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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0 15:24:155915 
혜강(嵇康)의 광릉산(广陵散)은 사라졌는가?
운영자

혜강()의 광릉산(广陵散)은 사라졌는가?

도연명이 술을 마신 까닭

동진시대의 대문호 도연명(陶淵明) : 대략365~467년)의 시 중에 《음주(飮酒)》라는 제목을 단 연작시가 있다. 모두20수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다섯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오두막집 엮어 마을 변두리에 사니


而無車馬喧(이무차마훤)

수레 소리, 말울음 소리 들리지 않는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능히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땅도 절로 멀어지니.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한 송이를 꺾어들고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해질녘에 더욱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들은 서로 모여 둥지로 돌아온다.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 속에 인생의 참뜻이 들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말로 표현하고자 하나 할 말을 잊었다.


전원에 은거해서 살아가는 한가함의 기쁨을 잘 노래한 명시다. 《음주》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시는 술에 취해 흥이 나서 쓴 시가 아니다. 시 구절에 술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술을 빌려 시인이 전원생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가운데 현실에 대한 말 못할 불만을 한 점 흔적 없이 은근히 드러낸 시다. 그래서 명시다.

생각해 보라. 정말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 이 시를 지었다면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꽃 타며 왜 하필이면 남산을 바라보며 참 뜻을 표현하려다 말을 잊어 버렸겠는가. 평소 하지 못하던 말도 술을 먹고 호탕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한가로운 가운데 한가롭지 않은 모순된 심정을 잘 표현한 시다. 인간세상에서 도화원을 찾기가 어찌 그리 쉽겠는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도연명은 ‘성질’이 대단했으며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또한 결코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같은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난세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나마 이처럼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고통스런 시대 중 하나

혜강(嵇康, 223~262년)이 살았던 위진 교체기는 도연명에 비해 훨씬 냉혹했고 위험했다. 위진교체기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한220년부터 서진 왕조가 수립된265년까지를 말하는 것으로40여 년 사이에 조비, 조예, 조방, 조모, 조환 다섯 명의 황제가 집권한 매우 혼란한 시대였다. 더구나249년(正始10년)에 일어난 고평릉(高平陵)의 변란을 통해 사마의를 영수로 하는 사마씨 집단이 조씨 세력을 밀어내고 실권을 장악했다. 이 사건 이후 조씨 왕조는 명목상 계속 되지만 권력은 사마씨의 수중에 떨어져버렸다. 사마씨는 정권을 공고화하기 위해 명망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반대파에게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단행했다. 권력 투쟁의 와중에 놓인 지식인들은 엄혹한 선택에 직면했다. 이름뿐인 황제에 충성해야 할지 아니면 신하지만 권력을 한 손에 쥔 집권파에 머리를 숙여야 할지 를 선택해야 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마씨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역사상 지식인들에게 가장 고통스런 시대 중의 하나였다. 시대는 이처럼 추악했지만 개인을 각성한 인간들의 개성과 매력이 빛났던 시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암흑과 같았던 시대도 가릴 수 없었던 한줄기 빛을 우리에게 전해주어 따뜻한 위안이 된다.

죽림칠현은 위나라 정시(正始, 240~249년) 연간에 혜강(223~262년), 완적(阮籍, 210~263년), 산도(山濤, 205~283년), 상수(向秀, 연대미상), 유영(劉伶, 연대미상), 왕융(王戎, 234~305), 그리고 완함(阮咸, 연대미상) 일곱 명으로, 이들은 지금의 하남성 수무현(修武縣)인 다시 산양(山陽)의 대나무 숲 아래에서 술 마시고 시를 짓고 노래하며 어울렸다. 진인각(陳寅恪)라는 저명한 학자에 따르면 죽림은 실제 대나무 숲이 아니라 불교의 죽림정사라는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또한 칠현은 《논어(論語)․헌문(獻文)》편에「현인은 세상을 피한다. 그 다음은 무도한 땅을 피하고, 그 다음은 안색을 보고 피하고, 그 다음은 언어를 보고 피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세상을 피한 사람이 일곱 명 있었다(子曰 賢者辟世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 子曰 作者七人矣)」에서 따왔다고 했다. 그들이 어울렸던 당시 산양현에 실제로 대나무 숲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지질공원 중의 하나인 운태(雲臺)산이 있는 곳으로 매우 아름다운 관광지다. 칠현도 단지 그들 일곱 명만이 어울렸다기보다 《논어(論語)》구절에 맞춰 명명했다고 본다.

