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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8 08:46:043350 
위영공(衛靈公)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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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공(衛靈公) 삼대(三代)

위영공① 39년 기원전 497년, 영공의 부인 남자(南子)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태자 괴외(蒯聵)가 그녀를 죽이려는 생각으로 그의 가신 희양속(戱陽遫)과 모의했다. 괴외는 회양속에게 조회를 볼 때 기회를 노려 남자를 죽이라고 사주했다. 이윽고 기회가 왔으나 회양속이 후회하고 손을 쓰지 않았다. 괴외가 여러 번 눈짓으로 회양속에게 손을 쓰라고 재촉하자 남자가 눈치를 채고 두려움에 떨며 큰 소리로 외쳤다.

「태자자 나를 죽이려고 한다!」

영공이 크게 노하자 태자는 나라 밖으로 도망쳐 송나라로 들어갔다가 얼마 후에 당진국으로 들어가 조씨(趙氏)들에게 몸을 의탁했다.

영공 42년 기원전 494년 봄, 영공이 교외에 나들이를 나갈 때 자영(子郢)②으로 하여금 어가(御駕)를 몰도록 했다. 자영은 영공의 막내아들로 자가 자남(子南)이다. 나라 밖으로 도망친 태자 괴외를 괘씸하게 생각한 영공이 자영에게 말했다.

「내가 장차 너를 태자로 세워 나의 뒤를 잇게 하겠다.」

그러자 자영이 대답했다.

「소자는 태자의 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나라를 욕되게 할 뿐입니다. 부군께서는 심사숙고하시어 다른 방법을 찾으십시오.」

그해 여름 영공이 죽었다. 부인 남자가 자영을 태자로 세워 위후(衛侯)의 자리를 잇게 하려고 말했다.

「이것은 선군의 명이다.」

자영이 대답했다.

「나라 밖으로 도망친 태자의 아들 첩(輒)이 있습니다. 저는 막중한 군주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래서 위나라 국인들은 첩을 위후로 세웠다. 이가 위출공(衛出公)③이다.

이해 6월 을유(乙酉) 날에 조간자(趙簡子)④가 괴외(蒯聵)를 위나라에 환국시키기 위해 위나라 사람으로 분장시킨 양호(陽虎)⑤와 10여 명의 사람들에게 상복을 입혀 위나라로의 사자라고 속여 진후(晉侯)를 접견한 자리에서 태자를 영접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게 했다. 조간자는 위나라로 환국하는 태자를 환송했다. 위나라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군대를 국경으로 출동시켜 괴외의 일행을 공격했다. 그래서 괴외는 위나라에 못 들어가고 단지 숙(宿)의 땅에 머물며 스스로를 보전하자 위나라 군대도 물러갔다.

출공 12년 기원전 481년 초, 공문자(孔文子) 어(圉)가 아내로 맞이한 태자 괴외의 누이에게서 아들 리(悝)를 낳았다. 공문자의 가복(家僕) 혼량부(渾良夫)는 그 외모가 영준하고 늠름했다. 이윽고 공문자가 죽자 혼량부와 리(悝)의 모친이 서로 정을 통했다. 그때 태자 괴외가 숙(宿)에 머물고 있었음으로, 리의 모친은 혼량부를 태자가 머물고 있던 곳으로 보냈다. 태자가 혼량부를 보고 말했다.

「내가 위나라 군주 자리에 오르는데 그대가 도와준다면, 높은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대부에 봉하여 보답하겠으며, 그대가 비록 죽을죄를 세 번 범한다하더라도 모두 용서하여 죽음을 면하게 해 주겠다.⑥」

