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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9 15:48:183840 
선비족 대추장 단석괴(檀石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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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괴(檀石槐)


동한 순제(順帝) 영화(永和) 2년(137년)에 태어나서 영제(靈帝) 광화(光和) 4년(181년)에 죽은 선비족 대추장이다. 어렸을 때부터 용기와 지모를 갖추어 부족민들에 의해 수령으로 추대되었다. 동한 말 고류(高柳)의 북쪽 탄한산(彈汗山)에 왕정(王庭)을 세우고 남쪽으로는 한나라 변경의 각 군을 공격하여 노략하고 북쪽으로 정령(丁零)의 세력을 막았다. 동쪽으로 부여(夫餘)를 물리쳤으며 서쪽으로는 오손(烏孫)으로 진격하여 옛 흉노가 다스린 모든 땅을 점령하여 동서로는 1만 4천여 리, 남북으로는 7천여 리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고류는 지금의 산서성 양고(陽高)이고 탄한산(彈汗山)은 음산산맥의 동쪽 자락으로 내몽고 호화호트 서쪽의 대청산이다.

환제(桓帝) 영수(永壽) 2년(156年),군사를 이끌고 운중군(雲中郡)을 공격했다. 연희(延熹) 원년(158年)이후에도 선비족은 장성을 끼고 있는 9개 군과 요동 속국을 쉴 새 없이 공격하여 한나라를 변경을 어지럽혔다. 환제가 이를 매우 걱정하여 단석괴를 왕으로 삼아 화친을 도모하려고 했으나 단석괴는 거절하고 오히려 장성 주변의 군현을 더욱 맹렬하게 공격하여 노략질을 더욱 심하게 했다. 단석괴는 선비족의 점령지를 3부로 나눈 후에 각부에 대인을 두어 자기를 대신하여 다스리게 했다. 광화 4년(181年) 그의 나이 45세에 죽고 아들 화련(和連)이 뒤를 이었다.


1. 인물과 생애


추거수령(推舉首領)

단석괴는 어렸을 때부터 외조부의 집에서 성장했다. 위인이 용감하고 신체가 우람했다. 지모와 책략이 풍부했다. 단석괴의 나이 14-5세 때 어떤 선비족 부락의 수령이 외조부의 소와 양을 약탈한 후에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단석괴는 단기로 그들을 쫓아가 싸움을 하는데 그가 이르는 곳에는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들에게 빼앗긴 소와 양을 모두 찾아서 외조부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일로 인해 부락민들은 존경을 표하고 복종했다. 단석괴가 법령을 제정하고 소송을 심리하기 시작하자 어떤 사람도 감히 법을 어기지 않았다. 선비부족은 단석괴를 자신들의 추장으로 추대했다.


단석괴가 왕정을 건설한 탄현산 자락과 철구수(歠仇水)는 지금의 산서성 양고(陽高)인 고류(高柳) 북쪽 300백리 되는 내몽고 대청산과 그 사이를 흐르는 동양하(東洋河)다. 단석괴의 군사들은 강하고 말은 건장하여 전투력이 특히 강했음으로 동부와 서부에 살던 선비족 부락 추장들은 단석괴를 스스로 찾아가 복속했다. 세력을 크게 확장한 단석괴는 기회를 틈타 남쪽으로 진격하여 한나라의 변경지대를 대거 약탈했으며 북쪽으로는 정령을 저지하고 동쪽으로는 부여를 물리쳤으며 서쪽으로 오손의 땅을 점령하여 옛날 흉노가 차지했던 영토를 모두 차지했다. 이로써 단석괴는 동서로 1만 4천여 리 남북으로 7천여 리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의 산천과 수택 및 염지(鹽池) 등을 통치했다.


분설삼부(分設三部)

영수(永壽) 2년(156年)7월 단석괴는 3-4천 기의 기병을 이끌고 동한의 운중군을 공격했다.

연희(延熹) 원년(158年)、연희 2년, 연희 6년 선비는 수 차례에 걸쳐 동한의 변경을 침범했다.


