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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05 14:31:043827 
삼국지의 대표 미인 초선에 대한 역사적 진실
운영자


중국 고전의 4대미녀 중의 한 명인 초선(貂蟬)의 형상은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와《삼국연의(三國演義)》등의 소설에 처음 등장했다. 소설의 내용에 의하면 초선은 한헌제(漢獻帝) 때 사도 왕윤(王允)의 가기(歌妓)였다가 양녀가 되었는데 태생이 아름답고 노래와 춤에 뛰어났으며 우아한 자태를 지닌 미녀로 묘사되었다.

어느 날 저녁 초선이 화원에서 달을 구경하고 있는데 홀연히 산들바람이 불고 한 무더기의 뜬 구름이 나타나 해맑은 달을 가렸는데 그때 마침 왕윤이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왕윤은 초선을 정성껏 꾸며 “패월(閉月)”과 같은 미인으로 만들어 먼저 동탁에게 선을 보이고 다시 여포를 유인하여 “여포희초선(呂布戲貂蟬)”이라는 천고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어느 날, 동탁을 만나기 위해 조정에 들어갔다가 풍의정(風儀亭)에서 초선을 만났으나 발각되지나 않을까 걱정한 여포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초선이 놓아주지 않으며 거짓으로 연못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자 여포는 황망 중에 초선을 만류했다. 그때 마침 승상부에 돌아온 동탁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대노하여 극으로 여포를 죽이려고 했으나 동탁의 사위 이유(李儒)이가 달여와 진정시켰다. 여포는 그 기회를 틈타 현장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이 고사는 민간에 널리 퍼져 전해오는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이야기로 이 일로 인해 초선은 중국 고대를 대표하는 사대미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민간에 전파되어 유명하게 된 초선이라는 미녀는 실은 역사적으로 가공된 인물일 뿐이다. 여포가 동탁을 죽인 원인은 초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첫째 초선이라는 인물은 사서에 확실한 기록이 없다.《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와《자치통감(資治通鑒)》등의 정사 모두에 초선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당대 개원(開元) 연간 점성학에 관한 서적인 《개원점경(開元占經)》중에 조선(刁蟬)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책 내용에 《한서통지(漢書通志)》 중의 기사를 인용하여 “조조가 뜻을 아직 얻고 있지 못할 때 먼저 동탁의 마음을 사기 위해 조선(刁蟬)을 뽑아 바쳤다.”라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한서통지(漢書通志)》라는 책은 도중에 일실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조선(刁蟬)이 초선(貂蟬)으로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초선이라는 인물은 조선이라는 여관을 근거로 단지 문학적으로 창조된 역사인물임이 확실하다. 원래 조선이라는 여자가 담당했던 관리의 이름으로 관료들이 어전회의에 참석할 때 매미 모양의 관장식을 나누어주던 직책이었다.


둘째 여포는 일찍이 동탁의 시녀와 간통한 적이 있었다.

《후한서(後漢書)》、《자치통감(資治通鑒)》등의 기사에 의하면 그 당시 동탁은 너무나 많은 정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암살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동탁은 여포를 항상 자기 신변에 두고 경호를 시켰다. 동탁의 성격은 원래 고집이 세고 괴팍했다. 일찍이 어떤 조그만 사건이 자기의 마음을 거슬려 극을 뽑아 여포를 향해 던졌으나 다행히 여포가 재빨리 몸을 피해 도망친 일이 있었다. 이후로 여포는 동탁에게 속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여포전(呂布傳)》에도 “동탁이 항상 여포를 시켜 자기가 머무는 누각을 지키도록 하자 동탁의 시녀와 간통하게 된 여포는 그 일이 발각되지나 않을까 마음속으로 매우 불안하게 생각했다.”라는 기사가 있다. 그래서 초선의 원래 형상은 여포와 간통한 동탁의 시비일 가능성이 크다. “여포가 초선을 희롱하다[呂布戲貂嬋]” 편은 여포와 동탁의 시녀가 간통한 일을 소재로 문학적으로 각색한 이야기다.




셋째 여포가 동탁을 살해한 이유는 높은 관직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사서에 왕윤은 이미 여포야말로 동탁을 살해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로 인정했기 때문에 항상 여포를 후대했다. 마침내 여포가 동탁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 왕윤은 즉시 여포에게 자기의 의중을 내보이며 내부에서 내응하여 동탁을 죽이자고 유혹했다. 원래 동탁을 양아버지로 모셨던 여포는 손을 쓸 수 없다고 주저했다. 그러나 계속된 왕윤의 유혹과 복야(仆射) 사손서(士孫瑞)의 반복된 권유로 여포는 마침내 내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음모는 다시 누설되어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고 어떤 사람이 재빨리 천 조각에 “여(呂)” 자를 써서 등에 붙이고는 시정을 뛰어다니며 “포아(布啊)”를 외치고 다녔다. 그 사람의 행동은 여포가 장차 동탁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동탁의 측근들은 이 사실을 알렸으나 동탁은 그들의 말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헌제(漢獻帝) 초평(初平) 3년 서기 193년 4월, 병이 완쾌된 한헌제에게 조현을 올리기 위해 백관들이 조당에 대거 모여들었다. 그때 동탁이 등청하기 위해 수레에 오르다가 말이 놀라는 바람에 진흙탕에 넘어져 조복을 더럽히고 말았다. 조복을 바꿔입기 위해 다시 대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자 그의 젊은 희첩이 말이 놀란 일은 매우 불길한 징조이니 등청하지 말라고 권했다. 동탁이 듣지 않고 조당에 나가기 위해 수레를 몰아 길을 나서며 여포로 하여금 앞뒤의 호위를 맡겼다.




이윽고 동탁의 수레가 궁문 앞에 이르렀을 때 또다시 수레를 끌던 말이 놀라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동탁은 뭔가 불길한 낌새를 채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여포가 동탁에게 궁안으로 들어가라고 권하고는 자기가 먼저 궁문 안으로 먼저 들어가 군사들을 매복시켰다. 이윽고 동탁이 궁문 안으로 들어오자 매복하고 있던 도기위(騎都尉) 이숙(李肅)이 먼저 극을 들어 동탁을 찔렀으나 그때 동탁은 안에 철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극에 찔리지 않고 단지 어깨에 부상을 입고 수레에 떨어졌다. 동탁이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외쳤다.

“여포는 어디 있느냐?”

여포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역신을 토벌하라는 황제의 조서가 여기 있다!”

그리고는 창을 들어 찔러 죽이고는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그의 머리를 벴다.

여포는 이 일로 분위장군(奮威將軍)에 임명되고 온후(溫侯)에 책봉되어 가절(假節)과 의례는 삼공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보아 여포가 동탁을 죽인 이유는 일종의 동탁에 대한 원한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특히 왕윤 등이 먼저 높은 관직으로 그를 유혹했기 때문이지 미녀 초선을 이용하여 사용한 이간책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간단히 말하면 동탁이 일찍이 “극을 뽑아 여포에게 던지고.” “여포가 동탁의 시비와 간통했으며.” 여포가 “높은 관직으로 유혹을 받아 동탁을 죽이기로 허락했다.” 등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동탁을 주살했음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위의 세 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삼국연의의 “여포가 초선을 희롱했다[呂布戲貂蟬].”라는 편으로 각색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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