두 사람이 맹세의 의식을 행하고 다시 혼량부가 공리의 모친을 아내로 맞이해서 살아도 좋다고 했다. 그해 윤 12월, 혼량부와 태자 괴외가 위나라 도성으로 들어와 공리의 집 후원에 숨어 있다가 저녁이 되자 두 사람은 여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두건을 머리에 단단히 동여 메고 환관 나(羅)에게 수레를 몰게 하여 공씨 집으로 갔다. 공씨들의 가신 란녕(欒寧)이 보고 누구냐고 묻자 공씨 친척의 시첩들이라고 대답하고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공씨 집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공리의 모친인 백희(伯姬)의 처소로 들이닥쳤다. 일행이 식사를 마치자, 백희가 과를 들고 앞장서서 공리의 처소로 일행을 끌고 갔다. 갑옷을 입은 다섯 사람이 수퇘지 한 마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역시 갑옷 차림으로 무장한 태자의 뒤를 따랐다. 아들 공리를 헛간으로 강제로 끌고 간 백희는 태자 앞에서 맹세를 시키고 다시 억지로 고대(高臺)에 오르게 했다. 그때 란녕이 식사와 함께 반주를 즐기려고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그 고기가 미처 익기 전에 란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중유(仲由)⑦에게 알렸다. 이때 소호(召護)가 수레를 몰고 오더니 고기 안주에 술을 마신 후에 출공에게 달려가 태우고는 노나라로 달아났다.

중유가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공씨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공씨 집에서 도망쳐 나오고 있는 자고(子羔)⑧를 만났다. 자고가 자로에게 말했다.

「성문이 이미 닫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로가 대답했다.

「내가 잠시 들어가서 한 번 살펴봐야 되겠다.」

「가봐야 할 수 있는 없습니다. 사형이 가시면 화를 입게 됩니다.」

「내가 공리의 녹봉을 받고 있는데 그가 당한 어려움을 보고도 모른 체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자 자고는 달아나고 자로는 계속 앞으로 달려가 성문 앞에 당도했다. 그때 성문을 지키던 공손감(公孫敢)이 황급하게 성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성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없소.」

자로가 소리쳤다.

「당신은 공실의 일원이 아니오? 다른 사람의 녹을 받아먹고 있으면서 그 사람이 위난에 처해있는데 어찌 몸을 피한단 말이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소. 다른 사람의 녹봉을 받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위난에 빠졌을 때는 반드시 도와야 한다고 나는 알고 있소!」

그때 어떤 사람이 성문을 열고 안에서 나오지 자로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의 공리 집 앞에 당도한 자로가 소리쳤다.

「태자께서는 공리를 잡아서 어디다 쓰려고 하십니까? 설혹 공리를 죽인다한들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할 뿐입니다.」 다시 큰 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태자께서는 용기가 없으시니 만일 내가 고대에 불을 놓아 태운다면 필시 공리를 방면하실 것입니다.」

고대에서 자로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태자가 두려워한 나머지 석걸(石乞)과 우염(盂黶)을 고대에서 밑으로 내려 보내 자로를 막도록 했다. 두 사람이 과(戈)를 들고 자로를 베자 그의 갓끈이 끊어졌다. 자로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군자는 관을 바르게 써야 한다고 했소!」

자로가 갓끈을 이어 관을 바르게 쓴 후에 죽었다. 노나라에 머물고 있던 공자가 위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고시는 살아 돌아오겠지만 중유는 돌아오지 못하고 죽고 말겠구나!」

결국 공리는 어쩔 수 없이 태자가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데 동의하고야 말았다. 이가 위장공(圍莊公)이다.

장공 괴외는 출공(出公) 첩(輒)의 아버지다. 오랫동안 나라밖에서 살면서 나라 안의 대부들이 자기를 모셔가지 않은 행위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다. 장공 즉위 원년인 기원전 480년, 장공이 위나라의 대신들의 잘못을 열거하며 모두 주살하려고 하면서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나라 밖에서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대들은 그 소식도 듣지 못했는가?」

그 말에 군신들이 작당하여 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장공이 어쩌지 못하고 죽이려는 생각을 그만뒀다.

장공 2년 기원전 479년, 노나라의 공자가 죽었다.

