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527 
· 어제 :  693 
· 최대 :  2,389 
· 전체 :  1,225,437 
 
  2014-03-03 13:00:032572 
전제(田齊) 약사
운영자

전제(田齊) 약사


1. 국성(國姓) : 규성전씨(嬀姓田氏)

2. 작위(爵位) : 후작(侯爵), BC 334년에 왕호 사용시작

3. 수도(首都) : 임치(臨淄), 지금의 산동성 임치현(臨淄県)

4. 분봉자(分封者) : 주안왕(周安王)

5. 시조(始祖) : 태공(太公) 전화(田和)

6. 존재시기 : BC386년- BC221년

7. 멸망: 진(秦)에 의해 멸망

전제(田齊)는 중국의 전국시대 BC 386년에 제(齊)나라의 군주가 강성(姜姓) 여씨(呂氏)에서 규성(嬀姓) 전씨(田氏)로 바뀌며 새롭게 된 나라. 국호는 여전히 제(齊) 이지만, 서주•춘추시대의 강제(姜齊)와 구별하여 전제(田齊)라고 부른다. 전국시대 중기에 민왕(湣王)무렵에는 동제(東帝)를 칭할 정도로 강성했던 전국칠웅(戦國七雄)의 하나였다. 수도는 강제(姜齊)때와 변함없이 임치(臨淄)였다.

제후가 될 때 까지

제나라 전씨(田氏)의 선조는 BC 672년에 진(陳)나라에서 망명해 온 진나라 군주 여공(厲公) 규약(嬀躍)의 아들, 공자 완(完)이다. 제환공(齊桓公) 14년 때 일로 제환공은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여 경(卿)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굳이 사양하여 공정(工正)을 삼았다. 공정이란 장인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이다. 완이 제나라에 정착하고 부터는 진씨(陳氏) 성과 전씨(田氏) 성을 혼용하여 썼다. 완이 죽자 그에게 경중(敬仲)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사기(史記)의 세가(世家) 中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기원전 672년 완이 제나라 망명한지 288년 후인 10대 후손 전화(田和)가 강씨의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전씨의 제나라를 건국했다. 전화가 제태공(齊太公)이다. 23대 경공(景公)때, 전리자(田釐子) 걸(乞)은 세를 징수할 때에 작은 되를 사용하고, 양식을 백성에게 배급할 때는 큰 되를 사용하여 백성의 민심을 샀다. 경공이 죽자 군주의 자리를 이은 안유자(安孺子) 도(荼)는 나이가 어렸음으로 전걸(田乞)과 포목(鮑牧)은 지지 세력을 규합하여 어린 군주를 옹호하는 세력을 공격하여 제거하고, 노나라에 망명 중에 있던 공자 양생(陽生)을 불러 군주로 옹립했다. 이가 제나라 25대 군주 도공(悼公) 이다. 전걸(田乞)이 죽고 아들 전성자(田成子) 항(恒)(“사기”에는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의 이름을 피해 ‘전상(田常)’ 이라 표기)이 뒤를 이었다. 포목(鮑牧)이 도공을 살해하여 간공(簡公)을 왕위에 세우고, 전상은 감지(監止)와 함께 좌우상(左右相) 대신이 되었지만, 2명은 대립하여 세력 다툼을 하게 된다. 감지의 음모를 안 전상이 선수를 취해, 감지에 이어 간공을 죽이고, 평공(平公)을 세웠다.

이 때, 전상은 제나라 정치를 장악하여 제나라 안평(安平)의 동쪽을 송두리째 전씨의 봉지로 만들었다.

제강공(齊康公) 19년 (전 386년) 전상의 증손 전화(田和)가 강제(姜齊)의 29대 군주 강공을 해변으로 쫓고, 제나라의 군주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로 제나라는 전씨 성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다. 이 해에 전화는 주안왕으로부텨 정식으로 제후(齊侯)로 피봉되어 제후의 대열에 섰다. 이것이 전제(田齊)의 성립이다.


전제의 전성

위왕(威王), 선왕(宣王), 민왕(湣王) 때(BC 4세기 중엽∼BC 3세기 중엽) 전성기였다.

위왕(威王)은 “ 삼년불비(三年不飛) 삼년불명(三年不鳴)”의 일화로 유명한 군주로, 독창적인 인사정책과 언로정책으로 국세를 높였다. 군사면에서는 손빈(孫臏)를 등용해 당시 패권국 위나라와의 BC353년의 계릉의 싸움과 340년의 마릉(馬陵)의 싸움에서 모두 이겨 제나라를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시켰다.

