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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왕조의 실질적인 창건자 하란부인(賀蘭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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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北魏)의 헌명황후(獻明皇後) 하란부인(賀蘭夫人)

- 북위왕조의 실질적인 창건자 하란부인 -


북위의 전신 대국(代國)이 전진(前秦)의 부견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위대한 전략가에 수완가인 한 여인이 등장했는데 바로 하란부인이다. 흉노족 출신인 하란부인의 두 남편이 선비족이라는 사실은 하란부인은 선비족과 흉노족 간의 화친정책에 의해 등장한 여인임을 말해준다. 그녀는 선비족에 복속된 흉노의 동부대인 하야간(賀野幹)의 딸이다. 하란부인의 첫 번째 남편은 척발식(拓跋寔)으로 대왕(代王) 척발십익건(拓跋什翼健)의 태자다. 식은 역사문헌 상 헌명제(獻明帝)로 척발식의 아들 척발규(拓跋珪)가 북위왕조를 창건한 후에 그의 선조들을 추봉할 때 올린 시호다. 그녀와 척발식 사이에 척발규가 태어났다. 척발식은 대왕(代王) 척발십익건의 장남이다. 척발규가 5살이 되었을 때 전쟁에 참가한 척발식은 부왕 십익건을 구하려다 부상을 당해 죽고 말았다. 이에 대국의 태자로 책봉된 척발식의 동생 척발한(拓跋翰)과 결혼한 그녀는 척발고(拓跋觚)를 낳았다. 척발한의 생모는 모용씨이고 진왕(秦王)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명(明)이다. 그는 하란부인과 재혼하기 전의 부인에게서 척발의(拓跋儀)와 척발열(拓跋烈)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척발십익건이 정략적으로 모용씨와 결혼한 해는 서기 341년이고 죽은 해는 대국 건국(建國) 10년인 서기 347년이라고 했는데 이는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위서(魏書)·열전(列傳) 三》에 척발한이 죽은 해인 건국 10년 347년은 하란부인과 결혼한 지 겨우 6년 째이나 《위서(魏書)·열전(列傳)三》의 별도기사에 “진명왕(秦明王) 한(翰)은 소성황제(昭成皇帝) 십익건의 세 번째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의기가 높았고 15세에 벌써 기병들을 이끌고 원정에 나설 정도였다. ”라고 했다. 즉 철박한은 적어도 15세까지 살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아마도 376년에 발생한 척발식군(拓跋寔君)의 란 이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마침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전진왕 부견이 부락(苻洛)을 장수로 삼아 20만 대군을 주어 대국의 근거지 바엔놀[巴彥淖爾] 초원을 공격했다. 전진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십익건은 음산(陰山)까지 후퇴하여 계곡에 숨었으나 또다시 고차족(高車族)의 반란이 발발하고 몸에는 병까지 들어 대나라의 운명을 벼랑 끝으로 몰렸으나 다행히 전진군이 대국을 노략질하고 물러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여 운중의 성락(盛樂)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십익건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말을 할 때도 숨이 차서 더듬을 정도였다. 십익건은 간신히 운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십익건의 친조카 척발근(拓跋斤)은 그의 형 척발외괴(拓跋廆槐)의 아들이다. 척발근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십익건으로부터 소흘하게 대접을 받고 있다고 가슴속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척발근은 십익건의 서장자 척발식군(拓跋寔君)에게 말했다.

“모용비(慕容妃)를 총애하고 있는 왕이 그녀가 낳은 아들들이 이미 장성하여 후계로 세우려는 생각을 품고 먼저 장자인 너를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만일 네가 먼저 손을 쓰지 않는다면 큰 화가 너에게 닥치리라!”


십익건의 세자 척발식(拓跋寔)은 5년 전 부친을 구하려다 갈비뼈가 부러져 죽었기 때문에 서장자 신분의 척발식군은 대나라의 왕위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사촌형의 도발적인 말을 듣고 일순간에 흉악한 인간으로 변한 척발식군은 척발근과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모용비의 막사로 쳐들어가 그녀의 소생인 이복동생 6명을 살해한 후에 왕의 막사로 뛰어가 병으로 누워있던 십익건을 한 칼에 찔러 죽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척발씨의 대국(代國)을 부흥으로 이끌었던 노영웅은 결국은 아들이 손에 죽고 말았다.


이로써 대나라는 대란이 일어나 여러 부족들은 도망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대나라에 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전진왕 부견은 다시 대군을 보내 일거에 혼란한 대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부자와 군신관계를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던 유학을 깊이 신봉한 전진왕 부견은 척발식군이 자신의 부군을 살해한 사실을 알고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천하에 어찌 이와 같은 흉악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진왕 부견은 사람을 보내 척발식군과 척발근을 장안으로 압송해오도록 한 후에 그들의 죄를 천하에 선포하고 거열형에 처해 죽였다.