장공 3년 기원전 478년, 장공이 성벽에 올라 융주(戎州)⑨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찌하여 융인(戎人)과 같은 오랑캐 따위가 성읍을 지어 가까이 살고 있단 말인가?」

장공의 말을 전해들은 융인들은 매우 두려워했다. 그해 10월에 융주의 융인들이 당진(唐晉)의 조간자에게 고하자, 조간자가 군사를 보내어 위나라를 포위했다. 11월 장공이 다시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위나라 국인들이 공자 반사(斑師)를 군주로 세웠다. 이에 다시 제나라가 군사를 보내어 위나라에 쳐들어와 반사를 잡아갔다. 위나라 국인들이 다시 공자기(公子起)⑩를 군주로 세웠다.

위군 기(起) 원년 기원전 477년, 위나라의 대부 석만부(石曼尃)가 그 군주 기(起)를 몰아내자 기(起)는 제나라로 망명했다. 출공(出公) 첩(輒)이 제나라에서 들어와 위군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일찍이 출공은 12년 동안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있다가 외국으로 도망쳐 살다가 다시 환국하여 4년 만에 복위했다. 출공 후원년 기원전 476년, 출공은 자기를 따라 제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포상을 했다. 출공 후원년 21년 기원전 456년, 출공이 죽었다. 출공은 기원전 493년에 위군의 자리에 올라 12년 후인 기원전 481년에 제나라로 망명하고 4년 후에 환국하여 복위하여 21년 동안 재위에 있다가 죽었다.⑪ 출공이 죽자 그의 숙부 검(黔)이 출공의 아들을 쫓아내고 스스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위도공(衛悼公)이다.


①위영공(衛靈公)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93년에 죽은 춘추 때 위(衛)나라 군주다. 희(姬) 성에 이름은 원(元)이고 양공(襄公)의 아들로 주경왕(周景王) 11년 기원전 534년 군위에 올랐다. 그의 재위 기간 중 망명해 온 공자를 받아들여 후대했다. 만년에 그의 부인 남자(南子)와 태자 괴외(蒯聵)가 서로 틈이 벌어져 이윽고 괴외가 남자의 살해를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송나라로 도망친 사건으로 위나라 공실에 내란이 발생했다. 재위 기간은 42년이다.

②자영(子郢) : 위영공의 막내아들이다. 자는 자남(子南)이다.

③위출공(衛出公)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93년에 군위에 올라 468년에 죽은 위(衛)나라 군주다. 희(姬) 성에 이름은 첩(輒)이고 위영공의 손자이며 위장공(衛莊公) 괴외(蒯聵)의 아들이다. 기원전 493년 영공의 첩실 남자(南子)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당시 태자의 신분이었던 괴외가 나라 밖으로 도망치자 죽은 영공의 뒤를 첩이 이었다. 그의 재위 13년 째인인 기원전 480년 망명 중인 괴외가 혼량부(渾良夫)와 모의하여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출공은 노나라로 망명했다. 3년 후인 기원전 477년 융인(戎人)의 공격으로 위장공 괴외가 살해 되었음으로 귀국하여 군주의 자리에 다시 복위했다. 출공은 기원전 493년에 위군의 자리에 올라 12년 후인 기원전 481년에 제나라로 망명하고 4년 후에 환국하여 복위하여 21년 동안 재위에 있다가 죽은 것이다.

④조간자(趙簡子)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75년에 죽은 춘추말 당진국의 정경(正卿)으로 이름은 앙(鞅)이다. 당진국 공실의 세력이 쇠퇴하자 순인(荀寅)과 범길석(范吉射)이 조씨들을 공격했다. 그는 진양(晉陽)으로 달아났다. 후에 정경의 자리에 복귀한 조앙은 조씨의 가병을 동원하여 범씨와 순씨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두 종족은 조가(朝歌)와 한단(邯鄲)으로 들어가 농성했다. 이에 지(智), 한(韓), 위(魏) 등의 3가와 힘을 합쳐 조가와 한단을 압박했다. 4가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범씨와 순씨들은 제나라로 달아났다. 후에 범개(范匃)가 제정한 형서(刑書)를 철정(鐵鼎)에 새겨 조씨들이 다스리던 지역의 정치와 경제를 개혁함으로 해서 조가들의 세력을 증대시켰다. 그의 아들 조양자 때 한위조(韓魏趙) 삼가는 지가(智家)를 멸하고 당진국을 삼분해 전국시대를 열었다.

