼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섭정의 명성은 시간이 갈수록 한나라에 퍼져나가 마침내 한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한왕은 명을 내려 섭정을 궁중으로 불러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섭정은 근위병의 검사를 피하기 위해 비수를 거문고 속에 숨기고는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한나라 궁궐로 들어갔다. 한왕을 면대한 섭정은 혼신의 힘을 기우려 거문고를 연주했다. 신선에게서 배운 섭정의 거문고 소리는 한왕과 주위의 근위병들의 마음을 흔들어 넋을 빼앗았다. 섭정이 보고 번개같은 동작으로 거문고 속의 단검을 꺼내 한왕에게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대처하지 못한 한왕은 그 자리에서 단검에 찔려 즉사하고 말았다. 섭정은 그의 모친이 연루되어 화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자기의 검으로 자신의 용모를 훼손시켰다. 그래서 아무도 그 자객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한나라는 죽은 섭정의 시신을 거리에 전시하여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에게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의 노부인이 달려와 시신을 부여잡고 곡을 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섭정(聶政)으로 그의 부친의 원수를 갚았으나 그의 모친이 연루되지 않기 위해 그의 용모를 훼손시켰다. 내가 비록 구구한 여자의 몸이지만 내가 어찌 나의 영웅적인 아들의 이름을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없이 곡을 하더니 마침내 원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성채에서 뛰어내리더니 동맥을 끊어 죽었다.

후에 섭정이 탔던 금곡(琴曲)은《섭정자한앙곡(聶政刺韓王曲)》으로 전해졌다. r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중국 10대 금곡 중의 하나인《광릉산(廣陵散)》이다.



2. 엄중자(嚴仲子)의 원수를 갚다.

《史記․刺客列傳》


섭정은 지읍(軹邑) 심정리(深井里)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고 원수를 피해 그의 누이와 함께 제나라로 도망쳐 백정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복양(濮陽) 사람 엄중자(嚴仲子)가 한애후(韓哀侯)①를 받들고 있었는데 한나라 재상 협루(俠累)②와 틈이 벌어졌다. 협루에게 살해되지나 않을까를 두려워한 엄중자는 도망쳐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기의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찾았다. 이윽고 제나라에 들어간 엄중자는 제나라 사람들로부터 원수를 피해 백정으로 위장하여 숨어살고 있는 섭정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엄중자는 섭정의 집을 찾아가 사귀기를 청하고 여러 번 오고간 뒤에 어느 날 술을 준비하여 섭정의 모친에게 잔을 올렸다. 이윽고 술이 거나하게 되자 엄중자는 황금 백 일(鎰)③을 바쳐 섭정의 모친을 위해 수를 빌었다. 엄중자가 막대한 황금으로 자기를 후하게 대하자 매우 놀라고 한편 괴이하게 생각하여 황금을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엄중자가 고집함으로 섭정이 받아들이고 감사의 말을 했다. “제가 다행히 늙은 모친을 모시고 있으나 집이 가난하여 떠돌이가 되어 객지를 돌아다니다가 소를 잡는 백정으로 일로 아침저녁으로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이나마 얻어 늙은 어머님을 공양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할 음식은 모두 준비가 되어 있으니 제가 감히 선생께서 주시는 이 황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엄중자가 사람의 이목이 없는 곳으로 가서 섭정에게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저에게 원수가 있어 제후의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이윽고 제나라에 들어와 가만히 들어보니 귀하께서 의기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백금을 바쳐 노모에게 변변찮은 음식이나마 봉양해드림으로써 귀하와 교우를 맺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함이지 어찌 감히 제가 달리 바라는 바가 있어서이겠습니까?”

섭정이 대답했다.

“저는 마음속의 뜻을 접고 몸을 굽혀 시정에서 백정노릇을 하며 사는 사람으로 노모나마 봉양을 할 수 있는 처지를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노모가 살아계시니 이 정의 몸을 감히 다른 사람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엄중자가 굳이 황금을 주려고 했으나 섭정은 결국 받지 않았다. 그래서 엄중자와는 마침내 주인과 손님으로써의 예를 행하고 서로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섭정의 노모가 죽었다. 장례를 마치고 거상 기간을 끝낸 섭정이 말했다.