연희 9년(166年)여름,여러 부대로 나뉜 수 만 명의 선비족 기병이 동한 변경의 9개 군을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 갔다. 동한 조정은 장환(張奐)을 시켜 반격을 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선비족 기병들은 장성을 넘어 철수한 후였다. 선비족의 장기적인 침략을 크게 우려한 한나라 조정은 또한 그들을 통제할 별다른 방법이 없었음으로 사자에게 인수(印綬)를 주어 단석괴에게 보내 그를 왕으로 책봉하여 화친정책을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단석괴는 왕의 인수를 거부하여 화친정책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동한 변경의 요새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하게 했다. 단석괴는 자신의 영토를 3부로 나누었다. 우북평 이동에서 요동(遼東)과 부여와 예맥(濊貊) 등과 접경 지역 내의 우문부(宇文部), 단부(段部) 등을 포함한 20개 성읍을 동부(東部), 우북평 이서에서 상곡군의 10여 개의 성읍에 주거하는 모용부(慕容部)를 포함한 지역을 중부,상곡군 이서에서 서쪽으로 돈황군(敦煌郡)과 오손(烏孫) 등에 산거하던 척발부(拓跋部)를 포함한 20여 개의 성읍 을 서부 등으로 분구했다. 단석괴는 각 부에 한 명의 수령을 임명하여 관할토록 했다. 후에 북주정권을 창건하고 북제를 멸하여 북중국을 통일 수나라가 서진 이래 350여 년만에 다시 통일천하를 이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우문부는 원래 남흉노의 지족으로 선비화된 부족이었다.


격패한군(擊敗漢軍)


영제(靈帝) 희평(熹平) 6년(177年)8월,한나라 조정은 오환교위(烏丸校尉) 하육에게는 후에 고류(高柳)에서, 선비중랑장(鮮卑中郎將) 전안(田晏)은 운중에서, 흉노중랑장 장민(臧旻)은 남흉노 선우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안문(雁門)에서 각자 1만의 기병을 이끌고 3로의 길을 취하여 장성을 넘어 선비족 영토 2천여 리에 안으로 진군했다. 단석괴는 3부의 수령들에게 명을 내려 각자의 관할 내의 기병을 이끌고 출전하여 한나라 군을 요격하라고 했다. 하육 등의 한나라 군은 선비군과의 싸움에서 대패하고 부절과 치중 등을 모조리 선비군에게 빼앗기고 각 군의 장수들은 수십 명 좌우의 기병들만을 데리고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한군은 동원한 병력의 10분이 7-8을 잃었다.


광화 4년(181年)단석괴는 45세의 나이로 죽고 그의 아들 화련이 단석괴의 수령 자리를 물려받았다.


2. 위정거조(爲政舉措)

광화 원년(178年),당시 선비족의 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농업과 목축및 수렵 등만으로는 백성들을 먹여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석괴는 친히 선비부락을 순시한 후에 오집진수(烏集秦水) 강변의 수백 리에 걸친 광활한 땅의 잔잔한 강물 속에는 물고기들이 가득 서식하고 있었으나 잡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집진수는 오후진수(烏候秦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내몽고와 하북성 북쪽에서 발원하여 적봉(赤峰)을 지나 서요하(西遼河)와 합류하는 지금의 노합하(老哈河)다. 당시 왜국(倭國)(《위서(魏書)》에서는 한국(汗國)) 사람이 그물로 고기를 잡는데 능하다는 말을 들은 단석괴는 왜국인 1천여 명을 포로로 잡아와 진수(秦水) 강변에 살게 하면서 고기를 잡아 선비족을 위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게 했다.


단석괴는 그와 같은 행위로 선비족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당시 형세로는 한계가 있었던 이유는 선비족은 평상시에는 통일을 이루지 못했고 단석괴가 죽자 곧바로 선비족 연맹은 와해되어 분열하여 수 많은 지족으로 독립하여 서로 다투었다.




3. 취문일사(趣聞軼事)


단석괴의 부친의 이름은 투록후(投鹿侯)다. 일찍이 흉노족에 군대에 들어가 3년을 보내던 중 그의 아내가 단석괴를 낳았다. 투록후가 집으로 돌아온 후 자기의 아들의 출생 동기가 매우 기괴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어린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아내가 말하기를 밝은 대낮에 길을 가는데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자 그때 마침 떨어지던 우박이 자기 입속으로 들어와 삼키고는 집으로 돌아온 며칠 후에 임신이 되어 10개 월 후에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어린 아이는 필시 뛰어난 재능을 갖추었을 것이니 잠시 거두어서 기르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투록후가 말을 듣지 않았으나 차마 죽이는 못하고 마을 밖에 내다버렸다. 투록후의 아내가 자기의 친정에 말해 거두어 기르게 해서 단석괴라는 이름을 얻었다. 《後漢書·卷九十·烏桓鮮卑列傳第八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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