또 학문도 활발하게 진흥시켜, 수도 임치의 직문(稷門)에 거처를 마련하여 중국 천하에서 학자들을 모아 머물게 하여 “직하학사(稷下學士)”라고 부르고 전국시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열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맹자(孟子), 순우곤(淳于髡), 추연(鄒衍), 윤문(尹文), 환연(環淵), 전병(田騈), 신도(愼到), 순경(荀卿), 추석(騶奭)등이 있다. 직하학사 전의 여러 사상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독자적인 경향을 띠었으나 직하라는 곳으로 한데 모이게 되어 고대 중국의 사상들이 절충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BC 334년, 위왕은 위혜왕(魏恵王)과 함께 왕호를 칭했다. 그 후로도 국세는 강해져서 동제(東齊)와 서진(西秦)의 동서 양대국 시대를 만들었다.

민왕(湣王) 때 송(宋)을 멸망시켰고, 진의 소양왕(昭襄王)과 함께 왕보다 높은 칭호인 제(帝)를 자칭해, 동제(東帝)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 제후들의 반감을 꺼려해 호칭을 다시 왕으로 되돌렸다.

이 시기에는 사군자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이 재상이 되어 국정을 보고 있었는데, 제나라를 초와 진과 함께 강국으로 부상시킨 인물로 사군자 중 첫째로 평가되고 있다.

쇠퇴

민왕 때 송(宋)을 멸망시켜 제나라의 영토로 삼고, 이어서 연(燕)나라를 공격하여 종묘사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에 간신히 연나라의 사직을 붙잡아 정국을 수습한 연소왕은 제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다가 명장 악의(樂毅)를 얻어 제나라 정벌군을 일으켰다.

BC 284년, 악의가 이끄는 연(燕), 진(秦), 조(趙), 위(魏), 한(韓) 등의 오국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제나라는 대패하여 거의 멸망직전까지 갔다. 전국시대 가장 유능한 장군의 한 명으로 평가되는 악의에 의해 수도 임치가 함락되자 여러 주변국을 전전하며 목숨을 부지하다가 초나라가 보낸 구원군 대장 요치(淖齒)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즉묵(卽墨)과 거성(莒城) 두 곳을 제외한 전 영토가 연나라에 의해 점령당한 제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제나라의 쇠미한 공족 출신의 전단(田單)이란 장군의 활약으로 제양왕이 전란 중에 제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역사상 화우진(火牛陣)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기만전술을 이용하여 연나라에 점령당한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되찾고 국세를 회복했다.

하지만, 이미 제나라의 국력은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었음으로 일찍이 진과 같이 천하를 두고 싸울 수는 없었다. 그 후, 제는 진나라에 의해 차례차례 멸망해 가는 가는 타국을 방관하는 정책을 취했다. 확실히 이 정책에 의해 순간의 평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그 결과 마지막에는 전혀 아군이 없는 상태로 진과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BC 221년에 진시황에 의해서 파견된 장군 왕분(王賁)에 의해서 마지막 왕 건(建)은 잡혀 제는 멸망했다. 진을 제외한 「전국칠웅」중 마지막 일국이었다.

초한쟁패시 제의 부흥운동

통일 진제국 말기인 기원전 209년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켜 장초(張楚)를 세우자, 제(齊)의 종실 일족인 “전담(田儋), 전영(田榮), 전횡(田横)” 삼형제가 진(秦)에 반기를 들고 전담을 왕으로 세워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전담은 제나라 전국시대 영토를 차례로 평정하기 시작했으나 진나라 장군 장한의 역습을 받아 전투 중 전사했다. 후에 진을 멸하고 패권을 쥔 항우는 전도(田都)를 제나라 왕에 임명했는데, 이에 불만을 가진 전영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전국시대 때의 제나라 전 지역을 병합했다.

이에 항우가 토벌하러 제나라로 쳐들어갔고, 이 싸움으로 항우에 의해 전영은 패배하여 도망가다 전사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항우는 제나라의 성곽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고, 그가 통과하는 지역의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여 분풀이했다.