서기 376년 전진이 대국을 멸할 때 포로로 잡은 척발규와 하란부인을 전진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때 대왕의 좌장사(左長史) 연봉(燕鳳)이 척발규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 전진의 왕 부견에게 힘써 권해 척발규를 대국의 땅에 남겨두어 그가 장성하게 되면 척발씨들의 수령으로 삼아 대국을 다스리게 하면 척발규가 그 은혜에 감격하여 전진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부견이 연봉의 조은을 받아들여 척발규를 대 땅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했다. 대국을 멸한 진왕 부견은 그 옛 땅을 흉노족의 수령으로 대국에 신복하고 있던 유고인(劉庫仁)과 유위진(劉衛辰)에게 나누어 다스리도록 했다. 하란부, 독고부, 남부대인 장손숭(長孫嵩) 등은 십익건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던 유고인의 통제 하에 있었다. 원래 십익건 밑에서 남부대인을 지낸 인물인 유고인은 하란부인과 척발규 형제들을 극진히 대했다. 당시 두 흉노부족은 하란부인과 척발규의 목숨을 노리며 살해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하란부족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은 하란부인의 남동생이 척발규를 죽이려고 했던 중요한 이유는 그가 대왕의 적손으로 전진(前秦) 정권에 의해 십익건의 후계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후에 하란부인은 자기 휘하의 기병들을 모두 소집해서 15세의 척발규를 대왕의 자리에 올린 후에 음산(陰山) 자락인 지금의 바엔놀 초원에서 북위정권을 건립했다.


하란부인이 살얼음 같은 유목민족 간의 내전에서 무슨 방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녀가 불행을 당한 후에 어째서 당시 세력이 강대했던 그녀의 친정인 하란가에 의지하지 않았을까? 하란부인은 원래 용모가 매우 아름답고 지혜가 출중한 여인이었다. 고대에는 몇 가지의 관례로 지켜지는 규정이 있었다. 출가한 여인 특히 궁중의 여인이 돌아와 친정에 의지해서 살 때는 시댁에서 버림받았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당시 이미 전진에 의해 멸망당한 대국의 태자비라는 신분은 그녀 친정의 부모나 오빠들로부터 멸시당할 것임은 확실했다. 만일에 친정인 하란가로 가서 몸을 의지한다면 장차 자신이나 아들들이 굴욕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하란부인은 그와 같은 일은 결코 할 수 없었지만 단지 고통스럽지만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고 위기에 처해 마지막 모험을 행하여 자신의 아들들을 동산재기(東山再起)의 출구를 마련해주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나라를 멸한 전진국의 부견황제는 흉노의 철불부(鐵弗部) 출신 유위진(劉衛辰)과 독고부(獨孤部)의 유고인(劉庫仁)에게 대나라의 옛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도록 했다. 두 권력이 존재하면 자연히 두 세력 사이에 균형이 깨지는 상황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3권을 정립시켜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권력의 속성성 유위진과 유고인 사이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마침내 무력충돌의 상황까지 발전했을 때 하란부인은 멸망한 대국의 여주인 신분으로 유고인에게 달려가 몸을 의탁했다. 유고인은 옛날 주인이었던 척발십익건에 대해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뜻밖에 옛 주인의 왕족들이 찾아와 몸을 의탁해오자 그는 온 정성을 다해 받들었고 동시에 그의 아들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옛 주인을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했다. 그의 그와 같은 처신은 앞날을 내다본 현명한 처사였음이 후에 척발씨가 다시 일어나 대나라를 찾고 다시 북위왕조를 세울 때 유위진의 부족들은 멸족을 당했으나 유고인의 독고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결과로 증명되었다.


