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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5 08:51:462011 
초나라의 막오(莫敖)와 굴하(屈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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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막오(莫敖)와 굴하(屈瑕) 이야기


초나라의 관명으로 莫(막)은 크다는 뜻이고 敖(오)는 獒(오)로 맹견을 의미한다. 초나라의 왕족 굴씨들이 세습한 관직으로 원래는 초나라 최고의 관직이다. 국정과 군사의 중책을 자유롭게 담임할 수 있었다. 초무왕이 즉위 초 칭왕할 때 막오는 여전히 막중한 권한을 유지했으나 후에 막오의 권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초나라의 최고관직을 영윤으로 바꾸었다. 좌전 장공 4년 조의 기록은 영윤과 막오가 같이 병기되어 그 지위는 같았다. 후에 막오는 폐지되어 상설하지 않다가 점차 지위는 낮아졌다. 좌전 양공 15년 조의 초나라의 관직 순서에 따르면 막오는 영윤, 우윤, 대사마, 우사마, 좌사마 다음 이었다. 좌전의 기록은 굴씨로써 막오의 직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 6명이었다. 굴씨로써 처음 막오의 직에 앉았던 사람은 초무왕의 아들 굴하(屈瑕)였다. 그 뒤를 이어 굴중(屈重), 굴탕(屈蕩), 굴도(屈到), 굴건(屈建), 굴생(屈生) 등이 있었다.


굴하(屈瑕 : ?-前699年)의 성은 미(羋)이고 씨는 굴(屈)이며 막오(莫敖)라고 호칭했다. 초나라 귀족 굴씨의 시조로 대시인 굴원(屈原)의 조상이다. 춘추 때 초무왕(楚武王 : 재위 전 740-690년) 웅통(熊通)의 아들로 포소지전(蒲騷之戰)①부터 세 번에 걸친 전쟁에서 초나라 대장을 맡았다. 굴읍(屈邑)에 책봉되어 신국(申國)을 견제했다. 굴하의 후대는 봉지의 이름을 성으로 삼아 굴씨라 칭하게 되었다.


노환공 11년(전701년) 봄, 굴하가 이(貳)②와 진(軫)③ 두 나라와 회맹하자 포소에 주둔하고 있던 운(鄖)나라 군대는 수(隨)④、교(絞)⑤、주(州)⑥、요(蓼)⑦ 등의 네 나라와 힘을 합쳐 초군을 공격하려고 하자 초군 원수 굴하가 이를 매우 걱정했다. 이에 부장(副將) 투렴(鬪廉)이 계책을 말했다.

「운나라 군대는 그들의 성 밖의 교외에 주둔하고 있고 나머지 4국의 군대는 아침에 출동하면 저녁에 당도할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운나라는 필시 적군을 경시하고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예부대를 보내 운나라 군대를 야습한다면 운나라 군대는 틀림없이 성을 굳게 지키며 동맹국의 구원군을 기다릴 것입니다. 구원군에게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는 군대는 반드시 투지를 잃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먼저 운나라 군대를 정예병으로 격파하면 4국의 구원군도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굴하가 초왕에게 구원군을 청하려고 했다. 투렴이 반대하며 말했다.

「싸움에서의 승리는 군사들 간의 화합에 있지 많은 군사의 수에 있지 않습니다.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상나라의 수십만의 군사는 수만에 불과한 주나라 군사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원수께서도 이미 알고 있는 일입니다.」

굴하가 다시 전투의 결과에 대해 점을 쳐보려고 했다. 투렴이 또다시 반대하며 말했다.

「점이란 의심나는 일을 해소하기 위해서 칩니다. 의심나는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점을 치신다는 말입니까?」

마침내 굴하는 투렴의 계책을 받아들여 운나라 군사를 포소에서 격파하고 그들의 성 밑에서 회맹을 한 후에 개선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구지편(九地篇)》에 산지(散地)에 군사를 보내는 일은 피해야 한다. 산지란 제후가 자신의 영지 안에서 전쟁터로 선택한 땅이다. 제후가 자신의 영지 내에서 전쟁을 벌리면 사졸들은 향토에 대한 미련을 품고 또한 도로에 익숙해서 쉽게 전쟁터를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전의를 쉽게 상실한다고 해서 얻은 용어다. 투렴은 운나라 군사가 그들의 교외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땅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막오에게 말한 것이다.