그들은 모두 항상 함께 모여 어울렸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때는 세 명, 어떤 때는 두 명 식으로 서로 어울렸고, 어떤 경우에는 이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더 친한 경우도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느슨한 관계로 엮인 일곱 명의 그룹이라고 보면 된다. 죽림칠현이라는 명칭은 대규(戴逵)라는 인물이 지은《죽림칠현론(竹林七賢論)》에 처음 나온다. 눈 오는 밤에 왕휘지(王徽之)가 친구 생각이 나서 찾아갔다가 흥이 다해 그냥 돌아왔다는 『설야방대(雪夜訪戴)』의 대(戴)가 대규(戴逵)라는 인물이고 왕휘지는 왕희지의 서법(書法)을 계승한 왕희지의 다섯 째 아들이다.

난세의 지식인, 죽림칠현의 삶

죽림칠현에서 중요한 세 사람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산도, 혜강, 완적이다. 산도는 죽림칠현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맏형 격인 인물로 꽤 괜찮은 인물이다. 산도가 혜강과 완적이라는 나이 어린 친구 자랑을 하도 하기에 그의 아내가 두 친구를 초대하라고 해놓고 남편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숨어서 훔쳐보다가 날이 밝는지도 몰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도는 혜강에게 좋은 마음으로 관직을 권했다가 절교 편지를 받았기에 후세에 나쁜 인상이 남아 있지만 혜강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아들 혜소를 부탁한 사람이다. 절교한 친구에게 죽으면서 혜강이 아들을 맡긴 이유는 천고의 미스터리다. 그래서 그 절교가 반은 진짜고 반은 거짓이라는 말이 있다. 산도는 좌우간 청렴한 관리였고 절교 편지를 보낸 친구의 아들을 잘 돌봐줬으니 박하게 평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혜강이나 완적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사마의의 먼 조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완적은 죽림칠현 중에 혜강과 비교되는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고집이 대단하였지만 완적은 노년에 이런 성질을 고치고 “인물의 옳고 그름을 입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했다. 그는 젊은 시절 반기는 사람이 오면 청안(靑眼)으로, 싫은 사람이 오면 백안(白眼)으로 대했다. 백안시한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완적은 알지도 못하는 이웃집 처녀가 죽자 가서 곡을 했지만 바둑을 두다가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계속 바둑을 두고 나서 말술을 마시고 피를 토한 일도 있었다. 고독한 심정을 토로한 영회시(詠懷詩) 85수는 매우 유명하다.

상수는 장자에 주석을 단 인물이고, 유영은 술의 덕을 칭송한 주덕송의 작자로 자신이 술 마시다 죽으면 묻으라고 하인에게 삽을 들고 따라다니도록 한 기행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유영이 술에 취해 옷을 벗고 나체로 있었는데 손님이 찾아와 그러면 되느냐 했더니 나는 천지를 집으로 삼고 나의 집이 팬티인데 왜 남의 팬티 속에 들어와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냐고 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완적의 조카 완함은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한 인물로 비파라는 악기의 창시자이고 죽림칠현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왕융은 어려서 똑똑하고 담력 있는 신동으로 유명했다. 말년에 지독한 구두쇠가 되었다고 했다.

혜강의 비정상적인 죽음

혜강은 죽림칠현 중에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나이는 산도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어렸지만 죽림칠현의 정신적 리더였다. 초군(譙郡) 질현(銍縣) 지금의 안휘성 숙주(宿州)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형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7척8촌(대략190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키에 외모가 출중했고 재능이 빼어났다. 군계일학이라는 성어는 어떤 이가 그의 아들 혜소의 모습을 보고 “의젓하고 늠름해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 같았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왕융이 “혜소의 아버지는 그보다 더 뛰어났었는데, 당신은 그의 부친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소.”라고 했다. 이 말을 통해 혜강이 어떤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산도는 “홀로 우뚝 서있는 외로운 소나무처럼 장엄했고, 취했을 때는 무너지는 푸른 옥산과 같았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런 혜강의 풍채를 묘사하는 말로 “용의 무늬와 봉황의 자태[龍章鳳姿]”라는 말이 있다. 재능이 출중하고 외모도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취미도 상당히 멋있었다. 집 주변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친구인 상수와 함께 쇠를 담금질하는 일이 취미였다고 했다.