“아,아! 이 섭정은 시정에 살면서 방울달린 칼로 소를 잡는 일을 하고 있는 하찮은 사람임에도 제후의 경상(卿相) 신분에 있는 엄중자가 불원천리하고 거마를 타고와 몸을 굽혀 나와 교우를 맺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접대한 정도는 매우 박하여 아직까지 그를 위해 큰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행하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엄중자는 황금 백일을 들고 와서 모친을 축수했다. 내가 황금을 비록 받지 않았으나 그와 같은 일은 엄중자가 이 정의 마음을 깊이 알아주는 행위이다. 무릇 현능한 사람이 분노를 느끼고 눈을 들어 홀기면서 나 같은 궁벽한 사람과 친교를 맺고 믿음을 주는 행위는 다 뜻이 있어서인데 어찌 나만이 묵연히 모른 체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에 엄중자가 나를 필요로 했을 때는 그때는 다만 늙은 모친이 계시기 때문에 사양했다. 그런데 지금 모친께서 천수를 다하시고 임종하셨으니 나는 장차 지기를 위해 쓰임을 당하리라!”

섭정은 그 즉시 서쪽의 복양(濮陽)으로 달려가 엄중자를 만나 말했다.

“옛날 중자(仲子)의 청을 허락하지 않았음은 모친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불행히도 모친께서 천수를 다하시고 임종을 하셨습니다. 중자께서 원수를 갚고자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청컨대 그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엄중자가 자기의 사연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나의 원수는 한나라 재상 협루로 한나라 군주의 막내작은아버지입니다. 종족들이 매우 많아 거처하는 곳에 수많은 호위병을 세워 두어 내가 사람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려고 했으나 결국은 일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그대가 다행히 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다면 내가 기마와 수레에 장사를 태워 보내 그대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섭정이 듣고 말했다.

“한나라와 위(衛)나라의 이곳 복양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지금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일국의 재상입니다. 또한 그는 한 나라의 군주에게 친족이 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많으면 이해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이해관계를 따지다보면 일이 누설되고 맙니다. 일이 누설되면 한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그대를 원수로 여길 것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섭정은 엄중자가 자기를 돕기 위해 고용하겠다는 거기(車騎)와 장사들을 사양하고 혼자서 길을 떠났다.

칼을 지니고 한나라에 당도한 섭정은 협루가 거처하는 상국(相國)의 부중(府中)으로 들어갔다. 협루가 살펴보니 협루는 관부의 당상에 앉아 있었고 그를 지키기 위해 극으로 무장한 호위병과 시자들이 매우 많았다. 섭정이 다짜고짜로 부중으로 돌입하여 당상에 앉아있던 협루를 칼로 찔러 죽이자 상국부에는 혼란에 빠졌다. 섭정이 크게 소리치며 칼을 휘둘러 수 십 명을 죽인 후 스스로 자기의 얼굴을 가죽을 벗기고 눈을 뽑고 자신의 배를 갈라 창자를 쏟은 후 이내 숨을 거뒀다.

한나라 관리들이 섭정의 시체를 길거리에 내놓고 그가 누구인지 현상하여 물었으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라는 누구든지 협루를 죽인 자에 대해 고한다면 그에게 천금의 상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섭정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섭정의 누이 섭영(聶榮)은 어떤 사람이 한나라 상국 협루를 칼로 찔러 죽였으나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여 나라에서는 그 사람의 성과 이름을 알지 못해 천금의 상금을 걸고 그 시체를 시가에 전시하여 범인의 신상을 알아내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내 동생이 아니겠는가? 오호라, 엄중자가 내 동생의 능력을 알아주었구나!”

섭영은 그 즉시 길을 떠나 한나라로 들어가 시체가 전시되어 있는 거리로 가서 보니 과연 죽은 사람은 동생 섭정이었다. 섭영이 동생의 시체 위에 엎어져 통곡을 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지읍(軹邑)의 심정리(深井里) 출신의 섭정이라는 사람입니다.”

거리를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이 사람은 우리 한나라의 상국을 잔혹하게 살해한 자로써 왕이 천금의 현상금을 걸고 그 성과 이름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부인은 듣지 못했소? 어찌 감히 달려와 자신의 동생이라고 밝히는 이유가 무엇이오?”

섭영이 대답했다.

