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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3 04:27:243098 
초재진용(楚材晉用) - 초나라의 재목을 진나라가 가져다 쓰다.
운영자

초재진용(楚材晉用)



初楚伍參與蔡大師子朝友(초초오참여채대사자조우)

옛날부터 초나라 오참①과 채나라 태사 자조는 친한 사이였다.



其子伍擧與聲子相善也(기자오거여성자상선야)

그래서 오참의 아들 오거와 자조의 아들 성자도 서로 친하게 지냈다.



伍擧娶於王子牟(오거취어왕자모)

오거는 왕자 모의 딸을 아내로 취했는데



王子牟爲申公而亡(왕자모위신공이망)

왕자 모가 신공(申公)이 되었다가 죄를 짓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楚人曰(초인왈)

초나라 사람들이 말했다.



伍擧實送之(오거실송지)

「왕자모를 외국으로 도망가게 한 사람은 오거다.」



伍擧奔鄭(오거분정)

그래서 정나라로 달아난 오거는



將遂奔晉(장수분진)

장차 진나라로 들어가려고 했다.



聲子將如晉(성자장여진)

그때 성자도 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던 중에



遇之於鄭郊(우지어정교)

오거와 정나라 교외에서 만났다.



班荊相與食(반형상여식)

오거가 성자와 함께 덤불 위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而言復故(이언복고)

자신이 초나라로 돌아갈 일을 의논했다.



聲子曰(성자왈)

성자가 말했다.



子行也(자행야)

「진나라로 가 있게나!



吾必復子(오필복자)

내가 반드시 자네를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겠네.」



及宋向戌將平晉楚(급송상수장평진초)

송나라의 상수(向戌)②가 진나라와 초나라를 화평하게 만들자



聲子通使於晉(성자통사어진)

성자는 진나라로 가서 사신의 사명을 다하고



還如楚(환여초)

초나라로 다시 들어가갔다.



令尹子木與之語(령윤자목여지어)

영윤 자목③이 그와 더불어 말을 하면서



問晉故焉(문진고언)

진나라의 사정을 묻고



且曰(차왈)

또 물었다.



晉大夫與楚孰賢(진대부여초숙현)

「진나라 대부와 초나라 대부와는 누가 더 현명한가?」



對曰(대왈)

성자가 대답했다.



晉卿不如楚(진경불여초)

「진나라 경은 초나라 경만 못합니다.



其大夫則賢(기대부즉현)

그러나 대부들은 현명하여



皆卿材也(개경재야)

모두 경의 재목입니다.



如杞梓皮革(여기재피혁)

소태나무와 가래나무 및 모피와 가죽이



自楚往也(자초왕야)

초나라로부터 진나라로 보내져



雖楚有材(수초유재)

비록 초나라의 재목이었으나



晉實用之(진실용지)

진나라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子木曰(자목왈)

자목이 말했다.



夫獨無族姻乎(부독무족인호)

「진나라의 공실에는 친척이나 외척이 없어서인가?」



對曰(대왈)

성자가 대답했다.



雖有而用楚材實多(수유이용초재실다)

「진나라에는 비록 친척이나 외척이 있다고는 하나



歸生聞之(귀생문지)

저 귀생이 들으니



善爲國者(선위국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賞不僭而刑不濫(상불참이형불람)

『포상을 공정히 하고 형벌을 남용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賞僭(상참)

상을 잘못 주면



則懼及淫人(칙구급음인)

나쁜 자도 상을 탈까 두렵고



刑濫(형람)

형벌을 함부로 하면



則懼及善人(즉구급선인)

선한 자에게도 이를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若不幸而過(약불행이과)

만약 불행히도 잘못되는 경우



寧僭(녕참)

상은 잘못 줘도 괜찮으나



無濫(무람)

형벌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與其失善(여기실선)

형벌을 남용하여 착한 자를 잃게 되면



寧其利淫(녕기리음)

도리어 악한 자가 이롭게 됩니다.



無善人(무선인)

착한 사람이 없어지면



則國從之(즉국종지)

나라는 망합니다.



詩曰(시왈)

그래서 《시》에 말했습니다.