혜강이 쇠를 단련하고 있을 때 한번은 종회(鐘會)라는 당시 세도가가 출세해서 단단히 차려 입고 여러 사람과 함께 그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혜강이 아는 체도 하지 않으니 종회가 머쓱하여 돌아가려고 하자 “무엇을 듣고 왔다가 무엇을 보고 가느냐”고 말했다. 종회가 “들을 걸 듣고 왔다가 볼 걸 보고 간다”고 대답했다. 종회는 이 일로 혜강에게 앙심을 품었다. 결국 이 사건은 혜강이 죽임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억울하게 형벌을 받게 된 친구 여안(呂安)을 위해 혜강이 용감하게 변호하자 그렇지 않아도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종회가 누명을 덧씌워 결국 혜강은 처형되고 말았다.

혜강의 사상은 “명교(名敎)를 초월해서 자연에 맡긴다(越名敎而任自然)”와 “탕무를 비판하고 주공과 공자를 가벼이 여긴다(非湯武而薄周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혜강이 명교를 비판 이유는 자연을 따라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고 설파한 노장(老莊) 철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교의 이상에 대해 진정으로 믿었던 혜강은 입으로는 고상한 명교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추악한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사마씨 정권과 그 일당들의 허위에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력혁명을 했던 탕임금과 무왕, 섭정을 했던 주공, 선양을 높이 평가한 공자를 모두 비판한 이유는 당시 실권자였던 사마소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사마씨 정권에 참여하고 있던 산도에게 절교 편지로 펼친 혜강의 행위는 ‘나를 죽여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일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조조의 손녀(혹은 증손녀) 사위였던 점, 사마씨 정권에서 신망을 얻고 있었던 종회가 지난 일에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지 않으면 왕도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는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그를 죽이려 할 때 태학생3000명이 그를 죽이지 말고 최고 학부인 태학의 선생님으로 모셔야 한다고 상소문을 올렸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이 곡은 전해지지 않으리라

그가 담담히 형장에 올라가 죽기 전에 고금(古琴, 우리로 치면 거문고지만 현이7줄이라 칠현금으로도 불린다)으로 연주한 노래가 바로 광릉산(廣陵散)이라는 곡이다. 혜강은 죽음을 앞두고 “원효(袁孝) 네가 이 곡을 배우고자 하였으나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이제 지금 이 곡이 끊어지게 되었구나!”라고 탄식했다. 광릉산은 이제는 사라져서 전해지지 않는 학술이나 기예를 의미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중국 역사상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문인은 많지만 고금을 연주하면서 죽은 사람은 없다. 아니 세계 역사를 둘러보아도 아마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광릉산의 원래 이름은 ‘섭정이 한왕을 찌르다[聶政刺韓王]’ 혹은 ‘금을 배워 부친의 원수를 갚다[學禁報仇]’이다. 전국시대 칼을 만드는 기일을 지키지 못해 피살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고금을 배워 결국 한왕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한 섭정의 비장한 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광릉산에서 광릉(廣陵)은 지금의 강소성 양주의 옛 지명이고 산(散)은 악곡의 이름인데 사실 이 곡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간에 떠돌던 악보가 수나라 황궁에 보관되었다가 당나라 황궁으로, 그리고 다시 민간에 흘러 다니다가 천여 년이 지난 명나라 초기에 주권(朱權)이 《신기비보(神奇秘譜)》에 악보를 수록했다. 신중국 이후에 저명한 고금 연주가인 관핑후(管平湖, 1897~1967년)가 현대적 형식으로 기록한 악보가 유명하다. 연주 시간은 대략30분이다. 비장하면서 애잔하고 울분과 투쟁과 반항이 어우러진 영웅의 기개를 표현한 명곡이다.

혜강은 일찍이 “음악엔 슬픔이나 즐거움이 없다(聲無哀樂論)”라는 글을 쓴 일이 있는데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슬프면서도 고요해진다. 광릉산이 원래 슬픈 음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혜강의 일생을 알고 있는 마음이 슬퍼서일까.

글 황희경/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호칭·직책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고전번역원인 민족문화추진회 연수부 및 연구부를 수료했다.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신문에1년간 칼럼을 연재했으며, 현재 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쓴 책으로는[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논어], [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철학자의 서재](공저) 등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역사본체론], [동양을 만든13권의 고전](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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