“물론 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오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저잣거리의 상인들 사이에 몸을 던져 살았던 이유는 늙은 모친께서 다행히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저 또한 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모친께서 천명을 다하시어 돌아가시고 저도 역시 출가하여 남의 아내가 되자 비록 동생이 곤궁하고 더러운 곳에 몸을 두고 있는 처지이지만 그 현능함을 알아본 엄중자가 찾아와 교우관계를 맺고 은혜를 크게 베풀었으니 동생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했으나 엄중자와 제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몸을 해쳐 다른 사람을 연좌시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떻게 주살됨을 두려워하여 현능한 동생의 이름을 없애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한나라의 시정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이윽고 섭영이 크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세 번 크게 외쳐 슬퍼하다가 섭정의 시체 곁에서 죽었다.

 진(晉), 초(楚), 제(齊), 위(衛) 등의 나라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말했다.

“현능한 사람은 단지 섭정뿐만이 아니라 그 누이 역시 열녀로다! 만일 섭정이 그의 누이가 참고 견디는 성격이 아닐뿐 아니라 필시 해골을 드러내는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며 천리의 험하고 먼 길을 달려와 그의 이름을 들어내고 남매가 같이 한나라의 시정에서 죽게 되는 운명을 알았다면 섭정은 결코 엄중자에게 자기의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중자 역시 현사를 얻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주석

①한애후(韓哀侯) : 기원전 376년에 즉위하여 371년에 죽은 전국 때 한나라 군주다. 즉위년에 조(趙)와 위(魏) 등과 함께 진(晉)나라를 멸하고 삼분했다. 다음 해인 기원전 375년 정나라를 멸하고 그 수도를 신정(新鄭)으로 옮겼다. 재위 6년 만에 한나라 귀족 출신의 한엄(韓嚴)에게 살해되고 그의 아들 의후(懿侯)가 뒤를 이었다.

②협루(俠累)/ 위(衛)나라 복양(濮陽) 사람으로 한(韓) 씨에 이름은 괴(傀)다. 일찍이 친구이며 부자인 엄수(嚴遂)의 도움으로 한나라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협루가 엄수를 박대했다. 이에 한열후(韓烈侯) 3년 기원전 376년 분노한 엄수에 의해 고용된 자객 섭정(聶政)에 의해 살해되었다.

③일(鎰)/ 춘추전국시대 때 한 일은 20량 혹은 24량이고 한 량은 16그람임으로 320그람 혹은 384그람임. 즉 황금 백 일은 32키로 혹은 38키로에 해당하는 중량임.



3. 요제지이(聊齋志異)

명나라 말 회경로왕(懷慶潞王)①은 혼군으로 그는 민간에 미행 나갈 때마다 예쁜 여자들만 보면 빼앗아갔다. 왕생의 처를 본 로왕이 거마를 보내 곧바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끌어냈다. 왕생의 처가 울부짖으며 따르려고 하지 않자 그들은 강제로 그녀를 잡아 집밖으로 끌어냈다. 왕생이 도망쳐 섭정의 묘에 몸을 숨기고는 그의 처가 그곳을 지나가기를 기다려 멀리서나마 보고 작별하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과연 왕생의 처가 당도하여 그녀의 남편을 멀리서 보고 또 다시 땅에 드러누워 대성통곡했다. 비통한 마음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왕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역시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왕생의 처를 끌고 가던 사람들은 그가 왕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잡아 채찍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그러자 갑자기 묘 안에서 한 남자가 손에는 예리한 칼을 들고 나타나더니 무서운 소리로 외쳤다.

“나는 섭정(聶政)이라는 사람이다! 어찌하여 양가의 부녀자들을 강제로 납치해간단 말인가? 내가 보니 너희들도 왕이 시키는대로 하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 내가 잠시 용서하겠다. 너희들은 무도한 왕에게 만약에 악행을 또다시 행하여 개과천선하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며칠 내에 그의 머리를 자르겠다고 전하라!“

사람들이 크게 놀라 수레를 버리고 도망치고 그 남자도 묘지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왕생 부부는 섭정의 묘에 머리를 땅에 대고 무수히 절을 올린 후에 집으로 돌아가 로왕이 다시 사람을 보내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지 10여 일이 지났으나 로왕 측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그때서야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어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로왕은 그때부터 음행을 멈추게 되었다.


 이사씨(異史氏)가 말했다.