人之雲亡(인지운망)

『착한 사람이 없어지면



邦國殄瘁(방국진췌)

나라도 따라서 쇠망한다.』



無善人之謂也(무선인지위야)

즉 착한 사람이 없어지는 경우를 말했습니다.



故夏書曰(고하서왈)

또 《하서》에도 말했습니다.



與其殺不辜(여기살불고)

『죄없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寧失不經(녕실불경)

차라리 옳은 법이라도 적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懼失善也(구실선야)

이는 착한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商頌有之曰(상송유지왈)

《상송》에도 말했습니다.



不僭不濫(불참불람)

『상을 주는 데 틀림이 없고 형벌을 내릴 때도 함부로 하지 않으며



不敢怠皇(불감태황)

감히 게으르지도 않으면서



命於下國(명우하국)

제후국에 명령을 내리면



封建厥福(봉건궐복)

복을 받는다.』



此湯所以獲天福也(차탕소이획천복야)

이는 턍왕이 하늘의 복을 받은 까닭을 말합니다.



古之治民者(고지치민자)

옛날에 백성을 다스리던 사람들은



勸賞而畏刑(권상이외형)

상주기를 권하고 처벌하기를 두려워하였으며



恤民不倦(휼민불권)

백성을 구휼하는데 게으르지 않아



賞以春夏(상이춘하)

봄과 여름에는 포상을 하고



刑以秋冬(형이추동)

가을과 겨울에 형벌을 내렸습니다.



是以將賞(시이장상)

그래서 상을 주려고 할 때에는



爲之加膳(위지가선)

자신이 식사할 때에 밥그릇 수를 더해서



加膳則飫賜(가선즉어사)

그 음식으로 아랫사람을 충분히 먹였습니다



此以知其勸賞也(차이지기권상야)

이는 포상을 장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將刑(장형)

그리고 형벌을 내리려고 할 때는



爲之不擧(위지불거)

잔치도 베풀지 않고



不擧則徹樂(불거칙철락)

음악도 철폐해 버리니



此以知其畏刑也(차이지기외형야)

이는 형벌을 내리는 일을 두렵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夙興夜寐(숙흥야매)

또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자면서



朝夕臨政(조석임정)

하루 종일 정치에 힘쓰니



此以知其恤民也(차이지기휼민야)

이는 백성들을 잘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三者(삼자)

이 세 가지는



禮之大節也(례지대절야)

예의 요체로서



有禮(유례)

이러한 예가 있으면



無敗(무패)

정치의 실패는 없습니다.



今楚多淫刑(금초다음형)

그런데 지금 초나라에서는 형벌을 남용하는 일이 많아



其大夫逃死於四方(기대부도사어사방)

대부들이 죽음을 피하여 사방으로 도망가서



而爲之謀主(이위지모주)

그곳을 위해 책략의 주모자가 되어



以害楚國(이해초국)

초나라를 해치고 있으나



不可救療(불가구료)

그런 일을 바로 잡을 수 없으니



所謂不能也(소위불능야)

이는 초나라가 능히 인재를 쓸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子儀之亂(자의지란)

자의의 난 때에④



析公奔晉(석공분진)

석공이 진나라로 도망가니



晉人寘諸戎車之殿(진인치제융차지전)

진나라 사람들은 석공을 융거의 뒤를 따르는 전차에 태우고는



以爲謀主(이위모주)

책략의 주모자로 삼았습니다.



繞角之役(요각지역)

그리하여 요각의 싸움에서⑤



晉將遁矣(진장둔의)

진나라가 장차 도망하고자 할 때에



析公曰(석공왈)

석공이 말했습니다.



楚師輕窕(초사경조)

『초나라 군사는 가볍게 동요되어



易震蕩也(이진탕야)

무찌르기 쉽습니다.



若多鼓鈞聲(약다고균성)

만약 북을 한꺼번에 둥둥 치면서



以夜軍之(이야군지)

밤에 쳐들어간다면



楚師必遁(초사필둔)

초나라 군대는 반드시 도망칠 것입니다.』



晉人從之(진인종지)

진나라 사람들이 석공의 모책을 따르자



楚師宵潰(초사소궤)

초나라군대는 밤사이에 궤멸되고



晉遂侵蔡(진수침채)

진나라 군사는 뒤를 추격하여 채나라로 쳐들어갔으며



襲沈(습침)

침나라를 습격하여



獲其君(획기군)

그 군주를 사로잡았습니다.