이에 전영의 동생인 전횡(田橫) 뒤를 이어 제나라의 패잔군을 수습하여 항우의 군대를 공격했다. 항우는 그 동안 수많은 제나라 포로들을 생매장해 살해해 왔기 때문에 제나라 군사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쉽게 공락할 수 없었다. 그때 촉으로부터 군사를 일으켜 관중으로 나온 뒤 제후들을 규합하여 동진하여 항우의 본거지 팽성을 점령하자 항우는 결국 제나라와의 싸움을 중단하고 회군했음으로 그 틈을 이용한 전횡은 쉽게 제나라 성들을 회복했다.

전횡은 전영의 아들 전광(田廣)을 왕으로, 자신은 재상이 되어 국정을 이끌었다. 3년 후, 유방의 부하 한신에 의한 제나라 정벌이 개시되지만, 유방의 부하 역이기(酈食其)가 제와의 동맹을 맺는 사자로서 방문하여 유방과 제나라의 동맹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역이기의 공을 시기한 한신은 제나라가 경계를 풀고 있는 사이를 틈타 제나라를 급습했다. 이에 역이기에 속았다고 생각한 전광과 전횡은 역이기를 팽살(烹殺)하고 한신군에 대항했으나 그들은 결코 한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한신의 한군에게 계속 패배를 당한 제나라는 항우에게 투항하자 항우는 용저를 장군으로 삼아 20만이 군사를 구원군으로 보냈다. 한신의 한군과 용저의 초나라 구원군과 제나라 연합군은 지금의 산동성 고밀시(高密市) 경내의 유수(濰水) 강안에서 조우했으나 한신의 귀신과 같은 용병술로 인해 용저의 20만에 달하는 초나라의 대군과 제나라 연합군은 전멸당하고 말았다. 패전한 제왕 전광은 패하여 도망가다 한신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전횡은 한나라의 장수 관영(灌嬰)의 공격을 받고 도주하여 위나라의 팽월(彭越)에 귀순하여 몸을 의탁했다. 이후 한고조 유방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자 갈 곳이 없어진 전횡은 결국 수하 500여 명만을 이끌고 외딴 섬으로 은신했으나 유방의 회유와 강압에 못 이겨 은신처에서 나와 유방을 만나러가던 중에 고귀한 왕의 신분으로써 유방에게 굽히는 치욕을 당할 수 없다며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 그를 따르는 500여명의 수하도 전횡의 뒤를 따라 자결했다. “전횡오백사(田橫五百士)”’라 하여 후대에 의기(義氣)를 높여 추모하고 있다. 그들이 은신했던 곳은 지금의 산동성 청도시(靑島市) 경내의 전횡도(田橫島)로 전횡오백사((田橫五百士)의 묘지가 있다.

전횡이 죽었을 때 시신을 운반하던 빈객이 그를 애도하며 해로가(薤露歌)와 호리곡(蒿里曲)이라는 상가(喪歌)를 지었으며, 이것이 상여소리인 만가(輓歌)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횡은 한국에 있는 전씨(田氏)의 조상이라 구전되고 있다.

전제의 역대군주

1. 태공 [太公, 전화(田和) BC 386년 ~ BC 384년]

2. 폐공 [废公, 전염(田剡) BC 383년 ~ BC 375년]

3. 환공 [桓公, 전오(田午) BC 374년 ~ BC 357년]

4. 위왕 [威王, 전인제(田因齊) BC 356년 ~ BC 320년]

5. 선왕 [宣王, 전벽강(田辟彊) BC 319년 ~ BC 301년]

6. 민왕 [湣王, 전지(田地) BC 300년 ~ BC 284년]

7. 양왕 [襄王, 전법장(田法章) BC 283년 ~ BC 265년]

8. 폐왕 [废王, 전건(田建) BC 264년 ~ BC 221년]

목록
7914
[] 섭정고사고(聶政古事考)

자객섭정(刺客聶政) 1. 섭정이 거문고를 배워 아버지의 원수를 갚다.[聶政學琴報父仇] 채옹(蔡邕)의 금조(琴操) 전국 때 섭정
운영자 15-07-22
[] 공자의 선조들

공자의 선조들 기원전 12세기 경 동이족이 세운 은왕조를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한 주무왕은 은주(殷紂)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祿父)를 은나라 고
운영자 15-03-23
[] 한비 사상의 현대적 의미와 의의

한비자 -제왕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정치학 교과서- 왕굉빈 해설 황효순 편역 『한비자』는 현대의 중국을 똑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
운영자 15-02-09
[] 성복대전의 패장 성득신(成得臣)