“자객열전을 읽게 되면 지읍(軹邑) 심정리(深井里) 출신의 섭정은 몸을 예리하게 닦아 자기를 알아주었던 사람을 위해 원수를 갚은 예양(豫讓)②의 충의를 생각하게 한다. 백주대낮에 한나라의 재상을 죽인 일은 용기가 있음을 말하고 얼굴의 가죽을 벗겨 스스로 형을 가해 골육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한 행위는 지혜로운 조말(曹沫)③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뒤이어 등장하는 형가(荊軻)④는 힘이 부족한 연나라를 위해 무도한 진나라를 도모할 목적으로 사자가 되어 함양으로 들어갔다가 진시황의 옷소매만 자르고 목숨을 잃고 말아 경솔하게 빌린 번(樊)장군⑤ 목은 언제나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 되었다. 천고의 한으로 여기는 형가는 섭정으로부터 비웃음만 사지 않겠는가? 야사에 형가의 무덤은 양․좌(羊․左)➅의귀신들에 의해 파헤쳐졌으니 과연 그는 살아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더니 죽어서도 여전히 의를 잃었으며 이에 비해 의분을 품고 황음무도한 자를 징벌한 섭정의 현능함과 형가의 불초함이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注释”

①회경로왕(怀庆潞王):명목종(明穆宗) 주재후(朱载厚)의 4자 주익류(朱翊镠)이고. 회경은 명나라 지방정부의 이름으로 치소는 지금의 하남성 심양현(沁阳县)이다. 주익류는 4살의 어린 나이로 회경왕에 책봉되었고 로(路)는 그의 시호다.

②유예지의(有豫之義) : 예(豫)는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豫让)을 말한다. 춘추와 전국 교체기의 자객으로 당시 당진국의 집정 지백(智伯)에 의해 중용되어 후대를 받았다. 후에 지백이 조양자에 의해 피살되자 예양은 몸에 칠을 하여 나병환자처럼 꾸미고 숯을 샄켜 벙어리로 가장하고 조양자를 죽여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양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③조말(曹沫) : 춘추 때 노나라 사람으로 자객열전에 나오는 인물이다. 노장공을 모셨던 조말은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장군으로 출전하여 여러 번 패한 결과 노나라는 영토를 떼어 제나라에 바치고 수호를 맺으려고 했다. 그래서 제환공과 노장공인 제나라의 가(柯) 땅에서 만나 회맹을 행하고 수호하기로 했다. 조말이 노장공을 수행하여 회맹장으로 가서 비수를 들고 제환공을 위협하여 전쟁으로 인해 빼앗긴 땅을 찾아 외교상의 승리를 이끌어냈다.④형가(荊軻) : 전국말 연나라의 자객으로 원래 위(衛)나라 사람이다. 연나라 태자 단(丹)에게 인정을 받아 진시황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았다. 진나라에 들어간 형가는 진나라에서 도망친 번오기 장군의 머리와 연나라의 기름진 땅인 독항(督亢)의 지적도를 바친다는 명목으로 지도 속에 비수를 감추고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접견을 청했다. 형가는 지도를 바칠 때 왼손으로는 진시황의 소매를 잡고 비수를 든 오른손으로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비수는 진시황의 몸에 닿지 못하고 놀란 진시황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매를 잘랐다. 암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형가는 현장에서 피살되었다.《사기(史记)·자객열전(刺客列传)》

⑤번오기(樊於期):진시황의 동생 성교(成蟜)를 부추겨 진나라에 반기를 들게 했으나 실패하자 도망쳐 연나라에 망명했다. 진나라가 그의 목에 천금과 만호의 작위를 걸었다. 형가가 진왕의 신임을 얻어 그를 암살하기 위해서는 그의 목이 필요하다고 하자 번오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의 목을 형가에게 주었다.

⑥양․좌(羊․左):전국시대 초나라의 양각애(羊角哀)와 좌백도(左伯桃)를 말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서로 친구 사이었던 양각애와 좌백도는 초왕이 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초나라 도성으로 향했다. 도중에 큰 눈을 만나 길이 끊겼는데 의복은 얇고 양식은 부족해서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좌백도가 자기의 의복과 식량을 양각애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큰 나무의 빈 곳으로 들어가 죽었다. 좌백도의 양보로 목숨을 구한 양각애가 초나라의 도성에 당도하여 상경(上卿)의 벼슬을 받았다. 양각애로부터 좌백도의 일을 전해들은 초왕은 좌백도를 상경에게 행하는 의식으로 장례를 치루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좌백도의 양각애의 꿈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내가 자네의 은혜를 입어 후한 의식으로 치르는 장례를 받았네. 그런데 나는 지금 근처에 있는 무덤 속에 있는 형장군(荆将军) 때문에 많은 고초를 당하고 있네. 이번 달 15일 내가 형장군과 크게 싸움을 한판 벌려 승부를 결하려고 하니 그때가 되면 병사를 끌고 와서 도와주게나!”

