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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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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子罕)


1. 정국칠목(鄭國七穆) 공자희(公子喜)

정목공(鄭穆公)의 아들로 희성(姬姓)에 이름은 희(喜)다. 자풍(子豊), 자사(子駟)와 동모형제로 정나라의 정경(正卿)을 지냈다. 기원전 581년 공자희는 당진국에 억류되어 있던 정성공(鄭成公)을 석방시켜 정나라 군주 자리에 복위시켰다. 기원전 577년에는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의 속국 허나라를 공격했으나 허나라의 반격을 받고 패퇴했다. 이에 정성공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허나라를 다시 공격했다. 허나라는 어쩔 수 없이 숙신(叔申)의 봉지를 정나라에 바치며 화의를 청했다. 기원전 576년,초나라 군사가 정나라를 공격하여 포수(暴隧)에서 정군을 물리쳤다. 포수는 지금의 하남성 원양현(原陽縣)서쪽이다. 초군은 계속해서 북상하여 위(衛)나라로 진공하여 수지(首止)에서 위나라를 물리쳤다. 수지는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 동쪽 고을이다. 자한(子罕)이 다시 초군을 기습하여 허나라 땅인 신석(新石)을 점령했다. 신석은 지금의 하남성 엽현(葉縣) 경내다. 자한이 허영공(許靈公)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이자 초공왕(楚共王)은 공자신(公子申)을 파견하여 허나라의 도성을 엽(葉)으로 옮기도록 하자 정나라는 허나라의 원래 도성을 차지했다. 허나라는 이때부터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었다. 기원전 575년, 자한이 송나라를 정벌하여 싸움에서 이겼다. 당진국이 제(齊), 노(魯), 주(邾), 위(衛)의 제후군과 주나라 왕실에서 파견한 윤무공(尹武公)과 함께 정나라를 공격해왔다. 그러나 제후군은 정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진(陳)과 채(蔡) 두 나라를 공격했다. 송(宋), 제(齊), 위(衛) 삼국이 귀국 중에 자한의 기습을 받고 패퇴했다.

같은 해 정나라의 태자 곤완(髡頑)과 자한이 당진국으로 들어갔으나 당진국은 그들을 예를 갖추어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태자 곤완과 공자풍(公子豊)이 초나라에 사자로 갔으나 초나라 역시 무례하게 대했다. 기원전 571년 정성공이 죽자 자한은 임금의 일을 대행하고 자사는 정사를 맡았으며 자국(子國)은 사마가 되었다. 기원전 570년, 공자풍은 조현을 올리기 위해 당진국에 들어간 정희공(鄭僖公)이 초나라에 붙었음을 고발하고 그를 정나라 군주 자리에서 쫓아내라고 요청하려고 했으나 자한의 권유로 멈추었다. 자한의 후예는 그의 자를 성으로 삼아 한(罕)씨의 시조가 되었다.


2. 송국사성(宋國司城) 락희(樂喜)

자(子)성에 락(樂)씨고 자한은 그의 자다. 춘추 때 송나라의 사성(司城)이다. 사성은 사공(司空)에 해당하는 송나라의 삼공 중의 한 명으로 치수, 토목, 건축 등을 담당했다. 락희는 송나라의 현신으로 기원전 546년, 춘추 중기 일종의 정전협정에 해당하는 진초(晉楚) 간에 채결된 미병지회(弭兵之會)를 주재한 공을 자부한 상술(向戌)이 송평공(宋平公)에게 어떤 죄를 지어도 죽음을 면하게 해주는 면사패(免死牌)와 봉읍 더해달라고 요청했다. 락희가 상술을 비난하면서 군사의 일은 국가의 중요한 일로써 군사력을 완전히 없애버리면 장래가 매우 위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상술은 미병지회의 체결을 완수한 일은 완전히 사술로써 행했으며 그런 일로 면사패와 봉읍을 하사해 달라는 청은 완전히 탐욕스럽고 염치가 없는 짓이라고 했다. 락희의 비난을 받은 상수는 자기의 과오를 깨닫고 요청한 것을 취소했다.

어느 날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한 개의 아름다운 옥을 얻어 자한에게 바치려고 가지고 왔다. 자한이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말했다. “제가 이미 이 옥을 옥공에게 가져가 감정을 시켰는데, 옥공이 참으로 귀한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이 옥을 대감에게 바치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자한이 대답했다.

“나는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마음이란 보물을 갖고 있고, 그대는 아름다운 옥을 보물을 갖고 있는데, 내가 이 보물을 받으면 우리 두 사람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보물을 모두 잃게 되지 않겠소? 차라리 각자가 자기의 보물을 그대로 지니기로 합시다.」

옥을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사죄하며 말했다.