성득신(成得臣) 초성왕 때 영윤(令尹)으로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632년에 죽었다. 성은 미(芈)이고 씨는 성(成)이고 이름은 득신(
운영자 14-08-24
[] 꿈속에서 곰과 말곰을 활로 쏘아 잡아 조나라의 건국을 예언한 조앙

꿈속에서 곰과 말곰을 활로 쏘아 잡아 조나라의 건국을 예언한 조앙 趙鞅:夢射熊羆,盼興趙氏 조앙은 춘추말기 당진국의 경대부다.
운영자 14-07-08
[] 위영공(衛靈公) 삼대

위영공(衛靈公) 삼대(三代) 위영공① 39년 기원전 497년, 영공의 부인 남자(南子)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태자 괴외(蒯聵)가 그녀를 죽
운영자 14-06-28
[] 초나라 최초의 도읍 단양(丹陽) 비정고(比定考)

초나라 최초의 도읍 단양(丹陽) 비정고(比定考) 《사기(史記)•초세가(楚世家)》에"주성왕 때 웅역(熊繹)이 문왕과 무왕을 도와 공을 세운 공
운영자 14-06-07
[] 초나라의 막오(莫敖)와 굴하(屈瑕) 이야기

초나라의 막오(莫敖)와 굴하(屈瑕) 이야기 초나라의 관명으로 莫(막)은 크다는 뜻이고 敖(오)는 獒(오)로 맹견을 의미한다. 초나라의 왕족 굴씨들
운영자 14-05-25
[] 전제(田齊) 약사

전제(田齊) 약사 1. 국성(國姓) : 규성전씨(嬀姓田氏) 2. 작위(爵位) : 후작(侯爵), BC 334년에 왕호 사용시작 3. 수도(首都) :
운영자 14-03-03
[] 기원전 494년 부초지전고(夫椒之戰考)

부초지전(夫椒之戰) 1. 원인 기원전 494년에 일어난 오월의 부초지전은 기원전 496년 취리(欈里)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생명을 잃은 오왕
운영자 14-02-04
[] 오씨삼대(伍氏三代)

1. 오참(伍參) 기원전 597년 초장왕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정나라를 포위 공격했다. 그해 6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3군을 출동시켰
운영자 13-12-23
[] 초재진용(楚材晉用) - 초나라의 재목을 진나라가 가져다 쓰다.

초재진용(楚材晉用) 初楚伍參與蔡大師子朝友(초초오참여채대사자조우) 옛날부터 초나라 오참①과 채나라 태사 자조는 친한 사이였다.
운영자 13-12-23
[] 임성삼의 춘추강독

춘추강독(春秋講讀) 공자는 '춘추'를 짓고 나서 "후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것도 이 춘추를 통하여고, 비난하는 것도 춘추를 통하여 일 것이다
운영자 13-11-29
[] 허목부인(許穆夫人) - 중국 최초의 애국여류시인 -

허목부인(許穆夫人) - 중국 최초의 애국여시인 -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고, 희성에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춘추 때 위나라 여인으로 중국 역
운영자 13-11-29
[] 《오자(吳子)/울료자(尉繚子)》

《오자(吳子)/울료자(尉繚子)》 오자(오기)와 울료자(울료)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다. 《손자병법》의 손자에 비해 생소하기는 하지만
운영자 13-09-26
[] 자한(子罕)

자한(子罕) 1. 정국칠목(鄭國七穆) 공자희(公子喜) 정목공(鄭穆公)의 아들로 희성(姬姓)에 이름은 희(喜)다. 자풍(子豊), 자사(子駟)와 동모형
운영자 13-09-03
[] 상앙의 변법 내용

상앙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원전 390년 경에 태어나서 338년에 죽은 중국역사를 통틀어 변법을 통해 개혁을 단행한 가장 인상적인 정치가다. 전
양승국 04-10-04
[] 상간(桑間)

상간(桑間) ① 은(殷)나라를 멸한 주무왕은 그 땅에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綠父)를 봉한 후에 나라를 패(邶), 용(鄘), 위
운영자 13-01-13
[]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의 전말

관중이 수행한 경제전쟁 손자가 말한 바가 있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도궁비현(圖窮
운영자 13-01-09
[] 구합제후(九合諸侯)

구합제후(九合諸侯) 제환공이 아홉 번에 걸쳐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한 일을 말한다. 회맹을 연도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양승국 04-05-11
1 [2][3][4][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