양각애가 그 날이 되자 형가의 무덤 앞에 병마를 포진시키고 세 사람의 오동나무로 만든 인형을 만들어 세운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무덤속으로 떨어졌다.(《후한서(后汉书)·신도강전(申屠刚传)》의 주에 인용한《열사전(烈士传)》의 내용이다.)


그리고 후에 명나라의 풍몽룡이 지은 《고금소설(古今小说)》혹은 《유세명언(喩世明言)》의 제7권《양각애사명전교(羊角哀舍命全交)》는 양각애와 좌백도의 우정을 각색한 이야기다.


양각애와 좌백도는 춘추 말 연나라 출신의 선비다. 자기 형을 쫓아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한 초평왕(楚平王)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천하에 인재를 구했다. 두 사람이 초평왕의 초빙에 응하기 위해 초나라의 도성 영도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가 자기를 위해 죽은 좌백도 무덤 안으로 들어가 죽자 그날 밤 2경이 되자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천둥과 번개가 소리와 함께 나는 함성소리가 10리 밖에까지 들렸다.”라고 했다. 아침에 가서 살펴보니 형가의 묘지가 파해쳐지고 백골이 드러나 있었으며 묘당은 부서져있었다. 형가의 혼령은 그 날로 사라졌다고 했다. 양각애와 좌백도의 우정을 사명지교(舍命之交), 사명전교(舍命全交)라는 고사성어의 전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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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14-03-03
[] 기원전 494년 부초지전고(夫椒之戰考)

부초지전(夫椒之戰) 1. 원인 기원전 494년에 일어난 오월의 부초지전은 기원전 496년 취리(欈里)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생명을 잃은 오왕
운영자 14-02-04
[] 오씨삼대(伍氏三代)

1. 오참(伍參) 기원전 597년 초장왕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정나라를 포위 공격했다. 그해 6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3군을 출동시켰
운영자 13-12-23
[] 초재진용(楚材晉用) - 초나라의 재목을 진나라가 가져다 쓰다.

초재진용(楚材晉用) 初楚伍參與蔡大師子朝友(초초오참여채대사자조우) 옛날부터 초나라 오참①과 채나라 태사 자조는 친한 사이였다.
운영자 13-12-23
[] 임성삼의 춘추강독

춘추강독(春秋講讀) 공자는 '춘추'를 짓고 나서 "후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것도 이 춘추를 통하여고, 비난하는 것도 춘추를 통하여 일 것이다
운영자 13-11-29
[] 허목부인(許穆夫人) - 중국 최초의 애국여류시인 -

허목부인(許穆夫人) - 중국 최초의 애국여시인 -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고, 희성에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춘추 때 위나라 여인으로 중국 역
운영자 13-11-29
[] 《오자(吳子)/울료자(尉繚子)》

《오자(吳子)/울료자(尉繚子)》 오자(오기)와 울료자(울료)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다. 《손자병법》의 손자에 비해 생소하기는 하지만
운영자 13-09-26
[] 자한(子罕)

자한(子罕) 1. 정국칠목(鄭國七穆) 공자희(公子喜) 정목공(鄭穆公)의 아들로 희성(姬姓)에 이름은 희(喜)다. 자풍(子豊), 자사(子駟)와 동모형
운영자 13-09-03
[] 상앙의 변법 내용

상앙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원전 390년 경에 태어나서 338년에 죽은 중국역사를 통틀어 변법을 통해 개혁을 단행한 가장 인상적인 정치가다. 전
양승국 04-10-04
[] 상간(桑間)

상간(桑間) ① 은(殷)나라를 멸한 주무왕은 그 땅에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봉한 후에 나라를 패(邶), 용(鄘), 위
운영자 13-01-13
[]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의 전말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 손자가 말한 바가 있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도궁비현(圖窮
운영자 13-01-09
[] 구합제후(九合諸侯)

구합제후(九合諸侯) 제환공이 아홉 번에 걸쳐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한 일을 말한다. 회맹을 연도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양승국 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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