敗申息之師於桑隧(패신식지사어상수)

계속해서 신(申)과 식(息)의 군사를 상(桑) 땅의 좁은 길에서 격파하고



獲申麗而還(획신려이환)

신려를 사로잡아서 돌아갔음으로



鄭於是不敢南面(정어시불감남면)

정나라는 이때부터 감히 남쪽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楚失華夏(초실화하)

초나라가 중원의 땅을 잃은 이유는



則析公之爲也(즉석공지위야)

석공 때문입니다.



雍子之父兄譖雍子(옹자지부형참옹자)

옹자의 부형들이 옹자를 참소하자



君與大夫不善是也(군여대부불선시야)

초나라 임금과 대부들도 옹자의 잘잘못을 구분하지 했음으로



雍子奔晉(옹자분진)

옹자는 진나라로 달아났습니다.



晉人與之鄐(진인여지축)

진나라 사람은 옹자에게 축(鄐) 땅을 주고



以爲謀主(이위모주)

책략의 주모자로 삼았습니다.



彭城之役(팽성지역)

그 후 일어난 팽성의 싸움에서⑥



晉楚遇於靡角之谷(진초우어미각지곡)

진나라와 초나라가 미각의 골짜기에서 마주치자



晉將遁矣(진장둔의)

진나라 군사가 먼저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雍子發命於軍曰(옹자발명어군왈)

그때 옹자가 진나라 군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歸老幼(귀로유)

『늙은이와 젊은이를 돌려보내라!



反孤疾(반고질)

고아와 병자도 돌려보내라!



二人役(이인역)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싸움터에 나왔다면



歸一人(귀일인)

한 사람은 돌려보내라.



簡兵蒐乘(간병수승)

병사의 행장을 가볍게 하고 수레를 모으고



秣馬蓐食(말마욕식)

말에 꼴을 먹여라.



師陳焚次(사진분차)

전열을 가다듬고 주둔한 시설을 불태운 후에



明日將戰(명일장전)

내일 출전하리라!』



行歸者(행귀자)

돌아갈 사람들을 보내고



而逸楚囚(이일초수)

초나라 포로들을 놓아 주었기 때문에



楚師宵潰(초사소궤)

초나라 군대는 밤사이에 궤멸되고



晉降彭城而歸諸宋(진강팽성이귀제송)

진나라는 팽성을 함락시켜 그 땅을 송나라에 귀속시키고



以魚石歸(이어석귀)

어석을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楚失東夷(초실동이)

이에 초나라는 동이(東夷)를 잃고



子辛死之(자신사지)

자신⑦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則雍子之爲也(칙옹자지위야)

그 일은 모두 옹자 때문이었습니다.



子反與子靈爭夏姬(자반여자령쟁하희)

또 자령⑧과 하희를 두고 다투던



而雍害其事(이옹해기사)

자반이 그 일을 방해했기 때문에



子靈奔晉(자령분진)

자령은 진나라로 도망갔습니다.



晉人與之邢(진인여지형)

진나라 사람들은 그에게 형의 땅을 주어



以爲謀主(이위모주)

책략의 주모자로 삼아



扞禦北狄(한어북적)

북쪽의 적족(狄族)을 막게 하고



通吳於晉(통오어진)

진나라가 오나라와 통하게 하여



敎吳叛楚(교오반초)

오나라로 하여금 초나라에 배반하게 하고서



敎之乘車(교지승차)

오나라 사람들에게 전차를 모는 법과



射禦(사어)

활쏘기를 가르쳐



驅侵(구침)

초나라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使其子狐庸爲吳行人焉(사기자호용위오행인언)

그리고 그의 아들 호용을 오나라의 행인이 되게 했습니다.



吳於是伐巢(오어시벌소)

그래서 오나라는 소를 정벌하고



取駕(취가)

가를 취했으며



克棘(극극)

극을 점령한 후에



入州來(입주래)

주래로 쳐들어가자



楚罷於奔命(초파어분명)

초군은 왕의 명을 받들어 전쟁터를 향해 뛰어다니느라 피폐해지고



至今爲患(지금위환)

지금까지도 환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則子靈之爲也(칙자령지위야)

이는 바로 자령 때문입니다.