이윽고 훌륭한 청년으로 자란 척발규는 권술과 위엄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고 기가 센 척발규는 자기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살면서 왕실의 후예인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적대세력들의 존재를 추호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그는 은인자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으나 척발규의 인생법칙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취해 적대세력이 미쳐 그것을 깨닫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 공격을 가하는 편이었다. 척발규의 그런 성격은 선천적으로 다른 영도자가 가지고 있지 못한 큰 장점이었다. 위서(魏書)의 기록에 “도무제는 어린 나이였지만 굳센 모습이 일반 사람과 달랐다. 유고인은 항상 그를 칭찬하기를 ‘저 어린 아이는 천하에 뜻을 두어 나라를 다시 세우고 공업을 넓혀 조종의 위업을 빛나게 하여 필시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척발규의 그와 같은 성격은 적대세력의 질투와 시기를 일으켜 결국은 그를 해치려는 음모로까지 발전했다. 하란부인 자신과 아들들의 보호막이었던 유고인이 마침내 죽자 흉노의 독고부에서 내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유고인의 아들 유현(劉顯)이 내란을 평정하고 독고부의 수장 자리에 오르자 하란부인의 가족들은 방해와 시기를 받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부족민들의 인심을 얻고 있는 척발규에 대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한 유현은 척발규를 죽여 장차 화근을 없애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란부인의 미모와 총명한 지혜에 탄복하고 있었던 유현은 하란부인에 대해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천성이 총명한 하란부인은 유현의 내심을 간파하고 그의 아들들에게 어서 빨리 가능한 멀리 도망치라고 사람을 보내 알리고 자신은 독고부에 남아 유현을 미혹시키기로 했다. 유현이 자기 아들들을 죽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었던 하란부인은 아들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유현의 장막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란부인이 곁에 남자 유현은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음으로 하란부인의 아들들은 비로소 경각에 달린 목숨을 보존하여 위험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날 저녁 하란부인은 친히 주연을 준비하여 유현과 함께 술을 마셔 그녀가 준비한 계획에 따라 유현을 대취하게 만들었다. 한편 전마를 훔치기 위해 마굿간으로 잠입한 그녀의 아들들은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말을 세차게 끌어 당기자 말들이 놀라 울음소리를 냈다. 말울음 소리에 술에서 깨어난 유현이 자리에 일어나 말을 살펴보려고 마굿간으로 가려고 했다. 이때 하란부인은 그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아들들의 운명은 당신의 손안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당신 앞에 있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들을 죽이려고만 하고 용납하지 않으려고 합니까? ”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배꽃 모습의 하란부인의 울음은 유현의 마음을 누그려뜨려 오히려 그녀를 달래고 동시에 마음을 놓고 다시는 척발규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척발규 형제가 이미 멀리 달아났음을 확인한 하란부인은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명도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음을 깨닫고 유현(劉顯)의 동생 유항니(劉亢泥)의 부인에게 아환(丫鬟)을 보내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청했다. 항니의 부인은 대왕 십익건의 딸로 하란부인에게는 시누이였다. 항니의 부인은 하란부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와 그녀를 신상(神像)을 보관하는 방인 신고(神庫)에 몰래 숨겼다. 이윽고 유현이 술에 깨어나 척발규 4형제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하란부인을 부락 안을 샅샅이 뒤져 찾아내도록 명하고 다시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하란부인과 그 아들들을 붙잡으려고 했다. 신고(神庫)에 숨어있던 하란부인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불안한 처지에서 3일을 보냈다. 그 사이에 독고부에는 내란이 일어났음으로 그때서야 비로소 혼란을 틈타 유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척발씨 4형제는 흉노 독고부가 다스리는 땅에서 달아나 그들의 외가인 하란부로 들어갔다. 그때 하야우(賀野於)는 이미 죽고 수령자리는 하란부인의 오빠 하눌(賀訥)이 잇고 있었고 그녀의 동생 하열(賀悅)은 하란부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척발규가 당도하여 머물자 하란부 내에서 큰 혼란이 발생했다. 하란부인의 또 다른 동생 하란염간((賀蘭染幹)은 날이 갈수록 부족민의 인심을 얻는 척발규를 보자 마음 속에 질투심이 일어나서 군사를 일으켜 척발씨 형제들을 행궁 안으로 몰아넣은 후에 척발규를 죽이려고 했다. 자기의 친동생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자 하란부인은 척발규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혼자서 행궁 밖으로 탈출하라고 권하고 그의 동생 하란염간에게 말했다.“너희들이 내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장차 어떻게 할 작정이냐? 너희들은 어째서 내 처지를 생각해주지 않느냐?”


하란염간은 그의 누이가 홀홀단신이고 도망친다고 해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 필경은 도망치다가 강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 뿐이라고 생각해서 휘하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위기를 벗어난 하란부인은 부족 내에서는 하열(賀悅) 등의 하란부 가족들의 지지를 얻고 외부적으로도 역시 하란부인 모자에 대한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강대한 전진정권이 비수대전의 패배로 멸망했음으로 옛날 뿔뿔히 흩어져 오랫동안 헤어져 지냈던 대신들이나 부족들이 속속 돌아와 척발규를 대왕으로 옹립하여 통일왕국의 신민으로 지내기를 바랐다. 서기 386년 15세의 척발규는 하란부인의 공작으로 우천(牛川)에서 대왕의 자리에 즉위했다. 우천은 산서성과 접경지대인 내몽고 집녕시(集寧市) 서쪽 30키로다. 대국의 부흥은 전진의 공격으로 멸망한지 7년 만의 일이었다.

황시(皇始) 원년(396年)도무제(道武帝) 척발규가 하란부인과 척발한 사이의 소생이며 이복동생인 척발고(拓跋觚)를 후연(後燕)에 사자로 보냈으나 후연황제 모용수(慕容垂)에 의해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하란부인은 이 일로 인해 마음 속에 병을 얻어 자리에 누었다가 같은 해 6월 15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죽었다. 같은 달, 도무제의 생모 하란부인은 성락궁(盛樂宮)의 금릉(金陵)에 있는 부친 척발식(拓跋寔)의 묘에 합장되었다. 시호는 헌명황후(獻明皇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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