노환공 20년 기원전 700년 여름, 초무왕이 교(絞)를 정벌하기 위해 친정을 행하여 그 남문을 포위했다. 그때 굴하가 계책을 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나라는 소국에 국력이 약합니다. 국력이 약한 나라는 필시 계책도 부족한 법이니 그들을 유인할 수 있습니다.」

무왕이 굴하의 계책을 따랐음으로 굴하는 즉시 나무꾼을 선발하여 교나라 사람들을 성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했다. 그러자 첫째 날은 교나라 사람 30명을 성 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교나라 사람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초나라 나무꾼을 잡기 위해 산중으로 쫓아왔다. 잠복하고 있던 초군이 교나라 사람들의 퇴로를 끊자 산상의 복병들도 들고 일어나 교나라 사람들을 압살하여 크게 패주시켰다.


노환공 13년 기원전 699년 봄, 초무왕은 굴하를 대장으로 삼아 나(羅)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투백비(鬪伯比)가 굴하를 전송한 후에 그의 마부에게 말했다.

「막오는 이번 싸움에서 필시 패전할 것이다. 그가 발꿈치를 높이 들고 으스대며 걸어갔으니 이는 마음에 근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초나라 왕을 찾아가 고했다.

「반드시 군대를 증원하여 굴하를 도우십시오.」

그러나 초왕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자 그는 초왕의 부인 등만(鄧曼)에게 고했다. 등만이 투백비의 말을 초왕에게 말했다.

「대부 투백비의 말은 군사를 증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왕께서 백성들은 믿음으로써 위무하고, 관리들은 덕으로써 가르치며, 막오는 형벌로써 위엄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포소의 싸움에서 취한 승전에 익숙해져서 자기 멋대로 용병을 하려는 막오는 나나라가 소국이라고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왕께서 만약 진무하지 않으면 굴하원수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해 대비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군주란 원래 백성들을 군사들을 훈련시키나 진무해야 하며, 여러 관리들을 불러 훌륭한 덕으로써 권장하며 막오를 보고 그에게 하늘은 적을 업신여기는 자를 돕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자는 뜻입니다. 어찌 투백비가 초나라 군사들이 전부 행군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또 어째서 초나라 군대가 전부 출동한 사실을 몰라서 그런 말을 올렸겠습니까.」

초왕이 사자를 보내 막오의 뒤를 쫓아가게 하여 경계의 말을 전하려고 했으나 미처 따라잡지 못했다. 나나라 변경에 당도한 막오는 군사들을 점고하면서 말했다.

「병사의 일에 간하는 자가 있으면 처벌하리라!」

이윽고 언수(鄢水)에 이르자 군사들이 무질서하게 건넜으며, 어지럽게 야영하고 또한 야습에 대비하지도 않았다. 이윽고 나나라에 당도하자 나와 노(盧)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초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쳤다. 막오는 황곡(荒穀)으로 가서 목을 메어 죽었다. 여러 장수들이 야부(冶父)에서 왕으로부터 형을 기다렸다. 초왕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나의 죄다! 모두 사면시켜라!


①포소지전(蒲騷之戰) : 주환왕 19년, 기원전 701년에 운(鄖)과 초(楚)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포소는 지금의 호북성 응성(應城) 서북으로 춘추 때 운국의 성읍이었다. 이 전투에서 초나라 대부 투렴이 군사를 이끌고 포소에서 운나라 군사를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②이(貳) : 지금의 호북성 광수시(廣水市) 경내에 위치했던 제후국으로 주나라가 초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봉했던 ‘한양제희(漢陽諸姬)’ 즉 한수 남쪽에 봉한 희성제후국 중 하나다. 후에 초나라에 병탄되었다.

③진(軫) : 순임금 때 형법을 관장했던 고도(皐陶)의 후예가 봉해졌던 제후국으로 성은 언(偃)이다. 기원전 655년은 주혜왕(周惠王) 20년으로 초성왕 16이다. 이 해에 초성왕이 보낸 대군에 의해 진국은 망하고 그 땅은 초나라에 병탄되었다.

④수(隨) : 현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漢市)로 흘러 한수와 같이 장강(長江)과 합쳐지는 운수(溳水-淸發水)의 상류에 있었던 희성(姬姓) 제후국(諸侯國)이다. 현 수주시(隨州市) 일대에 근거한 제후국이었으나 후에 초나라에 합병되었다.

⑤교(絞) : 춘추 때 호북성 서북의 한수(漢水) 중류에 있었던 소제후국이다. 지금의 단강구시(丹江口市) 습가전(習家店) 일대가 중심지였다. 기원전 700년 초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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