若敖之亂(약오지란)

약오의 난에⑨



伯賁之子賁皇奔晉(백분지자분황분진)

백분의 아들 분황이 진나라로 달아나자



晉人與之苗(진인여지묘)

진나라에서는 그에게 묘 땅을 주었습니다.



以爲謀主(이위모주)

그래서 그는 진나라를 위해 책략의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鄢陵之役(언릉지역)

그랬더니 언릉의 싸움에서



楚晨壓晉軍而陳(초신압진군이진)

초나라가 새벽에 진영을 쳐 진나라 군대를 압도하자



晉將遁矣(진장둔의)

진나라 군사들은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苗賁皇曰(묘분황왈)

그때 묘분황이 말했습니다.



楚師之良在其中軍王族而已(초사지량재기중군왕족이이)

『초나라 군대의 핵심은 중군의 왕족뿐이다.



若塞井夷竈(약색정이조)

만약에 우물을 메우고 부뚜막을 없앤 후에



成陳以當之(성진이당지)

전열을 가다듬어 대항한다면



欒範易行以誘之(란범역행이유지)

난씨와 범씨가 행렬을 바꾸어 가면서 유인한 초나라 군대를



中行二郤必克二穆(중행이극필극이목)

중행과 극씨의 두 장군은 반드시 초나라의 자중과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吾乃四萃於其王族(오내사췌어기왕족)

그런 다음 우리는 곧 초나라의 왕족 부대를 사방에서 좁혀가면서 공격하면



必大敗之(필대.패지)

반드시 크게 패배시킬 수 있습니다.」



晉人從之(진인종지)

진나라 사람은 그 의견을 따랐으므로



楚師大敗(초사대패)

초나라 군대는 대패하여



王夷師熸(왕이사잠)

초왕은 부상을 당하고 전군이 몰살했으며



子反死之(자반사지)

자반도 죽었습니다.



鄭叛吳興(정반오흥)

정나라는 초나라를 배반하고 오나라가 일어났으며



楚失諸侯(초실제후)

초나라는 제후를 잃었습니다.



則苗賁皇之爲也(칙묘분황지위야)

이는 곧 묘분황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子木曰(자목왈)

자목이 말했다.



是皆然矣(시개연의)

「그대의 말이 옳소.」



聲子曰(성자왈)

성자가 다시 말했다.



今又有甚於此者(금우유심어차자)

「지금은 그것들보다 더 심한 일이 있습니다.」



椒擧娶於申公子牟(초거취어신공자모)

초거가 신공 자모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子牟得戾而亡(자모득려이망)

자모가 죄를 짓고 초나라를 떠나 외국으로 도망친 일에 대해서



君大夫謂(군대부위)

왕과 대부들은



女實遣之(녀실견지)

실은 초거가 왕자 모를 내보냈다고 생각했음으로



懼而奔鄭(구이분정)

초거는 정나라로 도망가



引領南望曰(인령남망왈)

목을 길게 빼고 남쪽만 바라보면서



庶幾赦餘(서기사여)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亦弗圖也(역불도야)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초나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今在晉矣(금재진의)

그래서 그는 지금 진나라에 가서 있습니다.



晉人將與之縣(진인장여지현)

진나라에서는 장차 그에게 고을을 준 후에



以比叔向(이비숙향)

숙향의 재능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彼若謀害楚國(피약모해초국)

그가 만약 진나라를 위해 책략으 내어 초나라를 해치려고 한다면



豈不爲患(기불위환)

근심거리가 아니겠습니까?』



子木懼(자목구)

자목이 매우 두려워하여



言諸王(언제왕)

초나라 왕에게 말하여



益其祿爵而復之(익기록작이복지)

초거의 봉록을 더해주고 돌아오게 했다.



聲子使椒鳴逆之(성자사초명역지)

그래서 성자는 초거의 아들 초명을 시켜 모셔오게 했다.



주석

① 오참(伍參) : 《사기(史記)·초세가(楚世家)》에「초장왕이 즉위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잔치를 벌려 즐기면서 나라에 『누구든지 감히 내 행동에 대해 간하는 자가 있다면 죽이리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오거(伍擧)가 입조하여 간하려고 할 때 장왕은 오른 팔로는 정희(鄭姬)를 왼 팔로는 월녀(越女)를 품고 종과 북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거가 말했다.