⑤양호(陽虎) : 춘추 때 노나라 사람으로 양화(陽貨)라고도 한다. 계손씨(季孫氏)의 가신으로 계평자(季平子) 즉 계손의여(季孫意如)를 받들었다. 평자(平子)가 죽자 그를 대신하여 노나라의 국정을 전단했다. 노정공(魯定公) 5년 기원전 505년 계손씨들의 적자인 계환자(季桓子) 사(斯)를 붙잡아 감금하고 복종을 강요했다. 노정공 8년 기원전 502년 삼환씨(三桓氏)의 적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그와 사興) 좋은 그들의 서자들을 대신 세우려고 란을 일으켰으나 삼환씨들의 반격을 받아 싸움에서 지고 공실의 보물들과 대궁을 가지고 지금의 산동성 태안시(泰安市) 동남쪽에 있던 양관(陽關)으로 도주했다. 노정공 9년 기원전 501년 다시 삼환씨들의 공격을 받아 도망갔다가 제나라에 의해 체포되어 노나로 호송되던 도중에 탈출하여 당진으로 도망가 조앙(趙鞅)의 가신이 되었다.

⑥세가지의 사죄를 면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세 가지의 죽을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혼량부에게 허락하여 특권을 부여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죽을죄를 세 번 저지르더라도 모두 사면하겠다는 뜻이다. 후에 혼량부는 출공 첩의 아들이며 장공의 손자로 태자의 자리에 오른 질(疾)에게 잡혀 죽었다. 그 때 혼량부에게 적용한 죄명은 군주만이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은 행위, 양팔이 없는 여우가족으로 만든 갖옷을 착용한 행위, 칼을 허리에 찬 채로 식사를 한 행위 등 세 가지 죽을죄에, 해외에 망명 중인 출공 첩(輒)을 불러들여 반역을 도모했다는 죄를 한 가지 더 추가해서 죽였다. (<左傳 哀公 17年 春> 衛侯爲虎幄于藉圃, 成, 求令名者而與之始食焉. 太子請使良夫. 良夫乘衷甸兩牡, 紫衣狐裘. 至, 袒裘, 不釋劍而食. 太子使牽以退, 數之以三罪而殺之).

⑦중유(仲由) :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의 이름이다. 공자보다 9세 연하다. 이때 자로는 위나라에 출사하여 공(孔)씨의 읍재(邑宰)를 지내고 있었다.

⑧자고(子羔) : 공자의 제자 고시(高柴)의 자(字)로 공자보다 30세 연하다. 기원전 521년에 태어났으나 죽은 해는 알 수 없다. 신장은 5척에 체 못 미쳤으며 외모는 못났다. 공자는 그를 가르칠 때 우직하다고 평하고 자고로 인해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⑨융주(戎州)/ 지금의 산동성 조현(曹縣) 동남 쪽의 고을로 융인들이 세운 성읍이었다. 12제후연표에는 ‘ 장공이 융주의 사람들을 욕보이자 융인과 조간자가 군사를 내어 장공을 공격했다.’라고 했다.

⑩공자기(公子起)/ 영공(靈公)의 아들이다.

⑪索隱按: 左傳,莊公本由 晉趙氏納之, 立而背晉,晉伐衛, 衛人出莊公, 立公子般師。晉師退, 莊公復入, 般師出奔。初,公登城見戎州己氏之妻髮美, 髡之以為夫 人。又欲翦戎州,兼逐石圃, 故石圃攻莊公 。莊公懼, 踰北牆折股, 入己氏,己氏殺之。 今系家不言莊公復入及死己氏, 直云出奔, 亦其疏也。 又左傳云衛復立般師, 齊伐衛, 立公子起, 執般師。 明年, 衛石圃逐其君起, 起奔齊, 出公輒復歸 。是左氏詳而系家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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