“소인은 가슴 속에 보물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감에게 맡기려고 했습니다. 대감에게 보물을 맡겨 다른 사람으로부터 목숨을 잃는 일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

그래서 자한은 보물을 자기의 관할 관청에 보관한 후에 옥공으로 하여금 다듬게 해서 밖에 내다 팔아 옥을 바치려는 사람에게 주었다. 자한은 그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노양공(魯襄公) 17년은 기원전 556년으로 공자가 태어나기 5년 전이다. 이 해에 송나라의 황국보(皇國父)가 태재(太宰)가 되어 송평공(宋平公)을 위해 수확에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높은 고대를 지으려고 했다. 자한이 농사철이 끝난 농한기에 고대를 지으라고 송평공에게 간했으나 평공은 듣지 않았다.


노양공 29년 기원전 544년, 정나라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발생했다. 그 해에 보리도 수확하지 못해 정나라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정나라의 상경을 맡고 있던 자피(子皮)가 부친 자전(子展)의 유언을 받들어 국내에서 양식을 징발하여 매 호 당 한 종(鐘) 씩을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정나라 사람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자피는 정나라 백성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자한이 그 소식을 듣고 말했다.

“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은 백성들이 바라는 일이다.”

이어서 송나라에 기근이 발생하자 자한이 송평공에게 공실과 대부들의 양식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청했다. 자한은 자기의 가족들을 먹일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차용증을 받거나 다시 갚으라고도 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동시에 양식이 부족한 대부들의 이름으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송나라는 이로써 기근으로 굶어 죽은 사람이 없게 되었다.

진(晉)나라의 숙향(叔向)이 그 소식을 듣고 말했다.

「정나라의 한씨(罕氏 : 즉 자전(子展)과 자피(子皮) 가족), 송나라의 락씨(樂氏 : 즉 자한(子罕的) 가족)들은 장차 창성하겠구나! 그들 두 사람의 가문은 나라의 정권을 차자할 것이다.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이 그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은덕을 베풀고도 은덕을 여기지 않았으니 송나라의 자한의 행위가 더 훌륭하다. 악씨는 송나라 정권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


3. 송나라의 척성군(剔成君)

사기(史記)의 설에 따르면 사성(司城) 자한(子罕)은 송대공(宋戴公 : 재위 전799-766년)의 후손으로 송환공(宋桓公 재위 : 재위 전681-651년) 때의 인물이라고 했으나 이는 잘못이다. 지금은 《죽서기년(竹書紀年)》과 양관(楊寬)의 《전국사(戰國史)》의 기록에 따른다. “황음한 송환후(宋桓侯)를 대씨가 몰아내고 송나라의 공실을 대신하게 되었다. 즉 자씨(子氏)의 송나라를 차지한 대씨는 바로 척성군으로 이 일은 대략 기원전 356년에서 350년 사이에 일어났다. 척성 재위 27년에 그의 동생 언(偃)이 군사를 일으켜 척성을 공격하자 척성은 싸움에 패하고 제나라로 망명했다. 언(偃)이 바로 송강왕(宋康王)이다.


송환후(宋桓侯)는 송후환공(宋後桓公) 혹은 송벽공(宋辟公)으로도 불린다. 자(子) 성에 이름은 벽(辟)이다. 송휴공(宋休公)의 아들로 전362년에 군위에 올라 356년에 살해될 때까지 7년 간 재위에 있었다. 재위 중 지나치게 어리석고 황음했음으로 사마표(司馬彪)가 말하기를 “벽(辟)이라고 소리쳐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피하게 하면 몽인들은 환후의 이름으로 사람을 속여 앞장 서서 달려나가 ‘벽(辟)’이라고 소리쳤음으로 사람들을 그가 미쳤다고 했다. 휴공(休公)은 재위 23년만에 죽고 아들 벽병(辟兵)이 뒤를 이어 즉위했으나 그는 사치를 일삼고 황음무도했으며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고 소궁을 건축했다. 《사기(史記)》는 척(剔)이 뒤를 이은 것을 부자상속으로 인식했으나 사실상 대씨가 송나라 국권을 찬탈한 사건이었다. 한비자의 설에 의하면 ‘사성 자한이 정권을 찬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송군의 형벌권을 자한이 대신 사용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도 송나라가 제나라에 의해 멸망당할 때의 상황을 “ 이로써 대씨들이 후손은 끊겼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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