『성 밖의 언덕에 새가 한 마리 앉아있는데 3년이 가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장왕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을 뚫고, 삼년 동안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하리라! 그대는 그만 물러가라, 나는 그 새가 무슨 새인지 알고 있노라!』

일비충천 일명경인(一飛沖天 一鳴驚人)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전이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사마천이 전국책의 기사를 잘못 인용했다. 우선 앞서의 초재진용(楚材晉用)의 출전은 《좌전(左傳)》으로 그 사건이 일어난 기년이나 연대는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초장왕의 즉위년은 기원전 611년이고 초재진용의 전고가 되는 오거의 망명사건이 일어난 해는 기원전 547년이다. 오거가 초장왕에게 간할 때 그의 나이를 최대한으로 어리게 잡아 15살로 가정하더라도 초재진용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79세의 노인이 되어 있을 때로 논리상 맞지 않는다. 즉 사마천 사기의 초장왕에게 간하여 일비충천의 고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오거가 아니라 그의 부친 오참이다. 즉 오참은 초장장왕 때의 사람이고 오거는 초장왕의 손자들인 초강왕과 초영왕 때 활약한 사람이다.


기원전 597년 초장왕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정나라를 포위 공격했다. 그해 6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3군을 출동시켰으나 그때는 이미 초장왕은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필(邲)의 땅에 주둔하면서 군마에 황하의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본국으로 철군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초장왕은 진나라 군대가 이미 황하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사를 물리치려고 하자 오참은 진군과 결전을 치루어 패업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했고 영윤 손숙오(孫叔敖)는 승패가 불분명한 전투를 피해 위험을 피해야 한다며 주장하며 오참을 힐난하며 말했다.

「작년에는 진나라를 원정하였고 지금은 다시 정나라를 원정하여 초나라 군사들은 이미 피로에 지쳐 있다. 그런데 만약에 또다시 우리가 진나라 군사들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비록 그대 오참의 몸을 찢어 그 고기는 먹을 수 있다 하나 어찌 그것만으로 속죄를 다 할 수 있겠는가?」

오참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만약에 진군과 싸워서 우리가 이긴다면 영윤께서는 앞을 내다보시는 식견이 없음을 보이는 일이 되고, 그렇지 않고 우리가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이 오참의 고기는 당진군이 먹게 될 뿐입니다. 어찌 제 몸이 초나라 사람들에게 돌아갈 여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참의 주장은 영윤 손숙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초장왕이 군대를 움직이려고 하지 않자 손숙오는 부대에게 명을 내려 전차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회군길에 오르기 위해 정기를 거꾸로 달고 본국으로의 철군을 위해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자 초장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책사 신분의 오참이 말했다.

「진나라의 집정대신의 새로 임명된 순림보(荀林父)는 군대를 지휘할 역량이 부족한 위인입니다. 그를 보좌하는 선곡(先縠)은 괴팍스러운 성격에 부하장병들을 돌볼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상관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려고 하지 않는 장수입니다. 진나라 군대를 지휘하는 삼군의 통령들은 각자가 자신의 군대를 통솔할 수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명령을 따르려고 하나 상관이 없으니 대군은 누구의 명을 따라야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의 싸움에서 진군은 스스로의 약점으로 틀림없이 패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초나라 군대는 왕이 친히 통솔하고 있음에도 대신 한 사람이 지휘하는 적군을 피해 우리가 싸움을 피한다면 이는 임금이 신하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경우와 같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 이런 치욕을 참으시려고 하십니까?」

