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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21 12:48:164095 
영사시(詠史詩)의 개조 좌사(左思)
운영자

좌사(左思)와 영사시(詠史詩)

좌사(左思)는 서진인(西晋人)으로 자는 태충(太沖)이고, 임치(臨淄: 지금의 산동성 임치현) 출신에, 생몰 연대는 모두 미상이다. 그의 출신은 미천하였지만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서예와 고금(鼓琴)을 배웠으나 모두 대성하지 못했다. 그후에 부친의 격려로 학문에 힘썼다. 서진 무제(武帝) 태시(泰始) 8년(272)에 그의 누이동생 좌분(左분)이 재명(才名)으로 궁중에 발탁되어 들어가게 되자 집을 낙양(洛陽)으로 옮겼다.

좌사는 일찍이 비서랑(秘書郞)과 사공좨주(司空祭酒)를 역임하기도 하였고, 원강(元康) 연간(291∼299)에는 당시의 문인집단인 "이십사우(二十四友)"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또 당시의 권세가 가밀(賈謐: 晉惠帝 賈皇后의 조카)에게 ≪한서(漢書)≫를 강론하기도 하였다. 혜제(惠帝) 영강(永康) 원년(300)에 가밀이 피살되자 좌사는 의춘리(宜春里)로 가서 은거하여 전적(典籍)에 전념하였다. 후에 제왕(齊王) 경(冏)이 그를 불러 기실독(記室督)으로 삼으려 하자 그는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태안(太安) 2년(303)에 하간왕(河間王) 옹(顒)의 부장 장방(張方)이 낙양에서 난동을 일으키자, 그는 집을 기주(冀州)로 옮겼으며, 몇 년 후에는 병사하였다.

좌사는 외모가 추하고 눌변이며 교우관계가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10년 동안의 노력으로 <삼도부(三都賦)>를 완성하였는데, 당시에 이것이 얼마나 유명하였든지 귀족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끼느라 일시에 낙양의 종이가 귀하게 되었다. 즉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라는 고사성어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당시의 문단에서는 그가 <삼도부>로써 영예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문학적으로나 후세에 미친 영향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영사>시가 더 중시되고 있다.

현존하는 좌사의 작품은 부(賦) 2편과 시 14수가 있으며, <삼도부>와 <영사>시가 각각 그의 작품을 대표한다.

1. 영사시(詠史詩)의 창작 연대

영사시의 창작 연대에 대해서는 사료(史料)의 부족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1수는 "왼쪽으로 향해 동오를 정벌하고, 오른쪽으로 눈돌려 강호를 평정하리(左眄澄江湘, 右盼定羌胡.)" 구로부터 동오(東吳)가 멸망하기 이전인 태강(太康) 원년(280)에 지어졌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이로부터 나머지 시들도 이와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는 설도 있으나 정론이 아니다. 시의 전반적인 내용으로 보아서는 나머지 7수도 제1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 같으나, 제1수와 제3수, 제2수와 제7수의 내용이 비교적 근사한 점으로 보아 8수의 시가 일시에 창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2. 영사시의 특징

좌사의 영사시는 모두 8수로서 ≪문선(文選)≫에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대체로 원대한 포부를 자술하고, 문벌제도에 분개하며, 현사(賢士)를 찬미하고, 좌절을 한탄하는 것 등으로 개괄할 수 있다.

원래 "영사(詠史)"란 시의 형식을 빌어 역사적인 사실을 노래한 것이며, 이를 최초로 시의 제목으로 삼은 이는 반고(班固)이다. 그러나 반고의 <영사>는 단순히 하나의 시로써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만을 설명식으로 노래하여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종영(鐘嶸)은 ≪시품(詩品)≫에서 그의 시를 "질박하지만 문채가 없다.(質木無文)"고 평하였다. 반고 이래로 왕찬(王粲), 완우(阮瑀) 등이 <영사>를 지었으나, 그것은 반고 <영사>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후 완우의 <은사(隱士)>와 두지(杜摯)의 <증관구검(贈母丘儉)>에서는 하나의 시로써 하나의 사실을 노래한 형식은 타파하였으나, 작법이 너무 기계적이고 딱딱하다는 폐단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배경으로 창작된 좌사의 <영사>는 이름은 반고를 따르고 체제는 두지를 근본으로 하였으면서도 과거의 전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을 뒤섞어 고금을 융합하고 연이어 비유를 끌어들이는 등 영사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 좌사의 영사시는 한 시대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국한되지 않고 예로부터 중시해온 역사 현상에 대하여 심각하게 사고하여 철리성(哲理性)이 매우 풍부하다. 그리하여 좌사의 영사시는 "이름은 영사이나 실제로는 영회(詠懷)이다.(何義門 ≪古詩賞析≫: 名爲詠史, 實爲詠懷.)"라고 일컬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심각한 현실내용을 교묘한 예술형식으로 표현해낸 것이 좌사 영사시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종영는 좌사를 평하여, "전아하되 원망스러우며, 뜻하는 바가 정확하되 절실하여 풍유의 뜻을 얻었다.(鐘嶸 ≪詩品≫: 文典以怨, 頗爲精切, 得諷諭之致.)"고 하였는데, 이는 좌사의 영사시에 매우 적합한 평이라 할 수 있다. 또 심덕잠(沈德潛)은 좌사의 영사시를 평하여, "좌사의 영사는 반드시 한 사람만을 읊지도 않고 한 사실만을 읊지도 않았다. 고인을 노래하면서 자기의 성정을 모두 나타내었으니 이는 천고의 절창이다. 후에는 명원(明遠)과 태백(太白)만이 그것을 할 수 있었다.(沈德潛 ≪古詩源≫卷7: 太沖詠史, 不必專詠一人, 專詠一事, 詠古人而己之性情俱見. 此千秋絶唱也. 後惟明遠太白能之.)"라고 극찬하였으니, 여기에서 좌사 영사시의 뛰어난 문학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도연명(陶淵明)의 <영빈사(詠貧士)>, <영형가(詠荊軻)>로부터 포조(鮑照)의 <영사>, 진자앙(陳子昻)의 <감우(感遇)>, 이백(李白)의 <고풍(古風)>, 공자진(공自珍)의 <영사>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좌사의 영향을 받았으니, 후대에 미친 그의 문학적 공헌도 대단히 크다 하겠다.

<중국의 어제와 오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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