초장왕의 마음은 매우 불쾌해져 곧바로 손숙오에게 전차의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행군하도록 명하여 진나라 군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에 초나라와 진나라 쌍방의 군대는 필(邲)에서 회전한 결과 진나라를 크게 무찌르고 초장왕은 춘추오패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② 상술(向戌) : 성은 자(子)이고 씨는 상(向)이다. 생졸연대는 미상이며 춘추 때 송나라의 대부로 일종의 평화협정인 제후국 사이에 미병지회를 제창하여 성사시킨 인물로 이름이 나있다. 춘추시대 진초(晉楚) 사이에 패권쟁탈전으로 인해 전쟁은 해다마 벌어져 송나라나 정나라와 같은 중원의 중소제후극들은 그 피해가 극심했다. 그래서 기원전 579년 송나라의 대신 화원(華元)이 진초 사이에 평화협정을 중재하여 일단은 성사시켰으나 3년 만에 협정이 파기되는 바람에 오래 지속시키지 못했다. 송나라 대부 상술도 기원전 547년 진초 두 나라의 중신들과 연계하여 화원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화의를 다시 성사시키기 위해 시도했다. 진나라의 집정대신 조문자(趙文子) 무(武)와 초나라의 영윤 자목(子木) 굴건(屈建) 등과 교유관계를 이용하여 그는 몸소 진초 두 나라를 방문하여 두 사람의 자국 내의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설득하고 동시에 자신은 다시 제나라로 들어가고 진(秦)나라와 기타 각 중소제후국에는 다른 사람을 사자로 보내 송나라에서 열리는 맹회에 참여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진조 간의 정해야할 예의와 구체적인 항목과 누가 맹주가 되어야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상술은 진나라의 조문자로 하여금 맹주의 지위를 양보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평화혐정을 위한 회맹은 순조롭게 열려 마침내 맹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진초 두 나라는 비록 사소한 다툼은 있었지만 수십 년간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평화협정을 맺어 큰공을 세운 그는 송나라 군주에게 상으로 읍에 봉해달라고 청했다. 대신 자한(子罕)은 군사의 일이란 나라의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에 군사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일은 지극히 위험한 처사일뿐만 아니라 또한 사술을 이용하여 평화협정을 맺어놓고 오히려 상을 청하는 행위는 탐욕과 염치가 없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상술은 자한의 생각을 인정하고 요청한 봉읍을 취소했다. 《좌전(左傳)》의 작자는 상술은 자기의 잘못을 능히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③ 자목(子木) : 태어난 해는 미상이고 기원전 545년에 죽은 초나라의 대신 굴건의 자다. 춘추 때 초나라의 영윤으로 초강왕(楚康王) 9년(前551年)막오(莫敖)에 임명되었다가 강왕 12년 영윤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안휘성 서성(舒城)에 있었던 오나라의 위성국 서구(舒鳩)를 멸했다. 강왕 14년 초국을 대표해서 14국이 참가한 미병지회(弭兵之會)에 참가했다. 도포 안에 갑옷을 껴입고 회맹에 참가하여 진나라와 맹주를 다투었다. 회맹의 결과 협약이 이루어지자 진초 양국은 패권을 양분하여 행사했다.

④ 자의지란(子儀之亂) : 주경왕(周頃王) 6년(전613년) 가을 초장왕이 초목왕의 뒤를 이어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영윤 자공(子孔)과 반숭(潘崇)이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에 반기를 든 군서(群舒)를 토벌하기 위해 출전할 때 당시 장왕은 나이가 어렸음으로 장왕의 사부 자의(子儀) 투극(鬪克)과 공자 섭(燮)에게 영도의 수비를 맡겼다. 자공과 반숭이 지금의 안휘성 서성(舒城)인 서요((舒蓼)로 원정을 떠나자 투극과 공자 섭은 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영도의 성벽을 높여 자공의 군대를 막으려고 하는 한편 자객을 보내 자공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해 8월 투극과 공자 섭은 초장왕을 겁박하여 영도(郢都)를 탈출하여 지금의 하남성 석천현(淅川縣)의 상밀(商密)로 들어가려고 했다. 초나라의 노읍(盧邑)대부 노집려(盧戢黎)와 그의 조수 숙미(叔麇)가 계략을 꾸며 그들을 유인하여 투극과 공자 섭을 죽이고 장왕을 구해 반란을 평정했다. 노읍은 지금의 호북성 남장현(南漳縣) 동이다. 석공의 봉지 석읍(析邑)은 투극의 봉읍 상밀 북쪽의 이웃 고을이다.

⑤요각지역(繞角之役) : 초공왕(楚共王) 6년 (전 585년) 가을, 초나라 영윤 자중(子重)이 정나라가 초나라에 반기를 들고 진나라에 붙자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쳤다. 그해 겨울, 진나라의 란서(欒書)가 구원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돕기 위해 출동하여 진초 양군은 지금의 하남성 노산현(魯山縣) 동남의 요각(繞角)이라는 곳에서 조우하여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전세가 불리하다가 생각한 난서가 진군을 이끌고 후퇴하려고 하자 초나라에서 망명해 진군의 참모로 종군한 석공(析公)은 초나라 군대는 가볍게 동요되어 무찌르기 쉽기 때문에 북을 크게 울리다가 야밤이 되어 전군을 진군시키면 초군을 무찌를 수 있다고 했다. 진나라가 석공의 말대로 작전을 전개하자 초군은 무너졌다.

⑥ 팽성지역(彭城之役) : 기원전 573년 진나라가 주도하던 중원연합군과 초나라와 정나라 연합군 사이에 지금의 강소성 서주인 팽성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좌전성공18년(전573년)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성공18년 여름 6월에 정백은 송나라를 침략하여 송나라 도성의 조문(曹門) 밖에까지 이르렀으며 마침내 초왕과 군사를 합쳐 송나라를 처서 조겹(朝郟) 고을을 빼엇았다. 정나라의 황신(皇辰)은 송나라의 고성(郜城)을 공격하여 유구(幽丘)를 빼앗고 계속해서 초군과 합동작전으 진공하여 송나라의 팽성을 점령한 후에 3백 승의 병거로 송나라의 반신(叛臣)들인 어석(魚石), 상위인(向爲人), 인주(鱗朱), 상대(向帶), 어부인(魚府焉) 등의 오대부를 팽성으로 들여보내 지키게 했다. 송나라 사람들은 팽성으로 돌아온 오대부를 걱정하자 서서오(西鉏吾)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가? 만약 초나라 사람들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미워하여 내쫓아서 우리에게 덕을 베풀어 준다면 우리는 오로지 초나라를 섬기면서 감히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면 될뿐이다. 그러나 대국인 초나라가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삼는 일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미워하는 자들을 이용하여 팽성을 다스리게 하여 우리들을 이간시킨다면 이 일이야말로 우리 송나라의 우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초나라는 제후와 송나라의 간망한 자들을 이용하여 우리 송나라의 땅을 점거한 후에 중원으로 통하는 요로를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초나라의 그러한 행위는 간망한 자들을 만족시키겠지만 초나라를 따르는 제후들을 이간시키고 괴롭히며 오나라와 진나라를 위협하는 행위다. 그래서 진나라에 대한 공적이 많은 우리 송나라가 초나라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음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진나라를 섬겨온 목적은 모두가 이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진나라는 반드시 우리를 돕지 않을 수 없다.」

7월에 송나라의 노좌(老佐)와 화희(華喜)가 팽성을 포위하였으나 노좌가 군중에서 죽었으므로 이길 수 없었다. 11월에 초나라의 자중이 팽성을 도와서 송나라를 공격하자 송나라의 화원(華元)은 진나라에 가서 위급함을 고했다. 그때 진나라에서는 란무자(欒武子) 서(書)가 죽고 그의 뒤를 이어 한헌자(韓獻子) 궐(闕)이 맡고 있었다. 한헌자가 말했다.

「사람을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반드시 그 사람을 취하여 힘을 써주어야 한다, 송나라에 대한 구원은 패업을 이룩하고 국토를 편안하게 하는 일의 시작이다.」

한무자의 말을 쫓은 진후는 송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태곡(台谷)으로 진군하다가 초군과 미각(靡角)의 골짜기에서 조우했으나 진나라 군사를 두려워한 초군은 군사를 물리쳐 돌아갔다.』

그 다음해인 기원전 572년 정월에 노(魯)의 대부 중손멸(仲孫蔑), 진(晉)의 대부 란염(欒黶),송(宋)의 대부 화원(華元),위(衛)의 대부 영식(甯殖)과 조(曹), 거(莒), 주(邾), 등(滕), 설(薛) 등의 제후들을 설득하여 중원연합군을 결성한 후에 팽성을 포위한 후에 공격했다. 팽성은 제후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진나라 진영에 투항했다. 진나라 사람들은 송나라의 오대부들을 사로잡아 본국으로 데려가 호구(瓠丘)에 안치하고 팽성은 송나라에 돌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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